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경 해설 - 제1장 하나님의 이상가정과 평화이상세계왕국
제1절 하나님의 이상가정
(용량 문제로 본문은 훈독하지 않았습니다.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존경하는 세계 지도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궁극적 목적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참사랑을 중심한 이상가정의 완성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상가정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번째 인간은 남성격을 대표한 모델인 아담과 여성격을 대표한 모델인 해와였습니다. 그들이 참사랑의 표제가 되는 인격자와 주인이 되는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요? 한마디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 수 있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확보하는 모델 평화이상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한 가족을 이루어 영원히 기쁨을 느끼며 사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기도를 통한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서 이 우주의 중심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십시오. ‘부자(父子)관계’라는 대답을 듣게 될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이상 중요하고 귀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인간의 근본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자의 관계가 갖고 있는 특성은 무엇입니까? 참사랑과 참생명과 참혈통의 관계입니다. 참부모의 참사랑이 전제되지 않고는 우리의 참생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 인간은 절대적인 참사랑의 상대로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인간은 아들딸이 되는 축이 세워지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보다도 더 높고 귀한 자리가 있다면 인간의 욕망은 또 그 자리를 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는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최고의 자리는 당신을 위해 숨겨 놓고, 당신의 자식이요 사랑의 절대 상대자 되는 아담 해와에게는 두 번째 좋은 자리에 세워 창조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참부모 되시는 하나님은 100퍼센트 당신 전체를 투입하시어 인간을 창조하시고 동위권, 동참권, 동거권, 상속권을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절대자라고 하지만 당신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좋다”는 말, “행복하다”는 말은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는 말입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갖춘 자리에서라야 성립되는 것입니다. 평생을 성악가로 살아온 사람이라도 무인도에 버려져 혼자서 목이 터지라고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행복하겠습니까?
자존하시는 하나님께서도 기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의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절대자 되시는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려야 할 상대자로서의 인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하나님이 아들이라 딸이라 부를 수 있고, 당신과 동격의 자리에 세워 함께 창조의 위업을 완성할 수 있으며, 천지만물을 모두 상속해 줄 수 있는 자식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어야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이상적 출발점을 어디에 두신지 아십니까? “상대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원칙에 당신의 이상적 출발점을 세웠습니다. 다시 말해서 참사랑의 소망적 상대를 위한 실천이 하나님의 창조역사 출발의 핵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식 된 인간의 책임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효자, 충신, 성인, 성자의 가정의 도리를 다하는 참사랑의 화신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심정의 내정을 알아내어 아담 해와의 타락이래 수천 수만년을 고통 속에 살아오신 하나님의 한을 풀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토록 고통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역사의 배후에서 수난을 감내해 오신 것은 하나님이 못나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타락으로 잃어버린 아담 해와의 본연의 자리, 즉 완성한 후아담의 현현을 기다려야 할 복귀섭리에 얽힌 말못할 사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전권을 가진 하나님이라고 할지라도 당신 스스로 영원의 기준 위에 세운 천리원칙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본문…13~16쪽)
<해 설>
1) 하나님의 인간 창조목적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도 홀로 독처(獨處)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에 먼저 천주는 인간을 위한 환경 창조의 일환으로 창조하시고, 그 터 위에 당신의 절대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신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대상인 인간이 하나님 자신보다 더 훌륭하고 큰 존재가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인간을 당신의 자식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부모는 자식들이 자신들보다 더 잘되고 훌륭해지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그것은 모두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부모들의 전통적 사랑입니다. 자식으로 지은 인간이 성장하고 완성하여 당신으로부터 축복결혼을 받고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의 열매 되는 참된 자녀를 번식하여 참된 가정에서 참되고 영원한 이상천국을 이루어 사는 것을 보고 기쁨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참사랑의 주인이 되는 길은 먼저 상대를 위해 자신을 철저히 희생하며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참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열리게 됩니다. (474-162,…2004.10.30)
하나님은 기쁨을 누리시고자 인간과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홀로는 느낄 수 없습니다. 기쁨을 누리시려면 반드시 대상 혹은 짝이 필요합니다. 주체와 대상이 서로 상대기준을 이루어 주고 받을 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기쁨은 사랑을 주고받을 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대상으로 지으시고 그 대상과 더불어 무한한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기쁨을 누리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목적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창조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첫 인간조상으로 일남일녀를 지으셨으니, 성서에서는 그들을 아담과 해와라고 부릅니다. 그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완전한 기쁨의 대상이 되어 사랑을 주고받으며 선한 자녀를 번식했더라면 그 가정이 확대되어 사회가 되고, 그 사회가 발전하여 국가가 되며, 그 국가는 세계로 발전되어 지구가 아담족 일족으로 충만하고, 이 땅 위에는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완성한 기쁨의 세계가 이뤄졌을 것입니다. 그 세계를 천국이라고 하며, 그 천국이 지상에 이뤄졌을 터이니, 그 세계는 지상천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지상천국은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가정이요, 인류는 모두 한 형제입니다. 거기에는 하나의 전통과 문화가 있는 하나의 통일세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100-241~242,…1978.10.19)
2)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부자관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냐고 묻게 되면 “절대자요, 유일무이하며,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은 합니다만, 그 아버지란 말이 어떤 의미에서 부르는 아버지이냐는 것입니다. 다만 명사를 존중시하기 위해서 부르는 막연한 아버지냐, 아니면 정말 그러한 내용을 가진 아버지냐 하는 문제는 생각지도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육(肉)을 통해 태어난 부모를 중심하고 볼 때, 그 부모와 하나님은 어떤 관계냐 하는 것이 막연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신비스러운 체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우주의 근본을 찾아 들어가서 우주의 근본이 뭐냐고 궁금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제시하고 우주의 근본을 찾아 들어가게 될 때, 우주의 근본은 만상의 세계를 대신해 있는 인간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근본은 무엇이냐 하면 생명입니다. 그러면 생명의 근본은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사랑의 근본이 무엇이냐 하게 될 때, 여기에서 인간 이상의 것으로 올라 가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명사를 들고 나오게 될 때, 그 사랑이라는 명사는 혼자 있어 가지고는 성립될 수 없는 말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가질 때 쓸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을 하게 될 때,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서 사랑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 가지고 그 상대와 절대적인 사랑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을 마련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사랑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데는 상대적 여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48-205~206,…1971.9.19)
그러면 그 상대가 동물 혹은 만물 중에 어떤 것이 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사람 이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하늘을 추앙하거나 숭배하는 종교의 형식을 가진 동물은 없습니다. 인간만이 고차적인 하늘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사랑의 근원자라면 그 사랑에 상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나타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는 결론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종관계의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하느냐고 할 때, 그걸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라면 절대적인 사랑의 상대를 가져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랑해야 절대적인 사랑이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종이라는 입장에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안팎이 하나되어 가지고 신경이 한 방향을 통해서 투입되고 주입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모든 일이 다른 목적을 중심하고 관계되어 있는 것이 종의 입장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흐름에 있어서 동기를 같이할 수 없는 것이요, 바라는 최고의 상대적 여건을 같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외적인 여건을 관계 지을 수 있는 자리가 종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종의 자리에 두고 하나님이 사랑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참다운 사랑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을 보게 되면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르며 양자를 추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양자로서 사랑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양자 이상입니다. 사랑이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은 정서적인 내용을 제시하는데 그 사랑을 중심으로 설 수 있는 핵은 무엇인가를 찾아 들어가게 될 때 자연적인 결론으로서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아버지가 돼야 할 것이고, 우리 인간은 그분의 아들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길은 없습니다. (48-206~207,…1971.9.19)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명사를 들고 나온 하나님을 우리가 추구하게 될 때 그 기준은 주종관계의 어떤 종이 아니라 절대적인 내용을 같이하고, 운명을 같이하고, 목적을 같이하고, 환경을 같이할 수 있는 입장에 선 사랑관계를 중심하고 태어난 존재가 아닐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가 어디냐 하면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아들딸이 되는 자리입니다. 만일에 그 이상의 자리가 있다면, 인간의 욕망은 또 그 자리를 원하는 거예요. 인간의 욕망은 최고를 원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우리 인간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응당히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가 돼야 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48-207~208,…1971.9.19)
그러면 그 아들딸이 어떤 권위를 갖고 나오기를 바라느냐? 오늘날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한 가정의 가주(家主)로서 몇 사람의 어버이가 된 아버지, 거기에서도 좋은 아버지가 됐느냐, 못 됐느냐 하는 비판받는 그런 아버지를 원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 세상의 자녀들로부터 비판받는 그런 아버지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일 것이냐 하면 어떤 종족의 대표자이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어떤 한 나라를 중심한 대표자이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절대자이니만큼 절대자의 자리에 선 아들, 그런 아들의 권위를 가진 아들을 원할 것입니다. 그 아들의 권위를 가진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국가적인 기준도 아니요,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더 나아가 통일교회 술어를 빌려 얘기하면 천주적이어야 됩니다. (48-208,…1971.9.19)
우리 타락한 인간도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전부 다 세계를 자기 손아귀에 넣고 싶어합니다. 그런 마음은 어린아이들에게도 있어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다 있습니다. 가령, 세계를 자기 것 만들었다고 하면 그것을 자기 것 만든 후 다시 어떤 더 높은 분이 있으면 그분도 자기 것 만들고 싶다고 합니다. 그분을 자기 것 만들었는데, 그분 앞에 더 좋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난 싫소!” 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내 것 만들었으면, 그다음엔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것 만들어도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영원히 떼려야 뗄 수 없고 아무리 가르려야 가를 수 없는 인연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그자 나요, 나자 그’라고 할 수 있는 자리를 원할 것입니다. 그 자리가 무슨 자리냐 하면 사랑의 자리입니다. 그런 사랑을 중심하고야 영원한 사랑이 인간 세상에 관계를 맺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사랑의 주체라면, 우리 인간이 그분과 그런 관계를 맺어 가지고 사랑의 일치점을 찾지 못하고는 인간 세상에 영원한 사랑을 중심한 이상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상세계는 어떤 소망만을 중심해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평화의 기원이요, 행복의 기원이기 때문에 정서적인 분야를 절대시한 터전 위에서만 이뤄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세계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가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상대적 여건을 중심하고 깊고 넓고 높게 세계 이상의 가치를 다짐할 수 있는 심정의 터전을 갖고 서게 될 때 그 앞에 외적으로 갖춰진 그 권위가 내적으로도 빛나는 것이지 내적 기준이 갖춰지지 않을 때는 아무리 외적인 기준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불행을 자초하는 조건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48-208~209,…1971.9.19)
그러면 인간과 하나님은 부자의 관계인데, 어떻게 해서 그런 관계가 맺어진 것이냐 하는 근본문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기도하게 될 때, “인간은 피조세계의 중심인데, 이 우주의 중심은 뭐냐?”고 묻게 되면 부자관계라는 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주의 중심이 뭐냐 하면 한마디로 딱 결론을 지어 주는데 부자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통 사람들은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 아버지를 말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부자의 관계라고 하는 것을 보통 생각하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 즉 인륜도덕을 중심한 부자의 인연을 말하는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입체적인 입장에서 보게 되면,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관계의 정(情)을 중심하고 하나되어 있는 그 자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48-209,…1971.9.19)
3) 참사랑의 상대로 창조된 인간
아담 해와를 지을 때 하나님은 절대신앙의 상대자로서 창조했습니다. 그 절대신앙 위에 절대사랑을 중심하고 창조했는데 절대투입이었습니다. 자기 존재까지도 부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체와 대상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인간세계의 실체존재가 어떻게 돼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담 자신도 성상과 형상이 있어 가지고 중화적 입장의 실체권을 이뤄야 했고, 그다음에 격위에서는 남성격 주체의 자리에 서야 했습니다. 그것이 아담 창조의 이상이었습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우주의 근본이 그렇게 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최고 가치의 존재를 만들기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무한히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다 보니까 광물세계로부터 식물세계, 동물세계, 우주세계가 나오게 된 것이 창조원론이라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404-145~146,…2003.1.31)
하나님께 귀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영원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 절대적으로 좋아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참사랑입니다. 그 참사랑의 주체가 되는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참된 사랑의 주체자인 그분 앞에 절대적 상대자로서 사랑의 권한을 부여해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창조의 목적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역사 세계의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나와 가지고 그것을 밝힌 것입니다. (141-168~169,…1986.2.21)
인간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하나님께 가장 가까운 관계, 즉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걸 모르고 있어요. 문 총재가 나와서 가르쳐 줘서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참부모이고, 인간은 실체대상인 아들과 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주인이 돼 가지고 아들딸의 집에 들어가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세계에는 크고 작고 높고 낮은 게 없습니다. 눈이 높다고 자랑합니까, 손이 높다고 자랑합니까? 전부 다 보호하게 돼 있습니다. 코가 자랑합니까, 입이 자랑합니까, 귀가 자랑합니까? 그걸 알아야 됩니다.
남자가 된 것을 자랑하거나 미인이 된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가짜들입니다. 참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은 상하의 계층이 없이 일체가 됩니다.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주체와 대상이 일체된 그 결과는 단절 없이 영속되는 것입니다. 한번 이루면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렇게 참사랑 안에서 주체와 대상은 동위, 같은 자리입니다. 동참, 어디 가든지 훌륭한 남편을 따라가면 같은 자리에 갑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동거권이 있으며, 상속권이 있게 됩니다. (400-82,…2002.12.27)
하나님이 이성성상의 체를 못 가졌기 때문에 체를 입기 위해서 몇 천만년 기다렸습니다. 상대적 여건을 지어 놓아야 했던 것입니다. 대 우주의 모든 환경 여건을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 것을 첫사랑을 중심하고 넘겨줄 수 있는 소원성취를 못 한 하나님입니다. (476-218,…2004.11.21)
무형의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은 천주적 부모요, 보이지 않는 부모입니다. 그다음에 격위는 남성격으로 존재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아담과 해와로 정분합(正分合)해 가지고 땅 위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몸뚱이의 사람을 통해 가지고 아들딸이 태어 나게 돼 있습니다. 영계에 가서는 자녀를 번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주·천지·천지인부모라는 것은 창조이상권의 전통을 고스란히 말한 것입니다. 나는 천지인부모의 열매라고 해야 됩니다. 천지인부모가 축복해 줘서 부모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딸을 낳을 수 있는 대신자입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자기보다 못한 녀석을 대신자로 세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기보다 훌륭한 자식을 낳아야 되고, 그 다음에 상대가 자기보다 훌륭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가 훌륭해야 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훌륭한 아들딸이 태어나서 가정이 생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도 안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475-61,…2004.11.7)
4) 동위권·동참권·상속권
사랑에는 소유권과 상속권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동거권이 있습니다. 같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는 극과 극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불을 피워 놓으면 서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서로 다른 것, 극과 극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화합하는 것입니다. 남극과 북극이 자력소를 통해서 하나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랑만이 그걸 가능하게 합니다. 극과 극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 다릅니다. 여자가 크냐, 남자가 크냐 하면 남자가 큽니다. 올림픽대회 같은 데 여자와 남자가 겨루게 되면, 비교가 안 됩니다.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비슷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게 무슨 평등입니까? 수백 가지 올림픽 종목을 여자하고 함께 뛴다면, 챔피언 되는 여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에게 한 가지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남자한테 씨를 받아 가지고 키워주는 배가 두둑하다는 것입니다. 그건 남자가 못 하는 것입니다. 아기를 뱃속에서 키우는 챔피언은 여자가 대표입니다. 그게 제일 귀한 것입니다. 남자가 제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들딸입니다. 그 아들딸을 낳아 드려야 됩니다. 여자들이 생각할 때 남편한테 아들딸을 낳아 드린다고 하지 낳아 갖는다고 생각 안 합니다. 그 이상 귀한 일이 없습니다. 그것 하나 여자가 귀한 것입니다. (224-38~40,…1991.11.21)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랑에는 상속권이 있고, 동거권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등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이 제일 귀한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나가 되면 상속권이 생깁니다. 그 남자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 남편이라고 합니다. 어저께 어머님이 강연회에서도 “내 남편 문선명 목사”라고 했습니다. 내 남편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부부가 돼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동참권이 있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이마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중이라도 자기 부인이 메모를 보내면 끌어낼 수 있습니다. 당장 가 보는 것이 천지이치입니다. 그걸 막을 길이 없습니다. 상속권·동거권·동참권! 그다음에는 동위권이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대통령 옆에 사랑하는 아내가 앉아 있는데, 그 부인이 옆에 있다고 해서 보고 저 여자를 추방해라 하지 않습니다. 동위권, 같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 부인이 아무리 일자무식이라고 하더라도, 선거연설도 할 줄 모른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앉은 자리 옆에 가서 앉는 것을 국민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동위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그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224-40~42,…1991.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