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인류의 소원 3, 4, 5 (평화신경 해설 - 제11장 후천개벽시대의 평화대사 사명)

훈독왕 | 20200610105207

평화신경 해설 - 제11장 후천개벽시대의 평화대사 사명

제1절 인류의 소원


첨부파일 24 평화신경 해설 11장 1절 인류의 소원 3, 4, 5 -1.mp3


3)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 

창조라는 것은 무엇이냐? 자기 투입입니다. 여러분이 예술작품을 하나 만들게 될 때에는 그 만들어진 예술작품의 가치 기준은 그 사람의 정신으로부터, 그 사람의 모든 성심성의로부터 나옵니다. 노력을 해야 한다면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 거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 최고의 관심을 갖고, 거기에 정열을 기울여야 한다면 최고의 정열을 기울일 것입니다. 최고로 자기를 투입할 때 자기가 생명시할 수 있는 물건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되어지는 사실을 보고 잘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모든 창조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투입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이 인간이 얼마나 신비롭습니까!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신비로운가를 알아야 됩니다. (136-105,1985.12.22) 

씨는 반드시 한 깍지에 둘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의 신비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신비를. 두 부분인데 한 배아로 되어 있다 이겁니다. 그것도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이렇게 되어 있으면 이건 반대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도 전부 둘로 되어 있는데, 아기 씨가 있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의 사랑 가운데 이성성상이 들어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속에 이성성상이 들어 있으므로 하나의 씨에 이성성상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132-14,1984.5.19)

우리가 삼라만상, 자연계를 바라볼 때, 사계절을 따라 변하는 자연 현상과 때에 따라 모든 만물이 화동하여 미(美)를 나타내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무의미한 심정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본다거나 나비나 벌을 볼 때, 흐르는 물이나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볼 때에도 이 모두가 창조하신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이 반영된 모습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많은 예술가가 있고 문학가가 있지만 모든 예술가와 문학가들은 한결같이 많은 형용사를 동원하여 피조세계, 즉 만물의 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연은 예술이나 문학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피조세계, 즉 자연을 잘 놓고 보면 우리들이 즐길 수 있는 상대적 조건이 말할 수 없이 감소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없어서는 안 될 자연이요, 느끼지 않으면 안 될 자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관계의 심정을 갖고 자연을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5-343,1959.3.8)

선생님이 오늘 아침에 성지에 올라갔을 때 동산에 가만히 앉아서 보니 작은 벌레들이 참 많았습니다. 또 새들이 종알거리고 흙 냄새가 풍기는데, 자연에 깃들어 있는 신비가 참 멋있다는 것을 느끼며 ‘하나님은 욕심 많게 많이도 창조하셨구나.’ 생각했습니다. 잔디밭 같은 데 가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그만 벌레들이 왔다 갔다 하는 통로가 있습니다. 또한 잔디를 가만히 헤치고 보면 납작한 벌레, 둥그런 벌레, 뾰족한 벌레 등 별의별 벌레들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푹신해서 좋다고 하며 잔디를 깔고 앉는데, 거기에서 왔다 갔다 하던 총각 벌레, 아가씨 벌레들이 불쌍하게도 “어이쿠! 죽겠구나!” 하며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벌레들도 사람과 같이 호흡기관, 소화기관 등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이 갖추고 있는 조화로운 모든 기관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얼마나 신기합니까? 여러분은 그 세계가 단순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18-104~105,1967.5.28)

순수한 하나님의 참된 사랑에 일치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세상 그 무엇도 이것을 터치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상대자로서 등장하게 될 때는 누구도 터치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의 사랑을 받고 꽃 한 송이를 보게 되면, 옛날에는 ‘글라디올러스는 뭐 흰 꽃이구만!’ 이랬지만, 그 사랑에 접해 가지고 보면 이 세계는 무수한 신비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천만 편의 시가 여기에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됩니다. (80-194,1975.10.23)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만물의 주인공으로 세우시고 소망하시던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감정이 스며들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감정이 스며들기를 바라셨습니다. 여러분, 사춘기에 접어들면 만물을 대할 때에 신비감을 느낄 것입니다. 여러분도 정열이 최고조로 불타오를 때 시를 쓰면 놀라운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대우주의 심정을 지닌 인간으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시고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그 목표대로 성숙하기를 고대하고 고대하셨습니다.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들이 성숙하면 할수록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대할 때 각각 서로를 대우주 전체의 실체로 감각하기를 바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감정세계에 하나님도 들어가고 만물도 들어갈 수 있는 정도까지 인간이 성숙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9-171,1960.5.8) 

4) 사랑의 상속자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는데 마음적인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적인 존재인 하나님은 아담의 몸뚱이 성상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으로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하나님이 안팎으로 동일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사랑에는 동위권이 있고, 동참권이 있고, 상속권이 있다, 이런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 이 세상을 지었다는 원칙적인 이 우주의 근본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294-244,1988.8.5) 

사랑은 위대한 것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동참권이 있기 때문에 동위권에 서 가지고 동참하고, 그다음에는 상속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뭘 찾으려고 그렇게 무서운 욕심이 있느냐 하면, 사랑을 점령하려고 그럽니다. 사랑을 점령하고야 안식하는 것입니다. (165-136,1987.5.20) 

지금까지 왔다 갔던 선조들, 지금 현세에 살고 있는 50억 인류, 앞으로 올 수백억 후손까지도 공통분모로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이상적 혈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 혈족은 하나님 앞에 영원불변의 왕자 왕녀의 특권을 갖추는 것입니다. 천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마음속에 내 것으로 영원히 모실 수 있는 상속자의 권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 역사를 통한 최고의 희망이요 욕망입니다. (173-113,1988.2.7) 

여러분의 마음은 욕심이 무한합니다. 어디까지 가느냐? 하나님과 동참할 수 있는 자리, 하나님과 동위권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주인의 자리까지 가는 그것이 우리 욕망의 종착점입니다. 이 욕망의 터미널(종점)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171-24,1987.12.5)

여러분의 가정에서 효자가 되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참된 사랑에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애국자가 되라!” 하는 것은 무슨 말이냐? 나라를 상속 받자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라!”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세계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의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상속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자가 되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라!” 하는데 그건 뭐냐?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하여 우주 전체의 상속권을 이어받으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상속 받을 수 있는 전통적 길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타락한 인간세계에 있어서 이런 논리적인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연결시켜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목적이라든가 구도의 길이 가능하다는 것을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랑 때문입니다. (142-337~338,1986.3.14) 

여러분 집안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의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겁니다. 보다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보다 가정을 사랑하는 사람이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 인간들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완성된 사람으로서 완성된 사랑을 갖춘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 되어 하나님과 대등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소유를 내 소유로 상속 받을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사랑을 통할 수 있는 길이 없으면 상속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은 그 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 높은 곳, 최고 좋은 곳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중요한 말입니다. 여기 레버런 문이라는 사람이 이런 문제를 알기 위해서 생애를 바쳐 고심한 것입니다. 알고 보니 내용은 간단합니다. “아하, 사랑으로 태어나 사랑의 길을 따라 사랑의 본원지인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되는구나!” 이렇게 됩니다. 거기서 출발했으니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돌아가야 됩니다. (142-121,1986.3.6) 

5) 인간은 누구나 개성진리체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개성진리체, 그 말은 놀라운 말입니다. 하나님적 개성진리체를 중심삼고 몸 마음이 하나되면 사랑으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그 자리를 중심삼고 2차적인 면에서 인간과 관계를 맺게 돼 있지, 하나님과 몸과 마음이 하나가 안 돼 가지고는 인간과 하나되게 안 돼 있다는 것입니다. (141-23,1986.2.16) 

하나님과 양심을 비교할 때, 내 양심이 내 몸뚱이를 먼저 알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아는 자리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부속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과 발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별개의 개성진리체로, 대상입니다. 개성진리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대등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5퍼센트 창조의 가치를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원리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코 크리에이터(co-creator; 창조의 협력자, 공동 창조주)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절대적인 5퍼센트의 책임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먼저 안다면 인간은 그 대상자의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252-331,1993.1.5) 

하나님의 대상적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이 다른 점이 무엇이냐? 하나님과 인간은 같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분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팔과 다리와 같은 분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상대체라는 것입니다. 대상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남자 앞에 여자가 있듯이, 남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여자이고 여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남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 하나님입니다. 인간은 대상적 가치를 지니게끔 되어 있습니다. 개성진리체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연장이 아닙니다. 대상입니다. 그 대상의 가치를 어디서부터 키워 나갈 것이냐? 양심입니다, 양심. 양심은 하나님의 대상의 자리로 키워 나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체라면 양심은 대상입니다. 대상의 자리라는 겁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거 잘 모르면 안 됩니다. 타락 때문에 그 대상의 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걸 다시 찾아야 됩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대상의 자리에 설 수 있는 본연의 궤도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양심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뿌리는 한 자리에 있지만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이 자리잡을 수 있게 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하나님이 주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253-200~201,1994.1.23) 

남자와 여자를 두고 말하면 여자와 남자는 개성진리체가 다릅니다. 인격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의 연장이 될 수 없고 여자가 남자의 연장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은 상대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또 다른 하나님의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과 하나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것은 사랑을 통해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254-19,1994.2.1)

하나님을 중심한 지상천국에서 각도를 맞추어 살던 사람은 천상세계도 마찬가지로 사랑의 도리에 각도를 맞추는 겁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나,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이나, 여러분의 나라님이 좋아하는 것이나, 세계의 대통령으로 오시는 주님이 좋아하는 것이나 다 마찬가지의 각도입니다. 이 각도에 따라서 개성진리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180-304,1988.8.22) 

사랑의 대해(大海)에서 출발한 우리 인간은 자기 스스로 개성적인 격(格)을 갖추는 것입니다. 전부 다 격이 다릅니다. 개성진리체라는 말이 있지요? 개성진리체와 같이 격이 다른 길을 통해 가지고 자기 나라의 역사성을 지닌 사랑의 내용을 가지고 대해로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이 바라셨기 때문에, 창조물이 대해로 들어오면 개성 격에 대하여 기뻐하시며 “오! 너 왔구나!”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바다에 있는 천만 가지의 격이 하나되어 가지고 기쁨으로 화한 것이 하나님의 세포가 되어 하나님은 ‘아,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서 만족스럽구나! 이것이 천상세계의 이상적인 궁이다.’ 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본래 가야 할 길은 이러한 사랑의 길입니다. (149-160,198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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