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하나님 아버지
제 8장
사형
(The Death Penalty)
아마도 여러분은 출애굽기 20:13에 있는 여섯 번째 계명 “살인하지(murder) 말라”는 계명을 “죽이지(kill) 말라”로 오해하는(혹은 오역하는) 여러 문헌들(성경이나 인용 책 등)을 접하게 된다. 히브리어 원문의 “lo tirtsah"는 아주 명백하다. 왜냐하면 동사 'ratsakh'는 ‘죽이다(kill)’가 아닌 ‘살인하다(murder)’로 풀이된다. 만일 그 계명이 '죽이다(kill)'를 금지한다는 것으로 해석되면, 그것은 유대주의를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에 세우게 될 것이며, 심지어 전투 중에도 ‘죽이지 않는 그런 행위’를 평화주의자로 만들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방어적이며 찬사를 받을 견해일 수도 있으나, 그것은 명백하게 성경의 견해가 아니다.
베렐 랑(Berel Lang), 트리트니 대학교 구약성경 신학교수, 2004.
살인하다와 죽이다
히브리어 동사 ratsakh에 대한 오역으로, 전세계 사람들은 살상무기 금지와 방위비 종결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오역은 러시아계 퀘이커 교도들이 사람 몸에 있는 기생하는 이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고 그것들을 다른 곳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① 히브리어 동사인 'ratsakh'는 미리 계획된 살인을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다. 그것은 결코 사형집행이나 혹은 전쟁 중의 적군을 죽이는 그런 합법적인 살해로 사용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킹 제임즈 영어성경20) 번역에서 유대 학자들이 주장하는 너는 ‘죽이지(kill)’ 말라는 표현은 아주 의미가 넓어서 오해의 소지가 있음으로 ‘살인하다 murder’로 번역하는 것이 올바르다. ② 이 점에 대해서 아드리안 에벤스(Adrian Ebens)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살인하다”와 “죽이다”를 의미하는 두개의 다른 히브리어 단어(ratsakh/mut)와 두 개의 다른 그리스어 단어(phoneuo/ apokteino)가 존재한다. 하나는 ‘살인하다’이며 다른 하나는 ‘죽이다’이다. 후자가 아닌, 전자를 십계명에서 금지한 것이다. 실제로, 히브리어 동사 ratsakh는 영어 단어 ‘살인하다(murder)’보다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ratsakh는 또한 부주의 혹은 소홀함으로 인한 죽음도 포함하나 결코 전쟁 중에 사람을 죽이는 것을 묘사할 때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대부분의 현대 번역들이 여섯 번째 십계명을 ‘너는 죽이지 말라’보다는 너는 살인하지 말라’로 해석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번역을 공부하느냐에 따라 아주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성경 번역에서 계속 인기를 끄는 킹 제임스 번역판은 그 구절을 ‘너는 죽이지 말라’로 하여, 그 구절을 아주 잘못 번역하는 여지를 남겼다. 만일 ‘너는 살인하지 말라’로 의도된 의미가 ‘결코 죽이지 말라’ 정도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드러내놓고 지지한 이스라엘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모든 유혈 행위(신명기 20장: 전투에 임하는 계명)는 하나님 자신의 계명에 대한 위반이 될 것이다. ③
집행자로서의 하나님
히브리어 단어 ratsakh는 단지 의도된 살인에만 해당된다는 주장은 하나님 자신이 구약전체를 통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명령한다는 사실에 의해 지지된다. 스위스 예수회 신학자 레이먼드 슈와져(Raymond Schwager)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 구절들은 하나님이 명시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죽일 것을 명령한 곳은 무수히 많다. 야훼 하나님 자신이 격렬한 처벌의 직접적인 집행자로 보이는 약 천개 이상의 구절과 하나님이 범죄자에게 처벌자의 칼을 전달하는 많은 문서를 제외하더라도, 백개 이상의 다른 구절들에서 야훼 하나님은 시림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이런 구절들은 하나님 자신이 직접 죽이는 행위를 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다소 냉담한 모습을 유지한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서 명령을 하는 자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다. ④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죽이는 것을 명령하는 중요한 성경상의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어가서 네 앞에서 여러 민족을...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완전히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신명기 7:1-2)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있는 자들을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신명기 20:1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 아동과 젖먹는 아이와 소, 양,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사무엘상 15:3)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붙들어 바위에 내리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시편 137:8-9)
사형에 처할 범죄
십계명에 뒤이은 출애굽기 구절은 살인이나, 신체적으로 자신의 부모를 폭행하거나 피해자를 노예로 팔기 위해 납치하는 행위에 대해 사형을 명령한다.
출애굽기(21:12-16)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 손에 맡겼으면, 내가 한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갈 것이며, 사람이 그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내 단에서라도 그를 잡아내어 죽일지니라.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으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위기 20:9-16에서는 사형은 자신의 부모를 저주하거나, 간통, 근친상간, 동성에 그리고 수간(동물과의 성관계)을 포함하는 일련의 행위에 대해 규정되어 있다.
누구든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한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누구든지 그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그의 며느리와 동침하거든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하였음이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남자가 여인과 동침하듯이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아내와 그 장모를 함께 데리고 살면 악행인 즉 그와 그 장모를 함께 불사를지니 이는 너희 중에 악행이 없게 함이니라.
누구든지 남자가 짐승과 교합하면 반드시 죽이고 너희는 그 짐승도 죽일 것이며 여자가 짐승에게 가까이하여 교합하거든 너는 여자와 짐승을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위기 20:27은 그 항목에 마녀와 영매자들을 첨가한다. “너희들 중에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남자나 여자나 그들을 반드시 죽어야할지니. 돌로 그들를 쳐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피의 복수자들
민수기에서는 살인 희생자의 가족은 ‘피의 복수자’가 될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민수기(35:16-21)에 기록되어 있다.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 죽이면 이는 살인한 자니 이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살인자이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살인자이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반드시 그 살인자를 친히 죽일 것임이니 그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요.
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거나 악의를 가지고 손으로 쳐죽이면 그 친 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살인하였음이라.
피를 복수하는 자가 그 살인자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니라
한편 (민수기 35:9-12)에서는 사람을 죽여야 할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제한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복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민수기에서는 또한 사형선고는 증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 한 명의 목격자의 증언만으로는 실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인 살인자를 증인들의 증거에 따라 죽일 것이나 한 사람 증인의 증거만 따라 죽이지 말 것이요.” (민수기 35:30)
금지된 절차
모세 율법의 엄격함에 목소리 높여 반대하는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사형을 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 여전히 잘못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상황적인 증거는 사형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는 어떤 사람이 사형으로 처벌될 수 있는 어떤 율법을 어기는 것을 목격한 흠잡을 데 없는 두 명의 증인을 필요로 했다. 그 다음에는, 이 두명의 증인들은 피고에게-그가 알고 있을지라도-그가 금지된 행동을 함으로써 그가 받을 사형 처벌을 사전에 경고했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그 피고는 반드시 경고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저항하면서 그런 범죄를 반드시 범했어야 한다. 한편 가해자가 다소 주저했다면, 그것은 사형이 그의 범죄에 적용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⑤
동성애와 과학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게이(남성동성애자)와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에 대한 사형선고를 요구하는 어떤 율법은 틀림없이 야만성과 인간의 성에 대한 원시적인 해석이라고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이 1973년까지 주장했던 것처럼, 많은 과학자들은 현재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결코 사악한 행위나 질병이 아니라고도 주장한다. ⑥ 전임 솔트협회 연구원이며 동성애자인 시몬 리베이(Simon LeVay)의 조사연구는 성지향성은 유전적일 수도 있다고 결론지었다. 21) 그는 동성애와 이성애 남자에서 뇌의 시상하부 22) 부분에서 차이를 지적했으며, 남성 동성애자 중에서 그들의 몸이 야윈 상태가 되거나 바제도 질병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또한 갑상선을 자극하는 호르몬 흡수장치의 존재에서 차이 점를 보인다고도 지적했다. ⑦
다른 과학자들은 리베이는 그의 연구에서 중요한 방법론적인 실수를 범했다고 그를 비판했다. 1980년대 말기와 1990년 초기에 많은 실험 대상자들, 특별히 동성애 남성들이 여성보다 훨씬 더 많이 파급되었던 질병인 에이즈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⑧ 리베이는 이성애자 시체의 비교 집단이 모두 이성애자였다는 가설을 포함했다. 실제로 레베이의 모든 동성애 실험 대상자들은 에이즈로 죽었다. 그들의 보다 작은 두뇌 송이들은 결코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에이즈와 연관된 두뇌 파손이 원인이었다. ⑨
상반된 연구 결과들⑩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전방 맞교차(AC)라 알려진 두뇌의 한 영역은 “동성애 경우에는 이성애 보다 반대로 더욱 크다”고 한다. 이것은 성지향성은 뇌에서 성적으로 다르게 구별되는 상태를 반영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이다. ⑪ 다른 연구가들은 120명의 개인 시체에서 그런 연구 결과들을 증명하려고 노력했으나, 그들은 나이와 관련한 전방 맞교차(AC), 에이즈 바이러스(HIV) 상태 혹은 성적 지향성에 관한 어떤 변화를 발견하지 못했다.⑫
또한 다른 연구는 어린 시절의 경험뿐만 아니라 심리적이며 환경적인 영향을 지적한다. 정신의학자인 비네(Byne)와 파슨즈(Parsons)는 『보편적 정신의학 기록』이라는 책에 기고한 글에서, “미래의 성적 지향성의 단계는 어린 시절의 발육기간 중에 아마도 생애 첫 4년에 걸친 경험으로 굳어지는 것이 타당성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동성애 원인에 대한 현재의 심리 사회적인 설명이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그래서 동성애 원인을 자연스럽게 생물학에 의지하는 것도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로서는 생물학적인 대안들이 보다 나은 설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현재의 경향은 오늘날의 심리사회적인 유형들에 대한 학자들의 설명의 타당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⑬
동성애는 정신병인가?
여러 연구에서 보듯이, 동성애에 대한 생물학적이며 유전적인 원인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는 결코 정립되지 않았다. 초기에 언급되었듯이, 1973년에 미국 정신의학협회는 동성애를 정신적 장애 항목에서 제거했다. 그 결정은 새로운 연구의 결과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로날드 베이어(Ronald Bayer)는 그 결정에 관한 가장 광범위한 견해를 지닌 학자로, 그는 다음과 같이 실제로 발생한 것을 묘사하고 있다. 모든 권위적 행위에 도전했던 격렬한 평등주의 사상으로 인해서 현대의 정신의학 전문가들이 동성애자들은 동성애가 치유될 수 없는 유전적인 질병이라고 생각하도록 강요했다. 그 결과는 동성애의 유전 현상이 이성을 근거로 한 과학적인 진실에 가까운 어떤 이론이 아니라, 대신에 오늘날의 이념적인 잣대인 평등주의 사상으로 비롯된 것이었다. ⑭
『성적행동 기록』에서 시그문드 프로이드(Sigmund Freud. 1916)는 지나치게 애정이 많은 어머니와 무직이거나 혹은 집을 자주 비우는 아버지로 인해 야기된 정신장애로써 동성애를 묘사했다. 스티켈은(1930) 동성애는 강하고 지배적인 어머니와 허약한 아버지로 인해 야기됐다고 언급했다. 1936년 루이스 터먼(Lewis Terman)과 캐서린 밀레(Catherine Miles)는 『성과 성격 연구』에서 “동성애자들의 어머니는 특별히 과시적이며, 애정적이고 감정적인 반면에 아버지는 전형적으로 냉정하며 독단적이고 자주 집을 비운다”라고 결론 지으면서 프로이드를 지지했다. ⑮
동성애는 일종의 정신병을 나타낸다는 논문을 지지하면서, 여러 연구자들은 아동 성학대와 동성애 발전 사이에서 강력한 연관성을 발견하고 있다. 『성과 부부생활 치유 논문집』의 한 연구는 특히 어린 시절에 성적으로 문란했던 35명의 성인 남자들의 성관계와 관련하여 과거의 성경험, 성관련 사고와 환상들을 조사했다. 그 연구에서 남자들 중에서 동성애적인 아동 성문란의 이력은 성인 동성애 지향성과 아동에 대한 성적 매력과 연관성이 있다고 밝혔으며, 다음의 연구결과를 주장했다.
“현존하는 문헌에 의하면, 성 정체성 혼동과 성 선호도는 유아시절 성 문란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다고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 연구에서 성 문란이 없는 남성들의 12%와는 대조적으로 성문란 남성들의 46%는 그들의 성 지향성을 양성애 혹은 동성애 둘 중의 하나로써 정의했다. 이것은 거의 400%의 차이를 나타냈다.”
그러므로 이런 연구 결과물은 성적으로 문란해 왔던 아동들의 성적 지향성에 관한 이전 연구들을 입증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그들의 연구를 고려하여, 어렸을 때 성적으로 문란했다는 것은 어린 남자 아이들에 대해 환상을 갖는 성인 남성들의 성향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그들의 연구를 결론지었다. ⑯
이상한 질문
동성 이끌림은 변하지 않는 상황인가? 미국의 ‘전국 성관계 조사’에 의하면, 남자들의 9.1%는 그들 생활에서 다른 남성들과 성관계를 했음을 보고한다. 그러나 이런 남자들의 거의 반인 46%는 그들이 18세 이전에 그렇게 했으며, 성인이 돼서는 동성애 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⑰ 동성애 이끌림과 행위를 경험한 많은 십대들은 성인이 되어서는 이런 행위를 중단한다. 동성애자 정체성은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만큼 고착화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율법에서의 무재량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성경학자들은 그 구절이 단지 우상숭배와 관련된 동성애자 행위를 비난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레위기에서 제시된 그 문제를 회피하려고 시도해왔다. 『기독교와 위기』에서 제임스 넬슨(James Nelson)은 “이 구절들에서, 여러 행위들은 어떤 일탈행위 때문에서가 아니라 우상숭배(특히 성 관련 참고물에서, 가나안족 우상숭배) 관계 때문에 비난받는다”라고 저술했다. ⑱ 그러나 어떤 증거도 레위기 문헌이 동성애 행위에 관한 비난을 우상숭배적인 맥락에서 한정한다는 것을 제시하지 않는다. 레위기는 동성애 행위를 보편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명기 23:17(이스라엘 여자 중에서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서 남창이 있지 못할지니)과 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 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구절을 비교해 보면, 신명기는 종교상의 동성애자와 관련되어 있고 반면에 레위기는 민간인의 동성애와 관련되어있다. 여성과 남성 매춘행위에 대한 기술적인 용어들은 레위기의 비난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에, 그 구절은 동성애 행위에 관해 모호하고 포괄적인 서술을 포함하고 있다. 즉 “너는 여자와 하듯이 남자와는 잠자리를 같이해서는 안될 것이다.”⑲
레위기 20:13이 종교상의 동성애만 단지 적용된다는 주장은 논리적인 파국을 가져온다. 만일 동성애가 우상숭배적인 맥락에서 행해질 때만 비난받아야 한다면, 같은 주장이 바로 가까이 있는 구절에서 나열된 다른 금지 행위들에도 적용된다. 마이클 우클레자(Michcel Ukleja)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런 차이를 주장한다면, 우리는 간통은 도덕적으로는 나쁘지 않고(레위기 18:20), 아동번제는 도덕적인 함축이 전혀 없으며 (레위기 18:21) 그리고 어떤 것도 수간에 대해서 본질적으로는 악하지 않다. (레위기 18:23)라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성애는 일반인들의 생활에서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간주된다. ⑳
혐오행위로써 동성애
‘기독교인의 포용력’에 대해서도 설상가상으로 동성애는 토라에서 혐오스러운 행위로 비난받는다. 용어의 의미에 관해서, 『동성애의 구조』의 저자 데이비드 그린버그((David Greenberg)는 이렇게 썼다. “히브리 단어 토에브(toevah: 혐오라는 의미)가 히브리 성경에 나타날 때, 그것은 가끔 우상숭배, 광신도 매춘, 마법 혹은 점성술로 적용되며, 때로는 보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항상 커다란 혐오감을 전달한다’로 사용된다. ㉑
성경의 비난은 고대 세계가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를 거의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브라운 대학 철학교수인 마르타 누스바움(Marta Nussbaum)은 아래와 같이 저술했다.
성경험에 대한 고대의 범주는 우리 시대와는 상당히 달랐다. 성도덕에서 주된 차이는 자발적인가 수동적인 역할인가의 차이였다. 성관계시의 대상의 성은 본질적으로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년들이나 여자들은 남성의 욕망의 대상으로 아주 자주 서로 바뀔 수 있는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은 남성 성기가 삽입당하기 보다는 삽입하는 것이다. 성은 근본적으로는 삽입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이다. ㉒
항문 성교는 우럭, 바빌론, 수사 등 고대 도시의 조형미술에서 자유롭게 묘사되었다, 짐리인(마리국의 왕)과 함무라비(바빌론의 왕)는 남성 연인을 가졌다. 고대 앗시리아 문헌인 『알마닉 주문서』는 동성애에 대한 신의 축복을 간구하는 기도문을 포함하고 있다. ㉓ 고대 근동지역의 다중언어 백과사전인 『앗시리아 리얼렉시콘』의 편집인들은 아래와 같이 결론짓는다. “동성애는 본질적으로는 어디에서도 부도덕한 것으로, 음란한 것으로, 사회적 무질서 혹은 어떤 사람이 신의 법을 어긴 것으로 비난받지 않는다. 마치 그런 행위가 비폭력이나 강요가 아닌 상태에서 어떤 사람이 매춘가를 방문하여 행해진다면, 어떤 사람이 그것을 자유롭게 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㉔
유대주의 본질
동성애 금지는 유대주의 본질과 토라의 신이 다음의 경고를 공표한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다.
(신명기 30: 15-20)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너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라.
그러나 만일 네가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내가 오늘날 하늘과 땅을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에서 네가 거주하리라.
유대주의는 일관성있게 죽음보다는 생명을 긍정한다. 히브리 사제들은 죽은 자를 접촉하는 것이 금지되었는데, 왜냐하면 그런 노출은 사제로 하여금 의례적으로 깨끗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민수기 19:11). 죽음 위에 생명을 두는 관심은 고기(죽음)에서 우유(생명)로, 월경(죽음)에서 성교(생명)로, 육식 짐승(죽음)에서 채식 동물(생명)로의 차이에 관한 정당성을 형성한다. 이런 사상은 동성애와 관련하여 아동 번제에 관한 토라와 같은 대조를 설명해준다. 어떤 사람은 아동들에게서 생명을 앗아가고 다른 어떤 사람은 아이들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㉕
2020년에 종교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이 그런 위협을 인간 사회에 나타나게 하면서, 그들이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성경상의 명령은 구약성경 믿음과 관련된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먼 과거로 밀쳐버릴 수 없으며, 더 이상 인류를 구속하고 있다고 생각될 수 없는 교훈이다. 게다가 그것은 도덕적 계명이다. 신학적인 제안이 아니다. 이 계명을 야만적이며 비인간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모세의 하나님을 현대 법정으로 끌고가는 것이다. 그 법정에서는 하나님은 아마 십중팔구, 유죄로 판정되어 영원히 침묵하라는 판결을 받게 될 것이다.
사형은 아닐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