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과 세계 - 19. 나 자신

훈독왕 | 20210511063242

하나님의 뜻과 세계

 

나 자신

1975.7.13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지금의 우리들 개개인의 모습은 20년 혹은 30년 전에 탄생하여 나타난 결과적 존재만은 아닙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해와로부터 계속 이어진 결실체들입니다. 냇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급류도 있고 완만하고도 도도한 흐름도 있으며, 폭포나 커브와 같은 갖가지 양상이 있습니다. 그같은 흐름의 한 장면에 해당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들 한사람의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의 결실체로서의 ‘나’

여러분들의 조상 중에는 선한 사람도 있을 것이며 악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완만하게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던 냇물의 흐름이 나쁜 지형 조건에 의해 갑자기 방향이 달라지는 것처럼 배후자를 잘못 만나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그와는 정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그와 같이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삶은 그 흐름 가운데 한 장면에 나타난 하나의 현상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는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 등 5색인종이 모두 모여 있습니다. 지금의 이 시점에서 보면 피부 색깔이 다양하지만 멀리 역사를 소급해 올라가 보면 모두가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태어난 것입니다. 인류는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역사를 통해 자꾸만 나뉘어져 왔는 데 그것이 또 계속되는 역사 속에서 하나가 되는 때는 언제이겠습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개성진리체로서의 ‘나’

나뉘고 또 나뉘어 온 그 결과를 생각해 볼 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역사과정이 있었습니다. 전쟁이나 문화적인 교류 등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종교는 분열된 것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일을 해왔습니다. 종교는 역사적으로 이러한 일을 해왔습니다. 아무리 언어와 풍속과 인종이 다르고 생활 환경이나 배후 관계가 다르더라도 종교적인 의식이나 목적을 중심으로 그것을 어려움 없이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종교 가운데서, 특히 기독교는 수백개의 교파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목적으로 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교파 종파 및 모든 인종을 초월하여 하나되자는 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얼키고 설킨 세계의 흐름 가운데서, 복잡한 혈통적 배후관계 등을 어떻게 해결하여 어떤 방향으로 인도할 것인가 하는 것을 문제로 삼고 있습니다. 

냇물은 크면 클수록 그 흐름은 점점 완만해지고 바다로 들어간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바다로 들어간 물은 모두 하나가 되어 조용하게 정지되고 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나 실은 냇물의 흐름보다 더 급격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일반 사람들은 즉각 느끼지를 못합니다. 냇물의 흐름이 바다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새로운 방향의 흐름에 따르는 것과 같이 우리들에게는 육신생활뿐만 아니고 영적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우리들 개인은 어쩌면 하늘에서 떨어진 하나의 물방울과 같다고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물방울은 서로 합쳐 냇물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를 이룹니다. 인간은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은 종족, 민족, 국가를 형성하여 세계라는 대양으로 향해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생 행로를 생각할 때 자기라는 존재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냇물이 어떤 지역으로부터 흘러왔는 가 하는 데 따라 그 물이 지니고 있는 내적인 요소가 달라지게 됩니다. 또 여러 가지 요소가 서로 섞인 물이 합쳐져 하나의 냇물이 되고 그러한 많은 냇물이 서로 섞여 그 자체의 흐름을 유지하며 대양을 이룹니다. 

이같이 생각해 볼 때 자기라는 존재는 실로 보잘것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자기가 전체를 무시하고서라도 자기 나름의 개성을 갖고 싶어합니다. 인간은 모두 자기가 어떤 것에 흡수되기보다는 어떤 것을 흡수하고 싶어합니다. 비교되는 대상적 존재가 아니라 비교의 중심체가 되고 싶어합니다. 

순수한 인간이란 

여러분들이 사람을 평가하거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평가하거나, 한나라의 문화권 등을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중심으로 판단합니까, 아니면 자기를 중심으로 판단합니까? 대개는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판단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바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가 하면 결국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생각하는 것도 자기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고 싶어집니다. 자기를 가운데 놓고 싶어집니다. 자기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존재입니까? 

물에 비유하면 짠물이 진짜 물이지요. 비율로 보면 바다는 지구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지구상의 물 대부분은 소금물이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짠물입니까, 순수한 물입니까? 그렇게 생각해 보았을 때 순수한 물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흐르는 냇물에서 물을 떠 왔을 때 그것이 과연 순수한 물일까요? 순수한 것처럼 보여도 순수한 물은 아닙니다. 냇물에서 한 컵의 물을 갖다가 분석해 보면 모두 다릅니다. 장소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예를 들면 베리타운의 물과 테리타운의 물은 같지가 않습니다. 비전문가가 보면 다 같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분석하여 비교해 보면 그것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빗물이나 바닷물 가운데서 일어나는 지극히 작은 일부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컵에 담아온 한 잔의 물도 모두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인간의 개성은 모두 다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도대체 자기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문제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당신은 스스로 순수한 물과 같은 인간이라고 주장할 수 있느냐’고 묻는 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겐 별로 잘못이 없다’, ‘나는 올바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겠지요. 

순수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그것을 정합니까? 모든 것은 그 이상 달라질 수 없다고 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는 것처럼 물도 순수한 물은 H2O이며 그것은 아무리 해도 그것밖엔 되지를 않습니다. 계절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변한다 해도 그것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기준을 중심으로 ‘순수성’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참다운 것, 진리라고 하는 것은 그 기준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비교의 중심점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물은 H2O니까 그 기준이 명확하지만 인간은 무엇으로 그 순수성을 알게 될 수 있을까요. 순수한 인간을 찾아내는 데 있어 그 원칙은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정해져야 합니까?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금’이라고 하면 대단한 것으로 알고 모두가 좋아하지요? 미국 역사를 보더라도 서부의 금광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대이동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금을 좋아하지요? 모두가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좋아합니까? 그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도는 무르나 색깔은 몇천년, 몇만년 가도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금의 특성이라는 것은 변치 않는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금의 가치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금을 보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또 다이어몬드를 좋아하지요? 특히 여성들은 더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다이어몬드는 왜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될까요? 그것은 경도에 있어서 그 무엇도 이것을 능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위나 쇠도 풍화작용으로 변하지만 다이어몬드만큼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이어몬드가 귀한 것으로 취급받고 보물로 대접받는 것은 그 경도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진주’를 좋아하지요? 진주는 모두가 좋아할 만한 부드러운 색깔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색깔은 몇 백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진지한 보물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귀하다든가 가치가 있다든가 귀중하다든가 하는 것들은 변치 않는 다는 특성을 제1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은 우리 생활의 외적인 광경에 속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되고,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는 인격의 절대적인 가치기준도 변치 않는 다고 하는 것 가운데서 충족시킬 수가 있습니다. 

출발점은 신으로부터 

여러분들은 어떤 존재입니까? 변하는 자기입니까, 변하지 않는 자기입니까? 변하는 자기라는 것을 지금 알았습니다. 그러면 변하는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변하는 자기를 주체로 해서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일입니까, 그릇된 일입니까? 미국 자체는 어떻습니까? 잘 변하는 나라입니까, 아닙니까? 혹은 인류 자체는 어떻습니까? 인류의 역사는 어떠합니까? 세계는 어떠합니까? 

‘이상’이라든가 ‘영원’이라든가 하는 그러한 내용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입니까? 이 미국 속에서 생겨나는 것입니까? 이 미국 안에 희망이 있습니까? 여러분들 가운데서 그런 나라가 생겨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의 과거와 현재를 비판 검토하고 미래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분석해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자신의 생활을 분석해서 변하는 것은 모두 제거해 버리고 변하지 않는 것을 남겨 놓으십시오. 

우리 인간에게는 육심(肉心)과 양심(良心)이 있습니다. 그 두 마음 가운데서 변치 않는 쪽에 속하는 것은 양심입니다. 보다 내적인 문제와 관련되는 쪽이 양심인 것입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놓고 내외적인 입장에서 보면, 변하지 않는 것은 보다 깊숙한 곳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의 역사적 중심이 되어야 할 인간, 혹은 우주 완성의 중심적 입장에 서야 할 인간은 어디서부터 출발되었을까요? 외적으로 나타난 역사의 표면으로부터 그것이 생겨날 리는 없습니다. 

그러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 기준은 도대체 어디인지 찾아보도록 합시다. 정말로 순수한 인간의 본성, 즉 본래의 인간을 찾자면 현재의 입장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현재의 입장으로부터 소급해 올라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인정하십니까? 여기에서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인간이 이상적인 세계로 되돌아가려면 우선 무엇보다도 본래의 기본적 입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의 순수한 인간의 가치라는 존재를 찾고나서 미래의 세계로 가는 것을 누구나 환영합니다. 그것을 찾지 않고 미래를 향해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봤자 아무도 그것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이상적인 인간상을 향해 전진하라’고 하기보다는 ‘하나님에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 바르게 인도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무리 미래를 향해 인류가 전진한다 하더라도 거기서는 순수한 본래의 가치를 지닌 인간을 탄생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과정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현재를 부정하고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꿔라’ 하고 주장해 온 것이 이른바 종교입니다. 역사는 이 한 점을 찾기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해온 것입니다. 

탕감복귀의 길을 걷는 ‘나’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통해 가야 하는 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지혜롭기 때문에 가는 길을 빨리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종족적 종교, 민족적 종교, 국가적 종교, 세계적 종교 등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 기준을 주장하고 나오는 종교를 통하지 않으면 인류가 본래 가야 할 길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막연하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간다’, ‘모두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렇게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위하여는 먼저 ‘인간이 잘못돼 있다’, ‘순수한 인간이 돼 있지 못하다’고 하는 것을 자인해야 합니다. 

수많은 종교 가운데 통일교회가 다른 점은 본연의 인간,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의 입장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점입니다. 순수한 기준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역사를 돌려놓을 수 있는 중대한 제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타락한 조상입니다. 죄를 범하고 있으므로 순수한 조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 시조로부터 물려 받은 타락성 근성을 벗고 창조본성을 복귀해야 합니다. 순수한 인간이란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 ‘변하지 않는 자’입니다. 이것이 창조 본연의 완성한 인간상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원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도 나는 변치 않겠다고 하는 기준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원리가 감싸고 있는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창조 이상을 완성한 인간상과 자기의 생활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질대로 변하지 않는 모습이 되겠다고 결의를 다짐하면 그로부터 새로운 인생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작년에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올해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를 위해 힘써 일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혹자는 왜 자신에 대한 책임분담이 이렇게 점점 커져만 가느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본래의 가치 있는 인간으로 돌아가는 데 일주일 걸려서 돌아가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3개월 걸려 돌아가는 것이 좋습니까? 수천년에 걸쳐 잘못된 내용을 하루만에 복귀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빠른 일입니까? 여러분은 어느 쪽을 택하겠어요? 물론 더 빠른 쪽을 택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의 소원입니다. 

밀어주는 힘이 강하면 속도는 더욱 빨라집니다. 공기는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빨리 달릴 때는 방해가 됩니다. 그 원리를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인공위성은 무중력권으로부터 중력권으로 들어갈 때 마찰에 의해 광채가 납니다. 이와 같이 빨리 가는 데는 방해물이 많습니다. 

통일교회는 빨리 가는 교회입니까, 느리게 가는 교회입니까? 빨리 가므로 소리도 많이 나고 마찰에 의하여 광채도 납니다. 여러분들은 마치 녹아버리는 쇳덩이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도 있는 가’, ‘이런 일도 할 수 있는 가’, ‘이제 모든 것은 끝장나는 것 아닌가’ 하고 놀랄 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를 빨리 통과해 나가지 않으면 일은 망치고 맙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빨리 돌아가자!’며 흘러가는 시간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질을 당했을 때 아픔도 느끼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매질을 당해도 한 번 맞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차피 반대 역사는 있기 마련이므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것입니다. 빨리 통과할수록 좋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장 바라시는 일이요, 선생님이 원하는 일이며 여러분의 바람이기도 할 것입니다. 

천국 건설을 책임진 자 

탕감복귀역사는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발전돼 왔습니다. 우리는 6천년 역사 동안 얽힌 사연들을 횡적으로 완전히 탕감복귀해야 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종적인 6천년의 역사를 한 세대에 완전히 탕감복귀하려면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통하여 나타났던 모든 인간이 범한 죄악과 오늘날 세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모든 죄를 혼자서 책임지겠다는 한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탕감역사가 벌어지며 천국이 지상에 도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일생을 그런 신념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영적인 모든 탕감조건의 십자가를 혼자서 짊어지겠다는 사명감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정신을 여러분들도 갖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무리 박해를 받더라도 힘차게 싸워 나가야 합니다. ‘어떤 식의 박해가 닥쳐온다 하더라도 나는 끄떡도 안 합니다’하는 각오가 모두들 다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 가운데는 태권도를 연마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태권도를 배운 사람은 손과 발, 또는 다리로 벽돌 같은 것도 깨버리지 않습니까? 그것은 정신력입니다. 정신력을 강하게 무장하면 무엇이 날아오든 두렵지 않습니다. 무서워 적에게 등을 돌리고 달아나는 비겁자가 돼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오기까지는 많은 싸움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반대하는 자도 있고 가정적으로 반대하는 자도 있었으며 정부도 반대했습니다. 모두가 반대했지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또 미국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매스컴들이 총동원되어 선생님을 공격하고 반대했어도 이렇게 끄떡도 안 합니다. 선생님은 ‘만약 미국이란 나라가 반대를 해도 끄떡하지 않겠다’, ‘아무리 감옥에 보낸다 해도 끄떡하지 않겠다’고 하는 결의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 결의가 미국을 구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결의를 갖고 있지 않으면 미국은 망하고 맙니다. 여러분은 그런 결의가 되어 있습니까? 형세가 좀 불리해지면 도망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미국인이고 선생님은 한국인입니다. 미국인은 미국을 지켜야 합니다. 선생님보다도 더 강해져야 합니다. 선생님은 강한 사람을 만들려고 몸부림쳐 왔습니다. 여러분이 강하게 되면 미국은 통일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우수한 선도국이 됩니다. 만약 일본인이 미국 인보다 더 강해지면 여러분은 일본인에게 지배되고 맙니다. 힘의 세계의 기준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 통일교회는 미국을 구하기에는 역부족인 미미한 힘밖에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머지 않아 어떤 단체, 어떤 조직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통일교회는 해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까? 믿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열성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결의를 가지고 있다면 공산당이라든가 사탄적 요소는 모두 도망치고 맙니다. 더욱 합심하여 정진하면 급기야는 지상에서 사탄의 세계가 영원히 없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지상 천국은 이렇게 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가치 결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 순수한 자기를 어디에서 찾는 가 하는 문제를 결론지어야 하겠습니다. 그러자면 우선 통일교회의 원리가 ‘유일한 진리’라고 하는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원리는 영원한 역사를 통해서도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이것은 어떤 위인의 권세나 국가 권력으로도 변경시킬 수 없으며, 세계도 하나님도 변경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변치 않는 진리라고 한다면 이것은 인간이 본래부터 바라는 이상적인 가치를 갖고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원리에 의해 부활된 사람들이 국가를 초월하고 세계를 초월해서 하나가 되면 모두가 형제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백인도 없고 흑인도 없고 황색인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흑인이라고 해도 피부색만 다를 뿐 모두가 똑같습니다. 뼈도 같고 살도 같고 피도 같고 마음도 같습니다. 피부색만 조금 틀릴 뿐인 것입니다. 그것은 기후와 환경 때문에 달라진 것이므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입니다. 

그 예로서 소나무를 보십시오. 극한지대로부터 온대권으로 가면서 종류가 점점 달라집니다. 소나무가 서 있는 지역적인 환경에 따라 점점 달라지며 또 그것이 출발했던 기준과 역사를 통해 종류가 달라지게 됩니다. 또 곰을 보십시오. 북극의 곰은 백곰입니다. 백색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그 환경 때문입니다. 보호색이 백색이기 때문입니다. 

백인종은 무엇인가 하면 북극의 백곰과 같은 것이며 흑인종은 더운 곳의, 온대지방의 흑곰과 같은 것입니다. 오직 그 차이 뿐입니다. 그런데도 흑곰과 백곰이 서로 서로 ‘너는 백곰이니까’, ‘너는 흑곰이니까’ 하면서 같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백인종이 그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황인종과 흑인종에게 숫자적으로도 당하게 되고 맙니다. 그 백인종은 전 인류의 3분의 1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 시대를 맞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가차없이 공격대상이 될 수 밖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생각은 하루 속히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모두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결혼식도 국제적으로 합니다. 서양인과 동양인이 결혼을 합니다. 백인과 흑인이 결혼을 하기도 합니다. 인종을 초월해서 서로 사랑하는 모습, 그것은 역사에도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지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지금으로부터 10년, 20년, 30년 후엔 반드시 선견지명이 있는 주장이었다고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호소하는 세계적 사상이 없으면 인류는 멸망하고 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인간은 모두가 형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하나되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미국의 건국정신은 ‘하나님 아래 한 국가(ONE NATION UNDER GOD)’입니다. 이것은 훌륭한 정신입니다. 또 지금 바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변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민족적인 조화를 이룬 기준은 어느 누구에게나 매력을 줍니다. 그 누가 반대하더라도 끄떡도 안 합니다. 선생님이 세계 복귀를 위해 걸어온 노정을 본받아 그 뒤를 뚫고 나갈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전진해 나갈 것입니다. 그것은 변치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무리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의 과거 생활을 생각해 보십시오. 언제나 변하는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아침에 변하고, 밤에 변하고, 젊었을 때 변하고, 노인이 돼가지고 변했습니다. 갔다 왔다 하는 그런 인간이어서는 안 됩니다. 변하지 않는 인간이 모여야 새로운 종족, 민족, 국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마음들이 되어 있다면 ‘아, 나를 믿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행복의 조건 

여러분들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남이 나를 믿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남이 나를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남이 자기와 함께 살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그 소원이 성취되면 행복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틀림없는 여러분의 소원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믿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함께 계셔 주신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모두가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되려면 우선 자기를 믿어 주는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사랑을 주고 받으며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갖추고 평생을 살아가는 자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자들에게 어떤 남편이 좋은 남편이냐고 물어보면 영원히 변치 않고 믿어주는 그런 남편이 좋은 남편이라고 대답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남자 또한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그런 사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상대자로서 믿음을 받고, 사랑을 받고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상 순수한 인간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수한 사람들이 돼서 모두 하나님을 믿게 되면 하나님도 정말로 나를 믿어줘서 고맙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서로가 믿고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면 하나님도 함께 살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자만이 책임있는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개인이란 어떤 사람이라고 말했습니까? 서로가 믿고, 서로가 사랑하고, 서로가 함께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부가 그렇게 살면 하나님이 함께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룩하게 됩니다. 종족이 행복하게 되려면 종족간에 서로가 믿고 서로가 사랑하고, 서로가 함께 살고 싶다고 소원해야 합니다. 민족도, 국가도, 세계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온 국민이 그를 믿고, 그를 사랑하고, 그와 함께 살고 싶다고 할 때 그는 바로 이상적인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를 생각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세계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 고자 할 때 하나님도 비로소 행복을 느끼시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올바른 사람, 순수한 사람이라고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틀림없이 믿을 수 있는 사람, 변치 않는 사랑을 주는 사람,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소원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은 누구에 의해서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결국 하나님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승리자가 되려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변하지 않을 것으로 믿어 주셨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역사를 초월해서 그 기준을 유지해 오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타락한 세상의 부모들도 믿을 수 없는 자식을 믿고 삽니다. 번번이 속으면서도 믿어 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같은 사람을 내 남편으로, 내 아내로 맞았으면 하고 바랄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누구나 똑같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을 믿어 주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해 주고,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버리지 않는 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떨어져 나갔다가도 그것을 확인하게 되면 감동하여 다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런 심정으로 복귀섭리의 길을 걸어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인이라고 불리우게 된 것도 원수들까지 축복하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점이 온 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성경 66권 속에는 수많은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믿고 사랑하고 함께 살라’는 내용으로 집약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어떤 사람을 가장 순수하고 가장 믿을 만한 사람으로 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같이, 믿을 수 없는 입장에 있더라도 믿어 주고, 사랑할 수 없는 입장에 있더라도 사랑해 주고, 함께 살 수가 없는 입장에 있더라도 살아 준다고 하는 일을 계속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그 환경에서 승리자가 됩니다. 

동양과 서양을 하나로 

나는 미국에서 여러 가지를 체험하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같이 신앙생활을 하며 열심히 일해 온 사람들까지도 떠나갈 때는 인사도 없이 슬며시 사라져 버립니다. 또 동양 사람과 다른 점은 나간 사람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일이 적다는 것입니다. 동양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떠날 때에는 분명히 자기의 의사를 밝히며 나갔다가도 돌아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교육제도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 사람들은 섭리노정이 깊어질수록 더 엄격한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미국인은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자유주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각기 자기를 주장하고 있으므로 뒤죽박죽입니다. 동양 사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가 중심을 존중하고 자기는 대상적인 입장에 섭니다. 미국과 같은 교육의 방식은 개척시대에는 좋겠지만 통일된 시대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세계개척시대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하나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통일사상은 오늘날 서양 문명권에서 절대적으로 필요시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하나되어 나라를 움직이고 세계를 움직여 나가고 있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미국은 하나님의 축복에 의해 물질 문명을 꽃피운 대표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기준으로부터 내적인 기준으로 급격하게 변화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물질적인 면보다도 정신적인 면을 존중합니다. 서양은 외적으로는 축복받았으나 내적인 기준에 있어서는 부족합니다. 반면에 동양은 내적으로는 축복을 받았으나 외적 기준에 있어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공평하신 분입니다. 

앞으로 3년 내지 7년이 지나면 대충 균형이 잡혀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통일교회 청년들은 상당히 변했습니다. 바닥에 그대로 앉는 것을 배웠습니다. 의자가 없으면 앉지를 못하던 사람들이 이런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종교를 중심으로 정신면을 중요시하면 물질적인 조건을 박차 버립니다. 동양은 정신문화를 중요시해서 모두가 외적 기준을 박차 버렸습니다. 그것을 서양 사람들이 주워 모았습니다. 미국을 비롯하여 서양의 많은 나라들이 외적으로 잘살게 된 것은 동양의 물질적 조건을 모두 원조받아 서양문명을 발전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양의 정신문명도 한계에 직면해 있습니다. 동양은 점점 서양문명, 물질문명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서양은 또한 동양문명, 정신문명을 요구하게 되어 이것들이 서로 교체되는 것 같은 시점에 서 있습니다. 바로 수수작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세계가 된다면 서양인이 동양에 가서 살든지, 동양인이 서양에 가서 살든지간에 이것은 무리가 없도록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자면 생활기준, 사상기준, 목적기준이 일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동양의 풍조를 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 가서 공부하면 된다고 하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면 사람이 나빠진다, 아무것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많이 히피의 부류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반면 미국 사람들은 먹는 것, 마시는 것, 사는 것 등 외적인 삶의 경험은 안 해 본 것이 없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모든 외적 기준을 버리고 원시인간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이와 같이 무엇인가 정신적인 면을 갈구하다 보니 동양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동양인은 순진하고 순수한 면이 있어서 잘 변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미국인은 아주 이랬다저랬다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 청년들은 동양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동양인은 미국의 여자들이 날이면 날마다 변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면이 있습니다. 

미국은 이혼률이 높습니다. 남자보다도 여자가 원하여 이혼을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동양은 그 반대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서로 바꾸면 이상적이 되지 않겠어요? 전혀 반대이니까 말입니다. 

동양에서는 오른손을 주로 사용합니다. 왼손은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왼손을 주로 사용합니다. 오른손은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구별이 됩니다. 또 동양인은 음식을 먹을 때 조용히 하며 이야기를 안 합니다. 그러나 서양인은 서로 다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합니다. 그것은 아주 정반대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상적인 세계를 이룩하기 위하여는 동양과 서양을 결속시키고 그 둘을 합치시킬 수 있는 하나의 정신적인 종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참된 세계를 그리는 통일사상 

국민을 사상적으로 결속시키자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상은 변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해가는 세계에 있어서 그래도 변치않는 것은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2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탄압을 받았습니까?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나라들이 기독교를 탄압했지만 멸망하지 않고 발전해 왔습니다. 그렇게 보면 불교도 그렇습니다. 이슬람교도 인도교도 그렇고, 유교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권을 중심으로 해서 문화가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발전돼 온 지금까지의 종교는 오늘날 여러가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에 풍화작용을 일으켜 거칠어지거나 깨어지거나 부서지거나 했습니다. 

이제 종교계에 일대 혁명시기가 도래했습니다. 그리고 동양문명도 서양문명도 일대 혁명기에 들어섰습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과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과 그 어느쪽이 좋은지 모르게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를 중심으로 해서는 변치 않는 이상세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말았습니다. 

민주주의는 쇠퇴해 가고 공산주의는 종말을 고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지도국가인 미국을 믿을 수 없다는 소리가 세계 각국에서 빗발치고 있습니다. 더구나 공산주의는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못 됩니다. 

종교계에 있어서, 세계의 사상계에 있어서 일대 혁명이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혁명은 반드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온 세계에 이르기까지 혁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혁명을 이룩할 수 있는 내용, 전통적인 이론체계가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주체성을 가지고 세계를 지도해 온 미국 국민을 새롭게 다시 교육시킬 수 있는 , 그런 종교가 없습니다. 

사탄 마귀의 철학인 공산주의 이론과 그 악랄성에 대하여 브레이크를 걸고, 그것을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는 내용을 제공하는 종교가 없습니다. 오늘날 종교계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점을 지적하여 새로운 방편으로 이끄는 내용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세계가 이렇게 혼란에 빠진 이 시점에서 통일교회 말고는 오늘날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종교가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우리들의 입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위치에 놓여 있는 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보다 존귀한 것, 보다 가치있는 것에 가까이 가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 이상으로 더 존귀한 존재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을 확실하게 모르는 데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데서 생겨났습니다. 

민주주의 체제도 하나님의 이상, 하나님의 나라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가를 몰랐기 때문에 지금같이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종교가 부패하는 것도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데 원인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어디에 나타나십니까?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에게 나타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타락 이전의 아담 해와, 죄없는 아담 해와의 입장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거기에서 참부모를 맞이하여 참된 종족을 만들고, 참된 국가를 만들고, 참된 세계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통일사상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도달하려면 타락했던 경로의 반대 경로를 뚫고 나가야 합니다. 탕감의 길은 타락한 자에겐 원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원상으로 복귀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를 청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해방하는 ‘나’

개인적인 문제로부터 가정, 종족, 국가, 세계를 어떻게 복귀하는 가 하는 확실한 이론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심정적인 하나님을 논의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까지의 종교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슬픔 속에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구속되어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하나님을 세계적으로 해방시켜 드려야만 행복의 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방되어야만 우리들의 행복된 삶이 출발됩니다. 이것이 통일사관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하나님에 의해 내가 해방 되고, 우리 가정이 해방될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런 종교를 신봉해 온 나라가 해방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해방되기를 바라는 종교는 그 근본부터가 잘못돼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올바른 길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어떻게 반대하든 당당하게 주장하고 당당하게 행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은 내 한 몸을 바쳐 세계를 구하고 하나님까지 해방시켜 드려야겠다는 결의를 다짐해야겠습니다. 그런 신념을 갖고 사방 팔방으로 목숨을 걸고 전진해 나간다면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들을 돕지 않을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의 신앙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서 신앙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나보다는 나라, 나라보다는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 신앙하고 있습니다. 세계 구원이 이루어지면 자기 나라는 자연히 구원되게 됩니다. 

기독교가 이런 사상을 갖고 있다면 수백개 종파로 분열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해방이라는 한 가지 목포를 향해 평생을 바쳐 일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해서 ‘인간의 자유’와 ‘인간의 해방’을 주장해 왔습니다. 이에 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유’, ‘하나님의 해방’을 주장합니다. 천주를 주관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복귀시켜 드리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인간 해방은 물론, 인간의 자유 회복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주제는 ‘나 자신’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자신은 하나님을 해방하고 세계를 해방시키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는 자각을 가져야 합니다. 

불굴의 정신 

통일교회가 가는 곳에는 방해물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거기서 후퇴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극복하면서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미국이 해방돼야 세계가 해방됩니다. 미국은 여러가지 면에서 하나님의 축복에 의해 준비된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이 미국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여러분들은 윤리적 탈선, 공산주의의 침투, 인종문제 등에 의해 내적으로 크게 부패하고 있는 미국을 누가 구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인 자체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자기의 나라를 보고 낙담하지 않을 수 없는 오늘의 미국이 하나님을 해방시켜드릴 수 있겠습니까? 

사양길에 접어든 미국의 교회가 하나님을 해방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미국에 대하여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미국을 통해 이루시고자 했던 그 이상을 새롭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무리들이 출현하기를 고대해 오셨습니다. 그 소망의 실체가 바로 우리들인 것입니다. 미국의 CIA가 조사를 하면서 중상하고 있는 레버런 문입니다. 미국이 무시하고 반대하고 있는 레버문입니다. 

선생님은 그 미국을 망하게 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여러분들이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 이상으로 미국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나 자신은 하나님을 해방하고 하나님의 자유를 위해 일어섰다’, ‘나 자신은 하나님을 보호하고 하나님을 지켜드려야 할 올바른 인간으로서 미국과 세계를 위해 거사를 하고 있다’는 자기확신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전쟁터로 향할 때, 격전장으로 가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쉬운 싸움터, 후방으로 가기를 원합니까? 어느쪽을 선택하겠습니까?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등으로부터 살아 돌아오는 미국의 병사들을 보고 우리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미국에 하나님의 축복을 남기기 위해 여러분은 어떠한 격전장이든 용감하게 뛰어들어 당당하게 징벌하고 말겠다는 굳건한 결의를 다짐해야 합니다. 악랄한 국제 공산주의자들이 판치는 전쟁터에도 통일사상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뛰어들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런 자신이 있습니까? 통일교회에 들어 온 소감이 어떻습니까? 그저 좋기만 합니까? 알고보니 무섭습니까? 굉장히 훌륭한 곳이라고 생각됩니까? 통일교회는 사탄세계에서 보면 아주 무서운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편에서 보면 아주 훌륭한 곳입니다. 

선생님은 아무리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도 불굴의 정신으로 그것을 받아들여 소화하고 맙니다. 여러분도 최후의 싸움터에 섰다는 자각 아래 선생님과 같은 불굴의 정신으로 하나님의 해방, 하나님의 자유를 위해 전진해 주기 바랍니다. 고난의 길과 어떤 싸움터라도 서슴지 않고 선두에 서서 나가겠다는 정신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거대한 미국도 머지않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에겐 오직 승리가 있을 뿐  

우리들이 미국에서 승리한다면 그 승리적 영향은 세계 각국에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선생님과 함께 승리의 깃발을 들어야 할 운명을 하늘이 부여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자기에게 부여된 사명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이 지구상에서 누구보다 올바른 길을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입장에서 자기 자신과 하나님께 맹세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싸우겠다는 각오가 돼 있습니까? 그런 각오가 돼 있는 사람은 거수해 보십시오. 

오늘은 7월 들어 두 번째 맞이하는 성일입니다. 우리들은 이 거대한 미국을 향해 세계적인 사명을 품고 사방 팔방에서 바삐 활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절박한 시점에 서 있는 가를 확실히 알았습니다.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자각한 여러분에게는 낙담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주저함도 있을 수 없습니다. 패배하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전진, 또 전진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승리를 쟁취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그런 존귀한 대열에 선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언제나 자부심과 긍지를 지니고 이 거대한 목적 달성을 위해 총 매진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최고의 승리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흠뻑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충분히 하나님의 훌륭한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