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
제7장 참된 부부와 이상가정
제4절 참된 부모와 자녀
1. 참된 부모와 자녀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있게 마련입니다. 만일 부모를 위해서 부모가 있다면 부모라는 말이 안 나옵니다. 이제 앞으로는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윤리관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어떻게 있어야 되느냐? 자식을 낳은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윤리의 제일조입니다. 그것은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아들을 위해서 있고자 하는 자리가 불행한 자리가 아니라 행복한 자리입니다. 465)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부모로서 자식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은 바람 때문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가운데 부모의 사랑을 체휼하게 되고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연의 발로인 것입니다. 자식을 가져 보지 못한 사람은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까지 깨달을 수 없기에, 그가 가진 사랑은 항상 불완전한 것이 될 것입니다. 466)
부모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먼저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지만 주지 못하는 것은 관리를 못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주면, 그것을 받은 자가 해를 입는 다는 것입니다.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썩 잘드는 칼을 주고 싶더라도 잘못 주었다가는 그 자체가 망하고, 그 집안이 망하고, 전체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 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이런 입장을 알아 가지고 본을 받아서 부모가 전도 나가라고 하기 전에 본인이 알아서 나가고 싶어하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467)
자기 자식에게 그릇되게 가르치는 부모는 없습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그릇되게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원수의 입장에 있는 스승이라면 망하게 가르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스승은 두 종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형제도 두 종류가 있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부모는 오직 하나입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에게는 올바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468)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을 공부시킬 때에 ‘얘야, 우리 집이 이렇게 못사니까 너는 엄마 아빠 팔자를 고쳐 주기 위해 공부해라’ 하는 부모하고, ‘네가 공부하는 데는 엄마 아빠를 생각하지 말고 네 형제와 가정을 위해서 하거라’ 하는 부모가 있다면 어느 부모가 선한 부모입니까? 그리고, ‘너의 가정은 생각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 싸우기 위해 공부해야 된다’ 하는 부모가 있다 할 때, 가정을 위해서 충성하라는 부모하고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라는 부모하고 어느 편이 선한 부모입니까?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라는 부모입니다」 그건 틀림없지요?
그러면 ‘너는 세계를 위해서 생명을 다 바쳐 인간들이 하지 못했던 성인의 도리를 다하라’고 가르치고 권고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와 나라를 위해서 충신이 되라는 도리를 가르쳐 주는 부모 중에 어떤 부모가 더 선해요? 「세계를 위하라는 부모입니다」 세계를 위해 희생하라고 가르쳐 주는 부모가 더 선한 부모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이 관이 딱 갖추어져 있습니다. 469)
여러분 자신은 누구의 것입니까? 부모의 것이자 아들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누구의 것입니까? 부모는 자녀의 것인 동시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체는 먼저 하나님의 것이 되고 자녀의 것이 된 후에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그 법도가 땅 위에 남아 있고 인간 생활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사랑하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부모가 없으면 고아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보고 자식을 사랑해 보십시오. 그래야 ‘나’라는 사람이 사방(四方)을 가릴 줄 알고, 위도 아래도 가릴 줄 아는 것입니다. 470)
여러분은 부모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기에 태어나서 말할 수 있는 대상이 누구겠습니까? 부모입니다, 부모. 그렇지 않아요?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냐? 아빠 엄마입니다. 그 이상 누가 있겠어요? 내가 부르는 아빠 엄마는 옛날 인간이 본연의 자리에서 부르던 아빠 엄마입니다. 재미있는 일입니다. 여러분, 아빠 엄마를 천 번 만 번 불러 보십시오. 아빠 엄마의 맛이 어떤가를 알아보십시오. 그 맛이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아빠 엄마를 부르는 데 그 아빠 엄마가 대답하지 않겠습니까? 부르면 대답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체와 대상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471)
신랑이 더 좋으냐 아들 딸이 더 좋으냐 할 때, 신랑보다는 아들 딸이 더 좋은 것입니다. 부부는 갈라질 수 있으나 아들 딸과는 갈라질 수 없습니다. 족보에서 파낸다 하더라도 핏줄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갈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는 이혼하고 헤어지면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아들 딸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더 그립고 보고싶어 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자녀를 가져 본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알 것입니다. 사탄세계에 사는 부모들도 그것만은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아들 딸을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472)
통일교회 사람들은 결혼을 해도 신랑 신부를 만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를 중심삼고 삼위기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관계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더 중요시합니다. 식을 치르고 난 후에도 신랑 신부는 싸움 한번 하면 갈라질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와 아들 딸은 절대로 못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가 아들 딸을 잘 만난 것이에요, 아들 딸이 아버지를 잘 만난 것이에요? 어느 쪽이에요? 그 아들 딸이 아버지를 잘 만난 것입니다. 이처럼 아들 딸은 아버지를 잘 만났는 데 아들 딸이 아주 천치 바보라면, 아들딸을 보고 기뻐해야 할 그 아버지는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잃어버렸던 아들 딸을 찾았다고 하는 데, 6천 년 동안 지지리 고생하다가 찾은 그 아들 딸이 이 모양 이 꼴이라니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6천 년 동안 고생의 지팡이를 짚고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차라리 안 찾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한탄하실 내 모습이 되지 않았느냐 생각할 때, 여러분들 자신 있어요? 473)
축복가정 여러분이 죽기 전에, 자식을 낳기 전에 가정적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자식을 낳아 놓고 정성들이려 하지 말고 낳기 전부터 정성들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우리 부모는 어느 면에서만은 ‘다른 어떤 부모보다도 낫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외적인 면에서 부족할수록 어떤 독특한 면에서의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자녀들이 ‘천하에 우리 부모밖에 없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의 사람들이 한국으로 모범가정을 찾아 방문할 것입니다. 그때에 보여 줄 것이 있고 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474)
여러분들이 참부모란 말을 쓰지만 참부모란 명칭은 아들 딸을 사랑해야 가능합니다. 고생을 하는 데도, 자식을 사랑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계에 가 있는 사람들이 ‘저런 부모가 없다’고 칭송해야 됩니다. 참된 부모는 궁극에 가서는 자기의 아들 딸을 고생시켜서라도 인류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역사적인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의 아들 딸, 이 우주의 자녀가 돼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사랑의 상속권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고통을 풀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475)
아버지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친구 중의 친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친구보다도 아버지가 나타나게 되면 친구를 버리고 아버지에게 달려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승 중의 스승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엔 심정에 있어서 중심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우리 아버지는 대통령보다도 낫다. 제일이다. 하나님 다음 간다’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어떤 친구하고도 못 바꾸는 우리 아버지다. 어떠한 스승을 주고서도 못 바꾸는 우리 아버지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면 버렸지 아버지는 못 버린다’이렇게 돼야 합니다.
지금 우리 예진이를 보게 되면 자기 엄마만큼 컸다구요. 지금까지 어느 한 날 늦게 들어오더라도 방에 찾아가서 뽀뽀해 주고 그러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애기들 대해 가지고 그럽니다. 철이 날 때까지, 혹은 어떤 때 잠이 안 들 때, 아버지가 와서 자기를 이렇게 쓰다듬어 주면 무엇인가를 느낄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생애의 전통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가 최고다’ 이렇게 돼야 됩니다. ‘선생님이 문제가 아니고 친구가 문제가 아니다’이래야 됩니다. 476)
선생님은 어디 갔다가 집에 들어와서는 반드시 자는 애기들의 얼굴을 쓰다듬어 줍니다. 부모 노릇 하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듯이 나도 아들 딸을 사랑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을 자동적으로 심어주게 됩니다. 또 ‘우리 아버지가 세계에서 제일이다’ 하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477)
아버지나 어머니가 어디 가고 없을 때 그 애기들이 부모를 그리며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478)
어린 아이가 밖에서 돌아왔을 때, 형이나 누나가 반갑게 말하고 웃어 주어도, 만약 어머니가 없다면 그 아이는 ‘집에 아무도 없어요? ’ 하고 묻습니다. 실제로는 즐겁고 다정한 형과 누나가 있어도 말입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어머니가 사랑의 주체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중심, 중심축이 거기에 있으므로 모두 충족해져서 무심히 행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479)
여기 중년 이상 되시는 여러분들에게 ‘옛날 젊은 시절에 자기의 상대를 구하는 데 있어서 자기보다 못난 사림을 구하고 싶었습니까, 아니면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구하고 싶었습니까? ’ 하고 묻는 다면, 대답은 그 누구나 동일할 것입니다. 못난 사람이 아니라 잘난 사람입니다. 그것은 동서의 누구를 대해서 물어도 그러한 결론이 내려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는 그 자식이 부모된 자기보다도 못나기를 바라는 부모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미남 미녀가 결혼을 해서 첫 아이를 낳았는 데, 아들이든 딸이든 낳았는 데 그 아기의 얼굴을 보면, 그 부모의 얼굴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생기고 싶은 대로 생긴 얼굴이지마는 , 그 부모를 대해서 당신의 아들 딸은 당신보다도 잘생겼다고 칭찬하면 칭찬할수록 그 부모는 기분이 아주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480)
사람들은 누구나 훌륭한 아들을 갖고싶어 합니다. 그러면,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교육해야 될 것이냐? 어떤 사람들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학교가 많은데 거기에서 교육하면 된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육은 일생 동안 해야 됩니다.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부모가 정성들여 키운 자식에게 가문을 맡길 때, 즉 그 대신자로 세울 때는 부모의 마음과 일치되게끔 하여 그 부모의 인연을 따라가게 하면서 대신자로 세우는 것이 상례입니다. 481)
부모는 자식이 자기보다 나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로 태어났다가 자기보다도 못한 아들 딸을 낳게 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면목이 없어집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상 자기 아들 딸을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또 자녀도 이러한 생각을 할 때 자동적으로 사랑의 세계는 나타나고 천국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482)
부모의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전통을 계승한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자녀들이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그러한 전통의 상속자가 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통을 보다 높은 가치로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각 세대마다 기존 전통의 중요함을 인식해야 하고 그 전통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한 전통은 항상 자기의 자녀들이 자신들보다 더 낫기를 열망하는 부모들이 있는 참된 가정에서만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열망을 가진 부모들은 끊임없이 자녀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격려해 줄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들은 자녀들이 그들보다 더 훌륭하게 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하며, 자녀들에게 가능한 한 최선의 여건을 마련해 주고자 정성을 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들은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이며, 심지어는 자녀들을 부모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어 주는 방향으로 기꺼이 강요하기도 할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자녀들의 반응은 어떠해야만 되겠습니까? 자녀들은 그러한 부모님들에게 고작 ‘당신은 독재자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싫어요. 나는 간섭받기 싫으니 그냥 내버려 두세요? ’라고 해야 되겠습니까? 그러한 것이 자녀들로서의 자세입니까? 아니면 ‘아버지 어머니! 저희가 부모님의 뜻을 깨달았으니 부모님의 전통을 소중히 하고 최선을 다해서 그 전통을 상속받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해야 되겠습니까? 483)
어떤 부모도 가정의 책임을 맡기기 위해서 자기의 대신자를 내세울 때는 자기보다도 못한 자를 대신자로 세우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 그러냐? 자식이 자기보다 나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절대로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의 주권자는 자기 이상의 대신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주권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 있어서나 국가에 있어서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보다 훌륭하고 자기보다 모든 것을 더 갖추고 있는 후계자가 나오기를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변천을 초월하여 영원에 가까운 요구조건입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은 가정의 요구입니다.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주권자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자기를 능가할 만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번번이 목을 잘랐습니다. 그런 비참한 역사가 이어져 내려왔던 것입니다. 484)
그 나라가 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를 상속받아야 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역사를 상속받을 수 있는 데, 상속받는 데는 어릴 적부터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옛날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나무로 말하면 새순과 마찬가지이므로 역사적인 진액을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받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옛날을 좋아하는 것은 그러한 뜻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코를 질질 흘리며 우는 애기들에게 ‘울지 않으면 옛날 얘기해 주지’ 하면, 금방 울음을 그치고 ‘해줘’ 합니다. 거 참 좋아하거든요. 젖을 먹는 시간 외에는 그것이 제일 좋은 모양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역사를 상속받아 나오기 때문입니다. 천지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485)
2. 참된 자녀의 도리
여러분은 부모의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에 부모는 못 먹더라도 먹을 것이 있으면, 자신의 주린 배를 움켜쥐고 혀를 깨물며 굶주림을 극복해 가면서 그것을 자식에게 줍니다. 그 사랑은 부모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식으로 키우기 위한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수고의 노정을 가야 부모의 그 수고가 밑천이 되어 자식이 부모를 위로할 수 있는 수고의 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부모를 위할 수 있는 그런 심정을 가져야 여러분의 아들 딸들도 그럴 수 있는 아들 딸이 되는 것이요, 그럴 수 있는 아들 딸을 두어야 선한 혈족으로 남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주로 하고 부모님을 모른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효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효자라고 말하느냐?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식이 부모 앞에 할 수 있으면, 그 자식은 효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과도 통합니다. 부모는 중간에서 정성을 들여가며 키웠는 데도 불구하고 그 자식은 아랑곳없다고 한다면 그 집안은 망하는 것입니다. 주고 받는 이치에 있어서 상대적 기준이 조성되어야만 돌아오는 것이요, 또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그 자리에 임재하실 수 있으며 천국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남아질 수 있는 자식은 어떠한 자식이냐? 부모의 사랑으로 진 빚을 자기 스스로 갚아야 합니다. 부모가 나이 들어 노망을 했을 때는 자기가 어린 시절에 똥싸고 오줌쌌던 것을 닦아 주던 그 부모의 마음으로 모든 일을 참고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부모를 모셔야만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486)
부모를 알았으면 그 부모 앞에 뭘해야 됩니까? 효도를 해야 됩니다. 효자가 되어야 해요. 또, 그 부모를 중심삼고 그 나라의 충신이 되어야 됩니다. 그 부모가 나라를 거느리고 세계를 거느려 왔기 때문입니다. 충신이 되기 전에 효자가 되어야 하고, 효자가 되기 전에 참된 형제를 놓고 자랑할 수 있는 식구가 되어야 합니다. 식구는 형제지간에 찬양할 수 있는 권을 내세운 이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효자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효자인가? 옛날에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부부가 되어 가정을 거느리고 부모 앞에 효도하던 이상의 효도를 하여야 합니다. 시집 장가가기 전에는 진정한 효자 효녀가 되지 못합니다. 진정한 효자 효녀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집 장가를 가서 부부를 이루어 가지고 그 부모 앞에 남편의 효성에 아내의 효성을 플러스시켜 둘이서 부모를 받드는 효성의 터전을 갖추어야만 참된 효도권이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충신도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충신은 혼자서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룬 부부라야 충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충신이라는 팻말을 세우기 위해서는 효자를 낳아야 됩니다. 487)
아기가 부모로부터 잘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해서 그 표준을 중심삼고 행동하고 행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잘한다고 하는 것은 부모가 바라는 사랑의 마음에 접근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488)
부모가 하라고 명령을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에 의해서 하고, 부모의 마음을 알고서 그 이상까지도 책임을 다 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자식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온 인류의 아버지로서 복귀섭리 전체를 책임진 하나님의 비밀을 상속시킬 수 있는 기반이 땅 위에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489)
사탄은 자기 잘못은 알지 못하고 남의 잘못만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가 잘못하면 입을 열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집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아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라구요. 부모에게 대들거나 브레이크를 걸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주관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것만큼 같이하실 것입니다. 490)
자식이 부모에게 빚 안 지겠다고 노력하게 될 때 부모도 보람을 느낍니다. 491)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신세를 져서는 안 됩니다. 492)
여러분!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생명까지 주었습니다. 자식도 부모를 위해서 생명까지 바쳐야 합니다. 생명이 사랑에서 생겨났으니 본질적 사랑 앞에 생명선을 희생하고 가는 것이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모순적인 이론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493)
사랑의 전통 속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만일 그들의 부모가 이혼을 원한다면 그것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나는 부모님들의 자녀입니다. 나는 부모님들의 결합체입니다. 나를 위해서 부모님들은 어떠한 타협이라도 해야 하며, 나에게 훌륭하신 부모님들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나는 부모님이 필요해요’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부모란 그들의 자녀들 때문에 이혼할 권리가 없다’는 부모의 책임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혼은 생각조차도 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젊은 여러분들이 이 나라에서 이혼 반대운동을 전개해야겠습니다. 494)
통일교회 여러분들에게는 이혼한 부모들을 다시 찾는 일을 하자는 말도 성립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여러분들의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495)
3. 전통을 상속해 주는 부모가 되자
사람은 전통 속에서 살게 됩니다. 영국에 어떠한 전통이 세워졌다면 국민들은 그 전통 속에서 국민끼리 서로 상호관계를 맺으면서 살게 됩니다. 그 속에서 사랑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전통이 세워지는 보편적인 자리는 죽음과 삶이 교차되는 곳입니다. 다시 말하면, 수난의 자리, 고통의 자리에서 전통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 나라의 전통은 망하느냐 흥하느냐의 자리에서 망하지 않고 남아지게 될 때 세워집니다.
전통은 어려운 자리에서 세워지는 데, 개인을 위한 어려운 자리가 아니라 전체를 위한 어려운 자리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소유를 상속받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정신적인 유산과 물질적인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부모의 고생을 이해하고 부모의 고생보다 더 고생스럽다 하는 자리를 극복할 수 있을 때 참된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참 상속자는 부모의 상속물을 소모시키는 사람이 아닌 전체를 위해서 멋있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입니다. 496)
참된 부모는 사랑의 전통을 계승시키고자 애쓸 것입니다. 그것은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관계없습니다. 종족을 초월해서 모든 부모들이 세우려고 하는 것이 바로 보편적인 사랑의 전통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가정을 온전히 화목하게 결합하여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인생을 갈망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전통은 본질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통만이 미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의 중요성만 깨닫는 다면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그 자식들에게 전통을 계승시켜 주고 싶은 것이 아주 당연한 부모의 도리인 것입니다. 497)
부모가 앞으로 자라나는 아들 딸에게 부모의 사상을 어떻게 전통적으로 심어주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복귀섭리를 위해서 6천 년 동안 수고하시면서, 사탄세계에서 당신의 자녀들을 어떻게 빼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에게는 사탄세계에서 어떻게 아들 딸을 교육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이중의 십자가를 여러분들은 감수해야 됩니다. 498)
선생님이 염려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통일교회의 이름을 후세에 남길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선생님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을 후세에 남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통을 중요시하라는 교육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499)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거냐? 내가 잘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후손을 교육해야 됩니다. 후손 앞에 본을 남겨 줘야 됩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나 자신도 그렇지만 여러분들도 불쌍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피난민으로서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광야노정을 걸어왔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정착해야 되겠고, 정착하려면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가나안 칠족 멸하듯이 싸워 이기지 않으면 정착이 없습니다. 이 민족을 중심삼은 싸움에서 이겨야 됩니다. 500)
나중에 여러분의 자녀들이 ‘엄마는 그때에 무엇을 했어요? 전도했어요, 도망다녔어요? ’ 라고 물을 때, 자랑을 할 것인가 부끄러워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라. 방학 때 자녀들에게 여러분의 옛 전도지를 찾아가게 하는 것도 자녀들에게 교육이 된다. 스크랩북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교육하되 선생님의 훌륭한 점을 교육하라. 501)
앞으로 얼마 안 가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엄마 아빠는 그때 무엇을 했어요? 훌륭한 일 했어요? ’하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우리 한번 거기에 가 보자’ 하고서 자녀들을 데리고 옛 전도지를 찾아가서 ‘그때 엄마는 너를 안고 여기에 앉고, 아빠는 저기에 앉으셨다. 그리고 저기 저 집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뜻을 전했단다. 그래서 이렇게 복을 받게 되었지. 그때 엄마 아빠를 반대한 집은 저렇게 살고 도와준 집은 이렇게 산단다’ 하고 교훈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502)
자식들이‘우리 부모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행한다. 시간을 초월해 있다. 또 환경을 초월해 있다. 빈곤을 초월해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자식들이 부모의 명령이라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전통을 가정에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식들이 ‘이 길은 부모가 간 길이기 때문에 가야 된다. 모든 여건으로 볼 때 실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부부가 부모를 위하는 것을 그 자식들로 하여금 본받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후세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503)
뜻을 위하다가 상처를 입은 것은 후일까지 자신에게 교육이 되고 후손에게도 훌륭한 교육이 된다. 504)
여러분이 정성을 모아 한 푼 두 푼 모은 그것은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 거기에 사랑이 깃드는 것입니다. 그 돈을 쓰는 아내가 딴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후대의 자랑거리가 돼야 합니다. 우리 부모는 하늘의 심정을 가지고 뜻을 위해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자극을 안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교육시킬 때, 너희들은 엄마 아빠처럼 돼야 한다고 교육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도기간 중 못먹고 못살더라도, 남루한 옷을 입었더라도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후대에게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교육자료가 될 것입니다. 505)
옛날 선생님이 흥남감옥에 있었지만, 다른 것은 가지고 나오려 안 했습니다. 그때 노동하면서 입던 옷…. 비료공장에서 강제 노동할 때 입던 옷이니 염산 암모니아에 찌들어 누비고 누벼서 입던 옷…. 그것은 거지옷 중에서도 상거지 옷입니다. 무릎이 헤어지니 그 위에 또 깁고, 깁고해서 누더기가 됐습니다. 냄새가 나고 형편없는 것입니다. 찌들어서 잘못 다루면 부서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념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버릴 수가 없어 이불 속에다 말아넣었습니다. 이불솜을 빼내고….
이북에서 나올 때 가지고 나온 재산이라고는 누더기 보따리 하나, 그걸 흥남에서 평양까지 지고 나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평양에서 어떤 식구에게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짐보따리는 다 버리더라도 그것만은 잘 보관하라고 했더니, 가지고 피난다니다가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 하나만 가지면 그때의 선생님을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물을, 억천 년을 입을 벌려 가지고 웅변을 한다 해도 감명을 못 줄지 모르지만, 그것만 가지면 감명을 줄 수 있는 그런 보물을 잃어버린 걸 생각하면 지금도 기가 막힙니다. 마찬가지로 뜻 중심한 공적인 생활을 할 때 겪었던 일에 대해서 많은 재료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506)
고생은 멋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추 만대의 후손이 자랑할 수 있는 전통을 세워 놓아야 한다. 507)
앞으로 여러분이 후대에 있어서 사회에 나가 말할 때 교재가 될 수 있는 골수적인 전통을 세워 말없이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 그와 같이 생각하고 이 기간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 508)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우리 축복가정의 아들 딸들 말이야, 3대를 어떻게 선생님과 같이 살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알겠어요? 3대가 같이 공신이 된다면 천하에 없는 저 천상세계의 공신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그러니까 자기의 아들 딸들을 안고 나와 가지고 지금부터 교육하고 그런 사상을 집어넣기에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509)
선생님의 나이가 이제 60이 가까웠습니다. 나는 죽어 가지만 전통을 남겨야 합니다. 여러분들을 나보다 열렬한 일생으로 세우게 하고, 싸우고 전진하는 용사로 만들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전통을 이어주기 위해서는 그냥 놔둬 가지고는 안 됩니다. 고생을 시켜서라도 전통을 남길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요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생스럽더라도 선생님은 여러분을 희생의 길로 내모는 것입니다. 510)
하나님의 뜻의 길이 무엇이냐? 개인을 희생시켜 종족을 구하기 위한 길이요, 종족을 희생시켜 민족을 구하기 위한 길입니다. 대한민국이 하늘 앞에 서면 대한민국을 세계 앞에 제물 삼아서 세계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 뜻의 길입니다. 세계를 희생시켜서 저 천상에 있는 우리 선조들, 영인들까지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영계와 육계를 희생시켜서 하나님의 해방을 원하는 것이 오늘날 타락한 슬픈 역사인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소명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가는 데는 그냥 가서는 안 됩니다. 전통을 남기고 가야 됩니다. 무슨 전통을 남겨야 되느냐? 피눈물을 뿌리면서도 인류를 사랑하기 위하여 수고했다는 전통을 남겨야 됩니다.
그다음엔 무엇을 남길 것이냐? 후대를 위한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좋은 후손을 남기고 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식을 낳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미래의 세계를 위한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통을 남겨야 되고, 그다음엔 선하고 훌륭한 후손을 남겨야 합니다. 졸장부의 후손이 아니라 자기보다 강하고 담대하고 훌륭한 후손을 남겨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할 운세권에 있다 할지라도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망할 자리에서 새로운 은인이 나타나는 것이요, 쫓기는 자리에서 새로운 승리의 깃발이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남겨야 할 그 전통이 대한민국뿐 아니라 만민이 기뻐할 수 있는 전통이 돼야 하고, 선한 후손도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못 하게 될 때 하늘 앞에 가져 갈 예물이 없게 됩니다. 511)
부부는 죽더라도 천도는 남기고 가야 한다. 그 가정은 무엇을 위해 있는 가? 자기 자녀를 위해서 있다고 하더라도 먼저 하나님을 위하고 나라를 위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에는 자기 자녀를 위하는 길인 것이다. 그래야만 자녀들이 하나님의 운과 세계의 운과 함께하고 나라의 운과도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축복받아 낳은 귀한 자녀들이, 고생을 하더라도 그 자녀들에게 박자를 맞추지 말고, 하나님과 세계와 나라의 운세에 박자를 맞추어야 한다. 512)
여러분은 일대를 위해 사는 가정이 되지 말고 세계와 영원을 위해 사는 가정이 돼야 합니다. 또, 사랑의 터전을 넓혀서 만민의 심정을 모아 촛불을 피우고 향불을 피워서 축수를 드리고, 하늘과 땅, 만인과 더불어 촛불을 피우고 향불을 피워서 축수를 드리고, 하늘과 땅, 만인과 공동의 인연을 맺고 살다가 죽겠다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가정이 되면 어떤 환난이 닥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가정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하늘이 종자로 남겨 놓는 다는 것입니다. 513)
4.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사랑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 또한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가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여러분은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부모 앞에 있는 자식의 자리입니다. 514)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의 그 기원적인 동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 남자 여자를 중심삼은 사랑은 변하는 사랑인데, 거기서 태어난 아들 딸을 중심삼은 사랑은 왜 변하지 않느냐? 이것은 그 남녀를 중심하는 사랑에서 되어진 사랑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은 횡적인 부부의 인연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종적인 어떠한 흐름의 기원을 통하여서 관계되어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종적인 주체가 누구냐? 그런 주체를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은 부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 앞에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는 입장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습니다. 횡적인 인연으로서 어떻게 터치(touch)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만고 불변입니다.
오늘날 민주사회에 있어서, 개인주의 사상이 팽창한 이 때에 있어서 자식들이 하는 말이 신시대와 구시대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지만, 자식들은 그렇게 변했지만 그 부모의 마음은 구시대니 신시대니 부르짖는 다고 해서‘너 그러니 나 그러자’ 하게 안 돼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물도 그렇습니다. 새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의 생명을 능가하는 것입니다. 515)
부모의 사랑이 왜 귀합니까? 이는 종적인 사랑이지만 종적인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사랑이 깃들게 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귀하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가 그릇될까봐 생활을 통해서 자녀의 길잡이가 되려는 내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종적인 사랑은 반드시 횡적인 사랑을 창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도 이런 원칙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종횡으로 집약되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듯 종횡의 요소를 책임진 것이 부모의 사랑이기 때문에 자기의 귀한 것을 그냥 그대로 자식에게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받게 해 가지고 횡적으로 넓히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그런 것입니다. 516)
어머니의 사랑이나 아버지의 사랑은 인간세계에 있어 가장 위대한 사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세상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식 앞에는 꼼짝을 못 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 앞에 있어 무조건적이고 무한정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사랑의 모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큰 고아들은 무엇보다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아들은 잠자는 집이 있고 먹을 것이 있다고 해도 그들 가슴속에 항상 부족함과 그리움이 있는 데, 그것이 뭐냐 하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고아원에서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진정으로 행복된 시간들이 아닐 것입니다. 어린 고아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놀이를 할 때도 자기의 부모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를 막론하고 부모에 대한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사랑의 품속에서 성장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몇천 년 전에 살던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나, 오늘의 부모가 자기 자식에 대해 쏟는 사랑은 똑같은 것입니다. 역사의 변천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517)
무엇보다 부모의 사랑이 처음인 것입니다. 그 사랑을 동기로 해서 그 사랑에서 원만히 자란 사람이라면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 사이에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부모를 두고 배우게 됩니다. 그것이 자식들에게는 둘도 없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체휼하는 것은 부모를 가진 자리가 아니고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한 아들은 부모를 통해서 남자의 사랑도 받을 수 있고 여자의 사랑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세계적인 남성을 대표한 것이고, 어머니는 세계적인 여성을 대표한 것입니다. 비단 그 시대뿐만 아니라 역사를 두고 보면 그들은 수많은 역사적인 남성이고 역사적인 여성입니다. 자랑하고 싶은 여인이 있다면 그는 어머니를 들어 자랑하고 싶을 것이고, 아버지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자리가 부모의 자리인 것입니다.
세상에 잘난 남성이 있다면 자기 아버지와 비교하게 되는 것이고, 잘난 여성이 있다면 그 어머니와 비교를 하는 것이 자녀의 입장입니다. 또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를 대하는 마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 최고의 심정을 기울여 부모를 대하고 싶어할 것이고, 어느 한때든지 그렇게 대해 줄 것이 아닙니까?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부자지관계(父子之關係)는 우주의 근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쁨의 근본이 거기에서 싹틀 것이고, 슬픔이 시작된다면 그 이상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를 대하는 그 기쁨은 세계를 대표한 기쁨이 돼야 하고, 자식을 대하는 기쁨은 부모에게 있어서는 세계를 대표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문제를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을 대하여 행복스럽게 살 수 있는 소망의 자리는 부모 앞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518)
우리가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에 부모가 자식을 향한 사랑의 한계점은 어디일 것이냐? 부모는 자식이 어릴 때에만 사랑해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생애를 통해서, 더 나아가 영원을 통해서 사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며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더욱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부자관계가 맺어진다면, 무한한 힘과 무한한 자극과 무한히 새로운 그 무엇이 그 관계권 내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인연이 갖추어지지 않은 부자의 관계는 어느 한 때에 반드시 중단되고 마는 것입니다. 519)
여러분은 사랑하는 부모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길리움받아 자라온 것을 알게 됩니다. 나이가 많건 적건, 부모는 그 자식을 대해서 언제나 사랑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만약 70살 난 아들이 있다 하더라도 옛날 자기가 기르던 그 기준을 가지고 언제나 자식을 바라보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연령은 많아져도 심정은 점점 가까워지고, 아들 대한 책임이 커질수록 아들을 위하는 마음은 더 넓어지는 것을, 우리는 세상에서 자식 대하는 인연을 보게 될 때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 없는 사람이 불쌍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고아라고도 합니다.
고아가 왜 불쌍하냐? 사랑을 받으려야 받을 길이 없는 것이요, 또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할 수 있는 길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고아가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은 나면서부터 받아야 할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았고, 철들면서부터 부모를 사모하고 동정하고 흠모할 수 있는 심정적 인연을 못 느낀 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중심해서 받을 수 있고 줄 수 있는 그 길은 부모가 처음인 것입니다. 520)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그냥 그대로 생활적인 인연만을 통해서 하는 사랑이 아니라,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인 것입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고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부모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여력이 남아 있는 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식과 생명의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부모에게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저 애는 내 아들이니까 사랑하겠다는 의식적인 마음이 앞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보다도 그 인연보다도 앞선 자기의 생명력이 자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들이 가정생활에서 잘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521)
어떤 부모에게 아들이 넷 있는 데 그 부모가 그 네 아들에게 사랑의 차이를 두겠습니까? 맏아들이니까 이만큼의 사랑을 해주고 동생들은 각각 요만큼의 사랑만 받으라고 하며 그 차이를 두겠느냐는 말입니다.
젖을 먹일 때도 자식들에게 차이를 두고 먹이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피와 살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자식에게 일일이 공급해 주게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는 젖먹이가 젖을 빨아먹는 것을 보고 좋아합니다. 자식이 젖을 먹으면서 어머니의 목을 잡고 그러는 것도 아주 좋아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자기의 젖을 주면서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젖을 준다고 해서 오늘까지는 얼마짜리고 내일부터는 얼마짜리다 하며 돈을 청구하는 어머니는 세상에 없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이 뭐냐 하면, 그 어머니의 얼굴은 못생겼다 해도 여자다운 데가 하나도 없이 그저 눈, 코, 입, 볼 할것없이 전부 못생겼다 해도 아들딸을 사랑하는 데는 심각합니다. 젖 먹는 아기에 대해서 사랑할 때는 누구보다도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기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누구한테 질 것 같습니까? 안 진다는 것입니다. 522)
아무리 부모가 고생스러운 자리에 있더라도 사랑하는 자식이 ‘엄마 젖줘!’ 하면, 가슴팍을 헤치고 사랑하는 자식에게 젖을 물리는 것이다. 사실 자식은 부모가 고생스럽게 젖꼭지를 물고 빨고 있으니 도둑질하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그 부모는 자식이 젖 먹는 것만 봐도 좋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참사랑에는 모든 것이 좋다. 참사랑권 내에 들어 있는 것은 마치 태풍권에 들어 있어 그 태풍의 치리를 받는 것과 같다. 523)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뼛골이 녹아나도록 고생을 하지만 힘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피살을 깎아 주고 그 값어치가 얼마인지 장부에 치부해 둡니까? 안 하지요. 오히려 몽땅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여기 아주머니들도 그렇지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데 먹지 않으면 왜 안 먹느냐고 안타까워합니다. 그것이 사실은 호스를 갖다 대고 자기의 피와 살을 뽑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도둑 중에서 최고의 도둑이 아니예요? 그래도 어머니는 아이가 젖을 안 먹으면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도 좋아하느냐? 사랑의 법도이기 때문입니다. 524)
어머니의 젖가슴을 파고드는 아기들을 볼 때 부모는 사랑을 중심삼아서 사랑을 촉감하고, 또 그 아기를 품음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행복보다도 천지가 평화의 경지에 들어가기 때문에 전체의 분위기가 좋은 자리에서 싹튼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아기가 아무리 극성스러워도 어서어서 해라 할 수 있는 아량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무한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아기가 호스를 갖다 대고 피살을 빨아가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어머니로서의 새로운 소망의 자극, 남편에 대한 새로운 자극, 그 아기로 말미암아 찾아지는 새로운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는 통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 경지는 누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하고 전체를 위하는 사랑을 가지고 맹세하는 자리는 무엇보다도 강한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 서지 않고 말로 듣고 보고 약속을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이 다르고 봄과 가을이 다릅니다. 봄에 심은 것이 가을절기에 가서도 그 생명의 인연을 그냥 그대로 이어받아 가지고 정상적인 생명을 중심삼아서 완전히 일치될 수 있는 생명의 씨로 남아지게 될 때는 춘하추동을 포괄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질 수 있으되, 그것이 결여되게 될 때는 전부 분산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525)
자식을 많이 키워 본 부모는 무엇인지 모르게 사랑의 심정이 넓고 큰 것을 우리는 엿볼 수 있는 거에요. 자식을 많이 기르는 사람은 악한 원수를 칠 수 없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무엇인지 모르게 넓은 터전에 서 있고 넓은 법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게 될 때, 하늘은 최고의 사랑의 주체인 하늘과 나와 관계를 맺는 데 지금까지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다 빼놓고 ‘그대와 나만이 사랑하자’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 것이 아니냐, 하늘은 그것을 바랄 것이냐? 나 하나만을 중심삼은 그런 길을 바랄 것이냐? 하늘이 부모라면 그 부모는 공평한 마음을 가지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공동적인 사랑을 분배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어야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의 부모의 입장이 아니겠느냐? 이것은 당연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526)
부모는 자기의 아들 딸을 위해서 일합니다. 자기가 먹기 위해 일을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식이 많은 부모가 농촌에서 혹은 노동판에서 힘든 일을 하는 것, 가난하지만 지게를 짊어지고 김을 매고 밭고랑, 혹은 논에서 호미질을 하는 것은 천 년 만 년 자식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부모의 이마에서 흐르는 수고의 땀방울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땀의 결실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더불어 엉키게 되면 거기에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밭에서 김을 매고 노동판에서 지게질을 해도 그의 발걸음에는 새로운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527)
‘얘, 아무개야 고생한 것 좀 알고 말하자!’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찾기 위해서 이렇게 눈물을 흘렸으니까 너도 한번 흘려보고 만나자’ 그러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다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화시키고 하나로 귀일화시키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의 힘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금력을 가지고, 인력을 가지고 다 해 봤지만 미급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처절한 절망의 벽에 부딪친 운명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있다면 무엇이냐? ‘너하고 나하고 말해 보자’ 하는 사연 가지고는 안 될 것입니다. 528)
아내가 있어서 사랑했다 할진대는 그 아내의 사랑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면 아내의 사랑을 한 그 사랑의 내용을 플러스시켜 가지고 자식이면 자식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 아니냐. 또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낮은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을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에게 사랑을 느꼈던 자극적인 본질을 넘어서 더 가중시켜 가지고 새로운 면에서 자식을 위하고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과거에 아내를 사랑하던 진지한 입장보다 덜한 자리가 아닙니다. 더 진지한 자리와 더 깊은 자리에서, 보다 더 가치적인 사랑의 내용을 추구하면서 사랑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하게 될 때는 그러한 길로 갈 것을 다짐할 것이 아니냐? 529)
세상에서도 환갑이 넘어 낳은 아들, 즉 만득자인 7대 독자가 죽는 다고 생각하면 절망 중의 절망일 것입니다. 젊으면 또 낳을 수 있지만, 만득자로 태어난 그 7대 독자가 잘 자라지 못하고 죽는 다면, 7대권을 계승하려던 조상들의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타겠어요?
조상들은 자기의 후손, 자기의 핏줄을 통해서 세계에 없는 만복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자식이 죽는 다면 그 부모는 따라 죽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7대 독자가 아닌 영원한 독자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담을 중심삼아 가정을 이루게 하여 천지의 대업을 세우려 하셨는 데, 그 아담이 죽었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렇게 일이 틀어졌을 때, 어떠했겠어요? 내가 결혼하고 싶은데도 결혼 못 할 때의 그 안타까움에 비교되겠어요? 부모는 천 년 만 년 같이 살고 싶은데, 7대 독자가 지금 몹쓸 병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고 한다면, 그 부모의 심정이 어떠하겠어요? 여러분의 아들딸이 지금 숨이 넘어가고 있다고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부모가 소리치겠어요, 안 치겠어요? 그 부모는 죽어가는 자식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체면과 위신을 다 버리고 그 방법을 쓸 것입니다. 어떤 원수가 있어 그의 영원한 종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의 아들 딸을 살릴 수 있다면 부모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해가 됩니까? 그 자식을 살리는 어떤 방법이 있다 할진대 부모는 위신과 체면을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530)
남편이 죽음의 경각에 놓였다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 아내는 살아난 남편을 전보다도 천만 배 더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가 죽었는데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면 그 부모는 자녀를 살리기 위하여 자기의 죽음도 불사할 것입니다. 그 부모에게는 죽었던 자식이 다시 살아나서 만나는 기쁨과 자기 일신이 희생되는 비통함을 견주어 보게 될 때, 자기 자신이 희생되는 것보다 자식이 살아와서 만나는 기쁨이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힘은 오로지 사랑이 내포된 자리에서만 성립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상생활을 통하여 이러한 것을 흔히 보고 느꼈을 것입니다. 531)
오늘날 우리의 이념을 아는 사람은 아들과 며느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자기 아들을 며느리가 좋아하면 춤을 추며 기뻐해야 할 텐데, 왜 시기하고 질투하느냐 말입니다. 아들이 태어난 날의 기쁨 가운데에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있지만, 그 사랑 가운데는 며느리에 대한 사랑도 있다는 것입니다. 둘이 옹기종기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하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서로 좋아하는 것을 보시고 ‘야 야, 통행에 방해된다. 비켜라!’ 하고 싫어하시겠습니까? 고속도로상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교통 방해를 해도 좋다!’ 하시면서, 하나님 자신이 비켜가게 되어 있지 밀치고 가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532)
온 인류가 찾아가야 할 최후의 참사랑의 정착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참사랑의 표준점을 우리는 어디서 찾아낼 수 있을까요?
새로운 ‘부모의 사랑’, 이것이 바로 인류가 찾아가야 할 최후의 사랑의 정착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부모의 사랑’ 이것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비로소 영원불변하고 절대적인 참사랑의 표준점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인간적인 사랑이 차원 높은 사랑으로 승화돼 갈 수 있으며, 하늘의 참사랑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533)
5.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부모의 사랑을 백 퍼센트 받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만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것을 가만히 보면, 거 부모의 사랑 보따리를 숫자로 표시해서는 안 되지만, 부모가 천만큼의 사랑을 갖고 있으면서 자식에게 구백만큼의 사랑만 주고 백만큼의 사랑은 남겨 두었다고 하면, 아무리 사랑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자식은 사랑을 받지 않은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구백만큼의 사랑에 나머지 백만큼의 사랑을 다 채워 주어야 그제서야 비로소 사랑을 다 받았구나 하고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결혼해 가지고 색시나 신랑되는 사람이 ‘당신 날 사랑하오’ 하고 물었을 때, ‘99퍼센트만 사랑하오’ 해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백 퍼센트 사랑하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사랑만이 전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고, 사랑만이 전체를 줄 수 있고 전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주고 전체를 받아야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가 되는 거예요. 여기서 통일이 된다면 완전 통일이 아니겠느냐 말입니다. 534)
미국에서는 갓난아기가 병원 육아실에서 나오면 집에 와서 곧바로 다른 방에 들어갑니다. 아기들은 부모와 함께 자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의 온기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모유를 먹이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부모와 함께 자지 않으면 아이들은 애완동물과 다를 것이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두서너 명의 애들이 부모에게 와서 함께 잘 때 그것은 아름다운 광경인 것입니다. 그건 좋은 일입니다. 그들을 받아들이십시오. 만약 자리가 없으면 거꾸로 한 머리는 이리로 다른 머리는 반대로 하고 주무십시오. 조금더 잘 배치해 보세요. 아이들은 몸이 큰 부모의 사이에서 자는 것이 불편하겠지만 기분좋은 것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체온을 느껴야 합니다. 535)
현대사회에서 청소년 문제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그렇게 된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그 동기의 80퍼센트 90퍼센트 이상이 정서적인 문제에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를 잘 갖지 못한 데에서, 형제를 잘 갖지 못한 데에서, 남녀관계에서 결여된 사정들이 원인이 되어 그런 결과를 자아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이 모든 병폐를 시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 역시 가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536)
오늘날 청소년 문제라든가 모든 사회 문제들의 내용을 파헤쳐 보면, 그 연유가 전부 거기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부모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있긴 있는 데, 부모의 마음이 아들 딸의 마음 깊이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의 정이 자식들의 뼛골에 깊이 다져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니 거기서부터 부모 자식간에 틈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537)
마음에 사랑을 갖지 않고 미움을 간직하며 큰다면 커서도 사고를 내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곱고 착한 처녀는 시집을 가서도 좋은 환경을 만들 수가 있지만, 마음이 고약하고 심술이 많은 처녀는 시집을 가면 불행해지기 쉬운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불행한 환경을 놓고 왜 나만은 불공평한 가운데 태어났는 가 하고 하늘을 원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이 만들어낸 환경이라는 것을 알 때 하나님은 정말 공평한 세상을 만드시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538)
6. 사랑의 채찍
요한계시록에 보면, 차든지 덥든지 해야지 미지근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세계에서 미지근한 태도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매를 들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기를 때 사랑을 주었는 데도 잃어버렸을 때는 차게 대해 줘야 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못했을 때 꾸지람을 안 해주면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선생님이 좋아보여도 한편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악에 대해서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선에 대해서는 몇천 도의 용광로처럼 뜨겁습니다. 539)
요즘 학교에서 선생이 학생을 때렸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미국은 이제 망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진해서 때려서라도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달라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한테 얻어맞고 불평하겠는 가?
통일교인이 된 것만 해도 억울한데 거기다 얻어맞기까지 한다고 불평하겠는가?
한국의 속담에 미운 사람에게는 밥 한그릇 더 주고 예쁜 사람에게는 채찍을 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올바른 전통을 이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할수없습니다. 부모님의 채찍이 아픈 것을 잊고 그 사랑 앞에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540)
사랑을 위해서는 채찍까지도 귀한 것입니다. 사랑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은 채찍이든, 고통이든, 수난길을 나에게 짊어지우든 모든 전부가 귀합니다. 사랑이라고 좋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541)
세상에서도 자식이 고단해 한다고 공부하지 말라는 부모는 , 진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매를 때려서라도 잠자지 말고 공부하라고 해야 됩니다. 왜 그런가? 지금 잘되자는 게 아니고 미래에 잘되자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에 큰 꿈을 걸고 그러는 것입니다. 542)
자기 자녀를 보다 좋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때리는 것이라든가 또한 친구가 나쁜 곳에 가려고 할 때 치는 것은 선이요 사랑입니다. 이러한 모든 원칙을 알아서 개인으로부터 모든 것이 선한 기준과 일치되어야 하는 데 아직 그렇지 못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543)
자녀를 낳고 기르는 데에 있어서 참사랑으로 낳고 길러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정이 하나되고, 가정을 중심삼고 나라를 사랑하면 그를 애국자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의 성장을 지켜 보면서 교육을 시키고 올바르게 크라고 ‘사랑의 매’를 들기도 합니다. 잘못했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꾸중을 듣거나 매를 맞았다고 하여 불만을 갖거나 항의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서 은연중 자중하면서 반성하고 분투 노력하여 잘못된 점을 고쳐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바르게 성장하여 하나님이 계시는 센터에 접근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544)
사랑을 가진 부모에게 채찍을 맞거나 꾸중을 듣더라도 그 자식은 기쁜 것입니다. 545)
지난번 선생님이 어떤 사람에게 꾸중을 한 적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 사람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음에도 꾸중 듣고 눈물을 흘리나 보아야지요. 그렇게 세 번을 하고 네번째도 눈물을 흘리면 ‘아! 내가 저 사람에게는 꾸중을 못 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지요. 탕감복귀의 길은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꾸짖고 나무라는 것은 미움이 아닙니다. 깊은 애정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리라 믿습니다. 546)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채찍이 오가더라도, 때리고 나서 통곡하는 부모에 대해서 자식이 덤벼들고 욕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조화의 양면적 가치를 지닌 것이 참사랑입니다. 죽고도 또 죽으려고 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547)
여러분이 집에서 부인에게 무슨 일을 놓고 큰소리를 쳐도 부인은 ‘예’ 하고 대답합니다. 다른 사람이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자기 부인이니까 ‘예’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웃 동네의 아주머니를 보고 야단을 쳤다면 분명히 화를 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관심이 있어서 그 사람을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깊이 간섭하게 되고, 나무라게 되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사람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상금을 주는 것이 아니고, ‘이녀석아, 왜 그랬어? ’ 하고 도리어 혼을 내게 됩니다. 이웃 동네 총각 같으면 잘못해도 모르는 체 하겠지만 자기 자식 같으면 ‘종아리 걷어!’ 해 놓고 때리면서 ‘이 녀석아, 그것 잘한 거야, 못한 거야? ’라고 하게 됩니다. 그것은 때리는 것보다도 더 많이 생각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주는 것보다 더 때리면 그것은 죄입니다. 자기가 생각해 주는 것보다 더 때리면 원수가 됩니다. 원수 중에도 큰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548)
남편이 이혼을 해놓고 부인을 때리면 큰일나지요? 그런 사람 봤어요? 그랬다가는 칼침 맞습니다. 이혼하기 전에는 부인이 남편을 천대했다고 하면서 남편이 부인을 때리면 부인이 욕먹지만, 이혼을 한 다음에도 그러면 남편이 욕먹습니다. 남자가 이혼한 후에도 그러다 여자에게 칼 맞아 죽으면, ‘그 자식 잘못하더니 칼 맞고 잘 죽었네’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몽둥이 든 것보다 더 사랑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때렸다가는 전부 다 깨져 나갑니다. 그렇지만 그 이상 사랑하는 자리에서 때리면 괜찮습니다. 즉, 사랑을 열만큼 하고 다섯만큼 채찍으로 때리면 다섯만큼의 사랑이 남아 있으니까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549)
자식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자식을 회개시키기 위해서는 옛날 사랑하던 그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을 갖고 나타나서 사랑하게 되면 그 불량배 같은 자식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식에 대해서 자기가 길러온 공을 자랑하면서 자식을 세 번만 나무라면 그 자식은 보따리 싸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자식에 대해서 뼛골이 녹아나는 눈물을 흘리며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게 될 때 그 자식은 돌아서는 것입니다. 더 큰 사랑은 작은 사랑을 전부 다 소화 통합시킬 수 있는 주동성이 있는 것입니다. 550)
옛날 6. 25사변이 일어났을 때 피난길에서 내가 이런 것을 많이 봤습니다. 어머니가 다섯 살짜리 자식을 업고 나섰는 데, 철이 없으니까 전쟁이 나서 피난가는 줄도 모르고 어디 간다 하니까 콧노래를 부르며 좋다고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업고 가다 보니 엄마가 힘이 빠져서 아이를 내려 걷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 싫어, 나 업어 주지 않으면 안 가, 업어 줘, 업어 줘’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업어 줘야 합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그러나 업어 주면 둘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걸어가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안 걷겠다고 하면 위협을 하고, 뺨을 때려서라도 가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난처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부모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버리고 가겠습니까, 죽이겠습니까? 아니면 강제로라도 끌어서 데리고 가겠습니까? 어떤 방법이 제일 좋겠습니까? 버릴 겁니까? 그것이 다 싫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어떻게 해서든지 끌고 가야 됩니다. 귀를 잡아 째든가 콧구멍을 꿰서라도 끌고 가야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다 데려다 놓으면 자기 친구는 다 죽었는 데 나만 살았다 하며 ‘아이고, 우리 어머니 감사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가 째진 것이 미인 얼굴에 흠이 되어서 시집 못간다고 불평하는 간나가 있다면 벼락을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 찢어진 귀를 보면 볼수록 ‘우리 어머니의 사랑이 위대했구나, 부모의 사랑이 무섭구나’ 하는 것을 천 년 만 년 자기 부모를 존경할 수 있는 표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밥만 먹고 나면 우리를 고생시키려 한다’고 하지요? 그래요. 나는 여러분들에게 정이 없습니다. 일 시킬 때는 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같이 살 때에는 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을 시킬 때에는 무자비하게 코를 꿰어서라도 끌어내야 합니다.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하면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려서라도 내몰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당한 방법입니다. 이 말이 이해됩니까? 저기 할아버지, 이봉운 장로 이해됩니까? 「예, 이해됩니다」 백수노인도 때려 몰아서라도 가도록 해야 됩니다. 몇십 년을 같이 살던 할머니한테 실례가 되더라도 가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 가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어떠한 종교인도 넘지 못했던 그 기준을 넘고, 어떠한 단체도 들이지 못했던 정성을 들여서 어떠한 나라도 갖추지 못했던 그 나라의 형태를 갖춰 가지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랑하고 싶어도 어떠한 단체를 사랑하지 못했고, 어떠한 나라를 사랑하지 못했고, 어떤 세상을 사랑하지 못했던 그 사랑을 몽땅 독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정당한 교육 방법이요, 정당한 작전인 것입니다. 여기에 이의 있어요? 그렇게 해 가지고 망하거든 복수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 왔어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551)
7. 후손을 위해 정성들이자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는 그 가정의 기준이 여러분 자신의 가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찾아 세운 가정은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국가를 대표할 수 있고, 세계를 대표할 수 있고, 하늘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찾아 나온 걸음이 축복의 걸음이기 때문에, 하늘 부모의 가정을 통해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축복을 받고 난 후에 정성들이는 가정으로서의 정상적인 길을 갈 때에, 그 아들 딸들은 통일교회의 대운을 타고날 것입니다.
그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무리 못났다 하더라도 그들의 자녀들은 하늘의 운세를 타고난다는 거예요. 그러니 하늘의 운세를 타고날 수 있는 후손을 어떻게 남기느냐? 그것은 부모가 정성들이는 기준에 따라 그 내용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즉,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하늘을 위해서 얼마만큼 충성했고, 얼마만큼 그 마음이 간절했으며, 얼마만큼 지성을 다했느냐에 따라 앞으로 태어날 후손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552)
하나님이 바라는 가정, 교회가 바라는 가정, 여러분이 바라는 가정, 그런 가정에서 정성을 들여 태어나는 자손은 잘 태어날 것이다.
부모는 지지리 고생해도 하늘의 운과 선생님의 운을 따라서 태어날 것이다. 553)
축복 가운데 제일 좋은 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니고 아들 딸이 잘되는 것입니다. 축복 가운데 제일 좋은 것은 아들 딸이 하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 태어난 것입니다. 554)
3대가 자기 이상 점점 발전하게 되면 거기에는 하늘에 있어서 한 세대를 비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福) 중의 제일 복은 돈도 권력도 아니고, 자기 아들 딸이 하늘의 사랑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555)
부모는 자기 후손을 위해 정성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후손들도 다 축복해 주고 잘살게 해주고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단체가 있다면 그 단체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단체를 책임지고 지도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내일의 더 큰 뜻을 위해 하나님과 새로운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자기가 혼자 책임지겠다고 날뛰다가 실패하게 되면 하나님께 기도도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게 되겠습니까? 무슨 면목으로 기도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이렇다 할 기도도 못 한다는 것입니다. 556)
부모 앞에 효자라면 자식을 낳아 그 손자를 부모 앞에 안겨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아들 딸을 낳아 안겨 드려야 하느냐? 자기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더 중요시할 수 있는 아들 딸을 낳아 안겨 드려야 합니다. 자기보다 더 복받을 수 있는 아들 딸이 태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하늘 앞에 더 가까울 수 있는 아들 딸이 태어나토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귀섭리가 발전되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못한 아들 딸이 태어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내용을 주시해야 합니다. 557)
하나님의 심정을 유발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정성들이는 것이니, 3대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들이면 하나님이 같이하시어 그 후손이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558)
어떤 사람은 ‘내가 통일교회를 위해 이만큼 일했는 데 선생님 왜 날 몰라 줘? ’라고 하는 데, 그것 생각할 문제입니다. 정성을 들여 나오면 그 사람을 위해서 축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후대를 위해서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559)
복을 무한히 받고 싶거들랑 무한히 참고 준비하면서 당대만이 아니라 수천 대를 거쳐서라도 복을 받기 위해서 참을 수 있는 교훈을 남기고 가야 합니다. 560)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자기 집을 짓기 전에 교회를 짓고 자기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내 집을 짓기 전에 교회의 땅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후대를 위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대학 부지를 사 놓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잘살기 위해서 사 놓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여러분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561)
통일교회를 믿고 따를 후손들을 사랑하고 있기에 학계와 정치계, 경제계, 언론계, 사상계까지 관심을 가지고 투자와 경영을 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562)
여러분은 메이플라워호가 뉴잉글랜드에 도착한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겨울에 도착했어요. 11월에 도착했으니, 춥고 식량이 떨어져 전부 다 굶어 죽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들이 훌륭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먹을 것이 없는 데도 명년 농사를 위해 그 종자(씨앗)를 남겨놓고 굶어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여러분이 알고 계십니다.
그들은 미래에 있어서 하나님이 자기들의 갈 길을 열어 주고 자기 민족을 통해 하나님이 소망하는 축복의 나라와 자유천국을 이루어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후손을 위해 그 종자를 남겨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죽음의 길도 기꺼이 갔다고 봅니다. 이러한 수고의 길을 취해 가면서 후대를 위해 복을 빌 수 있었던 것은 그 사람들에게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563)
우리는 선의 행로를 개척해야 할 개척자입니다. 이러한 개척자로서 내디딘 발걸음이 거룩하기 때문에, 그 과정도 거룩해야 되겠고 그 결과도 거룩해야 되겠습니다. 최후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의 씨로 썩어 거기에서 하나의 새싹이 돋아날 때는 산등성이 바위틈에 선 나무가 아니라 옥토에서 자라나는 나무가 되어 가지고, 자기가 소망하였던 결실을 자기 일대에서 거두지 못하면 후손을 통하여서라도 거두겠다는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미래의 승리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자 하는 무리는 무서운 무리입니다. 만약 그러한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이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그 민족은 미래의 21세기, 혹은 30세기, 50세기에는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