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절 인간 타락의 결과, 下 (평화신경 해설 - 제3장 천주평화통일왕국 창건의 참된 주인 Ⅰ) u

訓讀王 | 20191111224049

평화신경 해설 - 제3장 천주평화통일왕국 창건의 참된 주인 Ⅰ



제5절 인간 타락의 결과, 下

(본문은 훈독하지 않았습니다.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알고 보면 이런 모든 문제는 우리의 첫 조상된 아담 해와의 타락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장성기 완성급에 있던 아담과 해와가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때 아닌 때에 성적으로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남녀간의 불륜한 성적 결합이 바로 타락이 되었기에 수천 수만년을 거쳐오면서도 인류는 아직도 그 타락의 혈통권을 벗어나지 못한 채, 생각하기도 싫은 그런 만행들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슴에 철못을 박고 있는 역적행위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남자나 여자나 혼자서는 반쪽 인간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기관인 생식기의 주인을 서로 엇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아내의 생식기 주인은 남편이고, 남편의 생식기 주인은 아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 위해 주는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가 되고서야 상대의 주인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결혼을 통해 주인의 자리를 확보할 때 반쪽 인간만이 아닌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식기는 지극히 성스러운 곳입니다. 생명의 씨를 심는 생명의 왕궁이요, 사랑의 꽃을 피우는 사랑의 왕궁이요, 혈통의 열매를 맺는 혈통의 왕궁입니다. 이 절대생식기를 중심삼고 절대혈통·절대사랑·절대생명이 창출됩니다. 절대화합·절대통일·절대해방·절대안식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생식기의 주인 자리를 찾아서는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3대 사랑의 주체이십니다. 천주의 주인으로서 참사랑의 스승, 참사랑의 주인, 참사랑의 부모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3대 주체사상입니다. 이런 모든 가르침과 진리가 참된 모델적 이상가정의 삶을 중심삼고 창출되는 것이며, 이것을 확대하면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와 천주까지도 모델적 이상가정의 평화왕국으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첫 아담은 본연의 참된 혈통을 잃어 버렸고, 따라서 본연의 부부를 이루지 못했으며 본연의 가정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참된 스승, 참된 부모, 참된 왕이 되었어야할 아담은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은 거짓 스승, 거짓 부모, 거짓 왕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알고 보면 예수님도 이 땅에 강림했던 목적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2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이 만일 십자가에서 목숨을 잃지만 않았더라면, 예수님도 타락과는 관계가 없는 본연의 하늘 혈통을 갖고 첫 아담의 실패를 복귀하여 인류의 구세주로 서 참된 가정을 세우고 인류의 본향인 평화이상세계왕국, 즉 지상천국을 이 땅 위에 창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신 주님을 알아 모시지 못한 제자들과 유태교 지도자들, 그리고 이스라엘 국가 지도자들의 불신이 예수님의 생애를 그처럼 억울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마치게 만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한 점 혈육도 남기지 못한 채 불시에 떠나야 했던 예수님의 한에 맺힌 심정을 아는 자가 어디 있었습니까? 2천년간 기독교 역사가 진행되어 왔지만 진정 예수님의 서글픈 사정을 상상이라도 해 본 기독교인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재림의 약속만을 남긴 채 홀연히 흔적도 없이 떠나신 예수님, 그분의 육신은 이미 흙이 되어 없어진 지 오래지만 하늘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려 하셨던 그 뜻은 이제야 역사의 종말기를 맞아 하늘의 인침을 받고 현현하신 참부모님을 통해 완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부모의 사명을 완수해야만 하는 레버런 문의 생애 또한 형언할 수 없는 고난과 핍박으로 점철된 한의 생애였습니다. 제1아담과 제2아담이 실패한 모든 것을 탕감복귀하고 완성해야만 하는 제3아담 된 참부모의 사명은 구세주, 메시아, 재림주의 사명은 물론 모든 종주들의 사명까지도 총체적으로 완수해야만 하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주 창조가 그러했듯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는 인류 재창조의 대역사였습니다. 어느 누구 한 사람과도 의논할 수 없는 고독한 노정이었습니다. 하나님까지도 돌아보시지 않아 철저하게 혼자서 찾아가야 하는 가시밭 광야노정이었습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생사의 기로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하늘과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다시 일어서야만 했던 불사조의 삶이었습니다.


일찍이 일본 유학시절 지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또 해방 직후 공산치하인 평양에서 하늘의 뜻을 전파하다가, 그리고 자유국가로 탄생한 이승만 정권 하에서도,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대표국임을 자랑하는 미국에서조차 옥고를 치르는 등, 일생에 여섯 번씩이나 무고한 옥중투쟁을 거쳐야만 했던 레버런 문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 어느 누가 이해할 자 있었습니까? 불쌍하신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사망권에서 허덕이는 타락 인류를 구해주기 위해 혀를 깨물며 참고 살아온 비참한 생애였습니다.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본인의 이런 심정의 내연을 들여다보고 한마디만 던져도 본인의 눈물은 폭포수가 될 것입니다. (본문…61~65쪽)


<해 설>


3) 핍박받은 참부모의 생애노정


선생님의 처지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개인·가정·종족·국가·세계적으로 지금까지 핍박받아 왔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외로운 생애였는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선생님 앞에서 “당신은 나를 싫어하지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상의 어느 누구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은 항상 그런 슬픔으로 차 있습니다.


선생님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심각합니다. 눈물 없이는 보고도 기도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그러한 배경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을 이끌고 각 나라의 교회들을 이끌면서 지금은 미국과 싸우고 있어요. 세계적인 핍박을 받는 처지에서 혼자 중심에 서서 싸우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얼마나 불쌍한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여러분은 그런 심정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최고의 영적 자리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의 선생님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입장은 선생님이 잘 압니다. 나는 여러분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올바른 생각을 심어 주기 위해서 선생님이 항상 간섭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항상 따르는 식구들을 위해서 선생님은 생활을 희생해 왔습니다. 그런게 부모의 자리입니다. 그런 것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육신의 부모들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불쌍한 생애노정을 통해 나오면서 많은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이제는 선생님이 유명해졌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는 말입니다. 이제 선생님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습니다. 권력이 필요 없습니다. 권력도 갖고 있습니다. 돈도 필요 없습니다. 돈도 갖고 있습니다. 힘도, 지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를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신성한 하나님의 내면세계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난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에게 단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참사랑입니다. 봄이 되면 파릇파릇 보기 좋게 싹이 돋아나듯이 참사랑을 세계로 퍼뜨려서 심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걸 원하시는 걸 선생님은 압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관념이기도 합니다. (147-120~121,1986.8.31)


여러분은 자녀로서 선생님의 자리를 물려받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자녀라는 것은 부모의 살과 뼈를 물려 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심정도 자동적으로 부모의 심정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항상 선생님을 닮으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저렇게 산다면 나도 저렇게 살아야 되겠다. 나도 저와 같이 저기까지 가야만 한다. 이것은 나의 숙명이다.’ 하고 생각합니다. 숙명은 어느 누구도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자동적으로 이 길을 따라가게 되는 당연한 길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먹고 활동하고 살아가는 등의 모든 것이 다릅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선생님은 전 생애가 자랑스럽습니다. 감옥에 가더라도 자랑스러웠습니다. 감옥에 갔던 그 목적이 여러분과는 달랐습니다. 선생님은 이 세상이 나아갈 수 있는 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해방의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정복할 수 없었던 사탄세계를 정복하고 승리했습니다. (147-121,…1986.8.31)


역사 이래에 수많은 고난 길이 있었지만, 선생님이 걸어온 이 8단계 고난 길이라는 것은 역사시대에 사탄세계라든가 하나님의 역사에서 없었던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 저는 이 자리를 못 참겠습니다.” 하고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되는 탕감의 길이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눈물 흘리는 자리를 기쁨으로 닦아 갈 수 있는 터전이 되지 않으면, 천국의 발판이 이 지상세계에 남아지지 않는다는 천리원칙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가 종의 종의 왕의 자리의 고난 길, 종의 왕의 자리의 고난 길, 양자의 왕의 자리의 고난 길, 서자의 왕의 자리의 고난 길, 아들의 왕의 자리의 고난 길, 어머니의 왕의 자리의 고난 길, 그 다음에는 아버지의 왕의 자리의 고난 길을 다 가야 됩니다. 자기가 고생하는 길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붙들고 인류를 해방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인류를 해방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인류를 위해서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나를 세상의 어떤 이보다 잃어버릴 수 없는 대표자로 알지만, 나도 ‘이 양자들과 비참한 노예들을 놓을 수 없으니 나와 바꿔서라도 이들을 구해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놀음을 했습니다. 그럴 적마다 하나님이 “그 레버런 문의 말을 들어줘야 되겠나, 안 들어줘야 되겠나?” 하고 사탄에게 물어보면 사탄은 “들어줘야 됩니다.” 하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런 비참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제가 미칠 수 없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반대할 수 있는 천리원칙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반대할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그가 가는 길은 해방권입니다.” 한다는 것입니다. (161-195~196,…1987.2.3)


선생님은 성인들 앞에서도 핍박받아야 됩니다. 성인인 기독교, 유교, 불교의 대표로부터 제일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탕감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 사탄세계의 악마들이 기독교를 무참히도 죽여 나왔습니다. 종교권을 무시해 가지고 핍박해 나왔고, 세계적으로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둘 다 죄인입니다. 그렇지만 같은 자리에서 부모님은 원수를 사랑했습니다. 둘이 다 원수입니다. 또 부모 앞에 이 자식들이 원수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선생님의 생애를 중심삼고 원수권입니다.


선생님의 성격이 불같아서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합니다. 어릴 때도 불의를 보면 잠을 못 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생님보다 더 불같은 성격일 것입니다. 극단적인 성격, 일시에 에덴동산을 완전히 살라 버리고 뒤집어 박을 수 있는 하나님이 어떻게 참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선생님이 참아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다시 찾아야 할 하나님은 억울한 것이 문제가 아니고, 억울한 것의 몇천만 배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런 사랑이니, 그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억울한 고개를 억천만 개도 무난히 넘을 수 있었다는 것이 이론적입니다. 그런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참아 나왔고, 그런 내용을 알기 때문에 레버런 문도 지금까지 참아 나왔지, 그렇지 않으면 복수의 복수를 벌써 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307-30~31,…1998.11.6)


만일 애국의 길을 갈 때 눈을 하나 빼앗기고 죽은 사람보다 두 눈을 빼앗기고 다리까지 꺾인 사람이 있다면 그가 더 애국자일 것입니다. 보다 비참하게 죽은 사람입니다.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러한 역사를 거쳐 나왔습니다. 왜정 때부터 고문을 당했습니다. 거꾸로 매달리고 손발이 전부 다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고문을 당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놈, 쳐라! 때가 되면 나는 너를 열 배 이상 칠 것’이라고 다짐하며 나왔습니다.


통일교회가 무슨 흘러가는 놀이를 하기 위해서 모인 곳이 아닙니다.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내가 먹히느냐 네가 먹히느냐, 내가 지느냐 네가 지느냐 하는, 양자택일을 하는 곳입니다. 둘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생애를 바쳐서 나온 것입니다. 공산세계에서도 그랬고, 민주세계에서도 그랬습니다. 3대 주권으로부터 고문과 핍박을 받아 나왔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아무리 쳤어도 선생님을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아진 것입니다. (58-165,…1972.5.22)


선생님은 세계 인류야 자지 말고 나를 핍박해라 했습니다. 40년 동안 4천년 원한을 넘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권한을 가지고 역사를 치리해야 할 선생님이 종의 종이 되어 가지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은 인류를, 땀은 땅을, 피는 하늘을 사랑하기 위해서 흘리는 것입니다. 그게 선생님의 생애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가는 생애입니다. 하나님이 레버런 문을 아들로 생각할 때 그 아들이 사형장에 나간다면 그 아버지가 절대 편안할 수 없습니다. 4천년 역사의 한을 이 미국 백인세계의 기독교에 퍼부어서 멸망시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책임집니다.” 한 것입니다. 레버런 문 때문에 단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살겠다고, 40년 전에 산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죽을 길을 찾아나선 것입니다. 빨리 죽을 길을 찾아나선 것입니다. 빨리 죽을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망할 길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당신의 사랑만이 남고 레버런 문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은 없어지고 당신의 사랑만이 남습니다. 레버런 문의 생명은 없어지고 당신의 생명이 있고, 레버런 문의 피는 없어지더라도 당신의 핏줄기가 여기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세계적 기준을 찾으소서.” 한 것이 선생님의 기도였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이 싸운 생애의 목적입니다. 가정이 아닙니다. 나라가 아닙니다. 세계가 아닙니다. 먼저 그 기반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아버님은 이 복귀노정을 통과하면서 종처럼 핍박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한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했습니다. 재림의 참부모가 그 사명을 상속받아서 내가 우리 시대에 서서 미래시대의 영계를 포함한 모든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역사는 2천년 기독교 역사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역사는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아버님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아버님이 그것을 했습니다. (193-76~77,…1989.8.20)


선생님의 생애와 역사를 다 알아야 됩니다. 탕감복귀가 얼마나 복잡하고 얼마나 힘들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릅니다. 또 모르면서도 믿지도 않고 머리를 저으면서 제멋대로 살고 했습니다. 자기 욕심은 욕심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교회를 이용해서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번 자르딘에서의 교육 생활은 여러분이 사악한 세상을 수습할 수 있는 생활 표본형입니다. 돌아가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180도 다른 방향으로서 생활 무대를 갖춰 가지고 세계를 소화할 수 있는 주체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가정이 돼야 합니다. (308-237~238,…1999.1.9)


레버런 문은 다 잃어버렸습니다. 하늘땅을 잃어버리고, 동서 세계 통일천하를 잃어버리고, 국가를 잃어버리고 쫓겨나 가지고, 부모를 다 잃어버리고 처자까지 잃어버리고 홀로, 고독 단신이 되었습니다. 아담이 가정을 잃어버리고 하나님 품을 떠나 고독단신으로 미래에 새로운 재림의 역사를 받아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에 상륙하여 가정적 기틀을 다시 잡아서 세계 제패를 이루기 위한 이 일이 천년만년이 아닌 40년 동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도 4천만년 이상의 역사 가운데서도 아담을 찾지 못했는데, 40년 동안에 아담을 세워 가지고 해와까지 찾아서 가정을 완성하고 나라와 세계를 찾아서 이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해 나온 구원섭리에 있어서 메시아를 보낼 때의 몇십 배, 몇 백 배 어려운 짐을 짊어진 것입니다.


전세계가 개인적 입장에서 반대하고, 전세계의 가정들이 합해 가지고 반대하고, 세계의 종족이 합해 가지고 반대하고, 세계의 국가가 합해 가지고 반대하고, 공산당과 민주세계가 합해 가지고 반대했습니다. 사탄과 합작해 가지고 선생님 타도 운동을 했습니다. 그것이 근대 40년의 역사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선생님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원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원리를 알았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306-162~163,…1998.9.22)


선생님이 복귀노정에서 부모가 반대하고, 처자가 반대하고, 자식이 반대하고, 스승이 반대하고, 누가 반대해도 직행하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고독단신인지 친구도 없습니다. 스승도 없습니다. 같이 계신 어머니도 탕감복귀의 길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따라와야 됩니다. 절대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것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것까지도 선생님이 책임지고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뼈의 땀, 뼈의 눈물, 뼈의 피, 골수의 땀, 골수의 눈물, 골수의 피까지 흘려도 하나님의 은덕을 갚을 도리가 없습니다. (341-145~146,…2001.1.1)


선생님은 말할 수 없이 외로웠습니다. 모진 풍상을 겪으면서 홀로 홀로 나왔습니다. 누구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도울 수 없었습니다. 울면서, 눈물 흘리면서 부모님 앞에 얼굴 감추고 돌아서 가지고 모습도 안개 속에 사라지는 하나님의 형상을 대할 수 없었던 아들의 신세, 고독한 신세, 어머니도 없고 상대도 없고 아들도 없고 딸도 없는 신세였습니다. 이걸 다시 복귀해서 하늘을 위안시켜야 할 통일교회 외로운 종주, 종교의 주인 양반의 신세가 ‘독도(홀로아리랑)’의 신세와 같은 것을 알고, 성가의 중요한 면에다 기록하라고 명령한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독도’ 하면 외로운 도의 길을 지키는 선생님을 상징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67-339,…2004.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