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摂理路程의 根本 意義 (하나님的 分担 摂理期間) (원리원본 제1권 109-119쪽)
원리원본 제1권
第一 하나님한테 順從屈服
第三 全사람한테
以上의 目的 完成하여 나중에는 사탄의 所有 한 사람도 없게 하여 사탄까지 終局 自然屈服 하여야 原理로 되는 바다. 그런고로 사탄은 이 뜻을 反하여 役事하는 것이, 卽 아담부터 旧約時代로 旧約時代로부터 新約時代 新約時代로부터 再臨時代까지로 展開를 보게 되는 路程으로 하나님의 摂理의 役事는 厂史를 通하여 걸어 내려오게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끝까지 사람을 対하여 사랑하여 나오신 바이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的 責任分担 厂史가 旧約厂史고 아담해와(예수와 성신) 全人類 責任分担厂史가 新約厂史다. 그래야만 本 墮落 前 起本点를 볼 수 있는 것이 되어야만 再臨이 成事時代가 卽 成約時代면서 理想時代다. 이런 路程으로 復帰 始作이 하나님의 뜻하신 사람 対하여 사랑하는 中心意義다. 그런고로 사탄과 하나님은 사람 中心하고 하나님은 뜻 成事로서, 사탄은 뜻을 破壞하려고 厂史上의 戦爭으로 展開되어진 것이 事実이다.
(하나님的 分担 摂理期間)
①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摂理路程의 根本 意義 (훈독본)
審判을 通하여서 노아의 八食口는 第二次로 繁殖하여지는 同時에 하나님의 뜻 摂理完成으로 始作과 同時에 結果로 나아가야할 使命的 責任의 分担은, 卽 하나님을 뜻을 믿(信)고 順從하는 것이 노아의 後孫에게 맡겨진 重大課業이었다. 그런데 全人類를 審判하고 나니 사탄은 自己를 崇拜하며 섬기는 全人類를 잃고나니 사탄은 뜻을 부칠 곳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탄은 사람을 떨어질 수 없는 関係的 因緣이 있는 以上 하나님 뜻 外의 部分 存在가 있으면 自己의 所有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다시금 하나님한테 自由 屈服하지 않고 노아의 八食口에 対하여 미련的 立場으로 自己의 뜻 所有자가 될 수 있는 存在가 있는가, 또는 自己가 取할 수 있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行動이 없는가가 사탄에게 있어서는 要求하는 重大 注目点이 있다. 이 어마어마(々々)한 立場에 선 자들이, 卽 노아 여덟식구였다. 이 食口들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있어 自己들의 根本 責任을 勘當하는 方向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卽 하나님便으로 가려면 사탄이 따르고 사탄을 따르면 하나님이 滅하는 이런 立場에 서서 있다는 바를 그때 原理的으로 안다면 모르지만, 이 原理를 알지 못하는 여덟(八) 食口는 그저 하나님에 対한 積極性을 保持하여 할 存在들이었는데 그런 方向으로는 如何한 結果를 가져오게 되는가는 人間에게 特有性 自由行動結果가 右左하는 問題였다. 노아 食口는 모든(全) 하늘의 期待인 所望적 存在요, 사탄이 빼앗고저 하는 所望적 期待의 存在였다. 그런 立場에 있는 存在들, 卽 하나님의 보시기에 義로 여기는 存在들이다.
이와 같은 人間 価値을 알고 보니 왜 사람이 그다지도 하나님을 받들지 못하였는가 하는 嘆息이 自然히 나올 것이다. 至今 우리는 이 原理로 보아 緊張한 立場들인 줄을 알 수 있는 福된 時期를 만남이 無限한 幸福스러운 것이었으나, 이 時代에는 이 根本 問題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한 수수께끼의 問題이였기에 그다지도 自己들 存在価値와 하나님에 対함과 사탄 対함에 対하여서는 그저 根本를 아지 못하고 其 結果를 보아 하나님과 사탄의 關係과 反対적(性)으로서 서 있다는 것만을 厂史를 通하여 알 뿐이었다.
그 때(時)에 노아는 天地에 主人公格이며 第二次 人間의 祖上이 되는 存在의 行動 如何부터가 하나님과 사탄이 行動의 如何를 始作하는 重點이었다. 그 때 노아의 여덟(八)食口 中에 罪라는 生覚조차하여서는 안 될 存在들이고 하나님의 義만이 始作되어야 할 存在로써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모양이나 흉 하나도 보여지는 行動이 없어야 할 立場이었다. 그런데 때마참 노아는 農夫가 되어 葡萄農事를 하였다. 포도酒를 먹고 醉하여서 帳幕 안(內)에 裸体로 누(臥)워서 잠을 자고 있을 때에 노의의 아들 함이아버지(父)가 벌거벗고 자는 고로 부끄럽게 여기면서 自己兄弟들에게까지 가서 부끄러운 行動의 表示를 하니 셈과 야벳은 옷(衣)을 取하여 아버지 벗은 것도 보지 아니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의 裸体를 덮(覆)은지라.
이것이 聖経을 보면 왜 이런 行動이 하나님이 미워하는 行動인가 하는 根本意義는 오늘날까지 未解決 問題이나 그 根本原理로 볼 적에 其 事実은 明白하여지는 바이다. 이 行動은 무엇을 像徵하는 事実이냐 하면 하나님 앞에 至極히 미움의 行動이며 사탄한테 한便이 될 수 있는 아담, 해와의 벗음의 수치를 다시금 증거하며 墮落性의 継承을 表示하는 行動이며, 사탄에게는 하나님 앞에 自己의 立場을 세울 수 있는 根據的 問題였다.
卽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것으로 墮落된 부끄러움의 自体임을 아직 잊지 못하는 存在의 씨라는 事実을 暴露하는 行動이면서 또 全人類를 審判하심도 그것의 始作으로 한 結果에 到達하여 지는 바에서 나온 바를 生覚하니 하나님은 痛분하지 않을 수없는 事実를 보여줌인 同時에 사탄의 성품, 즉 犯罪한 卽後에 行動에 継承을 証거하는 事実이니 또 亦是 하나님이 뜻하는 根本目的의 未完成要素가 잠재함을 알게 됨이니, 또 다시금 사탄의 起着点을 보여주는 行動이었다. 그런고로 다시금 사탄은 그 行動 開始을 보게 할 根據를 잡고 나서니 그 要求의 터를 막을 수 없는 사탄의 繁殖이 始作을 보게 되었다. 그런고로 그 行動를 直接 開始하게 한 그 存在가 사탄 便 者이니 함을 対하여 가나안의 祖上이 되어 하나님의 怨讎가 되리라는 겄를 말함이다.그리하여 또 다시금 하나님과 사탄은 対立을 보게 되어서 子孫을 繁殖하니 또 다시 그 子孫들은 다시금 하나님이 미워하는 行動으로 흘러나아가게 되었고 노아 前과 같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사탄 뜻 번식에 協助하여 나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금 사람을 뜻 中에 품으려하는 자들을 빼앗긴 셈이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이 사탄한테 属하지 않케 하기 為한 対策이 要求되는 바이다.
그때 마침 사람들은 하나님의 미워하는 곳으로 흘러나아가는 行動뿐이었다. 그것은 卽 사탄이 즐거워하는 行動結果이니 이것을 그낭 두어 둘 수 없는 事実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言語가 하나이니 全部가 意思가 通하여 한 곳으로 動作하는데 全体的으로 움직이게 되니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하늘 便의 뜻을 成事하기 為하여 도움되는 言語가 못되고 도리어 바벨塔을 쌓아 사탄의 뜻에 協助하는 行動의 원인(基因)을 가져오니 하나님은 言語을 서로 다르게(相隔)게 함은 뜻을 反하여 行動 協助物의 言語로써 한 方向으로 모든 사람이 흘러 들어 가겠으니 言語를 混雜하게 하여서 그 사탄의 뜻을 돕는 길을 막고자 함이 人間의 言語를 혼잡시킨 根本意義였다. 그런고로 萬若 뜻 中에서 人間이 이런 塔을 쌓았으면, 또 뜻 成事로 나아갔으면 言語를 混雜하게 할 理 萬無한 일이다.
그런고로 世上에 뜻 成事時期가 오면 言語는 하나의 目的으로 하늘的으로 始作하여야 된다. 사람들은 이 뜻을 成事에 協助하여서 統一된 言語를 가져야 한다. 그런고로 그 始作은 中心存在,卽 再臨主가 오면 그로부터는 하나의 言語와 創造的 主管 許諾이었던 世界主管世界는 根本的으로 復帰되어야 한다.
사탄 바벨은 분열(分岐)시키는 工作이었으나, 하늘 対한 뜻의 塔은 合体하여 하나되게 하는 바이 되게 하는 工作이다. 하늘 뜻을 中心하고 復帰된 사람들이 뜻의 塔을 높이 쌓는 것을 보고자 함이 하나님의 뜻이다. 또 우리 理想의 터이다.
이렇게도 하나님은 사탄 対하여 빼앗기지 않기 為하여 하신 言語混雜이야 福된 일이었다.(混雑케 한 것이야 人間에게 福된 일이 아니랴.) 이와 같이 안타갑게 한 사람의 罪를 누가 담당하랴. 이리하였으나 사람들은 如前히 뜻을 멀리하여, (全人類는) 뜻을 세워서 받들면서 거기에 誠心을 다하는 者를 보기가 甚히도 드물었다. 그래 하나님은 뜻을 품으려던 노아의 子孫들을 또 다시 사탄한테 빼앗겼으니 이것을 다시금 빼앗는 役事를 始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탄이 사랑하는 相対者 偶像商하는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다시금 사탄품으로부터 빼앗아서 自己 뜻의 子孫을 빼앗은 것을 다시 갚는 양상으로, 卽 反対 路線으로 찾아 세우기 為하여서 아브라함을 択한 것이다.
그 理由은 사탄품에 있다가 빠져나오는 代表者요, 뭇사람의 本이 될 行動이면서, 다시는 사탄한테 돌아가지 않을 겄이다. 이미 나왔으니 돌아갈 수 없는 立場을 取케 하기 為하여 아브라함을 択하여 하나님이 뜻하시는 딴 地域으로 引導함이 卽, 아브라함에 要求한 것이 卽 故鄕山川인 갈대아우루를 떠나라고 하신 根本目的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늘 命令에 따르니 하늘에게는 기쁨의 存在인데 사탄에게는 極히 슬픔의 存在이었다.
(하나님의 命令을 따르니 하늘 対해서는 기쁨의 存在이며, 사탄 対해서는 슬픔의 存在로서 한 分岐路線을 세울 수 있는 中心存在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에 선)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에 선 아브라함 뒤에는 원수 사탄이 (다시금) 미련를 갖고 따르게 되었다. (원.본 109-119쪽)
<한글 번역본>
제1 하나님한테 순종굴복
제2 아담 해와 (예수 성신)한테 순종굴복
제3 온 인간한테 순종굴복
이상의 목적을 완성하여 나중에는 사탄의 소유가 한 사람도 없게 되어 사탄까지 결국 자연굴복 하여야 원리로 되는 바다. 그런고로 사탄은 이 뜻을 반하여 역사하는 것이, 즉 아담부터 구약시대로, 구약시대로부터 신약시대로, 신약시대로부터 재림시대까지로 전개를 보게 되는 노정으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는 역사를 통하여 걸어 내려오게 되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끝까지 사람을 대하여 사랑하여 나오신 바이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적 책임분담 역사가 구약역사고, 아담해와(예수와 성신) 전인류 책임분담역사가 신약역사다. 그래야만 본 타락 전 기본점을 볼 수 있는 것이 되어야만 재림이 성사 시대가 즉 성약시대면서 이상시대이다. 이런 노정으로 복귀 시작이 하나님이 뜻하신 사람에 대하여 사랑하는 중심 의의다. 그러므로 사탄과 하나님은 사람을 중심하고 하나님은 뜻 성사로서, 사탄은 뜻을 파괴하려고 역사상의 전쟁으로 전개되어진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적 분담 섭리기간)
①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섭리노정의 근본 의의(한글 번역본)
심판을 통하여서 노아의 여덟식구는 제2차로 번식하여지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 섭리완성으로 시작과 동시에 결과로 나아가야 할 사명적 책임의 분담은, 즉 하나님의 뜻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노아의 후손에게 맡겨진 중대 과업이었다. 그런데 전인류를 심판하고 나니 사탄은 자기를 숭배하며 섬기는 전인류를 잃고 나니 사탄은 뜻을 부칠 곳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탄은 사람을 떨어질 수 없는 관계적 인연이 있는 이상 하나님 뜻 외의 부분 존재가 있으면 자기의 소유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다시금 하나님한테 자유 굴복하지 않고 노아의 여덟식구에 대하여 미련적 입장으로 자기의 뜻 소유자가 될 수 있는가, 또는 자기가 취할 수 있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행동이 없는가가 사탄에게 있어서는 요구하는 중대 주목점이 있다. 이 어마어마한 입장에 서게 된 자들이, 즉 노아 여덟 식구였다. 이 식구들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있어 자기들의 근본 책임을 감당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즉 하나님 편으로 가려면 사탄이 따르고 사탄을 따르면 하나님이 멸하는 이런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그때 원리적으로 알았다고 하면 모르지만, 이 원리를 잘 알지 못하는 여덟 식구는 그저 하나님에 대한적극성을 보존하고 지켜야 할 존재들이었는데 그런 방향으로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가는 인간에게 특유성 자유 행동결과가 우좌하는 문제였다. 노아 식구는 모든 하늘의 기대인 소망적 존재요, 사탄이 빼앗고자 하는 소망적 기대의 존재였다.그런 입장에 있는 존재들,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 여기는 존재들이다.
이와 같은 인간 가치을 알고 보니 왜 사람이 그다지도 하나님을 받들지 못하였는가 하는 탄식이 자연히 나올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 원리로 보아 긴장한 입장들인 줄을 알 수 있는 복된 시기를 만남이 무한한 행복스러운 것이었으나, 이 시대에는 이 근본 문제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한 수수께끼의 문제였기에 그다지도 자기들 존재가치와 하나님에 대함과 사탄 대함에 대하여서는 그저 근본을 알지 못하고 그 결과를 보아 하나님과 사탄의 관계와 반대적으로 서 있다는 것만을 역사를 통하여 알 뿐이었다.
그 때에 노아는 천지에 주인공의 위치면서 제2차 인간의 조상 되는 존재의 행동 여하부터가 하나님과 사탄이 행동의 여하를 시작하는 중점이었다. 그 때 노아의 여덟 식구 중에 죄라는 생각조차 하여서는 안 될 존재들이고 하나님의 의만이 시작되어야 할 존재로써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모양이나 흉 하나도 보여지는 행동이 없어야 할 입장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노아는 농부가 되어 포도농사를 하였다. 포도주를 먹고 취하여서 장막 안에 벌거벗은 채로 누워서 잠을 자고 있을 때에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가 옷을 벌거벗고 자는 고로 부끄럽게 여기면서 자기형제들에게까지 가서 부끄러운 행동의 표시를 하니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아버지 벗은 것도 보지 아니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의 나체를 덮은지라.
이것이 성경을 보면 왜 이런 행동이 하나님이 미워하는 행동인가 하는 근본의 뜻은 오늘날까지 미해결 문제이나 그 근본원리로 볼 적에 그 사실은 명백하여지는 바이다. 이 행동은 무엇을 상징하는 사실이냐 하면 하나님 앞에 지극히 미움의 행동이며 사탄한테 한편이 될 수 있는 아담, 해와의 벗음의 수치를 다시금 증거하며 타락성의 계승을 표시하는 행동이며, 사탄에게는 하나님 앞에 자기의 입장을 세울 수 있는 근본적 문제였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것으로 타락된 부끄러움 자체임을 아직 잊지 못하는 존재의 씨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행동이면서 또전인류를 심판하심도 그것의 시작으로 한 결과에 도달하여 지는 바에서 나온 바를 생각하니 하나님은 통분하고 억울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을 보여줌인 동시에 사탄의 성품, 즉 범죄한 직후에 행동의 계승을 증거하는 사실이다. 또 역시 하나님이 뜻하는 근본목적 미완성요소가 잠재함을 알게 됨이니, 또 다시금 사탄의 기착점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그런고로 다시금 사탄은 그 행동 개시를 보게 할 근거를 잡고 나서니 그 요구의 터를 막을 수 없는 사탄의 번식이 시작을 보게 되었다. 그런고로 그 행동을 직접 시작하게 한 그 존재가 사탄 편 자이니 함을 대하여 가나안의 조상이 되어 하나님의 원수가 되리라는 것을 말함이다. 그리하여 또 다시금 하나님과 사탄은 대립을 보게 되어서 자손을 번식하니 또 다시 그 자손들은 다시 하나님이 미워하는 행동으로 흘러 나가게 되었고 노아 전과 같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사탄의 뜻 번식에 협조하여 나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금 사람을 뜻 중에 품으려하는 자들을 빼앗긴 셈이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이 사탄한테 속하지 않게 하기 위한 대책이 요구되는 바이다.
그때 마침 사람들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곳으로 흘러나아가는 행동뿐이었다. 그것은 즉 사탄이 즐거워하는 행동결과이니 이것을 그냥 두어 둘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언어가 하나이니 전부가 의사가 통하여 한 곳으로 동작하는데 전체적으로 움직이게 되니 하나님에게 있어는 하늘 편의 뜻을 성사하기 위하여 도움되는 언어가 못되고 도리어 바벨탑을 쌓아 사탄의 뜻에 협조하는 행동의 원인을 가져오니 하나님은 언어를 서로 다르게 함은 뜻에 반하는 행동의 협조물의 언어로써 한 방향으로 모든 사람이 흘러들어 가겠으니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서 그 사탄의 뜻을 돕는 길을 막고자 한 것이 인간 언어를 혼잡하게 만든 근본의 뜻이었다. 그런고로 만약 뜻 중에서 인간이 이런 탑을 쌓았으면 또 뜻 성사로 나아갔으면 언어를 혼잡하게 할 리 만무한 일이다.
그런고로 세상에 뜻 성사시기가 오면 언어는 하나의 목적으로 하늘적으로 시작하여야 된다. 사람들은 이 뜻 성사에 협조하여서 통일된 언어를 가져야 한다. 그런고로 그 시작은 중심존재, 즉 재림주가 오면 그로부터 하나의 언어와 창조적 주관 허락이었던 세계주관세계는 근본적으로 복귀되어야 한다.
사탄 바벨은 분열시키는 공작이었으나, 하늘 대하는 뜻의 탑은 합체하여 하나되게 하는 바이 되게 하는 공작이다. 하늘 뜻을 중심하고 복귀된 사람들이 뜻의 탑을 높이 쌓는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또 우리 이상의 터다.
이렇게도 하나님은 사탄에 대하여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하신 언어 혼잡이야 복된 일이었다.(混雑케 한 것이야 人間에게 福된 일이 아니랴.) 이와 같이 안타깝게 한 사람의 죄를 누가 담당하랴! 이리하였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뜻을 멀리하여, (全人類는)뜻을 세워서 받들면서 거기에 성심다하는 자를 보기가 심히도 드물었다. 그래 하나님은 뜻을 품으려던 노아의 자손들을 또다시 사탄한테 빼앗겼으니 이것을 다시금 빼앗는 역사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탄이 사랑하는 상대자 우상상하는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다시금 사탄품으로부터 빼앗아서 자기 뜻의 자손을 빼앗은 것을 다시 갚는 양상으로, 즉 반대 노선으로 찾아 세우기 위하여서 아브라함을 택한 것이다.
그 이유는 사탄품에 있다가 빠져나오는 대표자요, 뭇사람의 본이 될 행동이면서, 다시는 사탄한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나왔으니 들어갈 수 없는 입장을 취케 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택하여 하나님이 뜻하시는 딴 지역으로 인도함이, 즉 아브라함에게 요구한 것이, 즉 고향산천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신 근본목적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늘의 명령에 따르니 하늘은 기쁨의 존재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니 것에 대해서는 기쁨의 존재다. 그러나 사탄에게는 완전 슬품에 존재이었다. 사탄 대해서는 설움의 존재로서, 한 분립 노선을 세울 수 있는 중심존재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에 선 아브라함 뒤에는 원수 사탄이 미련을 가지고 따르게 되었다. (원.본 109-119쪽)
<원본 타자본>
第一. 하나님한테 順從屈服
第二. 아담 해와 (예수 성신) //
第三. 全사람한테 //
以上에 目的完成하여 나종에는 사탄의 所有한 사람도 업게하여 사탄까지 終局自然屈服으로 하여야 原理로 되는바 그런고로사탄은 이 뜻을 反하여 役事하는 것의 卽 아담부터 旧約時代로 旧約時代로부터 新約時代 新約時代부터 再臨時代가지로 展開를 보게 되는 路程으로 하나님의 摂理의 役事은 厂史를 通하여 걸어(내려)오게 되였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끝까지 사람를 対하여 사랑하여 나오신 바이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的 責任分担厂史가 旧約厂史고 아담 해와 (예수와 성신) 全人類 責任分担厂史가 新約厂史다. 그러여만의 本墮落前起本奌를 볼 수 있는 겄이 되여만의 再臨成事 時代가 卽 成約時代면서 理想時代다.이런 路程으로 復帰始作이 하나님의 뜻하신 사람 対하여 사랑하는 中心意義다. 그런고로 사탄과 하나님은 사람 中心하고 하나님 뜻 成事로서 사탄은 뜻 破壞으로가 厂史上에 戰爭의 展開하여진 事実이다.
(하나님的分担 摂理期間)
① 노와부터 아부라함까지 摂理路程에 根本意義.(원본 타자본)
審判를 通하여서 노와의 八食口은 第二次로에도 繁殖하여지는 同時에 하나님의 뜻 摂理完成으로 始作과 同時에 結果로 나아가여야할 使命的責任의 分担은 卽 하나님을 뜻을 信고 順從하는 겄의 노와의 後孫은 맛겨진 重大課業이였다. 그런데 全人類를 審判하고 나니 사탄은 自己를 崇尙하며 섬기든 全人類를 잃고나니 사탄은 뜻 붓칠 곳 업시 되였다. 그러나 사탄은 사람을 떠러질 수 없는 關係的 因緣의 잇는 以上 하나님 뜻 外에 部分存在가 있스면 自己의 所有로 할 수 있는 겄이다. 그러무로 사탄은 다시금 하나님한테 自由屈服지 않코 노와의 八食口에 対하여 미련的 立場으로 自己에 뜻 所有자 될 수 있는 存在가 있는가 또은 自己가 取할 수 있는 하나님의 미워한은 行動이나 업는가가 사탄에게 있서서는 要求하는 重大注目奌이였다. 이 어마 々々한 立場에 선 者들의 卽 노와 어덟식구였다. 이 食口들은 하나님과 사탄사이에 있서 自己들의 根本責任를 勘當하는 方向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卽 하나님便으로 갈러면 사탄이 딸으고 사탄 딸으면 하나님의 滅하는 이런 立場에 서서 있다는 바를 그대 原理的으로 안다면 모르지만 이 原理를 아지 못하는 八食口은 그저 하나님에 対한 積極性을 保持하여할 存在들 되였는데 그런 方向으로는 如何한 結果를 가져오는가는 人間에게 特有性 自由行動結果가 右左하는 問題이였다. 노와 食口은 全 하날의 期待인 所望存在요 또 사탄의 앗고저 하는 所望의 期待에 存在였다. 그런 立場에 있는 存在들 卽 하나님의 보시긔에 義로 넉이는 存在들이다.
이와 같은 人間價値을 알고보니 위 사람이 그다지도 하나님을 밧들지 못하였는가 하는 嘆息이 自然 나올 겄이였다. 至今 우리는 이 原理로 보아 緊張한 立場들인 줄을 알 수 있는 福된 時期를 만남이 無限한 幸福스러운 겄이였스나 이 時代에는 이 根本問題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한 수수꺽기의 問題이였기에 그다지도 自己들 存在價値와 하나님의 対함과 사탄 対함에 対하여서는 그저 根本를 아지 못하고 其 結果를 보와만의 하나님과 사탄의 關係와 反対性으로서 서 있다는 겄만을 厂史를 通하여 알 분이였다. 그 時에 노와는 天地에 主人公格이면 第二次人間의 祖上이 되는 存在의 行動如何부터가 하나님과 사탄이 行動의 如何를 始作하는 重奌이였다. 그때 노아의 八食口中에 罪라는 生覚조차 하여서는 안 될 存在들이고 하나님의 義만의 始作되여야할 存在로써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모양이나 흉하나가 보여지는 行動의 업어야 할 立場이였다. 그런데 때맛치 노와는 農夫가 되여 葡萄農事를 하였다. 포도酒를 먹고 醉하여서 帳幕內에 裸体로 臥어서 잠을 자고 있슬 대에 노와의 아달 함의 父가벌고벗고 자는고로 부구럽게 넉기면서 自己兄弟들 까지에게 가서 붓꾸러운 行動의 한 表示를 하니 셈과 야벳은 衣을 取하여아바지 벘슨 겄도 보지 아니하고 뒤거름으로 들어가서 아바지의 裸体를 覆인지라. 이겄의 聖經보면 웨 이런 行動의 하나님의 미워하는 行動인가 하는 根本意義는 오날 未解決問題나 그 根本原理로 볼적에 其 事実은 明白하여지는 바이다. 이 行動이야 무었를 像徵하여 주는 事実이나 하면은 하나님 앞에 至極한 미움의 行動이며 사탄한태는 便 될 수 있는 아담 해와의 벗슴에 수치를 다시금 예증하며 墮落性 繼承을 表示하는 行動이며 사탄이게는 하나님 앞에 自己의 立場을 세울 수 있는 根據的 問題였다.
卽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겄으로 墮落된 붓끄러움의 自体임을 아직 잊지 못한은 存在의 씨라는 事実을 暴露하는 行動이면서 또 全人類를 審判하심도 그겄의 始作으로 한 結果에 到達하여 지는 바에서 나온 바를 生覚하니 하나님은 痛분하지 않을 수업는 事実를 보여줌인 同時에 사탄의 성품 즉 犯罪한 卽後에 行動에 繼承를 証거 하는 事実이니 또 亦是 하나님의 뜻하는 根本目的의 未完成要素가 잠재함을 알게됨이니 또 다시금 사탄의 起着奌을 보여주는 行動이였다. 그런고로 다시금 사탄은 그 行動開始을 보게할 根據를 잡고 나서니 그 要求의 터를 막을 수 업는 사탄의 繁殖이 始作를 보게 되였다. 그런고로 그 行動를 直接開始하게한 그 存在가 사탄便이 者이니 함을 対하여 가나안의 祖上의 되여 하나님의 怨讎가 될리라는 것를 말함이다. 그리하여 또 다시금 하나님과 사탄은 対立를 보게 되엿서 子孫을 繁殖하니 또다시 그 子孫들은 하나님의 미워하는 行動으로 흘러 나아가게 되였고 노아 前과 같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니하고 사탄 뜻 번식에 協助하여 나아가게 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금 사람을 뜻 中에 품으려 하는 자들을 빼앗긴 샘이었다. 그런무로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의 사탄한테 屬하지 안케 하긔 爲한 対策의 要求되는 바이다.
그 대 마침 사람들은 하나님의 미워하는 곳으로 흘러 나아가는 行動분이였다. 그것은 卽 사탄의 즐거하는 行動結果이니 이것을 그낭 두어 둘 수 업는 事実이였다. 그런데 사람들의 言語가 한나의니 全部가 意思가 通하여 한 곳으로 動作하는데 全体的으로 움직기게 되니 하나님에게 있서는 하날 便의 뜻 成事하기 爲하여 도움되는 言語가 못되고 도로혀 바벨塔 삿아 사탄 뜻協助하는 行動에 基因를 가저오니 하나님은 言語을 相隔되게 함은 뜻를 反하여 行動協助物의 言語써 한 方向으로 전 사람이흘러 들어 가갓스니 言語를 混雜케 하여서 그 사탄 뜻 돕는 길을 막고저 함의 人間言語 혼잡식킨 根本意義였다. 그런고로 萬若 뜻 中에서 人間이 이런 塔를 싸아스면 또 뜻 成事로 나아가면 言語은 混雜하게 할理 萬無한 일이다.
그런고로 世上에 뜻 成事時期가 오면은 言語한나의 目的으로 하날적으로 始作하여야 된다. 사람들은 이 뜻을 成事協助하여서 統一된 言語를 가져야 한다. 그런고로 그 始作의 中心存在 卽 再臨主가 오면은 그로부터 하나의 言語와 創造的主管許諾이엿뜬 世界主管世界는 根本的으로 復帰되어야 된다.
사탄 뜻 돕는 바벨은 分岐한은 工作이었스나 하날 対한는 뜻에 塔은 合体하여 한나 되게 하는 바가 되게 하는 工作이다. 하날 뜻 中心하고 復帰된 사람들이 뜻의 塔을 높히 쌓는 것를 보고저 함의 하나님의 뜻이다. 또 우리 理想의 터이다. 이러케도 하나님은 사탄 対하여 빼앗기지 않기 爲하여 言語混雜이야 福된 일이였다.(混雜케 한 것이야 人間에게 福된 일이 아니랴) 이와 갗치 안타갑게 한 사람의 罪를 누가 담당할랴. 이리하여스나 사람은 如前하게 뜻를 멀리하여 (全人類은) 뜻를 세웨서 받들면서 거기에 誠心다하는 者를 보기가 甚히도 듬무렀다. 그래 하나님은 뜻에 품으러든 노와의 子孫들 또 다시 사탄한테 빼왔겨스니 이겄을 다시금 빼앗는 役事를 始作하지 안으면 않되게 되였다. 그러하야 하나님은 사탄이 사랑하는 相対者偶像商하는 데라이 아달 아부라함을 다시금 사탄품으로부터 빼앗사서 自己뜻이 子孫을 빼앗슨겄를 다시 갑는 양으로 卽 反対路線으로 찾아 세우기 하기 爲하여서 아부라함을 択한 것이다.
그 理由은 사탄품에 있다가 빠저 나오는 代表者요 뭇 사람의 本이 될 行動이면서 다시는 사탄한데 돌아가지 안을 것이다. 이미 나와스니 들러갈 수 업는 立場를 取케하기 爲하여 아부라함을 択하여 하나님이 뜻하시려는 딴 地域으로 引導함의 卽 아부라함에 要求한 것의 卽 故鄕山川인 갈대아우루를 떠나라는 根本目的이었다. 그래 아부라함이 하날 命令에 딸으니 하날은 깁붐에 存在인데 사탄은 極 슬품에 存在이였다.
(하나님의 命令을 딸으니 하날 対해서는 기쁨의 存在며 사탄 対해서는 슲음의 存在로서 한 分岐路線을 세울 수 있는 中心存在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에 선)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에 선 아부라함 뒤에는 원수 사탄이 (다시금) 미련를 갖고 딸아들게 되였다. (원리원본 109-1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