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경 해설 - 제11장 후천개벽시대의 평화대사 사명
제1절 인류의 소원
여러분,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공통된 꿈이 있다면 과연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누구나 한결같이 소원하고 고대해 온 것은 평화이상세계의 실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역사상 단 한 번도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항구적 평화를 실현시켜 보지 못한 것이 역사적인 한으로 남아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렇게 된 것입니까? 한마디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모르는 무지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수천 수만년을 기다려도 무지에서는 완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창조는 실로 오묘합니다. 당신의 자녀요 사랑의 상대로 창조한 인간의 완성과 행복을 위해 삼라만상을 먼저 창조하시어 환경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 중 걸작품의 하나인 꽃을 놓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외롭게 들판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이름 없는 꽃에 이르기까지 꽃에는 분명히 창조주의 의지와 목적이 숨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꽃으로서의 생을 표현하고 완성해 가는 모습은 실로 경이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먼저, 꽃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감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색상과 음양의 조화를 현시합니다. 그리고 현란한 색상에 매료되어 찾아드는 벌과 나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야 마는 만능의 향기도 내어 뿜습니다. 더 나아가서 너무 강하고 눈이 부셔 쳐다보기도 힘든 태양 빛을 담아 생명을 창조하고 지켜 주는 자연의 빛으로 되돌려주는 화합과 평화의 빛을 발산합니다. 부지런히 문전을 들락거리며 자신의 종을 번식시켜 주는 벌나비들을 위해서는 달콤한 꿀을 제공함으로써 보답하는 도리도 잊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성은 우리가 필설로는 다 묘사할 수 없는 실로 무한의 경지입니다. 그러기에 인류 최고의 화가가 그린 그림일지라도 살아 있는 한 떨기 야생화에도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낱 보잘것없는 꽃 한 송이를 창조함에 있어서도 이처럼 만물만상과 조화를 이루고 공생·공영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물며 당신의 자식이요, 영원한 사랑의 상대자이며 상속자로 창조한 인간의 위상은 어떻겠습니까? 천만 가지의 꽃이 만발해도 엄연한 창조의 원칙 아래 각각 개성 진리체로서의 위상을 지키며 조화로운 대자연을 이루고 공생·공영하는 순리를 보며 인간도 조화와 평화, 그리고 자유와 행복을 찾아 영생하라는 하늘의 축복과 은총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누구나 하늘이 부여하신 개성체로서의 삶의 모습과 특성이 있습니다. 즉 인간은 누구나 개성진리체로서의 특권을 받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하고 개성 있는 생의 노정을 걸어야 하는 숙명적 존재라는 뜻입니다. (본문 193~195쪽)
<해 설>
1) 평화이상세계의 실현
역사를 통해 온 인류가 원했지만, 지금까지 이 땅 위에는 평화의 세계나 통일의 세계는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정치의 힘으로 평화의 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안 됩니다. 통일이라는 말에는 센터 컨셉이 필요합니다. 모델적인 코어(core; 핵)가 필요합니다. 그 중심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코어 밸류(core value; 핵심가치)라고 합니다. 정치, 경제, 지식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내리는 단 한 가지의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어떻게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을 찾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전세계를 컨트롤할 수 있는 코어 밸류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행복의 세계와 희망의 세계도 문제없습니다. 어디든지 고속도로가 뚫리고 다리가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집에서 출발해서 왕궁의 정문까지 수백 마일의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됩니다. (313-313~314,2000.1.1)
공산주의 갖고는 화합의 원칙을 영원히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평화의 세계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공식이 뭐냐 하면 정분합입니다. 개인주의 사상은 원수입니다. 국가, 세계 사상을 넘어서야 됩니다. 그러니까 민족이라든가 문화의 배경을 자랑하게 되면 투쟁 개념이 언제나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부정하는 데서부터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됩니다. (350-101,2001.8.3)
이 땅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모두 다 똑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두 다 혈통이 다릅니다. 그것을 어떻게 소화해서 평화를 이룰 것이냐? 그것은 하나님도 걱정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민족들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원수를 사랑하는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을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기독교가 나오게 되었는데, 그러한 방향은 훌륭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의 주인이시고 사탄은 지옥의 주인인데, 어떻게 그 천국과 지옥을 평화권의 평등한 세계로 만들 수 있겠느냐? 그러한 것을 생각하시는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그 사랑은 개인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고, 천주를 넘는 것입니다. 가장 유명한 명문가의 사람과 지옥에 떨어져 있는 가문의 사람이 만나서 평화를 이루는 그러한 사랑의 가정 전통을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영원한 평화의 가정 기준이 세워질 수 없다는 것은 이론적입니다. (376-280,2002.4.29)
하나님을 해방하겠다는 주의가 있습니까? 원수와 결혼해야 해방된다는 그런 이상이 어디 있습니까? 없습니다. 있을 수 없는데 있을 수 있다면 하나님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영원한 평화를 못 찾습니다. (365-315,2002.1.14)
사랑하는 딸을 키워 원수에게 시집보내야 하는데, 그 시아버지 일가가 총을, 대포를 겨눌 텐데 그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환영할 수 있게끔 만들지 않으면 복귀의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평화의 세계는 찾을 수 없습니다. (386-96,2002.7.15)
미국과 같은 나라를 보게 되면, 흑인과 백인이 원수가 돼 있지만, 자기 선조들 가운데 흑인과 백인의 아버지 피라든가 어머니 피가 섞여 가지고, 흑인과 백인이 결혼해 가지고 백인 계통의 아들딸을 낳고 흑인은 안 낳았다 하더라도 거기에서는 역사시대를 거쳐 가지고 반드시 흑인이 나오는 것입니다. 흑인을 제일 싫어하는 이러한 백인인데도 불구하고, 두 부부가 아무리 싫어하더라도 그 가운데 흑인 아들딸이 태어났다면 죽여야 되겠습니까, 반대의 대표자로 표적을 세워 가지고 선전해야 되겠습니까? 그걸 어떻게 통일하느냐 이겁니다. 그 아기를 미워하게 되면 영원히 흑백의 세계는 통일이 없습니다. 또 흑백의 세계가 분쟁한다면 조상의 자리에 올라가더라도 영원히 조상의 몸 마음이 싸우지 않는 평화의 기준, 통일의 기반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그러면 몸 마음이 싸우는 자리에 가서 구경이라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하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싸우는 그 가운데 가서 살고 싶냐고 하면 “퉤!” 하고 침 뱉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현재 몸 마음의 평화의 경지를 갖지 못하면 영원한 평화를 그렸댔자 그건 꿈입니다. (389-201,2002.8.4)
2) 인간의 완성과 행복을 위한 삼라만상의 창조
모든 만물은 인간에게 있어 하나의 자극적인 상징체였습니다. 들려 오는 새소리는 아담의 심정을 울려 파동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였습니다. 나비나 벌, 그밖의 모든 만물을 아담 해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자극적인 상징체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불어오는 바람도, 흘러가는 물도, 들에 있는 풀 한 포기도 모두 아담 해와를 사랑한다는 그 실체의 표상체로 지으셨습니다. 인간을 만물의 중심으로 두시고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자리가 얼마나 복된 자리입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자랑스러운 인간이었고, 하나님의 품에 품고 영원히 영원히 놓지 않고 싶었던 인류 시조였습니다. (20-208,1968.6.9)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늘은 인간을 지어 놓고 축복하시기를 “네 몸은 땅을 지배할 것이요, 네 마음은 하늘을 지배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창조원리를 배웠을 텐데, 우리의 몸은 땅을 지배하고 우리의 마음은 하늘을 지배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 중에 최고의 욕망이 무엇이냐? 요놈의 땅덩어리? 아닙니다. 땅은 이 몸으로 지배할 수 있는 동시에 마음으로는 영계를 지배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까지도 내 것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편안합니다. 최고의 것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는 그날까지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 말씀은 다 헛된 것입니다. 헛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이냐? 그것은 인간에게 지극히 좋은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흙덩어리로 빚어진 이 몸, 그 이상의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몸뚱이에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 이상 큰 선물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8-21,1959.10.25)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것은 누구를 위해서였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만, 만물을 창조하신 궁극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보다도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될 때에 하나님과 인간은 둘이 아닌 것입니다. 남편을 중심하고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할지라도 아내가 사랑을 중심삼고 남편과 완전히 하나될 때 그 남편과 아내는 하나인 것입니다. 결국 남편과 아내가 서로 좋은 것은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만의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좋은 것이다.”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여러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13,1968.3.31)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길이길이 함께 거하시기 위해서 인간을 만물의 중심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피조만물이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모든 피조만물이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릴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런 피조동산이 되지 못 한 연고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는 날을 역사의 종점으로, 하나의 소망의 표준으로 세워 놓고 섭리해 나오시게 되었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새롭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4-66~67,1958.3.9)
원래 모든 만물은 무엇을 표준으로 지으셨느냐? 인간을 표준으로 지었습니다. 모든 만물도 인간에 귀결시키기 위해서 창조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조한 사람을 최초의 출발과 더불어 최후의 자랑으로 세우시려 했던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인류의 시조가 서지 못하여 인류역사는 슬픔으로 출발이 되고 말았으니 그 과정에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슬픈 사실이 나타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역사의 비참사요, 탄식의 기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잘못된 인간 출발의 기원은 어떻게 제거시킬 것인가? 이것은 하나님 혼자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출발이 누구로 말미암아 되어졌느냐? 인간으로 말미암아 되어졌기 때문에, 이 일을 성취시키고 이 과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53,1968.7.7)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재창조의 역사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창조하실 때와 같은 순서를 다시 밟고 올라가야 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후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인간조상 아담 해와는 참다운 부부가 되기 전에 자녀의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만일 이 자녀가 타락하지 않고 자라서 참된 부모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상속을 받았더라면, 이 세계는 그야말로 우리 인간이 이상하던 선의 세계요, 소망의 세계요, 본향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세우려던 본연의 부모 인연을 갖지 못했습니다. 자녀의 인연도 가졌다고는 하지만, 아담 해와가 자녀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장성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모든 소망을 걸고 전폭적으로 사랑하실 수 있는 자리에 선 자녀는 되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만물은 완성한 자녀의 입장에 선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로부터 주관받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관받지 못하였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41-52~53,197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