創造性 復帰로 된 理想論 (원리원본 제3권 340-358쪽)

훈독왕 | 20220724051212

創造性 復帰로 된 理想論 (원리원본 340-3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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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創造性 復帰로된 理想論

     

本來 하나님의 天地創造할 때에 어는 存在物이라(는 것이든가)든지 全部은 相対할 수 있는 存在를 対케하여 지으심의였다. 被造物 中애 相対할 수 업는格 업시 지은겄은 업다. 直接으로 対한은 相対格이라든가 間接的이라는 相対라든가 全部 얻던 한 相対位置를 잡고 있는 同時에 其相対들로 因하여 自我에 한 完全造成를 保充하는 作用인 联關性으로 天宙에 存在物들은 서로 相対를 要케되였다. 그 相対를 잡으면 그로因하여 自我를 中心하고 全要求에 한 目的成事를 始作하여서 自我아닌 他自我格으로한 対像存在格으로 造成하고저 其目的의 作用를 始作케 된다. 그런고로 相対가 낱아나면 其相対은 나에 한 対像될 수 있는 한 資格를 추궁하게 된다. 相対는 始作이고 対像은 自我를 中心하고 한 目的過程을 經過한 成事格이 卽 対像이다. 어턴 存在든가 全部은 自我이 幸福를 標準하고 対像格를 要케 된다. 相対업는 者은 存在이 価値가 업게 된다. 相対로부터 対像를 完成하면 할사록 其의 価値와 幸福世界를 展開하는 바다. 그런고로 天宙萬物은 全部 한 対像格 体系內에서 完全対像의 한 始作를 보와야만의 理想이란 世界를 보는 바가 事実이다. 어는 社会나 囗家라든가 其目的達成할 수 있는 한 対像境을 떠나서는 発達도 없고 理想도 업는 바의다. 그런고로 存在하는 其自体은 理想境에 한 影体 겄的 한 本理想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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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서 보는 対像位置를 要하은바는 必然的要求다. 그런고로 我와 理想과는 한나면서 한 動作形線를 떠날 수 업는 同格応할 수 있는 한 要求的立場에 處하는 바는 事実이다. 其要求를 充當하여야 하는 우리의 使命이 每日生에 한 課業이다. 이런 課業를 하게하며 達成케 할러니 나로 하여금 其理想에 対하는 向心인 자극과 충동心이라는 維持가 第一重要問題다. 이 마음 업다면 理想과 나와는 벌서 成事할 수 있는 길을 일어버린 바와 한가지다. 그러무로 마음으로 한 対像格位에 있서 그 理想를 成事할라는 충동心이 作用를 갓게하는 겄이 있서서만의 其理想과 나와는 한 応線上格으로 되는 바는 事実이다. 그러니 우리 人間에는 언제나 向上을 標準한 理想를 마음으로 自己도 아지 못하게 더 要求되는 存在格에 있다는 바를 否認못한다. 그런 其作用心要素의 始作과 刺戟과 衝動이 始作를 至今나와 關係上에있서 한 附合応線를 取하여지은 한 不可避한 立場를 体得하게 될 때 나는 벌서 더 높을 수 있는 한 要求에 応한은 第二 存在格에 處함은 事実이다. 그러니 要求에 応할 수 있는 길을 잡고 나아간다면 그는 벌서 幸福과 함끠한 理想에 興味를 体得할 바는 事実이다. 그런고로 여긔에는 벌서 人間은 창조的 原理로 完全를 標準하고 지였는 그 原理的힘이 나와 聯하여 있기에 이 힘에 要求에 対像価値추궁이 人間이 理想를 生覚케하는 原因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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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關聯된 自我라는 存在를 示定한은 곳에는 한 対像格 完成를 要케하은 位置와 立場를 떠나서는 其根本原理와 背馳로 된다. 그런造化로 지음받은 人間이니 이 対像理想를 充當할 目的과 背馳되는 立場에 處하면 自然的原理性品되는 良心的추궁은 必要的으로 나에게 强하게 作(動)用한다. 그겄은 原理脫線이니 이를 保障하기 爲할러는 作用이 良心作用이다. 그런고로 우리 人生은 벌서 나 아닌 한 本体를 中心하고 한 対像格達成이 남어진 한 課業 으로 알어야 한다.이다. 이 対像格完成이 卽 理想에길인 同時에 幸福이 基本인 바다. 나는 하날 対하여서 한 対像格存在로 基本하고 창조받았다. 그런고로 하날 対한 完全対像格 価値者로서 되엇끼에 하날의 要求하는 原理的要求다. 이 要求는 根本힘의 作用과 共通하니 어는곳이나 通할 수 있는 原理要素로 被造物世界은 共이 通하고 있다. 그러니 누구나 한 完全格対像目的을 共通히 갖고있는 바는 事実이다. 이 対像格를 하날対하여 나 自体가 完成하는 同時에 現実界에 있섰서는 相対格를 取하여서 其 目的을 한 回路的路線格인 한 딴 対像体를 成立하여야만의 本 하날의 対像価値와 合할 수 있는 겄으로 되여있다. 我는 하날対하여 対像完成하는 同時에 相対性의 한 対像를 完全成事하여야 만의 根本과 合하는 三位一体格 한 回路를 造成코저함이 창조原性인바다. 그러니 良心的으로는 몸에 指向을 받고 다음에는 이와함끠 우리는 相対性를 取하여 完全하나로되는 対像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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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性存在를 合体하여야만의 基本原理上線에 비로서 일의있는 바다. 그러한 곳에는 근본 하나님은 居할 수 있는 창조原理的基台이다. 이런고로 이 基台造成하는겄이 人間이 最高理想境으로 되여 있다. 그래 人間이 흔이 말하는 理想이 곳은 어디나하면 良心理想要求本体와 合하는 곳이다. 卽 이 奌은 모든 完成된 原理上奌이니 幸福이나 㐂樂이나가 全部가 始作하은 根據地다. 그런고로 基本理想은 卽 하나님과 同居하여 한 原理上에서 萬事를 발아볼 그때가 人間에게는 最高 깁붐이다. 이곳에 處하면 至今까지 찾저 올라온 한 絶頂上에서 處하여 昔日에 下部分向하여 볼 수 있는 그곳를 알게 될 때 모든 새 始作이 生活境地로 한 附与를 始作하니 卽 理想世界다. 그야말로 幸福世界다. 問題는 이 根本始作를 하여야할 使命的存在에 處하니 良心은 나로 因하여 完成에로 재촉하는바다. 이겄이 良心과 肉身이 相衝形体를 取케한은 原因인바다. 我 한나를 中心하고 보아도 幸福할러면 먼츰 마음과 몸이 한나되는 其基奌를 离脫하면 벌서 不滿이 始作한다. 이 角度가 甚할수록 苦痛이 甚하다. 이 角度 합하여서 한 目的基奌上에 뜻 成事를 볼적에는 幸福이란 바는 事実이다. 그런고로 本來人間은 내가 마음과 몸이 完全 한나되어 良心要求를 肉体가 完全히 채와줄 수 있다면은 其곳은 벌서 原理成事이니 其곳은 卽 하나님의 지으신 根本形이니 이곳에는 하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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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실 수 있는 時間이다. 이 時間이 長期間維持할 수 있는 生活形体가 理想生活이다. 그런 生活体를 取한곳이 卽 善한 곳이다. 善한 곳에는 하나님의 같치 하면서 根本幸福要素와 合할 수 있는 始作이다. 이곳를 人生은 일어버렸뜬바다. 이곳를 다시금 찾저서 채우여야할 存在이니 엊지 良心的으로 其目的達成를 추궁받지 않으라.  그러면 하날의 要求成事가 始作하니 나도 또 하날의 줄 바를 받을 수 있는바니 이곳이 卽 하날対한 対像格完成位置니 그야말로 原理帰因 곳이니 幸福이다. 사람은 本來 이와같은 理想原理上奌에서부터 始作함의 根本目的으로 되었뜬바다. 그겄이 墮落으로 因하여 이 基本原理奌上를 일어버리게 되였다. 이와같은 한 根本体에 対하여 한 対像格存在의 本路線인 根本原理를 復帰하여야할 重要한 責任의 누구로 因하여 生起였나 하면 그는 두말할 겄 업시 非原理存在인 한 惡이 主人公 사탄으로 因한바다. 이 사탄 対하여서 至今 우리는 아지 못하고 그저 自身自体의 不足과 未及함에 嘆息를 하게되는 바도 사탄으로 因하여 너머 유린받은 自体가 되어 감각하지 못하는바다. 이와같치 根本対像的位置를 일어버린 人間이지만 그 根本良心은 우리로 하여금 根本位置에 対한 要求를 始作하여 주기를 要한은 바다. 얻던 사람이나 全部가 自己가 第一이란은 한 個性要求를 세우고저 한다. 그겄은 누가 갖지못한 한 個性眞理体인고로 그 要性性品를 어는 곳에서라도 한 相対되는 位置를 잡아 完全한 対像格成事를 要케하고저 한은 第一原理本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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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合할러하는 第一基奌를 잡고저 함에서 始作한다. 이와갗치 根本 한 個性를 中心하고 한 相対始作의 完成인 対像格存在性으로 完成만 하면은 其基台上에는 한 対像格完成으로 原理路線上를 成事하는 原理的目的를 造成하니 그곳은 벌서 根本창조원리로 낱아난바니 善한 겄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通性를 取할 수 있는 幸福이 한 基奌位置인바다. 그런고로 人生世界에는 누구나 自己中心 第一主義로 나아가는 바은 自己로 因하여서 根本基奌上原理位置를 取한은데은 第一갓가운 距离를 自己가 누구보다 더 갓가운 바이무로 他中心하고 成事보담 自己中心하고 個性理想를 成事코저 하여서 自己第一主義로 取케 하는바는 事実이다. 이겄의 蘇生 長成 完成하여 한 目的達成하면은 其 다음은 第二次的対像位置를 널리하여 全体基本目的으로 延長되는 바다. 그런고로 第一自己부터 始作하여 全体에로 完成理想를 協助하게끔 本來人間은 되여있다. 그런고로 사람의 本來 이러한 基本原理上에서 지었기에 墮落은 되였슬망정 自我中心를 主로하는 바는 事実이다. 純수한 良心的으로 善으론 나아가는 곳이라면 누구나가 其한 自体를 合하여 나아가면 언제든가 其基本奌上善를 合하게 되는 바이다. 이러니 우리가 相対를 要케될 때 相対가 된다든가 相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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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않된다든가 하는곳은 벌서 善한理想이 始作인가 않인가 이 決定的解決에 表示로서 보여주는 事実를 증거하은 바다. 相対된다하면은 벌서 対像格位置인 한 곳를 所望케하여 주는바는 事実이다. 그런면 善과 理想成事니 我에게은 큰 깁붐의 始作이니 自己를 中心하고 이런判斷를 짖게 하는 바다. 이런고로 사람은 自己를 달마라하는 相対格存在를 占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예만의 対像成事를 잡을 수 있다. 全人間은 善한 者를 対像하고저 하는 바은 自己의 한 目的達成를 速進시키러고 하는바은 原理로 된 바다. 사람의 根本的으로 自己를 세웠서 大衆에 한 中心되고자 하는 其本心 마음은 我自身의 根本的으로 善하다는 한 根本体다하는 宣言에 表示인바다. 그런고로 이런겄 보아도 나 달마라하는 要求를 세우고저 하는바은 나은 本來 한 善한 標準上存在라는 겄를 宣布하는 겄은 事実이다. 나와 合하면은 善할 수 있다는 겄이다. 이런겄 보아도 벌서 自己은 第一存在善境에 한 表示的力活를 주어서 相対를 잡아 対像을 세웨서 그 善을 直接自己와 連洛(联) 짖고저하는 第一存在善을 目標하는 바는 事実이다. 그런고로 自我란 存在은 第二存在며 其目的은 第一存在이 한 対像格의 存在로 되어야 된다는 바도 原理的으로 감촉받은 바는 事実이다. 의 事実만을 알게된다면은 하나님의 対한 문제도 問題外로 되게된다. 第一存在善과+ 第二 存在善 = 하나님 + 我 = 하나님 + 対像 = 하나님 +(我+対像)自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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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는 表示로 한 規定된다. 第一모츰 問題은 自己다. 내가 모츰 第一存在의 完全対像者成事할 것 卽 마음과 몸이 한나되여 善하여지는 基本奌上自己를 造成할 겄이다. 다음은 이런 自己를 中心하고 第二自我格対像格者完成할 겄이다. 이겄이 始作하면 창조性이 完成된다. 卽 이곳은 男子면 女子가 要求되는 相対로부터 対像 추궁을 要케 된다. 다음은 이겄의 基本的創造性第二対像存在다. 하나님과 사람은 한 몸이(니깐)기 때문에 이런 基本原理로 되여 있다. 그런고로 独身生活이란바은 非原理가 存在하는 惡에 屬한 世界니 그런겄은 있슬 수 있스나 理想時代가 되면 基本原理背馳行動이란 結論이 나온다. 다음은 大衆対하여서도 한 相対으로부터 其 얻던 目的完成할 수 있는 対像格表準하고 나아가지 않의면 안 된다. 그런고로 我가 한은 事業도 이와갗치 나의 한 相対로서 対像格的態度로 対하여서 그 事業目的를 推進하여야만의 善한 하날의 要求하는 善한 者들의 生活事業인바다. 이러한 目的으로한 相対로 하나님은 人生対하여 対像繁殖를 要求하고 사람은 事業通하여 相対로 対像으로 善成事하여서 서게할대 第一存在이 善을 事業体와 自己対하는 어데나 善한 겄으로 하날과 合할 수 있는 길을 造成하는 겄이다. 이러여야만의 全天宙은 根本부터 사람과 한나되며 사람은 萬物世界上까지 한나되게 하는 目的達成하여야만의 하나님의 善히 계시는 발른 삼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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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根本 善理想展開를 第一은 사람의 重要한 位置에서 上으로는 하날 下으로는 萬物 右로는 가정 左로는 社会 또 크게하면 円和世界에로써 根本創造理想造成이 目的인바다. 그런고로 나를 中心하고 自我善으로부터 家庭善으로 事業善으로 이겄이 第一責任完成함이 한나님의 創造한 対像善目的인 바다. 이와갗치 되여야만의 하날과 나는 合하여 生活하는 対像完格者다. 이 目的이 全人類에게 要求하은 하날 第一世界의 要求다. 卽 하나님이 要求目的이다. 世界떠난 하나님은 世界上에 슬대업는 바다. 하나님과= 全天宙은= ①되는 世界가 善世界다. 善은 하나님이시다. 善에는 性分別始作으로 個性完成으로 対性個性完成이 合하여서 한 回路이 造成를 要求하는 根本存在다. 善은 対像位置確保가 要求條件이다. 이와갗치 天宙는 相対性으로 対像으로 單位하고 全天宙까지 善를 造成하고저함이 사람창조면서 天宙창조다. 사람은 天宙中心이다. 사람中心하고 第一存在 하나님 사람中心하고 第三存在萬物이다. 하나님은 사람 通하여 善 繁殖始作하며 그 善를 사람은 個性善의 萬物善까지 造成하여 善에 主管路線를 세우는 바다. 그러니 사람업는 하날없고 사람업는 萬物업다. 사람의 天宙中心이니 사람墮落하니 하날嘆息이 生起고 사람 墮落하니 萬物嘆息生起엿다.(참조 롬八/19) 이겄 復帰事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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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的이 하나님의 摂理이다. 至今 以上과 같은 原理를 보아서 우리 사람은 相対 될수 있는 第一資格成事가 무었 보담도 貴한바다. 내가 하날 対하여 第二存在로써 第一 存在의 한 対像의 要求가 全目的됨은 事実이다. 그러니 相対할수 있는 位置를 取하여야 하겠다.
이런 立場을 取하는 것은 사람은 第一存在의 利用物인가 生覚하여서는 안된다. 이 相対의 要求는 第一存在目的 達成하기 為함은 勿論이나 나로서는 完成하는 基本 完成이란 目的으로 되어 結局은 나 때문이라는 바는 事実이다. 하날의 要求하는 바의 目的은 주기 為한 目的이고 나는 받기 為한 目的이 卽 내가 하날 対한 相対始作으로 対像完成을 為한 바다. 그런고로 하날은 주고저 하나 줄수 있는 相対없으니 그 얼마나 서러우랴 서러움이 生起는 것은 주고받고 할 存在가 없게 되는 것에서 始作이다. 이런고로 참주고 받고 하는 者의 要求로서 対像이 要求되는 바이다. 내가 줄적에 第二 나에게 준다면 거기에 벌서 기쁨이다. 그런고로 子女 対한 사랑은 여기서부터고 男便 対한 사랑도 여기서부터고 社会(事業體) 사랑은 여기서부터고 하날 対한 사랑도 여기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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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갗치 貴한 根本上 自我가 되면 참 받을수 있는 者이다. 上으로는 참주는 者를 갖고 下으로는 참 줄者를 갖었다. 이얼마나 幸福이라 아니하겠는가. 참주고 받을 곳을 所有한 者는 언제나 기쁨의 動力이 躍動하는 바다. 그 表示가 子女 對하여 주고싶고 夫婦는 서로 사랑하고 받고 하는 根本原理인 表示다. 이 모두가 完成은 하날과 合하여야 되는 바다. 하날은 發電所고 우리는 配電所와 充電所와 같고 만물은 需給所와 같은 겄이다. 發電所 있는 配電所 需給地는 原理이나 이 中間 우리되는 配電所, 變電所 없으면 모두가 生命使命이 中斷인바다. 이와갗치 주고받은 變電所 配電所의 位置가 卽 우리 人生이며 나이다. 이런 原因으로 받고 주는데 原理消耗없는 겄를 바란다. 電氣로 말하면 損失없는 겄를 要하는바와 한가지다. 損失이 많으면은 基本 電氣가 消耗된다. 損失은 그 導線物質로 因하여 右左되는 겄이다. 이렀틋시 物質의 力되는 電氣를 잡아먹는 作用이 生起게 하는 敵 作用의 始作은 電氣要素를 反하는 作用을 갖고 있는 存在니 그런 損失을 갖어오는 겄과 同一하게 우리는 電線과 같은 肉身을 갖고 있는 그 自體와 良心과 合하여서 完全하나되면은 良導體作用하는 겄과 한가지고 그러치못하면 不良導體와 같은 副作用 損失을 生起게 하게 하는 겄과 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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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우리는 完全히 주고 받는 對像을 連續的으로 얻던 方面으로 所有한다면은 그는 다시금 主人에게 돌리는데도 損失없는 原理復歸가 成立하는바와 한가지다. 이와갗치 完全히 받고 完全히 주워 돌리수 있다는 것이 第一要求目的인 同時에 善繼續이다.

電氣가 잘되게 하는 것이 電線類에 있는겄과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잘 成事케 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는 바이다. 그러나 잘받으려니 잘 接觸하여 完全導體가 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한 生命의 中心地이며 喜樂의 中心地이다. 生命中心과 喜樂中心은 하나님이시다. 하날 喜樂도 幸福도 모두가 하날사랑 받을 때에 始作이니 第一 要求가 하날사랑 받는 것이 目的이다. 하날 사랑 받으면은 幸福도 喜樂도 始作이다. 完全하날 사랑 받으려면 완전히 받을 수 있는 資格의 成立이 要求되는데 사랑받으려면 받을 수 있는 美가 있어야만 완전 사랑을 줄수 있는 바다. 하날은 주고저 하니 愛이요 사람은 받으려니 美이다. 이와갗은 相對要求成事條件이 始作은 愛였다면 美가 있어야 한다. 愛를 +라고 한다면 美는 -라는 相對存在다. 이것이 完全히 주고받는 것이 善이다.

善=愛+美+(義)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찾고저 하는바는 美의 한 存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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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사람 中心인 同時에 하날 사랑 代身者이다. 예수 보내심은 完全 하날 사랑을 人間들한테 줄수 있는 基礎工作을 始作키 爲하여서다.

예수 愛+ 我 = 善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날 對한 對像格完成 我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我는 하날 사랑 對하여 받을 수 있는 美가 要求條件이다. 完全 사랑 對하여서 完全 美를 相對하여 始作을 보아 完全히 주고받는 一로 되는 對像存在가 이다. 義라는 것은 무었인가 하면은 相對를 決定하여 對像始作을 보아서 이루어 나가는 한 路程敵 要素가 義라한다. 예수도 義人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업다 하심은 自己自身이 義를 세울 수 있는 한 相對者 始作을 보지 못함을 表示한바다. 그런고로 지금 天宙는 善을 完成할려니 사랑과 美가 生起여 義의 한 路程을 지어야만이 하나님이 理想始作이다. 우리가 하날 對하여서 美로워야 하겠다. 그러니 먼츰 原理로 돌라서는 것이 基本目的이다.

 

그런고로 良心理想存在 位置位까지 必要하다. 그러니 良心的이어야 한다. 그겄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한다. 我는 하날 對하여 美여야 한다. 그러면 自然的으로 사랑을 始作한다. 電氣의 한 原理와 같은 겄이다. 完全 (-)가 되면은 자연적으로 (+)는 生起는 겄과 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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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理的으로 美가 完全히 造成되면은 하날 사랑은 나와 하나되는 作用이 始作한다. 이 作用이 始作하여 繼續하는 것이 한 義이다. 이 作用이 繼續하여 完全 合하는 것이 善이다. 作用繼續하는데는 副作用을 이겨야 한다. 이것이 義의 使命位置이다. 義는 善한 路程을 結實하게 하는 要素이다. 例로 表示하면은 善할려고 하기 爲하여 사랑으로 美로 義로가 經過 合하여 一 되는 바다. 하날 對한 사랑 받으려니 아름다워야하는데는 여기에 良心 對하여서 몸을 그 良心에 中心하게 한 維持繼續하게 하는 것이 卽 義다. 그러니 하날은 第一存在 良心을 第二存在 몸을 第三 存在으로 하면은 義는 第一存在 사랑에 對하여 第二存在 良心과 合하게 하는 第三存在몸이 있는 바이니 이 몸을 良要求되로 繼續維持하여 完全 美를 갖게 되어 完全 사랑을 받아 合하게 하는 其 第三 存在를 第一 存在까지 合하게 하는 要求가 義다. 이와갗치 하날 사랑 받으려면 良心만으로 아니되고 몸이 合하여야만이 始作되는 바다. 이러케 우리 사람에게는 三位要素 位를 세웨서 一로 되는 原理 創造性이 있다. 義라는 것은 第三 存在 位置를 第一存在位를 屬하게 하는 基本工作의 實果이라는 바는 事實이다. 義는 몸에서 良心 合하게 하는 要素가 義다. 나를 中心하면은 한 對像을 對하여서 義하면 其 對像이 나와 같이 설수 있는 位置를 造成하여야 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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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業을 對하여서 亦是 나를 第二存在 位置 두면 第三 位置는 事業이니 이 第三 存在位置가 나와 하나의 位置繼續 取케하는 바가 義다. 義없는 곳에는 하날의 美를 造成 못한다. 그러니 하날이 나를 對하여서는 對像本體니 사랑이고 나는 美敵이고 나를 中心하고 對像格者에 對하여서는 내가 사랑이고 對像位置가 美이다. 義는 對像美를 造成하게 하는 平衡要素다. 그러니 義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維持하는 生活이 要求되는 重要生活이다. 義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第三存在가 完成造成이 되어야 되는 한 分立性 對像 造成目的으로 因하여 必要한 바다.
人間社會에서 義가 第一 나와 直接的 關係의 位置에 있는 바다. 나도 먼츰 마음 中心하고는 몸 自身 中心하고는 對像으로 對像中心하고는 萬物世界로 이와갗치 關係的 因緣을 中媒하여 주는 그 自身은 義라는 存在다. 義는 完全美를 造成하는 한 基本에 向하여 移動하는 長成要素이다. 그런고로 完全 사랑과 完全美가 造成되면은 完全義는 造成되는 바면서 善은 完成된다. 例를 들면은 10 사랑을 줄려고 할적에 10 美를 보고 주어야 한다. 10 사랑 받고 10 美를 돌리는 完全 一되는 한 回路를 造成하여야만이 善인 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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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는 完全 사랑에 對하여 完全美를 維持하게 하는 過程이 義의 分擔過程이다. 그런고로 美의 位置는 加減的 움직임이 있는 바이다. 義와 不義와는 한 境界線上에 서 있다. 그런고로 對像格 右左如何로 사랑과 合하여 善成事右左하는 重要位置가 美的 位置이다.
그러니 義는 한 基本線 中心体 모양과 같은 겄으로 나에게서는 作用한다. 줄 때도 對比되는 美를 보지 못하고 주는 하날 存在는 不義인 行動으로 된다. 그런고로 하날 사랑 받는 者라면은 주는 것도 하날化하는 基臺線上에 서서 만이 된다. 그런고로 우리 人生앞에 舊約時代는 行義로 新約時代는 信義로 成約時代는 侍義로서 한 人類生心中心으로 되였다.
例圖를 보면 사랑 線과 美線과는 對像되어 한 回路를 造成한다.

義는 한 中心 B 点이 되어 A, C를 連結한다. 이와갗치 한 線上에서 설때에 善이 成立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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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目的 對像 取하면은 義를 中心하여야 始作된다. 한가지 目的을 이루면은 其目的 終結을 짓는다. 卽 圖面 A, B, C 線을 중심한 한 回路는 造成되어 善成事한다. 다음은 딴 目的物 對할때도 전번 義를 基臺로 하여 美를 찾게 된다. 그런고로 전번 義와는 繼續하여야만이 따른 뜻 成事美로 이룰수 있는 連結線을 造成한다. 圖示 ㄱ, ㄴ, ㄷ 線 善 回路完成하고는 ㄱ, ㄴ, ㄷ 線으로 他에로 始作하여 언제나 永遠 標準 善 完成 目的을 要求하는 回路를 永遠繼續하고저 하는바가 人生 生涯의 目的이다. 이와갗치 하날 對하여 美로 始作成事가 始作되어야 다른 相對를 取하여 사랑격으로 對할 수 있는 바이다. 그겄은 하날 사랑과 合하는 美를 찾었든 資格者니 善 所有者라는 立場을 復歸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對像格者를 나로 因하여 세우면 理想始作이다. 그곳에서 하날 사람 代身 사랑으로 夫婦 사랑 子女사랑을 取할 수 있는 資格者다. 그리여야만이 하날 기뻐하고 나 기뻐하고 對像者 기뻐하는 第一 第二 第三 存在 全部가 기뻐할 수 있는 한 目的 回路線上을 完成하게 될 때에 善한 家庭이라 하는바다.

善한 我 中心한 善한 家庭으로부터 善한 社會始作이니 여기에는 義의 事業이 要求케된다. 그런고로 我中心하고 그 事業을 한 美로서 보면서 한 對像格的 善을 造成하여야 하는 한몸 代身的 마음으로 對하여 한 美의 對像格 事業 始作이 造成하여야 만이 義의 事業이다. 그런고로 한 代身 나의 事業의 結果를 가져온다. 그 事業은 그 사람이 代身이니 한 連結된 義를 中心한 한 目的上에서 있기에 義와 善을 標準하고는 하나라고 表示하여지는 것이무로 事業은 그 本人代身이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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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은 온 天宙는한 몸과 같은 構造로써 되여 있다. 物質世界도 한 하날의 몸의 表示体니 하나님의 한 솜털과 같은 것이다. 그런故로 사람은 事業을 通하여 生活을 始作하여사랑 成事 目的과 理想 合하는 其 理想을 세우는 것이 우리 生活上 中心이다. 그러니 義에 事業이 美를 造成하는 것이며 善을 造成하는 中心도된다. 내가 中心도 되고 事業의 中心도 되고 하날의 中心도 된다.
이것은 한 回路 잡고 되여 있으므로 始作하면 善이나 義로만의 始作하니 其 線上에서 어데나 同性 要素를 감각하니 其 中心도 各位置한테로 表示도 된다.

左圖와 같이 自由 基臺線上을어데를 脫線하여도 우리 良心的 苛責이 始作된다. 家庭이나 社會나 나 혼자나 全部가 한 回路線上에 있다는 結論的 存在니 其 自然法理와 같다. 然故로 理想 家庭을 生覺하기 前에 理想 사랑받으라 그 다음에는 理想 事業하여라. 그러면 理想 家庭도 必然的으로 維持하는 바이다.

人間世上에는 먼츰은 理想 같은 것이 웨 漸漸 가다가 中斷되는가 하면 基本 原理를 脫線하는 行動으로 因하여 其本理想 向上 要素가 其 良心 可責으로 因하여 長成하지 못하고 中斷됨으로 서 있는 바는 事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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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故로 이 根本 原理上에서면은 始作과 同時에 永遠 標準 理想하고 나아가는 바다. 그런곳은 사랑이면 永遠이고 義면 永遠標準한 義로서 繼續하고져 함이 根本이다. 그런故로 하늘 뜻 合한 사랑부터 理想 家庭 復歸로 理想 事業 復歸로 第一 段階를 天宙之間 始作 보고저 함이 하나님께서 創造하신 根本 目的이다. 이곳이 自由 理想 世界다.
사람은 하늘 対하여 愛을 対하여 주기를 바라고 萬物은사람 対하여 愛으로 対하여 주기를 바라서 사람을 中心하여 온 天宙 和動하는 作用 始作이 理想論이 結実 目的地이다. 그리하여온 天宙는 하나의 뜻으로 사作하여 나종으로 또 始作으로하여 알패와 오메가的 原理 成立을 보는 同時에 萬世前理想 實現인 바이다.
하나님은 이 目的을 人間들 向하여 바라는 바를 알고 成事하여야한다. 이 크나큰 理想의 根本을 사람 対하여 賦與하였고, 땅에서부터하날로 延長으로 永遠 生活 始作하는 者가 되여지는 幸福의 創造攝理를 누가 感謝치 않으랴
이와같은 生活하는 者라면 하날은 나를 中心하고 表示하면 모든 것을 指導하는 한 目的이 始作한다. 그런故로이 原理上 理想은 하날의 中心存在인 한 存在 再臨主 中心하고 始作을 보는 바는 事實이다. 그런故로 再臨主와 合하여 뜻 成事하는 世界 子女가 되여지는 것이 하날에 한 所望인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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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創造性 復帰로 된 理想論


本來 하나님이 天地를 創造할 때에 어느 存在物이든지 全部 相対할 수 있는 存在를 対(상대)하게 하여 지으셨다. 被造物 中에 相対할 수 없는 格이 없이 지은 것은 없다. 直接 対하는 相対格이라든가 間接的인 相対라든가 全部 어떤 한 相対位置를 잡고 있는 同時에 其 相対들로 因하여 自我에 한 完全造成을 保充하는 作用인 联關性으로 天宙의 存在物들은 서로 相対를 要(필요)하게 되었다. 그 相対를 잡으면 그로 因하여 自我를 中心하고 全(모든) 要求의 한 目的의 成事를 始作하여서 自我 아닌 他(自)我格으로 한 対像 存在格을 造成하고자 其 目的의 作用을 始作하게 된다. 그런고로 相対가 나타나면 其 相対는 나의 한 対像이 될 수 있는 資格을 추궁하게 된다. 相対는 始作이고 対像은 自我를 中心하고 한 目的過程을 經過한 成事格이 卽(곧) 対像이다. 어떤 存在든가 全部는 自我의 幸福을 標準하고 対像格을 要(필요)하게 된다. 相対가 없는 者는 存在의 価値가 없게 된다. 相対로부터 対像을 完成하면 할수록 其의 価値와 幸福世界를 展開하는 바다. 그런고로 天宙萬物은 全部 한 対像格 体系 內에서 完全対像의 한 始作을 보아야만 理想이란 世界를 보는 바가 事実이다. 어느 社会나 囗家라든가 其 目的을 達成할 수 있는 한 対像境을 떠나서는 発達도 없고 理想도 없는 바이다. 그런고로 存在하는 其 自体는 理想境의 한 影体的 한 本理想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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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보는 対像位置를 要하는 바는 必然的인 要求다. 그런고로 我(나)와 理想과는 하나이면서 한 動作形線을 떠날 수 없는 同格으로 応할 수 있는 한 要求的 立場에 處하는 바는 事実이다. 其 要求를 充當하여야 하는 우리의 使命이 每日 生(삶)의 한 課業이다. 이런 課業을 하게 하며 達成하게 하려니 나로 하여금 其 理想에 対하는 向心(방향심)인 자극과 충동心의 維持가 第一 重要한 問題다. 이 마음이 없다면 理想과 나와는 벌써 成事할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린 바와 한 가지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한 対像格位에 있어서 그 理想을 成事하려는 충동心이 作用을 갖게 하는 것에 있어서만 其 理想과 나와는 한 応(대응)線上格으로 되는 바는 事実이다. 그러니 우리 人間에는 언제나 向上을 標準한 理想을 마음으로 自己도 알지 못하게 더 要求되는 存在格에 있다는 바를 否認 못한다. 그런 其 作用心 要素의 始作과 刺戟과 衝動이 始作을 至今 나와 關係上에 있어 한 附合応(대응)線을 取하여 지은 한 不可避한 立場을 体得하게 될 때 나는 벌써 더 높을 수 있는 한 要求에 応(대응)하는 第二 存在格에 處함은 事実이다. 그러니 要求에 応(대응)할 수 있는 길을 잡고 나아간다면 그는 벌써 幸福과 함께 한 理想의 興味를 体得할 바는 事実이다. 그런고로 여기에는 벌써 人間은 창조的 原理로 完全을 標準하고 지었던 그 原理的 힘이 나와 聯하여 있기에 이 힘의 要求에 対像価値 추궁이 人間의 理想을 生覚하게 하는 原因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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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關聯된 自我라는 存在를 示定하는 곳에는 한 対像格 完成을 要(요구)하게 하는 位置와 立場을 떠나서는 其 根本原理와 背馳 된다. 그런 造化로 지음받은 人間이니 이 対像理想을 充當할 目的과 背馳되는 立場에 處하면 自然的으로 原理적 性品이 되는 良心的 추궁은 必要的으로 나에게 强하게 作用(動)한다. 그것은 原理脫線이니 이를 保障(하기 爲)하려는 作用이 良心作用이다. 그런고로 우리 人生은 벌써 나 아닌 한 本体를 中心하고 한 対像格 達成이 남아진 한 課業으로 알아야 한다. 이 対像格 完成이, 卽 理想의 길인 同時에 幸福의 基本인 바다. 나는 하늘을 対하여서 한 対像格 存在로 基本하고 창조받았다. 그런고로 하늘 対한 完全 対像格 価値者로 되었기에 하늘이 要求하는 原理的 要求다. 이 要求는 根本적으로 힘의 作用과 共通하니 어느 곳이나 通할 수 있는 原理要素로 被造物世界는 共히 通하고 있다. 그러니 누구나 한 完全格 対像目的을 共通적으로 갖고 있는 바는 事実이다. 이 対像格은 하늘 対하여 나 自体가 完成하는 同時에 現実界에 있어서는 相対格을 取하여서 其 目的을 한 回路的 路線格인 한 다른 対像体를 成立하여야만 本 하늘의 対像価値와 合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我(나)는 하늘 対하여 対像完成하는 同時에 相対性의 한 対像을 完全히 成事하여야만 根本과 合하는 三位一体格 한 回路를 造成하고자 함이 창조原性인 바다. 그러니 良心的으로는 몸의 指向을 받고 다음에는 이와 함께 우리는 相対性을 取하여 完全히 하나 되는 対像格(性 存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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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 存在를 合体하여야만 基本原理上線에 비로소 일어설 수 있는 바다. 그러한 곳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居할 수 있는 창조原理的 基台이다. 이런고로 이 基台를 造成하는 것이 人間의 最高 理想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人間이 흔히 말하는 理想의 곳은 어디냐 하면 良心理想要求本体와 合하는 곳이다. 卽 이 奌은 모든 完成된 原理上 奌이니 幸福이나 㐂樂이나 全部가 始作하는 根據地다. 그런고로 基本理想은, 卽 하나님과 同居하여 한 原理上에서 萬事를 바라볼 그때가 人間에게는 最高 기쁨이다. 이곳에 處하면 至今까지 찾아 올라온 한 絶頂上에 處하여 昔日(지난 날)에 下(아랫) 部分을 向하여 볼 수 있는 그곳을 알게 될 때 모든 새 始作이 生活境地로 한 附与를 始作하니, 卽 理想世界다. 그야말로 幸福世界다. 問題는 이 根本적인 始作을 하여야할 使命的 存在에 處하니 良心은 나로 因하여 完成에로 재촉하는 바다. 이것이 良心과 肉身이 相衝形体를 取하게 하는 原因인 바다. 我(나) 하나를 中心하고 보아도 幸福하려면 먼저 마음과 몸이 하나되는 其 基奌을 离脫하면 벌써 不滿이 始作한다. 이 角度가 甚할수록 苦痛이 甚하다. 이 角度가 합하여서 한 目的 基奌上의 뜻 成事를 볼 적에는 幸福이란 바는 事実이다. 그런고로 本來 人間은 내가 마음과 몸이 完全 하나되어 良心의 要求를 肉体가 完全히 채워줄 수 있다면 其곳은 벌써 原理成事이니 其곳은, 卽 하나님이 지으신 根本形이니 이곳에는 하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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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실 수 있는 時間이다. 이 時間이 長期間 維持할 수 있는 生活形体가 理想生活이다. 그런 生活体를 取한 곳이, 卽 善한 곳이다. 善한 곳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면서 根本적으로 幸福要素와 合할 수 있는 始作이다. 이곳을 人生은 잃어버렸던 바다. 이곳을 다시금 찾아서 채워야할 存在이니 어찌 良心的으로 其 目的 達成을 추궁받지 않으랴! 그러면 하늘의 要求成事가 始作하니 나도 또 하늘이 줄 바를 받을 수 있는 바니 이곳이, 卽 하늘 対한 対像格 完成位置이니 그야말로 原理帰因 곳이니 幸福이다. 사람은 本來 이와 같은 理想原理上 奌에서부터 始作함이 根本目的으로 되었던 바다. 그것이 墮落으로 因하여 이 基本 原理奌上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 根本体에 対하여 한 対像格 存在의 本 路線인 根本 原理를 復帰하여야 할 重要한 責任이 누구로 因하여 生起였나 하면 그는 두말할 것 없이 非原理적 存在인 한 惡의 主人公 사탄으로 因한 바다. 이 사탄 対하여서 至今 우리는 알지 못하고 그저 自身自体의 不足과 未及함에 嘆息을 하게 되는 바도 사탄으로 因하여 너무 유린받은 自体가 되어 감각하지 못하는 바다. 이와 같이 根本적으로 対像的 位置를 잃어버린 人間이지만 그 根本적 良心은 우리로 하여금 根本位置에 対한 要求를 始作하여 주기를 要하는 바다. 어떤 사람이나 全部 自己가 第一이라는 한 個性要求를 세우고자 한다. 그것은 누가 갖지 못한 한 個性眞理体인 고로 그 要性(필요성) 性品을 어느 곳에서라도 한 相対가 되는 位置를 잡아 完全한 対像格 成事를 要(필요)하게 하고자 하는 第一 原理本体(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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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合하려 하는 第一基奌을 잡고자 함에서 始作한다. 이와 같이 根本적으로 한 個性을 中心하고 한 相対로서 始作의 完成인 対像格 存在性으로 完成만 하면 其 基台上에는 한 対像格 完成으로 原理路線上을 成事하는 原理的 目的을 造成하니 그곳은 벌써 根本 창조원리로 나타난 바니 善한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通性을 取할 수 있는 幸福의 한 基奌位置인 바다. 그런고로 人生世界에는 누구나 自己中心 第一主義로 나아가는 바는 自己로 因하여 根本基奌上 原理位置를 取하는 데는 第一 가까운 距离를 自己가 누구보다 더 가까운 바이므로 他(타인)을 中心하고 成事(이루기)보다 自己를 中心하고 個性理想을 成事(이루고)자 하여 自己第一主義로 取하게 하는 바는 事実이다. 이것이 蘇生 長成 完成하여 한 目的을 達成하면 其 다음은 第二次的 対像位置를 널리하여 全体 基本目的으로 延長되는 바다. 그런고로 本來 人間은 第一 먼저 自己부터 始作하여 全体에로 完成理想을 協助하게끔 되어 있다. 그런고로 本來 사람을 이러한 基本原理上에서 지었기에 墮落은 되었을 망정 自我中心을 主로 하는 바는 事実이다. 純수하게 良心的으로 善으로 나아가는 곳이라면 누구나가 其 한 自体를 合하여 나아가면 언제든가 其 基本奌上 善을 合하게 되는 바이다. 이러니 우리가 相対를 要구하게 될 때 相対가 된다든가 相対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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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된다든가 하는 곳은 벌써 善한 理想의 始作인가 아닌가 이 決定的 解決의 表示로서 보여주는 事実을 증거하는 바다. 相対가 된다 하면 벌써 対像格 位置인 한 곳을 所望하게 하여 주는 바는 事実이다. 그러면 善과 理想의 成事니 我(나)에게는 큰 기쁨의 始作이니 自己를 中心하고 이런 判斷을 짖게 하는 바다. 이런고로 사람은 自己를 닮으려고 하는 相対格 存在를 占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対像成事를 잡을 수 있다. 全(모든) 人間은 善한 者를 対像하고자 하는 바는 自己의 한 目的 達成을 速進시키려고 하는 바는 原理(로 된 바)다. 사람이 根本的으로 自己를 세워서 大衆의 한 中心이 되고자 하는 其 本心의 마음은 我(나) 自身이 根本的으로 善(하다는 )한 根本体다 하는 宣言의 表示인 바다. 그런고로 이런 것을 보아도 나 닮아라하는 要求를 세우고자 하는 바는 나는 本來 한 善한 標準上 存在라는 것을 宣布하는 事実이다. 나와 合하면 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아도 벌써 自己는 第一存在 善境의 한 表示的 力活(役割)을 주어서 相対를 잡아 対像을 세워서 그 善을 直接 自己와 連洛(連結) 짖고자하는 第一存在善을 目標하는 바는 事実이다. 그런고로 自我란 存在는 第二存在이며 其 目的은 第一存在의 한 対像格 存在로 되어야 된다는 바도 原理的으로 감촉받은 바는 事実이다. 이 事実만 알게 된다면 하나님에 対한 문제도 問題 外로 되게 된다. 第一存在善과+ 第二存在善 = 하나님 + 我(나) = 하나님 + 対像 = 하나님 +(我나+対像)自己(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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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表示로 (한) 規定된다. 第一 먼저 問題는 自己다. 내가 먼저 第一存在의 完全한 対像者로 成事할 것, 卽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善하여지는 基本奌上 自己를 造成할 것이다. 다음은 이런 自己를 中心하고 第二自我格 対像格者를 完成할 것이다. 이것을 始作하면 창조性이 完成된다. 卽 이곳은 男子면 女子가 要求되는 相対로부터 対像 추궁을 要하게 된다. 다음은 이것의 基本的 創造性 第二対像 存在다. 하나님과 사람은 한 몸이(니깐)기 때문에 이런 基本原理로 되어 있다. 그런고로 独身生活이란 非原理가 存在하는 惡에 屬한 世界이니 그런 것은 있을 수 있으나 理想時代가 되면 基本原理 背馳行動이란 結論이 나온다. 다음은 大衆을 対하여서도 한 相対로부터 其 어떤 目的을 完成할 수 있는 対像格을 表準하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고로 我(내)가 하는 事業도 이와 같이 나의 한 相対로서 対像格的 態度에 対하여 그 事業目的을 推進하여야만 善한 하늘이 要求하는 善한 者들의 生活事業인 바다. 이러한 目的으로 한 相対로 하나님은 人生에 対하여 対像繁殖을 要求하고 사람은 事業을 通하여 相対로, 対像으로 善을 成事(이루어) 서게 될 때 第一存在의 善을 事業体와 自己를 対하는 어디나 善한 것으로 하늘과 合할 수 있는 길을 造成하는 것이다. 이래야만 全(온) 天宙는 根本부터 사람과 하나되며 사람은 萬物世界上까지 하나되게 하는 目的을 達成하여야만 하나님이 善하게 계시는 바른 삶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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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根本적인 善의 理想 展開를 第一은 사람의 重要한 位置에서 上(위)로는 하늘, 下(아래)로는 萬物, 右로는 가정, 左로는 社会, 또 크게 하면 円和世界에로써 根本적인 創造理想 造成이 目的인 바다. 그런고로 나를 中心하고 自我善으로부터 家庭善으로 事業善으로 이것이 第一責任을 完成함이 하나님의 創造한 対像善 目的인 바다. 이와 같이 되어야만 하늘과 나는 合하여 生活하는 対像 完格者다. 이 目的이 全人類에게 要求하는 하늘 第一世界의 要求다. 卽 하나님의 要求目的이다. 世界를 떠난 하나님은 世界上에 쓸데 없는  바다. 하나님과= 全天宙는= ①이 되는 世界가 善世界다. 善은 하나님이시다. 善에는 性分別 始作으로 個性完成으로 対性(상대성) 個性完成이 合하여서 한 回路의 造成을 要求하는 根本적 存在다. 善은 対像位置의 確保가 要求條件이다. 이와 같이 天宙는 相対性으로 対像으로 單位하고 全(온) 天宙까지 善을 造成하고자 함이 사람의 창조이면서 天宙의 창조다. 사람은 天宙의 中心이다. 사람을 中心하고 第一存在는 하나님, 사람을 中心하고 第三存在는 萬物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通하여 善의 繁殖을 始作하며 그 善을 사람은 個性善으로 萬物善까지 造成하여 善의 主管路線을 세우는 바다. 그러니 사람이 없는 하늘이 없고 사람이 없는 萬物이 없다. 사람이 天宙의 中心이니 사람이 墮落하니 하늘의 嘆息이 生起고 사람이 墮落하니 萬物의 嘆息이 生起였다. (참조 롬八/19) 이 復帰事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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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的이 하나님의 摂理이다. 至今 以上과 같은 原理를 보아서 우리 사람은 相対가 될 수 있는 第一資格 成事가 무엇보다도 貴한 바다. 내가 하늘을 対하여 第二存在로서 第一 存在의 한 対像의 要求가 全(전체) 目的이 됨은 事実이다. 그러니 相対할 수 있는 位置를 取하여야 하겠다.
이런 立場을 取하는 것은 사람은 第一存在의 利用物인가라고 生覚하여서는 안된다. 이 相対의 要求는 第一存在의 目的을 達成하기 為함은 勿論이나 나로서는 完成하는 基本 (完成이란) 目的으로 되어 結局은 나 때문이라는 바는 事実이다. 하늘이 要求하는 바의 目的은 주기 為한 目的이고 나는 받기 為한 目的이, 卽 내가 하늘 対한 相対로서 始作으로 対像完成을 為한 바다. 그런고로 하늘은 주고자 하나 줄 수 있는 相対가 없으니 그 얼마나 서러우랴! 서러움이 生起는 것은 주고받고 할 存在가 없게 되는 것에서 始作이다. 이런고로 참으로 주고 받고자 하는 者의 要求로써 対像이 要求되는 바이다. 내가 줄적에 第二존재가 나에게 준다면 거기에 벌써 기쁨이다. 그런고로 子女에 対한 사랑은 여기서부터고 男便에 対한 사랑도 여기서부터고 社会(事業體) 사랑은 여기서부터고 하늘에 対한 사랑도 여기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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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貴한 根本上 自我가 되면 참을 받을 수 있는 者이다.

上(위)로는 참을 주는 者를 갖고 下(아래)로는 참을 받을 者를 가졌다. 이 얼마나 幸福이라 아니하겠는가? 참을 주고 받는 곳을 所有한 者는 언제나 기쁨의 動力이 躍動하는 바이다. 期 表示가 子女를 対하여 주고 싶고 夫婦는 서로 사랑하고 받고 하는 것이 根本 原理의 表示이다. 이 모두가 完成은 하늘과 合하여야 되는 바이다. 하늘은 發電所이고 우리는 配電所와 充電所와 같고 만물은 需給所와 같은 것이다. 發電所가 있는 配電所와 需給地는 原理적이나 이 中間에 우리가 되는 配電所, 變電所가 없으면 모두가 生命使命이 中斷인 바다. 이와 같이 주고받은 變電所와 配電所의 位置가, 卽 우리 人生이며 나이다. 이런 原因으로 받고 주는데 原理의 消耗가 없는 것을 바란다. 電氣로 말하면 損失이 없는 것을 要하는 바와 한가지다. 損失이 많으면 基本적으로 電氣가 消耗된다. 損失은 그 導線 物質로 因하여 右左되는 것이다. 이렇듯 物質의 力(힘)이 되는 電氣를 잡아먹는 作用이 生起게 하는 敵 作用의 始作은 電氣要素에 反하는 作用을 갖고 있는 存在니 그런 損失을 가져오는 것과 同一하게 우리는 電線과 같은 肉身을 갖고 있는 그 自體와 良心과 合하여서 完全히 하나가 되면 良導體 作用을 하는 것과 한가지고 그렇지 못하면 不良導體와 같은 副作用 損失을 生起게 하는 것과 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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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우리는 完全히 주고 받는 對像을 連續的으로 어떤 方面으로든지 所有한다면 그는 다시금 主人에게 돌리는 데도 損失없는 原理復歸가 成立하는 바와 한가지다. 이와 같이 完全히 받고 完全히 주어 돌릴 수 있다는 것이 第一要求 目的인 同時에 善의 繼續이다.

電氣가 잘 되게 하는 것이 電線類에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잘 成事하게 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는 바이다. 그러니 잘 받으려니 잘 接觸하여 完全導體가 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한 生命의 中心地이며 喜樂의 中心地이다. 生命中心과 喜樂中心은 하나님이시다. 하늘의 喜樂도 幸福도 모두가 하늘 사랑을 받을 때에 始作이니 第一 要求가 하늘사랑을 받는 것이 目的이다. 하늘 사랑을 받으면 幸福도 喜樂도 始作이다. 完全히 하늘 사랑을 받으려면 완전히 받을 수 있는 資格의 成立이 要求되는데 사랑을 받으려면 받을 수 있는 美가 있어야만 완전히 사랑을 줄 수 있는 바다. 하늘은 주고자 하니 愛(사랑)이요, 사람은 받으려니 美이다. 이와 같은 相對要求 成事條件의 始作은 愛(사랑)이었다면 美가 있어야 한다. 愛(사랑)을 +라고 한다면 美는 -라는 相對存在이다. 이것을 完全히 주고받는 것이 善이다.

善=愛+美+(義)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찾고자 하는 바는 美의 한 存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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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사람 中心인 同時에 하늘 사랑 代身者이다. 예수를 보내심은 完全히 하늘 사랑을 人間들한테 줄 수 있는 基礎工作을 始作하기 爲해서다.

예수 愛(사랑)+ 我(나) = 善이 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늘에 對한 對像格 完成 我(내)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我(나)는 하늘 사랑을 (對하여) 받을 수 있는 美가 要求條件이다. 完全한 사랑에 對하여서 完全한 美를 相對하여 始作을 보아 完全히 주고받는 一(하나)로 되는 對像存在가 선이다.

義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相對를 決定하여 對像 始作을 보아서 이루어 나가는 한 路程 要素가 義다. 예수도 義人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 하심은 自己自身이 義를 세울 수 있는 한 相對者의 始作을 보지 못함을 表示한 바다. 그런고로 지금 天宙는 善을 完成하려니 사랑과 美가 生起여 義의 한 路程을 지어야만 하나님의 理想이 始作이다. 우리가 하늘 對하여서 美(아름다워)야 하겠다. 그러니 먼저 原理로 돌아서는 것이 基本目的이다.

그런고로 良心理想存在 位置位까지 必要하다. 그러니 良心的이어야 한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한다. 我(나)는 하늘 對하여 美(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면 自然的으로 사랑을 始作한다. 電氣의 한 原理와 같은 것이다. 完全 (-)가 되면 자연적으로 (+)는 生起는 것과 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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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理的으로 美가 完全히 造成되면 하늘 사랑은 나와 하나되는 作用이 始作된다. 이 作用이 始作하여 繼續하는 것이 한 義이다. 이 作用이 繼續하여 完全히 合하는 것이 善이다. 作用을 繼續하는 데는 副作用을 이겨야 한다. 이것이 義의 使命 位置이다. 義는 善한 路程을 結實하게 하는 要素이다. 例로 表示하면 善하기 爲하여 사랑으로 美로 義로 經過가 合하여 一(하나) 되는 바다. 하늘 對한 사랑을 받으려니 아름다워야 하는데 여기에 良心 對하여서 몸을 그 良心에 中心하게 한 維持를 繼續하게 하는 것이 (卽) 義다. 그러니 하늘을 第一存在, 良心을 第二存在, 몸을 第三存在로 하면 義는 第一存在 사랑에 對하여 第二存在 良心과 合하게 하는 第三存在 몸이 있는 바이니 이 몸을 良心의 要求 대로 繼續 維持하여 完全한 美를 갖게 되어 完全히 사랑을 받아 合하게 하는 其 第三存在를 第一存在까지 合하게 하는 要求가 義다. 이와 같이 하늘 사랑을 받으려면 良心만으로는 아니되고 몸이 合하여야만 始作되는 바이다. 이렇게 우리 사람에게는 三位要素 位를 세워서 一(하나)로 되는 原理 創造性이 있다. 
義라는 것은 第三 存在 位置를 第一存在 位에 屬하게 하는 基本 工作의 實果라는 바는 事實이다. 義는 몸에서 良心과 合하게 하는 要素(가 義)다. 나를 中心하면 한 對像을 對하여서 義하면 其 對像이 나와 같이 설 수 있는 位置를 造成하여야 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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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業을 對하여서 亦是 나를 第二存在 位置에 두면 第三位置는 事業이니 이 第三存在 位置가 나와 하나의 位置를 繼續 取하게 하는 바가 義다. 義가 없는 곳에는 하늘의 美를 造成 못 한다. 그러니 하늘이 나를 對하여서는 對像 本體이니 사랑이고 나는 美이고 나를 中心하고 對像格者에 對하여서는 내가 사랑이고 對像 位置가 美이다. 義는 對像美를 造成하게 하는 平衡要素다. 그러니 義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維持하는 生活이 要求되는 重要한 生活이다. 義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第三存在가 完成 造成이 되어야 되는 한 分立性 對像을 造成하는 目的으로 因하여 必要한 바다.
人間社會에서 義가 第一 나와 直接的 關係의 位置에 있는 바다. 나도 먼저 마음을 中心하고는 몸, 自身을 中心하고는 對像, 對像을 中心하고는 萬物世界로 이와 같이 關係的 因緣을 中媒하여 주는 그 自身은 義라는 存在다. 義는 完全한 美를 造成하는 한 基本에 向하여 移動하는 長成 要素다. 그런고로 完全 사랑과 完全 美가 造成되면 完全 義는 造成되는 바이면서 善은 完成 된다. 例를 들면 10(열) 사랑을 주려고 할적에 10(열) 美를 보고 주어야 한다. 10 사랑을 받고 10 美를 돌리는 完全히 一(하나)되는 한 回路를 造成하여야만 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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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는 完全한 사랑에 對하여 完全한 美를 維持하게 하는 過程이 義의 分擔過程이다. 그런고로 美의 位置는 加減的 움직임이 있는 바이다. 義와 不義는 한 境界線上에 서 있다. 그런고로 對像格 右左 如何로 사랑과 合하여 善 成事를 右左하는 重要 位置가 美的 位置이다.
그러니 義는 한 基線 心体 모양과 같은 것으로 나에게서는 作用한다. 줄 때도 對比되는 美를 보지 못하고 주는 하늘 存在는 不義인 行動으로 된다. 그런고로 하늘 사랑을 받는 者라면 주는 것도 하늘化하는 基臺線上에 서서만이 된다. 그런고로 우리 人生 앞에 舊約時代는 行義로 新約時代는 信義로 成約時代는 侍義로서 한 人類의 生活 中心으로 되어 있다.
例圖를 보면 사랑線과 美線은 對像이 되어 한 回路를 造成한다.

義는 한 中心 B 点이 되어 A, C를 連結한다. 이와 같이 한 線上에서 설 때에 善이 成立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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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目的 對像을 取하면 義를 中心하여야 始作된다. 한가지 目的을 이루면 其 目的의 終結을 짓는다. 卽 圖面 A, B, C 線을 중심한 한 回路는 造成되어 善을 成事한다. 다음은 딴 目的物을 對할 때도 전번 義를 基臺로 하여 美를 찾게 된다. 그런고로 전번 義와는 繼續하여야만 다른 뜻 成事의 美를 이룰수 있는 連結線을 造成한다. 圖示 ㄱ, ㄴ, ㄷ 線으로 善의 回路를 完成하고는 ㄱ, ㄴ, ㄷ 線으로 他에로 始作하여 언제나 永遠한 標準 善 完成의 目的을 要求하는 回路를 永遠히 繼續하고자 하는 바가 人生 生涯의 目的이다. 이와 같이 하늘 對하여 美로 始作 成事 始作되어야 다른 相對를 取하여 사랑격으로 對할 수 있는 바이다. 그것은 하늘 사랑과 合하는 美를 찾았던 資格者니 善 所有者라는 立場을 復歸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나로 因하여 對像格者를 세우면 理想의 始作이다. 그곳에서 하늘 사람 代身 사랑으로 夫婦사랑, 子女사랑을 取할 수 있는 資格者다. 그래야만 하늘이 기뻐하고, 내가 기뻐하고, 對像者가 기뻐하는 第一, 第二, 第三存在 全部가 기뻐할 수 있는 한 目的 回路線上을 完成하게 될 때에 善한 家庭이라 하는 바다.

善한 我(나)를 中心한 善한 家庭으로부터 善한 社會가 始作이니 여기에는 義의 事業을 要求하게 된다. 그런고로 我(나)를 中心하고 그 事業을 한 美로써 보면서 한 對像格的 善을 造成하여야 하는 한 몸 代身的 마음으로 對하여 한 美의 對像格 事業을 始作, 造成하여야 만이 義의 事業이다. 그런고로 한 代身 나의 事業의 結果를 가져온다. 그 事業은 그 사람이 代身이니 한 連結된 義를 中心한 한 目的上에 서 있기에 義와 善을 標準하고는 하나라고 表示하여지는 것이므로 事業은 그 本人 代身이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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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온 天宙는 한 몸과 같은 構造로써 되어 있다. 物質世界도 한 하늘의 몸의 表示体니 하나님의 한 솜털과 같은 것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事業을 通하여 生活을 始作하여 사랑의 成事 目的과 理想이 合하는 其 理想을 세우는 것이 우리 生活上 中心이다. 그러니 義의 事業이 美를 造成하는 것이며 善을 造成하는 中心도 된다. 내가 中心도 되고 事業의 中心도 되고 하늘의 中心도 된다.
이것은 한 回路를 잡고 되어 있으므로 始作하면 善이나 義로만 始作하니 其 線上에서 어디서나 同性 要素를 감각하니 其 中心도 各 位置한테로 表示도 된다.

左圖와 같이 自由 基臺線上 어디를 脫線하여도 우리 良心的 苛責이 始作된다. 家庭이나 社會나 나 혼자나 全部가 한 回路線上에 있다는 結論的 存在이니 其 自然法理와 같다. 然(그런)故로 理想 家庭을 生覺하기 前에 理想 사랑을 받으라. 그 다음에는 理想 事業을 하여라. 그러면 理想 家庭도 必然的으로 維持하는 바이다.
人間世上에는 먼저 理想 같은 것이 왜 漸 가다가 中斷되는가 하면 基本 原理를 脫線하는 行動으로 因하여 本 理想 向上 要素가 其 良心의 可責으로 因하여 成하지 못하고 中斷됨으로 서 있는 바는 事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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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故로 이 根本 原理上에 서면 始作과 同時에 永遠 標準을 理想하고 나아가는 바다. 그런 곳은 사랑이면 永遠이고 義면 永遠을 標準한 義로서 繼續하고자 함이 根本이다. 그런故로 하늘 뜻을 合한 사랑으로부터 理想家庭 復歸로 理想事業 復歸로 第一段階를 天宙之間에 始作을 보고자 함이 하나님께서 創造하신 根本 目的이다. 이곳이 自由 理想世界다.
사람은 하늘 対하여 愛(사랑)으로 対하여 주기를 바라고 萬物은사람 対하여 愛(사랑)으로 対하여 주기를 바라서 사람을 中心하여 온 天宙가 和動하는 作用의 始作이 理想論의 結実 目的地이다. 그리하여 온 天宙는 하나의 뜻으로 始作하여 나중을 또 始作으로 하여 알파와 오메가的 原理 成立을 보는 同時에 萬世前 理想 實現인 바이다.
하나님은 이 目的을 人間들을 向하여 바라는 바를 알고 成事하여야 한다. 이 크나큰 理想의 根本을 사람 対하여 賦與하였고, 땅에서부터 하날로 延長, 永遠 生活을 始作하는 者가 되어지는 幸福의 創造攝理를 누가 感謝하지 않으랴!
이와 같이 生活하는 者라면 하늘은 나를 中心하고 表示하면 모든 것을 指導하는 한 目的이 始作한다. 그런故로 이 原理上 理想은 하늘의 中心存在인 한 存在, 再臨主 中心하고 始作을 보는 바는 事實이다. 그런故로 再臨主와 合하여 뜻을 成事하는 世界 子女가 되는 것이 하늘의 한 所望인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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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성 복귀로 된 이상론


본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에 어느 존재물이든지 전부 상대할 수 있는 존재를 상대하게 하여 지으셨다. 피조물 중에 상대할 수 없는 격이 없이 지은 것은 없다. 직접 대하는 상대격이라든가 간접적인 상대라든가 전부 어떤 한 상대위치를 잡고 있는 동시에 그 상대들로 인하여 자아에 한 완전조성을 보충하는 작용인 관련성으로 천주의 존재물들은 서로 상대를 필요하게 되었다. 그 상대를 잡으면 그로 인하여 자아를 중심하고 모든 요구의 한 목적의 성사를 시작하여서 자아 아닌 타아격으로 한 대상 존재격을 조성하고자 그 목적의 작용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고로 상대가 나타나면 그 상대는 나의 한 대상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추궁하게 된다. 상대는 시작이고 대상은 자아를 중심하고 한 목적과정을 경과한 성사격(成事格)이 곧 대상이다. 어떤 존재든가 전부는 자아의 행복을 준비하고 대상격(対像格)을 필요하게 된다. 상대가 없는 자는 존재의 가치가 없게 된다. 상대로부터 대상을 완성하면 할수록 그의 가치와 행복세계를 전개하는 바다. 그런고로 천주만물은 전부 한 대상격 체계 내에서 완전대상의 한 시작을 보아야만 이상이란 세계를 보는 바가 사실이다. 어느 사회나 국가라든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한 대상경(対像境)을 떠나서는 발달도 없고 이상도 없는 바이다. 그런고로 존재하는 그 자체는 이상경의 한 영체적(影体的) 한 본이상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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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보는 대상위치를 요하는 바는 필연적인 요구다. 그런고로 나와 이상과는 하나이면서 한 동작형선을 떠날 수 없는 동격으로 응할 수 있는 한 요구적 입장에 처하는 바는 사실이다. 그 요구를 충당하여야 하는 우리의 사명이 매일 삶의 한 과업이다. 이런 과업을 하게 하며 달성하게 하려니 나로 하여금 그 이상에 대하는 방향심인 자극과 충동심의 유지가 제일 중요한 문제다. 이 마음이 없다면 이상과 나와는 벌써 성사할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린 바와 한 가지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한 대응격위에 있어서 그 이상을 성사하려는 충동심이 작용을 갖게 하는 것에 있어서만 그 이상과 나와는 한 대응선상격으로 되는 바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에는 언제나 향상을 표준한 이상을 마음으로 자기도 알지 못하게 더 요구되는 존재격에 있다는 바를 부인 못한다. 그런 그 작용심 요소의 시작과 자극과 충당이 시작을 지금 나와 관계성에 있어 한 부합대응선을 취하여 지은 한 불가피한 입장을 체득하게 될 때 나는 벌써 더 높을 수 있는 한 요구에 대응하는 제2 존재격에 처함은 사실이다. 그러니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길을 잡고 나아간다면 그는 벌써 행복과 함께 한 이상의 흥미를 체득할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여기에는 벌써 인간은 창조적 원리로 완전을 표준하고 지었던 그 원리적 힘이 나와 연(聯)하여 있기에 이 힘의 요구에 대상가치 추궁이 인간의 이상을 생각하게 하는 원인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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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련된 자아라는 존재를 시정(示定)하는 곳에는 한 대상격 완성을 요구하게 하는 위치와 입장을 떠나서는 그 근본원리와 배치 된다. 그런 조화로 지음받은 인간이니 이 대상이상을 충당할 목적과 배치되는 입장에 처하면 자연적으로 원리적 성품이 되는 양심적 추궁은 필연적으로 나에게 강하게 작용한다. 그것은 원리탈선이니 이를 보장하려는 작용이 양심작용이다. 그런고로 우리 인생은 벌써 나 아닌 한 본체를 중심하고 한 대상격 달성이 남아진 한 과업으로 알아야 한다. 이 대상격 완성이, 즉 이상의 길인 동시에 행복의 기본인 바다. 나는 하늘을 대하여서 한 대상격 존재로 기본하고 창조받았다. 그런고로 하늘 대한 완전 대상격 가치자로 되었기에 하늘이 요구하는 원리적 요구다. 이 요구는 근본적으로 힘의 작용과 공통하니 어느 곳이나 통할 수 있는 원리요소로 피조물세계는 공(共)히 통하고 있다. 그러니 누구나 한 완전격 대상목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바는 사실이다. 이 대상격은 하늘 대하여 나 자체가 완성하는 동시에 현실계에 있어서는 상대격을 취하여서 그 목적을 한 회로적 노선격인 한 다른 대상체를 성립하여야만 본 하늘의 대상가치와 합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하늘 대하여 対像完成대상완성하는 동시에 상대성의 한 대상을 완전히 성사하여야만 근본과 합하는 3위일체격 한 회로를 조성하고자 함이 창조원성(原性)인 바다. 그러니 양심적으로는 몸의 지향을 받고 다음에는 이와 함께 우리는 상대성을 취하여 완전히 하나 되는 대상격(性 存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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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존재를 합체하여야만 기본원리상선에 비로소 일어설 수 있는 바다. 그러한 곳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 창조원리적 기대이다. 이런고로 이 기대를 조성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 이상경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이 흔히 말하는 이상의 곳은 어디냐 하면 양심이상요구본체와 합하는 곳이다. 즉 이 점은 모든 완성된 원리상 점이니 행복이나 희락이나 전부가 시작하는 근거지다. 그런고로 기본이상은, 즉 하나님과 동거하여 한 원리상에서 만사를 바라볼 그때가 인간에게는 최고 기쁨이다. 이곳에 처하면 지금까지 찾아 올라온 한 절정상에 처하여 지난 날에 아랫 부분을 향하여 볼 수 있는 그곳을 알게 될 때 모든 새 시작이 생활경지로 한 부여를 시작하니, 즉 이상세계다. 그야말로 행복세계다. 문제는 이 근본적인 시작을 하여야할 사명적 존재에 처하니 양심은 나로 인하여 완성에로 재촉하는 바다. 이것이 양심과 육신이 상충형체를 취하게 하는 원인인 바다. 나 하나를 중심하고 보아도 행복하려면 먼저 마음과 몸이 하나되는 그 기점을 이탈하면 벌써 불만이 시작한다. 이 각도가 심할수록 고통이 심하다. 이 각도가 합하여서 한 목적 기점상의 뜻 성사를 볼 적에는 행복이란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본래 인간은 내가 마음과 몸이 완전 하나되어 양심의 요구를 육체가 완전히 채워줄 수 있다면 그곳은 벌써 원리성사이니 그곳은, 즉 하나님이 지으신 근본형이니 이곳에는 하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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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실 수 있는 시간이다. 이 時間시간이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생활형체가 이상생활이다. 그런 생활체를 취한 곳이, 즉 선한 곳이다. 선한 곳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면서 근본적으로 행복요소와 합할 수 있는 시작이다. 이곳을 인생은 잃어버렸던 바다. 이곳을 다시금 찾아서 채워야할 존재이니 어찌 양심적으로 그 목적 달성을 추궁받지 않으랴! 그러면 하늘의 요구성사가 시작하니 나도 또 하늘이 줄 바를 받을 수 있는 바니 이곳이, 즉 하늘 대한 대상격 완성위치이니 그야말로 원리귀인(原理帰因) 곳이니 행복이다. 사람은 본래 이와 같은 이상원리상 점에서부터 시작함이 근본목적으로 되었던 바다. 그것이 타락으로 인하여 이 기본 원리점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 근본체에 대하여 한 대상격 존재의 본 노선인 근본 원리를 복귀하여야 할 중요한 책임이 누구로 인하여 생겼나 하면 그는 두말할 것 없이 비원리적 존재인 한 악의 주인공 사탄으로 인한 바다. 이 사탄 対대하여서 지금 우리는 알지 못하고 그저 자신자체의 부족과 미급함에 탄식을 하게 되는 바도 사탄으로 인하여 너무 유린받은 자체가 되어 감각하지 못하는 바다. 이와 같이 근본적으로 대상적 위치를 잃어버린 인간이지만 그 근본적 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근본위치에 대한 요구를 시작하여 주기를 요하는 바다. 어떤 사람이나 전부 자기가 제일이라는 한 개성요구를 세우고자 한다. 그것은 누가 갖지 못한 한 개성진리체인 고로 그 필요성 성품을 어느 곳에서라도 한 상대가 되는 위치를 잡아 완전한 대상격 성사를 필요하게 하고자 하는 제1 원리본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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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합하려 하는 제1기점을 잡고자 함에서 시작한다. 이와 같이 근본적으로 한 개성을 중심하고 한 상대로서 시작의 완성인 대상격 존재성으로 완성만 하면 그 기점상에는 한 대상격 완성으로 원리로선상을 성사하는 원리적 목적을 조성하니 그곳은 벌써 근본 창조원리로 나타난 바니 선한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통성(通性)을 취할 수 있는 행복의 한 기점위치인 바다. 그런고로 인생세계에는 누구나 자기중심 제1주의로 나아가는 바는 자기로 인하여 근본기점상 원리위치를 취하는 데는 제일 가까운 거리를 자기가 누구보다 더 가까운 바이므로 타인을 중심하고 이루기보다 자기를 중심하고 개성이상을 이루고자 하여 자기제1주의로 취하게 하는 바는 사실이다. 이것이 소생 장성 완성하여 한 목적을 달성하면 그 다음은 제2차적 대상위치를 널리하여 전체 기본목적으로 연장되는 바다. 그런고로 본래 인간은 제일 먼저 자기부터 시작하여 전체에로 완성이상을 협조하게끔 되어 있다. 그런고로 본래 사람을 이러한 기본원리상에서 지었기에 타락은 되었을 망정 자아중심을 주로 하는 바는 사실이다. 순수하게 양심적으로 선으로 나아가는 곳이라면 누구나가 그 한 자체를 합하여 나아가면 언제든가 그 기본점상 선을 합하게 되는 바이다. 이러니 우리가 상대를 요구하게 될 때 상대가 된다든가 상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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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된다든가 하는 곳은 벌써 선한 이상의 시작인가 아닌가 이 결정적 해결의 표시로서 보여주는 사실을 증거하는 바다. 상대가 된다 하면 벌써 대상격 위치인 한 곳을 소망하게 하여 주는 바는 사실이다. 그러면 선과 이상의 성사니 나에게는 큰 기쁨의 시작이니 자기를 중심하고 이런 판단을 짖게 하는 바다. 이런고로 사람은 자기를 닮으려고 하는 상대격 존재를 점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대상성사를 잡을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선한 자를 대상하고자 하는 바는 자기의 한 목적 달성을 속진(速進)시키려고 하는 바는 원리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자기를 세워서 대중의 한 중심이 되고자 하는 그 본심의 마음은 나 자신이 근본적으로 선한 근본체다 하는 선언의 표시인 바다. 그런고로 이런 것을 보아도 나 닮아라하는 요구를 세우고자 하는 바는 나는 본래 한 선한 기준상 존재라는 것을 선포하는 사실이다. 나와 합하면 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아도 벌써 자기는 제1존재 선경의 한 표시적 역할을 주어서 상대를 잡아 대상을 세워서 그 선을 직접 자기와 연결 짖고자하는 제1존재선을 목표하는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자아란 존재는 제2존재이며 그 목적은 제1존재의 한 대상격 존재로 되어야 된다는 바도 원리적으로 감촉받은 바는 사실이다. 이 사실만 알게 된다면 하나님에 대한 문제도 문제 외로 되게 된다. 제1존재선과+제2존재선 = 하나님+나 = 하나님+대상 = 하나님+(나+대상)자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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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표시로 규정된다. 제일 먼저 문제는 자기다. 내가 먼저 제1존재의 완전한 대상자로 성사할 것, 즉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선하여지는 기본점상 자기를 조성할 것이다. 다음은 이런 자기를 중심하고 제2자아격 대상격자를 완성할 것이다. 이것을 시작하면 창조성이 완성된다. 즉 이곳은 남자면 여자가 요구되는 상대로부터 대상 추궁을 요하게 된다. 다음은 이것의 기본적 창조성 제2대상 존재다. 하나님과 사람은 한 몸이기 때문에 이런 기본원리로 되어 있다. 그런고로 독신생활이란 비원리가 존재하는 악에 속한 세계이니 그런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이상시대가 되면 기본원리 배치행동이란 결론이 나온다. 다음은 대중을 대하여서도 한 상대로부터 그 어떤 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대상격을 표준하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고로 내가 하는 사업도 이와 같이 나의 한 상대로서 대상격적 태도에 대하여 그 사업목적을 추진하여야만 선한 하늘이 요구하는 선한 자들의 생활사업인 바다. 이러한 목적으로 한 상대로 하나님은 인생에 대하여 대상번식을 요구하고 사람은 사업을 통하여 상대로, 대상으로 선을 이루어 서게 될 때 제1존재의 선을 사업체와 자기를 대하는 어디나 선한 것으로 하늘과 합할 수 있는 길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래야만 온 천주는 근본부터 사람과 하나되며 사람은 만물세계상까지 하나되게 하는 목적을 달성하여야만 하나님이 선하게 계시는 바른 삶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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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근본적인 선의 이상 전개를 제1은 사람의 중요한 위치에서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만물, 우로는 가정, 좌로는 사회, 또 크게 하면 원화세계에로써 근본적인 창조이상 조성이 목적인 바다. 그런고로 나를 중심하고 자아선으로부터 가정선으로 사업선으로 이것이 제1책임을 완성함이 하나님의 창조한대상선 목적인 바다. 이와 같이 되어야만 하늘과 나는 합하여 생활하는 대상 완성격자다. 이 목적이 전인류에게 요구하는 하늘 제1세계의 요구다. 즉 하나님의 요구목적이다. 세계를 떠난 하나님은 세계상에 쓸데 없는 바다. 하나님과= 전천주는= ①이 되는 세계가 선세계다. 선은 하나님이시다. 선에는 성분별 시작으로 개성완성으로 상대성 개성완성이 합하여서 한 회로의 조성을 요구하는 근본적 존재다. 선은 대상위치의 확보가 요구조건이다. 이와 같이 천주는 상대성으로 대상으로 단위하고 온 천주까지 선을 조성하고자 함이 사람의 창조이면서 천주의 창조다. 사람은 천주의 중심이다. 사람을 중심하고 제1존재는 하나님, 사람을 중심하고 제3존재는 만물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선의 번식을 시작하며 그 선을 사람은 개성선으로 만물선까지 조성하여 선의 주관로선을 세우는 바다. 그러니 사람이 없는 하늘이 없고 사람이 없는 만물이 없다. 사람이 천주의 중심이니 사람이 타락하니 하늘의 탄식이 생기고 사람이 타락하니 만물의 탄식이 생겼다. (참조 롬8/19) 이 복귀사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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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지금 이상과 같은 원리를 보아서 우리 사람은 상대가 될 수 있는 제1자격 성사가 무엇보다도 귀한 바다. 내가 하늘을 대하여 제2존재로서 제1존재의 한 대상의 요구가 전체 목적이 됨은 사실이다. 그러니 상대할 수 있는 위치를 취하여야 하겠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사람은 제1존재의 이용물인가라고 생각하여서는 안된다. 이 상대의 요구는 제1존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은 물론이나 나로서는 완성하는 기본 목적으로 되어 결국은 나 때문이라는 바는 사실이다. 하늘이 요구하는 바의 목적은 주기 위한 목적이고 나는 받기 위한 목적이, 즉 내가 하늘 대한 상대로서 시작으로 대상완성을 위한 바다. 그런고로 하늘은 주고자 하나 줄 수 있는 상대가 없으니 그 얼마나 서러우랴! 서러움이 생기는 것은 주고받고 할 존재가 없게 되는 것에서 시작이다. 이런고로 참으로 주고 받고자 하는 자의 요구로써 대상이 요구되는 바이다. 내가 줄적에 제2존재가 나에게 준다면 거기에 벌써 기쁨이다. 그런고로 자녀에 대한 사랑은 여기서부터고 남편에 대한 사랑도 여기서부터고 사회(사업체) 사랑은 여기서부터고 하늘에 대한 사랑도 여기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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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귀한 근본상 자아가 되면 참을 받을 수 있는 자이다.

위로는 참을 주는 자를 갖고 아래로는 참을 받을 자를 가졌다. 이 얼마나 행복이라 아니하겠는가? 참을 주고 받는 곳을 소유한 자는 언제나 기쁨의 동력이 약동하는 바이다. 그 표시가 자녀를 대하여 주고 싶고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받고 하는 것이 근본 원리의 표시이다. 이 모두가 완성은 하늘과 합하여야 되는 바이다. 하늘은 발전소이고 우리는 배전소와 충전소와 같고 만물은 수급소와 같은 것이다. 발전소가 있는 배전소와 수급지는 원리적이나 이 중간에 우리가 되는 배전소, 변전소가 없으면 모두가 생명사명이 중단인 바다. 이와 같이 주고받은 변전소와 배전소의 위치가, 즉 우리 인생이며 나이다. 이런 원인으로 받고 주는데 원리의 소모가 없는 것을 바란다. 전기로 말하면 손실이 없는 것을 요하는 바와 한가지다. 손실이 많으면 기본적으로 전기가 소모된다. 손실은 그 도체 물질로 인하여 우좌되는 것이다. 이렇듯 물질의 힘이 되는 전기를 잡아먹는 작용이 생기게 하는 적(敵) 작용의 시작은 전기요소에 반하는 작용을 갖고 있는 존재니 그런 손실을 가져오는 것과 동일하게 우리는 전선과 같은 육신을 갖고 있는 그 자체와 양심과 합하여서 완전히 하나가 되면 양도체 작용을 하는 것과 한가지고 그렇지 못하면 불량도체와 같은 부작용 손실을 생기게 하는 것과 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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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우리는 완전히 주고 받는 대상을 연속적으로 어떤 방면으로든지 소유한다면 그는 다시금 주인에게 돌리는 데도 손실없는 원리복귀가 성립하는 바와 한가지다. 이와 같이 완전히 받고 완전히 주어 돌릴 수 있다는 것이 제1요구 목적인 동시에 선의 계속이다.

전기가 잘 되게 하는 것이 전선류에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잘 성사하게 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는 바이다. 그러니 잘 받으려니 잘 접촉하여 완전도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한 생명의 중심지이며 희락의 중심지이다. 생명중심과 희락중심은 하나님이시다. 하늘의 희락도 행복도 모두가 하늘 사랑을 받을 때에 시작이니 제1요구가 하늘사랑을 받는 것이 목적이다. 하늘 사랑을 받으면 행복도 희락도 시작이다. 완전히 하늘 사랑을 받으려면 완전히 받을 수 있는 자격의 성립이 요구되는데 사랑을 받으려면 받을 수 있는 미(美)가 있어야만 완전히 사랑을 줄 수 있는 바다. 하늘은 주고자 하니 사랑이요, 사람은 받으려니 미이다. 이와 같은 상대요구 성사조건의 시작은 사랑이었다면 미가 있어야 한다. 사랑을 +라고 한다면 미는 -라는 상대존재이다. 이것을 완전히 주고받는 것이 선이다.

善=愛+美+(義)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찾고자 하는 바는 미의 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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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사람 중심인 동시에 하늘 사랑 대신자이다. 예수를 보내심은 완전히 하늘 사랑을 인간들한테 줄 수 있는 기초공작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예수 사랑+ 나 = 선이 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늘에 대한 대상격 완성 내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나는 하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미가 요구조건이다. 완전한 사랑에 대하여서 완전한 미(美)를 상대하여 시작을 보아 완전히 주고받는 하나로 되는 대상존재가 선이다.

의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상대를 결정하여 대상 시작을 보아서 이루어 나가는 한 노정적 요소가 의(義)다. 예수도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 하심은 자기자신이 의를 세울 수 있는 한 상대자의 시작을 보지 못함을 표시한 바다. 그런고로 지금 천주는 선을 완성하려니 사랑과 미(美)가 생겨 의의 한 노정을 지어야만 하나님의 이상의 시작이다. 우리가 하늘 대하여서 아름다워야 하겠다. 그러니 먼저 원리로 돌아서는 것이 기본목적이다.

그런고로 양심이상존재 위치위까지 필요하다. 그러니 양심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한다. 나는 하늘 대하여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사랑을 시작한다. 전기의 한 원리와 같은 것이다. 완전 (-)가 되면 자연적으로 (+)는 생기는 것과 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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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적으로 미(美)가 완전히 조성되면 하늘 사랑은 나와 하나되는 작용이 시작된다. 이 작용이 시작하여 계속하는 것이 한 의(義)이다. 이 작용이 계속하여 완전히 합하는 것이 선이다. 작용을 계속하는 데는 부작용을 이겨야 한다. 이것이 의(義)의 사명 위치이다. 의는 선한 노정을 결실하게 하는 요소이다. 예로 표시하면 선하기 위하여 사랑으로 미(美)로 의(義)로 경과가 합하여 하나 되는 바다. 하늘 대한 사랑을 받으려니 아름다워야 하는데 여기에 양심 대하여서 몸을 그 양심에 중심하게 한 유지를 계속하게 하는 것이 의다. 그러니 하늘을 제1존재, 양심을 제2존재, 몸을 제3존재로 하면 의는 제1존재 사랑에 대하여 제2존재 양심과 합하게 하는 제3존재 몸이 있는 바이니 이 몸을 양심의 요구 대로 계속 유지하여 완전한 미를 갖게 되어 완전히 사랑을 받아 합하게 하는 그 제3존재를 제1존재까지 합하게 하는 요구가 의다. 이와 같이 하늘 사랑을 받으려면 양심만으로는 아니되고 몸이 합하여야만 시작되는 바이다. 이렇게 우리 사람에게는 3위요소 위()를 세워서 하나로 되는 원리 창조성이 있다. 의
라는 것은 제3존재 위치를 제1존재 위(位)에 속하게 하는 기본 공작의 실과(實果, 열매)라는 바는 사실이다. 의는 몸에서 양심과 합하게 하는 요소다. 나를 중심하면 한 대상을 대하여서 의하면 그 대상이 나와 같이 설 수 있는 위치를 조성하여야 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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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대하여서 역시 나를 제2존재 위치에 두면 제3위치는 사업이니 이 제3존재 위치가 나와 하나의 위치를 계속 취하게 하는 바가 의다. 의가 없는 곳에는 하늘의 미를 조성 못 한다. 그러니 하늘이 나를 대하여서는 대상 본체이니 사랑이고 나는 미적이고 나를 중심하고 대상격자에 대하여서는 내가 사랑이고 대상 위치가 미(美)이다. 의는 대상미를 조성하게 하는 평형요소다. 그러니 의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유지하는 생활이 요구되는 중요한 생활이다. 의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제3존재가 완성 조성이 되어야 되는 한 분립성 대상을 조성하는 목적으로 인하여 필요한 바다.
인간사회에서 의(義)가 제일 나와 직접적 관계의 위치에 있는 바다. 나도 먼저 마음을 중심하고는 몸, 자신을 중심하고는 대상, 대상을 중심하고는 만물세계로 이와 같이 관계적 인연을 중매하여 주는 그 자신은 의(義)라는 존재다. 의는 완전한 미를 조성하는 한 기본에 향하여 이동하는 장성 요소다. 그런고로 완전 사랑과 완전 미가 조성되면 완전 의는 조성되는 바이면서 선은 완성 된다. 예를 들면 10(열) 사랑을 주려고 할적에 10(열) 미(美)를 보고 주어야 한다. 10 사랑을 받고 10 미를 돌리는 완전히 하나되는 한 회로를 조성하여야만 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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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는 완전한 사랑에 대하여 완전한 미를 유지하게 하는 과정이 의(義)의 분담과정이다. 그런고로 미의 위치는 가감적 움직임이 있는 바이다. 의와 불의는 한 경계선상에 서 있다. 그런고로 대상격 우좌 여하로 사랑과 합하여 선 성사를 우좌하는 중요 위치가 미적 위치이다.
그러니 의는 한 기본선 중심체 모양과 같은 것으로 나에게서는 작용한다. 줄 때도 대비되는 미를 보지 못하고 주는 하늘 존재는 불의인 행동으로 된다. 그런고로 하늘 사랑을 받는 자라면 주는 것도 하늘화하는 기대선상에 서서만이 된다. 그런고로 우리 인생 앞에 구약시대는 행의로 신약시대는 신의로 성약시대는 시의로서 한 인류의 생활 중심으로 되어 있다.
예도를 보면 사랑선과 미선은 대상이 되어 한 회로를 조성한다.

의는 한 중심 B 점이 되어 A, C를 연결한다. 이와 같이 한 선상에서 설 때에 선이 성립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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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적 대상을 취하면 의를 중심하여야 시작된다. 한가지 목적을 이루면 그 목적의 종결을 짓는다. 즉 도면 A, B, C 선을 중심한 한 회로는 조성되어 선을 성사한다. 다음은 딴 목적물을 대할 때도 전번 의를 기대로 하여 미를 찾게 된다. 그런고로 전번 의와는 계속하여야만 다른 뜻 성사의 미를 이룰수 있는 연결선을 조성한다. 도시(圖示) ㄱ, ㄴ, ㄷ 선으로 선의 회로를 완성하고는 ㄱ, ㄴ, ㄷ 선으로 타에로 시작하여 언제나 영원한 표준 선 완성의 목적을 요구하는 회로를 영원히 계속하고자 하는 바가 인생 생애의 목적이다. 이와 같이 하늘 대하여 미로 시작 성사자 시작되어야 다른 상대를 취하여 사랑격으로 대할 수 있는 바이다. 그것은 하늘 사랑과 합하는 미를 찾았던 자격자니 선 소유자라는 입장을 복귀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나로 인하여 대상자를 세우면 이상의 시작이다. 그곳에서 하늘 사람 대신 사랑으로 부부사랑, 자녀사랑을 취할 수 있는 자격자다. 그래야만 하늘이 기뻐하고, 내가 기뻐하고, 대상자가 기뻐하는 제1, 제2, 제3존재 전부가 기뻐할 수 있는 한 목적 회로선상을 완성하게 될 때에 선한 가정이라 하는 바다.

선한 나를 중심한 선한 가정으로부터 선한 사회가 시작이니 여기에는 의()의 사업을 요구하게 된다. 그런고로 나를 중심하고 그 사업을 한 미로써 보면서 한 대상격적 선을 조성하여야 하는 한 몸 대신적 마음으로 대하여 한 미의 대상격 사업을 시작, 조성하여야 만이 의의 사업이다. 그런고로 한 대신 나의 사업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 사업은 그 사람이 대신이니 한 연결된 의를 중심한 한 목적상에 서 있기에 의와 선을 표준하고는 하나라고 표시하여지는 것이므로 사업은 그 본인 대신이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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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온 천주는 한 몸과 같은 구조로써 되어 있다. 물질세계도 한 하늘의 몸의 표시체니 하나님의 한 솜털과 같은 것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사업을 통하여 생활을 시작하여 사랑의 성사 목적과 이상이 합하는 그 이상을 세우는 것이 우리 생활상 중심이다. 그러니 의의 사업이 미를 조성하는 것이며 선을 조성하는 중심도 된다. 내가 중심도 되고 사업의 중심도 되고 하늘의 중심도 된다.
이것은 한 회로를 잡고 되어 있으므로 시작하면 선이나 의로만 시작하니 그 선상에서 어디서나 동성 요소를 감각하니 그 중심도 각 위치한테로 표시도 된다.

좌도(左圖)와 같이 자유 기대선상 어디를 탈선하여도 우리 양심적 가책이 시작된다. 가정이나 사회나 나 혼자나 전부가 한 회로선상에 있다는 결론적 존재이니 그 자연법리와 같다. 그런고로 이상 가정을 생각하기 전에 이상 사랑을 받으라. 그 다음에는 이상 사업을 하여라. 그러면 이상 가정도 필연적으로 유지하는 바이다.

인간세상에는 먼저 이상 같은 것이 왜 점점 가다가 중단되는가 하면 기본 원리를 탈선하는 행동으로 인하여 기본 이상 향상 요소가 그 양심의 가책으로 인하여 성장하지 못하고 중단됨으로 서 있는 바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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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이 근본 원리상에 서면 시작과 동시에 영원 표준을 이상하고 나아가는 바다. 그런 곳은 사랑이면 영원이고 의(義)면 영원을 표준한 의로서 계속하고자 함이 근본이다. 그런고로 하늘 뜻을 합한 사랑으로부터 이상가정 복귀로 이상사업 복귀로 제1단계를 천주지간에 시작을 보고자 함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근본 목적이다. 이곳이 자유 이상세계다.
사람은 하늘 대하여 사랑으로 대하여 주기를 바라고 만물은 사람 대하여 사랑으로 대하여 주기를 바라서 사람을 중심하여 온 천주가 화동하는 작용의 시작이 이상론의 결실 목적지이다. 그리하여 온 천주는 하나의 뜻으로 시작하여 나중을 또 시작으로 하여 알파와 오메가적 원리 성립을 보는 동시에 만세전 이상 실현인 바이다.
하나님은 이 목적을 인간들을 향하여 바라는 바를 알고 성사하여야 한다. 이 크나큰 이상의 근본을 사람 대하여 부여하였고, 땅에서부터 하날로 연장, 영원 생활을 시작하는 자가 되어지는 행복의 창조섭리를 누가 감사하지 않으랴!
이와 같이 생활하는 자라면 하늘은 나를 중심하고 표시하면 모든 것을 지도하는 한 목적이 시작한다. 그런고로 이 원리상 이상은 하늘의 중심존재인 한 존재, 재림주를 중심하고 시작을 보는 바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재림주와 합하여 뜻을 성사하는 세계 자녀가 되는 것이 하늘의 한 소망인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