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4장
4장 우리의 무대가 세계인 이유
32 자서전 꿈에도 잊지 못할 1976년,워싱턴 모뉴먼트 1.mp3
꿈에도 잊지 못할 1976년, 워싱턴 모뉴먼트
1975년 12월에 뉴욕 맨해튼의 북쪽에 있는 배리타운에 통일신학대학원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와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모든 종교를 초월해서 각계의 교수들을 초빙했습니다. 그들이 교단에서 자신의 종교를 가르치면 우리 학생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묻습니다. 수업시간은 매번 격렬한 토론장이 되었습니다. 모든 종교가 한 덩어리가 되어 토론을 하며 잘못된 편견을 깨고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능한 젊은이들이 우리 학교에서 석사 공부를 마친 뒤에 하버드나 예일대학의 박사과정에 입학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세계 종교계를 이끌어가는 인재들이 되었습니다.
미국 국회는 1974년과 1975년에 나를 초청했습니다. 나는 하원 의원들 앞에서 'One Nation Under God'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미국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탄생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 축복은 단순히 미국인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축북은 미국을 통해 내려진 세계를 위한 축복입니다. 미국은 축복의 원리를 깨닫고 전 세계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미국은 건국정신으로 되돌아가는 일대 각성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수십 개로 나누어진 기독교를 통합하고 모든 종교를 규합해서 세계문명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합니다" 하고 거리의 젊은이들을 향해 외쳤던 그대로 미국 국회의원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때까지 미국 의회에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한 외국의 종교 지도자는 나밖에 없었습니다. 연달아 두 번이나 국회의 초청을 받자 한국에서 온 문 총재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그 이듬해 6월 1일, 뉴욕의 양키스타디움에서 미국의 건국 2백주년을 축하하는 축전이 열렸습니다. 당시 미국은 건국 2백 주년을 자축할 만큼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공산당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고, 미국의 청소년들은 마약과 낙태 등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나는 미국, 그것도 뉴욕이 큰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병들어 누운 뉴욕의 심장에 칼을 대는 심정으로 축전에 임했습니다.
축전 당일은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습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아무도 비를 피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밴드가 'You Are My Sunshine'을 연주하자 양키 스타디움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그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비를 철철 맞아가며 햇빛의 노래를 부르니, 입으로는 노래를 하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났습니다. 빗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복싱을 했었습니다. 복싱을 할 때 잽을 아무리 여러 번 넣어도 맷집 좋은 선수들은 끄떡도 안 합니다. 하지만 어퍼컷을 한 방 크게 날리면 아무리 힘 좋은 선수도 휘청합니다. 나는 미국이란 나라에 어퍼컷을 한 방 크게 날릴 셈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거둔 성공보다 훨씬 큰 규모의 집회를 가져서 미국사회에 문선명의 이름을 확고하게 박아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워싱턴은 미국의 수도입니다. 국회의사당과 직선으로 이어지는 자리에 모뉴먼트라고 하는 탑이 있습니다. 마치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세워놓은 것과 같은 모양입니다. 그 모뉴먼트 아래로 링컨기념관까지 이어지는 드넓은 잔디밭이 있습니다. 그곳은 말 그대로 미국의 심장입니다. 나는 그 곳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을 세웠습니다.
워싱턴 모뉴먼트에서 행사를 가지려니 미국 정부의 허가를 얻어야 하고 미국 파크경찰한테도 허가를 얻어야 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위기에 몰린 닉슨 대통령을 용서하라고 신문광고를 내고 카터 대통령의 자유주의 정책을 심하게 반대한 사람이니 반가워할 리가 없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여러번 퇴짜를 놓는 바람에 대회 날짜를 40일 앞두고서야 겨우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식구들도 너무 큰 모험이라며 다들 말렸습니다. 워싱턴 모뉴먼트는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사방이 뻥 뚤린 공원입니다. 그것도 나무가 울창하게 담장을 친 곳이 아니라 그저 푸른 잔디밭입니다. 그러니 행여 사람이 적게 모이면 천지사방에 그 썰렁함이 다 드러날 판입니다. 그 넓은 잔디밭을 가득 채우려면 수십만의 인파가 몰려와야 하는데 과연 그 일이 가능하겠는가 말입니다. 그때까지 워싱턴 모뉴먼트에서 큰 행사를 가진 사람은 두 사람 뿐이었습니다. 워싱턴 모뉴먼트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권 행진을 벌였던 곳이며 또 빌리 그래이엄 목사가 대규모 집회를 가졌던 상징적인 곳입니다. 그런 장소에 내가 도전장을 냈습니다.
나는 그날의 집회를 위해 쉴 새 없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원고를 네 번이나 고쳐 썼습니다. 집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 왔는데도 그날 무슨 설교를 해야 할지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그러다 원고 쓰기를 마친 날이 겨우 대회 사흘 전이었습니다. 본래 나는 설교 전에 원고를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이 쓰였습니다. 뭔지 확실치는 않지만 대단히 중요한 집회가 될 게 분명했습니다.
마침내 1976년 9월 18일, 꿈에도 잊지 못할 일이 그날 벌어졌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끊임없이 워싱턴 모뉴먼트로 몰려들었습니다. 무려 30만 명이라는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온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머리카락 색깔이며 얼굴색은 모두 제각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보내신 모든 인종이 다 모인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정말 세계적인 집회였습니다.
나는 30만 명의 인파 앞에서 "퇴폐적인 미국 청년들을 위기에서 구해내어 희망의 젊은이로 만들려 미국에 왔다"고 당당히 선포했습니다. 내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관중들 속에서 환호성이 일었습니다. 동양에서 온 레버런 문이 전하는 가르침은 혼돈의 시대를 살던 당시 미국 청년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전하는 순결과 참가정의 메시지에 환호했습니다.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내 안에서도 진땀이 흘렀습니다.
그해 연말,「뉴스위크」는 나를 1976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또 한 편에서는 나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들에게 나는 동양에서 온 이상한 마술사일 뿐 그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백인이 아니었습니다. 또 자기들이 흔히 듣던 기성교회의 가르침과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게 그들을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더군다나 백인 청년들이 '눈이 생선처럼 가늘고 긴 아시아인'한테 존경심을 표하고 따르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없습니다. 그들은 내가 순진한 백인 젊은이들을 세뇌시킨다고 악소문을 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환호를 보내는 무리들 뒤에서 나를 반대하는 세력을 모았습니다. 내게 또 다른 위기가 닥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겁내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분명히 옳은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미국은 인종차별과 종교차별이 심한 나라입니다. 전 세계 모든 인종들이 모여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자유와 평등의 나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은 인종차별과 종교차별로 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 곳입니다. 그것은 퇴폐와 타락, 물질주의처럼 1970년대의 풍요 속에 나타난 사회 병폐보다도 훨씬 더 미국 역사에 깊이 아로새겨져 쉽게 치유되기 어려운 고질병이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종교 간의 화합을 이끌고자 흑인들 교회를 자주 찾아갔습니다. 흑인 리더들 중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인종차별을 없애고 하나님의 평화세계를 이룩하려 애쓰는 숨은 일꾼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법적으로 인종차별이 금지되기 전, 수백 년 동안 벌어졌던 흑인 노예 시장의 사진을 교회 지하실에 전시해놓곤 했습니다. 살아있는 흑인을 나무에 매달아 불에 태우는 장면, 노예로 팔려온 흑인들을 닭처럼 늘어놓고 입을 벌려보는 장면, 남녀흑인을 벌거벗겨놓고 노예를 고르는 장면, 울부짖는 아이를 엄마 품에서 떼놓는 장면 등 차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앞으로 30년 안에 흑백 혼혈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겁니다."
1975년 10월 24일, 시카고 집회에서 나는 그렇게 말했고 그날의 예언은 지금 미국에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시카고 태생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내 예언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종교와 교파 간의 갈등을 없애기 위해 흘린 많은 사람의 피와 땀이 이제야 한 송이 꽃이 되어 피어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