천일국 훈독경 제2권 제18일
타락된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진실되고, 유일무이하고,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을 바랍니다. 절대자이시고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도 똑 같은 것을 바라십니다. 인간의 소망과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명예, 지식, 물질적인 부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인간 존재 그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적은 하나님과 인간이 영원을 두고 하나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인간이 소망하는 핵심입니다.
자녀가 성장하면 무엇을 합니까? 만일,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하여 가정에서 사랑의 전통을 세울 것입니다. 첫 단계에서 개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종적인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남편과 아내로 합하게 되면 그들은 서로 횡적으로 사랑을 주고받게 됩니다. 그 다음에 자녀를 낳게 되면 종적인 사랑이 내려갑니다.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본다면, 우리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고 자녀에 대해서는 사랑을 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합니다. 만일, 그 인연이 변함 없고 또 그것이 확고한 것이라면 그 가정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것이고,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변하지 않고 그 가정과 함께할 것입니다. 이미, 그러한 사랑이 실현되었다면 신앙이나 기도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우리는 그러한 이상적인 가정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인간이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창조본연의 위치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남편과 아내로서 참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의 자녀들과도 참사랑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그러한 세 가지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잃어버린 사랑이 어떤 종류의 사랑이었고, 또는 어떤 가치가 있었던 사랑인지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세 가지 사랑의 가치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자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상실하고 난 후 대단히 고통스러워하셨고 슬퍼하셨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슬픈 감정을 그렇게 크게 느끼지 않았지만, 그들이 타락할 때 하나님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슬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셨습니다. 인간들도 역시 모든 희망과 행복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비극이었고 가장 슬픈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타락시킨 원수 사탄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분노의 감정을 가지셨겠어요! 인간의 타락이란 인간이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은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셨습니다. 아버지이셨던 하나님이 그의 자녀를 너그러이 봐 주실 수 있었던 그런 사랑을 안 가지셨겠어요? 하나님은 자녀를 용서해 주시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섭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해와 말고 또 다른 한 자식이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자식이 사탄한테서 그의 형제들을 빼앗아와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다면 하나님의 기분이 어떠셨겠어요? 그 자식을 벌주셨겠어요, 내쫓으셨겠어요, 아니면 반가워하셨겠어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본래,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사탄의 품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아오는 데 있어서도 스스로 사탄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조건입니다.
형제나 혹은 누가 사탄의 꾐에 빠졌을 때 그 타락한 형제를 되찾아 오려고 하면, 사탄은 그를 아무런 조건 없이 되돌려 주지 않습니다. 타락한 형제를 되찾기 위해서는 사탄이 그 형제를 되돌려 주는 것보다 더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을 사탄에게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되찾아 오는 것보다 사탄이 더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을 사탄에게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시 말해서, 타락한 형제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그 형제를 대신해서 자신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한 형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희생적인 형제가 제2의 그리스도가 될 것입니다. 타락한 형제는 그런 조건에 의해서만 해방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효성스러운 마음과 타락한 형제를 잃어버렸을 때의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형제가 있다면 그는 아버지의 슬픔을 덜어 드리고 그의 형제를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만일 그런 생각을 가진 형제가 있다면, 그는 형제를 대신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자 할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도 슬픔의 눈물을 흘리셨고 인간도 똑같이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만, 인간의 눈물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잃어버린 형제를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그의 눈물은 희망의 눈물이 될 것입니다. 인류 가운데 그런 사람이 나오게 될 때 비로소 구원의 희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구원섭리의 문은 하나님의 슬픔과 인간의 슬픔을 덜어 줄 수 있는 눈물로 열리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울 때, 그 눈물은 사탄에 속한 것이 됩니다.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 우는 한 어떠한 구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먼저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람은 사탄과 대항해 싸워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사랑권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 후에는 하나님과 타락한 형제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하나님과 타락한 형제의 슬픔을 덜어 주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그 형제를 대신하여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조건 위에서만 타락한 형제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원리에서 가인 아벨의 문제에 관해서 배웠습니다. 아벨은 사탄 혹은 가인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들어와 하나님과 형의 슬픔을 느끼고 체휼함으로써 그들을 대신하여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했고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형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아벨은 가인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통일식구들은 원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은 아벨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우선 사탄을 대항해서 싸울 수 있어야 하고 사탄세계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분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권 내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때부터 여러분은 하나님의 슬픈 심정과 사탄세계에 묶여 있는 형제자매의 슬픈 심정을 풀어 주기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명과 희생을 대가로 사탄세계에서 그들을 기꺼이 구해 내려고 해야 합니다. 아벨이 희생하는 데서부터 복귀섭리는 진전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공식입니다. 노아는 사탄과 대항해 싸워서 자신을 사탄으로부터 분립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시게 되었으며, 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를 사탄세계에 내보내어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서 그 자신을 희생하게 하십니다. 물론, 그를 단련시키시려는 이유도 있지만 전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더 많은 사람을 구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의인이었고, 정직한 사람이었고, 선한 사람이었던 노아는 항상 슬픈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성서를 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셨고 그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던 가족, 조국, 물질적인 부, 그리고 기타 모든 것을 뒤에 남겨 두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미지의 땅으로 가서 항상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림으로써 사탄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는 민족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했으며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한 조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실 수 있었으며 수많은 후손들이 번성하도록 축복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하나님이 그에게 축복하셨던 것은 그와 같은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를 속이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천사와 씨름했던 것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었던 사탄에 대항해 싸운 행동이었습니다. 똑같은 일이 모세에게도 있었습니다. 바로 궁전에서 40년을 보낸 후 모세는 모든 영광과 부를 버리고 자신을 사탄의 세계로부터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자기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공식을 거쳐 나왔던 것입니다. (52-54) 그리고 기도할 때는 남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눈물을 흘렸고, 유대 민족이 사탄세계를 다스리기 위해 오시기를 바랐던 메시아가 오기를 바라며 눈물을 흘렸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울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세례 요한은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선지자들은 오시는 메시아를 맞이할 수 없었지만 세례 요한은 오시는 메시아를 위해 그분의 갈 길을 곧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오실 분을 위해 기도를 하지 못했지만, 세례 요한은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그분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그가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 자신의 나라의 통치자를 위하여 기도를 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전세계의 통치자로 오셨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아관은 자기 나라를 위한 메시아관이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오실 것이라고 꿈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규칙이었던 모세의 율법을 지킬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수님이 그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전세계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시야는 더 넓었으며 세례 요한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시야에는 하나의 국가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서로 다른 길로 가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반대하던 이스라엘 민족 편에 서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죽음을 자초했습니다. 만일 그가 예수님 편에 서서 예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을 것이며, 따라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사도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세례 요한의 추종자들과 세례 요한을 모든 선지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믿었던 온 민족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 민족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과 그 민족이 분립된 국가를 형성했더라면, 구원섭리는 모든 인류에게로 확대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분립된 국가의 국민들은 아벨이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랬듯이 다른 타락한 나라와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그들을 위해서 자신들을 희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오면 예수님은 그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그들은 그 통치권 밑에서 영육 양면으로 풍족한 축복을 받아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전세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소망했던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구세주를 보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에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39)는 구절을 읽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남을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아벨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전세계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계명이요, 이웃인 전세계의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이 둘째 계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으리라!” 했습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예를 들어 봅시다. 열 명의 친구가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그 친구들이 자기를 위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의 이기주의 때문에 친구들은 모두 도망을 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사람이 자기를 부정하고, 친구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하고,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한다면 그들은 자연적으로 그에게 끌려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열 친구들은 그를 그들의 친척과 그들의 이웃에게 데려가 소개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리는 점점 숫자가 불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도 그러한 무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무리와 함께하시며 그런 무리를 위하여 존재하고 계십니다. 좁은 소견으로 보면 남에게 봉사하고 남을 위한다는 것이 어리석게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그는 중심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고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 단체의 중심이요, 핵심이 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게 될 것이고, 또한 그에게 그들의 생명을 구해주고, 이끌어 주고, 주관해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의 주관을 받고 싶어할 것이고, 그의 지도를 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만일 나라의 지도자가 그렇게 한다면, 그 국민들은 무릎을 꿇고 그들을 주관해 줄 것을 빌 것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지도자로부터 기꺼이 지배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만일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친구나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를 여러분의 아버지로 모실 수 있고 그가 가졌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자는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자가 현명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상속받을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최고의 부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이상, 그리고 인간의 목적을 소유한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참사랑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통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여러분은 삼 단계의 공식을 기억해야 됩니다. 즉, 사탄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한 후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이 삼 단계의 공식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할 때도 여러분 자신만을 위해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고 전세계를 구할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결혼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망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할 때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할 때, 그 결과는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와 통일교회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명을 희생시켜 세계를 구원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길 바랍니다. (52권 41-58)
천일국 훈독경 제2권 제 18 일 원문
타락된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진실되고, 유일무이하고,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을 바랍니다. 절대자이시고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도 똑 같은 것을 바라십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이어야 하는가가 문제입니다. 인간의 소망과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명예, 지식, 물질적인 부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인간 존재 그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적은 하나님과 인간이 영원을 두고 하나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영원히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하나입니다. 사랑만이 인간이 소망하는 핵심입니다. 그것은 변할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52-46) 자녀가 성장하면 무엇을 합니까? 만일,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하여 가정에서 사랑의 전통을 세울 것입니다. 그들은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게 될 것이며 각기 경험한 사랑을 통해서 사랑의 전통을 세울 것입니다. 첫 단계에서 개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종적인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남편과 아내로 합하게 되면 그들은 서로 횡적으로 사랑을 주고받게 됩니다. 그 다음에 자녀를 낳게 되면 종적인 사랑이 내려갑니다.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본다면, 우리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고 자녀에 대해서는 사랑을 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합니다. 만일, 그 인연이 변함 없고 또 그것이 확고한 것이라면 그 가정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것이고,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변하지 않고 그 가정과 함께할 것입니다. 이미, 그러한 사랑이 실현되었다면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어떤 것을 믿기 위한 신앙이나 기도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 조상들은 그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즉, 그들의 가정이 어떠해야 했던가 하는 이상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우리는 그러한 이상적인 가정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인간이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창조본연의 위치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52-47) 타락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남편과 아내로서 참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의 자녀들과도 참사랑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러한 경험을 한 자녀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손자의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와 같은 세 가지의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그러한 세 가지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잃어버린 사랑이 어떤 종류의 사랑이었고, 또는 어떤 가치가 있었던 사랑인지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세 가지 사랑의 가치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자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상실하고 난 후 대단히 고통스러워하셨고 슬퍼하셨습니다. 맨 처음의 부부를 상상해 봅시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자녀들이었으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랑은 단절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슬픈 감정을 그렇게 크게 느끼지 않았지만, 그들이 타락할 때 하나님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슬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52-48)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셨습니다.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습니다. 인간들도 역시 모든 희망과 행복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비극이었고 가장 슬픈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타락시킨 원수 사탄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분노의 감정을 가지셨겠어요! 인간의 타락이란 인간이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은 것을 의미합니다. 타락세계라고 할지라도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랑의 관계에 빠지게 되면 다른 인연들은 단절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셨습니다. 아버지이셨던 하나님이 그의 자녀를 너그러이 봐 주실 수 있었던 그런 사랑을 안 가지셨겠어요? 하나님은 자녀를 용서해 주시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섭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해와 말고 또 다른 한 자식이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자식이 사탄한테서 그의 형제들을 빼앗아와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다면 하나님의 기분이 어떠셨겠어요? 그 자식을 벌주셨겠어요, 내쫓으셨겠어요, 아니면 반가워하셨겠어요? 하나님이 그 형제들을 다시 데리고 왔다고 그 자식을 벌주셨겠어요? 그 자식도 같이 내쫓아 버리셨겠어요,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상관도 안 하셨겠어요?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겠어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52-49) 본래,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사탄의 품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아오는 데 있어서도 스스로 사탄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조건입니다. 형제나 혹은 누가 사탄의 꾐에 빠졌을 때 그 타락한 형제를 되찾아 오려고 하면, 사탄은 그를 아무런 조건 없이 되돌려 주지 않습니다. 타락한 형제를 되찾기 위해서는 사탄이 그 형제를 되돌려 주는 것보다 더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을 사탄에게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되찾아 오는 것보다 사탄이 더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을 사탄에게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시 말해서, 타락한 형제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그 형제를 대신해서 자신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한 형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희생적인 형제가 제2의 그리스도가 될 것입니다. 타락한 형제는 그런 조건에 의해서만 해방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효성스러운 마음과 타락한 형제를 잃어버렸을 때의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형제가 있다면 그는 아버지의 슬픔을 덜어 드리고 그의 형제를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만일 그런 생각을 가진 형제가 있다면, 그는 형제를 대신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자 할 것입니다. (52-50) 그 형제의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도 슬픔의 눈물을 흘리셨고 인간도 똑같이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만, 인간의 눈물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잃어버린 형제를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그의 눈물은 희망의 눈물이 될 것입니다. 인류 가운데 그런 사람이 나오게 될 때 비로소 구원의 희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구원섭리의 문은 하나님의 슬픔과 인간의 슬픔을 덜어 줄 수 있는 눈물로 열리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울 때, 그 눈물은 사탄에 속한 것이 됩니다.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 우는 한 어떠한 구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52-51) 다음 세 단계는 중요한 공식입니다. 먼저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람은 사탄과 대항해 싸워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사랑권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 후에는 하나님과 타락한 형제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하나님과 타락한 형제의 슬픔을 덜어 주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그 형제를 대신하여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조건 위에서만 타락한 형제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원리에서 가인 아벨의 문제에 관해서 배웠습니다. 아벨은 사탄 혹은 가인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들어와 하나님과 형의 슬픔을 느끼고 체휼함으로써 그들을 대신하여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했고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형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아벨은 가인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통일식구들은 원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은 아벨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우선 사탄을 대항해서 싸울 수 있어야 하고 사탄세계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분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권 내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때부터 여러분은 하나님의 슬픈 심정과 사탄세계에 묶여 있는 형제자매의 슬픈 심정을 풀어 주기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명과 희생을 대가로 사탄세계에서 그들을 기꺼이 구해 내려고 해야 합니다. 아벨이 희생하는 데서부터 복귀섭리는 진전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공식입니다. (52-51) 노아는 사탄과 대항해 싸워서 자신을 사탄으로부터 분립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시게 되었으며, 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를 사탄세계에 내보내어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서 그 자신을 희생하게 하십니다. 물론, 그를 단련시키시려는 이유도 있지만 전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더 많은 사람을 구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의인이었고, 정직한 사람이었고, 선한 사람이었던 노아는 항상 슬픈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52-52) 하나님은 그를 조국을 떠나 타국으로 보내시면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는 집시처럼 떠돌아다녔습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간절한 심정으로 울며 기도했고,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후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알처럼 번성할 것이라고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성서를 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셨고 그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던 가족, 조국, 물질적인 부, 그리고 기타 모든 것을 뒤에 남겨 두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미지의 땅으로 가서 항상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림으로써 사탄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는 민족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했으며 나라를 위해서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한 조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실 수 있었으며 수많은 후손들이 번성하도록 축복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하나님이 그에게 축복하셨던 것은 그와 같은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52-53) 야곱은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를 속이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천사와 씨름했던 것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었던 사탄에 대항해 싸운 행동이었습니다. 똑같은 일이 모세에게도 있었습니다. 바로 궁전에서 40년을 보낸 후 모세는 모든 영광과 부를 버리고 자신을 사탄의 세계로부터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자기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공식을 거쳐 나왔던 것입니다. (52-54) 그리고 기도할 때는 남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눈물을 흘렸고, 유대 민족이 사탄세계를 다스리기 위해 오시기를 바랐던 메시아가 오기를 바라며 눈물을 흘렸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울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세례 요한은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선지자들은 오시는 메시아를 맞이할 수 없었지만 세례 요한은 오시는 메시아를 위해 그분의 갈 길을 곧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오실 분을 위해 기도를 하지 못했지만, 세례 요한은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그분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그가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 자신의 나라의 통치자를 위하여 기도를 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전세계의 통치자로 오셨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관점은 하나님의 심정과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던 시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세계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시야는 더 넓었으며 세례 요한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시야에는 하나의 국가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서로 다른 길로 가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반대하던 이스라엘 민족 편에 서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죽음을 자초했습니다. 만일 그가 예수님 편에 서서 예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을 것이며, 따라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사도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세례 요한의 추종자들과 세례 요한을 모든 선지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믿었던 온 민족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52-54) 만일 그 민족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과 그 민족이 분립된 국가를 형성했더라면, 구원섭리는 모든 인류에게로 확대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분립된 국가의 국민들은 아벨이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랬듯이 다른 타락한 나라와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그들을 위해서 자신들을 희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오면 예수님은 그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그들은 그 통치권 밑에서 영육 양면으로 풍족한 축복을 받아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전세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소망했던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구세주를 보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에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39)는 구절을 읽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남을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아벨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전세계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계명이요, 이웃인 전세계의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이 둘째 계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으리라!” 했습니다. (52-55) 이 땅의 위인과 성인 또는 성자들은 그들이 속해 있던 타락세계로부터 자신을 분립했고, 어떤 새로운 것을 주장하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그들 자신을 희생하여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그들을 구원하려고 애썼습니다. 항상, 그들은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들은 지금까지 설명해 나온 것과 같은 노정을 걸어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공자, 석가, 마호메트의 4대 성인들도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동경하고 인류를 사랑했기 때문에 인간들을 위해서 역경과 박해를 헤쳐 나갔습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예를 들어 봅시다. 열 명의 친구가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그 친구들이 자기를 위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의 이기주의 때문에 친구들은 모두 도망을 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사람이 자기를 부정하고, 친구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하고,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한다면 그들은 자연적으로 그에게 끌려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열 친구들은 그를 그들의 친척과 그들의 이웃에게 데려가 소개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리는 점점 숫자가 불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도 그러한 무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무리와 함께하시며 그런 무리를 위하여 존재하고 계십니다. 좁은 소견으로 보면 남에게 봉사하고 남을 위한다는 것이 어리석게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그는 중심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고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 단체의 중심이요, 핵심이 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게 될 것이고, 또한 그에게 그들의 생명을 구해주고, 이끌어 주고, 주관해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의 주관을 받고 싶어할 것이고, 그의 지도를 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만일 나라의 지도자가 그렇게 한다면, 그 국민들은 무릎을 꿇고 그들을 주관해 줄 것을 빌 것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지도자로부터 기꺼이 지배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공식에 입각한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는 존재할 것이지만 그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자유 민주주의 세계에 만연되고 있는 개인주의적인 사상은 그러한 점에서 위험합니다. 이러한 공식에 근거해 볼 때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52-56) 그 점이 예수님을 위대하게 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친구나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를 여러분의 아버지로 모실 수 있고 그가 가졌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이제 결론을 내려봅시다.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자는 어리석은 자들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자가 현명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전세계를 소유할 수 있고 하나님과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상속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모든 것을 소유함으로써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최고의 부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이상, 그리고 인간의 목적을 소유한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참사랑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통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여러분은 삼 단계의 공식을 기억해야 됩니다. 즉, 사탄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한 후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이 삼 단계의 공식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할 때도 여러분 자신만을 위해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고 전세계를 구할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결혼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망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할 때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할 때, 그 결과는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와 통일교회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명을 희생시켜 세계를 구원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길 바랍니다. (52-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