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절 실존하는 영계 (평화신경 해설 - 제10장 하나님의 절대평화이상 모델인 절대성 가정과 세계왕국) u

훈독왕 | 20200514164249

평화신경 해설 - 제10장 하나님의 절대평화이상 모델인 절대성 가정과 세계왕국




제6절 실존하는 영계

여러분, 인간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고, 마음 위에는 영인체가 있으며, 그 영인체가 들어가 살게 되는 영계(靈界)에는 물론, 육신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 어디든지 하나님은 실존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참사랑을 통해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될 때 완전한 사람이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완전한 사람이란 비록 작은 개체의 모습일지라도 전체 역사를 대표한 존재요, 또 미래의 모든 인연을 대신한 존재이기 때문에 천주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인간의 이런 천주적인 가치를 안다면 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을 앞에 모시고 따라가며 절대성을 완성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는 점이 확실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양심은 여러분의 모든 언행은 물론 생각까지도 감지하여 알고 있는 것입니다. 스승보다 먼저 알고, 부모보다 먼저 알고, 하나님보다도 먼저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스승 된 양심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살기만 하면 여러분의 영생은 절대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이중구조로 창조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형세계인 현상세계의 축소체로서 육신을 창조하시고, 무형세계의 대표요 주인으로 세우기 위해 영인체를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지상계에서 한 100년 쯤 살다가 육신의 기능이 다하면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동적으로 무형세계인 영계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계는 육신을 터로 하여 살고 있는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을 뿐이지 지상생활의 자동적이고 필연적인 연장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인간의 영원한 본향입니다. 영계는 이처럼 엄연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망상의 세계도 아니요, 상상의 세계도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선택권 밖에 있습니다. 좋다고 해서 가고, 싫다고 해서 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원하고 불변하신 분인 것처럼 당신이 창조하신 영계도 영원하고 불변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상계에서 육신을 쓰고 현상세계와 각종 관계를 맺어 가며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계에서도 인간은 영인체를 갖고 영계의 모든 현상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 존재입니다. (본문…177~178쪽)

<해 설>

1) 영인체가 들어가 사는 영계 

영인체도 몸뚱이가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영인체도 마음이 있고, 몸뚱이가 있는데 영인체의 마음과 같은 것이 영적인 세계입니다. 그 곳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영인체의 마음과 같은 것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과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마음은 하나님과 관계없습니다. 즉 하나님이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관할 수 없습니다. (91-143,…1977.2.6) 

영계는 사랑의 공기로 돼 있는데, 여러분의 영인체가 준비를 하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가면 숨을 못 쉽니다. 여기는 공기로 돼 있지만, 저 세계는 사랑의 세계입니다. 여러분의 영인체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러지 못하고 영계에 가면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265-326~327,…1994.12.1) 

참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가집니다. 그 자격을 지상에서 이뤄야 합니다. 영인체를 중심삼고 육신이 하나되는 과정에서 하나님 사랑의 접속점이 가정에서 이뤄져야 되는 것입니다. (298-310,…1999.1.17)

지상에 태어나기를 위해서 태어났으니 사랑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봉사생활을 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그렇게 지상생활을 하지 않고 영계에 가면, 레일의 폭이 달라집니다. 자기 멋대로 살다 가면 좁아집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살면, 그 레일이 좁아지는 것입니다. 넓고 크게 하늘나라의 레일에 맞게끔 지상에서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306-215,…1998.9.23)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는 무(無)의 심정권으로 어떻게 넘어가서 본래의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 아들딸의 입장에서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의 이상권을 상속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실체권으로서 살아가지 않으면, 영계의 모든 것이 자기 활동 무대가 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울타리가 있고 담이 있어서 넘어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그런 생활을 해야 됩니다. (362-269,…2001.12.13) 

2) 실존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속에도 있습니다. 하늘땅 어디든지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즉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기를 원할진대, 여러분이 바라보는 물건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니 그 물건을 내 것, 천지의 모든 존재물을 내 것으로 품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최고의 도(道)를 통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소유된 사람입니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 한 마리나 향기를 풍기는 꽃 한 포기를 보고도 영원을 노래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만물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8-182,…1959.12.13) 

하나님의 편재성(遍在性)을 어떻게 느끼느냐 하면, 공기를 하나님의 입김과 같이 느끼고, 태풍이 불어오거든 하나님이 세계를 위해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오면서 흘리시는 땀과 같이 느끼는 것입니다. 태양을 바라보거든 그 태양 빛이 우주 전체의 생명의 요인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태양으로부터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교본이고 교재로 전개시킨 것, 사랑하는 아들딸을 기쁘게 하기 위한 교재로 펼쳐 놓은 것이 자연입니다. 나뭇잎을 보고 자기 아들딸같이 여기고 혼자 중얼거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인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59-102~103,…1972.7.9) 

하나님이 없게 될 때는 우주가 다 빈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게 된다면, 우주는 꽉 찬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혼자 있더라도 하나님이 있는 줄 알게 될 때는 우주가 꽉 찹니다.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소부재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모르게 될 때는 모든 것이 빈 것입니다. (91-323~324,…1977.3.1) 

3) 진정한 인간의 가치 

나는 어떤 존재냐 하면 역사 이래 수많은 선조들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이 연결돼서 연면히 이어진 하나의 결실입니다. 그렇게 볼 때 인간의 사랑이 최고의 사랑이요, 인간의 사랑이 하나님이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시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무한한 가치의 존재입니다. (213-159,…1991.1.20) 

인간의 가치라는 것은 무한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욕심이 얼마나 큽니까! 욕심은 무한히 큰 것입니다. 그 욕심 보따리를 다 채우고 나서 “나 이제 아무것도 필요 없다.” 할 수 있는 자리가 참사랑의 자리입니다. 참사랑의 자리에 가면 “다 이루었다.”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 하면,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대상이라는 입장에 서게 될 때,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유한하게 만드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영원하시니까 사랑의 상대인 인간도 영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212-300,…1991.1.8) 

하나님의 파트너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으니까 아들딸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러면 뭘 하려고 만들었습니까? 사랑의 파트너로 만든 자녀를 자기 이상 아름다운 아들딸로 사랑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이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의 개념을 중심삼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파트너는 이래야 되고, 아들딸은 이래야 된다.”고 하는 사랑의 개념을 세워 놓고, 거기에 맞게끔 아담 해와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컨셉에 따라서 실체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높을 수 있는 사랑의 상대, 하나님보다 높을 수 있는 아들딸의 가치로 지음을 받은 고귀한 인간입니다. 아무리 못났지만 세계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우주에 제일 높은 자리가 있으면 그 자리까지 점령하고 싶어합니다. (228-55,…1992.3.3)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 동일한 가치와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서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도록 창조됐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렇게 최고의 자격과 가치를 지닌 존재인데 타락한 세계에 여러분 자신을 내버려둘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52-264,…1972.1.2) 

하나님이 인간 앞에 지어 준 최고의 걸작품이 아담이요, 해와였습니다. 해와에게 제일 귀한 것이 아담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도 더 가치 있게 만들었습니다. 또 아담 앞에 해와를 하나님이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321-159,…2000.4.22) 

4) 양심의 명령에 복종하라 

기도할 때 마음을 붙들고 기도해야 됩니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얼마나 못 했나?” 이겁니다. 마음을 뒤에 놓고 하나님을 암만 불러야 안 통합니다. 마음이 하나돼 가지고야 통하게 돼 있는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명령을 중심삼고 생각해야 됩니다. 언제든지 마음보고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부모한테 물어보는 대신 영원한 양심한테 물어보라는 겁니다.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습니다. 부모와 갈라질 수 있고 이별할 수도 있지만, 마음은 갈라질 수 없습 니다. 스승과 갈라질 수 있지만, 마음은 갈라질 수 없습니다. 주인과 갈라질 수 있지만, 마음은 갈라질 수 없습니다. 그 3대 주체사상을 모시고 사는 마음을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죄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부모를 무시하는 것이요, 스승을 무시하는 것이요, 우주의 주인인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306-225,…1998.9.23)

하나님의 그림자와 같은 양심을 얼마나 푸대접했습니까! 하나님을 울리고, 부모를 울리고, 스승을 울리고, 왕을 울린 것과 같은 입장에 선 몸뚱이를 품고 사랑하겠다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기도할 필요 없습니다. 마음을 붙들고 의논해야 됩니다.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해라 이겁니다. (306-226,…1998.9.23) 

타락하기 전의 양심에는 하나님의 모든 내외적인 가치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그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본래부터 양심은 부모보다도 앞서 있고, 양심은 스승보다 앞서 있고, 그다음에 양심은 하나님보다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든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여러분이 딴 것보고 물어보지 말고 양심에 물어봐라 이겁니다. 기도할 때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본심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귀한 것을 주었기 때문에 그 귀한 것과 하나돼야 합니다. 그 본심과 하나될 때는 자기 일신의 모든 것을 알게 돼 있는 것입니다. (307-216,…1998.11.21) 

양심은 못 속입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이놈의 자식아!” 하고 충고합니다. 하나님보다도 먼저 알게 돼 있습니다. 스승보다도, 부모보다도 먼저 알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걸 집어넣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구원섭리를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447-111,…2004.4.30) 

양심을 하나님같이 모시고, 구세주같이 모시고 사는 사람은 천하의 어디에 가든지 막힘이 없습니다. 하늘나라의 열두 진주문도 내가 문 앞에 가게 되면 자동 도어가 열리는 것처럼 열립니다. 10미터, 50미터, 100미터 앞에서 “어흠!” 하게 되면 호르륵, 호르륵 열리게 돼 있는것입니다. (449-191,…2004.ㅡ5.13) 

5) 영계는 지상생활의 연장 

왜 《영계의 실상과 지상생활》을 읽어 주느냐 하면 산 것이 그냥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뛰어 넘어갈 수 없습니다. 저나라에서 청산 짓기 위해서는 억천만년이 걸립니다. 잠깐 사는 세상에서 알고 살아 가지고 걸리지 않기 위해서 이런 것을 다 알아야 됩니다. (353-145,…2001.9.5) 

지상생활을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영계를 완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영인체가 가서 살 수 있는 곳이 영계인데 영인체가 지상에서 모델형을 이루지 않으면, 영과 육이 지상에서 사랑의 체험을 하지 않으면 저나라에 가서 호흡이 안 됩니다. 이 땅 위에서 부모의 젖을 먹고 자라면서 사랑을 받으면 그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을 느낍니다. 영계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인체가 가서 본래의 부모가 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사랑을 받으며 살아야 됩니다. 그러려면 이 땅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308-125,…1998.11.21) 

지상에서 영계의 내용을 알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맞춰서 갈 수 있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생각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직감의 세계가 실현되는 세계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모든 전부가 현실화됩니다. 옳은 생각이면, 그 모든 대상의 세계가 현실화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세계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는 것을 언제든지 기억하고 생활에서 하루라도 그대로 살겠다고 노력하면 길이 막히지 않습니다. 끝까지 참고 노력하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어렵더라도 끝까지 참고 그 길을 가려고 하면, 그 어려운 자리에서 넘겠다고 하는 생각이 영계에서는 그냥 그대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314-14,…1999.12.30) 

지상이 행복한 곳입니다. 지상에서 미완성된 채로 영원한 세계로 가면 영원히 미완성이 됩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완성되면, 결실된 열매가 창고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서 썩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심게 되면 싹이 나는 것입니다. 영생입니다. (372-209,…2002.3.17) 

6) 영원한 본향 

광대무변한 천국이 우리가 가는 고향입니다. 모든 완성의 본향입니다. 최종 정착지인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246-260,…1993.4.18) 

누구든지 《영계의 실상과 지상생활》을 훈독하는 내용을 잘 듣고, 또 《지상생활과 영계》의 내용을 잘 앎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본향 땅에 들어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의심했다가 영계에 가면, 그 의심을 풀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약시대에 뜻이 완성된 환경과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잘 알아 가지고 거기에 맞게끔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327-249~250,…2000.7.30) 

타락한 세계의 모든 걸 잊어버리더라도 이제부터 알아야 할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을 똑똑히 알고 영계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계는 영원한 본향 땅입니다. 영원한 본향의 나라입니다. 그 본향의 나라가 영계에서부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부터 이뤄져야 되는 것입니다. (398-145,…2002.12.9) 

내가 좋으면 어디든지 좋게 대해 주는 것입니다. 봄철이면 봄철의 기분에 맞게끔, 바다에 가면 바다의 기분에 맞게끔 대해 줍니다. 그러니까 천태만상의 환경이 다른데, 내 기분에 맞게 될 수 있으니까 변화무쌍한 자극과 신비로운 경지에 잠겨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사는 본궁의 세계요, 그 본궁은 그런 사랑이 충만한 곳이기 때문에 천태만상의 사랑의 묘미를 내가 주고받으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한번 관계를 맺으면 천년만년, 억만년 계속 해도 기쁨은 새롭게 계속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난 후에는 천년 만년의 역사를 다 이뤄서 한꺼번에 내게 갖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이뤄 가지고 갖다 주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하나님은 천년만년 언제든지 자기가 이상하는 이상의 것으로써 보급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이 나의 영원한 주체요, 그분이 내 아버지입니다. 내 아버지라는 것은 핏줄이 연결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양심과 모든 몸과 같은 것이 싸우지 않으니 나에게도 싸움이 없습니다. 그런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도 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330-147,…200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