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1970.9.27
한국 본부교회
여러분도 알다시피 오늘은 이 달에 있어서 마지막 주일을 맞는 아침입니다. 9월은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세계반공대회(WACL)를 놓고 정성들이는 기간이었습니다. 이미 정성들이던 한 달은 지나갔습니다. 일본에서 성공리에 이 대회를 마치게 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드립니다. 이 대회를 통해서 느낀 것은 우리 통일교회가 이런 일에 언제나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점입니다.
민족의 장래를 짊어지고 있는 통일교회
더구나 아시아 정세가 급변해서 한국이 긴박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를 두고 다시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비단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까지 포함하여 어떻게 ‘70년대에 통일을 바라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소원하는 통일의 한 날을 어떻게 성취하느냐 하는 문제가 민족적으로 해결해야 할 큰 십자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해결해야 할 근본문제는 한민족뿐만 아니라 아시아에도 걸려 있고 세계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제일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주도적인 책임이 세계에 있는 것도 아니요, 아시아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한민족이 책임져야 합니다. 한민족이 책임을 지는 데 있어서도 북한이 책임질 것이 아니라 남한의 백성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 남한에 있어서도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 할 때 경제적인 단체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 아니면 역사와 더불어 인연을 같이해 왔던 종교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 민족이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종교가 책임져야 한다 하더라도, 오늘날 신도들의 기반과 사상으로서는 그 책임을 지고 국민을 지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정신적인 자세를 갖추고 있고, 어떠한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는 무리를 통해서 이 민족의 갈 길을 책임지게 해야 될 것입니까? 그러한 단체는 어떤 단체이겠습니까? 그 단체는 우리 자신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통일교회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일은 통일교회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되겠다’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정신적인 자세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고, 우리가 취하는 생활 태도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충성하고 있는 그러한 충성심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중심삼고 펼쳐지는 만 가지 일들이 그 내용이 되고 동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과연 그럴 수 있는 여러분 자신들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짊어진 책임을 어떻게 수행하느냐 하는 것은 결국 여러분 개개인에게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나 자신이 작은 개체라 할지라도 나 자신을 통하여 민족의 내일의 정기를 발발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 자신은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60세에 가까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40세를 넘긴 사람도 있을 것이며 또 젊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남은 생애를 통해 어떠한 실적을 남길 것인가 하는 과제가 각자에게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과거를 회고하면서 앞으로 민족의 갈 길을 염려하는 마음과 사명감을 갖고 아무리 노력하고 몸부림친다 하더라도,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거기에서 낙망할 것이 아니라 짧은 생애를 통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자기에게 있는 정력을 다 투입해서 이것을 최후의 발판으로 삼겠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나이가 많은 만큼 남은 생애를 전부 다 집약시켜서 이것을 민족과 역사 앞에 어떻게 투입하느냐 하는 것을 걱정해야 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대로 자기 생애에 실적을 남기기 위해서 새로운 결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세와 책임
또 20대 청소년이라면 내일의 희망에 부푼 가슴을 부여안고 이 민족의 장래를 책임지겠다고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그 희망을 어떻게 이룰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우선 내 주위에 가로놓여 있는 환경을 헤쳐가면서 자기의 주장과 자기의 소원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 환경을 이끌어 나가고 환경 앞에 영향을 미치면서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고, 무력한 사람들에게 힘을 주입시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민족 앞에 내일의 희망을 제시하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청소년들이 그 꿈을 달성한다 할지라도 현재의 청소년들은 민족과 시대 앞에 놓여 있는 과제를 책임질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견지에서 바라보게 될 때 젊은이들이나 나이 많은 사람들은 물론 책임을 질 수 없고, 통일교회가 이러한 책임을 해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천명(天命)에 의해 소명을 받은 개인이 있다면, 그 개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자각해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그러한 입장에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의 부활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이 땅에 왔다갔던 수 많은 선조들은 우리 나라가 아시아에 있어서 약소 민족이 아니라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바랐지만 아무도 그런 희망을 달성시키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선조들이 이루려고 했던 그와 같은 희망을 오늘날 우리 자신들을 통하여 실현시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앞으로 경제부흥을 이룩해서 태평양시대에 있어서 당면한 사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온 국민 앞에 자극시켜 주고, 새로운 내일의 희망을 지닌 민족이 될 수 있도록 계도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나라와 민족 앞에서 ‘내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무대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의 힘과 우리의 중심 자세를 합력(合力)시킬 수 있는 기반이 아니고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는 가, 주체성을 가진 자신이 되었는 가를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러한 목표를 지향해 왔다 할지라도, 가일층 소망을 줄 수 있는 단체가 되고, 그럴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 있는 가 돌이켜보고, 모두가 ‘이들이 아니면 안 되겠다’ 하는 기대와 소망의 실체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여러분이 3·8선을 바라본다면 그 3·8선은 대한민국의 3·8선이 아니라 통일교회의 3·8선이라고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 여러분들은 1천 8백만명 이상 되는 북한 주민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모색해야 할 책임이 있고, 그러한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이러한 뜻을 품고 3·8선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떠한 작전을 구사해야 하겠습니까? 기습 작전을 펼 것이냐, 선전포고를 하고 공격을 감행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상과 모든 배경을 갖추어서 우리의 힘으로 당당하게 공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전의 방법은 기습작전을 택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기습작전을 대낮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습작전은 밤에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고요한 밤이 아니라 태풍이 몰아치고 폭우가 내리는 밤을 택하여 시도해야 합니다.
또 작전은 하이웨이를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험산 계곡을 이용해서 하는 것입니다. 깊은 산길 가운데서도 가시밭길이 될 것입니다. 제일 어려운 길만이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특공대가 되어 일선에서 싸우다가 죽겠다는 사람이거나 희생을 각오한 사람이 아니면 이 길을 돌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통일교회가 그러한 사명을 짊어졌다고 할 때 통일교회가 살 수 있는 길은 희생의 길밖에 없습니다.
희생과 최후의 한 사람
그러면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출발하는 우리들의 마음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 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나는 죽었던 사람이라고 하는 각오를 갖지 않으면 행진조차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상태에서 새로운 부활의 소망을 갖지 않고는 이 전략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려면 통일교회는 고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입장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할 것을 다짐하고 내일의 희망의 길을 닦는 개척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년 혹은 십년이 소요되더라도, 혹은 전생애 노정을 거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이 뜻을 이루지 못하면 후손에게라도 이 길을 가르쳐줘서 책임을 완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목숨을 바쳐 싸우다가 절박한 입장에 처하게 되면 동지들이나 아들딸들에게 내일의 소망을 위하여 무언가 권고라도 남겨야 할 것이 우리들의 입장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향해 달려온 자기의 모습을 회고해 보면서 그 이상 달릴 수 있는 사람을 세우지 않고는 이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일반시민들에게는 쉽게 이해될 수 없기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길을 통해서 기적은 나타납니다. 우리에게는 이 길을 통하여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지난날의 자기를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와 결의로써 재출발을 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의 수가 아무리 많아진다 하더라도 그 목적은 모두가 그 한 선에 귀결되게 됩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도 이것을 달성하기 위함이며, 사는 것도 혹은 죽는 것도 이것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성도 이 목적을 위하여 들이는 것이며 희생과 노력도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싸움을 위해 모든 장비도 이것을 위하여 정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러한 사명을 다 하지 못할 때는 이 나라가 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최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통일교회를 극한 지점까지 내몰 것입니다. 거기에서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책임을 느끼고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우다 희생을 당한다면, 역사와 더불어 영광의 모습으로 영원히 남아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놓고 생명을 바쳐 나가는 때일수록 소망을 품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필승의 신념을 갖고 자기의 온갖 정성을 투입해야 하며, 죽을 때는 원수와 더불어 죽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더불어 죽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힘을 다 하여 이스라엘의 장래를 책임지고 몰고 나가려고 하다가, 아니 가려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을 갔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자기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뿔뿔이 흩어질 때에, 예수님은 자기 일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때까지 하나님을 위해 충성해 온 어떤 사람보다도 더 지극한 정성과 강한 책임감과 뚜렷한 목적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간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그 길을 간 것입니다.
예수의 노정과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이와 같은 예수의 최후의 운명을 통하여 역사를 이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전통을 사망의 세계, 원수의 세계에다 뿌리를 박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하는 기도 가운데에는 모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가는 데 있어서도 비굴하게 가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과 더불어 당신이 소원하고 당신이 바라던 아들로서 가야 된다는 그 기준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인류가 나타나서 그와 같은 길을 가겠다고 했지만 실제적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그러한 길을 간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형극의 자리에서도 당당히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하고 간구하셨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때는 기필코 오게 될 것이다. 우리의 승리의 때는 우리가 세계를 제패하는 때이다. 그 때에는 원수를 용납할 수 있는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하면서 자신이 죽어가는 마당에서도 미래의 승리권을 자신하면서, 미래의 승리 앞에 패자의 설움을 당할 그 로마와 반대하는 무리에게 축복을 내린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돌이켜 볼 때 예수는 안팎으로 모든 것을 점령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세운 충효의 기준을 보나, 그로 인해 수립된 역사적인 전통을 보나, 혹은 원수들을 용서해 주신 사실을 보더라도 모두가 머리 숙여 존경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팎으로 보더라도 걸릴 것이 없는 생애를 살다 가신 분입니다.
예수의 생애는 그가 살아온 일대 33년에 끝난 것이 아니라 역사와 더불어 연면히 남아졌고, 역사는 그가 다하지 못한 목적을 진행시켜 나왔고, 역사가 진행된 방향과 목적은 예수가 성취하려고 했던 방향과 목적에 일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핍박의 역사를 거치더라도 망하는 운명에 처한 것이 아니라 흥하는 운명에 처했던 것입니다. 핍박과 어려움이 다가오면 올수록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승리의 터전이 되고 전통의 내용이 되어서 새로운 터전을 닦아 세계화시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의 생사권을 해결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3·8선이 있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3·8선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타파하고 국토 통일을 이룩하더라도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공과 소련과의 사이에는 제2의 3·8선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3·8선은 하나의 협력을 추구할 수 있는 시련의 선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이 더 강하고 극한적인 3·8선, 즉 소·만 국경선을 해결하여 평화의 기점을 마련하고 승리의 터전을 구축해야 된다는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에 걸쳐 있는 현재의 3·8선은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한민족이 이 3·8선을 해결하고, 소·만 국경선(제2의 3·8선)을 극복할 수 있는 민족이 되었다고 할 때에는 , 한민족은 새로운 세계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민족이 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세계적인 발판을 갖고 습격해 온다 하더라도 그들과 대항하여 몰리지 않고 대결할 수 있는 결의를 가진 단체와 개인이 있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공산당은 위장전술을 통해서 전략을 수행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 대적해서 악을 중심삼고 비정상적인 활동 체제를 갖추어 나왔습니다. 은폐와 위장전술을 터로 한 침략전술을 지금까지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사탄의 속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남길 것이냐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중심삼고 볼 때 왜 통일교회가 존재해야 되느냐, 교단의 일원인 여러분 자신들은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하는 것을 심사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은 어떠한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보다도 이런 방대하고도 엄청난 역사적 사명, 천주사적인 내용을 이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를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이고도 시대적인 사명을 하나님이 촉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통일교회 식구 여러분이 약자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책임질 수 있는 모습들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 여러분이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생애를 남길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남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럭저럭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생애의 발자취를 어디에다가 남겨야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에만 남겨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라는 차원도 넘어서야 합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식’이라고 할 때 그 식이 세계적인 것이면 남아집니다. 오늘날 30억 인류가 쌍수를 들어서 환영할 수 있는 식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30억 인류가 무관심하고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식일 경우 전부 흘러가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반공대회(WACL)를 중심삼고 통일교회 역사에 어떠한 전통을 남겨야 하겠습니까? 어느 민족, 어떠한 종교가 하지 못한 내용을 보여 주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 식구들을 거국적인 그 행사에 투입시켰던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에 없었던 사건입니다. 이제 통일교회의 움직임에 대해서 공산당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정도가 그들이 갖추어진 환경보다도 더 강하게 될 때 우리는 제2, 제 3전선을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싸움에서 열세에 놓이게 될 때를 위해서도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군사력 면에서도 이겨야 하고, 정신적인 자세에서도 이겨야 합니다. 생활력에서도 이겨야 합니다.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이길 수 있다 할 수 있는 자신과 더불어 ‘상대적 여건을 모두 갖추었다’ 할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못 갖추었기 때문에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표어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동안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천대받으면서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가 비록 지는 것 같았지만 이겨 나왔습니다.
성인이나 선한 사람들 가운데 역사시대에서 지탄받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평화 시대에 국가와 민족의 역사적인 인물이 탄생한 예는 없었습니다. 반드시 사회 질서가 파탄적인 상태에 이르렀을 때 새로운 것이 나온 것입니다. 거친 모래산과 바위산에 비가 요란스럽게 내리면 내릴수록 그런 환경 속에서 반석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히려 요란스런 환경이 새시대를 창건하는 데 플러스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이 길을 가다가 만약 죽게 된다 할지라도 부활의 가능성을 100퍼센트 갖고 있다. 모두 망해버리고 나 한 사람만 남는 다 할지라도, 나는 틀림없이 이것을 계승해서 전통을 세워 나갈 것이다’ 하는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죽더라도 부활해서 이 뜻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전통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피를 흘려야 될 바에는 철철 흘려라. 땀을 흘려야 할 때에도 아낌없이 철철 흘려라. 죽더라도 이런 기분으로 죽어라. 자기의 요구나 욕망 가운데 미련을 남길 수 있는 분야를 남기지 말고 깨끗이 청산하라. 완전히 청산했을 때는 돌아오는 법이다…….
여러분은 모두 그러한 심정으로 뜻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어려운 대한민국의 상황을 극복해서 수난이나 고통을 겪지 않는 평화스런 나라를 이루어 보자고 다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민족 반역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에 의하면, 재벌 중 일부가 스위스라든가 외국 은행에 돈을 예치해 놓고 보따리를 싸가지고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실로 개탄할 일입니다. 이들은 갔다가는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나라를 저버리는 사람들은 국민들로부터 영원히 지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의 노정
종족을 위해서 가정을 희생시키는 사람, 역사와 더불어 있는 정성을 다 들이고 가겠다고 다짐하는 사람, 투쟁하면서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한 무리를 통해서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고 살아 남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 앞에 그와 같은 상대적인 여건을 갖추어서 나라를 위해 투쟁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신 출세를 위해서 외국에 유학을 간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선을 향해서 가겠다는 사람, 조국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가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지도해 온 선생님은 주위로부터 몰리면서 지내왔기 때문에 응당 사라져야 할 사나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망하기를 바라고 전부 다 길을 막았는데도 불구하고 망하지 않고 자세를 갖추어서 점점 그 폭과 터전을 넓혀 왔는 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 지 아십니까?
여러분도 모를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도 선생님을 모릅니다. 어떻게 선생님이 그렇게 될 수 있는 지 잘 모릅니다. 역사적인 환경, 역사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거나 쓰러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말을 하지 않고 나가는 길이지만 세계를 품고 천주를 품겠다고 하는 , 폭 넓은 사상과 신념으로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나의 갈 길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틀림없이 북한 공산당과 대결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구사일생으로 3·8선을 넘어오면서 선생님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너희들은 감옥에서 나를 처량한 사나이라고 생각하면서 코웃음을 쳤지만, 내가 이 길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날에는 나는 너희들을 사랑해 줄 것이다. 그날을 위해 가는 거다. 그때는 별의별 환경이 다 벌어질 것이다. 네 생애에 있어서 구경도 하지 못한 세계적인 정상의 인물들을 구경하게 될 것이다. ” 하나님은 6천년 복귀역사 노정을 거쳐 나오면서 자기를 중심삼고 살아가는 이기적인 사람들은 물론 별의별 원수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들이 영원을 향해서 진군하는 하나님의 행군을 중지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진리의 세계를 추구하면서도 외적인 환경을 그리워한다면 그는 외적인 세계로 흘러갈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 이익을 추구하던 사람들은 통일교회에서 다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과 인류를 위해서 개척자의 사명을 가지고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이 세계에 연결시키겠다고 하면서,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피땀 흘리며 심정의 골수에 사무쳐 움직이는 사람은 천적인 새로운 섭리의 인연도 맺을 것이요, 승리의 터전도 갖출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하되 남모르게 해야 합니다. 정성을 들여도 남모르게 들여야 합니다. 끝날이 될수록 밀실에 들어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는 바람이 불고 요동이 벌어지더라도 절대로 넘어지지 않고 남아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쓰다 버린 물건이나 걸레짝을 유물로 물려줄 부모는 없습니다. 갖은 정성을 다 들여 가꾸던 보물, 부모만이 알 수 있는 보물, 가장 가치있게 여기던 보물을 물려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보물에 깃들어 있는 부모의 사랑, 부모의 정성들인 손길이 귀한 것입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제일 자랑할 수 있는 보물은 자녀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하늘 땅을 감동시키고, 역사적인 인물들을 감복시킬 수 있는 인물일 때 그는 역사에 보기드문, 보물같이 위대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귀중한 보물은 자기 집에 놓고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고 생사가 교차되는 수난길을 가더라도 꼭 지니고 다니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지니고 있는 아들딸이 있다면 세계적인 보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보물을 남기기 위해 통일교회와 선생님은 지금도 여념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
내가 매사를 추진하면서 각별한 정성을 들이는 것은 내가 손을 댄 일이 실패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 정성은 세계의 무엇보다도 강해야 합니다. 어느 누가 한 분야에서 책임을 지겠다 할 때, 내가 들이는 정성의 힘이 그에게 투입되어 이 땅 위에 현현시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정성을 드러내십니다. 그러한 정성으로 실현된 세계는 평화의 왕국이 되는 것입니다.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했던 장소는 왕궁이나 번화한 도시가 아니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산악지대, 험한 산골짝, 험한 산정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승리의 깃발이 휘날리는 곳, 한 나라의 영웅이 탄생되어 등장한 곳은 최후의 고지, 최후의 전선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도 자기의 생의 가치를 보람있게 드러낸 사람들이 그 나라의 정신적인 자세를 정립하는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그와 같은 자리에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를 위해서 고생의 길을 가야 합니다. 고생을 시켜야 합니다. 고생 때문에 쓰러져가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고생 때문에 크게 성장하는 사람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강한 포탄 같은 사람을 만들고 겹겹이 나타나는 입체적인 선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갈 길은 멉니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모두가 다 흘러가더라도 끝까지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엘리야가 “나만 남았나이다”라고 말했듯이 모두가 쓰러지더라도 끝까지 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뜻길에서 믿었던 개인이 물러가고, 믿었던 가정도 물러가고, 모두 물러가더라도 나는 물러가지 않는 다, 가정적인 패자의 입장에 서지 않겠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두 다 쓰러지고 그 한 사람만 남는 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통일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천만인을 대신할 수 있는 희망의 존재가 될 것입니다.
또한 너와 내가 주체와 대상이 되어 한 마음을 이루게 되면 거기에서 창조의 역사와 기쁨의 실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는 실패란 있을 수 없습니다. 고생스러운 일도 나에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내게 마이너스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도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놓고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사람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일국의 대통령이 그러한 결심을 갖지 못했다면 하나님은 그 민족을 중심삼고 뜻을 이룰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모습이 초췌하고 미미할지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운 기틀을 닦고, 새로운 역사의 창건을 시작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 앞에 감옥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나는 가야 합니다. 온갖 핍박을 당하면서도 가야만 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충성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 기도와 정성으로 이 길을 갑니다. 이 길을 가는 사람이 가다가 모두 쓰러진다 하더라도 나는 갈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죽는 자리에까지 가서라도 원수의 아들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 무엇을 마련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원수들의 2세를 사랑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 원수를 굴복시키는 최고의 작전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성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아들딸들은 나를 따를 것입니다.
공산당들은 아들딸들을 통해서 그들의 부모를 숙청시키는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모에게 총칼을 겨누도록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들딸들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을 통해서 부모의 길을 바로잡아 주려고 하시는 분입니다.
정성을 투입해야
여러분이 영원한 역사에 남길 수 있는 값진 유물은, 나만을 위한 생애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세계를 위한 생활과 뜻을 위하고 하늘땅을 위한 생애를 영위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생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일매일을 하나님을 위한 시간으로 연결지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고빗길이 가로놓인다 할지라도, 반드시 탄력을 이용하여 제일의 고지를 일시에 탈환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작전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현실에 대해 걱정할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세계에 대한 소망에 불타 있어야 합니다.
시련 후에 무엇이 올 것인가 하는 결과를 놓고 흥미를 갖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거기에서 오는 충격과 감동이 당하는 시련보다 크게 될 때 우리는 승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밥상을 앞에 놓고 ‘밥을 먹는 이 시간에 내가 해야 할 사명을 다하지 못함으로 인해 국가의 운명이 잘못될까 두렵습니다’ 하는 기도를 해보았습니까? 이렇듯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고 안타까워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자기의 생애를 걸고 정성들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할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과거에 아무리 정성을 많이 들였다 할지라도 마지막 길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들인 정성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충성해야 하는 것이 뜻을 품은 사나이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할 때는 그가 짊어진 십자가와 더불어 흘러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과 세계와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역사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사람이 될 때 그는 결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에 모든 것이 깨져 나간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충성 자체의 기준은 역사와 더불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이 말은 결코 망상적이거나 추상적인 말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자나깨나 생애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면서 힘이 들 경우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면 그때마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이 책임을 감당해야만 당신의 해방을 가져 올 것이고, 인류의 해방을 가져 올 것이니, 그것을 위해서 나 하나를 거름삼아 이 땅에 평화의 세계가 이룩되게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이렇게 혈혈단신 외로운 환경에서 눈물짓는 그 자리는 ,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3차에 걸쳐 기도하신 예수님보다 더 심각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인류의 소망을 걸고 기도하는 그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을 모아서 그 기도를 경청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볼 때, 수많은 사람들이 기쁨으로 순교의 길을 간 것도 모두가 이 원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을 보면 의(義)로운 일을 놓고도 옆사람 눈치를 살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역사에 남아질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최후의 결판장에 나를 빼놓고 갈 수 없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러한 뜻을 품고 있어야만 변하지 않고 갈 수 있으며,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그를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을 건 심각한 자리
여러분 자신이 어떠한 모습으로 남아질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일교회가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70년대를 달리고 있는 데, 어떠한 결과로 귀결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망해서도 안 됩니다. 망할 수 없는 원리원칙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원칙을 따라서 자기를 희생하면서 따라나왔습니다. 10년을 희생해 온 사람도 순간적으로 개인을 희생시켜 순교를 당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결정을 했으면 즉시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중간에서 쉬어서는 안 됩니다. 일을 끝내 놓고 하나님이 잔치해 주고 축하해 주고 싶은 환경 가운데에서 쉬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생활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나이 많은 사람들도 3·8선을 지켜야 할 때에는 , 소대장도 할 수 있고 대대장도 할 수 있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 중요한 한 시점이 점점 접근해 오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자기의 생활권 내에서 민족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또, 스스로의 생애에서 민족의 운명을 감지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내일의 역사를 창건하는 선각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에도 세계적으로 남길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효자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를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라도 그것을 대하게 될 때 즉각적으로 동화할 수 있는 주체적인 내용을 남겨야 합니다. 그러한 심정의 인연을 남기고 가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밀실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세계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기도하게 되면 일 대 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많은 사람이 있지만 한 사람을 통해서 훈령을 내릴 때 그 자리는 일 대 일의 자리가 됩니다. 그러한 깊은 자리를 탐구해서 개척해 들어가야 합니다. 역사에 남아질 수 있는 기수는 평범한 자리에서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의 내용을 지닐 수 있는 사람만이 끝까지 남아질 수 있고, 망하더라도 맨 나중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망하더라도 통일교회와 더불어 끝까지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나를 위해서 공부를 할 때는 피곤하지만 삼천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이 단어 하나에 달려 있다 할 때에는 심각합니다. 한 문구를 연결하는 한 단어를 더함으로 말미암아 삼천만이 살 수 있고, 한 단어를 덜함으로 말미암아 삼천만이 망할 수도 있다고 하면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성을 들이며 한 자를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공부해 보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심각한 자리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생명을 건 심각한 자리에서는 똑딱똑딱 하는 심장의 고동소리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자리에서 결심한 것을 잊어서야 되겠습니까?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산만해지기 때문에 기억이 되지 않는 것이지, 죽을 자리에 가서 죽을 순간이 다가오는 데 살 수 있는 묘안이 있다고 하면, 사진을 찍듯이 순간적으로 머리에 기억시킬 것입니다. 공부를 하더라도 책 한 페이지를 붙들고 이렇게 생명을 걸고 정열을 투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경을 볼 때는 그렇게 합니다. 심각한 문제는 1년, 2년, 3년이라도 붙들고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수난 길을 통하여 승리의 터전은 닦아진다
자기를 위한 길에는 언제나 낙망이 따르지만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곳에는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민족과 세계는 부활되어 나가기 때문에 이러한 사상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움직이면, 현재에는 비록 남아지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는 민족과 세계와 더불어 역사적인 인물로 남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가 당한 고통은 역사적인 고통으로 수 많은 인류의 가슴 가운데에 남아질 것이고, 그가 당한 생애의 갖가지 사연들은 반드시 세계가 상속해야 할 참된 사연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참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가에서 데리고 다니던 10여 명의 제자들까지 잃어버리고, 점령국인 로마의 병정들에 의하여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면서 죽는 처량한 행로를 걸었습니다.
그는 죽는 다는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인류의 가슴 가슴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필요한 내용을 남기고 죽었기 때문에, 그 자리는 오늘의 부활의 터전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실보다도 더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결코 남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자기를 중심삼고 남긴 것은 결국 흘러가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움직일 때 최후까지 남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노력해 주기 바랍니다.
3·8선을 헐어버리고 이 땅을 세계평화의 기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돌아가는 인생행로를 택할 것이 아니라 곧바로 직행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걸고 시작했으면 십자가에서 거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원리요, 통일교회의 방침입니다. 수난과 고생으로 엮어온 생애를 두고 염려할 것은 환난과정을 통해서 승리의 결과를 남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생길을 갈지라도 있는 힘을 다해서 살아가면 여러분 당대에도 망하거나 못 살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서도 참소받지 않고 잘살기 마련입니다. 세계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해야 하겠습니다.
엘리야는 ‘나만 남았나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알에게 굴하지 않은 7천여 명의 무리가 있음을 아십니다. 선생님도 그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나만 남은 게 아니라 우리편은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통일교회 편에 선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과 세계 인류를 위해서 온갖 정성을 들이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러면 기필코 여러분의 생애에 귀한 보화가 남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