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원본 제3권 (329~458쪽)

훈독왕 | 20220623051102

원리원본 제3권

記錄第參券 (329~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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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帰厂史로 된 人類発展厂史

51.6.29

墮落됨으로 人類発展厂史上에는 두 対立的位置로서 対取하여 나온바는 事実이다. 하나님은 原理創造理想를 찾고저 함이고 사탄은 非原理世界를 그낭 創造世界에 維持코저 함이 始作부터 厂史를 通하여 그 本体들이 右左하는 目的으로 向하여서 나아왓다. 그러나 사탄은 非原理存在며 宇宙에 非原(*理)的 사람의 存在하여야만이 사탄이 取하는 겄이었다. 그런고로 本來하나님은 사람의 生命이 根本이며 사랑이 根本이며 理想에 根本이며 其自体와 한나되는 겄의 큰아큰 目的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絶対的으로 信, 順, 侍가 全目的되는 原理였다. 그런고로 順從과 侍從과 信從하면 原理에 立脚되는바니 사탄은 原理的 存在은 主管할 수 업스며 하나님은 原理로 될 信과 順從과 侍從를 通하여서 原理에 세워서 自己所有로 하게 하기 爲한겄이 人類対한 摂理인 同時에 사탄를 分立식키고저함이 根本目的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찾고저 하는바은 墮落前時代가 要求이다. 그리하여 直接主管目的成事가 아바지이 創造하신 根本目的이면서 그겄이 한 理想이다. 그러무로 墮落된 人間들 対하여서 하날적으로 取하여 세우고저 함의 時代가 卽 旧約時代다. 이 時代가 復帰에 한 터가 되여 하나님의 復帰役事할 相対時代이다. 이 時代以下가 要求하는 目的은 墮落前時代로 돌아가고저 하기 爲한겄이 目的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摂理의 한 蘇生時代가 始作이다. 其 蘇生에 터를 中心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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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서 直接 其 復帰目的를 하고져 하여스나 長成部分만의 한 完成目的을 남겨두고 役事한 겄이 新約時代다. 그 長成되여스나 完成하여서 全天宙와 하나님을 中心하고 其 復帰理想를 完成하여야 할 時期가 卽 完成時期 再臨主 役事時期로다. 이와같은 厂史를 두고 至今 其 目的時代를 向하여왓다. 그런고로 其 經路를 回顧하여 보면은 하나님의 復帰摂理前時代가 있섰든 바는 事実이다. 其 時期은 아담부터 노아時代까지다. 其 期間은 었던 時期가 하면은 惡対한 하나님의 分別時代이였다. 其 時代로부터 노아以後 아부라함으로 모세로 예수로 再臨主로서 復帰目的完成하고저 하나님은 人類厂史을 經過케하여 나오신 바다. 이 厂史의 全目的은 어는時代를 標準하고 하나님은 摂理하나 하면은 墮落前 아담 해와 時代다. 그러면 其 時代이 社会와 하나님과의 언던 体系를 가진 形体이 社会였는가가 至今復帰完成를 발아는 우리 現世界 사람들이 발아는 根本目的이다. 이 目的이 앞날 新時期에 理想社会라는 겄은 事実이다. 本來 하나님을 中心하고 나왓따면은 모도가 한 兄弟면서 한 子女이란겄은 勿論이다. 그런고로 全部가 한 아바지 뜻 中心하고 全生涯를 完成하여 自己의 理想生活 肉身生活 永生理想生活의 延長이란 目的으로 通하여 하날과 合한 理想囗家 組識社会가 될 바은 論할바 업는 事実인바다. 그런고로 人類는 찾저 올라가니 其 時代은 이 根本墮落前時代理想으로 表示되면서 世界厂史上에 発露됨은 事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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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그런고 至今에 世界潮流는 全部가 眞理々想世界를 찾저 들어가는 한 關門앞에 당到하여 지은 時代가 卽 至今時代다. 그런고로 世界上에서 自然的으로 그 発展를 보아서도 其 目的時代를 推測도 할 수 있다. 그런니 厂史発展은 復帰厂史発展이다. 고로 厂史은 発展段階을 取하여 나온바다. 卽 蘇生段階로부터 長成段階로 長成段階로부터 完成段階에로 나왔다. 그러면 至今은 얻던 段階時代나 하면은 長成段階로부터 完成段階로 넘어가는 한 焦奌時代다. 卽 이 時代은 墮落하는 時期段階까지 復帰된바를 表示하은 時代다. 卽 長成時期 예수를 中心한 囗家들이 合하여 世界統一陣營成事時代다. 그런고로 우리가 알아서 한 目的과 世界政見를 가진다면 하나님의 復帰理想를 알바가 至今以後에 큰 中心奌이다. 그겄은 復帰라는 摂理가 있는 바를 確認할진대 今後世界觀은 自然的理解할 바다. 그런고로 墮落前時代은 하나님을 基盤으로 父母를 中心한 子女兄弟時代이니 한 家庭를 中心한 世界인 同時에 하나님의 뜻를 어디나 侍시지 않음이 업은 世界란 바도 事実이다. 한 兄弟이니 또한 家庭이니 한 子女니 또 아바지은 한 血統이면서 한몸이니 그야말로 差別를 두워 対할 수 업는 家庭的을 中心한 社会制度라는 바도 안다. 여긔에는 마음 通하여 아바지와 合하게 努力하면서 나아가는 時代이니 物質이란겄이 相通이면서 共同所有라는 各自가 立場를 갗치한 世界로 된다. 그런고로 其 世界는 有物相通時代요 하나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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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하여 幸福㐂樂時代란은 겄은 事実이다. 그런고로 그야말로 理想共生共義主義時代가 墮落없었든 世界理想임은 事実이다. 俗된世上 말로 하면은 理想共産時代가 卽 其時代였다. 그런고로 世界発展은 한 表示로써 이와같은 主義가 나온바은 사탄이 其 큰 目的을 전재로 증거한 表示이다. 그런고로 예수은 厂史를 두고 墮落한 段階까지 全世界를 復帰케 할러한은 겄이 目的이다. 그런고로 예수이 根本主義은 至今 理想主義를 갔고 始作한바다.

本來 創造世界에은 全主人은 아바지라는 겄은 事実이다. 所有权이란 名詞와 積極性를 갔고 나온바는 墮落世界었기에 卽 사탄를 區分할러니 하나님은 사람 사람사이에 所有权이란 겄을 세운바다. 目的은 다시 찾으러니 그런 方向性를 取케한 바다. 그런고로 全部復帰世界에 主人公은 하나님의시다. 그런고로 또 全所有主人公은 하나님이시다. 또 人間의 아바지다. 이와갗은 根本原理를 두었기에 앞 理想時代는 아바지 所有同時에 우리집 所有면서 우리집 所有니 卽 自己所有라은 目的을 두게 될 겄이다. 그런고로 問題은 아바지 眞正한 子女로 다시금 復帰되여 아바지 몸를 받아 血系를 完成하여 그 뜻를 取하여 나아가는 子女에게은 世界은 境界업는 自由家庭으로써 理想生活를 各自가 始作할 바다. 그 生活이 直接永遠이 始作이니 良心아닌 善 外 겄으로는 取할 수 없는바가 事実이다. 其 世界가 卽 理想世界다.

1. 하나님이 天宙所有主人復帰時代

② 2. 根本父母를 復帰하여 侍시는 時代

3. 兄弟도로 찾저 共義共生으로 한 大家庭建設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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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 子女찾저 사랑하며 同居時代

 

1. 個性完成 복귀時代

① 2. 自由理想 復帰時代

3. 사랑 // //

이 모든겄를 찾은 世界에는 主義가 업는 世界다. 卽 根本 한아니 対立되는 무었이 업는 共一 同一한 世界이무로 주이업는 世界라 할 수 있다. 主義라는 겄은 眞理를 찾저 나오는데 한 지팽이와 같은 겄이다. 그 眞理体에 合하여 그저 眞理란 世界가 되는 時代다. 이 目的이 全世界的으로 展開하기 전에은 主義樣으로 나아가은 겄은 事実이다. 이와갗치 하나님은 繼續 섭리하여서 온 六千年厂史은 너무나 긴 時代였다. 其過程를 다시금 厂史的으로 回顧하여보자.

아담 ~ 노아 ~ 아부라함 時代는

原始分別時代인 同時 原始共生主義時代

이 時代은 勿論 하나님을 멀리하여 사탄과 合하여서 하나님이 뜻을 잡으러하나 잡지못한 時代다. 그런고로 아무리 보아도 希望업은 世界였다. 그런데 其時代는 墮落하여 낼리왓슴으로 其社会形体은 共生主義時代였다. 自由營農時代면서 自由遊牧時代였다. 그런고로 集團共生体를 가진 共産主義時代였다. 그런고로 이 時代를 한 限界를 두어 하나님은 淸算하는 審判를 하심이였다. 그겄이 卽 노아審判이다. 그리하여서 다시금 찾저 세우려고 하는바는 根本自由理想世界가 目的이니 審判後 부터는 分別하여 択한 氏族를 中心하고 復帰할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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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노아를 択하였다. 그러나 뜻 合意보지 못하여 아부라함부터 첫 工作始作하심이 아부라함 択함이다.

 

다시 発展 段階를 區別하여 表示하여 본면

原始 共生主義時代 (分別時代)

氏族 - 民族 - 囗家 (蘇生旧約時代)

囗家 - 同盟國 - 囗際 (長成新約時代)

囗際 - 하날世界 - 天宙 (完成成約時代)

하나님의 다시금 根本 뜻를 復帰하고저하니 아부라함를 中心하고 뜻이 始作를 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아부라함 氏族를 中心하고 繁殖케 하여서 한 系族体系로부터 民族를 造成하기 始作하였다. 그리하여서 사탄의 対立를 세워 나아가게 하였다. 本來氏族를 択하여 直接根本으로 復帰할 수 업고 対敵되은 사탄支配囗対하여 설 수 있은 한 体系를 갔게 되였다. 아부라함 択한後 벌서 사탄의 支配囗家体系를 造成하여 있기에 하나님은 아부라함도 한 囗家를 세울 수 있는 氏族으로 繁殖하게 하였다. 그런면서 埃及四百年 탕감時代를 通하여 가면서 氏族이 한 部族으로 造成케 되게 하여서는 其와 兼하여 財物이란겄를 所有케 하는겄이 始作하였다. 그겄은 사탄 所有世界를 빼앗스야가스니 部族으로 卽 民族으로 造成하여서 애급을 出発한 後부터 全生活은 墮落前基本形体에 한 表示的段階를 取하여 共生主義인 生活樣式를 中心하고 하나님을 中心케 하심이였다. 其 当時 뜻에 合意치 않는 外 사람도 罰한바는 사탄 侵入하니 直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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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分하였든 바다. 그리하여 이스라엘民族들은 가나안땅을 向하여 찾저들게 될 대도 벌서 土地나 모든 所有할 수 있는 財物이란겄은 共生理念 밑에서 分配하는 其樣式를 갓게한 바다. 其理由은 全世界를 復帰코저하는 其時代이 한 蘇生時代이니 囗家造成하여서 惡対立하여 나왓다. 그런고로 蘇生時代 이 한 完成를 보기 爲하여서 氏族부터 民族으로 民族부터 囗家으로 한 段階発展하여서 한 뜻이 成事의 터를 잡은 바를 알 수 있다. 이와갗치 하나님과 사탄에 対立이 되니 人間社会에서도 支配하여 학대하여 온 바다. 그 対立的 被支配者인 사람 世界에도 奴隸時代와 같은 非原理的時代가 出生하는바다. 몬츰은 択함받은 氏族 아부라함子孫이 애급에서 奴隸生活를 하였다. 또 이 百姓한테도 사탄対 囗家면 囗家民族이면 民族사이에는 敗하면 奴隸的 支配時代가 生起는 非原理時代이엿슴의였다. 이리하여 厂史的으로 보면은 이 奴隸的時代은 主로 資本를 主로하여 厂史発展史上에 表示로 된다. 그 理由은 勝하면은 資本를 取하는 겄이고 敗하면 其에 対한 拘束를 받으므로 奴隸的始作과 同時에 긴 厂史로 흘으련은 이 경향이 社会的 한 風習化하여서 同族間에도 이와같은 傾向이 厂史를 보게 되는바다. 이 모도가 其反対되는 非原理存在가 있섰끼에 이런 始作이 厂史上 必然的 한 産物로 보여지게 되였다. 그런고로 民族이 한 囗家를 造成하게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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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本目的은 囗家資本을 蓄積하게 하여 神 対한 支配囗間으로 흘으게 되였다. 그 理由은 世界에 전부를 찾고저하여 所有限界를 定하면서 나아왔다. 여기에 侵略이란 原因이 始作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百姓를 中心하고 한 囗家를 造하여서 한 뜻에 基台를 잡고 其 基台우에 理想復帰 実踐者로서 예수가 오게 되였다. 예수 온 바은 其 한 囗家를 뜻 中心한 囗家造成할 수 있도록 하여서 하고저 하심이였다. 그리하여 예수는 한 囗家 蘇生基台우에 長成使命과 完成使命 兼하여 成事하고저 하였스나 사람이 不信 不順 不侍이니 原리안인 目的囗家体系로 세게되니 十字架로 因하여 其目的를 向케 하였다. 그리하여 이 百姓은 根本目的은 破한 百姓이니 択한 者지만 예수 죽은罪와 厂代的罪에 対한 탕감期間를 긴 厂史를 두고 始作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이 百姓은 全世界에 학대받은 民族으로 囗民으로써 各地에 헤제서 其 탕감使命과 同時 其때를 채워서 다시금 뜻를 繼承한 信仰囗家들과 合하여서 한 囗家를 始作하게 하여서 全예수이 目的에 合한 囗家를 中心하고은 사탄 対하여 攻勢를 取하는 한편 勝利的으로 보기 爲하여 各 囗家들은 두 진영으로 同盟이란 名稱으로 合囗으로 나와 한 相対囗들를 対하게 하였다. 그런고로 이 한 囗家로부터 딴 囗家를 合하려니 主義囗家가 生起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中心한 囗家主義囗과 其 対陣營은 厂史上에 必然的表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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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展開한바다. 其結果로써 対立으로 보는 陣營으로 나아왓다. 그런고로 하나님便에 屬하면 原理的이니 自然 其発展과 함끠 資本蓄積은 自然富大한 겄으로 始作되였다. 그런고로 至今 보면 유대百姓과 米英人들은 本來 하나님의 支配하는 한 百姓들이다. 그런고로 사탄은 점점 其 末路을 當하여서 至今에는 最終奌上으로써 其位置를 세울 수 업게될 때가 멀지 않어온다. 그리하여서 長成時代가 完成를 볼 바다. 그런고로 사탄을 中心한 共産囗家은 自然的으로 敗亡한다는 겄이 事実이다. 그런데 예수오면서 福音을 伝할 때에 벌서부터 有物相通이였스면서 言語에 対한 區分를 破하은 方言 말하는 弟子이 役事은 벌서 바벨탑부터 言語不通이든 겄이 其 本意義은 破한은 表示면서 뜻에 한 始作이면서 全世界的 재창조 始作이 摂理라는 事実이 表証함을 告하는바다. 이와같치 예수이 最高目的도 結局 共生共義主義理想이니 이런 貌樣으로 나온바다. 그런고로 예수로 因하여 長成時期가 갓가와오니 共産主義者들이 먼츰 흉내 体系로 낱아남은 其原理的事実이다. 그런고로 예수로 因한 理想世界가 卽 再臨主時代다. 이와갗치 厂史은 復帰路程를 딸아 하나님의 摂理下에서 움직여 나온바 보아도 앞 理想世界를 알 수 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한 社会主義 囗家時代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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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義共生主義時代로 들어가게 하는바가 至今以後時代이 要求目的이다. 卽 하날과 땅이 한나되는 理想円和世界가 된다. 円和世界란 겄은 하날과 땅 어데나 和合하여 한 円形体를 完成하여 다시는 衝突업는 自由란 뜻이다. 온 天宙가 和하여 円一하는 其世界가 円和世界다. 또 이 世界을 天宙(主)主義世界라고도 한다. 이 世界를 造成하기 爲한 目的이 하나님의 창조目的이면셔 復帰目的이다. 円和世界은 全世界가 一되는 時다. 其段階까지 나아가는데은 共義主義라하여 나아가 円和世界로 完成를 볼 바다. 이 目的達成이 完成時代 즉 再主時代다. 이 時代은 無戰爭時代이다. 사람의 鬪爭이 있섰슴은 三原理로 基因하여 生起였다.

 

1. 原理基本에 背馳되는 存在 有함으로 ---神対

2. 主義相異함으로 ------------------- 人対 統一하여야 한다는겄이 人類의 使命.

3. 生活相異 함으로 ------------------ 物対

 

以上과 같은 한 基本原理에 対比되는 딴 存在 있섰끼에 人類厂史上戰爭에 자적을 보게 되였다. 그러든 其原理基本背馳存在는 업서지니 主義相異케하는者 업으니 生活相異한 모양도 업게 되니 其時代은 必然的無戰爭時代가 되는 바이다. 이런 事実를 알고은 우리는 얻더게 하여야 되는 바은 各自에게 있서 누구보담도 全天宙에 남어진 充當使命를 다하여야 된다. 그리하여 永遠家庭建設를 이 天宙에 達成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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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今世界를 보면 自由을 찾기 爲하여서 싸우며 그리하야 自由찾은 後면 사랑理想 찾으여야 하며 其後에는 個性理想完成키 위한 名位(個性尊重) 세우기爲한 樣으로 至今世界은 움직어지는 바는 全部가 未來에 뜻 成事에 한 表示的 상증이다. 至今自由囗家最高位에 있는 囗家들은 벌서 이와같은 곳으로 向하은 根本目的은 그 自体들은 몰으나 其 하나님이 뜻하는 方向으로 나아가는 겄은 事実이다. 이리하여야 人間이 根本를 찾은 겄이다. 사람 한 自体에게은 自由理想이 있고 사랑理想이 있고 個性完成하여야할 根本創造性이 附与되였끼에 이 모든겄 完成하여야할 時가 갓가와오는 復帰路程에 서 있스니 必然的逢着인 바는 事実이다. 萬一 過渡段階에 處하여 其使命를 빨리하여야할 自由囗家들의 使命이 重大한바다. 그리하여 全世界은 再主를 中心하고 먼츰 生活統一, 主義統一, 宇宙統一, 天宙統一 其中 사탄으로 因한 分岐된 言語도 統一은 이와 갗은 根本 基一世界로 되어야한은 바가 世界人類이 厂史的理想終奌이다. 한나로부터 始作한 겄이 多數로 多數가 單位合하여 基一奌으로 起動作用하는 바가 創造根本目的이다. 이 目的를 反하는 者는 얻던 者라는바는 잘 알바은 永生生活世界를 破하는 者라는 바는 勿論이다. 이런 者는 個人으로도 勿論이고 囗家的 世界的으로 対 ? ? 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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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造性 復帰로된 理想論

 

本來 하나님의 天地創造할 때에 어는 存在物이라(는 것이든가)든지 全部은 相対할 수 있는 存在를 対케하여 지으심의였다. 被造物 中애 相対할 수 업는格 업시 지은겄은 업다. 直接으로 対한은 相対格이라든가 間接的이라는 相対라든가 全部 얻던 한 相対位置를 잡고 있는 同時에 其相対들로 因하여 自我에 한 完全造成를 保充하는 作用인 联關性으로 天宙에 存在物들은 서로 相対를 要케되였다. 그 相対를 잡으면 그로因하여 自我를 中心하고 全要求에 한 目的成事를 始作하여서 自我아닌 他自我格으로한 対像存在格으로 造成하고저 其目的의 作用를 始作케 된다. 그런고로 相対가 낱아나면 其相対은 나에 한 対像될 수 있는 한 資格를 추궁하게 된다. 相対는 始作이고 対像은 自我를 中心하고 한 目的過程을 經過한 成事格이 卽 対像이다. 어턴 存在든가 全部은 自我이 幸福를 標準하고 対像格를 要케 된다. 相対업는 者은 存在이 価値가 업게 된다. 相対로부터 対像를 完成하면 할사록 其의 価値와 幸福世界를 展開하는 바다. 그런고로 天宙萬物은 全部 한 対像格 体系內에서 完全対像의 한 始作를 보와야만의 理想이란 世界를 보는 바가 事実이다. 어는 社会나 囗家라든가 其目的達成할 수 있는 한 対像境을 떠나서는 発達도 없고 理想도 업는 바의다. 그런고로 存在하는 其自体은 理想境에 한 影体 겄的 한 本理想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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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보는 対像位置를 要하은바는 必然的要求다. 그런고로 我와 理想과는 한나면서 한 動作形線를 떠날 수 업는 同格応할 수 있는 한 要求的立場에 處하는 바는 事実이다. 其要求를 充當하여야 하는 우리의 使命이 每日生에 한 課業이다. 이런 課業를 하게하며 達成케 할러니 나로 하여금 其理想에 対하는 向心인 자극과 충동心이라는 維持가 第一重要問題다. 이 마음 업다면 理想과 나와는 벌서 成事할 수 있는 길을 일어버린 바와 한가지다. 그러무로 마음으로 한 対像格位에 있서 그 理想를 成事할라는 충동心이 作用를 갓게하는 겄이 있서서만의 其理想과 나와는 한 応線上格으로 되는 바는 事実이다. 그러니 우리 人間에는 언제나 向上을 標準한 理想를 마음으로 自己도 아지 못하게 더 要求되는 存在格에 있다는 바를 否認못한다. 그런 其作用心要素의 始作과 刺戟과 衝動이 始作를 至今나와 關係上에있서 한 附合応線를 取하여지은 한 不可避한 立場를 体得하게 될 때 나는 벌서 더 높을 수 있는 한 要求에 応한은 第二 存在格에 處함은 事実이다. 그러니 要求에 応할 수 있는 길을 잡고 나아간다면 그는 벌서 幸福과 함끠한 理想에 興味를 体得할 바는 事実이다. 그런고로 여긔에는 벌서 人間은 창조的 原理로 完全를 標準하고 지였는 그 原理的힘이 나와 聯하여 있기에 이 힘에 要求에 対像価値추궁이 人間이 理想를 生覚케하는 原因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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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關聯된 自我라는 存在를 示定한은 곳에는 한 対像格 完成를 要케하은 位置와 立場를 떠나서는 其根本原理와 背馳로 된다. 그런造化로 지음받은 人間이니 이 対像理想를 充當할 目的과 背馳되는 立場에 處하면 自然的原理性品되는 良心的추궁은 必要的으로 나에게 强하게 作()用한다. 그겄은 原理脫線이니 이를 保障하기 爲할러는 作用이 良心作用이다. 그런고로 우리 人生은 벌서 나 아닌 한 本体를 中心하고 한 対像格達成이 남어진 한 課業 으로 알어야 한다.이다. 이 対像格完成이 卽 理想에길인 同時에 幸福이 基本인 바다. 나는 하날 対하여서 한 対像格存在로 基本하고 창조받았다. 그런고로 하날 対한 完全対像格 価値者로서 되엇끼에 하날의 要求하는 原理的要求다. 이 要求는 根本힘의 作用과 共通하니 어는곳이나 通할 수 있는 原理要素로 被造物世界은 共이 通하고 있다. 그러니 누구나 한 完全格対像目的을 共通히 갖고있는 바는 事実이다. 이 対像格를 하날対하여 나 自体가 完成하는 同時에 現実界에 있섰서는 相対格를 取하여서 其 目的을 한 回路的路線格인 한 딴 対像体를 成立하여야만의 本 하날의 対像価値와 合할 수 있는 겄으로 되여있다. 我는 하날対하여 対像完成하는 同時에 相対性의 한 対像를 完全成事하여야 만의 根本과 合하는 三位一体格 한 回路를 造成코저함이 창조原性인바다. 그러니 良心的으로는 몸에 指向을 받고 다음에는 이와함끠 우리는 相対性를 取하여 完全하나로되는 対像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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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存在를 合体하여야만의 基本原理上線에 비로서 일의있는 바다. 그러한 곳에는 근본 하나님은 居할 수 있는 창조原理的基台이다. 이런고로 이 基台造成하는겄이 人間이 最高理想境으로 되여 있다. 그래 人間이 흔이 말하는 理想이 곳은 어디나하면 良心理想要求本体와 合하는 곳이다. 卽 이 奌은 모든 完成된 原理上奌이니 幸福이나 㐂樂이나가 全部가 始作하은 根據地다. 그런고로 基本理想은 卽 하나님과 同居하여 한 原理上에서 萬事를 발아볼 그때가 人間에게는 最高 깁붐이다. 이곳에 處하면 至今까지 찾저 올라온 한 絶頂上에서 處하여 昔日에 下部分向하여 볼 수 있는 그곳를 알게 될 때 모든 새 始作이 生活境地로 한 附与를 始作하니 卽 理想世界다. 그야말로 幸福世界다. 問題는 이 根本始作를 하여야할 使命的存在에 處하니 良心은 나로 因하여 完成에로 재촉하는바다. 이겄이 良心과 肉身이 相衝形体를 取케한은 原因인바다. 我 한나를 中心하고 보아도 幸福할러면 먼츰 마음과 몸이 한나되는 其基奌를 离脫하면 벌서 不滿이 始作한다. 이 角度가 甚할수록 苦痛이 甚하다. 이 角度 합하여서 한 目的基奌上에 뜻 成事를 볼적에는 幸福이란 바는 事実이다. 그런고로 本來人間은 내가 마음과 몸이 完全 한나되어 良心要求를 肉体가 完全히 채와줄 수 있다면은 其곳은 벌서 原理成事이니 其곳은 卽 하나님의 지으신 根本形이니 이곳에는 하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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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실 수 있는 時間이다. 이 時間이 長期間維持할 수 있는 生活形体가 理想生活이다. 그런 生活体를 取한곳이 卽 善한 곳이다. 善한 곳에는 하나님의 같치 하면서 根本幸福要素와 合할 수 있는 始作이다. 이곳를 人生은 일어버렸뜬바다. 이곳를 다시금 찾저서 채우여야할 存在이니 엊지 良心的으로 其目的達成를 추궁받지 않으라. 그러면 하날의 要求成事가 始作하니 나도 또 하날의 줄 바를 받을 수 있는바니 이곳이 卽 하날対한 対像格完成位置니 그야말로 原理帰因 곳이니 幸福이다. 사람은 本來 이와같은 理想原理上奌에서부터 始作함의 根本目的으로 되었뜬바다. 그겄이 墮落으로 因하여 이 基本原理奌上를 일어버리게 되였다. 이와같은 한 根本体에 対하여 한 対像格存在의 本路線인 根本原理를 復帰하여야할 重要한 責任의 누구로 因하여 生起였나 하면 그는 두말할 겄 업시 非原理存在인 한 惡이 主人公 사탄으로 因한바다. 이 사탄 対하여서 至今 우리는 아지 못하고 그저 自身自体의 不足과 未及함에 嘆息를 하게되는 바도 사탄으로 因하여 너머 유린받은 自体가 되어 감각하지 못하는바다.이와같치 根本対像的位置를 일어버린 人間이지만 그 根本良心은 우리로 하여금 根本位置에 対한 要求를 始作하여 주기를 要한은 바다. 얻던 사람이나 全部가 自己가 第一이란은 한 個性要求를 세우고저 한다. 그겄은 누가 갖지못한 한 個性眞理体인고로 그 要性性品를 어는 곳에서라도 한 相対되는 位置를 잡아 完全한 対像格成事를 要케하고저 한은 第一原理本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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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合할러하는 第一基奌를 잡고저 함에서 始作한다. 이와갗치 根本 한 個性를 中心하고 한 相対始作의 完成인 対像格存在性으로 完成만 하면은 其基台上에는 한 対像格完成으로 原理路線上를 成事하는 原理的目的를 造成하니 그곳은 벌서 根本창조원리로 낱아난바니 善한 겄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通性를 取할 수 있는 幸福이 한 基奌位置인바다. 그런고로 人生世界에는 누구나 自己中心 第一主義로 나아가는 바은 自己로 因하여서 根本基奌上原理位置를 取한은데은 第一갓가운 距离를 自己가 누구보다 더 갓가운 바이무로 他中心하고 成事보담 自己中心하고 個性理想를 成事코저 하여서 自己第一主義로 取케 하는바는 事実이다. 이겄의 蘇生 長成 完成하여 한 目的達成하면은 其 다음은 第二次的対像位置를 널리하여 全体基本目的으로 延長되는 바다. 그런고로 第一自己부터 始作하여 全体에로 完成理想를 協助하게끔 本來人間은 되여있다. 그런고로 사람의 本來 이러한 基本原理上에서 지었기에 墮落은 되였슬망정 自我中心를 主로하는 바는 事実이다. 純수한 良心的으로 善으론 나아가는 곳이라면 누구나가 其한 自体를 合하여 나아가면 언제든가 其基本奌上善를 合하게 되는 바이다. 이러니 우리가 相対를 要케될 때 相対가 된다든가 相対

 

346

않된다든가 하는곳은 벌서 善한理想이 始作인가 않인가 이 決定的解決에 表示로서 보여주는 事実를 증거하은 바다. 相対된다하면은 벌서 対像格位置인 한 곳를 所望케하여 주는바는 事実이다. 그런면 善과 理想成事니 我에게은 큰 깁붐의 始作이니 自己를 中心하고 이런判斷를 짖게 하는 바다. 이런고로 사람은 自己를 달마라하는 相対格存在를 占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예만의 対像成事를 잡을 수 있다. 全人間은 善한 者를 対像하고저 하는 바은 自己의 한 目的達成를 速進시키러고 하는바은 原理로 된 바다. 사람의 根本的으로 自己를 세웠서 大衆에 한 中心되고자 하는 其本心 마음은 我自身의 根本的으로 善하다는 한 根本体다하는 宣言에 表示인바다. 그런고로 이런겄 보아도 나 달마라하는 要求를 세우고저 하는바은 나은 本來 한 善한 標準上存在라는 겄를 宣布하는 겄은 事実이다. 나와 合하면은 善할 수 있다는 겄이다. 이런겄 보아도 벌서 自己은 第一存在善境에 한 表示的力活를 주어서 相対를 잡아 対像을 세웨서 그 善을 直接自己와 連洛(联) 짖고저하는 第一存在善을 目標하는 바는 事実이다. 그런고로 自我란 存在은 第二存在며 其目的은 第一存在이 한 対像格의 存在로 되어야 된다는 바도 原理的으로 감촉받은 바는 事実이다. 의 事実만을 알게된다면은 하나님의 対한 문제도 問題外로 되게된다. 第一存在善과+ 第二 存在善 = 하나님 + 我 = 하나님 + 対像 = 하나님 +(我+対像)自己

 

347

라는 表示로 한 規定된다. 第一모츰 問題은 自己다. 내가 모츰 第一存在의 完全対像者成事할 것 卽 마음과 몸이 한나되여 善하여지는 基本奌上自己를 造成할 겄이다. 다음은 이런 自己를 中心하고 第二自我格対像格者完成할 겄이다. 이겄이 始作하면 창조性이 完成된다. 卽 이곳은 男子면 女子가 要求되는 相対로부터 対像 추궁을 要케 된다. 다음은 이겄의 基本的創造性第二対像存在다. 하나님과 사람은 한 몸이(니깐)기 때문에 이런 基本原理로 되여 있다. 그런고로 独身生活이란바은 非原理가 存在하는 惡에 屬한 世界니 그런겄은 있슬 수 있스나 理想時代가 되면 基本原理背馳行動이란 結論이 나온다. 다음은 大衆対하여서도 한 相対으로부터 其 얻던 目的完成할 수 있는 対像格表準하고 나아가지 않의면 안 된다. 그런고로 我가 한은 事業도 이와갗치 나의 한 相対로서 対像格的態度로 対하여서 그 事業目的를 推進하여야만의 善한 하날의 要求하는 善한 者들의 生活事業인바다. 이러한 目的으로한 相対로 하나님은 人生対하여 対像繁殖를 要求하고 사람은 事業通하여 相対로 対像으로 善成事하여서 서게할대 第一存在이 善을 事業体와 自己対하는 어데나 善한 겄으로 하날과 合할 수 있는 길을 造成하는 겄이다. 이러여야만의 全天宙은 根本부터 사람과 한나되며 사람은 萬物世界上까지 한나되게 하는 目的達成하여야만의 하나님의 善히 계시는 발른 삼이 되는

 

348

바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根本 善理想展開를 第一은 사람의 重要한 位置에서 上으로는 하날 下으로는 萬物 右로는 가정 左로는 社会 또 크게하면 円和世界에로써 根本創造理想造成이 目的인바다. 그런고로 나를 中心하고 自我善으로부터 家庭善으로 事業善으로 이겄이 第一責任完成함이 한나님의 創造한 対像善目的인 바다. 이와갗치 되여야만의 하날과 나는 合하여 生活하는 対像完格者다. 이 目的이 全人類에게 要求하은 하날 第一世界의 要求다. 卽 하나님이 要求目的이다. 世界떠난 하나님은 世界上에 슬대업는 바다. 하나님과= 全天宙은= ①되는 世界가 善世界다. 善은 하나님이시다. 善에는 性分別始作으로 個性完成으로 対性個性完成이 合하여서 한 回路이 造成를 要求하는 根本存在다. 善은 対像位置確保가 要求條件이다. 이와갗치 天宙는 相対性으로 対像으로 單位하고 全天宙까지 善를 造成하고저함이 사람창조면서 天宙창조다. 사람은 天宙中心이다. 사람中心하고 第一存在 하나님 사람中心하고 第三存在萬物이다. 하나님은 사람 通하여 善 繁殖始作하며 그 善를 사람은 個性善의 萬物善까지 造成하여 善에 主管路線를 세우는 바다. 그러니 사람업는 하날없고 사람업는 萬物업다. 사람의 天宙中心이니 사람墮落하니 하날嘆息이 生起고 사람 墮落하니 萬物嘆息生起엿다.(참조 롬八/19) 이겄 復帰事業의

 

* 拔去分---349~370의 원본은 없음  

 

( 김정섭님이 정리한 부분임)

[349]

目的이 하나님의 攝理이다. 至今 以上과 같은 原理를 보아서 우리 사람은 相對 될수 있는 第一資格成事가 무었 보담도 貴한바다. 내가 하날 對하여 第二存在로써 第一 存在의 한 對像의 要求가 全目的됨은 事實이다. 그러니 相對할수 있는 位置를 取하여야 하겠다.

이런 立場을 取하는 것은 사람은 第一存在의 利用物인가 生覺하여서는 안된다. 이 相對의 要求는 第一存在目的 達成하기 爲함은 勿論이나 나로서는 完成하는 基本 完成이란 目的으로 되어 結局은 나 때문이라는 바는 事實이다. 하날의 要求하는 바의 目的은 주기 爲한 目的이고 나는 받기 爲한 目的이 卽 내가 하날 對한 相對始作으로 對像完成을 爲한 바다. 그런고로 하날은 주고저 하나 줄수 있는 相對없으니 그 얼마나 서러우랴 서러움이 生起는 것은 주고받고 할 存在가 없게 되는 것에서 始作이다. 이런고로 참주고 받고 하는 者의 要求로서 對像이 要求되는 바이다. 내가 줄적에 第二 나에게 준다면 거기에 벌서 기쁨이다. 그런고로 子女 對한 사람은 여기서부터고 男便 對한 사람도 여기서부터고 社會(事業體) 사람은 여기서부터고 하날 對한 사람도 여기서부터다.

 

이와갗치 貴한 根本上 自我가 되면 참 받을수 있는 者이다. 上으로는 참주는 者를 갖고 下으로는 참 줄者를 갖었다. 이얼마나 幸福이라 아니하겠는가. 참주고 받을 곳을 所有한 者는 언제나 기쁨의 動力이 躍動하는 바다. 그 表示가 子女 對하여 주고싶고 夫婦는 서로 사랑하고 받고 하는 根本原理인 表示다. 이 모두가 完成은 하날과 合하여야 되는 바다. 하날은 發電所고 우리는 配電所와 充電所와 같고 만물은 需給所와 같은 겄이다. 發電所 있는 配電所 需給地는 原理이나 이 中間 우리되는 配電所, 變電所 없으면 모두가 生命使命이 中斷인바다. 이와갗치 주고받은 變電所 配電所의 位置가 卽 우리 人生이며 나이다. 이런 原因으로 받고 주는데 原理消耗없는 겄를 바란다. 電氣로 말하면 損失없는 겄를 要하는바와 한가지다. 損失이 많으면은 基本 電氣가 消耗된다. 損失은 그 導線物質로 因하여 右左되는 겄이다. 이렀틋시 物質의 力되는 電氣를 잡아먹는 作用이 生起게 하는 敵 作用의 始作은 電氣要素를 反하는 作用을 갖고 있는 存在니 그런 損失을 갖어오는 겄과 同一하게 우리는 電線과 같은 肉身을 갖고 있는 그 自體와 良心과 合하여서 完全하나되면은 良導體作用하는 겄과 한가지고 그러치못하면 不良導體와 같은 副作用 損失을 生起게 하게 하는 겄과 한가지다.

 

그런고로 우리는 完全히 주고 받는 對像을 連續的으로 얻던 方面으로 한다면은 그는 다시금 主人에게 돌리는데도 損失없는 原理復歸가 成立하는바와 한가지다. 이와갗치 完全히 받고 完全히 주워 돌리수 있다는 것이 第一要求目的인 同時에 善繼續이다.

電氣가 잘되게 하는 것이 電線類에 있는겄과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잘 成事케 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는 바이다. 그러나 잘받으려니 잘 接觸하여 完全導體가 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한 生命의 中心地이며 喜樂의 中心地이다. 生命中心과 喜樂中心은 하나님이시다. 하날 喜樂도 幸福도 모두가 하날사랑 받을 때에 始作이니 第一 要求가 하날사랑 받는 것이 目的이다. 하날 사랑 받으면은 幸福도 喜樂도 始作이다. 完全하날 사랑 받으려면 완전히 받을 수 있는 資格의 成立이 要求되는데 사랑받으려면 받을 수 있는 美가 있어야만 완전 사랑을 줄수 있는 바다. 하날은 주고저 하니 愛이요 사람은 받으려니 美이다. 이와갗은 相對要求成事條件이 始作은 愛였다면 美가 있어야 한다. 愛를 +라고 한다면 美는 -라는 相對存在다. 이것이 完全히 주고받는 것이 善이다.

 

善=愛+美+(義)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찾고저 하는바는 美의 한 存在이다. 예수는 사람 中心인 同時에 하날 사람 代身者이다. 예수 보내심은 完全 하날 사람을 人間들한테 줄수 있는 基礎工作을 始作키 爲하여서다.

예수 愛+ 我 = 善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날 對한 對像格完成 我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我는 하날 사랑 對하여 받을 수 있는 美가 要求條件이다. 完全 사랑 對하여서 完全 美를 相對하여 始作을 보아 完全히 주고받는 一로 되는 對像存在가 손이다. 義라는 것은 무었인가 하면은 相對를 決定하여 對像始作을 보아서 이루어 나가는 한 路程敵 要素가 義라한다. 예수도 義人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업다 하심은 自己自身이 義를 세울 수 있는 한 相對者 始作을 보지 못함을 表示한바다. 그런고로 지금 天宙는 善을 完成할려니 사랑과 美가 生起여 義의 한 路程을 지어야만이 하나님이 理想始作이다. 우리가 하날 對하여서 美로워야 하겠다. 그러니 먼츰 原理로 돌라서는 것이 基本目的이다.

 

그런고로 良心理想存在 位置位까지 必要하다. 그러니 良心的이어야 한다. 그겄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한다. 我는 하날 對하여 美여야 한다. 그러면 自然的으로 사랑을 始作한다. 電氣의 한 原理와 같은 겄이다. 完全 (-)가 되면은 자연적으로 (+)는 生起는 겄과 한가지다. 原理的으로 美가 完全히 造成되면은 하날 사랑은 나와 하나되는 作用이 始作한다. 이 作用이 始作하여 繼續하는 것이 한 義이다. 이 作用이 繼續하여 完全 合하는 것이 善이다. 作用繼續하는데는 副作用을 이겨야 한다. 이것이 義의 使命位置이다. 義는 善한 路程을 結實하게 하는 要素이다. 例로 表示하면은 善할려고 하기 爲하여 사랑으로 美로 義로가 經過 合하여 一 되는 바다. 하날 對한 사랑 받으려니 아름다워야하는데는 여기에 良心 對하여서 몸을 그 良心에 中心하게 한 維持繼續하게 하는 것이 卽 義다. 그러니 하날은 第一存在 良心을 第二存在 몸을 第三 存在으로 하면은 義는 第一存在 사랑에 對하여 第二存在 良心과 合하게 하는 第三存在몸이 있는 바이니 이 몸을 良要求되로

 

繼續維持하여 完全 美를 갖게 되어 完全 사랑을 받아 合하게 하는 其 第三 存在를 第一 存在까지 合하게 하는 要求가 義다. 이와갗치 하날 사랑 받으려면 良心만으로 아니되고 몸이 合하여야만이 始作되는 바다. 이러케 우리 사람에게는 三位要素 位를 세웨서 一로 되는 原理 創造性이 있다. 義라는 것은 第三 存在 位置를 第一存在位를 屬하게 하는 基本工作의 實果이라는 바는 事實이다.

義는 몸에서 良心 合하게 하는 要素가 義다. 나를 中心하면은 한 對像을 對하여서 義하면 其 對像이 나와 같이 설수 있는 位置를 造成하여야 義다. 事業을 對하여서 亦是 나를 第二存在 位置 두면 第三 位置는 事業이니 이 第三 存在位置가 나와 하나의 位置繼續 取케하는 바가 義다. 義없는 곳에는 하날의 美를 造成 못한다. 그러니 하날이 나를 對하여서는 對像本體니 사랑이고 나는 美敵이고 나를 中心하고 對像格者에 對하여서는 내가 사랑이고 對像位置가 美이다. 義는 對像美를 造成하게 하는 平衡要素다. 그러니 義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維持하는 生活이 要求되는 重要生活이다. 義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第三存在가 完成造成이 되어야 되는 한 分立性 對像 造成目的으로 因하여 必要한 바다.

 

人間社會에서 義가 第一 나와 直接的 關係의 位置에 있는 바다. 나도 먼츰 마음 中心하고는 몸 自身 中心하고는 對像으로 對像中心하고는 萬物世界로 이와갗치 關係的 因緣을 中媒하여 주는 그 自身은 義라는 存在다. 義는 完全美를 造成하는 한 基本에 向하여 移動하는 長成要素이다. 그런고로 完全 사랑과 完全美가 造成되면은 完全義는 造成되는 바면서 善은 完成된다. 例를 들면은 10 사랑을 줄려고 할적에 10 美를 보고 주어야 한다. 10 사랑 받고 10 美를 돌리는 完全 一되는 한 回路를 造成하여야만이 善인 겄이다. 義는 完全 사랑에 對하여 完全美를 維持하게 하는 過程이 義의 分擔過程이다. 그런고로 美의 位置는 加減的 움직임이 있는 바이다. 義와 不義와는 한 境界線上에 서 있다. 그런고로 對像格 右左如何로 사랑과 合하여 善成事右左하는 重要位置가 美的 位置이다.

그러니 義는 한 基本善中心体 모양과 같은 겄으로 나에게서는 作用한다. 줄래도 對比되는 美를 보지 못하고 주는 하날 存在는 不義인 行動으로 된다. 그런고로 하날 사랑 받는 者라면은 주는 것도 하날化하는 基臺線上에 서서 만이 된다. 그런고로 우리 人生앞에 舊約時代는 行義로 新約時代는 信義로 成約時代는 侍義로서 한 人類生心中心으로 되였다.

 

例圖를 보면 사랑 線과 美線과는 對像되어 한 回路를 造成한다. 義는 한 中心 B 点이 되어 A, C를 連結한다. 이와갗치 한 線上에서 설때에 善이

 

 

A ㄱ 愛

 

B ㄴ 義

 

C ㄷ ㄹ 美

 

成立된다. 한 目的 對像 取하면은 義를 中心하여야 始作된다. 한가지 目的을 이루면은 其目的 終結을 짓는다. 卽 圖面 A, B, C 線을 중심한 한 回路는 造成되어 善成事한다. 다음은 딴 目的物 對할때도 전번 義를 基臺로 하여 美를 찾게 된다. 그런고로 전번 義와는 繼續하여야만이 따른 뜻 成事美로 이룰수 있는 連結線을 造成한다. 圖示 ㄱ, ㄴ, ㄷ 線 善 回路完成하고는 ㄱ, ㄴ, ㄷ 線으로 他에로 始作하여 언제나 永遠 標準 善 完成 目的을 要求하는 回路를 永遠繼續하고저 하는바가 人生 生涯의 目的이다. 이와갗치 하날 對하여 美로 始作成事가 始作되어야 다른 相對를 取하여 사랑격으로 對할 수 있는 바이다. 그겄은 하날 사랑과 合하는 美를 찾었든 資格者니 善 所有者라는 立場을 復歸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對像格者를 나로 因하여 세우면 理想始作이다. 그곳에서 하날 사람 代身 사랑으로 夫婦 사랑 子女사랑을 取할 수 있는 資格者다. 그리여야만이 하날 기뻐하고 나 기뻐하고 對像者 기뻐하는 第一 第二 第三 存在 全部가 기뻐할 수 있는 한 目的 回路線上을 完成하게 될 때에 善한 家庭이라 하는바다.

 

善한 我 中心한 善한 家庭으로부터 善한 社會始作이니 여기에는 義의 事業이 要求케된다. 그런고로 我中心하고 그 事業을 한 美로서 보면서 한 對像格的 善을 造成하여야 하는 한몸 代身的 마음으로 對하여 한 美의 對像格 事業 始作이 造成하여야 만이 義의 事業이다. 그런고로 한 代身 나의 事業의 結果를 가져온다. 그 事業은 그 사람이 代身이니 한 連結된 義를 中心한 한 目的上에서 있기에 義와 善을 標準하고는 하나라고 表示하여지는 것이무로 事業은 그 本人代身이라는 바다. 그려면은 온 天宙는 한몸과 같은 構造로써 되어 있다. 物質世界로 한 하날의 表示体이니 하나님의 한 솜털과 같은 겄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事業을 通하여 生活을 始作하여 사랑 成事目的과 理想合하븐 그 理想을 세우는 것이 우리 生活上 中心이다.

그러니 義의 事業이 美를 造成하는 것이며 善을 造成하는 中心도 된다. 내가 中心도 되고 事業이 中心도 되고 하날이 中心도 된다. 이겄은 한 回路잡고 되어있기에 始作하면 善이나 義로만이 始作하니 그 線上에서 어데나 同姓要素를 感覺하니 그 中心도 各位置한데로 表示도 된다.

 

① ② ③ 이와갗치 自由基臺線上을 어데를 脫線하여도 우리 良心苛責이 始作된다. 家庭이나 社會나 나혼자나 全部가 한 回路線上에 있다는 結論的 存在니 그 自然法理와 같다. 그런고로 理想家庭을 生覺하기 前에 理想 사랑 받으라. 다음에는 理想事業하여라. 그러면 理想家庭도 必然的으로 維持하는바다.

人間世上에는 먼츰은 理想같은 것이 漸漸가다가 中斷되나 하면은 基本原理를 脫線하는 行動으로 因하여 基本理想 向上 要素가 그 良心 苛責으로 因하여 長成하지 못하고 中斷됨으로 始作이라는 바는 事實이다. 그런고로 이 根本原理上에서면은 始作과 同時에 永遠標準理想하고 나아가는 바다. 그런곳은 사랑이면 永遠이고 義면 永遠 標準한 義로서 繼續하고저 함이 根本이다. 그런고로 하날뜻 合한 사랑부터 理想家庭復歸로 理想事業復歸로 第一段階를 天宙之間 始作보고저 함이 하나님께서 創造하신 創造目的이다. 이곳이 自由理想世界다.

 

사람은 하날 對하여서 愛로 對하여 주기를 바라서 사람을 中心으로 온 天宙 和動하는 作用 始作이 理想論의 結實目的地다. 그리하여 온 天宙는 하나의 뜻으로 始作하여 乃終으로 또 始作으로 하여 알파와 오메가的 原理成立을 보는 同時에 萬世前 理想實現인바다. 하나님은 이 目的을 人間들 向하여 발라는 바를 알고 成事하여야 한다. 이 크나큰 理想의 根本을 사람 對하여 付與하였고 땅에서부터 하날로 延長으로 永遠生活始作하는 者가 되어지는 幸福의 創造攝理를 누가 感謝치 않으랴. 이와갗은 生活하는 자라면 하날은 我를 中心하고 敎示하면서 모든 겄를 指導하는 한 目的이 始作한다. 그런고로 이 原理 上 理想은 하날의 中心存在인 한 存在 再臨主 中心하고 始作을 보는바는 事實이다. 그런고로 再臨主와 合하여 뜻 成事하는 世界子女가 되어지는 것이 하날의 한 所望인바다. (51. 6. 30)

 

 

(김원필선생의 필사본)

[349]

創造性 復歸로 된 理想論

그러면 唯物論者들이 말하는 社會發展原因과 發展歷史를 두고 하날 攝理的 使命으로 批判하여보자.

唯物論者들은 社會發展 原因에 對하여 正, 反, 合 論理로 주로 하고 있다. 그러면은 世界上에는 原理的으로 본다면 그 路程은 原理에는 변함없이 그 存在位置를 取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世界를 보면 어느 것이 참 原理的 立場인지 確實하게 보여지지 안코 나오고 있다. 그겄은 아직까지 世界上에 참 原理가 나와있지 않음을 證據하는 事實이다. 지금 有物史觀은 現世界에 있서서 크나큰 前程에 대한 人生에게 큰 難關門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은 唯物史觀의 目的하는 人類歷史發展은 얻던 곳으로 向하고 있는가 하면은 그것 亦是 原始時代形을 向하여 發展段階를 取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社會는 勿論 發展한다. 發展은 完成을 目標하는 同時에 理想을 紹介하는 바는 事實일터인데 그 發展最高地는 原始時代形으로 歸結하는가. 여기에 큰 疑心이 生起는 問題이다. 그들이 말하는 正, 反, 合 發展理論은 根本的으로 그 目的標準에 있서서 原始時代形으로 도라간다는 것은 다시금 退步하는 原理를 찾는다는 結論을 보니 그것 發展目的은 未完成形으로 된다. 반드시 發展할려면 正을 對하여 反이란 存在位置에서 始作을본다면은 正에 對하여 왜 反은 生起는 가는 未知이다. 그러면 왜 合하여 나가는가 그 나가는데는 必然的 終的 目的을 向하여 나아간다. 그런 終點 目的은 딴 겄으로 나타나서 正, 反, 合 論理의 理想型을 完成하여야 하는바인데 最終点에는 다시금 始作한 基点으로 歸結하니 그 發展論理에는 發展이 아닌 破壞形路를 取하였다는 結論이 된다. 그러면 正과 反이란 名詞를 세운바는 그 原理로 보면 果然 有한바다. 本來 天地創造부터 正이란 存在에게는 反이란 名詞는 없는바이다. 正이라면은 그 正中에는 蘇生으로부터 長成으로 長成으로부터 完成으로 하는 眞理路程을 갖고 移變形을 보여주나 根本的으로는 變함이 아닌 完成路中에 서 있슴을 보여줌에 不過하다. 또 反이란 存在가 有하다면은 그 反이란 存在는 本來부터 있을 수 없는 바도된다. 이 反이란 名詞가 第一重要点으로 되어서 人類는 至今까지 未知의 中心을 잡게 하는 起源이된바이다. 原理를 中心한 世界에 反이란 存在할수 없음이다. 그런데 反이란 存在가 生起는 것은 非原理로부터 始作이다. 이것의 主人公이 卽 사탄인바다.

그러면 唯物論者들이 말하는 正, 反, 合 論理는 正이 먼츰 할바가 않이고 反이 먼츰 始作한것이기에 正으로 되기 爲하여는 路程이 人類發展歷史면서 發展原因인바다. 本來 世界上에는 正이먼츰 始作본바가 않이고 反이 始作하였기에 正으로 할려니 歷史는 原點地인 原始時代形으로 나가고저 하는 바는 基本 正으로 出發본바와 같이하여 찾어 맞추기 爲하는바다. 그러니 唯物論者들이 發展사를 말하려면 正을 먼츰 세우지말고 反을 먼츰 始作으로

 

잡아야 한다. 本來부터 世界는 原理世界이니 反이란 存在는 完成路程을 取할 수 없는 것은 對像目的을 爲한 世界의 根本인바다. 그러니 反은 未完成이다. 卽 破壞를 造成하여 준다. 그러니 發展하는 以上 存在한다면 正을 돕기 爲한 中間時期에는 認定허나 目的時期에는 그 動向을 無로 하고마는 것이 原理世界의 現象인바다.

그런고로 反이 먼츰 始作함을 對하여 正으로 回復할려는 結論으로 되니 歷史發展은 反이 始作보기 前 原始時代로 도라간다. 그런고로 正反合 論理는 根本的으로 보면 反, 正, 合 論理로서 되어야 하는바가 根本인바다. 反對되는 것이 나타났으니 이 原理世界에서는 있을 수 없으나 正으로 向하는 路程이 人類發展史인 바이다. 그러니 지금 하나님적 便으로서 原理的 立場에서 視察하니 反, 正, 合 論理가 하나님편 쪽으로는 그 根本的 事實을 밝히는 바이다. 여기에 反이란 存在는 사탄이요 이겄은 破壞形 無를 造成하니 그 目的을 막고 完全繼續할려니 正이란 位置으로 넘겨받은 路程이 人類發展史인바이다. 그리하여 反은 正을 成事하는 한 本과 같이 보여지나 本來부터 그 自體는 根本않이고 根本으로 表現化 하는 것이니 正의 位置를 定한다. 그러니 本來는 正되어야 할것이 反이 되었으니 지금까지 큰 難事의 始作을 繼續하였다.

그러면 反이란 存在가 繼續할수 있는 限界는 原始時代形으로 도라가 完全 正 하나님 便쪽에서 만이 反은 晶體를 中止할바이다. 그러니 이 反이란 存在를 處置코저하여 根本正이 끝까지 찾어 올라온 것이 人類發展歷史이다. 그런고로 反, 正, 合 論理의 結末은 本來부터 唯物論者들이 말하는 理想論理로 하지만 그 末点에 가서는 破壞라는 結論点을 逢着하는 겄으로 된다. 그겄은 發展하는 바는 向進인데 原始時代形으로 도라가는 것이 發展史라는 相衝하는 論理인바이다. 그러면 唯物論者들이 말하는 社會發展論理는 根本的으로 이런 根本中心點을 未解決이니 그겄은 勿論인바이다. 그런고로 여기에 그네들이 말하는 正, 反, 合 論理에 對하여서는 우리는 根本的 視察로서 그 末路를 決定하는 바이다. 그러니 反에 對立한 正만이 남는 것이 天宙天理인바다. 이 正이란 곳은 墮落前이닌 卽 始作点으로 되는 바니 人類歷史는 始作点을 찾어 올라가지 않으면 造物主가 게시지 않는 結論이 成立된다. 그러니 正이란 存在가 正으로써 出發할려고 하는 바의 目的이 造物主의 目的인바다. 그러니 歷史의 끝을 正이라고 結論한다. 그러니 最高文明世界는 正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便쪽이란 完成을 結論한다. 그러니 지금 世界를 正이 主管하여야 하는 바가 原理的 目的이니 하나님 便 正과 사탄 便 反과 對하는 끝에는 正만이 남는다. 그러니 正이 主管하는 世界이니 이 世界는 하나님이 主管하는

 

基督理想으로 歸結하여야 한다.

그러니 現信仰者들은 動員하여 反에 對한 正에 설 主管世界를 造成할바가 지금 世界의 基督敎의 使命인바이다. 그러니 그 方策은 自然히 하날뜻을 合하여야 하는 바이다. 이 根本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사탄 對하여서 總突擊하여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바이다.

所謂 唯物論者들이 말하는 人類歷史發展을 段階로써 記錄하여서 하나님적 復歸歷史로 된 人類發展歷史와 比하여 보자. 하나님이 계시니 이런 發展을 본다.

唯物論的 發展史 段階 卽 1. 原始共産主義時代 2. 氏族社會主義時代 3. 奴隸主義時代 4. 封建主義時代 5. 資本主義時代 6. 帝國主義時代 7. 社會主義時代 8. 共産主義時代

이와갗치 歷史發展을 잡고 있다. 果然 그들이 이런 人類發展歷史를 잡고 있지만 왜 이런 發展을 하는가는 根本問題는 未知이다.

왜 原始共産主義時代에서 氏族社會主義時代로 떠러지는가 하는 基本原因은 未知인바다. 이런 發展眞狀을 보여주는 바는 내가 論하는 反이 먼츰 始作함으로 論한데서 始作이란바를 다들 알줄안다. 다시 그 段階를 잡아 밝혀보면은 原始共産主義時代에서 氏族社會主義時代로 되는 바는 사탄 對한 하나님 便쪽 對策으로 因한바이다. 卽 分立하려니 氏族主義로서 全部가 通할수 없는 分岐를 正하니 自然的 世界上에는 이런 形狀을 보여주는 겄으로 내려온다. 또 氏族社會가 變하여서 奴隸主義時代로 드러가는 것은 하나님과 사탄은 사람 中心하고 빼앗는 役事를 하니 하날便쪽 사람과 사탄 便쪽 사람과는 원수니 反을 對하여 正이 反을 支配하여 그 財物을 取하여지게되니 이런 時代로 드러간다. 이러하여 하날은 사람과 財物을 取할려니 自然的 膳物로서 긴 役事로서 風習化한 時代로 되니 이런 時代가 보여짐이다.

그러면서 奴隸主義로부터 封建主義時代로 나타나는바는 서로 사람을 自己편으로 保守하여 分立을 보려니 서로 서로 通하는 길을 막으려니 이런 傾向이 表現化 하여지니 이런 封建主義時代로서 사탄은 自己의 存在維持를 圖謀한바이다. 그리하여서 이 封建時代를 넘어서는 資本主義時代로 나타나는 바는 이도 亦是 하날편과 사탄편이 서로 世界를 찾고저 하는 目的으로 하니 資本을 먼츰 取하게 되는 바이다. 이 資本의 始作은 奴隸時代로부터 封建時代로서 또 이 以上時代로 중심은 資本을 中心하고 모든 方向은 始作된다. 그러면 資本을 中心하고 旺盛하여 그 勢力은 自然히 帝國主義라는 目的으로 向하는 바이다. 그러니 資本갖고 나라까지 主管하여 世界까지 左右하는 時代로 나타난다. 그 다음은 무슨 時代나 하면은 社會主義時代가 온다. 그 다음은 共産主義

 

時代가 온다고 말하고 있다. 이 事實은 果然 하나님의 뜻이 成事할 未來에 對한 目的으로 하고 있기에 歷史도 이런 방향으로 나오는 바다. 그러니 지금까지 보면 現世界는 所謂 唯物論者들이 말하는 社會主義時代라고 하여 共産主義時代를 向할려는 始作時代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正을 中心으로 하여 하나님은 歷史發展을 支配하여오니 自然的으로 그 歷史上에는 反이 먼츰 始作하였으니 먼츰 사탄이 흉내내여 나타나서 正으로 引繼하여 주는바가 原理인데 그러면 今後世界는 自然히 이런 路程으로 方向을 行한다. 그러니 하나님은 나종적으로 完成할려니 基督社會主義世界를 目的으로 하여 惡 對하고 다음은 全世界全部를 合하여 基督共産主義時代로 目的하는 바이다. 그러니 世界는 果然 原始時代形으로 도라가는 바가 事實인바는 하나님의 基本出發 基点으로 向하게 하니 必然的 路程으로 보여주어 原始時代形으로 도로가는 樣으로 보여준바다.

그러면 現基督敎를 中心한 國家는 언제나 그 目的에 있서서는 안될 時代를 보는바다. 그런고로 나는 여기에 이런 原理的 視察을 보아서 이 基督社會主義時代와 基督共産主義時代를 中心한 곳으로 나아가는 歷史의 指向을 밝혀서 하나님의 뜻을 中心한 世界를 基督理想化를 本하여서 發表한바가 卽 原理的共生共義主義로 하여 丹和世界로서 發表한바다. 하나님이 계시는 以上에는 반드시 이런 發展路程은 必然的 路程이니 사탄도 結局 하나님의 길 돕는 格으로 原理目的하여서 하나님 편에 屈服을 要하여서 나오는 바이다. 그러니 지금 三次戰을 말하는 比時여 世界基督敎信仰界는 統一戰線을 取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本하여 再臨主를 對하기 爲한 準備를 完成하였는가 하는 立場에 있슴을 아러야 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이런 目的을 原理的으로 實行하는 時代가 再臨理想時代이다. 이 理想時代가 가까워 오니 그 反面 사탄은 强制로써 하날 흉내를 먼츰 하는 것이 그 基本眞狀이니 全基督敎主義 中心한 “UN"은 斷呼한 對策을 取하여야 한다. 이 唯物論者들이 말하는 發展史도 한 一理있는 거짓 흉내者라는 겄를 아러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 便的 復歸歷史發展段階를 中心하고 그 限界를 比較하여 보면 이러하다.

正 反

原始共産主義時代---(分別時代) --- 原始共産時代, 氏族社會主義時代

氏族→民族→國家---(蘇生, 舊約時代)--奴隸主義時代, 封建主義時代

國家→同盟國→國際--(長成, 新約時代)--資本主義時代, 帝國主義時代

國際→하날세계→천주-(完成, 成約時代)-社會主義時代, 共産主義時代

이와갗치 正과 反의 發展史로 보면 한 目的으로 合하는 歷史는 發展하여 나온바이다. 그러니 지금 潮流는 이 두 陣營이 對峠하여서 勝敗를 結하는 潮流時代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있는 以上에는 이 勝敗하기 前에는 平和는 없는바이다. 그러니 지금 基督理想을 中斷하여 成事하여야 할 國際聯合에 使命은 重大하면서 앞날 現基督理想을 中心으로 한 米, 英을 中心한 U.N 機構는 特히 使命이 큰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米英 猶大 그 外 基督理想을 갖인 國家들에게 祝福한바도 끝날 뜻 速進化를 爲하여서 祝福한바이다. 그러니 全部는 合하여 예수의 最高理想인 唯物相通世界를 地球上에 建設코저 하는바가 目的인바이다. 이것 爲하여 예수는 再臨하는 바다. 그러니 뜻 合하여서 再臨主를 中心하고 뜻 侍奉으로 根本復歸를 完成하는데 全部 合하여 動員하여야 하는 時代는 왔다. 무었이나 뜻 못바뜨는 者는 自然的으로 하나님은 全世界를 中心하고 그 存在位置를 달리하여서 對할바는 事實이다.

그러니 復歸路程을 바뜨러 地上天國의 建設로서 新出發하여 한 原理的 家庭으로 하는 父母없는 子息의 立場을 變하여 父母를 世界的으로 復歸하여 잃어버렸든 全世界 人類는 한 兄弟로써 大家庭인 円和的 理想을 建設할려니 하나님은 現今 基督敎 對하여서 分立을 보게하여 自然的으로 現基督敎界는 이런 傾向線을 보게할바가 하나님이 계시는 以上 나타나는바이다. 그러니 이런 根本을 알고 기버서 하날 子女의 立場을 復歸하여 빨리 사탄 對하여서 集結하게 할 責任이 基督敎의 使命課業인바다. 그리하여 이 目的으로 全世界에 分立본 基督敎는 統一로써 볼바이면서 世界統一을 中心한 基督敎의 最高目的을 完遂할바가 하나님이 발라는 目的인 바이다. 그러치 않으면 惡사탄은우리를 向하여 繼續되는 對立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根本 뜻을 延長하는 두려운 結果를 招來하는 바이다.

그러니 現今 基督敎는 全世界를 中心한 中心國家들을 주로하여 合하여야 할 責任이 重한바이다. 그러므로 우리 信者는 하날 中心하고 하나되어 國境을 넘고 民族을 超越하여서 合同한 統一戰線으로 하여 사탄의 餘命을 根絶하여 全世界 各自가 한 目的으로 向하여야 할바가 目的으로 된다. 그런고로 基督敎는 現社會를 움지기는 中心動力으로 하여서 모든 未及的 部分을 完成에로 하여 하나님의 目的을 達成하여야 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永遠한 永遠主義를 建設하여서 地上天國을 達成하여 再臨主와 合하여 하날 全體와 合하는 直接同居時代로 向하여야 하는 바이다. 이것이 人類가 발라든 理想이요 歷史的 目的이요 造物主와 예수의 目的이면서 사탄 根本追放成事를 完成

 

하는 바이다.

이런 重大한 立場을 아지 못하고 現社會를 抛棄하여 온 現基督敎信者는 果然 하날的으로 기버하는 立場이라고는 할수 없는 바는 事實이다. 이제는 알았으니 抽象的 信仰觀念의 잠을 깨뜨리고 新아침의 新消息에 合하여 全世界를 하날 主管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아니되는 바이다. 그러니 過去未知였든 立場의 不足을 容納하여 全世界 人類는 앎의 兄弟로서 國境을 넘어 하날나라 國際를 目的하고 活動하여 全人類에 對한 平和建設을 國際的으로 하면서 國際統治目的으로 하나의 根本目的을 完遂하여야 基本創造目的이 完成되는 바이다. 그러니 내가 이런 겄를 發表함을 보고 疑心되는 者는 眞心으로 하날 對하여 事實 如何를 問議하여 解決받음으로서 最高位信者는 한곳으로 合함을 발라는 使命을 받들어 全世界 信仰界에 對하여 傳하는 바이다. 그러니 앞날은 國際統治時代가 반드시 온다. 그리하여 再臨理想을 地球上 한 中心地로부터 始作하여 하나로부터 全體로서 國際와 連하는 目的을 完成하게 하고저 하는바가 하나님이 攝理하시는 目的인바이다.  

 

이와갗치 貴한 根本上 自我가 되면 참 받을수 있는 者이다. 上으로는 참주는 者를 갖고 下으로는 참 줄者를 갖었다. 이얼마나 幸福이라 아니하겠는가. 참주고 받을 곳을 所有한 者는 언제나 기쁨의 動力이 躍動하는 바다. 그 表示가 子女 對하여 주고싶고 夫婦는 서로 사랑하고 받고 하는 根本原理인 表示다. 이 모두가 完成은 하날과 合하여야 되는 바다. 하날은 發電所고 우리는 配電所와 充電所와 같고 만물은 需給所와 같은 겄이다. 發電所 있는 配電所 需給地는 原理이나 이 中間 우리되는 配電所, 變電所 없으면 모두가 生命使命이 中斷인바다. 이와갗치 주고받은 變電所 配電所의 位置가 卽 우리 人生이며 나이다. 이런 原因으로 받고 주는데 原理消耗없는 겄를 바란다. 電氣로 말하면 損失없는 겄를 要하는바와 한가지다. 損失이 많으면은 基本 電氣가 消耗된다. 損失은 그 導線物質로 因하여 右左되는 겄이다. 이렀틋시 物質의 力되는 電氣를 잡아먹는 作用이 生起게 하는 敵 作用의 始作은 電氣要素를 反하는 作用을 갖고 있는 存在니 그런 損失을 갖어오는 겄과 同一하게 우리는 電線과 같은 肉身을 갖고 있는 그 自體와 良心과 合하여서 完全하나되면은 良導體作用하는 겄과 한가지고 그러치못하면 不良導體와 같은 副作用 損失을 生起게 하게 하는 겄과 한가지다.

 

그런고로 우리는 完全히 주고 받는 對像을 連續的으로 얻던 方面으로 한다면은 그는 다시금 主人에게 돌리는데도 損失없는 原理復歸가 成立하는바와 한가지다. 이와갗치 完全히 받고 完全히 주워 돌리수 있다는 것이 第一要求目的인 同時에 善繼續이다.

電氣가 잘되게 하는 것이 電線類에 있는겄과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잘 成事케 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는 바이다. 그러나 잘받으려니 잘 接觸하여 完全導體가 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한 生命의 中心地이며 喜樂의 中心地이다. 生命中心과 喜樂中心은 하나님이시다. 하날 喜樂도 幸福도 모두가 하날사랑 받을 때에 始作이니 第一 要求가 하날사랑 받는 것이 目的이다. 하날 사랑 받으면은 幸福도 喜樂도 始作이다. 完全하날 사랑 받으려면 완전히 받을 수 있는 資格의 成立이 要求되는데 사랑받으려면 받을 수 있는 美가 있어야만 완전 사랑을 줄수 있는 바다. 하날은 주고저 하니 愛이요 사람은 받으려니 美이다. 이와갗은 相對要求成事條件이 始作은 愛였다면 美가 있어야 한다. 愛를 +라고 한다면 美는 -라는 相對存在다. 이것이 完全히 주고받는 것이 善이다.

 

善=愛+美+(義)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찾고저 하는바는 美의 한 存在이다. 예수는 사람 中心인 同時에 하날 사람 代身者이다. 예수 보내심은 完全 하날 사람을 人間들한테 줄수 있는 基礎工作을 始作키 爲하여서다.

예수 愛+ 我 = 善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날 對한 對像格完成 我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我는 하날 사랑 對하여 받을 수 있는 美가 要求條件이다. 完全 사랑 對하여서 完全 美를 相對하여 始作을 보아 完全히 주고받는 一로 되는 對像存在가 손이다. 義라는 것은 무었인가 하면은 相對를 決定하여 對像始作을 보아서 이루어 나가는 한 路程敵 要素가 義라한다. 예수도 義人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업다 하심은 自己自身이 義를 세울 수 있는 한 相對者 始作을 보지 못함을 表示한바다. 그런고로 지금 天宙는 善을 完成할려니 사랑과 美가 生起여 義의 한 路程을 지어야만이 하나님이 理想始作이다. 우리가 하날 對하여서 美로워야 하겠다. 그러니 먼츰 原理로 돌라서는 것이 基本目的이다.

 

그런고로 良心理想存在 位置位까지 必要하다. 그러니 良心的이어야 한다. 그겄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한다. 我는 하날 對하여 美여야 한다. 그러면 自然的으로 사랑을 始作한다. 電氣의 한 原理와 같은 겄이다. 完全 (-)가 되면은 자연적으로 (+)는 生起는 겄과 한가지다. 原理的으로 美가 完全히 造成되면은 하날 사랑은 나와 하나되는 作用이 始作한다. 이 作用이 始作하여 繼續하는 것이 한 義이다. 이 作用이 繼續하여 完全 合하는 것이 善이다. 作用繼續하는데는 副作用을 이겨야 한다. 이것이 義의 使命位置이다. 義는 善한 路程을 結實하게 하는 要素이다. 例로 表示하면은 善할려고 하기 爲하여 사랑으로 美로 義로가 經過 合하여 一 되는 바다. 하날 對한 사랑 받으려니 아름다워야하는데는 여기에 良心 對하여서 몸을 그 良心에 中心하게 한 維持繼續하게 하는 것이 卽 義다. 그러니 하날은 第一存在 良心을 第二存在 몸을 第三 存在으로 하면은 義는 第一存在 사랑에 對하여 第二存在 良心과 合하게 하는 第三存在몸이 있는 바이니 이 몸을 良要求되로

 

繼續維持하여 完全 美를 갖게 되어 完全 사랑을 받아 合하게 하는 其 第三 存在를 第一 存在까지 合하게 하는 要求가 義다. 이와갗치 하날 사랑 받으려면 良心만으로 아니되고 몸이 合하여야만이 始作되는 바다. 이러케 우리 사람에게는 三位要素 位를 세웨서 一로 되는 原理 創造性이 있다. 義라는 것은 第三 存在 位置를 第一存在位를 屬하게 하는 基本工作의 實果이라는 바는 事實이다.

義는 몸에서 良心 合하게 하는 要素가 義다. 나를 中心하면은 한 對像을 對하여서 義하면 其 對像이 나와 같이 설수 있는 位置를 造成하여야 義다. 事業을 對하여서 亦是 나를 第二存在 位置 두면 第三 位置는 事業이니 이 第三 存在位置가 나와 하나의 位置繼續 取케하는 바가 義다. 義없는 곳에는 하날의 美를 造成 못한다. 그러니 하날이 나를 對하여서는 對像本體니 사랑이고 나는 美敵이고 나를 中心하고 對像格者에 對하여서는 내가 사랑이고 對像位置가 美이다. 義는 對像美를 造成하게 하는 平衡要素다. 그러니 義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維持하는 生活이 要求되는 重要生活이다. 義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第三存在가 完成造成이 되어야 되는 한 分立性 對像 造成目的으로 因하여 必要한 바다.

 

人間社會에서 義가 第一 나와 直接的 關係의 位置에 있는 바다. 나도 먼츰 마음 中心하고는 몸 自身 中心하고는 對像으로 對像中心하고는 萬物世界로 이와갗치 關係的 因緣을 中媒하여 주는 그 自身은 義라는 存在다. 義는 完全美를 造成하는 한 基本에 向하여 移動하는 長成要素이다. 그런고로 完全 사랑과 完全美가 造成되면은 完全義는 造成되는 바면서 善은 完成된다. 例를 들면은 10 사랑을 줄려고 할적에 10 美를 보고 주어야 한다. 10 사랑 받고 10 美를 돌리는 完全 一되는 한 回路를 造成하여야만이 善인 겄이다. 義는 完全 사랑에 對하여 完全美를 維持하게 하는 過程이 義의 分擔過程이다. 그런고로 美의 位置는 加減的 움직임이 있는 바이다. 義와 不義와는 한 境界線上에 서 있다. 그런고로 對像格 右左如何로 사랑과 合하여 善成事右左하는 重要位置가 美的 位置이다.

그러니 義는 한 基本善中心体 모양과 같은 겄으로 나에게서는 作用한다. 줄래도 對比되는 美를 보지 못하고 주는 하날 存在는 不義인 行動으로 된다. 그런고로 하날 사랑 받는 者라면은 주는 것도 하날化하는 基臺線上에 서서 만이 된다. 그런고로 우리 人生앞에 舊約時代는 行義로 新約時代는 信義로 成約時代는 侍義로서 한 人類生心中心으로 되였다.

 

例圖를 보면 사랑 線과 美線과는 對像되어 한 回路를 造成한다. 義는 한 中心 B 点이 되어 A, C를 連結한다. 이와갗치 한 線上에서 설때에 善이

 

A ㄱ 愛

 

B ㄴ 義

 

C ㄷ ㄹ 美

 

成立된다. 한 目的 對像 取하면은 義를 中心하여야 始作된다. 한가지 目的을 이루면은 其目的 終結을 짓는다. 卽 圖面 A, B, C 線을 중심한 한 回路는 造成되어 善成事한다. 다음은 딴 目的物 對할때도 전번 義를 基臺로 하여 美를 찾게 된다. 그런고로 전번 義와는 繼續하여야만이 따른 뜻 成事美로 이룰수 있는 連結線을 造成한다. 圖示 ㄱ, ㄴ, ㄷ 線 善 回路完成하고는 ㄱ, ㄴ, ㄷ 線으로 他에로 始作하여 언제나 永遠 標準 善 完成 目的을 要求하는 回路를 永遠繼續하고저 하는바가 人生 生涯의 目的이다. 이와갗치 하날 對하여 美로 始作成事가 始作되어야 다른 相對를 取하여 사랑격으로 對할 수 있는 바이다. 그겄은 하날 사랑과 合하는 美를 찾었든 資格者니 善 所有者라는 立場을 復歸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對像格者를 나로 因하여 세우면 理想始作이다. 그곳에서 하날 사람 代身 사랑으로 夫婦 사랑 子女사랑을 取할 수 있는 資格者다. 그리여야만이 하날 기뻐하고 나 기뻐하고 對像者 기뻐하는 第一 第二 第三 存在 全部가 기뻐할 수 있는 한 目的 回路線上을 完成하게 될 때에 善한 家庭이라 하는바다.

 

善한 我 中心한 善한 家庭으로부터 善한 社會始作이니 여기에는 義의 事業이 要求케된다. 그런고로 我中心하고 그 事業을 한 美로서 보면서 한 對像格的 善을 造成하여야 하는 한몸 代身的 마음으로 對하여 한 美의 對像格 事業 始作이 造成하여야 만이 義의 事業이다. 그런고로 한 代身 나의 事業의 結果를 가져온다. 그 事業은 그 사람이 代身이니 한 連結된 義를 中心한 한 目的上에서 있기에 義와 善을 標準하고는 하나라고 表示하여지는 것이무로 事業은 그 本人代身이라는 바다. 그려면은 온 天宙는 한몸과 같은 構造로써 되어 있다. 物質世界로 한 하날의 表示体이니 하나님의 한 솜털과 같은 겄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事業을 通하여 生活을 始作하여 사랑 成事目的과 理想合하븐 그 理想을 세우는 것이 우리 生活上 中心이다.

그러니 義의 事業이 美를 造成하는 것이며 善을 造成하는 中心도 된다. 내가 中心도 되고 事業이 中心도 되고 하날이 中心도 된다. 이겄은 한 回路잡고 되어있기에 始作하면 善이나 義로만이 始作하니 그 線上에서 어데나 同姓要素를 感覺하니 그 中心도 各位置한데로 表示도 된다.

 

① ② ③ 이와갗치 自由基臺線上을 어데를 脫線하여도 우리 良心苛責이 始作된다. 家庭이나 社會나 나혼자나 全部가 한 回路線上에 있다는 結論的 存在니 그 自然法理와 같다. 그런고로 理想家庭을 生覺하기 前에 理想 사랑 받으라. 다음에는 理想事業하여라. 그러면 理想家庭도 必然的으로 維持하는바다.

人間世上에는 먼츰은 理想같은 것이 漸漸가다가 中斷되나 하면은 基本原理를 脫線하는 行動으로 因하여 基本理想 向上 要素가 그 良心 苛責으로 因하여 長成하지 못하고 中斷됨으로 始作이라는 바는 事實이다. 그런고로 이 根本原理上에서면은 始作과 同時에 永遠標準理想하고 나아가는 바다. 그런곳은 사랑이면 永遠이고 義면 永遠 標準한 義로서 繼續하고저 함이 根本이다. 그런고로 하날뜻 合한 사랑부터 理想家庭復歸로 理想事業復歸로 第一段階를 天宙之間 始作보고저 함이 하나님께서 創造하신 創造目的이다. 이곳이 自由理想世界다.

 

사람은 하날 對하여서 愛로 對하여 주기를 바라서 사람을 中心으로 온 天宙 和動하는 作用 始作이 理想論의 結實目的地다. 그리하여 온 天宙는 하나의 뜻으로 始作하여 乃終으로 또 始作으로 하여 알파와 오메가的 原理成立을 보는 同時에 萬世前 理想實現인바다. 하나님은 이 目的을 人間들 向하여 발라는 바를 알고 成事하여야 한다. 이 크나큰 理想의 根本을 사람 對하여 付與하였고 땅에서부터 하날로 延長으로 永遠生活始作하는 者가 되어지는 幸福의 創造攝理를 누가 感謝치 않으랴. 이와갗은 生活하는 자라면 하날은 我를 中心하고 敎示하면서 모든 겄를 指導하는 한 目的이 始作한다. 그런고로 이 原理 上 理想은 하날의 中心存在인 한 存在 再臨主 中心하고 始作을 보는바는 事實이다. 그런고로 再臨主와 合하여 뜻 成事하는 世界子女가 되어지는 것이 하날의 한 所望인바다. (51. 6. 30)

 

것이다.

 

(강현실 선생님 사본)

[R-173]

再臨主는 理想論 完成의 基本存在

人間이 바라든 再臨主라는 한 存在는 天地創造로부터 하나님도 또한 바라든 한 存在라는 것은 事實이다. 하나님은 이 한 存在가 다시금 地上에서 찾어 지여야만이 創造的 本뜻 成事의 第一步를 볼 바므로 이 한 存在가 全 中心的 目標로 되어 왔다. 그는 卽 自己의 몸인 同時에 天宙의 한 中心이갔으니 이 自体를 다시금 찾고저 하심이 墮落된 世界上 全部를 사랑하는 理由로 되어왔다. 再臨主는 無 墮落時의 한 存在야 되는 바는 사실이다. 이 存在로 因하여 하나님의 사랑은 全部가 完成을 始作하는 同時에 地上에 対하여서는 하나님이 사랑하되 再臨主를 中心하고야만이 사랑할 수 있는 世界로 展開하게 된다. 그는 卽 再臨主는 하나님이 世上 사랑하든 中心目的인 存在)이며 基本存在이므로 이 存在가 하나님이 地上 사랑하든 總結實存在니 그 存在가 오면은 하나님의 全사랑은 天宙 어데 무엇보담 再臨主이므로 이곳으로 始作하여 根本 創造的 사랑을 始作하게 되는 바이다. 卽 其 存在가 出現하면은 하나님이 世界 사랑하든 全部를 合하여서 再臨主와 하나되게 하는 것과 한가지다. 그러니 再臨主 떠난 곳에는 하날 사랑이 없음은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랑 떠난 곳이 苦痛의 곳이라는 것은 事實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사랑 圈內인 地上이 되면은 그곳은 再臨主를 中心하고 되는 곳이니 하나님의 사랑하는 곳이다. 卽 하나님의 사랑받는 곳은 生命은 勿論이면서 幸福과 喜樂과 滿足이 始作되는 世界라는 것은 事實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完成的 原理本体이므로 그 世界는 原理復歸의 世界이니 地上天囗의 한 基本을 始作하는 世界이다. 再臨主 前까지는 사랑하여 온바는 全部를 蘇生시켜서 再臨主에게 合하게하는 本意이었다. 그러니 再臨主 現顯하면은 天宙는 하나님이 바라든 사랑 中心体인 再臨主와 合하여야 할 터인데 合하지 못하면은 그는 한 審判하여오든 対像의 貌樣으로 되니 그곳 向하여서는 斷乎한 無慈悲한 審判樣으로 対할 時期라는 바는 事實이다. 그런고로 예수로 因하여 사랑을 주어서 無條件 사랑을 주었음은 再臨主로 因하여 全部 合한 天宙사랑 復歸코저 함에서다. 그런고로 주었으니 그 價値追窮과 거두우기 위한 存在가 再臨主이다. 再臨主는 사랑을 거두우시는 存在이므로 再臨主 오신 後부터는 하나님의 사랑 받으려는 者는 再臨主 품에 와야만이 다시금 創造 根本性인 사랑 理想資格을 받을 수 있는 바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만치 再臨主를 通하여 돌려 드려야 할 責任이 있음으로 再臨主를 사랑하여 한

 

[R-174]

回路的 対像을 成立시키지 않으면 안될바가 끝날에 處한 사람들의 義務이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報酬的 사랑이라고 하여서는 아니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完成的사랑이다. 卽 我를 中心하고 받고 주어야 創造原理를 完成하는 바이므로 再臨主를 通하여 사랑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는 바이다. 再臨主를 다시금 사랑하면은 根本的 創造理想全部가 始作을 보아서 自己로 因하여 完成을 지어 根本理想 生을 保障하는 터가 되는 原理를 세우려고하니 再臨主 外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없는 時期다. 그런고로 사랑을 예수로 因하여 온 天宙에 뿌려서 天宙를 蘇生케 하여서 再臨主로 因하여서 거두우심이 目的이니 이 目的 外에 處하는 者는 하나님의 미움의 者라는 바는 두 말 할바 없는 바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至今까지 貴한 사랑을 주어 온바는 더 높은 사랑을 目標하였기에 라는 것은 事實이다. 하나님이 사랑한바는 예수로 因하여 사랑 繁殖코저 함이 目的이었다. 예수 하나로 因하여 많은 사랑이 完成하여서 創造的 根本사랑을 全世界的으로 完成하시고저 하여서 예수로 因하여서 사랑을 始作케 하였다. 始作하였으니 그 結末은 있지 않겠는가? 이 사랑을 거두는 때가 卽 再臨 時代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目的없이는 사랑치 않는다. 그 限界는 再臨主를 中心 点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사랑하였으니 사랑 받으여야 하는 時代가 된다. 卽 再臨時代부터 始作한다. 그러던 根本原理復歸가 始作된다. 卽 하나님의 사랑은 다시금 사람으로 通하여서 再臨主에로 回路를 지어 対像되여 한 一体的 사랑 理想을 完成한다. 卽, 創造理想的 한 주고 받고 하는 回路를 造成하여 根本原理 復歸世界로 展開를 보는바다. 다시 말하면 再創造 理想이 始作되는 바다. 하나님은 厂史를 두고 至今까지 사람을 사랑하여 왔지만 再臨主 以後는 사랑치 않는 者를 하나님도 사랑 할 수 없는 바이다. 하나님이 사랑치 않는 者를 위하여 사랑하면은 사탄 짝하는 두려운 한 行動의 出現을 보는바이다. 그런고로 사랑을 주기 위한 예수 以後에는 敵까지 사랑하여 왔든바는 敵에 屬한 사람을 対하여 사랑 주므로써 사랑의 蘇生을 보아 繁殖케 할려니 敵을 対하여 사랑하라고 한 것이 예수의 根本目的이었다. 그러기에 예수는 왼뺨을 치면 오른뺨까지 돌리라는 根本目的이 있었든 바이다. 그것은 사탄보다 더 높은 사랑을 주어 사탄 対한 사랑 받는 者없게 하기 위하여서고, 또 사람은 사랑을 根本生命으로 하고 있기에 사탄의 사랑 以上의 사랑을 주어 蘇生시켜 全人類를 빼앗아 넘길려니 또 惡 繁殖을 防止하여 速히 結實하게 할려니 이런 사랑을 取하여든 바이다. 그러니 再臨主 옴으로 사탄이는 敗하고 사람은 再臨主를 中心하고 根本原理完成하여겠으니

 

[R-175]

사람은 하나님에 対하여서 받은 사랑에 代身 사랑을 주어야만이 하날과 나와는 創造理想을 完成하는 한 善을 造成하여지는 根本이 됨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사랑하여 돌리는 回路를 造成하여 永遠 生을 維持하여야 만이 墮落前 世界를 造成하는 바이다. 하나님은 再臨主를 中心하고 사랑을 주는 길을 돌려서 찾는 回路를 잡고저 하는바는 善하게 하고저 하는바가 根本이니 그래야 全部가 살 수 있겠으니 이런 目的으로 되는 것이기에 理想論을 完成하게 하는 바이다. 再臨主오면은 其 곳 信奉者는 昔日에 사랑 줄 時代와 反対 向으로 우리는 態勢를 取하지 않으면 안 될 時代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 줄때는 뿌리는 때요 再臨主 나타난 後에는 사랑의 結實을 거두는 때니 再臨主 품 外에 있는 者를 사랑하면은 거두는 때에 뿌리는 것과 한가지니 하날의 사랑이 無效果됨을 定하는 時代이다. 다시 말하면 하날 存在들이 하날 存在아닌 者한테 오니 뺨 맞은면 愛으로 対하지 않고 오른 뺨까지 쳐서라도 하날의 義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時代이다. 다시 말하면 아벨적 하날 存在가 가인적 하날 存在 아닌 者 対하여 하나님이 取할 수 있는 順從者로 하여 根本 復歸해 세우여야 하는 時代이다. 그런고로 時代的으로도 自然히 이러한 傾向으로 厂史는 흐르고 있는바는 이 根本 뜻이 完成하려는 時期가 가까워 오는 것을 보여주는 바이다. 그러나 再臨主를 侍奉하는 者들에게 있어서는 各自 各自가 하날의 아바지 어머니의 分体로서 完成하여야 할 存在들 이므로 함브로 손을 들어 칠 수 없는 바이다. 뜻 안에 있는 者를 치면 하날의 아버지 어머니의 몸을 犯하는 結果를 招來하는 바이므로 사랑을 中心하고 대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卽 한 兄弟면서 한 몸이므로 예수가 傳하는 사랑을 갖고 대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萬一 뜻에 反하는 者가 있어 뜻을 세우려 하기 위하여 忠告를 받게 될 때에는 順應여 뜻을 세우여야 할 義務가 있는 同時에 自身으로 하여금 代身 感謝의 表示로서 뜻 繁殖에 努力하지 않으면 아니 될 責任이 있는 바이다. 至今까지 厂史를 두고 惡 支配下에 屬하여 있든 聖徒들은 가진 수모와 壓制와 업수히 녀김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뜻 蘇生시켜 長成시키기 위하여 사랑 中心으로 讓步하여 왔든 바이나 再臨主 以後에는 善 支配를 세우는 同時에 사랑을 찾어 建設하기 위한 厂史的 收穫時期다. 再臨主 모시는 者들은 收穫과 同時에 建設을 推進시켜 나가여야 할 義務를 各自가 갖고 있음으로 再臨主의 뜻을 中心하여야 만이 相対를 対해서 사랑을 주며 또 받으여야 하는 바다. 第三者를 対하여서도 함부로 줄수 없고 함부로 받을 수 없다. 오직 뜻의 保障을 中心하고야 주고 받고 할 수 있는 바는 事實이다. 이것은 善成事하려니 이런 創造原理를 要求케되는 바이다. 이리하여야 하날의 善의 곳이니

 

[R-176]

하나님이 기뻐하는 바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날을 侵犯하는 行動으로 되는 바이다. 그러니 우리는 確固한 立場을 定하고 뜻 밖에 屬하는 惡 対하여서 無慈悲한 分別時代가 再臨主를 中心하고 始作하는 時代다. 各自는 사랑 돌리는 価置되로 卽, 美로 나타나는 価置되로 報配 時代가 卽 理想時代다. 그러니 良心的 善을 中心하고 나아가여야 한다. 그리하여 自我 善 完成하여서 相対를 잡아 対像 善으로 始作하여 하날 善에 合하여야만이 비로서 創造 原理를 成事한 善으로 始作하는 동시에 하날과 合한 理想 善으로 되는 바이다. 이와 같이 理想 善 完成한 後에는 事業으로 社会와 連結지어 온 天宙에 理想 善과 合하는 基本原理上点이 始作하게 될 때에 天宙는 기쁨이 나로 因하여 始作하게 되니 創造로부터 付與받았든 原理的 重大 課業은 完成을 보게 되는 바이다. 完全히 주고 받고 하려니 우리는 再臨主를 中心하고 하날 対한 사랑으로 하날 父母를 모셔야 된다. 이것이 創造理想 善 完成의 根本 뿌리다. 이 하날 父母와 하나 되어야 創造理想 善은 始作한다. 그러니 하나님과 合하려니 하날 父母 품으로 合意를 보아야 한다. 그러면 創造理想 原理 完成이니 理想 善이다. 또 其 外에 우리 사람은 肉身이 있나니 하날 父母를 第一位로 하는 影像인 肉身父母가 있는 바이다. 이 肉身父母가 하날 父母를 모시는 뜻에 서서 完全히 侍奉하는 父母면은 그 父母로 因하여 肉身받은 子息은 한 몸과 같이 되어야 할 바가 根本 創造原理上点이다. 그러니 하날 父母를 侍奉하는 代身, 尊奉하여야하는 創造的 原理가 있기에 孝道하지 않으면 안 될 原理를 갖고 있는 것이기에 孝道하라는 儒敎의 基源이 있는 바이다. 또 나랏적으로 対할 적에는 再臨主를 王으로 侍奉하여야하며 또 至今까지 無知의 根本을 敎示한 것으로는 師으로 侍奉하여야 하는 바가 創造的 原理上点임으로 孔子를 通하여 三綱이란 原則을 세워서 厂史를 始作하게 한 바다. 그 目的은 至今 創造原理点 完成을 도웁게 하기 위하여서 厂史上에 나머지게 한바이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날 사랑을 繼代로 받아 繁殖하여야 하겠는데는 먼츰 하날 父母의 뜻에 하나되기 위하여 努力 할 것이며 世上 父母위하여 뜻 合하게 努力할 것이며 그 다음은 내 対像 存在로 하나 되어서 全体가 하나로 完成하여야 할바가 人生의 第一責任인 바다. 卽, 하날 父母 肉身父母 夫婦(子女合하여서 하나되어 分立 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創造性 相対로 対像理想型을 展開케 한바가 根本創造原理이었다. 이것이 하나로 하날뜻 成事한

 

[R-177]

者라면 再臨主를 侍奉하는데 完全資格인 第一責任은 完成하는 바이다. 그러니, 孝子, 忠臣이 되어서 하날 父母를 侍奉하여야 自己를 完成하고 하날 대하여 完全 仲介的 立場을 取할 수 있는 바이다. 特히 世上에 父母된 立場은 어떤 立場인가 理想論으로 보아 살펴 볼때에 卽 我를 例로서 잡는다 하면은 我는 肉身的 位置고 父母는 마움的 位置이므로 하늘 대해서 完全한 影像으로 되어 子息에게 나타나지 않으면 안될 相対 位置를 갖고 있는 바이다. 그러기에 父母는 子息에게 하날의 한 模型의 本이되어 나타나서 뜻 成事의 努力하여야 하는 責任的 義務가 있는 바이다. 그렇지 못하면은 하날 뜻 成事하기 위하여서는 몸이 마움을 支配하여서라도 完全을 이루어야 할 責任이 있으니 卽 子息이 父母에 対하여서 뜻을 잘 못 行함이 있다 하면은 是定할 責任이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再臨主를 侍시는 者는 나를 中心하고 먼츰 家庭을 完成하여 理想論 三位格 影像을 完全히 造成하는 것이 第一責任인바다. 그리하여 第二責任 部分인 事業과 社会를 뜻 合意者로서 対할 수 있는 資格이 成立하는 바이다. 萬一 責任部分을 完成한 者라면 第二責任 対像인 事業으로 社会対하여 나가는데 資格이 있는 同時에 그 뜻 未推進者 対하여서 무엇이나 忠告할 수 있는 바이며 指導할 수 있는 資格者가 되는 바이다. 그러니 이곳에 昨今 問題 보담 뜻 中心하고 完成者는 指導할 수 있는 資格이 어나 곳에든지 있는 바이다. 이것이 原理的 責任이면서 善繁殖의中心이되는 바이다. 그러니 再臨主를 侍奉하는 世界는 이 理想을 標準한 世界이므로 家庭에서나 社会에서나 囗家에서나 世界어나 곳에서나 原理아닌 곳을 責望하여 定義로 培養할 使命的 連結이 各自에게 負擔되어 있는 바이다. 萬一 不意를 그냥 두면은 그 存在 역시 뜻 未成事의 한 相対 決定者 立場이 되니 不義라는 墮落 相対 根本을 보는 바이다. 이러니 누구나 다 하날 뜻 成事를 標準하고 地上에서 不義 대한 防衛態勢를 取하는 것이 再臨主 以後에 處하는 우리 人生 生涯의 맡겨진 한 使命이다. 이 完成된 時代에 屬하게 되면은 사람들은 하날 子女의 始作을 보는 바는 勿論이며 또 그 時代의 夫婦는 永遠한 夫婦로서 하날 父母의 한 代身 分体로서 永遠한 理想 夫婦로 始作하는 同時에 하날에 가 있는 灵人들이 땅에서 完成해야 할 未完成 部分까지 充當하여 채우는 役割을 하여야 한다. 卽, 各自는 地上에 自我를 完成하는

 

[R-178]

同時에 하날에 가 있는 食口면 食口, 한 家庭이면 家庭을 補充하여 代身 完成하는 立場에 서 있으니 그 어찌 重大한 責任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地上에 있는 나 自体로 因하야 地上 完成이면서 代身 天囗 完成이라는 뜻 完成하여 根本 解放 始作을 보는 바이다. 그러니 天囗 灵人 (食口)들은 우리 地上 사람과 合하여야 自己들이 地上에서 完成하여야 할 未完成 部分을 完成하갔으니 이 時代 (再臨時代)를 하날 灵人까지 苦待하는 바이다. 이리하여,自由家庭始作과 同時에 天囗完成의 第一步를 始作케 함이 再臨主로 因함이니 온 天宙는 그를 誠心다하여 侍奉하려 하는바이다. 하날은 理想論으로는 나에게 第一 対像 本体요 夫婦들은 各自에게는 第二 対像 存在들이다. 그러니 創造原理線을 合하여 完成할 義務가 있는 바이다. 男便된 者여! 그 義務는 하날 対하여 사랑 받으려니 아름다움의 自体로 서야 할 것이며 그리하여 사랑을 받고 美를 돌려서 善을 完成하면 하날 代身 사랑을 가진 하날 代身 아바지 格으로 第二 対像者 妻를 対하여 사랑으로 나타나라. 그리 하여야만 原理人(원리인) 男子(남자)인 主管者資格者(주관자격자)다. 그런 男便을 対하는 婦人은 美로 나타나서 하날 어머니 代身 分体서 第二 善을 사랑 一体로 因하여 完成하여서 基本 善의 한 回路를 찾어 세우여야 만 理想善을 造成하는 바이다. 그러니 夫婦는 하날 아버지 어머니의 代身格者들이므로 至極히 貴한 対像位에 서 있기에 各自는 하날 父母 代身 서로 尊奉하여야 한다. 이리하여 繁殖된 子女들은 하날 子女이라는 榮光을 보는 바이다. 이 子女는 하날 아바지 어머니의 한 本体인 表示 存在이다. 卽, 아바지 어머니의 한 表示로서 사랑하여야 한다는 證據로 된 者가 子女이다. 그러니 그 自体는 貴한 自体이다. 父母는 이 貴한 子女에게 対하여서 사랑하니 만침 하날 아바지 어머니를 사랑하여야 한다는 表示的 存在가 子女이란 存在들이다. 그러면 하날 사랑의 眞味를 알려주는 바가 父母의 子女 대한 사랑이다. 父母는 子女에게 마움 있는 바와 같이 하날 아바지 어머니에게도 이와같이 마움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体得케 하는 證據다. 하날 대하여서 子女 생각 하듯이 하날 대하여서 생가갛는 자라면은 그는 모든 것을 完成할 本 되는 者라는 것을 보여주신 바이다. 그러니 우리 人間은 몬츰 하날 사랑이 第一位로서 세우어야 夫婦대한 사랑이 第二位로서 成立을 보며 子女대한 사랑이 第三位로서 나타나 分立된 듯하나 하나의 사랑으로서 歸結되어야 함이 하날 사랑인 同時에 理想 始作이 되는 바이다. 이런 創造原理를 中心하고 되었기에 墮落되었으나 人間 世上에 나타난 家庭 組織의 根本原因으로 되었다.

 

[R-179]

그러기에 父母는 子女를 사랑할 줄 알고 子女는 父母의 사랑에 대하여 感謝함의 마움으로 아름답게 나타나게 될 때 父母 기뻐하고 子女들은 滿足하여 原理的 善을 造成하게 되는 바이다. 이런 原理를 가졌기에 子女된 者로서는 孝道하여야 만이 原理人 子女로서 설 수 있갔기에 人間世上에서 墮落되었을 망정 父母에게 孝道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되어 왔다. 子女가 完全히 父母의 사랑에 対像으로 서면 創造性 原理를 完成하는 것이므로 하날 사랑에 대하여 하나 될 수 있는 理想 善을 찾아 세우게 되는 바이다. 그러니 사람들을 中心삼고 善 繁殖을 完成하는 立場에 서 있으니 얼마나 貴한 存在들이면서 하날의 理想 實現을 完成 할 수 있는 立場의 사람들이 아니랴! 그런고로 完成된 사람들은 再臨主를 찾아 根本原理復歸하여야겠으니 먼츰 어머니를 찾어 父母로 始作하여서 子女찾어 家庭建設의 始作을 보아야 하며 社会찾어 囗家로 囗家찾어 世界로 世界찾어 온 天宙를 찾어 原理를 세워야 하는바가 根本目的이다. 그러니 末世에 處하여 있는 信徒는 하날 父母를 찾어야 할 바다. 그 父母는 누구신가하면은 再臨主로 인한 根本父母며 墮落前 復歸 父母로서 사탄 대하여 支配 할 수 있는 創造人 根本父母로서 子女를 찾어 墮落前 本繼代를 成立하는 바이다. 그런데 至今 하날 子女 될 信徒는 누구나가 그 本体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特別한 敎示로 因한 存在들이 먼츰 合하여 侍奉하여서 出發할 바다. 灵이 完全 長成한 生命級 者라면 알 수 있는 바이다. 이 再臨主를 찾는것이 現實 信徒들의 큰 義務이다. 찾어드는 世界 信徒들을 合하여서 理想的 家庭 始作을 地上에서 始作할 바이다. 그리하야 家庭 中心한 社会로, 囗家로, 世界로, 天宙로서 大家庭 理想을 完全 成事하게 할 義務가 再臨主를 侍奉하는 者들의 生活課業이면서 生涯의 目的이다. 이 時代는 惡 対하여서 無慈悲한 時代면서 義와 善 対하여서는 榮光이 되는 時代며 良心的인 人士들이 解放을 받아 原理 세우면서 出世하여야 할 時代이다. 그리하여 하날의 한 모형을 完成하여서 六千年 厂史를 終決지어 安息年代를 보고저 하는 바이면서 永遠生의 始作을 보고저 함이 再臨主를 中心하고 完成하여야 할바가 하나님의 根本 뜻이다. (51. 10. 18 記)

 

 

유효원선생 필사본

[349]

目的이 하나님의 六千年間의 攝理다.

以上과 같은 原理를 보아서 우리 사람은 相対될 수 있는 第一 資格成事가 무엇 보담도 貴한 것이다. 내가 하늘 対하여 第二 存在로써 第二 存在의 한 対像의 要求가 全目的 됨은 事實이다. 그러니 相対할 수 있는 位置를 取하여야 하겠다. 이런 立場을 取하는 것은 사람은 第一 存在의 利用物인가 生覺하여서는 아니된다. 相対의 要求는 第一存在 目的 達成하기 爲함은 勿論이나 나로서는 完成하는 基本 完成이란 目的으로 되여 結局은 나 때문이란 바는 事實이다. 하날이 要求하는 바의 目的은 주기 爲한 目的이고 나는 받기 爲한 目的이 卽 내가 하나님 対한 相対 始作으로 対像 完成을 爲한 바다. 그런故로 하날은 주고져 하나 줄 수 있는 相対 없으니 얼마나 설어우랴

설어움이 生起는 것은 주고 받고 할 存在가 없게 되는 것에서 始作이다.

이런故로 참주고 받고 하는 者에 要求로써 対像이 要求되는 바이다. 내가 줄적에 第二 내에세 준다면 거기에는 벌써 기뿜이다. 그런故로 子女 対한 사랑도 여기서부터고, 男便 対한 사랑도 여기서부터고 社會対(事業対)한 사랑도 여기서부터고 하날 対한 사랑도 여기서부터다.

이와같이 貴한 根本上 自我가 되면 참 받을 수 있는 者이다.

上으로는 참주는 者 갖고 下으로는 참 받을 者를 가졌다. 이 얼마나 幸福이라 아니하겠는가? 참주고 받는 곳을 所有한 者는 언제나 기뿜에 動力이 躍動하는 바이다. 期 表示가 子女 対하여 주고 싶고 夫婦는 서로 사랑하고 받고 하는 根本 原理인 表示이다. 이 모도가 完成은 하날과 合하여야 되는 바이다. 하날은 發電所고 우리는 配電所와 変電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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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고 萬物은 授給所와 같은 것이다. 發電所 있는 配電所 變電所도 授給地는 原理다. 이 中間 우리는 配電所, 変電所 없으면 모도가 生命 使命이 中斷인 바다. 이와같이 주고 받은 變電所 配電所의 位置가 卽 우리 人生이매 나다

이런 原因으로 받고 주는데 原理 消耗없는 것을 바란다. 電氣로 말하면 損失 없는 것을 要하는 바와 같다. 損失이 많으면 基本 電氣가 消耗된다. 損失은 期 導線 物質로 因하여 右左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物質의 힘되는 電氣를 잡아먹는 作用이 生起게 하는 敵作用의 始作은 電氣要素를 反하는 作用을 갖고 있는 存在니 그런 損失을 가져오는 것과 同一하게 우리는 電氣와 같은 肉身을 갓고 있는데 期 自体와 良心과 合하여 完全한 나 라면 良 導体作用하는 것과 한가지고 그렇지 못하면 不良 導体와 같은 不作用 損失을 生起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런고로 우리는 完全히 주고 받는 対像을 連續的으로 어떤 方面으로던지 所有한다며는 其는 다시금 主人에게 돌리는데도 損失없는 原理 復歸가 成立하는 바와 한가지다. 이와같이 完全히 받고 完全히 주어 돌릴 수 있다는 것이 第一 要求 目的이다. 同時에 善 繼續이다.

電氣를 잘 돌게 하는 것이 電線類에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잘 成事케 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는 바이다. 그러니 잘 받으려니 잘 接觸하여 完全導体가 되여야 한다. 그런故로 하나님은 한 生命의 中心이며 喜樂의 中心地이다. 生命 中心과 喜樂 中心은 하나님이시다. 하늘 喜樂도 幸福도 모도가 하늘 사랑 받을 때에 始作이니 第一 要求 하날 사랑 받는 것이 目的이다. 하늘사랑 받으면 幸福도 喜樂도 始作이다. 完全 하늘 사랑을 받으려니 完全히 받을 수 있는 資格이 成立이 要求되는데 사랑할려면은 받을 수 있는 美가 있어야만 完全 사랑을 줄 수 있는 바이다.

하늘은 주고져 하니 愛이요 사람은 받으려니 美이다. 이와같은 相対 要求 成事 條件이 始作은 愛이였다면 美 있어야 한다. 愛를 라고 한다면 美는 라는 相対 存在다. 이것을 完全히 주고 받은 곳이 善이다.

∴ 善 = 愛 + 美 + (義) 이다.

그런故로 하나님은 至今까지 찾고져 하는 바는 美에 한 存在다. 예수는 사랑 中心인 同時에 하날 사랑 代身者이다. 예수 보내심은 完全 하날 사랑을 人間들한테 줄 수 있는 基礎 工作 始作케 하기 爲하여서다.

예수 愛 + 我 = 善 되여야 한다.

그런故로 하날 対한 対像格 完成 我가 되여야 한다. 그러니 나는 하날 사랑 対하여서 完全美를 相対하여 始作을 보아 完全히 주고 받는 一로 되는 対像 存在가 善이다.

義라는 것은 무엇인가 相対를 決定하여 対像 始作을 보아서 이루워 나아가는 한 路程的 要素가 義다. 예수는 義人은 없으니 한 사람도 없다 하심은 自己 自身이 義를 세울 수 있는 한 相対者 始作을 보지 못함을 表示한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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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故로 至今 天宙는 善을 完成할려니 사람과 美가 生起여 義한 路程을 지여야만의 하나님과 理想 始作이다. 우리가 하나님 対하여서 美로워야 하겠다. 그러니 먼츰 原理로 돌아서는 것의 基本目的이다. 그런故로 良心 理想存在 位置 위까지가 必要하다. 그러니 良心的이여야 한다. 그것은 몸과 맘이 하나되여야만 한다. 我는 하늘 対하여 아름(美)다워야 한다.

그러면 自然的으로 사랑은 始作한다. 電氣에 한 原理와 같은 것이다. 完全 가 되면 自然的으로 는 生起는 것과 한가짇다

原理的으로 美가 完全히 造成되면 하날 사랑은 나와 하나되는 作用이 始作된다.

이 作用이 始作되면 繼續하는 것이 한 義이다. 이 作用이 繼續되여 完全 合하는 것이 善이다. 作用 繼續하는데는 不作用을 이겨야 한다. 이것이 義의 使命 位置다. 義는 善한 路程을 結実하게 하는 要素다. 例로 表示하면 善할려고 하기 爲하여 사랑으로 美主義로가 經過 合하여 되는 바이다.

하늘 対한 사랑 받으려니 아름(美)다워야 되는 데는 여기에 良心 対하여서 몸을 其 良心에 中心하게 한 維持 繼續하게 하는 것이 卽 義이다. 그러나 하늘은 第一存在, 良心을 第二存在, 몸을 第三存在,로 하며는 義는 第一 存在 사랑에 対하여 第二存在 良心과 合하게 하는 第三存在인 몸이 있는 바이니 이 몸을 良心 要求대로 繼續 維持하여 완전 美를 갖게 되여 完全 사랑을 받아 合하게 하는 其 第三存在를 第一存在까지 合하게 하는 要求가 義다. 이와같이 하날 사랑 받으려면 良心 만으로않되고 몸이 合하여야만이 始作되는 바이다. 이렇게 우리 人間에게는 三位 要素 位를 세워서 一로 되는 原理 創造性이 있다. 義라는 것은 第三 位置를 第一 存在 位置로 屬하게 하는 基本 工作의 實果이라는 바는 事實이다.

義는 몸에서 良心 合하게 하는 要素가 義다. 나를 中心하면은 한 対像을 対하여서 義하면, 其 対像이 나와 같이 설 수 있는 位置를 造成하여야 義다.

事業을 対하여서 亦是 나를 第二存在 位置 두면 第三位置는 事業이니 이 第三 位置와 나와 하나이 位置 繼續 取케 하는 바가 義다. 義없는 곳에는 하날의 美를 造成 못한다. 그러니 하날이 나를 対하여서는 対像 本体의 사랑이고 나는 美的이고 나를 中心하고 対像格者에 対하여 서는 내가 사랑이고 対像 位置가 美이다.

義는 対像 美를 造成케 하는 平衡要素다. 그러니 義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維持하든 生活이 要求되는 重要 生活이다. 義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第三 存在 되는 完成 造成이 成立되여야 되는 한 分立性 対像 造成 目的으로 因하여 必要한 바이다. 人間 社會에서 義가 第一 나와 直接的 關係에 位置에 있는 바이다. 나도 먼츰 마음 中心하고는 몸, 내 自身 中心하고는 대상, 対像 中心하고는 萬物 世界, 이와같이 關係的 因緣을 中媒하여주는 其 自身은 義라는 存在다. 義는 完全 美를 造成하는 한 基本에 向하여 移動하는 長成 要素다. 그런故로 完全 사랑과 完全 美가 造成되면 完全 義는 造成되는 바면서 善은 完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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例를 들면 열(10) 사랑을 주려고 할 적에 10 美를 보여 주워야 된다. 10사랑 받고 10 美를 돌리는 完全하나 되는 한 回路를 造成하여만의 善인 것이다.

義는 完全 사랑에 対하여 完全 美를 維持하게 하는 過程이 義의 分擔路程

그런故로 美의 位置는 加減的 음직임이 있는 바다. 義와 不義라는 한 境界線上에서 서 있다. 그런故로 対像格 右左 如何로 사랑과 合하여 善成事 右左하는 重要 位置가 美的 位置다. 그러니 義는 한 基本 線 中心体 모양과 같은 것을 나에게서는 作用을 한다. 줄때도 対比되는 美를 보지 못하고 주는 하날 存在는 不義인 行動으로 된다. 그런故로 하늘 사랑받은 者라면 주는 것도 하늘 化하는 基臺 우에서 (基臺線上에서) 하여야 된다. 그런故로 우리 人生 앞에 旧約時代는 行義로 新約 時代는 信義로 成約時代는 侍義로서 한 人類 生活 中心으로 되여있다. 例(各)로 보면은 사랑線과 美線과는 対像되여 한 回路를 造成한다.

義는 한 中心 B 点 이 되여 A.C를 連結한다. 이와같이 ks 線上에 설 때에 善의 成立을 보는 것이다.

한 目的 対像을 取하면 義를 中心하여야 始作된다. 한가지 目的 成事하면 其 目的 終結을 짓는다. 卽 圖面 ABC 線을 中心한 回路는 造成되여 善成事한 다음은 딴 目的物 対할 때는 前番 義를 基臺로 하여 美를 찾게 된다.

그런故로 前番 義와는 繼續해야만의 다른 뜻 成事 美로 이룰 수 있는 連結線을 造成한다. 圖示 ㄱ ㄴ ㄷ 線으로 善回路 完成하고는 ㄱ ㄴ ㄹ 線으로 他에로 始作하여 언제나 永遠 標準 善 完成 目的을 要求하는 回路를 繼續하고져 하는 바가 人生 生涯의 目的이다. 이와같이 하늘 対하여 美로 始作 成事者가 始作하여야 다른 相対를 取하여 사랑格으로 対할 수 있는 바이다. 그것은 하날 사랑과 合하는 美를 찾었든 資格者니 善 所有者라는 立場을 復歸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対像格者를 나로 因하여서 세우면 理想 始作이다. 그곳에서 하날 사랑 代身 사랑으로 夫婦 사랑, 子女사랑을 取할 수 있는 資格者다. 그리여야만 하날 기뻐하고 나 기뻐하고 対像者 기뻐하는 第一 第二 第三 存在 全部가 기뻐할 수 있는 한 目的 回路線上을 完成하게 될 때에 線한 家庭이라 하는 바다.

善한 나 中心한 善한 家庭으로부터 善한 社會 始作이니 여기에는 義에 事業이 要求케 된다. 然故로 我中心하고 其 事業을 한 美로써 오면서 한 対像格的 善을 造成하여야 하는 한 몸 代身的 마음으로 対하여 한 美에 対像格 事業 始作이 造成하여야 만이 義의 事業이다. 그런故로 한 代身나 이라는 事業의 結果를 가져온다. 其 事業은 其 사람이 代身이니 한 連結된 義를 中心한 한 目的上에 서 있으므로 義와 善을 標準하고는 하나라고 表示하여지는 것이므로 事業은 其 本人 代身이라고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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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은 天宙는 한 몸과 같은 構造로써 되여 있다. 物質 世界도 한 하날의 몸의 表示体니 하나님의 한 솜털과 같은 것이다. 그런故로 사람은 事業을 通하여 生活을 始作하여 사랑 成事 目的과 理想 合하는 其 理想을 세우는 것이 우리 生活上 中心이다. 그러니 義에 事業이 美를 造成하는 것이며 善을 造成하는 中心도 된다. 내가 中心도 되고 事業의 中心도 되고 하날의 中心도 된다.

이것은 한 回路 잡고 되여 있으므로 始作하면 善이나 義로만의 始作하니 其 線上에서 어데나 同性 要素를 감각하니 其 中心도 各位置한테로 表示도 된다.

左圖와 같이 自由 基臺線上을 어데를 脫線하여도 우리 良心的 苛責이 始作된다. 家庭이나 社會나 나 혼자나 全部가 한 回路線上에 있다는 結論的 存在니 한 回路線上에 있다는 結論的 存在니 其 自然法理와 같다. 然故로 理想 家庭을 生覺하기 前에 理想 사랑 받으라

그 다음에는 理想 事業하여라. 그러면 理想 家庭도 必然的으로 維持하는 바이다. 人間世上에는 먼츰은 理想 같은 것이 웨 漸 向 가다가 中斷되는가 하면 基本 原理를 脫線하는 行動으로 因하여 其本 理想 向上 要素가 其 良心 可責으로 因하여 長成하지 못하고 中斷됨으로 서 있는 事實이다.

그런故로 이 根本 原理上에 서면은 始作과 同時에 永遠 標準 理想하고 나아가는 바다. 그런곳은 사랑이면 永遠이고 義면 永遠 標準한 義로서 繼續하고져 함이 根本이다. 그런故로 하늘 뜻 合한 사랑부터 理想 家庭 復歸로 理想 事業 復歸로 第一 段階를 天宙之間 始作 보고저 함이 하나님께서 創造하신 根本 目的이다. 이곳이 自由 理想 世界다.

사람은 하늘 対하여 愛을 対하여 주기를 바라고 萬物은 사람 対하여 愛으로 対하여 주기를 바라서 사람을 中心하여 온 天宙 和動하는 作用 始作이 理想論이 結実 目的地이다. 그리하여 온 天宙는 하나의 뜻으로 사作하여 나종으로 또 始作으로 하여 알패와 오메가的 原理 成立을 보는 同時에 萬世前 理想 實現인 바이다. 하나님은 이 目的을 人間들 向하여 바라는 바를 알고 成事하여야한다. 이 크나큰 理想의 根을 사람 対하여 賦與하였고, 땅에서부터 하날로 延長으로 永遠 生活 始作하는 者가 되여지는 幸福의 創造攝理를 누가 感謝치 않으랴

이와같은 生活하는 者라면 하날은 나를 中心하고 表示하면 모든 것을 指導하는 한 目的이 始作한다. 그런故로 이 原理上 理想으로 하날의 中心存在인 한 存在 再臨主 中心하고 始作을 보는 바는 事實이다. 그런故로 再臨主와 合하여 뜻 成事하는 世界 子女가 되여지는 것이 하날에 한 所望인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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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再臨主는 理想論 完成의 基本存在

人間이 바라든 再臨主라는 한 存在는 天地創造로부터 하나님도 또한 바라든 단 한 存在라는 것도 事實이다. 하나님은 이 한 存在가 다시금 地上에서 찾어지여야만이 創造的 本 뜻 成事의 第一步를 볼 바이므로 이 한 存在가 全 中心的 目標로 되여 왔다. 그는 同時에 天宙에 한 中心이겠으니 이 自体를 다시금 찾고져 하심의 墮落된 世界上 全部를 사랑하는 理由로 되여왔다. 再臨主는 無 墮落時의 한 存在야 되는 바는 事實이다. 이 存在로 因하여 하나님의 사랑은 全部가 完成을 始作하는 同時에 地上에 対하여서는 하나님의 사랑하되 再臨主를 中心하고야만의 사랑할 수 있는 世界를 展開하게 된다. 그는 卽 再臨主는 世上 사랑하든 中心 目的인 存在며 基本 存在이므로 이 存在가 하나님의 地上 사랑하든 한 總結実存在니 其 存在가 오면은 하나님의 全 사랑은 天宙인데 무엇보담 再臨主임으로 이곳으로 始作하여 根本 創造的 사랑을 始作하게 되는 바이다. 卽 其 存在가 出現하면 하나님의 世界 사랑하는 全部를 合하여서 再臨主와 하나되게 하는 것과 한가지다. 그러니 再臨主 떠난 곳에는 하날사랑이 없음은 事實이다. 하나님의 사랑 떠난 곳이 苦痛의 곳이라는 것은 事實이다.

그런故로 하나님의 사랑 圈內인 地上이 되면은 그곳은 再臨主를 中心하고 되는 곳이니 하나님의 사랑하는 곳이다. 卽 하나님의 사랑받은 곳은 生命은 勿論이면서 幸福과 喜樂과 滿足이 始作되는 世界라는 것은 事實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完成的 原理本体이무로 其 世界는 原理 復歸 世界이니 地上天囗의 한 基本을 始作 世界이다. 再臨界까지는 사랑하여 온 바는 全部를 蘇生 식여서 再臨主에게 合하게 하는 本意이었다. 그러니 再臨主 現顯하면은 천주는 하나님의 바라든 사랑 中心体인 再臨主와 合하여야 할 터인데 合하지 못하면은 그는 한 審判하여 오든 対象의 한 貌樣으로 되니 그곳 向하여서는 斷乎한 無慈悲한 審判樣으로 対할 時期라는 바는 事實이다. 그런故로 예수로 因하여 사랑을 주워서 無條件 사랑을 주워슴은 再臨主로 因하여 全部 合한 天宙 사랑 復歸코저함에서다. 그런故로 주었으니 其 價値 추궁과 거두우기 爲한 存在가 再臨主다

再臨主는 사랑을 거두우실 存在다. 再臨主 오신 後 부터는 하나님의 사랑 받으려는 者는 再臨主 품에 와야만이 다시금 創造 根本性인 사랑 理想 資格을 받을 수 있는 바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만치 再臨主를 通하여 돌려 들여야 할 責任이 있으므로 再臨主를 사랑하여 한 回路를 成立식히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 끝날에 處한 사람들의 義務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 사랑은 報酬的 사랑이라고 하여서는 아니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完成的 사랑이다. 卽 나를 中心하고 받고 주어야 創造原理를 完成하는 바이므로 再臨主를 通하여 사랑을 돌리지 않으면 아니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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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臨主를 다시금 사랑하면은 根本的 創造理想 全部가 始作을 보아서 自己로 因하여 完成을 지여 根本 理想 生活을 保障하는 터가 되는 原理를 세우려고 하니, 再臨主 外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없는 時期다. 그런故로 사랑을 예수로 因하여, 온 天宙에 뿌렷서 天宙를 蘇生케 하여서 再臨主로 因하여서 거두우심이 目的이니 이 目的外에 處하는 者는 하나님의 미움의 者라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바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至今까지 貴한 사랑을 주워 온 바는 더 높은 사랑 目標하엿기 때문에라는 것은 事實이다.

하나님이 사랑한 바는 예수로 因하여 사랑 繁殖코져함이 目的이었다.

예수 하나로 因하여 많은 사랑의 完成하여서 創造 根本 사랑을 全 世界的으로 完成하고져 하여서 예수로 因하여서 사랑을 始作하였다. 始作하여스니 그 結末은 있지 않겠는가

이 사랑을 거두는 때가 卽 再臨主 時代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目的 없이는 사랑치 않는다

其 限界는 再臨主를 中心点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은 사랑하여스니 사랑 받으여야 할 時代가 卽 再臨時代부터 始作한다.

그러면 根本 原理 復歸가 始作된다. 卽 하나님 사랑은 다시금 사람으로 通하여서 再臨主에로 回路를 지여 한 一体的 사랑 理想을 完成한다. 卽 創造 理想的 한, 주고받고 하는 回路를 造成하여 根本원리 復歸世界로 展開를 보는 바이다. 다시말하면 再創造理想이 始作되는 바이다. 하나님은 至今까지 사람을 歷史를 두고 사랑하여 왓지만 再臨主 以後는 하나님의 사랑치 않는 者를 爲하여 사랑하며는 사탄 짝하는 두려운 한 行動으로 出現을 보는 바이다. 그런故로 사랑 주기 爲한 예수 以後에는 사랑하여 敵을 사랑으로 対하여 왔든 바는 敵에 屬한 사람을 対하여 사랑 주워 사랑의 蘇生을 보아 繁殖케 할려니 敵을 対하여 사랑하라고 하여스니 이것이 예수에 根本 目的이었다. 예수는 왠빰을 치며는 右뺌까지 돌리라는 根本 目的이였었든 바이다. 그것은 사탄보다 더 높은 사랑을 주어 사탄 대한 사랑 받는 者 없게 하기 爲하여서고 또 사람은 사랑을 根本 生命으로 하고 있기에 사탄의 사랑 以上의 사랑을 주어 蘇生시켜 全人類를 빼앗아 넘길려니 또 惡 繁殖을 防止하여 速히 結実케 하려니 이런 사랑을 取하였든 바이다. 그러나 再臨主 옴으로 사탄이는 敗하고 사람은 再臨主를 中心하고서 사탄 사랑 者를 없게 하려고 하여서지만, 卽 사람의 根本은 사랑을 生命으로 하고 있기에 사탄 보담 더 사랑하여 全人類를 빼앗아 넘길려니 이런 사랑을 取한 것이다. 그러나 사탄이 敗하고 再臨主 올 때는 根本原理 完成하여야 되겠으니 사람은 하나님에 対하여서 받은 사랑에 代身 사랑을 주워야만이 하날과 나와는 創造理想을 完成하는 한 善을 造成하여지는 根이 됨으로 하나님에 対하여 사랑하여 돌리는 回路를 造成하여 永遠性을 維持하여야만의 墮落前 世界를 造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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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再臨主를 中心하고 하날 사랑을 주는 길을 돌려찾는 길을 잡고져 하는 바는 善하게 하기 爲한 것이 根本이니 그래야 全部가 살 수 있겠으니 이런 目的으로 되는 것이기에 理想論을 完成하게 하는 바이다. 再臨主 오면 其 곳 信奉者 昔日에 사랑 줄 時代와 反対 向으로 우리는 態勢를 取하지 않으면 아니될 時代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 줄 때는 부리뜬 때요

再臨主 出現 後에는 사랑의 결실을 거두는 때니 再臨主 품外에 있는 者는 사랑하면은, 거두는 때에 뿌리는 때와 한가지니 하날의 사랑이 無效됨을 定하는 時代가 된다. 다시말하면 하날 存在들이 하늘 存在 아닌 者한테 왼뺌 맞으면 사랑으로 対하지 않고 오른 뺌까지 쳐서라도 하늘의 義를 세우지 않으면 아니될 時代다. 다시 말하면 아벨的 하늘 存在가 가인的 하늘 存在 아닌者 対하여 하나님이 取할 수 있는 順從者로 하여 根本 復歸케 해 세우여야 하는 時代다.

그러나 再臨主 품에 있는 者끼리는 예수 敎訓대루 준수하여야 한다. 뜻 밖에서 함부로 칠 수 없다. 치면 아부지 어머니 代身 몸인 故로 치지 못하고 復活을 證據하여야 한다.

그런故로 時代的으로 自然히 이러한 傾向으로 歷史는 흐르고 있는 바는 이 根本 뜻이 完成하려는 時期가 가까워 오는 것을 보여주는 바이다. 그러나 再臨主를 侍奉하는 者들에게 있어서는 各自々々 하나님 하날의 아버지 어머니 分体로써 完成하여야 할 存在들이므로 함부로 손을 들어 칠 수 없는 바이다. 뜻 안에 있는 者를 치면 하날의 아버지, 어머니의 몸을 犯하는 結果를 招來하는 바이므로 예수가 侍하든 사랑을 갖고 対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萬一 뜻에 反하는 者 있어 뜻을 세우려하기 爲하여 忠告를 받게 될 때에는 順應하여 뜻을 세우여야 할 義務가 있는 同時에 自身으로 하여금 代身 감사의 표시로써 뜻 繁殖에 努力하지 않으면 아니될 責任이 있는 바이다. 至今까지 歷史를 두고 惡 支配下에 屬하여 있든 聖徒들은 가진 수모와 壓制와 업수히 역임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뜻 蘇生시켜 長成식히기 爲하여 사랑 중심으로 讓步하여 왓든 바이다. 再臨主 以後에는 善 支配를 세우는 同時에 사랑을 찾어 건설하기 爲한 歷史的 收穫時代다. 再臨主 모시는 者들은 收穫과 同時에 建設을 推進식여 나가여야 될 義務를 各自가 갓고 있으므로 再臨主의 뜻을 中心하고야만이 相対를 対해서 사랑을 주며 또 받으여야 하는 바이다. 第三者를 対하여서도 함부로 줄 수 없고 함부로 받을 수도 없다. 오직 뜻의 保障을 中心하고야 주고 받고 할 수 있는 事實이다. 이것은 善을 成事하려니 이런 創造原理를 要求케 되는 바이다. 이리하여야 하날의 善의 곳이니 하나님이 기뻐하든 바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날은 侵犯하는 行動으로 되는 바이다. 그러니 우리는 確固한 立場을 定 하고 惡 対하여서 無慈悲한 分別時代가 再臨主 中心하고 始作하는 世界로 된다. 各自는 사랑 돌리는 價値대로 卽 美로 낱아나는 價値대로 報酬時代時代가 理想時代다.

그러니 良心的을 中心하고 나아가여야 한다. 그리하여서 自我 善 完成하여서 相対를 잡아 対像 善으로 始作하여야 하날 善에 合하여야만의 비로소 創造原理로 成事한 善으로 始作하는 同時에 하늘과 合한 理想 善으로 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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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이 理想 善 完成한 後에는 事業으로 社會와 連結지어서 온 天宙에 善과 合하는 基本 原理上点이 始作하게 될 때 天宙 기뿜이 나로 因하여 始作하게 되니 創造로부터 賦與받은 原理的 重大課業은 完成을 보게 되는 바이다. 完全히 주고 받고 할려니 우리는 再臨主를 中心하고 하날 対한 사랑으로 하늘 父母를 모시여야 된다. 이것이 創造 理想 善 完成의 根本 뿌리다. 이 하늘 父母와 하나되여야 創造 理想 善 始作한다. 그러니 하나님과 合할려니 하날 父母 품으로 合意 보아야 한다. 그러면 創造原理 完成이니 理想 善이다. 또 其 外에도 우리 사람은 肉身이 있나니 하날 父母를 第一로 하는 影像인 肉身 父母가 있는 바이다. 이 肉身父母가 하날 父母를 모시는 뜻에서는 完全히 侍奉하는 父母면은 其 父母로 因하여 肉身받은 子息은 한 몸과 같이 되여야 할 바가 根本 創造 原理上点이다. 그러니 하늘 父母를 侍奉하는 代身 尊奉하여야 하는 創造的 原理가 있으므로 孝道치 않으면 아니될 原理를 갖고 있는 것이며, 孝道라는 儒敎의 起源이 있는 바이다. 또 나라的으로 対할 적에는 再臨主는 王으로 侍奉하여야 하는 바가 創造的 原理 上点이므로 孔子를 通하여 三綱이란 原理를 세워서 歷史를 始作하게 한 바이다. 其 目的은 至今 創造 原理点 完成点을 돕기 爲하여서 歷史上에 남어지게 한 바이였다.

그런故로 우리는 하날 사랑을 繼代받아 繁殖하여야 되겠는데 하늘 父母의 뜻에 하나되기 爲하여 努力할 것이면서 世上 父母 爲하여 뜻 함게 努力할 것이며 그 다음은 내 対像存在로 한나 되여서 全体가 完成하여야 할 바가 人生의 第一 責任인 바이다. 卽 하날에 父母 + 肉身 父母 + 夫婦가 合하여서 하나되여 分立보지 않은 곳이 하나님의 創造性 相対로 対像 理想形을 展開케 한바가 根本 創造原理이였다. 이것이 하나인 하날 뜻 成事한 者라면 再臨主를 侍奉하는데 完全 資格인 第一 責任은 完成한다.

그러니 孝子 忠臣이 되여서 侍奉하니 自己를 中心하고 完全 中繼的 立場을 取할 수 있는 바이다. 特히 世上에 父母된 立場은 어떤 立場인가

理想論으로 보아서 삺여볼적에 卽 나를 例로 잡는다면 나는 肉身的 位置고 父母는 마움(心)的 位置이므로 하날 対해서는 完全한 影像으로 되여 子息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相対 位置를 갖고 있는 바이다. 그러기에 父母는 子息 対하여서 마음이 몸을 支配하듯이 父母는 子息에게 하날의 한 貌樣의 本이 되여 나타나서 뜻 成事의 努力하여야 하는 責任的 義務가 있는 바이다. 그렇지 못하면은 하늘 뜻 成事하기 爲하여서는 몸이 마음을 支配하여서라도 完全을 이루워야 할 責任이 있으니 卽 子息이 父母에 対하여서 뜻을 잘못 行함이 있다 하며는 是正할 責任이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再臨主를 모시는 者는 나를 中心하고 몬츰 家庭 完成하여 理想論 三位格 影像을 完全히 完成하는 것이 第一 責任인 바이다. 그리하여 第二 責任 部分인 事業과 社會를 뜻 合意者로서 対할 수 있는 資格이 成立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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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 責任 部分을 完成한 者이라면 第二 責任 対像인 事業으로 社會를 対하여 나가는데 資格이 있는 同時에 뜻 未推進者 対하여서 무엇이나 忠告할 수 있는 바이며 支持할 수 있는 資格者가 되는 바이다. 그러니 이곳에 昨今 問題보담 뜻 中心하고 完成者는 指導할 資格이 어느곳이라도 있는 바다. 이것이 原理的 責任이면서 善 繁殖에 中心이 되는 바이다. 그러니 再臨主를 侍奉하는 世界는 이 理想을 標準하는 世界니 家庭에서나 社會에서나 國家에서나 世界 어데서나 原理 아닌 곳은 責亡하여 正義로 培養할 使命的 連結이 각자에게 負擔되어 있는 바이다. 萬一 不義를 其樣두면 기 存在 亦是 뜻 未成事에 한 相対 決定者 立場이 되니 不義라는 墮落 相対 根本을 보는 바이다. 그러니 누구나가 하날 뜻 成事를 標準하고 地上에서 不義 対한 防衛態勢를 取하는 것이 再臨主 以後에 우리 人生 生涯에 마껴진 使命이다. 이 完成된 時代에 屬하게 되면 하늘 子女의 始作은 勿論이니 其 夫婦는 永遠한 夫婦로서 始作하는 同時에 하날 간 灵人들이 땅에서 完成하여야 할 未完成 部分까지 充當하여 채우는 役割을 하여야 한다. 卽 各自는 地上 自我 完成인 同時에 하날에 한 食口면 食口 家庭이면 家庭은 補充하여 完成하는 立場에 서 있으니 어찌 重大한 責任이 아니겠는가? 地上에 있는 나 自体로 因하여 地上 完成이면서 代身 天囗 完成이라는 뜻 完成하여 根本 解放 始作을 보는 바이다. 그러니 天國 灵人들(食口)은 우리 地上인과 合하여야 自己들이 地上에서 完成하여야할 未完成 部分을 完成하겠으니 이 時代(再臨時代)를 하날 灵人까지 苦待한 바이다. 이리하여 自由 家庭 始作(再臨時代)과 同時에 天國 完成에 第一步를 始作케 함이 再臨主로 因함이니 天宙는 그를 誠心다하여 侍奉하는 바이다. 하날은 나에게는 理想論으로는 第一 対像 本体요 夫婦들은 各自에게는 第二 対像 存在들이다. 그러니 創造 原理上을 合하여 完成할 義務가 있는 바이다. 男便되는 者여 其 義務는 하늘 対하여 사랑 받으려니 아름다움의 自体로써 서야할 것이다. 그리하여 愛를 받고 美를 돌려서 善을 完成하면 하날 代身 사랑을 가진 하날 代身 아부지格으로 第二 対像者 妻를 對하여 사랑으로 나타나라

그리하여야만 原理人 男子인 主管者格者다. 그런 男便을 対하는 婦人은 美로 나타나서 하날 어머니 代身 分體로서 第二 善을 사랑 一体로 因하여 完成하여서 基本 善의 한 回路를 찾어서야만 理想 善을 完成하는 바이다.

그러니 하날 夫婦는 하날 아버지 어머니의 代身 格者들이므로 至極히 貴한 対像位에 서 있기에 各自는 하늘 父母 代身 서로 尊奉해야 된다. 이리하여 繁殖된 子女들은 하나님의 子女이라는 榮光을 보는 바이다. 이 子女는 하날 아바지 어머니의 한 本体의 表示存在들이다. 卽 아버지 어머니의 한 表示로서 사랑하여야한다는 증거로 된 者가 子女이다. 그러니 其 自体는 歸한 自体이다. 父母는 이 貴한 子女에게 対하여서 사랑하니 만침 하날 아버지 어머님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한 表示的 存在가 卽 子女이란 存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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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하늘사랑의 本 路程에 眞味를 알어주는 바가 父母의 子女 対한 사랑이다. 父母는 子息에게 마음이 있는 바와 같이 하늘 父母에게도 이와같이 마음이 있으여야 된다는 것을 体得케 하는 증거인 것이다. 子女 生覺하듯이 하날 対하여서 生覺하는 者라면 그는 모든 것을 完成할 本되는 者라는 것을 보여주신 바이다. 그러니 우리 人生은 먼츰 하날 사랑이 第一 位로써 세우여야 夫婦 対한 사랑이 第二 位로써 成立을 보며 子女 対한 사랑이 弟三位로써 나타나 分立된 듯 하나, 하나의 사랑으로서 歸結되여야 함의 하날 사랑인 同時에 理想이 始作되는 바이다. 이런 創造理想를 中心하고 되엿기에 墮落되었으나 人間 世上에 나타난 家庭 組織 根本 原理로 되여있다. 父母는 子女를 사랑할 줄 알고 子女는 父母의 사랑에 対하여 감謝함의 마음으로 아름답게 나타나게 될 때 父母 父母기뻐하고, 子女들은 滿足하여 原理的 善을 造成하게 되는 바이다. 이런 原理를 가졋기에 子女된 者로서는 孝道하여야만이 原理人 子女로서 설 수 있기에 人間 世上에서 墮落되였을망정 父母에 孝道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되여있다. 子女가 完全히 父母의 사랑에 対像으로서면 創造原理로 完成하는 것이므로 하날 사랑에 対하여 하나될 수 있는 理想 善을 찾어 세우게 되는 바이다. 그러니 사람들을 中心하고 繁殖을 完成하는 立場에 서 있으니 얼마나 貴한 存在들이면서 하날의 理想 實現은 完成할 수 있는 立場의 사람들이 아니랴.

그런故로 完成된 사람들은 再臨主를 찾어 根本 原理 復歸하여야겠으니 먼츰 어머니를 찾어 父母를 始作하여서 子女 찾어 家庭建設의 始作을 보아야 하며, 社會찾어 國家로 國家찾어 世界로 世界 찾어 온 宇宙를 찾어 原理를 세우야 하는 바이다. 根本 目的이다. 그러니 末世에 處하여 있는 信徒는 먼츰 하날 父母를 찾어야 할 바다. 其 父母는 누구냐하면 再臨主로 因한 根本 父母며 墮落前 復歸 父母로써 사탄 対하여 支配할 수 있는 創造 根本 父母로서 子女를 찾어 墮落的 本 系代를 成立하는 바이다. 그런데 至今 하날 자녀될 信徒는 누구나가 其 本体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特別한 敎示로 因한 存在들이 먼츰 合하여서 侍奉하여서 出發할 바다. 灵이 完全 長成한 生命級者라면 알 수 있는 바이다. 이 再臨主를 찾는 것이 現実 信徒들이 큰 義務이다. 찾아드는 世界 信徒들을 合하여서 理想的 家庭 始作으로 이 世上은 볼 바이다. 이리하야 家庭 中心한 社會로 家庭 中心한 國家로 家庭 中心한 世界로 大家庭 天宙를 完全 成事하게 할 義務가 再臨主를 모시는 者들의 生活課業이면서 生涯의 目的이다. 時代는 惡 対하여서 無慈悲한 時代면서 義와 善 対하여서는 榮光이 되는 時代며 良心的인 人士들의 解放을 받아 原理를 세우면서 出世하여야 할 時代다

이리하여 하늘의 한 貌形은 完成하여서 六千年 六千年 歷史를 終結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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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息 年代를 보고져 하는 바이면서 永遠性의 始作을 보고져 함이 再臨主를 中心하고 完成하여야 할 바가 하나님의 根本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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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연대를 보고저 하는 바이면서 永遠生의 始作를 보고저 함이 再臨主를 中心하고 完成하여야 할 바가 하나님 선 根本 뜻이다.

 

四十日 復帰코저한 摂理路程의 根本意義

 

人間世界에 해와로 因하여 墮落이 始作하여지니 其 時부터 人間世界은 非原理存在에 屬하여 나와오는 反面에 하나님은 原理的復帰로서 態勢를 取하여지개 되였다. 하나님을 中心하고 原理的으로 直系의 血代은 至今까지 摂理에 한 所望으로 남게되고 其直系的血系은 非原的으로 始作한바는 事実이다. 이런 根本 뜻를 다시금 찾저 根本血系를 始作하는 겄이 하나님의 創造本意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墮落된 人間일망정 抛棄하지 못하고 原理的復帰原則를 바라보면서 至今까지 繼續되는 厂史를 본 바를 論한바다. 하나님의 아담 해와의 子中 가인과 아벨에 対한 祭物받는 根本 뜻도 알 줄안다. 가인은 사탄 初血의 表示者요 아벨은 아담의니 종的으로 해와 対한 表示的 者이매 根本 하나님의 찾을 수 있는 者임으로 하나님은 다시금 찾고저 할 적에 첮 生産者보담 다음者 아벨을 사랑的으로 対한 原因은 알 바이다. 聖經에도 하나님의 아벨 祭物받게되는 理由는 未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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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아나서 있다. 그겄은 其時代的으로 몬츰 알 수 업는 原理復帰코저하는 厂史的 뜻에 成事를 볼 바가 되지 못함으로 至今까지 未知로 되였다. 아담 해와 中心하고 찾고저 하나님은 하지 못한바도 非原理存在가 먼츰 한 主人格相対으로 세었끼에 한主人相対로 原理로된 創造的原理가 있끼에 아담 해와로 因한 復帰못하고 가인과 아벨로세 二性分立를 보와 順從과 不順從를 作定케 하는 表定物이 卽 아담 두 아달 祭物인바다. 웨 가인祭物 안받은 바는 사탄的 生産血系에 結実存在였슴으로 가인祭物 보담 아벨祭物를 받음이였다. 아벨이 더 誠心 다 하였다는 바는 聖經에도 업는 바이다. 이 根本的原理가 이런 原理로 되었있는 原理라는 바를 알게 될 대에 根本墮落에 根本에 対하여 내 発表가 正論임을 알바다. 가인도 아벨 対한 反擊이 업서스면은 다시금 깁분復帰로 될 바이였스나 하날이 뜻 아지 못하고 하날 対하는 反擊이 始作이 있스니 하날 뜻 破壞를 始作하게하는 基源奌을 始作한바이다. 萬一 가인도 아벨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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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어 들었스면은 하나님은 사탄에 所有物이란 分立를 防止하여슬 겄이였다. 그런 立場에 서 있는 가인 한 自体의 行動이야 人間에 第一 슬품에 始作이 基奌를 짓게 되였다. 그로 因하여 아벨 죽이니 하나님은 아벨代身 셌을 주웨서 摂理를 다시금 세우고저 하였다. 셌를 주워서 厂史를 經過하는 途中에 셌 子孫亦是 하나님에 뜻를 알지 못하고 가인子孫이 조와하는 사탄便 짝으로 가니 全人類은 사탄所有란 非原理世界를 造成한 셈이다. 그러니 이를 淸算하고 뜻에 사람 択함이 노아이였다. 노아는 其時代的으로 하나님의 所望이 存在면서 其時代世界人類보담 貴한 所望存在였다. 노아를 中心하고 하나님은 뜻에 人間을 造成하고저하니 全世界에 全部겄을 分立하는 하날便쪽으로 分別식키고저 하는 겄이 目的이니 사탄 所有物不順者 合하여 全滅케 하는 바이였다. 그 目的은 不順者所有物을 世界上에서 없시하게 하고저 함에서였다. 그리하여 非原理主人格사탄을 根本的으로 追放하고저 함에서 始作이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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根本的으로 하나님은 自己의 所有物만를 世界上에 始作하고저 함에서 対擊取함이 노아 審判이다. 이 審判은 무슨 意味나 하면은 創造하였는 根本原理的立場를 復帰하고저 함에서 始作이라는 바는 事実이다. 모츰 사탄侵入받은 아담 해와로 因한 萬物은 사탄血로 因하여 하나님과 떠난 겄이무로 전부를 淸算한바이다. 노아를 択하심은 전부를 다시금 찾저 세우는 貌樣으로 노아의 方舟에 모든 生物를 노아에게 준 바이다. 이겄은 第二創造理想始作이 目的이였다. 이 노아가 하나님의 뜻 成事하여야 할 義務的立場이란 바는 말할바 업는 바이였다. 이런 노아은 人間第二祖上으로 繼代를 잡고저 하는 基盤工作은 엊지되였나하면 함이 行動으로 사탄이 하나님의 앞에 自己의 血繼的証據格으로 서니 하나님앞에 自己의 血族이 있슴을 세워서 다시금 侵入하여서 取케 되니 함이 가나안이 父로 되는 바이다. 그겄은 아바지裸体로 因한 行動으로 始作함이다. 이겄이 至今본다면 좋은 行動같은데 웨 하나님의 第一 미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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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動이 되며 하나님과 怨讐된다는 行動인가은 두말할바 없시 해와이 墮落根本을 表証한 事実인 根本과 合하는 血緣的關係로 表示하였끼에 사탄侵入은 또다시 가나안 父格으로 함을 通하여 始作본바가 根本이였다. 그러케 되니 하나님의 大審判한 目的은 第二次的으로도 根本始作를 보와 出発하지 못하고 하나님앞에 있서서 찾고저 하는 全目的를 일어버린 反対目的이 結果한 셈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審判은 하였스나 審判하기 前과 같은 始作奌을 본 겄으로 되니 하나님은 根本目的과 要求를 다시금 찾저야 하게 되였다. 卽 審判할적에 하나님은 四十日晝夜를 두고 審判하였다. 이 四十日은 하나님의 뜻 成事이 始作잡는 基本를 作定하는 期間임은 事実이다. 이 四十日에 対한 目的은 사탄全部를 追放이 目的이였다. 이 사탄 追放目的은 함으로 因하여 또 다시금 侵入基台를 잡고 하나님의 根本 뜻를 未成事로 始作를 본 셈이다. 하나님의 四十日審判은 無效果로 된바로 되엇 지었다. 四十日를 뜻맛게 찾으면은 根本目的成事를 볼 바였는데 四十日를 未成事한 양으로 나아가니 四十日의 目的은 全部가 일어버린 目的으로 始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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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본 바이다. 하나님끠 있서서 四十日을 일어버린겄과 같은겄이 되여스니 다시금 뜻 세우는 길에는 四十日이란 根本目的成事가 最高目的이면서 이겄찾저 세우여야만 뜻 成事란 目的完成이니 이 四十日를 中心하고 사탄分立를 作定키 爲한 바이다. 이 四十日를 사탄侵入보니 일러버린 바와 갗치 되였스니 하나님은 이 四十日이 사탄 対하여 찾어 세우여야 하는 한 分岐奌으로 남어지게 되였다. 그런고로 四十日를 中心하고 摂理의 始作은 언제나 問題로 나타나고 있다. 노아이 四十日期間이 卽 審判에 全目的이니 이 四十日 끝낫슬때에 行事은 하나님의 創造하든 完成를 表準한 時와 한가지로 出発코저 하시였다. 노아는 四十日지난 後에는 鴉를 내보냄이였다. 이겄은 創造받은 世界에 사탄이 먼츰 始作하였든 바를 다시금 찾어 成事할 表示이 상증이였다. 卽 鴉을 내보내스나 돌아둘우오지 안였다. 창세記 8/7에 보면은 鴉은 地上에 水이 마르기까지 往來하는지라 하시였다. 먼츰 내보낸 鴉은 웨 노아한테 들어오지 못하고 이 모양으로 行하는가 하면은 먼츰 사탄이 至今 이와갗치 되여서 行한다 하는 表示로써 鴉를 내어 보내심이였다. 사탄은 水로 審判받은 水上를 단니면서 쉬일곳 찾고 있다는 한 表示로 됨이 鴉이 내보내심이 한 像徵이였다. 다음은 비둘기를 내보냈뜨니 鴿은 地面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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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로 因하여 발부치 못하고 다시금 노아方舟로 돌아오니 노아가 手를 내밀어 受入고(창8/8~12참조) 七日를 待러서 鴿을 내노이니 夕時에 鴿가 橄欖木葉를 口에 물고 들러오난지라. 其後 또 七日를 지내서 鴿를 노아주니 다시금 도라오지 안앗다. 이런 鴿로 因하여 三次나 보내서야만이 비로서 完全이 地上를 찾어서 繁殖할 수 있는 船없시 直接살 수 있다는 한 表示로 되여있다. 이 表示은 무었이나하면 墮落時부터 眞理全部에 対한 復帰에 한 表示로 되여있다. 첫 번 鴿은 第一次 아담이 始作를 볼러고 하였스나 비달기 水로 因하여 도라온겄과 갗치 그 灵이 하나님 앞에 돌아온 바와 한가지고 卽 노아가 手를 내밀어 비달기를 받아들이심과 갗치 아담灵를 받아들이심이였다. 鳩를 方舟로 받아들인겄과 갗이 그 方舟은 한날 全部에 表示였다. 卽 三層天表示로된 바이였다. 方舟도 上, 中, 下로 된바도 하날 三層天表示로써 基因한바다. 다음 鳩은 二次아담 예수를 表示함인데 예수는 아담灵이 보내슴을 받아 땅을 찾저 繁殖生이 地를 찾고저 하였스나 감남나무葉만 물고 왓다하는 바는 예수와서 뜻 成事할러고 하였스나 땅이 아직 받을 수 있은 땅이 못되무로 찾으수 있는 約束를 세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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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台成事한 表示로 된바며 三次鴿는 完全이 뜻 成事始作를 完成하신다는 한 表示的內容를 보여주심이다. 그런고로 眞理復帰에는 蘇生부터 長生으로 完成으로 한 目的達成한다는 萬宇宙創造原理를 表準하였끼에 이렀게 表示된바이다. 하나님의 七日간격둔 바는 첫 번도 完成할러고 한겄이 延長되니 卽 七日理想延長되니 이런 間隔두워 役事하심이다. 第一次도 한 期間를 두고 한다는 겄이고 다음봄도 未成事면 한 期間를 두고 한다는 겄이다. 이럿틋시 하나님의 뜻은 第一次 鴿的으로 成事코저 하였스나 땅은 死亡圈에 잠기엿끠에 돌아왔고 第二次成事할러고 하였스나 땅이 받지 못하서 돌아오고 第三次 만에는 아무리 하여도 成事한다는 한 限界를 表示함이다. 그런고로 成事치 못한바는 하나님의 未成事케 한 바가 안이고 땅들이 받들지 못함으로 延長된다는 한 表示로써 第一次 第二次 第三次로 延長된다는 바를 알려주는 事実이다. 그런무로 하나님의 뜻은 아담墮落으로 因하여 鴿가 돌아온 바와 한가지고 第二次아담 完成者로 오신 예수는 땅이 받지 못하여 약속만 成事하고 돌아오고 完成第三次 아담와서 完成한다는 뜻이무로 鴿이 三次는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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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음은 뜻 完成할바를 보여주심이다. 이리하여 노아는 鴿이 還지 안으므로 自身이 몸이 地上에서 生活할 수 있는겄과 한가지로 하나님도 三次아담 再臨主로 因하여 地上에서 創造理想生活를 始作하여 直系的世界를 造成할바를 表示되는바가 目的으로 되였섰다. 그런 目的根本인데 노아아달 함으로 因하여 다시금 目的破壞를 始作하는 非原理存在를 誘引하니 하나님은 根本四十日審判目的은 不成事로 되여지게 되였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다시금 하나님의 摂理하는 血系代에 사탄侵入에 踪蹟를 보지 않게하기 爲하여 四百年延長를 보는바다. 그 根本 뜻은 四十日를 中心하고 사탄対立의 成事를 始作하였스니 그 基本四十數가 基因를 가지게 되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四十日數를 基本復帰하여 다시금 成事할려고 하니 四十日가지고서나 四十年 가지고서나 안되가스니 四百年으로 延長식켜서 四百年後에야 本格的으로 第二人間祖上이 成事할 信 基本成事인 노아에 信 完成基台를 아부라함択함으로 始作하였다. 이 信을 세우심은 아담이 不信으로 因한 바무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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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其基台를 찾어 세우여야 사탄対할 수 있는 基本이니 信祖上 아부라함은 노아의 根本뜻 信繼承完成者로 択한 바이다. 그러기에 아부라함이 信祖上되는 根本意義가 있는 바다. 웨 아부라함을 択하였나 하면 노아家庭으로 択함에서 失手하여스니 아부라함 한 自体로서 始作코저함이 目的이였다. 아부라함은 하나님의 앞에 信의 基本를 세울 수 있는 때까지는 얻던 經路롤 밟았는가 하면 아부라함이 凶年을 当하여서 아부라함은 애급으로 내려가난지라. 其当時에 아부라함이 妻 사라는 아름다우매 念慮하여서 男妹로 된다는 約束과 同時에 애급에 감이였다. 이 사라는 아부라함이 妻로 妹에 立場에 서게됨도 아담 해와 立장인 큰 原理的事実를 찾저 세우고저 함에서다. 그겄은 애급은 사탄代身囗인데 그 国王 바로는 아부라함의 妻를 自己가 取하여 妻로 하고저 하여스나 하나님이 바로 対하여 아부라함에게로 찾어주니 바로는 아부라함에게 所有物를 주워서 돌리심은 하나님으로 因한 緣故이였다. 이와갗치 아부라함에 뜻 成事하는 路中에 第一問題는 애급까지가서 妻를 所有한바와갗치 하나님도 根本 한 해와가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빼왓스러 한바를 다시 찾는다는 한 表示를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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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後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만 始作한 바와갗치 원수의 謀略中에서 하나님은 해와를 찾어서 復帰땅에서 부터 뜻 成事함이 基台를 造成한 바와갗치 하나님도 하신다는 根本뜻이 있슴이였다. 其後 아부라함은 애급서 가지고 온 所有를 基本으로 하여서 뜻 基本를 잡아서 하나님의 뜻이 成事할 基本를 잡앗다. 이것은 萬物全部를 取하여 뜻 基台로 한다는 뜻이였다. 그 다음은 롯이 잡어간 怨讐를 対하여 勝利한 後에야 아부라함은 뜻 成事이 始作이 決定를 받게 되는바다. 이겄은 択한 者를 全部를 復帰한다는 뜻이였다. 이런 基本이 完成되니 아부라함은 約束에 対한 表示物 로세 三大祭物로 하나님과 첫 條件에 対한 成立에 基台를 完成하는 바이였다. 그런고로 아부라함은 사탄 所有에 貴한 者와 같은 겄은 데라의 아달을 빼앗사 내여슴으로 사탄은 아부라함이 뜻하는 하나님対하여서 아부라함이 무었이나가 不順된 무었이 所有만 되면 所有코져하여 아부라함 뒤를 딸으게 되였다. 其時 마침 아부라함과 하나님과은 重大約束成立을 始作케 되니 사탄에게 있서서 큰 問題가 될 터를 始作함으로 이때 하나님対하여 사탄은 対立하여 서게 되였다. 만일 아부라함의 全的으로 하나님의 뜻에 맜게 祭物들러스면은 아부라함부터 基本基台은 잡아 四百年 厂史的延長生活인 애급 生活은 업고 直接 하나님責任分担使命으로 볼 바이였다. 이 目的은 무슨 目的이냐 하면은 아부라함만 完全히 뜻 成事함이면은 사탄対 根本追放를 始作하여 四十日에 対한 노아審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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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뜬 基本目的은 完成되여서 出発를 볼 바이였다. 아부라함이 失手하고나니 四十日에 対한 뜻은 아직 完成的基台를 잡지 못하게 그에 延長的四百年이 탕감時代으로 始作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이 四百年이란 年代은 노아부터 아부라함까지 延長보아 사탄이 侵入본 바니 이 四百年代 탕감하여야만이 노아적 時代立場에 立却함으로 아부라함에게 四百年延長를 보았다. 그런고로 아부라함 子孫에 남아지는 바는 四十數가 남어있는 樣으로되니 四十數가 만사를 解決하는 뜻 成事이 完成奌으로 남어지게 되였다. 하나님앞에 섰뜻 아부라함은 뜻에 未成事로 因하여 子孫이 四百年苦役生活을 봄이 큰나큰 禍根으로 되는 期間이다. 아부라함의 失手를 淸算하여서 사탄侵入防止코저하니 祭物表示로 되였뜬 実体子로 因하여서 祭物代身찾어 세우고저하니 이삭를 모리아山되려 祭物로써 獻祭를 命令하심이였다. 이 뜻을 아부라함이 三日期間을 두고 獻祭함의 合意 봄으로 하나님의 摂理한은 路程이 사탄를 防止하였스나 사탄亦是 이삭에 対하여 先有所有物될 수 있는 祭物所有로 因하여 미련갓고 対하게되니 이삭子息中二性的表示子息으로 分立하여서 하나님은 뜻를 세우게 되였다. 그리하야 야곱에 母親과 合하여 에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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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業를 빼앗사 넘기는 뜻이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腹中에서 부터 서로 싸우무로 니부가는 하나님끠 알래니 여호와 하나님이 答하여 갈아대 二囗이 爾腹中에 在함이여 二民族이 爾腹中으로부터 分하리로다. 此族屬이 被族屬보다 强함이며 大者가 小者를 섬기리라. 하시였다.(창25/23-24) 이겄를 보아도 이 失手한 根本를 다시금 하나님은 뜻하시여서 分立케하는 厂史的原因이 있는 바이다. 야곱이는 야거워서가(영급) 않이다. 하나님이 根本 뜻이 이와같은 사탄이 먼츰 祭物를 取할 수 있섰뜬 代身일써 存在 에서를 두고 야곱은 다음번 이무로 하나님의 뜻 中에서 사탄의 뜻하였든 所有物全部를 빼앗슴을 表示하기에 이와같은 対立를 보게한 바이다. 이겄이 卽 後日에 예수에 한 役事에 本되는 事実들로 되는것도 알 줄 안다. 이와갗치 하는바는 사탄의 아부라함 子息에게 미런남기지 않케하기 爲한 目的이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아부라함으로 뜻 成事를 볼러고 하는겄 이삭으로 通하여서 야곱에서 비로서 成事하게되니 아부라함을 対하엿든 하나님은 이삭이 하나님으로써 야곱까지와서 첫 아부라함 対한 하나님 뜻 成事를 보니 여기에 하나님은 三人를 相対하여서 아부라함의 하나님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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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延長를 본 바에 根本原理를 갓게 되는 바이다. 그러니 이 三代이 하나님으로 因한 名詞가 至今까지 조흔 名詞로 된듯하고 現信者는 알고 있지만 큰나큰 誤解를 알어야 한다. 이런 厂史的 하나님便的으로 原理를 中心하고 있다는 바를 確実히 알러야 한다. 이런 原理로 全部가 사탄侵入防止키 爲한 目的인 同時에 根本墮落始作이 復帰를 爲하여서라는 바를 알러야 한다. 여긔에 야곱부터 애급出発은 야곱이 아부라함이 本 뜻 四百年 탕감路程出発이 始作함이다. 웨 이삭부터 안되였는가 하면은 이삭은 아담과 같치 二主人対相存在였끼에 이삭부터 애급 四百年始作을 못한바를 론한바다. 야곱이 始作하였다는 바는 야곱은 根本 뜻 成事를 잡은者니 야곱이 애급出発하는 바이 根本原因이 有함이다. 이삭은 아부라함에 뜻 成事한 完成存在 못되무로 애급를 向할 수 업섰다. 그러기에 이삭子息에 에서라는 存在는 사탄相対者라는 서러움이 始作된바다. 어데 失手업서스면 아부라함子息에는 에서라는 存在은 없시 根本 뜻 始作를 볼 바이였다. 그러기에 이삭自体로서도 四十才를 中心하고 리브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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娶하여 妻를 択함이였다.(창 23/20) 이리하여서 하나님의 뜻이 始作를 보게함이였다. 야곱도 四十才를 中心하고 에서이 基業을 빼앗는 基本役事를 始作할바가 原理로써 짐작하여야 한다. 창세긔에 야곱이 四十年齡는 없스나 짐작키는 에서이 祝福 못받게 되는 年齡數 에서의 四十才 헷族屬 딸를 妻로 因하여 이삭과 리브가가 憂하더라 하는겄보면(창26/34) 야곱年代도 四十才를 中心하고 摂理하여야할 바가 原理로 되어있다. 이런 四十年代를 中心하고 하나님의 뜻를 始作할 수 있다는 基本를 잡으심은 基本 노아審判四十日數復帰한 基因數로 因하여서 이와같치 始作를 한 厂史的起源으로 因한바다. 야곱이 死後에 그 몸에 防腐劑를 四十日 발으심은 야곱이 体은 하나님이 뜻 完成者이무로 이 한 存在은 死亡하여서도 四十日期間과 같은 사탄対한 四十日審判를 받아 死亡한 者와같은 死亡이 안이고 四十日를 完成한 成事者로써 하날 뜻 四十日期間上에 處하여 死한 者라구 하는 表示로 四十日防腐劑를 바르게한 뜻이 있슴이다. 이리하여 四十日되는 死亡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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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防止한 中心存在가 된 바라는 根本意義로서 四十日를 보게한 바이다. 四十日은 卽 사탄 追放期間이면서 生命蘇生期間이다. 여기까지 야곱까지 延長보아서 애급出発하게 되여 한 하나님의 基台를 잡아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아부라함 이삭 야곱이란 延長은 우리는 生覚하면 怨痛한 期間이라 않이할 수 업다. 그러기에 이 期間를 두고 하나님은 約束祭物失手한 全部를 淸算하여서 사탄分立를 成事할 때 가지는 어는곳 까지나 하면은 야곱이 食口가 밧담 아람 라반에게서 얻은 所有를 가지고 가나안땅에 돌아온 後에 뜻 成事이 始作를 하는 바이다. 그러면 아부라함으로 부터 이삭 이삭부터 야곱이란 三代란겄은 하나님의 뜻하는 約束祭物中에 三祭物表示로 된바는 蘇生부터 長成으로 長成부터 完成에로 하는 眞理段階를 보여주는 바이였스니 아부라함의 뜻 合意케 成事하었스면은 三代없섯든바는 事実이다. 아부라함에 失手로 因하여 三代後에 完成한바도 全하나님의 뜻을 이 三代的段階로써 찾고저한은 厂史的眞理路程全部로 表示함이 始作하였다. 그는 失手로 因하여 分立보와서 아부라함으로 부터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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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이삭으로 야곱으로 하여 뜻 成事한 터은 眞理路程에 対한 基本的表示로 展開를 보게 되였다. 卽 아부라함은 아담格 상증으로 이삭은 예수이 한 상증으로 야곱은 완성 상증으로 됨이였다. 예수는 이삭과같은 立場임에 사람만 믿었뜨면 죽엄업시 야곱 뜻 合할 수 있는 겄이 目的이였다. 이삭도 죽음 면함도 뜻를 세우심으로 免한바와 갗치 될 바이였다. 그러나 基台 잡지 못하니 未成事할 수 있는 表示的一代復帰厂史와 모세로 因하여 民族復帰路程失手로 因하여 十字架까지 關聯를 가진바이다. 그런고로 뜻 完成者는 야곱이였다. 야곱이 뜻 成事하기 爲하여서는 第一次 가나안를 떠나는 生活이 야곱앞에 있섰다. 卽 長者基業를 取하고는 야곱은 基業成事할 者로써 라반집를 찾저가게 되였다. 여기에 야곱앞에 展開은 全部가 後日에 예수이 할 使命的表示로 되는 바는 한 뜻 基台成事은 야곱이무로 야곱은 뜻 基台完成가 있스야갔스니 야곱은 하란生活의 始作를 보는 바다. 여기서 부터 가나안 復地까지는 全部가 이스라엘이 나아가야할 表示的路程으로 낱아난다. 그겄은 하나님의 뜻에 基台가 되여야 갔스니 한 一代에서 하나님의 뜻에 全部를 表示한 厂史로 展開할 意義로 보는 바다. 그런고로 아부라함의 三大祭物은 아부라함을 蘇生으로 하고 사탄対하여 長成的 이삭이 始作을 보고 야곱이 始作으로 路程完成이니 이 厂史的三大祖上은 人類対한 하나님의 厂史的全部를 表示하는 바로 展開를 보여주심이다. 그겄은 祭物의 全部는 全人類対한 하나님의 摂理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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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 失手復帰은 全人類対한 한 表徵的事実로 展開를 보와야 되는 바이다. 그러기에 야곱이 一代 가나안 復帰까지며 全部은 가나안난 이스라엘百姓이 애급四百年生活과 相対되는 基本一代 복기厂史다. 이 야곱이 가나안 復帰路程은 이스라엘 全民族이 가나안 복지로 정예 本되는 路程이다. 이리하여 야곱은 復帰路程에 야곱이 뜻를 成事케 하는 에서가 있섰다는 바는 아담아달 가인과는 反対로 야곱対함이 始作보니 基本 가인가 아벨的 根本 뜻를 合意 본 셈이무로 그러기에 根本 아담 두 아달 가인과 아벨이 뜻에 속한것과갗은 完成보니 뜻 성사를 보는 바다. 야곱은 가나안땅을 찾어들게 되는 바이였다. 그  에서가 야곱를 対하여 反対하여 怨讐示 하였다면은 하나님의 뜻 成事에 큰 問題가 될 바이였스나 에서 야곱歡迎하며 에서도 後日에 하나님対하여 順從에 한 間接的基本를 잡아 세우심이였다. 그런고로 에서이 後孫은 가나안 땅에서 怨讐対立이 안되고 가나안 땅에서 基業地를 所有繼續한 原因를 세우심이 基台가 에서가 야곱対하여 歡迎한 結果로 가저온 바다. 그러니 야곱 가나안復帰은 이스라엘民族이 애급生活로 부터 가나안 復地로 오는 한 本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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겄이다. 그런고로 야곱이 하란 生活路程에서 対하는 라반이란 存在은 사탄이 対像存在로써 야곱이 全部를 害하여 自己이 慾望充当를 세우러고 하는 者이였다. 라반은 하나님끠 屬하지 안코 偶像崇拜者이였다.(창 31/19) 이리하여 하란生活에서 財物取하여 가지고 가나안당을 向할러고 할 때에 라반에 対하여 야곱이 取할 수 있는 自由三日(창31/21~22)이 있섰뜬 바다. 이 三日間를 中心하고 라반에게서 얻은 全所有를 分立케 하여 所有权으로 세우신바이다. 그리하여 라반은 三日後에야 길느앗山에 対하였스나 하나님의 許하지 않으므로 自己 뜻을 成事못하고 自己이 偶像를 가저간겄을 찾다가 라헬이 其父에게 말하기를 自己은 偶像을 아지 못한다고 하면서 駱駄鞍下에 두고 타고는 至今딸은 脛水가 適出야 起야 歡迎치 못한다 하여서 偶像를 라반이 찾지 못함에 뜻를 보지 못하고 도르혀 야곱한테 攻擊를 본바이였다. 야곱이게는 레아와 라헬 二妻가 있섰다. 그 뜻은 무슨 뜻이나 하면은 하나님의 対하고저 하는 뜻 中에는 하나님의 二女性이 있다함을 보여줌이다. 야곱이 뜻 아닌 레아的 女性과 야곱이 뜻이 中心인 라헬的 女性이 있다는 表示로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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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이였다. 여기에는 根本해와이 일어버린 한 찾저야할 根本的女性이였는 바라는 겄이 表示였다. 그겄은 라반이 뜻 일운 레아이 存在와 한가지 表示였다. 이겄은 먼츰 일러버린 全人類対한 墮落始作母 해와로 表示한 바이다. 라반이 레아를 주고는 七日期間을 채운 後에 라헬을 妻를 삼게 하시였다. 이 七日期間(창29/28)日數는 卽 노아가 鴿을 내보내듯 한 섭리完成的日數로 되는 바이다. 그리하여 야곱은 뜻 成事하고야 가나안 땅으로 帰還하는 바이였다. 그리하여 라헬 찾은바는 하나님의 後日 일어버린 해와를 찾저 根本 뜻 成事할 目的를 表示한 바이였다. 그런고로 레아子과 라헬子 合하여 뜻 完成를 表準한다는 全世界人間 찾저야할 根本目的를 表示한 바이였다. 또 여기에 라반이 行한 바와갗치 하나님의 사탄世界에 不信으로 因하면은 이와같은 야곱이 目的이 二번만에 成事와 갗치 예수도 이와같은 한 完成를 成事할 바이 뜻를 表示한 바이였다. 그리하여 야곱과 合하여서 아바지 라반를 対하여선 妻 라헬態度와 갗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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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야만의 後日에 하나님 뜻이 完成 본다는 한 表示로 되였다. 라헬리 萬一偶像를 아바지한테 보였스면은 야곱과 全部은 큰 未成事를 가저온은 問題로 되는 바이나 라헬니 한 勝利를 가저온 中心은 脛水로 因하여서 勝利한 바와 한 가지로 야곱妻 라헬이 말로 因하여 偶像를 없세게 한 바와같치 後日 하나님 뜻 路程에 이와같은 女子이 脛水로써 사탄全部를 勝利하는 基台가 始作한다 하는 內容을 表示한 바이다. 이겄은 라헬이 態度와 같치 第二次 해와로 因하여 사탄을 屈伏시켜 뜻 完成를 한다는 한 勝利的表示이였다. 이 야곱이 一代이 展開가 예수이 路程으로 始作된다는 겄도 한 表示로 된 바다. 이 야곱이 全目的成事은 애급 路程上에 다시금 始作에 本으로 나타나서 하나님도 사탄対하게 하는 根本이 있는 바이다. 그러니 아부라함 이삭 야곱은 全하나님의 厂史的 路程를 表示한 存在들로 낱아낫다. 아부라함은 아담 失手한겄을 이삭으로 復帰와 같은 예수 祭物表示로 不信하니 十字架로 始作하고 야곱과 같은 再臨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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格 成事를 完成되는 한 表示로된 者들이니 하나님 対하는 아부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対像者인 뜻에 摂理를 表示한 存在들 이무로 아부라함이 하나님 (야곱의 一代로. . . .잘 보이지 않음) 이삭 하나님 야곱 하나님으로 延長된 後日에 全部를 表示한 基本들이니 信이 基本되는바가 成立되니 信의 祖上이라는 基本意義가 있다는 바 말한바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뜻 路程은 旧約役事中에 全部表示하여 맞추고저 함이 根本으로 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은 야곱 成事부터 할바가 모세부터 始作한바다. 모세은 야곱이 根本目的完成하여야 할 表示的路程으로써 後日 예수에 第二責任路程를 表示로 하면서 하나님의 直接責任基台잡은 路程에 始作를 보는 바다. 그런고로 모세 亦是 야곱 繼承的成事로서 出発하심이 出애급 노정이다. 모세= 아부라함 + 子孫 = 祭物찾음 = 하나님 取하여 역사. 그리하여 예수이 本되는 路程를 하나님과 合하여 成事하여 노았다. 그런고로 야곱 나간곳이 完成을 本으로 모세는 出発 하게 되였다. 이 모세의 本될 수 있는 路程이 完成를 始作하였끼에 信의 祖上들로 세게 되였다. 이리하여 예수이 앞에도 이와같은 完成目的하고 나아가여야할 表示이 路程으로 모세도 出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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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보는 바이다. 이와갗치 摂理한 바에 根本本意은 사탄対한 四十日完全復帰問題로 帰因하는 바이다. 이 모든 어러운 役事始作이 延長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를 받들지 못하였끼에다.그런고로 모세도 애급 宮中에서 잘래게 하는겄도 択한 百姓를 第二次로 노아後에 사탄한테 배았끼스나 사탄한테 주었다가 다시금 사탄対하여 反対路程를 세우려니 모세亦是 四十年時를 바라宮中에 있다 四十才가 되매 하나님의 百姓으로 出発케함도 이 根本四十數가 始作이 如何 根本 뜻 成事目的였섰끼에 모세 亦是 四十才에 애급対하여 反対하는 바이다. 모세가 四十才를 바로 宮中에 全部를 잘 有持 한 後에(사도행전 七/23) 하나님은 択하여 또 四十年間를 두었다가 役事하게 되는 바이다. 모세는 바로対한 出発時은 八十才이였다.(출7/7) 이와갗치 四十數를 두고 役事한겄은 四十日數를 일어버린 겄과 갗치 되었뜬 겄은 찾어서 탕감을 定할려니 四十才에 択하는 摂理를 始作케하여서 八十才에 成事로써 모세를 세워서 役事식킨 바이다. 이리하여 再出発하는 모세는 勝利路程를 잡고 나아간바는 四十日 復帰이 目的完成이니 四十年後四十年하날뜻 準備期間으로 対케 한 바이다. 그러니 이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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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十年애급이 바로한테 준 바는 全 이스라엘 百姓를 바로가 支配하니 基本四十日를 일어버린 겄으로 因하여 四百年이란 年數로 보앗스니 모세는 이 四十日를 사탄으로부터 하날 四十數로 찾저 세우여야 갔스니 애급 四十를 주었다가 하날 四十으로 탕감하여 하날이 基本四十日數를 찾을 수 있는 길를 잡고 나서는 樣이니 애급出発이라는 始作를 보는 바이다. 그러니 이스라엘百姓은 四十日를 全体的完成를 하여야 하는 바는 이스라엘全部가 四十日完成 하여야만의 노아審判根本目的達成한 하날 百姓으로 보는바 갓스니 卽 根本 하나님의 創造本意인 말삼를 하갔스니 모세는 이스라엘 百姓를 中心하여 놋코 根本 뜻 成事에 基本言 成事에 約束를 받게되는 바이다. 卽 四十日晝夜로 通하여 禁食하여서라도 成事할 目的으로 되니 모세는 四十日를 完成할러니 禁食하여 四十日根本審判根本復帰가 目的이니 四十日로 因하여 言에 対한 二石板 받음이다. 이겄은 무었이나 四十日이 完成이 다시금 成事한 基盤되는 아담 해와이 成事를 完成할 本이라는 겄이 始作를 보는 바이였다. 그리하여 全百姓은 言과 한나 되여야만이 뜻 完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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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곳으로 나아갈 바이 根本인데 나아가지 못하게 되매 四十日에 対한 第二次 完成도 다시금 未完成를 본 바아갗치 되니 이스라엘 百姓에는 다시금 苦痛數 四十數는 남아지게 되였다. 四十數未完成은 再創造 復歸未完成數인데 이스라엘百姓이 가나안땅을 앞에노코 偵探軍이가서 정탐한날 四十日이 最後로 이스라엘 百姓이 全 뜻 成事나 未成事나 하는 간격둔 対峠回數가 四十日이였다. 이 四十日를 두고 한 全部를 믿고 나아가면은 根本四十日은 勝利이 基本 될 날이였는데 이 정탐 긔 四十日를 잘 信고 넘지 못함과 같은 結果로 나타나니 昿野四十年이 고역이 始作을 본 바이였다.(민수긔 14/30~34) 이리하여 四十日基本은 完成못하고 四十日完成으로 발아보든 全百姓代表者은 다시금 사탄所有物 되여 昿野에서 四十年間에 死亡하는바가 始作된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뜻 路程에서 四十日의 勝利的目的을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百姓이 찾저 세우여야하는 重大期間로써 남아지게 되였다. 四十日 세우는 날이면 사탄追放이 날이라는 事実이다. 그러무로 四十日이라는 날짜는 이스라엘 百姓앞에 찾어서 세우여야하는 날이다. 이겄를 탕감과 同時에 完成할 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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摂理路程에 한 뜻으로 되였다. 모세 四十日目的未達成하여서 사탄은 如前하게 侵入하여 全目的 破壞으로 나아가니 하나님은 다시금 엘니아를 세우심이였다. 엘니야은 사탄 全滅식키기 爲한 代表的存在로써 하나님앞에 세게 되였다. 그리하여 바랄神 八百余를 滅하고는 四十日晝夜로 호렙山까지 가는겄은 무었이나 하면 모세 四十日에 한 勝利를 完結짖는 한 表示로써 엘니야 호렙山까지 四十期間의 있슴이였다. 이리하여 엘니야로부터 노아審判四十日를 完成하는 同時에 하나님의 基本出発할 수 있는 터를 造成하기 爲한 總決戰者가 엘니야엇다. 그것도 百姓이 不信 不順 不侍로 因하여서 사탄은 侵入延長를 보와서 메시야 前까지 当到하갓스니 하나님은 四十數 十進倍數年로써 四千年期인 四十數延長으로 因한 메시야 時까지 侵入하여 役事하가스니 하나님은 엘니야를 보내서서 目的成事를 予告함이였이다. 이 엘니야라는 存在는 세례요한으로 始作하여 사탄 全滅目的完成하여야 할 엘니야的 目的達成못한 셈으로되니 예수 앞에가긔 四十日에 対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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厂史的 탕감課業이 延長를 본 바이다. 그런고로 이겄를 탕감하기 爲한 總結算期가 예수四十日 禁食期間인 野生活이다. 이리하여 勝利함으로 審判目的은 完成할 基台은 잡아스나 사람의 合하여야만이(누가4//13참조) 成事할 예수앞에는 未成事란 結果로 因하니 四十日에 対한 未完成를 본 바와 한가지로 되였다. 그러니 十字架로 因하여 사탄対 勝利를 目的케 되였다. 그리하여 예수는 敗한듯 하니 四十日間를 찾줄 수 있섰다는 目的를 完成할 수 있다는 바는 十字架後로 因하여 예수앞에 復帰되면서 基本完成이 터를 始作하여서 出発에 榮光를 본 바다. 예수가 十字架後復活하여 四十日期間이 成立를 보와서 하나님의 基本四十日 노아根本 사탄追放目的를 成立하여 노은 바가 根本目的으로 하나님의 摂理路程에 四十日期間이 問題로 되여왓뜬 바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厂史的 모든겄 完成者로 뜻 出発中心存在로 되는 바이다.

(*51. 10. 26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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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氣候은 世界文明에 標本될 상증

 

넓고넓은 世界를 두고 氣候가 四時4節를 두고 明朗하게 公式的으로 表現化하여 보여지는 氣候은 世界 어데서라도 찾어볼 수 없는 果然讚呼할만 한것은 한국氣候인 것이다. 世界를 두고보면은 이 氣候은 厂史発展上의 偉大한 功獻를 가지고 至今까지 찾어 나오고 있다. 世界를 氣候的으로 區分하여 보면 熱帶氣候圈內와 溫帶氣候圈內와 寒帶氣候圈內을 보여지고 있다. 이 氣候的關係와 人間的關係와는 密接한 關係를 가지고 至今人類厂史은 움직여 나온 바이다. 至今韓囗이라는 나라를 집어서 氣候的으로 보면은 溫帶圈內에 屬하여 있스면서도 溫帶的氣候로써 만이 보여짐이 않이고 四時를 두고 全世界的氣候를 全部表現化하고 있슴을 누구나가 잘 아는 事実이다. 卽 春節이 있고 夏節이 있고 秋節이 있고 冬節이 있다. 이 四時은 또 다시 十二朔을 中心하고 一朔에 二節期를 가지서 二四節를 갓고 한 公式과 같은 軌道的氣候로 展開를 가지고 四時軌道를 지네는 바는 事実이다. 韓囗에 氣候은 果然全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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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氣候이 標本으로 創造받고 있슴을 누가 変更할 수 없는 한 天理로 되여있다. 그러타면 이 氣候的立場과 創造主와는 얻던 關係로 因然를 갓고 있끼에 이와같은 氣候로 지였는가 生覚하여보면 여기에 神奇한 事実들를 発見할 수 있을 겄이다. 氣候에 中心地은 모든 博物에 対한 한 中心地로써 世界上에 없는 動植物이 集中한 곳으로 自然界에 棲息狀를 볼 수 있슴도 事実이다. 이러트시 動植物界에 対하여서나 또 人間에 있써나 全部은 氣候에 対하여 生에 対한 重要關聯를 갖고 있끼에 氣候가 自己들이 生에 完全를 保存할 수 있는 理想的氣候를 要求케 되는바는 事実이다. 그러면 至今世界를 보면 熱帶地域과 寒帶地域를 上 下에 두고있는 溫帶地域은 熱帶와 寒帶에 対한 中部位에 있슴으로 其地帶에 対比되는 生를 保存한은 身豊形으로 되여지게 되었있다.

그런고로 氣候에 關係은 世界上에 五色人種를 區分하여 놋은 바면서 또 其本性分과 性品까지가 全部은 氣候를 中心하고 右左하여 보여지게 되는 바이다. 그러무로 其民族이면 민족 百姓이면 百姓 全部은 其接生地域에 氣候로 因하여서 많은 相異를 가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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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바무로 各囗各民族은 其地域地域에 依하여 風土를 中心한 氣候로 因하여 全部은 右左되는 바도 事実이다. 또 壽命問題도 自然的으로 氣候的關係로 右左되는 바도 事実이다. 그런고로 이 氣候란 目的이 앞날 人類発達史的으로 보아도 人類理想과는 언재나 合하여 步調를 음직기게 되는 바도 事実이다. 그러타면은 世界的으로 보면은 모든 萬相은 氣候를 中心하고 発達도 右左하는 時代가 온다는 바도 알어야 한다. 그런데 韓囗이 氣候은 世界없는 最高理想的位를 갖고있는 바인가 하면 이겄은 創造主이 根本은 恩択이라는 바는 事実이다. 本來天地創造은 한 中心를 標準하고 萬相도 지음받은 바는 事実이다. 世界를 創造하시든 創造主도 한 中心地로 하여 各樣으로 벌녀 노은겄이 萬物창조다. 그런고로 其中心地는 世界上에 무었으로나 世界的標本으로 되여야하는 바는 原理的事実로 되는 바이니 받드시 氣候的問題로써나 各方面으로써나 全部가 한 標本的立場으로 되여지게 되여야 많이 原理的事実이매 이 中心地向하여 最高하나님의 理想은 움직임을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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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바이 事実인 바다. 그러타면 標本的으로 보여지는 其地域은 萬宇宙에 全部에 한 標本狀를 보여지는 곳은 創造主를 가진 被造物世界에 보여지여야많이 事実이 않이겠는가? 그러면 世界上에 重大한 關係로써 人類厂史를 右左한은 氣候的關係와 人間를 生覚하여 볼적에 人間이 理想的 氣候圈內를 自然的要求할 바이니 그 氣候的目的地은 自然的으로 世界上에 찾어 노으여야 하는 바가 必然的要求로 되여진다. 그러타면 至今世界를 보면 韓囗에 氣候은 世界에 第一位를 갖고 있슴을 누가 否認못한다. 이 氣候은 一年中心하고 四時를 通하여 全世界上 全部 이 氣候이 感味를 体得하는 바이다. 이 氣候야말로 누가 찬양치 않으라. 春면 꽃피는 其自然에 美. 夏이면 綠葉이 茂盛한 自然美. 秋면 丹楓의 自然美. 冬이면 莊嚴한 銀世界로 되는 自然美. 全部가 人間理상에 한 絶境으로 詩的感漡을 伝하여주는 人生理想에 한 自然境를 보게되니 그 얼마나 創造的 고마운 事実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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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케 創造하신 創造主도 全世界를 보게 될 때에 氣候的中心地로된 그곳 向하여서 찬양하는 中心地라는겄도 事実이 않이겠는가. 世界에 韓囗은 自然的福를 갗추워 지음받은 地域이라면 創造主가 계시는 以上에는 韓囗를 自己과 第一貴하게 理想地로 할 겄은 自然的原理要求로 되는 바이다. 韓囗에 氣候에 対하여 살펴보면 이러트시 創造主便으로도 重要한 目的地로 되여야 하는 겄이 世界的氣候를 中心하고 볼적에 生覚하여지는 바는 事実이다. 韓囗에 氣候의 循環全部은 創造主이 理想形를 表示한 中心地로써 한囗의 氣候 한 自体은 理想世界인 創造主이 本境世界에 全 表示的構造를 터로 하여서 지음 받여지은 바를 알 수 있다. 卽 하날에 한 構造的事実形를 表示하여 있는바가 目的으로 되여진다. 그러키에 天囗構造에 한 影狀으로써 보여지여야 하는 原理的 構造를 要求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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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囗에 構造를 살펴 보면은 寶座가 있고 十二使徒를 中心한 二十四長老가 있고 四灵物이 있는 바이다. 여기에 韓囗氣候를 中心하고 四時的構造야말로 天囗에 한 榮光에 터를 像徵식킨 한 表示的被造物中心地라는 바를 表示한 바이다. 한囗에 四時 卽 春夏秋冬은 四灵物이니 四時로 되여 其를 中心하고 四方를 보게 되면서 十二朔를 中心하고 二四節은 卽 하날全部에 한 影狀이 表示로써 全世界를 対케하는 한 中心構造에 한 標本으로 되여있다. 이 全部은 하날 한 中心部를 本으로하여 世界創造하였끼에 이런 具造를 보는 바이다. 이런 地上中心地은 이런 公式的世界에 한 標準으로 表現化되여야 하는 原理的創造目的이 있는 바이다. 그러니 全世界的으로 四時를 中心하고 12朔으로되여 韓國를 中心하는 二十四節이 全部가 한 創造的原理를 完成하기 爲한 目的 있슴을 알 수 있다. 이러키에韓囗에 氣候은 이런 創造主이 目的하는 中心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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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여 있음을 알어야 한다. 여기에 韓囗의 氣候은 世界이 氣候의 中心地로써 앞날 理想世界에 많은 貢獻하여하는바도 生覚되는 事実인바다. 그런고로 至今世界上 무슨 物件이나가 全部은 春夏秋冬과 같은 氣候的恩択를 받고 存在하는 地域에 被造物은 世界에 어데 딴 地域에 存在하는 被造物 보담 貴한 價値를 가지고 있서야 하는 바도 原理로 알러야 한다. 그런고로 韓囗에 生産物은 世界各國 어느 날아에서도 찾어 볼 수 없는 한 中心核으로 되여야 하는바가 原理로 된다. 動植界나 昿物界나 全部價値的最高位로써 낱아나지 않으면 안되는 原因이 있는 바이다. 웨나하면은 氣候的으로 完全的恩択를 받아 存在한은 原因임를 알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 食物中으로 最高位에 味를 가지는 食物도 韓囗에 氣候에 恩択과 風土에 屬한 겄이라는 바도 事実로 된다.

또 昿物로 보와도 第一位를 찾지 할 바도 勿論인 바다. 그리고 特히 앞날 最高文明에 第一功獻할 수 있는 地域도 한囗의 한 昿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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权威를 보여 줄 바이다. 最高熱를 対한은 最高情密器의 製作도 氣候的最高恩択받은 곳에서 産出하는 昿物만 가지고 않되는 貴重한 役活도 할 수 있는 때가 올 겄이다. 그러니 氣候的最高標準를 가진 이런 韓囗은 하날 創造主便으로도 至極히 貴한 날라라는 겄은 勿論이면서 二十世紀 以上文明과 韓囗과는 떠러질 수 없는 天然的恩択을 받은 地域이니 이 地域은 하날적으로 貴하게 찾고저 하는 반면에 惡사탄도 韓囗를 찾저 볼러고 여러 모양으로 対比하며 낱아나는 事実를 알어야 한다. 이런 地域을 가진 韓囗民族은 얻던 民族이나하면 世界上에 없는 最才能的智慧를 自然的으로 갖게되는 바도 事実이다. 그런고로 한囗이란 完全舞台만 잡고 世界舞台에 나서게 될 되에는 全世界 어느民族이 딸을 수 없는 卓越한 存在로 낱아날 바도 天然的 창조 헤탁을 닙은 곳이니 自然原理로 되여야 한다. 그런고로 하날의 뜻으로 보면 韓囗民은 앞으로 知慧의 한 民族으로 世界 얻던 氣候的地帶에서도 살 수 있스면서 世界上에 없는 貴한 한글을 言를 갓고 全体 많은 功獻할 바는 하날의 目的으로 하는 囗기 때문에 라는 겄를 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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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케 氣候은 厂史発展 全部에까지 影響化되여 人類生活과 発達과 文明과 어던方面으로써도 關係를 갓고 있슴를 찾어 볼적에 至今韓囗까지 찾어 나온 人類発展地域과 厂史的立場를 生覚할러고 할 때 氣候와 文明과는 重大關係를 갓고 나오게 되여 있슴을 알 수 잇다. 至今厂史的発展를 잡아 氣候的關係的으로 考察하면은 熱帶地대 文明에서 溫帶地帶 文明으로써 溫帶地帶文明에서 寒帶地帶文明으로써 移展함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天宙主人으로 계시는데 웨 根本原理世界로 出発못하고 至今까지 이와같이 移展하여짐을 잘 알 줄 안다. 즉 非原理存在로 因하여 먼츰 始作를 보앗기에 다시 찾기 爲하여 하나님은役事하면서 最高標準境를 向하여 나오는바는 事実이다. 그런고로 至今世界를 中心하고 善神과 惡神対. 사람中心하고 싸우는 바는 事実이다. 그러면서 하날 勝利로써 厂史를 対하여 最終奌韓囗를 中心삼고 두 対峠陳은 나타나는 바이다. 이 目的은 하나님의 理想인 目標를 完成할러니 이런 摂理路程를 向하여 나온바다. 非原理를 中心하고 出発하는 対峠陳으로 하나님은 厂史를 經過하며 오게 되였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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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蘇生으로 長成으로 完成으로 目的하고 全世界上에서 摂理하게 되였다. 그러니 至今까지에 文明厂史를 살펴보면 사탄은 熱帶圈內에서 出発하게 되는 바이다. 그 理由는 原始生活에 便利하니 사람들은 集中하여 出発을 보는 바이다. 其地帶地를 中心하고 사탄은 사람를 中心하고 厂史를 対하니 하나님도 그곳 対하여서 배았는 工作를 始作하는 바이다. 이러니 氣候的으로 보면은 하나님은 熱帶地域을 中心하고 사탄 対하여 나온 厂史的路程이 過去古代文明時代인바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고 나오게 되니 古代文明은 사탄対像으로써 全部가 敗하게 되는 바이다. 이런 關係로 古代文明은 主로 熱帶地域를 中心한 地帶라는 바도 알어야 한다. 卽古代文明으로 보면은 東洋으로는 印度文明를 中心하고 支邦文明西洋으로는 埃及文明를 中心하고 바벨론文明이 全部은 熱帶圈內에서부터 始作한 文明에 자적을 알 수 있다. 이 時代에 하나님은 文明人를 찾으려하니 完全하날 뜻 成事를 못보아 全滅하고 択한 百姓를 中心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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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地域를 떠나 溫帶地域圈內로 옴겨서 役事를 始作하는 바다. 其原因은 원수 즐기든 곳에서 하나님은 뽑아옴겨 移轉하여서 溫帶地域으로 옴기는 厂史를 본는 바다. 그러나 사탄亦是 溫帶地帶으로써 対立을 잡아 反対厂史하니 其厂史的路程이 至今二十世紀까지 하나님을 順從하고 民族를 中心하고 溫帶地帶內에서 섭리的 原理復帰할러는 厂史的繼承를 維持하여 나오는 바이다. 그러니 至今 그 報應으로 厂史的 모든 時代은 熱帶地域 사람들을 한 奴隸的立場에 處케 되여 나오는바는 昔日사탄 対한 사람이라는 겄이 原因이다. 그리하여 反復되는 厂史로써 二十世紀까지는 溫帶地帶文明으로 나와 熱帶地帶와 合하여서 사탄所有에서 빼앗아서 한 長成을 보왓다. 그것이 卽 英美中心한 유엔衛星國家이다.그러니 其反面 사탄은 自己의 뜻을 延長보려고 하나님 対하여서 끝으로 남은 寒帶地帶를 잡고 反対하니 寒帶地帶이 文明이 한 ( ? 겨진 상증 文明인 ? 杯으로) 世界에 対立를 보는 바다.

그러니 사탄은 熱帶로부터 溫帶로 딸아 나왓스나 뜻 못보니 寒帶로서 其經路을 세워 나왓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完成의 目的를 反対로 成事할러니 사탄은 한 하날 흉내로써 主權를 세웨서 낱아난 것이 共産囗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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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寒帶文明이라는 한 偉勢로 낱아나니 結局 사탄은 末端地帶까지와스니 사탄은 하나님目的 中心地를 알고 最後的 발악하며 結判짓는 地帶를 잡는겄의 卽 氣候的으로보면 中心地帶와 같은 韓囗를 中心하는 바이다. 그러니 熱帶文明으로 溫帶文明으로 寒帶文明으로 한 分岐를 定하고 新文明은 氣候的中心地帶인 韓囗으로써 뜻 目的하고 하나님은 사탄 手中에서 (???)찾어 복귀하기 爲하여 其厂史目的를 推進하여 온 바이다. 그런고로 最後文明은 熱帶地帶文明도 않이고 溫帶文明도 않이고 寒帶文明도 안인 完成文明時代가 卽 全世界 氣候的 中心地帶를 中心한 理想文明이다하는 바로 된다. 卽 하나님의 創造復帰 理想文明時代인 바다. 그러니 世上에 하나님의理想目的 完成할 存在를 보날래니 韓囗사람 中心하고 나타나는 바이다. 그 存在은 卽 全世界으로 발아는 基督敎 리상存在인 再臨예수로 約束된 厂史的所望存在라는 바는 事実이다. 그러니 韓囗予言書中 정감록에 予言한 存在은 이런 目的으로 摂理한 하날에 中心存在로 될 天地창조로부터 하날로 定한 存在라는 바를 알어야 한다. 그리하여 全世界 対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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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心存在로 되는바은 事実이다. 이와같이 氣候에 한 中心地帶은 世界上에 한 貴한 目的位置로써 되여잇는 同時에 天地創造로부터 한 貴重한 位置로 予定되여 있는곳이 한囗임을 알어야 한다. 이 氣候은 太陽를 中心하고 其位置가 第一貴한 位置에 있스니 其氣候은 第一貴한 氣候的表示를 보는 同時에 其地域的 모든 生物이나 無生物이나가 貴한 位置를 찾지하는 바는 創造主이 創造妙味를 発表한 곳임도 事実인 바다. 이러키에 厂史은 氣候를 中心하고 한 完成目的氣候地를 向하여 六千年厂史은 흘러나온 바이다. 그런고로 氣候를 中心한 厂史的方向를 보면은 最後에 完成氣候地에 基着黙(*點).를 잡고 最高文明이 始作를 보아야 하는 바이다. 이런 地域만이 未文明 地域으로 남아 잇스니 반드시 文明은 始作할 바이다. 이러케 厂史은 氣候的으로 보아서도 移動하여 発展하여 오는바를 厂史的考察로도 알고있다. 그러니 最後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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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에 總合的氣候이 中心地帶가 文明할 地帶로 되여야 한다는 겄도 짐작하는 事実이다. 이런 理想的氣候로된 地帶이니 果然創造主이 理想하는 目的地로 되게 할러니 至今까지 韓囗의 地域를 두고 厂史的複雜한 問題은 生起는 原因도 하나님과 사탄対하는 나라로 되여지기에 서로 韓囗 되문에 極東에서는 問題이 心中地로 되여왓다. 그겄이 最終에는 世界問題를 右左하는 位置를 取하여서 한囗을 中心으로 하여 사탄을 敗케하는 最終目的를 完成지을 겄이 하나님 한 뜻으로 되여있다. 12/12

 

413

韓囗은 地理的으로도 世界의 中心地

 

韓囗은 三千里半島로써 極東에 位置하여있다. 보기에 아담하게 亞細亞大陸를 連하여 있지만 그 地域的으로도 特殊한 形態를 造成하고 있는 바이다. 亞細亞大陸를 連하는 무슨 山脈이 支配를 밪지않고 特別히 分立된 構造로써 中心地台로하여 北에는 長白山脈으로 亞細亞大陸를 가로막아 亞細亞大陸과 分界로 하여 東西로 鴨綠江 豆滿江를 두워 갈러놋코 東便은 太白山脈를 中心으로하여 西쪽으로 보기좋은 小山脈들을 中心하여 西部平原地帶인 自然이 沃土로 端裝되여있서 東便서부터 西便으로 흘르는 아름다운 七大江를 널녀노아 모든 風致에 美和를 더욱 높이 端裝하여 있는 바다 이 半島로 니룬 韓囗이야말로 極東에 있서서는 모든 方向으로도 重要位에 處하는 바는 事実이다. 交通的으로 보와도 韓囗은 極東에 한 中心地帶로써 力活하는 바는 事実이다.

 

414장

亞細亞大陸를 通할려고 할적에 韓囗은 한 門戶的立場으로 되여 있기에 中囗이나 日本이나 蘇聯이나 다 韓囗를 中心하고 対하여 通할 수 있는 中心的立場으로 되여 있슴에 自然的韓囗은 政策上으로 보와도 重要的立場으로 其中心力活를 하여야할 立場도 勿論이면서 交通的中心으로 되여 잇는 바도 事実이다. 極東에 있서 이 陸海空路를 通하여 交通에 重要中心을 갖고있는 位置로 나타나 서 있다. 그러기에 極東에 있서서는 韓囗이 中心位에 있기에 極東를 關心갖고 対하는 囗家들은 몬츰 韓囗를 対하여 侵略的態度로 보여짐은 이와갗은 交通的中要位置로 되여있는 同時에 모든 具備的貴한 自然에 恩択받음을 누가 貪내지 않을 수 없스리만치 福된 地域으로 되여 있기에勿論인 바다. 이 땅에 農産物를 보면은 五穀를 中心한 穀物과 其価値은 어느 나라에서

 

415

찾을 수 없는 珍味인 五穀를 볼 수 있는 바이다. 特히 韓囗에 米은 果然他地帶에서 볼 수 없는 貴한 宝物인바다. 其外韓囗産物인 農作物은 天然的氣候이 恩択으로 因하여 果然稱呼가 높은 바는 다들 아는 바다. 其外植物界를 살펴 보면은 植物에도 世界 어든 날아가 갓지 못한 種目의 植物를 갓고 있스며 動物界로 볼적에도 昆蟲界라든가 鳥類界라든가는 世界에 最高位에 価値를 召有하고 있는 바이면서 딴 動物에도 亦是其位置를 価値높이 갓고 있슴은 事実이다. 特히 韓囗에 産出하는 家畜으로서 牛나 豚나 鷄은 世界에서 産出하는 家畜에 比하여 볼 적에 其珍味은 果然第一位를 召有하는 바는 事実이다. 이겄은 모다 氣候로 因안 恩択으로 되여지는 바다. 또 無生物界를 살펴 보면 現代最高文明이 要求하는 貴한 鑛物類를 볼 수 있다. 그러면 其標裝된 埋藏量은 果然世界사람이 부러워 할만한 高貴한 地下資源를 갔고 있는 바이며 其各品質에서는 世界 어느 날아 産品

 

416

에 比할 수 없는 価値를 갓고 있슴을 누구나 感嘆하는 珍貴한 바로 되어 있다. 그겄도 理想的 氣候로 因한 바이다. 이와갗치 陸地에서 産出되는 物件의 귀한 価値은 天然的恩択이라는 바는 勿論이고 其外海産物를 찾어 보면은 三千里半島를 中心하고 西海로는 黃海를 두고 暖流이 魚撈를 보는 同時에 東海에는 寒暖統合하는 地域를 兼有하여 있기에 世界에 三大魚撈場에 하나로써 되는 地域을 対하고 있는 바이니 世界에 없는 魚籍을 찾어볼 수 있는 韓囗이 立場은 가장 貴한 海에 恩択도 밧고 있슴은 果然世界사람이 부러워할 바이다. 其外景致와 風景方面를 살펴 보면은 크게 보면은 韓囗自体은 한 溫順한 사람이 情性을 다하여 하날 対하여 雙手合掌하여 꿀어 앉저 祈禱하는 貌樣이며 東便에는 東海로 西便은 西海로써 싯고 맑켜주는 뜻이 노여 있스며 大陸서부터 三千里半島로 한 地盤를 잡고 있슴이 아 果然世界地圖를 볼적에 第一地形이 貴하게 보이는 겄이 韓囗이라는 겄은 事実이다.

 

417

韓囗半島를 中心하고 日本은 한 城과 갗치 北南으로 갈러 막고써 있스며 亞細亞大陸은 한 일터로써 福를 約束하여주는 듯한 不変에 保護的位置樣으로 半島를 안으러 하고 있다. 黃海와 東海은 湖水와도 갓고 바다와도 갗치 地球에 全景致에 한 標本形狀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갗은 環境속에 깊이 잠긴 三千里을 中心한 香氣인 동산을 발아보게될 대에 自然界에 勇勢로써 보여지는 北에 웃둑속사 직켜주는 樣으로 그 꼭때기에 天池를 가진 世界上稀貴한 高山白頭山이 있슴을 누가 称吟치 않으라 이 白頭山를 中心하고 三千里은 길이 뻗어서 널녀진 곳을 찾어드니 錦繡강山 名城높은 平壤를 中心한 모란봉 果然 새에루살램 名予도 알맛는 하날이 貴한 択한 땅이 光景를 보게 됨이다. 平壤를 中心으로하여 東方쪽에는 景致風景에 王宮인 金剛山이 있은 바이다. 이 金剛山이야 世界에 景致에 한 꽃으로 낱

 

418

아난 바가 金剛山인 바이다. 이 金剛山은 韓囗에 宝貨인 곳으로 앞날 韓囗에 民族과 世界民族에게 많은 安慰이 中心地로 功獻할 名勝地라는 바도 事実이다. 또 平壤中心하고 北쪽에로 찾어오면 妙香山를 비롯한 蝀龍窟이란 地下金剛名声을 가진 名勝地를 보게 될 태에 果然奇妙함을 称訟하는 바는 当然한 일로 나타나는 바이다. 其外에도 八景名勝地인 名望 높피는 風景地果然 우리 三千里半島에 자랑과 宝貨로 단장된 創造的惠択를 깁피 生覺하면서 창조主에 本意的目的를 찾어 세우여야할 責任이 韓囗인 바이다. 이와갗치 韓囗이란 小半島를 中心하고 全世界에 없는 景致와 各樣貴한 地下資源과 産物과 이 貴한 位置와 氣候로도 世界에 없는 三寒四溫으로 四時를 通한 明朗한 氣候, 山水等, 全部은 모다 創造主이 깁은 恩択을 生覚하는 同時에 이 韓囗은 世界에 한 中心으로 本來부터

 

419

創造主은 目的하고 지였다는 겄을 짐작키는 事実이다. 이런 貴한 地理的條件를 갓고있는 바이니 하나님이 世界를 対할 때 사랑할러고 하는 中心目的地라는 겄도 알게된 바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韓囗를 通하여 摂理中心地로 하갓끼에 韓囗이라는 나라는 世界에 中心囗이며 韓囗사람 中心한 王이 나서 世界에 義에 王으로 나타난다고 伝한 韓囗予言書인 정감록에 予言케 한 바도 하날이 摂理할 뜻이 있기에 라는바는 事実이다. 其予言를 完成할 수 있는 其存在은 하날로 定한 王이라는 存在인 万王에 王되는 예수 再臨主存在를 말하는 바와 合하여 西洋에 文明을 中心한 基督敎와 東洋宗敎中에서 始作된 予言的理想과 合한 뜻을 보와서 世界統一理想을 完成한 하날이 摂理하는 目的地이니 本來부터 創造主이 바라는 땅으로 되여서 왓다는 바를 表徵하는 事実인 바다. 그러키에 韓囗은 地理的으로도 最高 価値地라는 바도 이런 하날的立場으로 目的하여 있섰다는 바는 明白하게 알바이다. 그리하여 再臨 예수를 中心하고 韓囗은 뜻에 完成를 보아 果然世界에 한 中心地로

 

420

써 世界上에 貴한 文明에 中軸部를 造成하고저 하는바가 하나님의 目的인바다. 그런고로 韓囗 全部은 後日에 囗際에 理想동산으로 한 遊覽目的地로 하고저 한은 理想境으로 발라고 하날은 處하여 있슴을 알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天地創造理想地은 韓囗을 表準하였끼에 이 韓囗은 世界上에 찾어 볼 수 없는 貴한 創造的中心地帶로 된 바를 알 바이다. 이 目的完成하개 할 使命과 責任은 누게있나 하면 再臨主가 中心이 되여서 韓囗사람이 協力하여 나아가 世界基督敎를 總合싴켜서 世界的中心地帶를 造成하여야 하는바가 全人類이 目的이며 또 하날에 目的이면서 하나님의 目的인 바다. 그러니 하날 뜻 反하는 사탄은 韓囗中心하고 反旗를 取하여 서게되는 바이다. 그러무로 至今韓囗人는 하날 対하여 선者로는 至極한 善位에 屬한者 있는 反面에 사탄屬한 存在은 至極한 惡한 者로 世界에 類를 보지 못함도 其眞狀에 発表하는 바도 原理로 된다. 하날이 至極히 사랑

 

421

하는者 있는 反面 하나님이 미워하는 者가 있는 것은 事実이다. 그러니 韓囗은 하날 中心하고 이런 分立를 보니 家庭에서 이런 원수的 分立을 보는바는 한 眞狀으로 되는 原理인바다. 이런 뜻이니 聖經全部은 韓囗에서 完成하여 끝맛는 바다. 우리 韓囗人은 總動員하여 하날 뜻 成事하여서 天地創造根本復帰目的를 完成하여서 世界에 中心地로써 建設하여야 하지 안겠는가? 그리하여 하날에 合하여 깁분에 復帰에덴 동산를 地上에 建設할 바가 最後的使命인바다. 그러니 至今 韓囗中心하고 사운는 目的은 韓囗独立爲한 目的이다. 韓囗独立目的은 世界統一目的으로써 聯하여 步調을 갖치하는 바가 하나님이 뜻이다. 사탄은 韓囗中心하고 最後発惡를 다하고 있다. 하날 代身한 유엔은 第一次 第二次 第三次로써 뜻을 찾저 平和를 目的하여 나왔서 会談하였지만 結局은 目的未達成으로 帰結하여지는 바가 原理인바다. 아모리 하여서라도 유엔과 韓囗은 合하여서 韓囗独立完成하여야 할 바가 하날이 한 뜻으로 되여있다. 그겄은 하날 中心地니 人類의 中心地며 人類의 基本祖囗으로되니 하나님은 UN을 動員하여 協力하게하는 바다. 그러야 本 뜻을 繼代할 수 있는 바이다.

 

422

유엔이 萬一讓步한대도 사탄便쪽은 結局反対로 対立으로 나타나는 바가 原理인바다. 그러니 韓囗를 中心하고 完全이 사탄追放이 하날이 目的으로 되는바다. 이리하여야만의 모든 하날뜻 成事의 第一步로써 한 所望이 始作을 全世界은 보는 바이다. 그리하여야 韓囗을 中心하고 全世界에 最高信仰者은 動員하여 하나님의 뜻 完成에로 協力하여야 하는바가 今後에 한 目的課業이며 韓囗信仰者은 먼츰 뜻 侍奉에 中心이 되어 世界信仰者들과 合하여 協力에 中心使命를 다하여야 하는 바가 現韓囗基督敎이 한 使命인 바다. 또 其外韓囗宗敎들이 使命인 바다. 또 韓囗사람이 使命인 바이다. 12/14

이겄은 完成함으로 創造的恩択받은 三千里半島동山을 우리가 길이 높이 端裝하여 世界빛내는 바며 創造主 뜻 完結을 보와 基本復帰로 始作를 볼 바이다.  

 

 

 

유효원선생 필사본

[349] 目的이 하나님의 六千年間의 攝理다.

以上과 같은 原理를 보아서 우리 사람은 相対될 수 있는 第一 資格成事가 무엇 보담도 貴한 것이다. 내가 하늘 対하여 第二 存在로써 第二 存在의 한 対像의 要求가 全目的 됨은 事實이다. 그러니 相対할 수 있는 位置를 取하여야 하겠다. 이런 立場을 取하는 것은 사람은 第一 存在의 利用物인가 生覺하여서는 아니된다. 相対의 要求는 第一存在 目的 達成하기 爲함은 勿論이나 나로서는 完成하는 基本 完成이란 目的으로 되여 結局은 나 때문이란 바는 事實이다. 하날이 要求하는 바의 目的은 주기 爲한 目的이고 나는 받기 爲한 目的이 卽 내가 하나님 対한 相対 始作으로 対像 完成을 爲한 바다. 그런故로 하날은 주고져 하나 줄 수 있는 相対 없으니 얼마나 설어우랴

설어움이 生起는 것은 주고 받고 할 存在가 없게 되는 것에서 始作이다.

이런故로 참주고 받고 하는 者에 要求로써 対像이 要求되는 바이다. 내가 줄적에 第二 내에세 준다면 거기에는 벌써 기뿜이다. 그런故로 子女 対한 사랑도 여기서부터고, 男便 対한 사랑도 여기서부터고 社會対(事業対)한 사랑도 여기서부터고 하날 対한 사랑도 여기서부터다.

이와같이 貴한 根本上 自我가 되면 참 받을 수 있는 者이다.

上으로는 참주는 者 갖고 下으로는 참 받을 者를 가졌다. 이 얼마나 幸福이라 아니하겠는가? 참주고 받는 곳을 所有한 者는 언제나 기뿜에 動力이 躍動하는 바이다. 期 表示가 子女 対하여 주고 싶고 夫婦는 서로 사랑하고 받고 하는 根本 原理인 表示이다. 이 모도가 完成은 하날과 合하여야 되는 바이다. 하날은 發電所고 우리는 配電所와 変電所와

 

149 같고 萬物은 授給所와 같은 것이다. 發電所 있는 配電所 變電所도 授給地는 原理다. 이 中間 우리는 配電所, 変電所 없으면 모도가 生命 使命이 中斷인 바다. 이와같이 주고 받은 變電所 配電所의 位置가 卽 우리 人生이매 나다

이런 原因으로 받고 주는데 原理 消耗없는 것을 바란다. 電氣로 말하면 損失 없는 것을 要하는 바와 같다. 損失이 많으면 基本 電氣가 消耗된다. 損失은 期 導線 物質로 因하여 右左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物質의 힘되는 電氣를 잡아먹는 作用이 生起게 하는 敵作用의 始作은 電氣要素를 反하는 作用을 갖고 있는 存在니 그런 損失을 가져오는 것과 同一하게 우리는 電氣와 같은 肉身을 갓고 있는데 期 自体와 良心과 合하여 完全한 나 라면 良 導体作用하는 것과 한가지고 그렇지 못하면 不良 導体와 같은 不作用 損失을 生起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런고로 우리는 完全히 주고 받는 対像을 連續的으로 어떤 方面으로던지 所有한다며는 其는 다시금 主人에게 돌리는데도 損失없는 原理 復歸가 成立하는 바와 한가지다. 이와같이 完全히 받고 完全히 주어 돌릴 수 있다는 것이 第一 要求 目的이다. 同時에 善 繼續이다.

電氣를 잘 돌게 하는 것이 電線類에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잘 成事케 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는 바이다. 그러니 잘 받으려니 잘 接觸하여 完全導体가 되여야 한다. 그런故로 하나님은 한 生命의 中心이며 喜樂의 中心地이다. 生命 中心과 喜樂 中心은 하나님이시다. 하늘 喜樂도 幸福도 모도가 하늘 사랑 받을 때에 始作이니 第一 要求 하날 사랑 받는 것이 目的이다. 하늘사랑 받으면 幸福도 喜樂도 始作이다. 完全 하늘 사랑을 받으려니 完全히 받을 수 있는 資格이 成立이 要求되는데 사랑할려면은 받을 수 있는 美가 있어야만 完全 사랑을 줄 수 있는 바이다.

하늘은 주고져 하니 愛이요 사람은 받으려니 美이다. 이와같은 相対 要求 成事 條件이 始作은 愛이였다면 美 있어야 한다. 愛를 라고 한다면 美는 라는 相対 存在다. 이것을 完全히 주고 받은 곳이 善이다.

∴ 善 = 愛 + 美 + (義) 이다.

그런故로 하나님은 至今까지 찾고져 하는 바는 美에 한 存在다. 예수는 사랑 中心인 同時에 하날 사랑 代身者이다. 예수 보내심은 完全 하날 사랑을 人間들한테 줄 수 있는 基礎 工作 始作케 하기 爲하여서다.

예수 愛 + 我 = 善 되여야 한다.

그런故로 하날 対한 対像格 完成 我가 되여야 한다. 그러니 나는 하날 사랑 対하여서 完全美를 相対하여 始作을 보아 完全히 주고 받는 一로 되는 対像 存在가 善이다.

義라는 것은 무엇인가 相対를 決定하여 対像 始作을 보아서 이루워 나아가는 한 路程的 要素가 義다. 예수는 義人은 없으니 한 사람도 없다 하심은 自己 自身이 義를 세울 수 있는 한 相対者 始作을 보지 못함을 表示한 바이다.

 

150 그런故로 至今 天宙는 善을 完成할려니 사람과 美가 生起여 義한 路程을 지여야만의 하나님과 理想 始作이다. 우리가 하나님 対하여서 美로워야 하겠다. 그러니 먼츰 原理로 돌아서는 것의 基本目的이다. 그런故로 良心 理想存在 位置 위까지가 必要하다. 그러니 良心的이여야 한다. 그것은 몸과 맘이 하나되여야만 한다. 我는 하늘 対하여 아름(美)다워야 한다.

그러면 自然的으로 사랑은 始作한다. 電氣에 한 原理와 같은 것이다. 完全 가 되면 自然的으로 는 生起는 것과 한가짇다

原理的으로 美가 完全히 造成되면 하날 사랑은 나와 하나되는 作用이 始作된다.

이 作用이 始作되면 繼續하는 것이 한 義이다. 이 作用이 繼續되여 完全 合하는 것이 善이다. 作用 繼續하는데는 不作用을 이겨야 한다. 이것이 義의 使命 位置다. 義는 善한 路程을 結実하게 하는 要素다. 例로 表示하면 善할려고 하기 爲하여 사랑으로 美主義로가 經過 合하여 되는 바이다.

하늘 対한 사랑 받으려니 아름(美)다워야 되는 데는 여기에 良心 対하여서 몸을 其 良心에 中心하게 한 維持 繼續하게 하는 것이 卽 義이다. 그러나 하늘은 第一存在, 良心을 第二存在, 몸을 第三存在,로 하며는 義는 第一 存在 사랑에 対하여 第二存在 良心과 合하게 하는 第三存在인 몸이 있는 바이니 이 몸을 良心 要求대로 繼續 維持하여 완전 美를 갖게 되여 完全 사랑을 받아 合하게 하는 其 第三存在를 第一存在까지 合하게 하는 要求가 義다. 이와같이 하날 사랑 받으려면 良心 만으로않되고 몸이 合하여야만이 始作되는 바이다. 이렇게 우리 人間에게는 三位 要素 位를 세워서 一로 되는 原理 創造性이 있다. 義라는 것은 第三 位置를 第一 存在 位置로 屬하게 하는 基本 工作의 實果이라는 바는 事實이다.

義는 몸에서 良心 合하게 하는 要素가 義다. 나를 中心하면은 한 対像을 対하여서 義하면, 其 対像이 나와 같이 설 수 있는 位置를 造成하여야 義다.

事業을 対하여서 亦是 나를 第二存在 位置 두면 第三位置는 事業이니 이 第三 位置와 나와 하나이 位置 繼續 取케 하는 바가 義다. 義없는 곳에는 하날의 美를 造成 못한다. 그러니 하날이 나를 対하여서는 対像 本体의 사랑이고 나는 美的이고 나를 中心하고 対像格者에 対하여 서는 내가 사랑이고 対像 位置가 美이다.

義는 対像 美를 造成케 하는 平衡要素다. 그러니 義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維持하든 生活이 要求되는 重要 生活이다. 義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第三 存在 되는 完成 造成이 成立되여야 되는 한 分立性 対像 造成 目的으로 因하여 必要한 바이다. 人間 社會에서 義가 第一 나와 直接的 關係에 位置에 있는 바이다. 나도 먼츰 마음 中心하고는 몸, 내 自身 中心하고는 대상, 対像 中心하고는 萬物 世界, 이와같이 關係的 因緣을 中媒하여주는 其 自身은 義라는 存在다. 義는 完全 美를 造成하는 한 基本에 向하여 移動하는 長成 要素다. 그런故로 完全 사랑과 完全 美가 造成되면 完全 義는 造成되는 바면서 善은 完成된다.

 

151 例를 들면 열(10) 사랑을 주려고 할 적에 10 美를 보여 주워야 된다. 10사랑 받고 10 美를 돌리는 完全하나 되는 한 回路를 造成하여만의 善인 것이다.

義는 完全 사랑에 対하여 完全 美를 維持하게 하는 過程이 義의 分擔路程

그런故로 美의 位置는 加減的 음직임이 있는 바다. 義와 不義라는 한 境界線上에서 서 있다. 그런故로 対像格 右左 如何로 사랑과 合하여 善成事 右左하는 重要 位置가 美的 位置다. 그러니 義는 한 基本 線 中心体 모양과 같은 것을 나에게서는 作用을 한다. 줄때도 対比되는 美를 보지 못하고 주는 하날 存在는 不義인 行動으로 된다. 그런故로 하늘 사랑받은 者라면 주는 것도 하늘 化하는 基臺 우에서 (基臺線上에서) 하여야 된다. 그런故로 우리 人生 앞에 旧約時代는 行義로 新約 時代는 信義로 成約時代는 侍義로서 한 人類 生活 中心으로 되여있다. 例(各)로 보면은 사랑線과 美線과는 対像되여 한 回路를 造成한다.

義는 한 中心 B 点 이 되여 A.C를 連結한다. 이와같이 ks 線上에 설 때에 善의 成立을 보는 것이다.

한 目的 対像을 取하면 義를 中心하여야 始作된다. 한가지 目的 成事하면 其 目的 終結을 짓는다. 卽 圖面 ABC 線을 中心한 回路는 造成되여 善成事한 다음은 딴 目的物 対할 때는 前番 義를 基臺로 하여 美를 찾게 된다.

그런故로 前番 義와는 繼續해야만의 다른 뜻 成事 美로 이룰 수 있는 連結線을 造成한다. 圖示 ㄱ ㄴ ㄷ 線으로 善回路 完成하고는 ㄱ ㄴ ㄹ 線으로 他에로 始作하여 언제나 永遠 標準 善 完成 目的을 要求하는 回路를 繼續하고져 하는 바가 人生 生涯의 目的이다. 이와같이 하늘 対하여 美로 始作 成事者가 始作하여야 다른 相対를 取하여 사랑格으로 対할 수 있는 바이다. 그것은 하날 사랑과 合하는 美를 찾었든 資格者니 善 所有者라는 立場을 復歸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対像格者를 나로 因하여서 세우면 理想 始作이다. 그곳에서 하날 사랑 代身 사랑으로 夫婦 사랑, 子女사랑을 取할 수 있는 資格者다. 그리여야만 하날 기뻐하고 나 기뻐하고 対像者 기뻐하는 第一 第二 第三 存在 全部가 기뻐할 수 있는 한 目的 回路線上을 完成하게 될 때에 線한 家庭이라 하는 바다.

善한 나 中心한 善한 家庭으로부터 善한 社會 始作이니 여기에는 義에 事業이 要求케 된다. 然故로 我中心하고 其 事業을 한 美로써 오면서 한 対像格的 善을 造成하여야 하는 한 몸 代身的 마음으로 対하여 한 美에 対像格 事業 始作이 造成하여야 만이 義의 事業이다. 그런故로 한 代身나 이라는 事業의 結果를 가져온다. 其 事業은 其 사람이 代身이니 한 連結된 義를 中心한 한 目的上에 서 있으므로 義와 善을 標準하고는 하나라고 表示하여지는 것이므로 事業은 其 本人 代身이라고 하는 바이다.

 

152 그러면은 天宙는 한 몸과 같은 構造로써 되여 있다. 物質 世界도 한 하날의 몸의 表示体니 하나님의 한 솜털과 같은 것이다. 그런故로 사람은 事業을 通하여 生活을 始作하여 사랑 成事 目的과 理想 合하는 其 理想을 세우는 것이 우리 生活上 中心이다. 그러니 義에 事業이 美를 造成하는 것이며 善을 造成하는 中心도 된다. 내가 中心도 되고 事業의 中心도 되고 하날의 中心도 된다.

이것은 한 回路 잡고 되여 있으므로 始作하면 善이나 義로만의 始作하니 其 線上에서 어데나 同性 要素를 감각하니 其 中心도 各位置한테로 表示도 된다.

左圖와 같이 自由 基臺線上을 어데를 脫線하여도 우리 良心的 苛責이 始作된다. 家庭이나 社會나 나 혼자나 全部가 한 回路線上에 있다는 結論的 存在니 한 回路線上에 있다는 結論的 存在니 其 自然法理와 같다. 然故로 理想 家庭을 生覺하기 前에 理想 사랑 받으라

그 다음에는 理想 事業하여라. 그러면 理想 家庭도 必然的으로 維持하는 바이다. 人間世上에는 먼츰은 理想 같은 것이 웨 漸 向 가다가 中斷되는가 하면 基本 原理를 脫線하는 行動으로 因하여 其本 理想 向上 要素가 其 良心 可責으로 因하여 長成하지 못하고 中斷됨으로 서 있는 事實이다.

그런故로 이 根本 原理上에 서면은 始作과 同時에 永遠 標準 理想하고 나아가는 바다. 그런곳은 사랑이면 永遠이고 義면 永遠 標準한 義로서 繼續하고져 함이 根本이다. 그런故로 하늘 뜻 合한 사랑부터 理想 家庭 復歸로 理想 事業 復歸로 第一 段階를 天宙之間 始作 보고저 함이 하나님께서 創造하신 根本 目的이다. 이곳이 自由 理想 世界다.

사람은 하늘 対하여 愛을 対하여 주기를 바라고 萬物은 사람 対하여 愛으로 対하여 주기를 바라서 사람을 中心하여 온 天宙 和動하는 作用 始作이 理想論이 結実 目的地이다. 그리하여 온 天宙는 하나의 뜻으로 사作하여 나종으로 또 始作으로 하여 알패와 오메가的 原理 成立을 보는 同時에 萬世前 理想 實現인 바이다. 하나님은 이 目的을 人間들 向하여 바라는 바를 알고 成事하여야한다. 이 크나큰 理想의 根을 사람 対하여 賦與하였고, 땅에서부터 하날로 延長으로 永遠 生活 始作하는 者가 되여지는 幸福의 創造攝理를 누가 感謝치 않으랴

이와같은 生活하는 者라면 하날은 나를 中心하고 表示하면 모든 것을 指導하는 한 目的이 始作한다. 그런故로 이 原理上 理想으로 하날의 中心存在인 한 存在 再臨主 中心하고 始作을 보는 바는 事實이다. 그런故로 再臨主와 合하여 뜻 成事하는 世界 子女가 되여지는 것이 하날에 한 所望인 바이다.

 

153 24 再臨主는 理想論 完成의 基本存在

人間이 바라든 再臨主라는 한 存在는 天地創造로부터 하나님도 또한 바라든 단 한 存在라는 것도 事實이다. 하나님은 이 한 存在가 다시금 地上에서 찾어지여야만이 創造的 本 뜻 成事의 第一步를 볼 바이므로 이 한 存在가 全 中心的 目標로 되여 왔다. 그는 同時에 天宙에 한 中心이겠으니 이 自体를 다시금 찾고져 하심의 墮落된 世界上 全部를 사랑하는 理由로 되여왔다. 再臨主는 無 墮落時의 한 存在야 되는 바는 事實이다. 이 存在로 因하여 하나님의 사랑은 全部가 完成을 始作하는 同時에 地上에 対하여서는 하나님의 사랑하되 再臨主를 中心하고야만의 사랑할 수 있는 世界를 展開하게 된다. 그는 卽 再臨主는 世上 사랑하든 中心 目的인 存在며 基本 存在이므로 이 存在가 하나님의 地上 사랑하든 한 總結実存在니 其 存在가 오면은 하나님의 全 사랑은 天宙인데 무엇보담 再臨主임으로 이곳으로 始作하여 根本 創造的 사랑을 始作하게 되는 바이다. 卽 其 存在가 出現하면 하나님의 世界 사랑하는 全部를 合하여서 再臨主와 하나되게 하는 것과 한가지다. 그러니 再臨主 떠난 곳에는 하날사랑이 없음은 事實이다. 하나님의 사랑 떠난 곳이 苦痛의 곳이라는 것은 事實이다.

그런故로 하나님의 사랑 圈內인 地上이 되면은 그곳은 再臨主를 中心하고 되는 곳이니 하나님의 사랑하는 곳이다. 卽 하나님의 사랑받은 곳은 生命은 勿論이면서 幸福과 喜樂과 滿足이 始作되는 世界라는 것은 事實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完成的 原理本体이무로 其 世界는 原理 復歸 世界이니 地上天囗의 한 基本을 始作 世界이다. 再臨界까지는 사랑하여 온 바는 全部를 蘇生 식여서 再臨主에게 合하게 하는 本意이었다. 그러니 再臨主 現顯하면은 천주는 하나님의 바라든 사랑 中心体인 再臨主와 合하여야 할 터인데 合하지 못하면은 그는 한 審判하여 오든 対象의 한 貌樣으로 되니 그곳 向하여서는 斷乎한 無慈悲한 審判樣으로 対할 時期라는 바는 事實이다. 그런故로 예수로 因하여 사랑을 주워서 無條件 사랑을 주워슴은 再臨主로 因하여 全部 合한 天宙 사랑 復歸코저함에서다. 그런故로 주었으니 其 價値 추궁과 거두우기 爲한 存在가 再臨主다

再臨主는 사랑을 거두우실 存在다. 再臨主 오신 後 부터는 하나님의 사랑 받으려는 者는 再臨主 품에 와야만이 다시금 創造 根本性인 사랑 理想 資格을 받을 수 있는 바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만치 再臨主를 通하여 돌려 들여야 할 責任이 있으므로 再臨主를 사랑하여 한 回路를 成立식히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 끝날에 處한 사람들의 義務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 사랑은 報酬的 사랑이라고 하여서는 아니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完成的 사랑이다. 卽 나를 中心하고 받고 주어야 創造原理를 完成하는 바이므로 再臨主를 通하여 사랑을 돌리지 않으면 아니되는 바이다.

 

154 再臨主를 다시금 사랑하면은 根本的 創造理想 全部가 始作을 보아서 自己로 因하여 完成을 지여 根本 理想 生活을 保障하는 터가 되는 原理를 세우려고 하니, 再臨主 外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없는 時期다. 그런故로 사랑을 예수로 因하여, 온 天宙에 뿌렷서 天宙를 蘇生케 하여서 再臨主로 因하여서 거두우심이 目的이니 이 目的外에 處하는 者는 하나님의 미움의 者라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바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至今까지 貴한 사랑을 주워 온 바는 더 높은 사랑 目標하엿기 때문에라는 것은 事實이다.

하나님이 사랑한 바는 예수로 因하여 사랑 繁殖코져함이 目的이었다.

예수 하나로 因하여 많은 사랑의 完成하여서 創造 根本 사랑을 全 世界的으로 完成하고져 하여서 예수로 因하여서 사랑을 始作하였다. 始作하여스니 그 結末은 있지 않겠는가

이 사랑을 거두는 때가 卽 再臨主 時代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目的 없이는 사랑치 않는다

其 限界는 再臨主를 中心点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은 사랑하여스니 사랑 받으여야 할 時代가 卽 再臨時代부터 始作한다.

그러면 根本 原理 復歸가 始作된다. 卽 하나님 사랑은 다시금 사람으로 通하여서 再臨主에로 回路를 지여 한 一体的 사랑 理想을 完成한다. 卽 創造 理想的 한, 주고받고 하는 回路를 造成하여 根本원리 復歸世界로 展開를 보는 바이다. 다시말하면 再創造理想이 始作되는 바이다. 하나님은 至今까지 사람을 歷史를 두고 사랑하여 왓지만 再臨主 以後는 하나님의 사랑치 않는 者를 爲하여 사랑하며는 사탄 짝하는 두려운 한 行動으로 出現을 보는 바이다. 그런故로 사랑 주기 爲한 예수 以後에는 사랑하여 敵을 사랑으로 対하여 왔든 바는 敵에 屬한 사람을 対하여 사랑 주워 사랑의 蘇生을 보아 繁殖케 할려니 敵을 対하여 사랑하라고 하여스니 이것이 예수에 根本 目的이었다. 예수는 왠빰을 치며는 右뺌까지 돌리라는 根本 目的이였었든 바이다. 그것은 사탄보다 더 높은 사랑을 주어 사탄 대한 사랑 받는 者 없게 하기 爲하여서고 또 사람은 사랑을 根本 生命으로 하고 있기에 사탄의 사랑 以上의 사랑을 주어 蘇生시켜 全人類를 빼앗아 넘길려니 또 惡 繁殖을 防止하여 速히 結実케 하려니 이런 사랑을 取하였든 바이다. 그러나 再臨主 옴으로 사탄이는 敗하고 사람은 再臨主를 中心하고서 사탄 사랑 者를 없게 하려고 하여서지만, 卽 사람의 根本은 사랑을 生命으로 하고 있기에 사탄 보담 더 사랑하여 全人類를 빼앗아 넘길려니 이런 사랑을 取한 것이다. 그러나 사탄이 敗하고 再臨主 올 때는 根本原理 完成하여야 되겠으니 사람은 하나님에 対하여서 받은 사랑에 代身 사랑을 주워야만이 하날과 나와는 創造理想을 完成하는 한 善을 造成하여지는 根이 됨으로 하나님에 対하여 사랑하여 돌리는 回路를 造成하여 永遠性을 維持하여야만의 墮落前 世界를 造成하는 바이다.

 

155 하나님은 再臨主를 中心하고 하날 사랑을 주는 길을 돌려찾는 길을 잡고져 하는 바는 善하게 하기 爲한 것이 根本이니 그래야 全部가 살 수 있겠으니 이런 目的으로 되는 것이기에 理想論을 完成하게 하는 바이다. 再臨主 오면 其 곳 信奉者 昔日에 사랑 줄 時代와 反対 向으로 우리는 態勢를 取하지 않으면 아니될 時代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 줄 때는 부리뜬 때요

再臨主 出現 後에는 사랑의 결실을 거두는 때니 再臨主 품外에 있는 者는 사랑하면은, 거두는 때에 뿌리는 때와 한가지니 하날의 사랑이 無效됨을 定하는 時代가 된다. 다시말하면 하날 存在들이 하늘 存在 아닌 者한테 왼뺌 맞으면 사랑으로 対하지 않고 오른 뺌까지 쳐서라도 하늘의 義를 세우지 않으면 아니될 時代다. 다시 말하면 아벨的 하늘 存在가 가인的 하늘 存在 아닌者 対하여 하나님이 取할 수 있는 順從者로 하여 根本 復歸케 해 세우여야 하는 時代다.

그러나 再臨主 품에 있는 者끼리는 예수 敎訓대루 준수하여야 한다. 뜻 밖에서 함부로 칠 수 없다. 치면 아부지 어머니 代身 몸인 故로 치지 못하고 復活을 證據하여야 한다.

그런故로 時代的으로 自然히 이러한 傾向으로 歷史는 흐르고 있는 바는 이 根本 뜻이 完成하려는 時期가 가까워 오는 것을 보여주는 바이다. 그러나 再臨主를 侍奉하는 者들에게 있어서는 各自々々 하나님 하날의 아버지 어머니 分体로써 完成하여야 할 存在들이므로 함부로 손을 들어 칠 수 없는 바이다. 뜻 안에 있는 者를 치면 하날의 아버지, 어머니의 몸을 犯하는 結果를 招來하는 바이므로 예수가 侍하든 사랑을 갖고 対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萬一 뜻에 反하는 者 있어 뜻을 세우려하기 爲하여 忠告를 받게 될 때에는 順應하여 뜻을 세우여야 할 義務가 있는 同時에 自身으로 하여금 代身 감사의 표시로써 뜻 繁殖에 努力하지 않으면 아니될 責任이 있는 바이다. 至今까지 歷史를 두고 惡 支配下에 屬하여 있든 聖徒들은 가진 수모와 壓制와 업수히 역임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뜻 蘇生시켜 長成식히기 爲하여 사랑 중심으로 讓步하여 왓든 바이다. 再臨主 以後에는 善 支配를 세우는 同時에 사랑을 찾어 건설하기 爲한 歷史的 收穫時代다. 再臨主 모시는 者들은 收穫과 同時에 建設을 推進식여 나가여야 될 義務를 各自가 갓고 있으므로 再臨主의 뜻을 中心하고야만이 相対를 対해서 사랑을 주며 또 받으여야 하는 바이다. 第三者를 対하여서도 함부로 줄 수 없고 함부로 받을 수도 없다. 오직 뜻의 保障을 中心하고야 주고 받고 할 수 있는 事實이다. 이것은 善을 成事하려니 이런 創造原理를 要求케 되는 바이다. 이리하여야 하날의 善의 곳이니 하나님이 기뻐하든 바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날은 侵犯하는 行動으로 되는 바이다. 그러니 우리는 確固한 立場을 定 하고 惡 対하여서 無慈悲한 分別時代가 再臨主 中心하고 始作하는 世界로 된다. 各自는 사랑 돌리는 價値대로 卽 美로 낱아나는 價値대로 報酬時代時代가 理想時代다.

그러니 良心的을 中心하고 나아가여야 한다. 그리하여서 自我 善 完成하여서 相対를 잡아 対像 善으로 始作하여야 하날 善에 合하여야만의 비로소 創造原理로 成事한 善으로 始作하는 同時에 하늘과 合한 理想 善으로 되는 바이다.

 

156 이와같이 理想 善 完成한 後에는 事業으로 社會와 連結지어서 온 天宙에 善과 合하는 基本 原理上点이 始作하게 될 때 天宙 기뿜이 나로 因하여 始作하게 되니 創造로부터 賦與받은 原理的 重大課業은 完成을 보게 되는 바이다. 完全히 주고 받고 할려니 우리는 再臨主를 中心하고 하날 対한 사랑으로 하늘 父母를 모시여야 된다. 이것이 創造 理想 善 完成의 根本 뿌리다. 이 하늘 父母와 하나되여야 創造 理想 善 始作한다. 그러니 하나님과 合할려니 하날 父母 품으로 合意 보아야 한다. 그러면 創造原理 完成이니 理想 善이다. 또 其 外에도 우리 사람은 肉身이 있나니 하날 父母를 第一로 하는 影像인 肉身 父母가 있는 바이다. 이 肉身父母가 하날 父母를 모시는 뜻에서는 完全히 侍奉하는 父母면은 其 父母로 因하여 肉身받은 子息은 한 몸과 같이 되여야 할 바가 根本 創造 原理上点이다. 그러니 하늘 父母를 侍奉하는 代身 尊奉하여야 하는 創造的 原理가 있으므로 孝道치 않으면 아니될 原理를 갖고 있는 것이며, 孝道라는 儒敎의 起源이 있는 바이다. 또 나라的으로 対할 적에는 再臨主는 王으로 侍奉하여야 하는 바가 創造的 原理 上点이므로 孔子를 通하여 三綱이란 原理를 세워서 歷史를 始作하게 한 바이다. 其 目的은 至今 創造 原理点 完成点을 돕기 爲하여서 歷史上에 남어지게 한 바이였다.

그런故로 우리는 하날 사랑을 繼代받아 繁殖하여야 되겠는데 하늘 父母의 뜻에 하나되기 爲하여 努力할 것이면서 世上 父母 爲하여 뜻 함게 努力할 것이며 그 다음은 내 対像存在로 한나 되여서 全体가 完成하여야 할 바가 人生의 第一 責任인 바이다. 卽 하날에 父母 + 肉身 父母 + 夫婦가 合하여서 하나되여 分立보지 않은 곳이 하나님의 創造性 相対로 対像 理想形을 展開케 한바가 根本 創造原理이였다. 이것이 하나인 하날 뜻 成事한 者라면 再臨主를 侍奉하는데 完全 資格인 第一 責任은 完成한다.

그러니 孝子 忠臣이 되여서 侍奉하니 自己를 中心하고 完全 中繼的 立場을 取할 수 있는 바이다. 特히 世上에 父母된 立場은 어떤 立場인가

理想論으로 보아서 삺여볼적에 卽 나를 例로 잡는다면 나는 肉身的 位置고 父母는 마움(心)的 位置이므로 하날 対해서는 完全한 影像으로 되여 子息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相対 位置를 갖고 있는 바이다. 그러기에 父母는 子息 対하여서 마음이 몸을 支配하듯이 父母는 子息에게 하날의 한 貌樣의 本이 되여 나타나서 뜻 成事의 努力하여야 하는 責任的 義務가 있는 바이다. 그렇지 못하면은 하늘 뜻 成事하기 爲하여서는 몸이 마음을 支配하여서라도 完全을 이루워야 할 責任이 있으니 卽 子息이 父母에 対하여서 뜻을 잘못 行함이 있다 하며는 是正할 責任이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再臨主를 모시는 者는 나를 中心하고 몬츰 家庭 完成하여 理想論 三位格 影像을 完全히 完成하는 것이 第一 責任인 바이다. 그리하여 第二 責任 部分인 事業과 社會를 뜻 合意者로서 対할 수 있는 資格이 成立하는 바이다.

 

157 第一 責任 部分을 完成한 者이라면 第二 責任 対像인 事業으로 社會를 対하여 나가는데 資格이 있는 同時에 뜻 未推進者 対하여서 무엇이나 忠告할 수 있는 바이며 支持할 수 있는 資格者가 되는 바이다. 그러니 이곳에 昨今 問題보담 뜻 中心하고 完成者는 指導할 資格이 어느곳이라도 있는 바다. 이것이 原理的 責任이면서 善 繁殖에 中心이 되는 바이다. 그러니 再臨主를 侍奉하는 世界는 이 理想을 標準하는 世界니 家庭에서나 社會에서나 國家에서나 世界 어데서나 原理 아닌 곳은 責亡하여 正義로 培養할 使命的 連結이 각자에게 負擔되어 있는 바이다. 萬一 不義를 其樣두면 기 存在 亦是 뜻 未成事에 한 相対 決定者 立場이 되니 不義라는 墮落 相対 根本을 보는 바이다. 그러니 누구나가 하날 뜻 成事를 標準하고 地上에서 不義 対한 防衛態勢를 取하는 것이 再臨主 以後에 우리 人生 生涯에 마껴진 使命이다. 이 完成된 時代에 屬하게 되면 하늘 子女의 始作은 勿論이니 其 夫婦는 永遠한 夫婦로서 始作하는 同時에 하날 간 灵人들이 땅에서 完成하여야 할 未完成 部分까지 充當하여 채우는 役割을 하여야 한다. 卽 各自는 地上 自我 完成인 同時에 하날에 한 食口면 食口 家庭이면 家庭은 補充하여 完成하는 立場에 서 있으니 어찌 重大한 責任이 아니겠는가? 地上에 있는 나 自体로 因하여 地上 完成이면서 代身 天囗 完成이라는 뜻 完成하여 根本 解放 始作을 보는 바이다. 그러니 天國 灵人들(食口)은 우리 地上인과 合하여야 自己들이 地上에서 完成하여야할 未完成 部分을 完成하겠으니 이 時代(再臨時代)를 하날 灵人까지 苦待한 바이다. 이리하여 自由 家庭 始作(再臨時代)과 同時에 天國 完成에 第一步를 始作케 함이 再臨主로 因함이니 天宙는 그를 誠心다하여 侍奉하는 바이다. 하날은 나에게는 理想論으로는 第一 対像 本体요 夫婦들은 各自에게는 第二 対像 存在들이다. 그러니 創造 原理上을 合하여 完成할 義務가 있는 바이다. 男便되는 者여 其 義務는 하늘 対하여 사랑 받으려니 아름다움의 自体로써 서야할 것이다. 그리하여 愛를 받고 美를 돌려서 善을 完成하면 하날 代身 사랑을 가진 하날 代身 아부지格으로 第二 対像者 妻를 對하여 사랑으로 나타나라

그리하여야만 原理人 男子인 主管者格者다. 그런 男便을 対하는 婦人은 美로 나타나서 하날 어머니 代身 分體로서 第二 善을 사랑 一体로 因하여 完成하여서 基本 善의 한 回路를 찾어서야만 理想 善을 完成하는 바이다.

그러니 하날 夫婦는 하날 아버지 어머니의 代身 格者들이므로 至極히 貴한 対像位에 서 있기에 各自는 하늘 父母 代身 서로 尊奉해야 된다. 이리하여 繁殖된 子女들은 하나님의 子女이라는 榮光을 보는 바이다. 이 子女는 하날 아바지 어머니의 한 本体의 表示存在들이다. 卽 아버지 어머니의 한 表示로서 사랑하여야한다는 증거로 된 者가 子女이다. 그러니 其 自体는 歸한 自体이다. 父母는 이 貴한 子女에게 対하여서 사랑하니 만침 하날 아버지 어머님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한 表示的 存在가 卽 子女이란 存在이다.

 

158 그러니 하늘사랑의 本 路程에 眞味를 알어주는 바가 父母의 子女 対한 사랑이다. 父母는 子息에게 마음이 있는 바와 같이 하늘 父母에게도 이와같이 마음이 있으여야 된다는 것을 体得케 하는 증거인 것이다. 子女 生覺하듯이 하날 対하여서 生覺하는 者라면 그는 모든 것을 完成할 本되는 者라는 것을 보여주신 바이다. 그러니 우리 人生은 먼츰 하날 사랑이 第一 位로써 세우여야 夫婦 対한 사랑이 第二 位로써 成立을 보며 子女 対한 사랑이 弟三位로써 나타나 分立된 듯 하나, 하나의 사랑으로서 歸結되여야 함의 하날 사랑인 同時에 理想이 始作되는 바이다. 이런 創造理想를 中心하고 되엿기에 墮落되었으나 人間 世上에 나타난 家庭 組織 根本 原理로 되여있다. 父母는 子女를 사랑할 줄 알고 子女는 父母의 사랑에 対하여 감謝함의 마음으로 아름답게 나타나게 될 때 父母 父母기뻐하고, 子女들은 滿足하여 原理的 善을 造成하게 되는 바이다. 이런 原理를 가졋기에 子女된 者로서는 孝道하여야만이 原理人 子女로서 설 수 있기에 人間 世上에서 墮落되였을망정 父母에 孝道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되여있다. 子女가 完全히 父母의 사랑에 対像으로서면 創造原理로 完成하는 것이므로 하날 사랑에 対하여 하나될 수 있는 理想 善을 찾어 세우게 되는 바이다. 그러니 사람들을 中心하고 繁殖을 完成하는 立場에 서 있으니 얼마나 貴한 存在들이면서 하날의 理想 實現은 完成할 수 있는 立場의 사람들이 아니랴.

그런故로 完成된 사람들은 再臨主를 찾어 根本 原理 復歸하여야겠으니 먼츰 어머니를 찾어 父母를 始作하여서 子女 찾어 家庭建設의 始作을 보아야 하며, 社會찾어 國家로 國家찾어 世界로 世界 찾어 온 宇宙를 찾어 原理를 세우야 하는 바이다. 根本 目的이다. 그러니 末世에 處하여 있는 信徒는 먼츰 하날 父母를 찾어야 할 바다. 其 父母는 누구냐하면 再臨主로 因한 根本 父母며 墮落前 復歸 父母로써 사탄 対하여 支配할 수 있는 創造 根本 父母로서 子女를 찾어 墮落的 本 系代를 成立하는 바이다. 그런데 至今 하날 자녀될 信徒는 누구나가 其 本体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特別한 敎示로 因한 存在들이 먼츰 合하여서 侍奉하여서 出發할 바다. 灵이 完全 長成한 生命級者라면 알 수 있는 바이다. 이 再臨主를 찾는 것이 現実 信徒들이 큰 義務이다. 찾아드는 世界 信徒들을 合하여서 理想的 家庭 始作으로 이 世上은 볼 바이다. 이리하야 家庭 中心한 社會로 家庭 中心한 國家로 家庭 中心한 世界로 大家庭 天宙를 完全 成事하게 할 義務가 再臨主를 모시는 者들의 生活課業이면서 生涯의 目的이다. 時代는 惡 対하여서 無慈悲한 時代면서 義와 善 対하여서는 榮光이 되는 時代며 良心的인 人士들의 解放을 받아 原理를 세우면서 出世하여야 할 時代다

이리하여 하늘의 한 貌形은 完成하여서 六千年 六千年 歷史를 終結지여

 

[371] 安息 年代를 보고져 하는 바이면서 永遠性의 始作을 보고져 함이 再臨主를 中心하고 完成하여야 할 바가 하나님의 根本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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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연대를 보고저 하는 바이면서 永遠生의 始作를 보고저 함이 再臨主를 中心하고 完成하여야 할 바가 하나님 선 根本 뜻이다.

 

四十日 復帰코저한 摂理路程의 根本意義

 

人間世界에 해와로 因하여 墮落이 始作하여지니 其 時부터 人間世界은 非原理存在에 屬하여 나와오는 反面에 하나님은 原理的復帰로서 態勢를 取하여지개 되였다. 하나님을 中心하고 原理的으로 直系의 血代은 至今까지 摂理에 한 所望으로 남게되고 其直系的血系은 非原的으로 始作한바는 事実이다. 이런 根本 뜻를 다시금 찾저 根本血系를 始作하는 겄이 하나님의 創造本意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墮落된 人間일망정 抛棄하지 못하고 原理的復帰原則를 바라보면서 至今까지 繼續되는 厂史를 본 바를 論한바다. 하나님의 아담 해와의 子中 가인과 아벨에 対한 祭物받는 根本 뜻도 알 줄안다. 가인은 사탄 初血의 表示者요 아벨은 아담의니 종的으로 해와 対한 表示的 者이매 根本 하나님의 찾을 수 있는 者임으로 하나님은 다시금 찾고저 할 적에 첮 生産者보담 다음者 아벨을 사랑的으로 対한 原因은 알 바이다. 聖經에도 하나님의 아벨 祭物받게되는 理由는 未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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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아나서 있다. 그겄은 其時代的으로 몬츰 알 수 업는 原理復帰코저하는 厂史的 뜻에 成事를 볼 바가 되지 못함으로 至今까지 未知로 되였다. 아담 해와 中心하고 찾고저 하나님은 하지 못한바도 非原理存在가 먼츰 한 主人格相対으로 세었끼에 한主人相対로 原理로된 創造的原理가 있끼에 아담 해와로 因한 復帰못하고 가인과 아벨로세 二性分立를 보와 順從과 不順從를 作定케 하는 表定物이 卽 아담 두 아달 祭物인바다. 웨 가인祭物 안받은 바는 사탄的 生産血系에 結実存在였슴으로 가인祭物 보담 아벨祭物를 받음이였다. 아벨이 더 誠心 다 하였다는 바는 聖經에도 업는 바이다. 이 根本的原理가 이런 原理로 되었있는 原理라는 바를 알게 될 대에 根本墮落에 根本에 対하여 내 発表가 正論임을 알바다. 가인도 아벨 対한 反擊이 업서스면은 다시금 깁분復帰로 될 바이였스나 하날이 뜻 아지 못하고 하날 対하는 反擊이 始作이 있스니 하날 뜻 破壞를 始作하게하는 基源奌을 始作한바이다. 萬一 가인도 아벨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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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어 들었스면은 하나님은 사탄에 所有物이란 分立를 防止하여슬 겄이였다. 그런 立場에 서 있는 가인 한 自体의 行動이야 人間에 第一 슬품에 始作이 基奌를 짓게 되였다. 그로 因하여 아벨 죽이니 하나님은 아벨代身 셌을 주웨서 摂理를 다시금 세우고저 하였다. 셌를 주워서 厂史를 經過하는 途中에 셌 子孫亦是 하나님에 뜻를 알지 못하고 가인子孫이 조와하는 사탄便 짝으로 가니 全人類은 사탄所有란 非原理世界를 造成한 셈이다. 그러니 이를 淸算하고 뜻에 사람 択함이 노아이였다. 노아는 其時代的으로 하나님의 所望이 存在면서 其時代世界人類보담 貴한 所望存在였다. 노아를 中心하고 하나님은 뜻에 人間을 造成하고저하니 全世界에 全部겄을 分立하는 하날便쪽으로 分別식키고저 하는 겄이 目的이니 사탄 所有物不順者 合하여 全滅케 하는 바이였다. 그 目的은 不順者所有物을 世界上에서 없시하게 하고저 함에서였다. 그리하여 非原理主人格사탄을 根本的으로 追放하고저 함에서 始作이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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根本的으로 하나님은 自己의 所有物만를 世界上에 始作하고저 함에서 対擊取함이 노아 審判이다. 이 審判은 무슨 意味나 하면은 創造하였는 根本原理的立場를 復帰하고저 함에서 始作이라는 바는 事実이다. 모츰 사탄侵入받은 아담 해와로 因한 萬物은 사탄血로 因하여 하나님과 떠난 겄이무로 전부를 淸算한바이다. 노아를 択하심은 전부를 다시금 찾저 세우는 貌樣으로 노아의 方舟에 모든 生物를 노아에게 준 바이다. 이겄은 第二創造理想始作이 目的이였다. 이 노아가 하나님의 뜻 成事하여야 할 義務的立場이란 바는 말할바 업는 바이였다. 이런 노아은 人間第二祖上으로 繼代를 잡고저 하는 基盤工作은 엊지되였나하면 함이 行動으로 사탄이 하나님의 앞에 自己의 血繼的証據格으로 서니 하나님앞에 自己의 血族이 있슴을 세워서 다시금 侵入하여서 取케 되니 함이 가나안이 父로 되는 바이다. 그겄은 아바지裸体로 因한 行動으로 始作함이다. 이겄이 至今본다면 좋은 行動같은데 웨 하나님의 第一 미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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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動이 되며 하나님과 怨讐된다는 行動인가은 두말할바 없시 해와이 墮落根本을 表証한 事実인 根本과 合하는 血緣的關係로 表示하였끼에 사탄侵入은 또다시 가나안 父格으로 함을 通하여 始作본바가 根本이였다. 그러케 되니 하나님의 大審判한 目的은 第二次的으로도 根本始作를 보와 出発하지 못하고 하나님앞에 있서서 찾고저 하는 全目的를 일어버린 反対目的이 結果한 셈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審判은 하였스나 審判하기 前과 같은 始作奌을 본 겄으로 되니 하나님은 根本目的과 要求를 다시금 찾저야 하게 되였다. 卽 審判할적에 하나님은 四十日晝夜를 두고 審判하였다. 이 四十日은 하나님의 뜻 成事이 始作잡는 基本를 作定하는 期間임은 事実이다. 이 四十日에 対한 目的은 사탄全部를 追放이 目的이였다. 이 사탄 追放目的은 함으로 因하여 또 다시금 侵入基台를 잡고 하나님의 根本 뜻를 未成事로 始作를 본 셈이다. 하나님의 四十日審判은 無效果로 된바로 되엇 지었다. 四十日를 뜻맛게 찾으면은 根本目的成事를 볼 바였는데 四十日를 未成事한 양으로 나아가니 四十日의 目的은 全部가 일어버린 目的으로 始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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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본 바이다. 하나님끠 있서서 四十日을 일어버린겄과 같은겄이 되여스니 다시금 뜻 세우는 길에는 四十日이란 根本目的成事가 最高目的이면서 이겄찾저 세우여야만 뜻 成事란 目的完成이니 이 四十日를 中心하고 사탄分立를 作定키 爲한 바이다. 이 四十日를 사탄侵入보니 일러버린 바와 갗치 되였스니 하나님은 이 四十日이 사탄 対하여 찾어 세우여야 하는 한 分岐奌으로 남어지게 되였다. 그런고로 四十日를 中心하고 摂理의 始作은 언제나 問題로 나타나고 있다. 노아이 四十日期間이 卽 審判에 全目的이니 이 四十日 끝낫슬때에 行事은 하나님의 創造하든 完成를 表準한 時와 한가지로 出発코저 하시였다. 노아는 四十日지난 後에는 鴉를 내보냄이였다. 이겄은 創造받은 世界에 사탄이 먼츰 始作하였든 바를 다시금 찾어 成事할 表示이 상증이였다. 卽 鴉을 내보내스나 돌아둘우오지 안였다. 창세記 8/7에 보면은 鴉은 地上에 水이 마르기까지 往來하는지라 하시였다. 먼츰 내보낸 鴉은 웨 노아한테 들어오지 못하고 이 모양으로 行하는가 하면은 먼츰 사탄이 至今 이와갗치 되여서 行한다 하는 表示로써 鴉를 내어 보내심이였다. 사탄은 水로 審判받은 水上를 단니면서 쉬일곳 찾고 있다는 한 表示로 됨이 鴉이 내보내심이 한 像徵이였다. 다음은 비둘기를 내보냈뜨니 鴿은 地面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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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로 因하여 발부치 못하고 다시금 노아方舟로 돌아오니 노아가 手를 내밀어 受入고(창8/8~12참조) 七日를 待러서 鴿을 내노이니 夕時에 鴿가 橄欖木葉를 口에 물고 들러오난지라. 其後 또 七日를 지내서 鴿를 노아주니 다시금 도라오지 안앗다. 이런 鴿로 因하여 三次나 보내서야만이 비로서 完全이 地上를 찾어서 繁殖할 수 있는 船없시 直接살 수 있다는 한 表示로 되여있다. 이 表示은 무었이나하면 墮落時부터 眞理全部에 対한 復帰에 한 表示로 되여있다. 첫 번 鴿은 第一次 아담이 始作를 볼러고 하였스나 비달기 水로 因하여 도라온겄과 갗치 그 灵이 하나님 앞에 돌아온 바와 한가지고 卽 노아가 手를 내밀어 비달기를 받아들이심과 갗치 아담灵를 받아들이심이였다. 鳩를 方舟로 받아들인겄과 갗이 그 方舟은 한날 全部에 表示였다. 卽 三層天表示로된 바이였다. 方舟도 上, 中, 下로 된바도 하날 三層天表示로써 基因한바다. 다음 鳩은 二次아담 예수를 表示함인데 예수는 아담灵이 보내슴을 받아 땅을 찾저 繁殖生이 地를 찾고저 하였스나 감남나무葉만 물고 왓다하는 바는 예수와서 뜻 成事할러고 하였스나 땅이 아직 받을 수 있은 땅이 못되무로 찾으수 있는 約束를 세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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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台成事한 表示로 된바며 三次鴿는 完全이 뜻 成事始作를 完成하신다는 한 表示的內容를 보여주심이다. 그런고로 眞理復帰에는 蘇生부터 長生으로 完成으로 한 目的達成한다는 萬宇宙創造原理를 表準하였끼에 이렀게 表示된바이다. 하나님의 七日간격둔 바는 첫 번도 完成할러고 한겄이 延長되니 卽 七日理想延長되니 이런 間隔두워 役事하심이다. 第一次도 한 期間를 두고 한다는 겄이고 다음봄도 未成事면 한 期間를 두고 한다는 겄이다. 이럿틋시 하나님의 뜻은 第一次 鴿的으로 成事코저 하였스나 땅은 死亡圈에 잠기엿끠에 돌아왔고 第二次成事할러고 하였스나 땅이 받지 못하서 돌아오고 第三次 만에는 아무리 하여도 成事한다는 한 限界를 表示함이다. 그런고로 成事치 못한바는 하나님의 未成事케 한 바가 안이고 땅들이 받들지 못함으로 延長된다는 한 表示로써 第一次 第二次 第三次로 延長된다는 바를 알려주는 事実이다. 그런무로 하나님의 뜻은 아담墮落으로 因하여 鴿가 돌아온 바와 한가지고 第二次아담 完成者로 오신 예수는 땅이 받지 못하여 약속만 成事하고 돌아오고 完成第三次 아담와서 完成한다는 뜻이무로 鴿이 三次는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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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음은 뜻 完成할바를 보여주심이다. 이리하여 노아는 鴿이 還지 안으므로 自身이 몸이 地上에서 生活할 수 있는겄과 한가지로 하나님도 三次아담 再臨主로 因하여 地上에서 創造理想生活를 始作하여 直系的世界를 造成할바를 表示되는바가 目的으로 되였섰다. 그런 目的根本인데 노아아달 함으로 因하여 다시금 目的破壞를 始作하는 非原理存在를 誘引하니 하나님은 根本四十日審判目的은 不成事로 되여지게 되였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다시금 하나님의 摂理하는 血系代에 사탄侵入에 踪蹟를 보지 않게하기 爲하여 四百年延長를 보는바다. 그 根本 뜻은 四十日를 中心하고 사탄対立의 成事를 始作하였스니 그 基本四十數가 基因를 가지게 되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四十日數를 基本復帰하여 다시금 成事할려고 하니 四十日가지고서나 四十年 가지고서나 안되가스니 四百年으로 延長식켜서 四百年後에야 本格的으로 第二人間祖上이 成事할 信 基本成事인 노아에 信 完成基台를 아부라함択함으로 始作하였다. 이 信을 세우심은 아담이 不信으로 因한 바무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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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其基台를 찾어 세우여야 사탄対할 수 있는 基本이니 信祖上 아부라함은 노아의 根本뜻 信繼承完成者로 択한 바이다. 그러기에 아부라함이 信祖上되는 根本意義가 있는 바다. 웨 아부라함을 択하였나 하면 노아家庭으로 択함에서 失手하여스니 아부라함 한 自体로서 始作코저함이 目的이였다. 아부라함은 하나님의 앞에 信의 基本를 세울 수 있는 때까지는 얻던 經路롤 밟았는가 하면 아부라함이 凶年을 当하여서 아부라함은 애급으로 내려가난지라. 其当時에 아부라함이 妻 사라는 아름다우매 念慮하여서 男妹로 된다는 約束과 同時에 애급에 감이였다. 이 사라는 아부라함이 妻로 妹에 立場에 서게됨도 아담 해와 立장인 큰 原理的事実를 찾저 세우고저 함에서다. 그겄은 애급은 사탄代身囗인데 그 国王 바로는 아부라함의 妻를 自己가 取하여 妻로 하고저 하여스나 하나님이 바로 対하여 아부라함에게로 찾어주니 바로는 아부라함에게 所有物를 주워서 돌리심은 하나님으로 因한 緣故이였다. 이와갗치 아부라함에 뜻 成事하는 路中에 第一問題는 애급까지가서 妻를 所有한바와갗치 하나님도 根本 한 해와가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빼왓스러 한바를 다시 찾는다는 한 表示를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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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後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만 始作한 바와갗치 원수의 謀略中에서 하나님은 해와를 찾어서 復帰땅에서 부터 뜻 成事함이 基台를 造成한 바와갗치 하나님도 하신다는 根本뜻이 있슴이였다. 其後 아부라함은 애급서 가지고 온 所有를 基本으로 하여서 뜻 基本를 잡아서 하나님의 뜻이 成事할 基本를 잡앗다. 이것은 萬物全部를 取하여 뜻 基台로 한다는 뜻이였다. 그 다음은 롯이 잡어간 怨讐를 対하여 勝利한 後에야 아부라함은 뜻 成事이 始作이 決定를 받게 되는바다. 이겄은 択한 者를 全部를 復帰한다는 뜻이였다. 이런 基本이 完成되니 아부라함은 約束에 対한 表示物 로세 三大祭物로 하나님과 첫 條件에 対한 成立에 基台를 完成하는 바이였다. 그런고로 아부라함은 사탄 所有에 貴한 者와 같은 겄은 데라의 아달을 빼앗사 내여슴으로 사탄은 아부라함이 뜻하는 하나님対하여서 아부라함이 무었이나가 不順된 무었이 所有만 되면 所有코져하여 아부라함 뒤를 딸으게 되였다. 其時 마침 아부라함과 하나님과은 重大約束成立을 始作케 되니 사탄에게 있서서 큰 問題가 될 터를 始作함으로 이때 하나님対하여 사탄은 対立하여 서게 되였다. 만일 아부라함의 全的으로 하나님의 뜻에 맜게 祭物들러스면은 아부라함부터 基本基台은 잡아 四百年 厂史的延長生活인 애급 生活은 업고 直接 하나님責任分担使命으로 볼 바이였다. 이 目的은 무슨 目的이냐 하면은 아부라함만 完全히 뜻 成事함이면은 사탄対 根本追放를 始作하여 四十日에 対한 노아審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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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뜬 基本目的은 完成되여서 出発를 볼 바이였다. 아부라함이 失手하고나니 四十日에 対한 뜻은 아직 完成的基台를 잡지 못하게 그에 延長的四百年이 탕감時代으로 始作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이 四百年이란 年代은 노아부터 아부라함까지 延長보아 사탄이 侵入본 바니 이 四百年代 탕감하여야만이 노아적 時代立場에 立却함으로 아부라함에게 四百年延長를 보았다. 그런고로 아부라함 子孫에 남아지는 바는 四十數가 남어있는 樣으로되니 四十數가 만사를 解決하는 뜻 成事이 完成奌으로 남어지게 되였다. 하나님앞에 섰뜻 아부라함은 뜻에 未成事로 因하여 子孫이 四百年苦役生活을 봄이 큰나큰 禍根으로 되는 期間이다. 아부라함의 失手를 淸算하여서 사탄侵入防止코저하니 祭物表示로 되였뜬 実体子로 因하여서 祭物代身찾어 세우고저하니 이삭를 모리아山되려 祭物로써 獻祭를 命令하심이였다. 이 뜻을 아부라함이 三日期間을 두고 獻祭함의 合意 봄으로 하나님의 摂理한은 路程이 사탄를 防止하였스나 사탄亦是 이삭에 対하여 先有所有物될 수 있는 祭物所有로 因하여 미련갓고 対하게되니 이삭子息中二性的表示子息으로 分立하여서 하나님은 뜻를 세우게 되였다. 그리하야 야곱에 母親과 合하여 에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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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業를 빼앗사 넘기는 뜻이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腹中에서 부터 서로 싸우무로 니부가는 하나님끠 알래니 여호와 하나님이 答하여 갈아대 二囗이 爾腹中에 在함이여 二民族이 爾腹中으로부터 分하리로다. 此族屬이 被族屬보다 强함이며 大者가 小者를 섬기리라. 하시였다.(창25/23-24) 이겄를 보아도 이 失手한 根本를 다시금 하나님은 뜻하시여서 分立케하는 厂史的原因이 있는 바이다. 야곱이는 야거워서가(영급) 않이다. 하나님이 根本 뜻이 이와같은 사탄이 먼츰 祭物를 取할 수 있섰뜬 代身일써 存在 에서를 두고 야곱은 다음번 이무로 하나님의 뜻 中에서 사탄의 뜻하였든 所有物全部를 빼앗슴을 表示하기에 이와같은 対立를 보게한 바이다. 이겄이 卽 後日에 예수에 한 役事에 本되는 事実들로 되는것도 알 줄 안다. 이와갗치 하는바는 사탄의 아부라함 子息에게 미런남기지 않케하기 爲한 目的이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아부라함으로 뜻 成事를 볼러고 하는겄 이삭으로 通하여서 야곱에서 비로서 成事하게되니 아부라함을 対하엿든 하나님은 이삭이 하나님으로써 야곱까지와서 첫 아부라함 対한 하나님 뜻 成事를 보니 여기에 하나님은 三人를 相対하여서 아부라함의 하나님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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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延長를 본 바에 根本原理를 갓게 되는 바이다. 그러니 이 三代이 하나님으로 因한 名詞가 至今까지 조흔 名詞로 된듯하고 現信者는 알고 있지만 큰나큰 誤解를 알어야 한다. 이런 厂史的 하나님便的으로 原理를 中心하고 있다는 바를 確実히 알러야 한다. 이런 原理로 全部가 사탄侵入防止키 爲한 目的인 同時에 根本墮落始作이 復帰를 爲하여서라는 바를 알러야 한다. 여긔에 야곱부터 애급出発은 야곱이 아부라함이 本 뜻 四百年 탕감路程出発이 始作함이다. 웨 이삭부터 안되였는가 하면은 이삭은 아담과 같치 二主人対相存在였끼에 이삭부터 애급 四百年始作을 못한바를 론한바다. 야곱이 始作하였다는 바는 야곱은 根本 뜻 成事를 잡은者니 야곱이 애급出発하는 바이 根本原因이 有함이다. 이삭은 아부라함에 뜻 成事한 完成存在 못되무로 애급를 向할 수 업섰다. 그러기에 이삭子息에 에서라는 存在는 사탄相対者라는 서러움이 始作된바다. 어데 失手업서스면 아부라함子息에는 에서라는 存在은 없시 根本 뜻 始作를 볼 바이였다. 그러기에 이삭自体로서도 四十才를 中心하고 리브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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娶하여 妻를 択함이였다.(창 23/20) 이리하여서 하나님의 뜻이 始作를 보게함이였다. 야곱도 四十才를 中心하고 에서이 基業을 빼앗는 基本役事를 始作할바가 原理로써 짐작하여야 한다. 창세긔에 야곱이 四十年齡는 없스나 짐작키는 에서이 祝福 못받게 되는 年齡數 에서의 四十才 헷族屬 딸를 妻로 因하여 이삭과 리브가가 憂하더라 하는겄보면(창26/34) 야곱年代도 四十才를 中心하고 摂理하여야할 바가 原理로 되어있다. 이런 四十年代를 中心하고 하나님의 뜻를 始作할 수 있다는 基本를 잡으심은 基本 노아審判四十日數復帰한 基因數로 因하여서 이와같치 始作를 한 厂史的起源으로 因한바다. 야곱이 死後에 그 몸에 防腐劑를 四十日 발으심은 야곱이 体은 하나님이 뜻 完成者이무로 이 한 存在은 死亡하여서도 四十日期間과 같은 사탄対한 四十日審判를 받아 死亡한 者와같은 死亡이 안이고 四十日를 完成한 成事者로써 하날 뜻 四十日期間上에 處하여 死한 者라구 하는 表示로 四十日防腐劑를 바르게한 뜻이 있슴이다. 이리하여 四十日되는 死亡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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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防止한 中心存在가 된 바라는 根本意義로서 四十日를 보게한 바이다. 四十日은 卽 사탄 追放期間이면서 生命蘇生期間이다. 여기까지 야곱까지 延長보아서 애급出発하게 되여 한 하나님의 基台를 잡아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아부라함 이삭 야곱이란 延長은 우리는 生覚하면 怨痛한 期間이라 않이할 수 업다. 그러기에 이 期間를 두고 하나님은 約束祭物失手한 全部를 淸算하여서 사탄分立를 成事할 때 가지는 어는곳 까지나 하면은 야곱이 食口가 밧담 아람 라반에게서 얻은 所有를 가지고 가나안땅에 돌아온 後에 뜻 成事이 始作를 하는 바이다. 그러면 아부라함으로 부터 이삭 이삭부터 야곱이란 三代란겄은 하나님의 뜻하는 約束祭物中에 三祭物表示로 된바는 蘇生부터 長成으로 長成부터 完成에로 하는 眞理段階를 보여주는 바이였스니 아부라함의 뜻 合意케 成事하었스면은 三代없섯든바는 事実이다. 아부라함에 失手로 因하여 三代後에 完成한바도 全하나님의 뜻을 이 三代的段階로써 찾고저한은 厂史的眞理路程全部로 表示함이 始作하였다. 그는 失手로 因하여 分立보와서 아부라함으로 부터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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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이삭으로 야곱으로 하여 뜻 成事한 터은 眞理路程에 対한 基本的表示로 展開를 보게 되였다. 卽 아부라함은 아담格 상증으로 이삭은 예수이 한 상증으로 야곱은 완성 상증으로 됨이였다. 예수는 이삭과같은 立場임에 사람만 믿었뜨면 죽엄업시 야곱 뜻 合할 수 있는 겄이 目的이였다. 이삭도 죽음 면함도 뜻를 세우심으로 免한바와 갗치 될 바이였다. 그러나 基台 잡지 못하니 未成事할 수 있는 表示的一代復帰厂史와 모세로 因하여 民族復帰路程失手로 因하여 十字架까지 關聯를 가진바이다. 그런고로 뜻 完成者는 야곱이였다. 야곱이 뜻 成事하기 爲하여서는 第一次 가나안를 떠나는 生活이 야곱앞에 있섰다. 卽 長者基業를 取하고는 야곱은 基業成事할 者로써 라반집를 찾저가게 되였다. 여기에 야곱앞에 展開은 全部가 後日에 예수이 할 使命的表示로 되는 바는 한 뜻 基台成事은 야곱이무로 야곱은 뜻 基台完成가 있스야갔스니 야곱은 하란生活의 始作를 보는 바다. 여기서 부터 가나안 復地까지는 全部가 이스라엘이 나아가야할 表示的路程으로 낱아난다. 그겄은 하나님의 뜻에 基台가 되여야 갔스니 한 一代에서 하나님의 뜻에 全部를 表示한 厂史로 展開할 意義로 보는 바다. 그런고로 아부라함의 三大祭物은 아부라함을 蘇生으로 하고 사탄対하여 長成的 이삭이 始作을 보고 야곱이 始作으로 路程完成이니 이 厂史的三大祖上은 人類対한 하나님의 厂史的全部를 表示하는 바로 展開를 보여주심이다. 그겄은 祭物의 全部는 全人類対한 하나님의 摂理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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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 失手復帰은 全人類対한 한 表徵的事実로 展開를 보와야 되는 바이다. 그러기에 야곱이 一代 가나안 復帰까지며 全部은 가나안난 이스라엘百姓이 애급四百年生活과 相対되는 基本一代 복기厂史다. 이 야곱이 가나안 復帰路程은 이스라엘 全民族이 가나안 복지로 정예 本되는 路程이다. 이리하여 야곱은 復帰路程에 야곱이 뜻를 成事케 하는 에서가 있섰다는 바는 아담아달 가인과는 反対로 야곱対함이 始作보니 基本 가인가 아벨的 根本 뜻를 合意 본 셈이무로 그러기에 根本 아담 두 아달 가인과 아벨이 뜻에 속한것과갗은 完成보니 뜻 성사를 보는 바다. 야곱은 가나안땅을 찾어들게 되는 바이였다. 그  에서가 야곱를 対하여 反対하여 怨讐示 하였다면은 하나님의 뜻 成事에 큰 問題가 될 바이였스나 에서 야곱歡迎하며 에서도 後日에 하나님対하여 順從에 한 間接的基本를 잡아 세우심이였다. 그런고로 에서이 後孫은 가나안 땅에서 怨讐対立이 안되고 가나안 땅에서 基業地를 所有繼續한 原因를 세우심이 基台가 에서가 야곱対하여 歡迎한 結果로 가저온 바다. 그러니 야곱 가나안復帰은 이스라엘民族이 애급生活로 부터 가나안 復地로 오는 한 本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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겄이다. 그런고로 야곱이 하란 生活路程에서 対하는 라반이란 存在은 사탄이 対像存在로써 야곱이 全部를 害하여 自己이 慾望充当를 세우러고 하는 者이였다. 라반은 하나님끠 屬하지 안코 偶像崇拜者이였다.(창 31/19) 이리하여 하란生活에서 財物取하여 가지고 가나안당을 向할러고 할 때에 라반에 対하여 야곱이 取할 수 있는 自由三日(창31/21~22)이 있섰뜬 바다. 이 三日間를 中心하고 라반에게서 얻은 全所有를 分立케 하여 所有权으로 세우신바이다. 그리하여 라반은 三日後에야 길느앗山에 対하였스나 하나님의 許하지 않으므로 自己 뜻을 成事못하고 自己이 偶像를 가저간겄을 찾다가 라헬이 其父에게 말하기를 自己은 偶像을 아지 못한다고 하면서 駱駄鞍下에 두고 타고는 至今딸은 脛水가 適出야 起야 歡迎치 못한다 하여서 偶像를 라반이 찾지 못함에 뜻를 보지 못하고 도르혀 야곱한테 攻擊를 본바이였다. 야곱이게는 레아와 라헬 二妻가 있섰다. 그 뜻은 무슨 뜻이나 하면은 하나님의 対하고저 하는 뜻 中에는 하나님의 二女性이 있다함을 보여줌이다. 야곱이 뜻 아닌 레아的 女性과 야곱이 뜻이 中心인 라헬的 女性이 있다는 表示로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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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이였다. 여기에는 根本해와이 일어버린 한 찾저야할 根本的女性이였는 바라는 겄이 表示였다. 그겄은 라반이 뜻 일운 레아이 存在와 한가지 表示였다. 이겄은 먼츰 일러버린 全人類対한 墮落始作母 해와로 表示한 바이다. 라반이 레아를 주고는 七日期間을 채운 後에 라헬을 妻를 삼게 하시였다. 이 七日期間(창29/28)日數는 卽 노아가 鴿을 내보내듯 한 섭리完成的日數로 되는 바이다. 그리하여 야곱은 뜻 成事하고야 가나안 땅으로 帰還하는 바이였다. 그리하여 라헬 찾은바는 하나님의 後日 일어버린 해와를 찾저 根本 뜻 成事할 目的를 表示한 바이였다. 그런고로 레아子과 라헬子 合하여 뜻 完成를 表準한다는 全世界人間 찾저야할 根本目的를 表示한 바이였다. 또 여기에 라반이 行한 바와갗치 하나님의 사탄世界에 不信으로 因하면은 이와같은 야곱이 目的이 二번만에 成事와 갗치 예수도 이와같은 한 完成를 成事할 바이 뜻를 表示한 바이였다. 그리하여 야곱과 合하여서 아바지 라반를 対하여선 妻 라헬態度와 갗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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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야만의 後日에 하나님 뜻이 完成 본다는 한 表示로 되였다. 라헬리 萬一偶像를 아바지한테 보였스면은 야곱과 全部은 큰 未成事를 가저온은 問題로 되는 바이나 라헬니 한 勝利를 가저온 中心은 脛水로 因하여서 勝利한 바와 한 가지로 야곱妻 라헬이 말로 因하여 偶像를 없세게 한 바와같치 後日 하나님 뜻 路程에 이와같은 女子이 脛水로써 사탄全部를 勝利하는 基台가 始作한다 하는 內容을 表示한 바이다. 이겄은 라헬이 態度와 같치 第二次 해와로 因하여 사탄을 屈伏시켜 뜻 完成를 한다는 한 勝利的表示이였다. 이 야곱이 一代이 展開가 예수이 路程으로 始作된다는 겄도 한 表示로 된 바다. 이 야곱이 全目的成事은 애급 路程上에 다시금 始作에 本으로 나타나서 하나님도 사탄対하게 하는 根本이 있는 바이다. 그러니 아부라함 이삭 야곱은 全하나님의 厂史的 路程를 表示한 存在들로 낱아낫다. 아부라함은 아담 失手한겄을 이삭으로 復帰와 같은 예수 祭物表示로 不信하니 十字架로 始作하고 야곱과 같은 再臨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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格 成事를 完成되는 한 表示로된 者들이니 하나님 対하는 아부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対像者인 뜻에 摂理를 表示한 存在들 이무로 아부라함이 하나님 (야곱의 一代로. . . .잘 보이지 않음) 이삭 하나님 야곱 하나님으로 延長된 後日에 全部를 表示한 基本들이니 信이 基本되는바가 成立되니 信의 祖上이라는 基本意義가 있다는 바 말한바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뜻 路程은 旧約役事中에 全部表示하여 맞추고저 함이 根本으로 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은 야곱 成事부터 할바가 모세부터 始作한바다. 모세은 야곱이 根本目的完成하여야 할 表示的路程으로써 後日 예수에 第二責任路程를 表示로 하면서 하나님의 直接責任基台잡은 路程에 始作를 보는 바다. 그런고로 모세 亦是 야곱 繼承的成事로서 出発하심이 出애급 노정이다. 모세= 아부라함 + 子孫 = 祭物찾음 = 하나님 取하여 역사. 그리하여 예수이 本되는 路程를 하나님과 合하여 成事하여 노았다. 그런고로 야곱 나간곳이 完成을 本으로 모세는 出発 하게 되였다. 이 모세의 本될 수 있는 路程이 完成를 始作하였끼에 信의 祖上들로 세게 되였다. 이리하여 예수이 앞에도 이와같은 完成目的하고 나아가여야할 表示이 路程으로 모세도 出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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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보는 바이다. 이와갗치 摂理한 바에 根本本意은 사탄対한 四十日完全復帰問題로 帰因하는 바이다. 이 모든 어러운 役事始作이 延長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를 받들지 못하였끼에다.그런고로 모세도 애급 宮中에서 잘래게 하는겄도 択한 百姓를 第二次로 노아後에 사탄한테 배았끼스나 사탄한테 주었다가 다시금 사탄対하여 反対路程를 세우려니 모세亦是 四十年時를 바라宮中에 있다 四十才가 되매 하나님의 百姓으로 出発케함도 이 根本四十數가 始作이 如何 根本 뜻 成事目的였섰끼에 모세 亦是 四十才에 애급対하여 反対하는 바이다. 모세가 四十才를 바로 宮中에 全部를 잘 有持 한 後에(사도행전 七/23) 하나님은 択하여 또 四十年間를 두었다가 役事하게 되는 바이다. 모세는 바로対한 出発時은 八十才이였다.(출7/7) 이와갗치 四十數를 두고 役事한겄은 四十日數를 일어버린 겄과 갗치 되었뜬 겄은 찾어서 탕감을 定할려니 四十才에 択하는 摂理를 始作케하여서 八十才에 成事로써 모세를 세워서 役事식킨 바이다. 이리하여 再出発하는 모세는 勝利路程를 잡고 나아간바는 四十日 復帰이 目的完成이니 四十年後四十年하날뜻 準備期間으로 対케 한 바이다. 그러니 이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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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十年애급이 바로한테 준 바는 全 이스라엘 百姓를 바로가 支配하니 基本四十日를 일어버린 겄으로 因하여 四百年이란 年數로 보앗스니 모세는 이 四十日를 사탄으로부터 하날 四十數로 찾저 세우여야 갔스니 애급 四十를 주었다가 하날 四十으로 탕감하여 하날이 基本四十日數를 찾을 수 있는 길를 잡고 나서는 樣이니 애급出発이라는 始作를 보는 바이다. 그러니 이스라엘百姓은 四十日를 全体的完成를 하여야 하는 바는 이스라엘全部가 四十日完成 하여야만의 노아審判根本目的達成한 하날 百姓으로 보는바 갓스니 卽 根本 하나님의 創造本意인 말삼를 하갔스니 모세는 이스라엘 百姓를 中心하여 놋코 根本 뜻 成事에 基本言 成事에 約束를 받게되는 바이다. 卽 四十日晝夜로 通하여 禁食하여서라도 成事할 目的으로 되니 모세는 四十日를 完成할러니 禁食하여 四十日根本審判根本復帰가 目的이니 四十日로 因하여 言에 対한 二石板 받음이다. 이겄은 무었이나 四十日이 完成이 다시금 成事한 基盤되는 아담 해와이 成事를 完成할 本이라는 겄이 始作를 보는 바이였다. 그리하여 全百姓은 言과 한나 되여야만이 뜻 完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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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곳으로 나아갈 바이 根本인데 나아가지 못하게 되매 四十日에 対한 第二次 完成도 다시금 未完成를 본 바아갗치 되니 이스라엘 百姓에는 다시금 苦痛數 四十數는 남아지게 되였다. 四十數未完成은 再創造 復歸未完成數인데 이스라엘百姓이 가나안땅을 앞에노코 偵探軍이가서 정탐한날 四十日이 最後로 이스라엘 百姓이 全 뜻 成事나 未成事나 하는 간격둔 対峠回數가 四十日이였다. 이 四十日를 두고 한 全部를 믿고 나아가면은 根本四十日은 勝利이 基本 될 날이였는데 이 정탐 긔 四十日를 잘 信고 넘지 못함과 같은 結果로 나타나니 昿野四十年이 고역이 始作을 본 바이였다.(민수긔 14/30~34) 이리하여 四十日基本은 完成못하고 四十日完成으로 발아보든 全百姓代表者은 다시금 사탄所有物 되여 昿野에서 四十年間에 死亡하는바가 始作된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뜻 路程에서 四十日의 勝利的目的을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百姓이 찾저 세우여야하는 重大期間로써 남아지게 되였다. 四十日 세우는 날이면 사탄追放이 날이라는 事実이다. 그러무로 四十日이라는 날짜는 이스라엘 百姓앞에 찾어서 세우여야하는 날이다. 이겄를 탕감과 同時에 完成할 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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摂理路程에 한 뜻으로 되였다. 모세 四十日目的未達成하여서 사탄은 如前하게 侵入하여 全目的 破壞으로 나아가니 하나님은 다시금 엘니아를 세우심이였다. 엘니야은 사탄 全滅식키기 爲한 代表的存在로써 하나님앞에 세게 되였다. 그리하여 바랄神 八百余를 滅하고는 四十日晝夜로 호렙山까지 가는겄은 무었이나 하면 모세 四十日에 한 勝利를 完結짖는 한 表示로써 엘니야 호렙山까지 四十期間의 있슴이였다. 이리하여 엘니야로부터 노아審判四十日를 完成하는 同時에 하나님의 基本出発할 수 있는 터를 造成하기 爲한 總決戰者가 엘니야엇다. 그것도 百姓이 不信 不順 不侍로 因하여서 사탄은 侵入延長를 보와서 메시야 前까지 当到하갓스니 하나님은 四十數 十進倍數年로써 四千年期인 四十數延長으로 因한 메시야 時까지 侵入하여 役事하가스니 하나님은 엘니야를 보내서서 目的成事를 予告함이였이다. 이 엘니야라는 存在는 세례요한으로 始作하여 사탄 全滅目的完成하여야 할 엘니야的 目的達成못한 셈으로되니 예수 앞에가긔 四十日에 対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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厂史的 탕감課業이 延長를 본 바이다. 그런고로 이겄를 탕감하기 爲한 總結算期가 예수四十日 禁食期間인 野生活이다. 이리하여 勝利함으로 審判目的은 完成할 基台은 잡아스나 사람의 合하여야만이(누가4//13참조) 成事할 예수앞에는 未成事란 結果로 因하니 四十日에 対한 未完成를 본 바와 한가지로 되였다. 그러니 十字架로 因하여 사탄対 勝利를 目的케 되였다. 그리하여 예수는 敗한듯 하니 四十日間를 찾줄 수 있섰다는 目的를 完成할 수 있다는 바는 十字架後로 因하여 예수앞에 復帰되면서 基本完成이 터를 始作하여서 出発에 榮光를 본 바다. 예수가 十字架後復活하여 四十日期間이 成立를 보와서 하나님의 基本四十日 노아根本 사탄追放目的를 成立하여 노은 바가 根本目的으로 하나님의 摂理路程에 四十日期間이 問題로 되여왓뜬 바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厂史的 모든겄 完成者로 뜻 出発中心存在로 되는 바이다.

(*51. 10. 26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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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氣候은 世界文明에 標本될 상증

 

넓고넓은 世界를 두고 氣候가 四時4節를 두고 明朗하게 公式的으로 表現化하여 보여지는 氣候은 世界 어데서라도 찾어볼 수 없는 果然讚呼할만 한것은 한국氣候인 것이다. 世界를 두고보면은 이 氣候은 厂史発展上의 偉大한 功獻를 가지고 至今까지 찾어 나오고 있다. 世界를 氣候的으로 區分하여 보면 熱帶氣候圈內와 溫帶氣候圈內와 寒帶氣候圈內을 보여지고 있다. 이 氣候的關係와 人間的關係와는 密接한 關係를 가지고 至今人類厂史은 움직여 나온 바이다. 至今韓囗이라는 나라를 집어서 氣候的으로 보면은 溫帶圈內에 屬하여 있스면서도 溫帶的氣候로써 만이 보여짐이 않이고 四時를 두고 全世界的氣候를 全部表現化하고 있슴을 누구나가 잘 아는 事実이다. 卽 春節이 있고 夏節이 있고 秋節이 있고 冬節이 있다. 이 四時은 또 다시 十二朔을 中心하고 一朔에 二節期를 가지서 二四節를 갓고 한 公式과 같은 軌道的氣候로 展開를 가지고 四時軌道를 지네는 바는 事実이다. 韓囗에 氣候은 果然全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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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氣候이 標本으로 創造받고 있슴을 누가 変更할 수 없는 한 天理로 되여있다. 그러타면 이 氣候的立場과 創造主와는 얻던 關係로 因然를 갓고 있끼에 이와같은 氣候로 지였는가 生覚하여보면 여기에 神奇한 事実들를 発見할 수 있을 겄이다. 氣候에 中心地은 모든 博物에 対한 한 中心地로써 世界上에 없는 動植物이 集中한 곳으로 自然界에 棲息狀를 볼 수 있슴도 事実이다. 이러트시 動植物界에 対하여서나 또 人間에 있써나 全部은 氣候에 対하여 生에 対한 重要關聯를 갖고 있끼에 氣候가 自己들이 生에 完全를 保存할 수 있는 理想的氣候를 要求케 되는바는 事実이다. 그러면 至今世界를 보면 熱帶地域과 寒帶地域를 上 下에 두고있는 溫帶地域은 熱帶와 寒帶에 対한 中部位에 있슴으로 其地帶에 対比되는 生를 保存한은 身豊形으로 되여지게 되었있다.

그런고로 氣候에 關係은 世界上에 五色人種를 區分하여 놋은 바면서 또 其本性分과 性品까지가 全部은 氣候를 中心하고 右左하여 보여지게 되는 바이다. 그러무로 其民族이면 민족 百姓이면 百姓 全部은 其接生地域에 氣候로 因하여서 많은 相異를 가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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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바무로 各囗各民族은 其地域地域에 依하여 風土를 中心한 氣候로 因하여 全部은 右左되는 바도 事実이다. 또 壽命問題도 自然的으로 氣候的關係로 右左되는 바도 事実이다. 그런고로 이 氣候란 目的이 앞날 人類発達史的으로 보아도 人類理想과는 언재나 合하여 步調를 음직기게 되는 바도 事実이다. 그러타면은 世界的으로 보면은 모든 萬相은 氣候를 中心하고 発達도 右左하는 時代가 온다는 바도 알어야 한다. 그런데 韓囗이 氣候은 世界없는 最高理想的位를 갖고있는 바인가 하면 이겄은 創造主이 根本은 恩択이라는 바는 事実이다. 本來天地創造은 한 中心를 標準하고 萬相도 지음받은 바는 事実이다. 世界를 創造하시든 創造主도 한 中心地로 하여 各樣으로 벌녀 노은겄이 萬物창조다. 그런고로 其中心地는 世界上에 무었으로나 世界的標本으로 되여야하는 바는 原理的事実로 되는 바이니 받드시 氣候的問題로써나 各方面으로써나 全部가 한 標本的立場으로 되여지게 되여야 많이 原理的事実이매 이 中心地向하여 最高하나님의 理想은 움직임을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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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바이 事実인 바다. 그러타면 標本的으로 보여지는 其地域은 萬宇宙에 全部에 한 標本狀를 보여지는 곳은 創造主를 가진 被造物世界에 보여지여야많이 事実이 않이겠는가? 그러면 世界上에 重大한 關係로써 人類厂史를 右左한은 氣候的關係와 人間를 生覚하여 볼적에 人間이 理想的 氣候圈內를 自然的要求할 바이니 그 氣候的目的地은 自然的으로 世界上에 찾어 노으여야 하는 바가 必然的要求로 되여진다. 그러타면 至今世界를 보면 韓囗에 氣候은 世界에 第一位를 갖고 있슴을 누가 否認못한다. 이 氣候은 一年中心하고 四時를 通하여 全世界上 全部 이 氣候이 感味를 体得하는 바이다. 이 氣候야말로 누가 찬양치 않으라. 春면 꽃피는 其自然에 美. 夏이면 綠葉이 茂盛한 自然美. 秋면 丹楓의 自然美. 冬이면 莊嚴한 銀世界로 되는 自然美. 全部가 人間理상에 한 絶境으로 詩的感漡을 伝하여주는 人生理想에 한 自然境를 보게되니 그 얼마나 創造的 고마운 事実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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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케 創造하신 創造主도 全世界를 보게 될 때에 氣候的中心地로된 그곳 向하여서 찬양하는 中心地라는겄도 事実이 않이겠는가. 世界에 韓囗은 自然的福를 갗추워 지음받은 地域이라면 創造主가 계시는 以上에는 韓囗를 自己과 第一貴하게 理想地로 할 겄은 自然的原理要求로 되는 바이다. 韓囗에 氣候에 対하여 살펴보면 이러트시 創造主便으로도 重要한 目的地로 되여야 하는 겄이 世界的氣候를 中心하고 볼적에 生覚하여지는 바는 事実이다. 韓囗에 氣候의 循環全部은 創造主이 理想形를 表示한 中心地로써 한囗의 氣候 한 自体은 理想世界인 創造主이 本境世界에 全 表示的構造를 터로 하여서 지음 받여지은 바를 알 수 있다. 卽 하날에 한 構造的事実形를 表示하여 있는바가 目的으로 되여진다. 그러키에 天囗構造에 한 影狀으로써 보여지여야 하는 原理的 構造를 要求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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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囗에 構造를 살펴 보면은 寶座가 있고 十二使徒를 中心한 二十四長老가 있고 四灵物이 있는 바이다. 여기에 韓囗氣候를 中心하고 四時的構造야말로 天囗에 한 榮光에 터를 像徵식킨 한 表示的被造物中心地라는 바를 表示한 바이다. 한囗에 四時 卽 春夏秋冬은 四灵物이니 四時로 되여 其를 中心하고 四方를 보게 되면서 十二朔를 中心하고 二四節은 卽 하날全部에 한 影狀이 表示로써 全世界를 対케하는 한 中心構造에 한 標本으로 되여있다. 이 全部은 하날 한 中心部를 本으로하여 世界創造하였끼에 이런 具造를 보는 바이다. 이런 地上中心地은 이런 公式的世界에 한 標準으로 表現化되여야 하는 原理的創造目的이 있는 바이다. 그러니 全世界的으로 四時를 中心하고 12朔으로되여 韓國를 中心하는 二十四節이 全部가 한 創造的原理를 完成하기 爲한 目的 있슴을 알 수 있다. 이러키에韓囗에 氣候은 이런 創造主이 目的하는 中心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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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여 있음을 알어야 한다. 여기에 韓囗의 氣候은 世界이 氣候의 中心地로써 앞날 理想世界에 많은 貢獻하여하는바도 生覚되는 事実인바다. 그런고로 至今世界上 무슨 物件이나가 全部은 春夏秋冬과 같은 氣候的恩択를 받고 存在하는 地域에 被造物은 世界에 어데 딴 地域에 存在하는 被造物 보담 貴한 價値를 가지고 있서야 하는 바도 原理로 알러야 한다. 그런고로 韓囗에 生産物은 世界各國 어느 날아에서도 찾어 볼 수 없는 한 中心核으로 되여야 하는바가 原理로 된다. 動植界나 昿物界나 全部價値的最高位로써 낱아나지 않으면 안되는 原因이 있는 바이다. 웨나하면은 氣候的으로 完全的恩択를 받아 存在한은 原因임를 알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 食物中으로 最高位에 味를 가지는 食物도 韓囗에 氣候에 恩択과 風土에 屬한 겄이라는 바도 事実로 된다.

또 昿物로 보와도 第一位를 찾지 할 바도 勿論인 바다. 그리고 特히 앞날 最高文明에 第一功獻할 수 있는 地域도 한囗의 한 昿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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权威를 보여 줄 바이다. 最高熱를 対한은 最高情密器의 製作도 氣候的最高恩択받은 곳에서 産出하는 昿物만 가지고 않되는 貴重한 役活도 할 수 있는 때가 올 겄이다. 그러니 氣候的最高標準를 가진 이런 韓囗은 하날 創造主便으로도 至極히 貴한 날라라는 겄은 勿論이면서 二十世紀 以上文明과 韓囗과는 떠러질 수 없는 天然的恩択을 받은 地域이니 이 地域은 하날적으로 貴하게 찾고저 하는 반면에 惡사탄도 韓囗를 찾저 볼러고 여러 모양으로 対比하며 낱아나는 事実를 알어야 한다. 이런 地域을 가진 韓囗民族은 얻던 民族이나하면 世界上에 없는 最才能的智慧를 自然的으로 갖게되는 바도 事実이다. 그런고로 한囗이란 完全舞台만 잡고 世界舞台에 나서게 될 되에는 全世界 어느民族이 딸을 수 없는 卓越한 存在로 낱아날 바도 天然的 창조 헤탁을 닙은 곳이니 自然原理로 되여야 한다. 그런고로 하날의 뜻으로 보면 韓囗民은 앞으로 知慧의 한 民族으로 世界 얻던 氣候的地帶에서도 살 수 있스면서 世界上에 없는 貴한 한글을 言를 갓고 全体 많은 功獻할 바는 하날의 目的으로 하는 囗기 때문에 라는 겄를 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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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케 氣候은 厂史発展 全部에까지 影響化되여 人類生活과 発達과 文明과 어던方面으로써도 關係를 갓고 있슴를 찾어 볼적에 至今韓囗까지 찾어 나온 人類発展地域과 厂史的立場를 生覚할러고 할 때 氣候와 文明과는 重大關係를 갓고 나오게 되여 있슴을 알 수 잇다. 至今厂史的発展를 잡아 氣候的關係的으로 考察하면은 熱帶地대 文明에서 溫帶地帶 文明으로써 溫帶地帶文明에서 寒帶地帶文明으로써 移展함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天宙主人으로 계시는데 웨 根本原理世界로 出発못하고 至今까지 이와같이 移展하여짐을 잘 알 줄 안다. 즉 非原理存在로 因하여 먼츰 始作를 보앗기에 다시 찾기 爲하여 하나님은役事하면서 最高標準境를 向하여 나오는바는 事実이다. 그런고로 至今世界를 中心하고 善神과 惡神対. 사람中心하고 싸우는 바는 事実이다. 그러면서 하날 勝利로써 厂史를 対하여 最終奌韓囗를 中心삼고 두 対峠陳은 나타나는 바이다. 이 目的은 하나님의 理想인 目標를 完成할러니 이런 摂理路程를 向하여 나온바다. 非原理를 中心하고 出発하는 対峠陳으로 하나님은 厂史를 經過하며 오게 되였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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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蘇生으로 長成으로 完成으로 目的하고 全世界上에서 摂理하게 되였다. 그러니 至今까지에 文明厂史를 살펴보면 사탄은 熱帶圈內에서 出発하게 되는 바이다. 그 理由는 原始生活에 便利하니 사람들은 集中하여 出発을 보는 바이다. 其地帶地를 中心하고 사탄은 사람를 中心하고 厂史를 対하니 하나님도 그곳 対하여서 배았는 工作를 始作하는 바이다. 이러니 氣候的으로 보면은 하나님은 熱帶地域을 中心하고 사탄 対하여 나온 厂史的路程이 過去古代文明時代인바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고 나오게 되니 古代文明은 사탄対像으로써 全部가 敗하게 되는 바이다. 이런 關係로 古代文明은 主로 熱帶地域를 中心한 地帶라는 바도 알어야 한다. 卽古代文明으로 보면은 東洋으로는 印度文明를 中心하고 支邦文明西洋으로는 埃及文明를 中心하고 바벨론文明이 全部은 熱帶圈內에서부터 始作한 文明에 자적을 알 수 있다. 이 時代에 하나님은 文明人를 찾으려하니 完全하날 뜻 成事를 못보아 全滅하고 択한 百姓를 中心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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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地域를 떠나 溫帶地域圈內로 옴겨서 役事를 始作하는 바다. 其原因은 원수 즐기든 곳에서 하나님은 뽑아옴겨 移轉하여서 溫帶地域으로 옴기는 厂史를 본는 바다. 그러나 사탄亦是 溫帶地帶으로써 対立을 잡아 反対厂史하니 其厂史的路程이 至今二十世紀까지 하나님을 順從하고 民族를 中心하고 溫帶地帶內에서 섭리的 原理復帰할러는 厂史的繼承를 維持하여 나오는 바이다. 그러니 至今 그 報應으로 厂史的 모든 時代은 熱帶地域 사람들을 한 奴隸的立場에 處케 되여 나오는바는 昔日사탄 対한 사람이라는 겄이 原因이다. 그리하여 反復되는 厂史로써 二十世紀까지는 溫帶地帶文明으로 나와 熱帶地帶와 合하여서 사탄所有에서 빼앗아서 한 長成을 보왓다. 그것이 卽 英美中心한 유엔衛星國家이다.그러니 其反面 사탄은 自己의 뜻을 延長보려고 하나님 対하여서 끝으로 남은 寒帶地帶를 잡고 反対하니 寒帶地帶이 文明이 한 ( ? 겨진 상증 文明인 ? 杯으로) 世界에 対立를 보는 바다.

그러니 사탄은 熱帶로부터 溫帶로 딸아 나왓스나 뜻 못보니 寒帶로서 其經路을 세워 나왓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完成의 目的를 反対로 成事할러니 사탄은 한 하날 흉내로써 主權를 세웨서 낱아난 것이 共産囗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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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寒帶文明이라는 한 偉勢로 낱아나니 結局 사탄은 末端地帶까지와스니 사탄은 하나님目的 中心地를 알고 最後的 발악하며 結判짓는 地帶를 잡는겄의 卽 氣候的으로보면 中心地帶와 같은 韓囗를 中心하는 바이다. 그러니 熱帶文明으로 溫帶文明으로 寒帶文明으로 한 分岐를 定하고 新文明은 氣候的中心地帶인 韓囗으로써 뜻 目的하고 하나님은 사탄 手中에서 (???)찾어 복귀하기 爲하여 其厂史目的를 推進하여 온 바이다. 그런고로 最後文明은 熱帶地帶文明도 않이고 溫帶文明도 않이고 寒帶文明도 안인 完成文明時代가 卽 全世界 氣候的 中心地帶를 中心한 理想文明이다하는 바로 된다. 卽 하나님의 創造復帰 理想文明時代인 바다. 그러니 世上에 하나님의理想目的 完成할 存在를 보날래니 韓囗사람 中心하고 나타나는 바이다. 그 存在은 卽 全世界으로 발아는 基督敎 리상存在인 再臨예수로 約束된 厂史的所望存在라는 바는 事実이다. 그러니 韓囗予言書中 정감록에 予言한 存在은 이런 目的으로 摂理한 하날에 中心存在로 될 天地창조로부터 하날로 定한 存在라는 바를 알어야 한다. 그리하여 全世界 対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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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心存在로 되는바은 事実이다. 이와같이 氣候에 한 中心地帶은 世界上에 한 貴한 目的位置로써 되여잇는 同時에 天地創造로부터 한 貴重한 位置로 予定되여 있는곳이 한囗임을 알어야 한다. 이 氣候은 太陽를 中心하고 其位置가 第一貴한 位置에 있스니 其氣候은 第一貴한 氣候的表示를 보는 同時에 其地域的 모든 生物이나 無生物이나가 貴한 位置를 찾지하는 바는 創造主이 創造妙味를 発表한 곳임도 事実인 바다. 이러키에 厂史은 氣候를 中心하고 한 完成目的氣候地를 向하여 六千年厂史은 흘러나온 바이다. 그런고로 氣候를 中心한 厂史的方向를 보면은 最後에 完成氣候地에 基着黙(*點).를 잡고 最高文明이 始作를 보아야 하는 바이다. 이런 地域만이 未文明 地域으로 남아 잇스니 반드시 文明은 始作할 바이다. 이러케 厂史은 氣候的으로 보아서도 移動하여 発展하여 오는바를 厂史的考察로도 알고있다. 그러니 最後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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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에 總合的氣候이 中心地帶가 文明할 地帶로 되여야 한다는 겄도 짐작하는 事実이다. 이런 理想的氣候로된 地帶이니 果然創造主이 理想하는 目的地로 되게 할러니 至今까지 韓囗의 地域를 두고 厂史的複雜한 問題은 生起는 原因도 하나님과 사탄対하는 나라로 되여지기에 서로 韓囗 되문에 極東에서는 問題이 心中地로 되여왓다. 그겄이 最終에는 世界問題를 右左하는 位置를 取하여서 한囗을 中心으로 하여 사탄을 敗케하는 最終目的를 完成지을 겄이 하나님 한 뜻으로 되여있다.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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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囗은 地理的으로도 世界의 中心地

 

韓囗은 三千里半島로써 極東에 位置하여있다. 보기에 아담하게 亞細亞大陸를 連하여 있지만 그 地域的으로도 特殊한 形態를 造成하고 있는 바이다. 亞細亞大陸를 連하는 무슨 山脈이 支配를 밪지않고 特別히 分立된 構造로써 中心地台로하여 北에는 長白山脈으로 亞細亞大陸를 가로막아 亞細亞大陸과 分界로 하여 東西로 鴨綠江 豆滿江를 두워 갈러놋코 東便은 太白山脈를 中心으로하여 西쪽으로 보기좋은 小山脈들을 中心하여 西部平原地帶인 自然이 沃土로 端裝되여있서 東便서부터 西便으로 흘르는 아름다운 七大江를 널녀노아 모든 風致에 美和를 더욱 높이 端裝하여 있는 바다 이 半島로 니룬 韓囗이야말로 極東에 있서서는 모든 方向으로도 重要位에 處하는 바는 事実이다. 交通的으로 보와도 韓囗은 極東에 한 中心地帶로써 力活하는 바는 事実이다.

 

414장

亞細亞大陸를 通할려고 할적에 韓囗은 한 門戶的立場으로 되여 있기에 中囗이나 日本이나 蘇聯이나 다 韓囗를 中心하고 対하여 通할 수 있는 中心的立場으로 되여 있슴에 自然的韓囗은 政策上으로 보와도 重要的立場으로 其中心力活를 하여야할 立場도 勿論이면서 交通的中心으로 되여 잇는 바도 事実이다. 極東에 있서 이 陸海空路를 通하여 交通에 重要中心을 갖고있는 位置로 나타나 서 있다. 그러기에 極東에 있서서는 韓囗이 中心位에 있기에 極東를 關心갖고 対하는 囗家들은 몬츰 韓囗를 対하여 侵略的態度로 보여짐은 이와갗은 交通的中要位置로 되여있는 同時에 모든 具備的貴한 自然에 恩択받음을 누가 貪내지 않을 수 없스리만치 福된 地域으로 되여 있기에勿論인 바다. 이 땅에 農産物를 보면은 五穀를 中心한 穀物과 其価値은 어느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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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을 수 없는 珍味인 五穀를 볼 수 있는 바이다. 特히 韓囗에 米은 果然他地帶에서 볼 수 없는 貴한 宝物인바다. 其外韓囗産物인 農作物은 天然的氣候이 恩択으로 因하여 果然稱呼가 높은 바는 다들 아는 바다. 其外植物界를 살펴 보면은 植物에도 世界 어든 날아가 갓지 못한 種目의 植物를 갓고 있스며 動物界로 볼적에도 昆蟲界라든가 鳥類界라든가는 世界에 最高位에 価値를 召有하고 있는 바이면서 딴 動物에도 亦是其位置를 価値높이 갓고 있슴은 事実이다. 特히 韓囗에 産出하는 家畜으로서 牛나 豚나 鷄은 世界에서 産出하는 家畜에 比하여 볼 적에 其珍味은 果然第一位를 召有하는 바는 事実이다. 이겄은 모다 氣候로 因안 恩択으로 되여지는 바다. 또 無生物界를 살펴 보면 現代最高文明이 要求하는 貴한 鑛物類를 볼 수 있다. 그러면 其標裝된 埋藏量은 果然世界사람이 부러워 할만한 高貴한 地下資源를 갔고 있는 바이며 其各品質에서는 世界 어느 날아 産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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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比할 수 없는 価値를 갓고 있슴을 누구나 感嘆하는 珍貴한 바로 되어 있다. 그겄도 理想的 氣候로 因한 바이다. 이와갗치 陸地에서 産出되는 物件의 귀한 価値은 天然的恩択이라는 바는 勿論이고 其外海産物를 찾어 보면은 三千里半島를 中心하고 西海로는 黃海를 두고 暖流이 魚撈를 보는 同時에 東海에는 寒暖統合하는 地域를 兼有하여 있기에 世界에 三大魚撈場에 하나로써 되는 地域을 対하고 있는 바이니 世界에 없는 魚籍을 찾어볼 수 있는 韓囗이 立場은 가장 貴한 海에 恩択도 밧고 있슴은 果然世界사람이 부러워할 바이다. 其外景致와 風景方面를 살펴 보면은 크게 보면은 韓囗自体은 한 溫順한 사람이 情性을 다하여 하날 対하여 雙手合掌하여 꿀어 앉저 祈禱하는 貌樣이며 東便에는 東海로 西便은 西海로써 싯고 맑켜주는 뜻이 노여 있스며 大陸서부터 三千里半島로 한 地盤를 잡고 있슴이 아 果然世界地圖를 볼적에 第一地形이 貴하게 보이는 겄이 韓囗이라는 겄은 事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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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囗半島를 中心하고 日本은 한 城과 갗치 北南으로 갈러 막고써 있스며 亞細亞大陸은 한 일터로써 福를 約束하여주는 듯한 不変에 保護的位置樣으로 半島를 안으러 하고 있다. 黃海와 東海은 湖水와도 갓고 바다와도 갗치 地球에 全景致에 한 標本形狀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갗은 環境속에 깊이 잠긴 三千里을 中心한 香氣인 동산을 발아보게될 대에 自然界에 勇勢로써 보여지는 北에 웃둑속사 직켜주는 樣으로 그 꼭때기에 天池를 가진 世界上稀貴한 高山白頭山이 있슴을 누가 称吟치 않으라 이 白頭山를 中心하고 三千里은 길이 뻗어서 널녀진 곳을 찾어드니 錦繡강山 名城높은 平壤를 中心한 모란봉 果然 새에루살램 名予도 알맛는 하날이 貴한 択한 땅이 光景를 보게 됨이다. 平壤를 中心으로하여 東方쪽에는 景致風景에 王宮인 金剛山이 있은 바이다. 이 金剛山이야 世界에 景致에 한 꽃으로 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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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 바가 金剛山인 바이다. 이 金剛山은 韓囗에 宝貨인 곳으로 앞날 韓囗에 民族과 世界民族에게 많은 安慰이 中心地로 功獻할 名勝地라는 바도 事実이다. 또 平壤中心하고 北쪽에로 찾어오면 妙香山를 비롯한 蝀龍窟이란 地下金剛名声을 가진 名勝地를 보게 될 태에 果然奇妙함을 称訟하는 바는 当然한 일로 나타나는 바이다. 其外에도 八景名勝地인 名望 높피는 風景地果然 우리 三千里半島에 자랑과 宝貨로 단장된 創造的惠択를 깁피 生覺하면서 창조主에 本意的目的를 찾어 세우여야할 責任이 韓囗인 바이다. 이와갗치 韓囗이란 小半島를 中心하고 全世界에 없는 景致와 各樣貴한 地下資源과 産物과 이 貴한 位置와 氣候로도 世界에 없는 三寒四溫으로 四時를 通한 明朗한 氣候, 山水等, 全部은 모다 創造主이 깁은 恩択을 生覚하는 同時에 이 韓囗은 世界에 한 中心으로 本來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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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造主은 目的하고 지였다는 겄을 짐작키는 事実이다. 이런 貴한 地理的條件를 갓고있는 바이니 하나님이 世界를 対할 때 사랑할러고 하는 中心目的地라는 겄도 알게된 바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韓囗를 通하여 摂理中心地로 하갓끼에 韓囗이라는 나라는 世界에 中心囗이며 韓囗사람 中心한 王이 나서 世界에 義에 王으로 나타난다고 伝한 韓囗予言書인 정감록에 予言케 한 바도 하날이 摂理할 뜻이 있기에 라는바는 事実이다. 其予言를 完成할 수 있는 其存在은 하날로 定한 王이라는 存在인 万王에 王되는 예수 再臨主存在를 말하는 바와 合하여 西洋에 文明을 中心한 基督敎와 東洋宗敎中에서 始作된 予言的理想과 合한 뜻을 보와서 世界統一理想을 完成한 하날이 摂理하는 目的地이니 本來부터 創造主이 바라는 땅으로 되여서 왓다는 바를 表徵하는 事実인 바다. 그러키에 韓囗은 地理的으로도 最高 価値地라는 바도 이런 하날的立場으로 目的하여 있섰다는 바는 明白하게 알바이다. 그리하여 再臨 예수를 中心하고 韓囗은 뜻에 完成를 보아 果然世界에 한 中心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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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世界上에 貴한 文明에 中軸部를 造成하고저 하는바가 하나님의 目的인바다. 그런고로 韓囗 全部은 後日에 囗際에 理想동산으로 한 遊覽目的地로 하고저 한은 理想境으로 발라고 하날은 處하여 있슴을 알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天地創造理想地은 韓囗을 表準하였끼에 이 韓囗은 世界上에 찾어 볼 수 없는 貴한 創造的中心地帶로 된 바를 알 바이다. 이 目的完成하개 할 使命과 責任은 누게있나 하면 再臨主가 中心이 되여서 韓囗사람이 協力하여 나아가 世界基督敎를 總合싴켜서 世界的中心地帶를 造成하여야 하는바가 全人類이 目的이며 또 하날에 目的이면서 하나님의 目的인 바다. 그러니 하날 뜻 反하는 사탄은 韓囗中心하고 反旗를 取하여 서게되는 바이다. 그러무로 至今韓囗人는 하날 対하여 선者로는 至極한 善位에 屬한者 있는 反面에 사탄屬한 存在은 至極한 惡한 者로 世界에 類를 보지 못함도 其眞狀에 発表하는 바도 原理로 된다. 하날이 至極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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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者 있는 反面 하나님이 미워하는 者가 있는 것은 事実이다. 그러니 韓囗은 하날 中心하고 이런 分立를 보니 家庭에서 이런 원수的 分立을 보는바는 한 眞狀으로 되는 原理인바다. 이런 뜻이니 聖經全部은 韓囗에서 完成하여 끝맛는 바다. 우리 韓囗人은 總動員하여 하날 뜻 成事하여서 天地創造根本復帰目的를 完成하여서 世界에 中心地로써 建設하여야 하지 안겠는가? 그리하여 하날에 合하여 깁분에 復帰에덴 동산를 地上에 建設할 바가 最後的使命인바다. 그러니 至今 韓囗中心하고 사운는 目的은 韓囗独立爲한 目的이다. 韓囗独立目的은 世界統一目的으로써 聯하여 步調을 갖치하는 바가 하나님이 뜻이다. 사탄은 韓囗中心하고 最後発惡를 다하고 있다. 하날 代身한 유엔은 第一次 第二次 第三次로써 뜻을 찾저 平和를 目的하여 나왔서 会談하였지만 結局은 目的未達成으로 帰結하여지는 바가 原理인바다. 아모리 하여서라도 유엔과 韓囗은 合하여서 韓囗独立完成하여야 할 바가 하날이 한 뜻으로 되여있다. 그겄은 하날 中心地니 人類의 中心地며 人類의 基本祖囗으로되니 하나님은 UN을 動員하여 協力하게하는 바다. 그러야 本 뜻을 繼代할 수 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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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萬一讓步한대도 사탄便쪽은 結局反対로 対立으로 나타나는 바가 原理인바다. 그러니 韓囗를 中心하고 完全이 사탄追放이 하날이 目的으로 되는바다. 이리하여야만의 모든 하날뜻 成事의 第一步로써 한 所望이 始作을 全世界은 보는 바이다. 그리하여야 韓囗을 中心하고 全世界에 最高信仰者은 動員하여 하나님의 뜻 完成에로 協力하여야 하는바가 今後에 한 目的課業이며 韓囗信仰者은 먼츰 뜻 侍奉에 中心이 되어 世界信仰者들과 合하여 協力에 中心使命를 다하여야 하는 바가 現韓囗基督敎이 한 使命인 바다. 또 其外韓囗宗敎들이 使命인 바다. 또 韓囗사람이 使命인 바이다. 12/14

이겄은 完成함으로 創造的恩択받은 三千里半島동山을 우리가 길이 높이 端裝하여 世界빛내는 바며 創造主 뜻 完結을 보와 基本復帰로 始作를 볼 바이다.

 

 

(김정섭님의 정리분 423장~444장)

第四 節 韓國은 諸宗敎의總結實地

半萬年의 歷史를 가진 韓國民族은 宗敎의 信念心을 많이 가지고 있는 民族이다. 그런고로 韓國民族에게는 그 어느 時代를 勿論하고 그 對하는 곳마다 宗敎的 信念으로 만히 對하여 나오는 民族이니 만침 宗敎構成을 가지지 못한 立場에서라도 信仰을 發揮하여 自己들의 信念目的을 達成할려고 많이 努力한 民族이다. 그러기에 韓國人들은 宗敎觀念이 强한 民族이다.

그러나 儒敎의 精神을 받아 三綱五倫을 完成하기 爲하여 全國家的으로 努力한 全盛時代의 結實인 李朝 歷史를 찾을 수 있다. 그리하여 儒敎는 韓國을 中心하고 그 目的을 最高發揮한 나라라는 바는 事實인 同時에 그의 信念心은 至今까지 熟練한 級에 사람들은 大槪가 全部는 儒敎精神을 習得하여 나오고 있다. 이 儒敎的 精神은 至今까지 그 使命的 節介를 維持하였기에 韓國은 至今까지 儒敎를 中心한 東洋의 한 中心地로서 그 믿음을 높이 가지고 있음으로 韓國을 東洋禮儀之國이라는 歷史的 由來를 가지고 있는 바이다. 이렀틋시 儒敎는 韓國人에게 큰 敎養的 中心으로 偉大한 力活로서 歷史를 지내왔다. 그 儒敎的 思想은 外政下에 있스면서도 그 思想을 세웨 나온바는 事實이다. 그리하여 外政 以後에 新文明 文化世界를 바라보아 新生을 하여 出發된 時代를 當하여서도 自己들이 遺傳하여 崇拜하든 孔孟의 思想을 中心한 道를 中心하고 高尙한 道德心을 가지고 나온바다. 그러면서 新時代를 當하여서 韓國의 立場은 壓政을 當하니 自然的 因習思想이 濃厚한 儒敎的 思想은 漸次로 刺戟받아 減少하여 나오는 方向으로 向하게 되였다. 그러면서 儒敎的 思想을 가진 人士들은 그 時代에 발라는 바는 다시 國土復歸를 希望하여 나오는 中에 韓國에 대한 豫言書로서 나타나 있는 鄭鑑錄을 硏究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外政을 對하여서 自己들의 態度를 定하고 韓國이 復歸되어 全世界의 中心國으로 된다고 알려주는 鄭鑑錄을 한 中心点으로 하여 나오게 되였다. 이러케 韓國民族은 儒敎를 崇拜하는 知識層에 屬하는 者들은 大多數가 이 鄭鑑錄을 中心으로 하여서 國土復歸와 同時에 韓國의 한 理想境을 論하면서 至今까지 나오고 있는 바는 事實이다. 그러니 이 豫言書는 果然 時代的으로 모두가 마저나왔다는 例에는 至今 韓國全民族을 말하면서 그 豫言書를 많이 崇尙도 하고 있다.

 

이러케 儒敎의 思想은 鄭鑑錄을 中心하고 基本目的인 儒敎의 道德觀念보담도 鄭鑑錄 支待思想으로 儒敎人들은 立場을 세울수 있는 路線을 取하여 나타난바가 外政을 相對로하여 同學이라는 名稱으로 하여 民族運動을 이르킨 것이 卽 三日運動 己未年 事件인바이다. 이리하여 東學黨은 한 敎派를 세웨 宗敎모양으로 理想을 잡아 世界없는 天國理想을 中心하고 天道敎라는 名稱으로 나타나 至今까지 나오고 있다. 그 모든 中心은 韓國을 中心한 豫言書 鄭鑑錄을 中心하고 그 目的完成標準을 定하고 나오고 있다. 儒敎는 韓國의 新形體를 가진 한 敎를 成하여 놓게 되였다. 그런고로 儒敎的 한 結實한 存在를 天道敎는 그 位를 가지고 있다. 이러케 韓國人은 信仰을 끝까지 變치 안코 나오고 있으니 新敎理는 天理를 通하여 내게 된다.

또 佛敎를 두고 韓國을 살펴보면 亦是 佛敎도 李朝時代를 中心하고 많은 發達을 하여왔지만 外政下에서도 佛敎는 많은 長成을 보아왔다. 그리하여 佛敎亦是 全盛을 본곳은 韓國이다. 그리하여 佛敎는 韓國에 있서서 特히 한 末來에 대한 極樂思想으로 나오면서 韓國에 對한 豫言的 宣言을 많이 하여 왔다. 그리하여 韓國 豫言書를 記錄한바도 佛敎에서 始作함바도 事實이다. 이렀틋시 韓國 三千里를 中心하고 佛敎로 全盛目的 完成하게 하여 創造主의 神喜와 世界에 對한 豫言을 찾는 그 使命적 責任이 큰바도 事實이다. 이러케 하나님 東洋에는 基督敎가 없든때도 이런 敎들을 通하여 하나님의 末來의 地上目的과 天國目的을 敎로 세웨서 그 路程을 發表한바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한분이니 그 目的은 同書로 나누어 있는대도 終局에는 한 目的 基点上을 向하여야 하는바가 하나님이 계시는 原理的 事實인 바다. 至今이 佛敎도 亦是 그내들이 나가는 方向을 새로하고 있는바는 事實이다. 卽 二十世紀 文明世界를 떠나서는 그 目的 未完成할바로 알고 있다. 언제나 宗敎란 것은 사람을 中心하고 始作하는 바인데 사람 生活境地를 間隔하고는 그 点을 大衆에게 傳할수 없는 바도 사실이다. 이리하여 韓國의 佛敎도 亦是 至今 韓國 豫言書인 鄭鑑錄은 天道敎人과 儒敎人과 佛敎人이 全部 한 現實에 발라는 한 現實理想境으로 되어 있는 바는 事實이다. 이렀틋시 韓國宗敎 中 儒彿敎는 또 天道敎는 全部가 韓國 豫言書로서 그 目的 標準을 한곳으로 向하여 集中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最終末에는 原理完成을 中心하니 敎들도 統一이 目的이니 이런 古來에 오는 韓國宗敎는 한 基点을 向하는 바로 하나님이 韓國을 中心하여 攝理하고 있다는 證據는 事實이다.

 

여기에 特히 天道敎는 近三十餘年 歷史를 中心하고 韓國에서 始作한바는 하날의 存在目的完成할 앞날의 터를 닦기 爲하여 그 存在가 나타나기 直前에 始作하게 한 뜻이 있슴을 아러야 한다. 地上天國 目的을 바라고 나오는 그 敎는 바로 하나님의 뜻 하는 韓國에 있서서 準備한 敎인바다. 이러케 하나님이 하날 存在를 보기 前 이와갗은 한 完成基臺를 잡으여야 하겠으니 이런 敎가 생기는 것은 하날 目的이었는 바이다.

이리하여 韓國을 中心하고는 全宗敎는 한 目的点을 向하여 움지겨 나옴은 끝날 하나님의 目的은 하나이니 그 宗敎目的도 하나님 뜻 돕게하기 爲한바의 目的으로 完成보는 바가 原理인바다.

世界統一云云하는 時 오기전에 宗敎的 統一点을 보지 않으면 世界統一 完成을 보지 못하는 바다. 以外 宗敎는 至今 現文明과 合流化하여 役事하는 基督敎를 살펴보자. 韓國 基督敎는 近 80年 歷史를 두고 世界上 이와갗치 急速度로 敎布한 나라는 없는 바다. 이 基督敎는 韓國에서 많은 虐待를 받으면서 至今까지 信條를 維持하여온 歷史를 갖고 있는 바다. 特히 舊敎의 犧牲도 더욱 큰바이였다. 이리하여 하날 對하여 빌수 있는 길을 잡은 韓國人은 精誠다하여서 하날 對하는 信仰生心을 韓國民族은 세웨 나왔다. 이 民族은 將來에서 第二 猶太民族이라 하여서 全世界人이 말하는 바도 큰 意義있는 바이다. 모든 面으로 볼 때 한 關聯있는 民族인바는 事實이다. 特히 靈으로 敎示받는 信仰者에게는 韓國은 基督敎를 中心하고 至今 最大 標準國과 合流를 보고 있는 바는 事實이다. 이 韓國 信仰界도 亦是 全世界의 한 結實地로서 그 立場의 位를 높이 잡고 있지 않는가. 神奇한 異蹟도 至今 많이보고 있는 事實로 보아도 果然 世界 없는 位를 갖고 있다. 이 韓國敎界는 二十世紀 現時代를 두고 世界上에서 代表的 苦痛도 信條 爲하여 받아왔다. 外政下의 그 極難에서도 참고 勝利한 崇高한 信仰節介者 어데 딴 곳에 볼수 없는 現代的 最高 殉敎國家이다. 外政을 中心하고 그 苦難과 그 共産主義를 中心하고 當한 悽慘한 虐殺 等 果然 現世界에 類를 볼수 없는 國家인 바다. 外政 紳士參拜問題로 信仰貞操를 犯한 것은 하날적으로 完全하게 蕩減키 爲할려니 그 殉敎的 사람들은 한 祭物로서 代身되어짐을 韓國敎界信仰者는 잊어서는 아니될 바이다. 再建敎會가 나와 그 使命的 役割을 다하고는 다시금 하나님의 基本点 合하여 하나되어야 할 時代는 멀지 않어 발라는 바는 事實이다. 그리하여 複雜한 歷史를 通하여 오면서 善血의 殉靈을 높이 讚揚하여 하날 뜻 完成에 全力 다하여야 할바가 事實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지금 韓國의 信仰界를 살펴보면 特殊한 새일들이 信仰界를 中心하고 많이 보여지고 있다. 지금부터 近二十年을 中心한 韓國基督敎會에 하날便으로서 보냄을 받아 나타났던 最高信仰者들을 異端의 中心者로서 埋藏하였든 그 存在들은 果然 하날 뜻 中에 크나큰 使命存在로 보내심을 받은 存在였다. 그는 멀지 않아 外政惡魔를 對比하여서 한 基臺를 세우려고 하여 보내였든 存在를 價値 없이 보내게 되였다. 至今 그 뜻을 中心하고 새 祭壇이 始作보았으니 그 自體의 偉勢를 至今 왜 잠기고 있는가. 果然 뜻 無知의 人間 對하는 하나님의 攝理는 엊지되어야 하겠는가. 完成할려니 사람 믿지 않음은 昔日이나 至今이나 同一한바이다. 그러나 뜻은 참으로 成事를 보아야 하겠으니 하나님의 使命을 받들어 이 뜻을 記錄하게 되니 엊지 마음으로 嘆息치 않으랴.

 

韓國은 하나님을 中心하고 最後的 目的完成을 標準하고 바라보고 있기에 그 攝理的 役事로 어데 特別한 信仰存在들을 通하여서 새로운 일들을 發表케한바도 크나큰 原理가 있는바이다. 그겄은 모두가 뜻 協力하는 基督敎信仰 路中에 없는 全部 새로운 겄를 發表하는 바는 뜻 成事 標準하는 바도 뜻 成事를 標準하여서라는 바는 事實이다.

 

韓國基督敎는 큰 難事로서 對할지 모르나 特히 내가 발라는 바는 敎示받는 者는 이 發表보고 祈禱로서 解決받으라. 그러면 그 하고 예수 再臨이란 發表에 對하여 그 根本을 알고 對하여야 할바가 現 韓國基督敎의 使命이다. 萬一 否認하고 나면은 全部를 未解決的 世界로 될바다. 그런고로 이 뜻을 알고 날 때 크나큰 歷史的 變更을 韓國을 通하여 攝理하는 바를 알수 있다.

이리하여 모든 原始的 中心을 基督敎가 쥐고 新蘇生出發하여야 할 책임이 있는바다. 이리하여 韓國에서 뜻 成事할수 있게 하여야 하겠으니 外部的 宗敎들도 한 理想基点으로 바라고 있는 存在는 사람이란 存在는 事實이다. 그런고로 原理的 論理로 보면은 아담으로 와야하는 基督敎再臨主도 韓國人으로 와야한다는 모든 根本을 알게 될 때 世界信仰界 全部도 한 解決의 新( )을 定하는 바가 始作하지 아니하겠는가. 그러기에 現世界의 特別한 有志들은 再臨한다는 發表를 할바가 맞지 안코 있는 듯 하나 사람으로 오니 後三十餘間을 中心하고 再臨한다는 發表가 있어야하는바가 原理인 바이다.

그런고로 이 再臨主 存在를 豫言한 外部宗敎의 豫言書로 된 鄭鑑錄의 中心存在란 바가 東西洋 分立하여 攝理하나 한 目的基点向하여 完成할려는 하나님 뜻의 成立는 보는바도 된다. 그러므로 至今까지 나오는 基督敎의 未解決을 解釋하고 新理想世界 出發을 발라는 바는 事實이다. 지금 이와갗은 韓國의 基督敎的 使命을 完成하여야만이 全世界를 通하여 뜻 完成의 한 路程을 造成할바다. 그러므로 基督敎 中心하고 韓國의 宗敎는 合하여 한 路程을 造成할바다. 그러므로 基督敎 中心하고 韓國의 宗敎는 合하여 한 目的基点을 向하여 理想을 始作하지 않으면 안될 全韓國民族의 使命인 바도 된다. 그러기에 全宗敎는 自己들이 崇拜하는 하날 對하여 敎示로서 解決받아야 할바가 目的으로 되어있다. 얻던 宗敎信仰者나 最高位에 있는 信仰者로 神의 敎示를 받는 바니 믿지 못할진대 神을 通하여 解決받아 大衆 對하여 基本使命 다 하지 않으면 안될바가 크나큰 나머진 課業으로 된다.

이리하여 韓國으로부터 全世界 없는 한 所望인 同時에 한 기쁨의 消息인바다. 그리하여 原理世界로 찾어 原理로 사는 者는 全部가 天國은 勿論인바다. 原理復歸世界에 사는 民族은 全部가 天國을 自然的으로 나타나는 바다. 그러기에 本原理復歸世界가 卽 理想世界인 바이다. 墮落없었으면 宗敎란 問題없이 그저 뜻대로 生活하면 天國은 自然原理였든 바이다. 그런고로 앞날 理想世界는 宗敎란 名詞가 必要치 안코 그저 生活로 되는 原理復歸世界로 된다. 그 原理로 살면 그저 救援完成이라는 바가 目的으로 된 時代가 理想時代인 바이다. 이 時代를 基督敎의 地上天國時代라 하는 바이다. 이 때에 예수의 最高目的 完成하는 때라는 바는 事實인바다. 그러니 韓國이야 世界中心地가 되는 바가 原理世界를 始作하는 中心地이다. 世界中心地라는 바이다.

 

[h-180]

厂史的 실두루마리 原理的 解決은 韓囗에서 始作

 

厂史의 실 무더기는 하나를 端緖로 하야 始作하고 돌고 돌아 지내서 六千年 年限을 두고 도라왔건만 始作된 끝과 終熄되는 끝은 自由롭게 감기어 나온것이 아니매, 틀어지고 웅크러져 始作과 끝을 잡을 수 없는 두루 뭉두리된 厂史의 實相은 누가 歎息치 않으랴. 이 歎息을 햇치려니 現實과 지내온 厂史와는 알 수 없는 흥크러 짐으로 나온것에 대하야 이 두루 뭉두리 된 厂史의 끝을 잡아 終熄點을 찾어 한 自由의 실 무더기로 만드러 보려고 所望하여 나온 바가 歷史的 所望城으로 되어 뜻 있게 왔든 聖賢과 偉人 烈士들은 이 길이 잠겨진 端緖의 한 끝을 잡아 단겨보나 제 멋대로 웅크러진 실무더기는 自由롭게 나에게 한빰의 길이도 融通못하니 이 끝을 잡고 나타났든 偉人 聖賢들은 絶望과 함께 歎息의 惡憂의 根據地로 저주하고만 이 실무더기는 如前히 回傳을 繼續하여 變함없는 하루의 延長으로 웅크러지면서 굴어나오고 있다. 이 흥크러지게된 歷史的 실두루머리를 골라 펴 놓아 自由의 실두루머리로 하고저 함이 歷史的 要求였고 굴러나가는 未來의 要求에도 된다. 이 실두루머리가 한 自由端緖로부터 自由 終熄点까지 감길 수 있는 실두루머리를 本來부터의 原理를 갖이고 存在하는 실두루머리의 目的이었건만 存在할 수 없는 흥크러짐의 모양이란 全部 全體에 대하여 存在의 實相이 실두루머리를 슲으게하는 矛盾의 始作이다. 이 始作은 存在하는 価値性을 破壞하야 찾을 수 없는 隘路의 무더기로서 그 眞相으로! 그 眞相은 全部가 원한의 根據地로 되어 死亡의 구렁텅이로 通하게 되는 처랑한 모습으로 変하여 나왔다. 그러면서 人間들은 찾고 찾아 始作된 端緖와 끝된 端緖를 찾아 당기어보니 당기면 당길수록 실무더기는 올모로 되어 한덩어리 罪의 두루뭉시로되어 당기는 者의 멋대로 이 실무더기는 움직이게 되니 끝은 있으나 그 繼續을 연한 실무더기로되 한 갈래 갈래에 연하여 있는 실 모습도 찾어 볼 수 없이 한 두루뭉시라도 보이게 되니 끝을 잡고 있는 者들의 마움대로 끌리어 당기는 두루뭉시의 놀음 놀이가 노알의 歷史의 表現으로 된 現實의 實相(실상)이다. 始作한 첫 끌을 잡으려 할때 유심(唯心)의 문은 열리게 되고 나종의 끌을 잡으려 할때 유물의 (唯物) 문으로 通하게 되니 始作의 문을 나온 歷史의 出發은 굴기 始作하는 路程을 取하여 꼬부라지고 웅크러진 軌道를 잡아 굴어나와 돌고 돌아 두루뭉수리의 길을 잡고 나오고 있으니 뒤를 도라보아도 흥크러진 실무더기은 앞을 보아도 흥크러진 실무더기니 이 끝 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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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헤아릴 수 없는 한 무더기를 이루어 나종 끝으로 쥐이게 되는것이 唯物의 문으로 起着点을 잡게 되어 있는 바가 歷史的 실두루머리며 人間世界의 실두루머리인바다. 처음 끝을 잡고 있는 者가 唯心이요 나종 끝을 잡고 있는 者가 唯物이니 (사탄) 서로 당기어 이 실두루머리를 自己便으로 갂이 옮겨 놓으려고 하고 있으매 옮기면 옮길 수록 自己에게 가저 놓을 수록 옮겨지는 自體에 대하야 한 끝은 反作用의 原理에 比例되는 力의 反作用을 받게 되니 하나 당기면 相對便이 헤기우고, 相對便이 헤기우면 이 便도 당기어 漸漸 疑心하게 웅크러지는것은 두루뭉시리의 실 무더기 뿐이다. 이것을 풀려하는 人間에게 있어서는 唯心的 끝의 部分과 唯物的 끝의 部分만이 原理 現線인 모양으로 보여짐에 唯心은 唯心編에서 解決向線을 向하여 나오고보면 唯物에 固着되어 당기여 있는 실두루머리를 逢着하고 唯物에서 自由向線을 取하여 찾어 올라가면 唯心便에서 당기고 있는 실두루머리에 逢着하게 됨이니 唯心에서 唯物로 通하야 하는것이 原理의 끝을 가진 連하여 있는 실 두루뭉시리의 路程을 通하여야 만이 되겠고, 唯物에서 唯心에로 通하여야 하는 것이 原理의 끝을 가진 連하여 있는 실 두루뭉시리의 路程을 通하여야 만이 되겠고, 唯物에서 唯心에로 通하여야 하는것이 原理인데 이 두 두루뭉시리된 실무더기를 通하여야 만이 끝에서 끝을 通하는 바인데 이 두루뭉시리의 通하는 길을 찾어 보러니 요길도 고길 같고 고길도 요길 같애 붙잡을 수 없는 形線을 取한 路程이매 通하는 길은 잡을 수 없으매 이 두루뭉시리의 路程은 除하여 놓고 끝만으로 모여주는 그 自體들만으로 갖고 처음과 始作으로서 맺고저 하니 唯心便만으로하고 보면 唯物이 달려오고 唯物便만으로 하고보면 唯心이 달려오고 하는것은 흥크러진 실무더기가 나타날 未知의 路程으로 그 存在를 갖고 있기에 그 取하는 自體들의 始作 끝에는 自然的 膳物로서 보여짐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풀기 위할래는 것이 人間의 理想인 同時에 創造主의 바라는 바의 所望이매 두 끝을 그냥 잡고 있어서는 풀릴바 萬無함으로 한 끝만을 固着시켜 놓고야 만이 다음 끝으로 되푸리 한 路程을 反復하여 풀어 올라가야만이 될바가 至今 실무더기를 풀려고 하는것이 現時的 課業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한 끝을 놓아야 하겠는데는 造物主가 계심으로 뿌리되는 唯心論的 根據를 놓을 수 없는바이다. 이를 놓으면은 中心을 잃어버린 存在物과 같이 居處없는 方向線을 取하여 回傳하다가 破壞를 이루는 것이 原理的 事實이며 葉部인 唯物的 事實이 놓으여야 할 責任이 自然公式原理로 되는바다.

 

[h-182]

그럼에 두루머리의 現實의 歷史的 潮流는 한 寄着點을 보아야 할바가 要求되는 路程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造物主가 있다 할진대 必然的으로 끝을 잡고 있는 唯物的 固着點은 끊겨 지어야 되는바가 原理로 되는바다. 그렇게 하면 이 실 두루뭉시리는 唯心便으로 옮겨 놓아 創造主인 根本体앞에 나타나게 될 때 이 실 두루뭉시리의 端緖로부터 낱낱이 골라 놓아 歷史的 路程에 펴 놓아 唯物的 根據地까지 一平線路程으로 펴 놓을 수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卽, 歷史路程을 主管하여왔든 主人公이기에 이런 실무더기의 흥크러진 通路를 움지겨 나왔기에 이것을 풀 수 있는 存在 基本되는 創造前級에 屬하는 하날의 存在가 아니겠는가? 이 目的 課業을 감당하기 위한 그 存在가 歷史的 中心存在며 原理完成할바는 말할 바 없는 바이다. 그러므로 이 存在는 하날的으로도 中心存在은 또 歷史的 人類에게 대한 中心 存在로 되는바는 事實이다. 人間은 그저 이 歷史的 두루뭉시리를 푸는 그 中心 存在를 所望星으로 하여 그의 뒤를 연하여 푸러야 할 第二次的 立場에 세우려 하여서 創造主는 그 中心 存在로 因하여 풀 수 있으매 뭇 人類에 대하여 이 存在에게 合하여 하나 되라고 要求한 바로 보내신 存在가 卽, 그리스도 예수이었다. 예수는 이 全部의 路程의 目的을 풀 수 있는 길을 다 잡지 못하였기에 再臨이라는 名詞를 남기고 가게 되었다. 그러매 歷史的 모든 人類는 예수를 中心하고 설 수 있게 되매 다시 人類앞에 남어진 根本의 路程을 찾어 주어야 하겠으니 地球上에 나어져 있는 唯物史觀을 通하야 役事하는 사탄의 固着點을 끊어야 할바이니 이것이 끊겨야 만이 하날 (創造主)의 뜻대로 이 실두루머리를 풀 수 있겠으니 이 対業을 取하게 하는것이 終末 審判의 劃期線이다. 그리하야 한 끝은 끊였으니 하날의 自由 (뜻대로)로 原理路線을 찾아 展開시킬 수 있갔으메, 이 뜻 目的(목적)을 두고 보내심의 그 存在(존재)가 나타나여야 할 再臨主의 存在이다. 이로 因하야 끝에서 끝으로 通 할 수 있는 웅크러진 실무더기를 펴 놓는 自由路程을 建設하는 目的의 完成을 볼 수 있음으로 墮落이 없었든 그 原理的 世界를 門으로 하여 온 人類가 이로 因하야 웅크러졌든 실무더기를 보지 않든 끝에서 끝 通할 수 있는 自由路程을 取할 수 있는 原理를 다시 찾어 이룰 수 있는것이므로 復歸라는 名詞로 完成되어 無限히 通할 수 있는 始作點부터 終熄点까지 通하여 거리낌 없는 向

 

[h-183]

線으로 다시 始作點의 企劃을 보게 될 때에 原理的 路線은 完成됨으로 永遠이라는 바는 自由 原理인 것이다. 이 路線에 선 者는 始作과 끝을 잡는 者로서 처음과 나종을 通할 수 있는 要素로서 알패와 오메가的 理想(을 完成하여 原理脫線없으면 永遠 自由向線에서 活動할 수 있는 解放 存在로 하게 하고저 함이 人類 対하여서 約束하였든 中心 存在로 因하야 始作되는 새로운 主義世界가 展開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存在로 因하여 누구나가 解決하지 못하든 엉크러진 실무더기를 햇치어 原理的 路程으로서 建設하려니 歷史的으로 未知였든 端緖的 路程이 보여지어 萬原理와 通 할 수 있는 共通 基點으로 되어야 할바이므로 흥크러진 歷史的 실 두루머리를 解決할 수 있는바이다. 그러니 누구나 이 基盤우에 서서 自由 原理理想을 復得하게 될 때 至今까지의 원한의 根據地도 움직여 나오든 回傳은 変하야 所望의 回傳으로 永遠無限世界로 向進을 始作케 할바가 蟊賊으로 되었다. 只今, 이와같은 根據로 된 原理世界를 目的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至今, 時期的 段階는 어떠한 때인가를 考察하지 않을 수 없는 重要 立場에 서 있음을 忘却하여서는 아니된다. 至今, 보면은 두 路線은 非原理로 出發한 膳物로서 나타나는 結果的 路線이니 原理的 唯心과 非原理的 唯物이 相隔을 取하여 두루뭉시리인 실 두루머리를 中間에 놓고 自己便으로 (右, 左, 上, 下) 당기고 있는 現實的 實相이니 어찌되어야 하는 結論은 各自의 推測으로 맡至今, 地球上에 唯物主義가 나타나여 모든 原理的 眞理라고 말하는 바는 한 끝만 쥐고 두루뭉시리를 中間에 놓고 한 끝의 部分인 엉크러지지 않은 部分을 全部로 알고 있듯이 主張하고 나오고 있는바가 唯物主義로 되어 있다. 卽, 解決해야 할 실 두루뭉시리를 모든 基本의 中心으로 하는 物質格 中心地로 잡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連結되어 있는 唯心的 한 端緖의 立場을 잡지 못하는 末級的 段階에서 論理하는 事實을 摘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主義를 根本的으로 破壞시키어 이 실 두루머리를 通過하여 唯心的 端緖의 起着点을 연하게 하여 주어야 할 使命的 潮流時代가 現潮流的 象徵인바다. 歷史는 始作하였으매 完成의 目的을 向하여 움직이고 있나니 이 右左의 判決을 짓는 때가 原理上에 먼츰 나타난 非原理 世界의 始作의 完成期이다. 그리하야 새로운 原理 世界는 出發을 보아야 할것이 地球上 한 基点을 中心

 

[h-184]

하고 나타나여야 할바가 要求되는 바이다. 여기에 非原理的 時代로부터 原理世界에 드러서게 될 때에는 前에 論한 歷史的 起點은 作定하여야 할바이므로 原理와 非原理와는 相対를 지어 한 線을 境界로 하여 対陣하지 않을 수 없는 中心 線 起點으로 된다. 이 起點의 立場이야 非原理의 最終部의 末路이며 原理와 始作의 起點인 바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世界上에 이 起點地帶는 새 出發의 起點地帶로서 나타나여야 할바가 根本으로 되어야 할바는 사실이다. 그것이 卽, 歷史的 所望의 터요 希望의 터이였다. 卽, 非原理 存在인 사탄과 原理 存在인 하날과 決戰할 勝敗를 決하는 起點地라는 바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그 起點地부터 歷史的 새로움의 端緖가 始作 되어야 하는 바가 歷史的 要求로 바라든 所望의 始作이라는 것은 아러야 한다. 至今, 이 起點線上을 分로하여 싸우게 하는 中心起點과 그 線을 世界上에 찾어 보게 될 때에 韓囗이라는 나라를 起點으로 하고 三八線이라는 線을 分立線으로 하여 歷史的 終止符를 찍고저 하는 이터야 말로 人類의 서로움과 悲哀의 기점이 되는 同時에 幸福과 기쁨의 기점이 되어야 한다는 原理的 結論上을 離脫할 수 없음애 그 기점을 向하여는 하날이 總動員하는 기점임은 사실이고, 또, 그와 反面에 惡이 總動員하여 나타나는 起點하여 나타나는 起點임은 사실이다. 이 原理的 対峠戰을 바라보는 世界人間들은 不安으로 바라 보야 할 焦點地라는 것은 事實인 同時에 反面에 希望의 焦點地라는 것도 事實로 되어야 하는바가 事實이매 歷史上에 없는 새로운 사실들이 이 起點地 韓囗을 中心하고 이루어 질바는 이에 더 論할 바 없는 事實이다. 그럼에 世界 平和의 새로운 機構로 된 UN은 韓囗에서부터 그 本 出發을 보는 바이고 反対인 共産 衛星國家도 韓囗을 対하여 相衝을 보지 않으면 아니될 歷史的 攝理路程의 根本地로 되기에 이러한 現象을 展開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韓國平和는 世界平和의 起點되는 平和로서 되어야 하며 韓國戰爭은 世界戰爭으로 나타나는바가 結論的 目的으로 되는 바이다. 또 이 韓囗은 하나님과 사탄과 사람을 中心하고 対峠되는 戰爭이매 그리스도의 理想을 出發 볼 수 있는 解決 짓는 根本의 戰爭이며 追放으로 하는 審判 目的 完成하는 根據地이매 聖經完成하여야 할 空中 再臨과 함께 地上 再臨의 目的을 完成하여야만이 하나님이 攝理하여 오든 歷史的 새로운 出發로의 基台 잡을 수 있는 바이므로 하나님을

 

[h-185]

中心한 世界人은 總合하여 하날 直接主管으로 나타나여야 할 바가 目的이므로 韓囗 戰爭中에 歷史上에 보지 못하였든 그리스도 空中現顯함이(기독교新聞 發表 一九五一年(1951년) 十月(10월) 三十一日(31일) 水) 한 神奇한 일로 世界 사람은 生覺하고 있는 바이다. 이리하여 韓囗戰爭은 世界戰爭으로 또 韓囗戰爭은 하나님과 사탄의 戰爭으로 旣必코 勝利할 綿羊的 하날便되는 UN機構는 山羊的 共産國家를 敗亡시킨 後에야만이 平和理想을 始作하는바가 原理로 된다. 이것은 사탄이 最後屈服이므로 完成되는 同時에 非原理的 歷史를 終決짓는 바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原理的 平和理想을 中心한 新天新地라는 新世界는 希望의 世界라는 展開로 볼 바가 原理的 根據點으로 되어 있다. 이리하여 흥크러진 歷史的 실두루머리는 終止符를 찍고 始作 끝에서부터 나종 끝으로 通할 수 있는 한 回路的 理想을 完成 할 수 있는 理想論을 中心한 善의 世界의 目的을 中心하여 唯心, 唯物의 分別없는 一體的 目的을 完成하야 円和世界를 建設하야 할 바가 하나님의 바라는 바의 目的이며 또 人類가 질머진 課업으로 되어 있다. (1951年 11월 18일 아침)

 

445

을 알 事実이 않인가 그런고로 至今現世界基督敎은 科学世界를 主管 못하면은 全世界은 科学主管하는 곳으로 自然的으로 向하는 바이다. 그러니 原理発展한 科学을 하나님은 主管하여야 할 바가 않이겠는가? 하나님便的 基督敎은 未知얻든 科学基本까지 밝혀서 科学과 合하는 길을 찾으여야 할 바가 最高目的인 바다. 現世界사람은 宗敎라면은 非科学的인 줄 全部가 알고있다. 그겄은 큰 誤解다. 宗敎은 原理完成中心되어야 한다. 참 科学的은 宗敎로부터야 하는 바가 창조주가 계시다는 以上要求되는 바가 않이겄는가? 그러나 宗敎原理最高은 科学原理最高와 合하여야 하나님과 世界와는 卽 하나님과 二十世紀以上文明과 合하여 하나님의 主管으로 나타나지 않켔는가? 이러니 至今基督敎中心囗家들은 前程에 暗焦을 逢着하고 있는 바이다. 그러니 未知에 原理를 밝켜서 全世界를 合한 原理目的를 基督敎은 責任를 지고 있는 바이다. 또 現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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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基督敎를 向하여 竭望하고 있는 바이다. 그저 非原理的立場를 変하여 原理的態勢를 取하여 新劃期線를 지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야 하나님의 最高目的인 対像原理를 完成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모든 原理的立場에서 宗敎에 原理를 밝켜야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至今 여기에 새로운 한 原理를 発表하는 바도 全原理를 合하게하기 爲한 目的인 바다. 卽 科学的立場과 合하는 한 基奌를 잡고저하는 바가 基本으로 된다. 하나님이 계시는 以上 이 目的을 地上에서 完成하여야 하나님의 地上摂理은 完成를 보는 바이다. 그런고로 宗敎은(基督敎) 뿌리니 卽 하나님便이니 이 根本原理를 세워 주워야 하는바이 根本目的으로 되여 있다. 내가 発表하는 対像原理完成 표준한 原理은 現科学를 硏究하는 者들로써 新론 알아서 新原理를 많이 発見하기를 발아는 바이다. 그러면 다시 存在原理은 対像完成에서 始作한다는 바를 살펴보자. 科学原理은 찾어 올나오는 原理요 宗敎原理은 찾저 내리오는 原理로서 하나로 合하지 않으면 안 된다. 創造主가 계시는

 

447

以上合하는 바가 目的이 않이겠는가. 그러면 科学를 찾어보면 뉴톤이 萬有引力를 찾저 其로 因하여 모든 天文学世界까지 至今科学에 한 元祖이 立場를 取하고 있는 바다. 그리하여 其 発展은 二十世紀文明時代까지 와서는 아윈슈탄인이 相対性原理까지 나오고 있다. 果然 이 科学者들은 被造世界에 原理를 硏究하여 全体에 原理를 展開할 수 있는 方向性를 取하여 준 바는 公式를 通하게 하는 其本原理創造性이였기 때문에 되는 바는 事実인 바다. 뉴톤을 中心하고 말한 存在物은 引力를 말하고 있다. 果然引力이 発見은 科学에 偉大한 功獻에 基実이다. 그러면 引力이 生起은 原理은 엊지하여인가 큰 問題로 되어있다. 力이라는 겄의 生起은 理由를 알고저 할 때 目的를 完成하기 爲하여서 出発을 본는 바에 作用이 力인바다. 引力도 生起은 바다. 勿論存在目的完成하기 때문이라 力은 現宇宙에 얻던 対像을 注入하여 作用를 중심하고 目的路程으로 하고 있다. 이 힘이 通하는 곳에는 其周圍에도 其作用的要素를 보여준다. 그겄은 電氣原理은 보면은 잘 알게된다. 電氣通하면 電氣나 原素에 應하는 要素作用를 主로 하다 딴 方向를 取하여서도 感応作用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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卽原線에 通하는 電氣에 対比되는 要素로써 其周圍를 作用하게하는 力를 남겨주는 바는 사실이다 그러타면 이런作用에 힘이란바는 本電氣에 要素에 딸아서 其作用性도 달라지는 바는 事実이다. 이런 本電氣에 要素도 周圍에 作用됨을 電氣要素와 같은要素로써 作用한다. 卽 갗은 原電로써 展開를 보는 바다. 그와 한 가지로 本來力이 作用하기 爲하여서 本体作用에 應하여 其作用 모양도 変하는 바다. 그런데 至今地球면 地球에 対한 引力이란 力이 作用를 갓고 있다면 그는 곳 얻던 本体에 力를 갓고 있든가 그러치 않으면 作用的被存在인 引力을 가젓다는 것을 生覚케된다. 이 生起는 바는 한 存在目的完成하기 한 곳에서 만이 始作한다. 이겄이 卽 力이 原理로 된 바며 力에 作用原理인 바다. 그러면 引力이 있는 바은 原理完成하기 爲한 作用를 完成하기 爲한 存在하는 것은 事実인 바다. 그러면은 地球의 目的은 存在하기 爲하는 目的을 갓고 있다 그러면 받드시 相対를 잡고 나타난다. 그러면 地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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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対은 딴 存在로 되어지는 바는 原理的事実이다. 그러면 地球를 中心하고 太陽으로써 太陽으로 星辰世界에 対한 無數한 相対存在들를 発見하게 된다. 그러면 地球면 地球에 引力은 自己를 爲한 힘인 同時에 한 相対에 対하여서 作用하여야 하는 力으로 되는 바도 事実인 바다. 그러면 地球自体가 引力를 保有하고 있는 以上에 받은 힘만으로써는 其存在할 수 있는 支奌를 取할 수 없다. 그러무로 存在할려니 주는 作用力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卽 引力에 比例되는 주는 力를 가저만이 비로써 其基本原理存在에 한 相対를 잡아 対像立場를 잡고 나게 될 대에 그는 原理線上存在에 立場를 始作하는 바이다. 그런고로天体世界은 太陽를 主로 하여 전부는 作用하는 相対할 수 있는 位置를 잡고는 주고 받고 하며 또 対像格들을 中心를 向하여 作用하여야만이 한 天体世界에 存在이 立場를 確定진는 바다. 그러니 天体世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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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有에 存在原理를 構成할 수 있는 뉴톤이 말하는 萬有引力이 있는 바이다. 이것을 새로 말하면 引力뿐만이 안이고 무슨 力를 造成할 対像原理完成하여 한 回路的原力를 갓고 있다. 卽萬有対像原力를 갓고 있는바다. 그러니 뉴톤이 말한 引力분이 않이고 創造原理인 対像原力를 갓고 있다. 이 原力를 가져야만이 存在한다 그러치 못한 存在은 얻던 存在에 合하여지고 만다. 그러니 天体界에서는 太陽를 中心하고 주고받고 하여 한 中心곳을 向하여 한 回路를 各存在은 갓고 全部을 中心과 完全한 対像으로 対하여서 한 回路完成하여야 創造原理完成한 基台이니 破壞없는 存在位置로써 原理主人이 계시는以上 그도 갓치 있는겄이 事実인 바이다. 그러면 天体世界은 中心를 한 곳으로 하며 各自各存在은 主로 中心를 相対로 하여 対像를 取하고 또 其位에 있는 存在들은 같은 要性存在들까지 中心에 対하듯이 相対로서 対像的第二位置와 聯하여 한 回路를 造成하여 中心과 갗치 通하여 한 平衡互黙(*點).를 갓고 있다. 이런

 

451

存在들은 그것이 全部合하여 한 位置을 갓고 또 잦은 原理로써 딴 位置에 處하여 같은 要性存在와도 中心를 取하여 間接的相対로써 対像位置를 定하여 서로 安定位置를 太陽를 中心하고 聯하여 서로 本中心的作用에 依據하여 運動하게 되여서 한 円和的平衡를 造成하고 있다. 이겄이 한 創造主에 創造原理理想인 한 具造로써 天体界에 널려 놓은겄이 한 天体世界인 바다. 그리하여 相対世界로 하여 対像位置를 完全히 定하니 그는 円形運動를 갓고있서 서로 存在하는 바다. 그런고로 存在하기 爲하여는 받드시 中心를 対하여 対像를 갓고 있스니 完全対像完成할러는 곳은 한 力이 作用한다 이겄이 運動이 原理인 바다. 이겄이 創造主이 創造原理인 바다. 그러니 얻던 方向으로도 이 天体界이 運動은 이 한 地球면 地球에 存在하는 完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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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個性存在로써 存在하는以上 運動作用이 始作를 보는바도 된다. 이것이 目的은 対像完成를 中心으로 하고 있다. 그러면 相対할 수 있는 位置은 作用를 세우러 하는 位置이다. 그런고로 至今科学世界에서는 相対性까지 発見할분이다. 그리서 引力作用만를 받고 있다고 뉴톤이 引力만 말한 바다. 引力으로 인한 科学原理은 相対科学世界인 二十世紀文明를 造成하엿다. 그런고로 뉴톤이 말하는 反作用原理은 方向을 反対로 하고 있는 바이다. 주고받은 原理를 받고만 있는 原理로 보고만 있는 結論를 定하게 된다. 이 反作用的原理을 変하여 주고받는 本作用原理科学世界로 되어야 創造原理完成한 萬有原則基本元奌으로 잡는 겄이 分明하다. 나는 이 反作用原理을 本作用原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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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発表하는 바도 存在原理를 完成하려니 自然히 세워야 할 目的으로 된다. 그러면은 本作用原理는 対像原理世界로서 한 새로 文明世界을 볼 바로 된다. 또 새론은 科学에 出発에 分岐奌를 造成할 바다. 이러트시 世界가 창조原理世界로 되면 対像目的完成하기 爲한 存在된바는 自然法理와 같은바다. 그러기에 原理完成全存在만 成立되면은 그곳은 언데나 対像位置은 自然的으로 原理世界에 展開를 본다. 이러무로 発達과 発展에 原因도 여기서부터 始作한다. 例를 들면은 電氣로 보면은 完全存在로써 原理世界에 나타나면은 対像完成하기 爲한 相対性 ? 은 自然으로 된다. 이겄은 基本対상原理世界에 存在目的始作를 보와 創造性 原理完成하여 存在完成目的位置를 定하기 爲한 存在로 되는 바는 事実이다. 그러무로 完全 電氣가 生起면 完全 電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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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理存在를 完成할러는 目的에서 始作보니 이 作用은 應感的 電氣原理基台을 보는 바가 根本原因인 바다. 이와갖치 存在目的 爲하여 有하다는 것은 至今 二十世紀 文明世界도 未解決로 되여왔다. 이겄은 対像存在을 未知이무로 必然的 事実로 된다. 그러니 存在하는 以上 他를 中心말고 自己만 原理完成하면 내게도 이런 対상 根本原理基台를 造成하는 바다. 그런고로 萬物存在世界에는 太陽을 中心으로 하고 이 原理基台를 떠나서는 存在할 수 없다. 이 対상 立장를 떠나는 곳은 存在가 破壞나 腐敗를 中心하고 存在無로 찾어지는 바가 原理인 바다. 그런고로 사람은 宇宙 中心이니 이 中心은 하나님을 主로 하여 이런 対像立場를 取하여야 하는 (原?) 理的世界를 造成하게하는 目的이었스니 이런 対상立場에서 내가 完成存在者라면은 完全生이 한 原理基本인 바이다. 그러니 우리人生은 이 原理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의 한 対像位置를 갓고 있슴을 알게되니 三位一体論理도

 

455

科学的立場으로 合하는 目的를 보는 바다. 그러니 사람은 하나님이 相対를 세워서 対像目的으로 지은 創造根本를 알 수 있는 바이다. 그러니 宗敎은 対상目的根本으로된 天宙에 창조根本을 밝키무로 여기에서 科学과 合하며 科学에 中心까지 中心잡는 하나님便的 使命를 終結하는 바이다. 그러니 사람은 창조根本対상 찾으면은 모든 完成를 보는 바이다. 여기에 理想論的 論理를 其 目的으로 하고있다. 그런고로 萬物은 太陽를 中心하고 存在位置를 잡고잇는 同時에 사람은 하나님를 中心한 存在位로 造成받아 地上를 전부 主管할 中心으로됨도 天宙原理 完成主管을 目標로 하여서 하나님과 合할 수 있게 原理團束를 爲한 根本理想를 세우고저함이 創造目的인 바다. 그러니 사람이 中心이니 사람中心하고 其 本対人인 창조原理世界를 造成하여 円滿이 주고 받고저 하는바가 平衡理想이며 対像理想이며 善理想完成하이며 円和하여 一되는 円和世界이 目的를 보는 바다. 이 世界가 墮落된 世界에서 발아는 萬人原理 完成復帰世界인 바이다.

 

456

이 目的爲해 存在物들은 全部가 其中心要素를 갔고 또 要素은 中心과 合한는 形을 全部갓고 있다. 이 事実들은 科学的으로 証明할 바다. 그러면 天宙作用은 全部가 주고받은 原理線上를 떠날 수 없다. 그러니 人間社会制度도 亦是 주고받은 世界로 되여야 原理世界에 永續하는 世界로 된다. 이 주고 받은 目的의 完成못하는 世界은 非原理가 存在하는 世界니 原理神은 自然原理하고 循環를 바라서 対하는 反面에 惡은 反対로 먼츰 対하였따가는 非原理로써 敗하는 戰爭에 厂史路程를 보는 바가 人類発展厂史이다. 그러면 世界上에서 基本中心向하여 주고 받고 하지 않코저 하는 存在은 亡한다. 또 原理世界에 存在하면 그는 곳 敵으로 되는 樣으로 된다. 그러나 世界은 必然的 주고 받는 하날 中心한 世界가 人間最高的 理想世界다. 이겄이 墮落되였뜬 人間이 할 復帰使命인 바다. 그리하여 한 家庭目的하는 父母中心하고 주고 받아 그겄은 兄弟까지 通하게 하여 平衡理想를 取하는 世界가 円和理想이

 

457

다. 이리하여 宗敎理想極部와 世界科学 根本極部와 一로서 主位를 宗敎가 定하게 될 대에 그 使命的目的를 完成하는 바다. 그러니 原理世界떠난 科学없고 原理世界떠난 宗敎없고 原理世界 떠난 하나님 없다는 겄이 中心이니 現地上世界를 中心하고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原理世界를 造成하는 겄이 目的이다. 地上에 하나님의 계실 수 있스니 地上天囗이란 바는 事実이다. 이 世界은 原理完成世界니 原理完成은 하나님끠 屬하는 겄이 根本이니 여기에 理想論的使命이 完成되니 幸福인 바다. 그런고로 이 世界에 原理存在않고은 自然法則과 갗치 (???) 合하여야만의 其目的 完成하는 바는 事実이니 이것이 예수에 目的理想인 有物相通하는 世上임은 勿論이며 萬天宙存在物은 統一이란 世界인 바는 事実이다. 그런고로 사탄도 하나님은 原理完成를 爲하여 지금까지 역사케 한 바다. 12/17

 

458장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