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절 참부모님의 업적 3), 4) (평화신경 해설 16장)

훈독왕 | 20211209064538

평화신경 해설-제16장 

 

제6절 참부모님의 업적   

 

제6절 참부모님의 업적 3, 4 (평화신경 해설 16장)

 

3) 레버런 문은 인간을 가장 잘 아는 챔피언이다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은 인생의 근본목적을 확실히 모르는 채 자기들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인간이 왜 이 땅에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정확히 모르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간단한 것입니다. 인간은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즉 위하여 태어나 위하여 살다가 위하여 죽는 것이 인간 본연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조상 아담 해와는 이러한 인간 본연의 길을 갔어야 했는데, 즉 서로 위하여 사는 상대적인 길을 갔어야 했는데, 그런 길을 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간들은 그러한 타락의 근원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타락의 혈통을 벗어나지 못한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위하는 생활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자기를 중심한 생활이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위해 태어나고 자기를 위해 살다가 자기를 위해 죽은 삶이었던 것입니다. (2-336, 1957.8.4)

본래 인간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태어나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사랑을 알고 인연됐더라면 그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 사랑의 출발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안 남자 여자가 생겨났던들 오늘날 이 땅 위의 비애라든가, 고통 질병 전쟁과 같은 이런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의 사랑을 안 사람이 있느냐 하게 될 때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류는 혼돈과 혼란과 흑암으로 종말을 맞게 돼 있습니다. 광명한 이상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그 어떤 보장을 인간 자체들로써는 세울 수 없습니다. 인간의 미래의 희망적 보장이라든가 행복할 수 있는 보장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근본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연 됐다면 이것을 가질 수 있고 이것이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요 불변의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절대적 사랑임에 틀림없는 하나님적 사랑을 중심삼고 시작했다면, 그 사랑의 과정도 행복이란 것을 떠날 수 없고 평화라는 내용 가운데 잠겨서 역사 과정을 거쳐 수억만년 이어져 왔을 것입니다. (210-8, 1990.11.30)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과 몸이 사탄의 거짓 사랑을 받아 자기 제일주의로 인한 불협화를 이룬 개인이 되었고,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가정·사회·국가·세계는 입체적으로 증폭된 갈등과 분쟁을 자체 모순으로 지니고 상호 불신과 분열, 투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소원인 자기 중심주의로 인하여 민주세계는 개인 제일주의화 되어 사탄과 인류는 멸망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219-109, 1991.8.27)

여러분 몸과 마음이 하나돼 있습니까? 안 돼 있지요? 이 하나 안 되게 된 시작이 언제부터입니까? 중간에 우리 조상 가운데에서 시작했으면 분파적인 그 계열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않은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인간의 근본에서부터 이것이 하나 안 됐기 때문에 만민 전부가 몸 마음이 하나 안 됐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 종지 조상으로부터 몸과 마음이 하나 안된 자리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이상의 표준으로 인간을 지으셨다 할 때, 지어진 인간이 이와 같이 몸 마음이 싸우는 존재가 되었다면 그 하나님은 싸움을 좋아하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악마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같은 인격적 신이기 때문에 지(知)·정(情)·의 (意)의 가치 추구를 할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몸 마음은 어떨까 묻게 될 때, 그것까지 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몸 마음은 하나돼 있습니다. 하나가 안 됐다면 이원론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통일의 세계를 바라더라도 통일이 안 됩니다. 그건 꿈이고 망상입니다. 근본이 절대적으로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근본의 끝도 하나되는 것입니다. 시종여일해야 됩니다. 하나될 수 있는 자리가 됨으로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221-246, 1992.10.25)

인간은 왜 하나 안 됐느냐? 성경을 보면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고 쫓겨나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이상하던 모델 기반, 이상하던 남성 여성 모델형, 원형형, 공식적인 그 형태를 추구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중간에 고장이 났으니 다시 이것을 수리해야 됩니다. 다시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될 고장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고장난 실상이,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이렇게 추방당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둘이 갈라진 것입니다. 추방당함으로 말미암아 몸뚱이를 악마라는 것이 지배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도 플러스요 마음도 플러스입니다. 하나님이 플러스이므로 본래 원칙이 플러스이므로 몸은 마이너스가 돼야 할 텐데, 몸뚱이에 또 다른 플러스가 생겨났기 때문에 몸 마음이 투쟁의 역사를 억만 년 가더라도 취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제거해야 할 운명의 길이 인간세계에 있습니다. (221-246~247, 1992.10.25)

사람은 맨 처음 태어날 때 제일 깊은 물속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복중시대는 수중시대입니다. 아기가 어머니의 태안에 있을 때는 물 가운데 둥둥 떠 있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어머니의 뱃속시대에는 숨이 막혀서 살기 힘들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속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물을 들여 마시고 내보내는 놀음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위해서 복중의 어린애들은 호스를 배에다 연결하고 사는 것입니다. 복중의 어린애는 영양분을 어디를 통해서 공급받습니까? 배꼽을 통해서입니다. 배꼽은 복중 어린애에게는 입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호흡기 역할도 했던 배꼽 다음 단계는 입이라는 것입니다. 자꾸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원리로 이 지구성에서 공기로 호흡을 하고 사는 육신에 붙어 있는 우리의 영인체는 어머니 복중의 태아처럼 육신을 빨아먹다가 육신이 다 늙으면 차 버리고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육신이 “아이구, 안 죽겠다. 안 죽어!” 하고 비명을 지른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고통에 처한 그 육신을 동정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조용히 미소 지으시겠습니까?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고 어머니의 복중을 뛰쳐나온 어린애가 성장하여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육신의 비명을 뒤로하고 새로이 태어나 영적 아버지인 영원한 하나님의 상대로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 원리적인 결론입니다. 지상세계에서도 자식이 태어난 후 성장하면 어머니 아버지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사랑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지상세계에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어린애가 모태 안에서 헤엄치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상생활은 공기를 마시며 공기 보자기 안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상에서 이처럼 어머니 아버지와 사랑을 나누며 호흡하는 사람이라야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영적 무한한 세계를 통할 수 있는 부모되신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영계에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297-258~259, 1998.12.19)

우리들은 언젠가 육신을 벗고 영계로 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죽음을 각오해야 됩니다. 또한 선한 자아를 영원한 세계에 제2의 나로 세우기 위해서는 고생을 해야 됩니다. 어머니의 복중에서 태교를 잘 받아야만 건강하고 선한 애기로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지상세계에서의 생활은 복중에서의 생활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고, 하나님의 심정을 본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을 본받으며 자라야 됩니다. 자라서 또 생명을 걸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14-17, 1964.4.19)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그네같이 잠깐 살다가 영계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 때에는 그냥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인생이 다 끝나는 줄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새로운 출발인 것입니다. 만약 복중에 있는 아기가 태어날 때, 자기가 태어나는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아기가 복중에 있을 때는 공기가 있는 이 지상에 태어나서 호흡을 통해 생명의 요소를 공급받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차원 높은 제2의 생명의 출발이 복중에서 탄생하는 그 순간부터 벌어지는 것처럼 제3의 세계도 죽음을 통해서 육신을 벗게 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물질의 한계권 내에 있던 개인이 그 한계권을 넘어서 모든 것을 초월한 입장에서 자각된 자아로 활동하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가 영계입니다. 그 세계에 가는 것은 어린애가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아기가 10개월 동안 복중에서 부모의 영양소를 받아 가지고 자라는 것처럼 이 지상에 사는 여러분도 낳아준 부모, 땅의 부모, 하늘의 부모 이 3대 부모를 통해 자라는 것입니다. (34-262, 1970.9.13)

 

4) 레버런 문은 영계를 가장 잘 아는 챔피언이다

영계(靈界)에 가 보면 영계는 방대한데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누가 톱(top)에 올라가느냐 하면, 보다 남을 위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 살아온 사람은 반대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자기를 위해서 살던 사람은 전부 반대하고, 남을 위해서 살던 사람은 전부 환영을 합니다. 영계에 가 있으면 자기의 부모, 자기의 아내도 상관없습니다. 높은 데 가는 사람은 전부 남을 위한 사람들입니다. 세계 모든 나라를 다니면서 자기 어머니와 가정에 대한 사랑을 확대한 것과 같은 심정을 가져서 위하고, 세계 사람들을 전부 악에서 구해 주는 성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높은 데 가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산 사람은 지옥으로 가는 것이고 남을 위해 산 사람은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두 세계가 죽음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체를 위하고, 보다 큰 것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인류 해방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서로가 위하겠다고 하는 경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299-78, 1999.2.4)

하늘나라에서는 위하여 사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가기 때문에 그 높은 사람을 내가 위하게 되면 그 사람을 타고 점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해 상대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사랑의 대상권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계는 참사랑을 중심삼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곳입니다. 남을 백 퍼센트 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나를 밟고 넘어가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국이라는 나라가 크더라도 미국의 대통령보다 그 나라 백성을 더 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대통령을 밟고 넘어가더라도 다 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이익만을 취하게 될 때는 전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영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해 살겠다고 할 때는 자연적으로 통과하는 것입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하게 되면 자연히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위해 사는 사람은 미국을 위해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 가운데에 미국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가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299-78~79, 1999.2.4)

모두가 환영할 수 있는 그 방향의 내용이란 참사랑을 중심삼고 위하여 사는 사랑의 길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죽을 때 가지고 가야 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본질적 사람인 나를 세우기 위해서 수고하고, 나와 상대와의 부부의 사랑, 가정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 사랑을 세계에 확대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입니다. 인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최후에 남아 저나라의 소유권 결정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면 전도한 사람 수에 의해서 여러분의 영계 소유권이 결정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영계에 가서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얼마만큼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저나라에서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세계보다도, 자기 나라보다도, 자기 아내보다도, 자기 아들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아내가 말하기를 “당신은 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날 사랑해 줘요.”라고 해야 남편으로부터 더 높은 차원의 하나님적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문 선생은 심정권이라는 것을 설파하고 있는데, 심정권의 기지란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부모의 사랑, 참부부의 사랑, 참형제의 사랑, 참자녀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이 보편화할 수 있는 세계가 심정권의 세계입니다. 그런 본연의 세계에 있어서는 사랑하는 부부의 사랑기준을 중심삼고 살더라도 하늘땅, 천주를 위주로 한 부부의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세계에 합격될 수 있는 사랑의 기반을 어디서 닦느냐? 문 선생은 이 세상에서 그것을 닦고 가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귀하다고 하는 수많은 그 무엇과는 달리, 심정권 세계의 합격자가 될 수 있게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계에는 가정을 데리고 들어가야 하는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왜 아들딸이 없으면 안 됩니까? 후손이란 본래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횡적인 부모의 사랑, 하나님과 부모의 피가 종횡으로 혼합되어 태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후손을 못 가진 사람은 영계에 가서 천지 조화를 못 이루고, 동서남북으로 박자를 못 맞춘다는 것입니다. 후손을 갖지 않게 되면 저나라에 가서도 놀고 쉴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299-79~80, 1999.2.4)

지금 영계에서도 선한 영인(靈人)들과 악한 영인들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영계에도 투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한 영(靈)은 악한 영을 선도하여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려 하고, 악한 영은 선한 영을 어떻게 하든지 좋은 곳에 못 가게 막으려고 하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탄을 중심삼고 악한 영이 연결되어 있는데, 그 악한 영의 통치권 내에 오늘날 지구성의 인간들이 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지금까지 간 선조들은 선한 영이나 악한 영이나 전부 다 영계에 가 있기 때문에, 그 선한 영도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구별되었다는 조건을 이 땅 위에서 세워 가지고 선한 편에 서 있는 것이지,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게 될 때 완전한 선의 자리에 서 있지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134-9~10, 1985.1.1)

여러분 가운데 영계에 대해 체험이 있는 사람은 금방 아는 것입니다. 영계에 척 들어가게 되면, 영계의 공기는 사랑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생명의 요소는 공기입니다. 물고기로 말하면 물이 생명의 요소입니다. 마찬가지로 영계의 생명의 요소는 사랑입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호흡기관이 크면 호흡량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대소에 따라 그 사람의 영생도에 대한 장단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48-220, 1971.9.19)

영계에서는 번식할 수 없습니다. 지상에 남녀를 만든 것은 번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건 천국이라는 방대한 나라의 국민을 생산하는 공장입니다. 타락해서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상에 일치한 사람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의 천국 세계의 국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 낳고, 사탄세계로부터 많이 접목시켜 데리고 간 그 비율에 따라서 자기의 재산이 생기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전도하지 않고는 거기에 가서 선생님을 보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을 불러서 “응!” 하고 대답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위치에서 계속해서 올려다볼 뿐 접근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는 조건이 있습니다. 자기 나름의 가정을 갖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인 이상은 아들딸로서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명을 다한 위에 영원의 세계에서 참부모와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공식의 내용을 완성시키지 않고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축복받은 경우에는 천국에 가는 문은 열리지만 걸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대로 해 가지고 종족의 메시아를 완성한 입장에서 입적을 해야 됩니다. (250-112, 1993.10.12)

영계에 가면 방대한 세계가 전개됩니다. 죽는 시간이 영광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장사 지내는 것을 승화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영계에 들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거기에는 밥 먹을 것이 걱정 없습니다. 밥벌이 안 합니다. 저나라에 가게 되면 밥벌이가 필요 없습니다. 먹고 싶을 때는 언제나 먹을 수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것이, 먹고 난 다음에 그 찌꺼기는 어떻게 하느냐? “돌아가!” 하면 원소로 돌아갑니다. 근본의 세계, 원소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런 것이 가능한 세계에서 사방팔방으로 기동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취하는 생활을 하고 오는 사람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理想)이 백방으로 실현되는 곳이 영계이니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취해서 산 사람들이 주도적인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천만 명의 사람들을 위한 뱅큇도 순식간에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모일 사람들은 황금띠를 띤 어떠어떠한 옷을 입고 오면 좋겠다.”고 할 때는, 그것을 디자인할 수 있다면 “그렇게 전개될지어다!” 하면 즉각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딱 거짓말 같은 세상입니다. (198-293~294, 1990.2.5)

영계에 가는 것이 슬픈 게 아닙니다. 해방의 나팔 소리와 함께 천국 깃발을 들고,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백전백승해서 천하의 금의환향하는 깃발을 들고 민족과 인류의 환성을 받으며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는 환고향 길입니다. 슬픈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울지 않습니다.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승화식이라고 합니다. (227-262, 1992.2.14)

이제는 영계의 모든 성인들이 지상의 참부모가 하는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님과 하나돼 있기 때문에 이 땅을 대해서 빌 수 있고, 땅을 중심삼고 그들이 바라는 천국 이념의 기지로 삼고 있기 때문에 세계가 하나됩니다. 유엔만 설정되는 날에는 형님이 동생이 되고 동생이 형님이 되는 천지개벽시대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마지막 때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세상이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그냥 흘러가지 않습니다. 때가 다 지나가는데, 안 하면 자기들은 뒤떨어진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영계도 협조를 안 합니다. 뒤로 돌아가서 협조하겠습니까? 앞에서 협조하려고 그러지. 우리가 앞장서 가야 됩니다. (426-122, 2003.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