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 3 - 1. 중생의 근본원리

훈독왕 | 20210429044252

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

제3장 축복의 의의와 가치

 

제1절 중생의 근본원리

 

1. 메시아가 필요한 까닭 

우리에게 메시아가 필요한 까닭은 구원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구원에 필요한 근본적인 기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접촉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사탄의 실체를 가진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는 정반대되는 까닭에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탕감이란 원죄를 제거하는 것이며, 원죄를 제거하는 데는 혈통적인 것이 근본적으로 존재합니다. 혈통적인 것은 타락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영적 아버지의 사명을 다하고 사탄을 영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사탄을 이기고 갔습니다. 남편은 하늘을 상징하기 때문에 하늘로 가야 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땅에서 사탄과 싸워 남편처럼 이기지 않으면 신부의 자리에 나가지 못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탄이 남자 여자를 유린한 것을 탕감하고 승리하여 재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신을 중심삼고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한계선을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와 성신의 사랑의 힘인 부활의 능력, 부활된 생명의 힘을 받아 가지고 사탄과 싸워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생 살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2) 

이 땅의 기독교인들은 주님이 오시게 되면 원죄를 벗는 다고 말하는 데 원죄를 벗는 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는 심정적 혈통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맨 나중에까지 남을 것이 그것입니다. 3) 

혈통이 다르다는 것은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다른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본래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부모에 의하지 않고는 죄를 탕감할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역사는 타락하지 아니한, 종지조상이 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그 한 분이 올 때까지 종교의 이념을 중심으로 연결시켜 왔습니다. 4) 

타락한 인간이 요구하는 구주는 어떠한 구주냐? 타락한 부모의 자리에서가 아니라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과 일체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참된 부모의 자리에서 인류를 낳아 줄 구주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원죄와 상관이 없는 자리에 올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5) 

메시아는 누구냐? 참부모입니다. 그러면 참부모가 왜 필요하냐? 참부모의 사랑으로 다시 접붙이는 일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인 참부모가 나타나지 않고서는 타락한 인간은 원죄를 벗어 버리고 죄없는 해방된 자리에서 완성단계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6) 

아담 일족에 있어서 참된 부모가 생겨나지 못하고, 죄많은 부모가 생겨났던 것을 탕감복귀를 통해 하나님 앞에 참부모의 역사를 찾아 접붙이는 것이 메시아의 사상이요 구세주의 사상입니다. 그렇게 된 것은 모두가 타락 때문입니다. 7)

우리는 악의 부모와 싸워서 사랑을 중심으로 최후 승리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통해서만 악의 혈통권이 굴복하게 됩니다. 8) 

인간들의 대를 이어온 사탄의 혈통을 뽑아내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부모인 것입니다. 이러한 참부모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선한 하나님과 일체를 이룰 수 없으며 선한 상대기준을 이룰 수 없습니다. 9) 

아담과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가인 아벨이 종적으로 하나되는 길이 없어졌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을 가인 아벨을 통하여 복귀하는 입장에 서 있으므로 아담 해와도 종적으로 맺어질 기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참자녀권을 원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종적으로 맺어 주는 참부모를 만나야 합니다. 타락하지 않은 자녀의 입장을 복귀하지 못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완성 기준으로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는다 하더라도, 아무리 가인 아벨이 하나되었다 하더라도 타락하지 않은 부모의 기대를 복귀하지 않으면 종적으로 올라가는 길은 생기지 않습니다. 10) 
 

2. 거듭남의 참된 의미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은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된 부모의 혈육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타락과 관계없는 부모의 혈육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죄의 근본 뿌리는 아담 해와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밟고 넘어서서, 즉 원죄와 인연이 없는 자리에서 태어났다는 자격을 갖추지 않고는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11) 

하나님이 우리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타락권 이하에서는 아무리 구원하려 해봤자 구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 이상의 참된 부모를 이 땅 위에 다시 보내 가지고 그 부모를 통해서 인류가 다시 해산되는 노정을 거치게 해서, 사탄과 영원히 관계가 없게 하시고 참소하려야 참소할 수 없게 하시어서, 하나님만이 주관하고 하나님만이 간섭하실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인류가 다시 태어나지 않고는 원죄를 가진 인간이 원죄가 없는 자리에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12) 

니고데모가 예수님에게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거듭나지(중생)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사탄과 맺어 온 모든 관계를 청산짓고 하나님과 창조본연의 관계를 맺어야 됨을 말합니다. 13) 

유대인의 지도자였던 니고데모가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하고 예수님께 묻자,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악의 쇠사슬을 벗어 버리고 하늘나라의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14)

거듭난다는 것은 마음이 개변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15)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다시 오시는 주님은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운데에서라도 믿으면 구원받는 다는 사고방식으로는 참신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통일교회는 이 세상에 필요한 종교가 아닙니다. 16) 

하나님의 섭리로 믿음을 세웠다고 해도 하나님의 자식으로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17) 

참부모가 참감람나무라면 여러분 모두는 접붙임을 받아야 하는 돌감람나무입니다. 곁순이나 곁가지입니다. 새로운 가지가 나와야 정상적인 생태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류가 믿음과 사랑과 실체를 잃어버리고 무엇이 되었느냐? 혈통적으로 거꾸로 되어 버렸기 때문에 뒤집어 놓아야 됩니다. 그래서 니고데모가 예수님에게 묻기를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자,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적인 내용을 갈파했습니다. 18) 

돌감람나무에 참감람나무의 접을 붙일 때는 , 가지를 자르고 그곳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밑둥을 잘라 뿌리만 남겨 놓고 그 위에 붙이는 것입니다. 이 말은 기성교회가 다시 오시는 주님에 의해 기존 체제나 제도, 또는 모든 의식을 바꿔 새롭게 출발하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이 신앙생활을 통해서 맺은 열매는 돌감람나무의 열매이니,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대목을 잘라내고 눈접을 붙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접붙일 수 없다면 뿌리까지 뽑아 불태워 버려야 합니다. 그냥 두면 돌감람나무의 열매가 밭에 뿌려져서 수많은 돌감람나무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돌감람나무를 자르는 것은 새로운 참감람나무의 눈을 접붙이기 위해서입니다. 

문제는 참감람나무의 눈이나 돌감람나무의 눈이, 눈으로 보아서는 똑같기 때문에 시비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재림주님이 오실 때에는 많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때문에 진실을 바라보는 가치관과 눈이 혼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깨어서 기도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돌감람나무의 밑둥을 잘라내고 참감람나무에 접목을 함으로써 돌감람나무는 모두 베어지고 참감람나무 밭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을 레버런 문이 하겠다고 하니 야단들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몸이 베어지는 아픔을 두려워하고, 또 돌팔이 원예가가 아닌가 해서입니다. 

섭리역사의 봄절기와 함께 돌감람나무에 접붙이는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19) 

거듭나는 데는 아담 해와보다 못해 가지고는 안 되며, 또한 근본복귀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데도 개인이 거듭나야 되고 가정, 민족, 국가, 세계가 거듭나야 합니다. 이 사실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20) 
 

3. 혈통 전환의 뜻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남자로부터 생명의 씨가 여자에게 들어감으로부터 입니다. 그렇다면 이 전환의 길은 어디로 가서 그 교차점을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여자의 복중입니다. 역사는 줄곧 그곳, 즉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조건을 세우는 역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여자의 복중에서 아이가 잉태한다고 할 때, 거기에는 남자가 있어야 하고 결국 가정이 형성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복귀라는 것을 생각할 때, 남자의 골육 속에 숨어 있는 아이의 씨가 출발이 됩니다. 즉, 그 남자의 혈육 속에 있는 아이의 씨의 기준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일체가 되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완전한 혈통적 전환의 기대를 위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21) 

애기의 씨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있지요? 아버지에게는 뼛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뼛속을 통하고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 가지고 애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여러분들은 아버지의 뼛속과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가 재미있습니다. 22) 

예수님을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본연의 기준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뼛골에서 태어나는 아들 딸의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아담이 태어나기 전에 아들의 씨를 가졌던 것과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뼛골에서 태어나는 아들 딸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예수님과 하나돼야 합니다. 예수님과 사랑의 일체를 이룬 다음에 성신, 즉 영적인 어머니를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중생해야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3)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니고데모는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수야 없지 않습니까? ’하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너는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을 모르느냐’고 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참으로 이 원리를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에 있어서의 부활과 새 삶이라는 말은 모두 이와 같은 방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혈통의 복귀는 결국 어머니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원죄는 청산되고 더럽혀진 혈통은 하늘의 혈통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한 새로운 생명으로서 재창조되어 근본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참아버지의 몸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게 됩니다. 참아버지에 의해서만 영육이 함께 구원되는 완전한 구원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탄생된 우리의 자녀들은 원죄가 없으므로 구원의 과정을 통하지 않고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24) 

기독교는 지금까지 사람이 어떻게 거듭나야 하는 가에 대해 확실히 해명하지 못했습니다. 어디를 목표로 해서 부활의 기반을 출발시키는 가. 그것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태어나 성장하여 30세에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거듭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심정적 내용의 발생지가 30세부터인 것은 아닙니다. 역사에서부터입니다. 그것을 잇는 심정의 상속을 했다고 하는 조건을 자기가 갖지 않으면 거듭남의 출발과 동기는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혈통적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담의 골수까지, 골육의 중심부까지 들어가서 장래의 아이가 될 그 씨에 하나님의 사랑과 결속된 승리적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고는 장래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틀림없는 것입니다. 성서에 그렇게 해온 기록이 있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25)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남자로서 타락하지 않은 원래의 아담인 것입니다. 결국은 육적이면서도 영적인 아버지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버지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다시 태어날 길이 전연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인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골수에까지 들어갔다고 하는 , 예수님을 목마르게 그리워하며 예수님의 애정과 맞닿는 그러한 것을 체휼하게 하는 오직 하나의 가르침으로 예수님을 신랑으로 그리워하고 맞이하라고 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이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 골육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씨가 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배를 통과했다고 하는 조건도 얻으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신부의 입장입니다. 26) 

본래 사람이 태어날 때 영인체와 육신이 갈라져 가지고 태어나게 돼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영적 부활만 했기 때문에 영인체는 태어났고 육신은 태어나지 못한 입장에 있으니, 예수가 육신을 쓰고 다시 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다가 영계에 간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할 때 다시 와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 뱃속을 거쳐서 다시 태어났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살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들이 참된 어머니를 맞기 전에 아버지의 뼛속에서 딸이든가 아들의 씨로 있어 가지고 어머니를 통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성신을 통해서 주님을 찾는 것은 참아버지의 뼛속의 애기 씨와 같은 입장에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그런 입장을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 영적으로 아버지 뼛속에 애기 씨로 들어갔던 것들이 예수의 육신을 통해서 하나돼 가지고 어머니를 통해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복귀의 길입니다. 심정과 혈통을 교체하기 위한 것이 복귀의 길인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런 것은 생각지도 않고 그냥 믿고 천당가겠다니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27) 

여러분은 참된 부모와 상관이 없는 자리에서 하늘 앞에서 쫓겨난 거짓된 부모의 핏줄을 받고 태어났으니, 이 핏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핏줄을 밟고 밟고, 뽑아 버리고 뽑아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혈통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28) 

4. 중생하려면
신랑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신부되시는 성신의 사랑이 일체(一體)가 된 그 사랑이 나의 뼈와 살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즉,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을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사랑의 심정 기반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重生)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중생(重生)받아야 된다고 말하지만, 여러분들이 중생받으려면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됩니다. 타락권내(墮落圈內)에서, 즉 사탄의 사랑권 내에서 이루어지는 그 어떤 사랑보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사랑이 더 차원높지 않는 한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게 수난의 길이요, 종교인들이 가야 하는 어려운 길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을 날마다 사모하고 있고, 예수님이 재림하시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고, 간장이 녹아나도록 ‘신랑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2천 년 동안 부르짖어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몸이 터져 나가고 가슴이 찢어지고, 뼛골이 녹아나는 자리, 몸 안에 있는 지 몸 밖에 있는 지 모르는 경지, 오직 하나님이나 예수님하고만 통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게 될 때 비로소 성신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신이 임함으로써 영적인 아기로서 재생할 수 있는 영적 중생(靈的重生)의 역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체험 있습니까? 그런 체험이 없는 한 아직 사탄세계의 아들 딸이라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천당에 못가는 것입니다. 지옥에 갑니다. 29) 

혈통을 전환하는 것은 메시아가 할는 지 모르나, 전환하도록 행동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기준이 이룩되지 않는 한 우리는 구원의 길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것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죽느냐 사느냐의 경지를 통과해야 합니다. 40일 단식기도라든가 피를 토하는 죽음의 경지에 가야 혈통 전환이 가능합니다. 30)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 사탄세계의 생명에 미련없이 하나님의 뜻 앞에 내 피와 살과 뼈가 훨훨 타 가지고 가루가 되고 냄새가 되어 천지에 향기를 진동시키도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옥에 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는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31) 

‘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섬기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거기에는 사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 말은 전체적인 입장에서 공적이며, 사적인 것은 용납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즉,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신 것이 첫째의 계명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입장에서 공적인 것입니다. 

절대적인 입장에서의 공적이라는 말은 ‘나’가 없는 것입니다. 전체를 대표해서 그것을 주체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타락권 내에 들어가기 때문에 전체를 대신한 하나의 중심존재로서 하나님을 모셔 놓고, 절대적인 주체로 모시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나’라는 관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나’라는 관념을 갖고 나오게 될 때는 반드시 사탄권 내의 소유적 조건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나를 절대 부정하는 자리에서 절대 주체 관념을 중심삼은 외적인 물질과 몸과 마음이 하나돼야 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32) 

예수께서는 니고데모를 대해서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는 어차피 역사적으로 부정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잘했다고 변명하고 스스로 세워 놓은 무엇이 있다 할지라도 내 한 자체는 부정되어야 합니다. 타락의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권내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정되어야 할 생애요, 부정되어야 할 생활이요, 부정되어야 할 죽은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33) 

세계의 만민들은 참어머니가 나타나기 전에 태어났으니 헛되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접붙인 입장에서 예수님의 뱃속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이 부부를 이루었을 때 성신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거짓된 사랑으로 태어났으니 참된 사랑을 통하여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34) 

예수님과 일체를 이루는 데는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진리도 정의도 아닙니다. 생명이 있기에 앞서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역사도 뛰어넘을 수 있으며, 거리나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35)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으로 창조 본연의 인간을 결합시키고자 했습니다. 자기 일신의 괴로움을 잊고 오직 사랑을 그리워하지 않으면 본연의 인간으로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36)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타락한 사랑을 제거시킬 수 있습니다. 창조 본연의 인간을 추구하는 정도가 연인끼리 사랑하는 것보다 더해야 발전합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재창조의 사랑권에 인격 가치를 소유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가지고 전진해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겠습니까? 비원리적인 사랑으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랑, 자기 중심한 사랑 등으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연의 사랑인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야 전진할 수 있습니다. 자기 본연의 인격 완성을 바라는 마음이 처녀 총각들의 연애하는 마음 이상 되어야 완성기준에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사탄적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소화할 수 있는 힘이 없이는 못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흠모해야 되고, 이상적 상대로 오시는 주님을 흠모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2천 년 동안 신부의 입장에서 독신생활을 하며 신랑을 기다려야 하는 기독교인 생활의 연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기독교인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7) 

세상의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선열들이 나라를 사랑했던 것만큼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서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될 수 있겠는 가? 하나님의 참된 아들 딸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과 영계, 지상, 그리고 후손 앞에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합이 맞아야 합니다. 3점이 결합되어야 면적이 생깁니다. 2점으로는 선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38)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타락했으니 구주를 믿고 따라가야 됩니다. 따라가서는 뭘할 것이냐? 사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간단하잖아요? 그리고는 신랑되신 예수님과 실체적으로 일체화하고 심정일체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귀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참부모와 참자녀가 상봉하는 자리, 즉 하나님이 태초에 소망하신 그 자리가 이 천지간에 벌어지면 거기서부터 새 천지가 열리는 것입니다. 39) 

여러분 각자의 혈통적 내용이 다르고 배후가 다를 지라도 부모와 닮기 위해서는 접붙이는 역사를 해야 합니다. 뒤넘이쳐서 접붙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접붙이려면 여러분 자체에 남아진 탕감노정을 다 청산지어야 합니다. 그것은 부모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부모를 통해서 청산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에게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거짓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참부모를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재림시대에 신랑 신부니 어린양 잔치니 하는 것도 모두 부모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40) 

여러분, 정성도 참부모를 통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지구(地區)에 나가 싸우고 지구장이 되어 충성을 한다 해도 참부모를 중심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을 참부모의 인연을 통해야 합니다. 참부모의 인연을 통해서 수고하고 노력하여 결실을 거두어야 하늘 것으로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 것으로 거두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약시대에는 모심으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그리워하기 전에 먼저 부모를 그리워해야 됩니다. 그것이 자식의 도리입니다. 자기 색시부터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자식의 자격이 있습니까? 부모의 품에서 자라 가지고 부모가 제일 좋다고 하는 입장에서 성장하는 것이 자식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앞으로 축복을 받아도 상대와의 인연은 나중에 맺어야 됩니다. 먼저 부모를 그리워해야 됩니다. 부모가 없으면 밤이나 낮이나 세상이 없고 자기 존재가치가 없는 것 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부모를 향한 사모의 심정과 흠모의 심정이 여러분의 모든 생활을 점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늘의 아들이요 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활과정을 통한 다음에라야 비로소 상대, 즉 아내면 아내, 남편이면 남편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도 않고 어떻게 남편을 맞이하고 아내를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부모를 진심으로 그리워해야 됩니다. 내 생명의 동기도 부모요, 내 소망의 일체도 부모요, 내 모든 이상과 행복의 근원도 부모라고 하는 기준을 중심삼고 부모를 모시지 않고는 구원 못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모셔 보았습니까? 가짜들 같으니라구.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나는 참부모와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아들, 혹은 딸이다’라는 신념을 자신의 존재의식을 초월할 수 있을 정도로 굳게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41) 

참부모를 모신다는 것은 혼자서는 안 됩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자기의 상대적인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혼자일 때에는 아담의 입장에서 힘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부모 앞에 그 무엇인가를 보답할 수 있고 바칠 수 있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여러분들이 부모의 사랑을 상속받아 가지고 자기들의 후손들에게 혈통적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핏줄을 통하여 이런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런 사랑의 터전을 기반으로 해서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혈통적인 상대적 가치를 기준으로 해서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42) 

통일교회 신앙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고 하는 것을 실감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자녀의 입장을 복귀하는 일입니다. 43) 

참효자가 되려면 부모의 심정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 와서 선생님을 알려면 선생님의 심정적 세계로 들어가야 됩니다. 

책임자들이나 전도사들이 이러한 심정에 들어가서, 길을 가면서도 하루에 몇 번씩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심정에 목이 메어 걷잡을 수 없이 통곡하는 경지를 체험하게 되면, 그 교회는 모든 것이 잘될 수밖에 없습니다. 44) 

정성을 다하는 심정의 자리에서는 선생님과 여러분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심정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심정은 거리를 초월하고, 환경을 초월하고, 역사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단축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과 같은 입장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슬퍼하면 여러분도 슬퍼해야 합니다. 호흡을 같이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숨을 내쉬면 여러분은 들이쉬고, 선생님과 일체를 이루어서 박자를 맞추어 나가야 합니다. 45) 

여러분도 어렵지만 복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여러분이나 나나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불평이 있고 원망이 있다면 하나님을 알았다는 죄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쁜 것입니까? 하나님을 몰라서 다 망해들어가고 공산당이 세상을 집어삼키며 기독교가 전부 깨져나가는 데도 하나님을 안 것이 죄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이 길이 귀한 길이기 때문에 아니갈 수 없습니다. 어차피 모든 것이 깨져 나갈 바에야 죽도록 충성을 하고 잘 가자는 것입니다. 46) 

진리를 탐구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성교회와 같이 성경을 본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방대한 잼대로 재야 하는 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실험하는 사람이 이것저것 갖다 맞추어 보듯이 진리나 원리를 캐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선생님이 많이 발견했지 않아요?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