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왕국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4부 19장)

훈독왕 | 20220223052632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 19장  

   예수의 왕국

  (Jesus: The KIngdom)

 

  여기서 상당한 관심이 의문에 싸여 있는 야고보(영어명 제임스)의 신분을 둘러싸고 존재한다. 야고보는 명백하게 교리 문제와 전통적인 유대인 방식 고수를 주장하고 심지어 베드로를 능가하는 정도까지 권위를 가진 사람인데, 거론하기에 아주 놀라운 것은 야고보가 다름 아닌 예수의 형제였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요세푸스 (유대인 역사가, 장군)에 의해 증명되었으며, 그는 62년에 사두개인 고위 성직자의 수중에서 일어난 야고보의 부당한 처형을 몹시 슬프게 묘사하고, 명백하게 야고보를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로 언급했다.

   이런 사실이 요세푸스의 우연한 실수가 결코 아니라는 것은 예루살렘 여행을 언급했던 바울에 의해 확실해진다. “나는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를 보았다(갈라디아스 1:20)” 그것은 또한 헤게시푸스와 유세비우스의 글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같은 정보가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에 관해 이야기하는 마가복음(물론 예수의 동정녀 탄생의 설명은 없지만)의 다음 구절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 사람은 목수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와 요셉, 유다 그리고 시몬의 형제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 또한 우리와 같이 있지 않았느냐? (마가복음 6:3)”

         이언 윌슨(Ian Wilson) 『예수: 증거물』, 1996

 

  갈라디아서에서는, 바울은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어떤 사람들이 야고보 쪽에서 와서 그에게 정결치 못한 무리들과 떨어져 있으라고 지시할 때까지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먹고 마시는 것을 묘사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 의문에 싸여 있는 야고보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지만, 야고보는 대단한 권위를 행사하여, 초대 교황이며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설립자로 존경받는 베드로가 별다른 항의없이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게다가 야고보의 말은 바울의 전도 동행자인 바나바가 바울을 버리고 이방인들 사이에서 그의 전도 활동을 포기할 정도였다.①

  사도행전에서는 야고보는 집필자의 어떤 소개나 언급없이 그냥 튀어나온다. 이런 사실은 사도행전의 저자가 모든 초기 기독교인들은 야고보의 신분을 알고 있음을 가정하며 그가 수장으로 초기 교회를 지배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누구인가?

  이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이며 열두 제자 중의 한사람인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의 동생으로 알려진 사람을 가리킨다. (얼마 전까지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널리 알려져 왔다. 그는 예수님의 대표적인 세 제자(베드로, 요한, 야고보)중의 한 사람이며 최초로 순교를 당했다.) 마가복음에서 마가는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가 교회당에서 말씀하신 이후 다음과 같이 그의 신분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고 쓰고 있다. “이 사람은 목수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와 요셉, 유다 그리고 시몬의 형제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 또한 우리와 같이 있지 않았느냐?  (마가복음 6:3)”②

 

   이 야고보의 신분은 2002년 고대 중동의 매장지에서 한 상자가 발견된 이후 널리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그 상자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야고보, 요셉의 아들, 예수의 동생” 이 발견은 세계적으로 신문 표지 제목으로 선정되고 신학계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문제는 결정되어야 할 사안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그 유물은 예수의 실존에 관한 돌에 문자로 새겨진 최초의 고고학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그것은 예수는 형제가 있었으며 그리고 마리아는 ‘영원한 성녀’가 아니었다는 숨길 수 없는 증거가 된다.③

 

  그럼 이 야고보는 누구인가? 그 답은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 문서에 남아있다.

 

부활의 모습

 

  고린도인에게 보낸 첫 편지에서, 바울은 예수가 야고보에게 부활된 모습으로 보였다고 전한다 (고린도전서 15:8). 이런 모습은 사대 복음서 중의 하나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예르니모(제롬) 성인이 인용한 작자 미상의 히브리 복음서에는 아리송한 구절이 써져 있다.

 

   그러나 주님이 높은 성직자 종에게 수의를 제공했을 때 주님은 야고보에게 가서 그에게 나타났다. 왜냐하면 야고보는 주님의 잔을 마신 그 시간부터 그가 예수님이 죽은 자들에게서 일어나는 것을 볼 때까지 그는 빵을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탁자와 빵을 가져오너라.” 그리고 예수님은 빵을 가져가서 그것을 축도하고 쪼개서 의로운 자인 야고보에게 주며 그에게 말한다. “나의 동생아, 너의 빵을 먹어라. 왜냐하면 인자가 죽은 자들에게서 일어났느니라.”④

 

야고보의 신분

 

  사도행전에서 야고보는 두 사도의 증언을 듣자마자,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복음을 공유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선지자 아모스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런 결정을 내린다.

   

  그러므로 내 의견은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동물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사도행전(15:19-21)

 

  사도행전 21:17-26 여러 구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야고보의 역할을 언급하고 있다. ‘바울이 자신이 기독교 공동체를 위해 모금한 돈을 전달하려고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야고보에게 보고해야 했다. 왜냐하면 야고보는 바울이 자신이 유대인다운 믿음을 증명해야 하고 토라와 상반되게 가르친다는 소문을 없애기 위해서 격식에 따라 성전에서 자신을 청결케 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연이어 바울도 자기처럼 나사렛 사람(예수 추종자)의 맹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와 야고보

 

  나사렛 사람(예수 추종자)의 맹세를 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맹세 기간 동안에 기꺼이 그들 생활의 일부를 희생시켜야 했다. 그들은 완전히 술 혹은 발효된 음료를 멀리해야만 했으며 또한 건포도를 포함하여 포도나 그것으로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머리를 자르거나 수염을 손질할 수도 없었다.⑤ 나사렛 사람은 심지어 가까운 가족일지라도 시체 옆으로 가는 것이 금지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불결하게 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⑥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숭배와 뜻에 따라 완전히 자신들을 성별해야 했다.    

 

  야고보가 그의 사촌 세례 요한처럼 나사렛 예수에게 맹세했다는 사실은 야고보가 그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금욕주의자로 생활했다는 가능성을 분명히 제시한다. 즉 모든 세상적인 즐거움과 좋은 옷을 피하고 기도와 금식으로 엄격한 식생활을 유지하며 그리고 머리와 수염을 손질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신약성경 학자 제프리 부츠((Jeffrey Butz)는 “야고보는 누구보다도 주님의 마음을 보다 잘 알았다. 만일 그가 그랬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가장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추정의 일부와 예수에 대한 믿음과 그의 말씀을 다시 평가하려 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⑦

 

  비슷하게, 배리 윌슨(Barrie Wilson)이란 1세기 초기의 기독교 연구 전문가도 이런 말을 덧붙인다. “야고보처럼 예수도 그러하다. 20대에 예수가 실제로 가르쳤던 것에 대한 최고의 반증은 야고보라는 그의 동생일 것 같다. 야고보는 예수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았다. 그는 예수가 토라를 가르치고 실천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했던 것처럼, 야고보의 존재는 역사적인 예수의 믿음과 실천과 관련하여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실마리이다.”⑧  

  

 의로운 사람: 야고보

 

  야고보의 금욕생활에 관해서 초기 기독교의 옹호자인 헤게시푸스(Hegesippus: 110-180)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고결했다 그는 술이나 강한 음료도 전혀 마시지 않았으며 고기도 먹지 않았다. 그는 전혀 머리도 깍지 않았으며 기름도 바르지 않았으며 욕실도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 성스러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용됐는데, 그가 양모가 아닌 린넨천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 습관적으로 자주 성전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백성에 대해 용서를 간청하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그의 무릎은 낙타의 무릎처럼 굳어지게 되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경배에서 무릎을 구부리고 백성들의 용서를 빌었다.

 

  그의 탁월하고 위대한 정의감으로 인해서 그는 정의로운 사람, 그리스어로는 선지자들이 그에 관해서 선언한 것과 일치하는 ‘백성들의 보호자’ 그리고 ‘정의’를 의미하는 오블리아스로 불려졌다. 그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 존재했던 일곱 종파의 일부 회고록에서 내가 ‘예수의 신분은 무엇이냐?’라고 그에게 질문하니 그는 ‘예수는 구세주였다’고 대답했다. 이런 말로 인해서, 일부 사람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일부 사람들은 부활이나 혹은 그들의 행동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주기위해 그리스도가 왔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야고보 때문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⑨

 

  초기 기독교 시대로 되어있는 클레멘스 기록물에는 베드로가 야고보에게 전하는 하나의 편지를 수록하고 있는데, 그 기록에서 베드로는 예수 동생을 ‘주님으로 그리고 예루살렘과 히브리인의 신성한 공회당과 하나님의 섭리로 도처에 건립된 교회를 지도하는 목자중의 목자’로 언급하고 있다. 이 표현은 연장자와 중간 지도자들 그리고 나머지 형제들과 항상 화평을 이루기를 바라고 있다.⑩

 

  야고보를 초기 기독교의 유일한 지도자로 간주하는 귀한 자료는 『토마스 복음』에서 더욱 잘 언급된다. 사도들이 예수에게 “우리는 당신이 우리에게서 떠나갈 것을 압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의 지도자가 됩니까?”라고 물으니 예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어디에 있든, 의인 야고보에게 가야할 것이니라. 그가 존재함으로 하늘과 땅이 생겨나게 되었음이니라 ”⑪        

 

요셉푸스와 야고보

 

  의미심장한 점은 예수와 세례요한을 제외하고서, 야고보는 요셉푸스(Josephus: 27-100)가 『유대인 유물』이란 중요한 책에서 언급한 신약성경의 유일한 인물이다. 요셉푸스에 따르면, 야고보는 1세기 예루살렘에서 그 자신의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정통 유대인 집단에서도 아주 비중 있는 인물이었다. 요셉푸스가 언급하길, “야고보는 보통 사람들로부터 대단한 찬사를 얻었던 시민들 중에서 가장 공정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요셉푸스는 계속해서 “그런 대중적인 지지는 고위 성직자인 아나니아스의 신분을 위협하여, 아나니아스는 야고보가 모세의 율법을 어겨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고 고소하여 야고보를 유대 법정에 세우려고 했다”고 언급했다. 또한 요셉푸스는 이렇게 썼다. 예루살렘에서 야고보를 의로운 사람으로 여겨왔던 유대인들은 가장 독실한 시민 중의 한 사람에 대해서 내린 조치가 명백한 불공정이며 효력이 없는 집행 명령이라 간주하여 그 고소에 대해 아주 분개했다. 이 고대 역사가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아그리파 왕에게 간청을 하자, 그는 아나니아스를 교단의 고위 성직자 자리에서 신속하게 제거했다고 한다.⑫

 

  그 이야기는 계속해서 아나니아스가 단지 몇 개월만 그 직위를 유지했으며, 그는 과거 60년 동안 성직자 직분을 지배했던 아주 영향력있는 가문 출신이었다고 전한다. 이런 사실은 야고보가 강력한 지지자들을 거느린 중요하고 존경받는 인물이었음을 시사한다.⑬ 존 도미닉 크로싼(John Dominic Crossan)을 포함하여, 일부 학자들은 심지어 야고보가 예수의 승천 이전에 예루살렘에 거주했을 수도 있으며 존경받는 바리새인 지도자였을 수도 있다고 추정하는데, 그 때 그의 형(예수)이 다가올 왕국의 소식을 선포하고 있었다.⑭      

 

  야고보의 순교

 

  헤게시푸스에 의하면, 아나니우스는 조용히 성직자다운 은퇴의 좋은 길을 가지않았다. 야고보에 대한 그의 분노는 더욱 격렬하게 되어 살기를 띠게되었다. 야고보가 안식일 시작 시간에 사원 난간에 나타나서, "인자가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다"고 선포했을 때, 아나니우스와 그의 심복들이 야고보를 밀어 바닥으로 떨어지게 했다. 야고보가 갑자기 떨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고서, 그들은 야고보를 돌로 쳐서 곤봉으로 때려 죽였다. 헤게시푸스는 야고보가 죽어가면서도, 그를 처행한 자들에 대해서 신의 자비를 구했다고 말했다. “하나님 아버지! 간청하옵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왜냐하면 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모릅니다.”⑮ 이 싸움에서 그의 마지막 외침은 그의 형(예수)의 말씀으로 메아리되어 울렸다.  

 

  기독교식 왕조 통치

 

  초기 교회에서 야고보의 군주적인 권위는 20세기 초기의 신학자 아돌프 하르나크 (Adolph Harnack)가 주장한 예수 사후 그의 제자들은 다윗의 혈통을 이어가는 왕조를 세우려고 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⑯ 야고보는 이스라엘의 12부족을 대표하는 12제자의 지지를 받았다.⑰ 야고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예루살렘은 기독교 운동의 중심지로 존재했으며 야고보가 관장하는 공의회는 효모 역할을 하고 말세가 다가오기 전에 남은 짧은 시간 안에 유대 백성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⑱

 

  사도행전(5:12-16)의 여러 구절에 의하면 예루살렘 유대인 사이에서 야고보의 활동은 풍족한 결실을 맺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오랫동안 고대한 메시아라는 좋은 소식을 받아들였는데, 한편 이것은 초기 기독교 운동 반대자들 사이에서 큰 소동을 일으켰다. 신약성경은 바울의 전도 활동에 관해서 많이 언급하고 있는 반면에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노력과 야고보의 지도에 관해서는 충분한 조명을 하지 않고 있다.⑲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활발한 전도 활동으로 인해서 나중에 스테판과 주님의 동생 야고보는 순교하게 되었다.    

 

야고보의 유대주의

 

  비록 야고보서가 신약성경 끝부분에 들어가게 되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그 서신들이 정통성 표적이 되며 야고보가 직접 썼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영국 학자 존 에이 티 로빈슨(John A. T. Robinson)은 다음과 같이 썼다.

  “그 서신은 발전한 교회의 어떤 모습이나 혹은 교회 지시사항 혹은 바울 서신들처럼 이방인들이 교회의 온전한 교인이 될 수 있다는 조건들에 관한 논쟁 등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있다. 그 서간문은 아마 47년경에 써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 편지는 그 당시에 존재하게 된 최초로 완성된 기독교인 기록일 것 같다.”⑳

 

  구약성경과 모세 율법에 대한 야고보의 기여는 그의 서신 다음 야고보서 2:14-24에서 명백하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다지만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군가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따스하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몸을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 것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와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믿으셨다는 말씀이 이뤄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야고보서2:14-24)

 

  바울 서신과는 달리 야고보 서신은 예수의 가르침을 반영하며 산상설교를 포함하고 있다. 위에 인용된 이 구절은 예수가 말한 마태복음 7:15-20과 아주 비슷하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늑대이니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혹은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15-20)

 

예수 같이 야고보도 그렇게

 

  야고보서는 토라의 계명들을 순종하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야고보서 2:8-13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 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리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위의 기록은 다음의 마태복음 5:17-20의 산상설교의 말씀과 일치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함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 17-20)

 

또한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으로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서1:27)

 

위의 구절은 예수의 다음 말씀을 반영하고 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이미 상을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1-4).

 

친족 유사점

 

  예수와 야고보 즉 두 형제의 가르침은 비슷하게 계속된다. 야고보서 1:1-4에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종류의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뻐게 여기라. 왜냐하면 너희 믿음을 시험하는 것은 인내심을 유발하며 그 인내심은 온전히 역할을 할 것이며, 그러면 너희는 성숙하고 온전하게 되며 어떤 것도 부족함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라."

 

  이런 가르침은 예수가 언급한 산상설교 마태복음 5:11-12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나로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이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야고보는 야고보서 4:13-17에서 인내심을 이렇게 기록했다.

 

  "와서 들어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러니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라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그는 이어서 야고보서 5:7-8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고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리니라.”  

 

 야고보의 이런 가르침과 예수의 산상설교의 다음 가르침은 아주 유사하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가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에 대해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 가를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노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늘,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었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25-34).

 

야고보와 바울

 

  야고보의 편지로 명백하게 보여졌듯이, 그는 바울에 비해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근본적으로 다르게 해석했다.45) 바울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 역사에 있어 단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신념을 주장했다. 많은 학자들은 그들의 믿음과 율법에 관한 견해상의 명백한 모순들을 간과함으로써 두 사도를 화해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한편 어떤 학자들은 그런 노력이 허사임을 깨닫고 신학적인 응집력을 위해서 주님 동생인 야고보의 편지를 무시하고 있다고 한다.

 

  바울의 ‘믿음에 의한 교리’에는 어떤 내재적인 위험이 존재하므로 그것은 일반적으로 도덕성에 대한 무시 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바울은 직접 자기 생전에 그런 사건들을 다뤘어야 했으며, 기독교 사회는 항상 도덕성을 강화하고 격려하려고 애쓰면서 투쟁해야 한다. 그래도 그들은 사람이 믿음만으로 구원되고 선한 행위는 낡아 헤진 누더기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며 또한 그렇게 설교했다. 이런 이유로 야고보 서신은 극단적인 바울주의에 대처하며 견제와 균형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㉑

 

  크게는 야고보와 바울의 신학적인 틈새 때문에, 다수의 신약 성경 학자들은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의 신앙은 규범적인 기독교와 상당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예수 형제와 실종된 기독교 가르침』 책에서 제프리 뷰츠(Jeffrey Butz)는 이렇게 썼다.

  “모든 것은 다음 결론을 가리킨다. 즉 소위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나중에는 기독교인으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㉒

 

  키스 에이커스(Keith Akers)는 그의 책 『실종된 예수의 종교』에서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예수의 유대인다움을 추구하는 책들은 현재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어느 누구도 유대인의 기독교 문제를 직면하길 원치 않는다. 이런 주저하는 이유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즉 유대인의 기독교에 대한 관점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의 견해가 아니다. 물론 그 신학은 수용될 수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 신학은 본질적으로는 유대인의 유일신교의 형태이기 때문이다.”㉓

 

예수의 사촌

 

  초기 교회 지도자로 그리고 야고보의 후계자로서, 예루살렘 공의회는 시므온을 선출했는데 그의 아버지 클레오파스는 야고보와 예수의 사촌이었다. 헤게시푸스는 이렇게 썼다. “의인 야고보가-똑 같은 이유로 예수가 그랬듯이-순교한 후에 주님의 삼촌인 클레오파스를 대를 이은 그의 아들 시므온이 다시 대사제로 임명되었는데, 그의 선출은 주님의 친척으로서 모든 교인들로부터 홍보되고 받아들여졌다. ㉔

 

  제 1차 유대•로마 전쟁(66-70) 시기에 신학자이며 역사학자 유세비우스(Eusebius: 263-339)에 의하면, 시므온의 지도를 받은 야고보 추종자들은 요르단 펠라에 재정착했다. ㉕ 그들은 히브리 안식일, 할례의식과 유대 경축일을 계속 지켜갔다. 그들은 공회당에서 거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설교했다. 그 형식과 예배, 히브리 경배 의복은 야고보와 시므온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 덕분으로, 구체화되어 기독교 신앙이 되었다. 부활절 희생양은 속제물로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었으며, 예수의 인간을 위한 대속 죽음은 기독교 제단에 바쳐졌다. 그리스 로마제국 전역에 있는 기독교 신자들을 지도하는 연장자인 성직 사제 임명으로 인해서, 그것은 흩어져 있는 시나고규(공회당)를 지도하는 유대인 방식을 따라 그 틀이 형성되었다.㉖

 

연결 고리의 단절

 

  트라야누스(Trajan: 93-110)황제 통치 동안에,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시므온과 모든 혈족과 친척들은 한 곳에 모여져 죽임을 당했다.㉗ 순교자들은 예수의 또 다른 동생인 유다의 손자들을 포함했다.㉘ 교회가 예수의 혈통을 따라 존속되길 추구했던 일시적인 왕국은 종말을 고했다. 트라야누스는 그의 재임기간 후반기에 여전히 다윗 왕국이 다시 한번 팔레스타인 사막에서 출현할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헤게시푸스는 이렇게 썼다. “그 기간 중에, 교회는 처녀와 같이 순수하고 부패하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그런 현상은 구원의 가르침에 대한 건전한 지배에 관여한 경험이 있었던 어떤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보이지 않는 어떤 곳에 여전히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령한 사도들 무리가 다양하게 그들의 생을 마감하고, 그들 자신의 귀로 하나님이 제공한 지혜를 듣게 되었던 사람들 세대가 모두 죽었을 때, 바로 이어서 하나님이 떠난 연합체가 거짓 목자들의 배신으로 급속히 부상하게 되었다. 또한 이 거짓 목자들은 더 이상 사도들 중의 어느 한사람도 생존하지 않음을 알고서는 마침내 그들은 희망으로만 가득 찬 머리로 소위 거짓으로 지식을 설교함으로써 진실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시도를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율법

 

  중세 시대에 야고보 서신은 기독교인들로부터 숭상되었으며 기독교 교리와 모세 율법을 분리하는 어떤 시도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의 다음 구절에서 분명하다.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되면 될수록 그의 신분은 더욱 더 좋아진다.: 그런 이유로, 유대인들이 하나님 숭배에 많이 몰두하면 할수록, 그들의 우수성은 다른 민족에 비해 더욱 더 크게된다. 그래서 신명기(4:8)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같은 방식으로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성직자 신분은 평신도 신분보다 더 좋고, 종교적 신분은 세상에 사는 평민들 보다 더 좋다.

 

  이방인들은 단순한 자연법 보다 율법을 지키면서 더욱 더 완전하고 안전하게 구원을 얻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기독교 신자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이제는 평신도도 성직자의 직위에 접근하도록 인정받았으며, 비록 그들이 이것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지만 세속적인 사람들도 종교적인 신분의 존재로 인정된다.

         

지푸라기(가치없는) 야고보 서신

 

  이런 상황은 신교로 인해 변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는 그의 가르침을 옹호하면서, 선한 행위의 효과를 부정하는 것에 대한 주된 장애물이 야고보 서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루터는 야고보 서신을 그가 지니고 있는 모든 성경에서 찢어냈다.

  루터는 이렇게 썼다. “간단히 말하면, 요한복음과 그의 첫 서신 그리고 바울 서신들 특히 로마서, 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 그리고 베드로의 첫 서신은 너희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준 책들이며 또한 그 책들은 비록 너희가 어떤 다른 책이나 교리를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을지라도 아는 것이 필요하고 구원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들이다. 그렇지만 야고보 서신은 다른 서신들에 비하면 실제로 가치 없는 서신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복음의 본질과는 전혀 관계없기 때문이다.”㉚ 

 

  루터의 야고보 서신에 대한 반응은 그의 치명적인 반셈족주의와 결합되어 있다.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대한 그의 비판 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런 거부되고 비난받는 사람들 유대인과 무엇을 하겠는가? 그들이 우리 가운데 살고 있으므로 우리는 감히 그들의 행위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거짓말, 악담 그리고 신성모독 발언 등을 알고 있다. 나는 여러분에게 진정한 충고를 하려한다.

 

  첫째, 그들의 공회당이나 학교를 불태워 묻고 타지 않는 것은 흙으로 덮으세요. 그래서 누구도 다시는 그것들의 돌이나 재를 보지 않을 것이다. 이 행위는 하나님이 우리가 기독교인라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 주님과 기독교국가의 명예를 위해 행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공적인 거짓말과 저주, 예수님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신성모독 발언을 용서하거나 관대해서는 안된다.

  둘째, 그들의 집들은 완전히 파괴되고 허물어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공회당에서 하듯이 그들 집에서 같은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들은 집시처럼 지붕 아래나 헛간에서 거주해야 될 수도 있다.

  셋째, 우상숭배, 거짓말, 저주와 신성모독을 가르치는 내용을 담은 그들의 기도책과 탈무드 서적들은 그들에게서 압수돼야 한다.

 

  유대인에 대한 루터의 혐오는 그가 구약의 숨은 신(the hidden God)과 예수의 드러난 신(the revealed God) 사이에서 구별되게 했다.㉜ 이런 식으로 그는 마르키온과의 연결을 실행했으며 세번째 제국의 출현뿐만 아니라 현대 기독교인들에 의해 널리 행해지고 파급된 영지주의의 수용을 촉발시켰다.

 

  주사위는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