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十日을 復帰하고자 한 摂理路程의 根本 意義 (원리원본 371-3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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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十日 復帰코저한 摂理路程의 根本意義
人間世界에 해와로 因하여 墮落이 始作하여지니 其 時부터 人間世界은 非原理存在에 屬하여 나와오는 反面에 하나님은 原理的復帰로서 態勢를 取하여지개 되였다. 하나님을 中心하고 原理的으로 直系의 血代은 至今까지 摂理에 한 所望으로 남게되고 其直系的血系은 非原的으로 始作한바는 事実이다. 이런 根本 뜻를 다시금 찾저 根本血系를 始作하는 겄이 하나님의 創造本意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墮落된 人間일망정 抛棄하지 못하고 原理的復帰原則를 바라보면서 至今까지 繼續되는 厂史를 본 바를 論한바다. 하나님의 아담 해와의 子中 가인과 아벨에 対한 祭物받는 根本 뜻도 알 줄안다. 가인은 사탄 初血의 表示者요 아벨은 아담의니 종的으로 해와 対한 表示的 者이매 根本 하나님의 찾을 수 있는 者임으로 하나님은 다시금 찾고저 할 적에 첮 生産者보담 다음者 아벨을 사랑的으로 対한 原因은 알 바이다. 聖經에도 하나님의 아벨 祭物받게되는 理由는 未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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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아나서 있다. 그겄은 其時代的으로 몬츰 알 수 업는 原理復帰코저하는 厂史的 뜻에 成事를 볼 바가 되지 못함으로 至今까지 未知로 되였다. 아담 해와 中心하고 찾고저 하나님은 하지 못한바도 非原理存在가 먼츰 한 主人格相対으로 세었끼에 한主人相対로 原理로된 創造的原理가 있끼에 아담 해와로 因한 復帰못하고 가인과 아벨로세 二性分立를 보와 順從과 不順從를 作定케 하는 表定物이 卽 아담 두 아달 祭物인바다. 웨 가인祭物 안받은 바는 사탄的 生産血系에 結実存在였슴으로 가인祭物 보담 아벨祭物를 받음이였다. 아벨이 더 誠心 다 하였다는 바는 聖經에도 업는 바이다. 이 根本的原理가 이런 原理로 되었있는 原理라는 바를 알게 될 대에 根本墮落에 根本에 対하여 내 発表가 正論임을 알바다. 가인도 아벨 対한 反擊이 업서스면은 다시금 깁분復帰로 될 바이였스나 하날이 뜻 아지 못하고 하날 対하는 反擊이 始作이 있스니 하날 뜻 破壞를 始作하게하는 基源奌을 始作한바이다. 萬一 가인도 아벨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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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어 들었스면은 하나님은 사탄에 所有物이란 分立를 防止하여슬 겄이였다. 그런 立場에 서 있는 가인 한 自体의 行動이야 人間에 第一 슬품에 始作이 基奌를 짓게 되였다. 그로 因하여 아벨 죽이니 하나님은 아벨代身 셌을 주웨서 摂理를 다시금 세우고저 하였다. 셌를 주워서 厂史를 經過하는 途中에 셌 子孫亦是 하나님에 뜻를 알지 못하고 가인子孫이 조와하는 사탄便 짝으로 가니 全人類은 사탄所有란 非原理世界를 造成한 셈이다. 그러니 이를 淸算하고 뜻에 사람 択함이 노아이였다. 노아는 其時代的으로 하나님의 所望이 存在면서 其時代世界人類보담 貴한 所望存在였다. 노아를 中心하고 하나님은 뜻에 人間을 造成하고저하니 全世界에 全部겄을 分立하는 하날便쪽으로 分別식키고저 하는 겄이 目的이니 사탄 所有物不順者 合하여 全滅케 하는 바이였다. 그 目的은 不順者所有物을 世界上에서 없시하게 하고저 함에서였다. 그리하여 非原理主人格사탄을 根本的으로 追放하고저 함에서 始作이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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根本的으로 하나님은 自己의 所有物만를 世界上에 始作하고저 함에서 対擊取함이 노아 審判이다. 이 審判은 무슨 意味나 하면은 創造하였는 根本原理的立場를 復帰하고저 함에서 始作이라는 바는 事実이다. 모츰 사탄侵入받은 아담 해와로 因한 萬物은 사탄血로 因하여 하나님과 떠난 겄이무로 전부를 淸算한바이다. 노아를 択하심은 전부를 다시금 찾저 세우는 貌樣으로 노아의 方舟에 모든 生物를 노아에게 준 바이다. 이겄은 第二創造理想始作이 目的이였다. 이 노아가 하나님의 뜻 成事하여야 할 義務的立場이란 바는 말할바 업는 바이였다. 이런 노아은 人間第二祖上으로 繼代를 잡고저 하는 基盤工作은 엊지되였나하면 함이 行動으로 사탄이 하나님의 앞에 自己의 血繼的証據格으로 서니 하나님앞에 自己의 血族이 있슴을 세워서 다시금 侵入하여서 取케 되니 함이 가나안이 父로 되는 바이다. 그겄은 아바지裸体로 因한 行動으로 始作함이다. 이겄이 至今본다면 좋은 行動같은데 웨 하나님의 第一 미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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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動이 되며 하나님과 怨讐된다는 行動인가은 두말할바 없시 해와이 墮落根本을 表証한 事実인 根本과 合하는 血緣的關係로 表示하였끼에 사탄侵入은 또다시 가나안 父格으로 함을 通하여 始作본바가 根本이였다. 그러케 되니 하나님의 大審判한 目的은 第二次的으로도 根本始作를 보와 出発하지 못하고 하나님앞에 있서서 찾고저 하는 全目的를 일어버린 反対目的이 結果한 셈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審判은 하였스나 審判하기 前과 같은 始作奌을 본 겄으로 되니 하나님은 根本目的과 要求를 다시금 찾저야 하게 되였다. 卽 審判할적에 하나님은 四十日晝夜를 두고 審判하였다. 이 四十日은 하나님의 뜻 成事이 始作잡는 基本를 作定하는 期間임은 事実이다. 이 四十日에 対한 目的은 사탄全部를 追放이 目的이였다. 이 사탄 追放目的은 함으로 因하여 또 다시금 侵入基台를 잡고 하나님의 根本 뜻를 未成事로 始作를 본 셈이다. 하나님의 四十日審判은 無效果로 된바로 되엇 지었다. 四十日를 뜻맛게 찾으면은 根本目的成事를 볼 바였는데 四十日를 未成事한 양으로 나아가니 四十日의 目的은 全部가 일어버린 目的으로 始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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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본 바이다. 하나님끠 있서서 四十日을 일어버린겄과 같은겄이 되여스니 다시금 뜻 세우는 길에는 四十日이란 根本目的成事가 最高目的이면서 이겄찾저 세우여야만 뜻 成事란 目的完成이니 이 四十日를 中心하고 사탄分立를 作定키 爲한 바이다. 이 四十日를 사탄侵入보니 일러버린 바와 갗치 되였스니 하나님은 이 四十日이 사탄 対하여 찾어 세우여야 하는 한 分岐奌으로 남어지게 되였다. 그런고로 四十日를 中心하고 摂理의 始作은 언제나 問題로 나타나고 있다. 노아이 四十日期間이 卽 審判에 全目的이니 이 四十日 끝낫슬때에 行事은 하나님의 創造하든 完成를 表準한 時와 한가지로 出発코저 하시였다. 노아는 四十日지난 後에는 鴉를 내보냄이였다. 이겄은 創造받은 世界에 사탄이 먼츰 始作하였든 바를 다시금 찾어 成事할 表示이 상증이였다. 卽 鴉을 내보내스나 돌아둘우오지 안였다. 창세記 8/7에 보면은 鴉은 地上에 水이 마르기까지 往來하는지라 하시였다. 먼츰 내보낸 鴉은 웨 노아한테 들어오지 못하고 이 모양으로 行하는가 하면은 먼츰 사탄이 至今 이와갗치 되여서 行한다 하는 表示로써 鴉를 내어 보내심이였다. 사탄은 水로 審判받은 水上를 단니면서 쉬일곳 찾고 있다는 한 表示로 됨이 鴉이 내보내심이 한 像徵이였다. 다음은 비둘기를 내보냈뜨니 鴿은 地面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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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로 因하여 발부치 못하고 다시금 노아方舟로 돌아오니 노아가 手를 내밀어 受入고(창8/8~12참조) 七日를 待러서 鴿을 내노이니 夕時에 鴿가 橄欖木葉를 口에 물고 들러오난지라. 其後 또 七日를 지내서 鴿를 노아주니 다시금 도라오지 안앗다. 이런 鴿로 因하여 三次나 보내서야만이 비로서 完全이 地上를 찾어서 繁殖할 수 있는 船없시 直接살 수 있다는 한 表示로 되여있다. 이 表示은 무었이나하면 墮落時부터 眞理全部에 対한 復帰에 한 表示로 되여있다. 첫 번 鴿은 第一次 아담이 始作를 볼러고 하였스나 비달기 水로 因하여 도라온겄과 갗치 그 灵이 하나님 앞에 돌아온 바와 한가지고 卽 노아가 手를 내밀어 비달기를 받아들이심과 갗치 아담灵를 받아들이심이였다. 鳩를 方舟로 받아들인겄과 갗이 그 方舟은 한날 全部에 表示였다. 卽 三層天表示로된 바이였다. 方舟도 上, 中, 下로 된바도 하날 三層天表示로써 基因한바다. 다음 鳩은 二次아담 예수를 表示함인데 예수는 아담灵이 보내슴을 받아 땅을 찾저 繁殖生이 地를 찾고저 하였스나 감남나무葉만 물고 왓다하는 바는 예수와서 뜻 成事할러고 하였스나 땅이 아직 받을 수 있은 땅이 못되무로 찾으수 있는 約束를 세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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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台成事한 表示로 된바며 三次鴿는 完全이 뜻 成事始作를 完成하신다는 한 表示的內容를 보여주심이다. 그런고로 眞理復帰에는 蘇生부터 長生으로 完成으로 한 目的達成한다는 萬宇宙創造原理를 表準하였끼에 이렀게 表示된바이다. 하나님의 七日간격둔 바는 첫 번도 完成할러고 한겄이 延長되니 卽 七日理想延長되니 이런 間隔두워 役事하심이다. 第一次도 한 期間를 두고 한다는 겄이고 다음봄도 未成事면 한 期間를 두고 한다는 겄이다. 이럿틋시 하나님의 뜻은 第一次 鴿的으로 成事코저 하였스나 땅은 死亡圈에 잠기엿끠에 돌아왔고 第二次成事할러고 하였스나 땅이 받지 못하서 돌아오고 第三次 만에는 아무리 하여도 成事한다는 한 限界를 表示함이다. 그런고로 成事치 못한바는 하나님의 未成事케 한 바가 안이고 땅들이 받들지 못함으로 延長된다는 한 表示로써 第一次 第二次 第三次로 延長된다는 바를 알려주는 事実이다. 그런무로 하나님의 뜻은 아담墮落으로 因하여 鴿가 돌아온 바와 한가지고 第二次아담 完成者로 오신 예수는 땅이 받지 못하여 약속만 成事하고 돌아오고 完成第三次 아담와서 完成한다는 뜻이무로 鴿이 三次는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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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음은 뜻 完成할바를 보여주심이다. 이리하여 노아는 鴿이 還지 안으므로 自身이 몸이 地上에서 生活할 수 있는겄과 한가지로 하나님도 三次아담 再臨主로 因하여 地上에서 創造理想生活를 始作하여 直系的世界를 造成할바를 表示되는바가 目的으로 되였섰다. 그런 目的根本인데 노아아달 함으로 因하여 다시금 目的破壞를 始作하는 非原理存在를 誘引하니 하나님은 根本四十日審判目的은 不成事로 되여지게 되였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다시금 하나님의 摂理하는 血系代에 사탄侵入에 踪蹟를 보지 않게하기 爲하여 四百年延長를 보는바다. 그 根本 뜻은 四十日를 中心하고 사탄対立의 成事를 始作하였스니 그 基本四十數가 基因를 가지게 되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四十日數를 基本復帰하여 다시금 成事할려고 하니 四十日가지고서나 四十年 가지고서나 안되가스니 四百年으로 延長식켜서 四百年後에야 本格的으로 第二人間祖上이 成事할 信 基本成事인 노아에 信 完成基台를 아부라함択함으로 始作하였다. 이 信을 세우심은 아담이 不信으로 因한 바무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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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其基台를 찾어 세우여야 사탄対할 수 있는 基本이니 信祖上 아부라함은 노아의 根本뜻 信繼承完成者로 択한 바이다. 그러기에 아부라함이 信祖上되는 根本意義가 있는 바다. 웨 아부라함을 択하였나 하면 노아家庭으로 択함에서 失手하여스니 아부라함 한 自体로서 始作코저함이 目的이였다. 아부라함은 하나님의 앞에 信의 基本를 세울 수 있는 때까지는 얻던 經路롤 밟았는가 하면 아부라함이 凶年을 当하여서 아부라함은 애급으로 내려가난지라. 其当時에 아부라함이 妻 사라는 아름다우매 念慮하여서 男妹로 된다는 約束과 同時에 애급에 감이였다. 이 사라는 아부라함이 妻로 妹에 立場에 서게됨도 아담 해와 立장인 큰 原理的事実를 찾저 세우고저 함에서다. 그겄은 애급은 사탄代身囗인데 그 国王 바로는 아부라함의 妻를 自己가 取하여 妻로 하고저 하여스나 하나님이 바로 対하여 아부라함에게로 찾어주니 바로는 아부라함에게 所有物를 주워서 돌리심은 하나님으로 因한 緣故이였다. 이와갗치 아부라함에 뜻 成事하는 路中에 第一問題는 애급까지가서 妻를 所有한바와갗치 하나님도 根本 한 해와가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빼왓스러 한바를 다시 찾는다는 한 表示를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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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後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만 始作한 바와갗치 원수의 謀略中에서 하나님은 해와를 찾어서 復帰땅에서 부터 뜻 成事함이 基台를 造成한 바와갗치 하나님도 하신다는 根本뜻이 있슴이였다. 其後 아부라함은 애급서 가지고 온 所有를 基本으로 하여서 뜻 基本를 잡아서 하나님의 뜻이 成事할 基本를 잡앗다. 이것은 萬物全部를 取하여 뜻 基台로 한다는 뜻이였다. 그 다음은 롯이 잡어간 怨讐를 対하여 勝利한 後에야 아부라함은 뜻 成事이 始作이 決定를 받게 되는바다. 이겄은 択한 者를 全部를 復帰한다는 뜻이였다. 이런 基本이 完成되니 아부라함은 約束에 対한 表示物 로세 三大祭物로 하나님과 첫 條件에 対한 成立에 基台를 完成하는 바이였다. 그런고로 아부라함은 사탄 所有에 貴한 者와 같은 겄은 데라의 아달을 빼앗사 내여슴으로 사탄은 아부라함이 뜻하는 하나님対하여서 아부라함이 무었이나가 不順된 무었이 所有만 되면 所有코져하여 아부라함 뒤를 딸으게 되였다. 其時 마침 아부라함과 하나님과은 重大約束成立을 始作케 되니 사탄에게 있서서 큰 問題가 될 터를 始作함으로 이때 하나님対하여 사탄은 対立하여 서게 되였다. 만일 아부라함의 全的으로 하나님의 뜻에 맜게 祭物들러스면은 아부라함부터 基本基台은 잡아 四百年 厂史的延長生活인 애급 生活은 업고 直接 하나님責任分担使命으로 볼 바이였다. 이 目的은 무슨 目的이냐 하면은 아부라함만 完全히 뜻 成事함이면은 사탄対 根本追放를 始作하여 四十日에 対한 노아審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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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뜬 基本目的은 完成되여서 出発를 볼 바이였다. 아부라함이 失手하고나니 四十日에 対한 뜻은 아직 完成的基台를 잡지 못하게 그에 延長的四百年이 탕감時代으로 始作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이 四百年이란 年代은 노아부터 아부라함까지 延長보아 사탄이 侵入본 바니 이 四百年代 탕감하여야만이 노아적 時代立場에 立却함으로 아부라함에게 四百年延長를 보았다. 그런고로 아부라함 子孫에 남아지는 바는 四十數가 남어있는 樣으로되니 四十數가 만사를 解決하는 뜻 成事이 完成奌으로 남어지게 되였다. 하나님앞에 섰뜻 아부라함은 뜻에 未成事로 因하여 子孫이 四百年苦役生活을 봄이 큰나큰 禍根으로 되는 期間이다. 아부라함의 失手를 淸算하여서 사탄侵入防止코저하니 祭物表示로 되였뜬 実体子로 因하여서 祭物代身찾어 세우고저하니 이삭를 모리아山되려 祭物로써 獻祭를 命令하심이였다. 이 뜻을 아부라함이 三日期間을 두고 獻祭함의 合意 봄으로 하나님의 摂理한은 路程이 사탄를 防止하였스나 사탄亦是 이삭에 対하여 先有所有物될 수 있는 祭物所有로 因하여 미련갓고 対하게되니 이삭子息中二性的表示子息으로 分立하여서 하나님은 뜻를 세우게 되였다. 그리하야 야곱에 母親과 合하여 에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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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業를 빼앗사 넘기는 뜻이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腹中에서 부터 서로 싸우무로 니부가는 하나님끠 알래니 여호와 하나님이 答하여 갈아대 二囗이 爾腹中에 在함이여 二民族이 爾腹中으로부터 分하리로다. 此族屬이 被族屬보다 强함이며 大者가 小者를 섬기리라. 하시였다.(창25/23-24) 이겄를 보아도 이 失手한 根本를 다시금 하나님은 뜻하시여서 分立케하는 厂史的原因이 있는 바이다. 야곱이는 야거워서가(영급) 않이다. 하나님이 根本 뜻이 이와같은 사탄이 먼츰 祭物를 取할 수 있섰뜬 代身일써 存在 에서를 두고 야곱은 다음번 이무로 하나님의 뜻 中에서 사탄의 뜻하였든 所有物全部를 빼앗슴을 表示하기에 이와같은 対立를 보게한 바이다. 이겄이 卽 後日에 예수에 한 役事에 本되는 事実들로 되는것도 알 줄 안다. 이와갗치 하는바는 사탄의 아부라함 子息에게 미런남기지 않케하기 爲한 目的이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아부라함으로 뜻 成事를 볼러고 하는겄 이삭으로 通하여서 야곱에서 비로서 成事하게되니 아부라함을 対하엿든 하나님은 이삭이 하나님으로써 야곱까지와서 첫 아부라함 対한 하나님 뜻 成事를 보니 여기에 하나님은 三人를 相対하여서 아부라함의 하나님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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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延長를 본 바에 根本原理를 갓게 되는 바이다. 그러니 이 三代이 하나님으로 因한 名詞가 至今까지 조흔 名詞로 된듯하고 現信者는 알고 있지만 큰나큰 誤解를 알어야 한다. 이런 厂史的 하나님便的으로 原理를 中心하고 있다는 바를 確実히 알러야 한다. 이런 原理로 全部가 사탄侵入防止키 爲한 目的인 同時에 根本墮落始作이 復帰를 爲하여서라는 바를 알러야 한다. 여긔에 야곱부터 애급出発은 야곱이 아부라함이 本 뜻 四百年 탕감路程出発이 始作함이다. 웨 이삭부터 안되였는가 하면은 이삭은 아담과 같치 二主人対相存在였끼에 이삭부터 애급 四百年始作을 못한바를 론한바다. 야곱이 始作하였다는 바는 야곱은 根本 뜻 成事를 잡은者니 야곱이 애급出発하는 바이 根本原因이 有함이다. 이삭은 아부라함에 뜻 成事한 完成存在 못되무로 애급를 向할 수 업섰다. 그러기에 이삭子息에 에서라는 存在는 사탄相対者라는 서러움이 始作된바다. 어데 失手업서스면 아부라함子息에는 에서라는 存在은 없시 根本 뜻 始作를 볼 바이였다. 그러기에 이삭自体로서도 四十才를 中心하고 리브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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娶하여 妻를 択함이였다.(창 23/20) 이리하여서 하나님의 뜻이 始作를 보게함이였다. 야곱도 四十才를 中心하고 에서이 基業을 빼앗는 基本役事를 始作할바가 原理로써 짐작하여야 한다. 창세긔에 야곱이 四十年齡는 없스나 짐작키는 에서이 祝福 못받게 되는 年齡數 에서의 四十才 헷族屬 딸를 妻로 因하여 이삭과 리브가가 憂하더라 하는겄보면(창26/34) 야곱年代도 四十才를 中心하고 摂理하여야할 바가 原理로 되어있다. 이런 四十年代를 中心하고 하나님의 뜻를 始作할 수 있다는 基本를 잡으심은 基本 노아審判四十日數復帰한 基因數로 因하여서 이와같치 始作를 한 厂史的起源으로 因한바다. 야곱이 死後에 그 몸에 防腐劑를 四十日 발으심은 야곱이 体은 하나님이 뜻 完成者이무로 이 한 存在은 死亡하여서도 四十日期間과 같은 사탄対한 四十日審判를 받아 死亡한 者와같은 死亡이 안이고 四十日를 完成한 成事者로써 하날 뜻 四十日期間上에 處하여 死한 者라구 하는 表示로 四十日防腐劑를 바르게한 뜻이 있슴이다. 이리하여 四十日되는 死亡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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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防止한 中心存在가 된 바라는 根本意義로서 四十日를 보게한 바이다. 四十日은 卽 사탄 追放期間이면서 生命蘇生期間이다. 여기까지 야곱까지 延長보아서 애급出発하게 되여 한 하나님의 基台를 잡아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아부라함 이삭 야곱이란 延長은 우리는 生覚하면 怨痛한 期間이라 않이할 수 업다. 그러기에 이 期間를 두고 하나님은 約束祭物失手한 全部를 淸算하여서 사탄分立를 成事할 때 가지는 어는곳 까지나 하면은 야곱이 食口가 밧담 아람 라반에게서 얻은 所有를 가지고 가나안땅에 돌아온 後에 뜻 成事이 始作를 하는 바이다. 그러면 아부라함으로 부터 이삭 이삭부터 야곱이란 三代란겄은 하나님의 뜻하는 約束祭物中에 三祭物表示로 된바는 蘇生부터 長成으로 長成부터 完成에로 하는 眞理段階를 보여주는 바이였스니 아부라함의 뜻 合意케 成事하었스면은 三代없섯든바는 事実이다. 아부라함에 失手로 因하여 三代後에 完成한바도 全하나님의 뜻을 이 三代的段階로써 찾고저한은 厂史的眞理路程全部로 表示함이 始作하였다. 그는 失手로 因하여 分立보와서 아부라함으로 부터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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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이삭으로 야곱으로 하여 뜻 成事한 터은 眞理路程에 対한 基本的表示로 展開를 보게 되였다. 卽 아부라함은 아담格 상증으로 이삭은 예수이 한 상증으로 야곱은 완성 상증으로 됨이였다. 예수는 이삭과같은 立場임에 사람만 믿었뜨면 죽엄업시 야곱 뜻 合할 수 있는 겄이 目的이였다. 이삭도 죽음 면함도 뜻를 세우심으로 免한바와 갗치 될 바이였다. 그러나 基台 잡지 못하니 未成事할 수 있는 表示的一代復帰厂史와 모세로 因하여 民族復帰路程失手로 因하여 十字架까지 關聯를 가진바이다. 그런고로 뜻 完成者는 야곱이였다. 야곱이 뜻 成事하기 爲하여서는 第一次 가나안를 떠나는 生活이 야곱앞에 있섰다. 卽 長者基業를 取하고는 야곱은 基業成事할 者로써 라반집를 찾저가게 되였다. 여기에 야곱앞에 展開은 全部가 後日에 예수이 할 使命的表示로 되는 바는 한 뜻 基台成事은 야곱이무로 야곱은 뜻 基台完成가 있스야갔스니 야곱은 하란生活의 始作를 보는 바다. 여기서 부터 가나안 復地까지는 全部가 이스라엘이 나아가야할 表示的路程으로 낱아난다. 그겄은 하나님의 뜻에 基台가 되여야 갔스니 한 一代에서 하나님의 뜻에 全部를 表示한 厂史로 展開할 意義로 보는 바다. 그런고로 아부라함의 三大祭物은 아부라함을 蘇生으로 하고 사탄対하여 長成的 이삭이 始作을 보고 야곱이 始作으로 路程完成이니 이 厂史的三大祖上은 人類対한 하나님의 厂史的全部를 表示하는 바로 展開를 보여주심이다. 그겄은 祭物의 全部는 全人類対한 하나님의 摂理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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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 失手復帰은 全人類対한 한 表徵的事実로 展開를 보와야 되는 바이다. 그러기에 야곱이 一代 가나안 復帰까지며 全部은 가나안난 이스라엘百姓이 애급四百年生活과 相対되는 基本一代 복기厂史다. 이 야곱이 가나안 復帰路程은 이스라엘 全民族이 가나안 복지로 정예 本되는 路程이다. 이리하여 야곱은 復帰路程에 야곱이 뜻를 成事케 하는 에서가 있섰다는 바는 아담아달 가인과는 反対로 야곱対함이 始作보니 基本 가인가 아벨的 根本 뜻를 合意 본 셈이무로 그러기에 根本 아담 두 아달 가인과 아벨이 뜻에 속한것과 갗은 完成보니 뜻 성사를 보는 바다. 야곱은 가나안땅을 찾어들게 되는 바이였다. 그 에서가 야곱를 対하여 反対하여 怨讐示 하였다면은 하나님의 뜻 成事에 큰 問題가 될 바이였스나 에서 야곱歡迎하며 에서도 後日에 하나님対하여 順從에 한 間接的基本를 잡아 세우심이였다. 그런고로 에서이 後孫은 가나안 땅에서 怨讐対立이 안되고 가나안 땅에서 基業地를 所有繼續한 原因를 세우심이 基台가 에서가 야곱対하여 歡迎한 結果로 가저온 바다. 그러니 야곱 가나안復帰은 이스라엘民族이 애급生活로 부터 가나안 復地로 오는 한 本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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겄이다. 그런고로 야곱이 하란 生活路程에서 対하는 라반이란 存在은 사탄이 対像存在로써 야곱이 全部를 害하여 自己이 慾望充当를 세우러고 하는 者이였다. 라반은 하나님끠 屬하지 안코 偶像崇拜者이였다.(창 31/19) 이리하여 하란生活에서 財物取하여 가지고 가나안당을 向할러고 할 때에 라반에 対하여 야곱이 取할 수 있는 自由三日(창31/21~22)이 있섰뜬 바다. 이 三日間를 中心하고 라반에게서 얻은 全所有를 分立케 하여 所有权으로 세우신바이다. 그리하여 라반은 三日後에야 길느앗山에 対하였스나 하나님의 許하지 않으므로 自己 뜻을 成事못하고 自己이 偶像를 가저간겄을 찾다가 라헬이 其父에게 말하기를 自己은 偶像을 아지 못한다고 하면서 駱駄鞍下에 두고 타고는 至今딸은 脛水가 適出야 起야 歡迎치 못한다 하여서 偶像를 라반이 찾지 못함에 뜻를 보지 못하고 도르혀 야곱한테 攻擊를 본바이였다. 야곱이게는 레아와 라헬 二妻가 있섰다. 그 뜻은 무슨 뜻이나 하면은 하나님의 対하고저 하는 뜻 中에는 하나님의 二女性이 있다함을 보여줌이다. 야곱이 뜻 아닌 레아的 女性과 야곱이 뜻이 中心인 라헬的 女性이 있다는 表示로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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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이였다. 여기에는 根本해와이 일어버린 한 찾저야할 根本的女性이였는 바라는 겄이 表示였다. 그겄은 라반이 뜻 일운 레아이 存在와 한가지 表示였다. 이겄은 먼츰 일러버린 全人類対한 墮落始作母 해와로 表示한 바이다. 라반이 레아를 주고는 七日期間을 채운 後에 라헬을 妻를 삼게 하시였다. 이 七日期間(창29/28)日數는 卽 노아가 鴿을 내보내듯 한 섭리完成的日數로 되는 바이다. 그리하여 야곱은 뜻 成事하고야 가나안 땅으로 帰還하는 바이였다. 그리하여 라헬 찾은바는 하나님의 後日 일어버린 해와를 찾저 根本 뜻 成事할 目的를 表示한 바이였다. 그런고로 레아子과 라헬子 合하여 뜻 完成를 表準한다는 全世界人間 찾저야할 根本目的를 表示한 바이였다. 또 여기에 라반이 行한 바와갗치 하나님의 사탄世界에 不信으로 因하면은 이와같은 야곱이 目的이 二번만에 成事와 갗치 예수도 이와같은 한 完成를 成事할 바이 뜻를 表示한 바이였다. 그리하여 야곱과 合하여서 아바지 라반를 対하여선 妻 라헬態度와 갗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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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야만의 後日에 하나님 뜻이 完成 본다는 한 表示로 되였다. 라헬리 萬一偶像를 아바지한테 보였스면은 야곱과 全部은 큰 未成事를 가저온은 問題로 되는 바이나 라헬니 한 勝利를 가저온 中心은 脛水로 因하여서 勝利한 바와 한 가지로 야곱妻 라헬이 말로 因하여 偶像를 없세게 한 바와같치 後日 하나님 뜻 路程에 이와같은 女子이 脛水로써 사탄全部를 勝利하는 基台가 始作한다 하는 內容을 表示한 바이다. 이겄은 라헬이 態度와 같치 第二次 해와로 因하여 사탄을 屈伏시켜 뜻 完成를 한다는 한 勝利的表示이였다. 이 야곱이 一代이 展開가 예수이 路程으로 始作된다는 겄도 한 表示로 된 바다. 이 야곱이 全目的成事은 애급 路程上에 다시금 始作에 本으로 나타나서 하나님도 사탄対하게 하는 根本이 있는 바이다. 그러니 아부라함 이삭 야곱은 全하나님의 厂史的 路程를 表示한 存在들로 낱아낫다. 아부라함은 아담 失手한겄을 이삭으로 復帰와 같은 예수 祭物表示로 不信하니 十字架로 始作하고 야곱과 같은 再臨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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格 成事를 完成되는 한 表示로된 者들이니 하나님 対하는 아부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対像者인 뜻에 摂理를 表示한 存在들 이무로 아부라함이 하나님 (야곱의 一代로. . . .잘 보이지 않음) 이삭 하나님 야곱 하나님으로 延長된 後日에 全部를 表示한 基本들이니 信이 基本되는바가 成立되니 信의 祖上이라는 基本意義가 있다는 바 말한바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뜻 路程은 旧約役事中에 全部表示하여 맞추고저 함이 根本으로 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은 야곱 成事부터 할바가 모세부터 始作한바다. 모세은 야곱이 根本目的完成하여야 할 表示的路程으로써 後日 예수에 第二責任路程를 表示로 하면서 하나님의 直接責任基台잡은 路程에 始作를 보는 바다. 그런고로 모세 亦是 야곱 繼承的成事로서 出発하심이 出애급 노정이다. 모세= 아부라함 + 子孫 = 祭物찾음 = 하나님 取하여 역사. 그리하여 예수이 本되는 路程를 하나님과 合하여 成事하여 노았다. 그런고로 야곱 나간곳이 完成을 本으로 모세는 出発 하게 되였다. 이 모세의 本될 수 있는 路程이 完成를 始作하였끼에 信의 祖上들로 세게 되였다. 이리하여 예수이 앞에도 이와같은 完成目的하고 나아가여야할 表示이 路程으로 모세도 出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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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보는 바이다. 이와갗치 摂理한 바에 根本本意은 사탄対한 四十日完全復帰問題로 帰因하는 바이다. 이 모든 어러운 役事始作이 延長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를 받들지 못하였끼에다. 그런고로 모세도 애급 宮中에서 잘래게 하는겄도 択한 百姓를 第二次로 노아後에 사탄한테 배았끼스나 사탄한테 주었다가 다시금 사탄対하여 反対路程를 세우려니 모세亦是 四十年時를 바라宮中에 있다 四十才가 되매 하나님의 百姓으로 出発케함도 이 根本四十數가 始作이 如何가 根本 뜻 成事目的였섰끼에 모세 亦是 四十才에 애급対하여 反対하는 바이다. 모세가 四十才를 바로 宮中에 全部를 잘 有持 한 後에(사도행전 七/23) 하나님은 択하여 또 四十年間를 두었다가 役事하게 되는 바이다. 모세는 바로対한 出発時은 八十才이였다.(출7/7) 이와갗치 四十數를 두고 役事한겄은 四十日數를 일어버린 겄과 갗치 되었뜬 겄은 찾어서 탕감을 定할려니 四十才에 択하는 摂理를 始作케하여서 八十才에 成事로써 모세를 세워서 役事식킨 바이다. 이리하여 再出発하는 모세는 勝利路程를 잡고 나아간바는 四十日 復帰이 目的完成이니 四十年後四十年하날뜻 準備期間으로 対케 한 바이다. 그러니 이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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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十年애급이 바로한테 준 바는 全 이스라엘 百姓를 바로가 支配하니 基本四十日를 일어버린 겄으로 因하여 四百年이란 年數로 보앗스니 모세는 이 四十日를 사탄으로부터 하날 四十數로 찾저 세우여야 갔스니 애급 四十를 주었다가 하날 四十으로 탕감하여 하날이 基本四十日數를 찾을 수 있는 길를 잡고 나서는 樣이니 애급出発이라는 始作를 보는 바이다. 그러니 이스라엘百姓은 四十日를 全体的完成를 하여야 하는 바는 이스라엘全部가 四十日完成 하여야만의 노아審判根本目的達成한 하날 百姓으로 보는바 갓스니 卽 根本 하나님의 創造本意인 말삼를 復帰하갔스니 모세는 이스라엘 百姓를 中心하여 놋코 根本 뜻 成事에 基本言 成事에 約束를 받게되는 바이다. 卽 四十日晝夜로 通하여 禁食하여서라도 成事할 目的으로 되니 모세는 四十日를 完成할러니 禁食하여 四十日根本審判根本復帰가 目的이니 四十日로 因하여 言에 対한 二石板 받음이다. 이겄은 무었이나 四十日이 完成이 다시금 成事한 基盤되는 아담 해와이 成事를 完成할 本이라는 겄이 始作를 보는 바이였다. 그리하여 全百姓은 言과 한나 되여야만이 뜻 完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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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곳으로 나아갈 바이 根本인데 나아가지 못하게 되매 四十日에 対한 第二次 完成도 다시금 未完成를 본 바아갗치 되니 이스라엘 百姓에는 다시금 苦痛數 四十數는 남아지게 되였다. 四十數未完成은 再創造 復歸未完成數인데 이스라엘百姓이 가나안땅을 앞에노코 偵探軍이가서 정탐한날 四十日이 最後로 이스라엘 百姓이 全 뜻 成事나 未成事나 하는 간격둔 対峠回數가 四十日이였다. 이 四十日를 두고 한 全部를 믿고 나아가면은 根本四十日은 勝利이 基本 될 날이였는데 이 정탐 긔 四十日를 잘 信고 넘지 못함과 같은 結果로 나타나니 昿野四十年이 고역이 始作을 본 바이였다.(민수긔 14/30~34) 이리하여 四十日基本은 完成못하고 四十日完成으로 발아보든 全百姓代表者은 다시금 사탄所有物 되여 昿野에서 四十年間에 死亡하는바가 始作된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뜻 路程에서 四十日의 勝利的目的을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百姓이 찾저 세우여야하는 重大期間로써 남아지게 되였다. 四十日 세우는 날이면 사탄追放이 날이라는 事実이다. 그러무로 四十日이라는 날짜는 이스라엘 百姓앞에 찾어서 세우여야하는 날이다. 이겄를 탕감과 同時에 完成할 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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摂理路程에 한 뜻으로 되였다. 모세 四十日目的未達成하여서 사탄은 如前하게 侵入하여 全目的 破壞으로 나아가니 하나님은 다시금 엘니아를 세우심이였다. 엘니야은 사탄 全滅식키기 爲한 代表的存在로써 하나님앞에 세게 되였다. 그리하여 바랄神 八百余를 滅하고는 四十日晝夜로 호렙山까지 가는겄은 무었이나 하면 모세 四十日에 対한 勝利奌를 完結짖는 한 表示로써 엘니야 호렙山까지 四十期間의 있슴이였다. 이리하여 엘니야로부터 노아審判四十日를 完成하는 同時에 하나님의 基本出発할 수 있는 터를 造成하기 爲한 總決戰者가 엘니야엇다. 그것도 百姓이 不信 不順 不侍로 因하여서 사탄은 侵入延長를 보와서 메시야 前까지 当到하갓스니 하나님은 四十數 十進倍數年로써 四千年期인 四十數延長으로 因한 메시야 時까지 侵入하여 役事하가스니 하나님은 엘니야를 보내서서 目的成事를 予告함이였이다. 이 엘니야라는 存在는 세례요한으로 始作하여 사탄 全滅目的完成하여야 할 엘니야的 目的達成못한 셈으로되니 예수 앞에가긔 四十日에 対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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厂史的 탕감課業이 延長를 본 바이다. 그런고로 이겄를 탕감하기 爲한 總結算期가 예수四十日 禁食期間인 昿野生活이다. 이리하여 勝利함으로 審判目的은 完成할 基台은 잡아스나 사람의 合하여야만이(누가4//13참조) 成事할 것이 예수 앞에는 未成事란 結果로 因하니 四十日에 対한 未完成을 본 바와 한가지로 되었다. 그러니 十字架로 因하여 사탄対 勝利를 目的케 되였다. 그리하여 예수는 敗한듯 하니 四十日間를 찾줄 수 있섰다는 目的를 完成할 수 있다는 바는 十字架後로 因하여 예수앞에 復帰되면서 基本完成이 터를 始作하여서 出発에 榮光를 본 바다. 예수가 十字架後復活하여 四十日期間이 成立를 보와서 하나님의 基本四十日 노아根本 사탄追放目的를 成立하여 노은 바가 根本目的으로 하나님의 摂理路程에 四十日期間이 問題로 되여왓뜬 바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厂史的 모든겄 完成者로 뜻 出発中心存在로 되는 바이다. (*51. 10. 26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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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十日을 復帰하고자 한 摂理路程의 根本 意義
人間世界에 해와로 因하여 墮落이 始作하여지니 其時(때)부터 人間世界는 非原理적 存在에 屬하여 나오는 反面에 하나님은 原理的 復帰로써 態勢를 取하여지게 되었다. 하나님을 中心하고 原理的으로 直系의 血代는 至今까지 摂理의 한 所望으로 남게 되고 其 直系的 血系는 非原的(비원리적)으로 始作한 바가 事実이다. 이런 根本 뜻을 다시금 찾아 根本 血系를 始作하는 것이 하나님의 創造本意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墮落된 人間일 망정 抛棄하지 못하고 原理的 復帰原則을 바라보면서 至今까지 繼續되는 厂史를 본 바를 論한 바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子(아들) 中 가인과 아벨에 対한 祭物을 받는 根本 뜻도 알 줄 안다. 가인은 사탄 初血(첫 혈통)의 表示者요, 아벨은 아담이니 종的으로 해와에 対한 表示者이매 根本적으로 하나님이 찾을 수 있는 者임으로 하나님은 다시금 찾고자 할 적에 첮 生産者보다 다음 者 아벨을 사랑的으로 対한 原因은 알 바이다. 聖經에도 하나님이 아벨의 祭物을 받게 되는 理由는 未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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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 있다. 그것은 其 時代的으로는 먼저 알 수 없는 原理를 復帰하고자 하는 厂史的 뜻의 成事를 볼 바가 되지 못함으로 至今까지 未知로 되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中心하고 찾지 못한 바도 非原理적 存在가 먼저 한 主人格 相対로 되었기에 한 主人 相対의 原理로 된 創造的 原理가 있기에 아담 해와로 因한 復帰를 못하고 가인과 아벨로서 二性分立를 보아 順從과 不順從을 作定하게 하는 表定物이, 卽 아담 두 아들의 祭物인 바다. 가인의 祭物은 안 받은 바는 사탄的 生産 血系의 結実 存在였음으로 가인의 祭物보다 아벨의 祭物을 받음이었다. 아벨이 더 誠心을 다 하였다는 바는 聖經에도 없는 바이다. 이 根本的 原理가 이런 原理로 되어 있는 (原理라는) 바를 알게 될 때에 根本적으로 墮落의 根本에 対하여 내 発表가 正論임을 알 바다. 가인도 아벨에 対한 反擊이 없었으면 다시금 기쁜 復帰로 될 바였으나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늘 対하여 反擊의 始作이 있으니 하늘 뜻의 破壞를 始作하게 하는 基源奌을 始作한 바이다. 萬一 가인도 아벨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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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들었으면 하나님은 사탄에게 所有物이란 分立을 防止하였을 것이었다. 그런 立場에 서 있는 가인 한 自体의 行動이야말로 人間에게 第一 슬픔의 始作이 基奌을 짓게 되었다. 그로 因하여 아벨을 죽이니 하나님은 아벨 代身 셋을 주어서 摂理를 다시금 세우고자 하였다. 셋을 주어서 厂史를 經過하는 途中에 셋 子孫 亦是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가인 子孫이 좋아하는 사탄便 쪽으로 가니 全人類는 사탄의 所有라는 非原理世界를 造成한 셈이다. 그러니 이를 淸算하고자 뜻의 사람을 択함이 노아였다. 노아는 其 時代的으로 하나님의 所望의 存在이면서 其 時代 世界의 人類보다 貴한 所望의 存在였다. 노아를 中心하고 하나님은 뜻의 人間을 造成하고자 하니 全世界에 全部(모든) 것을 分立하여 하늘便 쪽으로 分別시키고자 하는 것이 目的이니 사탄 所有物인 不順(불순종)者와 合하여 全滅케 하는 바였다. 그 目的은 不順(불순종)者의 所有物을 世界上에서 없애고자 함에서였다. 그리하여 非原理의 主人格인 사탄을 根本的으로 追放하고자 함에서 始作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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根本的으로 하나님은 自己의 所有物만을 世界上에 始作하고자 함에서 対擊(상대를 쳐서) 取함이 노아 審判이다. 이 審判은 무슨 意味냐 하면 創造하였던 根本 原理的 立場을 復帰하고자 함에서 始作이라는 바는 事実이다. 먼저 아담 해와로 因해 사탄의 侵入을 받은 萬物은 사탄의 血(피)로 因하여 하나님과 떠난 것이므로 전부를 淸算한 바이다. 노아를 択하심은 전부를 다시금 찾아 세우는 貌樣으로 노아의 方舟에 모든 生物을 노아에게 준 바이다. 이것은 第二創造理想의 始作이 目的이었다. 이 노아가 하나님의 뜻을 成事하여야 할 義務的 立場이란 바는 말할 바 없다. 이런 노아는 人間 第二祖上으로 繼代를 잡고자 하는 基盤 工作은 어찌되었나 하면 함의 行動으로 사탄이 하나님 앞에 自己의 血繼的 証據格으로 서니 하나님 앞에 自己의 血族이 있음을 세워서 다시금 侵入하여 取하게 되니 함이 가나안의 父(아비)로 되는 바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裸体로 因한 行動으로 始作함이다. 이것이 至今 본다면 좋은 行動 같은데 왜 하나님이 第一 미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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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動이 되며 하나님과 怨讐가 되는 行動인가는 두말할 바 없이 해와의 墮落의 根本을 表証한 事実인 根本과 合하는 血緣的 關係로 表示하였기에 사탄의 侵入은 또다시 가나안의 父(아버지)格으로 함을 通하여 始作을 본 바가 根本이었다. 그렇게 되니 하나님이 大審判한 目的은 第二次的으로도 根本 始作을 보아 出発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있어서 찾고자 하는 全(모든) 目的을 잃어버린 反対 目的이 結果(결실)한 셈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審判은 하였으나 審判하기 前과 같은 始作奌을 본 것으로 되니 하나님은 根本 目的과 要求를 다시금 찾아야 하게 되었다. 卽 審判할 적에 하나님은 四十日 晝夜를 두고 審判하였다. 이 四十日은 하나님의 뜻 成事의 始作을 잡는 基本을 作定하는 期間임은 事実이다. 이 四十日에 対한 目的은 사탄 全部의 追放이 目的이었다. 이 사탄의 追放 目的은 함으로 因하여 또 다시금 侵入 基台를 잡고 하나님의 根本 뜻을 未成事로 始作을 본 셈이다. 하나님의 四十日 審判은 無效果로 된 바로 되었다. 四十日을 뜻 맞게 찾으면 根本目的 成事를 볼 바였는데 四十日을 未成事한 양상으로 나아가니 四十日의 目的은 全部 잃어버린 目的으로 始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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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본 바이다. 하나님께 있어서 四十日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이 되었으니 다시금 뜻을 세우는 길에는 四十日이란 根本 目的 成事가 最高 目的이면서 이것을 찾아 세워야만 뜻 成事란 目的의 完成이니 이 四十日을 中心하고 사탄 分立을 作定하기 爲한 바이다. 이 四十日의 사탄의 侵入을 보니 잃어버린 바와 같이 되었으니 하나님은 이 四十日을 사탄 対하여 찾아 세워야 하는 한 分岐奌으로 남아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四十日을 中心하고 摂理의 始作은 언제나 問題로 나타나고 있다. 노아의 四十日期間이, 卽 審判의 全(모든) 目的이니 이 四十日이 끝났을 때에 行事는 하나님이 創造하던 完成을 表準한 時(때)와 한가지로 出発하고자 하셨다. 노아는 四十日을 지난 後에는 鴉(비둘기)를 내보냄이었다. 이것은 創造 받은 世界에 사탄이 먼저 始作하였던 바를 다시금 찾아 成事할 表示의 상징이었다. 卽 鴉(비둘기)를 내보냈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창세記 8/7에 보면 鴉(비둘기)는 地上에 水(물)이 마르기까지 往來하는 지라 하셨다. 먼저 내보낸 鴉(비둘기)는 왜 노아한테 돌아오지 못하고 이 모양으로 行하는가 하면 먼저 사탄이 至今 이와 같이 行한다 하는 表示로써 鴉(비둘기)를 내어 보내심이었다. 사탄은 水(물)로 審判을 받은 水上(수면 위)를 다니면서 쉴 곳을 찾고 있다는 한 表示로 됨이 鴉(비둘기)를 내보내심이 한 像徵이었다. 다음은 비둘기를 내보냈더니 鴿(비둘기)는 地面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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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물)로 因하여 발 붙이지 못하고 다시금 노아 方舟로 돌아오니 노아가 手(손) 내밀어 受入(거두어 들이)고(창8/8~12참조) 七日을 待(기다려)서 鴿(비둘기)를 내놓으니 夕時(저녁무렵)에 鴿(비둘기)가 橄欖木葉(감람나무 잎사귀)를 口(입)에 물고 들어오는 지라. 其後 또 七日을 지나서 鴿(비둘기)를 놓아주니 다시금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鴿(비둘기)로 因하여 三次나 보내서야만 비로소 完全히 地上을 찾아서 繁殖할 수 있는 船(배) 없이 直接 살 수 있다는 한 表示로 되어 있다.
이 表示는 무엇이냐 하면 墮落 時(때)부터 眞理 全部에 対한 復帰의 한 表示로 되어 있다. 첫 번 鴿(비둘기)는 第一次 아담이 始作을 보려고 하였으나 비둘기가 水(물)로 因하여 돌아온 것과 같이 그 灵이 하나님 앞에 돌아온 바와 한가지고, 卽 노아가 手(손)을 내밀어 비둘기를 받아들이심과 같이 아담의 灵을 받아들이심이었다. 鳩(비둘기)를 方舟로 받아들인 것과 같이 그 方舟는 하늘 全部의 表示였다. 卽 三層天 表示로 된 바였다. 方舟도 上, 中, 下로 된 바도 하늘 三層天 表示로써 基因한 바다. 다음 鳩(비둘기)는 二次아담 예수를 表示함인데 예수는 아담의 灵이 보내심을 받아 땅을 찾아 繁殖(生이)地를 찾고자 하였으나 감람나무 葉(잎)만 물고 왔다 하는 바는 예수가 와서 뜻을 成事하려고 하였으나 땅이 아직 받을 수 있은 땅이 못 됨으로 찾을 수 있는 약속을 세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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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台를 成事한 表示로 된 바이며 三次鴿(비둘기)는 完全히 뜻 成事의 始作을 完成하신다는 한 表示的 內容을 보여주심이다. 그런고로 眞理 復帰에는 蘇生부터 長生으로, 完成으로 한 目的을 達成한다는 萬宇宙의 創造原理를 表準하였기에 이렇게 表示된 바이다. 하나님이 七日의 간격을 둔 바는 첫 번도 完成하려고 한 것이 延長되니, 卽 七日이 (理想) 延長되니 이런 間隔을 두어 役事하심이다. 第一次도 한 期間을 두고 한다는 것이고 다음 번도 未成事면 한 期間을 두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뜻은 第一次鴿(비둘기)的으로 成事하고자 하였으나 땅은 死亡圈에 잠겼기에 돌아왔고, 第二次로 成事하려고 하였으나 땅이 받지 못해서 돌아오고, 第三次만에는 아무리 하여도 成事한다는 한 限界를 表示함이다. 그런고로 成事하지 못한 바는 하나님이 未成事케 한 바가 아니고 땅들이 받들지 못함으로 延長된다는 한 表示로써 第一次, 第二次, 第三次로 延長된다는 바를 알려주는 事実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아담의 墮落으로 因하여 鴿(비둘기)가 돌아온 바와 한가지고, 第二次아담의 完成者로 오신 예수는 땅이 받지 못하여 약속만 成事하고 돌아오고, (完成) 第三次는 아담이 와서 完成한다는 뜻이므로 三次鴿(비둘기)는 돌아(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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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음은 뜻 完成할 바를 보여주심이다. 이리하여 노아는 鴿(비둘기)가 還(돌아오)지 않으므로 自身의 몸이 地上에서 生活할 수 있는 것과 한가지로 하나님도 三次아담 再臨主로 因하여 地上에서 創造理想生活을 始作하여 直系的 世界를 造成할 바를 表示하는 바가 目的으로 되었다. 그런 目的이 根本인데 노아의 아들 함으로 因하여 다시금 目的의 破壞를 始作하는 非原理적 存在를 誘引하니 하나님의 根本 四十日 審判의 目的은 不成事 (되어지게) 되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다시금 하나님이 摂理하는 血(혈통) 系代에 사탄 侵入의 踪蹟을 보지 않게 하기 爲하여 四百年 延長을 보는 바다. 그 根本 뜻은 四十日을 中心하고 사탄 対立의 成事를 始作하였으니 그 基本 四十數가 基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四十日數를 基本 復帰하여 다시금 成事하려고 하니 四十日을 가지고 서나 四十年을 가지고 서나 안되겠으니 四百年으로 延長시켜서 四百年 後에야 本格的으로 第二人間祖上이 成事할 信(믿음)의 基本 成事인 노아의 信(믿음)의 完成基台를 아브라함을 択함으로 始作하였다. 이 信(믿음)을 세우심은 아담의 不信으로 因한 바이므로 다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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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其 基台를 찾아 세워야 사탄을 対할 수 있는 基本이니 信(믿음)의 祖上 아브라함은 노아의 根本 뜻인 信(믿음)의 繼承 完成者로 択한 바이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이 信(믿음)의 祖上이 되는 根本 意義가 있는 바다. 왜 아브라함을 択하였나 하면 노아家庭으로 択함에서 失手하였으니 아브라함 한 自体로서 始作하고자 함이 目的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信(믿음)의 基本을 세울 수 있는 때까지는 어떤 經路를 밟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이 凶年을 当하여서 아브라함은 애급으로 내려간 지라. 其 当時에 아브라함의 妻 사라는 아름다우매 念慮하여서 男妹로 한다는 約束과 同時에 애급에 갔다. 이 사라는 아브라함의 妻로 妹(동생)의 立場에 서게 됨도 아담 해와 立장인 큰 原理的 事実을 찾아 세우고자 함에서다. 그것은 애급은 사탄 代身囗인데 그 国王 바로는 아브라함의 妻를 自己가 取하여 妻로 하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이 바로에 対하여 아브라함에게로 찾아주니 바로는 아브라함에게 所有物을 주어서 돌리심은 하나님으로 因한 緣故였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뜻을 成事하는 路中(노정 중)에 第一 問題는 애급까지 가서 妻를 所有한 바와 같이 하나님도 根本적으로 해와를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빼앗으려 한 바를 다시 찾는다는 한 表示를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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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後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始作한 바와 같이 원수의 謀略 中에서 하나님은 해와를 찾아서 復帰, 땅에서부터 뜻 成事함의 基台를 造成한 바와 같이 하나님도 하신다는 根本 뜻이 있음이었다. 其後 아브라함은 애급에서 가지고 온 所有를 基本으로 하여 뜻의 基本을 잡아서 하나님의 뜻을 成事할 基本을 잡았다. 이것은 萬物 全部를 取하여 뜻의 基台로 한다는 뜻이었다. 그 다음은 롯이 잡아간 怨讐를 対하여 勝利한 後에야 아브라함은 뜻 成事의 始作이 決定(을 받게) 되는 바다. 이것은 択한 者 全部를 復帰한다는 뜻이었다. 이런 基本이 完成되니 아브라함은 約束에 対한 表示物로서 三大祭物로 하나님과 첫 條件에 対한 成立의 基台를 完成하는 바였다. 그런고로 아브라함은 사탄 所有의 貴한 者와 같은 (겄은) 데라의 아들을 빼앗아내었음으로 사탄은 아브라함이 뜻하는 하나님에 対하여서 아브라함이 (무었이나가) 不順된 무엇이 所有(있게) 되면 所有하고자 하여 아브라함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其時(때) 마침 아브라함과 하나님과는 重大한 約束의 成立을 始作하게 되니 사탄에게 있어서 큰 問題가 될 터를 始作함으로 이때 사탄은 하나님에 対하여 対立하여 서게 되었다. 만일 아브라함이 全的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祭物을 드렸으면 아브라함부터 基本 基台는 잡아 四百年 厂史的 延長生活인 애급 生活은 없고 直接 하나님 責任分担 使命으로 볼 바였다. 이 目的은 무슨 目的이냐 하면 아브라함만 完全히 뜻을 成事하면 사탄 対하여 根本적인 追放을 始作하여 四十日간 (対한) 노아 審判(하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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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던 基本 目的은 完成되어서 出発을 볼 바였다. 아브라함이 失手하고 나니 四十日에 対한 뜻은 아직 完成的 基台를 잡지 못하였기에 延長的 四百年이 탕감時代로 始作을 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 四百年이란 年代는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延長을 보아 사탄의 侵入을 본 바니 이 四百年(代)을 탕감하여야만 노아적 時代의 立場에 立却함으로 아브라함에게서 四百年 延長을 보았다. 그런고로 아브라함 子孫에게 남아지는 바는 四十數가 남아있는 樣(양상)으로 되니 四十數가 만사를 解決하는 뜻 成事의 完成奌으로 남아지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섰던 아브라함은 뜻의 未成事로 因하여 子孫이 四百年간 苦役生活을 봄이 크나큰 禍根으로 되는 期間이다. 아브라함의 失手를 淸算하여 사탄 侵入을 防止하고자 하니 祭物表示로 되었던 実体 子(아들)로 因하여서 祭物을 代身 찾아 세우고자 하니 이삭을 모리아山에서 祭物로서 獻祭를 命令하심이었다. 이 뜻을 아브라함이 三日期間을 두고 獻祭함의 合意를 봄으로 하나님이 摂理하는 路程이 사탄을 防止하였으나 사탄 亦是 이삭에 対하여 先有 所有物이 될 수 있는 祭物 所有로 因하여 미련을 갖고 対하게 되니 이삭의 子息 中에 二性的 表示子息으로 分立하여 하나님은 뜻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야곱이 母親과 合하여 에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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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業을 빼앗는 뜻이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腹中에서 부터 서로 싸움으로 리브가는 하나님께 아뢰니 여호와 하나님이 答하여 이르시되 二囗(두 나라)가 爾(네) 腹中에 在(있음)이여 二(두) 民族이 爾(네) 腹中으로부터 分(나누리)로다. 此(이) 族屬이 被(저) 族屬보다 强하겠고 大(큰) 者가 小(작은) 者를 섬기리라 하셨다.(창25/23-24) 이것을 보아도 이 失手한 根本을 다시금 하나님은 뜻하셔서 分立하게 하는 厂史的 原因이 있는 바이다. 야곱은 약아서가(영급) 아니다. 하나님의 根本 뜻이 이와 같이 사탄이 먼저 祭物을 取할 수 있었던 代身 存在인 에서를 두고 야곱은 다음 번이므로 하나님의 뜻 中에서 사탄이 뜻하였던 所有物 全部를 빼앗음을 表示하기에 이와 같은 対立을 보게 한 바이다. 이것이, 卽 後日 예수의 한 役事에 本이 되는 事実들로 되는 것도 알 줄 안다. 이와 같이 하는 바는 사탄이 아브라함의 子息에게 미련을 남기지 않게 하기 爲한 目的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뜻 成事를 보려고 하는 것을 이삭을 通하여서 야곱에서 비로소 成事하게 되니 아브라함을 対하였던 하나님은 이삭 (하나님으로서) 야곱까지 와서 첫 아브라함에 対한 하나님의 뜻이 成事를 보니 여기에 하나님은 三人을 相対하여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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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延長을 본 바의 根本 原理를 갖게 되는 바이다. 그러니 이 三代의 하나님으로 因한 名詞가 至今까지 좋은 名詞로 된 듯 現 信者는 알고 있지만 크나큰 誤解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厂史的 하나님便的으로 原理를 中心하고 있다는 바를 確実히 알아야 한다. 이런 原理로 全部가 사탄 侵入을 防止하기 爲한 目的인 同時에 根本적인 墮落의 (始作이) 復帰를 爲해서라는 바를 알아야 한다. 여기에 야곱부터 애급으로 出発은 야곱이 아브라함의 (本 뜻) 四百年 탕감路程의 出発이 始作함이다. 왜 이삭부터 안되었는가 하면 이삭은 아담과 같이 二(두) 主人 対相의 存在였기에 이삭부터 애급 四百年 始作을 못한 바를 논한 바다. 야곱이 始作하였다는 바는 야곱은 根本 뜻 成事를 잡은 者니 야곱이 애급으로 出発하는 根本 原因이 有(있음)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뜻 成事한 完成 存在가 못 됨으로 애급으로 向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이삭의 子息 에서라는 存在는 사탄 相対者라는 서러움이 始作된 바다. 만약 失手가 없었으면 아브라함 子息에 에서라는 存在는 없이 根本 뜻의 始作을 볼 바였다. 그러기에 이삭 自体로서도 四十才(歲)를 中心하고 리브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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娶하여 妻를 択함이었다.(창 23/20) 이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始作을 보게 함이었다. 야곱도 四十才(歲)를 中心하고 에서의 基業을 빼앗는 基本役事를 始作할 바가 原理로써 짐작하여야 한다. 창세기에 야곱이 四十세라는 年齡은 없으나 짐작하기에는 에서가 祝福을 못 받게 되는 年齡(數), 에서의 四十才(歲)에 헷 族屬 딸을 妻로 因(取)하여 이삭과 리브가가 憂(근심)하더라 하는 것을 보면(창26/34) 야곱의 年代도 四十才(歲)를 中心하고 摂理하여야 할 바가 原理로 되어 있다. 이런 四十年代를 中心하고 하나님의 뜻을 始作할 수 있다는 基本을 잡으심은 基本적으로 노아審判 四十日數를 復帰한 基因數로 因하여서 이와 같이 始作을 한 厂史的 起源으로 因한 바다. 야곱의 死後에 그 몸에 防腐劑를 四十日간 발라 둠은 야곱의 体(몸)은 하나님의 뜻 完成者이므로 이 한 存在는 死亡하여서도 四十日 期間과 같은 사탄 対한 四十日審判을 받아 死亡한 者와 같은 死亡이 아니고 四十日을 完成한 成事者로서 하늘 뜻 四十日 期間上에 處하여 死(사망한) 者라고 하는 表示로 四十日간 防腐劑를 바르게 한 뜻이 있음이다. 이리하여 四十日 되는 死亡期(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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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防止한 中心存在가 되는 根本 意義로서 四十日을 보게 한 바이다. 四十日은, 卽 사탄 追放 期間이면서 生命의 蘇生 期間이다. (여기까지) 야곱까지 延長을 보아서 애급으로 出発하게 되어 한 하나님의 基台를 잡게 되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의 延長은 우리는 生覚하면 怨痛한 期間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이 期間을 두고 하나님은 約束의 祭物에 失手한 全部를 淸算하여 사탄 分立을 成事할 때까지는 어느 곳까지냐 하면 야곱의 食口가 밧담 아람의 라반에게서 얻은 所有를 가지고 가나안 땅에 돌아온 後에 뜻 成事를 始作하는 바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 야곱의 三代란 것은 하나님이 뜻하는 約束의 祭物 中에 三祭物로 表示된 바는 蘇生부터 長成으로 長成부터 完成으로 하는 眞理段階를 보여주는 바였으니 아브라함이 뜻을 (合意케) 成事하였으면 三代가 없었던 바는 事実이다. 아브라함의 失手로 因하여 三代 後에 完成한 바도 全(모든) 하나님의 뜻을 이 三代的 段階로서 찾고자 하는 厂史的 眞理路程 全部로 表示함을 始作하였다. 그는 失手로 因하여 分立을 보아서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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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야곱으로 하여 뜻을 成事한 터는 眞理路程에 対한 基本的 表示로 展開를 보게 되었다. 卽 아브라함은 아담格 상징으로 이삭은 예수의 한 상징으로 야곱은 완성의 상징으로 됨이었다. 예수는 이삭과 같은 立場임에 사람만 믿었다면 죽음이 없이 야곱과 뜻을 合할 수 있는 것이 目的이었다. 이삭도 죽음을 면함이 뜻을 세우심으로 免한 바와 같이 될 바였다. 그러나 基台를 잡지 못하니 未成事할 수 있는 表示的 一代 復帰厂史와 모세로 因하여 民族復帰路程 失手로 因하여 十字架까지 關聯을 가진 바이다. 그런고로 뜻의 完成者는 야곱이었다. 야곱이 뜻을 成事하기 爲하여서는 第一次 가나안을 떠나는 生活이 야곱 앞에 있었다. 卽 長者 基業을 取하고는 야곱은 基業을 成事할 者로서 라반의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여기에 야곱 앞에 展開는 全部가 後日에 예수가 할 使命的 表示로 되는 바는 한 뜻 基台 成事는 야곱이므로 야곱은 뜻 基台 完成이 있어야겠으니 야곱은 하란 生活의 始作을 보는 바다. 여기서부터 가나안 復地까지는 全部가 이스라엘이 나아가야 할 表示的 路程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하나님 뜻의 基台가 되어야겠으니 한 一代에서 하나님 뜻의 全部를 表示한 厂史로 展開할 意義로 보는 바다.
그런고로 아브라함의 三大祭物은 아브라함을 蘇生으로 하고 사탄 対하여 長成的 이삭이 始作을 보고 야곱이 (始作으로) 路程 完成이니 이 厂史的 三大祖上은 人類에 対한 하나님의 厂史的 全部를 表示하는 바로 展開를 보여주심이다. 그것은 祭物의 全部는 全人類에 対한 하나님의 摂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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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로 失手의 復帰는 全人類에 対한 한 表徵的 事実로 展開를 보아야 되는 바이다. 그러기에 야곱이 一代 가나안復帰이며 全部는 가나안을 떠난 이스라엘百姓이 애급 四百年 生活과 相対되는 基本 一代 복귀厂史다. 이 야곱의 가나안 復帰路程은 이스라엘 全民族이 가나안 복지로 本되는 정예路程이다. 이리하여 야곱의 復帰路程에 야곱이 뜻을 成事하게 하는 에서가 있었다는 바는 아담의 아들 가인과는 反対로 야곱을 対(함이 始作을 보니 基本적으로 가인이 아벨的 根本 뜻을 合意 본 셈이므로, 그러기에 根本적으로 아담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뜻에 속한 것과 같은 完成을 보)니 뜻 성사를 보는 바다. 야곱은 가나안 땅을 찾아가게 되는 바였다. 그때 에서가 야곱을 (対하여) 反対하여 怨讐示 하였다면 하나님의 뜻 成事에 큰 問題가 될 바였으나 에서가 야곱을 歡迎하며 에서도 後日에 하나님께 (対하여) 順從의 한 間接的 基本을 (잡아) 세웠다. 그런고로 에서의 後孫은 가나안 땅에서 怨讐 対立이 안되고 가나안 땅에서 基業地 所有를 繼續한 原因을 세우는 基台가 에서가 야곱을 対하여 歡迎한 結果로 가져 온 바다. 그러니 야곱의 가나안復帰는 이스라엘民族이 애급生活로부터 가나안復地로 오는 한 本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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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그런고로 야곱이 하란生活路程에서 対하는 라반이란 存在는 사탄의 対像存在로서 야곱의 全部를 害하여 自己의 慾望을 充当하려고 하는 者였다. 라반은 하나님께 屬하지 않고 偶像 崇拜者였다.(창 31/19) 이리하여 하란生活에서 財物을 取하여 가지고 가나안 땅을 向하려고 할 때에 라반에 対하여 야곱이 取할 수 있는 自由 三日(창31/21~22)이 있었던 바다. 이 三日間을 中心하고 라반에게서 얻은 全(모든) 所有를 分立하게 하여 所有权으로 세우신 바이다. 그리하여 라반은 三日 後에야 길르앗 山에 다달았으나 하나님이 許(허락)하지 않으므로 自己 뜻을 成事하지 못하고 自己의 偶像을 가져간 것을 찾다가 라헬이 其 父(아버지)에게 말하기를 自己는 偶像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駱駄 鞍下(안장 아래)에 두고 타고는 至今 딸은 脛水가 適出(흘러 나와) 起(일어)나서 歡迎하지 못 한다 하여서 偶像을 라반이 찾지 못함에 뜻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야곱한테 攻擊을 당한 바였다.야곱에게는 레아와 라헬 二妻(두 아내)가 있었다. 그 뜻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対하고자 하는 뜻 中에는 (하나님의) 二(두) 女性이 있다함을 보여줌이다. 야곱이 뜻 아닌 레아的 女性과 (야곱이) 뜻이 中心인 라헬的 女性이 있다는 表示로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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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이었다. 여기에는 根本적으로 해와가 잃어버린 한 찾아야 할 根本的 女性을 바라는 것이 表示였다. 그것은 라반의 뜻을 이룬 레아의 存在와 한가지 表示였다. 이것은 먼저 잃어버린 全人類에 対한 墮落의 始作 母(어머니) 해와로 表示한 바이다. 라반이 레아를 주고는 七日期間을 채운 後에 라헬을 妻로 삼게 하였다. 이 七日期間(창29/28) 日數는, 卽 노아가 鴿(비둘기)를 내보내듯이 한 섭리 完成的 日數로 되는 바이다. 그리하여 야곱은 뜻을 成事하고서야 가나안 땅으로 帰還하는 바였다. 그리하여 라헬을 찾은 바는 하나님이 後日 잃어버린 해와를 찾아 根本적으로 뜻 成事할 目的을 表示한 바였다. 그런고로 레아 子(아들)과 라헬 子(아들)이 合하여 뜻 完成을 表準한다는 全世界 人間을 찾아야 할 根本 目的을 表示한 바였다. 또 여기에 라반이 行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사탄世界에 不信으로 因하면 이와 같은 야곱의 目的이 二(두)번 만에 成事한 것과 같이 예수도 이와 같은 한 完成을 成事할 바의 뜻을 表示한 바였다. 그리하여 야곱과 合하여서 아버지 라반을 対하여 선 妻(아내) 라헬의 態度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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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야만 後日에 하나님의 뜻이 完成을 본다는 한 表示로 되었다. 라헬이 萬一 偶像을 아버지한테 보였으면 야곱과 全部는 큰 未成事를 가져오는 問題로 되는 바이나 라헬이 한 勝利를 가져온 中心은 脛水로 因하여서 勝利한 바와 한 가지로 야곱의 妻 라헬이 말로 因하여 偶像을 없에게 한 바와 같이 後日 하나님의 뜻 路程에 이와 같은 女子의 脛水로써 사탄 全部를 勝利하는 基台가 始作한다 하는 內容을 表示한 바이다. 이것은 라헬의 態度와 같이 第二次 해와로 因하여 사탄을 屈伏시켜 뜻 完成을 한다는 한 勝利的 表示였다. 이 야곱 一代의 展開가 예수의 路程으로 始作된다는 것도 한 表示로 된 바다. 이 야곱이 全(모든) 目的의 成事는 애급 路程上에 다시금 始作의 本으로 나타나서 하나님도 사탄을 対하게 하는 根本이 있는 바이다. 그러니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全(모든) 하나님의 厂史的 路程을 表示한 存在들로 나타났다. 아브라함은 아담이 失手한 것을 이삭으로 復帰한 바와 같은 예수의 祭物 表示로 不信하니 十字架로 始作하고 야곱과 같은 再臨主(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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格 成事로 完成되는 한 表示로 된 者들이니 하나님을 対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対像者인 뜻의 摂理를 表示한 存在들이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延長된 後日의 全部를 表示한 基本들이니 信(믿음)이 基本이 되는 바가 成立 되니 信(믿음)의 祖上이라는 基本 意義가 있다는 바를 말한 바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뜻의 路程은 旧約役事 中에 全部 表示하여 맞추고자 함이 根本으로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은 야곱 成事부터 할 바를 모세부터 始作한 바다. 모세는 야곱이 根本目的을 完成하여야 할 表示的 路程으로써 後日 예수의 第二責任路程을 表示로 하면서 하나님의 直接 責任基台를 잡은 路程의 始作을 보는 바다. 그런고로 모세 亦是 야곱의 繼承的 成事로써 出発하심이 出애급 노정이다.
모세= 아브라함 + 子孫 = 祭物 찾음 = 하나님이 取하여 역사.
그리하여 예수의 本이 되는 路程을 하나님과 合하여 成事하여 놓았다. 그런고로 야곱이 나간 곳을 完成을 本으로 모세는 出発하게 되었다. 이 모세의 本이 될 수 있는 路程이 完成을 始作하였기에 信(믿음)의 祖上들로 서게 되었다. 이리하여 예수 앞에도 이와 같은 完成을 目的하고 나아가야 할 表示의 路程으로 모세도 出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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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는 바이다. 이와 같이 摂理한 바의 根本 本意는 사탄 対한 四十日 完全復帰 問題로 帰因하는 바이다. 이 모든 어려운 役事 始作의 延長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모세도 애급 宮中에서 잘리게 하는 것도 択한 百姓을 第二次로 노아 後에 사탄한테 빼앗겼으나 사탄한테 주었다가 다시금 사탄을 対하여 反対路程을 세우려니 모세 亦是 四十年 時(기간)을 바로 宮中에 있다가 四十才(歲)가 되매 하나님의 百姓으로 出発하게 함도 이 根本 四十數 始作의 如何가 根本 뜻 成事의 目的이었기에 모세 亦是 四十才에 애급 対하여 反対하는 바이다. 모세가 四十才를 바로 宮中에서 全部를 잘 有持한 後에(사도행전 七/23) 하나님은 択하여 또 四十年間을 두었다가 役事하게 되는 바이다. 모세가 바로에 対해 出発한 時(시기)는 八十才였다.(출7/7) 이와 같이 四十數를 두고 役事한 것은 四十日數를 잃어버린 것과 같이 되었던 것은 찾아서 탕감을 定하려니 四十才에 択하는 摂理를 始作하게 하여서 八十才에 成事로써 모세를 세워서 役事시킨 바이다. 이리하여 再出発하는 모세가 勝利路程를 잡고 나아간 바는 四十日 復帰의 目的 完成이니 四十年 後 四十年 하늘 뜻의 準備期間으로 対하게 한 바이다. 그러니 이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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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十年간 애급이 바로한테 준 바는 全(모든) 이스라엘 百姓을 바로가 支配하니 基本 四十日을 잃어버린 것으로 因하여 四百年이란 年數로 보았으니 모세는 이 四十日을 사탄으로부터 하늘 四十數로 찾아 세워야 겠으니 애급 四十을 주었다가 하늘 四十으로 탕감하여 하늘이 基本 四十日 數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잡고 나서는 樣(양상)이니 애급出発(출애급)이라는 始作을 보는 바이다. 그러니 이스라엘百姓은 四十日을 全体的으로 完成하여야 하는 바는 이스라엘 全部가 四十日을 完成하여야만 노아審判의 根本目的을 達成한 하늘 百姓으로 보는 바 같으니, 卽 根本적인 하나님의 創造本意인 말씀을 復帰하겠으니 모세는 이스라엘百姓을 中心하고 根本 뜻 成事의 基本 言(말씀) 成事의 約束을 받게 되는 바이다. 卽 四十日 晝夜를 通하여 禁食하여서라도 成事할 目的으로 되니 모세는 四十日을 完成하려니 禁食하여 四十日 根本審判으로 根本復帰가 目的이니 四十日로 因하여 言(말씀)에 対한 二(두) 石板을 받음이다. 이것은 무엇이나 四十日의 完成이 다시금 成事한 基盤이 되는 아담 해와의 成事를 完成할 本이라는 것이 始作을 보는 바였다. 그리하여 全(모든) 百姓은 말씀과 하나 되어야만 뜻 完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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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곳으로 나아갈 바가 根本인데 나아가지 못하게 되매 四十日에 対한 第二次 完成도 다시금 未完成을 본 바와 같이 되니 이스라엘 百姓에게는 다시금 苦痛數 四十數는 남아지게 되었다. 四十數 未完成은 再創造 復歸 未完成數인데 이스라엘 百姓이 가나안 땅을 앞에 놓고 偵探軍이 가서 정탐한 날 四十日이 最後로 이스라엘 百姓이 全(모든) 뜻 成事냐 未成事냐 하는 간격을 둔 対峠回數가 四十日이었다. 이 四十日을 두고 (한) 全部를 믿고 나아가면 根本적으로 四十日은 勝利의 基本이 될 날이었는데 이 정탐 四十日을 잘 信(믿)고 넘지 못함과 같은 結果로 나타나니 昿野 四十年이 고역의 始作을 본 바였다.(민수기 14/30~34) 이리하여 四十日 基本은 完成하지 못하고 四十日 完成으로 바라보던 全(모든) 百姓 代表者는 다시금 사탄 所有物이 되어 昿野에서 四十年間에 死亡하는 바가 始作 된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뜻 路程에서 四十日의 勝利的 目的을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 百姓이 찾아 세워야 하는 重大 期間으로써 남아지게 되었다. 四十日을 세우는 날이면 사탄 追放의 날이라는 事実이다. 그러므로 四十日이라는 날짜는 이스라엘 百姓 앞에 찾아 세워야 하는 날이다. 이것을 탕감과 同時에 完成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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摂理路程의 한 뜻으로 되었다. 모세 四十日 目的을 未達成하여서 사탄은 如前히 侵入하여 全(모든) 目的의 破壞로 나아가니 하나님은 다시금 엘리야를 세우심이었다. 엘리야는 사탄을 全滅시키기 爲한 代表的 存在로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알神 八百余를 滅하고는 四十日 晝夜로 호렙 山까지 가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모세 四十日에 対한 勝利奌을 完結 짖는 한 表示로써 엘리야 호렙 山까지 四十일 期間이 있음이었다. 이리하여 엘리야로부터 노아審判 四十日을 完成하는 同時에 하나님이 基本적으로 出発할 수 있는 터를 造成하기 爲한 總決戰者가 엘리야였다. 그것도 百姓이 不信, 不順, 不侍로 因하여서 사탄은 侵入의 延長을 보아서 메시아 前까지 当到하겠으니 하나님은 四十數 十進倍數年으로써 四千年 期간인 四十數 延長으로 因한 메시아 時(때)까지 侵入하여 役事하겠으니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셔서 目的 成事를 予告함이었다. 이 엘리야라는 存在는 세례 요한으로 始作하여 사탄 全滅 目的을 完成하여야 할 엘리야的 目的 達成을 못한 셈으로 되니 예수 앞에까지 四十日에 対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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厂史的 탕감 課業이 延長을 본 바이다. 그런고로 이것을 탕감하기 爲한 總結算期가 예수 四十日 禁食期間인 昿野生活이다. 이리하여 勝利함으로 審判의 目的은 完成할 基台는 잡았으나 사람이 合하여야만(누가4//13참조) 成事할 예수 앞에는 未成事란 結果로 因하니 四十日에 対한 未完成을 본 바와 한가지로 되었다. 그러니 十字架로 因하여 사탄 対하여 勝利를 目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敗한 듯 하나 四十日間을 찾을 수 있었다는 目的을 完成할 수 있다는 바는 十字架 後로 因하여 예수 앞에 復帰되면서 基本 完成의 터를 始作하여서 出発의 榮光을 본 바다. 예수가 十字架 後 復活하여 四十日期間의 成立을 보아서 하나님의 基本 四十日 노아의 根本적인 사탄 追放의 目的을 成立하여 놓은 바가 根本 目的으로 하나님의 摂理路程에 四十日 期間이 問題로 되어왔던 바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厂史的 모든 것의 完成者로 뜻 出発의 中心存在로 되는 바이다.(*51. 10. 26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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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을 복귀하고자 한 섭리로정의 근본 의의
인간세계에 해와로 인하여 타락이 시작하여지니 그때부터 인간세계는 비원리적 존재에 속하여 나오는 반면에 하나님은 원리적 복귀로써 태세를 취하여지게 되었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원리적으로 직계의 혈대는 지금까지 섭리의 한 소망으로 남게 되고 그 직계적 혈계는 비원리적으로 시작한 바가 사실이다. 이런 근본 뜻을 다시금 찾아 근본 혈계를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본의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타락된 인간일 망정 포기하지 못하고 원리적 복귀원칙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계속되는 역사를 본 바를 논한 바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아들 중 가인과 아벨에 대한 제물을 받는 근본 뜻도 알 줄 안다. 가인은 사탄 첫 혈통의 표시자요, 아벨은 아담이니 종적으로 해와에 대한 표시자이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찾을 수 있는 자임으로 하나님은 다시금 찾고자 할 적에 첮 생산자보다 다음 자 아벨을 사랑적으로 대한 원인은 알 바이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을 받게 되는 이유는 미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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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 있다. 그것은 그 시대적으로는 먼저 알 수 없는 원리를 복귀하고자 하는 역사적 뜻의 성사를 볼 바가 되지 못함으로 지금까지 미지로 되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중심하고 찾지 못한 바도 비원리적 존재가 먼저 한 주인격 상대로 되었기에 한 주인 상대의 원리로 된 창조적 원리가 있기에 아담 해와로 인한 복귀를 못하고 가인과 아벨로서 이성분립를 보아 순종과 불순종을 작정하게 하는 표정물이, 즉 아담 두 아들의 제물인 바다. 가인의 제물은 안 받은 바는 사탄적 생산 혈계의 결실 존재였음으로 가인의 제물보다 아벨의 제물을 받음이었다. 아벨이 더 성심을 다 하였다는 바는 성경에도 없는 바이다. 이 근본적 원리가 이런 원리로 되어 있는 바를 알게 될 때에 근본적으로 타락의 근본에 대하여 내 발표가 정론임을 알 바다. 가인도 아벨에 대한 반격이 없었으면 다시금 기쁜 복귀로 될 바였으나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늘 대하여 반격의 시작이 있으니 하늘 뜻의 파괴를 시작하게 하는 기원점을 시작한 바이다. 만일 가인도 아벨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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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들었으면 하나님은 사탄에게 소유물이란 분립을 防止하였을 것이었다. 그런 입장에 서 있는 가인 한 자체의 행동이야말로 인간에게 제일 슬픔의 시작이 기점을 짓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아벨을 죽이니 하나님은 아벨 대신 셋을 주어서 섭리를 다시금 세우고자 하였다. 셋을 주어서 역사를 경과하는 도중에 셋 자손 역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가인 자손이 좋아하는 사탄편 쪽으로 가니 전인류는 사탄의 소유라는 비원리세계를 조성한 셈이다. 그러니 이를 청산하고자 뜻의 사람을 택함이 노아였다. 노아는 그 시대적으로 하나님의 소망의 존재이면서 그 시대 세계의 인류보다 귀한 소망의 존재였다. 노아를 중심하고 하나님은 뜻의 인간을 조성하고자 하니 전세계에 모든 것을 분립하여 하늘편 쪽으로 분별시키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니 사탄 소유물인 불순종자와 합하여 전멸케 하는 바였다. 그 목적은 불순종자의 소유물을 세계상에서 없애고자 함에서였다. 그리하여 비원리의 주인격인 사탄을 근본적으로 추방하고자 함에서 시작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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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자기의 소유물만을 세계상에 시작하고자 함에서 상대를 쳐서 취함이 노아 심판이다. 이 심판은 무슨 의미냐 하면 창조하였던 근본 원리적 입장을 복귀하고자 함에서 시작이라는 바는 사실이다. 먼저 아담 해와로 인해 사탄의 침입을 받은 만물은 사탄의 피로 인하여 하나님과 떠난 것이므로 전부를 청산한 바이다. 노아를 택하심은 전부를 다시금 찾아 세우는 모양으로 노아의 방주에 모든 생물을 노아에게 준 바이다. 이것은 제2창조이상의 시작이 목적이었다. 이 노아가 하나님의 뜻을 성사하여야 할 의무적 입장이란 바는 말할 바 없다. 이런 노아는 인간 제2조상으로 계대를 잡고자 하는 기반 공작은 어찌되었나 하면 함의 행동으로 사탄이 하나님 앞에 자기의 혈통적 증거격으로 서니 하나님 앞에 자기의 혈족이 있음을 세워서 다시금 침입하여 취하게 되니 함이 가나안의 아비로 되는 바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나체로 인한 행동으로 시작함이다. 이것이 지금 본다면 좋은 행동 같은데 왜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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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이 되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행동인가는 두말할 바 없이 해와의 타락의 근본을 증거한 사실인 근본과 합하는 혈연적 관계로 표시하였기에 사탄의 침입은 또다시 가나안의 아버지격으로 함을 통하여 시작을 본 바가 근본이었다. 그렇게 되니 하나님이 대심판한 목적은 제2차적으로도 근본 시작을 보아 출발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있어서 찾고자 하는 모든 목적을 잃어버린 반대 목적이 결실한 셈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심판은 하였으나 심판하기 전과 같은 시작점을 본 것으로 되니 하나님은 근본 목적과 요구를 다시금 찾아야 하게 되었다. 즉 심판할 적에 하나님은 40일 주야를 두고 심판하였다. 이 40일은 하나님의 뜻 성사의 시작을 잡는 기본을 작정하는 기간임은 사실이다. 이 40일에 대한 목적은 사탄 전부의 추방이 목적이었다. 이 사탄의 추방 목적은 함으로 인하여 또 다시금 침입 기대를 잡고 하나님의 근본 뜻을 미성사로 시작을 본 셈이다. 하나님의 40일 심판은 무효과로 된 바로 되었다. 40일을 뜻 맞게 찾으면 근본목적 성사를 볼 바였는데 40일을 미성사한 양상으로 나아가니 40일의 목적은 전부 잃어버린 목적으로 시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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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본 바이다. 하나님께 있어서 40일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이 되었으니 다시금 뜻을 세우는 길에는 40일이란 근본 목적 성사가 최고 목적이면서 이것을 찾아 세워야만 뜻 성사란 목적의 완성이니 이 40일을 중심하고 사탄 분립을 작정하기 위한 바이다. 이 40일의 사탄의 침입을 보니 잃어버린 바와 같이 되었으니 하나님은 이 40일을 사탄 대하여 찾아 세워야 하는 한 분기점으로 남아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40일을 중심하고 섭리의 시작은 언제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노아의 40일 기간이, 즉 심판의 모든 목적이니 이 40일이 끝났을 때에 행사는 하나님이 창조하던 완성을 표준한 때와 한가지로 출발하고자 하셨다. 노아는 40일을 지난 후에는 비둘기를 내보냄이었다. 이것은 창조 받은 세계에 사탄이 먼저 시작하였던 바를 다시금 찾아 성사할 표시의 상징이었다. 즉 비둘기를 내보냈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창세기 8/7에 보면 비둘기는 지상에 물이 마르기까지 왕래하는 지라 하셨다. 먼저 내보낸 비둘기는 왜 노아한테 돌아오지 못하고 이 모양으로 행하는가 하면 먼저 사탄이 지금 이와 같이 행한다 하는 표시로써 비둘기를 내어 보내심이었다. 사탄은 물로 심판을 받은 수면 위를 다니면서 쉴 곳을 찾고 있다는 한 표시로 됨이 비둘기를 내보내심이 한 상징이었다. 다음은 비둘기를 내보냈더니 비둘기는 지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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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인하여 발 붙이지 못하고 다시금 노아 방주로 돌아오니 노아가 손 내밀어 거두어 들이고(창8/8~12참조) 7일을 기다려서 비둘기를 내놓으니 저녁무렵에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를 입에 물고 들어오는 지라. 그후 또 7일을 지나서 비둘기를 놓아주니 다시금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비둘기로 인하여 나 보내서야만 비로소 완전히 지상을 찾아서 번식할 수 있는 배 없이 직접 살 수 있다는 한 표시로 되어 있다.
이 표시는 무엇이냐 하면 타락 때부터 진리 전부에 대한 복귀의 한 표시로 되어 있다. 첫 번 비둘기는 제1차 아담이 시작을 보려고 하였으나 비둘기가 물로 인하여 돌아온 것과 같이 그 영이 하나님 앞에 돌아온 바와 한가지고, 즉 노아가 손을 내밀어 비둘기를 받아들이심과 같이 아담의 영을 받아들이심이었다. 비둘기를 방주로 받아들인 것과 같이 그 방주는 하늘 전부의 표시였다. 즉 3층천 표시로 된 바였다. 방주도 상, 중, 하로 된 바도 하늘 3층천 표시로써 기인한 바다. 다음 비둘기는 2차아담 예수를 표시함인데 예수는 아담의 영이 보내심을 받아 땅을 찾아 번식지를 찾고자 하였으나 감람나무 잎만 물고 왔다 하는 바는 예수가 와서 뜻을 성사하려고 하였으나 땅이 아직 받을 수 있은 땅이 못 됨으로 찾을 수 있는 약속을 세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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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성사한 표시로 된 바이며 비둘기는 완전히 뜻 성사의 시작을 완성하신다는 한 표시적 내용을 보여주심이다. 그런고로 진리 복귀에는 소생부터 장성으로, 완성으로 한 목적을 달성한다는 만우주의 창조원리를 표준하였기에 이렇게 표시된 바이다. 하나님이 7일의 간격을 둔 바는 첫 번도 완성하려고 한 것이 연장되니, 즉 7일이 연장되니 이런 간격을 두어 역사하심이다. 제1차도 한 기간을 두고 한다는 것이고 다음 번도 미성사면 한 기간을 두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뜻은 제1차비둘기적으로 성사하고자 하였으나 땅은 사망권에 잠겼기에 돌아왔고, 제2차로 성사하려고 하였으나 땅이 받지 못해서 돌아오고, 제3차만에는 아무리 하여도 성사한다는 한 한계를 표시함이다. 그런고로 성사하지 못한 바는 하나님이 미성사케 한 바가 아니고 땅들이 받들지 못함으로 연장된다는 한 표시로써 제1차, 제2차, 제3차로 연장된다는 바를 알려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비둘기가 돌아온 바와 한가지고, 제2차아담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는 땅이 받지 못하여 약속만 성사하고 돌아오고, 제3차는 아담이 와서 완성한다는 뜻이므로 3차비둘기는 돌아(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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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음은 뜻 완성할 바를 보여주심이다. 이리하여 노아는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으므로 자신의 몸이 지상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과 한가지로 하나님도 3차아담 재림주로 인하여 지상에서 창조이상생활을 시작하여 직계적 세계를 조성할 바를 표시하는 바가 목적으로 되었다. 그런 목적이 근본인데 노아의 아들 함으로 인하여 다시금 목적의 파괴를 시작하는 비원리적 존재를 유인하니 하나님의 근본 40일 심판의 목적은 불성사 되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다시금 하나님이 섭리하는 혈통 계대에 사탄 침입의 종적을 보지 않게 하기 위하여 400년 연장을 보는 바다. 그 근본 뜻은 40을 중심하고 사탄 대립의 성사를 시작하였으니 그 기본 40수가 기인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40일수를 기본 복귀하여 다시금 성사하려고 하니 40일을 가지고 서나 四十年을 가지고 서나 안되겠으니 400년으로 연장시켜서 400년 후에야 본격적으로 제2인간조상이 성사할 믿음의 기본성사인 노아의 믿음의 완성기대를 아브라함을 택함으로 시작하였다. 이 믿음을 세우심은 아담의 불신으로 인한 바이므로 다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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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그 기대를 찾아 세워야 사탄을 대할 수 있는 기본이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노아의 근본 뜻인 믿음의 계승 완성자로 택한 바이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는 근본 의의가 있는 바다. 왜 아브라함을 택하였나 하면 노아가정으로 택함에서 실수하였으니 아브라함 한 자체로서 시작하고자 함이 목적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믿음의 기본을 세울 수 있는 때까지는 어떤 경로를 밟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이 흉년을 당하여서 아브라함은 애급으로 내려간 지라. 그 당시에 아브라함의 처 사라는 아름다우매 염려하여서 남매로 한다는 약속과 동시에 애급에 갔다. 이 사라는 아브라함의 처로 동생의 입장에 서게 됨도 아담 해와 입장인 큰 원리적 사실을 찾아 세우고자 함에서다. 그것은 애급은 사탄 대신국인데 그 국왕 바로는 아브라함의 처를 자기가 취하여 처로 하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이 바로에 대하여 아브라함에게로 찾아주니 바로는 아브라함에게 소유물을 주어서 돌리심은 하나님으로 인한 연고였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뜻을 성사하는 노정 중에 제일 문제는 애급까지 가서 처를 소유한 바와 같이 하나님도 근본적으로 해와를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빼앗으려 한 바를 다시 찾는다는 한 표시를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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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시작한 바와 같이 원수의 모략 중에서 하나님은 해와를 찾아서 복귀, 땅에서부터 뜻 성사함의 기대를 조성한 바와 같이 하나님도 하신다는 근본 뜻이 있음이었다. 그후 아브라함은 애급에서 가지고 온 소유를 기본으로 하여 뜻의 기본을 잡아서 하나님의 뜻을 성사할 기본을 잡았다. 이것은 만물 전부를 취하여 뜻의 기대로 한다는 뜻이었다. 그 다음은 롯이 잡아간 원수를 대하여 승리한 후에야 아브라함은 뜻 성사의 시작이 결정 되는 바다. 이것은 택한 자 전부를 복귀한다는 뜻이었다. 이런 기본이 완성되니 아브라함은 약속에 대한 표시물로서 3대제물로 하나님과 첫 조건에 대한 성립의 기대를 완성하는 바였다. 그런고로 아브라함은 사탄 소유의 귀한 자와 같은 데라의 아들을 빼앗아내었음으로 사탄은 아브라함이 뜻하는 하나님에 대하여서 아브라함이 불순된 무엇이 있게 되면 소유하고자 하여 아브라함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그때 마침 아브라함과 하나님과는 중대한 약속의 성립을 시작하게 되니 사탄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될 터를 시작함으로 이때 사탄은 하나님에 대하여 대립하여 서게 되었다. 만일 아브라함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제물을 드렸으면 아브라함부터 기본 기대는 잡아 400년 역사적 연장생활인 애급 생활은 없고 직접 하나님 책임분담 사명으로 볼 바였다. 이 목적은 무슨 목적이냐 하면 아브라함만 완전히 뜻을 성사하면 사탄 대하여 근본적인 추방을 시작하여 40일간 노아 심판(하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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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던 기본 목적은 완성되어서 출발을 볼 바였다. 아브라함이 실수하고 나니 40일에 대한 뜻은 아직 완성적 기대를 잡지 못하였기에 연장적 400년이 탕감시대로 시작을 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 400년이란 연대는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연장을 보아 사탄의 침입을 본 바니 이 400년을 탕감하여야만 노아적 시대의 입장에 입각함으로 아브라함에게서 400년 연장을 보았다. 그런고로 아브라함 자손에게 남아지는 바는 40수가 남아있는 양상으로 되니 40수가 만사를 해결하는 뜻 성사의 완성점으로 남아지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섰던 아브라함은 뜻의 미성사로 인하여 자손이 400년간 고역생활을 봄이 크나큰 화근으로 되는 기간이다. 아브라함의 실수를 청산하여 사탄 침입을 방지하고자 하니 제물표시로 되었던 실체 아들로 인하여서 제물을 대신 찾아 세우고자 하니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서 헌제를 명령하심이었다. 이 뜻을 아브라함이 3일기간을 두고 헌제함의 합의를 봄으로 하나님이 섭리하는 노정이 사탄을 방지하였으나 사탄 역시 이삭에 대하여 선유 소유물이 될 수 있는 제물 소유로 인하여 미련을 갖고 대하게 되니 이삭의 자식 중에 2성적 표시으로 분립하여 하나님은 뜻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야곱이 모친과 합하여 에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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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빼앗는 뜻이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복중에서 부터 서로 싸움으로 리브가는 하나님께 아뢰니 여호와 하나님이 답하여 이르시되 두 나라가 네 복중에 있음이여 두 민족이 네 복중으로부터 나누리로다. 이 족속이 저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하셨다.(창25/23-24) 이것을 보아도 이 실수한 근본을 다시금 하나님은 뜻하셔서 분립하게 하는 역사적 원인이 있는 바이다. 야곱은 약아서가(영급) 아니다. 하나님의 근본 뜻이 이와 같이 사탄이 먼저 제물을 취할 수 있었던 대신 존재인 에서를 두고 야곱은 다음 번이므로 하나님의 뜻 중에서 사탄이 뜻하였던 소유물 전부를 빼앗음을 표시하기에 이와 같은 대립을 보게 한 바이다. 이것이, 즉 후일 예수의 한 역사에 본이 되는 사실들로 되는 것도 알 줄 안다. 이와 같이 하는 바는 사탄이 아브라함의 자식에게 미련을 남기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뜻 성사를 보려고 하는 것을 이삭을 통하여서 야곱에서 비로소 성사하게 되니 아브라함을 대하였던 하나님은 이삭 야곱까지 와서 첫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성사를 보니 여기에 하나님은 3인을 상대하여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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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연장을 본 바의 근본 원리를 갖게 되는 바이다. 그러니 이 3대의 하나님으로 인한 명사가 지금까지 좋은 명사로 된 듯 현 신자는 알고 있지만 크나큰 오해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역사적 하나님편적으로 원리를 중심하고 있다는 바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런 원리로 전부가 사탄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인 동시에 근본적인 타락의 복귀를 위해서라는 바를 알아야 한다. 여기에 야곱부터 애급으로 출발은 야곱이 아브라함의 400년 탕감로정의 출발이 시작함이다. 왜 이삭부터 안되었는가 하면 이삭은 아담과 같이 두 주인 상대의 존재였기에 이삭부터 애급 400년 시작을 못한 바를 논한 바다. 야곱이 시작하였다는 바는 야곱은 근본 뜻 성사를 잡은 자니 야곱이 애급으로 출발하는 근본 원인이 있음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뜻 성사한 완성 존재가 못 됨으로 애급으로 향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이삭의 자식 에서라는 존재는 사탄 상대자라는 서러움이 시작된 바다. 만약 실수가 없었으면 아브라함 자식에 에서라는 존재는 없이 근본 뜻의 시작을 볼 바였다. 그러기에 이삭 자체로서도 40세를 중심하고 리브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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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여 처(妻)를 택함이었다.(창 23/20) 이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시작을 보게 함이었다. 야곱도 40세를 중심하고 에서의 기업(基業)을 빼앗는 기본역사를 시작할 바가 원리로써 짐작하여야 한다. 창세기에 야곱이 40세라는 연령은 없으나 짐작하기에는 에서가 축복을 못 받게 되는 연령, 에서의 40세에 헷 족속 딸을 처로 취하여 이삭과 리브가가 근심하더라 하는 것을 보면(창26/34) 야곱의 연대도 40세를 중심하고 섭리하여야 할 바가 원리로 되어 있다. 이런 40연대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뜻을 시작할 수 있다는 기본을 잡으심은 기본적으로 노아 심판 40일수를 복귀한 기인수(基因數)로 인하여서 이와 같이 시작을 한 역사적 기원으로 인한 바다. 야곱의 사후에 그 몸에 방부제를 40일간 발라 둠은 야곱의 몸은 하나님의 뜻 완성자이므로 이 한 존재는 사망하여서도 40일 기간과 같은 사탄 대한 40일심판을 받아 사망한 자와 같은 사망이 아니고 40일을 완성한 성사자로서 하늘 뜻 40일 기간상에 처하여 사망한 자라고 하는 표시로 40일간 방부제를 바르게 한 뜻이 있음이다. 이리하여 40일 되는 사망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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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방지한 중심존재가 되는 근본 의의로서 40일을 보게 한 바이다. 40일은, 즉 사탄 추방 기간이면서 생명의 소생기간이다. (여기까지) 야곱까지 연장을 보아서 애급으로 출발하게 되어 한 하나님의 기대를 잡게 되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의 연장은 우리는 생각하면 원통한 기간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이 기간을 두고 하나님은 약속의 제물에 실수한 전부를 청산하여 사탄 분립을 성사할 때까지는 어느 곳까지냐 하면 야곱의 식구가 밧담 아람의 라반에게서 얻은 소유를 가지고 가나안 땅에 돌아온 후에 뜻 성사를 시작하는 바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 야곱의 3대란 것은 하나님이 뜻하는 약속의 제물 중에 3제물로 표시된 바는 소생부터 장성으로 장성부터 완성으로 하는 진리단계를 보여주는 바였으니 아브라함이 뜻을 성사하였으면 3대가 없었던 바는 사실이다. 아브라함의 실수로 인하여 3대 후에 완성한 바도 모든 하나님의 뜻을 이 3대적 단계로서 찾고자 하는 역사적 진리로정 전부로 표시함을 시작하였다. 그는 실수로 인하여 분립을 보아서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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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야곱으로 하여 뜻을 성사한 터는 진리로정에 대한 기본적 표시로 전개를 보게 되었다. 즉 아브라함은 아담격 상징으로 이삭은 예수의 한 상징으로 야곱은 완성의 상징으로 됨이었다. 예수는 이삭과 같은 입장임에 사람만 믿었다면 죽음이 없이 야곱과 뜻을 합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삭도 죽음을 면함이 뜻을 세우심으로 면한 바와 같이 될 바였다. 그러나 기대를 잡지 못하니 미성사할 수 있는 표시적 일대 복귀역사와 모세로 인하여 민족복귀로정 실수로 인하여 십자가까지 관련을 가진 바이다. 그런고로 뜻의 완성자는 야곱이었다. 야곱이 뜻을 성사하기 위하여서는 제1차 가나안을 떠나는 생활이 야곱 앞에 있었다. 즉 장자 기업을 취하고는 야곱은 기업을 성사할 자로서 라반의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여기에 야곱 앞에 전개는 전부가 후일에 예수가 할 사명적 표시로 되는 바는 한 뜻 기대 성사는 야곱이므로 야곱은 뜻 기대 완성이 있어야겠으니 야곱은 하란 생활의 시작을 보는 바다. 여기서부터 가나안 복지(復地)까지는 전부가 이스라엘이 나아가야 할 표시적 노정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하나님 뜻의 기대가 되어야겠으니 한 1대에서 하나님 뜻의 전부를 표시한 역사로 전개할 의의로 보는 바다.
그런고로 아브라함의 3대제물은 아브라함을 소생으로 하고 사탄 대하여 장성적 이삭이 시작을 보고 야곱이 노정 완성이니 이 역사적 3대조상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적 전부를 표시하는 바로 전개를 보여주심이다. 그것은 제물의 전부는 전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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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로 실수의 복귀는 전인류에 대한 한 표징적 사실로 전개를 보아야 되는 바이다. 그러기에 야곱이 1대 가나안복귀이며 전부는 가나안을 떠난 이스라엘백성이 애급 400년 생활과 상대되는 기본 1대 복귀역사다. 이 야곱의 가나안 복귀로정은 이스라엘 전민족이 가나안 복지로 본되는 정예로정이다. 이리하여 야곱의 복귀로정에 야곱이 뜻을 성사하게 하는 에서가 있었다는 바는 아담의 아들 가인과는 반대로 야곱을 대하니 기본적으로 가인이 아벨적 근본 뜻을 합의 본 셈이므로, 그러기에 근본적으로 아담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뜻에 속한 것과 같은 완성을 보니 뜻 성사를 보는 바다. 야곱은 가나안 땅을 찾아가게 되는 바였다. 그때 에서가 야곱을 반대하여 원수시 하였다면 하나님의 뜻 성사에 큰 문제가 될 바였으나 에서가 야곱을 환영하며 에서도 후일에 하나님께 순종의 한 간접적 기본을 세웠다. 그런고로 에서의 후손은 가나안 땅에서 원수 대립이 안되고 가나안 땅에서 기업지 소유를 계속한 원인을 세우는 기대가 에서가 야곱을 대하여 환영한 결과로 가져 온 바다. 그러니 야곱의 가나안복귀는 이스라엘민족이 애급생활로부터 가나안복지(復地)로 오는 한 본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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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그런고로 야곱이 하란생활로정에서 대하는 라반이란 존재는 사탄의 대상존재로서 야곱의 전부를 해(害)하여 자기의 욕망을 충당하려고 하는 자였다. 라반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우상 숭배자였다.(창 31/19) 이리하여 하란생활에서 재물을 취하여 가지고 가나안 땅을 향하려고 할 때에 라반에 대하여 야곱이 취할 수 있는 자유 3일(창31/21~22)이 있었던 바다. 이 3일간을 중심하고 라반에게서 얻은 모든 소유를 분립하게 하여 소유권으로 세우신 바이다. 그리하여 라반은 3일 후에야 길르앗 산에 다달았으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자기 뜻을 성사하지 못하고 자기의 우상을 가져간 것을 찾다가 라헬이 그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우상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낙타 안장 아래에 두고 타고는 지금 딸은 경수가 흘러 나와 일어나서 환영하지 못 한다 하여서 우상을 라반이 찾지 못함에 뜻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야곱한테 공격을 당한 바였다. 야곱에게는 레아와 라헬 두 아내가 있었다. 그 뜻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대하고자 하는 뜻 중에는 두 여성이 있다함을 보여줌이다. 야곱이 뜻 아닌 레아적 여성과 뜻이 중심인 라헬적 여성이 있다는 표시로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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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이었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해와가 잃어버린 한 찾아야 할 근본적 여성을 바라는 것이 표시였다. 그것은 라반의 뜻을 이룬 레아의 존재와 한가지 표시였다. 이것은 먼저 잃어버린 전인류에 대한 타락의 시작 어머니 해와로 표시한 바이다. 라반이 레아를 주고는 7일기간을 채운 후에 라헬을 처로 삼게 하였다. 이 7일기간(창29/28) 일수는, 즉 노아가 비둘기를 내보내듯이 한 섭리 완성적 일수로 되는 바이다. 그리하여 야곱은 뜻을 성사하고서야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는 바였다. 그리하여 라헬을 찾은 바는 하나님이 후일 잃어버린 해와를 찾아 근본적으로 뜻 성사할 목적을 표시한 바였다. 그런고로 레아 아들과 라헬 아들이 합하여 뜻 완성을 표준한다는 전세계 인간을 찾아야 할 근본 목적을 표시한 바였다. 또 여기에 라반이 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사탄세계에 불신으로 인하면 이와 같은 야곱의 목적이 두번 만에 성사한 것과 같이 예수도 이와 같은 한 완성을 성사할 바의 뜻을 표시한 바였다. 그리하여 야곱과 합하여서 아버지 라반을 대하여 선 아내 라헬의 태도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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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야만 후일에 하나님의 뜻이 완성을 본다는 한 표시로 되었다. 라헬이 만일 우상을 아버지한테 보였으면 야곱과 전부는 큰 미성사를 가져오는 문제로 되는 바이나 라헬이 한 승리를 가져온 중심은 경수로 인하여서 승리한 바와 한 가지로 야곱의 처 라헬이 말로 인하여 우상을 없에게 한 바와 같이 후일 하나님의 뜻 노정에 이와 같은 여자의 경수로써 사탄 전부를 승리하는 기대가 시작한다 하는 내용을 표시한 바이다. 이것은 라헬의 태도와 같이 제1차 해와로 인하여 사탄을 굴복시켜 뜻 완성을 한다는 한 승리적 표시였다. 이 야곱 1대의 전개가 예수의 노정으로 시작된다는 것도 한 표시로 된 바다. 이 야곱이 모든 목적의 성사는 애급 노정상에 다시금 시작의 본으로 나타나서 하나님도 사탄을 대하게 하는 근본이 있는 바이다. 그러니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모든 하나님의 역사적 노정을 표시한 존재들로 나타났다. 아브라함은 아담이 실수한 것을 이삭으로 복귀한 바와 같은 예수의 제물 표시로 불신하니 십자가로 시작하고 야곱과 같은 재림주(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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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 성사로 완성되는 한 표시로 된 자들이니 하나님을 대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대상자인 뜻의 섭리를 표시한 존재들이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연장된 후일의 전부를 표시한 기본들이니 믿음이 기본이 되는 바가 성립 되니 믿음의 조상이라는 기본 의의가 있다는 바를 말한 바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뜻의 노정은 구약역사(役事) 중에 전부 표시하여 맞추고자 함이 근본으로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은 야곱 성사부터 할 바를 모세부터 시작한 바다. 모세는 야곱이 근본목적을 완성하여야 할 표시적 노정으로써 후일 예수의 제2책임로정을 표시로 하면서 하나님의 직접 책임기대를 잡은 노정의 시작을 보는 바다. 그런고로 모세 역시 야곱의 계승적 성사로써 출발하심이 출애급 노정이다.
모세= 아브라함 + 자손 = 제물 찾음 = 하나님이 취하여 역사.
그리하여 예수의 본이 되는 노정을 하나님과 합하여 성사하여 놓았다. 그런고로 야곱이 나간 곳을 완성을 본으로 모세는 출발하게 되었다. 이 모세의 본이 될 수 있는 노정이 완성을 시작하였기에 믿음의 조상들로 서게 되었다. 이리하여 예수 앞에도 이와 같은 완성을 목적하고 나아가야 할 표시의 노정으로 모세도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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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는 바이다. 이와 같이 섭리한 바의 근본 본의는 사탄 대한 40일 완전복귀 문제로 귀인하는 바이다. 이 모든 어려운 역사(役事) 시작의 연장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모세도 애급 궁중에서 잘리게 하는 것도 택한 백성을 제2차로 노아 후에 사탄한테 빼앗겼으나 사탄한테 주었다가 다시금 사탄을 대하여 반대로정을 세우려니 모세 역시 40년 기간을 바로 궁중에 있다가 40세가 되매 하나님의 백성으로 출발하게 함도 이 근본 40수 시작의 여하가 근본 뜻 성사의 목적이었기에 모세 역시 40세에 애급 대하여 반대하는 바이다. 모세가 40세를 바로 궁중에서 전부를 잘 유지한 후에(사도행전 7/23) 하나님은 택하여 또 40년간을 두었다가 역사하게 되는 바이다. 모세가 바로에 대해 출발한 시기는 80세였다.(출7/7) 이와 같이 40수를 두고 역사한 것은 40일수를 잃어버린 것과 같이 되었던 것은 찾아서 탕감을 정하려니 40세에 택하는 섭리를 시작하게 하여서 80세에 성사로써 모세를 세워서 역사시킨 바이다. 이리하여 재출발하는 모세가 승리로정를 잡고 나아간 바는 40일 복귀의 목적 완성이니 40년 후 40년 하늘 뜻의 준비기간으로 택하게 한 바이다. 그러니 이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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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애급이 바로한테 준 바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가 지배하니 기본 40일을 잃어버린 것으로 인하여 400년이란 연수로 보았으니 모세는 이 40일을 사탄으로부터 하늘 40수로 찾아 세워야 겠으니 애급 40을 주었다가 하늘 40으로 탕감하여 하늘이 기본 40일 수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잡고 나서는 양상이니 출애급이라는 시작을 보는 바이다. 그러니 이스라엘백성은 40일을 전체적으로 완성하여야 하는 바는 이스라엘 전부가 40일을 완성하여야만 노아심판의 근본목적을 달성한 하늘 백성으로 보는 바 같으니, 즉 근본적인 하나님의 창조본의인 말씀을 복귀하겠으니 모세는 이스라엘백성을 중심하고 근본 뜻 성사의 기본 말씀 성사의 약속을 받게 되는 바이다. 즉 40일 주야를 통하여 금식하여서라도 성사할 목적으로 되니 모세는 40일을 완성하려니 금식하여 40일 근본심판으로 근본복귀가 목적이니 40일로 인하여 말씀에 대한 두 석판을 받음이다. 이것은 무엇이나 40일의 완성이 다시금 성사한 기반이 되는 아담 해와의 성사를 완성할 본이라는 것이 시작을 보는 바였다. 그리하여 모든 백성은 말씀과 하나 되어야만 뜻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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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곳으로 나아갈 바가 근본인데 나아가지 못하게 되매 40일에 대한 제2차 완성도 다시금 미완성을 본 바와 같이 되니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다시금 고통수 40수는 남아지게 되었다. 40수 미완성은 재창조 복귀 미완성수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앞에 놓고 정탐군이 가서 정탐한 날 40일이 최후로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뜻 성사냐 미성사냐 하는 간격을 둔 대치회수가 이었다. 이 40일을 두고 전부를 믿고 나아가면 근본적으로 40일은 승리의 기본이 될 날이었는데 이 정탐 40일을 잘 믿고 넘지 못함과 같은 결과로 나타나니 광야 40년이 고역의 시작을 본 바였다.(민수기 14/30~34) 이리하여 40일 기본은 완성하지 못하고 40일 완성으로 바라보던 모든 백성 대표자는 다시금 사탄 소유물이 되어 광야에서 40년간에 사망하는 바가 시작 된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뜻 노정에서 40일의 승리적 목적을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찾아 세워야 하는 중대 기간으로써 남아지게 되었다. 40일을 세우는 날이면 사탄 추방의 날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40일이라는 날짜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찾아 세워야 하는 날이다. 이것을 탕감과 동시에 완성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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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로정의 한 뜻으로 되었다. 모세 40일 목적을 미달성하여서 사탄은 여전히 侵入하여 모든 목적의 파괴로 나아가니 하나님은 다시금 엘리야를 세우심이었다. 엘리야는 사탄을 전멸시키기 위한 대표적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알신 800여를 멸하고는 40일 주야로 호렙 산까지 가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모세 40일에 대한 승리점을 완결 짖는 한 표시로써 엘리야 호렙 산까지 40일 기간이 있음이었다. 이리하여 엘리야로부터 노아심판 40일을 완성하는 동시에 하나님이 기본적으로 출발할 수 있는 터를 조성하기 위한 총결전자가 엘리야였다. 그것도 백성이 불신, 불순(不順), 불시(不侍)로 인하여서 사탄은 침입의 연장을 보아서 메시아 전까지 당도하겠으니 하나님은 40수 십진배수년으로써 4000년 기간인 40수 연장으로 인한 메시아 때까지 침입하여 역사하겠으니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셔서 목적 성사를 예고함이었다. 이 엘리야라는 존재는 세례 요한으로 시작하여 사탄 전멸 목적을 완성하여야 할 엘리야적 목적 달성을 못한 셈으로 되니 예수 앞에까지 40일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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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탕감 과업이 연장을 본 바이다. 그런고로 이것을 탕감하기 위한 총결산기가 예수 40일 금식기간인 광야생활이다. 이리하여 승리함으로 심판의 목적은 완성할 기대는 잡았으나 사람이 합하여야만(누가4//13참조) 성사할 예수 앞에는 미성사란 결과로 인하니 40일에 대한 미완성을 본 바와 한가지로 되었다. 그러니 십자가로 인하여 사탄 대하여 승리를 목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패한 듯 하나 40일간을 찾을 수 있었다는 목적을 완성할 수 있다는 바는 십자가 후로 인하여 예수 앞에 복귀되면서 기본 완성의 터를 시작하여서 출발의 영광을 본 바다. 예수가 십자가 후 부활하여 40일기간의 성립을 보아서 하나님의 기본 40일 노아의 근본적인 사탄 추방의 목적을 성립하여 놓은 바가 근본 목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로정에 40일 기간이 문제로 되어왔던 바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역사적 모든 것의 완성자로 뜻 출발의 중심존재로 되는 바이다.(*51. 10. 26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