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上摂理路程에 対한 根本意義 (第二次 하늘 뜻 成事 責任 使命者로 오신 예수, 원리원본 183-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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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次 하날 뜻 成事責任使命者로 오신 예수
.11. 예수的 責任分担 摂理期間에 対한 根本意義
1. 地上摂理路程에 対한 根本意義
旧約時代은 全目的終結은 예수 한분에 基因하며 그의 使命的完成도 예수란 한 存在가 中心이였다. 聖殿를 세우기 爲한 行義의 路은 旧約時期에 한 中心路程이였고 其 路程脫線은 不義라는 死亡의 始作이라 한 겄은 잘 아는 바다. 예수 한 存在의 價値은 卽 全이스라엘聖殿 이스라엘 百姓보담도 貴한 한 存在이였다. 卽 四千年厂史를 通하여 하나님의 摂理한 結実의 自体가 예수였다. 同時에 創造理想를 갓고 創造하였든 全 存在와도 比例되는 存在가 卽 예수였다.
예수=全人類 + 萬物 + 天이라고 하는 中心存在가 예수였다. 웨나하면 한나님 全天宙目的은 예수로 부터 다시금 찬은 價値에 存在니 이 모든겄 보담도 예수는 하나님앞에 귀한 存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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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完全의 살아서 天宙살고 하나님 完全히 살며 예수 뜻 成事하여야 하나님 뜻 成事라는 한 中心奌의 存在인 地上 예수였다. 하날 成事로 예수 한나로 부터 始作이라는 原因은 더 말하지 않어도 잘 알 줄 안다. 이 天宙에 中心奌 예수의 한 存在가 地上에 오는 바는 地上 않이면 뜻 成事 못하는 하나님의 창조原理의 中心地가 卽 地上이였다. 地上에서 사람祖上 아담 해와는 墮落하였스니 땅 中心하고 復帰하여야 그 한 하나님의 萬世前理想 卽 창조理想를 原理되로 成事할 수 있는 條件成事를 보는 바이였다. 그런고로 땅 업스면 하날은 未完成이라는 重大問題가 招來하는 原因의 되여있다. 그런고로 땅 成事하여만의 하날 뜻 円滿成事하고저 함이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의 뜻이니 모도가 同한 基奌上를 分离(*離)할 수 업는 理由은 한 몸된다는 基本因果로 되여 있끼에다. 이와같은 貴한 한 存在가 예수인데 이 예수를 보내기 前에 하나님은 옐나야를 보내마 하심은 다시금 예수한테 사탄으로 부터 被害를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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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게하기 爲하여서 옐나야를 보내여 의 根本自体 오신 다음에 全이스라엘 百姓의 大歡迎를 받게하여 全 百姓은 예수한분 만으로 無限한 榮光이되 그들이 자랑으로 信고 侍여야할 使命的 責任들을 다 할 수 있는 具備條件를 지여 놋케하기 爲하여서 옐니야를 보내주마 하신바가 그 目的이 있는 바이였다. 이스라엘百姓 対하여는 直接引導하여서 뜻 侍奉으로 培養하였지만 世界的으로는 하나님은 全人類에게 모실 수 있 工作도 史厂的聖人들를 通하여서 東西洋에 摂理를 하여 合成和할러고 하는 뜻 成事予備工作도 始作케 하심이다. 其 使命的代表人物들이 卽 孔子며 釋迦이였다. 또 哲人쏘구라테스等々의 良心道 中心한 善를 標準하고 敎示케함도 其 根本意義있슴을 잘 아여야 한다. 이는 宗敎뜬지 根本을 善한 神를 標準케 함은 卽 하나님의 摂理하시는 目的를 根本하고 있다는 바를 明示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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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하나님根本 뜻 成事하면은 其 自体인 敎들도 한 根本上에서 總合을 보여야 되는바도 原理로 되였다. 그런고로 예수 한 存在의 理想中에 뜻 中心의니 全 하나님의 理想를 完成할 根本体이니 예수의 뜻 成事時는 全天宙은 한 中心에서 基動되여야 한다. 宗敎도 經濟도 科学도 合하여 한 基本上에 起動될 바다. 그런 目的으로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시여 찾저 맛추고저 함의 根本意義가 있다. 이와같은 큰나큰 使命的中心存在의 降生과 함께 온 天宙는 큰 福音이 消息를 보앗다. 하날은 勿論 예수의 (存在가) 뜻 成事를 발라는 바고 땅은 예수에 앞에 指導받고저 함의 要求이였다. 예수 한분의 모든 生命의 根本이며 解放의 主人公이였다. 그겄은 卽 사탄世界인 非公式世界서 原理世界 예수에 世界에로 建設目的의 完成의 要求가 예수의 할 責任인 同時에 우리는 그에게 順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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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從 侍從하여서 榮光를 돌리는 겄의 땅에 百姓이 질머진 責任使命이였다. 이 責任의 要求를 成立할려니 엘리야 와서 할 使命全部는 全百姓合하여서 옐리야와 合心一体가 되여서 뜻 円滿成事코저함이 目的이였다. 그런고로 이 百姓은 메시야 보담도 第一 期待하여야할 存在는 옐리야가 第一 발라는 存在이였다. 엘리야은 얻던 사람이였는가 하면 그때 이스라엘百姓은 잘 알고 있는 昇天한 存在였다. 그런고로 엘니야를 보내준다고 하였스니 틀림업시 올 줄 알았다. (그런고로) 昇天한 옐니야 언제나 오실가 하고 발라보는 대는 하날 向하여서 발아보는 겄이 中心으로 되였다. 卽 하날서부터 올라 가스니 하날로써 내려 올 줄만 발라본 바는 事実이였다. 昇天한 옐니야는 其當時第一貴하게 발라는 한 相対로 된바는 메시야 때문이였다. 메시야를 모실 수 있게 하여준은 者는 엘니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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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니야를 발라지 않을 수 업는 必然的要求이였다. 그런데 엘니야는 하날로 날려오리라고를 발라든 者는 至今까지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한는 유대敎的信者等이다. 예수가 메시야로 왓든 것은 事実이매 至今은 全世界的으로 史厂를 通하여 確固한 겄으로 되였스나 其 當時에 있서는 예수를 메시야로는 生覚할 수 업는 存在로 取扱되였든 바는 聖經보아 잘 알 수 있는 바이다. 卽 바리세 敎人과 書記官들은 예수 対하여서 멧본식이나 뭇끼를 그대가 메시야면 옐니야는 왜 오지 안앗은가? 옐니야는 어데 왓는가? 하면서 예수 한대(대하여) 反問한바는 自己들이 厂史的으로 발라는 事実과 符合하지 않은 事実를 告待하는 겄를 성경에서 만희 볼 수 있는 바다. 果然 當時에는 참말 信고 順從할 수 업뜬 바이였다. 메시야라는 其存在은 그내들이 다 잘 아는 요셉子로써 집에 못치며 木手로써 어젰날까지 우리가 알고 있뜬 存在며 그 內容內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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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는 그 自体며 生活体型으로 보아도 우리들과 다름업는 그 自体인데 어디 그 存在가 自己들의 발아든 理想한 中心存在라고는 生覚하는 奌에 하도 먼 거리에 存在로 낱나아지 않을 수 업게 보이였다. 우리가 발아든, 그 存在은 千數百年間約束에 存在요 希望에 存在든 自体가 예수라 하니 이 百姓은 무슨 영문인지 큰 患難에 한 存在로 보이지 않을 수 업섰다.
그들은 메시야를 발암은 全部 뜻 中心하고 발아는겄 보담도 먼츰은 自己를 中心하고 발안바는 事実이라 안의 할 수 업다. 벧들레헴에서 날 줄도 알았다. 그러면 自己들의 메시야 오면는 한 조각에 食物이나 居處할 房이나 衣服이나 其 中 한가지라도 準備놋코 벧들네헴를 向하여 먼츰 무슨 色다른 消息이나 있는가 하여서 告待한 者가 萬一 있섰다면은 메시야 誕生도 알러줄리라. 그런 存在조차 업었다는 事実을 볼대에 볼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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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 告待은 全部가 自己中心이였고 自己들이 메시야의 힘을 빌어서 더 조흔 겄를 발라는 겄니 事実이라는 바는 알 수 있다. *그런고로 各自各自은 自己들의 理想에 符合하는 以上의 存在로 발랏다는 其 立場에 있을때 예수란者 出顯하여 너희들이 理想의 存在라는 宣言은 하도 턱무한 同時에 분개할 事実이 안이라 할 수 업다. 果然 예수님이 肉身스고 나니 自己들과 同一한 樣式으로 살어왓고 또 至今도 変함 업시 同一한 樣이니 果然其自体에 対하여 疑心하는 바 當然之事였다. 이와같은 예수를 対하여서 더 疑心케 된바는 옐니야가 前提問題의 存在였다. 自己들이 옐니야라고 하는 其自体가 왓다면 메시야니 예수니 如何뜬 問題는 解決인데 옐니야도 오지 않코 메시야 왓때니 그 었지 信任할 수 있으랴! 至今 우리는 박구어 生覚할 必要를 늦기면서 昔日에 이 百姓를 辱하여야 되는 問題다. 그러면 至今은 예수 卽 메시야가 萬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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救主요 이스라엘의 希望한 中心存在라는 겄은 厂史的으로도 認識過程으로 나와스니 예수는 메시야며 뜻하신 予言의 実体라는 겄를 알며 그 前에 올 옐니야로 왓섰다는 바를 世上敎人은 다 아는 事実이다. 卽 옐니야는 왓는데 洗礼요한이라는겄를 厂史로써 認定하여주는 聖經를 보아 아는 事実이다. 또 예수도 옐니야 왓스나 이미로 代接하였다고 하면서 福音書에 세례요한를 支適하여 말한 바를 보아서 아는 間接的知이였다. 果然其當時에 立場를 박구워 가지고 生覚하면은 至今은 果然 메시야로 信 侍 順從를 할者 멧名이나될가. 至今現敎人들이 바리세 敎人信仰 만치도 못한者 만은 이때에 生覚할 問題면서 念慮할 重大問題다. 그것은 그럿타 하고 엊지하여 세례요한의 옐니야가 되는가 其根據는 무슨 뜻이며 하나님의 摂理하는바는 무슨 意義를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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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옐니야를 보내준다고 하고는 세례요한를 보내였는가 하는 問題에 根本를 먼츰 알러야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根本意義를 밝히지 못하는 現神學界 하날이 摂理하는 뜻의 侍奉을 完成할 것인가? (? ?/? ? 5 ?, *16/25요.) 至今은 末世라고 하는 때이니 聖經中에 未知였든 事実이 明白히 表示되어야만이 聖經目的을 끝내고 再臨主를 迎接할 수 있는 決定的 關門을 삼을 수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이런 重大視 되는 未知의 根本을 밝히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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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次 하늘 뜻 成事 責任 使命者로 오신 예수
.11. 예수的 責任分擔 攝理 期間에 對한 根本 意義
1. 地上攝理 路程에 對한 根本 意義
舊約時代는 全 目的 終結은 예수 한 분에 基因하며 그의 使命的 完成도 예수란 한 存在가 中心이었다. 聖殿을 세우기 爲한 行義의 길(路)은 舊約時期에 한 中心 路程이었고 其 路程에서 脫線은 不義라는 死亡의 始作이라 한 것은 잘 아는 바다. 예수 한 存在의 價値는 곧(卽) 모든(全) 이스라엘 聖殿, 이스라엘 百姓 보다도 貴한 한 存在이었다. 卽 四千年 歷史를 通하여 하나님이 攝理한 結實의 自体가 예수였다. 同時에 創造理想을 갖고 創造하였던 모든(全) 存在와도 比例되는 存在가 곧(卽) 예수였다.
예수=全人類 + 萬物 + 天 이라고 하는 中心 存在가 예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온(全) 天宙目的은 예수로부터 다시금 찾는 價値의 存在니 이 모든 것 보다도 예수는 하나님 앞에 귀한 存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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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完全히 살아서 天宙도 살고 하나님도 完全히 살며 예수의 뜻을 成事하여야 하나님의 뜻도 成事된다는 한 中心点의 存在가 地上의 예수였다. 하늘의 뜻 成事도 예수 한 분으부터 始作이라는 原因은 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줄 안다. 이 天宙의 中心点인 예수 한 存在가 地上에 오는 바는 地上이 아니면 뜻 成事를 못 하는 하나님의 創造原理의 中心地가 卽 地上이었다. 地上에서 인간 祖上 아담 해와는 墮落하였으니 땅을 中心하고 復歸하여야 그러한 하나님의 萬世 前 理想, 卽 創造理想을 原理대로 成事할 수 있는 條件成事를 보는 바였다. 그런고로 땅이 없으면 하늘은 未完成이라는 重大 問題가 招來되는 原因이 되어 있다. 그런고로 땅에서 成事해야 만 하늘에서도 뜻이 圓滿하게 成事하고자 함이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의 뜻이니 모두가 같(同)은 基点上을 分离할 수 없는 理由는 한 몸이 된다는 인과법칙(基本因果)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貴한 한 存在가 예수인데, 이 예수를 보내기 前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마고 하심은 다시금 예수에게 사탄으로부터 被害를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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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게 하기 爲하여 엘리야를 보내어 이 根本 自体로 오신 다음에 全 이스라엘 百姓의 大歡迎을 받게 하여 온(全) 百姓은 예수 한 분 만으로 無限한 榮光이며 그들이 자랑으로 믿(信)고 모셔야(侍) 할 使命的 責任들을 다할 수 있는 具備條件을 지어 놓게 하기 爲하여서 엘리야를 보내주마고 하신 바가 그 目的이 있는 바였다.
이스라엘 百姓에 對하여는 直接 引導하여서 뜻을 侍奉하게 培養하였지만 世界的으로는 하나님은 全人類에게 모실 수 있는 工作도 歷史的 聖人들을 通하여서 東西洋에 攝理를 하여 合成和하려고 하는 뜻 成事의 豫備 工作도 始作하게 하셨던 것이다. 其 使命的 代表 人物들이 곧(卽) 孔子며 釋迦였다. 또 哲人 소크라테스 等等의 良心과 道를 중심한 善을 標準하고 敎示하게 함도 其 根本 意義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느 宗敎든지 근본은 善한 神을 標準케 함은, 卽 하나님이 攝理하시는 目的을 根本으로 하고 있다는 바를 明示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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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하나님이 根本인 뜻을 成事하면 그 自体인 宗敎들도 한 根本上에서 總合을 보여야 되는 바도 原理로 되었다. 그런고로 예수 한 存在의 理想 中에 뜻이 中心이니 모든(全) 하나님의 理想을 完成할 根本体이니 예수의 뜻 成事時에는 온(全) 天宙는 한 中心에서 起動되어야 한다. 宗敎도 經濟도 科學도 合하여 한 基本上에서 起動될 바다. 그런 目的으로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시어 찾아 맞추고자 함에 根本 意義가 있다. 이와 같은 크나큰 使命的 中心 存在의 降生과 함께 온 天宙는 큰 福音의 消息을 보았다. 하늘은 勿論 예수의 存在가 뜻 成事를 바라는 바고 땅은 예수 앞에 指導받고자 함이 要求였다. 예수 한분이 모든 生命의 根本이며 解放의 主人公이었다. 그것은 卽 사탄 世界인 非公式 世界에서 原理世界인 예수의 世界에로 建設 目的의 完成의 要求가 예수의 할 責任인 同時에 우리는 그에게 順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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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모셔(信從 侍從)서 榮光을 돌리는 것이 땅의 百姓이 짊어진 責任使命이었다. 이 責任의 要求를 成立하려니 엘리야가 와서 할 使命 全部는 全百姓이 合하여서 엘리야와 合心一体가 되어서 뜻을 圓滿하게 成事하고자 함이 目的이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百姓은 메시아 보다도 第一 期待하여야 할 存在는 엘리야가 第一 바라는 存在였다. 엘리야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면 그때 이스라엘 백성이 잘 알고 있는 昇天한 存在였다. 그런고로 엘리야를 보내준다고 하였으니 틀림없이 올 줄 알았다. 그런고로 昇天한 엘리야가 언제나 오실까하고 바라보는 데는 하늘을 向하여 바라보는 것이 中心으로 되었다. 卽 하늘로 올라갔으니 하늘로부터 내려올 줄로만 바라본 바는 事實이었다. 昇天한 엘리야는 其 當時 第一 貴하게 바라는 相對로 된 바는 메시아 때문이었다.
메시아를 모실 수 있게 하려는 者는 엘리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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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를 바라지 않을 수 없는 必然的 要求였다. 그런데 엘리야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고 바라는 者는 至今까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유대敎的 信者 等이다. 예수가 메시아로 왔던 것은 事實임이 至今은 全世界的으로 歷史를 通하여 確固한 것으로 되었으나, 其 當時에 있어서는 예수를 메시아로는 生覺할 수 없는 存在로 取扱되었던 바는 聖經을 보아 잘 알 수 있는 바이다. 卽 바리새 敎人과 書記官들은 예수에 對하여서 몇 번씩이나 묻기를 그대가 메시아면 엘리야는 왜 오지 않았는가? 엘리야는 어디에 왔는가? 하면서 예수한테 反問한 바는 自己들이 歷史的으로 바라는 事實과 符合하지 않은 事實을 告白하는 것을 성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바다. 果然 當時에는 정말 믿(信)고 順從할 수 없었던 바였다. 메시아라는 其 存在는 그들이 다 잘 아는 요셉 아들(子)로서 집에 묻혀 木手로서 어제 날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存在이며 그 內容 內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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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는 그 自体며 生活 体型으로 보아도 우리들과 다름없는 그 自体인데 어디 그 存在가 自己들이 바라던 理想한 中心 存在라고 生覺하는 点에 너무도 먼 거리의 存在로 보였다. 우리(그들)가 바라던 그 存在는 数千年間 約束의 存在요 希望의 存在였던 自体가 예수라고 하니 이스라엘 百姓은 무슨 영문인지 큰 患難의 한 存在로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메시아를 바람은 全部 뜻 中心하고 바라는 것보다도 먼저 自己들을 中心하고 바란 事實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베들레헴에서 날 줄도 알았다. 그러면 自己들의 메시아가 오면 한 조각의 食物이나 居處할 房이나 衣服이나, 其 中 한가지라도 準備해 놓고 베들레헴을 向하여 먼저 무슨 色다른 消息이 있는가 하면서 告待한 者가 萬一 있었다면 메시아 誕生을 알았으리라. 그런 存在조차 없었다는 事實을 볼 때 벌써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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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告待는 全部가 自己 中心이었고 自己들이 메시아의 힘을 빌어서 더 좋은 것을 바랐던 것이 事實이라는 바는 알 수 있다. 그런고로 各自 各自는 自己들이 理想에 符合하는 以上의 存在로 바랐다는 其 立場에 있을 때 예수란 者가 出顯하여 너희들의 理想의 存在라는 宣言은 너무도 턱없는 同時에 분개할 事實이 아니라 할 수 없다. 果然 예수님이 肉身 쓰고 나니 自己들과 同一한 樣式으로 살아왔고 또 至今도 變함없이 同一한 모양(樣)이니 果然 其 自体에 對하여 疑心하는 바는 當然之事였다. 이와 같이 예수를 對하여서 더 疑心하게 된 바는 엘리야가 前提 問題의 存在였다. 自己들이 엘리야라고 하는 其 自体가 왔다면 메시아니 예수니 如何튼 問題는 解決인데 엘리야도 오지 않고 메시아가 왔다니 그 어찌 信任할 수 있으랴! 至今 우리는 바꾸어 生覺할 必要를 느끼면서 지난 날(昔日)의 이스라엘 百姓을 辱하여야 되는 問題다. 그러면 至今은 예수, 卽 메시아가 萬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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救主요 이스라엘이 希望한 中心 存在라는 것은 歷史的으로도 認識過程으로 나왔으니 예수는 메시아며 뜻하신 豫言의 實體라는 것을 알며 그 前에 올 엘리야도 왔었다는 바는 世上 敎人은 다 아는 事實이다. 卽 엘리야는 왔는데 洗禮 요한 이라는 것을 歷史로써 認定하여 주는 聖經을 보아 아는 事實이다. 또 예수는 엘리야가 왔으나 임의로
至今 現 敎人들이 바리새 敎人의 信仰만큼도 못한 者 많은 이때에 生覺할 問題면서 念慮할 重大問題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어찌하여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되는가, 其 根據는 무슨 뜻이며 하나님이 攝理하는 바는 무슨 意義를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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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엘리야를 보내준다고 하고 세례 요한을 보냈는가 하는 問題의 根本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根本 意義를 밝히지 못하는 現神學界가 하늘이 攝理하는 뜻의 侍奉을 完成할 것인가?(? ?/? ? 5 ?, *요16;25) 至今은 末世라고 하는 때이니 聖經 中에 未知였던 事實이 明白히 表明 되어야만 聖經의 目的을 끝내고 再臨主를 迎接할 수 있는 決定的 關門을 삼을 수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이런 重大視 되는 未知의 根本을 밝히기로 하자.
제2차 하늘 뜻 성사 책임분 사명자로 오신 예수
.11. 예수적 책임분담 섭리 기간에 대한 근본 의의
1. 지상섭리 노정에 대한 근본 의의
구약시대는 전 목적 종결은 예수 한 분에 기인하며 그의 사명적 완성도 예수란 한 존재가 중심이었다. 성전을 세우기 위한 행의의 길(路)은 구약시기에 한 중심 노정이었고 그 노정에서 탈선은 불의라는 사망의 시작이라 한 것은 잘 아는 바다. 예수 한 존재의 가치는 곧(卽) 모든(全) 이스라엘 성전, 이스라엘 백성 보다도 귀한 한 존재이었다. 즉 4천년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섭리한 결실의 자체가 예수였다. 동시에 창조이상을 갖고 창조하였던 모든(全) 존재와도 비례되는 존재가 곧(卽) 예수였다.
예수=전인류 + 만물 + 천(天) 이라고 하는 중심 존재가 예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온(全) 천주목적은 예수로부터 다시금 찾는 가치의 존재니 이 모든 것 보다도 예수는 하나님 앞에 귀한 존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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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완전히 살아서 천주도 살고 하나님도 완전히 살며 예수의 뜻을 성사하여야 하나님의 뜻도 성사된다는 한 중심점의 존재가 지상의 예수였다. 하늘의 뜻 성사도 예수 한 분으부터 시작이라는 원인은 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줄 안다. 이 천주의 중심점인 예수 한 존재가 지상에 오는 바는 지상이 아니면 뜻 성사를 못 하는 하나님의 창조원리의 중심지가 즉 지상이었다. 지상에서 인간 조상 아담 해와는 타락하였으니 땅을 중심하고 복귀하여야 그러한 하나님의 만세 전 이상, 즉 창조이상을 원리대로 성사할 수 있는 조건성사를 보는 바였다. 그런고로 땅이 없으면 하늘은 미완성이라는 중대 문제가 초래되는 원인이 되어 있다. 그런고로 땅에서 성사해야 만 하늘에서도 뜻이 원만하게 성사하고자 함이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의 뜻이니 모두가 같(同)은 기점상을 분리할 수 없는 이유는 한 몸이 된다는 인과법칙(基本因果)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귀한 한 존재가 예수인데, 이 예수를 보내기 전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마고 하심은 다시금 예수에게 사탄으로부터 피해를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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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게 하기 위하여 엘리야를 보내어 이 근본 자체로 오신 다음에 전 이스라엘 백성의 대환영을 받게 하여 온(全) 백성은 예수 한 분 만으로 무한한 영광이며 그들이 자랑으로 믿(信)고 모셔야(侍) 할 사명적 책임들을 다할 수 있는 구비조건을 지어 놓게 하기 위하여서 엘리야를 보내주마고 하신 바가 그 목적이 있는 바였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는 직접 인도하여서 뜻을 시봉하게 배양하였지만 세계적으로는 하나님은 전인류에게 모실 수 있는 공작도 역사적 성인들을 통하여서 동서양에 섭리를 하여 합성화하려고 하는 뜻 성사의 예비 공작도 시작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 사명적 대표 인물들이 곧(卽) 공자며 석가였다. 또 철인 소크라테스 등등의 양심과 도를 중심한 선을 표준하고 교시하게 함도 그 근본 의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느 종교든지 근본은 선한 신을 표준케 함은, 즉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목적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는 바를 명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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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하나님이 근본인 뜻을 성사하면 그 자체인 종교들도 한 근본상에서 총합을 보여야 되는 바도 원리로 되었다. 그런고로 예수 한 존재의 이상 중에 뜻이 중심이니 모든(全) 하나님의 이상을 완성할 근본체이니 예수의 뜻 성사시에는 온(全) 천주는 한 중심에서 기동되어야 한다. 종교도 경제도 과학도 합하여 한 기본상에서 기동될 바다. 그런 목적으로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시어 찾아 맞추고자 함에 근본 의의가 있다. 이와 같은 크나큰 사명적중심 존재의 강생(降生)과 함께 온 천주는 큰 복음의 소식을 보았다. 하늘은 물론 예수의 존재가 뜻 성사를 바라는 바고 땅은 예수 앞에 지도받고자 함이 요구였다. 예수 한분이 모든 생명의 근본이며 해방의 주인공이었다. 그것은 즉 사탄 세계인 비공식 세계에서 원리세계인 예수의 세계에로 건설 목적의 완성의 요구가 예수의 할 책임인 동시에 우리는 그에게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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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모셔(信從 侍從)서 영광을 돌리는 것이 땅의 백성이 짊어진 책임사명이었다. 이 책임의 요구를 성립하려니 엘리야가 와서 할 사명 전부는 전백성이 합하여서 엘리야와 합심일체가 되어서 뜻을 원만하게 성사하고자 함이 목적이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 보다도 제일 기대하여야 할 존재는 엘리야가 제일 바라는 존재였다. 엘리야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면 그때 이스라엘 백성이 잘 알고 있는 승천한 존재였다. 그런고로 엘리야를 보내준다고 하였으니 틀림없이 올 줄 알았다. 그런고로 승천한 엘리야가 언제나 오실까하고 바라보는 데는 하늘을 향하여 바라보는 것이 중심으로 되었다. 즉 하늘로 올라갔으니 하늘로부터 내려올 줄로만 바라본 바는 사실이었다. 승천한 엘리야는 그 당시 제일 귀하게 바라는 상대로 된 바는 메시아 때문이었다.
메시아를 모실 수 있게 하려는 자는 엘리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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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를 바라지 않을 수 없는 필연적 요구였다. 그런데 엘리야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고 바라는 자는 지금까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유대교적 신자 등이다. 예수가 메시아로 왔던 것은 사실임이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역사를 통하여 확고한 것으로 되었으나, 그 당시에 있어서는 예수를 메시아로는 생각할 수 없는 존재로 취급되었던 바는 성경을 보아 잘 알 수 있는 바이다. 즉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들은 예수에 대하여서 몇 번씩이나 묻기를 그대가 메시아면 엘리야는 왜 오지 않았는가? 엘리야는 어디에 왔는가? 하면서 예수한테 반문한 바는 자기들이 역사적으로 바라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성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바다. 과연 당시에는 정말 믿(信)고 순종할 수 없었던 바였다. 메시아라는 그 존재는 그들이 다 잘 아는 요셉 아들(子)로서 집에 묻혀 목수로서 어제 날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존재이며 그 내용 내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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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는 그 자체며 생활 체형으로 보아도 우리들과 다름없는 그 자체인데 어디 그 존재가 자기들이 바라던 이상(理想)한 중심 존재라고 생각하는 점에 너무도 먼 거리의 존재로 보였다. 우리(그들)가 바라던 그 존재는 수천년간 약속의 존재요 희망의 존재였던 자체가 예수라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은 무슨 영문인지 큰 환난의 한 존재로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메시아를 바람은 전부 뜻 중심하고 바라는 것보다도 먼저 자기들을 중심하고 바란 사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베들레헴에서 날 줄도 알았다. 그러면 자기들의 메시아가 오면 한 조각의 식물이나 거처할 방이나 의복이나, 그 중 한가지라도 준비해 놓고 베들레헴을 향하여 먼저 무슨 색다른 소식이 있는가 하면서 고대한 자가 만일 있었다면 메시아 탄생을 알았으리라. 그런 존재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볼 때 벌써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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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고대는 전부가 자기 중심이었고 자기들이 메시아의 힘을 빌어서 더 좋은 것을 바랐던 것이 사실이라는 바는 알 수 있다. 그런고로 각자 각자는 자기들이 이상(理想)에 부합하는 이상(以上)의 존재로 바랐다는 그 입장에 있을 때 예수란 자가 출현하여 너희들의 이상(理想)의 존재라는 선언은 너무도 턱없는 동시에 분개할 사실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과연 예수님이 육신 쓰고 나니 자기들과 동일한 양식으로 살아왔고 또 지금도 변함없이 동일한 모양(樣)이니 과연 그 자체에 대하여 의심하는 바는 당연지사였다. 이와 같이 예수를 대하여서 더 의심하게 된 바는 엘리야가 전제(前提) 문제의 존재였다. 자기들이 엘리야라고 하는 그 자체가 왔다면 메시아니 예수니 여하튼 문제는 해결인데 엘리야도 오지 않고 메시아가 왔다니 그 어찌 신임할 수 있으랴! 지금 우리는 바꾸어 생각할 필요를 느끼면서 지난 날(昔日)의 이스라엘 백성을 욕하여야 되는 문제다. 그러면 지금은 예수, 즉 메시아가 만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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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요 이스라엘이 희망한 중심 존재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인식과정으로 나왔으니 예수는 메시아며 뜻하신 예언의 실체라는 것을 알며 그 전에 올 엘리야도 왔었다는 바는 세상 교인은 다 아는 사실이다. 즉 엘리야는 왔는데 세례 요한 이라는 것을 역사로써 인정하여 주는 성경을 보아 아는 사실이다. 또 예수는 엘리야가 왔으나 임의로 대접하였다고 하면서 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을 지적하여 말한 바를 보아서 아는 간접적 지식(知)이었다. 과연 그 당시의 입장을 바꾸어 가지고 생각하면 지금은 과연 메시아로 믿고 모시고 순종(信侍順從)을 할 자 몇 명이나 될까?
지금 현 종교인들이 바리새 교인의 신앙만큼도 못한 자 많은 이때에 생각할 문제면서 염려할 중대문제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어찌하여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되는가, 그 근거는 무슨 뜻이며 하나님이 섭리하는 바는 무슨 의의를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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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엘리야를 보내준다고 하고 세례 요한을 보냈는가 하는 문제의 근본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근본 의의를 밝히지 못하는 현신학계가 하늘이 섭리하는 뜻의 시봉을 완성할 것인가?(? ?/? ? 5 ?, *요16;25) 지금은 말세라고 하는 때이니 성경 중에 미지였던 사실이 명백히 표명 되어야만 성경의 목적을 끝내고 재림주를 영접할 수 있는 결정적 관문을 삼을 수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이런 중대시 되는 미지의 근본을 밝히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