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4장)

훈독왕 | 20190902182155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4장


4장 우리의 무대가 세계인 이유


첨부파일 32 자서전 미국으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 1.mp3


미국으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


1971년 말, 나는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미국에 가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인데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미국 비자를 처음 받는 것도 아닌데 도무지 비자가 나오지 않자 식구들 중에는 출국 날짜를 미루는 것이 어떻겠냐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식구들에게 무어라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정해진 날짜에 한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일본으로 가서 미국 비자를 해결하기로 하고 일단 출국을 서둘렀습니다.


내가 떠나려던 날은 몹시 추웠지만 여전히 나를 배웅하려고 식구들이 공항 밖까지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출국하려고 보니 여권에 외무부 여권 과장의 출국인증 날인이 빠져있었습니다. 결국 나는 예약했던 비행기를 타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일단 댁으로 돌아가 계시면 도장을 받아오겠습니다" 하며 출국준비를 담당했던 식구들이 어쩔줄 몰라했습니다.

"아니야,공항에서 기다릴 테니 어서 빨리 도장을 받아오게나." 


나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마침 일요일이라 여권과장이 출근도 안 했을 테지만 그런 사정을 봐줄 여유가 없었습니다. 우리 식구들이 여권과장의 집까지 찾아가 도장을 받아온 덕분에 그날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이튿날부터 해외출국이 금지되었습니다. 미국으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를 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에 가서 또다시 미국 비자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광복되기 직전에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고 일본경찰에게 잡혀갔던 기록이 남아서였습니다. 당시는 세계적으로 공산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127개국에 선교사를 내보냈는데 그중 공산국가 4곳에서 추방을 당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공산국가에서 선교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이었으나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에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우리는 동유럽의 공산국가에서 벌이는 선교활동을 나비작전이라고 불렀습니다. 애벌레가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낸 뒤에 날개를 달고 나비가 되는 모습이 공산국가에서 모진 고난을 참아야 하는 지하 선교활동과 닮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나비가 애벌레에서 탈피하는 것은 힘들고 외로운 과정이지만 날개를 얻은 나비는 어디든지 힘차게 날아갈 수 있습니다. 그처럼 지하 선교도 공산주의만 무너지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갈 것이었습니다.  


1959년 초에 미국으로 건너간 김영운 선교사는 미대륙의 모든 대학을 돌며 하나님 말씀을 전했는데 그중 버클리대학에 유학을 왔던 독일인 피터 코흐는 새로운 진리에 전도되어 학업을 중단하고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으로 가서 유럽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공산국가에 선교사를 내보내는 일을 했습니다. 제대로 된 파송예배 한번 하지 못한 채로 죽음의 땅으로 선교사를 내보내는 내 마음은 갑사 뒤편의 소나무 숲에서 최봉춘에게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을 타라고 내쫓던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자식이 매를 맞는 것을 보기란 차라리 내가 매를 맞는 것보다 더 참혹합니다. 차라리 내가 선교사가 되어 가면 좋을 것을, 식구들을 감시와 처형의 땅으로 내보내면서 내 마음은 줄곧 울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을 내보낸 후 나는 거의 모든 시간을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그들의 목숨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공산권 선교는 금세라도 공산당한테 뒷목을 낚아채일 듯 위태롭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공산권 선교를 나가는 사람들은 부모에게 목적지조차 알리지 못한 채 떠났습니다. 공산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아는 부모들이 사랑하는 자식이 죽음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할 리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련에 파송되었던 군터 부어르쩌는 소련의 KGB에게 발각되어 강제추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차우세스쿠의 독재정치가 극에 달했던 루마니아에서는 비밀경찰 세큐리타트에 미행을 당하고 전화를 도청당하는 일이 예사였습니다.


한마디로 사자굴에 들어산 것이나 마찬가지인 삶이었습니다만 공산국가로 들어가는 선교사들의 숫자는 나날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1973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선교사를 비롯한 우리 식구들 30여 명이 한꺼번에 검거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24살의 마리 지브나는 차디찬 감방에서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어 공산국가에서 선교하다 숨진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고 이듬해에 또 다른 한 사람이 감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교회 식구들이 감옥에서 숨졌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온 몸이 굳어졌습니다. 말하는 것,먹는 것은 물론 기도조차 하지 못하고 돌덩어리가 된 것처럼 앉아만 있었습니다. 그들이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전하는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그토록 춥고 외로운 감옥에 갈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곳에서 죽을 일도 없었을 텐데 …. 그들은 나를 대신해서 고통을 당하고 죽은 것입니다.


'그들의 생명과 맞바꾼 내 목숨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들이 나를 대신해서 지고 간 공산권 선교의 짐을 나는 어떻게 갚아야 할까?' 나는 점점 더 말을 잃어갔습니다. 깊은 물 속에 잠긴 듯 한없는 슬픔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내 눈 앞에 마리 지브나가 노란 나비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차디찬 감옥을 벗어난 노란 나비는 힘을 잃고 주저앉은 나에게 힘을 내고 일어서라며 날개를 팔랑거렸습니다. 그녀는 목숨을 건 선교를 통해 정말 애벌레를 깨고 나온 나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처럼 극한 상황에서 선교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난히 꿈이나 환상을 통한 계시가 많았습니다. 사방이 막힌 곳이라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곳이니 하나님이 계시를 통해 갈 길을 일러주셨던 것입니다. 잠깐 잠이 든 새에 '얼른 일어나 자리를 옮기라'는 꿈을 꾸고는 급히 몸을 피하자마자 비밀경찰이 들이닥쳐 목숨을 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또 한번도 직접 본 적 없는 내가 꿈에 나타나 선교 방법을 일러주기도 했다면서 나를 만나자마자 "아, 그때 꿈에서 뵈었던 선생님이 맞으시네요" 하며 반가워했습니다.


이렇게 공산주의를 무너뜨리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나를 공산주의자로 의심하고 미국 비자를 내주지 않아, 하는 수 없이 그동안 캐나다에서 반공을 위해 일했던 자료들을 제출하고서야 겨우 비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복잡한 과정을 거쳐가며 미국에 간 것은 그들을 타락시킨 검은 세력과 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생명을 걸고 악의 세력과 전쟁을 벌이려 떠난 겁니다.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와 마약, 퇴폐, 음란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가 아수라장처럼 뒤섞여 펄펄 끓고 있었습니다. 나는 '소방수이자 의사로서 미국에 왔노라'고 외쳤습니다. 집에 불이 나면 소방수가 달려오고, 몸에 병이 나면 의사가 찾아오듯 나는 타락의 불에 타고 있는 미국에 불을 끄러 달려간 소방수이자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퇴폐의 늪에 빠진 미국의 병을 고치러 간 의사였습니다.


1970년대 초 미국은 월남전을 둘러싼 갈등과 물질문명에 대한 회의로 사회가 심하게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은 거리를 떠돌며 술과 마약, 프리섹스에 인생을 허비하고 소중한 영혼을 방치했습니다. 그들이 방황을 끝내고 올바른 삶으로 돌아오도록 이끌어줘야 할 종교는 제 역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저속한 음란물이 거리에서 버젓이 팔려나가고 마약을 먹고 환각에 빠져 휘청거리는 젊은이들이 넘쳐났으며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은 마음 둘 곳을 잃고 거리를 헤맸습니다. 하나님은 온갖 범죄가 판을 치는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려 나를 그곳에 보내셨습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기독교의 새로운 장래'와 '하나님의 뜻과 미국'이라는 주제로 전역을 순회하며 강연활동을 펼쳤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무도 지적하지 않은 미국의 약점을 아프게 꼬집었습니다.


"미국은 본래 청교도 정신으로 세운 나라입니다. 불과 2백 년 사이에 세계 최대 강대국이 될 만큼 눈부신 발전을 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사랑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자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지금 미국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어떻게든 영성을 다시 회복하지 않으면 미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영성을 깨워 망해가는 미국을 구하려 이곳에 왔습니다. 회개하십시오! 회개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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