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칼)의 필요성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4부 20장)

훈독왕 | 20220224111752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20장

  검(칼)의 필요성

  (Jesus: The Need for a Sword)

 

  비폭력은 수단이며 동시에 목적으로 생각될 수 있다비폭력은 그것이 우리가 오랫동안 갈망해 온 미래 세계를 폭력과 전쟁이 없고굶주림과 가난이 없고불의와 억압이 없으며하나님의 사랑과 치유로 충만한 세상 언급한다는 점에서 목적이다예수는 그 세상을 “하나님의 왕국”이라 불렀다마틴 루터킹 2세는 그 세상을 “사랑받는 세상”월터 윙크는 그것을 “지배가 없는 질서의 세상”이라 불렀다비폭력은 두가지 면에서 수단으로 간주될 수 있다갈등을 다루는 기술로써 그리고 삶을 영위하는 윤리도덕 혹은 철학으로써.

    미국 장로교회“평화와 통찰력 중간보고서, 2012

 

 예수의 비폭력 주장

 

  2012년 미국 장로교 총회는 ‘절대적 개념의 비폭력이 예수 선교의 중심 주제이다’고 주장한 “평화와 통찰력 중간보고서”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비록 비폭력은 신학성경에서 예수나 혹은 다른 사람에 의해 결코 사용되지 않았던 20세기에 사용된 용어였지만. 그 보고서에서 “예수는 로마제국과 유대 교권세력을 위협했던 예언자이며 비폭력적인 삶”을 살았다고 주장한다.① 그 보고서는 그리스도를 악과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하는 측면보다는 어떤 전략의 주창자로 낮게 평가하며, 비폭력 방법으로 악에 대해서 측면에서 저항하며 또한 공격이나 침략을 일시에 반전시키는 접근방식으로 가끔은 고통을 스스로 선택하는 면을 부각시킨다. 그 보고서는 예수의 우화, 하나님의 분노 그리고 악을 파괴하는 결심을 보여주는 다른 신약성경 구절에서 나타나는 과격함의 이미지는 모두 외면하고 있다. 그 보고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예수가 사람에 대한 폭력을 중단했다고 언급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환전상에 대한 예수의 과격한 행위는 변명하고 있다.②    

 

  구약성경에 언급되는 이스라엘에게 명하여 전쟁을 벌이도록 명령했던 구절들은 원시적 정신상태의 산물들이다. 영지주의 방식에서는, 그 보고서는 경전들을 가나안에서의 초기 전쟁에서 부터 ‘고통받는 종’ 모델과 같은 충실함의 보다 심오한 모형으로 나아가는 점진적인 계시로 간주한다. 그 보고서는 초기 기독교인들은 폭력이나 자기 방어 시점에 처했을 때도 그들은 칼을 두들겨 보습(쟁기)으로 만들었다고 서술한다. 또한 그 보고서는 초기 기독교의 기록에는 어디에도 살상 혹은 전쟁에 관한 긍정적인 모습은 전혀 없었다고 언급하고 있다.③

           

  초기 기독교인을 티베트의 불교 승려로 묘사한 것은 현대 학자들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다. 피터 레이타르트(Peter Leithart)는 그의 책 『콘스탄티누스 방어하기』에서 전쟁에 대한 초기 기독교인들의 태도의 복잡성을 탐구한다. 콘스탄티누스보다 오래전의 사건인 사도행전 10장에 언급되는 백부장(100명을 거느린 로마군인) ‘코넬로’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 구절에서는 로마군대에 복무하지만 교회에서 받아들인 기독교인들이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레이타르트는 아래와 같이 결론짓는다. “교회는 전쟁에 기독교인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그런 주장을 결코 하지 않았다. 한편 로마 군대가 기독교인들이 거부했던 종교 예배의식에 동참하기를 요구했다는 사실에 근거하면서 그와 상반되게 행해졌던 사실들은 상황에 따라 달랐다. 콘스탄티누스 이후에는 일단 군복무는 우상숭배에 참가하지 않고 수행할 수 있다면, 많은 기독교인들은 군복무는 기독교 사도로서 적법하다고 생각했다.④

 

예수: 비현실적인 사람

 

  미국 장로교회 입장은 다른 교파들의 평화주의자 언급으로 잘 반영되고 있다.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시의 통합 침례교 목사인 제인 플로렌스(Jane Florence)는 그의 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수에게 많은 군중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가서 말을 걸며 예수의 손을 붙잡자, 제자중의 한사람이 칼을 뽑아 예수를 잡은 사람의 한쪽 귀를 베었다. 그 상황은 나쁜 자에 대항하는 선한 사람들의 대응으로 피를 흘리는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었다. 그 때 예수는 폭력으로 참견하기를 시도하는 제자들을 만류하며 말한다. “검을 집어넣어라. 검을 취한 자는 검으로 망할 것이니라”

  이는 마치 ‘다른 사람의 폭력에 대항함으로써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보복은 해결책이 아니며, 칼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수는 비폭력을 가르쳤다. 심지어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폭력은 적절한 대책이 아니었다. 예수는 평화주의자로 살고 그렇게 죽었다.⑤              

  어느 곳에서도 영지주의의 대성공이 침례교 한 목사가 언급한 이 말에서 보다 더 많이 언급되지는 않는다. 오래 기다린 메시아는 예수에 대한 이런 묘사로 인해 떠나가고 없다. 예수는 말하길,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마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 10:34)”고 했다. 성전에서 그가 밧줄로 만든 채찍으로 환전 상인들을 쫓아내는 의로움의 선생은 떠나가고 없다(요한 2:16).

 

  한편 하나님의 까다로운 아들로서 아래와 같이 강하게 주장하는 예수는 떠나가고 없다. “나에게 와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라.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악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 7:21-23).

 

  또한 무장한 제자들이 자신을 에워싼 상황에서 폭력과 격한 말투로 그 시대의 의로운 지도자들을 저주하는 예수의 모습에서 오래 기다린 다윗의 자손은 떠나가고 없다.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태 23:33). 예수의 이런 말씀으로 추측해 보면, 플로랜스 목사와 그녀의 신도들에게 남은 것은 예수는 복음에서 묘사된 대로 매일 매일 중압감에 시달리며 마술 기교를 행하는 광대 같은 사람이다.

 

철장(쇠 막대기) 

 

  예수는 관리들이 필요하면 힘으로 선량한 일반 대중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것을 위임받았음을 인정했다. 예수는 로마 병사들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고 질문받았을 때, 그는 그들의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그들에게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은 급료를 족할 줄로 알라 하니라(누가 3:14)”고 주의를 준다. 누가 복음에서 예수는 백부장에게 그 직업에 관해서 어떤 비판도 하지 않고 예상치 못한 이런 칭찬을 한다. “예수께서 백부장의 말을 듣고 그를 기이히 여겨 돌아보고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누가 7:9).”

 

  예수는 또한 그가 제자들에게 검을 사라고 격려하면서 치명적인 무기 소유를 변호했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지갑)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함이 내게 이뤄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뤄져 감이니라. 그들이 말하며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하니,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더라(누가 22:36-37).”

 

  로마서 13:3-4 에서 바울은 무력의 사용을 지지하며, 다음과 같이 당시의 법을 지지하며 말했다.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해서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그러면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않았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며 보응하리라.”

             

  비슷하게 베드로전서 2:13-14 에서도 이렇게 전한다. “사람이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그가 최고 권력자인 왕이나 혹은 그가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요한 계시록 2:27 에서는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의 희생제물 역할을 하는 대신에 심판주의 역할로 바뀐다.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다스리다와 통치하다의 영어단어 ‘rule’은 그리스 단어 ‘poimano’를 번역한 것으로, 이 단어는 ”양치기“ 혹은 ”수호자“를 의미한다.⑥ 재림주 강림 시에 예수의 역할은 강력한 힘으로 즉 철장을 가지고 그의 자녀들을 보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이 단지 원초적인 악으로써만 힘 혹은 폭력의 사용을 비난하지 않는 또 다른 하나의 증거이다.  

 

기독교인의 평화주의

 

  “난 왜 평화주의자가 아닌가?”란 자신의 글에서 시 에스 루이스(C. S. Lewis)는 이렇게 질문했다.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생각할까? 우리 주님의 추종자들인 우리가 만일 어떤 살인 미치광이가 제 삼자를 살해하려고 시도하면서 때려눕히려고 한다면, 우리는 옆으로 비켜서서 그가 피해자에게 다가가도록 허용해야 할까?”⑦ 루이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주장했다. “국가적 폭력사용은 또 다른 침략 국가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전쟁을 보다 더 큰 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물질주의적인 윤리관 즉 죽음과 고통은 가장 커다란 악이라고 믿고 있음을 암시한다.” 루이스는 또한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

  범죄자가 사형되지 않고 만족스럽게 항상 처리될 수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어떤 국가 전체가 전쟁 이외에 그 국가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에 의해 흡수되는 것이 커다란 악이라는 것은 거의 동일하게 분명하다. ‘전쟁이 보다 큰 악이라는 신조는 물질주의적인 윤리관 즉 죽음과 고통은 가장 큰 죄악이다’는 믿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하급 종교에 의한 고급종교의 억압이나 혹은 심지어 보다 세속적인 문화에 의한 고등종교의 억압이 훨씬 더 큰 악이라고 생각한다.⑧    

 

  루이스 입장에서는, 하급 종교에 의한 고급종교의 억압이나 혹은 심지어 보다 세속적인 문화에 의한 고등종교의 억압이 훨씬 더 큰 악이다. 그가 이 글을 쓴 시점에, 영국은 나치 독일의 공격으로 인해서 아주 높은 인간 생명에 대한 희생을 치렀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영국을 지배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제거하고 ‘아리안족(게르만족)’이 아닌 다른 종족을 제거하려고 무제한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의도로 탈바꿈한 잔인한 나치 독일의 공격에서 살아남았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기독교 문화를 잠재적으로 박멸하고 지배하는 것을 방어하려고 하는 것은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어떤 객관적인 가치를 찾는 것이었다.

 

정부에 대항하는 방어

 

   고려해야 될 자기 방어의 또 다른 측면은 자신의 정부에 대한 방어이다. 20세기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세속적인 이념으로 바꿀 때 발생하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했다. 1930년대에 집권한 독일 국가사회노동당이 채택한 종족 정체성 이념은 1,300만내지 2,100만 명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공산주의 이념은 1억 5천만 명의 사람들을 살해했다. 지난 세기에, 6배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기에 외국과의 전쟁이나 내전에서 죽은 사람들 보다 더 많이 국가가 주도하는 집단 살상으로 죽었다.  

  원하지 않는 인구를 제거하려 하는 정부의 의도를 언급할 때시민들이 무장을 하고 있으면 그것은 실행되지 않는다곧바로 대량살인 즉 인종학살의 도발에 앞서 일어난 총기몰수나 총기통제의 생생한 사례들이 존재한다.

 

  다음 예들이 그러하다.

 

*터어키 정부는 1915년 시작된 아르메니안 대량 학살에 앞서 총기   통제를 강화했다.

 

*독일은 총기판매를 1938년 금지했다. 1939년부터 1945년 까지⑪

  전체 1,300만 명의 비무장이거나 무장 해제된 유대인과 다른 인종들은 수용소로 보내져 학살되었다.

 

*소련 연합은 1929년에 총기통제를 실행하여항상 중무장을 하고 있었던 어떤 소련인 집단으로부터 무기를 압수했다. 1929년부터 1953년까지, 2,000만 명의 반체제 인사들은 자기방어 수단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집단으로 내몰려 학살되었다.

 

*중국의 총기제한 프로그램은 1938년 중화민국 공화국에 의해 시작됐다. 1948년부터 1959년까지, 2,000만 명의 자기방어 수단이 전혀 없는 반체제 인사들은 공산정권에 의해 대량 학살됐다추가로 5,300만 명이 대량 굶주림 상태를 야기시킨 정부정책에 의해 사망했다.

 

*캄보디아는 총기제한 법안을 1956년에 실시했다. 1975년부터 1977년까지서양의 가치나 문화를 접하거나 교육을 받아 “오염 되었다”라고 간주된 10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살해되었다.

 

*과테말라는 10만명의 마야계 인디언들을 살해하기 앞서 총기제한 규정을 1964년에 실시했다.

 

우간다는 총기제한 프로그램을 1970년에 제정했는데이 시점은 8년간의 공포 정권이 수천 명의 기독교인을 죽이기 직전이었다.

 

  그런 공포는 후기 기독교 이념과 정치적 운동에 깊이 뿌리내려져그것은 다른 종족종교 혹은 계층 구성원들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몰아갔다.  위와 같이 나치와 공산주의자들은 악마로 단정한 사람들을 제거하는 적절한 대리자로 국가를 이용했다불행하게도주류 언론들은 정부 주도하의 대량 살상과 연결되어 있었다이미 국가의 이념과 대의명분에 동조한 언론인들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그들의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냈다.

 

 2018년의 한 언론 기사는 대중 언론에서 거의 주목받지 않는 가운데 이렇게 경고한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더욱 악화된 박해를 받고 있다. 「박해받고 잊혀진」이란 이 기사에서 여러 나라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폭력행위가 계속되면그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그 기사는 신도들이 강압적인 굶주림 사태낙태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북한을 포함하여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잔혹 행위를 특집으로 보도했다불꽃 위의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신자들증기 롤러 기계 아래서 압사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들을 보도했다.

 

그 기사는 또 추가한다.

 

  기독교인들은 다른 신앙인들보다 더 많이 박해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점차로 많은 교인들이 최악의 박해를 경험하고 있다이슬람 극단주의 수중에 있는 중동지역에서의 박해뿐만 아니라그 기사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제휴한 보코 하람(나이지리아 테러집단)은 나이지리아에서 거의 200만 명을 강제 추방시킨 학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널리 퍼진 학대의 본질은 서구사회가 긴밀한 무역이나 전략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정권과 관계하고 있는 증거이다그것은 우리정부가 소수 집단 특히 기독교인을 지지하기 위해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마땅히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기독교인들은 전략적인 편의주의와 경제적 이익의 제단 위에서 더 이상 희생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 이외는 어떤 왕도 인정하지 않는다

   

  정치적 맥락에서실제 혹은 가능한 전제 폭정에 대비한 기독교 신앙의 의미는 미국 독립전쟁 기간 중에 수정처럼 선명 해졌다독립전쟁에 참가했던 시민군들은 영국 정부가 임명한 총독에게 이렇게 말했다“당신이 만일 미국인에게 ‘누가 당신의 주인이요?’라고 물으면그는 ‘예수님 이외는 어떤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⑮ 그와 똑같이영국 시장 피트케인(Pitcairn)이 다수의 모여든 민병대에게 “해산하시오주민 여러분영국 조지 왕의 이름으로 명하니무기를 내려놓으시오.”라고 소리쳤을 때조나단 클라크(Jonathan Clark) 목사는 “우리는 하나님 이외는 어떤 주권도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님 이외는 어떤 왕도 인정하지 않습니다.”라고 응답했다.    

 

  미국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천천히 분노하고 온화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성경 구절들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성경상의 가르침을 위반하거나 혹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억압하려고 하는 정부행동에 직면하게 되면다수의 미국인은 무기를 드는 것이 그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았다미국 독립전쟁 당시에 존 피터 물렌버거(John Peter Muhlenberg) 목사는 버지니아주 우드스톡의 교인들에게 한 설교 끝에 자신의 군대 제복을 드러내기 위해 그의 목사 겉옷을 내던지며 이렇게 선언했다“기도해야 할 때가 있고 싸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그 때가 지금 왔습니다.” 물렌버거 목사는 포지 골짜기(펜실베니아주 동남부 마을로 워싱턴 군대의 겨울 병영지뿐만아니라 찰스톤과 브랜디와인스토니 포인트와 요크타운의 전투에 참가했다.

 

  1775년 렉싱턴 그린과 콩코드에서의 민병대 승리 후에 영국 정부는 식민지 지역 내의 무기를 압수하고 없애는 조치를 취함으로 보복을 했다영국정부는 버지니아주 윌리암스버거에서 민간인 총기의 탄창에서 20 배럴의 화약을 압수하고총기에서 발사 장치를 제거하여 사격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했다.⑱ 1777년까지 식민지 개척자들은 거의 패배할 것으로 보였다식민지 부총독 윌리암 크녹스(William Knox)는 ‘어떤 추가적인 반란을 막으려 애쓰면서 모든 시민들의 무기는 압수되어야 하며 미국 내에서 무기 제조는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명령했다.  

 

 무장해제는 시민을 노예로 만듦

 

  무장해제는 종종 사람들을 복종케 하는 중요한 단계로 여겨지고 있다.⑳ 제시된 미국 헌법에 관한 토론과정에서 이 안건이 권리장전에 무기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해야 한다는 중요한 이유로 부각되었다조지 메이슨(George Mason)은 영국 의회가 제시한 조언을 언급하면서펜실베니아주 총독 윌리암 키스(William Keith)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것은 그들을 노예로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비슷하게노아 웹스터(Noah Webster)는 1787년 이렇게 썼다. "상비군이 지배하기 전에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되어진 것처럼 사람들은 무장해제 당하게 된다미국에서 최고 권력은 무력으로 부당한 법을 강화할 수 없는데왜냐하면 전체 국민들이 무장하고 있고 정규군 집단보다 더 우수한 민병대를 조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사추세츠주의 엘브릿지 게리(Elbridge Gerry) 하원의원은 1789년 8월 17일 의사당 앞에서 말했다“친애하는 시민 여러분무엇이 민병대의 용도입니까그것은 자유를 가로막는 장애물인 상비군의 설립을 막는 것입니다여러 정부들이 국민들의 권리와 자유를 침범하려고 할 때는언제든지 그들은 민병대를 파괴하려고 시도하고 그 폐허 위에 군대를 세우려고 합니다.㉓ 게리 의원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1792년 민병대 법은 총기 소유와 민병대 회원이 되는 것은 자발적인 선택이기 보다는 합법적인 의무가 되게 했다.㉔   

 

  미국 수정헌법 2조는 여가 사냥이나 사격 시합에 종사할 수 있는 미국인들의 권리를 보존하기 위해서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그것은 그들의 능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미래의 잠재적인 폭정 정부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 보존하기 위해서 의도되었다믿음이 충실한 기독교인들로서는자기 방어를 위한 무기를 소지하는 권리는 단지 미국헌법의 권리장전에서 밝히는 하나의 수정 조항이 아니라그것은 모든 인류에 대한 근본적이며 하나님이 주신 권리이다.

 

프랭크 블라이히만(Frank Blaichman)의 교훈

 

  2018년 12월 27뉴욕 브루클린에서 96세 노인 블라이히만이 죽었다길거리에서 이 노인을 스쳐 지나간 이웃 중에서나치가 유대인들을 사냥하고 박멸하려 할 때 그가 폴란드 유격대의 지도자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그 당시에 다수의 경건한 유대인들은 그들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무기를 드는 것은 불경스럽다고 생각했으나 프랭크 블라이히만은 그렇지 않았다그는 20대 초반에 나치 점령군과 협력자들에게 대한 습격을 조직했으며그는 그와 다른 유격대원들이 어떤 농장에서 2,000여명의 나치 병사들을 포로로 잡았던 그 때를 가장 자랑스러워했다『이코노미스트』 책에서 공개된 그의 사망 기사는 이렇게 언급했다.

 

  “그러나 숨는 것은 그의 본성이 아니었다독일인이 폴란드 카미온카의 유대인들을 일제히 검거했을 때그는 그들과 강제 추방되는 것을 거부했다그는 이미 유대인에 대한 여행 제한을 비웃고물건을 거래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도시들을 다녔으며 그의 하얀색 다윗의 별 완장(유대인 식별체)을 집에 남겨두었다그런 와중에서 그의 분노는 높아갔다배수로를 파면서도그가 하시딤(유대교의 한 교파)소총 개머리판을 보았을 때 혹은 모이쉬 아저씨가 그의 집에 신선한 육류 고기를 보관했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총살당했음을 들었을 때그는 싸우고 싶었다그의 이웃들 대부분은 그런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으나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도망갔다그러나 그는 무엇으로 싸울 수 있었을까그해 가을에 그의 동료들은 비참한 숲속 수용소에서 살해당했다그들을 매장하고 카디쉬(유대인의 기도문)를 낭송하면서 사라지는 것은 충분하지 않았다유대인은 자신들을 방어해야만 했으며 죽은 자들에 대해서 복수해야만 했다심지어 소총으로 위장하는 것도-밖으로 날이 빠져나온 낡은 농장 쇠스랑을 어깨 끈 위에 맨 모습-그를 더욱 더 강하게 했다적절한 총기가 있다면그들은 어떤 저항군을 만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