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과 세계 - 28
사랑의 상속
때 : 1978. 9. 21.
곳 : 일본 가미가와
축복의 의미
아담 한 사람을 복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소비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역사는 6천년이 아닌 몇 만년, 몇 천만년을 두고 섭리해 온 것 같은 지루한 역사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역사 과정에서 희생이 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숫자는 두려울 정도로 많은 것입니다. 단지 타락 전 아담의 기준을 복귀하기 위하여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렀던 것입니다. 메시아는 바로 그와 같은 희생을 터로 하여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메시아의 사명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본연의 원리 원칙에 통하는 남성을 만드는 일입니다. 즉, 타락 전 입장인 창조 본연의 아담으로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아담을 통해서 해와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복귀되고 해와가 복귀되어 함께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실로 경이로운 것이요, 모든 탕감조건을 통과해서 축복을 받는 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속에 사라져간 수 억만의 희생자가 우리들에게 참소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만일 여러분과 같이 축복받는 입장에 선다면 이처럼 살지는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을 토로한다면, 일본이 벌을 받고 세계가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기에 와서 축복을 받을 만한 어떠한 조건이라도 있습니까?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면 모두 오물 속의 구더기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가정생활에 있어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상대의 전후 관계와 배후관계가 어떤지 모르고 서로를 무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내를 무시하는 것은 곧 어머니를 무시하는 일입니다. 남편을 무시하는 것은 아버지를 무시하는 일이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그와 같은 연체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축복가정이 주체 또는 대상에게 심정적으로 큰 상처를 안겨줬다면, 그와 같은 사람은 살 가치조차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선한 조상이 70대나 연루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잘못을 행했을 경우 영계에 가면 지옥길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옥까지도 복귀하려고 하는 데,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정권을 유린하는 사람은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구제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상이 완전히 성취된 후의 일일 것입니다.
이번에 제3차 7년 노정을 마치면, 재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이별한 경우의 그 이별은 두 사람이 함께 지옥으로 가는 편이 오히려 간단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간음죄를 범한 사람은 돌로 쳐서 죽인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가 자기 마음대로 다시 결혼해서 이 지상에 그 혈통을 남긴다는 것은, 선생님이 매우 고심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에덴 동산에 그런 사람이 존재해서야 되겠습니까? 천국 건설을 하는 데 있어서 그러한 자가 용서돼야 합니까? 그러한 원칙은 없습니다. 축복을 받은 후 남편을 불신하거나 아내를 불신한다면 우주에 얼굴을 돌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심정권을 전면적으로 범한 사람이기에 그 사람이 갈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사랑의 상속
남성에게는 아내가 어머니의 분신이며 어머니의 결집체입니다. 동시에 누나의 결집체요, 누이동생의 결집체입니다. 그리고 우주를 대표한 여성의 결집체입니다. 그와 같은 내용을 갖추고 있는 아내를 사랑함은 모든 인류를 사랑한 결과가 됩니다. 그것은 또 모든 여성을 사랑한 입장에 서게 되고, 자기 집의 어머니와 누님과 누이 동생을 사랑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란 인류애를 교육하는 대표적인 수련소입니다. 심정의 중심을 세우는 대표적인 광장입니다. 거기에서 서로 신뢰하며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전우주의 중심으로 서게 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상권의 시작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아무런 존재의 의미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에게 있어서 남편은 아버지의 분신입니다. 또한 오빠의 결집체요 남동생의 결집체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이루어야 할 가정의 이상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결혼을 원하는 것은, 자식들에게 부모의 사랑을 모두 상속해 주고 싶고 전수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버이는 죽어가면서 후손에게 그 실체를 남겨 놓습니다. 그러므로 후손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인간의 최고 원망(願望)이므로 만민이 쌍수를 들고 상속하고자 합니다. 그 사랑을 남겨 놓으므로 영계에서도 당당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완수할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을 통해 천국으로 간다는 것은, 곧 사랑의 일체권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자기가 희망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어머니의 희망에 의해서 태어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희망에 의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인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난 것이 ‘나’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전체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의 사랑 모두를 받아 전우주의 중심적인 존재로 태어난 것이 바로 ‘나’입니다.
사랑에 의해서 태어나고, 사랑에 의해서 키워지고, 사랑에 의해서 살고, 또 사랑을 남기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목적입니다. 자기의 가정에서 우주의 중심인 사랑의 사명을 다하는 것만이 가장 가치있는 일입니다.
오늘 밤이 깊어졌으니, 말씀을 간단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나 일은 시초보다도 끝맺음이 중요합니다. 사랑의 세계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신 그 당시보다도 그를 통해 펼쳐질 미래에 더 큰 뜻을 두셨습니다. 가장 존귀한 것이 오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은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한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고뇌(苦惱)
사람과의 접촉도 그와 같이 생각합니다. 남녀가 교제를 할 때 처음에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신념을 높여서 장래를 바라보면 이상이 키워집니다. 그것은 곧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통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들이 감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축복의 기대를 붕괴시키려고 선생님에게 평생을 걸고 도전해 왔습니다. 하늘의 법도를 중심으로 세상과 대결하면 무엇보다 굳세고 강한 것이 남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의 아내를 믿지 못하는 남자가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는 일 자체가 수치입니다.
선생님이 원리를 몰랐다면 엉뚱한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인간의 유혹뿐 아니라 사탄의 유혹이나 시험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6천년 동안 하나님에 대해서 참소를 계속해 온 사탄은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큰 시험을 당했을 때 쓰러지고 맙니다. 선생님이 지금 이곳까지 온 것은 원리 원칙으로 되어 있는 하늘의 법도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유혹에 말려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자랑으로 여겨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축복을 받은 후, 다른 여자나 또는 다른 남자를 통해서 아이를 가졌다면 그것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 아이마저 크게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 문제를 장차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 선생님은 매우 고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만민을 구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원칙을 중심으로 하여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할 때에는 눈을 감고 다녀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파괴하는 그와 같은 자리에서 남녀가 사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로 인한 결과는 원리로 보아 비참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선생님입니다. 그러니 논의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축복은 선생님과 영원한 인연을 맺는 것
이러한 일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1800쌍 중에서 그와 같은 사람이 나타나려고 한다면, 1800쌍 모두가 합심하여 방비 작전을 취해야 합니다. 이것은 1800쌍 모두의 오점이기 때문에 심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으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고생을 해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멸망시킨 것도 그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나이는 벌써 60에 가깝습니다. 이제 지상에 머무를 기간이 길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세계 만민에게 통하는 전통을 속히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또한 통일교회를 살리기 위해 고생해 오셨습니다. 통일교회를 살린다는 것은 곧 가장 중심인 축복 가정을 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정부장도 그러한 사실을 잘 이해하고 철저히 교육시켜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서 연애를 해 본 사람은 축복의 대열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연인을 사모해서 그 손으로 편지를 썼다면 그 일 자체가 부끄러운 일입니다. 원리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사랑문제에 있어서 무질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동물처럼 되어가는 젊은이들을 찾아세워 축복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사명은 타락한 인간들에게 탕감조건을 세우게 하여 순수한 총각과 처녀의 입장을 복귀하여 하나님 앞에 바쳐드리는 일입니다. 이번 축복은 특사입니다. 선생님은 지난날 제3차 7년 노정을 마치지 않으면 축복이 없다고 식구들 앞에 선포한 바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지상에서 잘못된 윤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혼탁한 세계를 깨끗한 세계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선생님과 통일용사들의 사명입니다. 이런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축복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까? 선생님은 그와 같은 일은 생각을 해본 바도 없습니다.
지금은 복귀노정에 있습니다. 제3차 7년 노정까지는 세계 복귀의 기반을 완전히 닦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끌어당기면서 처리해야 되는 것이 선생님의 입장입니다.
1960년 이후, 역사가 이와 같이 급변하는 것은 통일교회를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러한 대전환기에 접어들었나 하는 것을 현대의 역사가는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베푸는 축복이 곧 모범을 보여 주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우매한 사람이 아닙니다. 조상에 대해서나 현실의 사회에 대해서나 또 후세에 대해서도 좋다는 것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축복을 받고 자기들끼리 서로 노력해 나간다면 반드시 좋은 길로 간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이해한 그 이론적 기반 위에서 실행하고, 그 실행 기대 위에 나타난 결과가 원칙에 일치했느냐의 여부를 검토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만민은 형제입니다. 만약 자기의 형제 중에서 불구자가 있으면, 그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형제애입니다. 또 부모가 그와 같은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그 부모에게 복종하고 희생하는 것이 효도의 길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다른 사람은 못생겼다고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얼굴이 못생기고 키도 작은 어린이가 있다고 합시다. 그래도 부모는 그 아이가 말할 수 없이 가엾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더욱 그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어버이입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영계에 가서도 선생님이 영원히 책임을 집니다. 선생님이 주관하고 지도합니다. 축복이란 이와 같이 선생님과 영원한 인연을 맺는 것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일제시대에 상당한 고문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선생님은 일본이 멸망하는 것을 보고 기뻐할 수도 있는 과거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했을 때, 선생님은 자신을 고문했던 일본 경찰을 불러내어 “여러분들이 한국에 더 있으면 위험하니 도망치시오. ”라고 하면서 짐을 싸서 보내 주었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지금까지는 일본이 적국이었으나, 장차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형제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볼 때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일본을 용서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일본은 한국을 박해하였지만, 미래의 일본은 한국과 함께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살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지금 일본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선생님을 사모하면서 따라오는 것은 배후에서 이와 같은 역사적인 조건을 세워 왔기 때문입니다.
학창시절에는 가와자끼(川崎)의 조선소에서 야마다니(山谷) 주변의 빈민가까지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다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일본을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지금 공산당은 일본을 파괴하려고 획책하고 있는 데, 선생님은 일본의 미래를 생각해서 전반적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지금 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에서도 국기에 경례하는 것을 거부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진정 일본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경제나 정치보다도 먼저 청년층의 의식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에 있어서 국가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수 십년 전부터 통일교회 젊은이들 이외에 일본의 장래를 짊어질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면을 보아 통일교회의 젊은이들은 훌륭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나 전통적인 면을 보아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는 개인 완성으로부터 가정 완성, 종족 완성, 국가 완성, 세계 완성, 천주 완성, 하나님의 해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이론적으로 공식화해 놓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30년 전에는 한국에서 선생님을 사람같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비참한 인간으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모두가 선생님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말합니다. 지금의 선생님과 그 때의 선생님은 그다지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때의 선생님이 훌륭할 정도입니다.
지금은 나이가 60에 가깝지만, 그때는 젊고 용기도 있었고, 혈기도 왕성하였고, 믿음직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장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사탄의 역사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탄권과 가인권의 존재들은 완전히 망할 때까지 아벨권을 전면적으로 타도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와 같은 구렁텅이에서 한 마디의 변명도 않고 모든 박해의 길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을 소화해서 승리해 가지고 오늘날까지 온 것입니다. 모든 박해를 정면으로 받아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인내심과 정신력을 가지고 이날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한 번 결심을 하면 생명을 바쳐서 전진해 갑니다.
선생님의 몸을 보면 여러분들과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같은 인간입니다. 그러나 사상, 정신력, 사고 방식이 다릅니다. 일순간에 결정한 생각이라도 인류를 생각하고, 거기에 플러스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겸해서 생각하여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강한 것입니다.
자기 일신에 어떠한 박해가 닥친다 해도 인류를 위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산다는 것이 선생님의 사상입니다.
생명을 걸고
선생님이 1971년 12월 18일에 미국을 향해 떠나리라고는 누구도 몰랐습니다. 다만 선생님 혼자만이 내심으로 하나님과 함께 세계적 노정을 간다는 계획을 짰던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 사람은 뉴욕에서 성공적으로 강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장기간의 싸움에서 완전히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유럽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제는 일본을 통과해서 한국에 돌아가 승리의 축배를 올릴 계획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더운 날씨에 일본에 왔겠습니까? 선생님은 어제 24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왔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와서 밤을 새워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목숨을 걸고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감사를 드리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이 이곳에 온 것은 여러분에게 축복을 베풀기 위한 것입니다. 축복의 내용을 알면 알수록 여러분은 감사할 것입니다.
인간은 조금 불리하면 도망을 칩니다. 조금 유리하면 쑥 얼굴을 내밉니다. 그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역사가 그러했고 현실이 그러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까지도 어려운 환경속에서는 도망을 쳤습니다. 12제자는 여러분보다도 훌륭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도망친 것을 보면 인간은 참으로 약한 존재입니다.
한 사람의 아내, 한 사람의 남편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여러 자녀의 어버이가 된다는 것은 실로 두려운 일입니다.
통일교회의 축복의 역사는 싸움의 와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탄 세계에서 미칠 듯이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반대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통일교회의 멤버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통일교회 하면 곧 합동결혼식을 연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반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본 사람에 대한 축복은 이번이 3번째가 됩니다. 일본도 이번 축복을 계기로 그와 같은 전통을 만들어 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