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원본 제1권 119-148쪽
119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摂理하신 根本 意義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自己 故鄕 山川과 情든 鄕土情과 父母에 対한 情理라든가 親戚에 対한 情理라든가가 아브라함에게는 큰 苦(告)痛의 相対였으나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路程에는 이 모든
120
것의 問題되는 곳에는 始作할 수 없는 事実이다. 이와 같은 情은 하늘 情을 成事하고자 하는데는反対되는 直接行動如何를 躊躇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不拘하고 아브라함은 이와 같은 것을 問題로 하지 않고 갈대아우르를 出発하는 그 行動은 果然 人間으로서 讚揚하여할 問題인 同時에 사탄에게 対한 復讐的인 하나님 뜻을 成事하는 터의 行動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自己의 基本 뜻을 아브라함으로부터 本格的 出発을 보고자 함이었다. 사탄은 아브라함을 빼앗기고는 아브라함에 対한 反復工作을 始作하는 同時에 하나님의 뜻 成事를 破壞하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 対하여 祝福하려할 때 아브라함 自体에 対한 祝福보다도 뜻을 中心하고祝福하는 것이 하나님의 根本本意였다. 아브라함이 福의 機關이 될 祝福을 하여주며 (이)爾로 하여금 큰(大)族屬을 이루리라고 祝福하여 주신 뜻을 받들어서 故鄕山川를 出発하는 아브라함 自体에는 하늘의 工作始作을 받게되는 하나님의 代身 뜻 成事의 基本行動의 始作은 完成하였다.
121
아브라함을 빼앗아 낸 하나님은 自己가 하고자 하는 全目的를 두고 祝福과 約束에 対한 새로운 決定的 言約를 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卽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対하여 決定的 言約를 세우게 된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族屬에게 잡혀간 롯를 다시금 찾아와 勝利한 後에 始作하였다.
이와 같이 한 바는 하나님의 미워하는 民族과 対立케 함은 하나님 自身의 뜻를 세울 수 있는 確固한 基초를 세 우는(세울 수 있는) 同時에 벌써 하나님이 미워하는 나라가 원수的 立場에서 하나님 便에 섰기에 決定的言約成事를 始作하였다. 이 言約은 아브라함의 子孫으로부터 始作하여 하나님의 뜻를 세우는 民族建設의 始作이며 이를 擴大시켜서 國家建設에로, 그리하여 世界復帰의 根本 意義를 두고 하는 言約이 全部의 始作, 卽 아브라함의 言約中에 抱含되어지는 根本 事実를 알 수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非夢似夢에 말씀 하시기를 구(懼)하지 말라, 나는 너(爾)의 방패(盾)요, 큰(大) 賞給이니라.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창15/1)
122
나는 자식이 없사(無子하)오니 나(我)의 相續者가 없다(無라)하니 아브라함에 対하여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이 너(爾)의 親子息으로 因하여 後嗣가 되리라 하시며 데리(携)고 밖(外)으로 나아가 말씀하시되 하늘(天)을 우러(仰)러 보라 하며 뭇별(衆星)을 셀(計數할) 수 없는 바와 같이 너(爾)의 子孫이 이와 같이 되리라. 하심에 아브라함은 이를 믿(信)으니 義로 여기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目的을 完成키 爲하여서 갈대아우르에서 引導하였다 하시면서 이 땅을 너(爾)에게 주(賜)어 基業이 되게 함이라 하시였다.
그때에 하나님께 말씀하시기를 내(我)가 이 땅을 얻어 基業삼을 것을 무엇으로 알(知)리이까 하니 너(爾)가 나(我)를 爲하여 三年된 (암소(牡牛) 한 마리(一)와 三年된 山羊 한 마리(一)와 三年된 암양(牡羊) 한 마리(一)와 산비둘기(山鳩) 한 마리(一)와 집비둘기(家鳩雛) 한 마리(一)를 바치(獻)라 하니 아브라함이 其 모든 것을 取하여 둘(二)로 쪼개(剖)어 右와 左에 놓고 其 비둘기(鳩)는 쪼개(剖)지 아니하여 祭壇위에다 놓고 祭祀를 드리니 그 祭物 위에는 독수리가 날아와서 앉게 되었다. 그런고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丁寧히 알라. 너(爾) 子孫이 客이 되어 四百年 동안 苦役하리라 한 怒함을 보게 되었다.
123
이 祭物은 무슨 祭物이었는가 하면 其 後孫에 対한 全部의 祭物의 表示物이었다. 卽 其 祭物이 全 하나님의 뜻이 되는 百姓을 찾고자 하는 目的이며 全人類를 찾아야 할 하나님의 根本目的을 表示한 代身的祭物이었다. 이 祭物 위에 독수리가 내렸다 하는 바는 무었을 말하는가 하면 벌써 사탄의 侵入을 증거하는 事実이다. 卽 아브라함 하나를 中心하고 하나님의 뜻를 세우려고 할 때에 사탄은 그 뜻을 깨뜨리기 爲하여 아브라함 한 自身의 結果的 行動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言約祭物을, 卽 全 하나님의 目的를 두고 予約的 祭物임에 틀림없다. 이 祭物을 失敗하면은 다시금 사탄한테 侵入路程를 양보하는 行動인데 아브라함의 全 뜻을 뜻에 맞(合意있)게 祭物을 獻祭하지 못함은 하나님의 계획의 뜻은 벌써 이루지 못(未成事) 할 것을 表示하는 重大한 것이 이 祭物이었다.
124
그런데 아브라함 自身은 이 重大한 祭物을 드리는 自身으로서 祭物을 全部 쪼개지 못함은 무슨 뜻이냐 하면 그 祭物을 쪼개(剖)는 것은 사탄편 사람과 하늘편 사람이 있다는 全人類의 表示였다. 그런데 비둘기(鳩)를 쪼개지 않은 바는 하나님의 所有된 子孫과 사탄 所有된 사람과 갈라서 摂理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전체 뜻(全意義)이었는데 쪼개지 않았으니 하나님 子孫될 約束과 言約이 成立을 보는 祭物에 完成한 成立을 보지 못하고 마는 事実이니 다시금 그 子孫까지 사탄의 侵入할 수 있는 터를 지은 것이 始作을 보게 되니 사탄은 自己便쪽 表示로 갈라지지 않은 祭物 비둘기(鳩)를 取하려고 하여 祭壇 위에 내린 바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뜻한 全 目的은 사탄이 다시금 차지하는 뜻으로써 祭物獻祭는 失敗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三大 祭物은 무슨 表示냐 하면 하나님 하시고자 하는 眞理目的 中心은 蘇生에서 長成으로 長成에서 完成으로
125
써 한 祭物를 通하여 表示한 바이었다. 卽 비둘기(鳩)를 드리게 하심은 하나님의 뜻 蘇生을 表示함이고 羊를 드리라하심은 長成을 表示함이고 소(牛)를 드리라 하심은 完成를 表示하는 重大祭物이었다. 萬一 이 祭物이 뜻에 合意하게 獻祭하였으면 애급 四百年 生活은 이스라엘民族에게 없었을 것이었는데 四百年 고役이라는 것은 이 獻祭物의 重大한 失敗를 告하는 바의 事実이다.
(四百年 年対意義는 나중 논하려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予約祭物에 失敗를 보니 그것은 子孫를 사탄한테 빼앗기는 表示로 되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子孫 中에도 사탄이 侵入할 수 있게 되었으니 根本 目的은 다시금 未成事的 原因으로 基因되니 하나님은 다시금 아브라함子孫에게 사탄侵入의 길을 막으려니 代身 祭物은 사탄한테 빼앗기셨기에, 그것은 卽 아브라함 子孫 全部를 잃어버린 바와 마찬가지였기에 하나님은 아브라
126
함이 사탄의 뜻 成事를 본 것과 같은 結果를 가져왔으니 사탄한데 祭物 들인 것과 같이 되어버렸다. 卽 아브라함도 사탄 所有의 根據奌이 되어 全目的의 未成事를 가져오게 되니 다시금 하나님은 約束祭物은 빼앗겼지만 아직 実体子孫 되는 것은 빼앗기지 않으려니 하나님은 부득이(不得己) 한 立場을 取하여 아브라함에 따르려는 民孫에 対한 사탄 侵入를 막으려 함에 하나님은 그 子孫의 始作인 한 自体가 사탄과 하나님과의 直接問題의 要求物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子) 이삭을 取하여야 하겠고 사탄은 벌써 이삭에 対하여서 取할 수 있는 予約祭物 代身祭物를 自己가 所有하였던 것이기에 사탄 亦是 그 祭物 代身되는 実体인 이삭이 要求물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다시금 順從를 세워 하나님편으로 全子孫를 돌리려니 아브라함에 対하여 実体子息 이삭을 祭物
127
로 들리러는 問題를 提起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이 卽 아브라함으로 모리야 山上에서 祭物로 이삭을 드리려는 根本意義는 여기 있는 바이었다. 그때 뜻 中心하고 順從하면 사탄은 떨어지고 하나님 편으로 屬하는 것이었다. 그때 아브라함은 順從하여 代身 祭物을 잃어버린 것을 実体로써 찾는 양으로 獻祭의 命令에 順從하게 되었다. 이때 아브라함은 이런 原理的 問題는 알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立場에 아브라함의 順從은 容易한 問題가 아니었으나 予約代身祭物를 獻祭時 失敗가 全子孫에게 四百年 동안 이 苦役의 뜻을 알고 나니 이번에 失敗면 말할 수 없는 큰 어려운(難한) 問題가 生起리라는 것을 아는 아브라함은 全的으로 하나님의 命令을 順從하게 되어 뜻대로 燔祭로써 子息를 드리는 確固한 그 立場에서 사탄은 目的
128
相対인 이삭에게서 물러가게 되는 바의 始作을 볼 수 있다. 그런고로 이 事実의 根本 뜻을 現 사람들은 알지 못한 것이나 聖經에도 아브라함이 失手한 句節을 알게 하는 句節이 있나니, 卽 창세기22/12節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 할 때에 그 아들(兒孩)에게 손(手)를 대여 害하지 말라. 네(爾)가 너의(爾子)獨子를 나(我)에게 바치(獻)기를 아끼(惜)지 아니하니 이제(今)야 네(爾)가 나(我) 하나님을 두려워(懼) 하는 줄 아(知)노라 하셨다. 이 聖經句節 中에 이제(今)야 하는 그 句節이 卽 前번 失敗를 警告하는 同時에 뜻 繼承 成事를 告함이었다. 이리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뜻의 路程를 찾아 나아가는 그 途中에는 予約 代身 祭物로 失手한 험물로 받은 아브라함 子孫에게는 四百年 동안 원수 앞에 苦役해야만 本 路程에 들어설 것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民
129
族 애급 四百年 苦役은 必然的 過程이었다. 眞理를 찾으려니 眞理에는 蘇生이 있고 長成이 있고 完成이 있는 바이니 하나님도 이 찾고자 하는 뜻의 한 眞理路程이니 이와 같은 三大祭物이 要求되었다. 이 祭物的 使命에 蘇生部分은 卽 旧約時代의 表徵이다. 蘇生하면은 長成 完成으로 할려하든겄의 人間의 絶対順從치 못함으로 分立를 자아내는 겄으로 展開할 것이 表증되여 있다. 한 祭坦 위에 三祭物은 한번에 뜻 成事 하여야 할 것이 根本 뜻이었다.
여기에 蘇生役事는 하나님의 責任分担으로 始作 基礎를 잡는 것이고 長成은 예수가 오셔서 根本復帰의 復讐의 例로 해와를 찾아야만 되는 것이고 完成은 예수를 中心하고 全人類와 合하며 또 하나님과 合하여서 全 根本 創造目的 達成을 보고자 함이 表示로 된 祭物의 意義다.
130
祭物 中에 비둘기(鳩)는 蘇生를 表示함이니 旧約時期를 말함이고 羊은 長成이니 新約時期를 表示함이고 牛는 完成이니 再臨을 말함이다. 長成과 完成과 함께 할려는 뜻은 인간(人)의 不順從과 不信으로 因하여 예수를 죽이니 再臨이라는 問題가 生起게 되었다. 소(牛)는 完成이 表示이였는데 왜 암소(牝牛)였던가. 卽 完成하려면 해와 한 存在가 問題되는 中心奌이니 암소(牝牛)는 해와를 表示하는 뜻이다. 사사記 14/18 下에 萬一 너희가 我의 암소(牝牛)로 밭갈지(耕)지 아니하엿떠면 能히 나(我)의 수수께끼(謎語)를 풀(解)지 못하였으라.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 対하여 妻를 (牝牛로) 表示하여 말함도 例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암소(牝牛)는 해와를 表示하는 것이다.
이 해와가 卽 完成할 수 있는 目的相対이었다. 簡單한 祭物內容를 紹介하였지만 다시금 本論으로 들어가서 보면은 사탄은 이삭이 実体에게 뜻를 세우지 못하고 다시금 其 子孫에 対하여 対立的 態度는 勿論이며 다시금 実体子孫에 侵入의 길을 찾으려고 試圖하였다. 이삭의 한 存在가 予約 대신(代)祭物의 侵入를 보였기에 그 이삭에게도 不順從의 터는 벌써
131
始作할 수 있는 可能性이 잘못하면 生起는 것을 사탄은 바라보고 알게 되었다. 그것은 祭物을 自己 것으로 하였던 事実이 있음으로 사탄은 如前히 그 後孫에게 対하여 対立性을 갖고 対하게 되었다.그런고로 이삭이 子息를 나으니 雙胎인지라, 卽 에서와 야곱이었다. 이 雙胎는 무엇를 意味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의 失敗로 因한 祭物에 願치 않은 存在의 侵入이 있었던 것이므로 이 実体子息 이삭이 問題되어 또다시 찾았으나 이삭의 子息한데 対하여는 사탄 亦是 사탄이 찾고자하는 한 터를 양보하였던 失手가 있었으니 그 子息되는 雙胎는 원수的 表示의 所有者와 하나님的 表示인 所有가 한 胎中에 있음을 表示함이었다. 그래서 에서와 야곱은 腹中에서부터 싸움은 이와 같은 根本 背馳의 存在이니 腹中에서부터 싸운 것이다. 子息을 낳으니 에서와 야곱이더라.
132
에서는 원수 사탄의 代表요, 야곱은 하나님 편的 代表였다. 卽 에서는 아브라함의 처음 祭物의 失敗의 씨요. 다음 야곱은 잃어버린 이삭을 実体로서 찾아서 祭物까지 찾아 세우게 되었으니 하나님 第二次的存在인 야곱을 通하여서 뜻을 세우고자 함은 根本이 그와같이 되었기에 빼앗아서 成事하는 모양이니 하나님이 에서의 祝福을 야곱에게로 돌리는 根本意義는 여기에 있음(有)이다.
그래 祭物失敗가 없었으면 이삭의 子息에 하나님이 미워하는 에서와 같은 存在은 없었어야 할 存在가 生起게 된 것은 다시금 사탄을 分立하게 하여 하늘 便과 사탄便을 分立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탄이 다시는 아브라함의 子孫한테 미련를 다시는 남기지 않게 하기 爲한 것이 目的이므로 이와같은 表示的 事実로서 야곱이 에서의 長子의 職分을 빼앗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
133
은 다시금 예수가 와서 원수血를 받은 全人類를 빼앗아 넘길 것을 予告하는 事実이다. 이런고로 이 한 事実이 根本을 밝혀주는 것인 同時에 뜻 成事의 한 表徵으로 되는 바가 되어야 하는 바는 아브라함의 言約은 全(體)目的인 表示인 約束이었기에 이런 意味의 한 分岐적 存在는 이삭이니(이삭 부터이니) 其 子孫 에서와 야곱의 사이에 되어진 実狀이었다. 그런 結果 이 影響를 받고 낫기에 맛子息은 하나님앞에 사랑받지 못한 事実의 原因이니 創世記 全면에서 보여주는 事実이다.
例를 찾으면 이삭, 야곱, 요셉, 에부라엠, 아벨 等々에 事実은 이와같은 사탄 피(血)를 받고 낫기에 맛 자식은 미움의 相対이었다. 여기서 뜻 成事 出発의 後孫은 야곱을 中心하고 択한 百姓 十二 兄弟요 十二支派로 始作의 出発은 야곱부터 始作케 한 것은 根本意義보아 알 수 있는 바이다. 이삭은 하나님과 사탄이 바라는 存在立場의 아담과 같은 두 상対格 立場이었기에 根本出発을 못했다.
134
卽 이삭부터가 애급出発이 아니고 야곱부터 되는 바는 以上 解說 中 原理로써 明白한 事実이다. 이리하여 択한 하늘 百姓의 되어야 할 其 根本은 애급으로 옮겨지게 되는 바는 뜻 成事의 첫 出発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原因이 生起게 되었다.)
至今부터 하나님과 사탄이 分立되어 復帰의 出発은 始作된다. 이것이 卽 하나님的 分担責任成事의 出発의 始作이라는 것을 알어야 한다. 그런고로 이것이 根本이 되어 卽 標本의 되어서 長成과 完成的 使命分担 責任者의 本이 되어야 하는 第一次 하늘的으로 하나님 直接 使命하고자 하는 基礎는 始作되는 同時祭物表示 蘇生課程의 発露이었다. 그런고로 애급에서부터 가나안 復帰까지는 예수님이 오셔서 할 基本表示工作과 같은 貌樣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한 目的을 한 完成으로 볼 수 있는 한 터의 工作이니
135
애급서부터 솔로몬王까지는 第二次 完成하여야 할 存在가 나타나서 成事할 한 予告的 表示로 되어있다. 卽 예수 오셔서 애급서부터 가나안 復地에로 가는 양으로 우리 人間理想復帰의 땅(地)으로 찾아 들어가는 한 使命的 基礎 表示로 展開시키고저 함의 意義를 알아야 한다. 애급서 가나안 復귀路程은 예수의 路程을 表示한 바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根本 뜻이다.
그리하여 墮落시킨 人間에 対하여 하나님의 自己自身的責任分担에 対하여 始作하는 것이 卽 모세를 세우심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을 代身하고 바로는 사탄을 代身하고 나오게 되었다. 모세가 択함을 받은 原因은 원수가 이스라엘 百姓을 極度로 학대하는 同時에 强制로라도 全滅시키고자 하는 行動으로 나가게 되어 苦役 中 원수의 사람과 卽 애급사람과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는 것을 죽이는 모세는 본래 애급 宮中에서 長成하
136
였스나 애급 사람을 원수시 하는 바는 이스라엘 子孫이라는 変하지 않는 지조는 果然 하나님이 択하시는 한 귀(貴)여운 行事였다. 애급 宮中에서 자라났으나 애급 사람이 아니고 하늘의 百姓으로 変함없는 其 自体였다. 이 自体는 애급 원수의 모든 第一 미워하는 自体인 同時에 사랑받고 자라난 存在였다. 이 自体가 애급 宮中에서 나왔으니 애급과는 다시 結託 안하는 存在라는 것은 事実이다.그런고로 其 위에 애급사람에 対하여 憎惡心를 갖고 있는 確固한 存在이니 하나님 択한바가 原因이 있는 바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서 애급 王 바로를 対하여 工作을 하게 하기 爲한 始作를 命令하게되었다. 그 때에 하나님의 命令를 받게 되는 모세는 自己自身이 애급 百姓 앞에 믿(信)케 할 수 있는 証據를 要求하니 지팡이(杖)로 뱀(蛇)이 되게 하는 첫 異蹟을 보게 하신지라. 그리하여 祖上에게 나타났(現)던 하나님를 알게 하여 뜻에 順從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함이었다. 그 다음에는 손(手)을 품(懷)에 넣어라 하심에 손(手)을 품(懷)에 넣으니 문둥(癩)病이 된지라. 그 다음에
137
다시금 품(懷)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니 나은지라. 그 다음에도 듣지 않거든 강물(江水)을 가져다 부으라.그리하면 피가 되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었다. 그 다음에는 모세는 말씀(言)을 要求하였다.이와 같은 事実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려 할 적에 이런 異蹟을 보여주었냐 하면 하나님이 將來하시고자 하는 事実의 터가 되는 行事이니 그 表示되는 모든 뜻은 全部 예수가 오셔서 할 目的成事의 한 象徵이라는 것을 表示하는 것이 되어야 할 原理的 目的이 있는 바이다. 144 page 에 기록(記)되어 있음 ☞
(또 지팡이(杖)라는 것은 代身 依支者를 表示함이었다. 卽 나를 代身 保護할 것을 말함이고 모든(全) 앞길을 잡아준다는 뜻이며 또 合當치 않은 것을 쳐서 뜻대로 成事하게 하는 뜻이 있는 바이었다. 이것은 卽 예수가 우리의 모든(全)生命에 対하여 保護가 될 것을 말함이었다. *이 부분은 144쪽에 있는 것임.)
뱀을 보여 주심은 뱀으로 誘引한 表示的 存在로 해와에게 役事한 것을 보여 주었으니 예수가 와서뱀과 같은 役事로 사탄 手中에서 빼앗는 役事를 하여야 할 하늘 뱀的 表示를 予告하기 爲하여서 着手할 것을 意味하심이었다. 사탄 네가 배암 가지고 했으니 나도 뱀을 가지고 예수로 役事한다는 것이 根本 지팡이(杖)로 뱀(蛇)이 되게 한 意味가 있는 바다. 모세 뱀은 예수는 사탄 뱀을 잡아먹어 승리할 것의 予告的 表示였다. 모세가 손(手)을 가슴(懷)에 넣은 겄은 첫째 번은 사탄의 誘引
138
받아 사탄 품에 안긴 해와의 行動은 人間을 죽이는 役事였으나 다시금 손(手)을 품에 넣으심은 예수가 오셔서 해와를 품는 事実은 癩病과 같은 사망(死)中에서 蘇生하여 산다는 表示로 손(手)의 病이 나은 것을 보여줌이었다. 卽 第一次 품은(懷)것은 死亡이나 예수가 第二次로 품으심은 生命이라는 永生의 始作을 予証한다.
江물(水)이 피(血)가 된다는 것은 물(水)은 世上(生命)을 表示하는 것인데 예수가 와서 死亡 中에 處한 存在들이 예수가 오셔서 血로 된 生命注入을 始作한다는 것을 表示한 바이었다.
말씀(言)의 要求는 相対目的을 成事할 수 있는 重要한 責任仲介体이니 말씀(言)을 要求하는 것은 創造物 全部를 말씀으로 지은 것을 잃어버린 것을 예수가 와서 말씀(言)相対의 理想的 実体을 다시금 成事한다는 뜻을 表示함이었다. 卽 말씀(言)은 創造目的物의 実体를 말하심이다. 아담 해와를 찾는다는 것과 全人類와 萬物를 찾는다는 意味가 있는 것이다.
139
그 때 모세가 要求하는 全部를 許諾하시고 애급으로 돌아가(帰)라 하심에 모세는 自己의 妻子를 데리고 하나님의 지팡이(杖)를 들고 애급으로 돌아가(帰) 바로에게 請하기를 이스라엘은 나(我)의 長子라 하라.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하라. 그래도 바로가 놓아보내지 않으면 長子를 죽이(殺)리라 하는 命令를 받고 돌아(帰)오는 途中에 한 宿所에서 여호와가 모세에게 나타(나顯)모세를 죽이고자 할 때에 모세의 妻는 아들의 양부 끝(陽皮)을 베어 던져서 죽음(死)을 免하게 하면서 妻가 갈아대 당신은 血흘리는 男便이라 한지라. 그것은 割礼를 한 緣故더라.
여기에 야곱의 어머니(母)가 야곱과 협조(合)하여서만 工作하여 뜻을 成事한 것과 같이 모세의 妻子 卽 母子가 협조(合)하여 모세를 살리는 行礼를 成事한 것이었다. 그 根本 意味는 무슨 뜻인가 하면 모세는 卽 割礼를 成事 못하면 죽(死)는 것이고 成事하면 산다(生)는 重大 意味가 있는 바이다.예수 오심은 무슨 目的이냐 하면 割礼의 根本 目的을 完成하는 実体인데 그것은 그 母親과 협조(合)하여서
140
만 成立되는 根本 意義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줌이었는데 妻子와 협조(合)하는 일이 없으면 뜻 成事 못하고 예수는 죽(死)는 十字架가 있다는 予告的 事実을 表示함이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의 長子로 成事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問題가 모세가 살아나(生)야만 될 것이었는데 모세 한 生命은 全이스라엘의 代身 生命이고 全이스라엘 代身의 存在라고도 할 수 있는 存在이었다. 이 모세에게 있어서 割礼가 없으면 모세는 勿論이고 전체(全)이스라엘 百姓도 全部 死亡하는 表示的 行例였다. 그런고로 모세 妻子의 割礼가 있었기에 살게 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生死의 重要問題를 右左하는 根本 問題 成事의 責任을 表示한 바다. 이 立場에서 모세 妻子의 협조(合)함이 큰 勝利的 條件의 成立을 봄이었다.
( *144장에서 이곳에 넣으라고함.
또 지팡이(杖)라는 것은 代身依志者를 表示함이었다. 卽 나를 代身 保護할 것을 말함이고 전체(全)앞길을 잡아준다는 뜻이며 또 合當치 않은 것을 치워 뜻대로 成事하게 하는 뜻이 있는 바이었다.이것은 卽 예수가 우리의 전체(全) 生命에 対하여 保護가 될 것을 말함이었다.)
141
이 뜻을 세우지 못하였으면 모두 失敗할 수 있는 어려운(難) 問題였다. 그런고로 이 한 모세의 妻子의 행한 割礼가 전체(全) 択한 百姓에게 対한 長子의 名分을 完成하게 하는 根本 自体가 卽 割礼였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오셔서 母親과 合力하여 割礼成事의 뜻을 成事하여야 할 것이었으나 예수님은 이 뜻을 못 成事한 失敗的 根本이 있었음은 누구나 未知의 事実이다. 그런고로 母親이 뜻을 받들지 못하였기에 예수는 母親에게 対하여 갈릴리 가나에서 異蹟을 볼적에 女人이여 하신 말씀의 根本 意義가 있음이라. 其 外 母親에 対하여서 女人이여 너와 나와 무슨 相關(觀)이 있는가 한 말씀 等々의 始作은 예수는 뜻 成事의 第一次 始作의 失敗를 가져오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十字架 上에서 죽음(死)의 始作의 聯關性를 가지게 되었다. 卽 모세가 하나님 앞에 뜻 成事할 수 없는
142
自己 生을 가지지 못한 것과 한가지 事実이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이 하시는 路程의 숨어 있는 原理의 目的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여기에 割礼에 対하여 말하기로 하자.
본래 聖經에 割礼라는 名詞가 生起게 된 것은 墮落되었기에 基因되는 事実인데 本來 해와가 사탄의 피(血)를 받고 아담까지 墮落되었기 때문에 割礼의 重心問題가 要求되는 바이다. 그런고로 아담이 主管하여야 할 해와를 主管하였다면 墮落조차 防止하였을 터인데 해와한테 主管받고나니 墮落되었다. 卽 아담의 陽部를 通하여 전체(全) 墮落이 成事되었으니 責任은 아담인 男子에게 있는 것이었다. 이 男子되는 아담이 支配받고나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存在로 됨에 墮落의 始作의 成立를 보게한 実体는 卽 男子의 陽部였다. 그런고로 어두움의 血를 받아들인
143
그 自体이니 어두움의 血를 다시금 빼는 事実를 表徵함이 目的이었다. 그런고로 아부라함 子孫은 割礼해야만 卽 어두움의 피(血)를 먼저 받아서 죽(死)게 되었으니 그 自体로써 살려면 그 実体로써 死亡의 피(血)를 빼야만 하나님께 屬할 수 있는 始作을 보는 것을 알려주는 事実이다. 그러므로 割礼는 아브라함의 永遠한 規礼로 세움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있으므로 主管성을 다시금 復帰하는 男子의 資格을 扶与함이다.
割礼에는 마음의 割礼가 있고, 肉身割礼가 있고, 萬物割礼가 있다.
1. 死血를 빼는 表 - 마음의 割礼(신10/16))
2. 主管性 다시 찾는 表 - 肉身割礼(창17/10))
3. 根本 뜻의 子女의 길을 찾는 약속의 表 - 萬物割礼(레19/23))
以上과 같은 重大한 意味를 가진 것이 卽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命令하시던 根本 意味라는 것을人間은 至今까지 未知의 것이다. 또 몰라야 하는 것이 한 原理였었다.
144
그런고로 모세의 이 行礼는 全이스라엘에게 対하여 짊어진 全目的成事를 表示함을 다시금 알아야한다. 그런고로 모세의 行動如何는 예수가 오셔서 할 使命的 行路의 前形表示로 그의 모든 일은 表徵된 바라는 것이 原理로 보아 알 수 있는 事実이다. 卽 하나님의 使命分担責任의 過程은 예수의 基礎가 되겠으니 같은 뜻의 目標表示로 萬事는 드러내어 나아가는 것이 根本 意義였다.
☜ 以下는 134절 上에로 옮길 것(續入)
( 또 지팡이(杖)라는 것은 代身依志者를 表示함이었다. 卽 나를 代身 保護 할 것을 말함이고 모든(全) 앞길을 잡아준다는 뜻이며 또 合當치 않은 것을 치어 뜻대로 成事하게 하는 뜻이 있는 바이었다. 이것은 卽 예수가 우리의 모든(全) 生命에 対하여 保護가 될 것을 말함이었다.)
145
모세에게 아론을 주워서 이스라엘의 贖罪的 行例의 代表者로 세우심은 모세를 協助하여 한 目的의뜻을 成事하고자 하는 侍從이었다. 卽 百姓의 代身贖罪責任役活을 하심은 해와 自体로 될 聖神과 함께 예수의 뜻을 侍從하여 人間 対하여 直接 贖罪의 責任을 할 것을 表徵함이었다. 모세에게 한 代身 協助者가 없다 하여 아론을 준 바는 아니지만 말씀(言)의 代身을 要求할 적에 아론을 세우심은 아론은 말씀 代身者임을 表示하니 말씀의 最高의 問題者는 해와의 한 存在이었다. 卽 말씀 成事는 해와를 完全하게 찾는 目的으로 基因되니, 卽 아론를 세워 代身 贖罪하심은 예수도 해와가 합하여서 人間贖罪의 直接問題를 하여야 할 自己自身의 使命分担役割이었다. 卽 해와도 罪를 지었으니 해와로서 代身 씻는 力活을 하
146
야 할 責任分担이 되여 있으니 아론은 모세의 한 相対格者로서 百姓를 対하여 모세의 뜻 卽 하나님의 뜻을 成事하게 協助한 바는 예수 오셔서 말씀 相対를 찾아 뜻 成事를 잡을 것을 表徵하는 意義이다. 모세에 以上과 같은 諸條件이 成立되어 바로를 対하여 直接 対立을 取하여 나서게 되었다.그때 바로는 모세의 要求에 対하여 順応하지 않은 反面 도리어 모세에 屬한 이스라엘 百姓에게 더 憎오심을 갖게끔 하나님은 바로를 강퍅(剛愎)하게 할 것을 말하면서 바로 앞에 가서 이스라엘 百姓를 놓아주어 拡野에 나아가 三日쯤 여호와께 祭祀하기를 請하라 하시었다. 여기 三日路程 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全生命이 놓이느냐 안 놓이느냐 하는 問題는 이 三日路程이라는 問題를 걸어 놓고 始作하게 되는 基本要求條件이었다. 이 三日間이 허락(許与)이 안되면 이스라엘 全幅的目的은 全部 始作할 수 없는 問題를 말하는 바이었다. 이 三日路程이라는 것이
147
모세가 하나님 뜻을 成事하게 하는 工作이 基本되는 要求條件이었다. 그런고로 예수가 오셔서 사탄 対하여 三日期間에 対한 過程에 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이 過程을 成事하려면 모세에게 屬한 具備條件같은 諸條件의 具備를 보여야 할 것이었는데 이 具備條件은 拡野試驗 通하여 其 터는 사탄에게 勝利함으로 成立되었으나 其의 代身役者 아론과 같은 해와의 存在의 具備 成事를 보지 못하여서 三日程의 始作路程를 自由롭게 넘어서지 못한 原因으로 十字架 죽음(死) 三日間이 基本的인 根本 始作이었다. 이때 예수 앞에 어머님과 合하는 뜻 成事를 中心하고 해와 한 存在와 人間들이 하늘 便쪽으로 順從하였으면 예수의 十字架路程은 다른 方向으로 效果的 路程를 보아 사탄 対하여 積局적인 対策의 成立을 始作하였을 것인데 其 対策을 어떻게 해서라도 바로 成事할 責任이 예수의 責任이니 죽어서라도
148
三日期間을 터치는 使命的 責任分担을 完成하야 할 義務가 있음이었다.
<한글 번역본>
119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섭리하신 근본 의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자기 고향 산천과 정든 향토정과 부모에 대한 정리라든가 친척에 대한 정리라든가가 아브라함에게는 큰 고통의 대상이었으나 하나님의 뜻를 세우는 노정에는이 모든
120
것의 문제되는 곳에는 시작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정은 하늘 정을 성사하고자 하는데는반대되는 직접행동 여하를 도약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이와 같은 것을 문제로 하지 않고 갈대아우르를 출발하는 그 행동은 과연 인간으로서 찬양하여야 할 문제인 동시에 사탄에게 대한 복수적인 하나님 뜻을 성사하는 터의 행동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자기의 기본 뜻을 아브라함으로부터 본격적 출발을 보고자 함이었다. 사탄은 아브라함을 빼앗기고는 아브라함에 대한 반대 공작을 시작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 성사를 파괴하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브라함에 대하여 축복하려할 때 아브라함 자체에 대한 축복보다도 뜻을 중심하고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 본의였다. 아브라함이 복의 기관이 될 축복을 하여주며 이로 하여금 큰 족속을 이루리라고 축복하여 주신 뜻을 받들어서 고향산천을 출발하는 아브라함 자체에는 하늘의 공작 시작을 받게되는 하나님의 대신 뜻 성사의 기본행동의 시작은 완성하였다.
121
아브라함을 빼앗아 낸 하나님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전목적을 두고 축복과 약속에 대한 새로운 결정적 언약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대하여 결정적 언약을 세우게 된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족속에게 잡혀간 롯을 다시 찾아와 승리한 후에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한 바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민족과 대립케 함은 하나님 자신이 뜻을 세울 수 있는 확고한 기초를 세우는(세울 수 있는) 동시에 벌써 하나님이 미워하는 나라가 원수적 입장에서 하나님 편에 섰기에 결정적 언약 성사를 시작하였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민족건설의 시작이며 이를 확대시켜서 국가건설에로, 그리하여 세계복귀의 근본 의의를 두고 하는 언약이 전부의 시작, 즉 아브라함의 언약중에 포함되어지는 근본 사실을 알 수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비몽사몽에 말씀하시기를 구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창15/1)
122
나는 자식이 아직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가 없다하니, 아브라함에 대하여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이 너의 친자식으로 인하여 후사가 되리라 하시며 데리고 밖으로 나아가 말씀하시되 하늘을 우러러 보라 하며, 뭇별을 다 셀 수 수 없는 것과 같이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이 되리라. 하심에 아브라함은 이를 믿으니 의로 여기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목적을 완성키 위하여서 갈대아우르로 인도하였다 하시면서 이 땅을 너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함이라 하시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얻어 기업삼을 것을 무엇으로 아리이까? 하니 너가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 한 마리와 삼년 된 산양 한 마리와 삼년 된 암양 한 마리와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한 마리를 바치라 하니 아브라함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둘로 쪼개서 우와 좌에 놓고 그 비둘기는 쪼개지 아니하여 제단 위에다 놓고 제사를 드리니 그 제물 위에는 독수리가 날아와서 앉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정녕히 알라. 너 자손이 객이 되어 사백년 동안 고역하리라 한 노함을 보게 되었다.
123
이 제물은 무슨 제물이었는가 하면 그 후손에 대한 전부의 제물의 표시물이었다. 즉 그 제물이 전 하나님의 뜻이 되는 백성을 찾고자 하는 목적이며 온 인류를 찾아야 할 하나님의 근본목적을 표시한 대신적 제물이었다. 이 제물 위에 독수리가 내렸다 하는 바는 무었을 말하는가 하면 벌써 사탄의 침입을 증거하는 사실이다. 즉 아브라함 하나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고 할 때에 사탄은 뜻을 깨뜨리기 위하여 아브라함 한 자신의 결과적 행동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제물을, 즉 전 하나님의 목적을 두고 예약적 제물임에 틀림없다. 이 제물을 실패하면 다시금 사탄한테 침입노정을 양보하는 행동인데 아브라함의 온 뜻을 합당한 뜻에 맞게 제물을 헌제하지 못함은 하나님의 계획의 뜻은 벌써 이루지 못할 것을 표시하는 중대한 것이 이 제물이었다.
124
그런데 아브라함 자신은 이 중대한 제물을 드리는 자신으로서 제물을 전부 쪼개지 못함은 무슨 뜻이냐 하면 그 제물을 쪼개는 바는 사탄편 사람과 하늘편 사람이 있다는 전인류의 표시였다. 그런데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소유된 자손과 사탄 소유된 사람과 갈라서 섭리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전체 뜻이었는데 쪼개지 않은 바는 하나님 자손될 약속과 언약이 성립을 보는 제물에 완성한 성립을 보지 못하고 마는 사실이니 다시금 그 자손까지 사탄이 침입할 수 있는 터를 지은 것이 시작을 보게 되어 사탄은 자기편쪽 표시로 갈라지지 않는 제물 비둘기를 취하려고 하여 제단 위에 내린 바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한 전 목적은 사탄이 다시금 차지하는 뜻으로써 제물헌제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3대 제물은 무슨 표시냐 하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진리 목적 중심은 소생에서 장성으로 장성에서 완성으로
125
써 한 제물을 통하여 표시한 바이었다. 즉 비둘기를 드리게 하심은 하나님의 뜻 생겨남을 표시함이고 양을 드리라하심은 성장을 표시함이고 소를 드리라 하심은 완성을 표시하는 중대제물이었다.만일 이 제물의 뜻에 합의하게 헌제하였으면 애급 사백년 생활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없었을 것이었는데 사백년 고역이라는 것은 이 헌제물의 중대한 실패를 고하는 바의 사실이다. 사백년 연대의 뜻은 나중에 논하려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약 제물에 실패를 보니 그것은 자손을 사탄한테 빼앗기는 표시로 되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 자손 중에도 사탄이 침입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근본 목적은 다시금 미성사적 원인으로 기인이 되니 하나님은 다시금 아브라함 자손에게 사탄 침입의 길을 막으려니 대신 제물은 사탄한테 빼앗기셨기에, 그것은 즉 아브라함 자손 전부를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하나님은 아브라
126
함이 사탄의 뜻 성사를 본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으니 사탄한테 제물 들인 것과 같이 되어버렸다. 즉 아브라함도 사탄 소유의 근거점이 되어 전목적의 미성사를 가져오게 되니 다시금 하나님은 비록 약속제물은 빼앗겼지만 아직 실체 자손되는 것은 빼앗기지 않으려니 하나님은 부득이 또 다른 입장을 취하여 아브라함에 따르려는 민손에 대한 사탄 침입을 막으려 함에 하나님은 그 자손의 시작인 한 자체가 사탄과 하나님과의 직접문제의 요구물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자식 이삭을 취하여야 하겠고, 사탄은 벌써 이삭에 대하여서 취할 수 있는 예약제물 대신제물을 자기가 소유하였던 것이기에 사탄 역시 그 제물 대신 되는 실체인 이삭이 요구물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다시금 순종을 세워 하나님 편으로 전자손을 돌리려니 아브라함에 대하여 실체자식 이삭을 제물
127
로 드리려는 문제를 제기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이 즉 아브라함으로 모리야 산상에서 제물로 이삭을 드리려는 근본 뜻은 여기 있는 바이었다. 그때 뜻 중심하고 순종하면 사탄은 떨어지고 하나님 편으로 속하는 것이었다.그때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대신 제물을 잃어버린 것을 실체로써 찾는 모양으로 헌제의 명령에 순종하게 되었다. 이때 아브라함은 이런 원리적 문제는 알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입장에 아브라함의 순종은 용이한 문제가 아니었으나 예약 대신 제물을 헌제시 실패가 전자손에게 4백년 동안 이 고역의 뜻을 알고 나니 이번에 실패하면 말할 수 없는 큰 곤란한 문제가 생기리라는 것을 아는 아브라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게 되어 뜻대로 번제로써 자식을 드리는 확고한 그 입장에서 사탄은 목적
128
상대인 이삭에게서 물러가게 되는 바의 시작을 볼 수 있다. 그런고로 이 사실의 근본 뜻을 현 사람들은 알지 못한 것이나 성경에도 아브라함이 실수한 구절을 알게 하는 구절이 있나니, 즉 창세기22장 12절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 할 때에 그 아들에게 손를 대어 해하지 말라. 네가 너의 독자를 나에게 바치기를 아끼지 아니하니 이제야 네가 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 아노라 하셨다. 이 성경구절 중에 이제야 하는 그 구절이 즉 전번 실패를 경고하는 동시에 뜻 계승 성사를 고함이었다. 이리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뜻의 노정을 찾아 나가는 그 도중에는 예약 대신 제물로 실수한 험물로 받은 아브라함 자손에게는 4백년 동안 원수 앞에 고역해야만 본 노정에 들어설 것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
129
족 애급 4백년 고역은 필연적 과정이었다. 진리를 찾으려니 진리에는 소생의 단계가 있고 장성이 있고 완성이 있는 바이니 하나님도 이 찾고자 하는 뜻을 한 진리노정이니 이와 같은 3대제물이 요구되었다. 이 제물적 사명에 소생부분은 즉 구약시대의 상징이다. 소생하면 장성 완성으로 나아가려던 것이 인간이 절대 순종하지 못함으로 분립을 자아내는 것으로 전개할 것이 표증 되어 있다.한 제단 위에 3제물은 한꺼번에 뜻을 이루어야 할 것이 근본 뜻이었다.
여기에 소생역사는 하나님의 책임분담으로 시작 기초를 잡는 것이고 장성은 예수가 오셔서 근본복귀의 복수의 예로 해와를 찾아야만 되는 것이고 완성은 예수를 중심하고 전인류와 합하며 또 하나님과 합하여서 전 근본 창조목적 달성을 보고자 함이 표시로 된 제물의 의의다.
130
제물 중에 비둘기는 소생 단계를 표시함이니 구약시기를 말함이고 양은 장성단계이니 신약시기를표시함이고 암소는 완성이니 재림을 말함이다. 장성과 완성과 함께 할려는 뜻은 사람 순종하지 않은 것과 불신으로 인하여 예수를 죽이니 재림이라는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암소는 완성의 표시이었는데 왜 암소였던가. 즉 완성하려면 해와 한 존재가 문제되는 중심점이니 암소는 해와를 표시하는 뜻이다. 사사기 14장 18절 이하에 만일 너희가 나의 암소로 밭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나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으리라.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의 처를 암소로 표시하여 말함도 예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암소는 해와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 해와가 즉 완성할 수 있는 목적 대상이었다. 간단한 제물 내용을 소개하였지만 다시금 본론으로 들어가서 보면 사탄은 이삭이 실체에게 뜻을 세우지 못하고 다시금 그 자손에 대하여 대립적 태도는 물론이며 다시금 실체자손에 침입의 길을 찾으려고 시도하였다.
이삭의 한 존재가 예약 대신제물의 침입을 보였기에 그 이삭에게도 불순종의 터는 벌써
131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잘못하면 생기는 것을 사탄은 바라보고 알게 되었다. 그것은 제물을 자기 것으로 하였던 사실이 있음으로 사탄은 여전히 그 후손에게 대하여 대립성을 갖고 대하게 되었다.그런고로 이삭이 자식을 낳으니 쌍태인지라, 즉 에서와 야곱이었다. 이 쌍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의 실패로 인한 제물에 원치 않은 존재의 침입이 있었던 것이므로 이 실체자식 이삭이 문제되어 또다시 찾았으나 이삭의 자식한테 대하여는 사탄 역시 사탄이 찾고자하는 한 터를 양보하였던 실수가 있었으니 그 자식되는 쌍태는 원수적 표시의 소유자와 하나님적 표시인 소유자가 한 태중에 있음을 표시함이었다. 그래서 에서와 야곱은 뱃속에서부터 싸웠음은 이와 같은 근본 배치의 존재이니 복중에서부터 싸운 것이다. 자식을 낳으니 에서와 야곱이더라.
132
에서는 원수 사탄의 대표요, 야곱은 하나님 편적 대표이었다. 즉 에서는 아브라함이 지난번 제물 실패의 씨요. 다음 야곱은 잃어버린 이삭을 실체로서 찾아서 제물까지 찾아 세우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제2차적 존재인 야곱을 통하여서 뜻을 세우고자 함은 근본이 그와 같이 되었기에 빼앗아서 성사하는 모양이니 하나님이 에서의 축복을 야곱에게로 돌리는 근본 의의는 여기에 있음이다.
그래서 제물 실패가 없었으면 이삭의 자식에 하나님이 미워하는 에서와 같은 존재는 없었어야 할존재가 생기게 된 것은 다시금 사탄을 분립하게 하여 하늘 편과 사탄편을 분립하게 하는 것이다.이것은 하나님이 사탄과 다시는 아브라함의 자손한테 미련을 다시는 남기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므로 이와같은 표시적 사실로써 야곱이 에서의 장자의 직분을 빼앗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
133
은 다시금 예수가 와서 원수 피를 받은 전인류를 빼앗아 넘길 것을 예고하는 사실이다.
이런고로 이 한 사실이 근본을 밝혀주는 것인 동시에 뜻을 이루는 한 표징으로 되는 바가 되어야하는 바는 아브라함의 언약은 전체 목적의 표시인 약속이었기에 이런 의미의 한 분기적 존재는 이삭이니(이삭부터 이니) 그 자손 에서와 야곱의 사이에 되어진 실상이었다. 그런 결과의 영향을 받고 낫기에 맏 자식은 하나님 앞에 사랑 받지 못한 사실의 원인이니 창세기 전면에서 보여주는 사실이다.
예를 찾으면 이삭, 야곱, 요셉, 에브라임, 아벨 등등의 사실은 이와 같은 사탄 피를 받고 태어낫기에 맏자식은 미움의 상대이었다.
여기서 뜻 성사 출발의 후손은 야곱을 중심하고 택한 백성 12형제요 12지파로 시작의 출발은 야곱부터 시작하게 한 것은 근본적 뜻을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삭은 하나님과 사탄이 바라는 존재 입장의 아담과 같은 두 상대격 입장이었기에 근본 출발을 못했다.
134
즉 이삭부터가 애급 출발이 아니고 야곱부터 되는 바는 이상 해설 중 원리로써 명백한 사실이다.이리하여 택한 하늘 백성이 되어야 할 그 근본은 애급으로 옮겨지게 되는 바는 뜻 성사의 첫 출발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원인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부터 하나님과 사탄과 분립되어 복귀의 출발은 시작된다. 이것이 곧 하나님적 분담 책임성사의 출발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이것이 근본이 되어 즉 표본이 되어서 장성과 완성적 사명 분담 책임자의 본이 되어야하는 제1차 하늘적으로 하나님 직접 사명하고자 하는 기초는 시작되는 동시 제물 표시 소생 과정의 발로이었다. 그런고로 애급에서부터 가나안 복귀까지는 예수님이 오셔서 할 기본 표시 공작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한 목적을 한 완성으로 볼 수 없는 한 터의 공작이니
135
애급서부터 솔로몬 왕까지는 제2차 완성하여야 할 존재가 나타나서 성사할 한 예고적 표시로 되어 있다. 즉 예수 오셔서 애급서부터 가나안 복지에로 가는 양으로 우리 인간 이상복귀의 땅으로 찾아 들어가는 한 사명적 기초 표시로 전개시키고자 함의 의의를 알아야 한다.
애급서 가나안 복귀노정은 예수의 노정을 표시한 바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 뜻이다.
그리하여 타락시킨 인간에 대하여 하나님이 자기 자신적 책임분담에 대하여 시작하는 것이 즉 모세를 세우심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하고 바로는 사탄을 대신하고 나오게 되었다. 모세가 택함을 받은 원인은 원수가 이스라엘 백성을 극도로 학대하는 동시에 강제로라도 전멸시키고자 하는 행동으로 나가게 되어 고역 중 원수의 사람과 즉 애급사람과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는 것을 죽이는 모세는 본래 애급 궁중에서 성장하
136
였으나 애급 사람을 원수시하는 바는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변하지 않는 지조는 과연 하나님이 택하시는 귀여운 행사였다. 애급 궁중에서 자라났으나 애급 사람이 아니고 하늘의 백성으로 변함없는 그 자체였다. 이 자체는 애급 원수의 모든 제일 미워하는 자체인 동시에 사랑받고 자라난 존재였다. 이 자체가 애급 궁중에서 나왔으니 애급과는 다시 결탁 안하는 존재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고로 그 위에 애급 사람에 대하여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확고한 존재이니 하나님 택한 바가 원인이 있는 바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서 애급 왕 바로를 대하여 공작을 하게 하기 위한 시작을 명령하게되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게 되는 모세는 자기 자신이 애급 백성 앞에 믿게 할 수 있는 증거를 요구하니 지팡이로 뱀이 되게 하는 첫 이적을 보게 하신지라. 그리하여 조상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을 알게 하여 뜻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함이었다. 그 다음에는 손을 품에 넣어라 하심에 손을 품에 넣으니 문둥병이 된지라. 그 다음에
137
다시금 품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니 나은지라. 그 다음에는 듣지 않거든 강물을 가져다 부으라. 그리하면 피가 되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었다. 그 다음에는 모세는 말씀을 요구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려 할 때에 이런 이적을 보여주었냐 하면 하나님이 장래 하시고자 하는 사실의 터가 되는 행사이니 그 표시되는 모든 뜻은 전부 예수가 오셔서 할 목적성사의 한 상징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 되어야 할 원리적 목적이 있는 것이다』. *144page에 기록되어 있음 ☞
(또 지팡이라는 것은 대신 의지자를 표시함이었다. 즉 나를 대신 보호할 것을 말함이고 모든 앞길을 잡아준다는 뜻이며 또 합당치 않은 것을 쳐서 뜻대로 성사하게 하는 뜻이 있는 바이었다. 이것은 즉 예수가 우리의 모든 생명에 대하여 보호가 될 것을 말함이었다.
뱀을 보여 주심은 뱀으로 유혹한 표시적 존재로 해와에게 역사한 것을 보여주었으니 예수님이 오셔서 뱀과 같은 역사로 사탄 수중에서 빼앗는 역사를 하여야 할 하늘 뱀적 표시를 예고하기 위하여서 착수할 것을 의미 하심이엇다. 사탄 네가 뱀 가지고 했으니 나도 뱀을 가지고 예수로 역사한다는 것이 근본 지팡이로 뱀이 되게 한 의미가 있는 바이다. 모세 뱀은 예수는 사탄 뱀을 잡아먹어 승리할 것의 예고적 표시였다.
모세가 손을 가슴에 넣은 것은 첫째 번은 사탄의 유혹을
138
받아 사탄 품에 안긴 해와의 행동은 인간을 죽이는 역사였으나 다시금 손을 품에 넣으심은 예수가오셔서 해와를 품는 사실은 나병과 같은 사망 중에서 소생하여 산다는 표시로 손의 병이 나은 것을보여줌이었다. 즉 제1차 품은 것은 사망이나 예수가 제2차로 품으심은 생명이라는 영생의 시작을 예증한다.
강물이 피가 된다는 것은 물은 세상을 표시하는 것인데 예수가 와서 사망 중에 처한 존재들이 예수가 오셔서 피로 된 생명주입을 시작한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었다.
말씀의 요구는 상대 목적을 성사할 수 있는 중요한 책임중개체이니 말씀을 요구하는 것은 창조물전부를 말씀으로 지은 것을 잃어버린 것을 예수가 와서 말씀의 상대 이상적 실체를 다시금 성사한다는 뜻을 표시함이었다. 즉 말씀은 창조목적물의 실체를 말하심이다. 아담 해와를 찾는다는 것과 전인류와 만물을 찾는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139
그때 모세가 요구하는 전부를 허락하시고 애급으로 돌아가라 하심에 모세는 자기의 처자를 데리고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애급으로 돌아가 바로에게 청하기를 이스라엘은 나의 장자라하라.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하라. 그래도 바로가 놓아 보내지 않으면 장자를 죽이리라 하는 명령을 받고 돌아오는 도중에 한 숙소에서 여호와가 모세에게 나타나 모세를 죽이고자 할 때에 모세의 처는 아들의 양부 끝을 베어 던져서 죽음을 면하게 하면서 처가 말하되 당신은 피 흘리는 남편이라 한지라. 그것은 할례를 한 연고더라.
여기에 야곱의 어머니가 야곱과 협조하여서만 공작하여 뜻을 성사한 것과 같이 모세의 처자 즉 모자가 협조하여 모세를 살리는 행례를 성사한 것이었다. 그 근본 의미는 무슨 뜻인가 하면 모세는 즉 할례를 성사 못하면 죽는 것이고 성사하면 산다는 중대 의미가 있는 바이다. 예수 오심은 무슨 목적이냐 하면 할례의 근본 목적을 완성하는 실체인데 그것은 그 모친과 협조하여서
140
만 성립되는 근본 의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줌이었는데 처자와 협조하는 일이 없으면 뜻 성사 못하고 예수는 죽는 십자가가 있다는 예고적 사실을 표시함이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의 장자로 성사하느냐 못하느냐하는 문제가 모세가 살아야만 될 것이었는데 모세 한 생명은 전이스라엘의 대신 생명이고 전이스라엘의 대신 존재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이었다. 이 모세에게 있어서 할례가 없으면 모세는 물론이고 전체 이스라엘 백성도 전부 사망하는 표시적 행례였다.
그런고로 모세 처자가 할례가 있었기에 살게 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생사의 중요문제를 우좌하는 근본 문제 성사의 책임을 표시한 바다. 이 입장에서 모세 처자의 협조함이 큰 승리적 조건의 성립을 봄이었다.
( *144장에서 이곳에 넣으라고함.
또 지팡이라는 것은 대신 의지자를 표시함이었다. 즉 나를 대신 보호할 것을 말함이고 전체 앞길을 잡아준다는 뜻이며 또 합당치 않은 것을 치워 뜻대로 성사하게 하는 뜻이 있는 바이었다. 이것은 즉 예수가 우리의 전체 생명에 대하여 보호가 될 것을 말함이었다.)
141
이 뜻을 세우지 못하였으면 모두 실패할 수 있는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서 이 한 모세의 아내와 자식의 한 할례가 전체 택한 백성에게 대한 맏아들 장자의 명분을 완성하게 하는 근본 자체가 즉 할례였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오셔서 모친과 합력하여 할례성사의 뜻을 성사하여야 할 것이었으나 예수님은 이 뜻을 못 성사한 실패적 근본이 있었음은 누구나 미지의 사실이다. 그런고로 모친이 뜻을 받들지 못하였기에 예수는 모친에게 대하여 갈릴리 가나에서 이적을 볼적에 여인이여 하신 말씀의 근본 의의가 있음이라. 그 외 모친에 대하여서 여인이여 너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한 말씀 등의 시작은 예수는 뜻 성사의 제1차 시작의 실패를 가져오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의 십자가 상에서 죽음의 시작의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다. 즉 모세가 하나님 앞에 뜻 성사할 수 없는
142
자기 생을 가지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 사실이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이 하시는 노정의 숨어 있는 원리의 목적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여기에 할례에 대하여 말하기로 하자
본래 성경에 할례라는 명사가 생기게 된 것은 타락되었기에 생기게 기인되는 사실인데 본래 해와가 사탄 피를 받고 아담까지 타락되었기 때문에 할례의 중심문제가 요구되는 바이다. 그런고로 아담이 주관하여야 할 해와를 주관하였다면 타락조차 방지하였을 터인데 해와한테 주관받고 나니 타락되었다. 즉 아담의 양부를 통하여 전체 타락이 성사되었으니 책임은 아담인 남자에게 있는 것이었다. 이 남자되는 아담이 지배받고 나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로 됨에 타락의 시작의 성립을 보게한 실체는 즉 남자의 양부였다. 그런고로 어두움의 피를 받아들인
143
그 자체이니 어두움의 피를 다시금 빼는 사실을 표징함이 목적이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 자손은 할례를 해야만, 즉 어두움의 피를 먼저 받아서 죽게 되었으니 그 자체로써 살려면 그 실체로써 사망의 피를 빼야만 하나님께 속할 수 있는 시작을 보는 것을 알려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할례는 아브라함의 영원한 규례로 세움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있으므로 주관성을 다시금 복귀하는 남자의 자격을 부여함이다.
할례에는 마음의 할례가 있고, 육신할례가 있고, 만물할례가 있다.
1. 죽음의 피를 빼는 표 - 마음의 割礼(신10/16)
2. 주관성을 다시 찾는 표 - 肉身割礼(창17/10)
3. 근본 뜻의 자녀의 길을 찾는 약속의 표 - 萬物割礼(레19/23)
이상과 같은 중대한 의미를 가진 것이 즉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시던 근본 의미라는 것을인간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미지의 것이다. 또 몰라야 하는 것이 한 원리였었다.
144
그런고로 모세의 이 행례는 모든 이스라엘에게 대하여 짊어진 전목적 성사를 표시함을 다시금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모세의 행동여하는 예수가 오셔서 할 사명적 행로의 전형 표시로 그의 모든 일은 표징된 바라는 것이 원리로 보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의 사명분담책임의 過程은 예수의 기초가 되겠으니 같은 뜻의 목표표시로 만사는 드러내어 나아가는 것이 근본 의의였다.
☜ 이하는 134절 상에로 옮길 것
(또 지팡이라는 것은 대신의지자를 표시함이었다. 즉 나를 대신 보호 할 것을 말함이고 모든(全) 앞길을 잡아준다는 뜻이며 또 합당치 않은 것을 치어 뜻대로 성사하게 하는 뜻이 있는 바이었다. 이것은 즉 예수가 우리의 모든 생명에 대하여 보호가 될 것을 말함이었다.)
145
모세에게 아론을 주워서 이스라엘의 속죄적 행례의 대신자로 세우심은 모세를 협조하여 한 목적의뜻을 성사하고자 하는 시종이었다. 즉 백성의 대신 속죄 책임 역할을 하심은 해와 자체로 될 성신과 함께 예수의 뜻을 시종하여 인간 대하여 직접 속죄의 책임을 할 것을 표징함이었다. 모세에게 한 대신 협조자가 없다 하여 아론을 준 바는 아니지만 말씀(言)의 대신을 요구할 적에 아론을 세우심은 아론은 말씀 대신자임을 표시하니 말씀의 최고의 문제자는 해와의 한 존재이었다. 즉 말씀 성사는 해와를 완전하게 찾는 목적으로 기인되니, 즉 아론를 세워 대신 속죄하심은 예수도 해와가 합하여서 인간범죄의 직접 문제를 하여야 할 자기자신의 사명분담역할이었다. 즉 해와도 죄를 지었으니 해와로서 대신 씻는 역할을 해
146
야 할 책임분담이 되어 있으니 아론은 모세의 한 상대격자로서 백성을 대하여 모세의 뜻 즉 하나님의 뜻을 성사하게 협조한 바는 예수 오셔서 말씀 상대를 찾아 뜻 성사를 잡을 것을 표징하는 의의다. 모세에 이상과 같은 여러 조건이 성립되어 바로를 대하여 직접 대립을 취하여 나서게 되었다.그때 바로는 모세의 요구에 대하여 순응하지 않은 반면 도리어 모세에 속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증오심을 갖게끔 하나님은 바로를 강퍅하게 할 것을 말하면서 바로 앞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어 광야에 나아가 삼일쯤 여호와께 제사하기를 청하라 하시었다.여기 삼일노정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전체 생명이 놓이느냐 안 놓이느냐 하는 문제는 이 삼일노정이라는 문제를 걸어 놓고 시작하게 되는 기본요구 조건이었다. 이 삼일간이 허락이 되지 못하면 이스라엘 전폭적 목적은 전부 시작할 수 없는 문제를 말하는 바이었다.이 삼일노정이라는 것이
147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성사하게하는 작업이 기본되는 요구조건이었다. 그런고로 예수가 오셔서 사탄 대하여 삼일기간에 대한 과정에 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이 과정을 성사하려면 모세에게 속한 구비조건 같은 제 조건의 구비를 보여야 할 것이었는데 이 구비조건은 광야시험을 통하여 그 터는 사탄에게 승리함으로 성립되었으나 그의 대신역자 아론과 같은 해와의 존재의 구비 성사를 보지 못하여서 삼일노정의 시작 노정을 자유롭게 넘어서지 못한 원인으로 십자가 죽음 삼일간이 기본적인 근본 시작이었다. 이때 예수 앞에 어머님과 합하는 뜻 성사를 중심하고 해와 한 존재와 인간들이 하늘 편 쪽으로 순종하였으면 예수의 십자가 노정은 다른 방향으로 효과적 노정을 보아 사탄에 대하여 적극적인 대책의 성립을 시작하였을 것인데, 그 대책을 어떻게 바로 성사할 책임이 예수의 책임이니 죽어서라도
148
3일기간을 터치는 사명적 책임분담을 완성하야 할 의무가 있음이었다.
<원본 타자본>
119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摂理하신 根本 意義
아부라함의 하나님의 뜻를 딸아서 自己 故鄕山川과 情든 鄕土 情과 父母에 対한 情理라든가 親戚에 対한 情理라든가가 아부라함에는 큰 告痛에 相対였스나 하나님의 뜻를 세우는 路程에는 이 모든
120
겄의 問題되는 곳에는 始作할 수 업는 事実이다. 이와같은 情은 하날情 成事하고저 하는데는 反対되는 直接行動如何를 躊躇하게 하는 겄이다. 그런데도 不拘하고 아부라함은 이와같은 겄를 問題로 하지 않코 갈대아 우르를 出発하는 그 行動은 果然人間으로써 讚揚하여할 問題인 同時에 사탄에게 対한 復讐的인 하나님 뜻를 成事하는 터에 行動이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自己의 基本 뜻를 아부라함으로부터 本格的 出発을 보고저 함이였다. 사탄은 아부라함을 빼앗기고는 아부라함에 対한 反復工作을 始作하는 同時에 하나님의 뜻 成事를 破壞하고저 함이였다.
그래 하나님의 아부라함 対하여 祝福하러할 때 아부라함 自体에 対한 祝福보담도 뜻 中心하고 祝福하는 겄이 하나님의 根本本意엇다. 아부라함의 福의 機關될 祝福를 하여주며 爾로 하여금 大族屬를 일우리라고 祝福하여 주마하신 뜻 받들어서 故鄕山川를 出発하는 아부라함 自体에는 하날의 工作始作을 받게되는 하나님에 代身 뜻 成事의 基本行動이 始作은 完成하였다.
121
아부라함을 앗사낸 하나님은 自己가 하고저하는 全目的를 두고 祝福과 約束에 対한 새로운 決定的言約를 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卽 하나님은 아부라함에게 対하여 決定的言約를 세우게 된 겄은 하나님의 미워하는 族屬에게 잡퍼간 롯를 다시금 찾저와 勝利한 後에 始作이였다.
이와같치 한바는 하나님의 미워하는 民族과 対立케 함은 하나님 自身의 뜻를 세울 수 있는 確固한基초를 세(울수 있는) 우는 同時에 벌서 하나님의 미워하는 날아와 가 원수的 立場에서 하나님便 쪽에 섰기에 決定的言約成事를 始作함이 였섰다. 이 言約이라는 아부라함의 子孫으로부터 始作하여 하나님의 뜻를 세우는 民族建設의 始作의 이를 擴大싴켜서 國家建設에로 그리하여 世界復帰의 根本意義 뜻를 두고 하는 言約이 全部의 始作이 卽 아부라함의 言約中에는 抱含되어지는 根本事実를 알 수 있는 바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非夢似夢에 말삼 하시기를 懼하지 말라, 나는 爾의 盾시요 大賞給이니라.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창15/1)
122
나는 無子하오니 我의 相續者가 無라하니 아부라함에 対하여 하나님의 하시는 말삼의 爾의 親子息으로 因하여 後嗣가 되리라 하시며 携고 外로 나아가 갈아대 天을 仰로 보라 하며 衆星을 計數할수 업는 바와 갗치 爾 子孫의 이와 갗치 되리라 하심에 아부라함은 이를 信오니 義로 넉이시면서하시는 말슴이 이 目的을 完成키 爲하여서 갈대아 우루를 引導하였다 하시면서 이 땅을 爾에게 賜어 基業이 되게 함이라 하시였다. 그때에 하나님께 말삼하시기를 我가 이 땅을 얻어 基業삼을 겄을 무었으로 知익가 하니 爾가 我를 爲하여 내에게 三年된 牡牛 一와 三年된 山羊 一와 三年된 牡羊 一와 山鳩 一와 家鳩雛 一를 獻라 하니 아부라함의 其 모든 겄를 取하야 二에 剖아 右 左에 놋코 其 鳩은 剖지 안이하여 祭壇우에다 놋코 祭祀를 들리니 그 祭物 우에는 독수리가 날려서 안게 되였다.그런고로 여호와 아부라함에게 닐아기를 너는 丁寧히 알라. 爾 子孫이 客이 되여 四百年 동안 苦役할리라 한 怒함을 보게 되었다.
123
이 祭物은 무슨 祭物의였는가 하면 其 後孫에 対한 全部에 祭物의 表示物이였다. 卽 其 祭物의 全하나님의 뜻이 되는 百姓를 찾고저 하는 目的이며 全人類를 찾저야 할 하나님의 根本目的를 表示한 代身的祭物이였다. 이 祭物우에 독수리가 내렷다 하는 바는 무었을 말하는가 하면은 벌서 사탄의 侵入를 증거하는 事実이다. 卽 아부라함 한나를 中心하고 하나님의 뜻를 세우러고 할 때에 사탄은 그 뜻을 破하기 爲하여 아부라함 한 自身에 結果的行動만 발아보고 있섰다. 그러니 아부라함과 하나님의 사이에 言約祭物을 卽 全하나님의 目的를 두고 予約的祭物임에 틀림없다. 이 祭物 失敗하면은 다시금 사탄한테 侵入路程를 양보하는 行動인데 아부라함의 全 뜻를 合意있게 祭物를 獻祭치 못함은 하나님의 계획의 뜻은 벌서 未成事 할 겄를 表示하는데 重大한 겄이 이 祭物이였다.
124
그런데 아부라함 自身은 이 重大한 祭物를 들리는 自身으로서 祭物를 全部 쩍애지 못함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그 祭物을 剖는 겄은 사탄편 사람과 하날편 사람이 있다는 全人類의 表示이였다. 이런데 鳩를 쪽이지 안은 바는 하나님의 所有된 子孫과 사탄 所有된 사람과와 갈러서 摂理코저하는 하나님의 全意義이였는데 쪽이지 안은 겄이였스니 하나님 子孫될 約束과 言約이 成立를 보는 祭物에 完成한 成立를 보지 못하고 만은 事実이니 다시금 그 子孫까지 사탄의 侵入할 수 있는 터를 지은겄이 始作를 보이게 되니 사탄은 自己便쪽 表示로 갈러지지 않은 祭物 鳩를 取하려고 하여 祭壇 우에 내린 바이다. 이와갖치 하나님의 뜻한 全 目的은 사탄이가 다시금 차지하는 뜻으로써 祭物獻祭은 失敗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三大祭物은 무슨 表示냐 하면 하나님 하시고저 하는 眞理目的中心은 蘇生에서 長成으로 長成에서 完成으로
125
써 한 祭物를 通하여 表示한 바이였다. 卽 鳩를 들리게 하심은 하나님의 뜻 蘇生를 表示함이고 羊를 들리라하심은 長成을 表示함이고 牛를 들리라 하심은 完成를 表示하는 重大祭物이였다. 萬一 이 祭物의 뜻에 合意하게 獻祭하였스면은 애급 四百年生活은 이스라엘民族에게 업섰슬 겄이였는데 四百年 고役이라는 것은 이 獻祭物의 重大한 失敗를 告하는 바이 事実이다.
(四百年 年対意義는 나중 론할려 한다.)
그러무로 하나님의 予約祭物에 失敗를 보니 그겄은 子孫를 사탄한테 앗끼는 表示로 되였다. 그런고로 아부라함子孫 中에도 사탄의 侵入할 수 있게 되였스니 根本目的은 다시금 未成事的 原因으로 基因되니 하나님은 다시금 아부라함子孫에게 사탄侵入의 길을 막으려니 代身祭物은 사탄한테 앗기여섰기어 그겄은 卽 아부라함子孫 全部를 일어버린바와 마찬가지였기에 하나님은 아부라
126
함의 사탄뜻 成事를 본것와 같은 結果를 가저와스니 사탄한데 祭物 들인거와 갗치 되여버리였다.卽 아부라함도 사탄所有의 根據奌이 되여 全目的未成事를 가져오게 되니 다시금 하나님은 約束祭物은 앗겄지만 아직 実体子孫 되는 겄은 앗기지 않으러니 하나님은 不得己 한 立場을 取하여 아부라함에 딸으러는 民孫에 対한 사탄 侵入를 막으러하매 하나님은 그 子孫의 始作인 한 自体가 사탄과 하나님과의 直接問題要求物이였다. 하나님은 아부라함 子 이삭을 取하여야 하겠고 사탄은 벌서 이삭에 対하여서 取할 수 있는 予約祭物代身祭物를 自己가 所有하였섰든 겄어게 사탄 亦是 그 祭物代身되는 実体인 이삭의 要求물이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다시금 順從를 세워 하나님편으로 全子孫를 돌리러니 아부라함에 対하여 実体子息 이삭을 祭物
127
로 들리러는 問題를 提起시키는 겄이였다. 그겄의 卽 아부라함으로 모리야 山上에서 祭物로 이삭을 들리러는 根本意義는 여기있는 바이였다. 그태 뜻 中心하고 順從하면은 사탄은 떠러지고 하나님 편으로 屬하는 겄이였다. 그래 아부라함은 順從하여 代身祭物를 일러버린 것을 実体로써 찾는 양으로 獻祭의 命令에 順從하게 되였다. 이태 아부라함은 이런 原理的問題는 아지 못하였다. 이와같은 立場에 아부라함의 順從은 容易한 問題가 않이였스나 予約代身祭物를 獻祭時 失敗가 全子孫에게 四百年 동안 이 苦役이 뜻를 알고 나니 이번 失敗면은 말할 수 업는 큰 難한 問題가 生起이라는 겄를 아는 아부라함은 全的으로 하나님의 命令을 順從하게 되었 뜻대로 燔祭로서 子息를 들러는 確固한 그 立場에서 사탄은 目的
128
相対인 이삭에게서 물러가게 되는 바이 始作를 볼 수 있다. 그런고로 이 事実의 根本 뜻를 現 사람들은 아지 못한 겄이나 聖經에도 아부라함이 失手한 句節를 알게하는 句節이 있나니 卽 창세기22/12節에 아부라함이 이삭을 죽이려 할 때에 그 兒孩에게 手를 대여 害하지 말라. 爾가 爾子獨子를 我에게 獻기를 惜지 아니하니 今예야 爾가 我 하나님을 懼 하난 줄 知노라 하심이다. 이 聖經句節中에 今야 하는 그 句節이 卽 前번 失敗를 警告하는 同時 뜻 繼承成事를 告함이였다. 이리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路程를 찾저 나아가는 그 途中에는 予約代身祭物로 失手한 험물로 받은 아부라함 子孫에게는 四百年동안 원수앞에 苦役하여만의 本路程에 들어설 겄이였다. 그레 이스라엘 民
129
族 애급四百年苦役은 必然的過程이였다. 眞理을 찾으러니 眞理에는 蘇生이 있고 長成이 있고 完成이 있는 바이니 하나님도 이 찾고저 하는 뜻를 한 眞理路程이니 이와갗은 三大祭物이 要求되였다.이 祭物的 使命에 蘇生부分은 卽 旧約時代의 表徵이다. 蘇生하면은 長成 完成으로 할려하든겄의 人間의 絶対順從치 못함으로 分立를 자아내는 겄으로 展開할 겄의 表증되여 있다. 한 祭坦우에 三祭物은 한번에 뜻 成 하여야 할 겄의 根本 뜻이였다.
여기에 蘇生役事는 하나님의 責任分担始作基礎를 잡는 겄이고 長成은 예수 오셔 根本復帰에 復讐의 例로 해와를 찾저야만 되는 겄의고 完成은 예수를 中心하고 全人類와 合하며 또 하나님과 合하여서 全根本創造目的達成를 보고저 함의 表示로된 祭物에 意義다.
130
祭物中에 鳩은 蘇生를 表示함이니 旧約時期를 말함의고 羊은 長成이니 新約時期를 表示함이고 牛는 完成이니 再臨를 말함이다. 長成과 完成과는 함께 할려는 뜻은 人不順從과 不信으로 因하여 예수를 죽이니 再臨이라는 問題가 生起게 되였다. 牛는 完成이 表示이였는데 웨 牝牛이였든가. 卽 完成할려면 해와 한 存在가 問題되는 中心奌이니 牝牛은 해와를 表示하는 뜻이다. 사사記 14/18 下에 萬一 너이가 我의 牝牛로 耕지 아니하엿떠면 能히 我의 謎語를 解지 못하였으라 삼손은 블렛센 사람 対하여 妻를 (牝牛로) 表示하여 말함도 例를 볼 수 있다. 이와갗치 牝牛는 해와를 表示하는 것이다. 이 해와가 卽 完成할 수 있는 目的相対이였다. 簡單한 祭物內容를 紹介하였지만 다시금 本論으로 들어가서 보면은 사탄은 이삭이 実体에게 뜻를 세우지 못하고 다시금 其子孫에 対하여 対立的態度은 勿論이며 다시금 実体子孫의 侵入에 길을 찾으려고 試圖하였다. 이삭의 한 存在가 予約代祭物의 侵入를 보였기에 그 이삭에게도 不順從의 터는 벌서
131
始作할 수 있는 可能性이 잘못하면은 生起겄을 사탄이는 발아 보고 알으게 되였다. 그겄은 祭物를 自己겄으로 하였든 事実이 있슴으로 사탄은 如前하게 그 後孫에게 対하여 対立性을 갖고 対하게 되였다. 그런고로 이삭이 子息를 나으니 雙胎인지라 卽 에서와 야곱이였다. 이 雙胎은 무엇를 意味하는가 하면 아부라함의 失敗로 因한 祭物에 願치않은 存在의 侵入이 있섰든 겄이므로 이 実体子息 이삭의 問題되여 또다시 찾즈서나 이삭의 子息한데 対하여는 사탄 亦是 사탄의 찾고저 한은 한 터를 양보하였든 失手가 있섰스니 그 子息되는 雙胎은 원수的 表示의 所有者와 하나님的 表示인 所有가 한 胎中에 있슴를 表示함이였다. 그래 에서와 야곱은 腹中에서부터 싸우심은 이와같은 根本背馳에 存在니 腹中부터 사운심이다. 子息나으니 에서와 야곱이러라.
132
에서는 원수 사탄의 代表요, 야곱은 하나님 편的 代表이였다. 卽 에서는 아부라함의 몬츰 祭物에 失敗이 씨요 다음 야곱은 일어버린 이삭을 実体로서 찾저서 祭物까지 찾저 세우게 되였스니 하나님 第二次的存在인 야곱을 通하여서 뜻을 세우고저 한은 根本를 그와갗치 되였기에 앗서서 成事하는 양이니 하나님은 에서의 祝福을 야곱에게로 돌리는 根本意義는 여기에 有함이다.
그래 祭物失敗 업서스면 이삭 子息에 하나님이 미워하는 에서와 같은 存在은 업서서야 할 存在가生起게 된 것은 다시금 사탄을 分立게 하여 하날便과 사탄便을 分立케 하여는 겄이다. 이겄은 하나님이 사탄가 다시는 아부라함에 子孫한테 미련를 다시는 남기지 안케 하기 爲한 겄이 目的이무로 이와같은 表示的事実로서 야곱이 에서의 長子의 職分를 앗음을 알러야 한다. 이겄
133
은 다시금 예수와서 원수血를 받은 全人類를 앗서 넘길것을 予告하는 事実이다. 이런고로 이 한 事実이 根本를 밝켜주는 겄인 同時에 뜻 成事의 한 表徵으로 되는 바가 되여야 하는 바는 아부라함의 言約은 全目的인 表示인 約束이였기에 이런 意味에 한 分岐存在은 이삭이니(이삭 부터이니) 其 子孫 에서와 야곱이 사이에 되어진 実狀이였다. 그런 結果 이 影響를 받고 낫끼에 맛子息은 하나님앞에 사랑받지 못한 事実의 原因이니 創世記 全면에서 보여주는 事実이다.
例를 찾으면 이삭, 야곱, 요셉, 에부라엠, 아벨 等々에 事実은 이와같은 사탄 血를 받고 낫기에 맛 자식은 미움에 相対이였다. 여긔서 뜻 成事이 出発의 後孫은 야곱를 中心하고 択한 百姓 十二 兄弟요 十二支派으로 始作이 出発은 야곱부터 始作케 한겄은 根本意義보와 알 수 있는 바이다. 이삭은 하나님과 사탄이 발아는 存在立場의 아담과 같은 두 상対格立場였깨 根本出発 못했다.
134
卽 이삭부터가 애급出発이 않이고 야곱이 부터 되는 바는 以上解說中原理로써 明白한 事実이다.이리하여 択한 하날 百姓의 되여야 할 其根本은 애급으로 옴겨지게 되는 바는 뜻 成事의 첫 出発이다. (아부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을 原因이 生起게 되었다.)
至今부터 하나님과 사탄과의 分立되여 復帰의 出発은 始作된다. 이겄의 卽 하나님的 分担責任成事의 出発의 始作이라는 겄을 알어야 한다. 그런고로 이겄의 根本의 되여 卽 標本의 되여서 長成과 完成的 使命分担責任者의 本이 되여야 하는 第一次 하날的으로 하나님 直接使命코저 하는 基礎은 始作함인 同時祭物表示 蘇生課程이 発露이였다. 그런고로 애급서부터 가나안 復帰까지는 예수 오서서 할 基本表示工作과 같은 貌樣으로 낱아나지 안으면 한 目的를 한 完成으로 볼 수 있는 한 터에 工作이니
135
애급서부터 솔노몬王까지는 第二次完成하여야 할 存在가 낱아나서 成事할 한 予告的表示로 되여있다. 卽 예수 오서서 배급서부터 가나안 復地에로 가는 양으로 우리 人間理想復帰地로 찾저 들어가는 한 使命的基礎表示로 展開식키고저 함에 意義를 알러야 한다. 애급서 가나안 復귀路程은 예수의 路程을 表示한 바이라는 겄의 하나님의 根本 뜻이다. 그리하여 墮落식킨 人間対하여 하나님의 自己自身的責任分担対하여 始作하는 겄의 卽 모세를 세우심이였다. 모세는 하나님을 代身하고 바로는 사탄을 代身하고 나오게 되였다. 모세가 択함을 받은 原因은 원수가 이스라엘 百姓을 極度로 학대하는 同時에 强制로라도 全滅시키고저 하는 行動으로 나가게 되여 苦役中 원수의 사람과 卽 애급사람과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는 겄를 죽이는 모세는 볼래 애급 宮中에서 長成하
136
였스나 애급 사람를 원수시 하는 바는 이스라엘 子孫이라는 変하지 않는 지조는 果然 하나님의 択하시는 한 貴여운 行事이였다. 애급 宮中에서 잘아 나스나 애급 사람이 않이고 하날의 百姓이 変함업는 其 自体이였다. 이 自体은 애급 원수의 모든 第一 미워하는 自体인 同時에 사랑받고 잘아난 存在이였다. 이 自体가 애급 宮中에서 나와스니 애급과는 다시 結託 안하는 存在라는 것은 事実이다. 그런고로 其 우에 애급사람 対하여 憎惡心를 갓고있는 確固한 存在이니 하나님 択한바가 原因이 있는 바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여서 애급王 바로를 対하여 工作를 하게 하긔 爲한 始作를 命令하게 되였다. 그 때에 하나님의 命令를 받게되는 모세는 自己自身의 애급 百姓앞에 信케 할 수 있는 証據를 要求하니 杖로써 蛇이 되게 하는 첫 異蹟 보게 하신지라. 그리하야 祖上에 現던 하나님를 알게 하여 뜻 順從하여야 한다는 겄를 알게함이였다. 그 다음에는 手를 懷에 너어라 하심에 手를 懷에 너으니 癩病이 된지라. 그 다음에
137
다시금 懷에 너엇따가 다시 꺼내매 낫난지라. 그 다음에도 듯지 안커든 江水를 가저다 부으라 그리하면 피가 되라하고 하나님은 말삼하시였다. 그 다음에는 모세는 言을 要求하였다. 이와 같은 事実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려 할 적에 이런 異蹟를 보여주었나 하면은 하나님의 將來하시고저 하는 事実에 터가 되는 行事이니 그 表示되는 모든 뜻은 全部 예수 오서서 할 目的成事에 한 象徵이라는 겄를 表示하는 겄이 되여야 할 原理的 目的이 있는 바이다. 144 page 에 記하여 있음 ☞
(또 杖라는 겄은 代身 依支者를 表示함이였다. 卽 나를 代身保護할 겄을 말함이고 全 앞길를 잡아준다는 뜻이며 또 合當치 않은 겄를 치어 뜻대로 成事하게 하는 뜻이 있는 바이였다. 이것은 卽 예수가 우리의 全生命에 対하여 保護가 될 것을 말함이였다. *이 부분은 144쪽에 있는 것임.)
배음을 보여 주심은 배암으로 誘引한 表示的存在로 해와에게 役事한겄를 보여 주었스니 예수와서배암과 같은 役事로 사탄 手中에서 앗는 役事하여야 할 하날 배암的 表示를 予告하기 爲하여서 着手할 겄를 意味하심이였다. 사탄 네가 배암 가지고 해스니 나도 배암가지고 예수로 役事한다는 겄이 根本杖도 蛇되게 한 意味가 있는 바다. 모세 배암 예수는 사탄 배암를 잡아먹어 승리할 겄의 予告的 表示였다. 모세 手를 懷에 너은 겄은 첫 번은 사탄의 誘引
138
받아 사탄품에 안긴 해와의 行動은 人間을 죽이는 役事였스나 다시금 手를 품에 너으심은 예수 오서서 해와를 품는 事実은 癩病과 같은 死中에 蘇生하여 산다는 表示로 手에 病의 나은 겄을 보여줌이였다. 卽 第一次 懷겄은 死亡이나 예수 第二次 품으심은 生命이라는 永生의 始作를 予証한다. 江水로 血된다는 바은 水은 (生命)世上를 表示함인데 예수와서 死亡中에 處한 存在들의 예수 오서서 血로되는 生命注入를 始作한다는 겄를 表示한 바이였다. 言이 要求은 相対目的成事할 수 있는 重要責任仲介体니 言을 要求하심은 創造物全部를 말삼으로 지은겄이 일어버린겄를 예수와서 言相対의 理想的 実体를 다시금 成事한다는 뜻를 表示함이였다. 卽 言은 創造目的物実体를 말하심이다.아담 해와를 찾는다는 것과 全人類와 萬物를 찾는다는 意味가 있슴이다.
139
그 때 모세가 要求하는 全部를 許諾하시고 애급으로 帰라 하심에 모세는 自己의 妻子를 달리고 하나님의 杖를 들고 아급으로 帰야 바로에게 請키를 이스라엘은 我의 長子라 하라. 그러무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하라. 그래도 바로가 노아보내지 안으면 長子를 殺리라 하라하는 命令를 받고 帰오는 途中 한 宿所에서 여호와 모세에게 顯야 모세를 죽이고저 할 때에 모세이 妻는 아달의 陽皮를 베여 던저서 死을 免케하면서 妻가 갈아대 당신은 血흘리는 男便이라 한지라. 그겄은 割礼를 한 緣故여라. 여기에 야곱이 母가 야곱과 合하여서만의 工作하여서 뜻 成事한 겄과 갗치 모세의 妻子 卽 母子合하여 모세를 살리는 行礼를 成事한 겄이였다. 그 根本意味은 무슨 뜻인가 하면은 모세은 卽 割礼를 成事못하면 死는 것이고 成事하면 生다는 重大意味가 있는 바이다. 예수 오심은 무슨 目的이나 하면 割礼根本目的完成하는 実体인데 그겄은 그 母親과 合하여서
140
만이 成立되는 根本意義있다는 겄을 보여 줌이엿는데 妻子와 合하는 일이 업스면은 뜻 成事 못하고 예수는 死는 十字架가 있다는 予告的 事実을 表示함이였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長子로 成事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問題가 모세가 生하여만의 될 겄이였는데 모세 한 生命은 全이스라엘의 代身生命이고 全이스라엘 代身이 存在라고도 할 수 있는 存在이였다. 이 모세에게 있서서 割礼 업스면 모세는 勿論이고 全이스라엘 百姓도 全部死亡하는 表示的行例이였다. 그런고로 모세 妻子가 割礼가 잇섰끼에 살게 한다는 겄은 예수님이 오서서 生死의 重要問題를 右左하는 根本問題成事의 責任을 表示한 바다. 이 立場에서 모세 妻子合함의 큰 勝利的條件의 成立을 봄이었다.
( *144장에서 이곳에 넣으라고함.
또 杖라는 겄은 代身依志者를 表示함이였다. 卽 나를 代身保護 할 겄을 말함이고 全 앞길를 잡아준다는 뜻이며 또 合當치 않은 겄를 치어 뜻대로 成事하게 하는 뜻이 있는 바이였다. 이것은 卽 예수가 우리의 全 生命에 対하여 保護가 될 것을 말함이였다.)
141
이 뜻를 세우지 못하였스면은 모다 失敗할 수 있는 難한 問題이였다. 그런고로 이 한 모세의 妻子의 한 割礼가 全 択한 百姓에게 対한 長子의 名分를 完成하게 하는 根本自体가 卽 割礼이였다. 이와갖치 예수님도 오서 母親과 合力하여 割礼成事의 뜻를 成事하여야 할 겄이였스나 예수 이 뜻를 못 成事한 失敗的 根本이 이섰슴은 누구나 未知이 事実이다. 그런고로 母親 뜻 받들지 못하였끼에 예수는 母親에게 対하여 갈릴리 가나에서 異蹟를 볼적에 女人이여하신 말삼의 根本意義가 있슴이라. 其 外 母親 対하여서 女人이여 너와 나와 무슨 相觀이 있는가 한 말삼 等々이 始作은 예수는 뜻 成事의 第一次 始作의 失敗를 가져오게 되였기 때문이였다. 그겄의 十字架 上 死의 始作의 聯關性를 가지게 되였다. 卽 모세가 하나님 앞에 뜻 成事할 수 업는
142
自己生를 가지지 못한겄과 한가지 事実이였다. 이와갖튼 하나님의 하시는 路程의 숨어 있는 原理의 目的을 누가 알 수 있스랴!!
여긔에 割礼에 対하여 말하기로 하자.
볼래 聖經에 割礼라는 名詞가 生起게 된 겄은 墮落되였끼에 基因되는 事実인데 本來 해와가 사탄血를 받고 아담까지가 墮落되었기 때문에 割礼의 重心問題가 要求되는 바이다. 그런고로 아담의 主管하여야 할 해와를 主管하였다면 墮落조차 防止하였슬 터인데 홰와한테 主管받고나니 墮落됨의였다. 卽 아담 陽部를 通하여 全 墮落을 成事되였스니 責任은 아담 男子가 있는 겄이였다. 이 男子되는 아담이 支配받고나니 하나님 앞에 설 수 업는 存在로 되며 墮落에 始作의 成立를 보게한 実体은 卽 男子의 陽部이였다. 그런고로 어두움에 血를 받아들인
143
그 自体이니 어두움에 血를 다시금 빼는 事実를 表徵함이 目的이였다. 그런고로 아부라함 子孫은 割礼하여만의 卽 어두움에 血를 몬츰 받아서 死게되여스니 그 自体로써 살러면 그 実体로써 死亡이 血를 배여야만의 하나님끠 屬할 수 있는 始作를 봄이라는 겄를 알러주는 事実이다. 그러무로 割礼은 아부라함에 永遠한 規礼로 세움이였다. 그리고 이겄이 있스무로 主管성을 다시금 復帰하는 男子의 資格을 扶与함이다.
割礼에는 마음의 割礼가 있고, 肉身割礼가 있고, 萬物割礼가 있다.
1. 사망(死)의 피(血)를 빼는 表 - 마음의 割礼(신10/16)
2. 主管性을 다시 찾는 表 - 肉身割礼(창17/10)
3. 根本 뜻의 子女의 길을 찾은 약속의 表 - 萬物割礼(레19/23)
以上과 같은 重大意味를 가진 겄이 卽 아브라함에 하나님이 命令하시든 根本意味라는 것을 人間은至今까지 未知의 겄이다. 또 몰나야 하는 겄의 한 原理였섰다.
144
그런고로 모세의 의 行礼은 全이스라엘에게 対하여 질머진 全目的成事를 表示함을 다시금 아러야한다. 그런고로 모세行動如何은 예수오서서 할 使命的行路의 前形表示로 그의 모든 일은 表徵된 바라는 겄의 原理로 보아 알 수 있는 事実이다. 卽 하나님의 使命分担責任이 過程은 예수의 基礎되게스니 같은 뜻의 目標表示으로 萬事은 들어내여 나아가는 겄이 根本意義이였다.
以下는 134절 상에로 옮길 것(續入)
( 또 杖라는겄은 代身依志者를 表示함이였다. 卽 나를 代身保護 할 겄을 말함이고 全 앞길를 잡아준다는 뜻이며 또 合當치 않은겄를 치어 뜻대로 成事하게 하는 뜻이 있는 바이였다. 이것은 卽 예수가 우리의 全 生命에 対하여 保護가 될 것을 말함이였다.)
145
모세에게 아론을 주어서 이스라엘의 贖罪的行例에 代表者로 세우심은 모세를 協助하여 한 目的 뜻를 成事코저하는 侍從이였다. 卽 百姓이 代身贖罪責任役活를 하심은 해와 自体로 될 聖神과 함께 예수의 뜻 侍從하여 人間対하여 直接贖罪貴任를 할 겄를 表徵함이였다. 모세에게 한 代身 協助者업다하였서 아론를 준바는 않이지만 말삼(言)에 代身를 要求할적에 아론 세우심은 아론은 말삼 代身者임을 表示하니 말삼에 最高에 問題者은 해와의 한 存在이였다. 卽 말삼 成事은 해와를 完全하게 찾은 目的으로 基因되니 卽 아론를 세워 代身贖罪하심은 예수 해와가 합하여서 人間贖罪의 直接問題를 하여야 할 自己自身에 使命分担役割이였다. 卽 해와도 罪를 지여스니 해와로서 代身 싳는 力活을 하
146
야 할 責任分担의 되여 있스니 아론은 모세의 한 相対格者로서 百姓를 対하여 모세의 뜻 卽 하나님의 뜻를 成事하게 協助한 바는 예수오서서 말삼 相対찾저 뜻 成事를 잡를 겄를 表徵하는 意義이다.모세에 以上과 같은 諸條件의 成立되어 바로를 対하여 直接対立를 取하여 나서게 되였다. 그래 바로는 모세의 要求에 対하여 順応한지 않은 反面 도리혀 모세에 屬한 이스라엘 百姓에게 더 憎오심을 갓게끔 하나님은 바로를 剛愎케 할겄를 말하면서 바로 앞에 가서 이스라엘 百姓를 노와주워 拡野에 나아가 三日즘 여호와께 祭祀하기를 請하라 하시였다. 여긔 三日程 이라는 겄은 이스라엘의 全生命의 노이느나 않노이느나 하는 問題은 이 三日程이라는 問題를 걸어 놋코 始作하게 되는 基本要求條件이였다. 이 三日間의 許与 안되면 이스라엘 全幅的目的은 全部 始作할 수 업는 問題를 말하는 바이였다. 의 三日程이라는 겄의
147
모세가 하나님 뜻를 成事케하는 工作이 基本되는 要求條件이였다. 그런고로 예수 오세서 사탄 対하여 三日期間에 対한 過程에 處하지 않으면 안될 겄이였다. 이 過程을 成事할려면은 모세에 屬한 具備條件같은 諸條件具備를 보여 할 겄이였는데 이 具備條件은 拡野試驗 通하여 其 터는 사탄에게 勝利함으로 成立되였스나 其의 代身役者 아론과 같은 해와의 存在의 具備成事를 보지 못하여서 三日程始作路程를 自由롭게 넘어서지 못한 原因으로 十字架死 三日間이 基本的根本은 始作이였다.이때 예수앞에 어머님과 合하는 뜻 成事를 中心하고 해와 한 存在와 人間들이 하날 便쪽으로 順從하였스면은 예수의 十字架路程은 다른 方向으로 效果的路程를 보아 사탄対하여 積局対策의 成立를 始作하였슬 겄인데 其 対策을 아모케 하여서 바로 成事할 責任이 예수의 責任이니 죽어서라
148
三日期間를 터치는 使命的責任分担를 完成하야 할 義務가 있슴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