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 3 - 2. 중생과 축복의 기원

훈독왕 | 20210429044450

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

제3장 축복의 의의와 가치

 

제2절 중생과 축복의 기원

 

1. 이스라엘 민족을 통한 혈통 전환

역사는 싸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담 가정에서는 아벨과 가인이 싸웠습니다. 그런데 가인을 아우의 입장에 세워야 합니다. 형님이 어떻게 아우 입장이 되느냐 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탄을 끌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은 태어나면서부터 형제지간의 싸움이었습니다. 

가인이 한 사람 태어나면 아벨도 한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에서와 야곱도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다 자란 후에 싸웠습니다. 이 둘은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싸우기도 했습니다. 

다말에 관해 연구를 하면 원리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말은 시아버지와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와 관계해서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혈통을 이어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솔로몬의 어머니는 누구입니까? 그의 어머니인 밧세바는 우리야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왕이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은 것입니다. 우리야의 아내는 말하자면 제2의 부인이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아담의 입장이요 우리야는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천사장의 아내는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해와의 입장이 됩니다. 천사장이 아담의 상대자인 해와를 타락시켜 끌고 갔습니다. 사랑으로 점령하고 훔쳐 갔습니다. 그것을 탕감하려면 그러한 삼각관계에서 되돌아가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와 같은 원리적 기준에 입각한 조건을 세운 기대 위에 태어난 아이는 하늘의 영광스러운 아이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영광의 아이입니다. 

다말은 자기의 시아버지하고 관계를 했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정신은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법도에 의하면 음행을 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게 되어 있었습니다. 

다말은 첫째 남편과 두번째 남편을 잃었으나 혈통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체면이나 위신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혈통을 어떻게 하면 남길 수 있을까 하는 것만이 문제였습니다. 

혈통을 사랑했기에 혈통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권으로 돌아가는 조건으로 세우기 위해 시아버지와 관계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보아서 시아버지는 곧 자기의 아버지인 것입니다. 

복중 승리를 거둔 기준은 줄곧 이스라엘과 유대교의 자손에게 이어져 발전해 갑니다. 왜 그것이 국가적인 기준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탄세계에 국가가 세워져 있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이스라엘 선민권이 발전하면서 내적, 혈통적 승리의 기준이 연결되어 왔던 것입니다. 체면이나 위신이나 사회적 환경과 같은 것은 모두 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전부라고 하는 대표적인 심정을 지닌 사랑의 딸이 마리아입니다. 승리를 거둔 기준을 이어받은 복중에서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기반에서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이 잉태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역사적인 싸움을 끝낸 승리의 하나님 앞에 태어날 자격 조건을 완성시킨 기반 위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라갈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혈통적 내용을 안고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님은 역사 이래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는 독생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껏 여러 종교가 있어도 모두 노예의 종교요 양자의 종교권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48) 

신약의 마태복음은 구약의 창세기를 대신한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태초에 벌어진 인간의 타락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고, 그것의 복귀노정(復歸路程)이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님까지의 계대역사(繼代歷史)가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하면서 첫장 첫절부터 나옵니다. 3절에 보면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데, 어찌하여 얼핏 보면 불륜한 여인 같은 다말을 첫부분에 기록했습니까? 또, “보아스가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고,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 16절에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륜 도덕으로 보더라도 불경하고 용납할 수 없는 사실을 마태복음에 기록했겠습니까? 나는 마태복음서 기자인 마태가 예수 탄생의 배후를 알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고,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사건들까지 왜 성경 역사로 엮어 놓았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만 됩니다. 이 사건들 말고도 성경에는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비운의 역사가 많이 들어 있는 데, 우리는 이것을 파헤쳐서 기독교의 전통을 확실히 세워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세계의 기독교는 산산조각으로 갈라지고 사탄의 제물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탕감역사를 거쳐 마리아라는 여성을 통해 탄생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역사적인 한을 풀 수 있는 국가적 중심 여성으로서 부름받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생사를 개의치 않았던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4천 년의 유대 민족사, 유대교 역사를 거쳐서 하나님이 무엇을 찾으셨는가 하면, 타락하기 전의 혈통, 더럽혀지지 않은 아들, 즉 아담을 복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예수님을 ‘후아담’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후아담’이란, 하나님의 구원섭리 역사는 복귀섭리 역사요 재창조 역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수고하시면서 인간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복귀의 길을 개척해 나와 가지고,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리를 복귀한 ‘독생자 예수’란 말입니다. 49) 

 

2. 예수와 성신을 통한 중생역사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찾으셨던 한 존재로서 땅 위에 보내졌습니다. 그러한 예수는 , 만민 앞에 선의 조상으로서 사망 가운데 들어간 우리 인간들을 중생시키기 위하여, 참부모의 입장에 서서 수고의 역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50) 

예수는 에덴 동산에 있어서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같은데, 예수 혼자서 하나님의 이상이 실현되겠습니까? 그래서 신부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부의 가정이 예수의 가정이 돼야 되고, 신부의 나라가 예수의 나라가 돼야 되고, 예수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혼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부의 나라인 유대 나라가 예수의 나라가 돼야 되고, 그 나라 교회가 예수의 교회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로마를 지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었으니 어떻게 되느냐 이겁니다. 땅 위에 부모의 기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있으면 사랑의 조건을 걸고 다시 태어났다는 조건을 세울 수 있었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땅에 없으니 부모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조건을 세울 길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고 난 40일 이후에 성령이 이 땅 위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 성령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머니 신(神)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이후 처음으로 이상적 실체 아담형으로서 예수가 태어났지만, 이상적 실체 해와형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이상적 어머니형 기준을 형태 없는 영(靈)으로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는 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어머니 성령의 복중에 다시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데는 어머니 신인 성신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성신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어머니의 분신이 돼 가지고, 또 어머니 신인 성신은 예수님 앞에 신부 신(新婦神)이니까 신랑된 예수를 사모해 가지고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기준에 들어가야 영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가 영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를 신랑같이 생각하고 성신을 어머니같이 생각하는 그 이상의 자리에 나가지 않고는 부활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이론이 여기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51)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오순절(五旬節)에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기도할 때 성신(聖神)이 강림했는 데, 이 성신이 누구냐 하면 어머니신입니다. 예수님을 아버지라 한다면 성신은 어머니 신인 것입니다. 남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남편의 부인이요, 남편과 완전히 통할 수 있는 사람은 부인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성신은 어떤 분인가? 해와가 만일 완성했다면 실체(實體)의 어머니가 되었을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해와의 영성(靈性)이 하나님의 거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영성은 예수님이 땅 위에서 신부를 맞이하면 그 신부에게 재림하여 실체의 형상(形像)을 쓰려고 했었는 데, 예수님의 신부(新婦)의 기반이 없어짐으로써 그 영성은 재림하지 못했고, 예수님은 실체부모(實體父母)의 자리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할수없이 예수님은 성신과 더불어 영적 부모(靈的父母)의 자리에라도 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뜻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기반도 남길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성신을 받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성신을 받아야 합니까? 여자(해와), 즉 부인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여자가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신이 역사(役事)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의 사랑과 함께 성신의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성신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52) 

성신(聖神)은 완성한 여성신입니다. 성신의 역할이란 아담 속으로 되돌아가는 일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찬은 모두 예수님의 몸 속에 있는 자녀의 씨와 같은 입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신앙을 하는 크리스찬이 과연 얼마나 됩니까? 꿈에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만 예수님을 무조건 믿고 천국에 가겠다는 사람들뿐입니다. 그러나 입으로만 믿는 다고 해서 천국에 간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예수님의 골육 속으로 들어가야 완전한 복귀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섭리를 펼쳐야 하는 하나님의 역할이 어떨까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과정에는 수많은 사탄이 진을 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탄권을 뚫고 들어가는 데는 수많은 희생이 따르게 됩니다.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는 예수님의 골육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예수님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사랑에 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참부모의 혈육에 접할 수 있는 내적 인연을 세웠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과 성령이 서로 그리워하는 사랑의 길을 더듬어 가야 거듭 태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여자가 남자를 사모하며 남자가 여자를 그리워하듯, 일치된 사랑의 경지를 통과해야 거듭납니다. 성신은 감동의 역할을 합니다. 성신의 감동을 받으면 예수님이 몹시 그리워집니다. 예수님은 신랑이요, 성신은 신부입니다. 기독교의 부활의 원리는 바로 두 실체가 하나가 되었을 때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53) 

기독교에서는 성부는 하나님, 성자는 예수라고 합니다. 그러면 성신은 무엇입니까? 성신은 어머니 신입니다. 어머니 신이기 때문에 어머니 신인 성신을 받지 않으면 중생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 신인 성신이 낳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성신은 예수님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그리운지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체험을 못했을 것입니다. 어머니 신인 성신이 신랑된 남편의 신을 사모하는 마음이 사람의 몸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사람이 태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천리입니다. 

예수는 아버지 성신은 어머니, 즉 예수는 신랑이요 성신은 신부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성신이 임하여, 성신이 신랑된 예수를 사모하는 힘과 여러분의 마음이 일치될 때 불을 받는 것입니다.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영적 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이 주입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重生)이라는 것입니다. 54) 

예수와 성신이 지금까지 해온 사명은 해산하는 사명입니다. 해와 속에 있는 본연의 어머니 성품의 존재가 해와와 상대적 기준이 안됨으로써 하나님께서 거두었던 것을 예수 시대에 주체 앞에 대상으로 보내심을 입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체(體)가 없습니다. 예수는 체가 있지만 성신은 체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사명을 하여 우리 인간의 마음에 들어가 감동을 주어 죄를 씻는 역사를 하게 되면, 어머니가 아기를 키우는 것같이 아버지의, 즉 예수님의 보호를 받아 다시 태어났다는 조건이 되고 중생이 되는 것입니다. 55) 

기독교에서는 말하기를 , ‘예수와 성신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예수는 영적인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며 성신은 영적인 어머니입니다. 영적인 부모와 하나되는 자리에서 아들의 인연으로 서게 될 때 영적 부활이라는 …. 영적이나마 부모의 관문을 통하는 , 접붙이는 과정을 거쳐 부활권이 벌어진다는 것이 기독교의 중생의 원리입니다. 부모를 거치지 않고는 생명이 탄생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지금까지 구원섭리를 발전시켜 나온 것입니다. 56) 

예수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했느냐 하면, 영적으로 그 일을 대신했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예수님과 성신을 중심삼고 아버지 어머니 대신 사명을 하는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재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해산의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의 후손인 우리 인간들은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서 태어나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에 품겨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신의 사랑입니다. 성신은 어머니 신이기 때문에 그 어머니 신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아버지인 예수를 찾아 세우고 품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어머니 신이 아버지를 영적으로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모하는 그 사랑의 힘이 작용하여 부딪치는 힘을 느끼는 것이 곧 불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체험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 가지고 아버지 어머니를 중심삼은 사랑의 감각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감각을 느끼지 않고서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원칙을 완결짓지 못하고 영적으로만 행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놀음을 재차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명을 완수하려면 어디로 들어가야 되느냐? 오시는 주님은 누구냐?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 뱃속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된 인간은 본래의 아버지 속에 들어갔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다시 태어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를 신랑으로 모시는 어머니 신의 혜택을 받아 가지고 남자되는 예수님의 뱃속에 들어가기 위한 놀음을 해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체로 예수의 뱃속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는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57) 

지금까지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 이유는 뭐냐? 어머니 신인 성신의 협조를 받아 예수님의 뱃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총각 신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그런 예수의 뱃속에 있는 애기 씨의 입장으로 찾아 들어가기 위해서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의 뱃속에 들어간 다음 복귀된 새로운 어머니를 통하여 다시 태어났다는 입장에 서야 중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실체를 쓰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이것을 행할 수 없으니 반드시 이러한 조건적인 내용을 중심삼아 그 조건을 세워 가지고 연결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58) 

3. 참부모와 참자녀를 통한 중생역사
2천 년 전 예수님은 후아담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해야 할 메시아로서 참아버지의 사명을 갖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에 육신을 가진 참부모가 현현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영적 구원은 이루어졌지만 육적 구원은 실현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오늘날까지 영육을 함께 구원해 주는 참부모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부모의 자격을 갖추고 오시는 재림주님에 의해 영육이 함께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들은 조건적 혹은 상징적으로 어머니의 태내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이 태어나야 하며, 그것을 위한 길을 우리는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성령은 어머니의 구실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인 성령을 통하고 아버지, 즉 예수의 영을 통하여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물론 우리들은 어머니의 태내에서 태어난 것이지만, 더 깊이 거슬러올라 가서 생각해 보면 생명의 기원은 아버지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태내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혈통은 교차하고 복귀되었지만, 아직 아버지를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까지 크리스찬들은 어머니 영인 성령의 힘에 의해 생명의 기원인 아버지, 즉 그리스도의 곁으로 돌아갈 것을 소망하여 그의 재림을 기다려 온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에 이미 아들과 딸의 생명은 모두 아버지인 아담의 몸 속에서 하나의 씨앗으로 존재했습니다. 아들이나 딸이 될 씨앗은 아버지의 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영육이 함께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육이 재출발하기 위하여 씨앗의 입장으로까지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섭리를 성취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참부모로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림주님을 통하여 하나의 새로운 복귀된 생명으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말씀한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재림하는 주님, 새로운 메시아가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59) 

재림주님은 영적으로 예수님의 몸 속에 있는 씨앗의 입장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전부 상속하여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아직까지 완전하게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몸 속에 있는 씨앗과 같은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것도 어디까지나 영적인 면뿐이므로 실체의 아버지로 오시는 재림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성신(聖神)이 어머니의 사명을 해오셨지만 실체 아버지가 오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어머니가 나타나기 전에 참아버지와 일체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완성한 아담의 몸 속에 있는 씨앗의 입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본래의 입장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모두가 타락하지 않은 참아버지로부터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몸에서 출발한 씨앗이 어머니의 태내에 잉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있는 씨앗은 진짜이며, 우리는 그 위치로 돌아가야 합니다. 진정 그 일은 통일교회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60)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들 선생님에게 절대적으로 반해야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자기의 아내보다도, 자기의 남편보다도, 자기 옆에 있는 자식보다도 선생님을 더 보고 싶어하고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이 나오지 않고는 하나님과 연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1950년 대에 뜻길을 출발하면서 이런 역사를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때에는 통일교회 식구들이 어머니가 없을 때인데도 선생님만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슬퍼하면 자기도 슬퍼하고 선생님이 기뻐하면 자기도 기뻐하면서 선생님과 같이 동감할 수 있는 심정적 일체의 자리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아버지 뱃속에 들어 있는 애기 씨와 같은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슬퍼하면 자식도 슬퍼해야 되고 아버지가 기뻐하면 자식도 기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심정적 일치점을 갖추지 않으면 아버지 뱃속으로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적 체휼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뱃속에 있는 애기 씨만 되어 가지고는 안 되므로 여기에서 어머니의 복중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즉, 어머니의 뱃속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1960년(1960. 4. 11)에 성혼식을 함으로 말미암아 참어머니가 세워졌습니다. 이로 인하여 여러분들이 아버지 뱃속에 있을 때 느꼈던 사랑의 은혜를 느껴 가지고 어머니를 사랑하고 모실 수 있음으로 말미암아 재차 어머니와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비로소 그 어머니의 사랑의 인연과 연결시켜 가지고 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출생하는 여러분은 달라져야 합니다. 61) 

통일교회 교인들은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놔 두고 왜 밤낮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선생님의 뼛속에 있어서의 애기 씨와 같은 심정적 인연을 갖지 않으면 조건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선생님을 똑같이 사랑해 가지고 태어났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참부모를 모시지 않고는 다시 태어났다는 조건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과정을 거쳤습니까? 이런 말 처음 듣지요? 꿈에라도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까? 선생님은 이러한 내용을 알고 이 뜻을 위해 살아 나온 사람입니다. 62) 

여러분들이 참부모의 아들 딸이 되기 위하여는 , 탕감법을 통하여 부모의 뼛골을 통하여서 나왔다는 원리적인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아들 딸의 자리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을 세우는 기간이 1960년도를 중심으로 1961년, 1962년도의 3년간에 걸친 40일 전도기간이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보리밥을 먹었습니다. 그랬지요? 왜 보리밥을 먹어야 되었느냐 하면, 그 3년 동안이 탕감기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은 선생님의 직계의 자녀를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복귀해 넘어가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부모를 중심삼은 가인 아벨의 관계를 세워서 가인 아벨을 일치화시켜 나가는 기간이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일치화시켜야 되느냐 하면,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일치화시키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 전단계로서, 1960년 이전에는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하나될 때였습니다. 그때는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선생님을 참 좋아했습니다. 남자들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상에서는 남자가 여자 보고 싶어서 눈물 흘리는 경우는 있겠지만, 남자가 남자 보고 싶어서 눈물 흘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남자끼리 그리워서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 들어 봤어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랑을 중심삼고 보고 싶어서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안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자들도 선생님이 보고 싶을 때는 자기의 부모, 형제, 아내, 자식을 다 버리고서라도 달려가고 싶을 만큼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아담 해와가 태어나기 전에는 누구의 몸 속에 자라고 있었습니까? 해와의 몸속에 자라고 있었습니까? 아담의 몸속에 자라고 있었습니까? 아담의 뼛골 속에 아들 딸의 씨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거기서 자녀의 씨가 자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일치되어 가지고 어머니를 통해서 생명으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로부터 자식이 태어나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과 마찬가지 입장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선생님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여자들, 선생님을 좋아했어요, 안 했어요? 너무 좋아해서 소문이 많이 났지. 할머니든, 처녀든, 남자로 말하면 할아버지든, 젊은 남자든 전부 다 선생님만 좋아서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심정적 일치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63) 

아담 해와의 첫사랑을 중심삼고 새로이 부모의 배를 통해서 탄생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거치지 않고는 생명의 인연이 시작되지 않으며, 원칙적인 복귀를 하지 않고는 완전 탕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뜻을 중심삼고 선생님을 사랑하고, 선생님의 감정을 중심삼고 여러분의 모든 감정이 선생님과 일치되고자 하는 심정적 방향이 알게 모르게 움직여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참부모의 뼛골 속에서부터 심정적으로 접붙임으로써, 참어머니의 복중을 통해서 본연의 아담 해와의 입장에서 태어났다는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여러분은 어머니를 중심삼고 복귀되어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의 아들 딸이 어머니의 복중에 있을 때에 그 애기를 중심삼고 여러분은 가인 아벨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64) 

물론 이미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서 성장하여 버린 우리는 글자 그대로 완성한 아담의 몸 속에 있는 씨앗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부모와 그 부모로부터 태어난 참자녀와 일체화함으로써 다시 태어나기 위한 조건을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완전히 굴복함으로써 두 사람이 모두 복귀된다는 원리가 있으므로 이 원리에 의해 가인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아벨의 입장에 있는 참부모와 참자녀와 일체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복귀된 자녀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통하여 참자녀로 태어나게 될 때, 참부모의 성체(聖體)와 같은 조건물을 나누어 받는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여 우리는 참자녀의 입장에 참여하는 길을 통과하게 됩니다. 65) 

여러분은 누구를 통하여 참자녀와 일체화하고 새로이 태어난 자녀로서 조건을 세우게 됩니까? 

아버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참자녀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부모와 그 자녀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참아들과 참딸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여성들은 누구와 하나돼야 하겠습니까? 여성들은 모두 참부모와 그 따님들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남성들은 참부모와 그 아드님들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자가 먼저 타락했으므로 여자의 복귀가 먼저 이루어진 후 남자의 복귀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최초에 복귀된 여자의 입장에 서는 것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참부모로부터 태어나게 되는 최초의 딸인 것입니다. 참부모는 최초로 딸을 낳고 그 다음 둘째는 아들을 낳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지극히 원리적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는 매우 간단히 설명했지만, 이러한 설명의 배후에는 대단히 길고 복잡한 내용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죄없는 참자녀의 탄생에 의해 역사상 처음으로 천적(天的) 사위기대가 복귀된 것입니다. 사탄세계는 이 기대에 대하여 아무것도 참소할 수 없습니다.

선민국가가 복귀되지 않았기 때문에 천적 사위기대라는 이 한 점에서 출발하여 가정, 종족, 민족, 나아가 국가적 기준으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 중심 핵이 되는 것은 사위기대로서 복귀된 천적 가정인 것이며, 그 가정을 통해 세워지는 국가야말로 가장 강한 무적(無敵)의 국가로서, 그야말로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그 국가는 그밖의 모든 사탄 주권으로부터 승리하여 외적 세계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66) 

여러분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선생님의 애기들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3년 동안 복중의 애기의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3년간의 표어를 첫째 ‘생애 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를 만들어라’, 둘째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어라’, 셋째 ‘보여 주고 자랑하라’로 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여 주고 자랑하라는 것은 사위기대 복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은 이 3단계를 중심삼고 복중에 있는 애기와 더불어 같이 먹고 같이 사는 것과 같은 조건을 세워 나오는 것입니다. 어머니도 3년 동안은 여러분이 보리밥을 먹을 때 같이 보리밥을 먹고, 여러분이 나가서 활동할 때 같은 조건의 활동을 했습니다. 예진 애기와 효진 애기는 어머니가 보리밥 먹고 낳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도 여러분과 똑같은 심정으로 생활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복중에서 태어난 가인적 존재로서 어머니를 사랑함과 동시에 애기들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일치화됨으로 말미암아 쌍태와 같은 반열에 동참했다는 심정적 조건을 세워 가지고 그들을 중심삼고 모시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복중에서 두 씨의 반발을 방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반발된 타락의 기원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며, 여기에서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이런 역사를 다해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예진 애기와 효진 애기가 태어날 때 국밥을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국밥을 먹었기 때문에 애기도 같이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상대적으로 국밥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심정적 일체의 내용을 탕감할 수 있는 절대적 조건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와 같이 복귀역사는 비약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물샐틈 없는 절차를 거쳐 가지고 오늘날 역사시대에 있는 여러분과 관계를 맺기 위해 모든 내적 기원을 세워 온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모두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수고한 역사노정이 현실권 내에 있는 이 길을 찾아오기까지는 6천 년이 걸렸던 것입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희생되는 대가를 치러 가면서 천지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탕감노정을 거쳐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인연을 거쳐 가지고 부모가 사위기대를 갖추었으니, 여러분도 사위기대를 갖추어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축복인 것입니다. 67) 

선생님은 평생 동안 목숨을 걸고 싸워 나왔습니다. 세상에서의 고통스런 일이란 피할 수 있지만, 이 일은 피할 수도 없습니다. 완력이나 폭력을 가지고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원리 원칙에 따라 하지 않으면 사방에서 몰아치는 화살을 피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싸움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그와 같은 일을 할 때 탕감의 조건을 세워 내적 기반을 닦아 왔음을 여러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을 터로 하여 전환점을 이루었다는 것은 천주적(天宙的)인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68) 

이렇게 참부모가 출현하기가 힘들고, 참아들 딸이 태어나기가 힘들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자리에 나올 때까지는 얼마나 이를 악물고 참아 왔는 지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심정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심정을 이어받지 못하면 선생님이 가는 곳,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죽는 다면, 나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같이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누가 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섭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오래 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 가운데서 그런 사람이 빨리 나왔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눈으로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레버런 문에게 축복을 해 주신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사람을 주시는 것이 제일 큰 선물이요 축복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불신받고 수난당하신 하나님을 대해서 선생님 이상 사랑하고, 선생님 이상 인류를 해방해 주기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사람이 이 시간 나온다면, 오늘은 영광의 날일 것입니다. 69) 

혈통적 전환은 누가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이 일을 하기 위해 눈물겨운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기준이 있기에 여러분은 아무 공로 없이 축복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잇게 되었습니다. 

전환의 승리권을 세우는 데는 수천 년에 이르는 하나님의 노고와, 실체를 중심으로 한 선생님의 고난의 생애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선 곳이 바로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입니다. 축복이란 접목하는 것이며, 접목함으로써 혈통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70) 

여러분은 복귀라는 것이 얼마만큼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진리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 진리의 전부를 성취하여야 합니다. 이제 선생님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무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졸업증서를 받는 학생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입장이 얼마만큼 귀중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71) 

4. 역사적 희생의 터전 위에 이루어진 축복
복귀역사를 두고 보면 하나님은 참 지혜로운 분입니다. 지극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 모르게 돼 있습니다. 여기 777가정이 모였지만 축복이 무엇인지 아나? 여러분이 아는 축복과 선생님이 아는 축복과는 천(天)과 지(地)의 차이입니다. 72) 

성혼 축복을 받는 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섭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중심적 사상은 아담 해와의 가정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모델로 똑같은 가정을 만들려고 하셨습니다. 일정한 모형을 만들어 가지고 재료를 투입시키면 일시에 몇천 몇만 개가 나옵니다. 선생님은 그 모형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고생해 왔습니다. 그 모형이 부숴지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사상은 메시아의 가정, 복귀한 아담 해와의 가정, 타락권을 승리한 가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중심사상은 타락권을 넘어 승리권에 있는 하나님과 함께 사랑을 중심으로 한 가정을 이루는 데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73) 

아담 가정의 완성은 가정적 완성의 출발이며 종족, 민족, 국가 모두의 시작이며 천국의 기점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종족권의 사명을 다하느냐 못하느냐, 민족권의 사명을 다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선생님은 세계적인 사명을 갖고 있으나 중심점은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74) 

예수님은 종족적 기대(基臺)를 갖지 못했고 결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을 분명히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요셉의 가정과 사가랴의 가정 및 세례 요한의 가정을 중심으로 종족적 기반이 조성되었다면 예수님은 전도하지 않고도 천국을 이루어 나가셨을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대중을 이끌고 소란을 피우면서 활동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한 사위기대를 조성하면 자동적으로 모든 것이 성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탕감의 내용을 이론적으로 해명하며 서서히 기대를 만들어 나갔으면 죽을 운명에 부딪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가정 기반을 만들어서 자녀를 가졌다면 기독교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직계의 자손을 중심으로 세계를 움직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기대가 모두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75)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축복받는 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 하루를 맞이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종교를 통해서 지금까지 섭리를 이끌어 왔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택해서 메시아 사상을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국가적 기준의 승리권을 회복하려고 했는 데, 그들의 무지와 불신으로 말미암아 좌절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제2 이스라엘의 입장에 섰습니다. 76) 

유대교는 국가적인 기반 위에 세계적인 중심 사명을 담당해야 할 입장에 섰었는 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게 했기 때문에 지상권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2천 년간 영적 천국을 향해서 피를 흘리며 개척해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외적으로 피를 흘리고 기독교는 내적으로 피를 흘리며 나왔습니다. 

이제 재림의 때를 맞아 영적 기반을 육적 기반에 접붙여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재림주님을 영접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와 같은 중심적 섭리의 뜻을 계승하여 출발한 교회입니다. 77) 

축복으로 말미암아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기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78)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이 축복을 받는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오랜 역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희생적인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그동안 개인은 물론 가정, 종족, 민족, 국가의 수천 수백만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중심한 축복의 단계까지는 맞이할 수가 없었습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목표를 들고 나와 일본,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축복의 기반을 이룩하게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축복을 받기 전에 여러분 자신이 이와 같은 역사적인 수고의 터전 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수천 년의 희생의 역사를 거쳐온 것도 결국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수많은 예언자와 선지자들이 제물이 되고, 많은 종교가 희생의 길을 걸어온 것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승리자로 내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되어진 것입니다. 79) 

통일교회의 역사도 똑같습니다. 선생님이 이와 같이 고생한 것은 선생님 자신의 길을 개척함과 동시에 만민에게 똑같은 축복의 길을 부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나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이 그토록 수고해 오셨다는 것을 알고 무한히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생애를 다 바쳐도 하나님 앞에 완전히 보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생을 바쳐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바쳤을 때, 하나님은 승리자로 영원한 세계와 승리권의 세계, 즉 영광의 세계에서 여러분을 맞이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역사를 짊어진 자기라는 것과 현재를 짊어지고 있는 자기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현재 세계 40억의 생명이 여러분 자신에 의해서 구원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 전체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여러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와 같은 가치적인 존재가 되도록 하나님이 희생을 치르셨고 각 종교가 노력을 해왔습니다. 역사적으로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 가치적인 존재를 맞이하는 경우는 모두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중심적 사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80) 

선생님은 가정을 찾기 위하여 40년을 수고했습니다.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축복의 날을 세우시기 위하여 수많은 희생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이 찾은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81) 

여러분들이 타락한 후손의 가정에 태어나서 축복가정을 이루었다는 것은, 이제까지 역사상에 없었던 최초의 존귀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귀의 내용을 이론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서 이러한 축복을 한 예는 이제까지 없었습니다. 이 시대에 들어와서 지상에서 처음으로 축복을 하게 되는 것은 불가사의한 시대에 돌입했기 때문입니다. 82) 

타락은 뭐냐 하면 사탄을 중심삼고 결혼한 것이지만,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하나님과 부모님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떨어져 나온 입장과는 반대로 전부 다 맞추어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에 조그마한 틈만 있어도 사탄이 침범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레버런 문이 알아 가지고 빈틈없이 짜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사탄세계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83) 

오늘 여러분이 서 있는 이 자리는 어떠한 자리인가? 6천 년 역사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플러스되어 있고, 하나님이 플러스되어 있고, 그 다음에는 선생님 일대가 플러스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을 이 자리에 나오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선생님 조상으로부터 3대를 거쳐 준비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그 누구도 모르는 내용입니다. 이번에 수련생에게 처음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때가 되었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탕감복귀 역사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딱 들어맞아야 됩니다. 안팎으로 들어맞아야 돼요.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84) 

믿음의 기대, 실체기대,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있다는 것을 알지요? 이제 우리는 원죄를 훌훌 벗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 때문에 이 한때를 찾아오시기 위해서 6천 년을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이후 2천 년 동안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이 길을 좇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 앉아서 단시간 내에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은사인 것입니다. 이렇게 열매맺을 수 있는 승리의 한 단체가 이 아시아의 한국 땅을 중심으로 세워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여기 한국에 와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85) 

축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냐? 식은 간단하지만 배후 역사의 내용은 엄청나게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었습니다. 그가 웃으면 만우주가 웃을 수 있는 기준이 축복의 기준입니다. 부족한 점을 시정하고 하나님이 바라시던 부부의 의리를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늘과 땅을 대신하여 태어났습니다. 86) 

여러분은 그것을 몰라서 그렇지, 축복이 얼마나 어려우냐? 하늘이 가정 하나 찾기 위해 역사과정에 얼마나 많은 개인이 희생되고 얼마나 많은 가정과 민족과 국가가 희생되었느냐? 이렇게 해서 찾아진 것이 축복가정입니다. 87) 

내심으로 고대하여 필연적으로 현현하게 되기를 바란 그 축복이, 우리 한국 강토를 중심삼고 통일제단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우리 한국에 한한 문제가 아니라 세계사적인 문제라는 거예요. 이처럼 세계적인 무대 위에 벌어지는 축복의 한날을 바라보고 나설 수 있는 하나의 남성 하나의 여성이 있다면, 그 자체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상당한 가치를 지닌 자들이 아니겠어요?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아담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모습, 잃어버린 해와를 대신하여 찾아 세우시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88) 

5. 축복의 날은 역사적 소원 성취의 날
오늘날 뜻을 중심삼고 축복이라는 말을 생각해 볼 때, 이 말은 통일교회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면서 내적으로 마음 속에 지니고 계셨던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실천되기를 바라며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축복해 주시며 그것이 이뤄지기를 바라시던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축복을 아직까지 그 누구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서글픈 입장에서 축복이 실천되기를 소원 중의 소원으로 고대하면서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을 거쳐 나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4천 년의 역사 과정을 거친 연후에, 하나님이 본래부터 주고 싶었던 축복을 최후로 결행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섭리역사를 하셨지만, 예수님 역시 그 축복의 자리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수천 년의 기독교 역사 과정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싸워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그 하나님의 소원을 풀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축복이라는 말은 우리 통일교회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창세로부터 타락한 이후인 지금까지 역사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내심 가운데 하나의 소원으로서, 하나님이 언제나 이것을 추구하고 바라고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소원의 한날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오셨지만, 아직까지 이 날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 한날을 찾는 다면, 이 날은 역사적인 해원 성사를 할 수 있는 날이요,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을 성취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이 축복의 자리가 얼마나 엄청나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89) 

축복은 역사가 추구해 온 만민 해방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90) 

한과 슬픔으로 비참한 역사과정을 걸어 나오면서 지루하고도 지루한 고비를 넘어선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지 않고 그날을 맞이하는 것보다도 그 해방을 맞는 날이 더 즐거운 날입니다. 하나님은 이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 선열들을 죽음길로 몰아내었고, 6천 년 동안 끌고 나온 제단 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아들 딸을 만들기 위하여 참아나온 그 입장을 생각할 때, 이날이 얼마나 감사한 날이며, 얼마나 좋은 날이며, 얼마나 기쁜 날이겠습니까? 만일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게 되면 천지가 동하여 하늘 땅 전체가 잔치를 할 것입니다. 어린양 잔치만 하겠습니까? 해방 잔치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느껴 왔던, 죽는 것에 버금가는 안타까움과 아픔과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그날이 축복의 날이요 성혼의 날입니다. 91)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1960년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축복이라는 말씀이 나왔는 데, 이 말씀과 더불어 이러한 생활을 여러분에게 제시하게 된 것은 1960년대에 한한 시대적인 요구에서만은 아닙니다. 역사 과정을 통하여 섭리를 펴시는 곳곳마다, 혹은 그때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고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것은 축복이라는 하나의 기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92) 

축복은 하나님의 소원이자 예수님과 성신의 소원입니다. 이 소원이 이루 어져야 새역사가 열립니다. 축복은 이 전체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고로 축복가정은 이러한 소원을 이루는 주체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소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재림하여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예수님이 못 이룬 소원을 책임지고 이뤄 드려야 합니다. 93) 

축복이 이루어지는 지금의 때는 어떤 때이겠습니까? 지금은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최고의 때요, 6천 년간 수고해 온 하나님의 한이 그치는 때요, 이 땅에 오시어 수고하셨던 하나님의 아들, 즉 예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의 가정을 중심삼고 사랑이 시작되는 때요, 만물의 환희와 존귀와 영광을 받을 수 있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날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죄악이 다 사라지고 광명의 태양이 솟아오른 명랑한 천지를 맞이하는 날, 모든 자연이 화동하고 모든 동물이 춤을 추는 화창한 아침, 승리의 아침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94) 

축복의 자리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엮어 온 역사 과정에서의 모든 슬픔을 청산지을 수 있는 자리요, 지금까지 성취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소원이 새로이 출발을 할 수 있는 자리요, 새로운 미래가 출발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한 기점이라는 것입니다. 95) 

지금까지 인류가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타락하여 축복의 자리에 미치지 못한 조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비운의 역사가 있었기에 아직까지도 두고두고 후손들이 신음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온 천하의 인류가 하늘 앞에 한결같이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축복의 한날입니다. 이것은 전무 후무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96)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 해와를 지으실 때, 먼저 만물을 지어 놓고, 그 만물의 중심인 아담 해와를 영광의 실체로 지어 가지고 그들이 환희에 찬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축복의 한날을 갖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기에, 그 소원의 한날을 오늘날 우리가 우리 일대에서 완결지을 수 있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 승리의 영광을 드높여서 우리 스스로가, 혹은 부부가 온 천지 앞에 찬양을 드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기쁜 날을 맞기 위해 단 한번밖에 없는 이런 엄청난 영광의 자리에 참석하는 일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축복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죽으셨듯이, 복귀섭리도상에서 왔다 간 수많은 사람들, 흑은 뜻을 대해 자기의 생애를 바치며 싸워 나갔던 사람들의 과거를 생각해 볼 때, 하나님 앞에 일편단심으로 자기의 있는 정성을 전부 다 투입해 가지고 노력했던 그 사람들의 소원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한사코 이 축복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도 아직까지 이 축복의 인연을 맺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에서도 기필코 이 축복의 인연을 맺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무슨 의의 면류관, 사랑의 면류관이라는 말이 있는 데, 그 면류관의 표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 축복의 상대를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특권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는 것이 면류관의 상징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이루어진 이와 같은 사실은 평면적으로 제한된 환경의 자리에만 미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온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통해서, 혹은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필연적으로 추구하고 갈구해 나온 소망의 기점이 여기에서 이루어져 나간다는 겁니다. 이 엄청난 축복에 임하는 당사자들이 그것을 알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은 심각한 입장에서 자아를 비판하고 새로이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97) 

인간 조상인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그날부터 인간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한 날을 고대하여 왔습니다. 98) 

가정은 본인들과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의 결실점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