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이 人間性 標準으로 예수를 対함 (원리원본 205-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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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 人間性標準으로 예수를 対함
세례요한의 한 行動이 엊지 容恕받겠는가 生覚하면 몸에 솜서리치는 한 行動이 않이였는가. 세례요한 亦是 예수를 対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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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中心하고서 対하지 못함은 무슨 까달이였슬가. 세례요한도 사람인지라 메시야라는 自体면 좀 더 高貴한 位에서 自己에게 보여지였슬 겄이였는데 별로 다름업는 存在의 貌樣이면서 自己들이 발라든 바와 같치 뜻 成事의 路程를 取하여 나아가지 못하는 存在로써 엊지 메시야의 資格이란 너무나 距离가 멀었섰다. 요한亦是 그 時代的으로 対하는 이 百姓과 同一한 觀奌으로 서게 됨의 큰 失手의 始作이였다. 그러니 이 百姓은 두 말할 수 업는 行動이였다. 또 세례요한은 예수 앞에 메시야(*엘리야)라면 全侍從하기 爲하여서 自己를 中心하고 其外弟子들까지 함께 들어왓서 예수님의 弟子가 되어야할 立場이였는데 그겄이 果然人間性에서 나온 破壞行動이였다. 自己弟子와 함끠 예수弟子가 되어 昨日에 先生이 立場를 変하여 예수앞에 한 弟子樣으로 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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弟子얻던 者들과 同級的立場에서는 其立場이 果然人間世界에서 어러운 事実이였다. 그러니 이런 觀奌等은 人間의 全部가 自己中心하고 하날 対하고저 하는代身 사탄工作이라고 보여주는 結果를 招來하여 사탄과 合하는 方向으로 나아가는 셈을 알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이와 같치 論하는 겄은 무根據한 原理우에서 論함이 않이다. 聖經에서 세례요한이 一大失手에 行動를 暴露한 句節을 찾저서 解說하여 보자. 至今까지 神學界에 難解關問인 句節인 겄이다. 卽 마태 福音 十一章를 보면 其 內容的 事実이 如実하게 들어나 있다. 卽 예수께서 十二弟子에게 命하심을 畢하시고 訪 (地) (城)에서 离(*離)사 敎訓하시며 領布하시라고 各城에 往시더라. 그때 왜 요한의 獄에 있서 그리스도의 行한심을 聞고 그 弟子들을 遺야 예수께 亶야 曰 當身來실이니까. 先生님이 오닜가 我等이 他人을 待하오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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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対答하여 曰 爾等이 往하야 聞고 見난 겄으로 요한에게 告하대 瞽者가 見며 痿者가 步며 癩者가 潔며 聾者가 聽며 貧者에에게 福音을 伝한다하라. 誰던지 我로 因하야 犯罪하지 안이한 者는 福이 有도다 하시고 彼等이 离(*離)메 衆애개 요한을 指하야 言하시매 爾等이 何을 觀라고 野에 出더냐. 風에 動이닌 蘆臺냐 또 爾等이 何을 觀라고 出더냐. 美服을 衣한 人이냐. 美服衣한 사람을 大闕에 있나이다. 爾等이 엊지 出더냐. 先知者를 見하랴더냐. 是하다. 我가 爾等게 論하노니 此人은 先知者보다 優하니라. 此人을 指하야 記錄하였스대 見할지어다. 我가 我의 使者을 爾等前에 遺하노니 彼가 爾路은 爾前에 予備하리라 하셨나이다. 我가 眞実로 爾等에게 論하노니 女人이 난 人中에는 洗礼요한보다 尤大한 者가 起함이 無나 然本 天國에서는 至微者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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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보다 大하니라. 洗礼요한의 來할 時 부터 只今까지 天國은 用力함으로 得하나니 用力한 者는 奪나니라. 諸 先知者와 律法에 予言한 것이 요한까지 至하였스니 萬一 爾等이 그겄을 肯受할진대 來리라한 엘니야가 此人이니라. 耳가 有서 聽者는 聽지어다. 此世代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譬喩컨데 兒孩가 場市에 座하야 同類를 불러 曰 我等이 爾等을 向하야 龠을 吹하여도 爾等이 舞지 않고 我等이 哀音을 하여도 爾等이 胸를 拍지 아니하여다 함과 如니 요한이 來하야 食치도 않고 飮지도 아니하매 彼等이 語하기를 邪鬼가 들렸다 하더니 人子는 來하여 食하고 飮하매 또 語하기를 食하기를 貪하고 酒을 嗜하는 人이요 稅吏와 罪人의 親旧로라하니 다만 智慧는 其 行事로 義를 顯하나니라고 以上과 같은 言을 宣言하였다. 이 內容全部는 세례요한対하여 놋코 한 말이였다. 그러면 요한弟子와서 물을때에 본대로 말하라.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으나 너희는 스사로 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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覚하여라 하면서 여러 異蹟奇事로써 表示하였다. 그러면 예수는 웨 이런 対答를 하였는가. 그저 문는 그대로 対答하여 올토다. 내가 來라고 한 者로다 하면은 그만 解決을 짓는 일인데 이와같치 예 둘러 말한바는 人間으로 하여금 깨달을 수 있도록 敎示하였스니 그겄 보아서 알라는 큰 意義가 있슴을 알러야 한다. 그 理由은 貴하고 높은 예수를 찾으면 그야말로 그에 더 求功은 업는 겄인데 누구나 全部가 가르쳐주고 전부 끌어다 주면은 그 貴한 自体를 찾지 못할者 어데 있슬가. 발키 끝가지 가리켸 주지 않으면 自己들이 智慧를 通하여서 하나님의 뜻를 세우여야만이 그 뜻 成事은 勿論 하날의 協助하여 주었지만 自己努力으로 찾즈여만의 그 찾은 賞給에 対한 榮光받을 資格의 決定되는 바이무로 最終奌까지는 敎示하여 주지 않는 바이다. 例를 들면은 100까지를 찾저야 하는데 95가량만 알러주고 5는 알러주지 않는 겄이 한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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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路程에 表示로 되였다. 웨나하면 100까지中 100까지 全部를 敎示하면은 그 賞給은 하날에 있는 聖徒들 前에서라은 그 榮光눌릴 資格完成者라 할 수 업기에 95까지 가르쳐주고 5은 自己 智慧를 通하여 찾저 100까지 최우시기를 발라서 敎示하는 바가 至今役事路程에서 만히 보여진은 事実이다. 이 5이란 其겄 찾저 成事한은 其事実은 100에 成事한 榮光을 눌리고 基本权限를 決定하는 事実이니 이와같은 例로써 세례요한 対하여서도 対答한바는 事実이다. 또 세례요한에도 하날로서도 이와 같치 敎示하였다. 智慧로 찾저서 義로 定함을 주시고저 하여서 예수은 메시야라고 確定지어 敎示치 않은 바이다. 이런 겄의 至極한 하나님의 사랑 하시어 하신는 摂理인 同時에 누구에나 許諾한 예수니 智慧있는 者만이 合하여만의 원수의 智慧를 破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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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基本動力이되는 根本에 力에 터가 되기에 이와갗치 하나님은 摂理하신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特히 얻던 目的를 敎示하였다가 다시금 試驗하여 그 目的 対한 疑心를 発하게 敎示하여 주는 때도 있다. 그것은 智慧로서 其根本를 確得할 수 있는 資格者가 되여만의 하나님 自身의 直接 간섭하지 않아도 사탄 원수対하여 勝利할 資格者로 세우려니 이런 試驗도 있는바는 灵敎示를 받은 者들의 体驗하는 事実的根本意義로 있슴을 알러야 한다. 그겄은 卽 사탄이 対하여 反対役事할 수 있는 겄이긔에 또 그리하여 한 完成格者 되면은 全部를 하나님의 간섭하지 않코 自由成事를 標準하기에 이와같은 자리를 발리 우리에게 対取하게 하기 爲하여서 섭니하심을 알러야 한다. 智慧로써 뜻 찾저 完成하는者는 저 하날 囗에서도 말할 수 업는 貴한 存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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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부러워할 存在의 資格은 智慧를 찾음으로 만의 尊敬에 價値을 볼 수 있는 根本의 行動이 卽 智慧로 뜻 成事를 完成하는 態度이다. 그리고 貧者에게 福音를 伝한다 하심은 큰 意味가 있다. 卽 여긔는 이 百姓全部가 메시야를 告待하기를 自己들이 더 조와지기 爲하여서 告待하였끼에 至今 이와갗치 나 自身은 너이들의 발아는 目的相対로 되지 못하며 貧者와 같은者 박에 相対할 수 업는 貌樣에 있다함을 告하는 同時에 너희들은 마음으로 富한 것이얻기에 다 対할 수 없섰다는 겄를 間接的으로 表示하는 말삼이였다. 이 말삼은 사탄이 主管世上에서 善은 발펴 貧者급에 많은 겄를 말하는 겄도 있슴을 알러야 한다. 惡의 主管世上이니 惡者는 富하고 善者는 貧하니 이런 原理的 言詞로 되어 있는 겄도 알러야 한다.
(이 部分에 対하여는 다음에서 論할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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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마태 十一章 六節에는 말삼하시기를 誰던지 我를 因하여 犯罪하지 아니한者은 福이 有하도다 하심의 句節를 보게 된다. 이 句節이야 예수님의 숨은 心情를 表示한 말삼이였다. 卽 이 말삼에는 벌서 세례요한은 내에게 犯罪하였다는 結論的 事実을 告白하는 겄이다. 犯罪하지 안흔 자는 福이 있도다 하였으니 벌서 福된 立場과는 离(*離)脫한 存在라는 겄은 暗示한 바이였다. 果然 예수앞에 세례요한 한 自体은 크나큰 打擊의 存在이였다. 예수에 全目的大部分에 一大難事를 招來케 한 큰 犯罪者라는 겄은 더 말할 바 업는 事実이다. 그 다음은 爾等이 무었보러 野에 出하던냐. 그 目的이 무었이던고 其野에 나아감은 全目的은 예수 한 自体를 알기 爲하여 行動한바가 않이냐. 또 野에서 요한自体가 증거한바 않이였든가. 그런데 그때 벌써 알러야 할 時期를 놋치고 至今와서 이런 行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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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겄를 暗示하면서 책망하는 말삼이였다. 그러나 그 증거한 세례요한은 果然先知中에서는 第一 큰 者라고 하면서 말삼하시였다. 野에서 본 세례요한은 果然先知中에도 큰 者라고 하나 할 責任를 勘當하지 못하였다는 意味로 말삼하시는 말심의 我가 眞実로 爾等에 論하노니 女人으로 난 사람 中에는 洗礼요한보다 尤大한 者가 起함이 無하다. 然이나 天囗에서는 至微者라도 彼보다 大하니라 하심에 決論的判決를 나리웠다. 이 말슴이 至今神学界에서 未解句奌이나 其根本意義는 예수님에 対한 세례요한이 犯罪行爲에 対한 책망이 말삼이라는 겄를 밝키 (今)이제는 알러야 한다. 卽 根本意義 무슨 뜻인고 하니 女人으로 난 사람 中에는 세례요한보다 尤大者가 起함이 無다한은 이 말삼에 対한 根本意義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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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日의 先知者도 女人를 通하여 生이고 至今 洗礼요한도 女人를 通하여 生한 者로라 하는 겄은 틀림업는 事実인데 웨 洗礼요한의 第一 큰 存在라고 하였나 하면은 先知者라면 하나님의 뜻를 予言하시어서 뜻를 알리여 주는 代辯人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洗礼요한도 亦是 한 하나님 뜻를 알리는 代辯人라는 겄은 같은 뜻에 存在이나 그 自体들이 證據할 立場을 取하여 보면은 昔日에 先知者全部는 証據하되 予言的証據로서 예수님를 証據하였스나 洗礼요한은 証據하되 直接的으로 証據하였스니 証據的立場를 中心하고 말할 때 洗礼요한의 以上가는者 업슴은 事実이다. 그런고로 증거的立場을 두고 洗礼요한에 対하여 말할 때 果然洗礼요한은 女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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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난 사람中에는 第一 큰 存在라는 根本意義가 確実하다는 겄을 明白키 알러야 한다. 그 다음은 然나 天囗에서는 至微者라도 彼보다 大하니라 하심은 무슨意義나 하면은 根本意義은 이러하다. 天囗에 간 者도 女人으로 난 者들이다. 그러타면 女人 난 人中에는 洗礼요한이 第一 大다고 하였는데 웨 天囗어세도 크다 할 터인데 第一 小은 者가 세례요한이가 되는가 하는 겄의 疑心않될 수 업는 수수꺽의인 한 關門이다. 이 根本意義도 세례요한이 犯罪的行爲를 챙망한 重大句節이다. 그 뜻은 이러하다. 至今洗礼요한은 예수를 메시야로 증거하여 놋코는 自己는 自己멋대로 行하였스니 예수님에 対하여서 積極存在가 되여 行하여야할 立場를 떠나서 行動하니 큰 犯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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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않의할 수 업다. 예수를 메시야로써 侍奉하여야 할 中心存在가 侍奉하지 못하고 돌리여 뜻 破하는 行動를 하였스니 그 自体에서는 果然天微者이 行動이라 안히 할 수 업다. 세례요한이 積極侍奉하였스면 그은 두말할 겄 업시 하날에서는 至極히 큰 存在가 될 터 이였는데 侍奉치 못하니 天에서 微者보다도 못한 存在로 되였다하는 의미였다. 卽 天에 있는 聖徒 亦 天使나 얻던 存在라도 예수에 対하여서는 메시야라는 根本存在라는 것를 다 알고 極心으로 侍奉하고 있는데 侍奉할 中心存在가 侍奉하지 못하니 侍奉에 있서는 最微者가 되였다라는 意義를 알러야 한다. 이 말삼은 侍奉를 中心하고 말삼하여서 세례요한에게 対한 犯罪行爲를 責함이라는 重大한 根本意義를 알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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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礼洗요한 來할 時 부터 至今까지 天國은 用力함으로 得하나니 用力하는 者는 奪하나니라 하심이 말삼도 亦是 洗礼요한 対한 犯罪之事를 指摘함에 말삼이였다. 요한 來時부터 只今까지라는 말삼은 무슨 뜻에 말삼이 있가 하면은 먼츰은 세례요한 自体가 뜻을 받들어서 侍奉하였다면 예수님에 首弟子는 세례요한이 될 바는 定한 하날의 目的이였는데 用力하지 못하였끼예 卽 侍奉하지 못하였끼에 요한부터 (只)至今까지라는 中에 요한이 先有权利를 주었뜬 큰 位置를 指示한바 였는데 그 位置를 직키지 못하니 그 指定되였는 位置은 用力하는 다른 弟子들개로 옴겨지였다는 겄를 指道함이였다. 그런고로 天囗은 用力하는 者는 奪이라 하심이다.
ⓞ 予知 予定은 根本를 두고 하신 말이란 뜻이 根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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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用力하는 다른 弟子들한테 그 位를 奪심의라는 根本意義를 明白하게 表示한바를 보아도 여기에 洗礼요한의 犯行한 그 自体이면서 예수앞에 큰 하날的 반역者라고 않이할 수 업다. 이런存在 対하여서 오날날까지 尊示하엿따는 過去信仰者이 無知의 서러움을 무었으로 防止할가. 果然痛憤한 事実이다. 이 事実의 行動으로 因하여서 예수이 十字架이 難이 始作를 再促하는 한 行動이라는 겄를 밝켜 알려야 한다. 그 다음은 洗礼요한은 엘니야라고 말하고 그는 世上이 食고 飮지 안으니 邪鬼가 들렸다하고 나도 食고 飮하니 稅吏와 罪人의 親旧라하니 다만 智慧는 其行事로 義를 顯하나니라 하시였는데 이 말삼 中에는 世上의 함부로 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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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를 不知하면서 自己 멌대로 定하여 抨한다는 겄을 指摘하면서 뜻를 갓고 온 자를 対하여 조금도 応하는者 업다함을 譬喩하여 兒孩가 市場에서 座하야 同類를 불러 (*마11/16 서주석) 曰되 我等이 爾等을 向하여 龠를 吹어도 爾等이 舞치 안고 我等이 哀音하여도 너희들이 胸을 拍지 안는다는 겄으로 世上를 譬喩하여서 現在 뜻 中心한 自己의 目的에 要求에 조금도 応치 않을 指摘하심이었다. 그러나 智慧로운者만이 하나님의 뜻를 行義로 顯낸다하심의 警告를 볼 수 있다는 바를 至今敎人들이 아는가. 이와같치 初臨 예수앞에 展開되였든 眞狀이 至今再臨를 발아는 世界信者들과 바리새 敎人들과 比하여 볼대에 뜻에 屬한 存在가 至今信徒中에 몃 名이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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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은 根本原理들은 末世가 되니 뜻 成事時期가 되니 明白하게 되여만의 再臨은 오는 바가 안이겠는가. 이 根本 뜻 알고 侍奉者는 하날에서 第一 큰 者라는 겄이 끝날도 付与되는 事実이다. 이와같은 環境를 본 예수앞에는 昿野라는 서러움에 路程을 展開식킨 根本原理이라고 우에 論한바를 理解할 줄 안다. 이런 根本를 밝키지 않으면 積極反対할 者들은 現敎界信仰者들일 겄이다. 그러나 뜻과 根本를 알적에 큰 두려운 問題라 않의할 수 없다.
以上 論한바 根本問題인 세례요한 自體는 하날的으로 予定的存在였으나 그 使命를 侍奉치 못하게 될 때에 하날은 뜻 侍奉의 價値를 알고 侍奉하는者가 하날的 予定的目的를 계승하여 完成하는 바도 하나님은 뜻의 摂理를 돌리어 役事하심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予知予定的이라는 것은 뜻을 中心하고 말슴한 바이니 뜻을 대하는 사람을 対해서 말슴한 바는 아니다. 이것 보아도 現実信仰界에 予定論等은 其問題外位置겄으로 되여진다.
세례 요한이 人間性 標準으로 예수를 対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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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中心하고서 対하지 못함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세례 요한도 사람인지라 메시아라는 自体면 좀 더 高貴한 位(위상)에서 自己에게 보여졌을 것이었는데 별로 다름없는 存在의 貌樣(모습)이면서 自己들이 바라는 바와 같이 뜻 成事의 路程를 取하여 나아가지 못하는 存在로서 어찌 메시아의 資格이랑 너무나 距离가 멀었었다.
요한 亦是 그 時代的으로 対하는 이스라엘 百姓과 同一한 觀奌으로 서게 됨이 큰 失手의 始作이었다. 그러니 이 百姓은 두 말할 수 없는 行動이었다. 또 세례 요한은 예수 앞에 메시아(*엘리아)라면 全(온전히) 侍從하기 爲하여서 自己를 中心하고 其 外 弟子들까지 함께 들어와서 예수님의 弟子가 되어야할 立場이었는데, 그것이 果然 人間性에서 나온 破壞行動이었다. 自己 弟子와 함께 예수 弟子가 되어 昨日(어젯날)의 先生이 立場을 変(바꾸어)하여 예수 앞에 한 弟子 樣(모양)으로 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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弟子였던 者들과 同級的 立場에서는 其 立場이 果然 人間世界에서 어려운 事実이었다.
그러니 이런 觀奌 等은 人間의 全部가 自己中心하고 하늘을 対하고자 하는 代身 사탄 工作이라고 보여주는 結果를 招來하여 사탄과 合하는 方向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와 같이 論하는 것은 根據없는 原理 위에서 論함이 아니다. 聖經에서 세례 요한의 一大 失手의 行動을 暴露한 句節을 찾아서 解說하여 보자. 至今까지 神學界에 難解한 關問인 句節인 것이다. 卽 마태 福音 十一章을 보면 其 內容的 事実이 如実하게 드러나 있다. 卽 예수께서 十二弟子에게 命하심을 畢(마치)하시고 訪(그) (城)에서 离(떠나시)사 敎訓하시며 領布(선포)하시려고 各 城에 往(가)시더라. 그때 요한이 獄에서 그리스도의 行하심을 聞(물어보려)고 그의 弟子들을 遺(보내)어 예수께 亶(진실로) 曰(여쭙기를) 當身이 來(오)실 이니이까, 先生님이오니까, 我等(우리들)이 他人(다른 이)를 待(기다리)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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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対答하여 曰 "爾等(너희들)이 往(와서) 聞(듣)고 見(보)는 것으로 요한에게 告하되 瞽者(눈먼자)가 見(보)며 痿者(절름발이)가 步(걸으)며 癩者(문둥병자)가 潔(나으)며 聾者(귀머거리)가 聽(들으)며 貧者(가난한 자)에게 福音을 伝한다하라." "誰(누구)든지 我(나)로 因(인)하여 犯罪(범죄)하지 아니한 者는 福이 有(있)도다" 하시고 彼等(저들)이 离(*離떠나자) 衆(무리들)에게 요한을 指(가리켜) 言(말씀)하시되 "爾等(너희들)이 何(무엇)을 觀(보)려고 野(광야)에 出(갔)더냐? 風(바람)에 動(흔들)리는 蘆臺(갈대)더냐? 또 爾等(너희들)이 何(무엇)을 觀(보)려고 出(갔)더냐? 美服(아름다운 옷)을 衣(입)은 人(사람)이냐?" "美服(아름다운 옷)을 衣(입)은 사람은 大闕에 있나이다." "爾等(너희들)이 어찌 出(갔)더냐? 先知者를 見(보)러 갔더냐?" "是(그렇습니)다." "我(내)가 爾等(너희들)에게 論(말)하노니 此人(그 사람)은 先知者보다 優(나으)니라. 此人(그 사람)을 指(가리)켜 記錄하기를 '見(볼)지어다, 我(내)가 我(나)의 使者를 爾等(너희들) 前(앞)에 遺하노니 彼(그)가 爾路(너희 길)을 爾前(너희 앞)에 予備하리라' 하셨다."
"我(내)가 眞実로 爾等(너희들)에게 論(말)하노니 女人이 낳은 人中(사람 중)에는 洗礼 요한보다 尤大한 者가 起(일어)남이 無(없으)나 然本(본래) 天國에서는 至微者(지극히 작은 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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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그)보다 大(크)니라. 洗礼 요한이 來(올)時(때)부터 只今까지 天國은 用力(힘씀)으로 得(얻)나니 用力(힘쓴) 者는 奪(빼앗느니라. 諸(모든) 先知者와 律法에 予言한 것이 요한까지 至(니) 萬一 爾等(너희들)이 그것을 肯受할진대 來(오)리라한 엘리야가 此人(그 사람)이니라. 耳(귀)가 有(있)어 聽者(듣는 자)는 聽(들을)지어다. 此(이) 世代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譬喩컨데 兒孩(아이)가 場市에 座(앉아서) 同類를 불러 曰(말하길) 我等(우리)가 爾等(너희들)을 向하여 龠(나팔)을 吹(불)어도 爾等(너희들)이 舞(춤추)지 않고 我等(우리)가 哀音(슬피 울어)도 爾等(너희들)이 胸(가슴)을 拍(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如(같으)니, 요한이 來(와)서 食(먹)지도 않고 飮(마시)지도 아니하니 彼等(저들)이 語(말)하기를 邪鬼(사악한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人子는 來(와)서 食(먹)고 飮(마시)니 또 語(말)하기를 食(먹)기를 貪하고 酒(술)을 嗜(좋아)하는 人(사람)이요 稅吏와 罪人의 親旧로다하니, 다만 智慧는 其 行事(행함으)로 義를 顯(나타내)느니라고 以上과 같은 言(말씀)을 宣言하였다. 이 內容 全部는 세례 요한에 対하여 한 말이었다. 그러면 요한의 弟子가 와서 물을 때에 본대로 말하라.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으나 너희는 스스로 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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覚하여라 하면서 여러 異蹟奇事로써 表示하였다. 그러면 예수는 왜 이런 対答를 하였는가? 그저 묻는 그대로 対答하여 "옳도다. 내가 來(오리)라고 한 者로다" 하면 그만 解決을 짓는 일인데 이와 같이 에둘러 말한 바는 人間으로 하여금 깨달을 수 있도록 敎示하였으니, 그것 보아서 알라는 큰 意義(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理由는 貴하고 높은 예수를 찾으면 그야말로 그에 더 求功(성공)은 없는 것인데, 누구나 全部 가르쳐주고 전부 끌어다 주면 그 貴한 自体를 찾지 못할 者 어디에 있을까? 밝히 끝까지 가리켸 주지 않으면 自己들이 智慧를 通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세워야만, 그 뜻 成事는 勿論 하늘이 協助하여 주었지만 自己努力으로 찾아야만 그 찾은 賞給에 対한 榮光받을 資格이 決定되는 바이므로 最終奌까지는 敎示하여 주지 않는 바이다. 例를 들면 100까지를 찾아야 하는데 95가량만 알려주고 5는 알려주지 않는 것이 한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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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路程의 表示로 되었다. 왜냐하면 100까지 中 100까지 全部를 敎示하면 그 賞給은 하늘에 있는 聖徒들 前(앞)에서는 그 榮光을 누릴 資格의 完成者라 할 수 없기에 95까지 가르쳐주고 5는 自己 智慧를 通하여 찾아 100까지 채우기를 바래서 敎示하는 바가 至今 役事路程에서 많이 보여진 事実이다. 이 5란 其것을 찾아 成事한 其 事実은 100을 成事한 榮光을 누리고 基本权限를 決定하는 事実이니 이와같은 例로써 세례 요한에 対하여서도 対答한 바는 事実이다. 또 세례 요한에게도 하늘은 이와 같이 敎示하였다. 智慧로 찾아서 義로 定함을 주시고자 하여서 예수는 메시아라고 確定지어 敎示하지 않은 바이다.
이런 것이 하나님이 至極히 사랑 하시어 하시는 摂理인 同時에 누구에나 許諾한 예수니 智慧있는 者만이 合하여만 원수의 智慧를 破(깨부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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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基本動力이 되는 根本 力(힘)의 터가 되기에 이와 같이 하나님은 摂理하신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特히 어떤 目的을 敎示하였다가 다시금 試驗하여 그 目的 対한 疑心를 発(유발)하게 敎示하여 주는 때도 있다. 그것은 智慧로써 其 根本을 確得(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資格者가 되어야만 하나님 自身이 直接 간섭하지 않아도 사탄 원수에 対하여 勝利할 資格者로 세우려니 이런 試驗도 있는 바는 灵적 敎示를 받은 者들이 体驗하는 事実的 根本意義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卽 사탄이 対(상대)하여 反対로 役事할 수 있는 것이기에, 또 그리하여 한 完成 資格者가 되면 全部를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고 自由成事를 標準하기에 이와같은 자리를 바라서 우리에게 対取(성취)하게 하기 爲하여 섭리하심을 알아야 한다. 智慧로써 뜻을 찾아 完成하는者는 저 하늘 囗(나라)에서도 말할 수 없는 貴한 存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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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부러워할 存在의 資格은 智慧를 찾음으로 만이 尊敬의 價値을 볼 수 있는 根本의 行動, 卽 智慧로 뜻 成事를 完成하는 態度이다. 그리고 貧(가난한) 者에게 福音를 伝한다 하심은 큰 意味가 있다. 卽 여기에는 이스라엘 百姓 全部가 메시아를 告待하기를 自己들이 더 좋아지기 爲하여서 告待하였기에 至今 이와 같이 나 自身은 너희들이 바라는 目的 相対로 되지 못하여 貧(가난한) 者 같은 者밖에 相対할 수 없는 貌樣에 있다함을 告하는 同時에 너희들은 마음으로 富(부유)한 것이었기에 다 対할 수 없었다는 것을 間接的으로 表示하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사탄의 主管世上에서 善은 밟혀 貧(가난한) 者 급에 많은 것을 말하는 것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惡의 主管世上이니 惡한 者는 富(부유)하고 善한 者는 貧(가난)하니 이런 原理的 言詞(말씀)으로 되어 있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 部分에 対하여는 다음에 論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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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마태 十一章 六節에는 말씀하시기를 誰(누구)든지 我(나)를 因하여 犯罪하지 아니한 者는 福이 有(있)도다 하심의 句節을 보게 된다. 이 句節이야 예수님의 숨은 心情을 表示한 말씀이었다. 卽 이 말씀에는 벌써 세례 요한은 나에게 犯罪하였다는 結論的 事実을 告白하는 것이다. 犯罪하지 않는 자는 福이 있도다 하였으니 벌써 福된 立場과는 离(*離)脫한 存在라는 것을 暗示한 바이었다. 果然 예수 앞에 세례 요한 한 自体는 크나큰 打擊의 存在였다. 예수의 全目的 大部分에 一大 難事(어려운 일)을 招來하게 한 큰 犯罪者라는 것은 더 말할 바 없는 事実이다. 그 다음은 爾等(너희들)이 무엇을 보러 野(광야)에 出(나갔)더냐, 그 目的이 무엇이던고? 其 野(광야)에 나감의 全目的은 예수 한 自体를 알기 爲하여 行動한 바가 아니냐? 또 野(광야)에서 요한 自体가 증거한 바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때 벌써 알아야 할 時期를 놓치고 至今 와서 이런 行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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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을 暗示하면서 책망하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그 증거한 세례 요한은 果然 先知 中에서는 第一 큰 者라고 하면서 말씀하시었다. 野(광야)에서 본 세례 요한은 果然 先知 中에도 큰 者라고 하나 해야 할 責任을 勘當하지 못하였다는 意味로 말씀하시는 말씀이 我(내)가 眞実로 爾等(너희)에게 論(이르)노니 女人으로 난 사람 中에는 洗礼 요한보다 尤大(더 큰) 者가 起(일어남)이 無(없)다. 然(그러)나 天囗에서는 至微(지극히 작은) 者라도 彼(그)보다 大(크)니라 하심으로 決論的 判決을 내렸다. 이 말씀이 至今 神学界에서 未解句奌(미해결점)이나 其 根本 意義는 예수님에 対한 세례 요한의 犯罪行爲에 対한 책망의 말씀이라는 것을 밝혀 (今)이제는 알려야 한다. 卽 根本 意義는 무슨 뜻인고 하니 女人으로 난 사람 中에는 세례 요한보다 尤大(더 큰) 者가 起(일어남)이 無(없)다 한 이 말씀에 対한 根本 意義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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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日(옛날)의 先知者도 女人을 通하여 生(태어났)고 至今 洗礼 요한도 女人을 通하여 生(태어난) 者라는 것은 틀림없는 事実인데 왜 洗礼 요한이 第一 큰 存在라고 하였느냐 하면, 先知者라면 하나님의 뜻을 予言하여 알려 주는 代辯人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洗礼 요한도 亦是 한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代辯人라는 것은 같은 뜻의 存在이나 그 自体들이 證據할 立場을 取하여 보면 昔日(옛) 先知者 全部는 証據하되 予言的 証據로써 예수님을 証據하였으나 洗礼 요한은 証據하되 直接的으로 証據하였으니 証據的 立場을 中心하고 말할 때 洗礼 요한 以上 가는 者가 없음은 事実이다. 그런고로 증거的 立場을 두고 洗礼 요한에 対하여 말할 때 果然 洗礼 요한은 女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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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인하여 태어난 사람 中에는 第一 큰 存在라는 根本意義가 確実하다는 것을 明白히 알아야 한다. 그 다음은 然(그러)나 天囗에서는 至微(지극히 작은)者라도 彼(그)보다 大(크)니라 하심은 무슨 意義(뜻)이냐 하면 根本意義는 이러하다. 天囗에 간 者도 女人으로 인하여 태어난 者들이다. 그렇다면 女人으로 인하여 태어 난 人(사람) 中에는 洗礼 요한이 第一 大(크)다고 하였는데 왜 天囗에서도 커야 할 터인데 第一 小(작)은 者가 세례 요한이가 되는가 하는 것이 疑心 안될 수 없는 수수께끼인 한 關門이다. 이 根本意義도 세례 요한의 犯罪的 行爲를 책망한 重大 句節이다. 그 뜻은 이러하다. 至今 洗礼 요한은 예수를 메시야로 증거하여 놓고는 自己는 自己 멋대로 行하였으니 예수님에 対하여서 積極적 存在가 되어 行하여야할 立場을 떠나서 行動하니 큰 犯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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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아니할 수 없다. 예수를 메시아로서 侍奉하여야 할 中心 存在가 侍奉하지 못하고 도리어 뜻을 破(파괴)하는 行動을 하였으니 그 自体에서는 果然 至微(지극히 작은)者의 行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세례 요한이 積極 侍奉하였으면 그는 두말할 것 없이 하늘에서는 至極히 큰 存在가 될 터이었는데 侍奉하지 못하니 天(천국)에서 微(작은) 者보다도 못한 存在로 되고 말았다하는 의미였다. 卽 天(천국)에 있는 聖徒나 亦(또) 天使나 어떤 存在라도 예수에 対하여서는 메시아라는 根本 存在라는 것을 다 알고 極心(지극한 마음)으로 侍奉하고 있는데 侍奉해야 할 中心 存在가 侍奉하지 못하니 侍奉에 있어서는 最微(제일 작은) 者가 되었다라는 意義를 알아야 한다. 이 말씀은 侍奉을 中心하고 말씀하여서 세례 요한에게 対한 犯罪行爲를 責(책망)함이라는 重大한 根本 意義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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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礼洗 요한의 來할 時(때)부터 至今까지 天國은 用力(침노)함으로 得(얻)나니 用力(침노)하는 者는 奪(빼앗)느니라 하심의 말씀도 亦是 洗礼요한에 対한 犯罪之事(범죄행위)를 指摘함의 말씀이었다. 요한의 來時(때)부터 只今까지라는 말씀은 무슨 뜻의 말씀인가 하면 먼저는 세례 요한 自体가 뜻을 받들어서 侍奉하였다면 예수님의 首弟子는 세례 요한이 될 바는 定한 하늘의 目的이었는데 用力(결단)하지 못하였기에, 卽 侍奉하지 못하였기에 요한부터 (只)至今까지라는 (말씀)中에 요한에게 先有权利를 주었던 큰 位置를 指示한 바였는데 그 位置를 지키지 못하니 그 指定되었던 位置는 用力(노력)하는 다른 弟子들에게로 옮겨지게 되었다는 것을 指道함이었다. 그런고로 天囗은 用力(노력)하는 者는 奪(빼앗느)라 하심이다.
ⓞ 予知 予定은 根本을 두고 하신 말씀이란 뜻이 根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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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用力(침노)하는 다른 弟子들한테 그 位(자리)를 奪(빼앗기리)라는 根本意義를 明白하게 表示한 바를 보아도 여기에 洗礼 요한이 犯行한 그 自体이면서 예수 앞에 큰 하늘的 반역者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런 存在에 対하여서 오날날까지 尊示(존경시) 하였다는 過去 信仰者의 無知의 서러움을 무엇으로 防止할까? 果然 痛憤할 事実이다. 이 事実의 行動으로 因하여서 예수의 十字架의 難(고난)의 始作을 再促하는 한 行動이라는 것을 밝혀 알려야 한다. 그 다음은 洗礼 요한은 엘리야라고 말하고, 그는 世上이 食(먹)고 飮(마시)지 않으니 邪鬼가 들었다하고 나도 食(먹)고 飮(마시)니 稅吏와 罪人의 親旧라하니, 다만 智慧는 其 行事(행위)로 義를 顯(나타내)느니라 하시었는데 이 말씀 中에는 世上이 함부로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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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不知(모르)면서 自己 멋대로 定하여 抨한다는 것을 指摘하면서 뜻을 갖고 온 자를 対하여 조금도 応하는 者 없다함을 譬喩하여 兒孩(어린이)가 市場에서 座(앉아)서 同類를 불러(*마11/16) 曰(말씀하시길) 我等(우리들)이 爾等(너희들)을 向하여 龠(피리)를 吹(불)어도 爾等(너희들)이 舞(춤추)지 않고 我等(우리들)이 哀音(슬피 울어)도 너희들이 胸(가슴)을 拍(치)지 않는다는 것으로 世上를 譬喩하여서 現在 뜻을 中心한 自己의 目的에 要求에 조금도 応(응하)지 않음을 指摘하심이었다. 그러나 智慧로운 者만이 하나님의 뜻을 行義로 顯낸다 하심의 警告를 볼 수 있다는 바를 至今 敎人들이 아는가! 이와 같이 初臨 예수 앞에 展開되었던 眞狀이 至今 再臨을 바라는 世界 信者들과 바리새 敎人들과 比하여 볼 때에 뜻에 屬한 存在가 至今 信徒 中에 몇 名이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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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根本原理들은 末世가 되어 뜻 成事 時期가 되니 明白하게 되야만 再臨은 오는 바가 아니겠는가! 이 根本 뜻을 알고 侍奉(모시는) 者는 하늘에서 第一 큰 者라는 것이 끝날에도 付与되는 事実이다. 이와 같은 環境를 본 예수 앞에는 昿野라는 서러움에 路程을 展開시킨 根本原理라고 위에 論한 바를 理解할 줄 안다. 이런 根本을 밝히지 않으면 積極 反対할 者들은 現(지금) 敎界 信仰者들일 것이다. 그러나 뜻과 根本을 알적에 큰 두려운 問題라 아니할 수 없다.
以上 論한 바 根本 問題인 세례 요한 自體는 하늘的으로 予定的 存在였으나 그 使命을 侍奉하지 못하게 될 때에 하늘은 뜻 侍奉의 價値를 알고 侍奉하는 者가 하늘的 予定的 目的를 계승하여 完成하는 바도 하나님은 뜻의 摂理를 돌리어 役事하심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予知予定的이라는 것은 뜻을 中心하고 말씀한 바이지 뜻을 대하는 사람을 対해서 말씀한 바는 아니다. 이것을 보아도 現実 信仰界의 予定論 等은 其 問題 外(밖에) 位置한 것으로 되어진다.
세례 요한이 人間性 標準으로 예수를 対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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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중심하고 대하지 못함은 무슨 까달이었을까! 세례 요한도 사람인지라 메시아라는 자체면 좀 더 고귀한 위상에서 자기에게 보여졌을 것이었는데 별로 보통 인간과 다름이 없는 존재의 모습이면서 자기들이 바라는 바와 같이 뜻 성사의 노정을 취하여 나가지 못하는 존재로서 어찌 메시아의 자격이랑 너무나 거리가 멀었었다.
세례 요한 역시 그 시대적으로 대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동일한 관점으로 서게 됨이 큰 실수의 시작이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은 두 말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또 세례 요한은 예수 앞에 메시아(*엘리아)라면 온전히 시종(모시고 받듬)하기 위하여서 자기 중심하고 그 외 제자들까지 함께 들어와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할 입장이었는데, 그것이 과연 인간성에서 나온 파괴행동이었다. 자기 제자와 함께 예수 제자가 되어 어젯날의 선생의 입장을 바꾸어 예수 앞에 한 제자 모양으로 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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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였던 자들과 동급적 입장에서는 그 입장이 과연 인간세계에서 어려운 사실이었다.
그러니 이런 관점 등은 인간의 전부가 자기중심하고 하늘을 대하고자 하는 대신 사탄 공작이라고 보여주는 결과를 초래하여 사탄과 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이와 같이 논하는 것은 근거없는 원리 위에서 논함이 아니다. 성경에서 세례 요한의 일대 실수의 행동을 폭로한 구절을 찾아서 해설하여 보자. 지금까지 신학계에 어려운 난해한 관문인 구절인 것이다. 즉 마태복음 11장을 보면 그 내용적 사실이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즉 예수께서 12제자에게 명하심을 마치시고 그 성에서 떠나시사 교훈하시며 선포하시려고 각 성에 가시더라. 그때 왜 요한이 옥에 있어 그리스도의 행하심을 물어보려고 그의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진실로 여쭙기를 당신이 오실 이니이까, 선생님이오니까, 우리들이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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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대답하여 왈 "너희들이 와서 듣고 보는 것으로 요한에게 고하되 눈먼자가 보며 절름발이가 걸으며 문둥병자가 나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하라."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범죄하지 아니한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고 저들이 떠나자 무리들에게 요한을 가리켜 말씀하시되 "너희들이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더냐? 또 너희들이 무엇을 보려고 갔더냐?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은 대궐에 있나이다." "너희들이 어찌 갔더냐? 선지자를 보러 갔더냐?" "그렇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그 사람은 선지자보다 나으니라. 그 사람을 가리켜 기록하기를 '볼지어다, 내가 나의 사자를 너희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너의 길을 너희 앞에 예비하리라' 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인이 낳은 사람 중에는 세례 요한보다 위대한 자가 일어남이 없으나 본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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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이 올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힘씀으로 얻나니 힘쓴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율법에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들이 그것을 수긍할진대 오리라한 엘리야가 그 사람이니라. 귀가 있어 듣는 들을지어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데 아이가 시장에 앉아서 동류를 불러 말하길 우리가 너희들을 향하여 나팔을 불어도 너희들이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들이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으니,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사악한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니 또 말하기를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하니, 다만 지혜는 그 행함으로 의를 나타내느니라고 이상과 같은 말씀을 선언하였다. 이 내용 전부는 세례 요한에 대하여 한 말이었다. 그러면 요한의 제자가 와서 물을 때에 본대로 말하라.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으나 너희는 스스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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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여라 하면서 여러 특이한 기적과 기사로써 표시하였다. 그러면 예수는 왜 이런 대답을 하였는가? 그저 묻는 그대로 대답하여 옳도다. 내가 오리라고 한 자로다. 하면 그만 해결을 짓는 일인데 이와 같이 에둘러 말한 바는 인간으로 하여금 깨달을 수 있도록 교시하였으니, 그것 보아서 알라는 큰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귀하고 높은 예수를 찾으면 그야말로 그에 더 성공은 없는 것인데, 누구나 전부 가르쳐주고 전부 끌어다 주면 그 귀한 자체를 찾지 못할 자 어디에 있을까? 밝히 끝까지 가르쳐주지 않으면 자기들이 지혜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세워야만, 그 뜻 성사는 물론 하늘이 협조하여 주었지만 자기 노력으로 찾아야만 그 찾은 상급에 대한 영광받을 자격이 결정되는 바이므로 최종점까지는 교시하여 주지 않는 바이다. 예를 들면 100가지를 찾아야 하는데 95가량만 알려주고 5는 알려주지 않는 것이 한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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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노정에 표시로 되었다. 왜냐하면 100까지 중 100까지 전부를 가르쳐주면 그 상급은 하늘에 있는 성도들 앞에서는 그 영광을 누릴 자격의 완성자라 할 수 없기 때문에 95까지 가르쳐주고 5는 자기 지혜를 통하여 찾아 100까지 채우기를 바래서 교시하는 바가 지금 역사 노정에서 많이 보여진 사실이다. 이 5란 그것을 찾아 성사한 그 사실은 100을 성사한 영광을 누리고 기본권한을 결정하는 사실이니 이와 같은 예로써 세례 요한에 대하여서도 대답한 바는 사실이다. 또 세례 요한에게도 하늘은 이와 같이 교시하였다. 지혜로 찾아서 의로 정함을 주시고자 하여서 예수는 메시아라고 확정지어 가르치지 않은 바이다.
이런 것이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 하셔서 하시는 섭리인 동시에 누구에게나 허락한 예수니 지혜있는 자만이 합하여야만 원수의 지혜를 깨부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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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기본동력이 되는 근본 힘의 터가 되기에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섭리하신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특히 어떤 목적을 교시하였다가 다시금 시험하여 그 목적에 대한 의심을 유발하게 교시하여 주는 때도 있다. 그것은 지혜로써 그 근본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만 하나님 자신이 직접 간섭하지 않아도 사탄 원수에 대하여 승리할 자격자로 세우려니 이런 시험도 있는 바는 영적 교시를 받은 자들이 체험하는 사실적 근본의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즉 사탄이 상대하여 반대로 역사할 수 있는 것이기에, 또 그리하여 한 완성 자격자가 되면 전부를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고 자유성사를 표준하기에 이와 같은 자리를 바라서 우리에게 크게 성취하게 하기 위하여 섭리하심을 알아야 한다. 지혜로써 뜻을 찾아 완성하는 자는 저 하늘 나라에서도 말할 수 없는 귀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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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부러워 할 존재의 자격은 지혜를 찾음으로 만이 존경의 가치를 볼 수 있는 근본의 행동, 즉 지혜로 뜻 성사를 완성하는 태도이다.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 하심은 큰 의미가 있다. 즉 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메시아를 고대하기를 자기들이 더 좋아지기 위하여서 고대하였기에 지금 이와 같이 나 자신은 너희들이 바라는 목적 상대로 되지 못하여 가난한 자 같은 자밖에 상대할 수 없는 모양에 있다함을 고하는 동시에 너희들은 마음으로 부유한 것이었기에 다 대할 수 없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시하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사탄의 주관세상에서 선은 밟혀 가난한 자 급에 많은 것을 말하는 것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악의 주관세상이니 악한 자는 부유하고 선한 자는 가난하니 이런 원리적 말씀으로 되어 있는 것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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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마태복음 16장 6절에는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범죄하지 아니한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심의 구절을 보게 된다. 이 구절이야 말로 예수님의 숨은 심정을 표시한 말씀이었다. 즉 이 말씀에는 벌써 세례 요한은 나에게 범죄하였다는 결론적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다. 범죄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였으니 벌써 복된 입장과는 이탈한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 바이었다. 과연 예수 앞에 세례 요한 한 자체는 크나큰 타격의 존재였다. 예수의 전 목적 대부분에 일대 어려운 일을 초래하게 한 큰 범죄자라는 것은 더 말할 바 없는 사실이다. 그 다음은 너희들이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그 목적이 무엇이던고? 그 광야에 나감의 전목적은 예수 한 자체를 알기 위하여 행동한 바가 아니냐? 또 광야에서 요한 자체가 증거한 바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때 벌써 알아야 할 시기를 놓치고 지금 와서 이런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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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을 암시하면서 책망하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그 증거한 세례 요한은 과연 선지 중에서는 제일 큰 자라고 하면서 말씀하시었다. 광야에서 본 세례 요한은 과연 선지 중에도 큰 자라고 하나 해야 할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였다는 의미로 말씀하시는 말씀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인으로 난 사람 중에는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일어남이 없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者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심으로 결론적 판결을 내렸다. 이 말씀이 지금 신학계에서 미해결점이나 그 근본 의의는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범죄행위에 대한 책망의 말씀이라는 것을 밝혀 이제는 알려야 한다. 즉 근본 의의는 무슨 뜻인고 하니 여인으로 난 사람 중에는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일어남이 없다 한 이 말씀에 대한 근본 의의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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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선지자도 여인을 통하여 태어났고 지금 세례 요한도 여인을 통하여 태어난 자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왜 세례 요한이 제일 큰 존재라고 하였느냐 하면, 선지자라면 하나님의 뜻을 예언하여 알려 주는 대변인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세례 요한도 역시 한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대변인이라는 것은 같은 뜻의 존재이나 그 자체들이 증거할 입장을 취하여 보면 옛 선지자 전부는 증거하되 예언적 증거로써 예수님을 증거하였으나 세례 요한은 증거하되 직접적으로 증거하였으니 증거적 입장을 중심하고 말할 때 세례 요한 이상 가는 자가 없음은 사실이다. 그런고로 증거적 입장을 두고 세례 요한에 대하여 말할 때 과연 세례 요한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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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인하여 태어난 사람 중에는 제일 큰 존재라는 근본의의가 확실하다는 것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그 다음은 그러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者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심은 무슨 뜻이냐 하면 근본의의는 이러하다. 천국에 간 자도 여인으로 인하여 태어난 자들이다. 그렇다면 여인으로 인하여 태어 난 사람 中에는 세례 요한이 제일 크다고 하였는데 왜 천국에서도 커야 할 터인데 제일 작은 자가 세례 요한이가 되는가 하는 것이 의심 안될 수 없는 수수께끼인 한 관문이다. 이 근본의의도 세례 요한의 범죄적 행위를 책망한 중대 구절이다. 그 뜻은 이러하다. 至今 세례 요한은 예수를 메시야로 증거하여 놓고는 자기는 자기 멋대로 행하였으니 예수님에 대하여서 적극적 존재가 되어 행하여야할 입장을 떠나서 행동하니 큰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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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아니할 수 없다. 예수를 메시아로서 시봉하여야 할 중심 존재가 시봉하지 못하고 도리어 뜻을 파괴하는 행동을 하였으니 그 자체에서는 과연 지극히 작은 자의 행동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세례 요한이 적극 시봉하였으면 그는 두말할 것 없이 하늘에서는 지극히 큰 존재가 될 터이었는데 시봉하지 못하니 천국에서 작은 者보다도 못한 존재로 되고 말았다하는 의미였다. 즉 천국에 있는 성도나 또 천사나 어떤 존재라도 예수에 대하여서는 메시아라는 근본 존재라는 것을 다 알고 지극한 마음으로 시봉하고 있는데 시봉해야 할 중심 존재가 시봉하지 못하니 시봉에 있어서는 제일 작은 자가 되었다라는 의의를 알아야 한다. 이 말씀은 시봉을 중심하고 말씀하여서 세례 요한에게 대한 범죄행위를 책망함이라는 중대한 근본 의의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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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함으로 얻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하심의 말씀도 역시 세례 요한에 대한 범죄행위를 지적함의 말씀이었다.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라는 말씀은 무슨 뜻의 말씀인가 하면 먼저는 세례 요한 자체가 뜻을 받들어서 시봉하였다면 예수님의 수제자는 세례 요한이 될 바는 정한 하늘의 목적이었는데 결단하지 못하였기에, 즉 시봉하지 못하였기에 요한부터 지금까지라는 말씀 중에 요한에게 선유권리를 주었던 큰 위치를 지시한 바였는데 그 위치를 지키지 못하니 그 지정되었던 위치는 노력하는 다른 제자들에게로 옮겨지게 되었다는 것을 지도함이었다. 그런고로 천국은 노력하는 자는 빼앗느라 하심이다.
ⓞ 예지 예정은 근본을 두고 하신 말씀이란 뜻이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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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침노하는 다른 제자들한테 그 자리를 빼앗기리라는 근본의의를 명백하게 표시한 바를 보아도 여기에 세례 요한이 범행한 그 자체이면서 예수 앞에 큰 하늘적 반역자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존재에 대하여서 오날날까지 존경시 하였다는 과거 신앙자의 무지의 서러움을 무엇으로 방지할까? 과연 통분할 사실이다. 이 사실의 행동으로 인하여서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의 시작을 재촉하는 한 행동이라는 것을 밝혀 알려야 한다. 그 다음은 세례 요한은 엘리야라고 말하고, 그는 세상이 먹고 마시지 않으니 사귀가 들었다하고 나도 먹고 마시니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하니, 다만 지혜는 그 행위로 의를 나타내느니라 하시었는데 이 말씀중에는 세상이 함부로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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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모르면서 자기 멋대로 정하여 평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뜻을 갖고 온 자를 대하여 조금도 응하는 자 없다함을 비유하여 어린이가 시장에서 앉아서 동무를 불러(*마11/16) 말씀하시길 우리들이 너희들을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들이 춤추지 않고 우리들이 슬피 울어도 너희들이 가슴을 치지 않는다는 것으로 세상을 비유하여서 현재 뜻을 중심한 자기 목적의 요구에 조금도 응하지 않음을 지적하심이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만이 하나님의 뜻을 행의로 나타낸다 하심의 경고를 볼 수 있다는 바를 지금 교인들이 아는가! 이와 같이 초림 예수 앞에 전개되었던 진상이 지금 재림을 바라는 세계 신자들과 바리새 교인들과 비교하여 볼 때에 뜻에 속한 존재가 지금 신도 중에 몇 명이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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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근본 원리들은 말세가 되어 뜻 성사 시기가 되니 명백하게 되야만 재림은 오는 바가 아니겠는가! 이 근본 뜻을 알고 시봉하는 자는 하늘에서 제일 큰 자라는 것이 끝날에도 부여되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환경을 본 예수 앞에는 광야라는 서러움의 노정을 전개시킨 근본 원리라고 위에 논한 바를 이해할 줄 안다. 이런 근본을 밝히지 않으면 적극 반대할 자들은 지금 교계 신앙자들일 것이다. 그러나 뜻과 근본을 알적에 큰 두려운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이상 논한 바 근본 문제인 세례 요한 자체는 하늘적으로 예정적 존재였으나 그 사명을 시봉하지 못하게 될 때에 하늘은 뜻 시봉의 가치를 알고 시봉하는 자가 하늘적 예정적 목적을 계승하여 완성하는 바도 하나님은 뜻의 섭리를 돌려 역사하심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예지예정적이라는 것은 뜻을 중심하고 말씀한 바이지 뜻을 대하는 사람을 대해서 말씀한 바는 아니다. 이것을 보아도 현실 신앙계의 예정론 등은 그 문제 밖에 위치한 것으로 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