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절 가정의 가치 (평화신경 해설 - 제3장 천주평화통일왕국 창건의 참된 주인 Ⅰ) u

訓讀王 | 20191111224506

평화신경 해설 - 제3장 천주평화통일왕국 창건의 참된 주인 Ⅰ



제7절 가정의 가치

(본문은 훈독하지 않았습니다.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여러분, 우리가 떠나온 가족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곳에 위해 주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형님 누나와 동생의 사랑, 처자식과 이웃 친척들의 사랑이 알알이 배어 있는 곳입니다. 이 모든 관계와 인연들이 위해 주는 사랑으로 맺어져 있고 하나같이 품고 싶은 정다운 곳입니다. 그곳에 해방된 자신으로서 당당히 나타나 산천초목을 품고, 일가친척을 사랑하며 환희의 노래를 부르고 싶은 것이 가족을 떠난 나그네의 향수요, 소망일 것입니다.


고향에서 쫓겨나 본향의 심정의 뿌리를 잃어버려 가족을 보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었던 영원한 고독의 패망자로서 유리고객하며 살다가 지옥으로밖에 갈 수 없었던 신세가 바로 타락의 후예 된 인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이제 후천개벽시대를 맞아 이와 같은 질곡의 늪에서 해방을 받고 그처럼 몽매에도 잊지 못하던 고향을 찾아 가족들을 상봉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인류에게 이보다 더 큰 축복의 날이 또 언제 있겠습니까? 아담 해와가 타락으로 잃어버린 본연의 가정을 우리가 다시 찾아 세울 수 있는 천운의 때가 도래 했다는 것입니다. (본문…66~67쪽)


<해 설>


1) 가정이 좋은 이유


가정이 좋은 것은 가정에서는 사랑을 서로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어서 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 고향을 그리워하고 부모와 형제가 있는 곳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38-328,…1971.1.8)


가정은 좋은 곳입니다. 그것은 엄마 아빠가 있어서 좋은 곳이며, 누나 오빠가 있어서 좋은 곳이며, 동생이 있어서 좋은 곳이며, 친척이 있어서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향 땅,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의 심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보다도 고향을 더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그리워하는 곳은 고향입니다. (23-151,…1969.5.18)


여러분, 가정이 좋은 것은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자유로운 활동의 기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자유스럽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기에는 아무리 초라해도 빛나는 사랑의 핵을 지닌 그런 내적인 인간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자유롭습니다. 어느 집에 손님으로 가면 부자연스러운 것은 사랑의 인연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인연이 사방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어색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인격의 길입니다. (99-307,…1978.10.1)


한 가정을 중심삼고 제일 좋은 것은 여러분 자신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최상의 가치는 다름아닌 부모(父母)입니다. 여러분 한 개인을 두고 보더라도 여러분에게 어떤 권력이나 지식 또는 명예나 돈도 귀중한 것이 될 수 있지만, 그 모든 것보다도 더 좋은 것으로 부모 이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으로는 여러분의 아내나 남편이 될 것이고, 또 그다음에는 여러분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부모나 아내, 그리고 자녀들보다도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부모가 좋고 또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가 좋은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 이것은 자식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간의 우애라든가 자녀가 부모에 대해 가지는 효성의 마음도 한 가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112-290,…1981.4.25)


여러분이 가정을 두고 볼 때, 집이 좋고 그 주위환경이 좋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아무리 환경이 나쁘고 집이 초라하더라도 그것을 안식처로 삼고, 거기에 자기의 사연과 생애와 생활의 모든 기준을 인연맺고자 하는 가정이 좋은 가정입니다. 거기에는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위해 주는 심정이 있습니다. 이것이 추억의 본향이요, 모든 생활의 동기가 되기 때문에 우리 생활에서 행복을 좌우하는 기초가 됩니다. (29-17,…1970.2.15)


2) 가정은 행복의 터전


인간생활에서 단지 어떠한 외적인 능력·권세·권위를 가졌다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남부럽지 않을 만큼의 돈이 있다고 해서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또 세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결코 그것만으로 사람이 행복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23-11,…1969.5.11)


어떤 사람이 이만하면 천상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행복을 노래한다 하더라도 그런 외적인 것이 행복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행복을 찾아가는 조건은 될 수 있지만, 행복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부모가 있고, 부부가 있고,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없으면 거기에 해당하는 비례적인 슬픔을 느낄 것이요, 비례적인 불만이 그 가슴 가운데 남아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21-140,…1968.11.17)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이 일반적으로 행복의 터전은 가정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부모 없는 자식을 고아라고 부르며, 그 고아는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는 동시에 부부의 인연이 있습니다. 부모가 없는 것도 불쌍한 것이지만, 부부 중 한 사람이 없는 것도 불쌍한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스럽게 지내던 부부라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게 될 때는 더없이 비참하고 불행해집니다. 뿐만아니라 부부가 자녀를 갖지 못하면, 그것 역시 불행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3-11,…1969.5.11)


가정에는 반드시 부모가 있고 처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가정이 행복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찾아 나오는 목적도 하나님 자신의 행복을 모색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자신이 행복의 터전을 찾아 나오는 데에는 인간을 떠난 자리에서는 그러한 이상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야 그 일치점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정서적인 모든 내용을 갖춘 자리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역시 그러한 자리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32-198,…1970.7.15)


행복을 콧노래를 부르며 맞을 수 있는 환경은 가정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가정의 행복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또 심정, 사랑이 없어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23-120,…1969.5.18)


3) 사랑의 이상실현은 가정에서부터


사랑의 이상실현은 우리 통일교회에서부터, 나라에서부터, 세계에서부터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아무리 통일했다 하더라도 자기 가정을 통일하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랑의 이상실현은 가정에서부터 해야 합니다. 가정은 행복의 보금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천국을 이루려 오셨던 예수님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하신 것도 가정을 표준하고 한 말입니다.


가정에는 첫째는 부모가 있고, 둘째는 자녀가 있고, 셋째는 부부가 있고, 그다음에는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은 사랑으로 얽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사랑으로 하나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랑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조부모의 사랑이 하나될 수 있고, 부모의 사랑이 하나될 수 있고, 부부의 사랑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통일성이 개재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사랑에는 사람의 생명의 동기가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생명이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상이 여기에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조부모는 부모에게 모든 것을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즉 자녀에게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조부모의 자녀는 부모요, 부모의 자녀는 우리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을 중심삼은 곳이 천국입니다. 여기에서 어느 것을 부정해도 천국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요, 과거·현재·미래를 통합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자기 부부끼리 사랑하는 이상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해야 되는 것이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는 이상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해야 합니다. (48-10~11,…1971.8.31)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합니다. 남자는 주체이기 때문에 누구의 간섭을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여자는 사랑하기보다도 사랑받기를 좋아합니다.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는 것은 우주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써만 우주를 주관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랑으로써만 우주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자기 상대를 우주보다 더 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 이 두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지상에서 사랑으로 엮어진 삶을 산 사람은 천국에 가게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세계가 영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개개인이 완전히 하나되면 자동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하나되게 되어 있고, 완전한 부부가 생겨나게 되면 하늘땅은 통일됩니다. 사랑은 남자와 여자 둘 사이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가 사랑하는 곳에 하나님은 계시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사랑이 영원할 수 있고, 그 사랑이 영원한 통일을 이룰 수 있고, 그 사랑이 영원한 생명을 지닐 수 있고, 그 사랑이 영원한 이상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찾는 자는 모든 것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가정의 목적은 가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천국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우주가 하나되기 위한 표준, 이런 목적에 일치하기 위한 표준을 중심삼아서 가정에서부터 민족·국가·세계·천주까지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48-11~12,…1971.8.31)


천국생활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가정을 입체적으로 확대시킨 것뿐이지 가정권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기 아내나 남편을 품을 때 그것은 세계의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계 인류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울 수 있는 자리가 바로 가정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아갈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역사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것이요, 하나님이 찾아오실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적인 존재와 시대적인 나를 연결시키는 것, 즉 과거와 현재를 하나 만드는 것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를 중심삼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현실과 미래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을 천년만년 찬양하게 하려는 사상이 통일사상입니다. (30-83,…1970.3.17)


역사를 품고, 시대를 품고, 미래를 품을 수 있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년을 거쳐 오면서 찾아온 최후의 기점은 가정입니다. 그 가정은 사랑이 연결된 곳입니다. 사랑으로 전부 다 결속된 가정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두 다 여기에 주관을 받는 것입니다. 근원적인 사랑, 절대적인 사랑과의 관계를 떠날 수 없습니다. 이런 가정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아담과 해와에게 준 본래의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 아담, 여자 해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한 새로운 가정을 꿈꾸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남녀를 세우신 제1차적인 출발의 기원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찾아 가정권 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 세상에서 충족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서 살아야만 천국도 무사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계도 넘어설 수 있습니다. (30-86,…1970.3.17) 


4) 가정은 우주적 사랑의 교재


우주에 있는 피조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의 이상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전부 다 상대적 구조입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써 작용합니다. 원자도 그렇습니다. 양자와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써 작용합니다. 작용하지 않고는 존속할 수 없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영속, 존속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37-59,…1985.12.18)


우주는 가정을 확대한 것입니다. 가정의 사랑을 완전히 이룬 가정을 보게 되면 상중하(부모·부부·자녀)가 있고, 좌우가 있고, 전후가 있습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상하를 말할 때는 부모와 자녀를 말하고, 좌우를 말할 때는 남편과 아내를 말하고, 전후를 말할 때는 형제를 말합니다. 이러한 전체가 하나될 수 있는 것은 어떤 힘이나 지식, 돈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구형이 안 되는 것입니다.


상중하는 우리 가정에 있어서 사랑의 교재입니다. 우주적인 사랑을 접할 수 있는 사랑의 교재입니다. 그와 같은 것을 사회에 가서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웃 사랑을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인지 막연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할아버지를 대할 때는 여러분의 할아버지같이 대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같이 대하고, 아버지같이 대하고, 아들과 같이 대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게 되면 전부 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상중하와 전후·좌우의 사람이 세계라는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람 박람회가 세계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사랑을 가지고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으면, 그 가운데 하나님이 같이합니다. (128-23,…1983.5.29)


천국은 자기 가정과 같이 세계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곳이 천국이요, 그런 사람이 천국 백성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자기 아내, 형제·자녀의 4대는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 사랑, 우주의 참사랑을 체험하기 위한 교재로서의 가정입니다. 교재로서 나에게 가르쳐 주는 기반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129-98,…1983.10.1)


자녀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어떤 운세를 받아야 되느냐? 조부모와 부모의 운세를 이어받아야 합니다. 조부모는 과거를 대표하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조부모는 과거의 산 역사를 대표합니다. 그다음에 부모는 현재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자녀들은 미래를 상징합니다. 거기엔 동서도 들어가 있고, 남북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의 중심입니다.


조부모의 중심, 부모의 중심, 자녀의 중심, 하나님의 중심 등 모든 게 참사랑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은 과거를 전부 다 이어받고 과거의 세상을 배우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서는 현재를 배우는 것이요,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미래를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 참사랑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이는 많지만 두 분이 참사랑에 하나되어 있고,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되어 있으니 우리도 그와 같이 되어서 미래를 이어받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참가정이 되지 않고서는 미래를 이어받지 못합니다. 가정의 이 셋을 볼 때 우주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우주의 사랑은 현재와 미래를 대표한 참가정에 있습니다. 동물 세계를 보더라도 암놈을 사랑하고 수놈을 사랑하는데, 이것은 우주의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교과서입니다.


할머니가 없으면 불안정합니다. 할아버지가 없어도 불안정하고, 어느 쪽이 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그냥 그대로 하늘나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조부모, 어머니 아버지, 자녀가 그냥 그대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참조부모를 사랑하고, 참부모를 사랑하고, 참자녀·참가정·참국가·참우주를 사랑한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것의 모형 교과서가 가정입니다. (162-140~141,…1987.4.5)


5) 가정은 심정의 훈련소


우리는 우주의 사랑을 배우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본이나 경전과 같은 걸 만들어 “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하라! 지상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영계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표해서 보냈기 때문에 그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전체를 사랑하는 것으로 해 주마!” 하고 공약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네가 어머니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은 이 세계의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를 대표하는 교본과 같이 사랑하는 모델로 삼았으니 전체를 사랑했다는 조건으로 삼아주마! 또 남자로서 여자를 사랑했다는 것은 세계의 남자가 세계의 여자를 대표적으로 묶어 사랑했다는 것으로 세워 주마!”라고 합니다. 또 그다음은 “네 아들딸을 사랑한 것으로 전체 아들딸을 전부 다 사랑했다고 해 주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그 훈련을 받는 훈련소입니다. 경전에 의한 세계 사랑의 훈련 과정인데, 그 훈련을 받은 사람에게 “이제는 세상에 한번 나가 여러분의 할아버지 할머니 대신 세상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느냐?” 할 때 “예스!” 한다면, 그러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130-273,…1984.2.5)


지금까지 하나님은 주체를 찾아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상적인 대상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받았고, 당신이 지은 세계의 안팎의 내용을 갖추고 있는 것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이런 결과적인 하나의 기점이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보다 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부모와 하나되는 것은 역사와 현실이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부모를 사랑함으로써 과거를 사랑할 수 있고, 상대를 사랑함으로써 현실을 사랑할 수 있고, 자녀를 사랑함으로써 미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3시대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 가지 사랑이 결집된 핵심체가 가정입니다. (30-80,…1970.3.17)


우리는 심정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자기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혹은 세계적인 모든 권위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심정적인 기쁨을 표시할 곳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자기가 거느리는 사람들이나 각료들 혹은 추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심정적인 만족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가정에서 느껴야 합니다. 가정에 돌아와 가지고 부부가 서로를 통하여 기쁨을 느끼고, 또 자녀를 통하여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쁨은 1차적인 기쁨이지 2차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계를 전부 복귀했다 하더라도 가정이 없는 하나님은 기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가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5-86~87,…1969.9.30)


가정에서는 부모를 중심삼아야 하고, 사회를 대표하는 교육기관에서는 선생님을 중심삼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기를 젖 먹여서 키우고, 즉 생리적인 발전을 돕고 정서적인 면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학교는 사회적인 생활, 앞날의 생활무대를 중심삼고 훈련하는 곳입니다. 가정이 정서적인 훈련장이라면 학교는 사회에 있어서의 실험적인 훈련장입니다. 사회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나아가 나라에 귀결됩니다. 나라에는 나라님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전부 다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대통령과 가까이 있으려고 하는 이유는 가정으로부터 사회까지 모든 것을 알고 나서, 그다음엔 더 큰 데로 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하게 되면 소생·장성 단계를 넘어서 세 번째 단계의 열매입니다.


씨가 뿌리에서부터 시작해 순환작용을 해서 갈라집니다. 갈라져 여기서 종합해 가지고 꽃이 피어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도 나라를 위한 귀중한 동량, 인재를 양성해 나라에 필요한 사람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훈련입니다. 그러므로 학교는 훈련장소, 실험장입니다. 훈련은 실전이 아니라 준비단계입니다. 준비를 잘못하면 안 됩니다. 가정은 심정적인 훈련장소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심정적으로 훈련하는 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을 가지고 형제와 같이 학교에서 살아야 되고, 정을 가지고 나라에서도 형제와 같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그런 교육은 학교를 위한 교육이요, 사회를 위한 교육이요, 나라를 위한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정서적인 모든 것을 자식들 앞에 전수해 줘야 합니다. 부모가 산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되고, 사회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되고, 나라를 위해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서적 바탕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입니다. (180-130~131,…1988.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