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과 세계 - 27.
봄
때 : 1978. 4. 16
곳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봄’이라는 말은 ‘태어난다’는 뜻을 갖고 있는 영어의 ‘본(born)’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우리는 지금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봄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아직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젊은이들, 더구나 사춘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봄에 대한 자극이 더욱 클 것입니다. 봄에 대한 감상이 남다르게 강하고, 또 그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반면에 나이 많은 사람이나 가정과 사회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에 비하여 봄을 맞는 감정이 조금은 다를 것입니다. 특히, 자녀들의 교육을 다 시키고 시집 장가까지 보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봄을 맞이하는 감정은 또 다를 것입니다. 노인들은 봄이 오게 되면 옛날을 그리워하고, 소년시절·청춘시절·장년시절을 회상하면서 반성할 수도 있는 좋은 자극이 되는 계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연령은 다르더라도 사람들은 봄이 되면 그 봄을 감상하고 그 봄을 통해 반성하고 사색하기 마련입니다.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욕같은 곳은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동물들은 긴 겨울을 눈을 맞으며 보냅니다. 사슴이나 여우, 곰같은 동물들 물론 조그마한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봄이 되면 새로운 희망을 품고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새들도 겨울에는 먹이를 찾기가 어렵고 지내는 것이 부자유스럽지만 봄이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새로운 생활무대가 전개됩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생동합니다 ‘봄’을 자랑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은 봄이 소생의 힘을 갖고 있고, 또 생동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소생한 만물들은 모두 일년이면 일년, 혹은 그 나름대로의 장래를 향해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봄은 희망의 계절
여러분은 벨베디아에 와 있습니다. 이곳의 나무들도 잎이 떨어지면 삭막하게 보이지만 새싹이 나면 싫어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동물들도 그렇고, 기후에 따라서 이동하는 철새들은 더욱더 봄이 오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들은 철새 가운데서 가장 인상이 남는 새가 무엇입니까? 여기 도시 사람들은 제비에 대해서 잘 알는 지 모르지만 시골에 가면 참으로 인상적인 새가 제비입니다.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게 더욱 인상적입니다. 새까만 등과 가슴에 그려진 하얀 줄무늬는 예복을 입은 것처럼 보입니다. 결혼식에 나서는 신랑같이 새까만 모닝 코트에 흰 와이셔츠, 그리고 나비 넥타이를 맨 것 같은 모습입니다. 더구나 제비 두 마리가 앉아서 지저귀는 것을 보면 로맨틱합니다. 노래할 때도 한 마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마리가 노래할 경우에는 상대를 부르는 소리와 같습니다. 그 노래는 사랑을, 그리고 행복과 평화를 그리는 노래입니다. 노래가 있는 곳에 사랑이 함께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봄이 찾아옵니다. 제비에게서 이러한 것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에는 나이 많은 사람보다 젊은 사람이 많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합니다. 통일교회의 특징은 젊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입니다. 젊은시절은 봄과 같습니다. 그들의 얼굴을 보게 되면 봄빛과 같고 만물이 소생해서 새싹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희망에 넘쳐 있습니다. 앉아 있을 때도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단정하게 앉아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봄에 어울리는 브로우치를 꽂고 머리에 리본을 달거나 손수건까지 노란색으로 된 것을 가지고 다닙니다. 기분을 맞출 줄 압니다. 여러분은 봄을 맞이해서 제비가 되지 못하면 참새라도 되고 참새가 못 되면 카나다 거위라도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동물 가운데는 수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여러분은 어떤 동물과 같이 되고 싶어요? 고니? 늑대? 사슴? 사람은 호랑이나 곰이 나타나면 도망갑니다.
봄을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 사슴입니다. 사슴들은 새싹을 먹습니다. 이렇게 볼 때 동물 가운데서 사슴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봄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슴을 좋아하게 됩니다.
나도 벨베디아에 있는 큰 나무들을 볼 때면 마음이 즐겁습니다. 겨울을 지나는 동안 나무들이 죽었는 지 살았는 지 알 수 없는 데, 봄이 되어서 새싹이 나오면 ‘야!’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봄은 씨를 뿌리는 계절입니다. 봄에는 눈이 녹고 수분이 많으며 온기가 있기 때문에 날씨가 따뜻한 솜 포대기에서 잠자다 깨어나는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이렇듯 봄은 새로운 변화를 가져옵니다. 변화는 발전적이요, 희망적인 것입니다.
봄을 맞이한 통일교회
미국은 봄을 맞이했습니까? 가을을 맞이했습니까? 자연적으로는 지금이 봄이지만 미국은 정신적으로 가을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봄을 맞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새싹이 나오다가 말라죽는 나무가 아니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처럼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튼튼한 잎이 되고 가지가 되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어야 합니다. 가지에서 꽃이 피기 때문에 가지는 생명의 계대를 이을 수 있고, 힘을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꽃이 피고 다시 열매를 맺으면 또 다시 나무를 만들어낼 수가 있습니다. 꽃은 늙은 가지에서 보다는 새로운 가지에서 피어납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날 전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에, 새로운 가지에서 꽃이 피듯이, 새로운 봄을 맞이한 청소년들이 도대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찬들은 자기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며 히피들은 히피들대로, 공산당들은 공산당들대로 자기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여러분들이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세계 인류 가운데서 그러한 봄을 맞이할 수 있고, 그 봄 가운데서 새싹들이 되고 새로운 가지가 되어서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는 , 인류 가운데 새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멋지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많은 종교, 많은 철학이 있지만 통일교회가 거기서 빠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꽃이 피기 전에 잎이 나와야 되고 잎이 나오기 전에 땅과 만물들이 봄절기를 맞이해서 화동할 수 있고 소생할 수 있게 교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조화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을 두고 볼 때 흑인 백인은 물론 오색인종이 서로 화합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봄이 되면 겨울 동안에 얼었던 것이 모두 녹아 내리고, 산꼭대기는 물론 산 아래까지 봄기운이 완연하고 생동하는 기운이 넘치게 됩니다. 먼저 그러한 역사가 벌어지기 전에는 아무리 봄이 오더라도 새싹이 나올 수 없습니다.
가지는 뿌리에서 영양분이 전달되지 않으면 말라죽고 맙니다. 그러나 뿌리는 시궁창이든 어디든지 개의치 않고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 뿌리를 뻗칩니다. 바위도 뚫고 들어갑니다. 무슨 짓이든지 합니다. 힘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세상과는 달리 백인이든 흑인이든 오색인종이 모여서 일하고 서로 좋아합니다. 인류의 꽃이 되고 인류의 새로운 가지가 되려면 모든 인류의 진액을 무제한으로 교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인류의 꽃이 되고 인류의 새로운 가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통일교회는 세계 어느 단체보다도 대표적인 단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놀라운 것입니다.
뿌리가 돌틈이든 바위틈이든 뚫고 들어가는 것처럼 통일교회 식구들은 어떤 일이든지 주저하지 않습니다. 억지를 부리고서라도 일을 처리합니다. 땅콩을 팔 때 문을 두드리기가 싫지만 여러분은 해야 되겠다는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게 되면 무니들은 멋지다는 것입니다. 뿌리로 말하면 이상적인 뿌리요, 가지로 말하면 이상적인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선 새로운 가지 새로운 꽃이 되어 새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이 무니요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새로운 봄을 가져오는 교회
나무에 있어서 새로운 가지는 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해를 바라보며 싹과 순도 모두 땅이 아니라 태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태양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새로운 가지와 새로운 씨가 되려면 땅으로 파고 들어가겠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태양을 향해서 위쪽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우주의 태양빛은 하나님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태양을 바라보면 생명력과 사랑의 힘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는 동양인, 스페인계, 백인, 흑인 등 오색인종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각 인종의 색깔을 합하면 무슨 색깔, 무슨 빛이 되겠습니까? 어떠한 색깔이 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처럼 인종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봄에는 수많은 꽃들이 피게 되는 데, 화가가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린다 하더라도 그 꽃 이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아름다운 꽃을 그린 그림을 가져다가 세워 놓는 다고 해도 본래의 그 꽃만큼의 가치를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꽃이라면 무슨 꽃이라도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 꽃이 검정색이든, 흰색이든 다 좋다는 것입니다. 일곱가지 색깔이 있다면 그 색을 합해서 돌리게 되면 한 색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각각 다른 것이라 할지라도 잘 주고 잘 받으면 통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백색은 평화를 상징합니다. 서로서로 화해하자는 것입니다. 본래 백인은 평화를 가져오는 인종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백인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백인은 주로 육식을 해 왔습니다. 피부의 흰색은 보호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래 백인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북극지방에서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눈과 얼음 위에서 사냥을 하여 먹고 살았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먹는 것이 아니고 육식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근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흑인들은 남방 지방에서 나무 열매를 따먹는 다거나 초식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침략은 많이 받았지만 남을 공격한 적은 적습니다. 그대신 열매나 따먹고 놀러 다니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먹을 것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겐 욕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만 잘 믿으면 흑인들이 복받을 때가 분명히 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백인들은 사냥을 하지 않으면 당장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냥도 하고 남을 침략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복귀과정에서 백인들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들을 불렀습니다. 특히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세계적인 인종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흑인들은 낙심할 것 없습니다. 백인들이 자기들을 자랑하지만 그들은 남의 나라를 침략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한편 동양인은 종교적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열매 하나를 따먹으면서도 앉아서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칼라(color)가 문제가 아닙니다. 근본적인 내용이 얼마만큼 역사적 전통과 같이할 수 있고, 얼마만큼 하나님과 같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는 인류의 새로운 봄을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의 봄이요, 봄절기를 대표한 하나의 가지이며 하나의 잎입니다. 여러분은 자라지 않고 가만히 있는 가지나 잎이 아니라 무럭무럭 자라나는 가지이며 잎입니다. 대부분 나무는 낮에만 자라지만 여러분은 밤낮 할 것 없이 자라는 새싹입니다.
또, 자라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 나무가 아니라 매일 새로이 발전하는 나무입니다. 어떠한 싹이라도 조그마한 나무보다는 큰 나무가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가지도 생각하기를 ‘나도 가지가 아니라 하나의 통나무가 됐으면 좋겠다’고 할 것입니다. 어느 누가 잘라다가 흙에다 심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큰 나무가 되도록 가꾸기 위해 쫓아내는 것입니다. 뉴욕 선교본부에서 쫓아내는 것입니다. 나무도 묘판에 그대로 있으면 그냥 작은 나무밖에 되지 못하지만 봄을 맞아 이동하는 나무는 새로운 나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습니다. 봄에는 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인사 조치도 겨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봄에 하게 됩니다. 이동할 때도 겨울에 이동하는 것보다, 가을이나 여름에 이동하는 것보다 봄에 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봄에 대이동이 벌어지고 변화가 있게 됩니다. 우리도 대이동이 벌어지고 변화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봄은 희망의 계절입니다. 움직이는 사람은 대부분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모험을 하는 사람은 보통사람들이 갖지 않는 새로운 욕망과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험을 합니다. 또 역사의 발전은 그러한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언 가슴을 녹일 수 있는 것은 절대적인 사랑
우리 교회는 평범한 희망이 아니라 모험적인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처녀 총각이 꽃동산에 앉아서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남자는 불도저를 몰고 여자는 괭이로 땅을 파면서 일하는 것이 좋습니까?
봄은 달콤한 희망 때문이 아니라 모험적인 희망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봄에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졸음이 오지만 뛰면 힘이 납니다.
하나님이 봄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봄을 맞아 가지고 사랑을 해보았느냐고 물어볼 때 하나님은 그것은 나는 모르겠다고 하실 것입니다. 봄을 만드셨지만 사랑을 중심한 봄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불행하신 분입니다. 그것을 실현하는 길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일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에게 ‘함께 봄놀이 갑시다’고 할 때 하나님은 못 간다고 하실 것입니다. 가실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가실 수 없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내용을 해결짓기까지는 가실 수 없으십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봄날을 맞이하셨을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겨울날을 맞이하셨습니다. 얼어버린 하나님의 마음을 무엇으로 녹여 드릴 것이냐, 또 그 겨울을 무엇으로 녹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언 것을 녹이기 위해서는 뜨거운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얼어붙기 전보다 더 뜨거운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속에 얼어붙어 있는 그 겨울을 누가 녹여 드리겠습니까?
인류는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인연지어져서 생겨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겨울 절기가 끝나고 하나님의 봄 절기가 시작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겨울 절기를 누가 녹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도 원하고 인류도 그것을 원하는 데, 무엇을 가지고 그 겨울 절기를 녹일 것이냐는 것입니다.
과학과 지혜, 그리고 지식, 힘, 능력, 권력을 가지고 녹일 수 있습니까? 무엇을 가지고 녹이겠습니까? 절대적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유일한 사랑이어야 가능합니다.
그 다음에는 누가 녹여 드릴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녹일 수 있습니까?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되신 것이 아닙니다. 인류가 타락했기 때문에 피동적으로 그렇게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류 가운데서 그러한 하나님을 움직이고 하나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운동을 일으키는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운동을 제시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 직행적인 사랑의 도리를 찾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그런 분야의 일단을 책임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싸워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간에, 교파간에 싸움을 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서는 하나님 속에 얼어붙은 그 겨울 절기의 마음을 풀어드릴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가슴 속에 얼어붙은 그 모든 얼음덩이를 녹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동서남북만이 아니라 360도 전체에서 입체적으로 녹이려고 해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만, 백인들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녹일 수 없습니다. 오색인종이 다 와야 합니다. 과거 현재를 초월하여 영계에 간 사람까지 하나님의 심정을 노래해야 되고, 앞으로 올 사람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해서 모든 초점이 하나님의 가슴 속에 맺혀져야 합니다.
그러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면 하나님의 그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모든 종교단체가 하나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얼었던 하나님의 가슴이 녹을 것입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만 들어도, 밥을 먹지 않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욕을 먹어도 좋고 고생을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끼리 죽자 살자 하던 처지였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라 할 때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세상적인 사랑의 관계를 모두 청산하고 여러분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원리강의를 통해서 여러 번 이런 내용을 들었을 것입니다.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은 남극에, 한 사람은 북극에 가 전도활동을 하면서 살더라도 당연한 일로 여기고 살아야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신의 아내는 어디 있소? ’, ‘당신의 남편은 어디에 있소? ’ 하면 ‘저 남극에 있소’, ‘저 북극에 있소’ 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나이 많은 노처녀들, 30살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연장이다 할 때는 그렇게 알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식구들이 북극에 가서, 아니면 남극, 아프리카에 가서 활동하는 것만큼 레버런 문도 한국을 떠나 미국 국민들을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자리
선생님은 여러분의 가슴에다 사랑의 주사를 놓아 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만든 사랑의 주사를 가져다 놓아 주고 있습니다. 아프지만 사랑의 주사인 줄을 알고서 참고 맞아야 됩니다. 주사 바늘과 주사기는 아프게 해서 나쁘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투입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국의 통일교회 식구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만둘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 속에 사랑의 주사를 놓아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을 레버런 문이 해 보자고 나섰습니다. 흑인이 하나님의 앞가슴에 사랑의 주사를 놓는 다면, 백인은 뒤에서, 황인종은 옆에서, 이렇게 오색인종이 전부 다 사방에서 주사를 놓는 다고 할 때 하나님 속에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색인종이 하나되어 하나님에게 사랑으로서 영향을 미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녹여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투입돼야, 움직일 수 없었던 하나님이 비로소 그 사람의 훈기 때문에 움츠렸던 손을 펴고 활동을 시작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올라가지 않았던 손이 올라가고 내려지지 않던 손이 내려가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춤을 추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시아를 오른쪽에, 미대륙은 왼쪽에 두고 파도치는 태평양을 바라보면서 춤을 추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 세상에는 봄이 오더라도 이내 흘러가 버리지만 하나님이 봄을 맞아서 내 가슴 속에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 할 때는 봄이 결코 흘러가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몸에다 사랑의 주사를 꽂아 드려야 하고 또 하나님의 심정에도 꽂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 주사를 맞고 좋아하실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탄의 소성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순수한 사랑이라는 주사를 하나님께 놓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주사를 꽂는 그 장소는 편안한 자리가 아닙니다. 박해와 조롱을 받는 곳입니다. 그것은 사탄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주사를 놓으려고 하면 반대의 주사를 사탄이 놓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따라오지 못하는 곳에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핍박의 자리이기 때문에 할아버지도 젊은이도 욕심장이도 왕까지도 싫어하는 자리지만 나는 가야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자리에서만이 사랑의 주사를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해방시키려는 자가 태평스럽고 안일하고 더러운 구석을 지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일 힘든 자리에서 싸워야 합니다. 얼어붙은 하나님의 심정을 녹이겠다는 사람들이 편안히 살고 놀면서 지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못살고 고생하는 자리에서만이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인류에게 사랑의 주사를 놓을 의사요 간호원입니다. 사람들이 싫다고 하거나 욕을 하더라도 상관없이 여러분은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아이들은 병원에서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소동을 벌이지만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주사를 놓아야 합니다. 그와 같이 세상에 나가서 주사를 놓을 때는 사람들이 당장은 아파하지만 나중에는 주사를 맞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소매치기들이 군중 가운데서 물건을 훔칠 때는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쏠리게 한 뒤에 일을 벌입니다. 여러분들도 아픈 사람에게 주사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박해를 하겠지만 후에 병이 나으면 여러분들을 이해하고 사과를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봄에 하나님의 사랑의 주사를 가지고 안일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열심히 아픈 사람을 위해서 뛰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정 가운데 취하여 잠잘 때나 이집 저집 다니면서 전도할 때 열심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과 참부모로 말미암아 얼었던 하나님의 마음이 녹고 온 우주가 새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영광의 한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개혁하고 전인류에게 사랑의 주사를 놓아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는 의사처럼 사랑의 주사를 놓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사랑 속에 들어가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