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경 해설-제13장
제5절 참부모의 업적
제5절 참부모의 업적 7, 8 (평화신경 해설 - 제13장)
7) 레버런 문은 인류역사를 가장 잘 아는 챔피언이다
하나님의 심정은 어떤 것입니까? 참된 심정입니다. 그것은 과거를 이어받을 수 있고, 현재를 이어받을 수 있으며, 미래를 상속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고 할 때, 거기는 주체적인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28-165, 1970.1.11)
세계사를 보면, 새로운 문화가 창건되어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게 될 때, 반드시 하나님의 심정에 가까울 수 있는 종교를 중심삼고 그 판도를 넓혀 나오는 역사가 나옵니다. 심정권이 가까운 데, 가까운 데로 가까운 데로 해서 가까운 곳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 중앙, 하나의 중심점을 향해서 가는 길은 수직선이든, 수평선이든 하나밖에 없습니다. 가는 길이 있다면 수직으로 향하는 길과 수평으로 향하는 길이 언제나 90도 각도에서 일치될 수 있는 자리인데,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같이 인격적 신의 기준 위에서 간다면, 서 있는 그 자리가 수직이라면 그 수직 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이게 수평이 되어야 합니다. 평면이 되어야 됩니다. 이러한 역사를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처해 있는 종교나 그 나라의 운명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심정권, 종적인 심정권과 횡적인 심정권을 중심삼고 측정되어 가지고, 거기에 일치되느냐 못 되느냐에 따라서 그 종교라든가 그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정성을 들이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인격적 신이기 때문에 종적인 심정권이 있다면 그 종적인 심정권을 이어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적인 심정권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천지창조는 종적인 심정권을 가진 하나님 앞에 상대권의 수평선을 이루기 위한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하나된 한 점에 있어서 중심과 횡적인 관계, 아담 해와의 횡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종적인 기준을 설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기준이 설정 안 됐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역사는 곁길로 가게 됐다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역사는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언제나 종적인 심정기준을 중심삼고 횡적인 기반을 연결시키는 역사였습니다. 그것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가인 아벨의 관계와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언제나 하나의 섭리사를 중심삼고 발전해 온 것입니다. (142-49~50, 1986.3.1)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심정을 주장하고 나온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효자라는 칭호를 갖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주장할 수 있는 자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과정을 거쳐서 충과 효의 내용을 가진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선 자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 없습니다. 그 심정에는 슬프고 기쁜 모든 사연, 즉 역사와 더불어 동반했던 슬픈 사정이나 소원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심정을 알게 될 때는 인류의 역사적인 심정을 파헤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고비 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 인류가 알게 될 때, 인류는 비로소 참된 인생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 인류는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통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랑의 모습을 갖추려면 역사를 주도하며 역사의 인연을 만들어 나왔던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26-222, 1969.11.2)
통일교회가 특별히 주장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심정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딴 교파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심정 가운데는 우리 개개인의 심정보다도, 자고로부터 역사의 인연을 빚어냈고 역사의 모든 과정에 있어서 같은 운명의 길을 걸어온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를 중심삼고 볼 때, 즉 종교적인 명사로 말하면 하나님,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그 하나님의 심정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은 오늘 이 땅과 인류 앞에 평화를 갖다 주기 위해서 노력했느냐, 오늘 이 혼돈한 사회 자체를 빚어내기 위해서 수고했느냐 할 때, 두말할 것 없이 이 세계의 반대의 세계를 빚어내기 위해서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수고한 실상을 낱낱이 온 인류 앞에 제시해 가지고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 하나님이 수고한 내막을 알아보게 될 때, 그 하나님이 내 개인을 구하기 위해서 수고했고, 내 가정을 구하기 위해서 수고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수고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30억 인류가 일심동체가 되어서 감사·감격할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을 발견한다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세계는 출발될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역사는 출발될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159-51, 1968.1.28)
하나님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시라면 그 사랑의 한계가 어디입니까? 이렇게 반문한다면, 그 지옥의 한계선까지 넘어선 구원섭리의 완성을 바라는 하나님이 아니시겠느냐 하는 답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곡절의 역사 과정을 거쳐온 것입니다. 역사과정의 수많은 인간들은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풍습과 습관이 다름과 동시에 지역적인 환경 혹은 기후 차이에 의한 환경이라든가 여러 가지 환경에 따른 문화배경을 달리하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구원섭리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이 모든 인류의 배후에서, 우리들 자신으로서는 측량할 수 없지만 그 문화배경에 합당한 섭리의 길을 가려 가면서 그 환경에 살고 있는 개인을 수습하고, 가정을 수습하고 사회 국가를 수습해 나온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에, 하나님의 섭리의 뜻 가운데에서 역사가 발전된다고 할진대는 그 발전되는 역사과정에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이룰 수 있는 주류 혹은 비주류의 섭리노정이 있을 성싶다 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인 것입니다. (121-297~298, 1982.10.30)
우리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섭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섭리는 어떻게 해 나갑니까? 탕감복귀입니다. 복귀하는데 그냥 복귀되지 않습니다. 탕감해야 됩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잘못했으면 잘못된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에덴에 있어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추방당한 것입니다. 그 추방당했던 인간이 다시 돌아가야 되는데 지금까지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돌아가는 과정의 역사를 지금까지 엮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돌아가는 데는 중심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피조세계는 있지만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중심적인 이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전체가 죽은 거와 같이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걸 다시 만드는 재창조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물은 타락권 내에 있지 않지만 우리 인간의 타락으로, 주체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대상적인 입장에 모든 전체가 자동적으로 타락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피조만물들이 탄식권 내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탄식권 내에서 어떻게 해방받느냐 하는 것이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타락한 인류가 소원하는 것이요, 구원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탕감복귀입니다. 복귀는 어떤 복귀입니까? 중간적 복귀가 아닙니다. 완전한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창조했기 때문에 복귀도 완전한 복귀라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때문에 그 문제가 큽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무슨 문제가 벌어졌느냐 하면 우리가 알듯이 혈통적 기반이 틀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늘 앞에 직계적 인류가 되어야 할 것인데 하늘과 위배되는, 반대되는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원수의 핏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까지 인류는 몰랐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인간들의 몸 가운데는 하나님이 제일 원수시하는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을 중심삼고, 혈통을 중심삼고 핏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섭리가 지금까지 연장되어 왔습니다. 전체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절대적인 하나님이, 주체적인 하나님이, 모든 것이 능치 못하시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오랜 기간 섭리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끌고 나왔느냐 이겁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역사, 철학, 종교세계에서 미지의 사실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혈통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나라로 말하면 다른 나라가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동화될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상충될 수 있는 나라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라, 세계도 상충적 세계, 하늘과 땅이 전부 상충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역사시대를 거친 모든 인류역사는 개인적인 상충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적인 상충을 거쳐 왔습니다.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63-71~72, 1994.8.21)
8) 레버런 문은 참가정 가치의 챔피언이다
이상상대가 무엇입니까? 내가 창조한 남자, 내가 창조한 여자가 이상상대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같이 살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재창조해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자기가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이상적 상대, 이상적 부부, 이상적 아담과 해와, 이상적 가정이 완성됩니다. (80-162, 1975.10.21)
문제는 선생님 가정입니다. 선생님의 가정이 해방적 기준에서 어떻게 탕감조건을 완전히 청산하고, 세계적인 사탄권 가정과 국가를 넘어서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목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해방 40년 노정을 걸어온 것이 선생님의 생애였다는 것입니다. 이 앞에 곡절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냥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원리를 알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나온 것입니다. (312-232, 1999.11.2)
오늘날 통일교회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믿고 절대 충성한다고 했지만, 선생님의 가정에서 지금까지 성약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탕감을 치렀는지 모릅니다. (313-90~91, 1999.11.12)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의 총 탕감을 짓기 위해 선생님의 아들딸 중에 네 아들딸이 제물로 바쳐졌다는 것입니다. 희생된 그 가정 위에 여러분이 선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 6 백만이 희생되지 않고는 나라를 세우지 못합니다. 기독교 로마박해시대 4백년 희생한 것까지 모든 전부를 연합한 총 열매로 선생님의 아들딸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해방한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빚을 졌다면 무한한 빚을 진 것입니다. 가치로 보면 무한한 가치적 존재가 되기 때문에 이 우주의 중심 가정의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아들딸의 가정을 대표로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313-102~103, 1999.11.12)
그리고 어머님이 아버님보다 더 훌륭합니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한테 “당신은 이와 같은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당신의 내적인 면이 나타난 것이 자녀들인데, 자녀들의 교육은 당신이 책임져 주시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지시했습니다. 문제가 생겼으면 아빠가 지적하지 않고 대번에 어머니에게 돌려줍니다. 그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힘으로 안 되어서 어머니가 애들을 데리고 와 가지고 충고를 받을 때는 어머니부터 충고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런 책임을 해야 할 텐데 이런 책임을 못 했군요.” 이렇게 하고 다음에 아이들을 충고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상적인 바람일 것이고, 이렇게 처리하는 단체를 구상하는 것이 앞으로 뜻에 일치될 수 있는 안팎의 전통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선생님의 일상 생활철학입니다. (123-282, 1983.1.6)
우리 어머니도 그렇습니다. 가정에 돌아가서는 남편의 권위를 세워 주고, 또 교주의 권위를 인정하고, 참스승임을 신임합니다. 말하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딱 판단하고 그다음엔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자식들을 대해서 “아버지를 닮아야 되는 거야.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다.”라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199-343, 1990.2.21)
우리 같은 사람은 그렇습니다. 아들딸들이 열두 살 될 때까지는 아무리 바빠도 어디 갔다 오면 밤늦게 돌아와 가지고 아이들한테 입맞춤을 해 줍니다. 언제든지 하루에 한 번씩 입맞춤을 해 주는 것입니다. “너희들, 엄마 아빠 보고 싶었지? 미안해.” 하면서 해주는 것입니다. (200-134, 1990.2.23)
어머니가 욕심이 없습니다. 얼마나 욕심이 없느냐 하면, 결혼반지도 누구 줬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게 좋은 여편네입니다. 세상으로 보면 그놈의 여편네는 큰일날 여편네입니다. 결혼기념 반지까지 누구 줬는지 모르고 있으니, 그게 좋은 여자라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종교적인 면에서는 훌륭한 것입니다. 자기의 약혼반지, 결혼반지까지 남을 위해 준다는 것, 식구를 위해서 그것을 잊어버리고 줄 수 있다는 것은 여자로서는 보통여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면에서 어머니를 존경하고 자랑합니다. 어머니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170-36~37, 1987.11.1)
내가 우리 엄마를 여왕같이 모십니다. 우리 엄마한테 물어 보십시오. 내가 남편 노릇을 잘하는지, 못 하는지 말입니다. 내가 이런 사랑의 도리를 해석하는 데 제일입니다. 사랑의 천리를 해독하는 데 철인 중의 왕철인은 레버런 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입니다. 그걸 가르쳐주면서 그걸 못하면 사기꾼 중의 왕사기꾼입니다. (210-236, 1990.12.23)
가정 하나를 세우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그렇기 때문에 요즘에는 남자로서 여편네를 제일 사랑하는 세계적인 챔피언이 누구냐 할 때는 ‘우리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나보고 요즘에 엄처가(嚴妻家)라고 말하는 데, 엄처가가 아닌 반대가 무엇입니까? 순처가(順妻家)입니다. 순처가의 제일 높은 단계에 선 것이 애처가(愛妻家)입니다. 요즘 세계 제일의 애처가가 누구냐고 하면, 나는 모르겠는데 이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다음에 애처가 반대는 무엇입니까? 남편 사랑하는 것을 뭐라고 합니까? 애남가(愛男家)라고 합니까? 애남가라는 말은 없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이제 만듭시다. 세계 제일의 애남가가 누구냐 하면, 우리 어머니가 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합니다. 정말 세계에서 제일 가는 애남가입니까? 내가 안 물어도 하나님이 물을 것입니다. (168-131~132, 1987.9.13)
선생님 가정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계 복귀노정에서 이상적 가정의 중심입니다. 이것은 장자가 이룬 가정이요, 참부모가 이룬 가정이요, 왕궁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3대 왕권적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축복하기 전까지 장자권 복귀, 축복하고는 부모권 복귀, 부모권 복귀하고는 왕권 복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방과 더불어 연결시킬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312-230, 1999.11.2)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할아버지는 영계를 대표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 시대를 대표하며, 아들딸은 미래를 대표합니다. 이 아들딸은 손자이니만큼 할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나도 가만 보니까 자기 아들딸을 낳아서 기를 때는 엄벙덤벙 잘 몰랐는데, 손자가 아들딸보다 더 예쁩니다. (360-156, 2001.11.15)
하나님이 손자 손녀를 안아 보지 못했습니다. 선생님도 아들딸은 그렇게 귀한 줄 몰랐는데, 손자 손녀가 얼마나 귀한 줄 알 것 같습니다. 요즘에도 손자하고 떨어져 있으면 눈에서 아른거립니다. 옛날에 아들딸들은 그런 줄 몰랐는데, 손자 손녀가 더 귀엽습니다. (417-22, 2003.8.31)
우리 어머니를 가만히 보니까 요즘에는 나보다도 손자만 예쁘다고 그럽니다. 30년 가까이 산 남편을 놓고는, 영감을 옆에 둬두고 꿈에도 생각지 않고 손자만 찾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손주들이 너무도 예쁩니다. 신원이라고 한 살 된 손자가 있는데, 할머니에게 벌써 비위를 맞출 줄 압니다. 어디 나갈 것 같으면 자기 데려가 달라고 손짓, 발짓을 합니다. 이거 그러니까 할머니가 죽을 지경입니다. (193-139, 1989.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