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경 해설 - 제9장 하나님의 이상가정과 평화이상세계왕국 Ⅲ
제
4절 참사랑
그렇다면 참사랑이란 어떤 사랑입니까? 참사랑의 본질은 위함을 받겠다는 사랑이 아니고 남을 위해, 전체를 위해 먼저 베풀고 위해 주는 사랑입니다. 주고도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않고 끊임없이 베푸는 사랑입니다. 기쁨으로 주는 사랑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기쁨과 사랑의 심정입니다. 자식이 부모 앞에 효도하며 기쁨을 느끼는 그런 희생적 사랑입니다. 참사랑으로 맺어지면 영원히 같이 있어도 좋기만 하고, 우주는 물론 하나님까지도 끌면 따라오는 사랑입니다. 타락의 후예 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국경의 벽, 인종의 벽, 더 나아가서는 종교의 벽까지도 영원히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이 참사랑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의 주류 속성은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것이어서 누구나 이 참사랑을 실천궁행할 때 하나님과 동거동락하게 되며 동참권, 상속권까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국 들어가는 절대 필요조건이 바로 ‘위하는 삶’, 즉 참사랑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본문…148쪽)
<해 설>
1) 참사랑은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사랑
하나님의 참사랑은 투입할수록 커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사랑을 부정 받더라도 더 사랑하고, 투입하고도 더 투입해야 원수를 참사랑으로 자연굴복시키는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길을 걸어왔고 천지부모가 그런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기를 계속하는 사람이 중심자가 되고 전체 상속자가 되고 효자 중의 효자가 됩니다. 가정 안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 등 열 식구가 살더라도 가장 위하는 자가 가정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에서 애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릴수록 충신, 성인, 나아가 성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역사 이래 어떤 존재보다도 참사랑을 중심삼고 더욱 위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려 오셨고, 또 영원히 계속해서 잊고 투입하실 수 있기 때문에 위하는 자들의 왕이 되실 수 있고 조상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315-215,…2000.2.2)
원래 큰 것을 위해 투입하면, 하나님이 투입하고 잊어버린다고 그것이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기반이 주인을 아는 것입니다. 내 뒤를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오는데 더 커서 따라오는 것입니다. 상대를 결정해서 오는 것입니다. 상대를 결정해서 따라오니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18-145,…2000.3.5)
남을 위해 주고 또 주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시에 자체를 소모시키던 입장과 일치됩니다. 나를 투입한다는 것은 제2의 나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이 창조할 때 자신을 투입하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재창조역사는 탕감복귀노정이고, 탕감은 재창조역사를 통해 하기 때문에, 자신을 투입하는 데서만이 재창조가 벌어집니다. (82-241,…1976.1.31)
투입하고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데서 참사랑 논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위하는 데는 망하지 않습니다. 작은 데서 큰 것으로 해 가지고 큰 것이 그다음에는 어디로 가느냐 하면 안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204-107,… 1990.7.1)
하나님 자신이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한 것입니다. 복종이라는 것은 자기 자체의 의식까지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완전히 투입해서 잊어버려 가지고 더 투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순이 남아 있을 때는 봄이 되면 싹이 나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런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다 정지되고 없어졌지만, 순이 남아 있어 가지고 봄이 되면 다시 또 출발하겠다는 마음이 영원히 계속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327-304,…2000.7.30)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상대는 하나님보다도 높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사랑이 요구하는 욕망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선생님보다도 높아지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투입하고도 잊어버립니다. 백을 투입하고 기억하면 거기서 멈추게 됩니다. 210억 광년이나 되는 이 우주가 생겨날 수 없습니다.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고 이렇게 나왔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366-122,…2002.1.14)
창조 이전에 하나님이 그렇게 결정한 것입니다. 절대신앙·절대사 랑·절대복종! 절대라고 하는 것에는 자기 관념이라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관념이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됩니다. 백을 투입하고 그 백을 기억하고 있으면 백 이상의 세계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 방대한 세계가 생길 때, 지구의 수억 천만 배가 되는 대우주가 생길 때를 생각해봅시다. 뭐 지구만 만들어 놓고 좋다고 춤을 추었으면 큰일 났을 것입니다. 이 대우주, 지구의 수억 천만 배가 되는 대우주를 어떻게 창조했겠어요? 뭐 자꾸자꾸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린 것입니다. 수천만 년의 역사를 따라서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려 나왔습니다. 천만년 변하더라도 아들딸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혁명할 수 없습니다. (373-252,…2002.4.1)
2) 참사랑은 위하는 사랑
이 세계를 창조할 때 하나님이 꽃을 만들게 될 때 꽃 하나를 앞으로의 아름다운 사랑의 상대를 상상하면서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투입하는데 투입하고 잊어버립니다. 미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물의 지극히 작은 것도 사랑하는 아들딸의 피살이 되고 자기 몸뚱이 피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이 막연한 말이 아니에요. 우주 창조의 전부터 모래 한 알도 인간에게 앞으로 있어서 사랑의 실체 될 수 있는 영양소, 피살이 되고 뼈가 되고 골수가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 위에 지었다는 것입니다. (458-197,…2004.7.9)
하나님까지도 참사랑에는 절대 복종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평화의 논리적 기원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고 하지만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참사랑 앞에 하나님도 절대 복종한다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참사랑의 상대 앞에 절대복종해야 됩니다. 사랑은 상대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주를 창조하기 위한 하나의 모델이 되어 있습니다. (287-77,…1997.8.31)
하나님은 독재자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인간을 위해 투입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 앞에 있는 것은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만년 하나님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위하는 천리의 존재세계 앞에 자기 스스로 존재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위하는 데서만 동서양을 통할 수 있고 고금을 통할 수 있습니다. (187-89,…1989.1.6)
사랑은 자기를 위하는 데에 오지 않습니다. 참사랑은 위해서 살려고 하는 데에만 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은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만큼 투입하고 아들딸을 사랑하고는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백만큼 투입해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계성이 없습니다. 360도를 돌고도 더 높은 데를 돌려고 합니다. 무한한 사랑을 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그런 주인 양반이 이상세계의 센터로 존속할 수 있는 주체자가 되기 때문에, 그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보다 위해야 됩니다. 보다 위하는 자는 중심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350-170,…2001.8.5)
참사랑은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보다 위하는 사람이 중심존재가 됩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자기 생명을 바쳐서라도 위하겠다는 데에서 참사랑이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289-294,…1998.2.1)
우주에 하늘 것이나 땅에서 표제가 뭐냐 하면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인데, 표제 가운데 중심이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것은 절대 믿음을 찾지 않고는, 절대 믿음 위에 세우지 않고는 사랑이 없고, 또 사랑이란 것은 절대복종 위에 세우지 않고는 사랑의 실체가 영원히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자신도 사랑의 상대를 찾기 위해서는 절대 위하는 데서부터, 절대 사랑하는 데서, 절대 투입하는 데서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470-173,…2004.9.27)
3) 부모의 참사랑
참사랑은 위하는 사랑인데 주고는 그냥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준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또한 아무리 부어 주어도 지치질 않습니다. 칠십이 된 아들보고 ‘얘야! 차 조심해라’ 해도 어색하지 않고, 몇십년 동안 그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하더라도 싫증나거나 지치는 법이 없습니다. 타락한 세상의 부모가 이렇거늘 하물며 본질세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받을 때 지칠 리가 없습니다. (143-280,…1986.3.20)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데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권한을 가지고 언제나 당당한 자리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59-298,…1972.7.30)
부모는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자식이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부모는 변하지 않는 사랑의 주인입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이 천태만태로 변해 별의별 짓을 다 해도 자식을 위하는 마음만은 변함없습니다. 때문에 변하지 않는 부모의 사랑이 귀한 것입니다. (141-242,…1986.2.26)
부모의 사랑은 변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혁명하는 것은 역사시대에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혁명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혁명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히 존속해야 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 그러한 사랑의 주체 되는 부모가 나를 절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유일적으로 필요로 하고, 불변적으로 필요로 하고, 영원히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74-19,…1974.11.10)
나는 복중에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습니다. 내가 사랑의 본질로 말미암아 복중에 잉태된 그 시간에서부터 부모의 사랑과 모든 관심이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태어나, 사랑에서 생명의 인연을 이어받아 가지고, 사랑을 받으면서 커 가지고 상대를 맞을 수 있는 때가 되면 상대를 취하는 겁니다. (127-14,…1983.5.1)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대상이 없이는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대상이 없이는 이상도 없는 것입니다. 대상이 없이는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것들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대상을 통하여서 온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사랑과 이상이 대상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생명보다 귀한 것이 대상을 통해 오기 때문에, 그 귀한 것을 받기 위해서는 겸손히 그를 위해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머리 숙여서 위하라는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위하는 데 있어서 영원이 있고, 위하는 데 있어서 번창이 있고, 위하는 데 있어서 중심이 나타나고, 위하는 데 있어서 평화와 통일의 기원이 벌어지고, 위하는 데 있어서 참된 사랑과 이상이 형성되는 것을 아시는 지혜의 왕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위해 존재하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77-195,…1975.4.6)
4) 절대·유일·불변·영원한 사랑
참사랑이란 영원히 계속되는 사랑입니다. 봄에도 그 사랑, 여름에도 그 사랑, 가을에도 그 사랑, 겨울에도 그 사랑, 소년시대에도 그 사랑, 장년시대에도 그 사랑, 노년시대에도 그 사랑, 영원한 세계인 영계에 가서도 그 사랑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194-303,…1989.10.30)
하나님의 사랑이 연결되면 영계와 육계의 어디든지 연결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공명하게 되면 영계까지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계가 여러분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모릅니다. 만약 타락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됐을 것입니다. 완전히 몸 마음이 하나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절대·유일·불변·영원의 인격을 갖추었을 것입니다. (306-91,…1998.9.20)
먹고 자고, 가고 오고, 좋고 나쁜 모든 전부는 사랑 때문입니다. 무슨 사랑이냐 하면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또 유일한 사랑입니다. 그다음에는 불변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사랑입니다. 왜 그런 사랑을 해야 되고, 사랑의 속성이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우리의 본체 되시는 하나님의 속성이 절대·유일·불변·영원이기 때문입니다. 절대·유일·영원·불변한 속성이 왜 생겨났느냐, 하나님이 왜 생겨났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은 사랑입니다. (306-267,…1998.10.1)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일까요? 절대적 사랑을 원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적 사랑, 유일한 사랑, 불변의 사랑, 영원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절대·유일·불변·영원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279-246~247,…1996.9.15)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창조했습니다. 사랑 때문에 창조했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존재세계 앞에 나타날 때 사랑의 본질로 나타납니다. (86-82~83,…1976.3.7)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게 될 때, 얼마만큼 주고 싶어 하겠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이만큼이면 됐다 하는 한계를 두고 주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무한정으로 주고자 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몽땅 주고도 너로 말미암아 네 안에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게 하는 본질이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 들어가서는 종살이를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의 밥상 위에 올라와 똥을 싸도 그것을 바라보고 기쁨을 느낍니다. 사랑은 법을 초월합니다. (36-77,…1970.11.15)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으로서 아까울 것이 없고, 갖추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만 그 전부의 가치보다도 귀하게 내세우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사랑 외에는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 이외에는 필요 없다 이것입니다. (108-225,…1980.10.16)
아무리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상대를 통하지 않으면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은 천주의 모든 것, 생명의 실체를 주관하는 주체입니다. 영원, 절대, 유일, 불변한 주체인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상대를 통하지 않으면 그 사랑이 나에게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312-332,…1999.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