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과 세계 - 7. 복귀의 길

참사랑 | 20210504155228

하나님의 뜻과 세계

 

복귀의 길


1972.4.1
프랑스 파리교회


우리는 인간 조상의 타락에 의해서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만약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죄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사탄의 자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타락의 결과와 분립섭리


원래 인간은 하나님께만 주관(主管)을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인간의 주관자이셔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 조상 아담과 해와가 사탄과 불륜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탄이 인간 세계의 주관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탄이 타락한 세계에 대하여 소유권을 주장할 권리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 원리에 의하면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본래의 주인이므로, 결국 하나님과 사탄은 함께 인간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아담을 둘로 잘라서 하나님과 사탄이 나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리적 관점에서 인간을 둘로 분립하기 위한 어떤 룰(rule)을 정한 것입니다. 즉 내적 존재로서의 하나과 외적 존재로서의 피조물(被造物)이라는 입장에서 내 외의 관계와 주체 대상의 관계에 의해서 그 분립의 룰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즉, 타락한 아담과 해와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을 통하여 분립한 것입니다.

 

장자인 가인을 천사장의 입장에 세우고, 차자인 아벨을 타락 전의 죄없는 아담의 입장에 세운 것입니다. 장자인 가인은 해와가 비원리적 상대인 천사장과 관계를 맺은 첫째번 타락의 표시체인 것입니다. 해와와 천사장(天使長)과의 관계는 비원리적인 관계입니다. 해와와 아담과의 관계는 원리적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둘쨋번 타락의 표시체인 아벨을 하나님편에 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차자인 아벨은 아담과 해와 사이에 맺어진 둘쨋번 타락의 표시체인 것입니다.


본래의 명령 계통이 하나님으로부터 아담, 천사장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아벨에게로, 아벨로부터 가인에게로 명령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의 공식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 위치를 복귀함으로써 잃어버린 원리를 되찾으려 하시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류의 혈통이 바뀌었습니다. 사탄의 피가 인류의 혈통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러한 복귀는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차자인 아벨이 가인으로부터 장자권(長子權)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타락은 원점이 되는 곳인 어머니의 태내에서부터 비롯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도 또한 어머니의 태내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곳이 악의 원점이 되고 출발점이 되었으므로, 복귀에 있어서도 우리들은 그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 두 형제에 의하여 장자권을 복귀하는 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아벨의 위치로 내려가야 하며, 아벨은 가인의 위치, 즉 장남의 위치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행위는 아담과 해와 때의 타락 행위를 반복한 입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최선의 방법은 가인과 아벨의 생명을 되돌려서 어머니의 태내에까지 되돌아가게 하는 것인데, 그것은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 형제에 의해 다시금 섭리를 하셨습니다. 가인 아벨과 마찬가지로 야곱은 형 에서의 위치로 복귀 하지 않으면 안 되며, 에서는 아우 야곱의 위치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쌍둥이 형제의 어머니인 리브가가 임신하였을 때, 그녀의 태내(胎內)에서는 두 아기가 서로 다투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께 가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 : 23)”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승리한 야곱


야곱은 에서에게 떡과 팥죽으로 장자권을 사들였습니다. 야곱의 지혜로 인해 사탄은 참소할 수 없게 되었으며 잃어버렸던 장자권을 복귀시켰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 속은 것을 알게 된 에서는 너무나도 화가 나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듯이 야곱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아벨의 위치뿐 아니라 아담의 위치도 복귀하여야 할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에서를 피하여 21년간 하란으로 도망쳐 피신해 있어야만 했습니다. 21년 후, 부자가 되어 그는 고향인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담 가정의 타락과정을 살펴보면 어머니인 해와가 죄의 씨를 뿌리고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그 죄는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즉, 모자가 서로 협조하여 인류의 죄악역사가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복귀의 과정에 있어서는 그 반대의 경로를 걸어가야 하므로, 야곱 때에는 어머니 리브가와 야곱이 목적 달성을 위해 서로 협력한 것입니다.


타락의 과정에서 해와는 하나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아담에게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복귀해야 할 입장에 있는 리브가는 야곱에게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에서에게도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두 형제의 아버지 이삭은 하나님의 입장이며 그 아들 에서는 가인의 입장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해서 장자권 복귀의 명분은 세워졌지만 아직 실체로서의 복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즉, 그때까지 야곱의 어머니는 그 사명을 완수하고 있었지만 다음은 야곱의 사명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의 사명이란 천사에 의해서 침해된 아담의 위치와 가인에 의해서 살해된 아벨의 위치를 복귀하는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야곱은 에서의 위치로 돌아가 야곱의 위치로 내려간 에서를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21년 동안 하란의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지의 야곱의 사명은 무엇이었을까요? 야곱이 수행해야 할 첫째 사명은 아담의 위치를 복귀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담은 타락하여 천사에게 주관(主管)을 받았는 데 야곱은 천사에 대한 아담의 입장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그 입장을 복귀하기 위해 야곱은 천사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밤새도록 싸웠던 일입니다. 천사는 이 싸움에서 승리한 야곱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본연의 위치와 관계가 복귀되었습니다.


그러면 천사는 왜 야곱과 씨름을 할 때에 그의 환도뼈를 쳤을까요? 인간의 타락행위는 몸의 그 부분, 환도뼈의 오용으로부터 초래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죄 있는 부분을 치는 속죄의 법칙이 적용된 것입니다. 즉 구약성서에 있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는 법칙이 적용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천사는 야곱을 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천사에게 이김으로써 첫번째 사명을 완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적 승리를 달성하여 아담의 위치는 복귀되었습니다. 아벨의 두번째 사명은 가인의 위치를 복귀하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란으로부터 21년만에 돌아온 야곱은 형 에서의 마음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자기의 전재산을 선물로 주고 자신은 다만 형으로부터 축복받게 되기만을 소망했습니다. 그 때문에 형 에서는 야곱을 받아들여 환영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야곱은 장자권을 복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의 손자들인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할 때, 팔을 교차시켜 왼손을 장자 므낫세의 위에, 오른손을 차자 에브라임 위에 놓았던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의 위치를 복귀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서에 의하면, 야곱의 성격은 매우 교활합니다. 교활한 야곱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고 또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사명을 완수한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수천년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지만 원리가 나오기까지 어느 누구도 그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승리의 기대(基臺)를 세웠어도 그것은 아직 타락 전의 아담의 입장을 완전히 복귀한 기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다시 그것을 복귀하는 길을 통과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 다시 하나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 섭리를 야곱과 같은 연령의 시점에서 멈추어 버린다면 그 때의 야곱의 연령 이하의 기준은 복귀되지 않고 남아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야곱 때에 시작하여 그의 어떤 연령에서 완성되었다고 가정하여 봅시다. 그렇다고 하면 완성된 때의 그 야곱의 연령 이상의 모든 세대는 이 조건에 의해 복귀되지만, 그 연령 이하의 세대, 곧 갓 태어난 어린이로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세대는 복귀되지 않은 상태가 되고 맙니다. 그런 까닭에 더욱 철저한 섭리가 원래의 어머니의 태내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용감한 다말에 의해 이루어진 가인 아벨 복귀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제3차의 섭리는 또 한번 타락의 근원지인 어머니의 태내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최초의 어머니인 해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타락한 것이므로, 그 해와의 위치를 복귀하여야 할 다말은 반대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다말은 자존심도 버리고 나아가 생명마저도 버릴 각오를 하였습니다.


해와는 아버지인 하나님을 버리고 그 대신 사탄을 주체로 받아들여 타락했지만, 다말은 아버지인 하나님과 하나되었습니다. 다말은 시아버지와 하나되었고 그의 아들을 임신했습니다. 창세기 38장을 보면, 유다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다말은 장남의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이 죽었습니다. 유대민족의 관습으로는 장남이 죽어서 그의 아내가 과부가 되면 차남이 형수와 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남도 죽고, 삼남은 어려서 같이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복귀되어 온 하나님의 혈통을 계승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시아버지인 유다에 의해 아기를 임신하는 최후의 수단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녀는 명예로움도 버린 채 생명까지 걸고 창녀로 가장하여 시아버지가 지나가는 길가에 앉아 있다가 농장으로 가는 유다를 유혹하여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유다는 그녀가 자신의 며느리인 줄을 몰랐습니다. 영리한 여자 다말은 먼 훗날을 위하여 세 가지 증거품을 요구했습니다. 그것은 도장과 지팡이와 끈이었습니다. 왜 그녀는 이와 같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요? 당시의 유대의 법률에 의하면 과부가 외간 남자와 관계를 갖고 임신한 경우에는 돌로 쳐서 죽였던 것입니다.


시일이 지나자 다말의 임신은 남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 소문은 유다의 귀에까지 들려왔습니다. 유다는 몹시 노하여 며느리를 데리고 와서 불에 태워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위기의 순간에 다말은 가지고 있던 증거품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보이고 자신은 그 증거품의 소유자에 의해서 임신했다고 밝힌 것입니다. 다말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생명을 건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목적도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다말은 해와와 전혀 반대의 경로를 걸음으로써 타락한 해와의 위치를 복귀한 조건을 세운 것입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말은 쌍둥이를 임신했고, 그 쌍둥이는 어머니의 태내에서 다투었습니다. 하나님은 2천년 동안 그 성취의 순간을 기다려 오셨습니다. 출산할 때가 되어 장남 세라가 그 손을 내밀자 산파는 그 손목에 홍색 실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싸움은 어머니의 태내에서 일어났으니 차남 베레스가 장남 세라를 밀어 제치고 먼저 나온 것입니다. 이 복귀, 이 역전(逆轉)이 어머니의 태내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다의 혈통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한 점을 기점으로 하여 가인은 아벨과 위치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다시 넓은 범위, 곧 가정에서 종족, 종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 기준으로 진행하여 온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사탄세계의 확대도 그것에 병행하여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이 세계는 상반된 양대 진영으로 분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는 가정적 기준에서 종족·민족·국가적 기준까지 확대되어 사탄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국가들은 가인 국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국가도 아벨 국가, 즉 이스라엘 선민(選民) 국가가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가정으로부터 종족, 민족, 국가에로 확대하여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선민이 그러한 국가로 형성되기를 2천년간이나 기다리셨습니다. 사탄이 이미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2천년 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국가는 사탄 국가보다 우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가정적 기준으로부터 종족, 민족, 국가적 기준이라는 역사의 길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많은 과오를 범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기대를 완전히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범한 모든 과오를 복귀하여야 할 사명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가인과 아벨의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과 일체가 된 이스라엘 선민이 대상이 되고 그 기대 위에 주체되시는 메시아 예수님이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하게 일체가 되었더라면 그들은 절대로 파괴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되었을 것입니다.


참부모의 사랑과 예수님


이와 같이 발전되어 온 하나님의 섭리는 마지막으로 절대적인 주체와 절대적인 대상으로 나타나는 참부모에 의하여 완성되는 것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은 후아담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해야 할 메시아로서 참아버지의 사명을 갖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에 육신을 가진 참부모가 현현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영적 구원은 이루어졌지만 육적 구원은 실현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오늘날까지 영육을 함께 구원해 주는 참부모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부모의 자격을 갖추고 오시는 재림주님에 의해 영육이 함께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들은 조건적 혹은 상징적으로 어머니의 태내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이 태어나야 하며, 그것을 위한 길을 우리는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성령은 어머니의 구실을 해 왔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인 성령을 통하고 아버지, 즉 예수의 영을 통하여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물론 우리들은 어머니의 태내에서 태어난 것이지만, 더 깊이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 보면 생명의 기원은 아버지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태내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혈통은 교차하고 복귀되었지만, 아직 아버지를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까지 크리스찬들은 어머니 영인 성령의 힘에 의해 생명의 기원인 아버지, 즉 그리스도의 곁으로 돌아갈 것을 소망하여 그의 재림을 기다려 온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에 이미 아들과 딸의 생명은 모두 아버지인 아담의 몸 속에서 하나의 씨앗으로 존재했습니다. 아들이나 딸이 될 씨앗은 아버지의 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영육이 함께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육이 함께 재출발하기 위하여 씨앗의 입장으로까지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섭리를 성취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참부모로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림주님을 통하여 하나의 새로운 복귀된 생명으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말씀한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재림하는 주님, 새로운 메시아가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메시아


예수님 때에 이러한 복귀가 이루어지지 않고 그대로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왔기 때문에 끝날에 세계는 둘로 나뉘어집니다. 한 쪽은 사탄편 공산세계요 또 한 쪽은 하늘편 민주세계로서 이 두 세계의 충돌로 인해 큰 혼란과 위기가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재림주님은 이 두 세계의 배경과 기대를 상속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게 목적을 성사시켜야 합니다.


재림주님은 영적으로 예수님의 몸 속에 있는 씨앗의 입장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전부 상속하여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아직까지 완전하게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몸 속에 있는 씨앗과 같은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것도 어디까지나 영적인 면뿐이므로 실체의 아버지로 오시는 재림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성신(聖神)이 어머니의 사명을 해 오셨지만 실체 아버지가 오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어머니가 나타나기 전에 참아버지와 일체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완성한 아담의 몸 속에 있는 씨앗의 입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본래의 입장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모두가 타락하지 않은 참아버지로부터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몸에서 출발한 씨앗이 어머니의 태내에 잉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있는 씨앗은 진짜이며, 우리는 그 위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 그 일은 통일교회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배척당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셨으므로, 그 예수님의 위치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재림에 따른 어려운 일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이미 육신 가지고 태어나서 성장하여 버린 우리는 글자 그대로 완성한 아담의 몸 속에 있는 씨앗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부모와 그 부모로부터 태어난 참자녀와 일체화함으로써 다시 태어나기 위한 조건을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완전히 굴복하므로서 두 사람이 모두 복귀된다는 원리가 있으므로 이 원리에 의해 가인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아벨의 입장에 있는 참부모와 참자녀와 일체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복귀된 자녀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통하여 참자녀로 태어나게 될 때 참부모의 성체(聖體)와 같은 조건물을 나누어 받는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여 우리는 참자녀의 입장에 참여하는 길을 통과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통하여 참자녀와 일체화하고 새로이 태어난 자녀로서 조건을 세우게 됩니까?


참자녀와의 일체화


아버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참자녀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부모와 그 자녀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참아들과 참딸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여성들은 누구와 하나돼야 하겠습니까? 여성들은 모두 참부모와 그 따님들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남성들은 참부모와 그 아드님들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자가 먼저 타락했으므로 여자의 복귀가 먼저 이루어진 후 남자의 복귀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최초에 복귀된 여자의 입장에 서는 것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참부모로부터 태어나게 되는 최초의 딸인 것입니다. 참부모는 최초로 딸을 낳고 그 다음 둘째는 아들을 낳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지극히 원리적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는 매우 간단히 설명했지만 이러한 설명의 배후에는 대단히 길고 복잡한 내용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죄없는 참자녀의 탄생에 의해 역사상 처음으로 천적(天的) 사위기대(四位基臺)가 복귀된 것입니다. 사탄세계는 이 기대에 대하여 아무 것도 참소할 수 없습니다.


선민 국가가 복귀되지 않았기 때문에 천적 사위기대라는 이 한 점에서 출발하여 가정, 종족, 민족 나아가 국가적 기준으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 중심 핵이 되는 것은 사위기대로서 복귀된 천적 가정이며, 그 가정을 통해 세워지는 국가야말로 가장 강한 무적(無敵)의 국가로서 그야말로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그 국가는 그 밖의 모든 사탄 주권으로부터 승리하여 외적 세계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국가적 승리 기반


한 나라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복귀되면 그것은 둘로 확대되고 다시 세 개, 네 개, 결국 전세계를 다 덮기까지 확대하여 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 속하는 모든 국민은 누구나 자동적으로 복귀되고 말 것입니다. 그 하나의 하나님의 주권을 복귀하기까지는 절정(絶頂)을 향해 올라가는 것 같은 길을 가야만 합니다. 하나의 국가, 하나의 주권을 복귀하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복귀의 성업(聖業)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사탄적 원수(元首) 혹은 정부가 서게 된다면 모든 것은 허물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주권을 복귀하는 일이 우리의 가장 긴급한 임무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우리는 참부모와 완전하게, 절대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 일본, 그밖의 온 세계의 식구들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하여 여러분은 이 복귀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 길이었는 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니고데모는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야 없지 않습니까? ’ 하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너는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을 모르느냐’고 말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바로 이 원리를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에 있어서의 부활과 새 삶이라는 말은 모두 이와 같은 방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혈통의 복귀는 결국 어머니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원죄는 청산되고 더럽혀진 혈통은 하늘의 혈통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한 새로운 생명으로서 재창조되어 근본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참아버지의 몸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게 됩니다. 참아버지에 의해서만 영육이 함께 구원되는 완전한 구원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탄생된 우리의 자녀들은 원죄가 없으므로 구원의 과정을 통하지 않고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여러분은 복귀라는 것이 얼마만큼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진리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 진리의 전부를 성취하여야 합니다. 이제 선생님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무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졸업 증서를 받는 학생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입장이 얼마만큼 귀중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통일전선 수호통일


교회의 금년의 표어는 통일전선 수호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기대(基臺)를 지키고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에 있든지, 우리 모든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한국의 식구와 하나가 되어 통일전선을 수호하기 위해 함께 전진해야 합니다.


한국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가장 굳센 기대가 세워진 나라입니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섭리를 시작하려고 하면 모든 노정(路程)은 최초의 출발점부터 다시 연결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한국을 복귀해야 합니다.


제2차 7년 노정이 끝나는 1974년까지는 야곱의 제2차 7년 노정에 상응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다음은 세계적인 기대를 만들어 나가게 되므로 천국을 복귀하기 위한 충분한 경제력도 갖게 될 것입니다. 한 나라만 복귀되면 모든 나라는 쉽게 복귀되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