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 2 - 2. 어린양 잔치와 첫째부활

훈독왕 | 20210427052247

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

제2장 참부모와 하나님의 가정

 

제2절 어린양 잔치와 첫째부활

 

1. 어린양 잔치를 통한 하나님의 이상 실현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애당초부터 땅 위에 당신의 왕국을 세우시려 하셨던 것입니다. 즉, 아담과 해와를 통해서 그 뜻을 이루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진실로 하나님 앞에 순종했더라면 그때 그들은 완성했을 것이며, 하나님은 완성한 이들에게 혼인잔치를 베풀어 지상에 최초의 가정을 이룩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이 가정은 지상에 세워진 하늘나라의 머릿돌이 됐을 것이고, 아담과 해와는 전인류의 참아버지와 참어머니가 됐을 것입니다. 에덴 동산은 이러한 천국의 상징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계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세계가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첫 아담과 첫 해와는 실패했으며, 하나님의 이상은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연의 천국을 세우시어 기쁨의 세계를 완성시키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4천 년 후에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완성된 아담을 통해서 지상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려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완성된 아담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는 예수님을 가리켜 후아담 또는 제2 아담이라고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2천 년 전에 완성한 아담으로 오셔서 실패한 첫아담의 대신자 역할을 하셨던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만의 복귀로는 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신부, 곧 한 여자가 있어야 했으며 그것은 또 다른 해와를 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완성한 아담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의 신부, 즉 완성된 해와를 복귀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됐더라면 이 가정은 에덴 동산에서 잃어버렸던 최초의 아담 가정을 복귀했을 것입니다. 

제2의 아담 해와의 완성은 선민 이스라엘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운명하신 지 약 2천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제3의 아담으로 아들을 보내실 준비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3차에 걸친 시도로 목적을 성취해 나오셨습니다. 3수가 완성수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만은 완성된 아담과 해와를 축복하사 혼인잔치를 베푸시어 지상천국의 기틀을 놓으심으로써 긴긴 역사의 목적을 이룩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종국적인 최고의 정점이 계시록에 예언돼 있으며, 이것이 곧 어린양 잔치입니다. 재림하시는 주님은 바로 그 어린양이며, 완성된 아담입니다. 주님은 완성된 아담으로 오시어서 완성된 해와를 복귀하실 것입니다. 이때에 그들은 인류의 최초의 부모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기쁨도 완전히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59)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6천 년 전의 죄 없는 부모의 자리에 사랑과 생명과 이상의 주체로 완성한 한 사람을 축복해서 인류 앞에 선한 조상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인류의 부모 되시는 무형의 하나님과 실체의 하나님이 하나되어서 아들 딸을 낳아야 영원한 영(靈)을 가진 실체의 사람이 나옵니다. 영과 실체가 하나로 합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태어난 아들 딸은 영생할 수 있는 영을 갖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아버지를 부를 수 있고, 실체적으로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아들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영원한 생명과 사랑과 이상을 중심으로 해서, 종횡으로 하나되지 못했던 것을 인류의 종말시대에 비로소 하나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하나님과 실체의 참부모가 하나되어 개인의 영육은 물론, 천지가 조화를 이루는 자리에서 자녀의 명분을 복귀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 딸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죄 없는 부모로부터 죄 없는 아들 딸, 죄 없는 종족, 죄 없는 민족, 죄 없는 세계를 한꺼번에 이루려고 했던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주님이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이상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세계적으로 이룬 세계가 돼야 이 지상이 천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체 대상이 완전히 부자의 관계로, 죄 없는 성별된, 거룩한 뜻 가운데 일치가 되어 가지고 참부모와 더불어 참자녀, 참종족, 참민족을 이루어 지상천국을 건설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최대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생명과 이상이 어디든지 연결될 수 있는 지상천국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60) 

기독교에서 말하는 어린양 잔치는 무엇이냐? 그것은 6천 년 전에 하나님이 세우려고 했던 참부모의 모습을 끝날에 다시 세워 가지고 여기에 다시 한 번 형제의 인연과 자녀의 인연을 갖추어 놓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소망이요, 우리를 이끌기 위해 6천 년 동안 역사와 더불어 고생해 나오신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61) 

아담 해와가 기뻐하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본연의 세계를 비참한 역사 가운데서 찾겠다는 구원섭리가 곧 ‘어린양 잔치’의 혼인 석상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62) 

찾고 헤매시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버지라 부르짖을 수 있는 아들 딸은 어디 갔는 고! 그런 아들 딸을 찾는 날이 소원의 날이요, 해원의 날입니다. 그날을 종교의 명사를 빌려 말한다면 어린양 잔칫날이라고 합니다. 63) 

에덴에서 두 사람이 하나되어 하나님과 통일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반함으로써 종이 되었으니, 두 사람이 완전히 통일되어야 복귀의 기원이 벌어집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어린양 잔치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어린양 잔칫날이 있는 데, 그 어린양 잔칫날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비로소 하나되는 , 즉 하나로 묶어지는 날이고, 또 그 날은 만세에 축하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에 만민은 그날을 고대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섭리의 목적도 그 곳, 인류의 역사도 그 곳, 종교의 목적도 그 곳에 가서 종결되는 것입니다. 64) 

통일은 참된 남성과 참된 여성이 하나님의 공인을 받는 입장에 서야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어린양 잔치입니다. 65) 

 

2. 어린양 잔치의 의의
인간 조상 두 사람이 하나님과 갈라짐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사연이 처참히 갈라지면서 역사를 망쳐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수습하려면 두 사람이 합해야 하는 데, 그들이 합해지는 그날이 어린양 잔칫날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여 신부를 맞이하여 신랑 신부의 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그날은 6천 년 전에 하나님을 중심한 참조상이 태어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6천 년 후에 비로소 땜질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시 붙여 놓은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이 소원하던 기준을 향해 출발할 수 있고, 인류가 타락한 세계에서 본연의 세계로 복귀할 수 있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66) 

어린양 잔치란 하나님께서 6천 년 전 죄 없는 부모요, 완성한 하나의 사랑의 실체요, 생명과 이상의 주체로 세우려고 했던 그러한 사람을 불러다가 인류 앞에 선한 조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67)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이루려던 뜻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묵시록에 돌아와서 이룬다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냥 그대로 천국 갈 수 있는 아들 딸을 낳을 수 있는 가정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 부모가 비로소 참된 부모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된 가정입니다. 그 아들 딸은 하나님의 가정의 후손입니다. 이것을 다시 묵시록에 와 가지고 신랑 신부의 이름을 세워서 다시 갖다 맞추자는 것입니다. 

그 신랑이 누구냐? 이는 완전한 참아버지격으로 오시는 분이요, 신부는 누구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참어머니로 등장하는 분입니다. 타락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가 결혼식을 했을 것인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과 결혼식을 하였으므로, 이것을 다시 찾아 가지고 비로소 하나님을 중심삼고 성례식을 올린다는 것이 묵시록의 어린양 잔치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68) 

이 지상의 섭리의 목적은 타락한 아담 해와보다 나은 남성과 여성이 오는 것이고, 메시아 사상을 중심으로 재림사상을 통해서 신랑 신부가 상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묵시록에서 말하는 어린양 잔치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참된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길을 거쳐서 만왕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69) 

하나님은 인간의 영적인 참부모요 마음적인 참부모로 계시면서 영과 마음을 합한 부모의 입장에 서 가지고, 내적인 부모를 찾아 상봉할 날을 인류 앞에 예고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어린양 잔칫날인 것입니다. 70) 

여러분은 어린양 잔치를 무엇으로 알고 있습니까? 어린양 잔치는 타락하지 않고 맞이하여야 할 참부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함으로써 6천 년 전에 이루어야 할 인류의 소원인 참부모를 맞이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71) 

하나님은 미리부터 인간의 종지조상을 위하여 어린양 잔칫날을 받아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린양 잔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직계 아들 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어린양 잔치를 하겠다고, 신랑을 맞겠다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꿀잡이가 된 것입니다, 거꿀잡이.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참부모를 잃어버려 직계의 자녀가 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72) 

어린양 잔치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축복을 받아 가정적인 기원의 기준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6천 년 역사가 찾아나온 것입니다. 어린양 잔치를 하는 신랑 신부가 참부모의 사명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73) 

기독교의 중심은 무엇이냐? 예수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이 신부를 맞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바로 어린양 잔치입니다. 이 어린양 잔치는 예수와 성신인 한 여자가 실체를 쓰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입니다. 74) 

예수님은 재림이라는 명제를 남겨 놓고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천 년의 기독교 역사는 재림 이상을 따라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한 때를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 한 때의 중심이 무엇이냐? 그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어린양 잔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린양 잔치가 뭐냐?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과 인간의 일치된 사랑이 출발을 결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보면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로 결속되어 이상적인 세계를 향하여 신의 사랑을 더듬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지 않고는 신의 사랑을 중심한 세계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75) 

개인적인 메시아로서는 세계를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려면 가정적인 메시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신을 맞이해 성부, 성자, 성신의 이념을 세워야 합니다. 신랑 신부의 이름으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영적으로 터를 닦아 나왔으니, 이제 실제로 그런 날을 맞아야 합니다. 그날이 어린양 잔칫날입니다. 즉, 예수님이 장가가고 잔치하는 날이 어린양 잔칫날입니다. 기성교인들은 똑똑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76) 

어린양 잔칫날은 흑인에게도 필요하고, 백인에게도 필요하고, 한국 사람에게도 필요한 것이요, 젊은이 늙은이 할것없이 온 인류에게 다 필요한 날이요, 영계의 영인들에게도 필요한 날입니다. 영인들도 끝날에 부모를 모시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니, 그들에게도 어린양 잔칫날은 필요한 것입니다. 천국은 아버지가 자기 처자를 데리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하늘의 법도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77) 

3. 어린양 잔치는 지상에서 이루어진다
앞으로 세계에서 새로운 역사가 진행되고 천지가 개벽할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 사건은 어떤 사건이겠느냐? 전쟁으로 세계가 통일되는 사건이 아니라 천지의 대운세에 따라 하나님의 위업을 상속받은 남성 앞에 하나의 여성이 나타나서 하나님이 그 남성과 여성에게 결혼식을 해주는 사건입니다. 그날이 천지가 개벽하는 날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어린양 잔칫날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류는 거짓 부모의 혈통을 타고났습니다. 세상에서 제아무리 잘난, 무슨 대학의 학장이 되어 수많은 학생들이 ‘우리 스승님’ 하면서 머리숙이는 사람, ‘이만한 자세 같으면 되겠지’ 하고 자기 나름대로 자격을 갖추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라도 근본을 파헤쳐 보면 전부가 사기공장(詐欺工場)에서 박아 놓은 가짜 레테르판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쁠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수없습니다. 이런 말은 나라의 공인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구주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완전한 구주가 못 되었으므로 새로운 구주가 나와야 됩니다. 무슨 구주가 나와야 되느냐? 예수님은 성령으로서의 구주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서는 구원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로서의 구주가 와야 합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들이 거짓 부모의 혈통을 받고 났으니 참된 부모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기독교인이 들으면 또 이단이라고 할 것입니다. 78)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는 어린양 잔치가 벌어져야 합니다. 그 잔치를 하는 때는 , 6천 년 전에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중심으로 결혼식을 해주려고 했는데 그들이 악인으로 깨져 나갔기 때문에, 그것을 재봉춘(再逢春)하여 비로소 하나님 입회하에 그들을 참다운 인류의 부모로 등극시키는 순간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재림사상입니다. 

그 부모는 참감람나무로 와서 타락한 인간인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 가지를 갖다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로 만들어 지상천국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구름 타고 와서 무슨 천년 잔치를 한다고요? 신랑되신 주님이 오시면 떡은 무슨 떡을 드리고, 옷은 무슨 옷을 드릴지 준비도 안 해 놓고 잔치를 하겠다고 생각만 하는 기독교인들, 참 한심합니다. 79) 

하나님의 제일 왕자가 신부를 데려다가 어린양 잔치를 한 다음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가야 되겠습니까, 땅에서 살림살이를 해야 되겠습니까? 찾고자 하는 분을 찾았으면 그 자리에서 춤도 춰야지 구경이라도 한번 하지요. 왜 오자마자 잘 믿는 기독교인들을 전부 다 데리고 올라가서 공중 잔치를 합니까? 공중 잔치는 무슨 공중 잔치예요. 올라가기는 어디로 올라간다는 것입니까? 요즘엔 인공위성을 타고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또 내려와야 합니다. 공중에서 돌기 위해서 올라가는 것이지 어디 가기 위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결국 예수님의 목적은 신부를 얻어 가지고 가정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통일교회에 갔더니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이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더라. 듣고 보니 기분 나쁘더라’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자기들은 아마 일등 신부나 특등 신부가 되어서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갈 줄 알았던 모양이지요? 그러나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어쩔수없는 것입니다. 80)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어린양 잔치를 소망하고 있지만, 이 어린양 잔치는 공중에 들려 올라가서 하는 잔치가 아닙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가정적 기준을 잃어버렸으니, 이제 대표적으로 완성한 아담이 완성한 해와를 찾아 가정을 이루는 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서 구원이 열립니다. 타락한 부모의 혈육을 통하여 낳았으니, 돌감람나무를 잘라 참감람나무로 접붙여서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참열매를 맺게 해야 합니다. 81) 

4. 종교에서는 왜 독신생활을 강조해 왔나
참부모가 나오려면 먼저 참된 남자가 나와야 되겠지요? 지금까지 종교는 참된 남자 하나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완성한 참된 남성을 찾기 전까지의 사랑은 천륜의 법도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고차적인 종교인 기독교에서 왜 독신생활을 하느냐? 불교도 왜 독신생활을 하느냐? 

완전한 남자가 나와서 완전한 여자를 맞아 사랑의 법도를 세우지 못했는데, 껄렁껄렁한 남자들과 껄렁껄렁한 여자들이 결혼하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시겠어요? 아직까지 본래의 결혼식을 못해 보았는데…. 타락된 결혼식을 한 것이 하나님의 원한 중의 원한이요 슬픔 중의 슬픔인데, 그나마도 거기에 또 반발을 할 것이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는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때까지 독신생활을 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 앞에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완성한 남자, 참된 남자가 나와 가지고 참된 여자를 만날 때까지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타나는 것이 참부모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사상은 재림사상입니다. 재림주는 인류의 조상되는 참아버지격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82) 

종교가 나와 가지고 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패턴으로 이상형의 하나의 남자를 다시 찾기 위한 표준을 따라 가지고, 그 표준 앞에 일체되는 대상의 실체를 그려보기 위해서 수많은 종교의 교주들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남자 하나를 못 찾았습니다. 남자를 못 찾은 이 권내에 있어서는 부모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독신생활 하라 이겁니다. 나라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나라도 참된 개인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가정도 필요없는 것입니다.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로부터 이루어지는 가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먼저 있어야 할 것이 참된 남자와 여자입니다. 역사시대에 아직까지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의 패턴을 못 찾아 놓은 것입니다. 83) 

아직까지 시집 장가가는 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직까지 인간의 시조가 시집 장가를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짓 자손으로 태어나서 참부모의 혈통의 인연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태어나지 않은 거와 마찬가지인 너희들이 시집 장가가 뭐냐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독신생활을 강조했습니다. 84)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나에게 합당치 않고 아내나 아들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그 다음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대관절 어떤 분이냐? 예수님은 사랑의 왕자라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의 사랑의 왕자이니까, 사랑의 왕자를 모시려면 사탄 세계의 그 누더기 사랑판에서 굴러다니던 그냥 그 몸뚱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니 그 이상 사랑하지 않고는 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찾아가는 길은 세상의 속된 사랑 이상의 사랑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연이 있기 때문에 도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독신생활을 하라 하는 것입니다. 

독신생활은 할수없어서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 하늘과 속삭이는 그런 길을 가면서 독신생활을 하더라도 불행을 느끼지 않는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불행이나 불만을 느끼면서도 마지못해 독신생활을 하게 되면 죽은 후에는 지옥 가운데에서도 가장 나쁜 곳에 가는 것입니다. 85) 

여러분, 여기 가정을 가진 분들도 있지만, 그 가정이 누구의 보호 밑에서 이루어진 가정입니까? 어떤 사람은 ‘내가 오늘 살고 있는 것이 이만하면 양심적이고 나는 사회적으로 말을 하더라도 누구에게 지지 않을 인물이다. 그러니 어디 가든지 양심의 가책을 안 받고 떳떳하고 자신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근본을 파헤쳐 보면, 인류 시조가 원수의 올무에 걸려 가지고 그 권내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권내에서 이루어진 가정이 하나님의 공인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종교에서는 독신생활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여러분들도 아들 딸 많이 낳았는데 독신생활을 했어야지요. 

이것은 통일교회의 문선생의 말이 아닙니다. 종교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지요. 여러분이 알다시피 불교도 그렇지 않습니까? 천주교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거 왜 그러는 줄 알아요? 하나님께 가까이 가니까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참된 조상이 되어야 했던 분들이 아직 결혼식을 못해 봤습니다. 그런데 태어나지도 않는 것과 같은 입장에 있는 인간들이 결혼식을 해요?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난 아들 딸들은 전부 다 구원의 손길을 거쳐서 복귀의 길을 가야 합니다. 86) 

사랑의 이상을 지닌 하늘은 어쩔수없이 역사적으로 종교를 세워 독신생활을 강조했습니다. 부부가 참다운 사랑에 얽히어 하늘의 기준 앞에 설 수 있다면 되겠지만 잘못하면 하늘의 사랑을 잃어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에, 하나라도 하늘 앞에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독신생활의 법도를 세운 것입니다. 87) 

천주교의 신부와 수녀, 불교의 비구승 비구니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종교가 지향하는 목적이 틀렸다는 것인가? 틀렸다고 한다면 그런 종교가 지금까지 수고해 나온 터전, 그 종교의 배후에서 역사해 오신 하나님 자체도 다 거부당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어느 한 때에 참된 가정이 나와야 되기 때문에 그 가정을 맞기 위한 준비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불교와 천주교에서는 독신을 강조하느냐? 그것이 전적으로 인간의 행복의 터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 땅 위의 어떠한 종교도 행복의 터전이 무엇이라고 제시해 주지도 않았고, 가정의 기틀을 중심삼은 계획도 없었거니와 그 가정 자체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런 가정이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신을 강조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인간들이 순결하고 올바른 가정을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88) 

옛날에는 도(道)의 길을 가려면 시집 장가가는 길을 허락치 않았어요. 그것은 왜? 종들이기 때문에…. 부모가 아직까지 잔치하지 않았는데 잔치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시집 장가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89) 

천사장이라는 것은 어떠한 존재냐? 천사장에겐 상대의 인연을 허락치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보면 ‘한 여인이 일곱 형제를 남편으로 삼고 살다가 죽은 후에 저나라에 부활할 때에 그 일곱 남편 중 누구의 여인이 되겠느냐? ’ 하고 사두개 교인들이 예수에게 묻게 될 때, 예수님은 대답하기를 ‘영계에는 시집 장가가는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런 말을 했느냐 하면, 천사장권 복귀의 시대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 상대의 인연을 갖지 못한 것이 천사장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가 찾아나온 것은 무엇이냐? 천사장 사명권 내에 서 있기 때문에 상대의 인연을 부여할 수 없는 것이 종교가 걸어나온 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홀로 사는 독신생활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90) 

원리로 볼 때 세상의 남자들은 천사장의 후손이기 때문에 결혼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본연의 부모가 결혼을 못해 봤는데, 껄렁껄렁하고 시궁창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제멋대로 사랑을 해요? 그런 사랑은 비법입니다. 그래서 고차적인 종교가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91) 

천사가 무슨 상대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종교에 있어서는 독신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원래 비구승이 원칙입니다. 대처승은 불합격자입니다. 사실은 기독교회 목사들, 전부 불합격자들입니다. 92)

여자들이 왔으니 한마디 해야 되겠습니다. 여자라는 것은 요사스러워요, 요사스럽지 않아요? 여자가 지금까지 벌을 받았어요, 복을 받았어요? 「벌을 받았습니다」 요사스러우니까 벌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자들이 왜 고생을 했느냐 하면, 남편이 자기 남편이 아니기 때문에 고생을 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남자들은 천사장형입니다. 원래 남자들은 색시를 맞이하게끔 안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가 높은 종교일수록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거예요. 

남자는 천사장형인데, 본래 천사장에게는 그때 상대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원리적으로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에게는 그가 남편이 아닙니다. 천사장은 자기 아내가 아닌데도 제멋대로 유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본 남편이 아닌 천사장에게 엉뚱하게 당한 거예요. 이렇게 된 것입니다. 93) 

오늘날까지 종교가 추구해 온 것은 상대(相對)에 대한 불가침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가 독신생활을 강조해 나왔습니다. 가정적 상대 이상은 선생님으로부터 최초로 선포된 축복입니다. 94) 

5. 첫째 부활에 참여할 자
요한계시록 14장 1절을 보면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4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아버지의 택함받은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어린양의 이름만 가지고는 안 되고 아버지의 이름까지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14만4천 명에 들어갈 자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인(印)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신부라고 칭하여도 아버지께서 축복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이는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지 않은 영원한 인류의 주인공’이라고 축복해 주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14만4천의 무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95) 

오늘날 사탄 마귀가 품고 있는 세계 30억 인류 중에 기독교인이 얼마나 됩니까? 이 기독교인들은 전부 다 주님이 오실 때 첫째 부활에 참여해야 된다고 그러는데, 첫째 부활이 그렇게 쉬운 것입니까? 그것도 알지 못해 가지고 어떻게 부활을 합니까? 그들 중의 몇 퍼센트가 부활하겠습니까? 그 사람들만 남겨 두고 세계 인류를 전부 다 칠 것이다! 그럽니까? 그런 허황된 신앙을 가지고는 절대로 안 됩니다. 땅을 구해야 합니다. 땅을 구해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땅 위에서 개인을 사탄세계로부터 완전히 구해야 합니다. 가정도 땅 위에서 완전히 구해야 합니다. 하늘의 종족, 민족, 나아가 국가를 땅 위에서 구해야 합니다. 공중이 아닙니다. 땅 위에서 구해야 돼요. 타락할 때 공중에서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땅에서 잃어버린 것입니다. 복귀라고 하는 것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다는 것을 말합니다.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곳에서 찾아야 되지요? 땅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에 땅에서 되찾아야 합니다. 

실체를 쓰고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 타락을 했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중심삼고 사탄을 완전히 부인하고, 하늘편에 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 딸의 입장에 선 아담 해와의 대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이 지배하지 못합니다. 사탄을 지배하는 거지요. 사탄은 본래 천사장이었습니다. 천사장은 인간에게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준을 되찾아 가는 것입니다. 96) 

오늘날 기독교인들과 같이 성경을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또 그들이 믿는 대로 된다면 인류 앞에 소망의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만민이 심판받고 기독교인 14만4천 무리만 구원받는 다는 것, 그것은 이기주의도 이만저만한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97)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14만4천 무리, 하늘의 인침 받은 아들 딸, 그 말들은 좋지만 해원 복귀의 조건을 조성하고, 천륜의 섭리를 대행하는 하늘의 아들 딸이 그들의 말대로인가! 알고 보니 하늘이 인(印)칠 수 있는 아들 딸은 하늘 대신 땅을 대하여 울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만 되게 돼 있습니다. 98) 

예수님은 하나님의 축복권 내에서 지낼 수 있는 하나의 신랑 신부의 이념을 그리워하고 소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이룰 수 있는 어린양 잔치를 중심삼아 14만4천 무리를 품고, 아들과 더불어 환희의 노래와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리기를 바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간절한 염원이었던 것입니다. 99)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어린양 잔치에 와서 제1차 부활에 동참하려면 예복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복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정성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있는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눈으로 보는 시선도 정성어린 시선으로, 코로 냄새를 맡는 것도 정성스럽게, 듣는 것도 정성스럽게, 육신으로 느끼는 모든 감각도 정성스럽게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성의 관문을 통과해서 마음이 정성어린 몸 앞에 감사하다고 할 수 있는 자신이 되지 않고는 하나님을 모실 수 없는 것이 천리 원칙입니다. 100) 

앞으로, 참된 아들 딸들이 들여야 할 정성은 어떤 정성이냐? 현실적인 생활 무대에서의 정성이 아니라 소망의 정성, 영광의 정성, 충성의 정성, 모심의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러한 정성을 남기고 가야만 천국이 내 천국이 되고 그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정성은 탕감 도상에서의 정성이었지만, 앞으로의 정성은 하늘을 모시기 위한 정성이어야 하고, 모시는 자리에 동참하기 위한 정성이어야 합니다. 여기에 동참하는 무리는 첫째 부활에 동참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101) 

첫째 부활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축복의 문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팔십 노인들도 재봉춘해야 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다시 직접 시집 장가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제3 이스라엘 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 또 제3 이스라엘 국가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축복의 문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려다가 돌아가신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겠지요? 그러면 그것이 예수님 혼자만의 소원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로 태어나 장성하여, 천지간에 비로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룬 개성을 완성한 일남 일녀가 되면, 하나님께서 ‘내 품에서 영원 무궁토록 살라’고 하시면서 결혼시켜 주는 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