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증거들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4부 17장)

훈독왕 | 20220223041218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17

  예수: 증거들

  (Jesus: The Evidence)

 

  만일 에세네파(고대 유대의 금욕신비주의의 한 파)가 그들의 기록들을 보존했다면그 기록들이 아마 요르단 광야의 미지의 동굴 속의 점토 항아리 안에 밀봉되어져 다른 베두인 소년이 어떤 행운의 돌멩이를 던지기를 기다리는 상황에서여러 면에서 그들과 닮았던 초기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기록 문서를 소홀히 했을까이런 추측은 많은 분실된 기록들을 포함하게 될 것인데그것들은 기독교인 기록뿐만 아니라 유대나 로마인들의 중요한 기록예를 들면 요세푸스(유대 역사가)와 타키투스(로마 역사가두 사람의 기록들과 폰티우스 빌라도의 위조 문서가 아닌 실제 보고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아주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은 유물 발굴조사가 계속될 것이며그 조사는 중요하고 놀라운 발견을 포함하게 된다.

  로버트 코플런(Robert Coughlan). 『인물』 “인간 예수는 누구였나?. 1964.

 

  나는 여기서 어떤 사람들이 종종 예수에 대해 정말로 어리석은 것을 말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즉 “나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 선생으로 기꺼이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으나그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이 말은 우리가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단지 그는 어떤 특별한 사람에 불과하며 그가 말한 것들로 인해서 위대한 도덕 선생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예수는 훔쳐온 계란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예수는 미치광이며 혹은 그는 지옥의 악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선택해야 할 것이다이 사람이 과거에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한지아니면 미치광이 혹은 나쁜 어떤 존재인지여러분은 그를 완전히 바보 취급을 할 수도 있고그에게 침을 뱉고 그를 악마로 죽일 수도 있다아니면 그의 발 아래 엎드려 그를 주님하나님이라 부를 수도 있다그러나 우리는 그를 위대한 도덕 선생으로 가르치는 넌센스로 다가가서는 안된다그는 우리에게 마음대로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있으며 또한 그는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시 에스 루이스(C. S. Lewis). 『단순한 기독교』, 1952  

 

  베두인 소년이 1947년 어느 날 발견하여 엄청난 충격을 준 것은 밀폐된 동굴 속에 있는 진흙 항아리였다. 항아리 옆에서 그는 고대의 검은색 문서를 보았다. 그 동굴을 살펴보다가, 그는 더 많은 6개의 항아리들을 발견했다, 모든 항아리 안에는 파피루스 종이와 구리로 만들어진 고대 문서가 담겨 있었다. 그 소년은 베들레헴에 있는 골동품 거래상에게 두루마리 문서들을 가져가서, 28달러(약 3만원)에 팔았다.①

 

  목동 소년의 발견은 결국 미국의 동양학 연구소의 존 트레브(John Trevor) 박사의 관심을 끌었다. 그 발굴 작업은 쿰란지역(요르단 서부의 사해 북서쪽 지역으로 문서 유적이 발견된 곳)의 사해 동굴에서 더 많은 문서를 찾아내기 위해 빗으로 세심하게 흙을 긁어내는 작업으로 확대되었다. 마침내, 981점의 다른 문서 더미들이 11개 동굴에서 발견되었다.② 그 두루마리 문서들은 방사선 탄소와 고문서 연대추적을 받았는데, 그것들은 기원전 200년에서 68년 사이에 써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발견품들은 시칠리아에 있는 원자물리학 국립연구원이 실시한 입자유도 엑스레이 방출 시험으로 확인되었다.③

 

 사해 두루마리 문서들

 

  두루마리 문서들은 예수 시대에 존재한 주요 유대교파 중의 하나인 에세네파 사람들의 성스로운 문서로 판명되었다. 에세네파 사람들은 세속적인 사악한 것에서 벗어나 사해 근처 쿰란 동굴안에서 은둔생활을 추구한 금욕주의 집단이었다. 그들은 지하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세상의 종말이 임박하게 다가올 것을 고대했다.④ 그들은 자신들을 ‘어두움의 자녀’에 대항하여 투쟁에 가담하는 ‘진실한 이스라엘’이며 ‘빛의 자녀들’로 간주했다.⑤

 

  에세네파는 초기 기독교인들과 아주 유사했다. 양쪽은 종말론적 집단으로 임박하게 세상이 변화될 것을 고대했다. 다니엘서에서 유래된 대로, 양쪽은 심판의 날을 선포할 ‘사람의 아들-인자’의 강림을 믿었다. 양쪽은 회개의 방법으로 동물 번제가 아니라 세례의식을 하였으며, 메시아의 만찬으로 신성한 빵과 포도주를 나눴다. 양쪽은 그들의 소유물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세상의 재물을 포기했다. 양쪽은 엄격하게 훈련 받고 모세 율법에 철저하게 순종하며 살았다.⑥

 

요한복음의 새로운 빛

 

  사해 두루마리 문서에 관한 아주 놀라운 것은 그것들이 요한복음에서는 그리스 후기문화로 여기고 버려졌던 것과 같은 언어와 형태를 지녔다는 사실이었다. 에세네파와 같이 요한복음은 ‘진리의 영혼’, ‘세상의 빛’, ‘어둠속의 행진’ 그리고 ‘ 빛의 자녀들’ 같은 구절을 줄기차게 사용했다. 두루마리 문서와 요한복음 사이의 유사점은 요한복음과 ‘훈육 지침서’로 불리는 에세네파 경전 서문과의 비교로 증명된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어느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2-3)

 

만물이 그의 지식으로 통과되었고

그는 그 계획대로 만물을 지었으며

그 없이는 어떤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훈육 지침서 11;11) ⑦

 

  그 유사점은 많은 다른 구절로 강화되어 있으며, 요한복음과 에세네파의 “공동체 규범” 사이의 유사한 점은 다음의 비교로 확인된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8:12)

 

정의의 모든 자식들은 빛의 왕자의 지배를 받고 빛의 길로 다니나, 어둠의 자식들은 어둠의 천사의 지배를 받고 어둠의 길을 다니리라.

         (공동체 규범 3)⑧

 

  이런 발견 문서들을 근거로 레인홀드 니부흐트(Reinhold Neibuht)는 다음의 결론을 내렸다. “신약성서의 중요한 많은 사건들은 이미 이뤄졌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종결되었다는 것이 추정되었다. 두루마리 문서의 발견은 대중의 관심을 아주 많이 유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계점들이 역사의 연구를 통해 결코 닫혀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⑨

 

 목격자 이야기

 

  그런 유사점들의 발견에 힘입어, 저명한 영국 학자들이 요한복음의 역사성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알렌 길딩(Aileen Guilding)은 『네 번째 복음과 유대인의 숭배』에서 요한복음의 제작은 유대인의 축제 사이클과 3년에 걸쳐 토라 읽기를 끝내는 풍습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길딩은 요한이 그 복음에서 기록한 여러 이야기들의 실제 목격자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데, 왜냐하면 그는 요한복음이 로마에 의해 파괴되기 전의 예루살렘의 지리적인 특성을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게 언급했기 때문이다.⑩

  

  예를 들면 요한은 실로암 연못을 언급하는데(요한복음 9:7), 그곳의 유적은 예루살렘에서 발굴되고 있으며 가빠타(빌라도가 사형선고를 내린 재판정으로 돌을 깔아 놓은 높은 곳으로 히브리어로 ‘높다’라는 가바에서 유래됨)를 언급하고 있다. 이 곳은 빌라도가 예수 윗쪽에서 판결을 하면서 앉았던 곳으로 지금은 다윗의 도시(예루살렘) 가운데 위치한 시온 성모 마리아 수녀원 지하실 안에 자리잡은 로마식 포장도로가 있는 지역이다.⑪ 추가로 씨 에프 버니(C. F. Burney)와 에이 티 알름스테드(A. T. Olmstead) 같은 옥스퍼드 대학 교수들은 요한복음은 40년 경에 아람언어(셈족언어)로 구성되었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⑫

 

  또한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예루살렘 안에 다섯 개의 돌기둥을 지닌 히브리 예배당이라 불리는 양치기 연못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요한복음 5:2). 영국 역사가인 존 에이 티 로빈슨(John A. T. Robinson)에 의하면 이곳은 그 도시가 파괴될 때 없어졌는데 1960년대에 고고학 발굴단에 의해 발견되었다. 한편 요한복음 저자는 여러 가지 사건의 서술 시점을 과거가 아닌 현재로 언급하고 강조하고 있다. 로빈슨 입장에서 이런 사실은 요한복음이 목격자 이야기를 나타내고 있다는 증거를 제공하는 것이다.⑬      

 

 라이랜드 도서관의 문서

 

  넷째 복음(요한복음)이 2세기 말에 써졌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볼트만과 그 동료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런 주장은 어떤 복음이 정본이든 아니든 간에, 현존하는 가장 초기시절의 문서중의 하나로 추정되어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존 라이랜드 도서관에 전시된 파피루스의 문서에서 비롯됐다. 이 문서에서 요한복음 18:31-34의 내용이 그리스 문자로 다음과 같이 써져 있다.

 

  그래서 빌라도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를 너희들이 데려가서 너희 법대로 그를 판결하라”. 그러자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말하길, “우리는 어떤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다.” 이 주장은 예수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빌라도는 다시 총독궁으로 들어가 예수를 불러 말했다. “네가 유대의 왕이냐?” 예수가 대답하길, “당신은 스스로 이 말을 하느냐 아니면 다른 이들이 네게 나에 대해 말했느냐?” 요한복음 18:37이 그 문서 뒤에 있다. “그러면 너는 왕이다.”라고 빌라도는 말했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하길 “너는 내가 왕이라 말한다. 실제 내가 태어나 세상에 온 이유는 진리를 증거하기 위함이다. 진리 편에 선 모든 사람은 나에게 주목한다.” 빌라도가 묻기를 “진리가 무엇이냐?” 이 말을 하고 빌라도는 다시 그곳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나는 그를 고소할 어떤 근거도 찾지 못했다.”⑭

       

  고대 고문서에서 나온 이 토막 기록은 요한이 복음을 쓴 것으로 추정되는 터키 에페수스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이집트에서 발견됐다. 그런 소책자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그리스, 로마 지역으로 ‘좋은 소식’을 전할 때 그들에 의해 전달되었다. 파피루스와 그 필체 분석에 따르면, 그것들은 예수 죽음이후 70년 뒤인 100년 경에 써졌던 것으로 추정된다.⑮  

 

막달렌 문서

 

  허만 사무엘 레이마루스(Herman Samuel Reimarus)에서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까지 이르는 성경학자들의 주장들을 완전히 깨부시는 사건은 1901년 영국 선교사인 찰스 뷰필드 훌리트(Charles Bousfield Huleatt) 목사가 이집트 룩소르의 골동품 거래상에게서 구입한 세 개의 파피루스 문서에 대한 최근의 재평가였다.⑯ 서로 조각나 있는 상태로 그리스어로 써진 그 문서들은 마태복음 26:26-31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들이 먹고 있을 때 예수가 몇 개의 빵을 가져와 그것을 축복하며, 그것을 조각 내어 제지들에게 나눠주며 일렀다. “이 빵을 받아먹으라 이것은 나의 살이다.” 그리고 포도주 한 잔을 가져와 하늘에 감사하고 제자들에게 나눠주고 일렀다. “너희 각자는 이것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이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의 언약을 확인시키는 것이니라. 그것은 많은 자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속죄물로 부어지는 것이다. 나의 말을 명심하라. 나는 이제 아버지 왕국에서 너희와 함께 새것을 마실 때까지 다시는 마시지 아니 할 것이니라.” 그리고 그들이 찬양하며 나가 감람산(올리버산)으로 갔더라. 도중에 예수가 그들에게 말하길, “오늘 밤 너희 모두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늘은 목자를 내리칠 것이며 그러면 양떼는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1994년, 독일 파데본 인식론 학회 원장인 카스턴 피터 씨이드(Carsten Peter Thiede)는 이런 단편 문서들을 보다 세밀하게 조사하기 위해서 주사 레이즈 현미경을 사용했다. 그런 현미경은 20개 파피루스 문서의 마이크로미터(백만분의 1 미터)층 사이를 구별 지을 수 있으며, 잉크의 높이와 깊이를 측정하여 정확한 연대를 제시하고 기록하기 위해 사용된 바늘의 각도를 결정해준다. 씨이드는 막달렌 문서들이 마태복음의 원본이든지 아니면 마태와 다른 제자들이 여전히 살아있는 동안에 쓴 꼭 같은 복사본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 학계를 깜작 놀라게 했다. 씨이드의 주장에 의하면, 마태의 속기 기술은 폭넓은 이야기를 모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분명했으며 그래서 그것들을 말 그대로 기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막달렌 파피루스 발견은 문헌상의 이론이나 역사적 가정이라기 보다는 물리적인 증거에 근거하여 그것이 명백하게 연대가 밝혀졌기 때문에 특이한 것으로 남아있다. ⑰

 

  그래서 세계 저명한 다수의 학자들이 내린 네 가지 복음서에 대한 구조, 내용, 철학적인 그리고 문학적인 분석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이 대두되었다. 마가가 그의 복음을 편집한 최초의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비슷하게 그런 특이함은 수백 년 동안 전통주의자들이 주장해왔던 것처럼 마태에게도 해당된다. 그리고 예수가 신 플라톤주의자와 유사하게 설교한 것으로 기록된 요한복음은 모든 신약성경 이야기에서 가장 히브리적 모습을 띠며 또한 마태복음과 같이 목격자에 의해 써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네 가지 복음서들이 신뢰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다른 무엇보다도 어떤 대답을 간청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네명의 복음서 저자들은 서로 여러 면에서 심지어 부활에 대한 설명조차도 주장이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