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경 해설 - 제7장 하나님의 이상가정과 평화이상세계왕국 Ⅱ
제2절 하나님의 창조목적
(용량 문제로 본문은 훈독하지 않았습니다.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존경하는 세계 평화지도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궁극적 목적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참사랑을 중심한 이상가정의 완성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상가정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번째 인간은 남성격을 대표한 모델인 아담과, 여성격을 대표한 모델인 해와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참사랑의 표제가 되는 인격자와 주인이 되는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요? 한마디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 수 있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확보하는 모델 평화이상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한 가족을 이루어 영원히 기쁨을 느끼며 사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델 평화이상가정을 이루시고자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여 인류의 첫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당신 전체를 완전 투입하시어 참사랑과 참생명과 참혈통이 연결된 아들과 딸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뜻대로 개인완성, 즉 인격완성을 이루어 하나님의 축복 속에 부부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완전일체를 이루었더라면,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임재하실 수 있는 인연이 결정되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들의 자녀에게도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사랑의 기준이 연결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완성한 아담과 해와의 결혼은 하나님 자신의 결혼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자 아담이요, 해와이자 하나님이 되어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몸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자리에 안착하시어, 더불어 유형 무형 두 세계에서 인류의 참부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본문…102~103쪽)
<해 설>
1) 아담 해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내가 생겨나려면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없으면 영영 마지막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닮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있는 동시에 상대가 있어야 하고, 상대가 있는 동시에 아들딸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자 앞에는 어머니 아버지, 남편, 오빠가 있어야 됩니다. 아담을 해와보다 먼저 지었으니 아담이 오빠였습니다. 그리고 남자 앞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어야 하고, 아내가 있어야 하고, 누이동생이 있어야 합니다. 아담에게 누나는 없었습니다. (51-172,…1971.11.21)
인간이 태어날 때, 신랑 신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딸로 태어나서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부모는 아들딸에게 지식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교육을 해야 하고,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어머니 아버지이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아버지이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어머니이고,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사랑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봐도, 아담 해와를 중심으로 봐도 전부 다 사위기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도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사랑의 교육은 인간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모이셨기 때문에 아담 해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의 가치 기준의 설정은 하나님의 사랑의 교육으로부터 가능했습니다. 아들딸이 받는 사랑의 교육은 아버지가 아는 모든 가치의 기준을 헤아릴 수 있을 때까지 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히 성숙할 때까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기록은 성서에 없고 타락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만일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했던 아담 해와에게 사랑의 교육 기준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이상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교육 기준은 이 땅에서 교육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서는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교육을 받고 살다 가야 합니다. (51-172~173,…1971.11.21)
아담 해와는 하나님과 부모와 자식 간이었으므로 그 부모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따라가야 했습니다. 부모가 가게 되면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따라가야 했습니다. 부모가 산에 오르면 산으로 따라가고, 골짜기로 내려가면 골짜기로 따라가고, 굴속으로 들어가면 굴속으로 따라가야 했습니다. 언제나 부모와 같이 있어야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들과 떨어져야 한다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보고 싶어합니다. 절대적인 분이기에 좋아해도 절대적으로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고, 어디 있겠으면 있고 말겠으면 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51-173,…1971.11.21)
2) 자연은 아담 해와를 교육할 수 있는 산 교과서
모든 만물은 서로 사랑을 합니다. 동물을 보나, 곤충을 보나, 식물을 보나, 광물세계를 보나 모두 다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상대를 중심삼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날고 기고 합니다. 아담과 해와는 그런 만물세계를 바라보면서 ‘저들이 뭘 하나?’ 하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자연은 아담 해와를 교육할 수 있었던 박물관이요, 산 교과서였습니다. 아담 해와는 자연과 벗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남자였기 때문에 해와보다 활동 범위가 넓었습니다. 그래서 돌아다니면서 동물들이 사는 것을 보고 재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암컷 수컷이 서로 하나되어서 새끼를 낳는 것 등을 보면서 배웠습니다. 그런 것들이 다 교육의 재료였습니다. 동산에서 갖가지의 동물들이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제각기 소리치던 것은 상대와 주고받음으로써 이루어졌던 음악, 창조의 이상적인 오케스트라였습니다. 맨 처음에는 철없이 그것을 보고 좋아만 했는데, 철이 들면서 알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큼으로써 환경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던 그때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자랄 때까지의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자연적인 이치였습니다. 그런데 동산의 동물들은 전부 다 아담이 가면 아담을 따랐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 모든 걸 연결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사랑에 연결되기 위해서 사람을 중심하고 따르게 되어 있었던 동산이었습니다. (134-194~195,…1985.7.20)
사랑은 개성을 완성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원리로 보면 개성을 완성한 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춘기를 거쳐 이성을 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 천지의 조화에 일치하고 통과할 수 있는 책임을 짊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의 인연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었느냐? 천지의 모든 만물을 통일시킬 수 있는 자리에서의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주체적인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주체적이고 필연적인 사랑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필연적인 사랑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26-151~152,…1969.10.25)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본연의 사랑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서로 ‘하나님이 가는 데 나도 데려가소! 나는 당신 없이는 못 살아요.’ 하면서 웃을 때도 입만 빵긋 웃는 것이 아니라 마주 보고 크게 소리를 내고 팔다리까지 허우적거리면서 세포 하나하나까지 몽땅 웃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좋았지 입만 웃고 몸은 가만히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32-253,…1970.7.19)
사랑도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아담 해와가 둘이 부딪쳤다고 생각 해 봅시다. 세계에서 제일 큰 소리는 벼락 치는 소리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밝은 것은 번갯불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소리요, 사랑의 빛입니다. 그 자리에 가면 눈을 감아야 되고, 귀를 막아야 되고, 다 잊어버려야 됩니다. 신경이 마비돼야 합니다. 보고 들었다가는 큰일납니다. 사랑에 도취되면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보는 것도 잊어버립니다. 본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런 사랑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24시간 그 기분을 빼 버리려야 빼 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눈이나 피부뿐만 아니라 어디에나 잠재해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거기에 취해 있었을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좋았고, 보지 않아도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너무 좋아서 입을 벌리고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면 그런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 이상입니다. 그런 부부가 있다면 둘이 사랑할 때 비둘기나 닭이 사랑하는 소리 이상의 소리를 낼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넋을 잃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사랑으로 한 묶음이 되었다면 여한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남자나 여자가 그 이상 원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되면 그 이상 원할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우주가 동화됩니다. 누가 거기에서 끌어내릴 수 없고 타락할 수도 없습니다. 그 세계가 하나님의 직접주관권입니다. 그 세계는 시작임과 동시에 영원입니다. 그것은 갈라질 수 없고 언제나 통일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과 인간이 좋아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의 최고봉은 선생님이 말한 그런 사랑 이상 없습니다. (92-193,…1977.4.10)
사랑할 때도 백 퍼센트 사랑해야 되고, 웃을 때도 백 퍼센트 웃어야 됩니다. 남자가 백 퍼센트 웃는데, 여자는 살짝 웃으면 안 됩니다. 남자가 웃을 때 몸과 마음을 다해서 웃으면, 여자도 그렇게 웃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천지가 다 웃으면서 거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서 사랑해야 됩니다. (32-253,…1970.7.19)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언제, 어느 곳, 어떤 자리, 어떤 환경에서 합하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신경기관, 육체의 모든 감각기관의 신경계가 합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모든 정서적인 면, 이상적인 모든 것이 폭발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인체와 육신의 세포나 모든 감정이 완전히 백 퍼센트 합해질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참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 완성이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이 골고루 완성해서 성숙한 다음에 이루어집니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안테나는 사랑의 안테나입니다. 인간에게 사랑의 안테나는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관입니다. 전파는 오로지 안테나를 통해서 흐르는데, 그 안테나를 통해서 원형을 이룹니다. 인간세계의 안테나에 하나님의 수직 사랑이 접선되는 날에는 온 우주를 포괄하고 남을 수 있는 권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 세계와 영계에 우레 소리가 나고 번개가 치게 됩니다. 아담 해와가 사랑하는 그 시간에는 우주 전체가 충격을 받습니다. 벼락 치는 것과 같은 그런 힘의 충격을 받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사랑과 통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만물은 아담 해와가 사는 동네 문전에 모입니다. 큰 놈 작은 놈 할 것 없이 전부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아담 해와가 사랑할 때, 하나님은 우레 소리가 나니까 눈을 뜨고는 ‘아, 때가 되었구나! 이거 벼락을 쳐야 되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의 사랑이 종적인 사랑에 접근할 때는 ‘우르릉, 우르릉!’ 하고 벼락소리가 납니다. 남자 여자가 서로 만질 때는 진동이 생기고 전기가 옵니다. 여자 남자가 조금만 툭 닿아도 그 여운이 좋습니다. 그러니 반대로 돌아섰던 것이 자기도 모르게 하나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사랑하는 그 자리에는 폭풍과 번개가 생깁니다. 모든 세포가 다 들을 수 있는 그런 큰 소리가 나게끔 하는 그런 힘의 작용이 사랑입니다. 그 힘은 아담 해와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폭발시킵니다. 완전히 꽉 찬다는 것입니다. ‘이젠 마음을 놓겠다. 이젠 됐다.’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34-197~199,…1985.7.20)
그럴 때 하나님은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움직이는 대로 우주가 전부 따라 움직이니 이 우주는 미치광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을 잃고 움직이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주가 “하나님, 당신은 맨 가운데 들어가서 앉아 있으소!” 하고 항의해서 하나님을 맨 가운데 있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무리 움직이더라도 좋고 어떻게 운동하더라도 좋은 고착된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자리를 잡고 그 자리에서 상대와 영원히 주고 받으면서 지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음,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아담 해와가 딱 하나된 그 가운데 계셔야 했습니다. 그것이 생명의 원천이었습니다. 모든 씨는 그것을 닮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아들딸을 낳고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134-199~200,…1985.7.20)
남자의 생식기와 여자의 생식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극입니다. 플러스극과 마이너스극입니다. 전지의 충전점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충전할 수 없습니다. 동물은 일년에 한 번씩만 할 수 있지만, 인간은 그 기관을 통해서 매일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채울 수 있습니다. 남자의 생식기와 여자의 생식기는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직결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결혼해서 사랑할 때 동산에 있는 동물들을 보고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성스러운 사랑의 공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나를 따라와라! 나는 성스러운 공연의 하나의 금자탑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랑의 주인이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134-200,…1985.7.20)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가른 것은 우주의 대표로서 우주를 평면적으로 결합시키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 아담 해와로 만드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은 종적인 선을 연결할 수 있는 평면적인 중심을 만들어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힘이 얼마나 세냐 할 때 우주와도 바꿀 수 없고, 내 재산을 팔고 내 전부를 버리더라도 그것만은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 힘을 발견하여 그 이상의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 어마어마한 내용을 알자마자 완전히 포로가 되고 맙니다. 생명을 다하고 모든 것을 다한 것과도 바꾸고 남을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사랑의 자리입니다. 이 우주에 기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남자 앞에 여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상의 기적은 없습니다. 또 여자 앞에 남자가 있다는 사실 이상의 기적은 없습니다. 남자에게 있는 기관은 남자의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서로 바뀌어 있습니다. 남자에게 있는 기관의 주인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여자에게 있는 기관의 주인도 여자가 아니라 남자입니다. 주인이 바뀌어 있습니다. (134-200~201,…1985.7.20)
하나님한테 아담은 자기 중의 자기요, 미래의 이상적인 사랑 중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의 몸이었습니다. 또한 해와는 하나님의 부인이요, 하나님의 몸이었습니다. 이런 말은 처음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하나님의 몸에 상대가 되는 영적인 상대요, 해와는 육적인 상대였습니다. 그러니 아담 해와가 부부가 되어 사랑했다면 하나님하고 사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지극히 신성한 것입니다. 세상 천지에 신성의 최고 왕궁과 같은 것이 사랑이요, 결혼입니다. 거기에서 태어나는 아들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몸이었으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결혼식은 아담의 결혼식인 동시에 하나님의 결혼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횡적으로 보면 여자 같고, 종적으로 보면 남자 같습니다. 하나님은 안팎을 갖춘 분입니다. (48-228~230,…1971.9.19)
해와는 아담의 부인이었던 동시에 하나님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사람은 마음과 몸이 있습니다. 아내라면 몸의 아내요, 마음의 아내입니다. 몸 마음이 맞아야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부끼리 “당신 나를 사랑하오?” 하는 얘기를 곧잘 합니다. 얌전하게 생긴 사내일수록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더 잘합니다. 부인도 시집가서 한 반년만 지나면 남편에게 “당신, 나를 진짜 사랑하오?” 하고 묻습니다. 남편이 “사랑하고 말고!” 하면, “마음은 딴 데 두고 말로만 사랑하지요?” 하고 확인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아니야, 아니야!” 하고 자신 있게 하지 않고 “아니야.” 하고 작은 소리로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절대로 아니야!” 해야 합니다. “진짜 마음을 몽땅 다 바쳐 사랑해? 천년만년 사랑해?” 이렇게 묻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입니다. 몸 마음이 일체가 되어서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48-232~233,…1971.9.19)
해와는 아담의 부인도 될 수 있었던 동시에 하나님의 부인도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해와가 “아담이여, 당신의 몸은 나를 사랑하고 마음은 거룩한 하나님을 동참시켜서는 안 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이니까 한꺼번에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되었으면 아담과 해와를 가를 자가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젊은 남녀들도 사랑을 위해서 죽는다, 산다 하면서 야단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사랑도 그러니까 하나님과 인간이 완전히 하나 되어 인연을 맺으면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는 한 절대 옮겨지지 않습니다. 절대적입니다. 거기에서 태어난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참부모의 자녀입니다. 여기에서 참부모가 나옵니다. 참부모는 하나님을 빼놓고는 안 나옵니다. (48-233,…1971.9.19)
인간조상 아담 해와에게 제일 기쁜 날은 결혼하는 날이었을 것입니다. 주체적인 입장에서 전체 앞에 기뻐할 수 있었던 날이 결혼한 날이었습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셨겠지만, 아담 해와가 기뻐했을 날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녀 총각들에게 희망의 날이 있다면, 그 날은 석사나 박사학위를 받는 날이 아니라 결혼하는 날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를 보면 결혼하기 전에 데이트를 하고 서로 관계를 맺고 별의별 난장판을 다 벌이다가 결혼합니다. 본래의 아담 해와에게 그런 현상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남자는 이 여자, 이 여자는 이 남자라고 하는 식으로 여러 사람들을 상대해 보고 거기서 좋은 사람을 고르는 그런 짓을 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엔 딱 한 남자와 한 여자 밖에 없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이 인간조상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었던 사랑은 일대일의 사랑이었습니다. (80-327~328,…1975.11.3)
아담 해와가 자라면서 ‘장래에 우리 결혼하자!’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모르고 자랐습니다. 하나님이 ‘너희들이 자라서 이다음에 이렇게 결혼한다.’ 하고 설명해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 성숙하면 자연히 알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어떻다고 교육을 안 해도 자연히 알게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동물이나 곤충도 성숙해서 번식해야 될 때가 되면 반드시 자기의 상대를 찾아서 서로 사랑의 관계를 맺어 번식하는 것과 같이 인간도 그렇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됩니다. 아담 해와가 성숙하여 자연히 서로 상대적인 관계를 알게 되었으면, 그때서야 하나님도 기뻐하면서 결혼식을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도 기뻐했을 것입니다. (80-328,…1975.11.3)
그 아들딸이 하나되는 날에는 장차 하나님의 가정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후손이 생겨나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온 세계가 하나님의 통치권이 될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희망의 첫출발이 아담 해와의 결혼식부터라고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생각지 않으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담 해와의 결혼식 날 그들이 기뻐했으면 하나님도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날 아담 해와가 진짜 하나되어서 기쁨을 느꼈다면, 하나님도 같은 입장에서 기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가운데 제일 기쁜 날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가 사랑의 뜻을 이룰 수 있었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그 결혼식 날은 천사에게도 좋은 날이요, 피조만물에게도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가 사랑으로 재미있게 생활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은 더더욱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 아담 해와가 부처끼리 청춘시대로부터 중년시대와 노년시대를 거쳐서 죽을 때까지 사랑하면서 살았다면 그 기간은 하나님도 같이 즐거우셨던 기간이요, 기쁜 기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랬으면 피조세계의 주인인 아담 해와가 기뻐하니 모든 만물도 기뻐하고, 아담 해와가 기뻐하니 하나님도 기뻐하고, 또 전체의 주인인 하나님이 기뻐하니 온 피조세계의 만물도 전부 다 기쁨의 세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80-328~329,…1975.11.3)
3) 천주·천지·천지인부모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로 계시고, 격위에서는 남성격 주체로 계십니다. 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모델의 하나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남성격 아담 몸뚱이, 실체를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실체를 쓰고 실체 아들딸을 낳아야 됩니다. 아들딸이 되고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무형의 하나님과 실체의 하나님, 영적 하나님과 육적 하나님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된 사람의 씨를 남겨야 됩니다. 그것이 참부모가 안착할 수 있는 기반이기 때문에 절대가정이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가정 절대주의, 참부모 가정 절대주의, 참천지부모 아담 완성한 그 자리를 꿰어차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천주부모도 꿰어차는 것입니다. 천지인 안착 가정에는 3대 주체, 천주·천지·천지인부모가 안착하는 것입니다. 천주가 부모의 자리라면, 땅은 천주를 가르치는 스승의 자리입니다.
천지인의 자리는 비로소 왕권을 대표한 사람세계의 왕권 전통이 서는 것입니다. 천주는 부모를 상징하고, 천지는 스승을 상징합니다.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아담을 따라가야 가정이상이 이뤄지지 하나님을 따라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나님,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있어야 됩니다. (455-103,…2004.6.22)
아담의 아들인 동시에 하나님의 손자, 3대가 비로소 하나되어 가지고 천주·천지의 두 부모를 합한 실체를 가진 인간적인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천주·천지·천지인부모, 맨 나중이 뭐냐 하면 인격적인 신, 인격적으로 완성한 아담입니다.
영적인 기준에서 완성한 아담의 자리, 아담과 같은 자리에서 배 가지고 출산한 것이 아담 해와입니다. 아담 해와의 부모로서 아담 해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느끼고 만지고 볼 수 있는 자리에서 부자지관계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느끼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담 해와도 보이지 않는 아들딸을 보일 수 있는 아들딸로 느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아담을 지을 수 있었던 사랑을 가지고 합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실체 인간을 중심삼고 천주가 결합하고, 실체 인간을 중심삼고 보이는 실체세계가 결합해 가지고 3대권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이 제1창조주, 아담 해와가 제2창조주, 아담 해와의 아들딸이 제3창조주가 돼야만 소생·장성·완성의 3단계를 거쳐 가지고 1대· 2대·3대끼리 결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천지·천지인부모의 가정으로서 안식해 정착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459-137~138,…2004.7.12)
천주천지인 부모입니다.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부모가 돼야 합니다. 신의 부모가 아닙니다. 또 인간은 신인합덕(神人合德)해 가지고 하나님 대신 체를 입은 신과 실체, 보이는 신과 보이는 실체, 마음적 하나님과 보이는 실체, 아담 해와 완성한 실체가 돼야 합니다. 하나님도 체를 입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천주부모와 천지부모를 그냥 그대로 이어받 아 가지고 영적인 싸움에서 이겨 일치하기 위한 복귀 과정을 거쳐 천주·천지부모가 됩니다. 천지인부모, 저 나라에 가게 되면, 지금까지 하나님의 체가 안 나타납니다.
체를 입은 만상세계의 어버이가 되려면 체를 가져야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형의 신으로 나타나지만, 그 바른쪽에 참부모의 얼굴이 나타나 가지고 불을 뿜듯이 사랑의 마음을 중심하고 지상에 있어서 죄의 담을 헐고 완성한 가정이 될 수 있게끔 교육하는 것입니다. 그 교육을 받아 가지고 거룩한 영인체, 하나님 대신 광채나는 생명체가 되는 것입니다. (436-136,…20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