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와 축복
1969. 2. 2
일본 동경교회
역사이래 지금까지 인류역사가 복귀섭리역사라는 사실을 안 사람이 없었습니다. 역사의 배후관계를 복귀라는 문제로 정의를 내렸다는 것은 우리 통일교회가 역사에 남긴 큰 공적입니다.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를 움직이고 발전시켜 나온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로 인해 이른바 ‘복귀’라고 하는 사명감을 짊어진 수많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생겨났습니다.
복귀역사의 완성, 즉 복귀역사의 목적이 언제 성취될 것인가 하는 것은 역사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의 사명
복귀섭리의 완성은 역사상에 나타났다가 미완성으로 남겨진 모든 내용을 현실로 끌어내서 다시금 해명하고 탕감하여 복귀해 나가지 않으면 그 실현이 어렵습니다. 이것을 실현하겠다고 나선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선생님의 사명은 스스로 그것을 실행하고 뒤따라오는 세계의 모든 통일 식구들에게 이를 실행토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사명은 말씀에 따라서 복귀섭리의 완성을 향해 전진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타락 전 아담 이상의 기준 위에 서야 하고, 예수님을 대신한 몸으로서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여자는 타락 전 해와 이상의 기준 위에 서야 하고, 예수님의 신부로서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사명은 그러한 남녀를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지상의 기반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성취하지 못했던 모든 일을 여러분 개개인이 탕감하고 예수님 이상의 기준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의 탕감의 길
역사의 배후에 얽힌 복잡한 내용들을 탕감하여 현세에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탕감복귀를 위하여는 기존의 모든 것으로부터 반대받고 그것들과 싸워서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가 걸어온 현재까지의 길은 그러한 반대를 받아온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쫓길 대로 쫓기고 맞을 대로 맞으면서도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들고일어나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고독한 환경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위로해 온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임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불신하였으며 최후에는 제자들까지도 그를 배반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길을 세계적으로 개척해 나갈 때, 3개국으로부터 반대를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불신으로 돌아간 3제자에 해당하는 3개의 정권으로부터 반대를 받게 됩니다. 하나의 민족권, 국가권 내에서 그러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승리의 기준을 쌓아온 것이 제 1차 7년 노정이었습니다. 1968년부터는 제 2차 7년 노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탕감의 길을 승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예수님의 강림의 목적을 되찾고, 아담 해와의 타락 전 기준을 되찾고, 내외의 모든 탕감기준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배우고 있는 원리강론은 역사노정에 있었던 것을 기록한 결과적인 기록이며, 이를 어떻게 해서 탕감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논하지 않았습니다. 그 본보기노정을 세우기 위해 선생님 자신이 투쟁을 하면서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제 어떠한 힘이 작용을 한다 해도 통일교회를 이 지상에서 뽑아버릴 수 없도록 뿌리를 깊이 내렸고, 그 기반을 공고히 하였습니다. 만약 악한 세력이 통일교회를 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이를 지켜 주실 것이며, 사탄도 참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을 중심으로 하여 21년 동안에 걸쳐 이룩해 놓은 귀중한 승리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후 2천년의 역사, 더 나아가 아담 이후 4천년의 역사를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여 탕감복귀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예수님은 급기야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통일교회의 21년 노정은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뜻이 있는 노정입니다. 우리가 그 일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천주적으로 기쁜 일인 것입니다. 복음 중에 이 정도의 복음은 없을 것입니다. 종적 참소조건을 면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이 지구성에서, 우리가 종적 참소조건뿐만 아니라 횡적 참소조건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는 것은 지극히 복된 일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탕감복귀의 길은 반대의 경로를 통해 찾아 올라가는 길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생각하면, 재림주님은 예수님이 최후에 짊어지신 십자가 상에서 되돌아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겟세마네와 갈보리 같은 최고의 고민의 자리에서 생사의 문제를 걸고 승리를 쟁취한 살아 있는 제물로서 되돌아오지 않으면 복귀의 발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감옥에서 출발한 통일교회
그러므로 재림주님이 오셔서 걸어야 하는 최초의 길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받고 버림을 받는 길입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역사가 없었습니다. 세계적인 섭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선생님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에서, 고난과 박해를 받는 환경 속에서 출발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생각하며 지옥 밑바닥에서부터 수고하여 부활의 길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최초의 통일교회는 감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천년 전의 초대교회도 감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제2 이스라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역사를 복귀하려면 역시 탕감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감옥의 밑바닥과 같은 곳에서부터 하나님과 함께 기반을 이루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감옥에 잡혀들어갔을 때에는 제자들이 모두 달아나 버렸지만 이번에는 그와는 반대의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목숨을 내걸고 모두 일체가 되어 스스로 죽음의 경지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정면 도전해서 승리를 얻어내야 합니다.
원래 7년이면 밑바닥에서 완전히 통과하여 올라올 수 있는 것을 21년이나 걸렸습니다. 민족이 모두 환영하고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중심 종교와 하나됐더라면 7년 노정으로 끝날 수 있었겠지만, 우리는 그 환경을 얻지 못하고 21년 노정을 걷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1960년부터 제 1차 7년 노정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배후 관계는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 역사를 알려면 축복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적 기준에 의한 상속권을 받지 않으면 그것을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그 노정을 완전히 알게 되면 복귀의 역사가 이렇듯 괴로운 길을 거쳐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축복이 얼마나 거룩한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해야 합니다.
생사의 경계를 초월하자
여러분들은 주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생사의 문제를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했던 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개인의 소망을 중심삼고 보면 십자가의 길은 아무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길을 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섭리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생사를 초월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믿음을 갖지 않으면 복귀의 길을 맞이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자주성이 있는 가 하는 점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나는 조금도 결점이 없는 아름다운 젊은 처녀이고, 어디를 가든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을 요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 여자인 내가 목숨을 건 일을 한다는 것은 마음에 내키지 않는 다. ’ 혹은 ‘나는 남자로서 체격이 건장하고, 가문이 좋고, 어디로 보나 부족한 점이 없으며, 바라는 일은 모조리 성취되었다. 이런 훌륭한 남자인 내가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한들 비참하게 목숨을 거는 일 따위에 끼여들어야 할 이유가 있겠는 가’라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모험의 길, 목숨을 건 길을 가면서도 괴로운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산정으로 향하실 때, ‘아 억울하다. 이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데, 남자가 33세나 되도록 결혼도 하지 못하고 이런 운명이 되고 말다니……. 사나이로 태어나서 뜻도 펴보지 못하고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라고 생각한다면 탄식거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은 문제가 아니다. 나는 내 사명을 다 하기 위해 간다. 덮쳐오는 십자가의 무거운 짐도 문제가 아니다. 육신은 기진맥진하여 쓰러진다 하더라도 내 정신과 영혼은 결코 쓰러지지 않는 다’고 하는 당당한 기백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가는 도중 길가에 서 있는 어머니 마리아와 요한을 발견하고 오히려 그들을 염려해 주셨던 그 여유있는 태도를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인류 역사에 나타난 그 어떤 위대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보다 더 하나님을 위하여 내적으로 강력한 결의를 다진 남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 은혜에 의해 역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머리를 돌리고, 거기서부터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출발점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2천년의 역사가 지나갔지만 예수님의 정신은 때묻지 않은 채 그대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그 위대한 전통을 전수받기 위하여 사명감을 안고 뜻길을 가는 우리는 목숨 하나쯤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무기삼아 사탄 성에 뛰어들어 사망의 그늘 속에서 절규하는 뭇 생명들을 생명의 빛 가운데로 인도해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우리에게는 언제나 예수님과 같은 다짐이 필요합니다.
원래 타락은 죽음의 경지에 빠진 것이므로 구원을 하기 위하여는 죽음의 경지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차피 그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라면 남자답게 기쁜 마음으로 임하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결의를 다지고 뜻길을 따라가는 식구들이 많아지면 세계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 모체를 이루는 심정에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는 생사의 경계를 초월할 수 있는 신념이 있습니까?
선생님은 몇십, 몇백, 몇천, 몇만이나 되는 생사의 경계선을 지켜보면서 사탄과 대결해 왔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어려운 환경이 파도처럼 거듭거듭 몰려와도, 선생님이 세운 기준은 변하지 않습니다. 가령 다리가 부러지더라도, 눈알이 빠지더라도, 목이 달아나더라도 출발할 때의 심정 기준에서 이탈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죽지만 않으면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승리
얼마 전 50여명의 일본식구 일행이 한국에 가서 부산에 있는 성지(聖地)를 찾았습니다. 옛날에는 그 곁에 묘지가 있었으며 골짜기에는 돌이 많아서 아무도 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곳에다 돼지우리 같은 움막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움막 안에서 잠을 잘 때도 이 지상의 그 어떤 궁중 속에서 영광을 누리며 사는 사람보다도 하나님께 최고로 효도하는 아들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쫓아올 수 없는 깊은 내적 기준에 도달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 당시 선생님의 모습은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한푼 어치의 가치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수염은 자라서 길고, 얼굴은 새까맣게 타고, 옷은 동양옷과 서양옷을 뒤섞어 입고 있었어요. 그러나 오늘날 그때 이야기를 하면 큰 힘을 발휘합니다. 대포보다도, 원자폭탄보다도 그 힘이 더 큽니다. 너무나 크기 때문에 모두들 놀라서 도망쳐버릴 정도입니다. 말하자면 선생님이 그런 환경을 거쳐왔다고 하면 모두가 크게 감명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느끼는 맛을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고생을 하며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영원히 남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외적으로는 십자가를 지고 사라져 가셨지만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심정 속에 깊은 기준을 새겨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원치 않는 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에 대한 대가를 갚아 주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홀로 출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는 3백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이 모두 굳은 결심을 한다면 일본의 43개 현은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승리는 과정에서 결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출발시의 내적 기준에 의해 결정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생사의 경계를 수백 번이나 넘나들며 성취한 승리는 쉽게 뺏기지 않습니다. 그것을 되뺏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결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탄도 추월할 수 없는 영원한 승리를 원하고 계십니다.
일본의 현상으로 볼 때 뜻 앞에 앞장서서 자기 나름대로 고생을 해 온 사람이 최근에 접어들어 약간은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계산은 누구보다도 빠릅니다. 통일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모든 것이 역사를 움직이고 역사에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평소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또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것들을 여러분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통일교회는 상당히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교회에 들어가서 황금 같은 청춘시절을 다 바쳐 헌신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어려운 관문을 뚫고 동경대학에 입학하여 부모 형제나 친지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었는데, 통일교회에 들어가서 온 집안이 지리멸렬하는 결과가 되어 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남자라면 세계를 무대로 하지 않으면 좁아요. 아무리 고생을 해도 일본권 내에 있어서의 고생은 하나님의 이상권에 들어갈 수 있는 내용이 못 됩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이상권 내에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보다 큰 가치를 중심으로 활동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미 도달해 있는 것입니다.
박해받는 길도 가겠다는 결의를 해야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에 의하여 잃어버린 내용을 반대로 탕감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120문도, 70문도, 12제자, 3제자가 모두 불신하고 심정적으로 일체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급기야는 십자가를 지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탕감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과 예수님께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결의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십자가 복귀의 노정을 출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선 경우에는 박해의 길을 지나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는 민족적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제 국가기준을 중심으로 하여 책임을 갖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각자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3대에 걸쳐 완전한 복귀를 성사시켜야 하겠다는 결의를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째서 3대인가 하면, 그것은 원리적인 수로서 사위기대(四位基臺)는 3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탕감헌금과 믿음의 3자녀
예수님은 인류의 참아버지, 참부모로 오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서 십자가의 죽음 길을 가시도록 한 그 행동은 결국 세계 만민이 한 짓과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자손의 한 사람으로서 섭리권 내에 있는 모든 백성이 자기의 부모를 팔아먹은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탕감하는 조건으로서 탕감헌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하여 참아버지로 오신 예수님을 이 지상에서 몰아낸 입장이 되어 하나님의 섭리는 사방 팔방으로 완전히 막혀 버렸습니다. 이것을 탕감하는 조건으로 4년간 3수(數)에 해당되는 금액을 예수님을 팔아먹은 그 실체의 값으로서 하나님께 되돌려 드려야 합니다. 4년간이라는 것은 동서남북에 맞먹으며, 한국에서는 1년에 3천원씩 4년간에 걸쳐 낸다는 조건으로 12, 000원씩을 헌금합니다. 그 돈은 예수님을 팔아먹은 과오를 탕감하는 조건으로서는 너무나도 적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생각하며 피와 땀과 눈물이 깃든 최고의 제물을 드린다는 정신이 내포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은 믿음의 자녀 3명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여 일체가 되어야 할 제자가 예수를 배신하는 입장에 섰으므로, 이를 복귀시키는 조건으로서 3명의 믿음의 자녀를 찾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12제자, 70문도, 120문도를 복귀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탕감노정에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될 과제입니다. 우리들은 3명의 믿음의 자녀를 세워 그들을 중심으로 하여 12제자, 70문도, 120문도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룩해 온 21년간의 노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 위에 이루시고자 했던 뜻을 다 펴시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은 하나님의 슬픔이며 예수님의 슬픔이었습니다. 이것을 해원해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이며 우리가 가야 할 공식노정입니다. 그리고 종족을 복귀시켜 새로운 조상의 기준을 만들어 민족 복귀를 이룩하고 그 기대 위에서 일본의 국가 복귀, 아시아 복귀, 세계 복귀라는 목표를 향해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을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박해 속에서의 성혼식
1960년에 있었던 선생님의 성혼식 배경에는 아담 이후 예수님 때까지의 4천년 기간과 예수님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2천년이라는 역사의 과정에 있었던 모든 내용들을 탕감조건을 세워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행사는 세계적이며 천주적인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을 준비하기 위한 기간이었던 1953년부터 1960년까지의 기간은 상상할 수 없는 박해의 시기였습니다. 그 기간에는 적어도 360만명이 넘는 사람이 반대했고 3개 이상의 교파와 국가 정권이 박해를 가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탕감조건을 세워 승리의 깃발을 세운 것이 1960년에 있었던 선생님의 성혼식이었습니다. 그날이 통일교회의 운명을 결정한 최초의 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성혼식은 지상에 있어서 영원히 기념해야 할 세계적 천주적 대사건입니다. 세계적으로 해결해야 할 종적인 탕감조건을 횡적으로 이 지상에서 해결하는 실체로서 영육 공히 승리의 기준을 이룩한 날입니다. 선생님이 성혼식을 갖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반역했던 3명의 제자를 복귀시켜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성혼식의 또 한 가지의 목적은 아담 가정을 탕감하는 조건을 세우는 데 있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부부관계에서 타락했습니다. 타락은 부부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복귀는 혼자서는 안 됩니다. 남자 혼자서는 복귀를 할 수 없어요. 남자 혼자서는 구원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여자 혼자서도 천국에 갈 수 없어요. 따라서, 둘이서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과 해와의 입장을 복귀하여 참부모의 기준을 이 지상에 세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3천사장과 같은 인물, 즉 3제자를 세워 그를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복귀의 목표는 아담가정 복귀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즉시 구원섭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살해함으로써 아담 가정을 중심한 구원섭리는 노아가정으로 옮겨졌습니다. 하나님은 노아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홍수심판으로 멸망시키고 사탄의 침범조건을 넘어선 가정을 세워 지상섭리의 기반을 구축하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이 다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거쳐 모세시대로 옮겨 예수님께로 줄곧 이어져서 우리의 시대까지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섭리의 최종 목표는 잃어버린 아담가정을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가정에서 잃어버린 세 아들을 복귀시키지 않고서는 참부모의 입장에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3제자
예수님께는 세 제자가 꼭 필요했습니다. 아담과 해와에게는 세 명의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서로 일체를 이루어 아담과 해와를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로 타락세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완성된 부모의 입장으로 넘어서기 위하여는 완전히 복종할 수 있는 3명의 천사장격인 3제자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을 지상에서 쫓아낼 수가 없습니다. 영계의 세 천사장을 상징하고 타락권 내의 3시대(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를 통과하면서 아벨에게 순종굴복하지 않는 가인의 입장을 완전히 탕감하는 인물이 필요합니다. 이 세 사람이 구약, 신약, 성약으로 연결되어 온 종적인 역사를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해 오신 재림주님께 완전히 순종 굴복해야 합니다.
아담의 대신은 예수이며, 예수의 대신은 재림주님이십니다. 그 재림주님도 완전히 순종하는 3명의 믿음의 자녀를 갖지 않으면 참부모의 입장으로 올라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 제자는 아벨을 위해 생사의 경계를 넘어서서 박해의 한가운데라도 따라갈 수 있는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러한 세 제자를 찾아 세운 것은 1960년 4월이었습니다.
그 기대 위에서 가정권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데 야곱의 가정과 같이 12명의 자녀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3명의 제자, 3명의 아들을 중심으로 하여 점차로 그러한 기준을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의 세 아들, 즉 가인, 아벨, 셋의 부활체로서 상대기준을 이루고, 그 기대 위에서 약혼의 입장을 넘어서서 실체적으로 부모의 입장을 결정한 것이 1960년의 성혼식입니다. 이 성혼식은 아담가정의 세 아들이 부모와 일체가 되지 못하여 하나님의 한으로 남아져 왔던 것을 역사적으로 탕감복귀한 중요한 행사입니다. 역사이래 처음으로 하나님을 중심하여 이루어진 이 성혼식이 1960년 4월, 한국에서 거행되었다는 것은 세계적인 사건이며, 이때부터 새로운 역사의 운세가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기대 위에서 1961년 5월에 12수를 중심으로 해서 33쌍의 성혼식을 거행하였습니다.
12제자의 축복
거기에는 예수님의 12제자를 실체적으로 복귀하여 세우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성서에도 12진주문의 비유가 있고,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도 12수는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재림주는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이루시지 못한 후아담의 사명을 탕감해야 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영적 기독교권의 이상을 지상에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슬픔은 지상에 발판이 될 수 있는 개인, 가정, 민족, 국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두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기점이 되는 개인과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아담가정, 노아가정, 야곱가정으로 이어진 종적인 탕감조건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 야곱가정의 축복이었습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아담가정, 노아가정, 야곱가정에 해당하는 가정을 각각 제1가정, 제 2가정, 제3가정이라고 합니다. 제1가정은 이미 자기 마음대로 결혼한 사람들을 축복한 12가정입니다. 제2가정은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 있는 가정들입니다. 예수님은 2천년 동안 결혼식을 원해 왔습니다. 축복의 그 한날을 원해 오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관계는 가지고 있지만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사람들을 모아서 축복한 것입니다. 제3가정은 선남 선녀를 중심으로 하여 세운 가정입니다.
이때에 비로소 천주 통일의 기반을 지상에 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시대를 통하여 조상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실패해 온 하나님의 억울한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여 승리를 이룩한 것입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하여 하나님이 지상에 직접 임재하시어 역사하시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 천상이 아니고 지상권이라는 그 기준이 이룩되었으므로, 거기서부터 지상에서 세계적인 발전기준이 조성되게 되었습니다. 1960년부터 7년간은 하나님의 지상 강림의 기반을 완성하는 기간이었다는 것입니다.
72가정과 120가정
다음으로 자녀의 문제가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싸움에서 천사장 입장에 있는 가인이 아담의 입장에 있는 아벨에게 복종하지 못함으로써 지금까지 역사가 연장되어 내려왔습니다. 그것을 탕감하려면 조상 가정인 36가정 앞에 각각 가인과 아벨 같은 두 가정을 세워야 하는 데, 이것이 72가정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위기대를 이루게 되면 사탄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부모를 중심으로 이 땅 위에 세계적인 발전의 기준을 세운 통일교회는 72가정의 축복에 이어 120가정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120가정은 세계 만국의 대표들을 상징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계적인 섭리의 출발을 위해 120문도를 세웠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입장에서 이들을 앞세워 지금까지 구원섭리를 해 오셨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이것을 실체적으로 찾아 세워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룩되었으니 다음에는 만물을 축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을 찾았으니 다음에 만물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1965년에 세계를 순례하며 40개국을 중심으로 하여 120개의 성지를 택정하였습니다. 세계적으로 택정된 성지는 운세를 크게 전환시키는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통일교회에는 세상에 없는 경축일의 하나로 ‘부모의 날’이 있습니다.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 후손들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부모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통하여 이를 복귀하게 된 것입니다. 섭리적으로 보면 이 이상의 기쁜 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기대 위에서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을 맞이하였습니다. 타락의 결과로 잃었던 날들을 지금까지 인류가 찾아 세우지 못한 것은 복귀섭리 노정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이룩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건이요, 인류에게는 큰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1차 7년 노정을 승리적으로 매듭짓고 1968년 1월 1일에는 ‘하나님의 날’을 결정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날의 결정과 함께 지상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기대를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통일교회는 지상에서 급속히 발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기준을 이룩했으므로 앞으로 원리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섭리는 영계 해방과 동시에 지상을 해방하고 지옥을 해방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을 맞이한 그때부터 지옥이 궤멸되고 사탄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입장으로 빠져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날을 결정함으로써 선생님의 사명은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실패를 복귀
예수님은 유대교에 쫓기는 몸으로 금식노정을 출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중심으로 유대교를 개혁하여 제2의 신생 유대교를 세우고자 출발한 것이 공생애 3년노정입니다. 그것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넘어 새로운 민족으로 전파되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영육 아울러 사탄을 굴복시키고 영원한 이스라엘의 승리적 기준을 세우려 하였으나,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인하여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선생님은 예수님이 유대교로부터 반대를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진영의 한복판에 뛰어들어가서 그들과 싸워 원상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원수의 본거지인 북한의 평양을 찾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지금까지 기반을 닦아온 서울을 뒤로하고 원수의 본거지인 북한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거기서 싸우고 또 싸워서 참소조건을 완전히 제거하고 넘어오지 않으면 제2의 출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공산치하에서 옥중 생활을 한 데는 그와 같은 중요한 뜻이 있었습니다.
옥중 생활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불신과 반대에 의하여 쫓겼던 입장을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영계가 협조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12명 이상을 전도하여 제자로 삼았으며, 그들이 환영하고 생명을 바쳐 따름으로써 거기에서 새로운 역사가 출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분열된 모든 기독교를 통일시키는 사명을 책임지고 출발하였으나, 기성교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북한으로부터 남하한 선생님은 새로운 교파의 형태를 취하여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성교회가 없어도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1968년 9월 9일에 크리스찬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기성교회와 정식으로 대화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 때는 한국 기독교계의 중진급 인사 4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통일교회와 선생님에 대해서 그동안 반대해 온 교역자들이 다 모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시기적으로 보아 이런 때를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수년 동안 통일교회를 반대해 온 사람들입니다. 한때는 선생님에 대하여 자기들이 불면 날아갈 것같이 초라하게 느꼈을지 모르나 선생님은 그들 앞에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들이 선생님을 맞아 통일교회 원리를 긍정하게 된 것은 요컨대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결과가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에 있어서는 대단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는 두려운 존재이다. 문선생은 스탈린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다. 기독교의 입장에서도 손을 쓸 수 없다. 이론적으로도 당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예 상대하지 말자’고 하면서 오합지졸같이 비난을 해왔던 것입니다.
승리의 기반
통일교회는 그런 박해 속에서도 복귀의 길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나는 천하가 다 일어나서 반대를 하더라도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할 것입니다. 죽음의 고비를 몇 번씩 넘기면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반을 이루었습니다. 6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통과할 수 없었던 어려운 문제들을 선생님 일대에 다 통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죽더라도 통일원리는 세계를 제패할 것입니다.
일본국민 1억이 총동원되어 아무리 반대한다 하더라도 통일주의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일본을 필요로 하십니다. 일본 자체만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필요로 하십니다. 영계와 지상세계, 천주를 필요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조금만 움직이면 세계가 곧 움직일 수 있는 시대권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은 모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되 관념적으로 믿지 않고 생활권 내에서 모시고 살려고 할 것입니다. 감상적인 심정이 아니고 실증적인 심정을 느끼며 살아가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훌륭한 신앙인 것입니다.
축복의 기준
복귀의 노정을 완전히 통과하지 않으면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천주 등 모든 권내에 들어가서 사탄에게 참소받지 않을 기준을 세워야 축복의 대열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1960년은 통일교회가 타락한 아담 해와의 입장, 즉 장성기 완성급에 올라선 해입니다. 그 기준을 중심으로 하여 완성권까지 올라가려면 7년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제1차 7년노정이라는 겁니다. 완성기준에 올라서면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에 들어가게 됩니다. 직접주관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의 심정과 생활권을 직접 주관하시는 단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완성기준을 남겨 놓고 1960년에 처음으로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인간들은 사탄의 주관권 내에 있습니다. 이 주관권 내에서 사탄의 세력을 부수는 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에 사탄은 그 가정에 대해서 총공격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사탄과 혈투전을 벌이며 탕감조건을 세워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등을 결정하였습니다. 이 모든 날들은 제1차 7년노정 기간에 찾아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빼앗겼던 날들을 모두 복귀하였기 때문에 지상에 완성기준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신랑과 신부가 사탄을 물리치고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 있는 하루를 맞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으며 2천년의 역사를 가진 기독교의 소원이었습니다. 신랑은 예수와 하늘을 가리키고, 성령은 여자의 신으로서 땅을 가리키는 데, 공간의 사탄세력을 격파시키고 이 둘이 서로 만남으로써 천지가 하나될 수 있도록 한 것이 우리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결합된 축복가정은 하나의 새로운 종족입니다. 그것이 날로 발전해 나가면 하나의 새로운 민족이 됩니다. 좀더 발전하면 국가, 세계권을 이루게 됩니다. 즉 새로운 민족, 제3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일본인이라도 지금까지 일본의 역사과정에 나타났던 조상으로부터 혈통을 물려받은 자녀가 아니라 새로이 하나님에 의한 혈통권을 이어받은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우리가 설 자리는 세상과는 다릅니다. 사탄의 참소를 막고 승리권을 이룰 수 있는 내용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기준에 처해 있습니까? 장성기 완성급 기준에도 올라오지 못했으니 어떻게 축복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 조상이 타락해서 남자와 여자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으므로 부부가 함께 환영받지 못하는 경지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제2차 7년노정
이제까지의 축복은 완성기준에서의 축복이 아닙니다. 선생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세계적, 천주적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권내에서 축복에 참여할 수는 있어도 그 길을 아직 가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여러분들을 중 심한 부모의 날이 나와야 합니다. 새로운 종족의 조상으로서의 진정한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무라씨면 기무라씨에 의해서 부모의 날이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기무라씨를 중심으로 하여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을 세우고, 그러한 기대 위에서 하나님의 날을 결정하여 승리의 깃발을 세워서 영원히 나부끼게 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깃발을 들고 출발한 것이 제2차 7년노정입니다. 우리는 장성기 완성급에서 승리한 자, 즉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 이상의 자리에서 완성을 향해 당당히 행군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로써 사탄을 물리치고 굴복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가 외치고 있는 ‘전면적 진격(全面的 進擊)’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에게만 한정된 노정이 아닙니다. 전 세계 식구들이 가야 할 노정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모두가 가야 할 노정입니다. 제2차 7년노정을 통하여 전면적 진격을 감행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종족
예수님의 원한과 선생님의 원한은 친척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전도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선생님의 부모라든가 형제 자매들에게 본인이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는 지를 알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형님은 ‘동생은 장차 세계적인 큰 인물이 될 것이다. 큰 일을 할 것이다’라고 자랑하며 선생님이 하는 일이라면 절대적으로 들어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일을 알아주는 형님이나 어머니를 비롯하여 누구보다도 사랑한 형제 자매들에게 대해서는 이 귀중한 원리의 내용을 털어놓을 수가 없는 비운의 사나이로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선생의 고민이었습니다.
자기와 혈연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먼저 사랑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보다도 반대하는 사람, 사탄편에 속한 사람, 가인적인 사람을 먼저 자기의 부모 형제 이상으로 사랑하는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길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길을 걸어온 통일교회는 크게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친부모 형제 이상으로 사랑하여 자연굴복을 시키지 않으면 탕감복귀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이 없으면 아벨 자신의 구원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친자식 이상의 심정으로 자신에게 효도하고 정성을 다해 주는 사람을 만들지 않으면 탕감복귀가 되지 않으니 그런 입장을 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먹는 것도 잊고, 잠자는 것도 잊을 정도로 가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들은 심정적으로 굴복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환경을 줄곧 넓혀서 승리권을 만들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과는 달리 제2차 7년노정이 시작되었으므로 지금부터 자기의 부모와 형제 자매에게 귀한 말씀을 전해 줄 수 있는 권내에 살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종족적 메시아의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로서 제2차 7년노정 기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종족과 가정을 중심으로 선생님이 하지 못했던 일과 예수님께서 하지 못했던 일을 전개하여 하늘 편에서 세워야 할 탕감조건을 모두 완성하는 일입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모두 사랑했다는 기준을 세워서 세계까지 연결시켜 나가야 합니다.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
아담 이후 4천년 역사의 결실체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마리아와 요셉에게 털어 놓으시고 그들과 협력해서 뜻을 이루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제2차 7년노정은 그러한 기준을 각자 자기를 중심삼고 전개해야 되는 기간입니다. 선생님이 육신의 혈족을 앞세우고 사랑했더라면 복귀섭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도 사랑하는 독생자와 선민을 희생시키고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사탄편 가정, 사탄편 종족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의 가장 가까운 아들과 가정, 종족을 희생시켜 온 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노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고 하지 않습니까? 십자가에 못박히면서도 그 원수들에 대해서 축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모르므로 용서해 주소서, 구원해 주소서’ 하고 기도를 하신 것도 하나님의 심정권을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복귀섭리는 물리적인 힘에 의하여 완성될 수 없습니다. 심정적인 힘에 의하여 모든 것을 굴복시키는 기반을 만들지 않으면 탕감복귀의 완성은 이룰 수 없습니다. 결국 복귀와 축복이라는 문제는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축복을 우리들이 다 대행하는 데서 그 완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