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 2 - 1. 예수와 축복

훈독왕 | 20210427051517

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

제2장 참부모와 하나님의 가정 

 

제1절 예수와 축복

 

1. 메시아는 누구인가

타락한 아담과 해와의 후손이 태어나면서부터 땅 위에는 타락한 가정이 이루어지고 타락한 종족, 타락한 국가, 타락한 세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타락한 세계, 원수의 세계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찾아야 하는 데,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사람을 순리적인 입장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원수의 세계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쓰실 수 있고 세우실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는 싸움의 역사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한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앞장서서 그 환경을 개척해 주고, 하나님의 내정을 통고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의 개인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배후에서 죄악된 인류 역사를 다시 수습하시기 위해 수천 년 동안 한 개인을 찾는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1)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에,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를 동원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모색하고 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섭리해 나오는 그 귀결점은 어디에 있는 가? 그 세계가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나라가 이루어져야 되고, 나라가 이루어지기 전에 민족, 민족이 이루어지기 전에 종족, 종족이 이루어지기 전에 가정, 가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한 사람은 누가 되어야 되겠는가? 여자가 되어야 되겠는가, 남자가 되어야 되겠는가? 누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남자입니다. 창조원리에 입각해서 보더라도 사람을 창조할 때에 아담부터 지었습니다. 아담부터 지었기 때문에 아담을 통해야 됩니다. 성경에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서 해와를 지으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본따서 지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2) 

지금까지의 6천 년 역사를 두고 볼 때에 그것은 남자를 찾는 역사였습니다. 남자를 찾아온 것입니다. 남자로 말미암아 여자가 복귀되기 때문입니다. 창조할 때도 남자를 창조한 후에 여자를 창조하였기 때문에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의 원칙은 변함없는 것입니다. 3) 

메시아라는 사람은 도대체 하나님 앞에 어떤 남자인가? 메시아는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었던 오직 하나의 사랑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랑이 전체가 집결하고 출발점을 같이하여 일치된 방향의 종합된 사랑을 받는 최초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처음으로 태어난 장남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처음으로 태어나고 하나님의 사랑 앞에 선 하나님의 장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했습니다. 독생자라는 것은 전체의 사랑을 받는 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체가 되면, 메시아는 남자로서 절대적인 주체권에서는 사람입니다. 부자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체의 사랑을 개인에게로 돌리고, 그리고 가족에게 돌리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 돌려 주는 사람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장남으로서 모든 권을 초월한 기준에 있어서 대표적인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가지고 오는 사람입니다. 4)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메시아는 누구이겠습니까. 메시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을 수 있는 아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예수를 독생자라 했습니다. 독생자는 하나님 앞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비로소 처음 태어난 아들을 대신해서 하는 말입니다. 5) 

예수는 어떠한 분으로 왔느냐?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로 왔기 때문에 독생자의 사랑을 받았던 것입니다.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 받을 수 있는 독생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가운데 독생자라는 말은 위대한 말입니다. 

인간 시조 아담 해와가 미급한 자리에 서서 사랑의 대상권을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사랑을 체휼한 입장에 서서 인류의 소망의 조상으로 등장할 수 있는 자격자로 왔던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를 통하는 길 외에는 인간의 해결 방안이 없기 때문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것을 간파하고 가자는 것입니다. 6)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처녀 총각들이 사랑을 할 때 사랑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에 하나되면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가능한 날에는 세계 통일은 자동적으로 될 것입니다. 우리 타락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이뤄지는 때는 메시아가 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켜 주는 때입니다. 메시아는 바로 몸과 마음이 하나됨으로써 하나님의 참사랑이 깃들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도달할 때까지 흔들리지 않고 새 길을 닦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메시아는 세계, 국가, 가정, 개인을 통일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온 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랑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메시아를 보냄으로써 사랑의 세계를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를 통해서 그러한 일을 하시려 하기 때문에 종교는 필요한 것이고, 만민에게는 메시아가 절대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가르친 이유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메시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 라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의 참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사랑을 가진 가정의 기준을 이루어 놓자는 뜻입니다. 7) 

구세주는 어떤 분이십니까? 인간은 타락으로 참사랑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세주는 참사랑을 찾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 잃어버린 참사랑을 되찾아 주기 위해 오신 분이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8) 

메시아란 어떠한 분이냐? 인간의 무한한 가치, 무한한 보화를 지닐 수 있는 그런 인격을 재현시켜 가지고 오시는 분입니다. 이분은 하늘 땅을 주관하고, 하늘 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비준과 측량의 위치를 재선정하고 나서 인간 세상에 오시는 분입니다. 9) 

하나님은 인간이 동반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누구보다 귀한 메시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류와 접할 수 있는 하나의 대표적인 존재, 친구와 같고 스승과 같고 더 나아가서는 아버지와 같은 입장으로 가장 귀한 하나의 대표적인 존재를 보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표적인 존재가 누구냐 하면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는 우리 인간에게 둘도 없는 친구요, 둘도 없는 스승이요, 둘도 없는 아버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 한분밖에 없는 최대의 존재로서 이 땅 위에 보내진 사명자가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메시아를 붙들고 눈물짓고, 그 메시아를 위하여 생명을 투입하고, 그분을 자기의 생명처럼 사랑하면 세계사적이고 천주사적인 하나님의 생명권과 사랑권 내에 돌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사랑의 선물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0) 

메시아는 바로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만물이 소망해 온 참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진리의 화신체(化身體)로 오셔서 진리를 말씀하시되,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된 자리에서 진리를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참된 행동을 하되 사랑을 동기로 삼아서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생활은 규제에 따라 형식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참된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구하되 세상적인 정략과 수단 방법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이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분입니다. 그러한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이러한 한 개인으로부터 참된 사랑의 운동이 전세계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 참된 한 개인이 한 여자와 부부의 인연을 맺어 한 가정을 이루고, 이 가정을 중심으로 하나의 종족과 민족, 국가, 그리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고 인류와 만물이 바라고 있는 ‘전체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11) 

예수님은 어떠한 자격을 가지고 왔느냐? 아버지로 오셨습니다. 인류의 참아버지, 즉 참조상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참어머니를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인간이 참어머니를 사탄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죽기를 각오하고라도 빼앗아 와야 합니다. 

끝날에 주님이 오셔서 신부를 맞이할 때 신부가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선진국가에서 여성운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 속에 중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심이 없으니 중심인 예수님이 다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들에게 형제로서의 구주의 사명만을 갖고 왔다면, 예수님이 다시 오지 않아도 형제로서 구주의 역사는 이 땅에서 얼마든지 계속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사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와야 합니다. 아버지는 둘이 될 수 없으니 반드시 다시 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2) 

예수님은 누구며, 왜 오셨느냐? 인류의 참부모요, 참아버지의 사명으로 오신 분입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인류의 참아버지가 되었을 것이고, 해와는 참어머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인하여 그 축복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4천 년의 긴 역사를 통하여 준비하신 터전 위에 예수님을 참아버지의 사명자로 보내신 것입니다. 13) 

하나님은 우주 가운데 아담 하나를 지었습니다. 아담 하나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망이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담 하나 짓고, 아담 하나만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까 해와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보기에 선한지라, 좋은지라 하셨습니다. 종적인 하나님과 아담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횡적인 대상을 갖추어 가지고, 그것이 상대적 인연이 성사돼야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 가운데서도 아담과 같은 존재가 지상에 재출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재림 사상입니다. 그 아담이 나오지 않고는 해와를 지을 수 없습니다. 아담이 나오기 전에 사람이 있었더라도 그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흙덩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같은 꼴은 있지만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인된 창조이상 법도로서 사람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단 아담만이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다시 탕감복귀하는 것이 재림사상입니다. 둘째번 나타난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가 나와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원하는 해와, 신부를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14)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무엇으로 오시느냐? 예수님은 제2의 아담으로 오셨지만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제3의 아담으로 오십니다.

제3의 아담이 왜 와야만 됩니까? 그것은 이 땅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 위에서 사고가 났으니 이것을 수리해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수리할 수 있는 , 고장나지 아니한 새로운 주인이 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새로운 주인이 와서 사고난 것을 언제 고쳐 주실 것인가를 고대해야 합니다. 

제3의 아담이 누구냐? 이 땅 위에 인류 조상의 이름을 지니고 세번째로 오시는 분입니다. 15) 

우리는 끝날이 되면 재림주가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땅 위에 오실 것인고? 종의 시대가 지나고 아들의 시대가 지나갔으므로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셔서 무엇을 하실 것이뇨. 인간 개체개체에 아버지의 마음을 불어넣으실 것입니다. 아들의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의 마음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마음인 것입니다. 16) 

구세주는 어떠한 분이냐?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믿음과 소망의 실체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목적은 믿음의 실체인 메시아와 일체가 되는 것이요, 소망의 목적도 사랑의 목적도 그분과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인류를 수습하여 에덴을 복귀하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 메시아이기 때문에 그분을 완전히 차지하는 사람은 그분의 세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요, 그분의 사랑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하나님을 완전히 붙들 수 있기 때문에 그분을 완전히 붙드는 사람은 하나님을 붙들 수 있는 것입니다. 17) 

우리가 기필코 찾아야 할 단 하나의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하나의 문제가 무엇이냐? 이 하나의 문제가 어디서 풀릴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그 사랑은 거짓 부모한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에 의해 이 땅 위에 현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있기 위해서는 먼저 참아버지가 와야 됩니다. 그 아버지의 인격과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 지니고 이 지구성(地球星)에 찾아오는 분이 오늘날 종교인들이 믿고 있는 종교사상의 중심적인 존재, 즉 재림주라는 것입니다. 18) 

 

2. 예수와 축복
지금까지의 6천 년 역사는 무엇을 찾기 위한 역사냐? 하나의 남성을 찾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아담 가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찾아 나온 것이 무엇이냐? 즉, 그 수고의 내용은 무엇을 찾기 위한 것이냐? 하나의 아담인 남성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 남성을 찾은 후에는 뭘 해야 할 것이냐? 그 남성으로 말미암은 하나의 여성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실 때, 아담을 먼저 창조하신 후에 그 아담을 통해서 해와를 창조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먼저 아담을 찾기 위한 역사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하고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19) 

아담 대신 탄생한 예수는 어떤 존재냐? 이 세상에 남자가 수없이 많았지만 하나님 앞에 필요한 남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남녀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의 중보로 태어난 하나의 남자가 있었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는 타락한 아담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완성한 자리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창조원리를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지으신 후에 그 모양을 본떠서 해와를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날 수 있는 완성한 남자, 즉 참된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재창조의 원칙에 따라 해와를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남성을 위주로 하여 이 땅 위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해와를 찾는 운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어떻게 찾아 세우느냐? 아담을 통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흙으로 아무렇게나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20) 

아담 이후에 실패한 모든 것들을 탕감하기 위해서 하나의 남성으로 태어나신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도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는 혼자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한 섭리의 모든 내용을 상속받았다 하더라도, 예수님 혼자서는 국가를 형성할 수 없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새로운 가정을 편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땅 위에 있는 수많은 여성들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을 찾아야 됩니다. 즉,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전체를 걸어 놓고 수많은 여성들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21)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은 그 상대자를 얻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상대자를 어디서 얻어야 하겠습니까? 천상에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의 결과로 해와를 지상에서 잃었기 때문에 그 상대자 역시 지상에서 재창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2)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지 않았을 때, 즉 에덴 동산에 지어 놓고 그 아담이 장가가기 전 입장을 대표한 인격자로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그 타락하지 않은, 장가가지 않은 에덴 동산의 아담의 입장을 대신해서 오시는 주님은 결혼식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와서는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느냐 하면 여자, 즉 어머니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23) 

아담으로 오는 메시아는 어떤 자리에서 오느냐 하면 장성기 완성급 자리에서 오는 것입니다. 장성기 완성급 자리는 결혼식을 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24)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했습니다. 신부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려고 그랬습니까? 사랑은 남자와 여자 둘에 귀결됩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우주사적인 남자의 대표자와 여자의 대표자는 부풀어오르는 가슴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끌어들일 수 있는 그 본연의 인연을 갖추어야 합니다. 25) 

예수님은 신랑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신랑으로 오신 예수님 혼자서 사랑을 완성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찾고 있는 완성된 여성이 있다면, 예수님의 상대자로서 완성된 여성이 있다면 예수님이 그 여성을 사랑했다고 해서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완성된 여성과 사랑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말리시겠습니까. 26) 

여러분, 생각해 봐요. 어떤 부모에게 사랑하는 아들 딸이 있는 데, 그 아들 딸이 다 성장해서 장가도 시집도 못 가고 죽었다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편하겠습니까, 안 편하겠습니까? 그 부모는 ‘아이구! 그놈의 자식, 장가도 못 가고 죽었구나’ 하면서 탄식할 것입니다. 그 부모는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몇천 배의 심정을 가해서라도 해주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27) 

하나님은 메시아, 즉 예수님이 탄생함으로 말미암아 에덴 동산에서 잃어버렸던 그 아들이 탄생하던 때의 기쁨을 다시 느낄 수 있는 때를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은 태어나서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싸움을 잘 해야 하는 것도, 돈을 잘 벌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장가를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장가를 갔습니까? 못 갔습니다. 왜 장가 못 갔습니까? 예수님은 신랑으로서 너무나 잘 갖추어져 있었지만, 신부로서 갖추어진 여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28)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었느냐? 장가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기성교회 사람들이 알면 놀라자빠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바로 장가를 가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장가를 가야 되느냐? 인류의 출발이 타락한 조상으로부터 되었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아직껏 참된 조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참된 조상이 될 사람을 성혼시켜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중심삼은 직계 혈통의 가계를 만드는 것이 창조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핏줄이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사람이 아무리 잘 믿더라도 양자밖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른 것입니다. 29) 

기독교인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가를 가야 했던 것입니다. 장가 안 가려면 뭘 하려고 남자로 태어났겠습니까? 두루뭉수리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지요.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중성으로 와 가지고 편리한 대로 여자 행세도 하고 남자 행세도 할 것이지요. 

오늘날에는 허무맹랑한 것을 맹신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주님이 구름을 타고 와요? 구름을 타고 와서 어떻게 한다는 것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그들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주님이 다 해주는 것을 나는 따라가기만 할 테니 좋기만 하지’ 합니다. 도둑같으니라고. 자기 아버지 어머니 고생시켜 가지고 전부 자기만 좋겠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타락을 땅에서 했으니 복귀도 땅에서 해야 합니다. 땅바닥 가운데서 잃어버렸으면 땅에서 찾아야지 어디 공중에서 잃어버렸다는 말이 있습니까? 허무맹랑한 소리 말라는 것입니다. 30) 

신랑되신 주님은 신부를 맞아야 합니다. 그러면 신부를 세워서 무엇을 할 것이냐?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 한다고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이단 취급합니다. 그러나 누가 이단이고 누가 정통이며, 누가 망하고 누가 흥할 것인지는 두고봐야 압니다. 31) 

예수님은 남자예요, 여자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온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의 공약인 대우주의 사랑을 완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완결시키려면 남자 혼자 될 수 없기 때문에 신부를 찾아야 됩니다. 성경 계시록에 ‘어린양 잔치’라고 말했어요. 결국 예수님이 신부를 맞아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장하는 사랑, 에덴 동산에서 해와는 하나님이 보장할 수 있는 사랑을 가질 수 있는 주체가 못 됐습니다. 남편 후보자 아담을 남겨 놓고 사탄의 꼬임에 빠진 것입니다. 이처럼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장가가야 된다고 말한다고 문선생 이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남자라면 남자의 감정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생리적 예수를 부정하고, 무형적인 하나님과 같이 합당한 예수…. 그건 실질적인 예수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허황된 종교이기 때문에 물러가고 통일교회는 실질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발전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핵심은 어디서 찾느냐 하면…. 완성된 남자가 가는 길 앞에는 여자를 만나야 할 필연적인 운명이 있어요. 즉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가 맞게 되어 있는 데, 이것이 언제나 맞게 될 때 하나님은 벼락같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주의 사랑의 핵심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제일 강한 영향권을 미치는 힘이 사랑의 힘입니다. 32) 

3. 원래의 예수님
타락은 고장난 것과 같습니다. 고장났으니까 수리공장이 필요하고, 기술자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고장났고, 가정적으로도 고장났고, 국가적으로도 고장났고, 세계적으로도 고장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래 하나님이 완전한 것과 같이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생명과 완전한 이상이 일치될 수 있는 , 고장나지 않은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이야기해 봅시다. 그는 나면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아들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계십니까? 못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들 딸이 커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결혼식을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죄 없는 아들 딸을 낳아야 합니다. 여러분, 죄 없는 아들 딸 낳아 봤어요? 원래는 죄 없는 자식을 낳아 죄 없는 아버지가 되는 동시에 그 다음엔 죄 없는 할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엔 하나님도 이 땅 위의 완전한 왕이 필요하고 여왕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언제 하나님이 그런 한때를 가져 봤어요? 하나님도 사탄을 추방하고 그런 때를 맞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완전히 한꺼번에 맞춰 가지고,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사랑하고, 가정적으로 사랑하고, 국가적으로 사랑하고 세계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 그러한 나라와 그러한 백성과 그러한 아들 딸과 그러한 가정을 갖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조상을 가졌고, 타락한 할아버지 할머니, 타락한 아버지 어머니, 타락한 민족, 타락한 국가, 타락한 세계를 가졌지만 타락하지 않은 세계와는 관계 없는 패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한꺼번에 개인적으로 수리하고, 가정적으로 수리하고, 종족적으로 수리하고, 민족적으로 수리하고, 국가적으로 수리해서 내세운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 선민입니다. 

예수님이 온 목적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타락하지 않은 완전한 사람으로 와서 완전한 가정을 이루어 완전한 할아버지가 되고 완전한 왕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대상으로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을 창조했습니다. 이 둘이 타락했으니까 이 둘을 다 다시 수리공장에 맡겨 놓아야 됩니다. 

완전한 아담 완성자로 오신 예수님에게는 신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줄 수 있는 신부가 필요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신부를 맞아서 결혼했다면 예수님의 아들 딸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랬더라면 오늘날 로마 가톨릭이니 개신교의 수많은 교파들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가 왕이 되어 봤어요? 예수는 이러한 뜻을 다 이루지 못했으니 다시 와야 하는 것입니다. 제1 이스라엘이 되는 유대 민족은 이걸 못 했기 때문에 망하고, 기독교가 제2 이스라엘의 사명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33)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아 2천 년 동안 예언자를 통해서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예수를 보내셨지만, 이스라엘 나라와 교회가 하나되어 예수와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 했을 텐데, 이들이 일체가 못 됨으로써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되었으면 예수는 유대교의 대제사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엔 유대 나라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데, 제사장이 되는 데도 독신이요 왕이 되는 데도 독신이어야 되는 가? 그것은 그럴 수 없습니다. 만일 독신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예수님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가정이 나왔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더라면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참된 부모의 자리를 이루어야 하는 것을 예수가 대신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독교를 믿는 목사가 왔으면 놀랄 것입니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도 장로교를 믿었고 예수를 믿은 사람입니다. 그 내용을 헤치고 보니 내용이 이렇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많은 반대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인 데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34) 

예수님은 개성 완성을 한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주체적인 남성으로서 신부되는 한 여성을 맞아 가정적인 차원의 하나님의 사랑의 전통을 남겨 놓지 못한 불운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가정이 단 하나도 나타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메시아의 권위 위에서 이루어진 참된 부부의 사랑,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참된 부모의 사랑과 참된 부자(父子)의 사랑의 전통이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이러한 가정이 이루어졌다면, 자동적으로 역사의 과정을 통하여 이 가정을 구심점으로 해서 횡적으로 또는 종적으로 발전하게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하나의 세계 성립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한 가정의 전통을 세워 놓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고 온 인류와 만물이 기뻐할 수 있는 중심적인 기반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터로 한 하나의 가정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기본으로 한 참된 종족의 기반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며, 참된 민족적 기반과 국가적 기반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참된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35)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 사상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으나 불운하게도 그분은 그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의 운동을 전개시킨 최초의 하나님의 참아들이 되었을는 지는 모르지만, 메시아적인 사랑을 중심하고 개인적인 인격을 완성한 터 위에서 참된 사랑을 중심한 가정을 이루었느냐, 그리고 그러한 가정을 기본으로 해서 하나의 참된 민족과 국가, 세계를 이루었느냐 할 때, 우리는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 말에 반발할는 지 모릅니다만,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36)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사명이 무엇이냐 하면, 지상에 메시아의 상대자를 구해 오는 것입니다. 그 메시아 앞에 해와를 만드는 것입니다. 

절대 복종하는 해와권의 확대를 이룩하여, 모두가 환영하는 입장에서 사랑의 주체인 메시아를 맞이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전체가 연결됩니다. 그와 같은 환경, 세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구약시대의 사명이요, 신약시대의 사명이었습니다. 37) 

본래 예수님은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아도 되는 입장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죽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십자가에 죽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었다고들 말하지만, 그런 시시한 얘기는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지 않고는 구원을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38)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무엇 때문에 실패하였느냐? 예수님이 오셔서 30여 년 동안 자신이 해야 할 말씀을 다하지 못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예요. 또한 공생애노정에서 제자들과, 혹은 친척과 해야 할 모든 것을 못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예요. 단지 그 실패의 동기는 예수님이 축복의 자리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십자가를 지시게 된 직접적인 동기도 이스라엘 민족이 배반하고 유대교인이 반대한 데에 있다기보다는 요셉의 가정에서 그러한 축복의 한날을 갖지 못한 데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한날을 가졌더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귀일된 십자가의 원인과 동기가 무엇이냐? 축복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39) 

예수님이 가정과 완전하게 하나되었더라면, 예수님은 개인의 기준을 넘어 가정 기준의 편성이 가능합니다. 부모님과 형제 자매 및 친척들의 축복 속에 결혼을 하시어 새로운 선의 자녀가 지상에 태어나야 합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완성하였으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일체를 이룬 이상적 가정이 출발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담 가정을 탕감해야 할 사명을 갖고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결혼도 그와 같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요셉가정이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기대를 이루지 못하고 사탄의 침범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으므로, 새로운 선의 혈통을 이어받은 가정은 아직 출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를 탕감시키기 위하여, 지금까지 기독교를 세워서 영적으로 세계적 기대까지 끌어올리는 역사를 해 오신 것입니다. 40) 

예수님이 죽지 않고 이상적 상대자를 만나 하나님과 하나된 그 사랑 가운데서 부부가 되어 직계 자녀를 낳았다면 오늘의 세계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직계 자녀가 태어났다고 하여 하나님이 노하시고 죄를 지었다고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후손이 탄생했다면 지금쯤이면 세계 인구의 상당부분이 예수님의 후손들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후손들로 인하여 오늘의 세계는 이미 천국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한 타락인간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예수님 직계 자녀를 갖는 것과는 비길 바가 아닐 것입니다.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딸, 하나님의 손자 손녀를 대할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41) 

예수님은 기반을 잃어버린 환경에 서시게 됨으로 말미암아 세례 요한을 떠나 사탄세계에 가서 싸워서 가정기반과 종족기반을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후에도 유대 민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불신함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 중심한 가정을 이루시지 못하고 끝내 ‘나는 신랑이요, 너희들은 신부라’는 말씀을 남기고 골고다 산상의 죽음의 자리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42) 

4. 예수님의 한
예수님은 인류의 참조상의 입장에서 축복을 받지 못하고 가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슬픔이요, 예수님의 슬픔입니다. 43) 

2천 년 전에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에게 한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는 가? 장가를 가지 못한 것입니다. ‘장가’란 한국어가 의미있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가’란 단어를 뒤집어서 보면 가장이 되고 바로 보면 ‘장가’입니다. 장가를 가게 되면 가장이 된다는 것으로, 안팎이 맞는 말입니다. 장가를 들어 가장이 되려면 아내가 있어야 하고 또한 자녀가 태어나 가정을 이뤄야 합니다. 

예수님이 장가를 가지 못함으로써 인류 역사는 비극을 맞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가리아 가정은 물론이요 유대 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멸망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44)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성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의 그런 죽음이 뒷받침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예수님은 ‘내가 소원하던 상대적인 존재, 즉 내가 찾고 있던 참된 어머니의 모습은 이래야 된다’고 마음속에 신부의 형상을 그리면서 죽음의 고개를 넘어갔습니다. 온 마음에 사무치는 하나의 소원, 즉 성신을 그리면서 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한을 남기고 갔기 때문에 그 한을 풀기 위해서는 성신이 이 땅에 와야 됩니다. 이런 말은 성경에도 없지요? 여러분은 한풀이한다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풀지 못한 한을 이 땅에 와서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모의 인연을 가지고 만민을 사랑하고 그 만민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으나 그러한 이념을 갖고 한을 품은 채 죽어갔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한을 풀기 위해서 영적 역사를 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발전사입니다. 45) 

예수님이 결혼해야 되겠느냐, 결혼하지 않아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원칙과 인간 본연의 가치를 두고 볼 때 예수님은 결혼해야 됩니다. 결혼해서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완전한 신부를 만나 가지고 완전히 하나되어,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실현할 수 있는 인간을 대표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던 것과 같이 아들 딸을 낳아야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해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중요한 책임인데도 불구하고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평생의 소원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 하는 것입니다. 신랑 앞에 신부를 찾아서 창조 유업을 계승하여 전권의 행사를 하나님 대신 지상에서 할 수 있는 그러한 나라와 그 세계를 소망하면서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는 것입니다. 46) 

하나님은 예수를 남자로 보냈으니 예수님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결혼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또, 이상적인 가정을 꾸며 남편과 아버지 소리를 듣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을 맺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나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여러분을 통해서 알려짐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민족 4천 년 역사는 메시아를 맞는 신부를 준비하는 터전을 닦아 온 역사입니다. 예수님이 죽어가면서 신랑 신부의 인연을 갖고 온다고 했기 때문에 기독교는 2천 년 동안 신부의 단장을 해온 역사입니다. 47)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독생자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 또한 독생녀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예수님이 독생녀를 찾았다면 오늘의 섭리역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을 것인데, 독생녀를 찾지 못했던 것이 역사적인 비극이기도 했습니다. 

재창조의 역사 중에서 독생녀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 가? 독생녀는 아담에 의하여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서 배필을 만드셨다고 했던 사실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실제로 아담의 갈비뼈를 취했다는 것이 아니라, 아담을 닮은 상대자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뜻에 합당하게 길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요셉 가정과 사가리아 가정, 세례 요한 가정과 요셉의 가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48) 

예수님은 신랑 신부의 이념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아담과 해와가 인류의 조상으로서 타락한 것을 완전히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둘이 타락했기 때문에 둘이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지 않고 신랑 신부의 인연을 이루고 12제자와 70문도, 120문 도들을 땅 위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어서 영적으로 축복해 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이루지 못하고 반대받고 몰림을 당하여 돌아가셨기에 한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49) 

예수님은 자신도 가정을 이루어 선한 아들 딸을 낳는 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선한 아들 딸을 낳는 부모가 되었다면, 그 예수님의 후손이 남아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후손이 남아졌으면 오늘날 기독교의 수많은 교파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며 통일된 교단이 되었을 것입니다. 50) 

예수님은 영계에서 2천 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 예수님을 믿다가 영계에 간 사람들은, 아직까지 결혼하지 못한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 있는 예수님 안에 들어가 있는 애기씨와 같은 입장이므로, 천국에 갈 수가 없어서 낙원으로 가서 예수님의 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천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신부가 나와야 됩니다. 신부의 인연을 거쳐서, 다시 말하면, 신부와 인연을 맺지 못하면 하늘나라를 대하여 자기 나라라 할 수 없고, 천국에 대하여 자기의 생활적인 이상세계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결혼만 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완성한 남자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51) 

축복은 하나님, 예수, 성신의 소망입니다. 이것을 풀어야 새 역사가 풀립니다. 고로 축복은 이 전체의 소망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재림하여 이것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52) 

다시 오실 주님은 완성한 아담의 입장에서 오게 됩니다. 그 아담은 지상에 태어나 해와를 통해 다시금 축복을 받는 노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완성한 아담의 자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가 아니라 지상에서 책임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53) 


5. 예수님의 축복과 기독교사상
창조원칙을 보면, 아담을 먼저 지으시고 그 아담을 중심삼고 해와를 지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아들과 협조해 가지고 아들의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물론이요 마리아도 협조해 가지고 신부를 찾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마리아가 책임을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날 마리아가 갈릴리 가나의 잔칫집에서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고 하자 예수님은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 말은 남이 장가가는 데 무슨 상관이냐는 거예요. 즉, 예수님이 장가갈 때가 되었는데도 왜 마리아는 모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마리아가 책임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가를 갔으면 예수님의 아들딸은 하나님의 손자, 혹은 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족속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거룩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데 그야말로 미친 놈들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사교 중의 사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세인으로 와 가지고 장가간다는 데 뭐가 어째요? 그것에 대해 ‘오, 우리 거룩한 하나님이 장가를 가다니’ 하며 실망한다는 거예요. 왜? 장가를 가면 거룩하지 않아요? 남자나 여자나 제일 거룩한 것이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장가를 가서 아들딸을 낳았다면 교황은 누가 되겠어요?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되겠어요? (웃음) 예수님의 직계 아들 딸들이 로마의 교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의 왕은 자연히 되었을 겁니다. 

이렇게 땅 위에 기반을 갖추려고 했던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잃어버린 기독교는 영적 이스라엘만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에게는 기반을 갖출 수 있는 땅덩이가 없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이 차지할 수 있는 왕국입니까? 그러니 쫓김을 당하고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비밀을 가지고 나오니까 종과 같은 기독교인들이 무서워서 지금 우리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반대하겠으면 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마치 공산당이 조직을 만들어 부르주아를 타도하자고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누가 밀려나게 될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밀려나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밀려나겠어요? 그 사람들이 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단 한 사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54) 

예수가 왜 죽게 되었느냐? 예수가 장가를 들었다면 죽었겠어요, 안 죽었겠어요? 기성교회 아줌마가 와서 이 말을 듣는 다면 기가 막힐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가를 들다니…’ 할 겁니다. 여러분, 예수가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남자입니다」 남자로 태어났으니 남자의 소성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면 좋은 여자가 있으면 내 신부로 삼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그건 물어보나마나라는 것입니다. 오늘 시간이 있으면 여러분들이 의심나는 것을 전부 풀어주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이 다음에 시간이 있을 때 다시 한번 만나자구요. 이런 내용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 겁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여자가 있는 줄 알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로 태어난 예수님이 장가를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로 온 예수가 장가가서 아들딸을 낳았다면 그들은 뭐가 되겠어요? 하나님의 손자 손녀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손자 손녀를 보고 싫어하시겠습니까, 좋아하시겠습니까? 물어볼 것도 없이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죽은 동기가 어디 있느냐?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를 장가 보내지 못한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한이 맺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갈릴리의 남의 혼인잔치집에서 포도주가 모자란다고 말하는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때렸던 것입니다. 시시하다는 거예요. 자식이 가야 할 앞길은 닦아 주지 않고 무슨 수작이냐는 거예요. 예수의 사정이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내용을 하나도 모르고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믿고 있습니다. 뭐 천당 가고 신부 되겠다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신랑의 사정이 어떻고 신랑의 역사가 어떠한가, 신랑이 어떠한 외로움을 느끼고 어떠한 고통을 당했는가 하는 것을 다 알아 가지고 모셔야 될 것 아니예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예수가 고생했겠거니….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싱겁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런 기성교인들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55) 

예수님은 어머니인 마리아 앞에 세 번씩이나 통곡하면서 하소연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30세가 될 때까지 어머니가 자기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보따리를 싸짊어지고 집을 나와 공생애 노정을 출발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머니인 마리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예수님이 장가갈 수 있는 상대적 인연을 갖추게끔 역사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그런 기반을 완결짓기 위해서는 모자 협조가 이뤄진 가운데 아들이 가야 할 한스러운 길을 어머니가 전부 다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의 신부를 택정하여 요셉 가정 기반 위에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성혼식을 올려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꿈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리아 자신은 생활문제, 자기의 상대문제에 얽매여 살기에 급급했습니다. 56) 

지금까지 모자 협조를 해 나온 것은 아들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마리아는 어떤 존재라고 했습니까? 「종입니다」 아들을 낳긴 했지만 종의 몸으로 낳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신부가 있어야 됩니다. 창조원칙에 따라 여자를 창조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아담 입장이므로 잃어버린 해와를 찾아야 됩니다. 그래야 결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해와를 찾았어요? 못 찾았습니다. 찾다가 죽었으니 예수님은 다시 와야 됩니다. 다시 와서는 장가를 가야 됩니다. 그렇지요? 장가가려다 죽었으니 장가가려고 다시 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가간다는 사상이 기독교의 사상입니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님이 오실 때에는 무슨 잔치를 한다고 했어요? 「혼인잔치요」 혼인잔치가 뭡니까? 혼인잔치는 시집 장가간다는 뜻입니다. 혼인잔치는 결혼잔치입니다. 그렇지요? 「예」 이런 말을 한다고 이단이라고 야단입니다. 괜히 배가 아파서. 

혼인잔치, 즉 어린양 잔치를 하려면 예수님을 중심삼은 신부가 있어야 됩니다.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신부가 누구냐 하면 해와입니다. 타락하기 전 아담 앞에 있었던 해와입니다. 재림주님은 3차 아담입니다. 예수님은 2차 아담이고,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3차 아담입니다. 그래서 3차아담이 타락하기 전 아담처럼 와가지고 타락하기 전 해와를 찾아야 됩니다. 타락하지 않은 해와를 찾아서 어린양 잔치를 해야 됩니다. 결혼함으로써 인류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부모가 되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악한 부모가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타락하기 전의 선한 부모를 가지게 되면 복귀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선한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어린양 잔치를 하는 것은 선한 부모로 등극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 사상은 간단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사상의 골자입니다. 57)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은 가정을 사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얼마나 불쌍한가 생각해 보세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믿으면서 뭐 어떻고 어떻고 하지만, 그 예수님이 얼마나 못나고 불쌍한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정을 사랑해 봤습니까, 나라를 사랑해 봤습니까, 천주를 사랑해 봤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해 봤습니까? 못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사랑하려고 애썼지만 못 했다는 것입니다.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