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 7 - 5. 자녀 교육 (終)

훈독왕 | 20210502170649

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
제7장 참된 부부와 이상가정


제5절 자녀 교육

 

1. 가정 교육

진리의 내용이 무엇이냐? 진리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를 대신할 수 없고, 진리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자기의 남편을 대신할 수 없고, 또 자기의 처나 아들 딸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진리 중의 최고의 진리가 무엇이냐? 그것은 부모요, 부부요, 자녀입니다. 그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중심은 뭐냐? 사랑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진리의 최고 중심은 무엇이냐? 사람들이 하나님은 진리의 본체요, 선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요, 생명의 본체라고 하는 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다 같은 말입니다. 진리가 성립되려면 사랑과 생명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565) 

가정이 없으면 세계가 형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이 잘못되면 그 나라는 망합니다. 그래서 가정 교육은 그 나라가 금후에 복받을 수 있는 운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한 공적인 법리에 의해서 살고 있는 가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나라는 흥하는 것이요, 사적인 기준에서 사는 가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566) 

자녀가 부모를 중심삼고 반드시 하나되어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같은 형제간의 비참한 불상사가 사라지고 이제는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를 함으로써 형제들이 하나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여러분이 본이 되어 자녀들을 교육해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학교 교육에 의존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부모가 교육을 해야 합니다. 부모가 하나되어 본을 보여 줌으로써 형제 사이에도 그 본을 따라서 서로서로 전통을 가려서 새로운 가정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567)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들 딸에게 무엇을 말해 줄 것입니까? 여러분은 공적인 삶, 그것도 모범적인 공적인 삶을 삶으로써 여러분의 아들 딸에게 그것을 보여 주고, 그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게끔 교육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자기의 부모에게 교육받게 되어 있습니다. 학교에 가서만 교육을 받는 게 아닙니다. 특히나 전통을 이어받는 교육은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학교에서 받는 교육은 어머니 아버지 앞에 다 갖다 바쳐야 된다구요.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568) 

인간이 자라는 성장기간은 어떠한 기간이냐?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기 위한 훈련기간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받게 하기 위한 훈련기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이 좋아하도록 하나님이 가면 가고, 오면 오고 그래야 됩니다. 인간 아담과 해와 외에 하나님밖에 없었다면 아담 해와가 생활을 누구와 할 거예요? 아담 해와의 자녀들도 부모가 하는 대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교육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는 대로, 부모가 아는 대로 알아가게 돼 있습니다. 부모가 행동하는 대로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부모가 좋아하는 대로 하게 돼 있습니다. 그 외에 무엇을 꿈꾸고 그 외에 무엇을 행하게 되면 여기에는 타락권이 지배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따 먹지 말라 하는 제지가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569) 

자식들은 모든 존재의 가치를 부모를 통해 찾습니다.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자녀는 누구를 닮느냐? 부모를 닮습니다. 그 자녀들이 누구를 따라가느냐? 부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570) 

부모의 사랑은 자기 중심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아들이 가는 길이 조금 위험스럽다고 해서 못 가게 한다면, 그 아들은 장래 의지력도 독립심도 없는 무능한 아들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능한 아들을 만드는 것이 결코 부모의 사랑은 아닌 것입니다. 부모라면 아들을 이해하고, 아들이 가는 길이 타락의 길이 아니라면 후원해 주고 격려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571) 

부모들이 ‘좋다. 너 좋은 대로 해라.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나는 상관 않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부모라면 그런 식으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참된 부모는 자녀들이 다른 사람들을 존경하도록 지도해 주고 싶고, 형제 자매끼리 다투는 것보다는 더 나은 삶의 방식을 보여 주고자 할 것입니다. 자녀들끼리 서로 싸우라고 가르치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572) 

부모가 공부하라고 시키는 것은 아들 딸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자식이 불평을 안 합니다. 부모는 자식 때문에 울면서 기도하고 가슴이 아파서 밤잠을 못 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부모의 심정입니다. 573) 

가정에서 부모들이 동화책도 읽어 주고, 신앙을 갖추어 가지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고, 가정에 대해 건설적인 면에서 비판도 하고 의논도 하고 해서 자녀들이 가장 가까운 친구보다도 자기 부모와 더 가까이 대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자녀들에게 신앙적인 자리를 잡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574) 

자식을 기를 때는 자식을 높여줄 줄 알아야 됩니다. ‘이놈의 자식, 뭐 어떻구 어떻구’하면서 자주 야단쳐서는 안 됩니다. 575) 
 
인간의 잘못된 버릇이나 습관은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국 속담에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청소년 시대에 올바른 습관을 길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습관을 갖게 하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문제는 잘못된 습관을 가진 기성세대들을 어떻게 바로잡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크고 작은, 또는 여러 모양을 가진 나무 조각들이 있다고 했을 때 건축에 필요한 규격품을 견본으로 하여, 톱이나 칼, 도끼 등의 도구를 이용하여 맞게끔 만들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인간들의 습관도 사랑의 질서를 기준하여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벽돌이 낱개로 있을 때는 그냥 하나의 벽돌일 뿐이지만, 벽돌을 건축설계대로 쌓아 올린다면 빌딩이나 집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도 잘못된 습관을 고쳐서 하나님 본연의 사랑의 길과 일치시킬 때, 힘이 생겨나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궤도로 달려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동안 필히 잘못된 습관을 고쳐서 올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576) 

여러분의 자녀들이 20세가 되기 전에 교회와 관계를 맺어 신앙의 자리를 잡아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1, 2학년 때까지 자리를 잡아 주지 못하면, 그 아들 딸은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협회에서 낸 통계에 나온 것입니다. 17세까지 가정에 있어서나 교회에 있어서 자리를 못 잡아 주면, 그 아들딸들은 사회로 흘러가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건 중대한 문제입니다. 577) 

아무리 축복받은 가정의 자식이라도 20세가 되기 전에는 부모를 따라간다. 고로 부모가 잘못하면 자식도 따라서 잘못하게 되는 것이다. 578) 

축복가정들도 남편이 잘못했을 때에는 아내가 들이쳐야 되고, 아내가 잘못했을 때는 남편이 들이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하나님의 본을 받는 것입니다. 매를 맞는 것은 후세를 교훈할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 빠따(배트)가 없었으면 이렇게 잘못되었을 것인데, 빠따의 은덕으로 잘되었다 할 때는 매를 맞고 눈물을 흘리던 그 환경이 결국은 후세를 교육할 수 있는 교본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본을 남기고 죽은 사람은 잘난 사람입니다. 579) 

잘못이 있을 때 자녀를 낳으면 그 잘못은 유전된다. 580)

가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애기들의 교육기준 등 가정의 규범을 만들어야 합니다. 잘못했다가 자식들의 추궁을 받으면 할 말이 없습니다. 581) 

통일교회에 나오는 아주머니들은 모두가 하늘나라의 법도를 알고 있을테니 축복을 받았거나 받을 딸에게 가정교육을 단단히 시켜야 합니다. 582) 

자기가 낳은 아들 딸은 남에게 맡기지 말라. 부모가 몸이 약하여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길 경우에는 아이를 자기의 맏아들같이 사랑해 줄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아기를 기르는 것은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기른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선생님 아기는 정성들인 부모들이 길러야 한다. 583)

2. 참된 자녀교육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실천해야 됩니다. 부모가 본이 되어 뜻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모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자녀들이 일언반구도 대꾸하지 않고 부모를 경외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자녀들이 따라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뜻과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 교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부모들이 본부에서 지시하는 원칙을 등한시하고 그 지시에 따라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자녀들에게만 원리원칙대로 생활하라고 하면 코웃음을 친다는 것입니다. 584) 

부모가 되었으면 무슨 짓을 하든지 아들 딸이 통일교회의 정도를 가게 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정도를 가야 합니다. 자기가 먼저 가고 나서 자식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자기가 먼저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런 다음에 자식을 교육시켜야지, 자기는 하지도 않고 교육시키려 하는 것은 천도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얘기하는 모든 것은 선생님이 먼저 실천해서 승리의 기반을 닦고 난 다음에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기도해 보십시오. 거짓말인지 사실인지 기도해 보라는 거예요. 585) 

기도를 할 때에도 내가 이렇게 하니 내 자식도 이렇게 하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자기가 먼저 표준이 된 후에야 자식을 그러한 위치에 세울 수 있다. 자신이 먼저 그러한 위치에 서면 하나님은 자연히 그 자식도 그와 같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우리가 우리를 중심하고 그 방향을 돌려놓지 못하면 영계에 가서도 책임 추궁을 받게 될 것이다. 586) 

자녀들을 교육시킬 때, 너희들도 엄마 아빠처럼 돼야 한다고 교육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587) 

나는 이번에 귀국할 때에 효진이와 인진이를 불러서, ‘아버지 어머니가 너희들 잘 만나 주지도 못하는 데, 이것은 하나님 뜻을 위하고 조국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 어머니가 하는 일을 이제 너희들도 해야 한다’고 얘기해 주고 왔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잘 만나주지 못하는 게 안 된 것입니다. 자식들에게는 부모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고난을 무릅쓰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조국을 위해 사신다는 사상이 자식들에게 꽉 들어차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의 편안을 위해서 사시는 것이 아니고 전체를 위해서 사신다는 생각을 자식들이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자식들에게 본이 되는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588) 

여러분은 자식들에게 ‘너희의 아빠와 엄마가 뜻을 위해 사는 것을 좋게 보아야 한다. 너희 아빠와 엄마는 보통 아빠 엄마하고는 다르다. 보통의 가정은 조금만 어려워도 싸우고 갈라지기 일쑤지만 우리는 이렇게 어렵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이렇게 참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본받아 너희도 더더욱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희망을 갖고 살아라. 아버지 어머니와 하나되고 뜻을 위해 충성하고 정성들이는 곳에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고 훈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식들이 본받고, 그 전통을 이어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손 만대가 번창하게 될 것입니다. 589) 

부모는 어떻게 해야 되는 가?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 사랑하는 것처럼 형제끼리 서로 사랑할 수 있게 가르치는 동시에 내가 나라를 사랑하니 너희도 나라를 이렇게 사랑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다른 교육이 필요없습니다. 590) 

자식은 부모의 심정을 배우는 것입니다. 591)

자기 자식을 가르칠 때는 ‘너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만 하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길을 거쳐서 뭐가 되라!’고 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책임을 다하고 형은 형으로서 책임을 해야 합니다. 누나는 누나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참된 남성, 참된 여성의 길을 갈 수 있는 인연을 가려 나갈 줄 아는 ,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순리적인 노정을 거쳐, 한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생겨날 것이 아니겠습니까? 592) 

‘아버지’란 말은 무서운 말이다. ‘참’이 아니고서는 자식을 먹여 살릴 수 없는 것이다. 자식에게 피의 공적과 선한 것을 먹여야 한다. 잘못된 것을 먹을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지도해 주어야 하고 복을 빌어 주어야 하는 것이 부모다. 고로 부모는 자식에게 신세를 지지 않는 것이다. 

내가 쓰는 돈은 하늘 땅이 알아야 한다. 593)

부모가 생활이 어려워서 마음껏 물질적 혜택을 줄 수 없다면 뼈 속에서 스며나오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 자식을 위하게 될 때 그들이 부모에게 빚을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자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의 가정에서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런 전통을 남겨 놓았기에 그 자식이 빚 안 지겠다고 노력하고, 그렇게 될 때 부모도 보람을 느낍니다. 594) 

앞으로 여러분은 부모로서 자식을 품고 천법을 따라가야 됩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아무리 괴롭고 여러분이 아무리 어려움에 부대끼며 살더라도 자식에게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많은 자식을 거느려야 하는 어머니에게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교육했습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키울 때는 눈물이 나오고 괴로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눈물이 나오려고 하고 괴롭더라도 자식이 엄마 아빠에게 눈물을 흘리며 호소할 때에는 씻은듯이 괴로웠던 일들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오냐’ 하면서 어젯날 기뻐하던 엄마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자식을 교육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595) 

여러분 가정에서 자식들이 우리 엄마 아빠는 세계의 어떤 왕궁의 왕이나 왕후보다도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또한 자식들에게 어머니 아버지의 사이가 천하에 없는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축복가정 여러분이 그런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어머니 아버지다’라고 할 수 있도록 자식들의 골수에 그 전통을 심어 주어야 됩니다. 596) 

세상의 부모들을 보면 자식들이 그 옆에서 ‘엄마 아빠 왜 싸워! 왜 싸워? ’ 하는 데도 난장판을 벌입니다. 그때에 눈물을 보이지 않은 여러분의 가정에서 자란 자식들이 그런 세상의 모습을 보고 ‘과연 우리 엄마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이구나! 참으로 훌륭하고 거룩하신 분이시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분은 자식들에게 본을 보여야 됩니다. 자식들의 뼛골에서 흘러나오는 심정을 통하여 동경을 받을 수 있는 부모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말없는 가운데 하늘의 가훈, 가법을 세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식들도 후대에 있어서 우리 엄마 아빠 같은 입장에 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통을 무엇으로 세울 수 있느냐? 통일사상을 통해서 세울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알고 통일사상 앞에 절대 복종할 수 있는 가정적인 교훈을 지금부터 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자녀들이 이것을 알 때에 자연 복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597) 

3. 참된 애국교육
여러분은 하늘나라를 위하여 뜻 앞에 충신이 될 수 있는 도리를 여러분의 아들딸에게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위하여 아들딸이 울 때면 너희는 나라 없는 백성이라고,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은 너희의 진정한 나라가 아니라고, 다시 모셔야 할 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손을 붙들고 눈물을 머금으며 가르쳐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품에 품은 아기의 숨소리를 느끼듯 하늘의 염려를 같이 느끼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리에서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한을 남긴 부모로서 교육의 폭이 더해질 것입니다. 598)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 아들 딸을 교육할 때에 어머니 아버지만 사랑하는 아들 딸이 되라고 가르치면 안 됩니다.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이다. 애국자다. 어머니로서의 애국자가 아니라 애국자로서의 어머니, 충신으로서의 아버지다’라고 교육해야 되는 것입니다. 

효도를 가르치는 데도 부모가 효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599) 

아버지가 가정에서 효하듯이 너도 효해야 되고, 아버지가 그 나라를 위해서 몰리면서도 투쟁의 역사를 엮어온 것과 같이 너도 충신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야 됩니다. 나는 이것을 여러분 앞에 어떻게 남겨줄 것인가 하는 것을 지금까지 필생의 목표로 삼아 나왔습니다. 600) 

여러분을 사랑해 주던 부모의 그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이 삼천만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 나라를 주관할 수 있는 소망의 터가 넓어지는 거예요. 그것이 원칙적인 지도방법이 아니겠어요? 여러분은 삼천만의 한 일원이 아니라 삼천만의 어버이가 되라는 거예요. 삼천만의 어머니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그런 아들 딸이 되라는 겁니다. 601) 

만약 부모가 자식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위해 애쓰고, 너를 위해 수고하며 땀을 흘리는 것은 나를 생각하지 말고 이 나라를 더 사랑하라는 뜻에서이다’ 하는 애국지사의 심정을 가지고 교육하면, 그런 부모 밑에서 사랑의 교육을 받는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애국지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는 부모님의 사랑을 회상할 때마다 삼천만 민족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을 위하는 입장에서 공부를 할 것이며, 자기의 민족이 비참함을 당할 때는 자기의 부모 이상으로 비참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에만 선다고 해서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서 이루어 놓은 터전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그것이 국민이 천 년 만 년 흠모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다 지나갑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할 때 심각합니다. 602) 

여러분의 학교에 어떻게 하든지간에 자기 제자들에게 올바른 사상을 인계시키기 위해 애쓰는 스승이 있다면,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면서 여러분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권고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순응하지 말고 나라에 대해 순응하라. 나를 위해 잘하는 것보다 나라를 위해 잘하기를 바란다’ 하고 말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그 스승이 이루지 못한 뜻을 이루어 놓을 것입니다. 이렇게 스승은 자기의 생애를 바쳐서 제자들을 위하여 정성들이고, 부모는 자신의 가치보다도 국가와 세계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자식을 위해 정성을 들이면 그 스승의 제자와 그 부모의 아들 딸들은 동량지재(棟樑之材)가 될 것입니다. 603) 

교수님들, 언제 위해서 살아 봤어요? 선생님들이 제자들을 위해서 피눈물을 흘리고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미래의 세계를 , 찾아가야 할 본연의 세계를 망각한 이 몰지각한 무리를 앞에 놓고 눈물없이 단상에 설 수 없는 겁니다. 억만 개의 세포가 떨리는 것입니다. 죄악감과 자책을 느끼면서 단상에서 눈물을 흘리며 생도들과 후대를 위해서 강의해 봤습니까? 레버런 문은 지금까지 피를 토하고 눈물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이 일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동네방네 소문난 괴수인 줄 알고 망할 줄 알았더니 이제는 자기의 동서남북의 사대문을 다 열어놓고 밤이든 낮이든 들어와서 주인돼 달라고 합니다. 당신만 있으면 열쇠도 필요없고 모든 것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데서만이 천국이 다시 회춘될 수 있습니다. 그런 철학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604)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냐? 이에 대하여 교육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금이나 내는 것으로 나라 사랑 다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니 나라 사랑의 길을 어디서 배우겠습니까? 그것이 가정에서 돼야 합니다. 그러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되는 가?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 사랑하고 형제끼리 서로 사랑할 수 있게 가르치는 동시에, 나와 너희가 사랑하는 것처럼 내가 나라를 사랑하니 너희는 나라를 이렇게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다른 교육이 필요없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살고 나도 그렇게 사니 미국의 모든 가정 가정이, 미국 대통령이 그렇게 사는 것이 애국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전통은 미국의 국무성이 없어지더라도 남겨야 되고 미국의 국방성이 없어지더라도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대통령이 ‘자, 우리 국민들은 이제 하나돼 가지고 원수를 때려 부수자’ 할 때, 하나돼 가지고 어떤 것이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죽을 길을 가더라도 충성해야 한다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605) 

아담이 실수했던 이 인연을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복귀해 나왔으나 전부 다 실패했습니다. 실패한 이것을 어떻게 복귀할 것인가? 치마를 입은 아주머니라고 해서 집안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밥을 먹는 것도 자식을 기르는 것도 전부 다 내일의 민족을 위해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606) 

한 나라에 있어서 어떠한 사람이 애국자인가? 잘먹고 호령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단의 자리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소금국에 보리밥을 먹으며 가난하게 살면서도, 그 보리밥 상을 지나가는 외국 사람들이 볼까봐 두려워하고, 나라의 위신을 생각하며 자기 모습이 드러날까봐 몰래 숨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애국자라는 것입니다. 자기 국가의 체면과 위신은 생각지 않고 시기 질투하고 체통없이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자기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만 국가의 위신과 체면을 세우고자 우리 나라에는 나같은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고, 자기 나라를 좀더 아름답고 가치있게 드러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죽으면 후손도 애국자가 되고 그 집안에 애국자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607) 

아들 낳기를 고대하던 부부는 아들을 낳았다고 하더라도 그 아들을 낳은 것만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들이 좋은 만큼 어떻게 가치있는 아들로 키우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걱정을 해야 됩니다. 이러한 걱정을 하면서 그 아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야 천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도 없이 그저 아들을 낳은 것만 좋아한다면, 그는 출발부터 잘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아들을 어떻게 하면 나라에 필요한 사람으로 기르는 가 하는 걱정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아들로 기르기 위해서 아들을 원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출발에서부터 나라를 위해 출발했다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608) 

자기 아들 딸을 위해서 기도하여 그 아들 딸이 태어나거든 그 아들 딸 앞에 ‘너는 나와 같이 아들 딸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어 가지고 아들 딸을 보낸 것은 여러분의 아들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주었지만 여러분의 아들 딸에게는 여러분의 뜻이 있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정성들여서 아들을 낳았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나라를 대신 구해 주는 사람으로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그 부모가 나라를 위해서 자기 자식이 갈 수 있는 길을 교육 못 하면 그 아들을 중간에 데려갑니다. 609) 

애국자도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선조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부모로부터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을 뼛골 깊이 사무치게 받은 인연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서 생애의 지침을 가려 가지고 목적을 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애국자라도 자기 스스로가 동기가 되어서 애국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자기의 선조로부터 교육을 받든가, 혹은 양심의 깊은 곳에서 어떠한 충격적인 감동을 받은 것이 동기가 되어서, 생애노정 전체가 그 동기로 말미암은 결과를 찾아 나가게 될 때 애국자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610) 

4.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교육
종교는 마루되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마루되는 가르침은 인류를 가르치고 인류를 사랑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세계가 좋아하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611) 

하나님을 위해, 세계를 위해 가정을 희생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도 아들을 버리고 이북에 들어간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라! 하나님의 뜻이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가정이 생겨났으면 그 가정은 가정을 위해서 사는 가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전통적 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교육받아야 하는 이 자체가 원통한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들 딸에게 ‘너 하나님을 잘 믿어야 된다. 뜻을 받들어 교회를 잘 지켜야 된다’ 하고 교육하는 그것이 원통한 것입니다. 본래는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마음 속에 계셔 가지고 전부를 지도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어머니 아버지 소개할 필요가 없듯이 하나님을 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612) 

인륜은 부모를 사랑하고 부부끼리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누구 때문에 부모를 사랑해야 하는 가 생각해 봤어요? 누구 때문에 부부끼리 사랑해야 하며, 누구 때문에 자녀를 사랑해야 하는 가를 생각해 봤어요? 

사랑하는 것을 책임져 주시는 주인공을 잃어버린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최후에 남아질 것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워하는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사랑합니까?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 죽어 보십시오, 어디로 가는 지. 

여러분이 자식을 낳아서 젖을 먹이며 귀엽다고 하지만, 누구 때문에 귀여워합니까? 그것은 하늘 땅을 대신하여 귀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 이 세계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귀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따른 천륜의 운세는 세계를 넘어 천지를 포용하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연을 통해 태어난 아들 딸을 나 때문에 사랑한다면, 그것은 용납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품고 젖을 먹이는 아주머니들, 하늘 땅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딸을 품는 다는 사무친 심정으로 자기 아들 딸을 품어야 됩니다. 613)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합니까? 영생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려면 공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식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내 아들 딸로만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계인을 위한 제물적인 아들 딸로서 사랑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는 이 지구성의 인류를 대표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인류를 대표한 어린 아기에게 젖을 준다는 마음으로 먹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식에게만 예쁘다고 젖을 먹일 것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내 자식 같다는 심정으로 대하는 어머니가 되어 보십시오. 그런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나는 아기들은 반드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당장에는 안 되더라도 1대 2대를 거쳐 나가는 동안 반드시 그 후손 가운데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인물이 탄생될 것입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614) 

자녀들을 교육시킬 때에도 어떻게 하면 뜻 대한 사명을 다하는 사람으로 교육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젖먹이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에도 이러한 생각을 하며 먹여야 한다. 615)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에게 ‘너는 나라를 위해서 나라의 위대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하는 것을 가르치지요. 그러니 오늘날은 세계가 우리 눈앞에 다가오는 때입니다. ‘너는 나라의 인물이 되라’고 가르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너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야 돼’라고 교육해야 합니다. 그렇게 교육합니까, 안 합니까? 그렇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와 더불어 살라!’ 여러분의 심리가 어떤지 내가 알기 때문에 이렇게 결론을 지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616 ) 

내가 망할 자리에서도 안 망했으니,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무슨 교육을 시킬 것이냐 하면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교육을 시킬 겁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무엇을 찾아 나오느냐?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때를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때를 중심삼아서 가고, 싸우고, 노력하고, 가르치고,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그 자리에서도 죽기는 죽되 다시 새롭게 부활할 것입니다. 617) 

선은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겠습니까? 나 때문이 아닙니다. 밥을 먹는 것도 나 때문에 먹는 것이 아니라 천주 때문에 먹어야 합니다. 장가가는 것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뜻을 위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목표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험을 하는 것도 세계를 중심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멋이 없는 사람 같지만 멋이 있는 사람입니다. 70년 내지 80년의 눈깜짝하는 일생을 넘어서면 영원히 사는 길이 있는 데 인간은 그것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세계의 시간권 내에 들어가서 그 세계와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을 안다면 그 영원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618) 

밥은 조밥을 먹고 입은 옷은 비록 허름한 보자기 같은 것을 둘러쓰고 앉았더라도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옛날에 집이 이랬을 때 이런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살아 이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폭 넓고 끊임없는 화제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우수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619) 

오늘날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겠다고 밤낮없이 날뛰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될 때 그 돈은 누구를 위하여 버는 것이냐? 그들은 자기 자식을 위하여 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식은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그 자식들은 자신의 생존만을 위하는 길을 갈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는 길을, 더 나아가 세계를 위하는 길을 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길을 가지 않으면 그 종족은 반드시 망하게 되고, 다른 종족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620) 

악에 접할 수 있는 요인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 선에 접할 수 있는 요인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전체가 악에 접할 수 있는 요인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악이 가는 길에 있어서는 교육이 필요없습니다. 교육을 받지 않아도 누구든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악으로부터 시작된 역사이기 때문에 교육을 받지 않아도 누구든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의 길을 가게끔 교육할 필요성이 있어요? 스스로 그렇게 됐기 때문에 오늘날 인륜 도덕을 중심삼고 양심의 표준 앞에 가려 가라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한 교육이냐? 선을 중심삼고, 양심을 중심삼고 교육을 했는 데도 불구하고 그 교육의 표준에 입각한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악한 것은 배우지 않고도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다 만점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환경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양심은 언제나 선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선한 사람이 되라고 쉬지 않고 나를 자극시키고, 나에게 권고하는 데도 불구하고 선한 내가 되었느냐?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볼 때에 오늘도 탄식이요, 내일도 탄식이요, 이 해도 탄식이요, 청춘시대도 탄식이요, 중년시대도 탄식이요, 노년시대도 탄식이니, 탄식으로 일생을 마치는 것이 아니냐? 다시 말하면 악한 것으로 끝장을 보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악에서 났기 때문에 악에서 꿈틀거리다가 악으로 가는 것이 지금까지 이 세상에 왔다 간 수많은 인간들의 생애요,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의 행로라는 것입니다. 621) 

여러분들과 섭리는 어떤 관계가 있느냐. 여러분들은 전체를 지향하는 목적 가운데 태어난 것입니다. 나기를 섭리역사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다시 말하면 공적으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공적인 섭리 가운데 태어난 여러분이기에 부모에게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후손들을 위하고, 세계와 우주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는 몰랐지만 우주를 대표하는 아들 딸을 낳아서 길렀던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자녀를 낳고 기를 때 이런 생각 가운데 낳고 길러야 합니다. 622)

훌륭한 어머니들은 자식을 품에 안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선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어려운 입장에서도 참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그 자식에게 가르친다. 그것은 어머니들이 선은 망하지 않는 다는 천리를 통했기 때문이다. 623) 

선생님 어릴 때의 모친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오직 자식이 고생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자식이 가진 뜻과 이상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는 것을 염려했습니다. 선생님이 하나님의 뜻을 펴다가 북한 공산당원들에게 붙잡혀 감옥에 들어갔을 때, 천리길이 멀다하지 않고 여러 차례 면회를 왔지만, 모친의 걱정은 오직 자식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모친은, 선생님이 가는 길을 버리고 부모를 모시고 평온하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니만큼 선생님은 부모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흥남수용소에서 평양에 도착하여 40일간 있을 때도 고향까지는 2백8십 리 길밖에 되지 않지만 부모를 찾아뵙지 않았던 것입니다. 피난길에 고향에 들렀더라면 부모와 형제들이 함께 자유를 찾았을지도 모르지만, 선생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장애가 되었기 때문에 부모와 형제들을 만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향에 남은 부모와 형제들은 김일성 일당들에게 생명을 잃었을 것입니다. 공산집단은 반동분자의 가족은 추호도 용서없이 학살하는 살인집단으로 그들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선생님이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1. 4후퇴 때에 부모와 형제를 뒤에 두고 평양에서 뜻을 따르던 식구들과 수용소에서 찾아세운 제자만을 등에 업고 피난길에 올랐던 것입니다. 

부모와 형제가 선생님의 길을 반대했을 때는 그들을 버릴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이 선생님을 반대하고 감옥에까지 보냈다고 해서 그를 버릴 수 없는 것이 선생님의 입장입니다. 이 민족과 국가가 선생님을 반대하고 핍박하는 것은 선생님의 뜻과 이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핍박해도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만 했습니다. 624) 

하나님의 뜻은 자기의 혈육만을 중심삼고 자기의 가정만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사랑하는 자식을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의 섭리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625) 

현재보다 미래의 세계를 위하여 자기 아들 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 제사드릴 수 있는 사람은 미래의 승리의 기반을 현재에 끌어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아들을 미래의 세계를 위해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자기의 아들 딸을 사랑하기를 그 시대의 무엇보다도 미래의 어떠한 무엇보다도 사랑하지만, 만민을 그 아들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었기에 자기 자식을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마음을 갖고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은 거기에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냐, 못 가는 사람이냐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여러분,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를 중심삼고 욕심부리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갑니다. 자기 중심한 것을 버리고, 자기를 희생시키고 제물로 삼으려는 사람만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자기의 몸은 물론 자기의 아들 딸까지도 다 제물로 드려 만민을 구원하고 사랑하려는 주체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섭리를 해 나오시면서 원수를 쳐 가지고 추진시켜 나온 적이 없습니다. 원수를 쳐서 섭리하기보다는 자기의 사랑하는 존재, 제일 가까운 존재를 희생시켜 가지고 섭리를 추진시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섭리를 발전시켜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발전은 천국을 향하여 발전되는 것입니다. 626) 

오늘날 통일교회는 천주주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천주주의가 무엇입니까? 하늘 땅과 더불어 살자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여러분은 ‘야! 이것이 근사하기는 하지만 가당치 않은 얘기로구나’ 할 것입니다. 어때요, 꿈 같은 얘기지요?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세계를 추구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평면성을 띠고 나가면 통일교회는 입체성을 띠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가 더 위대하냐? 이렇게 얘기하면 자화 자찬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어디가 더 위대합니까? 통일교회하고 기성교회하고 어디가 더 위대해요? 통일교회가 더 위대합니다. 천주주의가 더 위대합니다. 통일교회는 ‘천주와 더불어 살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3시대의 사명을 완결지어야 합니다.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을 해방시키고, 오늘날 이 죄악의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앞으로 올 후대의 사람들도 여기서부터 해방시키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3시대의 해방권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627) 

여러분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느냐? 첫째는 영계를 책임져야 되고, 둘째는 세계를 책임져야 되고, 셋째는 후손을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오늘날 통일교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복귀의 길이요, 통일교회가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길입니다. 628) 

5. 신앙과 공부
우리가 종교생활을 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여 키우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젖을 먹자는 것입니다. 아기가 배고프면 젖을 달라고 울어대듯 여러분의 심령이 갈급할 때는 교회를 찾아가서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진실로 아기를 사랑하는 어머니는 젖만 먹이지 않습니다. 훈련도 시키고 운동도 하도록 하며, 싫다는 것도 가르쳐 줍니다. 커 갈수록 세상에서 쓰러지지 않는 사람을 만들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처럼 우리 인간도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우주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금 잃어버렸던 그 모든 것을 찾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종교가 모든 것을 가르쳐 주어 악의 울타리를 넘을 수 있는 인간이 됐다면 여기서부터 부활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진실로 인간을 사랑하시며 종교를 이끌어 오신다면, 그리고 종교를 통해서 부활된 인간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핍박과 압력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훈련입니다. 그래서 개인, 가정, 국가, 세계가 핍박하더라도 그 속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부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629) 

자녀들의 신앙교육이 학교교육보다 더 중요하다. 아버님의 생각은 뜻을 중심삼은 생각이고, 여러분들의 생각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믿고 행하는 자에게는 창의력이 생긴다. 630) 

결혼의 중요함에 비해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는 결혼문제에 대해서 교육을 시키지 않는 다. 문제의 중대함에 비해 그 교육은 그렇게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다. 남자는 여자에 대하여 여자는 남자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데도 교육하지 않는 다. 결혼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도 교육이 소홀하다. 부부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가 하는 문제나, 자녀의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문제도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 문제보다는 과학이나 수학 문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것은 하나의 기형적인 교육 현상이 아닐 수 없다. 631) 

오늘의 여러분들이 내일의 여러분들로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습관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통일교회는 36가정으로부터 시작하여 6, 000가정에 이르기까지 세속화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세속적인 풍습에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가정들의 부모가 ‘우리 아들딸들은 공부를 시켜야 되겠다. 공부를 해야 출세를 한다. 돈을 벌어야 자식들 공부도 시킬 수 있고, 그래야 출세할 수 있다’고들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알아야 합니다. 출세를 하려면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의 여부에 따라 출세의 기준이 있다고 봅니다. 632) 

지식을 많이 갖게 하기 위해서 사람을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창조이상을 아는 것은 지식을 많이 갖는 것으로 결정된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창조이상의 뜻, 우리 이상의 목적은 지식이나 권력 또는 돈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오직 공부만이 출세하는 척도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크게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633) 

혹시 여러분들 중에는 일류대학에 다닌다고, 또 돈을 많이 번다고 으스대는 사람이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지식은 며칠 걸려서 또 몇 달 몇 년 걸려서 갖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랑은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랑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가치이기 때문에 평생을 걸려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합니다. 30년, 40년을 배워도 졸업장을 딸 수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은 몇 년을 배워 전문가가 되고 박사학위를 받을 수도 있을 테지만, 사랑의 영역은 무한하고 무량하여 그 누구도 전문가가 될 수도 없으며 천 년을 걸려도 박사학위를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신 사랑은 싫증이 나거나 염증이 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행복하고 기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며, 무한히 감사하고 싶고 당당해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634) 

심정으로 우리 마음은 무한히 클 수 있으나 지식으로 무한히 클 수 없습니다. 사랑의 심정은 우주를 포함하고도 남기 때문에, 이렇게 위대한 본연지를 개발하면 하나님도 그 속에 와서 낮잠 자고 싶어합니다. 지식으로서 하나님을 포괄할 수 없기 때문에 거기에서 통일교회의 심정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635) 

선생님은 공부하는 것도 그러한 마음으로 합니다. 공부를 할 때에 왜 피곤을 느끼느냐? 자기를 위해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피곤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천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여기 한 페이지에 달려 있고 한 문구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 단어를 가함으로 말미암아 삼천만이 살고, 한 단어를 가함으로 말미암아 삼천만이 망한다는 마음으로 더욱 정성들여 그 한 단어를 가하겠다는 심각한 마음으로 공부해 보라는 겁니다. 머리가 나쁘긴 왜 나빠요? 여러분, 심각한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있어요? 생명을 걸고 하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쿵쿵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느낄 때가 있지요? 심각하면 그렇습니다. 그런 심각한 자리에서 여러분이 결심한 것을 잊을 수 있어요? 머리 나쁘다는 것도 다 정도 문제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산만하기 때문에 기억이 안 되지, 사지에서 자기가 죽게 될 순간이 다가오는 데 살 수 있는 묘안이 떠오른다 할 때, 그 묘안을 기억하겠어요, 못 하겠어요? 여러분이 공부를 할 때에 책 한 페이지면 한 페이지를 붙들고 생명을 걸고 거기에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성경을 볼 때 ‘이것이 무엇일까’ 하고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년, 2년, 3년이라도 정성들입니다. ‘아, 그것은 이렇게 된 것이구나’ 할 때까지 뿌리를 뽑는 다는 것입니다. 636)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수많은 스승들의 훌륭한 교훈을 전부 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나와 학박사가 되어서라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자들의 모든 지식을 전부 다 자기의 것으로 흡수하여 그 종합적인 가치를 스스로의 생명의 요소로 삼아 여기에 색다른 하나의 새로운 선의 실체로서 등장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이요, 세계적인 사상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637) 

사람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극을 받아야 합니다. 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백만큼의 결심이 있어야 되고, 그만한 시간적 거리를 통해야 됩니다. 즉, 어떤 기간을 거쳐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 시간을 거쳐 나가는 데는 추진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 추진력은 시시때때로 자극을 주어야 생깁니다. 자극을 안 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638) 

요즈음 축복가정들, 특히 36가정을 중심해서 선배가정들의 자녀들이 계속 진학하게 되어 선생님께 장학금 문제에 대해서 선처해 주기를 바라는 모양인데, 그것이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유야 많겠지요. 그런데 자녀들의 진학문제에 부모들이 깊이 빠져들면 뜻길을 가는 데에 크게 지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부모는 진로만 제시해 주고 그들로 하여금 해결해 가는 방법을 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고학을 통해서 학업을 했습니다. 호랑이는 새끼들에게 야성을 길러 산중의 왕으로 키우기 위해서 가혹한 시련과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쇳덩이도 불에 달굴수록 강해진다는 원리도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데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합니다. 639)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경쟁한다는 것이다. 경쟁 없이는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경쟁에서 지면 비참하게 된다. 그런데 경쟁에서 이기려면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준비 과정을 거쳐 기반을 닦아야만 한다. 구약시대의 준비 과정을 거쳐 예수님이 오셨고, 신약시대의 준비 과정을 거쳐 재림주님이 오시는 것과 같다. 

학생이 준비한다는 것은 공부하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시대에는 큰 꿈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여러분들은 장차 통일가의 책임자들이 되어야 할 사람들인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준비가 필요하다. 사상적 준비를 하여야 정신적인 승리자가 될 수 있으며, 기반을 닦고 갖추어진 실력으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 곧 투쟁을 통한 승리를 거두어야 하는 것이다. 약한 자는 흡수당하고 망하는 것이 원칙이다. 자신을 갖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불철 주야 노력해야 한다. 이번 수련회의 목적도 준비를 위한 것이다. 

선생님은 미국에 건너와서 1974년부터 1976년 사이에 가장 큰 반대를 받아가며 신학대학원을 세우고 신학자들을 규합하여 미국에서 교회 일치를 위한 준비를 해 나왔다. 그래서 오늘의 기독교와 종교의 연합운동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선생님은 경제, 문화, 언론 등 각 분야에서 많은 준비를 해 나왔다. 준비 중에서도 경제적 자립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지도자는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선생님은 일생을 준비하는 생활을 해 나왔다. 27세부터는 뜻을 위한 투쟁의 생활을 해 나왔으며, 40세부터는 세운 바 뜻을 실천해 나왔다. 640) 

선생님이 지금까지 2세들에게 대학원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난 후에, 국가를 사랑하고 난 후에, 자기 종족과 가정을 사랑하고 난 후에 공부가 필요하다면 대학원에 가도 되기 때문입니다. 

대외적인 활동기준이 뜻길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그 척도로 삼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에도 사랑의 장이 있는 것을 여러분들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641) 

여러분이 배우고 익힌 지식이 앞으로 어디에 얼마나 소용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무슨 대학 법과, 무슨 대학 경제과에서 배운 지식이 뜻길을 가는 데 있어 얼마만큼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됩니까? 그런 것들은 뜻길을 가는 데 있어 별 소용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일본의 국력과 경제가 패망했을 때 어떠했습니까? 경제학이 문제가 아니라 국토가 깨져 나가는 판에 경제적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었느냐 말입니다. 

오늘의 뜻길을 가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노력하는 사람이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물인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배운 경제학을 선생님이 따를 것 같습니까? 그 정치학을 참고나 할 것 같으냐 말입니다. 하나님도 그렇지만, 선생님도 그런 냄새조차 맡기 싫어합니다. 642) 

대학원에 가는 것은 잠정적으로 금지시키겠습니다. 선생님의 아들 딸들이 대학원에 가지 않으면 여러분들도 못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의 아들 딸들이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법도입니다.

나뭇가지의 순이 먼저 자라야 곁가지나 잎이 생겨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순이 높이 뻗어야 곁가지가 뻗어나 나무가 정상적인 발육을 할 수 있습니다. 나무에 있어 대목의 순보다 곁가지가 많으면 그 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는 잡목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인 것입니다. 

원래는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남녀가 먼저 되어서 선생님의 아들 딸들이 먼저 대학이나 대학원에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효진형 보고 빨리 공부하라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현재 효진은 통일교회와 통일교인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들은 여러분들이 오직 잘되기를 바라면서, 여러분들의 교육에만 매달려 나왔습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자녀들의 교육에만 매달려 있었습니까? 선생님은 여러분들과 세계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지금까지 모든 힘을 쏟아 나왔습니다. 그러니 교육에 언제 관심을 가질 수 있었겠느냐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부모들은 축복을 받은 가정으로서 오직 자신의 가정과 자녀들 교육에만 매달려 나왔으니 선생님과 하늘 앞에 크게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에게도 공동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효진형만이 아니고 다른 형과 누나들에게까지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협조해야 합니다. 그것이 원리의 길을 가는 도리인 것입니다. 643) 

오늘날까지 모든 종교에서는 결혼하지 않는 계율을 지켜 나왔습니다. 불교도 그렇고 가톨릭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결혼하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섭리의 계시가 결혼하지 말도록 내렸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여러분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이 시대의 섭리가 여러분들께 그렇게 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644) 

본래 부자(父子)라는 말은 본연의 아버지와 아들 딸을 말합니다. 그러한 부자가 없으면 그 나라도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만민은 평화의 세계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세계는 오늘날 세계의 선진국가들이 추구해 나가고 있는 그런 문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아무리 거적대기를 쓰고, 누더기 보따리를 짊어지고, 무늬가 바랜 헤어진 옷을 입었을망정, 또한 천 길 만 길 구덩이에서 기진하다 나왔을망정 인간은 그 참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을 배워야 합니다. 645) 

축복가정에서 태어난 2세들은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교육과 심정적 전통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2세들을 위한 교육의 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치원에서부터 초·중·고등·대학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교육기관을 설립해야 합니다. 외국의 축복가정 2세들도 유학하여 함께 이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646) 

제 2세를 중심하고 통일문화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참부모의 심정적 전통을 상속하는 내용으로 이뤄지며, 그밖에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는 교육도장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적인 탕감복귀의 길이 열렸고 그 모든 기준이 세워졌습니다. 647) 

여러분은 참사랑의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 뿌리로 땅 위에 싹을 나게 하는 가정이 있다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가정에서부터 사랑이 싹터 오르면 인류 조상의 문화가 창조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쓰여지는 언어는 세계의 언어가 됩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무엇이고 간에 다 필요없습니다. 영어가 심판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이왕지사 자식이 되려면 사랑의 사회에서 한 부모를 통해서 태어나고 그 부모가 쓰는 말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민족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출발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사랑을 중심삼은 문화가 발달될 것입니다. 그 문화는 세계적인 문화가 될 것이요, 다른 문화는 그 땅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곳의 문화는 세계를 대표하는 문화인 것입니다. 648) 

6. 사랑은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학교에서 배워서 아는 것입니까? 그런 것을 가르치는 학교 봤어요? 또한 그것을 배워 본 사람 있습니까? 그것은 배우지 않고도 아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만나 가지고 아기 낳는 법 배우지 않았습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남남이 만나 가지고 부부의 인연을 맺어 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도 누구에게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누가 가르쳐 주어서 아는 것도 아니고, ‘요런 것이다’ 하며 갖다 먹여 주어서 그 맛을 아는 것도 아니고, 실험을 해봐 가지고 아는 것도 아닙니다.  

옛날에도 이런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은 없었고, 지금부터 수천만 대의 후손에게도 이것을 가르쳐 주는 학교는 나올 수 없습니다. 649) 

여러분들이 결혼해 가지고 늙어 죽도록 자식을 못 가지면 자식에 대한 사랑은 천 년 만 년 가더라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천 년 만 년 공부해도 알 수 없으나 아들 딸이 배 안에서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650) 

아기가 태어나면 바로 어머니의 젖을 찾는 것이나, 동물들이 태어나면서 어미의 젖을 찾는 것이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행위로 옮겨지는 것은 바로 사랑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51) 

진실한 사랑은 천리 법도이기에 교육되기 이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인간 사회에서 진실한 사랑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나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배워지는 것은 모두가 타락한 결과로 빚어지는 비극인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태어난 자식의 얼굴이 밉고 예쁜 것에 따라 크고 작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고, 부모가 잘나고 못나고에 따라 부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달리하는 자식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얼굴이 밉게 생겼으니 나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하는 자식이 있습니까? 너는 내가 비록 낳았다고는 하지만 얼굴이 못생겼으니 나의 자식이 아니라고 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부모나 자식이 있다면 그들은 인간이 아닐 뿐 아니라 짐승이 잘못되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한낱 괴수일 것입니다. 652) 

예수님은 어떤 분이었는 가? 예수님의 논법은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선한 일을 행하며 살아라, 옳은 일 해야만 천국 간다는 말씀은 안 했습니다. 그분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배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따라가게 되면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653) 

여러분은 가정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까? 어떤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아버지한테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까? 그렇게 교육을 받았습니까? 또 어머니도 그의 자녀에게 어머니한테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까? 또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법을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로부터 신랑 신부는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고 배웠습니까? 배운 바가 없지만 잘합니다.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배우지 않았지만 잘한다는 것입니다. 654) 

여러분, 공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여러분이 매일 공기를 호흡하면서 살고 있지만, ‘야 이게 공기다’ 하며 살고 있습니까? 매일 호흡하면서 살고 있지만 공기를 생각지도 않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또 모든 사람들이 태양 빛을 받고 살지만, 아침 저녁으로 햇빛의 고마움을 알고 인사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인사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안 배웠어요?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그것도 안 배운 모양이군.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로부터 물 먹을 때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고 배웠습니까? 배웠어요, 안 배웠어요? 그것도 안 배웠지요. 제일 귀한 것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귀하다는 햇빛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만일 이 지구상에서 태양이 이틀만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또 공기도 그렇습니다. ‘지금 인간들이 큰소리치고 있는 데 저들의 세력이 얼마나 큰가. 우리가 한 15분간만 지구상에서 사라지자’ 하고 공기들이 동맹파업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되는 날에는 세계통일을 간단히 이룰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간단합니다. 15분이 아니라 10분 이내에 세계통일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공기나 물을 먹는 방법을 배웠습니까? 그것은 배우지 않고도 자연적으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귀하다는 것은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것들보다 훨씬 귀하신 분일 것입니다. 인간들은 그분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마찬가지로 배우지 않고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에 대한 것도 배우지 않고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655) 

7. 사랑을 중심한 인생행로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할 때 서로 먼저라고 할 수 있는 데, 과연 어느 것이 먼저이겠습니까? 사랑이 먼저입니다. 우주의 근본이 존재 기원에 앞서서 사랑의 유통이 없어서는 존재가치가 나올 수 없습니다. 656) 

내가 누구냐? 나라는 존재는 , 나라는 기원은 어디서 난 거냐? 부모의 사랑에서부터 생겨났습니다. 내가 왜 귀하냐? 부모의 사랑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우주세계에 동참해야 됩니다. 657)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은 지식이나 권력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 때문에 태어났고 또 사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위대한 것이냐? 그것은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부모의 사랑 가운데서 난 것입니다. 돈을 세거나 지식을 노래하는 데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사랑 가운데 태어났으니 사랑으로써 결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되어 아들 딸이라는 상대가 있을 때 완전한 것입니다. 658) 

인간 자신도 사랑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존재는 사랑을 바탕으로 살아간다고 하겠습니다. 

모든 만물도 그 존재의 시작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존재가 사랑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할진대, 피조세계의 중심 존재인 인간은 더더욱이나 사랑으로 출발한 존재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에서 출발하고 사랑에 의하여 완숙해지기 때문에 사랑의 기준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659) 

우리의 생명의 기원이 어디서부턴가를 보게 되면,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가 문제입니다. 이제까지 이것을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생명이 먼저가 아니라 사랑이 먼저입니다. 먼저 된 것 앞에 다음 되는 것은 순응해야 되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는 생명을 바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것은 수습해 놔야 됩니다. 그러면 인생이 참되게 살 길이 어디냐가 나옵니다. 인생이 사랑에서 태어났으니 사랑의 길을 가야 하고 사랑을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소우주가 아니라 대우주가 환영할 수 있는 사랑을 찾아서 하나님이 공인하고 천사세계가 공인하고 만물이, 더 나아가 우리 부모가 공인할 수 있는 대우주애 가운데 나고, 그 가운데서 사랑하고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 태어난 목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660) 

인간이란 자기가 희망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어머니의 희망에 의해서 태어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희망에 의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인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인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난 것이 ‘나’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전체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의 사랑 모두를 받아 전우주의 중심적인 존재로 태어난 것이 바로 ‘나’입니다. 

사랑에 의해서 태어나고, 사랑에 의해서 키워지고, 사랑에 의해서 살고, 또 사랑을 남기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목적입니다. 자기의 가정에서 우주의 중심인 사랑의 명을 다하는 것만이 가장 가치있는 일입니다. 661) 

인간이 태어나 존속하는 데 있어서 자기를 위한 존재는 상대권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창조도 하나님이 상대를 위해서 창조한 것입니다. 이처럼 동등한 가치기준과 동등한 소유의 권한을 부여하는 사랑, 즉 위하면서 주겠다고 하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행복한 길입니까. 하나님이 위하면서 천지 우주를 상속하겠다는 그 길을 찾아가는 것이 일생의 행로입니다. 662) 

존재(存在)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운동합니다. 이것이 존재물의 기본적인 존재 법칙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물론이려니와 움직이지 않는 물체나 무생명체도 이 운동의 법칙성을 갖습니다. 운동성은 무질서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질서적이요 법칙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질서와 법칙은 어떤 목적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어떠한 목적에 의해서 질서와 법칙성을 갖고 움직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움직이는 것, 즉 내가 활동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이 뭐냐 하면 사랑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사랑의 구현 때문에, 사랑을 이루어야 한다는 목적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이 참사랑의 구현에 있으니 인간의 존재가치도 이 참사랑에 의해서 결정지어지게 됩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663) 

인간 존재의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 존재의 원인은 사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존재의 목적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 존재의 목적은 사랑의 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랑을 원인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니, 사랑의 기대를 이루어서 확장시키고 연결하여 완성시키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즉, 출발이 사랑이니 목적도 사랑으로 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적 관계에 있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중심하고 하나되어 전후 좌우 상하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664) 

우리가 아무리 절대적인 존재를 확정하고, 아무리 절대적인 목적을 확립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기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살고 생활하는 것이 기뻐야 합니다. 생활하는 것은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성취했다 할 때 거기에는 존재 그 자체 이상의 새로운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를 중심삼고 볼 때에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이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행복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목적을 아무리 잘 세웠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을 주관할 주체적인 사랑의 권위를 세우지 못하게 될 때에는 또다시 새로운 목적을 추구해야 됩니다. 목적의 한계점이 사랑보다 위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665)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먹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일하기 위해서, 또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 가. 사랑을 위해서 산다고 한다면 얼마나 멋있는 대답이겠느냐 말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열매로 태어나고, 사랑하면서 살다가 영원한 사랑인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창조본연의 삶인 것입니다. 666) 

사랑을 위해서 사는 일생은 생산적인 결실의 삶이요, 사랑을 모르고 사는 일생은 소모적인 멸망의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인간도, 우주도 사랑을 위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이 본연의 삶인 것입니다. 667) 

생명은 사랑에서부터 태어납니다. 사랑에서부터 태어나 가지고 부모에게 사랑을 받다가 사랑으로 성장해 가지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서 또 사랑하고 그 사랑 속에 죽어가니,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슬픔과 고통이 있을 수 없는 것이 본래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668) 

본래의 우주의 근본자리는 사랑을 중심삼고 종합적으로, 종횡으로 동시에 결합할 수 있는 기준이 됨으로써 부모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결합할 수 있는 근본자리가 됩니다. 그 자리는 온 우주가 집중하는 자리가 되며, 온 우주 세포의 방향이 집중하는 자리가 됩니다. 영계의 모든 신(神)들이 전부 여기에 집중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자리를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보호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가 파괴당하면 큰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온전히 보호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가 필요한 것인데, 그 형태가 통일교회의 용어로서 사위기대(四位基臺)라는 것입니다. 669) 


인간은 태아로 있을 때는 어머니로부터 공급되는 영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랑을 공급받았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듯이 지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도 우주(자연)로부터 물질적인 영양을 공급받을 뿐 아니라 생명의 본질적 요소인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것입니다. 670) 

모든 식물이 태양 빛을 생명의 요소로 흡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는 사랑이 생명의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히 사랑과 더불어 흠모하면서 살 수 있는 지상천국이나 천상천국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671) 

인간은 태어날 때 사랑으로 태어났으며, 태어나서는 사랑을 받으면서 어린 시절에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쯤 성장하게 되면 부모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게 되며, 형제간의 사랑과 종족의 사랑을 중심하고 횡적인 사랑을 넓혀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천지간의 모든 사랑을 받으면서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특히 사춘기 때에 접어들면 이성간의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데, 이성간의 사랑을 함으로써 종합적인 사랑권에 진입하게 되어 비로소 사랑의 센터를 찾아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672) 

남자나 여자가 가는 길은 사랑 때문에 있으며, 사랑을 위해서 있습니다. 나의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의 환경권을 이루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여자가 화장을 하거나 맛사지를 하는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원하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모두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고귀한 사랑을 얻기 위해서 고난을 이겨내고 가는 것입니다. 673)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이며, 부모가 생존해 있는 한 소년시대, 청년시대, 장년시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 성장(成長)하게 되면 횡적인 부부(夫婦)의 사랑이 각자에게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674) 

결혼이 뭐겠습니까? 남자는 여자에 대해 몰랐던 것을 배우기 위한 것이요, 여자는 남자에 대해 몰랐던 것을 배우기 위한 학교에 입학하는 것입니다. 모든 학점이 A플러스가 되어야 남편도 좋아하고 아내도 좋아할 것입니다. 아들 딸을 낳는 것은 세계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입니다. 아들 딸이 없으면 미래와 연결되지 않습니다. 미래의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교육의 재료로 아들 딸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조상들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 효도하는 것은 영계로부터의 교육을 받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이 모든 것이 연결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남편과 아내, 아들 딸이 한 사랑을 중심으로 전부 연결돼 있는 것입니다. 인체의 혈관같이 영계의 천만 대 조상까지도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 있고, 먼 후손까지도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곧 영계의 조직이요 우주의 조직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모든 것이 여기에 정복당하고 맙니다. 사랑의 종이 되고 사랑의 노예가 되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 제일 위대하고 놀라운 권세를 가진 자가 누구겠습니까? 사랑으로 보다 종의 길을 간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철학이요 레버런 문의 철학이요 무니(Moonie)의 철학입니다. 675) 

본인은 영계의 체험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인데, 영계는 사랑의 성분으로 뒤덮여 있는 곳입니다. 지구는 공기로 뒤덮여 있지만 영계는 사랑으로 쌓여 있는 곳입니다. 인간은 땅에서 공기를 마시고 가스를 뿜어내지만 영계는 사랑을 마시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영계는 오늘날 인간의 속된 사랑을 중심삼고 주고 받게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계에서 주고받는 사랑은 참된 사랑인 것입니다. 676) 

여러분들이 왜 결혼해야 되느냐?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체험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왜 필요하냐? 그러한 사랑의 공기가 충만한 곳이 영계입니다. 영계의 박자를 맞추기 위한 훈련을 하기 위해서 가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못 느끼고 가는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 박자를 맞출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랑의 공기를 맡을 수 있는 코가 없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677)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한번 알아봐요. 하나님의 사랑을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치 따스한 봄날에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땅에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벌레가 나돌고, 개미들도 세상 구경하겠다고 발랑발랑 기어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에는 버들강아지가 움트고, 개구리가 봄날의 새노래를 부르고, 떼를 지어 날아드는 벌 나비를 반기는 그런 환경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환경에 취해서 잠이 드는 것 같은데 잠은 들지 않고 기분 좋아서 영원히 좋다 할 수 있는 그런 맛이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상상대(理想相對)를 중심삼고 느끼는 기분은 나비가 날고 벌이 날아드는 꽃동산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이 둔한 남자들은 그것을 모를 겁니다. 기분 좋다는 거예요.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손을 꽉 쥐고 악수를 합니다. 악수할 때 반갑다고 ‘아하, 이거 오래간만이군’ 하면서 손을 꽉 잡으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기분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에라, 이 자식아’하면서 발로 차버리라는 것입니다. 반가우면 손을 꽉 쥐어요, 안 쥐어요? 여러분은 그렇게 하면 좋아합니까? 「좋아합니다」 좋아하고 싶은 것이지 좋아하기는 뭘 좋아해요? 알아야 좋아하는 것이지 모르면서 어떻게 좋아합니까? 그렇게 좋아하며 잡으면 손을 풀지 못한다는 겁니다. 

여기 있는 아가씨들, 시집가서 남편이 자기를 사랑해 주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사람은 솔직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해 준다면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예 남편 옆에 딱 붙어 가지고 사는 거예요. 남자가 소 앞발 같은 손으로 여자 손을 꽉 잡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영화를 보아도 그런 영화를 보고 싶어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아이구, 당신 손은 참으로 곱소’하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커플(Couple:한쌍)을 이루어 사랑을 하면 딱 맞붙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는 안 되겠지만 이 이상의 심정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가지고 산다면 하나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전부 다 하나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678)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사랑이 충만합니다. 주면 줄수록 더 주고 싶고, 받으면 받을수록 거기에 천만 배 더하여 주고 싶은 곳입니다. 그러니까 그곳이 천국이에요, 지옥이에요? 「천국입니다」 거기에서는 더 주고 더 받을 수 있으니 폭발적인 자극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온 세포가 터져 나가는 듯한 자극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랑을 체험하면 여자들은 시집가지 않으려 하고, 남자들은 장가가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 사랑에 취하면 아편이 문제가 아닙니다. 술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시골 양반들은 뚝배기에다 탁주같은 것을 꿀꺼덕 마시고 취하는 데, 그런 것에 취해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랑에 취해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그것만 알게 되면 사랑을 위해 가는 길이 고생스럽더라도 고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들이고 또 들이는 것은 자랑이요, 영광인 것입니다. 679) 

남녀지간에 사랑하게 되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집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알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진짜 맛보면…. 그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에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맛본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 고난도 그를 점령하지 못하고, 어떠한 슬픔도 그를 점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해방의 권이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찾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680) 

여러분이 영계에 가보면 그 세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부모, 형제 자매, 부부, 자녀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가진 자, 즉 가정생활에서 깊은 사랑의 경험을 한 사람은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디든지 아무 제한없이 어느 방향으로라도 갈 수 있습니다. 그 반대로 사랑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속이 좁고, 영계에서도 자기 혼자 고립되어 있고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부자간의 사랑은 종적인 관계이고, 부부간의 사랑은 횡적인 관계이고, 형제 자매간의 사랑은 선회하며 에워싸는 관계인 것입니다. 이 세 관계는 서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이 세 가지의 서로 다른 방법으로 깊은 사랑의 경험을 가져야만 제한없이 종적, 횡적, 원으로 선회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일찍 돌아감으로 인해 부모의 사랑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매우 중요한 사랑의 경험을 못 했기 때문에 다소 비극적인 사람이며, 같은 식으로 가정생활, 즉 부부관계를 경험 못 한 자는 생의 중요한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계에서는 매우 초라한 사람이 됩니다. 또한 형제 자매가 없는 사람은 모든 분야의 결핍으로 완전한 생을 살 수 없으므로 영계에서 초라한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681) 

고향은 어떤 곳이냐? 내 심정을 사방으로, 입체적으로 몽땅 끌어올려 놓는 곳입니다. 그 심정은 무엇이냐? 사랑으로 얽어매는 것입니다. 위로는 어머니 아버지가 얽어매고, 좌우로는 부부의 인연이 얽어매고, 아래로는 아들 딸, 친척이 입체적인 사랑으로 꽁꽁 얽어매고 있는 곳이 본향입니다. 사람은 사랑을 중심삼은 행복의 기점을 최고로 바라보기 때문에 본향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682) 

인간은 왜 영생하느냐? 왜 누구나 영생을 찾느냐는 것입니다. 절대적 주체자이신 하나님 앞에 사랑의 대상권의 가치를 지닐 수 있고 사랑의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영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영원한 사랑의 대상권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위에나 아래나 마찬가지로, 하나님이자 나가 됩니다. 사랑으로 일체만 되면 하나님을 내 포켓 안에 넣으면 들어가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683)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 있다가 태어나 일정기간을 땅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인간들은 늙어 갈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인간이 늙어 갈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나 불안을 느끼는 것은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을 보냅니다. 뱃속에 있을 때 어린 태아의 자유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영양을 탯줄로 이어받고 자라면서 두 손가락을 폈다 움츠리거나, 입을 벌렸다 오무렸다, 두 발로 버둥대는 것이 전부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태아는 어머니 뱃속이 자유천지이며 생의 전 영역일 것입니다. 그 태아가 10개월만에 세상에 태어나 자라게 되는 데, 그 이후의 세계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지상세계이며 인간 사회인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의 생활은, 기억은 없지만 미루어 생각해 볼 때 얼마나 답답하고 한정된 생활이었는 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우주를 태아적 어머니의 뱃속에 비유되는 삶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주 어머니 품속에서 인간 백년의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태아가 어머니 뱃속 밖의 인간세상을 몰랐듯이, 오늘 지상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은 죽음 이후의 무형실체세계에 대한 실재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짐작하여 어머니 뱃속에서 인간세계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실재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사후세계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심증을 가질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사후세계에 대한 심증적 존재 여부에 상관없이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후세계는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오관작용 밖에 있기에 종교를 통한 믿음으로 불신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84) 

수천 년 전 사람의 마음이나, 오늘날의 사람의 마음이나 다 마찬가지로 무엇을 그리워하느냐? 마음의 행복의 세계를 추구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행복의 세계를 추구하는 동시에 마음의 이상의 상대를 , 마음의 이상의 가정을, 마음의 이상의 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685) 

여러분은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다음에 더욱 근본적인 것은 아버지 어머니 뱃속을 빌어서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우주의 부모를 통하고 육신의 부모를 통해서 참부모를 찾아가게 됩니다. 육신의 부모는 통과의 부모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은 참된 부모를 만나러 가는 환희의 시간입니다. 거기에는 참된 부모의 참된 사랑이 있습니다. 그곳을 천상천국이라고 합니다. 

그곳의 구성요소는 사랑이며, 그곳은 부모의 사랑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 사랑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봉사와 희생의 원칙 아래 일방적인 법도를 통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거기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우주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해야 합니다. 지상생활은 그러한 사랑을 위한 훈련 장소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내용이 우주의 근본인 것을 알고, 살아생전 이러한 관을 갖고 사랑을 실천하여 합격한 뒤에 그곳으로 가면 틀림없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686) 

일생 동안 사랑을 위해서 사는 사람에게는 만물도 축복을 보낼 것입니다. 꽃도 그집 뜨락에서 피기를 원할 것이며, 한 마리 새도 그집 정원수에 집을 짓고 노래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만물의 가치를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만물을 진정으로 사랑해 주기 때문입니다. 687) 

여러분들이 영계에 가면 꼭 행한 대로 갚아 줍니다. 여기 축복받은 가정들은 선생님이 축복해 줬기 때문에 천국가는 문은 열리지만, 전진하는 데 있어서는 심정의 궤도를 타고 가면 갈수록 저쪽에서 끌어당겨 줘야 합니다. 그 세계는 사랑의 세계이기 때문에 내 심정이 그와 화동할 수 있어야 들어갑니다. 그래서 앞으로 그와 같은 세계가 드러날 때가 되면 여러분들은 많은 심판을 거쳐야 할 운명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688) 

내가 왜 사는 가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회사 사장이 되기 위해서 살거나 잠자고 먹기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살기 위해서 산다면 그 후에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밥 먹고 난 후에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학교나 직장으로 갑니까? 아니면 어디로 갑니까? 사랑이라는 안테나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오늘날 미국식 사랑은 어떻습니까? 요즈음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한 조사에 의하면, 90퍼센트의 사람들이 이혼을 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랑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귀하고 가치있는 것일수록 변하지 않습니다. 보석이 왜 가치가 있느냐? 금이나 다이아몬드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귀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것이 뭐냐? 금도 다이아몬드도 아닌 참사랑(true love)입니다. 

참사랑은 변치 않는 사랑입니다. 거기에 이의 있습니까? 여러분 미국 청년들에게 부모가 필요하게 된 것은 변하지 않는 사랑을 찾기 위해서임을 알아야 합니다. 

남편과 헤어져 가정이 깨진다 해도 자식 사랑에는 변함없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남편이 죽는 다 해도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어머니의 참사랑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남편에 대한 참사랑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만약 남편이 죽었다고 자식까지 버리고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남편에 대한 참사랑도 없어지고, 나아가서 자식에 대한 참사랑도, 부모의 참사랑도 없어지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남편이 죽었다 해도 자식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전체의 사랑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참된 부모의 사랑, 참된 아내의 사랑, 참된 자녀의 사랑을 그래도 간직하게 됩니다. 남편을 잃었다는 사실로 불행한 아내의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들을 통해서 남편의 사랑이 계승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 아들은, 자기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주지 못한 몇 배 이상 어머니를 위해 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남편과 아내의 사랑보다 더 귀한 사랑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반대로 아내가 죽었어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들도 그렇다고 생각됩니까? 

그렇게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는 곳에는 영원히 화동할 수 있는 본질적인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689)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서로가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상대를 위해 주고 칭찬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부부가 진정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 있는 곳에는 전기가 흐르는 전선줄에 ‘웅―’ 하는 소리가 나듯이 온갖 소리가 날 것입니다. 사랑의 천둥이 친다면 그 소리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천 년 동안 잠자던 사람도 후다닥 깨어날 것입니다. 깨어나서 놀라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자마자 춤추며 좋아할 것입니다. 그 누가 시켜서 춤추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결론을 내린다면, 전체 모든 것이 왜 있느냐 하면 참사랑 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결론이 가장 논리적이고 보편 타당성이 있으며 이상적인 결론일 것입니다.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은 참사랑 때문에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나와 같은 여자들이 한번도 참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그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하나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생겼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때에는 내가 여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여자가 될 것이고, 그 사람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존귀한 여자가 될 것입니다. 6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