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참사랑의 속성 (평화신경 해설 - 제12장 하나님의 이상가정과 천일국 백성의 소명적 책임)

훈독왕 | 20200806180051

평화신경 해설 - 제12장 하나님의 이상가정과 천일국 백성의 소명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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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참사랑의 속성

그렇다면 참사랑이란 어떤 사랑입니까? 참사랑의 본질은 위함을 받겠다는 사랑이 아니고 남을 위해, 전체를 위해 먼저 베풀고 위해주는 사랑입니다. 주고도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않고 끊임없이 베푸는 사랑입니다. 기쁨으로 주는 사랑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기쁨과 사랑의 심정입니다. 자식이 부모 앞에 효도하며 기쁨을 느끼는 그런 희생적 사랑입니다. 참사랑으로 맺어지면 영원히 같이 있어도 좋기만 하고, 우주는 물론 하나님까지도 끌면 따라오는 사랑입니다. 타락의 후예 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국경의 벽, 인종의 벽, 더 나아가서는 종교의 벽까지도 영원히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이 참사랑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의 주류 속성은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것이어서 누구나 이 참사랑을 실천궁행할 때 하나님과 동거동락하게 되며 동참권, 상속권까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국 들어가는 절대 필요조건이 바로 ‘위하는 삶’, 즉 참사랑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211~212쪽)

<해 설>

1) 희생적인 사랑 

우주의 질서를 보면 크다고 하여 무조건 작은 것을 희생시키고 취하게 돼 있지 않습니다. 헬레니즘에 바탕을 둔 약육강식을 통한 적자생존의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위해서 존재하고, 참사랑으로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절대복종의 대상으로서 주체적인 사랑의 주인으로 완성시키려는 절대가치관을 그 이론은 간과하고 있습니다. (465-328,2004.8.22)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투쟁을 통한 생존과 발전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 속에서 상호 수수작용을 하면서 절대가치관을 향해 조화 통일을 추구하는 원리입니다. (465-328,2004.8.22) 

소는 대를 위해서 희생할망정 그것을 투쟁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상호발전을 위한 투입이 돼야 합니다. 개인은 가정, 가정은 국가, 그리고 국가는 세계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것을 어떻게 투쟁이라고 하겠습니까? 절대가치는 서로의 상대를 참사랑의 주인으로 세워 주는 것입니다. (465-328,2004.8.22) 

여러분의 눈이 눈 자체를 보기 위해 생겼습니까? 눈, 코, 귀, 입, 손 모두가 상대를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그렇다면 오관을 총동원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을 계속하게 하는 그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참사랑의 가치관을 완성시키려는 힘입니다. 우리의 오관은 참사랑의 실천을 위해서 생겨난 도구들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위해서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465-330,2004.8.22) 

위해서 베풀고, 사랑으로 희생하고, 복종으로 사랑의 주인을 완성시키는 생(生)이야말로 하나님의 창조이상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 창조함을 받았으니 마땅히 상대를 위해 살아 줘야 하는 것이 천리입니다. 거기에서 참사랑의 절대가치가 창출되는 것입니다. (465-330,2004.8.22) 

2) 참사랑은 주고 잊어버리는 것 

참다운 부모는 어떤 사람이냐 할 때 자식을 위해서 태어났고, 자식을 위해서 살고, 자식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돼야 참된 부모의 사랑이 성립되는 것이요, 참된 자식 앞에 이상적인 부모로서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식 앞에 평화의 중심이 되는 것이요, 행복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참된 효도는 어디에 기준을 세울 것이냐? 그 반대의 입장입니다. 부모를 위해서 태어났고, 부모를 위해서 살고, 부모를 위해서 목숨을 다하는 사람이 참된 효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부모 앞에 이상적인 자녀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녀요, 행복과 평화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기준에서 보게 될 때,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의 공식을 제시한다면 위해서 존재하는 데서만이 참된 사랑, 참된 행복, 참된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75-318~319,1975.1.16) 

참사랑의 성질은 뭐냐? 사랑하고 잊어버리고 또 사랑하려고 하는 곳, 생명을 투입하고도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는 곳에 참사랑이 거합니다. 가치 있는 것을 한꺼번에 전부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왜 잊어버려야 되느냐? 더 주려고 하니까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은 주고 잊어버리는 사랑입니다. 그것을 전부 노트에다 치부해서 받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젖줄, 생명을 나눠 주면서도 좋아합니다. 타락한 어머니의 심정도 그러한데 타락하지 않은 본연적인 어머니의 사랑은 어떻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것을 투입하고도 잊어버리는 사람 가운데 참사랑이 영원히 존재합니다. (207-56~57,1990.10.28) 

참사랑은 천년을 주고도 잊어버리는 사랑입니다. 천년을 주고도 또 천년을 주겠다고 하면서도 잊어버리려는 사랑, 그런 사랑이 인간세상에 도대체 있느냐? 그 표시체로 나타나 있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을 가만히 보면 생기기는 그저 험상궂은 도둑놈같이 생겼는데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미를 봐도 일자무식이고, 손을 보면 두꺼비손 같고, 발을 보게 되면 개발같이 해서 다니면서도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더하다는 것입니다. 자식 사랑, 한 가지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162-267~268, 1987.4.17) 

참사랑만이 심신의 이상적인 관계를 영원히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이 심신통일의 기지 위에 임하면 우주의 참사랑과 공명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참사랑 아닌 것이 없게 되고, 자동적으로 무한자유와 희열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인격은 자연스럽게 상대세계와 정으로 동화되고, 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을 체휼하며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294-64,1998.6.11) 

참사랑은 경험을 통해서 얻고, 체휼을 통해서 알게 돼 있습니다. 참사랑은 말이나 글 혹은 일반교육을 통해서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을 통해서만 완전히 체득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도 성장하면서 단계적으로 생활을 통해서 참된 자녀의 심정, 참된 형제의 심정, 참된 부부의 심정, 참된 부모의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완성하게 돼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전체적으로 체득할 때, 비로소 창조목적을 완성한 이상적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277-197,1996.4.16) 

부모의 참사랑, 형제의 참사랑, 부부의 참사랑, 자녀의 참사랑 등 4대 사랑을 완성하고 4대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최소단위가 가정입니다. 참가정은 인간의 참사랑과 참행복의 터전이요, 참생명과 참혈통이 싹트는 곳입니다. 따라서 참가정은 인간이 창조본연의 참사랑과 참인격을 길러내는 수련소요, 참사랑의 학교입니다. 그와 같은 참사랑의 참가정은 인류의 소원인 동시에 창조목적의 근본입니다. 그 참가정에서 배출되는 참사랑의 참인격에 의해서만 참된 사회, 국가, 세계의 완성이 있으며 모든 환경권의 창조이상이 구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294-65~66,1998.6.11) 

3) 참사랑은 절대·유일·불변·영원하다 

참사랑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내적인 속성이 뭐냐 하면 절대·유일·불변·영원입니다. 그러니까 참사랑도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것입니다. (304-286,1999.11.9) 


하나님의 속성은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것입니다. 그렇게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것과 하나되는 사람은 영원한 나라가 자기 것이 됩니다. 참생명권에 영원한 것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없으면, 절대적인 희망과 이상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303-281~282,1999.9.9) 


참사랑을 통하게 되면 절대·유일·불변·영원할 수 있습니다. 참사랑에 일치된 사람은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유일적인 하나님, 절대적인 하나님, 불변적인 하나님, 영원한 하나님을 언제나 상대할 수 있는 환경권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304-286~287,1999.11.9)

하나님이 남자 여자를 지을 때 아무런 생각 없이 지었겠습니까? 남자에게 필요한 것이 여자이고, 여자에게 필요한 게 남자인데, 그 둘이 하나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이 뭐냐?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게 지은 것이 남자 여자였더라 이겁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지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랑이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그 참사랑은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것입니다. (215-301,1991.2.21)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희생적인 참사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의 노력은 자신의 힘을 투입하는 희생이지만, 그것은 사랑의 힘을 동기로 하고 있기 때문에 몇 천만배 큰 기쁨으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무한히 투입하고 희생하면 참사랑이 배후에 있는 한 자식은 그 참사랑에 무한히 감사하게 되는 것이고, 부모는 큰 기쁨으로 그 희생의 자리를 메우는 것입니다. 그처럼 희생적인 참사랑의 힘은 주고받는 작용을 발전시켜 참가정과 참세계에서 영원한 기쁨과 평화의 관계를 맺게 합니다. 그런 곳에서 영생의 이상세계가 현현하는 것입니다. (288-199~200,1997.11.28) 

4) 부모 사랑의 기쁨 가운데서 출발한 나 

인간은 사랑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존재냐 하면 귀한 존재입니다. 왜 귀하냐 하면 사랑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귀하듯이 내가 귀하고, 내가 귀하듯이 부모가 귀합니다. 그것은 내가 부모의 사랑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부모의 사랑에 동참했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정자와 난자 자체는 몰랐지만, 그 정자와 난자로서 부모의 사랑이 교류하는 데 내가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 그 양면의 사랑에 동참한 기반을 거치지 않고는 나라는 존재가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교류될 때 상대를 통해 느끼던 기쁨으로 내가 태어났습니다. 사랑할 때는 기쁨을 느낍니다. 슬픔 가운데서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기뻐하는 것은 뭐냐 하면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것, 영과 육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그런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작용으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으로 인한 슬픔이 최고의 슬픔입니다. 아내가 죽든, 남편이 죽든, 자식이 죽든, 부모가 죽을 때 느끼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슬픔 중에 무엇이 제일 큰 슬픔이냐? 사랑이 침범당할 때의 슬픔 이상 큰 슬픔은 없습니다. 돈이나 무슨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의 슬픔은 방향적 슬픔입니다. 그것은 각도만 조금 달리하면 다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축이기 때문에 사랑으로 인한 슬픔은 영원히 갑니다. (136-18~19,1985.12.20) 

나는 부모의 사랑에 동참한 존재로서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은 기쁨 가운데서 출발했습니다. 본래 인간은 사랑을 중심하고 기쁨 가운데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은 기쁨의 자리에 동참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일생은 기쁨을 통해서 가야 합니다. 어떻게 기쁨을 통해서 가느냐? 부모 사랑의 기준을 중심으로 좌우 편을 벌리고 그 중앙선을 따라가야 합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중앙선에 서서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어머니만 있어도 안 되고, 아버지만 있어도 안 됩니다. 성숙할 때까지, 자기가 성숙해서 어머니 아버지가 될 때까지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서 자라야 그 중심성을 갖습니다. 그래야 출발을 중심선상에서 하고, 또 그 중심선상에서 자랍니다. 그 중심선상에서는 상하가 연결됩니다. 그 중심선상의 사랑 가운데서 부모의 키움을 받은 아들딸이 성숙한 후에는 부모와 갈라지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들이 부부를 이뤄야 합니다. 이 우주와 세계는 우리를 낳아준 또 다른 부모입니다. 그 세계의 부모권에서는 누구를 중심으로 해야 되느냐 하면 부부를 중심으로 해야 됩니다. 인류는 남성과 여성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6-19~20,1985.12.20)

5) 사랑과 기쁨의 상속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알고 부모를 모실 줄 알아야 하며, 남편의 사랑을 알고 남편을 모실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식의 사랑을 알고 자식을 모실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명령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셔 볼 줄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해 할 줄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식이 없어 가지고는 미완성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 자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또 남편이 못 되어 보고서는 아내를 알 수 없고, 아내가 못 되어 보고는 남편을 알 수 없습니다. 자식도 부모가 될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이 어떤 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들딸이 없으면, 참다운 부모가 못 되는 것입니다. (133-138~139,1984.7.10) 

인간은 원리원칙을 따라 나가야 합니다. 봄이 되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 되면 무성해지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고, 겨울이 되면 모든 것을 정리하여 새로운 생명의 근원을 자기 내심에 지녀야 합니다. 그래야 재봉춘하게 되면, 또다시 그것이 심어질 수 있는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앞으로 여러분이 부모가 되어 여러분과 같은 아들딸을 낳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들딸을 여러분과 같이 키워야 됩니다. (26-158,1969.10.25) 

6) 사랑의 센터를 찾아가는 인생행로 

인간은 태어날 때 사랑으로 태어났으며, 그렇게 태어나서는 사랑을 받으면서 어린 시절을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쯤 성장하게 되면 부모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게 되며, 형제간의 사랑과 종족의 사랑을 중심하고 횡적인 사랑을 넓혀 가기 시작합니다. 즉 천주간의 모든 사랑을 받으면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특히 사춘기 때에 접어들면 이성간의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데, 이성간의 사랑을 함으로써 종합적인 사랑권에 진입하게 되어 사랑의 센터를 찾아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26-246~247,1983.4.24) 

천지는 구형의 세계이기에 횡적인 사랑을 주고받아 돌면서 원형을 1차적으로 이루게 됩니다. 특히 이성을 상대자로 택해서 사랑을 주고 받을 때 결실을 보게 되어 자식을 갖게 되고 부모가 되는데, 그때 서로가 상호간에 사랑을 주고받아 돌게 되면 횡적인 사랑에 이어 종적인 사랑도 이루게 되어 구형세계를 이룸과 동시에 사랑의 센터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운동을 통해서 생겨나는 센터는 모든 피조세계의 핵이기도 합니다. 지구가 존재하는 것도 그 사랑의 센터를 중심하고 운동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센터는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무한한 힘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처럼 사랑의 구형을 통해서 생겨나는 센터는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창조되고 존재하며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센터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126-247,1983.4.24) 

7) 3단계 사랑을 완성해야 할 인생노정 

수십억 인류는 태어날 때도 사랑을 중심으로 나고, 죽을 때도 사랑을 중심으로 죽습니다. 즉 사랑 가운데서 태어나서 사랑을 중심삼고 살다가 사랑 가운데서 죽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변하지 않는 사랑에 의존해 살고, 변하지 않는 사랑이 머무르는 곳에 안식합니다. 그런 사랑이 머무르는 곳이라면 바위틈일지라도 활개를 칠 수 있고, 코를 골며 편안히 누워 낮잠을 잘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사랑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참다운 사랑에 의해 태어났으면 참다운 세계에서 사랑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상적인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잘못된 사랑의 일치점을 통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잘못된 사랑권에서 살다가 잘못된 가운데 죽어가게 됐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본연의 사랑을 되찾아 가야 합니다. (18-25~26,1967.5.14) 

여러분이 부처끼리 사랑하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심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들딸은 하나의 작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의 아내는 다른 한쪽의 하나님이고, 여러분의 부모는 본연적인 하나님의 자리를 대표합니다. 하나님이 참사랑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연결되면, 모두가 같은 몸이 됩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고 살아 있는 하나님이요, 여러분 부부도 하나님을 대신하며, 여러분을 통해서 태어난 자녀들도 하나님을 대신합니다. 그렇게 3대가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참사랑을 필요로 하고, 여러분 부처가 참사랑을 필요로 하고, 여러분 자녀가 참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참사랑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무엇이든지 참사랑을 환영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조직이 천국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을 이루지 않고는 천국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공식입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하나님 대신 태어나 가지고 사랑으로 살고, 사랑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아들딸을 낳아 놓고,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완전히 사랑으로 하나되면 나중에 하나님을 닮습니다. 부부가 둘이 합해 가지고 그런 3단계의 사랑을 완전히 성공하고 영계에 가는 사람들은 영원한 주체인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부부가 같이 죽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207-36~37,199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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