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참사랑·참가정 1, 2 (평화신경 해설 - 제13장)

훈독왕 | 20201009145807

평화신경 해설 - 제13장 

제3절 참사랑·참가정 
(본문은 훈독하지 않았습니다.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제3절 참사랑·참가정 1, 2 (평화신경 해설 - 제13장)

 

<본 문>

여러분, 절대적 하나님의 참사랑의 본질은 위함을 받겠다는 사랑이 아니고 남을 위해, 전체를 위해, 먼저 베풀고 위해 주는 사랑입니다. 주고도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않고 끊임없이 베푸는 사랑입니다. 기쁨으로 주는 사랑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기쁨과 사랑의 심정입니다. 자식이 부모 앞에 심신을 다 바쳐 효도하며 기쁨을 느끼는 그런 희생적 사랑입니다. 참사랑으로 맺어지면 영원히 같이 있어도 좋기만 하고, 우주는 물론 하나님까지도 끌면 따라오는 사랑입니다. 타락의 후예 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국경의 벽, 인종의 벽, 더 나아가서는 종교의 벽까지도 영원히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이 참사랑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참사랑의 주류 속성은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것이어서 누구나 이 참사랑을 실천궁행할 때 하나님과 동거 동락하게 되며 동참권, 상속권까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국 들어가는 절대 필요조건인 ‘위하는 삶’, 즉 참사랑의 삶이란 모든 창조, 평화이상적 모델인 하나님을 중심하고 평화롭게 사는 새로운 가정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인류는 이제 누구나 참가정을 찾아 세울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여러분, ‘더불어 위하여 사는 삶’의 전형은 하나님의 참된 가정입니다. 참부모와 참된 자식은 참사랑과 존경으로, 참된 부부는 상호 신뢰와 참사랑을 바탕으로, 형제자매간은 서로 믿고 의지하며 하나되어 사는 보금자리가 바로 참된 모델적 이상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뿌리에 참사랑의 줄기가 생겨나고, 참사랑의 열매가 맺히는 참된 가정을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참조부모·참부모·참손자손녀를 중심삼고 3대가 한 가정에서 영존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천일국 가정을 찾아 세우는 것이 종족 메시아들의 책임이요, 평화대사들의 사명이며, 하나님의 소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도 어디 출타했다가 그리워서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그런 가정을 찾아 세우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집을 찾아가듯 기쁜 마음으로 편하게 찾아오는 가정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종적으로 양심적인 주체가 되고, 여러분의 마음은 그 종적 주체를 따라 자기 자신의 종적 주체 자리에 서서 몸 마음을 통일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형제의 사랑, 이렇게 4대 사랑권, 즉 4대 심정권의 완성을 보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이라야 상하·좌우·전후가 하나로 연결되어 구형운동을 계속하게 되며, 따라서 영존하게 되는 하나님의 모델적 이상가 정과 이상국가와 평화이상왕국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전세계가 이런 참된 가정들로만 채워진다면 그곳에는 변호사도, 검사도, 더 나아가서는 판사도 필요 없는 천도와 천법이 다스리는 순리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본문 230~232쪽) 

<해 설>

1)참사랑의 본질 

인간은 타락하여 사탄권 내에서 구속과 고심 중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자유와 해방을 받아 참된 아들딸로 성장한 후에 상대를 만나 참된 부부가 되고 나아가 자녀를 낳아 참된 부모가 되는 것이 정상적인 삶의 노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참된 자녀를 부정할 수 없고, 참된 부부를 부정할 수 없으며, 참된 부모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를 부정하면 우주의 원칙에 역행하여 스스로의 존재를 파괴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참된 부모와 함께 참된 부부와 참된 아들딸로 이루어진 참된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이상적인 존재의 모델입니다. 인간은 가정에서 참된 부모의 사랑을 완전히 받아야 하고, 참된 부부의 사랑을 완전히 받아야 하며, 그다음에 참된 아들딸의 사랑을 완전히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인간관계를 완성시키는 것은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물리적인 힘도 아닌 균형을 만드는 하나님의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315-208~209, 2000.2.2) 

참사랑은 투입하는 힘입니다. 주는 힘이지 받기만 하는 힘이 아닙니다. 전부를 다 주어 영점(zero point)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완전히 빈자리가 되니 영점 자리에는 무엇이든 들어와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는 힘이 영속하니 돌아오는 힘이 가중되어 영속함으로 영원한 균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으로 위하여 사는 세계는 수수작용을 통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모든 것이 상대적 관계로 존재하고 있는 것도 이렇게 주고받는 작용을 통하여 참사랑의 세계를 이루기 위함 때문입니다. 상대관계에 있어서 모든 주는 힘에 대하여 돌아오는 힘이 운동함으로써 그 중심점은 영원히 정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운의 수인 7과 같은 참사랑의 중심 위치에 하나님이 계시어 전우주가 균형을 맞춰 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운이란 이렇게 받아 가지고 돌려주는 거대한 천주적 흐름입니다. 그 속에서 사랑도 흐르고, 공기도 흐르고, 물도 흐르고, 빛도 흐릅니다. 그러나 그 흐름은 돌고 돌아 다시 원형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315-209~210, 2000.2.2) 

사랑은 남을 위해서 사는 데서부터 전부 확대됩니다. 눈이 나를 위해서 생겨났습니까? 상대를 위해서 생겨났습니까? 상대를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나를 위해 있다면 눈이 나를 들여다봐야 할 텐데 내다본다는 것입니다. 귀와 코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도 그렇습니다. 말하는 것도 상대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데 상대의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상대로부터 찾아오는 사랑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거 딱 이론적입니다. 사랑은 내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오기 때문에 모든 오관은 상대를 대해 가지고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눈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눈도 우리와 같습니다. 하나님도 전부 다 자기를 보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상대를 대해 가지고 보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 오관의 작용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서로 위하다 보니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도 상대를 위하고, 하나님도 상대를 위하게 되면 둘이 다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데에는 무엇을 중심삼고 돌아가고 싶겠습니까? 참사랑을 중심삼고 돌아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123-227~228, 1983.1.2) 

사랑의 주체는 아벨이기 때문에 주체가 대상에게 먼저 줘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본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를 사랑할 때, 혹은 부부간이나 형제간에 있어서 언제나 주체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먼저 줘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데 그 사랑을 자녀들이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저 기쁨 속에서 자연적인 사랑이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가정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기쁨 가운데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도 받으려고만 하지 않고 서로 주고 받는 작용이 자연히 되어야 이상적인 사랑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사랑의 연결을 잘 해야 됩니다. 참사랑은 대상에 대해 주고 또 주고 싶은 것입니다. (66-123~124, 1973.4.18) 

사랑을 주겠다고 하는 곳이 참사랑과 거리가 가까운 곳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은 위하는 사랑, 즉 위하려고만 하는 사랑일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랑, 참사랑이 있으면 하나님이 자꾸 주려고 하니 참사랑도 자꾸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서로가 주니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 본질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꾸 주려고 하니까, 이 사랑의 본질도 자꾸 주려고 하니 돌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할 때에, 도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돌게 마련이다 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영원히 가는 것이겠습니까? 영원히 주겠다고 하는 것,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주려고 하는 그 사랑이 영원히 도는 것입니다. 주는 힘과 받는 힘이 하나되고도 자꾸 주려고 그러니까 확대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러한 원칙의 힘이 있어 가지고 확대되어 우주가 생성할 수 있다고 하는 이론적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참사랑을 해야 합니까? 우주의 근본이 참사랑의 원칙에서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통하면 우주의 모든 전체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론적입니다. 그래서 하나가 위라면, 하나는 아래고, 하나가 오른쪽이라면 하나는 왼쪽입니다. 광물세계·식물세계·동물세계가 다 그렇습니다. 서로 주려고 하는 그런 세계가 기원이 되어서 출발했기 때문에, 서로 주려고 하면서 사는 것이 우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에서, 보다 차원 높은 큰 존재에 전부 다 흡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주 존속의 원천은 어디입니까? 보다 높은 사랑을 중심삼고 주고자 하는 운동권 내에서 작용하는 것이 우주적인 존재입니다. (128-292~293, 1983.9.11) 

가짜 사랑과 진정한 사랑은 어떻게 다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짜 사랑은 시작했다가 자꾸 떨어져 내려가는 사랑이요, 진짜 사랑은 시작하여 점점 올라가는 사랑입니다. 올라가는데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하면 큰 세계까지입니다. 자꾸 품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무한한 포용의 마음, 품어 주는 포용의 마음, 더 품겠다고 하는 그런 본질의 마음 작용을 가진 것이 사랑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참사랑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141-285,1986.3.2) 

금이 시궁창에 들어간다고 빛깔이 변할 수 있습니까? 본질이 변할 수 있겠습니까? 시궁창에 들어가더라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위하는 사람에게, 위하는 데에 본질적 사랑의 길이 동반되게 되어 있지, 자기를 주체삼고 위하라고 하는 것은 악마가 낚아채 가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참사랑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다 투입해서 위할 수 있고, 또 생명을 바쳐서 위하고 영원히 위하고 또 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44-162, 1986.4.12) 

인간들도 자기 상대가 백 퍼센트 이상 되기를 바란다면, 절대적인 하나님은 자기 대상자가 몇 퍼센트 잘나기를 바라겠습니까? 하나님도 자기 사랑의 상대가 잘나기를 바라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딸인데, 하나님의 아들딸이 그러니까 하나님도 그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이론적 결론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사랑하는 상대는 자기보다도 억만 배 억천만 배 잘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하는 아들딸이 자기보다 천 배 만 배 무한히 잘나더라도 기뻐하게 되어 있지, 우는 녀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상대를 창조하게 될 때, 그 사랑을 하는 데는 자기의 모든 생명을 투입하고도 또 투입하는 것입니다. 한 번만 생명을 투입했다면, 한 번 상대의 가치 만큼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열 번 투입하고도 잊어버리고, 백번 천번 만번 억만번 투입하고도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의 세계에 있어서만이, 그러한 존재만이 억만 배의 더 좋을 수 있는 대상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이론적인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열 번 투입하고 됐다고 할 때는 열 배 이상의 상대는 못 갖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히 투입하고 무한히 잊어버리는 그러한 희생적 사랑의 주체 되시는 분이 이 우주의 근본 되시는, 인류의 조상 되시는 참하나님이요, 참창조주입니다. (260-250~251, 1994.5.19) 

부부끼리의 사랑이 귀한가,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사랑이 귀하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부부끼리의 사랑보다도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사랑이 더 큽니다. 그것이 중심입니다. 그것이 종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부끼리의 사랑에서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싸움하는 일이 벌어지지만, 여기에선 자식을 위해서 사랑해야 한다고 싸움하는 놀음이 벌어집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 법도에 가까운 길을 따라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에, 위하는 사랑, 위하는 사랑이 보다 참된 사랑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위해 주는 사랑이 참된 사랑에 가깝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남자도, 아무리 악독한 여자도 그 사랑 앞에는 손들고 ‘예’ 한다는 것입니다. (90-85, 1976.12.19) 

2) 참사랑의 주류 속성 

뜻이 지향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밥을 먹어서 배부른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술이 목적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보다 더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일시적인 사랑이 아니요, 싸구려로 사올 수 있는 몇 푼어치의 사랑이 아닙니다. 본질적인 사랑입니다. 이 본질적인 사랑을 분석해 보면 사랑에는 혁명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참사랑에 해당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시조 때부터 사람이 자식을 사랑한 마음이나 수천년 후의 후손인 우리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똑같은 것입니다. 또한 수천년 후에 우리의 후손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도 같을 것입니다. 사랑에는 발전도 없고, 종식도 없는 것입니다. 혁명의 요건을 필요치 않는 순수한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어떤 존재를 절대적인 기준의 자리에 세워 놓고 그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그를 사랑하신다면 그 사랑은 더 이상 혁명이 필요치 않는 사랑입니다. (18-12, 1967.5.14)

여러분이 태어날 때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남자는 하늘 대신이요, 여자는 땅 대신 태어났습니다. 이 둘이 서로 하나되기 위한 사랑 가운데 서로 좋아서, 위로 봐도 좋고, 아래로 봐도 좋고, 전체가 안 좋은 데가 없으리만큼 좋은 데서 여러분의 생명이 태어난 것입니다. 사랑은 유일성을 갖고 있고, 영원성을 갖고 있고, 불변성을 갖고 있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세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문학소설 같은 것을 보면 사랑을 임시적 사랑이라고 했습니까, 단 하나의 사랑이요, 영원불변한 사랑이라고 했습니까? 여러분은 임시적인 사랑을 좋아합니까, 영원한 사랑을 좋아합니까? 영원한 사랑, 변치 않는 사랑입니다. 그건 상대적 운명입니다. 여러 개의 사랑이요, 유일한 사랑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다 영원, 불변, 유일적인 사랑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99-62~63, 1978.7.23) 

대한민국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천상천하를 대신하여, 역사를 대신하여 위하는 사랑을 가지고 만국의 사랑, 만민의 사랑의 권한을, 자기의 권한이 아니라 전체의 권한을 대신해서 자기는 그림자가 되고 다른 사람들은 태양이 되고 햇빛이 되라고 할 수 있는 모심의 자리에 서면 하나님이 내게 찾아와 직접 햇빛이 되어 준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옮겨 갈 수 있는 힘이, 만복을 옮겨올 수 있는, 천운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이 참된 사랑의 길 앞에는 동반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에 있어서 전체의 상속권이 동반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상속뿐만 아니라 창조력이 동반합니다. 이러한 희생적 사랑을 투입하게 될 때는 폭발적인 부흥이 벌어집니다. 그 사랑이 세계를 위했느냐, 하늘땅을 위했느냐? 논리적으로 볼 때 사랑 논리를 중심삼고 이렇게 정말로 가르쳐 주는 곳은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179-318~319,  1988.8.14) 

참사랑이라는 것은 어떠한 내적 속성을 갖고 있습니까? 참사랑에 접하게 되면 동위권(同位圈)에 설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위(位)가 다릅니다. 그러나 아버지 앞에 사랑하는 효자는 같은 자리에 언제나 아버지도 있기를 원하고 아들도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아버지가 “얘야, 너는 자식이니 위가 달라. 그러니 그 자리를 찾아 들어가라.” 그럽니까? 위(位)가 다르더라도 같은 자리에 언제나 앉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사랑의 속성은 권위가 언제나 같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동참권(同參權)이 있습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일자무식의 부인과 참된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면, 대통령이 있는 그 옆에 그 부인이 척 앉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나라의 백성과 우주 만물이 “그러면 그렇지.” 그러지 “왜 그래? 저거, 왜 그래?”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76-185, 1988.5.9) 

결혼을 왜 합니까? 참사랑을 찾기 위해서 합니다. 참사랑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영원히 모시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참사랑만이 영원한 뿌리가 있는 것이기에, 참사랑의 길을 가는 데는 영원한 행복이 있는 것이요, 영원한 자유가 있는 것이요, 영원한 이상이 꼬리가 연하여 찾아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참사랑을 빼놓고는 다 허사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속된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말하지만, 자유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사랑을 찾지 못하면 자유는 없습니다. 사랑의 세계에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엔 어디에나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까? 그건 하나님을 점령하여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참사랑에 의해서만이 동위권에 설 수 있습니다. 언제나 그 사람의 자리에, 사랑관계를 맺게 될 때는 의논하지 않고도 언제나 그 자리에 가서 설 수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 갈 수 있습니다. 서양 사람, 동양 사람을 막론하고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될 때는 같은 자리에 서는 것을 어느 누구도 반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국가를 초월해 있고, 동서양을 초월해 있습니다. 참사랑은 세계의 어떠한 한계선도 초월해 있습니다. 그러한 자리에 접해 있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중심삼고는 동서 문화의 배경과 생활환경이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어느 때에 가서든지 동참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빵을 먹으면 나는 고추장밖에 먹을 줄 모르더라도 빵 먹는 데 가서 빵을 먹어야 됩니다. 그렇다고 불편을 느끼지 않습니다. 맛이 없더라도 점점 사랑과 더불어 맛이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뭐가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까? 사랑의 위대한 힘이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힘에 의해 동위권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177-146~147, 1988.5.17) 

참사랑은 변치 않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보면 영원하고 불변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일합니다. 그러한 주인이, 그러한 주체가 변하는 것을 이상으로 바라겠습니까? 더 이상적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러한 분이 좋아하는 사랑은 그렇게 유일, 불변, 영원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어떻습니까? 지식도 변합니다. 요즘 학설을 봐도 자꾸 변해 갑니다. 돈도 변합니다. 돈도 보면 가치가 자꾸 떨어집니다. 권력도 변해 갑니다. 이렇게 변하는 세상에 변하는 내용을 추구하고 사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179-35, 1988.7.3) 

사랑의 속성에는 상속권이 있고, 동거권이 있고, 또 동참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은 대통령이고 아내는 국민학교도 못 나왔을지라도 사랑하는 부부간이 되면 남편 것은 아내 것이 되며 밤낮 언제라도 같이 동거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모든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권한도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이처럼 위대한 3대 속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불변적인 참사랑과 일치된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이 계신 곳에 내가 가세할 수 있고 언제든지 동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눈을 감지 않고도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비통한 심정을 체휼한 자는 길을 가다가도 멈추고 통곡을 하는 그런 체휼적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은 만일 자식이 외지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면 느낌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자다가도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치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그런 힘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랑과 일체가 되면 두 세계는 함께 공존하고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본질적 참사랑, 천년만년을 위하고 더 위하겠다는 그런 참사랑을 내 몸과 마음에 백 퍼센트 흡수할 수 있는 속성을 갖추게 될 때 마음에는 하나님의 참사랑의 뿌리가 생겨 하나님이 느낀 모든 것이 통하게 되고 몸은 자동적으로 거기에 공명하는 것입니다. 마음 세계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공명체가 될 수 있도록 창조된 것이 몸이니 몸과 마음의 통일세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본질적 참사랑을 회복해야 된다는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참된 사랑에 공명하는 논리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 인간이 거기에 일체화 되어서 공동 일체권 내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사랑이고 하나님의 생명이 내 생명이고 하나님의 혈통이 내 혈통이요, 하나님의 소유인 피조세계가 내 피조세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천하를 품는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을 갖고서야 천국에 입적을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01-356~357, 199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