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하나님의 한 (평화신경 해설 - 제2장 하나님의 모델적 이상가정과 국가와 평화왕국) u

訓讀王 | 20190713215925

평화신경 해설 - 제2장 하나님의 모델적 이상가정과 국가와 평화왕국



제1절 하나님의 한

(본문은 훈독하지 않았습니다.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본 문>

이 모든 것은 수천수만년을 기다리며 찾아오신 하나님의 한에 맺힌 비절참절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알게 된 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억조창생의 근원되시고 우주만상의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의 한을 풀어드리지 않고는 인간의 삶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한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맺히게 된 것입니까? 어느 누가 절대자되시고 무소불위하신 하나님께 한을 심어 줄 수 있었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여 인류의 첫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당신의 전체를 100퍼센트 투입하시어 사랑과 생명, 그리고 당신의 혈통이 연결된 아들과 딸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부자지간의 관계야말로 모든 관계 중에 최고 최상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혈통을 전수해 주어 영존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부모와 자식간의 혈통관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보다 귀하고 중요한 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끊기고 말았습니다.


영원한 독생자로 세운 당신의 혈육이 원수 사탄과 혈연적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자식이 되어 떨어져나간 현실 앞에서 하나님의 가슴은 역사적인 한으로 피멍울이 맺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상 그 누구도 알지 못했고, 그 누구도 풀어 줄 수 없는 억울하고 처절한 한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당신의 혈통을 영원히 전수해 줄 참된 가정을 세우려 하셨던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이렇게 제1대에서 좌절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사탄의 혈통과 무관한 참된 가정을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참된 가정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천주평화연합의 창설 근본 취지와 목적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본문…38~39쪽)


<해 설>


1) 자녀 잃으신 하나님의 비참한 심정


아담가정에서 아담의 본성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사탄의 본성을 중심하고 사탄의 사랑에 의한 사탄의 아들딸을 번식시켜서 가정으로부터 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까지 지옥으로 만든 것입니다. 지금 종교권에서 해방권을 구해 가지고 이르는 곳이 낙원, 파라다이스입니다. 지금까지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천국에 가는 데는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아 자녀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하여 아버지라고 부르게 될 때, 하나님도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부자관계의 입장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 관계를 맺으려고 한 것이 창조이상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린 하나님은 영원한 고민의 심정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만년의 독자 독녀였습니다. 그것을 잃어버린 하나님이 얼마나 큰 슬픔과 아픔을 느꼈을 것이냐? 여러분 부부에게 독자가 있는데, 일대의 그 독자를 잃었을 때 부모의 슬픔이 어떻겠습니까? 그건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친척들 모두가 함께 통곡하더라도 위로를 받을 수 없는 비참한 입장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영원한 독자와 독녀를 지옥으로 처넣은 하나님의 심정은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그 잃어버린 아들딸을 양육하여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려야 하는 사명을 참부모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305-330~331,…1998.8.27)


여러분은 선생님이 왜 좋으냐 이겁니다. 내가 가정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님의 몇 억 만대 독자 독녀입니다. 외아들과 외딸들입니다. 7대 독자가 아니라 몇 만대의 독자 독녀로 태어난 것입니다. 7대 독자가 죽게 되면 나라에서도 위로하는데, 억만대 독자 독녀를 잃어버린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웃 동네의 어떤 집 7대 독자가 아닙니다. 자기의 가정에서도 그렇게 비참한데,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건 꿈도 못 꿀 이야기이지만,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사실입니다. 하나님도 선생님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심정을 내가 어떻게 감지해서 느끼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껴서 하나님의 슬픔을 털어 버리고, 어떻게 기쁨을 부식(扶植)시킬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것이 효자의 길이요, 충신의 길이요, 성인 성자의 길입니다. (311-214,…1999.9.10)


아담이 타락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 몸부림쳤던 형용할 수 없었던 애달픈 그 심정을 여러분이 체험하고, 또 아담을 쫓아내야 했던 하나님의 심정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런 아담의 입장을 복귀해 들어가고, 더 나아가서는 그런 하나님의 입장을 복귀해 들어가야 합니다. 아담의 처량했던 심정을 체휼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이요, 아담을 내쫓았던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이로되 그것이 안 되거든 세상의 핍박을 가지고라도 심정세계와 인연을 맺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비단이불을 덮고 잠자는 데서는 불가능합니다. 찬 서리가 내리는 자리, 처량한 자리, 부대끼는 자리에서만 가능합니다. 그것이 복귀의 철학입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선생님을 조롱하던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던 자리에서 “아버지, 당신의 억울함이 얼마나 크셨습니까!” 하고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를 치며 아버지를 불렀던 그 시간과 그때를 선생님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17-58~59,…1966.11.6)


하나님이 얼마나 비참하십니까! 원수의 자식, 서자도 아닌 핏줄이 다른 자식을 양자로 삼은 것입니다. 양자에서 서자를 만들고, 서자에서 직계의 자녀를 만듭니다. 직계 자녀는 재림주가 와 가지고 접붙여서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지금까지 파헤친 참부모입니다. 참부모가 알았지, 누가 알았습니까? 이제는 꼭대기에 올라가야 됩니다. (361-62,…2001.11.20)


아들딸들이 못사는 것을 보고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 눈물단지, 눈물의 골짜기를 누가 메워 줍니까?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노예처럼 몸을 팔아 가지고 자기 어머니를 부르면서 자기 피와 더불어 무덤 길을 찾아가는 그 호소의 기도를 얼마나 들으셨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노예를 해방해 주기 위해 죽을 자리에 보내고 참고 가신 부모의 심정인 것입니다. 그 이상의 주인이요, 부모가 되는 분이 하나님이니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366-62,…2002.1.13)


60억 인류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이 고생하고 계신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했지 교파를 사랑하거나 누구를 사랑한다고 안 했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교파를 만들어 싸워요? 교인 빼앗기 싸움을 하고 말입니다. 교인이 자기들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344-79,…2001.3.2)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닙니다. 원수를 누구보다 사랑하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갑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 놀음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비참하고 불쌍한 것입니다. (330-319,…2000.8.22)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살면 될 텐데, 전부 다 반대되는 길입니다.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우주·천주의 반대 고개를 넘어서는 사람이 있다면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한번 화를 내면 하나님도 도망을 가야 되고, 사탄도 도망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사람입니다.


왜 그런 사람이 무능한 사람처럼 살았느냐 하면, 모든 인류를 아들 딸로 복귀시켜 주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과 선생님의 비참상을 동정하는 축복가정이 일본에 한 가정도 없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참상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고 여기까지 와보니 천지의 해방이 목전에 이르렀는데, 그 배후에 비참한 탕감의 노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325-252~253,…2000.7.1)


2) 하나님 창조이상의 좌절


타락의 한스러운 심정을 몰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제아무리 효자·충신·성인·성자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해도 거기에 미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핏줄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렇게 핏줄이 달라지게 한 것은 하나님의 본연적인 사랑·생명·혈통이 아닙니다.


원수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핏줄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핏줄이 달라졌기 때문에 타락한 이후의 모든 존재가 하나님과 180도 반대의 방향으로 갈라져 갈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입니다. 본연의 자리에서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혈통을 중심한 일족의 출발로부터 사랑의 왕궁을 중심하고 살던 것이 전통이 되어 수많은 족속이 번성하여 천년만년 가더라도 그 전통을 사모하면서 살 수 있었던 세계가 황막해져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창조주 주인의 자리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생각하게 되면, 누구든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뒤넘이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결과의 세계를 참고 참으면서 하나 둘 수습해 가지고 본연의 기준까지 찾아 나오기에 얼마나 수고가 많았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386-50~51,…2002.7.15)


아담 해와가 저지른 한 번의 실수가 억천만세 인류의 지옥을 만들어 놓아서 한스러운 역사를 거쳐왔다는 사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뼈가 울고, 골수가 녹아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뜻 앞에서 자기를 변명하고 “나 뭐가 어때서 못 가겠어! 무엇 때문에 못 가겠다.”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영계의 밝은 태양 빛 아래로 가야 될 자신이 깜깜한 칠흑 같은 지옥 밑창에 가더라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의 길을 통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4대 속성인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그런 부모, 그런 자녀, 그런 남편, 그런 아내, 그런 가정을 내가 가지지 않고는 하나님을 해방할 수 없다는 원통한 역사를 알아야 됩니다. 무엇이 아깝습니까?

부모와 자식을 한꺼번에 제물로 바치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길입니다. (306-326,…1998.11.2)


세상에서 볼 때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딸, 특히 외동아들이나 외동딸이 있다면 그 아들딸을 위해서 부모는 있는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부모가 철없이 자녀를 낳아서 키우면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느낄 것을 다 느껴 보고, 인간으로서 체험해 볼 것을 다 체험해 본 다음에 소원하고 소원하던 아들딸을 얻었다면 애지중지하며 정성을 다하여 키울 것 입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키우는데, 만약 그 아들딸이 타락의 길로 가서 부모를 배반한다면 그 부모의 고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부모로서는 그것을 옹호할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책망할 것밖에 없고, 또 부모로서 그 자녀를 추방할 수밖에 없더라도 부모는 그 자녀가 어떤 조건을 세워서 소생할 수 있는 길,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소망의 한 점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부모도 관계를 맺으려야 맺을 수 없는 자식을 세워 놓고 상심하는데, 본연의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도 그런 마음을 가지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아담으로서는 다시 회생할 길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이 회생할 수 있는 어떤 조건을 제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하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 자신으로서는 회생할 도리가 없지만,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게 어떤 조건을 세우게 해서라도 회생시키려 하셨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비참함이 절정에 달할지라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하고,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도리를 다했다는 상대적인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 조건을 요구하시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42-14,…1971.2.19)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 하루의 실수가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문제가 무섭고, 결혼하기가 무서운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붙들고, 내가 상대를 붙들어서 상대가 나를 해방해 주고, 내가 상대를 해방해 주는 것입니다. 무엇에서 해방해 주느냐? 사랑의 함정에서 해방해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함정이 개인적 사랑의 함정, 가정적 사랑의 함정, 국가·세계·천주적 사랑의 함정입니다.


하나님이 그 함정 가운데 떨어진 것입니다. 참부모가 이상하던 모든 창조세계가 사랑의 함정에 떨어졌습니다. 그 사랑의 함정이 무엇이냐? 그릇된 생식기를 중심삼은 사랑으로 하나된 자리입니다. 거기에 빠졌습니다. (322-192,…2000.5.18)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어떻게든지 인류에게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그 길을 열기 위한 것이 종교운동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속해 있는 민족,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적 여건과 습관 그리고 풍습이 다르고 문화배경이 다른 환경을 거쳐서 세계를 수습해 가지고 끝날을 맞이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됩니다.


그 길을 가려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타락 이후에 수천만년의 역사를 지내 오면서 품고 오신 그 슬픈 사연을 누가 알아드리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그분은 우리와 상관없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근본이 되시고 우리의 모든 생명과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적 기대를 편성해 주시는 분입니다.


생활환경에서나 생애환경을 통해서 끊으려야 끊을 수 없고, 역사와 환경을 통해서 분리시키려야 분리시킬 수 없는 인연적 중심존재가 그와 같은 고독한 자리에 몰려 가지고 눈물지음의 사정이 얼마나 많았겠느냐! 그것을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향을 잃어버린 자녀들을 하늘이 볼 때 어떻겠어요? 그 자녀들은 모르지만, 그 자녀들이 살고 있는 이곳을 하나님이 몇 번이나 다녀가셨겠느냐? 그걸 생각해 봤습니까? 그렇게 다녀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겠느냐! 그 간절함에 비해서 이 땅을 찾아오고 싶은 날들이 얼마나 많았겠느냐 이겁니다.


그러나 찾아오려야 찾아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쫓아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찾아올 수 없었던 하늘의 심정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느냐! 그렇지만 버릴 수 없습니다. 그렇게 버릴 수 없는 사정을 품은 하늘의 곡절에 기가 막힌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쫓아내서 찾아올 수 없으니까 자기 농토를 지키는 사람 혹은 자기 신세를 지는 사람을 통해서 은연중에 자신의 사연을 엮어 가지고 전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 자식은 몰랐지만, 배후에 그런 일을 해 오신 분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냐 하면 종교를 통해서 섭리해 나오시는 종적 참부모이신 하나님이었더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19-134~135,…1991.8.29)


향기로운 해방적 꽃동산의 세계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세계가 안돼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동산의 한 모퉁이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런 입장이면서도 세상을 다 갖춘 듯이 활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못 사는 것입니다. 언제나 죄인의 모습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날에 하나님이 느꼈을 한을 생각하기 때문에 문 총재가 한의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총생축헌납물을 바쳐서 교회의 소유권 내에 세우라고 했는데, 그걸 천년만년 바라던 소원이라고 하면서 만세를 부른 사람이 없습니다. 걸레 짜박지 같은 돈, 똥 묻은 돈 짜박지를 싸 가지고 아들딸을 먹여 살리겠다고 하면서 저금통장을 숨겨 놓고 “선생님이 하는 일은 선생님이 하지!”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분별된 입장에서 남아질 것 같습니까? 내 손으로 불살라 버려야 됩니다. 탕감을 해원하라고 불살라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들을 모아 가지고 말입니다. 사탄이 좋아하던 것들을 불살라 버리고, 내가 그 이상의 것을 창조하고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 봉헌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386-64,…2002.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