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 종말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2부 12장)

훈독왕 | 20220214071726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12

           가톨릭의 종말

           (The End of Catholicism)

 

  압도적인 다수가 금욕(독신주의)에 대한 맹세를 지켜왔던 마을(바티칸 시티)을 살펴보면성문제와 관련하여 특이한 집착이 존재한다바티칸 안에서만 만연한 것은 아니지만동성애는 항상 명백하며 바티칸에서 승진에 있어 자주 작용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매력적인 젊은 사제들은 변함없이 마돈니(Modonni: 성적 여성미를 풍기는 남성 사제의 비유 표현)로 언급되는데그들은 진급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그들의 외모를 이용한다어떤 사제들은 단지 그들을 도와줄 마돈노(Madonno:성적 여성미를 풍기는 남성 사제를 유혹하는 선임 남성 성직자의 비유 표현)와 함께 문이 잠긴 방 안에서 밤늦게 일을 할 필요를 알고 있다사탄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미사 예배는 복면을 한 반나체의 참가자들과 정기적으로 실시되었으며 외설물 비디오는 신중하게 선별된 사제들 사이에서 보여져 왔다.

       데이비드 얄룹(David Yallop). 『권력과 영광』. 2017

 

 심지어 최고 가톨릭 지도층과 그들에게 충실한 사제들조차도 교회 내에 부패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버나드 라우(Bernard Law) 추기경은 존 거한(John Geoghan) 신부가 유혹성추행강간을 저질러 100여명의 미소년들을 이용했던 사건들을 옹호했다그 뿐만 아니라라우 추기경은 자신의 부하들 중의 한 사람에게 안전한 집을 제공하는 마피아 두목처럼그 신부를 이 교구 저 교구로 전근시켰다. 양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을 수 있는 선한 양치기로 행동하기 보다는오히려 라우 추기경은 양을 먹이로 생각하는 늑대 같은 포식자 전력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패트릭 뷰캐넌(Patrick Buchanan). 2002.3.20         

 

  1972년 성 혁명 과정에서 미국 가톨릭 신학협회는 당시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도움이 되고 계도적인 지침을 제공하려는 희망에서 인간의 성행위에 관해서 연구하기 위해 어떤 위원회를 설립했다. ① 그런데 그 위원회의 성명은 성도덕에 관한 모든 전통적인 가르침에 대해 날카롭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그 위원회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성생활의 적절한 의미는 동물적인 충동감의 만족이 아니라 사람들이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서로 교감을 성취할 수 있는 수단이다. 즉 그런 성관계는, 혼전이건 혼외건, 어떤 성스러운 상태로 승화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② 성도덕에 관련하여, 그 위원회는 성이란 그것이 통합의 방향(예를 들어 상대와의 교감)으로 기여했다면 도덕적인 행위라고 결정했다. 그 위원회의 견해에서, 파괴적인 성행위는 개인적 낙담과 상호간의 고립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③

 

 가톨릭이 성혁명에 합류하는 그 문은 아직 열려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기혼 부부는 성관계의 정상체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었다. 즉 자위행위는 도덕적인 죄가 아니었으며, 동성애 행위도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1981년 미국의 18세에서 30살까지의 가톨릭 신자에 대한 컬럼버스 기사단 조사에 의하면, 90% 가톨릭 신도들이 “인간 생명에 관하여 (1968): 교황 바오로 6세가 예로부터 가톨릭이 주장해 온 산아제한 반대를 재확인하는 회칙” 성명에 찬성하지 않았으며 88%가 이혼과 혼전 성관계에 대한 가톨릭 규범에 찬성하지 않았다. ④ 1973년부터 1983년 까지 가톨릭 신자들의 이혼률은 7명중 1명에서 4명중 1명으로 증가했다. 1985년 갤럽 여론 조사에 의하면 전체 가톨릭 인구는 신교도들보다 혼전 성관계에 더욱 더 관대했다. 즉 가톨릭 신도 33%만이 혼전 성교를 반대한 반면에 신교도는 46%가 반대했다. ⑤ 같은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 가톨릭의 77%는 그들이 성적 결정을 할 때 교단의 성명보다는 자신들의 결정에 따른다고 답했다. ⑥  

 

상실된 정체성

 

 가톨릭의 도덕적 가르침은 가톨릭 신도들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수단으로 교회에 분명한 정체성을 부여해 왔었다. 그러나 1970년에 이르러 의식, 규율, 신비감, 방식 등이 혼합된 가톨릭의 하부구조가 미국인의 의식에서 사라졌다. 『뉴스위크』(1971. 10. 14) 편집인들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대체로 바티칸 2차 공의회와 뒤 이은 혼란 때문에, 현재는 미국 신교도에서 존재하는 것만큼 가톨릭 교인에서도 신학과 생활방식에서 많은 다양성이 발생했다. 그래서 실제로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데, 교회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오히려 그들의 수입과 교육 그리고 미국이란 부글거리는 용광로에서 그들이 처한 장소에서 본질적으로 자신의 모습이 정해질 것 같다. ⑦  

 

 1999년 바티칸에서 45년간 근무했던 대주교인 뤼기 마리넬리(Luigi Marinelli)는 골수·간암으로 죽기 직전에 이렇게 증언했다.

 

 남성 동성애 로비가 교황 바오로 6세 재직 시에 교황청에서 주도적인 힘으로 부상하여 야심차며 전도유망한 성직자들에게는 승진하기 위해 보상의 도구로 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비망록 『바티칸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마리넬리는 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동시에 동성애 취향을 띠는 것은 경쟁하는 다른 후보자에 비해 승진에 있어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경쟁자가 승진에 대한 욕망을 잃게 했다고 한다. 직접 자신의 하반신을 제공하는 성직자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봉사로 마음과 영혼을 제공하고자 하는 성직자보다 보다 나은 기회를 가진다. 교황청의 많은 사제들에게, 매력적인 남자는 지적인 자들 보다 많은 호감과 관심을 끌고 있다. ⑧              

 

 동성애자로 추정되는 가톨릭 고위성직자들은 다음과 같다.

바티칸 국무장관 타르시시오 베르톤(Tarcisio Bertone) 추기경, 티볼리 교구 고위성직자 마우로 파메기아니(Mauro Parmegiani), 도미니카 공화국 교황청대사 조셉 위솔로스키(Josef Wesolowski) 대주교,  바티칸 로마 교구 행정관 프란시스코 카말도(Francisco Camaldo). ⑨  

 

 베르톤 추기경의 지시로 바티칸 당국은 사제들이 성을 살 수 있는 게이 사우나와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건물을 로마에서 구입했다. 이런 장소 중에 가장 유명한 곳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게이 목욕시설을 갖춘 유로파 멀티클럽이다. 바티칸 고위관리들의 동성애 이야기는 로마의 타블로이드 언론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으며, 멀티클럽의 웹사이트는 털이 많은 젊은 남자들이 옷을 벗고 성직자 옷으로 갈아입는 특별한 ‘곰의 밤’을 홍보했다. ⑩

 

핑크빛 교황

 

 교황 바오로 6세 ( 재위 기간: 1963-1978)

남자 동성애 명단에 오른 가장 저명한 성직자는 본명이 조반니 몬티나로 알려진 바오로 6세 교황이었다. 그의 성적 지향에 대한 증언이 여러 믿을 만한 출처에 나왔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은 벨라그란디(Bellegrandi)이다. 그는 교황청 의장대의 구성원이며,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 현대역사학 교수이고 바티칸 신문인 『로세르바토레 로만도』의 통신원이었다. 그는 그의 책 『교황의 생애』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조반니가 밀란 대주교였을 때, 그는 칭찬받지 못할 만한 일행과 함께 시민 복장으로 어느 날 밤에 경찰에 붙잡혔다. 실제로 그는 수년간 빨간 머리 배우와 특별한 우정을 나눴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 남자는 미래의 교황과의 관계를 비밀로 하지는 않았다. 그 관계는 계속되었으며 향후 몇 년간 더욱 가까워졌다.” ⑪    

 

 빨간 머리 배우인 바오로 6세의 평생의 연인은, 벨라그란디의 추정에 의하면, 파울로 칼리니(Paolo Carlini)이다. 그는 영화 “로마의 휴일 (1953)”에서 오드리 햅번, 그레고리 팩과 출연했으며 “나폴리에서 시작됐다 (1960)”에서는 클라크 케이블과 소피아 로렌과 출연했다. ⑫ 바오로 6세 재직시 칼리니는 바티칸시 안으로 자주 출입하고 한밤에 교황의 침실로 가는 엘리베이트를 타는 것이 자주 목격되었다. ⑬

 

 벨라그란디에 의하면, 바오로 6세 재직시에 바티칸 내의 업무실은 갑자기 얼굴에 화장을 하고 꽉 조이는 제복을 입은 여자 같은 젊은 남자들이 근무했다. 그들은 덕망 있는 나이든 직원을 대신했으며, 고령의 직원들은 갑자기 해고당하거나 다른 부서로 옮겨갔다. 벨라그란디는 또한 이렇게 썼다. “교황청 경찰은 마치 지하 광산과 같이 떠다니는 조직 사이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으며, 그런 스캔들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한 쪽 눈을 가끔은 두 눈을 감아, 한두명의 부지런한 편집 기자들을 실망시키며 그런 기사를 사장시켰다. 나도 그런 경험을 직접 겪었다.”⑭    

 

 바오로 6세와 영화배우 칼리니와의 관계는 교황이 1975년 12월 29일 발표한 동성애와 다른 성 변태에 관한 비판 성명을 제외하고는 대중들로부터 철저히 숨겨져 오고 있다. 성윤리에 관한 어떤 문제점에 대한 교황의 성명에서, 바오로 6세는 동성애를 하나님을 거부하는 슬픈 결과를 반영하는 심각한 타락으로 비난했다. ⑮ 이런 발표는 짜증나는 위선으로 포장된 유럽의 남자동성애들이 사회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다. 전직 프랑스 외교관인 로저 페이레피트(Roger Peyrefitte)는 이탈리아 한 잡지에 “템포”란 기사를 발표하며 교황의 오래 지속된 배우 칼리니와의 관계를 폭로했다. ⑯ 그 기사는 커다란 소동을 야기시켜, 바오로 6세는 끔직한 중상모략이라고 맹렬히 반박하며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페이레피트는 변함없는 자세를 유지하며 이탈리아 전역에 방송되는 TV 뉴스 프로그램에서 그의 고소를 반복했다. ⑰    

 

기이한 추기경들

 

 추기경 조셉 버나딘(Joseph Bernardin)은 미국 가톨릭 역사상 영향력 있는 종교계 인물로서, 그는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와 전미연합을 창설하였다. ⑱ 그의 전기작가 유진 케네디(Eugene Kennedy)에 따르면, 버나딘은 미국의 350명이상의 고위직 여러 성직자 중에서 아주 활동적인 선임 성직자였다. 그의 영향력은 선임 사제들을 훨씬 능가했다. 그의 국내 심지어 세계적인 이슈에 대한 글과 발언은 그를 과거 대주교들의 업적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⑲ 그러나 그는 1993년 11월 신시내티주 대교구 신학생인 스티븐 쿡(Steven Cook)을 성추행하고 미네소타주 위노바에서 신학생들과 사탄적인 성 의식에 참가한 혐의로 고소당했다. ⑳ 100억원 소송비용이 책정되고 그 소송은 법정 밖에서 봉합되었다. 그러나 쿡은 그의 고소들을 취소하지 않았으며 그 고소 내용들이 부정확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㉑ 33) 버나딘은 죽기 1년전에 췌장암에 걸렸다. 그의 마지막 요청에 따라 시카고시 게이 합창단(Gay Chorus)은 1996년 홀리네임 대성당에서 거행된 장례식 미사에서 연주했다. ㉒

 

 워싱턴수도 대주교인 테오도르 맥캐릭(Theodore McCarrick) 추기경은 뉴저지주 해안가 집에서 밤샘파티 중 두명의 사제와 한명의 전직 사제와 성 관계 사건으로 고소당했다. ㉓ 추기경 존 라이트(John Wright)는 피츠버그 대교구에서 시무했는데, 이전 보스턴의 사제였을 때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소년들을 아주 좋아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레이먼드 페이지(Raymond Page)는 라이트 추기경이 동성애를 하도록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주말 별장으로 소년들을 데리고 가곤 했다. 고마움의 표시로 레이먼드는 소년들에게 협조해 준 대가로 20달러를 주었다고 한다. ㉔ 추기경 라이트는 특히 세계교회주의와 종교의 자유 분야에서 강력한 개혁파였다.

 

 미국에서 동성애를 행한 추기경 중에서 프랜시스 스펠맨(Francis Spellman)은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사후에, 언론에서 그는 뉴욕의 게이클럽에서 ‘넬리’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것으로 보도했다. 스펠맨의 연인중의 한 사람은 영화 “비너스의 터치”에 출연한 브로드웨이 무용수였다. 일주일에 여러 날 밤에, 추기경은 거칠고 격렬한 성관계를 하기위해 그 무희를 태우러 리무진 차를 보내곤 했다. 그 무용수가 스펠맨에게 “어떻게 이런 타락한 생활을 하는 것을 피해가느냐?”라고 물었을 때, 스펠맨은 “누가 그것을 믿겠는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㉕

 

신학교의 별난 성적 행위들

 

 바오로 6세 재직(1963-1978) 말기에 이르러, 미국에서 사제직을 받기위해 공부하는 가톨릭 신학교 젊은 학생들 중에서 40-60%가 동성애를 했다고 한다. ㉖ 이런 게이 동성애 환경은 미시건주 플리머드의 성 요한 주립신학교가 주도하였으며, 그 학교는 영성 형성의 장소라기 보다는 펠리니의 사티리콘(풍자 음란작품)의 세트장을 연상케 했다. 그 신학교에서의 동성애 행위는 공개된 장소에서 행해졌다. 밤에 적극적인 게이들은 새로운 상대를 찾기 위해 기숙사 이 방 저 방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1985년경에 이 신학교는 동성애 온상이란 악명이 높아져서 바티칸 당국에 의해 폐교됐다. ㉗

 

 핑크빛 궁궐로 알려진 볼티모어 성 마리아 신학교에서는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마치 그리니치 빌리지(뉴욕에 있는 예술가, 작가가 많은 주택가)까지 볼티모어가 화답을 하듯이 즐겁게 뛰노는 밤을 즐기기 위해서 가죽이나 연보라색 비단 옷을 차려 입고 외출하곤 했다. 학교 차량 밴들은 수송을 제공했다. 그 학교 담당 교목은 “우리는 그들의 성지향에 대해 사제 후보자들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그런 근거로 그에게 사제 서품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한 남성의 시민권을 침해하는 것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㉘       

 

자랑스럽게 공개하라(OUT, PROUD, OPEN)

 

 일리노이주 먼델레인의 신학교에서는, 신입생들은 종종 상급생들과 교수진으로 근무하는 사제들과 성관계를 하도록 강요받았다. 교수들은 사제직을 갈망하는 학생들에게 동성애는 순결이란 미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진탕 마셔대는 분위기에서는 그들의 정통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신학생은 거의 없었다.

 

 한 신학생이 먼델레인 교구의 존 카나리(John Canary) 신부에게 이렇게 불평을 했다.

 

 “내가 문델레인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약간의 게이 학생들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한 내가 그것을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곧은 사람이며 동성애 공포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어떤 노력도 이미 형성된 집단 무리로부터 지지받고 있는 동성애라는 지하문화에 나는 대처할 수 없었다.”

 

 그것은 솔직한 남자에게는 아주 불쾌한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한 여성을 데리고 와서 쇼곡보다 댄스 음악을 연주하고 급우들이 누구와 짝을 짓고 있다는 농담을 하면, 나는 순식간에 쫓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동성애 커플이 먼델레인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친구가 아닌 커플로서.

 

 먼델레인에서 또 다른 문제는 솔직한 학생이 이런 문제에 대해 불평을 하면, 그는 보수적이라고 왕따를 당한다. 우리 중에는 순결하려고 애쓰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이런 게이 문화 속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주 흔한 것이었다. 남자들이 그들의 애정 생활에 대해 ‘자랑스럽게 공개하라’고 격려 받으면서 교내에서 사제의 축복을 받는 것 같은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나를 아주 괴롭혔다. 나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불평을 적은 마이클 샤네(Michael Shane)같은 학생들은 도덕적으로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심리학 교수에게 보내져 성 표현의 다양한 방식에 대해 관대하라는 조언을 받는다. 이런 조언을 거부하면, 그들은 사제 임용에 영적으로 부적합하다고 하여 신학교에서 쫓겨난다. ㉚

 

우리의 성적취향

 

 신학생들을 “개방되고 긍정적인” 사제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성적취향』 책은 텍사스주 샌 안토니아 신학대학원에서 정규 교재가 되었다. 이 책은 사제직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성은 단지 출산을 위한 것이란 믿음을 포함하여 많은 편견을 포기해야 한다고 아래와 같이 가르친다.

   

 “많은 사람들은 자위행위, 성적 환상과 항문성교와 같은 행위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주시하도록 배워왔다. 틀림없이 출산을 위한 관계의 모델로 적합하지 않은 동성 간의 성행위도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이런 모든 비성서적인 성행위는 한동안 비도덕적이며, 사악하며, 변태 혹은 불법이라고 정의되어져 왔다. 우리는 이 책에서 그것들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들을 실행가능한 성적 선택으로 제시할 것이다.” 

 

 그들은 학생들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표현한 성도덕에 관련된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우리의 성생활 책을 통해서 인간의 성기는 출산을 위해서 만들어졌으며 동성애, 구강 생식기 성교, 항문성교 혹은 동물과의 성교 같은 어떤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이단이라고 주장했다. 아퀴나스의 가르침은 아주 영향력이 대단하여 그 때 이후로 동성애자들은 서구사회에서 어느 곳에서도 피난처를 찾을 수 없었고 관용을 받지 못했다. 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동성애의 온상이라 불리는 신학교를 졸업한 많은 사제들이 남성동성애자 신부들 관할권 아래 놓여졌다. 그들은 성 정체성을 공개하고 동성애 부부를 받아드리도록 훈련되었다. 성직을 준비하는 남자들의 이런 방식들이 모두 좋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고위 성직자들의 10%가 소아성애 병자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㉝

 

존 제이 대학의 연구결과

 

 2004년 2월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가 위탁한 1950년에서 2002년 사이 조사에 의하면, 4,392명의 사제들이 성추행으로 고소당했으며 10,667명 이상의 피해자가 나타났다.    

 

 * 피해자의 81%는 남성이었다.

 * 22.6%는 10살 혹은 더 어린 나이였다.

   51%는 11살에서 14살 사이이며,

   27%는 15살에서 17살 사이였다.

 * 6,696건의 경우는(72%) 조사가 실행되었다.

   4,579건(80%)은 입증되었다.

   1,017건(18%)은 미입증, 83건(1.5%)은 거짓으로,

   56건에서 사제가 부인.

 * 20% 혐의가 접수된 시점에는 사제가 사망했거나 활동하지

   않은 상태.

 * 혐의는 38.4%가 1년 이내 지속되었으며, 21.8%는 1년~2년

   미만, 28%는 2년~4년, 10.2%는 5년~9년, 1% 미만은 10년 이상 지속됐다.

 

 4,392명의 사제와 관련하여, 그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 1,872명은 혐의가 입증되었으며 824명은 입증되지 않았다.

 * 50%는 최초 성추행 시기: 35세이거나 보다 적은 나이였다.

 * 거의 70%는 1970년도 이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 7% 미만은 그들 스스로도 아동이었을 때 신체적, 성적 혹은

   정서적인 추행의 피해자였음이 보고되었다. 19%는 추행 사건

   사건 기간 중에 약물이나 알콜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됐다. ㉞

 

조직범죄 피해자 보상법에 근거한 기소

 

  21세기 시작 첫 10년 말기에, 미국 주교단은 미국 가톨릭 사제의 5.6%에 해당하는 대략 6,000명의 사제에 의한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접수했다. 525명은 투옥되었으며, 3,000개 이상의 민사, 형사 소송이 미결상태로 남았다.㉟ 이런 스캔들 비용이 3조원을 초과하여 8개 교구가 파산보호를 요청할 처지였다.㊱

 

 미국의 가톨릭 사제들의 10%가 소아성애 병자로 기소되었는데, 그 숫자는 아주 놀라운 일이어서 소송 종사자들은 조직범죄 피해자 보상법에 근거하여 연방과 주정부 변호사들이 그런 고위 성직자들을 고소하도록 요청했다. ㊲

 

세계적인 문제점

 

 아일랜드, 캐나다, 영국, 라틴 아메리카, 프랑스, 독일, 오스트레일리아로 확대되어, 1조원의 비용이 소요되고 전세계적으로 재정적인 대혼란을 야기시켰다. 문제점은 비뚤어지고 문제 있는 사제들을 교구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순환근무로 인한 폐단과 교황청 사이에서 침묵의 음모로 다루어졌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재위기간 1978-2005)는 그 관습을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추행자들도 실제로 희생자였다고 주장했다. 추기경 라칭어(Ratzinger)는 “그것은 현 시대의 고도로 성적매력을 부여하는 사회의 반영”이라고 변명했다. 사제들은 일반 사회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추행사건들의 비율이 다른 직업에서 보다 결코 더 많지 않지만, 사제들은 특별히 그런 부분에서 취약하며 또한 민감하다. ㊳

 

 아동 성추행으로 유죄로 판명된 사제들의 해고를 요구하는 것에 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거부는 나치 대학살 기간 중에 교황 피오스 12세의 침묵과 연관되어있다. ㊴ 교황의 가장 수치스러운 것 중에는 추기경 라우(Law)에게 은신처를 부여한 것인데, 추기경 라우는 2002년 보스톤 대교구에서 불명예스럽게 사직했다. 또 다른 용서할 수 없는 행위는 멕시코의 신부 마시엘 데골라도(Maciel Degollado)에 대한 교황의 고집스럽고 자체적으로 정당화하는 방어였다. 데골라드 신부는 12살 정도의 사춘기 신학생들을 수차례 성추행하고 사생아로 태어난 여러 명의 자식들을 두었다. ㊵ 

 

유엔의 비난

 

 2014년 1월 16일 로마 가톨릭 교회는 유엔이 비난하는 최초이자 유일한 종교기관이 되었다. 세계적인 기구인 유엔은 바티칸 교황청이 추행혐의가 있는 사제들을 경찰에 인계하는 것보다는 다른 교구로 전근시킬 것을 권했다고 보도했다. 바티칸 전임 성범죄 검사인, 대주교 찰스 시클루나(Charles Scicluna)는 교황청이 위기를 대처하는 데 느렸으며 어떤 조치들은 달리 처리되어야 했었다고 유엔 인권위원회에 시인했다. ㊶

 

 그러나 대주교 시크루나 혹은 바티칸 성범죄 조사위원회의 어느 누구도 UN 인권 조사관인 사라 오비에도(Sara Oviedo)가 제기한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여조사관 오비에도는, 바티칸이 이런 종류의 사례를 은폐하고 모호하게 하기 위해서 바티칸 성직자 성추행에 관한 무관용 정책을 고려한다면, 바티칸이 어떻게 종교기관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 물었다. ㊷

 

 또한 바티칸 위원회는 다른 조사관인 마리아 리타(Maria Rita)가 질문한 “이런 사건들이 숨겨지고 덮이는 것이 계속된다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응답하지 않았다. ㊸

 

심장마비 사건

 

 도미니카 공화국 교황청 대사인 위슬로스키 대주교는 소년들을 바닷가로 차로 데려가서 성추행을 하고 그들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포르노 사진을 찍은 혐의로 2014년 6월 27일 기소되었다. 고소장들이 도미니카 공무원에 의해 접수되자마자, 웨슬로스키는 바타칸으로 재빨리 도망가서 신변 보호지역 안에 몸을 숨기고, 범인 인도 요청은 외교적 사면권을 지녔다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㊹ 그는 소아성애 병자로 분류된 가톨릭의 최고 성직자였다. 바티칸 구내 형사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게 될 최초의 사람이 될 뻔 했으나 2017년 8월 27일 그 대주교는 바티칸 저택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㊺

 

난공불락 요새

 

 소아성애자 추문으로 인해서, 2005년경 교황청은 약 120억원 넘는 소송비용으로 재정적자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은 증가하는 적자에 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 상태이다. 가톨릭의 실제 세계적인 재산은 교황청 내에 있는 바티칸 은행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어떤 교구들은 소송에 받아 파산될 수도 있으며 교구 학교들, 대학들과 병원들은 수십억 소송비용으로 경비가 바닥이 날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 바티칸 은행으로 간주되는 종교사역기구(IOR) 내의 예금 계좌는 안전하며, 사제들에 의해 성추행 당하여 제단에 바쳐진 미소년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여있다. 주권국가로서 교황청은 어떤 외국의 사법상의 지배를 받지 않아 50조원 이상을 지닌 기관으로 존재하고 있다.

 

 교황청은 어떤 선진 국가들도 초월하는 금 비축분이 있으며, 세계의 많은 나라의 여러 지역과 동등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품을 지니고 있는 호화로운 궁전들도 있다. 그런 부는 비록 가톨릭의 신실한 신자들의 헌금이 일시적으로 다소 줄어들지라도 계속 남아있을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또한 늘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