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학살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2부 9장)

훈독왕 | 20220201040026

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9장

  집단학살

  (Genocide)

 

  제사장들이 일곱 번째 나팔을 불 때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를 그녀가 숨겼음이니라.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나 하도록 오직 너희는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금은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백성이 나팔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그 성안에 있는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여호수아 6:16-21)

 

 그들 모두를 죽여라.

   여자들과 아이들을 죽여라.

   노인들과 유아들을 죽여라.

   과부들과 고아들을 죽여라.

   가축을 죽여라, 모든 소, 양, 염소, 오리와 나귀

   산야가 피로 흐르게 하라.

 

 이것은 구약성경의 하나님이 고대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 할 바로 그때 그들에게 내린 계명이었다. 성경에 의하면 히브리인들은 그 계명에 순종했다. 그들은 마주친 거의 모든 사람과 사물을 도륙했다: 히타이트(헷)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스족, 히위족 그리고 여부스족. 한편 그 땅의 원주민 중에서 아주 적은 수의 기생 라합과 그녀의 가족들은 살았다. 이런 자비로운 행위는 후에 원통함의 근원이 되었다.

 

  시편 (106:34-39)에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멸하라고 명령하신 그 이방 민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그 이방 민족들과 섞여서 그 행위를 배우며 그들의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었더라. 그들이 그들의 자녀를 악귀들에게 희생 제물로 바쳤도다. 무죄한 피 곧 그들의 자손의 피를 흘려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로 더러워졌도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로 더러워지니 그들의 행동이 음탕하도다.        

 

모든 문헌에서 가장 불쾌한 존재

 

 구약성경에서 대학살 이야기와 관련하여, 영국 생물학자 리차드 다우킨스(Richard Dawkins)는 그의 저서 『하나님의 망상』에서 아래와 같이 썼다.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모든 문헌에서 가장 불쾌한 인물로 이렇게 비유했다: 질투심이 많고 거만하다. 불공정하고, 용서할 줄 모르며 만사를 자기 뜻대로 하려는 괴짜, 보복하려 하는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부, 여성 혐오자, 동성애 공포자, 인종차별자, 영아살해범, 집단학살자, 자식 살해자, 지독한 역병 같은 존재, 과대망상자, 변태성욕자, 그리고 변덕스럽고 악의적인 남을 괴롭히는 사람. ①

   

 비슷하게, 찰스 템플턴(Charles Templeton)은 『하나님 안녕』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구약의 하나님은 종교의 가르침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과는 아주 다르다. 구약의 하나님은 인간의 결점들, 허약함 그리고 사람들의 관습을 고스란히 지닌 아주 인간적인 신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정의는 현대적인 기준에서 보면 터무니없으며, 그 편견들은 뿌리 깊고 융통성이 없다. 구약의 하나님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불편하고, 보복하려 하고 그의 특권으로 질투하고 있다. ②

 

원시 종족의 하나님

 

 템플턴은 모세와 여호수아 하나님과 관련한 그의 시도로 인해서 그는 빌리 그래햄 목사와의 선교를 포기하고 무신론자의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구약성경을 조심스럽게 읽어보면 그곳에 묘사된 신에 대한 나의 의심을 단지 확인시켜줄 뿐이다. 믿기를 원했지만 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 드러난 하나님은 원시적인 한 종족의 하나님이었으며, 그 하나님은 필요상 히브리 민족의 지도자들이 변덕스럽고 아주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을 믿음의 중심적인 핵 주변에서 그들이 단결하게 하고 화합하는 집단으로 만드는 것을 가능케 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그런 하나님이다.③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성경학 교수들은 구약성경의 대학살에 대해 질문 받으면, 그런 구절은 단지 고대 히브리 민족의 과장된 수사학의 예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남동부 침례교 신학교의 히스 토마스(Heath Thomas)교수는 그 구절들은 원주민 가나안 부족들이 전멸된 것이 아니라 단지 재산을 몰수당한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④

 

 흔들리는 근본주의 신학자들

 

 이런 주장은 무디 성경학교와 일리노이주 위톤 대학의 구약성경 교수인 존 에이치 월톤(John H. Walton)과 스코틀랜드 성앤드류 대학의 대학원 학생인 그의 아들 하비 월턴(Harvey Walton)의 공동저서인 『이스라엘 정복으로 상실된 세계』에서 반복된다. 왈톤 부자는 구약성경의 전쟁 이야기는 고대 독자들이 이해했을 것 같은 상징과 과장법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고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가 성전, 지하드 혹은 집단학살 혹은 심지어 정복과 같은 사건을 번역할 때, 우리는 그 사건을 적절하게 번역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단어들과 개념은 우리에게 그 정복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진 그 논리와 이미지가 그 단어들의 함축이든지 혹은 목적의 관점이든지 간에 본래의 청중에게 의미 되었을 수 있었던 것 같은 내용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가 집단학살과 같은 단어를 들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원문은 정복 사건을 결코 해서는 안되는 행위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지 않다. ⑤

 

 도서 평론가인 랜달 라우세(Randal Rauser)는 위의 주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유감스럽게도 위의 논리는 아주 놀라운 정도로 잘못되었다. 우선, 월턴 부자는 집단학살 그 자체의 개념과 대학살에 대한 도덕적인 평가(예를 들면, 대학살은 결코 행해져서는 안된다)를 결합하고 있다. 게다가, 집단학살자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제시하는 도덕적 평가는 명백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행위들이 집단학살에 해당되는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에서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나치는 고대 이스라엘민족이 그들 민족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과 꼭 같이 그들의 행위를 게르만 민족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할 것이다. 어느 경우에 대해서도 우리가 문제가 된 이런 행위들이 대학살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는데 있어, 우리는 그들의 변명조 방어 논리에 어떤 정당함을 부여하지 않는다. ⑥

 

언어적인 문자상의 오해

 

  보다 더 기묘하게도, 월턴 부자는 중요한 히브리어 단어 herem을 일반적으로 철저하게 파괴하라는 명령으로 잘못 번역하는 것을 반박한다. 월턴 부자는 그 단어는 개개인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집단의 정체성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⑦ 이 주장에 대해 라우세는 아래와 같이 반박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사람들을 단순히 죽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가나안 부족의 정체성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맞는 말이다,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정체성을 파괴하기 위해서 요구될 수도 있으며, 그 목표가 사람보다는 정체성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그것은 월톤 부자가 믿는 것처럼 그 행위가 대학살이 아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월톤 부자는 문제를 완전히 거꾸로 다루고 있다. 어떤 사건을 대학살로 규정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종이나 문화적 혹은 종교적인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⑧

 

 구약성경에서의 대학살을 설명하는 23)  또 다른 시도에서, 가톨릭 성서 번역학자인 성 마리아 신학교 토미 레인(Tommy Lane)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판단했다고 주장한다. ⑨ 달리 말하면, 성경속의 사람들은 진정한 하나님은-예수에 의해 다르게 밝혀진 하나님과 같이-전쟁과 피를 흘리는 세상과는 멀리 동떨어져 있음을 알지 못했다.  

 

구약성경과 이슬람

 

 이슬람 옹호자들은 지하드(성전)와 폭력의 문제에서 코란과 구약성경 사이에는 강한 유사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해 왔다. ⑩ 구약성경은 히브리인들에게 가나안 주민을 완전히 파괴하라고 명령한 반면에(신명기 7:2), 알라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너희가 어디서 불신자를 발견하더라도 그들을 죽이고(코란 9:5), 불신자와 위선자들과 전쟁을 하고 그들을 과격하게 다루라고(코란 9:73) 촉구했다. 비슷하게 민수기(31:17)에서 모세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어린 아이들 중에서 남자아이를 죽이고 남자를 성적으로 알게 된 모든 여성들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한편 알라는 너희가 전투 중에 불신자를 만나면 누구든지 그들 목을 세게 쳐라. 너희가 그들을 완전히 제압했으면, 그들을 단단히 결박을 하라. (코란 47:4).

 

  그러나 두 종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모세의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에게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7 부족들(레바논 남서부 지역에 거주: 히타이,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에 대해서 행동을 개시하라고 명령한다. 반면에 알라신은 추종자들에게 종족 혹은 장소에 관계없이 모든 불신자들을 죽이라고 지시한다.

 

 로버트 스펜서(Robert Spencer)는 이렇게 그 차이를 주장한다.

 

코란은 신도들에게 어떤 불신자와 싸워야 하는지, 혹은 어떤 시기에 혹은 어떤 다른 차이로 인해 싸우라고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무조건 싸우라고 촉구한다. 있는 그대로 경전을 해석하면, 불신자에 대항하여 전쟁을 하라는 명령은 특정 국가에 한정되지 않으며 전세계적이다. 대조적으로 구약은 이스라엘인들에게 단지 특정한 민족과 전쟁을 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틀림없이 현대적인 감정의 측면에서는 귀에 거슬리는 것이나, 그것은 꼭 그렇게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이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전세계에서 이 성경 구절로 인해서 그들이 비전투원인 시민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는 테러 단체를 만들지 않는 이유이다. ⑪     

     

 살해의 필요성

 

  이집트와 아시리아의 고대 큰 왕국주변에는, 서로 다른 여러 유목민족 집단이 존재했다. 이런 부족민들은 그들 자신을 지리와 역사의 중심으로 간주했으며, 그래서 그들 부족의 중요성을 단지 한 단락으로 서술하려고 하는 역사가나 작가의 극단적인 무지를 보면 크게 놀랄 것이다.

 

 이런 사막 지역은 사람이 살기에 거칠어서 그들은 계속해서 물과 경작할 수 있는 땅을 찾아 여러 곳을 다녀야만 했다. 예를 들면 스키타이족은 마차 위에서 생활하며, 살기 위해 싸우고 싸우기 위해 살고, 적의 피를 마시고 적의 머리 가죽을 냅킨으로 사용했던 맹렬하고 수염을 기른 거인족이었다. ⑫ 히포크라테스는 스키타이 여성들은 처녀였을 때에는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말 위에서 창을 던졌다고 서술했다. 그들은 세 명의 적을 죽일 때까지 처녀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여성들은 그들의 모든 힘이 오른쪽 어깨와 오른팔에 전달되도록 하기위해서, 그들은 오른쪽 유방을 잘라내고 불로 지졌다. ⑬

 

 히타이족도 똑같이 맹렬했다. 그들은 군사적인 요충지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의 수자원을 지배했다. 그들은 아르메니아 근처 산에서 철을 채굴하여 그들을 강력한 존재로 만든 철제 무기를 만들었다. 그들이 포로로 잡은 남자들은 광산에서 일을 해야 했으며, 예쁜 여자들은 첩으로 팔렸으며 노인과 아이들은 살해됐다. ⑭

 

가나안족 종교

 

 가나안 사람들은 아주 많은 신들을 숭배했다. 주로 그 신들은 통치하는 왕과 왕비로서 엘과 아세라와 관련된 복잡한 계급 속에서 나열된 자연신들을 대표한다. 그리고 전쟁과 불화의 처녀신 애냇과 그녀의 자매인 순결한 바알 하다드가 존재한다. 아타르는 죽은 바알을 대신하려 노력했으나 실패했던 샛별 신이다. 바알 하다드는 폭풍의 신이다. 바알 함몬은 모든 에너지를 재충전시켜 주는 풍요의 신이며, 지중해 서쪽의 페니키아 식민지에서 숭배되었다. 바알 하다드의 아버지인 다곤은 풍요와 곡식의 신이다. 에시문은 치유의 신이며, 발라트 애실피우스는 치유의 여신이다. 이스햇은 애냇에게 살해된 불의 여신이며 코타르 카시스는 역병과 동시에 치유의 신이다. 얌은 바다와 강의 신이다. 모트 혹은 마와르는 죽음의 신이다. 로탄은 몸을 비비꼰 입곱 머리 뱀이며 얌의 협력자이다. ⑮

 

바알 사이클

 

  가나안 신에 대한 이야기인 우가리트 지역의 ‘바알 사이클’에서, 바알 하다드 천둥신은 얌 신에게 도전을 받고 그를 물리친다. 얌은 바다의 신으로, 장인의 신인 코타르 카시스가 그를 위해 만든 두 개의 마술적인 무기를 사용한다. 그 후에 여왕 신 아쉬랫과 전쟁의 신 애냇의 도움으로, 바알은 두뇌의 신 엘이 그에게 궁전을 허락하도록 설득한다. 엘이 승락하니, 코타르 카시스가 그 궁전을 건축한다. 궁전이 건축된 후에, 바알은 궁전 창문 밖에서 천둥치는 함성을 내질러 죽음의 신인 모트에게 도전한다. 모트는 창문으로 들어가 바알을 삼켜서 그를 지하 세계로 보낸다. 누구도 비를 내리게 할 수 없어, 바알이 없는 동안에 엄청난 가뭄이 일어난다. 다른 신들, 특히 엘과 애냇은 바알이 지하세계로 끌려가게 되어 제정신이 아니었다. 애냇은 지하세계로 가서 칼로 모트를 공격하여 그를 갈아 작게 조각나게 하여 멀리 넓게 흩어버린다. 모트가 패배함으로 바알은 돌아오게 되고 대지는 비가 와서 활기를 되찾는다. ⑯

 

아동 번제

 

 이것은 계속되는 가뭄 이후에 신들에 대한 어떤 행위를 나타내며, 농업에 종사하는 가나안 문명과 관련된 삶과 죽음의 관심사를 묘사한다. ⑰ 가나안 신들에게 번제를 드림으로써, 사람들은 신들을 달래고 환심을 사려고 했다. 그런 믿음은 어떤 잘못된 ‘세부적인 조치’가 없다면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예레미아(19:5)에 의하면, 가나안 신들은 아동 제물을 요구했다. “또 그들은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성경의 다른 구절(신명기 12:31)에서도 아동 번제는 가나안과 주변 부족들 종교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명백하게 드러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가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그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가나안 부족을 모두 제거하는 것을 실패하여, 이런 풍습이 그 후 몇 세기 동안 이스라엘 문화와 종교에 스며들게 됐다. 몰록과 바알 같은 가나안 신들을 숭배하는 중심지역들이 변절한 왕들에 의해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에 설치되었다. 열왕기하에서 묘사된 것처럼 아동 제물은 예루살렘 바로 외곽 힌놈 골짜기에서 자주 행해졌다. 그러나 유다 왕국의 요시아 왕 같은 종교 개혁자들은 이런 곳을 허물고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있는 번제 장소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느 누구도 몰록 신에게 드리기 위하여 그 자녀를 불 사이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열왕기하 23:10)”

 

가나안에서 카르타고까지

 

 비록 가나안 문명이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 내몰려졌지만, 그 문명은 북아프리카 지중해 해안을 따라 세워진 모든 식민지에 출현하여 수세기 동안 번성했다. ⑱ 이런 곳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곳은 오늘날 튀니지라 불리는 카르타고 식민지였다. 그 도시국가는 아주 강력하게 되어, 한 때 로마공화국의 경쟁자가 되었다. 카르타고 사람들은 가나안 언어를 말하고 가나안 종교를 실천했다. 그들은 또한 1920년대 이후 고고학 발굴로 확인된 것에 의하면 아동 제물을 아주 잔인하게 선호하는 풍습을 종교와 함께 가나안에서 들여왔다. ⑲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 역사학자 클레이타르크스(Cleitarchus)는 카르타고의 풍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중앙에는 크로노스(카르타고 대표신인 발 함몬의 지역 이름) 청동 동상이 서있고, 그의 손은 청동 화로 위로 뻗어있고, 화로의 불꽃은 아이를 집어삼켰다. 화염이 몸 위로 떨어질 때, 사지가 수축되면서 벌어진 입은 거의 수축된 몸체가 미끄러져 화로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마치 웃고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활짝웃는다’는 단어가 냉소적인 웃음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웃으면서 죽기 때문이다. 

 

 다른 그리스 역사학자인 디도스 시쿨루스(Diodorus Siculus)는 카르타고 함락 100여년 후에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동족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그들 도시에는 손바닥을 위로 하고 땅을 향해서 기울어진 상태로 손을 뻗고 있는 크로노스 청동상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곳에 놓여지면 그들은 아래로 굴러서 불이 가득찬 구덩이로 떨어졌다. ㉑

 

 같은 시기에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풀루타크(Plutarch)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아주 잘 알고 이해하면서, 그들은 직접 그들의 자식들을 번제로 드렸다.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어린아이들을 돈으로 사서, 마치 아이들이 많은 양들이나 새끼 새들을 다루듯이 그들의 목을 베곤 했다. 그러는 동안 그 엄마는 한방울의 눈물이나 슬픈 기색이 없이 옆에 서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만일 그 엄마가 조금의 슬픈 기색이나 한방울의 눈물이라도 흘리면, 그 여자는 돈을 빼앗기고 그래도 그 아이는 번제로 바쳐졌다. 동상 앞의 전 구역은 요란스런 피리와 북소리로 가득차서 울부짓는 비명소리는 사람들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300여명의 많은 카르타고 아이들이, 보통 하류계층에서 하루 동안에 번제로 바쳐지기도 했다.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상류계층들은 그들이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에 실패하여 신들이 비위가 상했다고 생각하면서 수백명의 그들 자신의 아들들과 딸들을 죽게했다. ㉓

 

희생의 현장들

 

 1921년 프랑스 고고학자가 발굴한 카르타고 한 유적지에서는 수백개의 무덤 표지가 있는 공동묘지가 발견됐다. 각 무덤 밑에는 아동이나 동물의 화장 유해들이 담긴 진흙 항아리가 있었다. (가끔은 일곱 개나 되는 많은 항아리들이 단 하나의 표지 밑의 다른 항아리 위에서 발견됐다.) 그 토양은 비옥했으며 올리브나무 숯이 있어 불이 오랫동안 계속 타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을 도벳(매장지)이로 불렀는데, 그 곳은 예레미야 7:31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살랏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 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에서 언급된다. 도벳은 예루살렘 근처의 아동번제 장소를 가리키는 히브리 단어이다. ㉔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많은 도벳 공동묘지들이 발견됐다. 가장 큰 곳에는 항아리 속에 약간의 동물뿐만 아니라 2만여명의 아동 유해들이 들어있었다. ㉕

 옥스포드 대학의 교양학부 조세핀 퀸(Josepine Quinn) 박사는 2014년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카르타고 아동 번제에 관한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는 것이 점차로 명백해지고 있다. ··· 아동번제에 관한 고고학적, 문헌적, 기록상의 증거는 압도적으로 많다.”㉖

 

종교의식 매춘과 소아성애

 

 고대 근동지역에서 자연의 리듬은 신들의 정기적인 출현 혹은 부재의 결과로서 나타났다. 성적인 상징물을 포함하는 종교의식은 신의 축복을 구하기 위해서 계획되었다. 남근 동상은 축제의 일부였다. 오시리스 신이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소생할 때, 『사자의 책』에서 묘사된 것처럼, 이시스 여신은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으며, 여신의 입은 신성한 남근 근처에 있는 모습이 보여 진다. 다른 남성 신들과 여신들은 성적 부속물을 제공받은 인간 모습을 대표하게 된다.  ㉗

 

 이집트, 슈메르와 다른 고대 근동지역 사회에서는, 창조는 존재하는 모든 자의 부모로서 초자연적이며 원시적인 부부와 함께 성교와 출생의 한 과정으로 상상되어졌다. 가끔 성교는 숭배의 행위로써 간주되었기 때문에, 종교의식 성관계와 성스러운 매춘은 풍요와 숭배의 주된 특성이었다. ㉘ 성스러운 혹은 사원 매춘은 남성과 여성 창녀가 관여했고, 일시적으로 혹은 영원히 그 역할을 하고 사원을 대표해서 이성애와 동성애 그리고 짐승과의 성행위를 자행했다. 사원에 제물을 드렸던 창녀와 고객은 신들을 위한 대리자 역할을 했다. ㉙

 

  10살이나 11살의 어린 남자와 여자 아이들이 이슈타르 (고대 앗시리아, 바빌로니아의 사랑·풍요·전쟁의 여신) 사원으로 보내지는 것은 특별한 영광으로 간주되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낯선 사람들의 성적 욕구에 봉사하도록 훈련되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 줄리어스 맥밀란 대학의 동양학자 거노트 빌헬름(Gernot Wilhelm)은 재미있는 법률 문서를 발견했다. 그것은 약 3,300년 역사가 된 것으로, 그 문서는 한 남자가 자기 딸이 창녀 역할을 하도록 어떻게 그 딸을 이슈타르 사원으로 데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이집트 두루마리 문서는 사춘기 이전의 여성 사제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㉚ 그 문서에 따르면, 소녀들은 사원에서 첫 월경 때까지 창녀로 일했으며, 그 후에 그들은 그 임무에서 벗어났다. ㉛

 

초월적인 신

 

 아브라함과 모세에 관한 성경 이야기에서 보인 인간과 신과의 도덕적인 대화는 고대 근동의 다신교 종교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신교 종교들은 풍부한 사건들, 질투심, 남성 신과 여성 신들을 포함한 모든 신들 사이에서의 논쟁으로 가득 차 있다. 즉 그것들은 인간이 많이 관여하지 않는 수많은 통속극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왕들은 성혼 즉 남성신과 여성신과의 결혼을 재현하는 어떤 상징적인 의식에서 어떤 종교적인 역할을 해야만 했다. ㉜

 창세기는 근본적으로 다른 창조 이야기를 제시하는데, 그 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표현된 그의 의도는 우주가 존재하는 힘을 지닌다. (창세기 1:1) 유대주의가 했던 최초의 일은 하나님을 성적으로 거세하는 것이었다: 즉 “성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 그의 뜻대로 태초에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

 

 이런 현상은 모든 다른 종교와의 관계에서 보면 아주 급진적인 차단이었으며, 그런 조치가 유일하게 인류 역사를 변화시켰다. 반면에 실제로 모든 종교의 신들은 성적인 관계에 관여했다. 근동에서, 바빌로니아 여신 이슈타르는 바빌로니아의 남성 영웅인 길마메슈를 성적 대상으로 유혹했다. ㉝ 이집트 종교에서 오리시스 신은 그의 누이 이시스 여신과 성관계를 하여, 그 여신은 호루스 신을 임신했다. ㉞

 

 비뚤어진 이교도 신들

 

 가나안에서 최고의 신인 엘은 애세라와 성관계를 한다. ㉟ 힌두교 신앙에서는 크리슈나 신은 성적으로 왕성하여, 많은 부인과 추종하는 래드하를 거느렸으며, 크리슈나의 아들인 삼바신은 인간 남녀들을 성적으로 유혹했다. 그리스 신앙에서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헤라와 결혼하고, 그러고도 여성들을 따라다니고, 미소년 가니메데를 납치하고 평소에 자위행위를 했다.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은 앰피트리트와 결혼하고, 디미터를 뒤쫓았으며 탄타루스를 강간했다. 로마에서도 여러 신들은 성적으로 남성들과 여성들을 뒤쫓았다. ㊱

 

 신들의 성적 행위에 관련하여, 종교들 그 자체가 많은 형태의 성행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고대 근동과 여타 지역에서는 처녀들은 남편들과 관계하기 전에 성직자에 의해 처녀성을 잃었다. 신성한 혹은 종교의식 매춘이 거의 보편화되어 있었다. ㊲

 

 정신의학자이며 성 역사학자인 노만 슈만(Norman Sussman)은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남녀 창녀들은 일시적으로 혹은 영원히 시중을 들거나, 이성애·동성애 구강 생식기 성교·수간(동물 성교) 그리고 다른 형태의 성관계를 행하며, 신전을 위해서 그들의 호의를 베푼다. ㊳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에서는 년중 성관계 의식이 왕과 여성사제들 사이에서 행해졌다. 여자 창녀들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페니키아, 사이프러스, 고린도, 카르타고, 시실리, 이집트, 리비아, 서아프리카 그리고 고대와 현대 인도의 신전과 사원에서 남성 참배자들과 성관계를 했다. ㊳

       

유대주의 도전

 

 고대 이스라엘 자체에서, 사원 매춘을 재도입하고자 하는 반복된 시도가 있었으며, 그 결과는 사이비 종교 성관계에 반대하는 여러 차례의 유대인 전쟁으로 나타났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유대왕 아사는 열왕기상(15:12)에서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는 모든 우상을 없애고”라고 언급되며, 열왕기상(22:46)에서 “그의 후계자 여호사벳 왕은 그 아버지 아사의 통치 이후에도 사원에 계속 남아 있었던 남자 매춘자들 나머지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고 하며, 열왕기하(23:4-7)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요시아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어다가 예루살렘 기드론 밭에서 불살라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의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딸과 하늘의 모든 별들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가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곳은 여인들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

 

 유대주의는 사원 매춘이 더 이상 종교나 사회생활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 성행위에 관한 제한을 두었다. 그들의 신 야훼는 어떤 성적인 부속물을 갖지 않았으며, 심지어 상징적으로라도 성 종교의식에 참가하는 것이 기대되지 않았다. ㊵ 성은 신성시되어져야만 했으며, 그것은 히브리어에서는 세상과는 분리되며 남편과 아내의 침실이 있는 가정에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행위에 관한 유대주의의 제한은 사회가 진보하는 것을 가능케하는 본질적인 요소 중의 하나였다. ㊶

 

집단 학살의 도덕성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스라엘인의 파괴행위가 가나안 부족의 도덕 행위에 대한 박멸이었을까? 하나님의 의도가 가나안 문화와 그것에 관련된 사람이면 누구든지 박멸하는 것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도시에서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아이들이 죽었을까? 확실히, 적어도 수만 명은 될 것이다. 또 다른 의문점은 아동 번제와 사원 창녀로서 사춘기 이전과 청소년 나이의 청년들에게 행해진 국가 주도의 신성한 강간이 더 이상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후의 몇 세기 동안에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까? 수천만명?

 

 유대-기독교 계시와 무관하게 발달하게 된 현대세계가 아동 번제와 종교의식 매춘을 거부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 비록 그것이 성취되는 데 수세기가 걸렸지만, 이런 거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인들에게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시행하라고 명령했던 집단학살 행위와 같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