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 4부
예수와 신약성경
(Jesus and New Testment)
16장
예수에 대한 의문점
(The Quest for Jesus)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종교다. (즉 오랜 세월을 거친 실제 사실을 기반으로 하며, 신화나 전설이 아님) 다시 말하면 기독교는 본래 보편적인 원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들인 실제 역사적인 행위들에 의해 세워져 있다. 이런 사실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굿간에서 태어나 영웅이기 보다는 범죄자로 33세에 죽은 아주 조금만 알려진 유대인 목수라는 예수의 생애이다.
그는 출생지에서 150km 이상을 여행한 적이 없으며 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어떤 군대 조직에도 가담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책을 만드는 대신에 모래 위에 단지 그의 글을 남긴 정도로 미미한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일은 전세계에 파급되어 있으며 그의 사망일은 모든 스카이 라인을 배경으로 한 십자가에 올려져있다. 그런 그는 누구인가?
휴스턴 스미스(Huston Smith), 『인간의 종교들』, 2017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로, 옛날과 같이 호수가에서 이름도 없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그는 “여러분, 나를 따르시오”와 같은 말로 우리에게 말하며, 그가 우리 시대에 대해 완수해야 할 임무를 우리에게 맡긴다. 그는 또한 명령한다. 그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사람들이 현명하든 평범하든, 그는 고통, 불화 그리고 사람들이 그와 같이하는 유대감으로 인해 겪게 될 고통속에서 그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한 존재로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에서 배울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엘버트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의문점』, 1968
예수는 누구인가?
그는 ‘평화의 왕자’로 불리고 있으나 이렇게도 말했다. “내가 세상에 화평를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 10:34)
그는 비폭력의 선지자로 칭송되어왔으나 그는 성전에서 환전상들을 채찍으로 쫓아내며 말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들을 여기서 가져 나가라. 감히 어떻게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려 하느냐?” (요한복음: 2;16)
그는 사람들에게 다른 쪽 뺨을 내어주고 악한 자에게 저항하지 말라고 가르친 선생으로 불려줘 왔으나 한편으론 서기관과 바리세인을 마주치고 독사의 자식들이라 저주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33)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숭배되어왔으며 절대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인간에게 제공하려 한다 했으나 한편으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그것들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왔노라. 진실로 내가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그러나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17-20)
이런 의문은 2,000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던져졌으나 어느 누구도 만족스런 답을 주지 못했다. 실제로 그의 제자들도 그의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이 누구라고 말하더냐?”라고 물었을 때, 그들이 답했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라, 또한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태복음 6:13-14)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의문점
이성과 계몽의 시대에서, 여러 학자들은 최종적으로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인 예수에 대한 반대 관점에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정체성을 설정하기 시작했다. 비판적인 분석의 방법을 제시한 최초의 주요 시도는 함부르크 대학의 동양언어 교수인 헤르만 사무엘 레이마루스(Hermann Samuel Reimarus)가 쓴 『예수의 목적과 그의 제자들』에서 이뤄졌다. 레이마루스는 실제의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그에 대해 선포한 것들 사이에서 강렬하고 심오한 차이를 제시했다.
그는 예수가 점차로 열광적이며 정치적인 모습을 드러낸 유대 개혁가였으나 그는 다윗 왕국을 재건하는 데 실패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십자가 위에서 포기하는 예수의 울부짖음은 하나님이 예수를 지지하려고 행동했었던 그의 기대에 대한 종결을 의미했다. 한편 그의 제자들은 다른 어떤 메시아 모델에 의존했고,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들림을 받았으며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들은 또한 실망했으나 절망 속에서 울부짖지 않고 대신에 초기 기독교를 세웠다.①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의문에서 두번째 획기적인 사건은 다른 독일교수인 데이비드 프리리히 스트라우스(David Frierich Strauss)가 쓴 『예수의 생애』였다. 이 책에서 그는 복음의 초인적인 측면을 강하게 거부하고 신화로서 예수에 관한 역사적인 정보를 교회가 다루는 것을 묘사했다. 저자는 바리새인들의 적대감으로 야기된 예수의 죽음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에 의한 세례, 그의 말씀과 제자 만들기 같은 사건들을 포함하여 예수의 생애에 관한 골자들을 받아들였다.
초기 제자들은 역사적인 예수를 이중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의 예수의 모습이 아닌 대단한 존재로 변모시켰다고 스트라우스는 믿었다. 우선 그들은 예수 생애의 여러 사건들을 예언과 구약 신앙의 완수로 그리고 그를 메시아로 세우려는 기대감으로 해석했다. 두 번째로 그들은 공동체 신앙의 전달도구를 통해서 그에 대한 신화와 전설을 만들었다. “그래서 역사적인 예수는 독실한 제자들에 의해서 신성한 메시아로 변모되었는데,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잘못된 믿음이었다.”②
엘버트 슈바이쳐(Albert Scheweitzer)의 결론
20세기로 접어들 무렵에,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의문은 저명한 내과 의사·신학자·철학자·음악학 연구자인 엘버트 슈바이쳐에 의해 또한 제시됐다. 여러 증거를 몇 년간 분석한 후에 슈바이쳐는 이렇게 서술했다.
“어떤 것도 예수의 생애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 결과보다 부정적인 것은 없다. 나사렛 예수는 메시아로서 공적으로 나타났으며, 하나님 나라의 윤리 도덕를 가르치고 지상에 하나님 왕국을 세우고 자신의 목적을 최후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죽었다. 그렇지만 그는 결코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③
슈바이처의 결론은 대체로 신학성경 이외의 자료들에서 예수를 언급한 것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기초했다. 예수가 살았던 로마 제국에서 예수는 별로 중요한 인물로 보이지 않았으며, 로마인의 그에 대한 몇 가지 언급은 간략하고 극도로 편향적이었다.
로마인의 참고자료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로마 대화재 이후 2세기 중반에 이렇게 서술했다. 많은 사람들은 네로 황제가 지른 대화재가 로마 전체를 휩싸이게 하여 그가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로마를 재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노력, 황제의 모든 풍성한 선물들 그리고 신들에 대한 속죄물들은 대화재가 어떤 명령의 결과라는 사악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소문 등을 없애려고, 네로황제는 죄인들을 압박하고 로마 대중들이 혐오하여 미움을 받은 기독교라 불리는 집단에 대해 가장 가혹한 고문을 가했다. 크리스투스는-그 이름의 유래로 인해서-티베리우스(로마 2대 황제) 통치아래서 빌라도 같은 총독들에 의해 극단적인 형벌을 겪었다. 그리고 아주 짓궂은 미신 같은 사건들이 최초의 악의 근원지인 유대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심지어 로마에서도 발생했다.
그 당시 로마는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끔찍하고 수치스런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 유행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의심이 가는 사람들은 모두 먼저 체포되었으며, 그 정보에 근거하여 아주 많은 사람들이 로마 방화 범죄가 아니라 대중의 미움을 받는 이유로 유죄로 선고되었다. 모든 종류의 조롱거리가 그들의 죽음에 대해 더해지고, 그들은 짐승의 가죽으로 씌어져 개들에게 뜯겨 비참하게 죽었거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혹은 야간에 조명 역할을 하고 낮에 완전히 소멸되는 불가마에 던져져 타 죽는 운명이 되었다.
네로는 그 구경거리를 위해 로마 외곾에 공연장을 제공하고 곡예단 볼거리를 보여주었으며, 그러는 동안 그는 보통 사람의 복장으로 사람들 속에 섞여 있거나 혹은 어떤 마차 위에 올라서 있었다. 그래서 심지어 극단적인 본보기가 되는 처벌을 받아야 마땅한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동정심이 일어났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고 있는 것이 대중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잔인함을 채워 주기 위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④
예수에 대한 로마의 다른 참고자료는 비티니아 (소아시아 북서쪽에 있었던 고대왕국)와 폰투스(소아시아 동북부에 있었던 고대왕국, 오늘날의 터키)의 총독인 플라니 2세가 112년에 트리아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 나타나있다. 그 편지에서 플라니 총독은 자기 지역의 광적인 종파의 출현을 보고했으며, 이 신도들은 하나님에게 바치듯이 크리스투스(예수)에게 찬양을 바치며 악한 것은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는 사람들이라 했다. 플라니 총독은 황제에게 그 종파의 여러 신도들을 심문하여, 만일 그들이 세 번 이상 크리스투스를 숭배했다고 인정하면 그는 그들을 죽였다고 보고했다.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그 총독에게는 새로운 것이었으므로, 플라니 총독은 자신이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황제에게 물었다. 그러자 트리아누스 황제는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그대는 기독교인으로 기소된 자들에 대한 이유를 조사함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방법을 취해왔다. 실제로 어떤 일반적인 재판의 형태는 이 사건에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추적할 필요는 없으나, 만일 그들이 기소되어 유죄로 판명되면 그들은 처벌되어야 한다. 그러나 판결에서 자신이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그가 로마의 신들을 숭배하고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다면 비록 그가 이전에는 그랬지만 그가 회개하는 즉시 사면이 허용될 것이다. 작성자 없이 발송된 비방 사건에 대해서는, 그것들은 어떤 고소에서도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주 나쁜 선례가 될 것이며 나의 통치에 알맞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⑤
세 번째이며 마지막인 로마인의 참고자료는 전기작가인 수에토니우스가 쓴 『클라디우스 황제의 일생』에서 이렇게 써져 있다. “유대인들이 크리스투스(예수)의 선동으로 끊임없는 소유사태를 일으키고 있음으로, 그는 로마에서 추방되었다.”⑥
유대인의 참고자료들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유일한 다른 자료들은 유대인의 것이었다. 유대교의 율법서이며 논평 모음집이고 해설집인 탈무드는 다음 구절을 포함하고 있다.
“유월절 저녁에 예수는 십자가에 달렸다. 이 처형이 일어나기 전 40일 동안 어떤 징조가 나타나 퍼져 나갔다. “그가 나타나며 돌에 맞아 죽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마법을 행하고 이스라엘이 배신을 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빌라도 법정에서 “그를 위하여 어떤 말을 하고픈 자는 누구든지 앞으로 나와서 그를 위해서 변론하게 하라”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를 대변하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그는 유월절 저녁에 십자가에 달렸다. 그러자 울라(역대기상 7:39에 언급된 아슈르 부족의 한사람)는 대꾸했다. 당신들은 그가 어떤 변론이 이뤄질 수 있는 그런 자였다고 생각하느냐? 그는 구약 경전에서 그에 대해 ‘누구도 그를 살려주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그를 숨겨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되어 있는 미혹하는 자가 아니었느냐? 그러나 예수와 관련하여 실제 사실은 달랐는데, 왜냐하면 그는 총독부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랍비들은 예수는 5명의 제자 즉 마태, 나카이, 네제르, 버니와 토다가 있다고 가르쳤다.⑦
예수에 대한 다른 참고자료는 요셉푸스(Josephus)가 쓴 『유대교의 유물』에 나와 있다. 그 책에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와 그의 형제인 야고보와 몇 사람을 언급했다.⑧
증거 부족
예수와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그에 대한 자료의 이런 부족현상은 신약 학자인 군터 본캄(Gunther Bornkamm)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이교도와 유대인의 자료들은 그것들이 다른 한편에서도 잘 알려진 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점에서 중요하다. 초기에는 역사적인 예수의 존재를 의심하게 할 정도의 기독교의 험난한 역경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비기독교인들의 간접적인 언급은 실제로는 거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당시의 역사기록을 통해 그런 암시들을 알게 된다. 그 기록들이 예수의 출현을 알았던 만큼 그것을 결코 획기적인 사건으로 여기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⑨
계속되는 의문들
역사가들은 과거 인물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줄리어스 시저의 의학적 문제, 클레오파트라의 치마 치수, 마크 앤토니의 입모양 그리고 마르쿠스 툴리어스 키케로의 성생활 등.⑩ 그런데 왜 예수는 그의 외모, 30년 생애, 로마 법정의 재판과 공개적인 처형에 관한 것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는가? 왜 예루살렘에서 큰 소동을 일으키고 십자가에 못 밝힌 후 죽은 자들에서 일어난 어떤 유대인 랍비(예수)에 대한 비기독교인의 자료들에서 역사적인 증거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은가? 틀림없이 고대 유대인은 그들 공의회의 회의록을 보관했을 것이며, 그 당시 유대를 지배했던 로마 권력자들도 그 기록을 보관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 기록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분실된 문서들
로마에 존재했을 것 같은 그런 기록들은 아마 황제 기록보관소를 포함하여 많은 건물들을 통째로 집어삼킨 64년 대화재로 파괴되었을 것이다. 그 보관소에는 갈릴리와 페레이 총독인 헤롯 안티파스와 팔레스타인(유대)을 지배했던 폰티우스 빌라도의 보관소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⑪ 유대인의 기록들은 전쟁의 참화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66년에 유대인은 로마의 지배에 대항하여 대규모의 반란을 일으켰다. 그 반란은 로마제국이 예루살렘과 마지막 외딴 곳에 있는 마사다 요새를 다시 함락시키는데 4년이 걸릴 정도로 많은 죽음을 초래했다. 그 과정에서 전 국토는 황폐하게 되었으며, 그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로마당국은 수천 명을 칼로 처행하고 수천 명을 노예로 만들고 나머지 유대인들을 다른 곳으로 추방했다. 예루살렘 도시와 헤롯 왕이 기원전 20년에 시작하여 마무리 작업이 반란 8년 전에 이뤄졌던 대사원을 포함한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다. ⑫
로마 당국은 유대 종교가 반란의 원인이라 믿고, 그들은 전국의 모든 시나고규(교회당)를 돌 하나도 가만두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했다. 종교 지형지물은 허물어지고 경전과 해설문서, 공의회의 두루마리 기록들과 율법사의 기록들은 몰수되고 불에 태워졌다. 만일 기록 용지의 재질이 양호하면, 기록 내용은 긁어 없애고 물에 담가 처리하여 두꺼운 종이로 다시 사용했다.⑬
편파적인 증언
타키루스, 플리니 2세, 수에토니우스, 바빌로니아 탈무드와 요세푸스의 자료들에서 보이는 미진한 참고물들 이외, 예수의 일생에 관한 유일한 다른 정보는 신약성경에서 나온다. 27권의 신약 중에서 23개는 예수의 지상 전도가 끝난 이후 일어났던 사건들과 관련되어 있다. 초반부 4권의 성경은 - 마태, 마가, 누가와 요한복음 - 신앙의 관점에서 예수의 생애 이야기를 나타내고 있다. 그 복음들은 예수가 죽은 이후 써졌으며, 신약 학자들에 의하면 4대 복음서 저자들은 결코 예수를 처음 알게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이 그에 대해 얻은 정보는 초기 교회에 관여했던 그의 제자들의 구두 증언에서 나왔다.⑭
4대 복음서 저자들의 증언들은 그들이 예수의 탄생, 죽음과 부활을 나타내는 부분에서 다른 견해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므로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문제로 남아있다. 게다가 그들은 예수의 외모와 개인 능력들을 포함하여 많은 정보를 생략했으며 그의 전도생활 이전 즉 전체 일생에 대해서 거의 어떤 것도 밝히지 않고 있다.⑮
공관복음(共觀福音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문제점
신학 용어에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공관복음으로 불리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예수의 생애와 시기에 관해 공통된 견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⑯ 세 복음서는 많은 점에서 같은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비록 그 증언들이 상충되는 점도 있지만. 예를 들면, 마가는 예수 탄생을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마태와 누가는 예수 어머니인 마리아가 요셉이란 남자와 약혼했으며 그녀가 출산했을 때 처녀였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두 복음 저자는 예수가 남성 혈통 즉 요셉의 혈통인 다윗 왕의 후손임을 밝히기 위해 족보를 제공한다. 이런 모순은 족보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심화된다. 학자들은 또한 예수의 고난과 부활 이야기에서 세 복음 간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차이는 역사적인 예수와 관련한 의문에 직면했던 사람들이 다음의 결론을 내리는 원인을 제공했다. 공관 복음 자료의 다수가 구전 전통 즉 신화 형성 과정을 포함하는 전통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신학 역사학자인 휴거 앤더슨(Hugh Anderson)은 아래와 같이 서술했다.
“최초의 세 복음서(보통 그것들의 긴밀한 문헌상의 상호관련성 때문에 공관 복음서라 불림)는 65년에서 95년 사이에 써졌다. 그 점은 예수가 죽게 되는 30년 쯤에서 최초의 공관복음인 마태의 저술이 있은 65년 쯤까지는 3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가와 그의 뒤를 이은 누가가 그들 복음의 편집을 위해 사용했던 자료들은 예수의 말과 행위에 대한 구전 전통에서 나왔다. 예수의 언행은 십자기 죽음이후 그 당대의 다양한 기독교 집단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번져 나갔다. 만일 우리가 예수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문제들을 온전히 알고 싶으면, 우리는 구전 전통의 중간 시대에 대한 어떤 현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구전 전통을 통한 전달과정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의 설교와 행동에 대한 그런 내용들을 생생하게 보존했다.
예수의 언행은 일상 생활의 다양한 상황에 처했을 때 즉 설교, 전도 그리고 종교예배 의식에서 실질적인 사용으로 전환될 수 있다. 우리는 전체적이며 유동적인 과정의 전통들은 꾸준히 재구성되고, 각색되며 그리고 색깔 면에서 부각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놀라지 않을 것이다. 특히 왜냐하면 그것들을 전달하는 데 책임 있는 자들은 매일 새로운 개종자들과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이름으로 이뤄진 새로운 성취를 증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⑰
갈까마귀41) 둥지
요한복음은 역사가들에게는 복합적 문제들을 담고 있는 갈까마귀 둥지와 같다. 본캄에 의하면 그 복음은 다른 세 복음의 특성과 아주 다르며 발전한 신학적인 반영의 산물이므로 제 2의 출처로서 취급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⑱ 실제로 요한복음은 거의 모든 것이 다르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 공관복음은 예수의 전도는 단지 1년 지속되었다고 주장하며 예루살렘을 단 1번 방문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의 전도는 3년 지속되었으며, 그 기간 중에 그는 다윗의 성 예루살렘을 3번 방문했다고 한다.
* 공관복음은 예수의 일생에서 주요 장면을 동일하게 선택하고 같은 식으로 묘사하고 같은 시간대로 배열했다. 그러나 요한은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대로 정하고 다른 순서와 다른 상황으로 배치했다. 예루살렘 성전 청소(정화)가 한 예다. 공관복음에서는 이 사건이 예수 일생의 끝에 일어나지만 요한은 앞에 그 사건을 둔다.
* 공관복음에서 예수는 결코 자신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며 자신의 메시아 자격을 전혀 주장하지 않고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판단했던 사람들에게 이 계시를 비밀로 하라고 말한다.
반면에 요한은 예수에게 새롭고 간결한 인성을 부여하고 그의 메시아 자격에 대한 어떤 의심도 제거하고 일정하게 그의 신성을 일련의 비유로 확실히 하여 그를 찬양한다. 즉,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생명의 양식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참감람나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복음서에는 요한은 전부 120번의 “나는 ...이다”라는 표현과 또한 234번의 ‘나는’이란 표현을 즉 “나는 찬양한다‘, ”나는 말하노라’,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 추가로, 요한은 신비성, 상징성과 공관복음에서 전혀 없는 비현실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이런 점은 요한복음 바로 첫 부분에서 증명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같이 계셨으니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모든 사람들의 빛이라. 그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 이름은 요한이라.”⑲ (요한복음 1:1-6)
벽돌 벽
역사적인 예수의 의문에 대한 자료들을 근거로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마르버그 대학 신학성경 교수는 다음 결론을 내렸다. “나는 정말로 예수의 일생과 인성에 관해서 거의 어떤 것도 알수 없다고 생각합니다.”⑳ 왜냐하면 역사적인 예수에 대해서 거의 알려진 것이 없으므로, 볼트만과 그의 제자들은 예수의 전도 혹은 그에 대한 초대교회의 선포에 그들의 온전한 관심을 두고 있다.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관점은 복음들이 단지 구전 전통으로 전달되어 다분히 여러 가지 뒤섞인 자료들로 이뤄져 있다는 인식에서 나왔다.㉑
불트만은 기독교인들이 전도가 이뤄졌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음과 헌신의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여겼었다. 불트만은 그들이 예수에 대해 전달한 전통은 현대인들이 또한 그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하는 유일한 이유를 제공한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불트만에게는 그런 전통은 불필요하며 심지어 역사적인 인물을 추구하는 전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심지어 신성모독일수도 있다.㉒ 이러한 체념과 무익함을 인정하면서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의문점은 갑작스럽고 부끄러운 결말에 이르렀다.
의문점의 결과
여러 의문점으로 인해 예수는 역사적 신빙성이 결여되는 모호한 인물이 되었다. 복음서는 모든 목사들과 성직자들이 그들 자신의 이념을 증명하기 위해서 뚜껑을 벗기고 바라보는 반사 역활을 하는 연못이 되었다. 해방신학 주장자들에게는, 예수는 로마 지배를 전복시키려고 한 전투적인 인물이었으며, 새로운 시대(현대 서구적 가치를 거부하고 영적사상, 점성술 등에 기반을 둔 생활방식 관련된)를 추구하는 신앙인들에게는 그는 관용과 세계적인 자비의 메시지를 전파한 유순하고 온화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좌익 학자들에게는 인권과 사회 정의를 부르짓는 격렬한 저항자였다.
예수연합교회(UCC)를 포함하여 주류 교파안에서, 예수는 모든 생활 형태와 종교적 믿음의 여러 모습을 포용하고 어떤 종교를 확립시킨 십계명을 포함하여 구약의 강압적인 율법에서 인류를 해방시킨 전세계에 걸친 초월적인 인물로 변모했다. 이런 예수는 거짓 신들(알라를 포함)의 숭배를 용인하고 동성애 결혼, 말기 낙태 그리고 총기통제 강화를 허용했다. 23) 이런 변화는 여러 교파들이 복음의 가르침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초기 기독교의 전도 활동도 거부했음으로 발생했다. 불트만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선포를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마르키온 사상의 예수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이처럼 예수에 대한 전통적인 신앙자들의 주장에 대한 사례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는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사건은 어떤 베두인족 (사막에서 천막생활을 하는 아랍의 유목민, 다음 17장에서 베두인이 다시 언급되며 예수를 증거한다) 소년이 사해의 서쪽 해안에서 무리에서 이탈한 염소들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면 다른 쪽에서 어떤 것이 깨지는 소리를 들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