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되는 根本 意義 (원리원본 제2권 192-204쪽)

훈독왕 | 20201228052328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되는 根本 意義 (원리원본 192-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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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요한의 옐니야되는 根本意義

 

하나님의 根本 뜻를 成事하시러 할 때에 其 뜻 成事에 第一要奌은 무엇인가 하니 하나님外 사탄存在가 有한 겄인데 이 存在가 하나님의 根本 뜻를 破壞하였고 至今까지 敵으로 나와 뜻를 成事하지 못하게 하는 存在가 있끼에 큰 重大問題가 된다. 萬一 사탄이 업다면 뜻 成事은 問題되는 겄이 않인데 사탄있어서 人間対하여 自己所有圈外로 보내지 않으러 極性를 다 하여서 하나님를 対하여서 役事를 하고 옴으로 하나님의 뜻에 成事에 厂史로 延長를 거듭하게 하여 온 바다. 이 사탄이를 全幅的으로 屈服식켜서 뜻 未成事하는 工作이 업다록 사탄 全滅를 期하는 바가 要求되는 바이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根本 뜻은 뜻 防害할러는 사탄의 뜻 路程이 업게 하고저 함의 根本 뜻 中心이였다. 그런고로 의 根本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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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事할러고 메시야를 보내기 전에 하나님의 발라는바 뜻를 反対하는 사탄이를 屈服시켜 다시는 예수의 뜻 成事路程에 낱아나지 않도록 하기爲한 工作이 먼츰 問題이였다. 이 問題를 解決할 責任者를 보내마 하신 存在가 卽 옐니야였다. 옐니야는 잘 아다싶히 하나님앞에 혼자서 사탄 全部하고 싸와 最勝勢者이였다. 옐니야의 要求하는 當時에 最高目的은 사탄全滅이 目的이였다. 다시는 사탄이 하나님 뜻를 막는곳 업게끔 발라든 바가 옐니야가 발라든 目的이였다. 그 目的의 卽 하나님의 발라는 뜻 成事路程를 두고 발라보는 目的과 같은 目的이였다. 그러나 옐니야는 사탄 바알神八白餘를 滅한 者이며 뜻 成事路程上完成할 수 있게하는 사탄対한 重要存在였다. 옐니야 이 目的은 完成하였는가 하면은 그當時 사탄対한 目的은 未完成하였다. 왜냐하면 다시금 사탄 侵入를 보아서 예수 앞에까지 侵入할 優廬性이 有함으로 다시금 이 사탄存在에 対하여 옐니야가 발라는 根本目的를 完成식켜서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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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사탄自体이 종적이 업게하기 爲한 代表者를 보내여 옐니야의 발라든 사탄 全滅工作成事할 겄를 발람애서 엘리야를 세례요한으로 表示한바며 세례요한이 옐니야되는 바의 目的의 있는 바이다. 卽 옐니야目的의 세례요한으로 完成할 使命的役割를 가져 맛섰든 바이였다. 하나님 뜻 中心하고 말할적에 옐니야의 目的의 成事은 세례요한으로 終結짓게 되는 겄이였다. 세례요한 와서 할 使命達成하면은 하나님 뜻을 完全成事하니 사탄을 하나님 뜻 路程上에 업새고저 함에서 予言하신 옐니야가 세례요한이였다. 例를 들면은 하나님 뜻은 한나인데 뜻 成事하는데는 甲과(엘리야) 乙이(요한) 完成하였다. 그런고로 뜻은 한나이고 사람은 두울이다. 뜻 하나 中心하고 말할때 甲=乙 이라는 한 몸으로 完成한 겄과 같은 根本意義를 두고 予言하심이였기에 옐니야=세례요한 이라고 하심이 根本目的이 完成되는 바이다.

이런 뜻으로 말삼 하심을 아지 못하는 이 百姓은 큰 犯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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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行路을 取하면서 自然스러운 뜻의 行함이라고 生覚하였다. 이제 옐니야代身으로 보냄을 받은 세례요한의 使命은 무슨 目的이 남어 있나 하면 하나님의 目的 뜻 成事가 完成하여야할 터台를 造成하여 예수 自体한테 被害업게끔 하여야 할 厂史的責任이 保擔되어 있섰다. 세례요한의 하여야할 使命은 옐니야의 心情과 才能으로 예수앞에서 父로 子息를 愛하게 할 수 있게 하는 同時子息으로 其父께 孝道하게 하여줄 厂史的使命性을 말라기 四/5.6에 記錄함을 보아서 알 수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卽 누구나 다 全人類의 祖上인 同時에 全人類은 예수의 子息이라는 創造原理로 되여있는 目的를 찾저서 맞출 수 있는 길를 닥끄여야할 責任이 요한이 使命이였다. 밖으로는 사탄를 防備하고 內的으로는 百姓으로 하여금 子息된 道理를 알려주워 父지를 모시어 사랑받을 수 있도록 其時代에 対한 責任의 蒹有한 重大立場에 요한은 서 잇섯다. 그런고로 세례요한의 全目的은 메시야의 道를 準備하는 者로써 卽 메시야 한 분만이 그의 生命의 代身이며 希望과 所望의 全部의 中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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存在이였슬 겄이였다. 또 自己自身이 알고 있어야 할 事実이였다. 그리하여야 세례요한의 昿野生活이라는 全目的은 여기에 完成를 가져오는 바이였다. 예수보담 六ケ月前에 사가랴의 家庭에서 태워난 그 自体는 하날에 無限한 期待로써 보낸 자이면서 사탄이 第1 미워하는 存在이였다. 其時代를 代表하여 뜻을 세우기 爲한 三十余年生은 모도가 예수(메시야) 한 存在가 目的인데 그 메시야을 모시는 그 한날이 기쁨의 榮光의 그대의 目的이였다. 세례요한이 뜻을 딸아 全 이 百姓앞에 洗礼을 施行하게되였다. 洗礼은 예수이 그 根本 뜻를 成事할 수 있는 한 터이 資格를 付与하여지는 約束의 表示의 礼이었다. 요13/31.34. 세례요한의 이 礼式를 하게 함은 自己 뜻 成事를 하기 위함이 안이고 예수의 뜻 繼承키 爲함에서 하심이라는 바는 다 잘아는 事実이다. 其當時 세례요한은 이 百姓은 하날의 보내신 한 先知者로서 알고 있섰다. 그래 세례요한한테 이 百姓은 새礼式이나마 세례요한 앞에서 洗礼를 받음은 하날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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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심을 받은者로 알고있든 까달이무로 新法 요1/25 洗礼를 받게 됨이였다. 이 세례요한은 證據하기를 自己은 물로 洗礼를 주지만 다음 오시는 메시야는 火과 聖神으로 洗礼를 준다고 하시며 大衆앞에 宣布하심은 自己自身의 使命과 메시야의 使命은 格別하게 相異있슴을 告白하는 바이였다. 그래 세례요한은 全目的의 実体메시야 이 한 存在가 所望城이였다. 그런데 때맛치 요한의 요단江에서 洗礼를 배풀고 있슬때에 예수는 갈리리로부터 요단江에 至야서 요한한테 洗礼를 받고저 할 때에 洗礼요한의 辭하야 言하야 갈아데 내가 당신한데 洗礼를 받아여야 할 테인데 당신이 나한테 나오시 나익가 하니 예수 말삼하시기를 許諾하라. 우리들이 義를 行하는것이 合當하리라 하신데 세례요한이 許諾하여 세례를 施行함을 받고 水에서 올라 오시니 天이 開고 하나님의 神이 鴿이 貌樣으로 降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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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上에 臨하심을 見시더니 天로써 声잇서 言하시대 此는 我의 愛子요 我의 㐂하는 者라 하시더라. 이와같은 하날의 뜻의 存在라는 겄은 세례요한이 스사로가 알게 되였다. 其 때 누구나 全部가 이 事実를 뜻 보았든가 全部은 아지 못하였지만 세례요한은 잘 알고 있섰다. 이렀틋시 한 目的를 責任진 세례요한한테 알리여 全 이 百姓한테 伝하여서 하날뜻 成事하게 하고저 하심의 뜻이였다. 이와같치 하날로 부터 예수는 메시야라는 겄과 하날로 보내신 特別者라는 겄은 알러 주었스나 세례요한한테 예수는 메시야라고 까지는 示適하여 敎示하여는 주지 않었다. 知慧롭게 行動를 取하여야 하는 한 段階에 處하게 되였다. 그때 洗礼요한은 自己가 발아든 메시야를 맛났슴은 그 以上 무슨 딴 目的이 어데 있스며 다시금 무었할 使命的外部分를 要求할 무었이 업섰슬겄의 事実인 同時에 깁버서 大衆対하여 積極예수는 보내시마 하신 메시야라고 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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布하여서 大衆의 예수앞에 集結하게하는 同時에 自己도 亦是 예수앞에 있서서 모든 代表的態度로서 大衆앞에 낱아나서 성원하여야 할 겄이였다. 누구보담도 예수는 세례요한한데 있서는 生命代身이 存在이였다. 그러한 깁붐에 根本存在로 알고 対하여야 할 예수앞에 세례요한은 如何한 態度로 나새게 되였는가. 그 自体態度如何로 因하여 大衆에 큰 영響을 伝하는 重大立場이였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예수対하여 積極的으로 예수自身이 우리가 발라든 目的이 存在메시야라고 大衆앞에 宣布 못함은 事実이였다. 그저 요단江에 洗礼받은 때에 알 분이고 요한은 그냥 그데로 自己처음 始作한 洗礼나 주면서 단니는 行動를 繼續하고 단니니 예수対하여서도 大衆은 메시야라고 보는겄 보담도 세례요한위한 行礼이 돕움者로써 아는 者라구 生覚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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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者도 있를 程度이였다. 세례요한의 目的의 그저 洗礼나 주고 단니는 겄의 厂史的으로 賦与받은 全使命이였는가. 너무나 價値업는 行動이였다. 全 이 百姓対하여 生命繼承의 한 中心繼存在가 그낭 그 멋때로 四方을 自由로히 단니면서 洗礼만 준다는 行例에는 우리는 恨心한 態度로 注目하지 않을 수 업는 事実이였다. 세례요한自身은 亦是 예수앞에 있서서 낱아난 옐니야의 한 代身存在라는 것를 요한은 잘 알앗는가 하면은 疑心할 問題이다. 요한복음 1/21에 요한의 옐니야도 아니라 하심 보아도 自己自体가 그 使命的立場을 明白히 알지 못함을 알 수 있다. 自己自身이 알아스면은 웨 大衆앞에 自己를 宣布하여서 이 百姓의 疑問奌를 업에하여야 責任도 準備 못하였뜬 바이였다. 세례요한 自身의 옐니야란겄를 알앗스면은 大衆에 対한 責任을 勘當하여야 할 存在로써 어데 그 責任 다하기 爲하여 싸워서 其 基台를 세웠든가. 自己自身도 確固한 옐니야의 代身者라는 겄은 自覚하지 못하였뜬 것는 事実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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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케 洗礼요한은 自己使命에 対하여 積極的準備工作를 하여서 그 目的本体로 오신 예수앞에 全侍從의 中心存在로써 서서 예수의 全使命이 協助者로써 또 第一 큰 사랑받을 수 있는 예수이 한 弟子로써 侍奉하는 外에 더 큰 다른 무슨 目的 있섰스랴. 그런데로 不拘하고 예수와 分立하여 行한신데는 세례요한의 하날앞에 重大한 責任未完成를 가져오는 基本的代身行動이라 않이할 수 업는 事実이였다. 聖經에 보면은 세례요한의 全幅的으로 메시야라는 겄은 確実하게 알고 있지 못함을 알려주고 있다. 獄中에 있서서 弟子들을 보내여 뭇끼를 그대가 오실바에 메시아니까 하는 質疑 또 다른 人를 待오릭가 하는 곳을 보면은 세례요한自身도 메시야에 対한 解決를 못하였뜬 바를 알리워 준다. 이와 같치 뜻 侍奉者가 되여야할 其存在조차 메시야로 오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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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알어 주지 못하니 예수自身에 있서서의 全期待와 所望은 如何한 程度이였슬까? 果然痛恨치 않을 길이 있슬가. 누가 그 心情를 알 者 있섰스랴. 여긔에 세례요한이 예수앞에 하날앞에 큰 犯行의 始作이 있다는 겄을 아는者가 現敎人世界에 업는바를 나는 痛憤하는 바이다. 그저 세례요한은 貴하고 하나님앞에 업서서 않될 存在代遇하는 겄은 容恕 할 수 업는 行動이라 않히 할 수 업슬겄이다. 그런고로 自己責任하지 못하고 自己멋대로 行하는 세례요한이는 아바지 앞에 貴함에 存在로는 보이지 않어슬겄을 알여야 한다. 예수때문에 온 자가 其本使命中心地를 떠나서 行하는 其自体은 勿論이며 其 侍從者까지 하날 아바지앞에 미움의 相対이였다. 그때 하날로서 善히 対할 수 업는 存在로써 그의 末路에까지 하나님은 貴히 보지 않음은 事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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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重大之事如何가 예수앞에 크나큰 昿野生活이라는 한 苦痛의 路程를 斷行하지 않으면 않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昿野에 나갈때에 孤独한 其心中을 헤아려 同情하는者 世上에 멧名 이였뜬가? 여기에 人間과 相対하여 예수의 使命範圍는 한 暗路에 逢着하였슴을 누가 않은가 아는者 아바지와 예수뿐이였다. 그 昿野이 寂寞事은 예수 앞에 큰 落望과 同時에 다시금 再出発의 한 路程를 決心케 하는 路程이라 않히 할 수 업다. 昿野까지 예수를 侍奉하여 딸은 자 한 사람도 업다. 그대 마츰 예수를 메시야로 모신者 있다면 이는 하날에서 第一 큰 賞를 받을 存在는 틀림업슬 겄이다. 生覚하면 東方博士은 어데 갔는가 牧者은 어데 갓는고 母親 어데 갔는고 세례요한 어데 갔는고 모다 自己 뜻 中心하고 行動하는 其自体들은 예수 앞에 깁분이 変케 하여 嘆息케 하는 한 存在等에 不過하였스며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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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激動식켜주는 者임에 틀림업는 存在들이였다. 그런 心情를 품고 昿野生活에 있서서는 第一次落心를 다시금 復帰하기 爲한 目的인 同時에, 積極 원수사탄 対하여 最終決判時期이였다. 사탄의 벌서 하날뜻 成事할 터를 侵入하여서 뜻 順從路程를 받들지 못하는 세례요한의 不足한 奌부터 다시금 예수앞에 사탄은 낱아날 수 있는한 自己의 期待는 보앗스니 그 다음에 그 中心自体인 예수까지 와서 試驗의 示圖은 原理的 한 行動이였다. 그러니 昿野生活中 사탄이 自由行動에 対比한 예수에 試驗이었다함을 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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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되는 根本 意義


하나님의 根本 뜻을 成事하시려 할 때에 其 뜻 成事의 第一 要点은 무엇인가 하니 하나님 外 사탄 存在가 있는(有) 것인데 이 存在가 하나님의 根本 뜻을 破壞하였고 至今까지 敵으로 나와 뜻을 成事하지 못하게 하는 存在가 있기에 큰 重大한 問題가 된다. 萬一 사탄이 없다면 뜻 成事는 問題 되는 것이 아닌데 사탄이 있어서 人間 對하여 自己 所有圈 外로 보내지 않으려 極性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對하여서 役事를 하여 옴으로 하나님의 뜻 成事의 歷史로 延長을 거듭하게 하여 온 바다. 이 사탄을 全幅的으로 屈服시켜서 뜻을 이루지 못하게(未成事) 하는 工作이 없도록 사탄 全滅을 期하는 바가 要求되는 바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根本 뜻은 뜻을 防害하려는 사탄의 뜻 路程이 없게 하고자 함이 根本 뜻의 中心이었다. 그런고로 이 根本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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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事하려고 메시아를 보내기 전에 하나님이 바라는 뜻을 反對하는 사탄을 屈服시켜 다시는 예수의 뜻 成事 路程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爲한 工作이 먼저 問題였다. 그런고로 이 問題를 解決할 責任者로 보내마 하신 存在가 곧(卽) 엘리야였다. 엘리야는 잘 아다시피 하나님 앞에 혼자서 사탄 全部하고 싸워 최후 승자(最勝勢者)였다. 엘리야가 要求하는 當時의 最高 目的은 사탄 全滅이 目的이었다. 다시는 사탄이 하나님의 뜻을 막는 곳이 없게끔 바라던 바가 엘리야가 바라던 目的이었다. 그 目的이, 卽 하나님이 바라는 뜻 成事 路程을 두고 바라보는 目的과 같은 目的이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사탄 바알神 八白餘를 滅한 者이며 뜻 成事 路程上 完成 할 수 있게 하는 사탄 對한 重要한 存在였다. 엘리야의 目的은 完成하였는가 하면 그 當時 사탄 對한 目的은 未完成하였다. 왜냐하면 다시금 사탄 侵入을 보아서 예수 앞에까지 侵入할 優廬性이 있(有)음으로 다시금 이 사탄 存在에 對하여 엘리야가 바라는 根本 目的을 完成시켜서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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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사탄 自体의 종적을 없애기 爲한 代表者를 보내어 엘리야가 바라던 사탄 全滅工作을 成事할 것을 바래서 엘리야를 세례 요한으로 表示한 바이며, 세례 요한이 엘리야 되는 바의 目的이 있는 바이다. 卽 엘리야의 目的이 세례 요한으로 完成할 使命的 役割을 가져 맞섰던 바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中心하고 말할 적에 엘리야의 目的 成事는 세례 요한으로 終結짓게 되는 것이었다. 세례 요한이 와서 할 使命을 達成하면 하나님의 뜻은 完全히 成事하니 사탄을 하나님의 뜻 路程 上에서 없애고자 함에서 予言하신 엘리야가 세례 요한이었다. 例를 들면 하나님의 뜻은 하나인데 뜻을 成事하는 데는 甲(엘리야)과 乙(요한)이 完成하였다. 그런고로 뜻은 하나이고 사람은 둘이다. 뜻 하나 中心하고 말할 때 甲=乙이라는 한 몸으로 完成한 것과 같은 根本意義를 두고 予言하셨기에 엘리야=세례 요한 이라고 하심의 根本目的이 完成되는 바이다.

하나님의 뜻 = 甲/乙

이런 뜻으로 말씀하심을 알지 못하는 이 百姓은 큰 犯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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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行路를 取하면서 自然스러운 뜻의 行함이라고 生覚하였다. 이제 엘리야 代身으로 보냄을 받은 세례요한의 使命은 무슨 目的이 남아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目的인 뜻 成事를 完成하여야할 土台를 造成하여 예수 自体에 被害가 없게끔 하여야 할 厂史的 責任이 付担되어 있었다.

세례요한이 하여야 할 使命은 엘리야의 心情과 才能으로 예수 앞에서 父(아버지)로 子息을 愛(사랑)하게 할 수 있게 하는 同時에 子息으로 其 父(아버지)께 孝道하게 하여야 할 厂史的 使命性을 말라기 四/5,6에 記錄함을 보아서 알 수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卽 누구나 다 全人類의 祖上인 同時에 全人類는 예수의 子息이라는 創造原理로 되어있는 目的을 찾아서 맞출 수 있는 길을 닦아야할 責任이 요한의 使命이었다. 밖으로는 사탄을 防備하고 內的으로는 百姓으로 하여금 子息된 道理를 알려주어 父(아버)지를 모시어 사랑 받을 수 있도록 其 時代에 対한 責任을 兼有한 重大 立場에 요한은 서 있었다. 그런고로 세례요한의 全 目的은 메시아의 道를 準備하는 者로서 卽 메시아 한 분만이 그의 生命의 代身이며 希望과 所望의 全部의 中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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存在이었을 것이었다. 또 自己 自身이 알고 있어야할 事実이었다. 그리하여 세례 요한의 曠野生活이라는 全 目的은 여기에 完成을 가져오는 바이었다. 예수보다 六個月 前에 사가랴의 家庭에서 태어난 그 自体는 하늘의 無限한 期待로서 보낸 자이면서 사탄이 第一 미워하는 存在였다. 其 時代를 代表하여 뜻을 세우기 為한 三十余年生은 모두가 예수(메시아) 한 存在가 目的인데 그 메시아를 모시는 그 한날의 기쁨의 栄光이 그대의 目的이었다. 세례 요한의 뜻을 따라 全(온) 이스라엘 百姓 前(앞)에 洗礼를 施行하게 되었다. 洗礼는 예수의 그 根本 뜻을 成事할 수 있는 한 터의 資格를 付与하여 지는 約束 表示의 礼였다. (요한1/31~34) 세례 요한의 이 礼式을 하게 함은 自己 뜻 成事를 하게 함이 아니고, 예수의 뜻을 継承하게 하기 為하심이라는 바는 다 잘 아는 사실이다. 當時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百姓은 하늘이 보내신 한 先知者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례 요한 한테 이스라엘 百姓은 洗礼式이나마 세례 요한 앞에서 洗礼를 받음은 하늘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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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심을 받은 者로 알고 있던 까닭이므로 新法(요1/15)洗礼를 받게 되었다.
이 세례 요한은 證據하기를 自己는 물로 洗礼를 주지만 다음 오시는 메시아는 火(불)과 聖神으로 洗礼를 준다고 하며 大衆 앞에 宣布함은 自己 自身의 使命과 메시아의 使命은 格別하게 相異함을 告白하는 바였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全目的의 実体인 메시아 이 한 存在가 所望城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요한이 요단江에서 洗礼를 배풀고 있을 때 예수는 갈릴리로부터 요단江에 至(이르러)서 요한한테 洗礼를 받고저 할때에 洗礼 요한이 辭양하여 言(말하길) 내가 당신한테 洗礼를 받아야 할텐데 당신이 나한테 나오시나이까하니,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許諾하라. 우리들이 義를 行하는 것이 合當하니라" 하신데 세례 요한이 許諾하여 세례를 施行함을 받고 水(물)에서 올라오시니 天(하늘)이 開(열리)고 하나님의 神이 鴿(비둘기) 貌樣으로 降(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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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上(위)에 臨하심을 見(보)더니 天(하늘)로써 声(소리가)있어 言(말씀)하시되, "此(이)는 我(나)의 愛子(사랑하는 아들이)요, 我(나)의 㐂(기뻐)하는 者라" 하시더라. 이와 같은 하늘의 뜻의 存在라는 것은 세례 요한이 스스로가 알게 되었다. 其 때 누구나 全部가 이 事実을 듣고 보았던가? 全部는 알지 못하였지만 세례 요한은 잘 알고 있었다. 이렇듯 한 目的을 責任진 세례 요한한테 알리어 全 이스라엘 百姓한테 伝하여서 하늘 뜻을 成事하게 하고자 하심이 뜻이었다. 이와 같이 하늘로부터 예수는 메시아라는 것과 하늘로부터 보내신 特別者라는 것은 알려 주었으나, 세례 요한한테 예수는 메시아라고까지는 示適(가리켜) 敎示하여 주지는 않았다. 知慧롭게 行動을 取해야 하는 한 段階에 處하게 되었다. 그때 洗礼 요한은 自己가 바라던 메시아를 만났음은 그 以上 무슨 딴 目的이 어디에 있으며, 다시금 무엇을 할 使命的 外 部分을 要求할 무엇이 없었을 것이 事実인 同時에, 기뻐서 大衆을 対하여 積極적으로 예수는 보내시마 하신 메시아라고 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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布하여서 大衆의 예수앞에 集結하게 하는 同時에 自己도 亦是 예수 앞에 있어서 모든 代表的 態度로서 大衆앞에 나타나서 성원하여야 할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예수는 세례 요한에게 있어서는 生命 代身의 存在였다. 그러한 기쁨의 根本存在로 알고 対하여야 할 예수 앞에 세례요한은 如何한 態度로 나서게 되었는가? 그 自体의 態度 如何로 因하여 大衆에게 큰 영響을 伝하는 重大한 立場이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예수에 対하여 積極的으로 예수 自身이 우리가 바라던 目的의 存在, 메시아라고 大衆 앞에 宣布 못함은 事実이었다. 그저 요단江에서 洗礼 받은 때의 일뿐이고 요한은 그냥 그대로 自己가 처음 始作한 洗礼나 주면서 다니는 行動을 継続하고 다니니 예수 対하여서도 大衆은 메시아라고 보는 것 보다도 세례요한의 한 行礼의 도움者로서 아는 者라고 生覚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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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者도 있을 程度였다. 세례 요한의 目的이 그저 洗礼나 주고 다니는 것이 厂史的으로 賦与받은 全使命이였는가! 너무나 価値없는 行動이었다. 全 이스라엘 百姓을 対하여 生命 継承의 한 中心 存在가 그냥 그 멋대로 四方을 自由로이 다니면서 洗礼만 준다는 行例에 우리는 恨心한 態度로 注目하지 않을 수 없는 事実이었다. 세례 요한 自身은 亦是 예수 앞에 있어서 나타난 옐리야의 한 代身 存在라는 것을 잘 알았는가 하면 疑心할 問題이다. 요한복음 1/21에 요한이 옐리야도 아니라 하심을 보아도 自己 自体가 그 使命的 立場을 明白히 알지 못함을 알 수 있다. 自己 自身이 알았으면 왜 大衆 앞에 自己를 宣布하여서 이스라엘 百姓의 疑問点을 없게하여야 할 責任도 準備 못하였던 바이었다.
세례 요한 自身이 옐리야란 것을 알았으면 大衆에 対한 責任을 堪當하여야 할 存在로서 어디 그 責任 다하기 為하여 싸워서 其 基台를 세웠던가! 自己 自身도 確固한 옐리야의 代身者라는 것을自覚하지 못하였던 것은 事実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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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洗礼 요한은 自己 使命에 対하여 積極的 準備 工作을 하여서 그 目的 本体로 오신 예수 앞에 全(모든) 侍從의 中心 存在로 서서 예수의 全 使命의 協助者로서, 또 第一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예수의 한 弟子로서 侍奉하는 外에 더 큰 다른 무슨 目的이 있었으랴! 그런데도 不拘하고 예수와 分立하여 行한 것은 세례 요한이 하늘 앞에 重大한 責任 未完成을 가져오는 基本的 배身 行動이라 아니할 수 없는 事実이었다. 聖經에 보면 세례 요한이 全幅的으로 메시아라는 것을 確実하게 알고 있지 못함을 알려주고 있다. 獄中에 있을 때 弟子들을 보내 묻기를 그대가 오실 바의 메시아이니까 하는 質疑, 또 다른 人(사람)을 待(기다리)오리까 하는 곳을 보면 세례 요한 自身도 메시아에 対한 解決을 못하였던 바를 알려 준다. 이와 같이 뜻 侍奉者가 되여야 할 其 存在조차 메시아로 오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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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알아 주지 못하니 예수 自身에 있어서의 全(모든) 期待와 所望은 如何한 程度였을까? 果然 痛恨치 않을 길이 있을까! 누가 그 心情을 알 者 있었으랴! 여기에 세례 요한이 예수 앞에, 하늘 앞에 큰 犯行의 始作이 있다는 것을 아는 者가 現 敎人世界에 없는 바를 나는 痛憤하는 바이다. 그저 세례 요한은 貴하고 하나님 앞에 없어서는 안될 存在로 代遇하는 것은 容恕 할 수 없는 行動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고로 自己 責任하지 못하고 自己 멋대로 行하는 세례 요한은 아버지 앞에 貴한 存在로 보이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 때문에 온 자가 其 本 使命 中心地를 떠나서 行하는 其 自体는 勿論이며, 其 侍從者까지 하늘 아버지 앞에 미움의 相対였다. 그때 하늘로서 善하게 対할 수 없는 存在로서 그의 末路에까지 하나님은 貴히 보지 않음은 事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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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重大之事 如何가 예수 앞에 크나큰 昿野生活이라는 한 苦痛의 路程을 斷行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昿野에 나갈 때에 孤独한 其 心中을 헤아려 同情하는 者, 世上에 몇 名이었던가? 여기에 人間과 相対하여 예수의 使命 範圍는 한 暗路에 逢着하였음을 누가 아는가! 아는 者, 아버지와 예수뿐이었다. 그 昿野의 寂寞事(함)는 예수 앞에 큰 落望과 同時에 다시금 再出発의 한 路程를을決心케 하는 路程이라 아니 할 수 없다. 昿野까지 예수를 侍奉하여 따른 자 한 사람도 없다. 그때 마침 예수를 메시아로 모신 者 있다면 이는 하늘에서 第一 큰 賞을 받을 存在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生覚하면 東方博士는 어디에 갔는가! 牧者는 어디에 갔는고! 母親은 어디에 갔는고! 세례 요한은 어디에 갔는고! 모두 自己 뜻 中心하고 行動하는 其 自体들은 예수 앞에 기쁨이 変하게 하여 嘆息하게 하는 한 存在 等에 不過하였으며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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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激動시켜주는 者임에 틀림없는 存在들이었다. 그런 心情을 품고 昿野生活에 있어서는 第一次落心을 다시금 復帰하기 爲한 目的인 同時에, 積極 원수 사탄을 対하여 最終 決判時期였다. 사탄이 벌써 하늘 뜻을 成事할 터를 侵入하여서 뜻 順從 路程을 받들지 못하는 세례 요한의 不足한 奌부터 다시금 예수 앞에 사탄은 나타날 수 있는 한 自己의 期待는 보았으니, 그 다음에 그 中心 自体인 예수에게까지 와서 試驗의 示圖는 原理的 한 行動이었다. 그러니 昿野生活 中 사탄이 自由行動에 対比한 예수의 試驗이었다 함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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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되는 근본 의의


하나님의  근본 뜻을 성사하시려 할 때에 그 뜻 성사의 제1 요점은 무엇인가 하니 하나님 외 사탄 존재가 있는(有) 것인데 이 존재가 하나님의 근본 뜻을 파괴하였고 지금까지 적으로 나와 뜻을 성사하지 못하게 하는 존재가 있기에 큰 중대한 문제가 된다. 만일 사탄이 없다면 뜻 성사는 문제 되는 것이 아닌데 사탄이 있어서 인간 대하여 자기 소유권 외로 보내지 않으려 극성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대하여서 역사를 하여 옴으로 하나님의 뜻 성사의 역사로 연장을 거듭하게 하여 온 바다. 이 사탄을 전폭적으로 굴복시켜서 뜻을 이루지 못하게(未成事) 하는 공작이 없도록 사탄 전멸을 기하는 바가 요구되는 바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근본 뜻은 뜻을 방해하려는 사탄의 뜻 노정이 없게 하고자 함이 근본 뜻의 중심이었다. 그런고로 이 근본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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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하려고 메시아를 보내기 전에 하나님이 바라는 뜻을 반대하는 사탄을 굴복시켜 다시는 예수의 뜻 성사 노정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공작이 먼저 문제였다. 그런고로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자로 보내마 하신 존재가 곧(卽) 엘리야였다. 엘리야는 잘 아다시피 하나님 앞에 혼자서 사탄 전부하고 싸워 최후 승자(最勝勢者)였다. 엘리야가 요구하는 당시의 최고 목적은 사탄 전멸이 목적이었다. 다시는 사탄이 하나님의 뜻을 막는 곳이 없게끔 바라던 바가 엘리야가 바라던 목적이었다. 그 목적이, 즉 하나님이 바라는 뜻 성사 노정을 두고 바라보는 목적과 같은 목적이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사탄 바알신 800여를 멸한 자이며 뜻 성사 노정상 완성 할 수 있게 하는 사탄 대한 중요한 존재였다. 엘리야의 목적은 완성하였는가 하면 그 당시 사탄 대한 목적은 미완성하였다. 왜냐하면 다시금 사탄 침입을 보아서 예수 앞에까지 침입할 우려성이 있(有)음으로 다시금 이 사탄 존재에 대하여 엘리야가 바라는 근본 목적을 완성시켜서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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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사탄 자체의 종적을 없애기 위한 대표자를 보내어 엘리야가 바라던 사탄 전멸공작을 성사할 것을 바래서 엘리야를 세례 요한으로 표시한 바이며, 세례 요한이 엘리야 되는 바의 목적이 있는 바이다. 즉 엘리야의 목적이 세례 요한으로 완성할 사명적 역할을 가져 맞섰던 바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말할 적에 엘리야의 목적 성사는 세례 요한으로 종결짓게 되는 것이었다. 세례 요한이 와서 할 사명을 달성하면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성사하니 사탄을 하나님의 뜻 노정 상에서 없애고자 함에서 예언하신 엘리야가 세례 요한이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뜻은 하나인데 뜻을 성사하는 데는 갑(엘리야)과 을(요한)이 완성하였다. 그런고로 뜻은 하나이고 사람은 둘이다. 뜻 하나 중심하고 말할 때 갑=을이라는 한 몸으로 완성한 것과 같은 근본의의를 두고 예언하셨기에 엘리야=세례 요한 이라고 하심의 근본목적이 완성되는 바이다.

하나님의 뜻 = 갑/을

이런 뜻으로 말씀하심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큰 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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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犯行)의 행로를 취하면서 자연스러운 뜻의 행함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제 엘리야 대신으로 보냄을 받은 세례요한의 사명은 무슨 목적이 남아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목적인 뜻 성사를 완성하여야할 토대를 조성하여 예수 자체에 피해가 없게끔 하여야 할 역사적 책임이 부담되어 있었다.

세례요한이 하여야 할 사명은 엘리야의 심정과 재능으로 예수 앞에서 아버지로 자식을 사랑하게 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자식으로 그 아버지께 효도하게 하여야 할 역사적 사명성을 말라기 4/5,6에 기록함을 보아서 알 수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즉 누구나 다 전인류의 조상인 동시에 전인류는 예수의 자식이라는 창조원리로 되어있는 목적을 찾아서 맞출 수 있는 길을 닦아야할 책임이 요한의 사명이었다. 밖으로는 사탄을 방비하고 내적으로는 백성으로 하여금 자식된 도리를 알려주어 아버지를 모시어 사랑 받을 수 있도록 그 시대에 대한 책임을 겸유한 중대 입장에 요한은 서 있었다. 그런고로 세례요한의 전 목적은 메시아의 도를 준비하는 자로서 즉 메시아 한 분만이 그의 생명의 대신이며 희망과 소망의 전부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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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이었을 것이었다. 또 자기 자신이 알고 있어야할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세례 요한의 광야생활이라는 전 목적은 여기에 완성을 가져오는 바이었다. 예수보다 6개월 전에 사가랴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 자체는 하늘의 무한한 기대로서 보낸 자이면서 사탄이 제일 미워하는 존재였다. 그 시대를 대표하여 뜻을 세우기 위한 30여년 생은 모두가 예수(메시아) 한 존재가 목적인데 그 메시아를 모시는 그 한날의 기쁨의 영광이 그대의 목적이었다. 세례 요한의 뜻을 따라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세례를 시행하게 되었다. 세례는 예수의 그 근본 뜻을 성사할 수 있는 한 터의 자격를 부여하여 지는 약속 표시의 예였다. (요한1/31~34) 세례 요한의 이 예식을 하게 함은 자기 뜻 성사를 하게 함이 아니고, 예수의 뜻을 계승하게 하기 위하심이라는 바는 다 잘 아는 사실이다. 당시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이 보내신 한 선지자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례 요한 한테 이스라엘 백성은 세례식이나마 세례요한 앞에서 세례를 받음은 하늘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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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심을 받은 자로 알고 있던 까닭이므로 신법(요1/15)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 세례 요한은 증거하기를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다음 오시는 메시아는 불과 성신으로 세례를 준다고 하며 대중 앞에 선포함은 자기 자신의 사명과 메시아의 사명은 格別하게 상이함을 고백하는 바였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전 목적의 실체인 메시아 이 한 존재가 소망성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배풀고 있을 때 예수는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서 요한한테 세례를 받고저 할때에 세례 요한이 사양하여 말하길 내가 당신한테 세례를 받아야 할텐데 당신이 나한테 나오시나이까하니,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허락하라. 우리들이 의를 행하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데 세례 요한이 허락하여 세례를 시행함을 받고 물에서 올라오시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신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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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임하심을 보더니 하늘로써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 하시더라. 이와 같은 하늘의 뜻의 존재라는 것은 세례 요한이 스스로가 알게 되었다. 그때 누구나 전부가 이 사실을 듣고 보았던가? 전부는 알지 못하였지만 세례 요한은 잘 알고 있었다. 이렇듯 한 목적을 책임진 세례 요한한테 알리어 전 이스라엘 백성한테 전하여서 하늘 뜻을 성사하게 하고자 하심이 뜻이었다. 이와 같이 하늘로부터 예수는 메시아라는 것과 하늘로부터 보내신 특별자라는 것은 알려 주었으나, 세례 요한한테 예수는 메시아라고까지는 가리켜 교시하여 주지는 않았다. 지혜롭게 행동을 취해야 하는 한 단계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 세례 요한은 자기가 바라던 메시아를 만났음은 그 이상 무슨 딴 목적이 어디에 있으며, 다시금 무엇을 할 사명적 외 부분을 요구할 무엇이 없었을 것이 사실인 동시에, 기뻐서 대중을 대하여 적극적으로 예수는 보내시마 하신 메시아라고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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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하여서 대중이 예수앞에 집결하게 하는 동시에 자기도 역시 예수 앞에 있어서 모든 대표적 태도로서 대중 앞에 나타나서 성원하여야 할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예수는 세례 요한에게 있어서는 생명 대신의 존재였다. 그러한 기쁨의 근본존재로 알고 대하여야 할 예수 앞에 세례 요한 여하한 태도로 나서게 되었는가? 그 자체의 태도 여하로 인하여 대중에게 큰 영향을 전하는 중대한 입장이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예수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예수 자신이 우리가 바라던 목적의 존재, 메시아라고 대중 앞에 선포 못함은 사실이었다. 그저 요단강에서 세례 받은 때에 일뿐이고 요한은 그냥 그대로 자기가 처음 시작한 세례나 주면서 다니는 행동을 계속하고 다니니 예수 대하여서도 대중은 메시아라고 보는 것 보다도 세례요한의 한 행례의 도움자로서 아는 자라고 생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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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도 있을 정도였다. 세례 요한의 목적이 그저 세례나 주고 다니는 것이 역사적으로 부여받은 전체 사명이였는가! 너무나 가치없는 행동이었다. 전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여 생명 계승의 한 중심 존재가 그냥 그 멋대로 사방을 자유로이 다니면서 세례만 준다는 행례에 우리는 한심한 태도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세례 요한 자신은 역시 예수 앞에 있어서 나타난 엘리야의 한 대신 존재라는 것을 잘 알았는가 하면 의심할 문제이다. 요한복음 1/21에 요한이 엘리야도 아니라 하심을 보아도 자기 자체가 그 사명적 입장을 명백히 알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알았으면 왜 대중 앞에 자기를 선포하여서 이스라엘 백성의 의문점을 없게하여야 할 책임도 준비 못하였던 바이었다.
세례 요한 자신이 엘리야란 것을 알았으면 대중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여야 할 존재로서 어디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싸워서 그 기대를 세웠던가? 자기 자신도 확고한 엘리야의 대신자라는 것은 자각하지 못하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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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례 요한은 자기 사명에 대하여 적극적 준비 공작을 하여서 그 목적 본체로 오신 예수 앞에 모든 시종의 중심 존재로 서서 예수의 전 사명의 협조자로서, 또 제일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예수의 한 제자로서 시봉하는 외에 더 큰 다른 무슨 목적이 있었으랴!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와 분립하여 행한 것은 세례 요한이 하늘 앞에 중대한 책임 미완성을 가져오는 기본적 배신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성경에 보면 세례 요한이 전폭적으로 메시아라는 것을 하게 알고 있지 못함을 알려주고 있다. 옥중에 있을 때 제자들을 보내 묻기를 그대가 오실 바의 메시아이니까 하는 질의, 또 다른 사람을 기다리오리까 하는 곳을 보면 세례 요한 자신도 메시아에 대한 해결을 못하였던 바를 알려 준다. 이와 같이 뜻 시봉자가 되여야 할 그 존재조차 메시아로 오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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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알아 주지 못하니 예수 자신에 있어서의 모든 기대와 소망은 여하한 정도였을까? 과연 통한치 않을 길이 있을까! 누가 그 심정을 알 자 있었으랴! 여기에 세례 요한이 예수 앞에, 하늘 앞에 큰 범행의 시작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가 현 교인세계에 없는 바를 나는 통분하는 바이다. 그저 세례 요한은 귀하고 하나님 앞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대우하는 것은 용서 할 수 없는 행동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고로 자기 책임하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행하는 세례 요한은 아버지 앞에 귀한 존재로 보이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 때문에 온 자가 그 본 사명 중심지를 떠나서 행하는 그 자체는 물론이며, 그 시종자까지 하늘 아버지 앞에 미움의 상대였다. 그때 하늘로서 선하게 대할 수 없는 존재로서 그의 말로에까지 하나님은 귀히 보지 않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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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중대지사 여하가 예수 앞에 크나큰 광야생활이라는 한 고통의 노정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광야에 나갈 때에 고독한 그 심중을 헤아려 동정하는 자, 세상에 몇 명이었던가? 여기에 인간과 상대하여 예수의 사명 범위는 한 암로에 봉착하였음을 누가 아는가! 아는 자, 아버지와 예수뿐이었다. 그 광야의 적막함은 예수 앞에 큰 낙망과 동시에 다시금 재출발의 한 노정을 결심케 하는 노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광야까지 예수를 시봉하여 따른 자 한 사람도 없다. 그때 마침 예수를 메시아로 모신 자 있다면 이는 하늘에서 제일 큰 상을 받을 存在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생각하면 동박박사는 어디에 갔는가! 목자는 어디에 갔는고! 모친은 어디에 갔는고! 세례 요한은 어디에 갔는고! 모두 자기 뜻 중심하고 행동하는 그 자체들은 예수 앞에 기쁨이 변하게 하여 탄식하게 하는 한 존재 등에 불과하였으며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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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격동시켜주는 자임에 틀림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심정을 품고 광야생활에 있어서는 제1차 낙심을 다시금 복귀하기 위한 목적인 동시에, 적극 원수 사탄을 대하여 최종 결판시기였다. 사탄이 벌써 하늘 뜻을 성사할 터를 침입하여서 뜻 순종 노정을 받들지 못하는 세례 요한의 부족한 점부터 다시금 예수 앞에 사탄은 나타날 수 있는 한 자기의 기대는 보았으니, 그 다음에 그 중심 자체인 예수에게까지 와서 시험의 시도는 원리적 한 행동이었다. 그러니 광야생활 중 사탄이 자유행동에 대비한 예수의 시험이었다 함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