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5장 참된 가정이 참된 인간을 완성한다
56 자서전 얼어붙은 시아버지의 마음을 녹인 10년의 눈물 1.mp3
얼어붙은 시아버지의 마음을 녹인 10년의 눈물
‘일본인 며느리가 밀양의 효부가 됐다’는 기사가 여러 일간지에 일제히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종교단체의 소개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에 시집온 일본인 며느리가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와 연로한 시아버지를 지성으로 봉양하여 주위 사람들의 추천으로 효부상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녀는 결혼 첫날부터 지체 장애 2급으로 하반신 불구인 시어머니를 등에 업고 병원을 전전하며 병수발을 들었습니다. 시부모님을 모시느라 고향 한번 마음 놓고 가보지 못한 그녀는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했을 뿐이라며 효부상을 받은 것에 대해 오히려 민망해했다고 합니다.
그 일본인 며느리는 우리 교회의 교차결혼을 통해 우리나라에 온 야시마 가즈코八島和子입니다. 교차결혼이란 종교, 국가, 인종을 초월하여 남녀가 결혼으로 맺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농촌에 가면 장가를 가지 못한 청년들이 넘쳐납니다. 교차결혼으로 우리나라 농촌 총각들과 결혼한 신부들은 어떠한 조건도 따지지 않고 한국에 와서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삽니다. 또한 병든 시부모를 살리고, 좌절해있던 남편에게 기운을 북돋아주며, 자식을 낳아 기릅니다.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기 힘들다고 떠나버린 농촌을 지키고 살려냅니다. 얼마나 고맙고 귀한 일입니까? 이렇게 고귀한 일이 이미 30년 넘게 계속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 교차결혼을 통해 우리나라에 정착한 외국 여성들은 수천 명이 넘습니다.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버려 그동안 아기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던 동네 노인들은 그들이 낳은 아이를 친손자가 태어난 것처럼 기쁘게 반깁니다.
충청도의 한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는 전교생 80여 명 중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교차결혼으로 맺어진 우리 교회 식구들의 2세라고 합니다. 그 학교의 교장은 더 이상 학생 수가 줄어들면 학교를 폐교해야 한다며 우리 교회 식구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는 일이 없기를 매일 기도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교차결혼으로 태어난 어린이 2만 명이 초등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도 광복절이 되면 “일본인이 지은 죄를 사죄합니다” 라며 머리를 조아리는 특별한 일본인의 모습이 텔레비전 뉴스에 등장합니다. 자신이 직접 지은 죄는 아니지만 조상이 지은 죄를 대신 사죄하는 것입니다. 그들 역시 십중팔구는 교차결혼을 통해 국가 간의 장벽을 허물어버린 우리 식구들입니다. 그들 덕분에 일본을 원수처럼 여기던 우리 마음의 벽이 많이 허물어질 수 있었습니다.
나를 잘 따르던 아주 영특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1988년에 결혼을 하려고 배필을 구하는데 마침 일본여자가 짝이 되었습니다. 청년의 아버지는 "하필이면 일본여자를 며느리로 맞아야 하다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징용으로 끌려가서 이와테岩手 탄광에서 강제 노동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찌나 일이 힘들던지 죽음을 무릅쓰고 탄광을 탈출한 그는 시모노세키下關까지 몇 십 일 동안 걸어가서 부산 가는 배를 얻어 타고 가까스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일본에 대한 증오가 하늘에 닿을 정도였습니다.
"이 불효막심한 놈 같으니라고. 우리 집 족보에서 당장 빼버리겠다. 우리 집에는 절대로 원수 나라의 여자를 들일 수 없으니 당장 데리고 사라져라! 너하고는 맞지 않는 짝이니 집을 나가든지 죽든지 알아서 해라!"
아버지의 태도는 강경했습니다. 하지만 청년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일본 신부와 결혼을 한 후 낙안에 있는 고향집으로 신부를 데리고 갔습니다. 아버지는 대문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의 결혼을 받아들인 후에도 며느리를 향한 구박은 계속됐습니다. 며느리가 힘들어 할 때마다 "너희가 나한테 한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럴 줄 모르고 우리 집에 시집왔느냐?"며 면박을 주었습니다.
또 시아버지는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일 때마다 일본 며느리를 곁에 앉혀놓고는 이와테 탄광 시절의 얘기를 하고 또 했습니다. 그때마다 며느리는 "아버님, 제가 일본을 대신하여 사죄드립니다. 잘못했습니다." 하며 눈물을 흘리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일본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한풀이가 계속되는 동안 지겹도록 반복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한없이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렇게 10 년쯤 지난 후에야 시아버지는 며느리에 대한 박해를 멈추었습니다. 원수를 대하듯 하던 차가운 태도가 누그러들며 며느리를 예뻐하는 모습에 놀란 식구들이 물었습니다. "아니 요즘엔 며느리한테 왜 그렇게 다정히 하십니까? 일본 여잔데 밉지 않으세요? " "이젠 안 미워. 내 마음 속에 쌓였던 한이 다 풀렸거든. 그동안 나는 며느리를 미워한 것이 아니야. 징용 가서 쌓인 한을 괜히 며느리에게 퍼부은 거지. 이 아이 덕분에 내 한이 다 풀렸어. 이제부터는 내 며느리이니까 예뻐해야지."
일본인들이 지은 죄를 며느리가 대신 갚은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가 평화세계로 가는 속죄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