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원본 436쪽 (재림주님 친필 원리원본 필사본)

훈독왕 | 20220930071609

원리원본 436쪽 (재림주님 친필 원리원본 필사본)

*유실(423-444쪽)된 진본을 구할 수 없어서 김정섭님의 필사본으로 대체함, 쪽수는 작성자가 임의로 나누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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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儒敎的 思想은 外政下에 있스면서도 그 思想을 세웨 나온바는 事實이다. 그리하여 外政 以後에 新文明 文化世界를 바라보아 新生을 하여 出發된 時代를 當하여서도 自己들이 遺傳하여 崇拜하든 孔孟의 思想을 中心한 道를 中心하고 高尙한 道德心을 가지고 나온바다. 그러면서 新時代를 當하여서 韓國의 立場은 壓政을 當하니 自然的 因習思想이 濃厚한 儒敎的 思想은 漸次로 刺戟받아 減少하여 나오는 方向으로 向하게 되였다. 그러면서 儒敎的 思想을 가진 人士들은 그 時代에 발라는 바는 다시 國土復歸를 希望하여 나오는 中에 韓國에 대한 豫言書로서 나타나 있는 鄭鑑錄을 硏究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外政을 對하여서 自己들의 態度를 定하고 韓國이 復歸되어 全世界의 中心國으로 된다고 알려주는 鄭鑑錄을 한 中心点으로 하여 나오게 되였다. 이러케 韓國民族은 儒敎를 崇拜하는 知識層에 屬하는 者들은 大多數가 이 鄭鑑錄을 中心으로 하여서 國土復歸와 同時에 韓國의 한 理想境을 論하면서 至今까지 나오고 있는 바는 事實이다. 그러니 이 豫言書는 果然 時代的으로 모두가 마저나왔다는 例에는 至今 韓國全民族을 말하면서 그 豫言書를 많이 崇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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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儒敎的 思想은 外政下에 있으면서도 그 思想을 세워 나온 바는 事實이다. 그리하여 外政 以後에 新文明 文化世界를 바라보아 新生을 하여 出發된 時代를 當하여서도 自己들이 遺傳하여 崇拜하던 孔孟의 思想을 中心한 道를 中心하고 高尙한 道德心을 가지고 나온 바다. 그러면서 新時代를 當하여서 韓國의 立場은 壓政을 當하니 自然的 因習思想이 濃厚한 儒敎的 思想은 漸次로 刺戟받아 減少하여 나오는 方向으로 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儒敎的 思想을 가진 人士들은 그 時代에 바라는 바는 다시 國土復歸를 希望하여 나오는 中에 韓國에 대한 豫言書로서 나타나 있는 鄭鑑錄을 硏究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外政을 對하여서 自己들의 態度를 定하고 韓國이 復歸되어 全世界의 中心國으로 된다고 알려주는 鄭鑑錄을 한 中心点으로 하여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韓國民族은 儒敎를 崇拜하는 知識層에 屬하는 者들은 大多數가 이 鄭鑑錄을 中心으로 하여서 國土 復歸와 同時에 韓國의 한 理想境을 論하면서 至今까지 나오고 있는 바는 事實이다. 그러니 이 豫言書는 果然 時代的으로 모두가 맞아나왔다는 例는 至今 韓國 全民族을 말하면서 그 豫言書를 많이 崇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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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교적 사상은 외정하(外政下)에 있으면서도 그 사상을 세워 나온 바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외정 이후에 신문명 문화세계를 바라보아 신생을 하여 출발된 시대를 당하여서도 자기들이 귀전하여 숭배하던 공맹(孔孟)의 사상을 중심한 도를 중심하고 고상한 도덕심을 가지고 나온 바다. 그러면서 신시대를 당하여서 한국의 입장은 압정(壓政)을 당하니 자연적 인습사상이 농후한 유교적 사상은 점차로 자극받아 감소하여 나오는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유교적 사상을 가진 인사들은 그 시대에 바라는 바는 다시 국토복귀를 희망하여 나오는 중에 한국에 대한 예언서로서 나타나 있는 정감록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외정을 대하여서 자기들의 태도를 정하고 한국이 복귀되어 전세계의 중심국으로 된다고 알려주는 정감록을 한 중심점으로 하여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한국민족은 유교를 숭배하는 지식층에 속하는 자들은 대다수가 이 정감록을 중심으로 하여서 국토 복귀와 동시에 한국의 한 이상경을 논하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바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 예언서는 과연 시대적으로 모두가 맞아나왔다는 예()는 지금 한국 전민족을 말하면서 그 예언서를 많이 숭상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