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부활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4부 18장)

훈독왕 | 20220223044540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18

   예수의 부활

   (Jesus: The Resurrection)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어라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그가 하나님이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그를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있을 수 없었음이라. (사도행전 2:22-24)

 

  열두 제자들의 선언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 사원과 그것을 둘러싼 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① 이들은 열두제자(유다를 제외한 맛디아 포함), 예루살렘까지 그의 운명적인 여행에서 예수를 동행했던 갈릴리 사람들, 예수로부터 자신도 모르는 병을  치료받은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 그리고 초기 교회 지도자가 된 야고보를 포함한 예수의 형제들(사도행전 1;14)이다. 주로 그들은 솔로몬의 포르티코로 알려진 동쪽 벽에서 모였는데, 그 곳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기도하면서 듣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좋은 소식’을 전했다.②

  

  사도행전으로 확고하게 구체화된 “좋은 소식”은 최초의 신자 집단의 다음 선언들을 대표한다. 즉 예수는 유대인의 지상왕국을 복구할 오랫동안 고대한 메시아였다. 그는 다윗의 후손으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고통받는 종”으로 가장하여 유대민족에게 다가왔다. 예수는 경건한 유대인으로 갈릴리에서 성장했다. 그는 할레와 바르미츠바(13세 성인식)를 받고 성전에서 예배 드리고 목자가 되었다. 세례 요한처럼 회개와 물로써 영적인 중생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율법의 모든 구절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긍정했으며 아브라함, 모세, 다윗 그리고 선지자들의 종교를 지지했다. 그리스 문화를 추구했던 자들을 꾸중했다. 그는 우화를 통해 가르쳤으며 그의 메시지는 다가올 천국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그는 당시의 사회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즉 가난한 자, 과부, 병든 자와,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표시했다. 그는 율법 정신을 훼손한 것에 대해서 독설조로 지배계층을 비난했다. 그는 기적을 행하고 귀신을 내쫓았다.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자로서, 예수는 천사와 성령의 존재, 죽은 자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을 믿었다. 그는 상당한 추종자들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했는데, 그 곳에서 그는 폭력을 사용하여 성전에서 환전상들을 내쫓았다. 그는 체포되어 범죄자로 비난받고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처형됐다.

  죽은 지 3일 후에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 그의 제자들에게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하늘로 올라갔으며 그 곳에서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았다. 그는 영광 중에 사악한 자들을 심판하고 새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해 다시 올 것이다.③ 재림은 곧 있을 것이다. 그날은 내일, 오늘 아니 바로 이 시간에 일어날 수도 있다. 그것이 초기 기독교인들이 성전에서 여러 날을 머물며, 그 곳에서 주님은 크고 두려운 날에 강림하시기로 되어있다고 믿었다.④  그러나 그는 오지 않았다.  

 

전도가 시작되다.

 

  그리고 몇 주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에 제자들은 복음 즉 ‘좋은 소식’을 그들 동족 유대인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전도는 야고보의 지도 아래 있는 예루살렘 교회 공의회가 제공하는 지시와 협조를 필요했다. 야고보는 예수의 동생으로 적절한 지도자였는데, 왜냐하면 초기 기독교인들은 유대교 안에서 예수의 혈통을 이어받은 칼리프(지도자)를 세우는 것을 다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⑤ 종말이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말씀과 행위를 양피지 위에 기록할 시간이 없었다. 단지 필요한 것은 말씀을 남은 시간 안에 가능한 멀리 선포하는 것이었다.⑥

 

다양한 복음서들

 

  마침내 예수의 말씀과 행위들은 마태, 마가, 누가와 요한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 의해 다양하게 기록되었다, 그것들 중에는 『토마스 복음』, 『빌립 복음』, 『진리 복음』, 『야고보 비밀복음』 그리고 『이집트인 복음』 등도 있다.⑦ 이 기록들은 소년 예수와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토마스 복음』에는 42)  이런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어린 예수는 안식일에 강변을 따라 놀면서, 손을 비벼 진흙으로 열두마리 참새를 만들어 그 진흙 형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그것들이 날아가게 한다. 어떤 율법사의 아들이 예수를 안식일 날 그런 마술을 하러 데리고 가려 했을 때 예수는 그 아이를 저주하여 그를 무화과 나무처럼 시들게 한다. 이에 소년의 부모가 예수에게 간청하여 그 아이에게 다시 생기를 부여하게 한다. 예수는 마지못해 그 말을 따르며, 부모가 주의하도록 경고했다.”⑧

 

  『야고보 비밀복음』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살로메(세례 요한을 죽게 한 헤롯 왕의 의붓딸이 아닌 동명이인)가 분만에 간여했던 산파에게서 예수의 기적 같은 탄생의 소식을 듣고서 스스로 마리아에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없는 지를 알아보려 한다. 마리아가 잠자며 누워 있을 때 살로메는 몰래 동굴 속으로 들어가 마리아의 상태를 시험했다.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어 그녀의 나쁜 호기심을 채우려다가 자신의 손가락을 태우게 된다.”⑨

 

혼돈에서 질서로

 

  2세기까지 아주 많은 복음서들이 그리스, 로마 영토 전역으로 번져 나갔는데, 여기서 누가 ‘좋은 소식’을 올바르게 전했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그 문제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정통 교리를 따르기 위해서는 로마 교회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했던 이레니우스(Irenaeus:140-203) 43) 에 의해 해결됐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베드로와 바울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그들이 진실된 가르침을 교회 후임자들에게 잘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레니우스는 이렇게 썼다.

 

  그래서 진리를 알고자 하는 여러 교회의 모든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제자들이 만든 전통을 계승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시대까지 제자들과 그들 후임자들에 의해 인도되었던 사람들을 열거하게 되지만, 그들은 이교도들이 격찬한 것과 같은 것을 알지도 못했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모든 교회의 계승 작업을 이와 같은 분량으로 열거하기에는 아주 길기 때문에, 우리가 언급하는 여러 자료들이 어떤 형태로든 자기만족, 허영심 혹은 맹목적이고 나쁜 마음이든 간에 모여든 모든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제자들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오래된 교회의 성직자들의 계승을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다.

 

  왜냐하면 그 교회들은 두명의 가장 영광스러운 제자인 베드로와 바울에 의해 로마에서 설립되고 운영되었으며, 그 교회들은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전달했었던 그 때 이후에 우리에게 전해져 온 전통과 신앙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교회와 함께 그 교회의 우월한 기원 때문에 모든 교회들은 즉 세계의 모든 신앙자들은 동의해야 한다. 그리고 도처의 신앙자들이 그 제자들의 전통을 유지해 온 것은 다름아닌 그것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기독교의 공식적인 경전이 된 네개의 복음서가 초기 교회의 중심적인 선포에서 서로 불일치와 비일관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나사렛 예수가 죽은 자에게서 일어났다는 것 등 모든 것은 좋고 올바르다.

 

여러 세부사항의 모순점들

 

 무엇이 그런 모순점들을 나타내는가?

 

  이런 질문은 점차 세속화되어가는 세상에서 무시될 수 없다. 게다가 네 명의 복음서 저자들은 그들이 기록한 사건들의 실제 목격자였다는 주장은 그 문제점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폴 에먼(Paul Ehrman)은 그 모순점들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복음서들은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를 알고 싶어하는 역사가들에게는 문제가 된다. 이 점은 특히 예수의 부활에 관한 복음서의 설명 때문에 실제로 그러하다. 복음서들은 불일치로 가득 차 있으며, 일부는 서로 타협될 수 없다. 실제로 복음서들은 부활 이야기에서 거의 모든 세부사항에서 서로 다르다.”⑪

 

 위와 비슷하게 폴 토빈(Paul Tobin)도 이렇게 언급했다.

 “모순점들은 텅 빈 무덤의 발견과 관련된 사건의 네개의 복음서의 설명들 간의 거의 모든 세부사항에서 나타난다. 모든 다른 세부사항들은 서로서로 아주 크게 달라 우리는 그들 중에서 어느 것을 역사적인 것으로 믿어야 할지 그 근거를 마련할 수 없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부활 후의 모습에 대한 서로 다른 기록은 역사성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 복음서들과 다른 성경 출처들은 우리에게 하늘로 들려 올려진 예수의 모습에 관한 사건의 조화로운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무게감도 모든 주요 세부사항에서 서로서로 모순되는 설명에 대해서 제공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⑫

 

실제 사실들에 관한 많은 불일치

 

  마태는 두 여인(막달라 마리아와 44)  다른 마리아)이 부활절 아침에 무덤에 갔다고 한다(마태복음 28:1). 마가는 세 명이(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인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 갔다고 주장한다(마가복음 16:1). 누가는 신비스런 여인 요안나를 포함하여 여러 명의 여인들이 갔다고 주장하며(누가복음 24:1, 10), 반면에 요한은 단 한명의 여인 (막달라 마리아)만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적고 있다.

 

  마태는 굉장한 지진이 일어났다고 기록하며(28:2), 반면에 세 명의 저자들은 이런 특별한 세부사항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고 한다. 마태와 마가는 그 여인들이 무덤에서 한 명의 천사를 보았으며(마태복음 28:2-3) 누가는 번개처럼 빛나는 옷을 입은 두 명의 남자를 언급한다(누가복음 24;4). 한편 요한은 예수의 시체 옆에 앉아 있던 힌 옷을 입은 두 명의 천사를 보았는데, 한 명은 머리 쪽에 한 명은 발쪽에 있다고 말한다(요한복음 20:12).

 

  마태는 그 무덤이 막달라 마리아가 도착했을 때 닫혀 있었으며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돌을 굴러 밀어내고 그 위에 앉았다고 말하고 있다(마태복음 28;20).  한편 다른 복음서 저자들-마가와 누가에 의하면-그 무덤이 막달라 마리아가 도착했을 때 이미 열려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태, 누가와 요한은 제자들이 즉시 막달라 마리아에게서(누가는 여인들 무리에게서) 열린 무덤에 대해 연락을 받았다고 말한다(마태복음 28:8, 누가복음 24:9-11, 요한복음 20:2). 한편 마가는 여인들이 떨며 당황하여 그들은 밖으로 나가 무덤에서 도망쳤다고 기록한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무서웠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시신이 없어졌기 때문에 무덤에서 울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주위를 둘러봤을 때, 어떤 사람이 그녀 앞에 서 있었지만 그녀는 그가 예수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하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그를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니 마리아가 돌아보고 히브리 말로 “랍오니”(이는 선생님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의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요한복음 20: 15-17)

 

  그러나 마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텅 빈 무덤에서 울기는커녕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마가뿐만 아니라 마태도 예수님이 여인들에게 그를 만져보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마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 8-10)

 

경건한 발명품

 

  심지어 네개의 복음서를 겉으로만 비교하더라도, 어얼 도허티(Earl Doherty)같은 학자들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한다. “마태, 누가 혹은 요한 세명은 말할 필요도 없고 어떤 두명 사이의 공통적인 부활의 모습은 하나도 없다. 여인들에서는 공통적인 요소가 있으나, 심지어 여기서도 세부사항은 다르고 양립할 수 없다. 또한 예수의 외적인 모습들이 예수 추종자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공통점이 있었으나 그것을 제외하고는 외적인 모습의 세부사항은 많이 다양하며 여러 면에서 전혀 양립할 수 없는 상태다.”

 

  다음 사실을 고려하면 발생할 수도 있는 많은 설득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가설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은 논리적인 사고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가는 부활에 관한 모습을 전혀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보면 정본 복음서에 나타난 부활의 모습에 관한 모든 묘사가 후기 복음 전도사들이 지어낸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⑬ 그러나 틀림없이 어떤 사건이 부활절 아침에 발생했다. 역사의 한 기록에 의하면 갈릴리에서 나온 한 예언자가 어떤 시기와 장소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났다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일련의 남성들과 여성들이 집과 가족을 떠난 사건은 분명히 일어났다.        

  그것은 무엇인가?

 

환각 가설

 

  일부 사람들은 부활 이야기는 제자들의 환각에서 비롯되었다고 결론짓는다.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역사가들은 부활에 대한 믿음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도들이 예수의 지상생활 중에 인간적인 친밀감으로 그와 같이 즐겁게 지냈고 그래서 주관적인 시각으로 부활의 모습을 유추했다고 볼 수 있다.”⑭ 비슷하게 요하네스 위스(Johannes Weiss)는 주장하길 “부활 모습은 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신앙이 의심을 넘어 승리한 오로지 내적인 투쟁의 목표이다. 비록 그 믿음이 그들에게는 믿음의 산물과 결과만큼 대단한 것으로 보였지만, 부활의 모습들은 그들 믿음의 근본은 아니었다,⑮        

 

  그러나 이런 가설은 아주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환상을 정의하면, 환상은 어떤 외부적인 참고 혹은 대상이 결여되어있는 개인적인 사건이며 순수하게 주관적인 경험이다. 심리학자 게리 콜린스(Gary Collins)는 이렇게 썼다. “환상은 개인적인 사건들이다. 바로 이런 본질로 인해서 단지 한 사람만이 한 번에 발생한 환상을 볼 수 있다. 그것들은 분명히 여러 사람 단체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한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 환상을 이끌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환상이란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감각에서만 존재하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목격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⑯

 

  그러나 복음서 저자들은 무덤에서 일어난 예수가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예수는 여러 사람에게 나타났다: 막달라 마리아, 베드로, 엠마우스로 가는 길에서 만난 두명의 제자, 또한 다른 제자들 그리고 일어난 예수를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않으려고 했던 도마라 불리는 의심이 많은 사람과 같은 있었던 제자들. 게다가 사도 바울은 일어난 예수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한번에 500여명 에게도 나타났다고 주장한다.⑰

  비록 사도들이 죽어 매장된 예수가 그들 앞에 온전히 살아있도록 만든 체면술 암시 혹은 집단 정신착란의 이상한 형태에 사로잡혀 있을지라도, 그 가설은 기록상으로 무덤이 아주 생생하게 텅 비어 있음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⑱

 

기타 부활 가설들

 

  또 다른 가설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디 에이치 로렌스(D. H. Lawrence)가 『죽은 그 남자』에서 제기했다. 이 주장에서 예수는 십자가에서 아주 일찍 내려져 살아나고, 그가 육신을 쓰고 제자들 앞에 나타나서 제자들을 겁에 질리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되살아난 예수는 아이리스(고대 이집트 여신, 아이리스는 예수를 고대 이집트 신인 오시리스로 착각)와 부부가 되어 결혼생활을 즐기기 위해 이집트로 갔다.⑲

  또한 비슷한 이론이 마이클 베이켄트(Michael Baigent), 리차드 리이(Richard Leigh)와 헨리 링컨(Henry Lincoln)이 공동 저술한 『성혈과 성배』에서 현실감있게 추측되고 있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예수는 예루살렘 밖 동굴에서 그의 연인 막달라 마리아에 의해 소생했다. 그는 프랑스 남부에서 그의 가족을 기르기 위해 한때 창녀였던 여인과 떠나기 전에 제자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기위해 모습을 드러냈다.⑳

 

  또 다른 유사한 주장은 휴 숀필드(Hugh Schonfield)가 제기한 『유월절 음모』이다. 이 주장에서는 십자기 위에 매달린 예수에게 제공된 해면에는(요한복음 19:29-30) 식초가 아니라 죽음의 모습을 위장하게 하는 어떤 독약이 적셔져 있었다고 한다. 불행히도 한 병사가 예수의 옆구리를 긴 창으로 찔러 그를 거의 죽게 하여 유월절 음모를 야기시켰다. 즉 유월절 음모란 유대인들에게 갈릴리 선지자는 실패로 끝난 메시아였던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십자가 위에 매달리게 했다는 것이다. 숀필드는 ‘무덤에서 막달라 마리아 옆에 보인 남자는 죽은 예수를 소생시키려고 애를 쓴 사람에 의해 보내졌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부활은 단지 잘못된 정체성을 언급한 불행한 사건이었다.㉑

 

  예수의 부활에 대한 또 다른 주장은 튀빙겐 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스트라우스(David Strauss)에 의해 150년 이상 전에 거론되었다. 그는 근본주의자인 광신도가 아니며, 그는 부활 이야기는 경건한 신화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그의 저서 『예수의 새 생명』(1865)에서 스트라우스는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무덤에서 반쯤 죽은 상태로 훔쳐져 옮겨졌던, 허약하고 병들어 의료 치료를 필요했던 어떤 존재가 제자들에게 그가 죽음과 무덤을 정복한 사람이며 생명의 왕자란 인상을 주고, 제자들이 미래에 전도를 하도록 근본적이고 그런 감동적인 인상을 제시할 수 있었는지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부활은 제자들의 슬픔을 열정으로 변화시키고 그들의 존경심을 숭배 차원으로 높였다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㉒

 

  부활의 진실

 

  부활절 아침에 무엇이 일어났는가?

 부활의 증거는 내적인 것이며, 네 개의 복음서보다 먼저 기록되고 최초의 기독교 문서로 남아있는 바울의 편지에 남아있다. 바울은 부활이 복음서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남아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그의 첫 편지에서 바울은 ‘부활은 복음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존재한다’고 다음과 같이 썼다.

 

  형제자매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일어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으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서 게바(베드로)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 그 후 오백여 형제자매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제자들에게 그리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린도전서 15:1-9)

 

  이 구절은 바울이 분명히 명백하게 살아 일어난 예수가 자신이나 시몬 베드로, 다른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백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주목할 만한 기록이다. 그들은 바울이 파피루스 종이에 말씀을 기록하고 있었던 55년에도 여전히 살아있었다.㉓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2-19에서 계속 기록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파되었는데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였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도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니라. (고린도전서 15:12-19)

 

  그러므로 부활은 초기 교회의 중심적인 선포문이다. 이 사건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신앙은 무의미하다. 이런 증언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에드윈 엠 야마우찌(Adwin M. Yamauchi) 오하이오주 옥스퍼드대학 역사학 부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역사적인 증거로서 바울의 기록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당시 살아있는 오백 명 사람들 대부분에 대한 언급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실제로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않으면 너희는 그들에게 물을 수 있다.’ 그 사건 이후 30년 안에 써진 어떤 공인된 진품 편지에서 사용된 그런 표현은 거의 2000년 전에 발생한 일에 대해서 바라던 희망하는 만큼이나 강력한 증거이다.”㉔

 

최종 증거

 

  또한 부활이 실제로 있었다는 다른 증거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운명에도 나타나 있다, 그리스계 유대인 스테판은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가 되었는데, 그의 위치는 예수 자신의 가족 구성원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한 세대 안에서 아주 독실한 유대인 수백명의 남녀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가 죽은 자들에게서 살아났다는 자신들의 믿음을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어떤 사람들은 가장 굴욕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돌에 맞아 죽고, 어떤 사람들은 공공 경기장에서 야생 동물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무서운 방식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㉕ 게다가 아이안 윌슨(Ian Wilson)이 언급했듯이 그들은 결연히 심지어 즐거워하면서 죽음터로 갔다. 그들은 물질적인 이익 혹은 그들의 솔직함과 자기 희생에 대한 세상의 찬사를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부활의 증거는 그들의 피 속에 살아있다. ㉖ 

 

부활절의 종언

 

  그러나 부활은 현대 영지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기독교 교회의 중심적인 요소가 아니다. 왜냐하면 마르키온과 그의 추종자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예수는 가장 최고의 빛의 영역 세상에서 와서 어떤 순수한 성령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예수는 구약의 하나님이 우주를 지었던 근본적인 물질에 결코 온전히 담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주장에서는 어떤 성육신, 열정과 부활이 존재하지 않는다.㉗

 

  이런 가르침과 보조를 같이하면서, 주류 신교 교파들은 자신들의 찬송가나 성전의 십자가에서 예수의 보혈에 관한 여러 참고 사항들을 제거하고 있다.㉘ 영지주의 관점에서, 예수는 그들이 숭배하고 오랫동안 고대하고 있는 다윗의 왕국을 복구시킬 메시아도 아니며 세상의 죄를 속죄할 고통받은 하나님의 종도 아니었다. 나아가 예수는 단지 사람들에게 그들 안에 남아서 그들이 최고의 천상에서 모든 빛의 원천과 재결합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감을 주는 성령(일종의 불꽃)을 상기시켜주는 어떤 순수한 성령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이런 신학에서는 십자가와 텅 빈 무덤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어떤 속죄나 영성체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