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미래가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4장) u

훈독왕 | 20190902181931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4장


4장 우리의 무대가 세계인 이유


바다에 미래가 있다


어려서부터 내 마음은 늘 먼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고향에서는 산에 올라 바다를 그리워했고 서울에 와서는 일본으로 건너가고 싶어했습니다. 언제나 지금보다 더 넓은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1965년, 처음으로 세계순방에 나섰습니다. 트렁크 속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흙과 돌이 잔뜩 들어있었습니다. 세계를 돌며 곳곳에 한국의 흙과 돌을 심을 작정이었습니다. 열 달 동안 일본과 미국,그리고 유럽의 40개 나라를 돌았습니다. 서울을 떠나던 날, 수십 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온 우리 식구들로 김포공항이 꽉 찼습니다. 당시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상당히 큰일이었습니다. 북서풍이 매섭게 불어오는 1월의 비행장에 사람들이 새까맣게 모여들었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는 일입니다. 나는 식구들의 마음을 고맙게 받았습니다.


당시 우리의 선교국은 열 개 나라가 겨우 넘었지만 나는 2년 안에 40개 나라로 늘릴 생각이었습니다. 40개 나라를 돌아본 것은 바로 그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첫 번째 나라는 일본이었습니다. 밀항을 해가며 선교를 시작한 일본에서 나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습니다. 국법을 어기고 목숨을 내건 위험한 출발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우리의 선택은 매우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일본 식구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일본적입니까? 아니면 일본적인 것을 넘어섰습니까?"

나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일본적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본적인 것을 필요로 하시지 않습니다. 일본을 넘어서는 것, 일본을 넘어선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일본의 한계를 넘어서 세계를 지향하는 일본인이라야 하나님께 쓰일 수 있습니다."

서운하고 냉정하게 들렸겠지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두 번째 기착지는 미국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린 나는 미국 선교사와 함께 두 달 동안 미국 전역을 돌았습니다. 미국을 돌아보는 동안 '전 세계를 호령하는 중심 본부는 미국이다. 앞으로 창건할 새로운 문화는 반드시 미국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라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나는 미국 땅에 5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수련소를 지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1백 개 이상의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을 받아들일 국제적인 수련소를 짓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소원은 오래지 않아 이루어졌습니다. 그 후 해마다 1백 개 나라에서 4명씩 보내온 사람들이 수련소에 모여 6개월 동안 세계평화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일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종이나 국경, 종교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인종과 국경, 종교를 넘어 다양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세계평화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논하는 일이 인류를 성장시키고 세계를 보다 발전된 사회로 만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미국을 순방하는 동안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제외한 48개 주를 모두 돌아보았습니다. 뒷좌석에 짐을 실을 수 있는 왜건을 빌려 타고는 밤낮 없이 달렸습니다. 행여 운전수가 졸기라도 하면 "이보게, 피곤한 것 다 알고 있네. 하지만 내가 미국 유람을 하러 온 것이 아니고 큰일을 해야 하니 바삐 가게" 하며 잠을 깨웠습니다. 어디 편안히 앉아 밥을 먹은 적도 없습니다. 차 안에서 식빵 두 쪽에 소지지 하나를 넣고 오이 피클이나 더 얹어 먹으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됩니다. 아침이건 점심이건 저녁이건 늘 그렇게 먹었습니다. 잠도 차 안에서 잤습니다. 차가 숙소이고 차가 침대며 차가 식당이었습니다. 좁은 차 안에서 먹고 자고 기도했습니다. 그 무엇도 못할 게 없었습니다. 당시 내게는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몸이 조금 불편한 것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를 거쳐 중남미를 돌아본 다음에 유럽으로 건너 갔습니다. 내 눈으로 직접 본 유럽은 완전히 바티칸 문화권이었습니다. 바티칸을 넘어서지 않고는 유럽을 넘을 수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 험하다는 알프스도 바티칸의 위세 앞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유럽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는 바티칸에서 나도 땀을 뚝뚝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수많은 교파와 교단으로 분열된 종교가 하루빨리 하나로 통일되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세상을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로 이리저리 나누어놓은 것을 기필코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습니다. 그 후 이집트와 중동을 거쳐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둘러보는 것으로 열 달간의 긴 순방을 마쳤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내 트렁크에는 40개 나라 120개 지역에서 가져온 흙과 돌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우리나라에서 가져간 흙과 돌을 새로운 땅에 심고 그곳의 흙과 돌을 거두어온 것입니다. 흙과 돌로 세계 40개 나라와 한국을 연결한 것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평화세계가 실현되는 미래를 대비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40개 나라에 모두 선교사를 내보낼 채비를 시작했습니다. 넓은 지구촌을 돌아보면서 나는 아무도 모르게 세계를 무대로 펼칠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교회가 커지고 선교지가 하나둘 늘어날수록 선교비 지출도 부쩍 늘었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한 더 큰 사업이 필요했습니다. 나는 미국 48개 주를 다니면서 과연 어떤 일이 우리 교회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업이 될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미국사람들은 고기를 매일같이 먹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선 소 한 마리 값이 얼마인지를 알아보았습니다. 마이애미에서 25달러 하는 소가 뉴욕에 가면 4백 달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또 참치 한 마리는 얼마나 하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참치 한 마리는 4천 달러가 넘었습니다. 게다가 참치는 한꺼번에 150만개가 넘는 알을 낳지만 소는 한 마리밖에 낳지 못합니다. 그러면 소를 키워야겠습니까, 참치를 잡아야겠습니까? 답은 분명했습니다. 


문제는 미국사람들이 바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참치라면 맥을 못 추었지요. 미국에도 일본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고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고급레스토랑은 참치회를 아주 비싸게 팔고 있었습니다. 일단 회에 맛을 들인 미국인들도 참치를 즐겨 먹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육지보다 바다가 더 넓습니다. 미국은 넓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물고기가 풍부합니다. 또 2백 해리만 나가면 내 바다, 네 바다가 없어 누구라도 그곳에 나가 물고기를 마음껏 잡을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소를 키우려면 땅을 사야 하는데 바다는 그럴 필요가 없고 배 한 척만 있으면 어디까지라도 나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바다 속에는 먹을 것들이 가득하고 바다 위로는 세계를 하나로 묶는 해운사업이 활발합니다. 전세계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물건이 상선에 실려 바다를 누빕니다. 바다는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무한한 보물창고였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배를 여러 척 샀습니다.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선박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34피트에서 38피트 정도 되는 배를 샀습니다. 엔진을 끈 채로 참치를 쫓아다닐 수도 있고 큰 사고도 없는 요트 크기의 고기잡이배였습니다.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탬파, 알래스카에 배를 띄우고 배를 고치는 수선소도 세웠습니다.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한 지역에 배 한 척씩을 띄워 바닷물의 온도를 재고 날마다 참치가 얼마나 잡히는지를 조사해 도표로 만들어 통계를 냈습니다. 전문가들이 만들어놓은 통계를 얻어다 쓴 것이 아니라 우리 식구들이 직접 물 속에 들어가 잠수를 하면서 만들었습니다. 그 지역의 유명한 대학교수가 연구한 결과는 참조만 할 뿐 내가 직접 그곳에 들어가 살면서 일일이 확인을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만든 자료만큼 정확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힘들여 만든 자료였지만 독점하지 않고 모든 정보를 수산업계에 다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바다를 개척했습니다. 한 바다에서 너무 많이 고기를 잡으면 어족이 말라버립니다. 서둘러 다른 바다로 진출해야 합니다. 수산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미국 수산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또 일을 벌였지요. 바로 아주 먼 바다로 나가는 원양어선 사업에 뛰어든 것입니다. 배 한 척이 바다에 나가면 적어도 반 년 동안은 집에 돌아오지 않고 고기잡이만 하는 것입니다. 배에 고기가 꽉 차면 먹을 것과 석유를 잔뜩 실은 운반선이 나가 고기와 바꿔옵니다. 배에는 아주 커다란 냉장실이 있어 잡은 고기를 한참동안 저장할 수 있었습니다.


뉴 호프라는 이름의 우리 배는 참치를 많이 잡는 걸로 유명합니다. 그 배를 내가 직접 타고 나가서 참치를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배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젊은이들한테 배를 타라고 하면 겁부터 먹고 모두들 도망갔습니다. "선생님, 저는 배멀미가 심해서 안 됩니다. 배만 타면 울렁거려서 죽을 것 같아요" 하며 사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탔습니다. 그때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배를 탄 것만 7년이 넘고 그 후로도 아흔 살이 되는 지금까지 시간만 나면 배를 탑니다. 그러자 이제는 "나도 선생님처럼 캡틴이 되고 싶으니 배를 타게 해주십시오" 하며 나서는 청년들이 늘어났습니다. 배를 타겠다는 여자들도 많아졌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리더가 먼저 하면 따라하게 되어있습니다. 덕분에 나는 소문난 참치잡이꾼이 다 됐습니다.


그런데 참치를 많이 잡기만 하면 뭐 합니까? 제때에 제값을 받고 팔지 못하면 헛고생입니다. 나는 참치 가공공장을 만들고 직접 판매까지 했습니다. 냉장 시설이 되어있는 대형 트럭에 참치를 싣고 다니며 팔았습니다. 판매가 막히면 아예 씨푸드 레스토랑 Seafood-Restaurant을 만들어 참치를 직접 소비시켰습니다. 그렇게 하자 다들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세계적인 어장 4개 가운데 무려 3개를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 말은 전 세계 고기의 4분의 3이 미국을 둘러싼 바다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고기를 잡을 사람이 없어 수산업이 형편없이 뒤떨어져 있었습니다. 나라에서는 수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별의별 진흥책을 내놓았지만 큰 효과가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2년 반 동안 배를 타기만 하면 10퍼센트의 값에 배를 준다고 하는데도 지원자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우리가 수산업을 일으키자 항구도시들마다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만 들어가면 도시가 번성하니 안 그랬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일은 결국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일이었습니다. 단순한 고기잡이가 아닙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다는 게 얼마나 흥미롭습니까?


바다는 참 잘도 변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조변석개朝變夕改한다고 하지만 바다는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바다는 더 신비롭고 더 아름답습니다. 바다는 천하를 품고 삽니다. 한 곳에 모여 구름이 되기도 하고 비가 되어 다시 내리기도 합니다. 나는 자연이 속임수가 없어서 참 좋습니다. 높으면 낮아지고 낮으면 높아집니다. 어떤 경우라도 평평하게 그 높이를 맞춥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있으면 한가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바다 위에서 무엇이 우리를 방해할 수 있을까요? 누가 우리를 다그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여유 시간이 많습니다. 그저 바다를 보며 바다와 이야기를 나누면 됩니다. 바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영적인 세계가 넓어집니다. 그러나 바다는 금세 평온하던 얼굴을 바꾸어 거센 파도를 몰아칩니다. 사람 키의 몇 배나 되는 파도가 집어삼킬 듯이 뱃전으로 솟구칩니다. 사나운 바람이 돛을 찢고 무서운 소리로 울어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파도가 거세고 바람이 사납게 부는 중에도 물고기들은 물 속에서 잠을 잘도 잡니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잡니다. 그래서 나도 물고기들한테 배웠습니다. 아무리 거센 파도가 밀려와도 무서워하지 않기로 말입니다.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나도 배와 한 몸이 되어 물결을 타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파도를 만나도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바다는 내 인생의 훌륭한 스승입니다.