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경 해설 - 제3장 천주평화통일왕국 창건의 참된 주인 Ⅰ
16 평화신경 해설 3장 1절 실존하는 영계 1 (1).mp3
제1절 실존하는 영계
(용량 문제로 본문은 훈독하지 않았습니다.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여러분, 인간에게는 몸 위에 마음이 있고, 마음 위에는 영인체가 있으며, 그 영인체가 들어가 살게 되는 영계 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참사랑을 통해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될 때 완전한 사람이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완전한 사람이란 비록 작은 개체의 모습일지라도 전체 역사를 대표한 존재요, 또 미래의 모든 인연을 대신한 존재이기 때문에 천주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이런 천주적인 가치를 안다면 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을 앞에 모시고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는 점이 확실해 질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양심은 여러분의 모든 언행은 물론 생각까지도 기억하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스승보다 먼저 알고, 부모보다 먼저 알고, 하나님보다도 먼저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스승된 양심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살기만 하면 여러분의 영생은 절대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각도에서 인간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이중구조로 창조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형세계인 현상 세계의 축소체로서 육신을 창조하시고, 무형세계의 대표요, 주인으로 세우기 위해 영인체를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지상계에서 한 100년쯤 살다가 육신의 기능이 다하면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동적으로 무형세계인 영계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계는 육신을 터로 하여 살고 있는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을 뿐이지, 지상생활의 자동적이고 필연적인 연장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인간의 영원한 본향입니다. 영계는 이처럼 엄연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망상의 세계도 아니요, 상상의 세계도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선택권 밖에 있습니다.
좋다고 해서 가고, 싫다고 해서 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원하고 불변하신 분인 것처럼 당신이 창조하신 영계도 영원하고 불변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상계에서 육신을 쓰고 현상세계와 각종 관계를 맺어 가며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계에서도 인간은 영인체를 갖고 영계의 모든 현상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 노정입니다. (본문…53~54쪽)
<해 설>
1) 천주적 가치를 지닌 인간
인간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고, 마음 위에 영이 있으며, 영 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야만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비록 작은 하나의 개체지만 전체의 역사를 대신한 존재요, 미래의 모든 인연을 대신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천주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4-267,…1958.8.3)
인간의 몸은 비록 하나의 몸이로되 마음의 세계, 심정의 세계는 무한한 천주를 품고 노래하며 살고 싶어합니다. 창조주가 있다 할진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할 것인가. 심정의 세계를 통하고 이념의 세계를 통하여 지배합니다. 거기에서 우리를 향하여 “오라, 오라, 오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심을 통해 재촉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양심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힘의 작용입니다. 개인은 개인을 귀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개인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은 반드시 가정을 귀하게 여길 줄도 압니다. 가정을 귀하게 여기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원시시대는 가정단위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가정단위시대는 지나갑니다. 넘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천주를 품음으로써 천주적인 선물의 입장을 완결짓고, 선물된 인연의 가치를 노래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고로 역사는 발전해 나옵니다. 자기 끼리끼리 사랑하고, 자기 가정만 사랑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가정을 넘어 씨족, 씨족을 넘어 부족, 부족을 넘어 민족으로 가는 것입니다. 민족에 그치는 것만도 아닙니다.
다음엔 국가를 일으켜야 하는데 그 국가에만 머물러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국가를 넘어서 세계형태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우리를 이 땅 위에 보내신 목적은 내 마음과 몸이 세계를 품고 세계와 화할 수 있기를 바라고 보내신 것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8-14~15,…1959.10.25)
2) 양심은 스승·부모·하나님보다 앞서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고, 스승보다 앞서고, 하나님보다 앞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나의 주인을 찾아야 됩니다. 그러한 고귀한 주인을 울리고 있는 것이 몸뚱입니다. 종교가 필요 없고, 스승이 필요 없고,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체라면 나는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남자 여자와 같이 출발서부터 인격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간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을 하나님보다 여러분 양심이 먼저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양심이 먼저 알게 돼 있습니다. 놀라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와서 물어봐야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타락할 때 “야 아담아, 어디 있느냐?” 했습니 다. “야 이 녀석아, 너 나쁜 행동하고 거기 들어가 있느냐?” 이러지 않았습니다. 아담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이 자기보다도 먼저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지으신 창조원칙을 절대적인 가치로 인정하고 하나님이 물어본 것입니다. 그때 무화과나무 잎으로 앞을 가리고 “아, 하나님, 해와로 말미암아 나 이렇게 됐습니다.” 해서 책임전가를 해 버린 놀음이 우리 조상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 놀음이 지금 만연해 가지고 불신풍조로서 전부 다 망국지종이 되고 만 것입니다. (261-228~229,…1994.6.19)
양심을 왕처럼 모셔야 합니다. 양심은 부모보다 먼저 섭니다. 부모 이상, 부모 대신 자기를 지켜 주는 것입니다. 부모와 상담할 필요 없습니다. 자신은 백퍼센트 알고 있습니다. 양심은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양심에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양심은 부모보다 낫습니다.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양심은 스승보다 낫습니다. 양심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에게 물을 필요 없습니다. 양심에게 물어 보십시오. 정말 멋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세 번째는 양심은 하나님보다 낫다. 그것 정말입니다. 양심을 하나님처럼 절대시하며 살면 틀림없이 천국에 갑니다. 종교는 필요 없습니다. 기도도 필요 없습니다. 완전 해방입니다. 통일교회도 탕감인가 뭔가 하면서 복잡합니다. 탕감은 양심의 모든 것을 공유하기 위해, 해방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양심권을 중심으로 해방권을 바라지만, 육신이 언제나 돌아옵니다. 봄이 오면 나무끝의 순을 자르고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이것을 빼 버리든지, 태워 버리든지, 녹여 버리든지 해야 합니다. 그 힘은 어디선가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 육신이 싫어하는 것을 하면서, 원수를 사랑하면서 가면 자동적으로 육신을 소화해 가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을 하거나 육신을 엉망진창으로 해서라도, 싫어도 그렇게 육신을 명령적으로 굴복시킵니다. 그것에 습관성을 붙여야 합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마음이 쉴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습관성을 붙여서 절대 양심의 명령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습관성을 붙이기 위한 생활이 종교생활입니다. (257-116~117,…1994.3.13)
자기가 하는 일은 누가 먼저 아는가 하면 하나님보다 양심이 먼저 알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양심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 양심은 부모보다도 앞서 있는 것입니다. 양심은 스승보다도 앞서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보다도 앞서 있는 것입니다. 순수한 본연의 본질적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 그 길을 가게 되면, 그 양심은 세밀히 나를 지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찾았을 때는 종교시대는 지나가게 됩니다. 가정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의 무한한 가치의 사랑의 이상적 본부의 자리가 우리 가정입니다. 내가 움직이면 하나님은 따라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움직이면 하나님이 거기에 와서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겁니다. 관념적 하나님이 아니라 생활 주체자가 되어서 미래의 자기 인생 행로와 역사 행로를 지도해 주는 주인입니다.
그 하나님과 상대적인 양심이니 그 양심은 내 갈 길을 다 알고 있습니다. 쥐들도 배가 침몰하거나 파손된다는 것을 알고 밤에 닻줄을 타고 육지로 미리 도망갑니다. 미물인 동물도 제 살길을 알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왜 이 모양이 됐어요? 자기 갈 길을 몰라서 구덩이에 빠져 가지고, 악마의 제물이 되어 허덕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지상세계에 당당히 나타나겠다는 부끄러운 자세를 전부 다 제거해야 됩니다. (262-117~118,…1994.7.23)
3) 유형세계와 무형세계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영광을 누리기 위함이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무형의 천사세계를 창조하셨고, 다음으로 무형실체세계의 표상으로 유형실체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영계와 실체세계의 중심이자 대표로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습니다. (1-64,…1956.5.23)
만물은 형상적인 꼴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형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크다고 하면 무한대 (無限大)요, 작다고 하면 무한히 작은 분이십니다. 그런 분의 어떤 표준적인 형을 형성하고 표시하더라도, 형체를 나타낸다 하여도 실체를 가진 만물은 그 하나님께 직접 주관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실체를 가진 피조세계에 있어서는 실체를 가진 주인적 인격과 형을 갖춘 존재가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 지상 만물의 주관뿐만 아니라 무한한 영계도 주관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천사장이나 여러 형체를 가진 실체, 그리고 무형의 실체까지도 주관하려면 그 중심적인 타입, 곧 형상(形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을 중심으로 하여 영육 양면의 세계, 즉 무형실체세계와 유형실체세계를 주관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목적입니다.
따라서 하나의 인격적인 실체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담 완성과 더불어 하나님의 형상 완성, 곧 형(形)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실 때 그의 형태, 인상(人相), 인격 등이 무형세계의 중심에 계시는 하나님과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담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형(形)이 없으면 형(形)의 세계를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2의 목적은 아담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평면적인 대표자는 인간이며, 입체적인 대표자는 하나님입니다. 그것을 일체화하고 영원히 결부하는 끈, 결부되는 결실점, 그 맺는 중심점이 이른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가진 인간 자체도 하나님이 임재하시어 일체가 될 때의 그 심정, 체휼경(體恤境),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자신이 일치되었다고 하는 행복감을 느낄 때 최대의 행복감의 경지를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이른바 최고 행복의 경지인 것입니다. 그런 행복한 경지의 이상세계, 선한 세계, 선한 창조이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애정에 싸여 하나님과 일체가 됐다고 하는 것을 실감하는 세계, 그런 세계로 통일하고자 하는 것이 창조이상입니다. 이 소망이 결국은 사랑을 중심으로 한 소망이기 때문에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도 사랑의 환경을 떠나서는 달성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기 생애를 통하여 그런 것을 실감하고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 거기에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에 의해 모든 것이 하나가 됩니다. 사랑에 의해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의하여 인간과 세계가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입니다. (35-157~158,…1970.10.13)
무형의 신이 실체적 사람으로 태어나 무형에 없던 것을 투입해 가지고 실체화시키려니 사람의 몸을 써야 됩니다. 생각하는 근본에서부터 결과까지 같은 권한을 가진 몸과 마음이 하나된, 천지를 창조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권한을 상속할 수 있는 아들딸을 바라보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 이상의 것까지 창조할 수 있습니다. (412-22,…2003.7.14)
신 자체를 알기 위해서는 무형의 신 가지고는 안 됩니다. 실체 인간이 완성하는 것까지 알아야 신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형의 하나님 가지고는 못 하는 것입니다. 실체가 있어야 됩니다. 실체세계에 있어서 번식하게 돼 있지, 무형에서는 정지해 가지고 한 자리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무형의 인격적 신이 유형의 인격적 신이기 때문에 영계와 육계가 합한 모든 것을 통합해서 완성시킬 수 있는 자리에서 완성된 아들딸을 번식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이상적인 지상천국입니다. (410-292,…2003.7.6)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셨는데, 인류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랑의 본향 땅을 세웠다면 이 본향을 중심삼고 왔다 가는 수많은 영인들도 저 나라에 가면 이 땅을 바라보며 자랑하는 것은 여러분이 고향을 떠나서 고향을 그리워할 때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향에 있는 친척, 혹은 친구라도 만나게 되면 밤을 새워 가면서 그 사연을 듣고 싶고 그 동정을 살피고 싶은 것과 같이, 만일에 이 세계가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이상적인 본향의 천국이 되었더라면, 이 땅을 거쳐가는 영인들에게는 이곳이 본향의 땅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영계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본향의 땅에서 자라던 그 환경의 인연과 그 땅에서 지내던 모든 친지라든가, 나아가서 하나의 민족이면 민족, 나라면 나라, 인류면 인류가 영인들에게 더없이 가깝다는 것입니다.
한번 가면, 물론 영적으로는 다시 올 수 있지만 실체를 가지고는 영원히 이 땅 위에 다시 나타날 수 없다는 입장에서 볼 때, 살아 생전에 이 땅에서 느꼈던 모든 환경, 느꼈던 모든 생활적인 인연을 통하여 엮어진 모든 심정의 내용이라는 것은 그들의 영원한 생명과 더불어 찬양의 조건이 되고, 영원한 천국에 있는 모든 동료들 앞에 자랑의 조건이 됩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 땅에서 타락이 벌어지지 않고 천국을 이루었다면 이 땅을 거쳐간 수많은 영인들이 자랑할 수 있는 곳은 우리 개인이 본향을 중심삼고 자랑하고 싶어하는 곳과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23-202~203,…1969.5.25)
4) 영계는 우리의 본향
여러분들은 영계의 사실을 자세히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선생님은 영계에 대한 전문가입니다. 저 영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 못지않은 많은 체험을 했고, 또 영계는 나의 전문적인 분야입니다. 저 영계의 질서적 기원을 찾아보면 위해서 존재한다는 원칙으로 구성된 세계가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천국이라고 단적으로 알아도 그것은 틀림없는 결론입니다. 그러한 곳이 우리의 본향입니다.
우리는 싫든 좋든 어차피 그곳에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우리는 나그네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일생을 두고 여기에 문제되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 더 살았느냐, 남을 위하는 생활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에 따라 남을 위해 산 것이 크다 할 때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요, 그 반대가 되게 될 때는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이 공식적 원칙은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74-51,…1974.11.27)
영계에 들어가서 영원히 사는 곳이 조국입니다. 천주라는 말 자체가 하늘의 큰 집이라는 말입니다. ‘천(天)’은 두(二) 사람(人)을 말하고, ‘주(宙)’는 집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곳은 가정이 들어가서 살게 되는 본향입니다. 그림자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그러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살다가 저 나라에 가게 되면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책임이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참부모나 여러분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323-152~153,…2000.6.1)
선생님은 영계의 사실을 너무나 확실히 알기 때문에 세상의 죽음 길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영계로 가는 것은 승화식이 됩니다. 살아서 이기고 가는 것이 천상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본향 땅이에요. 죽음을 이기고 가는 것입니다. (336-20,…2000.10.8)
5) 영원 불변한 영계
하나님의 뜻은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은 원리에 나와 있듯이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상하·전후·좌우 관계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지상에 정착할 수 있는 자리를 잡는 것이 하나님의 뜻의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뜻을 완성한 가정을 확대시켜 가지고 종족과 민족과 국가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그 국가 형태가 그냥 그대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살던 아담 해와, 타락하지 않은 조상들을 중심삼고 살다가 육신을 벗고 본궁으로, 조국으로 찾아가는 곳이 영계입니다. 영계는 우리가 가서 살 수 있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지상은 그 영원한 나라에 가서 살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할 수 있는 밭과 같은 곳입니다. 씨를 심으면 밭에 심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씨를 받은 가정적 씨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땅 위에 살면서 가정적 열매를 맺어서 가기 때문에, 이 지상세계는 밭과 같은 곳입니다.
하늘이 남자라면 땅은 여자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가 남자격이라면 지상은 밭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밭과 같은 이곳에서 모든 완전한 열매를 결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실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의 완성이요, 뜻의 완성은 사위기대 완성이요, 사위기대는 상하·좌우·전후 사랑의 일체권을 중심삼은 영원한 씨가 되는 것입니다. 그 씨를 거두어서 들어가는 곳이 영계입니다. (332-224~225,…2000.9.23)
여러분의 가정들이 숙명적 해원 성사를 할 수 있는 가정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게 모델입니다. 이렇게 되면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니 사랑의 그 씨가 작거나 크더라도 전부 소나무면 소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세계이기 때문에 영계는 출발이자 영원입니다. 우리와 같은 시간 관념이 없습니다.
가정 절대주의, 가정 유일주의, 가정 불변주의, 가정 영원주의는 숙명적인 과제입니다. 내가 여기에서 미완성품이 되면 영계에 가서 억 천만세, 천국에 들어가도 자리를 못 잡고, 천국에 입적해 가지고도 왕권을 중심삼은 황족권 내에 친족들이 연결될 수 있는 길을 잃어버려 고립된 입장이기 때문에 천국 백성이 못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정적 낙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정들이 책임 못 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가정적 중간영계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도 간섭을 하지 않고 내버려둔다는 것입니다. 해가 지면 밤이 됩니다. 하나님의 광명한 햇빛이 비치면 반발하는 것입니다.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건 영원을 두고 싫든 좋든 가야 되는 것입니다. (307-159,…1998.11.8)
선생님이 말씀하는 것은 엉터리가 아닙니다. 가장 심각한 말씀을 하기 때문에 그대로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죽으면, 빨간색과 노란색처럼 색깔이 다르면 다른 세계로 가게 됩니다. 현재 자기가 이루어 놓은 실적의 색깔이라든가 냄새를 가지고 영계에 가면 그대로 영계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박물관에 보존되는 것과 같습니다. (389-80,…200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