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과 세계 - 15. 기독교의 장래

훈독왕 | 20210510053251

하나님의 뜻과 세계

 

기독교의 장래

1973.10.23
미국 워싱턴 리스너 강당

오늘 저녁 이와 같이 만장하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기독교의 장래’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기독교신자들과 여러 분야의 지도자들이 참석하셨다고 봅니다. 또한 유대인들도 많이 참석했다고 봅니다. 나는 기독교인들을 사랑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여러분과 나 사이에는 하나님을 두고 보면 간격이 없지만, 내가 말하는 것을 두고 보면 간격이 있다고도 볼 수 있고, 간격이 생긴다고도 볼 때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새로운 말씀을 듣는 다고 해서 너무 타격받지 마시고 기도하는 가운데 장래에 대한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며 해결점을 찾아 나가는 여러분이 되어 주시기를 먼저 부탁드립니다.

끝날은 인간의 타락 때문에 생긴 것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은 장래에 주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말세와 심판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어느 때나 문제가 돼 왔고 신학적으로도 지금까지 문제가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성경을 믿고 있는 기독교가 수백의 교파로 나뉘어져 있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직행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만 있어야 되는 것인데, 여러 갈래의 교파가 생겼다는 것은 비참하다면 비참한 사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있어서는 과거 역사를 통해서 살펴볼 때 끝날이 언제가 될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 왔고, 이것은 지금 이 때에 있어서도 더욱 문제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끝날이 되면 주님이 오셔서 심판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천지이변(天地異變)이 벌어져서 해와 달이 떨어지고 땅이 다 깨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래 끝날이라는 말은 종교에서 나온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끝날을 말법시대(末法時代)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말세라고 하는 데 도대체 이 끝날이 어떻게 돼서 생기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그 세계는 영원한 것이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한번 시작했으면 영원히 가야 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경륜한 이 세계에 끝날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설정하셔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여기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은 선이 영속(永續)하지 못하고 악이 출발한 것이 끝날이 생긴 원인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아담 해와는 선한 에덴 동산에서 살았습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시작한 선은 영원히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선이 출발을 못보고 끝을 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상적인 입장에서 믿을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인간 조상이 그 말씀을 불신하여 사망이 이 땅위에 생겨났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계명을 범하게끔 유혹한 또 하나의 주인공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이 주인공의 유혹에 끌림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타락한 아담과 해와는 사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불신의 결과로 말미암아 멸망의 세계,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망의 세계가 출발됐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님은 선으로 출발하지 못한 이 세계를 그냥 그대로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또다시 회복해서 어느 한 때에 다시 선의 출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지 못할 자리에서 믿는 사람을 빼내오는 하나님의 섭리 

이사야서 46장 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행할 것이요, 내가 경영하였은즉 정녕 이루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려면 불신으로 말미암아 악이 먼저 출발했고 사탄을 중심으로 악한 사람과 멸망이 생겼기 때문에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믿음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의 세계가 이루어져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조상이 믿을 수 있는 에덴에서 믿지 못했기 때문에 사탄세계의 믿지 못할 자리에서 믿고 나오는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전부 반대할 수 있도록 해놓고 빼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운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입장에서 출발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노아 할아버지를 보더라도, 그는 아라랏산에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 받았습니다. 바닷가도 아니고 강가도 아니었어요. 또한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가 1백세에 이르러 축복으로 받은 만득자(晩得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어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반복을 하지 않겠습니다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믿지 못할 일로 섭리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31절을 보면 사탄을 이 세상 임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사탄의 주관을 받는 것을 찾아오기 위해서는 빼앗아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개인적으로 세계를 대신하고 역사를 대신하여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절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노정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사를 중심삼고 선민을 세워 그러한 기반을 넓혀 나왔습니다. 노아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절대 믿은 사람이요, 야곱은 가정적으로, 모세는 민족적으로 하나님을 절대 믿은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세계에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나오고,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주관권을 제거해 버리고 새로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선한 출발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때가 끝날이냐 

그러면 끝날이 언제입니까? 악한 세계가 시작됐으므로 하늘편 사람이 나와서 이것을 청산시켜 가지고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선한 세계를 향해서 돌아가려 할 때마다 끝날의 현상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한 세계의 모든 것을 청산짓고 사탄의 모든 참소조건과 더럽혀진 것을 벗어나서 선한 세계로 넘어설 수 있는 중심적인 사람이 개인적으로 넘어갈 때는 개인적인 끝날이요, 가정적으로 넘어갈 때는 가정적인 끝날이요, 종족적으로 넘어갈 때는 종족적인 끝날이요, 민족적으로 넘어갈 때는 민족적인 끝날이요, 세계적으로 옮겨질 때는 세계적인 끝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수 많은 조상들이 왔다 갔지만 하나님의 뜻을 맞추어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항상 완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개인, 가정, 민족, 국가, 세계를 대표해서 이겼다는 기준을 한꺼번에 갖추어서, 사탄 앞에 당당한 권위로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세계적 대표자를 보내겠다는 약속을 해오셨는 데, 그런 분이 메시아입니다. 

역사 이래 악한 세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선한 세계를 넘어설 수 있는 때에 주님이 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라는 것은 한 시대는 가고 새로운 한 시대가 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끝날이 됐다고 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해와 달을 깨뜨려 버리고 땅을 멸해 버리신다면, 그것은 사탄 때문에 깨뜨려 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실패한 하나님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탄으로 말미암아 땅이 더럽혀지고, 해와 달이 지금까지 악한 사람을 비추어 준 것만 해도 분한데 그 뜻을 한 번도 이루어 보지 못하고 깨뜨려 버리면, 그 하나님은 어떻게 되시겠습니까?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신하여 사망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기 위하여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는 말씀을 세워 생명권으로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날은 언제 다가오는 지 모르게 도래합니다. 여러분의 시계가 12시를 알리는 땡 소리를 치게 되면 어제는 끝나고 오늘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날은 지금부터라고 하면서 맞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기에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끝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어제의 끝과 오늘의 새로운 출발은 분간하기 힘듭니다. 이제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옵니다. 그런데 언제 가을이 지나가고 언제 겨울이 오는 지 일반 사람이 모르게 와 버리고 말아요. 여기에 나이 많으신 분이 여러분 계시지만 일생 동안에 단 한번이라도 가을과 겨울이 바뀌는 분명한 한계선을 맞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어떻게 하다보니 아이쿠 겨울이 됐고, 이럭저럭 지나다보니 벌써 봄이 됐지요. 그렇다고 계절의 끝이 없는 게 아닙니다. 

에덴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도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확실히 분별할 수 있는 목적관이 있었던 것도 아니요, 주관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갖지 못했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취해야 할텐데 왼쪽으로 방향을 취한 게 타락입니다. 아담 해와는 모든 사실을 확실히 모르는 혼돈 가운데서 타락된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를 끝날로 봐야 되느냐 할 때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성경에 말하기를 끝날이 되면 면양과 산양을 갈라 놓는 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면양은 주인이 있는 양을 말하고 산양은 주인이 없는 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산주의는 좌익이며 산양입니다. 왼쪽 양은 산양이라고 성경에 말했어요. 산양은 주인이 있어도 주인을 모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하나님을 알아요? 민주세계는 면양입니다. 면양은 주인을 알아봅니다. 민주세계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모든 현상은 성경에 나타난 끝날을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끝날은 어떤 때냐 하면 밤인지 낮인지, 이것이 옳은 것인지 저것이 옳은 것인지 혼란돼서 이것도 저것도 분간하지 못하는 때입니다. 요즈음 보게 되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 나은지 믿지 않는 사람이 나은지 분별을 못해요. 오히려 안 믿는 사람이 더 나은 것 같은 경우도 있어요. 또 세계적으로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비교해 보면 도리어 공산세계가 민주세계보다 외적인 면에서 더 당당하고 실질적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분간할 수 없는 때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분간을 못하게 돼 버렸어요. 그런 때가 되면 반드시 끝날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만 됩니다. 역사는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심은 대로 나타나는 그런 때가 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끝날의 현상과 하나님의 섭리 

그러면 하나님의 복귀섭리 역사에 있어서 끝날이 몇 번 있었나 알아 봅시다. 성경을 보면 노아 때에도 끝날이라고 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악한 인간 세계를 다 제거해 버리고, 노아를 중심삼고 선한 세계로 옮겨지는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끔 하나님이 섭리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가 끝날인 것입니다. 

끝날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를 세웁니다. 그래서 그 말을 믿으면 영원이요, 믿지 않으면 지옥입니다. 여러분이 끝날이 되면 반드시 주님이 오셔야 된다고 믿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중심인물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노아 때는 노아가 중심인물이었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끝날을 예고하였습니다. 나를 믿지 않으면 120년 후에 물로 심판받는 다고 예고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 때는 심판을 어떻게 했나 알아봅시다. 그때도 온 땅이 깨지고 모든 것이 없어질 줄 알고 있었어요. 창세기 6장 13절을 보면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했는데 과연 땅을 멸했습니까? 땅이 깨졌어요? 무슨 변화가 생겼습니까? 불신하는 사람만을 심판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말을 믿고 노아의 길을 따라갔던 여덟 식구만은 살았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노아시대에 심판한 것을 보고 여덟 사람만 구할게 뭐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만약 악한 세계와 타협하여 끌어오면 사탄이 참소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할 수 있는 무리만을 남겨놔야 됩니다. 

끝날에는 하나님이 반드시 중심인물을 보내 주시는 데 그의 말을 믿지 않게 되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아모스 3장 7절을 보면 “주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했어요. 이렇게 분명히 가르쳐 주시고 행하십니다. 노아때도 그 나라의 왕이나 어떤 통치권자에게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믿지 못할 미미한 노아에게 가르쳐 줬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 믿지 못할 노아의 말을 믿었던 사람들은 구원받고 안 믿은 사람들은 심판받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심판했느냐 하면 노아가 한 것이 아니라 노아의 말이 심판했어요. 120년 후에 심판한다는 그 말을 믿지 않은 사람은 심판받았다는 것입니다. 말이 심판의 기준입니다.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사람을 보내서 중심인물로 세워 새로운 말씀으로 심판을 예고하는 데, 그 말씀을 반대하면 심판을 당합니다. 그래서 노아를 세워 심판하여 죄악세계를 끝내고 새로운 에덴의 이상, 즉 선의 출발을 하려던 그 때가 끝날이었습니다. 악을 종결짓고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끊어진 선을 새로 이어서 출발하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그 다음의 끝날은 또 언제였습니까? 예수님이 왔을 때가 끝날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오셨던 당시를 한 번 살펴봅시다. 말라기 4장 1절에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않으리라. ”고 했습니다. 몽땅 살라서 다 없애버린다고 했어요. 

이 자리에 참석하신 교역자들이나 독실한 성도들께서는 그 성경 구절이 장차 닥쳐올 끝날에 이루어질 말씀이라고 믿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3절에서 14절을 보면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에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 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고 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은 세례요한까지입니다. 다 끝났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열매는 세례 요한인 것입니다. 그 터전 위에 신약이 출발해야 됩니다. 아모스 3장 7절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끝날이 됐기 때문에 선진자 세례 요한을 통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또,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리라(막1:8)”고 예고했어요. 그러면 예수님 때에 불로 심판을 했습니까? 땅이 다 녹아졌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불심판이 무슨 말인지 좀 알아봅시다. 베드로후서 3장 12절을 보면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 지려니와…”라고 했어요. 그러나 예수님 때에 그렇게 됐어요? 안됐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누가복음 12장 49절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나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오”라고 했습니다. 그 불이 붙었어요? 불을 던졌는데 불이 안 붙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불은 무엇일까? 그 불은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그런 말씀이 어디 있는 가? 야고보서 3장 6절에 “혀는 곧 불”이라고 했어요. 또 그 다음 요한복음 12장 48절에도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희를 심판하리라”고 했습니다. 무엇으로 심판을 한다고 했습니까? 불, 즉 말씀으로 마지막 날에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끝날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재판날입니다. 재판장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는 변호사이며 사탄은 검사입니다. 그런데 재판하는 데 있어서 불로 지지나요? 말씀으로 재판합니다. 어떠한 재판법정에서도 헌법과 법전을 따져서 해당하는 법조항에 의해 판결하게 되어 있지 불로 지집니까? 요즈음 정치인들은 불보다도 매스컴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한번 때려 놓으면 대통령도 날아가고 장관도 날아갑니다. 안 그렇습니까? 끝낱의 심판은 그와 같은 말씀 심판입니다. 

다음에는 데살로니가 후서 2장 8절을 보면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라고 했어요. 또한 이사야서 11장 4절에는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이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는 예수님이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왜 말씀으로 심판하느냐 하면 에덴에서 말씀을 불신한 조상이 됐으니 불신을 제거하고 그것을 능가하는 믿음이 없어 가지고는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구약성경을 믿던 사람들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화약을 지고 불구덩이에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교와 유대민족에 있어서는 끝날의 심판기준이 됩니다. 레버런 문이 유대사람과 원수가 돼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고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많으면 여러분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인 내용을 전부 들어서 해명할 수 있어요. 

예수가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내가 세상 일을 말해도 믿지 않는 데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고 했겠습니까? 또, “암탉이 그 날개 아래 병아리를 품듯이 내가 너희들을 품으려 한 일이 몇 번이었느냐”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탄식하지 않았습니까? 예수가 와서 불로 다 심판해 버리고 태워버렸다면 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하여 양면적 예언을 하게 된 이유 

여러분! 성경에는 예수님에 대한 양면의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성경을 보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해서 왔는데, 레버런 문이 성경에 없는 말을 한다고 할는 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만큼 성경을 몰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사야서 9장, 11장, 60장에 보면, 예수님은 영광의 주로 나타나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53장에는 십자가에 돌아갈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광으로 나타날 것은 맞지 않고 십자가에 돌아갈 것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시 나타날 영광의 때가 남게 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섭리를 해야 됩니까? 사람을 골탕먹이고 몸살나게 하기 위해서 그럽니까? 그 이유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타락한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무서워하고 사탄도 사람을 무서워하는 거예요. 사탄세계에 있던 사람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면 사탄세계를 녹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편에 있던 사람이 믿지 않고 반대하고 나가면 하늘편을 망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마귀보다 무섭게 생각하고 마귀도 사람을 하나님 보다 무섭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방적이에요. 선만을 행하는 것입니다. 한번 약속하면 그대로 행하는 일방적인 하나님입니다. 타락한 사람들을 놓고 예언하는 데, 한 가지로 예언해 놓고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겠어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로 예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광으로 온다는 예언은 안 이루어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신다는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사람들이 믿어줘서 돌아가셨는가, 믿지 않아서 돌아가셨는 가? 이것은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학생에게 물어 봐도 믿지 않아서 돌아가셨다고 할 것이 뻔한데 그걸 고집합니까? 믿었으면 누가 죽입니까? 빌라도도 법정에 나서서 아무 죄도 없으니 놔주자고 했습니다. ‘예수를 놔줍시다’ 하는 제의에 이스라엘 민족이 ‘바라바를 놔주고 예수를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믿어서 죽였습니까? 성경을 자세히 봅시다. 

예수님을 믿되 맹목적으로 믿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내용을 철저히 규명해서 믿어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예수가 몰리기 시작한 것이에요. 나라가 믿지 않고 교회와 모든 종족과 가정, 형제가 믿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돼 있어요. 요한복음 7장에 보면 형제들이 예수님을 비웃기를 , 형님이 세상에 널리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초막절에 유다지방에 가서 뭇사람들에게 선전하지 왜 시골뜨기처럼 틀어박혀 있느냐고 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성경을 잘 아실 거예요. 자, 생각해 봅시다. 죽어야 할 예수 같으면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4천년 동안 이스라엘 선민을 그렇게 후세에 남기려고 하란과 애급으로 끌고 다녔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4천년 동안 고생하면서 그들을 보호해 주며 길러 왔겠습니까? 악한 백성에게 맡겨 놓으면 당장에 죽여 버릴텐데….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죽으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만일 예수님이 메시아이고 자기가 죽어서 뜻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면, 가룟 유다에 대해 ‘너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고 한 말은 메시아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으로 보이게 합니다. 가룟 유다가 아니면 잡아죽일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잡아죽이는 사람이 있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터인데 왜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고 했습니까? 그게 다 역설적이에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세 번씩이나 피땀을 흘리며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는데, 이게 엇갈리지 않았습니까? 엇갈렸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죽는 것을 본의로 해서 왔다면 이런 기도를 한다는 것은 메시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메시아입니까? 세상에서도 하나의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한번 약속하게 되면 죽을 자리에도 당당히 나가는 데,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으러 와 가지고 그러한 기도를 한다면 무슨 메시아 자격이 있겠습니까? 돌변지사가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믿고 받들었으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메시아가 되고 왕중의 왕이 될 것인데 믿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합니까? 유대민족은 아까 말씀드린 것같이 제일 무서운 패가 된 것입니다. 유대교를 믿고 보냈는 데 메시아를 잡아죽였으니 유대민족은 제일 무서운 민족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면 레버런 문이 성경에 없는 것을 가지고 얘기하는 가 들어보세요. 예수가 죽을 때를 언제 결정했는 지 성경에 있어요. 누가복음 9장 30절에서 31절을 보게 되면 “모세와 엘리야가…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쌔”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될 것을 상의했어요. 변화산상에서 그런 결정을 하신 다음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을 것을 예고하니, 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시옵소서’라고 했는 데 그때 예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죽으러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탄이라 했기 때문에 죽는 것이 뜻이 아니냐는 주장을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다른 면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4천년 동안이나 그렇게 잘 믿던 이스라엘 민족이 왜 예수님을 메시아로 모시지 못했는 가 하는 문제를 알아봅시다. 예수는 새시대의 주인으로 오셨습니다. 한 단계 높은 시대의 주인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구약말씀으로 되겠습니까? 

‘구약성서에 이루어질 것으로 예정된 하나님의 뜻이 정말 이루어집니까’ 하는 제자들의 물음에 예수님은 ‘구약의 뜻은 이루어지겠지만 신약의 뜻은 안 이뤄지며 구약성경도 나 때문에 있고, 모세도 나 때문에 왔다’고 했는 데 그 누가 그렇게 믿습니까? 예수는 ‘아브라함보다 내가 먼저 있었다’고도 했어요. 그 시대 사람들은 예수를 미친 사람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구름 타고 강림하신다는 예언과 지상탄생하신 예수님 

여기의 잘 믿는 목사님들이 그때의 바리새교인들과 같은 입장에 있었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건 그렇다 하고 왜 못믿게 됐는 지 알아봅시다. 

그 당시의 유대민족과 유대교 신자들은 메시아는 구름 타고 오실 줄로 알고 있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성경 다니엘 7장 13절을 보게 되면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그 당시에도 구름 타고 올 줄 알고 있었는 데 예수님은 구름타고 오지 않으셨습니다. 재림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지 않는 다는 것이 확실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는 미혹하는 자요, 적(敵) 그리스도”라고 한 요한 2서 7절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구름 타고 오신다고 했는 데 육신으로 온 예수가 어떻게 주가 될 수 있느냐고 하면서 그 당시 육신으로 오신 주님을 전부 반대했던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왜 못 믿었느냐 하면, 말라기 4장 5절에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9백년전에 불수레를 타고 승천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왔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래서 구약성경을 믿는 유대교인들은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간 이후 아직까지 안 왔는 데, 예수가 육신으로 왔으니 메시아가 아니라고 지금도 이단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교인과 유대민족들은 엘리야가 안 왔다고 하는 데 예수는 능청맞게 엘리야가 왔다고 한 격이 됐습니다. 누가 그걸 믿겠어요? 

성경이 어떻게 되어 있는 지 요한복음 1장 21절 이하를 쭉 보세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보내어 세례 요한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선지자도 아니라고 부인해 버렸습니다. 예수는 그를 엘리야라고 했는데 장본인에게 물어보니 아니라고 했어요. 

또 마태복음 17장 10절 이하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하러 나갔는 데 서기관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그들은 무식하기 때문에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돌아와서 “선생님이시여,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 하고 물으니, 예수께서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임의로 대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들이 그 말씀이 세례 요한을 가리킨 것을 그때서야 깨닫더라고 돼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4절에도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세례 요한)이니라”고 똑똑히 알려 주었습니다. 이것은 레버런 문이 만들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입니다. 

예수는 엘리야라고 하는 데 세례 요한은 엘리야가 아니라고 하니 그 당시의 사람들은 누구의 말을 믿겠습니까? 예수의 말을 믿겠어요, 세례 요한의 말을 믿겠어요? 세례 요한의 말을 믿게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 하면 당시의 사람들을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배후가 이렇게 된 것을 알고 믿어야 됩니다. 

세례 요한은 틀림없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온 사람입니다. 당시 유대교인들은 엘리야가 하늘에서 내려올 줄 알았는 데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가리켜 틀림없이 엘리야라고 했으니…. 하나님은 이렇게 섭리했습니다. 결국 예수를 이단으로 몰아 잡아 죽임으로 말미암아 유대민족과 유대교가 심판을 받았습니다. 2천년 동안 나라없이 수많은 민족의 발길 앞에 희생당하고 총끝에 죽어갔습니다. 

주님은 과연 구름 타고 오실 것인가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보게 되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을 믿어야 됩니다. 메시아는 구름 타고 온다고 했는 데 구름 타고 오지 않았고, 또 엘리야를 보내준다고 했는 데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끝날인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와서 불심판한다고 했다는 한쪽 성경만 믿지 마십시오. 양면으로 예언이 되어 있어요. 마태복음 24장이나 계시록 1장 7절에는 ‘구름 타고 온다’고 했고, 데살로니가 전서 3장 3절을 보면 ‘도적같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구름타고 온다는 성경만 믿습니까? 

여러분! 누가복음 17장 20절 이하를 보세요. 이제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구름 타고 오면 이루어지지 않는 구절이니 기억해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구름 타고 온다면 왜 못 봅니까? 이건 성경 말씀이지 레버런 문의 말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오시는 주님이 먼저 고난을 받고 이 세대에 버린 바 된다’고 했어요. 누가 그러겠습니까? 주님이 구름 타고 온다면 누가 고통을 주고 핍박을 하겠습니까? 또한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고 했습니다. 노아 때 사람들이 불신한 것처럼 오시는 주님 때에도 그와 같다고 했습니다. 즉 구름 타고 오면 안 이루어지는 내용입니다. 

다음 누가복음 18장 8절을 보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앙 자체를 찾아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구름 타고 오게 된다면 왜 못믿어요. 믿는 자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니고 믿는 신앙조차 찾아볼 수 없다고 했어요. 왜 그렇습니까? 구름 타고 올 줄 알았는데 사람으로 오시니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레버런 문이 이런 말씀 드린다고 이단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단이 아닙니다. 여러분보다도 더 잘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피를 토하는 길을, 죽을 길을 걸어왔으며, 일생 동안 핍박받으며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제가 지금 사탄의 이야기를 하나요? 성경의 말씀을 합니다. 

그 다음엔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23절을 보세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했습니다. 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않았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마귀를 내쫓고 예언하는 선지자의 권능을 행했으면 훌륭합니다. 그렇게 잘 믿은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모른다고 하겠습니까. 구름 타고 온다면 왜 모른다고 하며 ‘떠나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지금까지 구름 타고 올 것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주님이 육신으로 오게 되면 자기 멋대로 주님을 핍박하고 갖가지 박해를 할 것이 틀림없으니 나중에 주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양면의 예언을 했습니다. 지금 이 때는 기독교와 민주세계의 끝날입니다. 세계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기독교만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제가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기독교에 주님이 오셔서 뭘 하겠습니까? 앞으로 민주세계에 주님이 온다면 공산세계까지 구원해야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끝날이 오게 되면 불로 심판해 버리고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이 떨어지고 세상이 전부 녹아서 없어질 줄 알고 있지만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예수님도 구름 타고 온다고 했는 데 구름 타고 왔습니까? 아닙니다. 만일 현세에도 주님이 육신 쓰고 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성경에 있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돼야 합니다. 구름 타고 오시는 것도 믿고 육신 쓰고 오시는 것도 믿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육신 쓰고 올 것으로 아는 사람은 구름 타고 오실 것을 알고도 남아요.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게 믿어야 됩니다. 그렇게 볼 때 레버런 문같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 중의 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자 여러분! 주님은 번개가 동편에서 번쩍하면 서쪽 저편까지 비추임같이 다 알게 온다고 하지요? 여기서 내가 텔레비젼을 통해 세계적으로 이야기하게 되면 한꺼번에 전세계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구름은 무엇을 상징하나 

그러면 구름이 무엇인지 여러분과 같이 알아봅시다. 계시록 17장 15절을 보면 이 세상, 타락세계를 물로 비유했어요. 즉,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고 했습니다. 구름은 물이 증발해서 된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의 구름은 거룩한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된 성도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생한 성도들의 무리를 구름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4절에 보면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주의 재림 때를 알 수 있다고 했어요. 하늘이 빼낸 특별한 사람들, 즉 증발한 구름과 같은 사람들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고…. 레버런 문의 말도 어떤 목사의 말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단히 훌륭하다는 신학자의 말도 믿지 말고, 최후에는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천사도 모르고 인자도 모르고 하나님만이 아시니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레버런 문이 의심되거든 기도해 보십시오. 이단인가 아닌가. 나는 예수님을 몇번씩 만나보고 하나님도 많이 만나본 사람입니다. 성경의 비밀얘기를 다 아는 사람이에요. 타락한 직후의 아담 해와와도 문답을 했습니다. 지옥에 간 아담 해와와도 통했는데 낙원에 가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과 왜 못 통합니까? 

예수님께서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눈이 있는 자는 볼지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런 얘기를 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눈으로 보십니까? 왜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면서 덮어놓고 이단이라고 합니까? 나는 미지의 사실들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데 거짓말이에요? 

천국에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기 부모가 눈을 똑바로 뜨고 보면서 잘 가라고 해도 떨어질 수 있고, 또한 에덴 동산에서도 타락을 했는 데 이 사탄세계에서 천국 가는 것이 쉬울 것 같습니까? 

외국 사람이 미국 시민 되기도 힘들지요? 이 지상지옥 세계에서 하늘 나라의 시민 되기가 쉬워요? 불원한 장래에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수속을 해야 될 때가 오기 때문에 수속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노아 때 혹은 예수님 때에 노아나 예수님이 하늘의 말을 한 것과 같이, 아모스 선지자가 말한 것같이 레버런 문이 끝날의 비밀을 가르쳐 주는 대표자인지 누가 압니까? 레버런 문이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있어요? 없습니다. 레버런 문이 말하는 것은 전부 이치에 맞습니다. 믿지 않는 일반 시민을 모아 놓고 텔레비젼 방송으로 얘기해 봅시다. 누구의 말이 맞는 가를 …. 

성경역사 속의 전례를 봐서 지금도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할 수 있다는 추측을 해도 그건 틀리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을 봐도 그런 내용이 도리어 구름 타고 온다는 것보다 더욱 철두철미합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도 예수를 믿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3절을 보세요. 두 제자를 보내서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벌써 걸렸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후 예수께서는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며 책망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증거할 때, 즉 세례를 주고 받고 할 때 나타난 하늘의 역사를 다 보고 이제 와서 무슨 말이냐는 것입니다. 

또한 11절에 보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선지자의 사명은 메시아에 대해서 증거하는 것인데, 과거의 선지자들은 메시아를 보지 못하고 증거했으나 세례 요한은 눈으로 직접 보고 증거했습니다. 그러니까 선지자 중에서 제일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 있는 옛 선지자들과 제일 작은 자라도 예수를 메시아인 줄 알고 모시고 있는 데, 세례 요한은 모시지 못했으니 제일 꼴찌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위해 태어났고, 죽어도 메시아를 위해 죽어야 할 텐데 시시한 헤롯의 연애사건을 말하다가 목잘려 죽었습니다. 그것이 세례 요한이 갈 길입니까? 그 다음 또 12절을 봅시다. 암만 부정하려고 해도 레버런 문의 말이 옳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불신을 지적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예수님 때)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 

만일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믿었으면 틀림없이 수제자가 됩니다. 목사들이나 장로,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12제자와 70문도는 전부 세례 요한과 그 제자들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교와 제사장과 직접 통해서 유대 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0절을 보게 되면, 요단강가에 모였던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전부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보고, 세례 요한은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말처럼 겸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같이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흥하면 자기도 흥하고 망하면 자기도 망해야 될텐데 다른 길을 갔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간 것은 세례 요한 때문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믿지 못하겠으면 레버런 문이 거짓말하는지 기도해 보십시오. 

자, 여러분! 지금까지의 신앙이 근본적으로 전부 뒤집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근본이시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을 세워서 갈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 이런 역사를 하는 지도 모른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제 설교가 통역을 빼면 겨우 한 시간밖에 안 됩니다. 여러분께서 이 통일교회 원리를 알려면 적어도 3년 이상 연구해야 됩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돼 있지만 갑자기 들으셔서 믿지는 못하겠고 반대도 못하겠거든 기도해 보십시오. 

만일 천국에 가서 레버런 문이 말한 것이 맞으면 내가 한 말이 여러분을 심판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잘했다면 내가 심판받을 것이에요. 여러분이 믿는 신앙과 신학은 내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담판해서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형제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것을 내가 안다고 해서 안 될 것 없으니 두고 봐야 됩니다. 노아 때도 한 사람을 통해서 예고했는데 안 듣다가 심판받았습니다. 예수님 때도 유대교와 유대 민족이 예수님을 학대하다가 심판받았어요. 이 때에도 레버런 문이 말하는 것을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민주세계와 기독교는 방향을 잘 잡게 되면 새로운 희망의 세계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말세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여 곡절 많은 심판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장래 이상의 길을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관(觀)입니다. 이것을 틀림없이 알기 때문에 여러분과 같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세계에 가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고, 기독교의 미래에 이러한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무난히 돌파하기 위해 기도로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저를 만난 것이 원수가 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드린 것을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오늘 들으신 ‘기독교의 장래’라는 제목을 마음에 두시고 더더욱 기도해 주시기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첫날 저녁과 둘쨋날 저녁, 사흘 저녁을 이렇게 딱딱한 말씀을 드려서 듣기에 귀가 아프셨고 가슴도 타셨을 것입니다. 이런 괴로움을 끼쳐 드린 데 대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풀어 드릴 수 있는 어떤 길이 있으면 풀어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앞에 위안이 되기 위해, 떠나는 여러분들을 다시 만날 그날을 바라면서 제가 노래 한마디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