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경 해설-제15장
제4절 양심은 참부모·참스승·참주인
(본문은 훈독하지 않았습니다.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제4절 양심은 참부모·참스승·참주인 (평화신경 해설 - 제15장)
<본 문>
여러분, 하나님의 창조는 참으로 신비하고 오묘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간을 당신의 자식으로 창조하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양심’이라는 최고 최선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지상계에서 일생을 항해하는 데 필요한 나침반으로 하사하신 것이 양심이라는 특별 선물입니다.
흔히들 인생 100년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양심의 작용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양심의 작용 중 최고 최상의 기능이 바로 참부모·참스승·참주인의 역할 기능입니다.
다시 말해서 양심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참부모·참스승·참주인의 위치에서 우리의 생을 지도하고 교육하는 하나님의 대신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인도하고 감시하는 책임이 양심의 기능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은 우리의 모든 언행은 물론 생각까지도 부모보다 먼저 알고, 스승보다 먼저 알고, 하나님보다도 먼저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을 지도하고 감시하는 본원적인 기능을 양심에게 전수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정처럼 맑고 투명해야 할 인간의 양심에 타락성의 때가 끼어 지금까지 각종 죄악과 질병 속에서 본래의 기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탄 주관권의 이 사악한 세계에서 하루라도 빨리 해방·석방을 받고 싶어 울부짖고 있는 양심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힘으로는 양심의 기능을 본연의 위치로 돌릴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하늘과의 종적인 관계가 수직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5억 인류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각도를 만들어 그것이 정통이요, 최고의 것인 줄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 기준을 형성하여 측정할 수 있는 최단 거리의 수직각도가 나오기 전에는 그 누구도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세계 지도자 여러분, 역사상 전무후무한 자리에서 인류를 사탄의 굴레로부터 구해 주고 천국으로 인도해 줄 수 있는 키를 가지고 오신 분이 바로 지금 여러분의 눈앞에 서 있는 레버런 문(Rev. MOON)입니다. 결코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찾아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하늘이 인침을 주어 인류의 구세주, 메시아, 재림주, 참부모로 세워 준 자리입니다. 사탄의 영향권 밖에 있는 절대 해방·석방의 자리입니다.
65억 갈래로 갈라져 있는 인류를 90도의 수직각도 길로 다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참부모·참스승·참주인의 길, 즉 양심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진리의 삶을 직접 실천하고 보여 주는 분이 바로 레버런 문이라는 것입니다. 3천억이 넘는 영계의 절대선령 된 인류도 이 사실을 이구동성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시한 4대 성인은 물론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상가와 철학자까지도 이 엄청난 현실 앞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영계에 가 있는 그들까지도 참부모의 축복은사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 받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277~280쪽)
<해 설>
1) 양심의 경고
통일교회에서는 양심은 하나님보다 앞서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도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쁜 생각을 하면 그 마음이 가만 안 둡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의 뿌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하나님도 몸이 있는데 몸을 중심삼고 행동하려고 할 때 제지하고 안 된다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놀라운 주인을 하나님이 맡겼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하나님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고, 양심은 스승보다 앞서 있고, 양심은 왕보다 앞서 있습니다. 그런 영원불멸의 주인을 맡겨 주었는데 이 주인이 주인 노릇을 못 합니다. 일생을 생각할 때 ‘비참의 생애였구만. 실패의 생애였구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한스러운 인간이 되니, 하나님을 천국 보좌에 모셔 가지고 왕권 앞에 치리받을 수 있는 백성이 아니고 지옥에 가서 반대받는 자리에서 한을 품고 ‘언제 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까?’ 하는 것입니다. 억천만세 한의 구렁텅이에서 신음할 수 있는 무리가 된 것은 이론적이 아닐 수 없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521-52, 2006.3.16)
여러분이 기도를 하든가 뭘 하게 되면 반드시 이 몸뚱이 중심삼아 가지고 극반대의 존재가 와서 주인이 돼 있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보면 몸뚱이에 미인이 와서 붙들고 목을 안고 입을 맞추려고 합니다. 타락한 몸은 백발백중 거기에 움직여 나갑니다. 그것까지 극복해야 됩니다.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몸 마음이 싸우는 근원에까지 가야 됩니다. 그것이 정욕과 일치가 돼 있습니다. 정욕을 극복해야 됩니다. 남자들이 천사장의 몸뚱이가 틀림없습니다. 아침에 잘 먹고 잘 차려 입고 나서게 된다면 그 눈에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 가든지 아름다운 여인이 있으면 눈이 여인에게 간다는 것입니다. 그게 없어야 됩니다. 몸과 싸우는 자리에는 하나님이 못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부모고, 스승의 스승이요, 주인의 주인인데 주인이 달리 돼 있습니다. 몸뚱이에다가 사랑의 줄을 심어 놨습니다. 아담 해와가 커 가는데 16세 이후부터 성년 21세까지 고개를 넘어야 할 때 그때가 되면 성숙해 가지고 남자 여자가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르쳐 줄 필요 없습니다. 자기의 상대 될 수 있고, 자기의 주체 되는 것을 자동적으로 압니다. 맞지 않은 것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싫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인데, 이것을 근본적으로 유치원서부터 가르쳐 주어 몸 마음이 하나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불효가 될 수 없고, 스승에게 반대할 수 없고, 그 나라 주인에게 반대 못 합니다.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 가게 돼 있습니다.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양심 교육하자고 선포한 세계의 문교부 장관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양심적’이라는 것은 놀라운 말입니다. 너 양심적이냐 이겁니다. (518-11~12, 2006.2.14)
지금 종교가 있으나마나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전부 다 주인이 없습니다. 요즘에 마피아, 야쿠자, 테러단, 갱스터들이 많지만 그 사람들이 그런 놀음을 할 때 양심은 ‘야야야, 이 자식아! 그거 해서는 안 된다. 너만 망하는 게 아니고 네 집안 조상을 망치고 아들딸까지 망친다. 이 자식아!’ 하고 경고하지만,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암만 했댔자 ‘그러다 말겠지.’ 생각하니 그게 큰 사고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마음의 권위를 최고로 모시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부모보다 앞서 있습니다. 마음은 스승보다 앞서 있다, 마음은 주인보다, 하나님보다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493-270~271, 2005.4.26)
양심은 몸이 잘못하게 되면 암만 밤중이라도 ‘이놈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쁜 일을 하려면 벌써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죽었던 하나님이 살아오고, 죽었던 스승이 살아오고, 죽었던 부모가 살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심이 원하는 대로 안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면 타락하기 전에도 하나님의 양심과 몸이 싸웠느냐 하면, 아닙니다. 지금도 어느 누가 하나님은 양심과 몸이 싸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싸우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됐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근원이 다 달라졌습니다. 간단한 원리인데, 성인 현철도 이것을 해결 못 했습니다. 선생님도 이 문제에 부딪쳐 가지고 얼마나 뒤넘이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이 놈의 몸뚱이가 우주의 원수입니다. 대우주의 근본의 하나님 자체로부터, 배울 수 있는 지식으로부터, 그다음에 왕의 자리 이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거 간단한 겁니다. (518-11,2006.2.14)
‘양심’ 할 때는 선량한 마음입니다. 본심은 인간의 본래의 마음입니다. 그다음에 천심은 하나님의 본래의 마음입니다. 본심 기준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다, 스승보다 앞서 있다, 주인, 왕보다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의 문교부면 문교부 장관이 말하기를 양심교육 하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추구집》에 ‘무제시’가 있습니다. 무제시는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색(山色)은 고금동(古今同) 이라.”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조석으로 변합니다. 여러분 마음도 조석으로 변하는데 왜 변해요? 철학의 의문은 왜 변하느냐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서로 주인 되겠다고 싸우니까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몸뚱이는 자기가 주인 되겠다고 해 가지고 양심, 본래의 본연의 주인 되겠다 하는 가짜 주인이 본심의 양심 쪽을 희생시켜 나온 것이 타락한 역사의 전통이 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470-282, 2004.9.28)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고 스승보다 앞서 있고 왕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귀한 것을 하나님이 보장시켜 주었는데 그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 우리 인간의 이 몸뚱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339-191, 2000.12.16)
2) 변치 않는 양심의 귀중함
마음은 하나님보다 나은 것입니다. 마음은 내가 있기 전에 벌써부터 있었습니다. 하나님보다 낫고, 부모보다 낫고, 왕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 그런 귀한 것이 마음입니다. 나쁜 일을 하려고 할 때 “어서 해라!” 그렇게 말하는 마음 소리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뭘 하려고 하면 “야, 이 녀석아, 하지 마!”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너무 생각해서 욕심부리는 사탄 마귀가 됐습니다. 양심의 말을 절대 들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이렇게 키워 나오면 양심하고 나하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양심이 발전소 하나님에게 자동적으로 전화하는 것입니다. 수화기에서 말이 나오는 것처럼 딱딱딱 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아버지, 이것 어떻게 된 것이오?’ 하면 ‘이 녀석아 그것도 몰라?’ 마음보고 기도할 때는 그렇습니다. 기도할 때는 마음보고 얘기해야 됩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야 신비경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음성을 들으면 그 음성이 공중에서 어떻게 왔느냐 하면 자기 마음 중심에서 들을 수 있는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338-139,2000.10.29)
여러분은 양심이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양심은 하나님보다 앞서 있다고 합니다. 또 양심은 스승보다 앞서 있다!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다! 이런 절대적인 가장 귀한 것을 우리 마음 가운데 심어 줬습니다. 하나님 대신 섬기라고 하고, 부모 대신 섬기라고 하고, 스승 대신, 왕 대신 섬기라고 주인과 같은 양심을 줬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들은 지금 몸뚱이를 중심삼고 마음대로 양심을 처단하고 마음대로 대우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양심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어려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저나라에 가서도 여러분을 훈시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대통령이 됐더라도 국민을 속이게 되면 ‘야 이 자식아, 안 돼!’ 하지만, 그 속인 녀석은 저나라에 가서도 그 법적 치리를 안 받을 수 없습니다. 양심이 치리를 하게 되어 있지, 양심이 치리를 받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탈선을 할 수 없고, 법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세계의 별의별 나라에 가더라도 그 나라에 들어갈 때에 서약이 뭐냐 하면, 손해를 끼치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간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남기기 위해 들어가 가지고, 그 지나가는 데에 조건을 걸어 가지고 법에 의해 잡아넣을 수 있는데도 안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탄이 그런 문 총재는 사탄 세계의 근원을 뿌리까지 뽑으려고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521-228, 2006.3.22)
내가 한 가지 가르쳐 주는 것은, 마음은 부모보다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스승보다 앞서 있습니다. 마음은 주인보다, 하나님보다 앞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뒤에 하나님까지도 “아담아, 아담아! 어디 있느냐?” 하고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부모의 중심이요, 참스승의 중심이요, 참주인의 중심인데, 그보다도 앞서 마음을 가려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부모의 자리의 것, 하나님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스승의 자리의 것, 하나님을 주인 되게 할 수 있는 가르치는 내용을 양심에 심었다는 고마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말은 백과사전, 무슨 교양서적, 철학서적에도 없습니다. 문 총재가 실험을 해 가지고 그런 것을 발표하니까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500-301, 2005.7.13)
참부모·참스승·참주인 사상이 주체사상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입니다. 하나님이 부모의 자리에서 아담 해와를 낳아 길러서 모든 것을 전수해주려고 했습니다. 그게 3대 주체사상입니다. ‘하나님’ 하게 되면, 거기에 반항할 무엇이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낳아 준 생명의 근본되는 부모요, 모든 지식의 근원자요, 내가 깨달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역사를 통해서 갖추어 준 스승이요, 그 모든 것을 준비하고 갖추어 가지고 나에게 넘겨 준 주인임에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은 영원불변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워야 할 3대 주체사상입니다. 자기 양심이 3대 주체사상관에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같이 참부모가 되어 있고, 참스승이 되어 있고, 참주인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회사의 사장이라면 건달꾼이 회사의 사장은 아닙니다. 사장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의 소유권을 갖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것을 갖는 데는 3대 주체사상에 해당하는 그 기준에서 자기 스스로가 하나 돼 가지고 하늘이 협조하고 모든 창조이상의 만물이 협조하고, 중심으로 추모할 수 있는 자리에 자기 소유적 기반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205-274~275, 1990.10.1)
선생님이 말한 것이 “양심은 부모보다 앞선다.”는 것입니다. 이건 선생님이 발표한 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끝에 가 보니까 사랑하는 마음도 양심이 명령해야 사랑하는 겁니다. 좋아하는 것도 양심이고, 가르쳐 주는 것도, 나쁘고 좋고 분별하는 것도 양심이고, 자리를 잡는 것도 양심대로 했으면 내가 제일이다, 이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인간에게 제일 가장 귀한 것을 주었기 때문에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나에게 준 것입니다. 천지 창조의 근원이 거기에 있습니다. 양심이 좋아할 수 있는 세계, 교육도 양심이 좋아할 수 있는 교육, 양심이 좋아할 수 있는 주인, 그건 불가피한 결론이니 발표한 것입니다. 그런 말을 맨 처음에 할 때 소학교 선생도 “세상에, 무슨 뭐 양심이 부모보다 앞서고, 양심이 스승보다 앞서고, 양심이 왕보다 앞서 있어?” 할 겁니다. 왕이 들어도 기분 나쁘고, 부모가 들어도 기분 나쁘고, 또 스승이 들어도 나쁘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가만 보니까 스승도, 부모도, 왕도 내가 가지고 있는 양심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게 제일 높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448-101~102, 2004.5.7)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지금 때는 종교를 없애 버려라, 국가의 정치 사상적 이상을 없애 버려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없애 버리고 나면 부모보다 앞서 있는 양심, 스승보다 앞서 있는 양심, 하나님보다 앞서 있는 양심, 그것이 내게 제일 귀한 뿌리가 됩니다. 그래서 그 양심은 부모를 알고, 스승을 알고, 스승보다 앞서 있기 때문에 왕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협회 창립) 50주년 기념대회에서 양심이 제일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면 하나님같이 위하고, 세상의 왕같이 위하고, 스승보다도 더 위할 수 있는 사람이 가야 할 곳이 제일 높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고, 스승보다 앞서고, 왕보다 앞선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하나의 자리니까 하나님밖에 없어서 하나님의 동생 자리고, 하나님의 상대적 자리니까 그 양심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제일 귀한 것으로 집어넣었습니다. (448-102, 2004.5.7)
절대 변치 않는 기준이 뭐냐 하면 양심, 타락하지 않은 본심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레버런 문이 이것을 이론적인 체제로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누가 중심이 되고, 변치 않는 중심에 얽매이게 합니까?”하고 질문했습니다. 답이 뭐냐 하면 양심 본심 천심은, 천심은 하늘이니 본심하게 되면 하늘땅이 들어갑니다. ‘본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거 위대한 선언인 동시에 위대한 발견입니다. ‘본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다. 본심은 스승보다 앞서 있다. 본심은 주인 왕보다 앞서 있다. 하나님이 부모 중의 부모요, 스승 중의 스승이요, 왕 중의 왕이라도 하나님 보다 앞서 있다.’ 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도 이 본심 기준에서 딱 들고 나서게 될 때는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신앙의 대상을, 절대사랑의 대상을 대해서 절대투입하던 자리에서, 모든 것을 투입한 대표의 자리에서 빛을 발할 수 있게 될 때, 낮이 될 때는 하나님이 밤 되어 가지고 지탱시켜야 할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472-236, 2004.10.8)
선생님이 참부모로 왔기 때문에 부모의 입장, 스승의 입장에서 우주의 비밀을 다 가르쳐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부모 중의 부모요, 스승 중의 스승이요, 주인 중의 주인이요, 왕 중의 왕입니다. 모든 전체는 그런 선생님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상에 나타난 이것이 현실적으로 여러분 가정을 넘어서 세계로 일원화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85-300, 1997.6.29)
3대 주체사상의 첫째가 참부모입니다. 다음에는 참스승, 참주인입니다. ‘스승’ 하게 되면 사제지간이고, ‘주인’ 하게 되면 주종관계인데, 그것은 여러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 앞의 자식들입니다. 부자의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것입니다. 3대 주체사상 가운데 어떤 걸 하나만 갖다 놓더라도 다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갖다 놓아도 거기에는 참스승이 있고 참주인이 있습니다. 참스승을 갖다 놓아도 거기에는 참부모가 있고 참주인이 있는 것입니다. 참주인을 갖다 놓아도 거기에는 참스승이 있고 참부모가 있습니다. 이 셋은 대등한 것입니다. 그게 누굴 두고 하는 말이냐 하면, 사제지간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부자관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3대 주체사상은 셋이 다 주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만 내세워도 구원받습니다. 이 세계를 수습할 참주인만 나와도 세상이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참주인이 없습니다. 참스승이 없습니다. 참부모가 없습니다. 이 셋 중에 하나만 나와도 구원받고 지옥 안 갑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밤이나 낮이나 이것을 관념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것을 체휼할 수 있는 경지까지 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3대 주체사상을 우리에게 다 넘겨주셨습니다. 더 이상 줄 게 없습니다. 그것을 받으려면 하나님과 같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 같은 마음을 가져야 받을 수 있습니다. 위하고 또 위하고 투입하고 또 투입하면서 천년만년 영생의 천국을 향해서 갈 수 있는 생애를 살겠다고 다짐하는 3대 주체사상의 인생길은 우주가 보호하는 것입니다. (204-222~223, 1990.7.11)
여러분도 위대한 스승이 되고, 위대한 부모가 되고, 나라의 주인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내가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셨기 때문에 그분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분의 권한을 대신할 수 있는 주인의 자리에 설 수 있고, 부모의 자리에 설 수 있고, 스승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3대 주체사상입니다. 나는 부모의 아들이고, 그 선생님이 내 아버지니까 선생님의 아들이고, 그 주인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3대 주체사상을 가지고 배움의 자리에 가야 됩니다. 출세해가지고 주인이 돼야 합니다. 회사의 주인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사회도 그것을 중심삼고 나가야 됩니다. 3대 주체사상을 이루기 위한 훈련 과정에 나가는 것이 출세하기 위한 것이요,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요, 가정에서 좋은 형제와 좋은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셋 가운데서 어떤 것이 중심이냐 하면 부모가 중심입니다. 나라님이 오른편이라면, 참스승은 왼쪽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돌아가야 됩니다. 더 나아가면, 거기에서 나를 중심삼고 3대 주체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또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3대 주체적 내용을 갖춘 아들이 내 참사랑을 전수받는 것입니다. 그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218-259~260, 199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